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만 품격 있는 드라마[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신사만 품격 있는 드라마[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한유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많은 자취생들이 그러하듯 나도 TV없이 PC로 방송을 다운받아 본다. 그러다보니 비교적 신중한 선택과정을 통해 드라마를 시청하는 편이다. 나름 사전 정보를 얻어 볼만한 것들을 추려낸 후 다운받는 것이다. 더군다나 근래엔 PC의 건강(?)을 위해 유료다운로드를 선호하고 있기에 이러한 선택과정이 보다 까다로워졌다. 이러한 와중에 재밌다는 평이 압도적인 드라마. ‘파리의 연인’부터 ‘시크릿 가든’까지 호흡을 맞춰온 김은숙 작가와 신우철 PD의 신작인 ‘신사의 품격’은 소위 중박 이상은 기대할 수 있는 안전빵으로 보였다. 물론 김은숙 작가 드라마라 기대 반 염려 반이긴 했다.

드라마<신사의 품격>/ 출처: SBS

김은숙 작가는 그동안 캔디의 변형인 평범녀가 테리우스의 변형인 차도남의 뻔뻔하기까지 한 솔직한 대시에 의해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려왔다. 다만 캔디와 테리우스가 30, 40대라는 것은 특이한 점이다. 아마 김은숙 작가 자신의 나이대를 반영했기 때문이리라. 하여튼 김은숙 작가가 그리는 평범녀는 예쁜데다 개념인에 자기 일에 적극적인 실력파지만 대부분 가난하다. 그리고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봤다. 재벌남은 잘생긴데다 학벌도 좋다. 청산유수의 말솜씨와 풍부한 독서량, 그리고 훌륭한 작업멘트까지 겸비했기에 만나는 여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여주인공인 평범녀의 ‘평범함’에 반하고 만다. 그런데 이 재벌남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그 풍부한 재력으로도 절대 고치지 못한 희귀병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내면의 상처 때문에 생긴 병이다. 이 상처를 평범녀가 사랑의 힘을 통해 감싸주고 따라서 병도 낫게 된다. 10년쯤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이야기는 꽤 흥미진진했다. 아니 더 솔직히 인정하자면 ‘시크릿 가든’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선 확실히 먹어주는(?) 이야기였다.
SBS 드라마‘신사의 품격’은 그간 그려온 김은숙의 미중년 테리우스에 대한 판타지를 극대화시킨 드라마다. 무려 4명의 개성강한 미중년들이 등장해서 매력발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도 왜 ‘시크릿 가든’처럼 뜨지를 못하는 것일까? 우선, 이번엔 작가가 그간 지적받아온 자신의 약점을 가리려고 꽤 노력했다. 매번 등장했던 재벌남 대신 그저 부유한 남자들이 나오고, 대신 재벌에 준하는 재력을 가진 여성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리고 아주 가난하던 여주인공이 아니라 정규직 공무원 여주인공이 나온다. 살고 있는 집도 세 들어 살고 있긴 하지만 멋지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는 그 수가 너무 얕아서 문제다. 상황이 다른데도 곧 재벌남과 평범녀의 그 불균등한 연애관계를 연상시키는 관계에 돌입한다. 즉, 여주인공의 굴욕적 상황이 이어지다 연애가 시작되면서 그 관계가 역전된다. 그런데 여주인공에게 굴욕적이던 상황을 남주인공이 재연하면 그것은 애교가 되고, 멋진 장면이 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김은숙 드라마였다. ‘신사의 품격’도 이 패턴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런데도 ‘시크릿 가든’처럼 ‘욕하면서도 계속 보는 맛’, 즉 ‘중독성’이 ‘신사의 품격’에는 없다. 작가 특유의 톡톡 쏘는 대사도 몇 년째 계속 듣다보니 이젠 김빠진 콜라처럼 밍밍해졌고, 별 지향 없고, 내용 없는, 그저 그런 연애담도 지겹다. 무려 장동건, 김하늘이 주인공인 로코(로맨틱 코미디물)인데, 전혀 설레지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문제점을 짚자면, 제목에 나타났듯 이 드라마에선 신사들만 품격을 갖출 수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은 일도 운동도 열심히 하고 멋지게 연애도 하지만 우정을 최우선으로 둔다. 그런데 여자들은 우정은커녕 서로 시기하고, 경계하고, 질투하느라 바쁘시다. 품격과는 거리가 먼 삶이다. 우리 이 불쌍한 여자들에 대해 좀 살펴보도록 하자.

