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한다[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⑥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한다-8, 9강

 

이순웅(숭실대 외래교수)

* 자본주의의 간단한 역사,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힘, 자본주의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 – 신의 역할을 하는 화폐

 

중세와 근대는 역사적 연속성이 있다. 두 시대는 이질적이지 않다.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의 등장으로 세속적 역사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화폐가 신을 대신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 때는 사제가 신을 내세우면서 권력을 누렸다. 그는 신의 대리자였다.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에는 금융자본가가 화폐의 중요성을 내세우면서 권력을 안착시켰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정치권력을 자기 앞에 내세운다. 그는 자신을 은폐하면서도 화폐가 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만큼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중세 시대에 신을 받아들인 것만큼이나 오늘날의 우리는 화폐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중세 시대에는 신을 모르거나 믿지 않거나 부정하는 자는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거나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오늘날에는 신을 부정할 자유가 생겼다. 그러나 불법적으로 정치권력에 도전하는 자 그리고 화폐를 부정하는 자는 철저히 응징 당한다.

우리 시대의 지배자들은 정치권력에 도전하려면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합법적어서는 정치권력을 바꿀 수 없다. 법 자체가 정치권력을 쥔 자, 나아가서는 화폐를 쥔 자들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법’이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돈을 경멸하는 자조차도 화폐가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잘 알지만,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어렵다.

새로운 대안은 정치권력을 쥔 자의 배후에는 금융자본가가 있다는 것, 금융자본가의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화폐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화폐는 비물질적 형태로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치 신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경배하도록 만든다.

결국 새로운 대안은 정치권력의 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화폐의 신적 성격을 부정하는 데서부터 발생한다. 신은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것일 수 있지만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화폐는 우리 생활 전체를 지배하지만 먹을 수도 없고, 아픈 것을 낫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창고에 쌓여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통장에 써 있는 숫자의 형태로, 장부상으로만 존재한다. 신을 믿는 자에게 신은 자신의 모든 것이지만, 신을 믿지 않는 자에게 신이란 집에서 기르는 개만도 못하다. 화폐나 신의 실재성에 관해 의심해보기, 무의식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고정 관념의 파괴, 즉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화폐 없이 살 수는 없는 건지 생각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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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세 –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Constantinus 1세(AD 274~337) – 고대 로마 황제(재위 306~337).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 또는 콘스탄틴 1세. 원래 태양신을 숭배하였으나 기독교에 깊이 경도, 기독교도가 되어 – 어머니가 기독교 신자였다고 함 – 313년 밀라노에서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勅令)(Milan Edict)을 공포, 신앙의 자유를 인정했다. 예수와 바울의 관계. 기독교는 예수의 제자들이 만든 종교가 아니다. 바울이 아니었다면 기독교가 생기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울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그렇다면 기독교(Christianity)의 의미는? 기독교는 예수 때문에 생긴 종교다. 예수가 자기를 따르는 종교를 만들라는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바울의 노력으로 기독교도 생겼다. 기독교도란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 예수처럼 살고자 하는 무리들이라는 뜻이다.

종교(religion)의 의미. ‘신과 인간을 다시 잇는다’는 뜻. 이때 신은 전지, 전능, 전선, 영원불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존재이다. 구약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신과 함께 있었으나 지혜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금기를 어겨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그 후부터 인간에게는 신앙을 통해 신과 자신을 다시 연결해보려는 소망이 생겼다. 그런데 동양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 관념이 없다. 종교라는 말 자체는 서양 사람들의 신 관념에서 나온 말이다. 기독교는 서양 문화를 형성하는 한 축이다. 그리고 이라는 영상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독교는 자본주의의 발전과도 밀접한 연관을 지녔다. 유대인인 레비나스는 기독교의 타락을 지적하면서 유대교적 발상에서 일종의 대안을 찾고 있다. 그것은 메시아를 기대하는 것인데, 모든 사람이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대교와 불교적 발상의 결합이기도 하다. 유대교는 메시아를 믿고 기다리며, 불교는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 박해를 중지시키고 교회의 사법권, 재산권 등을 우대했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한편, 독립적인 재판까지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독립적인 재판을 한다는 것은 교회가 옳고 그름의 문제를 세속 권력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중세 말 또는 르네상스시기에 종교 재판의 힘이 막강해지는 데에도 기여한 셈이다.