쿨한 언니도 남편에겐 의부증 아내일뿐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등장하는 주요 여성 캐릭터는 4명이다. 우선, 짝사랑 전문가이자 아마추어 야구 심판이자 고등학교 윤리선생인 서이수(김하늘 役). 서이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거인인 실력보다 미모가 부각된 프로골퍼 홍세라(윤세아 役), 88사이즈에서 44사이즈로 변신한 뒤 무조건 최윤(김민종 役)만 쫓아다니는 임메아리(윤진이 役), 소유한 빌딩 일일이 세는 게 귀찮아서 블록으로 세는 청담마녀 박민숙(김정난 役).

이 중에서 가장 ‘쿨’한 캐릭터는 박민숙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가장 돈이 많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하자면 김은숙 드라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쿨할 수 있는 조건’, 즉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력, 그 재력으로 꾸준히 관리하는 미모와 좋은 학벌과 지성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녀는 인간관계에서도 항상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쿨한 언니’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 통할 정도다. 다만 이 언니! 쿨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그게 바로 결혼생활이다. 민숙의 친구들은 다들 연하의 뽀송한 남편을 가진 민숙을 질투해서 민숙의 이혼을 바란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민숙은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속이 상하면서도 친구들 앞에서는 남편과 닭살커플을 연기한다. 그리고 은근슬쩍 남편을 다시 용서하면서 “이 세상에서 제일 꼬시기 어려운 사람이 내 남편”이라는 비참한 대사까지 남긴다. 그녀는 전형적인 ‘트로피 허스번드’에 불과할 것이라 예상했던 이정록(이종혁 役)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정록의 바람기를 넘길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붙일 아이가 없어서 남편의 바람기가 더 심한 것 같다는 민숙의 혼잣말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불임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위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항상 당당하고 똑똑한 언니인데 남편에게는 그저 의부증 말기 부인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여자하고는 밥 안 먹어요

서이수는 김은숙 작가가 변형을 시도한 또 다른 캔디이다. 그녀는 귀여운 주책을 부리고, 다른 여자들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 올바른 캐릭터이다. 심지어 눈치 없는 동료 선생님이 속을 긁어놔도 그녀는 맞받아치지도 않고 웃으며 넘긴다. 그래서 그녀만이 유일하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동성들과 사이가 좋은 여성으로 등장한다(그녀가 유일하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여성은 자신을 버리고 재혼한 엄마이다). 말하자면 곰 스타일의 여성만이 여우 스타일의 여성들에게 배척받지 않는다는 낡아빠진 관계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서이수를 제외한 다른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여자의 적은 여자’ 모드 안에 매몰되어 서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댄다. 그 관계는 밥이나 먹겠느냐는 홍세라에게 “여자하고는 밥 안 먹어요.”라고 임메아리가 대답하는 것으로 대표된다. 물론 임메아리는 박민숙과 친밀한 관계이지만, 이는 두 여자가 연애문제와 돈 문제로 결코 충돌할리 없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러한 충돌의 여지가 있는 여자들끼리는 작가 특유의 대사빨로 팽팽한 접전을 선사한다. 박민숙과 홍세라 사이의 신경전과 대화, 홍세라와 후배 사이의 대화와 몸싸움 등이 그러한 장면들이다. 별다른 갈등의 원인이 없는데도 서로 앙숙이라도 된 듯 대하는 태도가 드라마 안에서 그저 여자들 사이의 흔한 일처럼 다뤄져 정작 현실의 여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꿈보다는 사랑이 급하다?

임메아리는 부잣집 막둥이로 태어나 부모님과 오빠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다만 학창시절 통통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고, 또 그걸 그렇게 놀려대던 오빠의 친구 최윤을 짝사랑만 하는 게 괴로움이라면 괴로움이다. 최윤은 메아리에게 묻는다. 24살이면 네 주변 친구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할텐데, 너는 왜 그렇지 못하고 자신만 쫓아다니냐고. 그러자 메아리는 울면서 자신도 꿈이 있지만 사랑이 너무 급하니까 그것부터 쫓느라 그렇다고 대답한다. 물론 내가 메아리 또래는 아니지만, 나 또한 그 시절을 얼마 전에(?) 겪은 사람으로서 정말 공감대 0%의 대사였다. 가방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서 디자인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도 없고, 관련된 일을 알아보려 하지도 않는 그녀가 이해되는 20대가 몇이나 될까? 그녀가 그렇게 카페 알바나 하면서 최윤바라기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부족하지 않은 경제적 지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용돈은 벌어야 하는 처지라고 말하지만 우선, 으리으리한 집이 있고, 미국으로 유학도 부담 없이 다녀왔고, 비싼 옷과 가방, 구두가 즐비하다. 결국 그녀는 인생에 별로 급한 게 없기 때문에 그나마 가장 급한 게 최윤을 쫓아다니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최윤에게만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최윤 주변의 여성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사랑을 관철시키려 한다. 드라마에서 누구보다도 귀엽고 예쁘게 그려지지만 그녀는 그저 조금 더 착한 ‘빵꾸똥꾸’이다.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 사진출처: SBS홍세라는 어떤가? 그녀는 결혼이 싫다. 자신은 아직 골프선수로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더 많다. 미모로만 부각된 자신의 진짜 실력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결혼해서 안주하게 되고, 그 꿈을 묻어버리게 될까봐 두렵다. 남자친구는 그런 그녀의 의견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헤어졌다. 그 후에도 자신의 꿈을 위해 연습도 하고, 좋은 스텝도 꾸리려 한다. 하지만 스텝은 일을 거절하고, 빚 문제도 생긴다. 드라마에서 홍세라가 거절당하는 이유는 그녀의 화려한 이미지와 언론 노출 때문이고, 경제적인 문제는 그녀의 씀씀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난 그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나마 자신의 꿈을 위해 가장 열심인 여자는 왜 꼭 싸가지가 없는 듯 그려지고, 왜 꼭 돈은 밝히지만 경제관념이 없어서 궁지에 몰려야 하는가?

임메아리는 결혼이 하고 싶어서 안달인데다 최윤의 아이가 있어도 키우겠다고 하는 ‘착한’ 여자이기 때문에 예쁘게 그려진다. 홍세라는 결혼도 아이도 싫고,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나쁜’ 여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으로 빚도 못 갚고, 헤어진 남자친구가 대신 갚아주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비참함을 겪어야 한다. 더군다나 이 과정에서 쿨하게 돈을 빌려줬던 박민숙은 자신과 홍세라의 관계보다 남편의 친구인 임태산과의 관계가 더 긴밀하다는 말을 남겨서 홍세라에게 상처를 준다. 쿨했던 민숙 언니가 다시금 남편에게 묶여버리는 장면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남자친구 임태산(김수로 役)은 헤어졌는데도 멋지게 돈을 갚아주는 의리 있는 신사로 남는다.

이 드라마의 네 여자를 다시 정리해보자. 서이수는 답답한 곰 스타일 캔디, 홍세라는 자존심을 뺐기고 길들여지고 있는 여우, 임메아리는 인생에 급한 게 사랑밖에 없는 공주님, 박민숙은 의부증에 묶여버린 언니. 신사들은 점차 성장해가며 품격을 갖춰가는 반면, 숙녀들은 계속해서 퇴보해가고 있다. 김은숙 작가가 재벌남을 빼고 등장시킨 그저 부유한 정도의 신사들은 사실 그 재벌남의 매력을 쪼개서 만든 것에 지나지 않고, 경제적으로 급을 올려준 평범녀서이수는 그래봤자 캔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번 작품에서 조금 특이하게 등장시킨 부유한 여성캐릭터 박민숙도 불임임이 밝혀지면서 전통적 성역할의 덫에 걸려버린다.

언제쯤에야 욕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김은숙 작가 드라마를 볼 수 있을까? 내 생각엔 앞으로 그녀의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듯하다.