갈릴레오는 정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을까? 부르노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중세에는 왕권(세속 권력)과 교권(교회 권력. 교황)의 대결에서도 교권이 우위를 차지했다. 나폴레옹 대관식(1804년)은 이 관계가 역전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밀라노 칙령의 정치적 의미 – 유일신교는 절대적 권력을 가진 1인 황제체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1인 황제의 권력은 유일신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신앙은 사회 통합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는 왜 박해를 받았나? 기독교는 육체, 지상의 문제는 덧없는 것이라 가르쳤다. 영혼, 그리고 그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안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세속 권력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유일신 신앙이 황제 1인의 유일한 권력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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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르네상스(Renaissance, 부활, 재생)

중세와 근세 사이(14~16세기)에 서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역사 시기와 그 시대에 일어난 문화운동. 고대 로마와 그리스 고전 문화의 부활, 재생. logos의 부활.
신앙과 이성, 종교와 과학, 신학과 철학, 천상과 지상, 영혼과 육체,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에서 후자가 중요시되는 시기. 정치적으로는 로마 공화정, 그리스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짐.

예를 들어 르네상스 회화에서는 그리스 신화, 기독교 창조 신화 등을 묘사하면서 인간의 벗은 육체를 등장시킨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영혼에서 육체로 관심을 돌림.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육체를 이용해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육체는 자본주의적 이윤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화장술, 성형수술의 중요성. 상품화가 전면화된 사회.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려면 재벌가 또는 유력 정치인의 딸이어야 하거나 절대 미인이어야 한다. 재력가끼리의 정략결혼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절대 미인은 미스코리아 출신이거나 주연급 탤런트 출신을 의미한다. 미인은 고가의 상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인이 아나운서가 되면 ‘현명함’이라는 인상이 보태져 그 가치(가격)가 더 높아진다. / 그러나 재력 없는 미인은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결혼이란 재산을 나누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능력(재력) 있는 아들을 둔 시어머니가 능력 없는 며느리에게 ‘열쇠를 많이 가져오라’ 요구하는 것은 등가교환을 하자는 것이다.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 그녀에게 사랑은 ‘개에게나 줘버릴 것’에 불과하다. 부등가 교환은 강도요 도둑질이기에 정당하지 않다. / 보드리야르의 ‘과잉순응’ 이야기.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게 살 수 있는가. 여성은 남성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미셸 푸코(1926~1984), 사진출처: www.changetimes.org

근대주의자들은 개인의 시대가 열리면서 공동체가 파괴되었다는 것을 잘 알려주지 않는다. 역사가 진보했다는 것을 말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

푸코는 왜 이성이 본래부터 억압적, 계급적, 당파적이라 했을까? <광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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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근세

르네상스(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에서부터 절대주의(絶對主義, absolutism), 중상주의(重商主義, mercantilism)가 전개되는 17~18세기까지의 시기(즉, 15~6세기부터 17~8세기까지).
자본주의 발전사에서 보면 이 시기는 자본의 원시적 축적기. 정치적으로는 신흥 상공인들과 왕이 일시적으로 결탁한 시기. 왕은 그들의 돈이 필요했고 그들은 왕의 법적 보호가 필요했다. 하지만 나중에 왕은 시민사회 형성의 걸림돌이 되어 상징적 존재로 전락하거나 제거된다. 영국의 명예혁명(1688)이나 프랑스 혁명(1789)은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

아메리카 대륙(신대륙)은 발견한 것이 아니라 유럽 자본 권력에 의해 침탈당한 것.
오만한 로크(John Locke, 1632~1704) – 소유권, 노동의 소중함을 강조한 그에게 신대륙은 주인 없는 땅. 그에게 인디언(원주민)은 없었다.

근대주의자들이 강조한 민주주의는 사실상 부르주아들만의 민주주의. 자유로운 자들만의 평등. 평등한 자들만의 자유.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강제. 법에 관해 되묻기

‘부자는 3대(代)를 못 간다’는 말은 허구. 남미를 정복한 스페인의 (돼지치기 출신)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 1475? ~ 1541)의 후손들은 지금도 잘 산다. 피사로 군대는 잉카 왕국으로부터 많은 황금을 빼앗았다. 이를 두고 피사로의 후손들은 잉카인들에게 금(화폐)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라고 말한다. 남미 진출이 피사로에게는 새로운 출세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었지만 원주민들에게는 문명의 몰락을 가져왔다.

벤야민의 예술사회학적 관점에 따르면 오늘날 서구 사회가 보여주는 물질문명은 야만적 행위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거대한 궁성도 마찬가지. 그러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피땀을 흘렸을까 생각해야.

1854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일군의 백인 대표단을 인디언 부족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인디언보호 구역을 제공할 테니 땅을 팔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했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소유관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대들(백인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시애틀 추장 연설,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 김종철 편, <녹색평론 선집 >, 녹색평론사, 2008, 23쪽)

테즈매니아의 비극 – 1876년 테즈매니아인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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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이나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성립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17~18세기 이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시민혁명을 통해 자본가는 정치권력까지 거머쥐고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식민지라는 시장을 둘러싼 자본 간의 전쟁. 식민지는 값싼 원료와 노동력의 공급기지. 상품의 판매 시장. 자기 증식의 한계가 해외로 눈을 돌리게 한 것.