 

그들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그들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장윤경(애견 훈련사)

 

 

나는 올해 32살의 여성 애견훈련사이다. 개와 고양이, 새나 병아리 심지어는 길에서 주운 쥐를 키우겠다며 집에 들고 와 어머니를 기겁시킨 일도 있었던 것을 보면 어려서부터 나는 동물을 참 좋아했던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렇게 많은 동물을 키웠다. 그들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에 웃고 우는 유년기를 보냈으나 중학교 이후 내게 주어진 삶은 동물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 훈련소에서

 

중학교 진학과 함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따라간 화실의 그림공부는 내 생활의 일부분으로 시작해 점점 내 생활의 전부가 되어갔다. 활동적이지 않은 성격 탓이었겠지만, 그림을 그리느라 대여섯 시간을 줄곧 앉아 있어도 좀이 쑤시지 않았고,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운 좋게도 세차고 드센 비바람 한 번 만나지 않고 고무 튜브에 몸을 맡긴 채 잔잔한 강물을 따라 흘러가듯 흘러가 도착한 곳은 예술 고등학교였다. 딱히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해보니 적성에 맞았다. 어쩐 일인지 별 노력 없이도 그림을 잘 그렸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 한 번 없이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돌이켜 보면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고 기대도 받으며 살아가는 일이 나쁘지 않았던 듯하다, 아니 분명 꽤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려서 전문 화가가 되어야 하겠다든지, 아니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어떤 미래를 가지게 될지 같은 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내 어머니, 당신이 꿈꾸고 계획해 놓은 내 미래의 청사진을 듣는 순간, 웬일인지 그 길이 내 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입에서 ‘교수’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런 것은 결단코 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강렬하게 나를 덮쳐왔던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꿈이었지, 나의 꿈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그 길을 벗어났고, 길을 잃었던 것이 분명하다.

무엇이 될지, 무엇을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혼란과 방황의 대학 시절을 보내다 힘든 시기에 힘이 되어준 지금의 남편과 생을 함께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첫 번째 반려동물인 개 캐니를 집으로 데려왔다. 라브라도 종인 캐니는 아주 영리한 개였고, 우리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캐니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예뻤던 나는 둘째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마침 캐니가 다니던 훈련소에서 태어난 쵸콜렛색 라브라도가 디키 주니어라는 이름으로 캐니의 동생이 되었다. 아파트에서 대형견 두 마리를 키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목줄을 매고 나선 산책길에서, 사람이 지나갈 때면 혹여 작은 피해라고 줄까 염려해 목줄을 꼭 부여잡았지만 큰 개를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얻어먹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특히 뉴스에 개에게 물려 목숨을 잃거나 큰 부상을 당한 사람의 사건이 보도되기라도 한 다음 날이면 소중한 맹인 안내견으로 쓰여도 충분할 정도로 순한 개들이었건만 단지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면전에서 대놓고 참기 힘든 말을 듣기도 했고 그로 인해 행인과 언성을 높이는 일도 일어났다. 몇 년간 지속된 그런 일에 서서히 지쳐갔고, 결국 우리는 두 마리의 우리 가족을 위해 이사를 결심했다.

도시 외곽의 넓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한 후 우리 부부는 보다 많은 반려견들을 식구로 받아들였다. 예닐곱 마리의 대형견을 능숙하게 통제하며 돌아다니는 젊은 여자는 어딜 가나 눈에 띄었고, 예상치 않은 반려견 훈련부탁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부탁을 접하면서 스스로 내 인생의 주체가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훈련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흐르는 강물에 다시금 뛰어들기는 했지만, 그것은 다른 그 누구의 결정이 아닌 바로 나의 뜻과 의지에 따른 것이었으며, 이번 여행에는 믿음직한 남편 또한 함께였다. 사랑스러운 반려견들을 키우면서 손에 잡기 시작했던 애견 훈련에 대한 공부는 이때부터 전문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외국 서적을 주문해 사전을 뒤적이고 밑줄을 치고, 노트를 해나가며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세계적인 훈련사들의 동영상을 찾아보고 그들의 노하우를 배워 나갔다. 그때까지의 실제 대형 반려견들과의 생활 또한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우리 부부는 세계 애견 연맹인 FCI가 공인한 한국애견연맹이 주관하는 훈련사 자격 시험에 합격했다. 프로 훈련사가 된 것이다.