동학 농민군을 물리친 것은 일본군.

잉여가치의 생산과 자본의 확대재생산은 식민지로부터의 초과 이윤에 의해 가능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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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쯤(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contemporary라고 할 때는 이 시기를 말한다.

1,2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파국을 보여주었지만 변신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동서냉전의 시대의 시대가 열리는가 하면, 제3세계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은 시장경제 원리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가는 시대.

1,2차 세계 대전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더 나쁜 악과 덜 나쁜 악의 대결. 세계 대전을 다루는 영화나 다큐멘터리에는 식민지(민중)의 입장이 빠져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인이 지혜로운 자였다. 그들은 정보의 보고(寶庫)였고 ‘도서관’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기술과 노동력이 요구된다. 노인의 지식이 쓸모없어졌고,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존경받기가 힘들어졌다. 돈이 있다고 해서 존경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식은 부모의 재산을 빨리 물려받기를 원한다. 재산을 물려주지도 않은 채 건강하게 오래 사는 부모는 자식이 출세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존재? 게다가 정보도 없고 돈도 없는 노인은 ‘천덕꾸러기’ 신세. 최첨단 지식을 습득하기도 어려운 상황. 그렇지만 적어도 ‘세상은 이런 거 아니니?’라고 말했을 때, 젊은 세대가 수긍한다면 여전히 지혜로운 자.

부자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으나 존경의 대상이 되기가 어려운 현실. 부자는 끊임없이 자애로운 이미지를 연출해야 한다. 기업 역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는다. 단, 이윤 추구 활동에 도움이 되는 한도 내에서.
주택문제의 본질은? 기사 참고

가격과 상관없이 집을 여러 채 소유한 순서로 본 100대 집부자 현황을 보자. 대한민국 최고 집부자는 혼자서 1083채를 소유하고 있다. 2위는 819채, 3위는 577채, 4위는 512채, 5위는 476채, 6위는 471채, 7위는 412채, 8위는 405채, 9위는 403채, 10위는 341채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다주택소유자 상위 100인 현황'(2005.8.12 기준)을 보면 ‘집을 여러 채 소유한’ 기준으로 집부자 100명이 갖고 있는 집은 모두 1만5464채로 나타났다. 최상위 집부자 10명이 소유한 집은 모두 5508채로 한 사람 평균 550채씩이다. 이들을 포함해 30명이 9923채, 50명이 1만1948채를 갖고 있다.

집을 200채를 갖고 있어도 집부자 20위에 들기 어렵고(21위가 212채), 100채 이상 소유한 사람도 37명에 달하며, 집을 가장 적게 갖고 있는 100위가 57채로 나타나 집 50채 소유한 사람은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0303175324&Section=

1848년, 프랑스에서 2월 혁명으로 세워진 의회공화정은 4년도 안 돼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를 통해 독재체제가 되었다. 보나파르트는 ‘빵과 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너희들을 배부르게 해주겠다는 말은 마취제가 되어 민중들을 현혹할 수 있었다. (정치학의 ‘자본론’. 마르크스,, 최형익 역. 비루트출판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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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신화, 환상, 마취제는 무엇일까?

근대(modern)는 신의 자리에 인간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신학적 영향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중세와 근대의 연속성. 화폐의 역할. 신화를 만들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근대 권력. 경제권력의 하수인이 된 정치권력.

오늘날 세계의 실제 주인은 월가(Wall Street)의 금융자본가. 미국의 정치판은 프로레슬링. 대중들이 보는 데서는 열심히 싸우는 척하다가, 싸움이 끝나면 맛있는 거 함께 먹으러가는 것. 케네디는 왜 죽었을까. 대통령 노릇 해보려다가 희생된 사람. 사실상의 마지막 대통령 (알렉스 존스 저,, 김종돈 역 노마드북스, 2010)

노암 촘스키 – 미국은 세계 최대의 테러리스트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가. 선거 때만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 아닐까.

내 손으로 뽑아놓고 그에게 고개 숙이는 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는? 아감벤은 민주주의를 전체주의의 다른 이름이라 했다. 왜 그랬을까? 간접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탄생한 무솔리니, 히틀러 권력.

민주주의는 텅빈 기표인가? 랑시에르에 따르면 ‘정치 투쟁은 단어를 전유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누구의 민주주의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숨어있는 권력, 자본권력의 외피로서의 정치적 민주주의 문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열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