▲ 훈련소의 개들

 

그러나 생전 처음으로 스스로 결정한 나의 일, 애견훈련사가 되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고 그 어려움은 지금도 이어지는 듯하다. 다른 이에게 이끌려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뛰어든 이 강 위에서 세찬 비바람도 만나고 드센 여울목도 만나는 중이다. 프로 훈련사로서의 초년병 시절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보다도 애견훈련이 천한 직업이라고 여기는 듯 함부로 말하고 나를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부모님과 친지들조차 나의 직업을 하찮게 여기는 듯한 말과 태도를 취하곤 했었고 사실 그것은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건 큰 상처였다. 거기다 애견 조련은 나의 첫 직업이었고, 조련사로서의 생활은 학교 졸업 후 난생처음 하는 사회생활이기도 했다. 나는 사람, 특히나 내게 자신들의 개를 맡기거나 그러고 싶어 하는 견주들을 대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견주들을 대하는 일이 어색했고 나는 말재주가 전혀 없었다. 개들을 돌보는 일, 견종에 따라 달라지는 훈련 방식과 그 과정, 그러한 훈련 과정을 통해 달라지는 개들의 상태를 멋지게 설명하지 못했을 뿐더러, 이후 견주들에게 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물어보는 전화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그들이 프로로서의 나의 능력을 알아주고, 또 평가해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저 묵묵히 개들을 받고, 돌보고 훈련시키고, 돌려보냈다. 초년병 시절 나는 내가 과연 전문 훈련사로서 유능한지 무능한지 자신이 없었다. 남편이 함께 했지만, 나는 한 사람의 독립적 전문 훈련사이기도 했으므로, 내 능력에 대한 초조함에 휩싸여 몇 번이나 이 길을 들어선 것을 후회했다. 그것은 매우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었다. 그 심적 부담에서 벗어날 방법은 예전에 튜브를 뒤집고 강에서 나와 멀리 도망간 것처럼 도망치는 방법뿐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이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내 삶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두었을 때에는 잘되면 내가 잘나서요, 못되면 네가 못나서라고 책임을 돌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내가 결정한 일에서 내가 도망치면 나는 다시는 한 사람의 주체적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 재기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 일에서 다시 실패한다면 그것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며 나의 역량부족인 까닭이라는 사실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니 어쩌겠나. 나는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다 잡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채우고 다시 도전해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은 적어도 내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 능숙한 애견훈련사가 되었고 우리 부부의 훈련소의 규모도 많이 커졌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움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견주 중에는 애견훈련소에만 보내면 자신의 개가 가진 모든 문제가 사라질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자신의 개가 사람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들은 리모컨 달린 인형이 아니다. 애견 훈련은 반려견을 기계로 키우는 훈련이 아니다. 애견 훈련사로서의 내 철학은, 내가 맡은 개들이 훈련을 통해 반려견으로서 주인과 어우러져 실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한 가정의 가족으로서 생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견훈련이 기계처럼 딱딱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명령어에 무조건 복종하게 하는 훈련보다는 마치 자신의 주인이 사랑하는 개에게 말하고 개가 그 말을 따르는 것처럼 편안한 훈련을 한다. 그것을 추구하기에 새로운 개가 오면 원래 처음부터 우리집 가족이었던 냥 집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에게 적응해 나간다.

그러다 보니 내 옷은 심지어 외출용 옷에도 개털이 묻어 있기 일쑤고, 모임을 가지기 전 날 미리 세탁해서 말려둔 옷을 입고 나가도 개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특히 검은색 옷은 금기 의상이다. 양말이며 옷, 이불 등등에 이르기까지 검은색만큼 개의 털을 돋보이게 해주는 색상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의를 표하러 갈 때가 참 곤란하다. 신기하게도 밖에서 검은 옷을 바로 사 입고 가도 어느 사이 옷 여기저기에 털들이 붙어있다. 그러한 사실이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남들보다 가볍고 예의가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나란 사람이 제정신이 박히지 않았다는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내 앞에서 뒤에서 소곤대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참 속상하다. 속상한 마음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끔은 화가 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탓을 개에게 돌리고 싶을 때도 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울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 때 녀석들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다. 나도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을 만큼 우울한 날이면 그런 녀석들을 다 물리치고 혼자 우울하게 방문을 닫곤 하지만, 그럼 뭐하나. 그토록 냉정히 저희를 뿌리친 내가 방문만 열고 나와도 또다시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사랑을 표현해대는 것을. 난 늘 생각해왔다. 반려동물들은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다고. 그것이 반려동물을 집으로 데려온 이상 그 생명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라고. 나의 매정함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나를 사랑해주는 그들을 보면 나 역시도 그들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것이 반려 동물과 인간이 서로 어우러져 사는 이유인 것이며, 우리는 준 사랑과 받은 사랑 모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인간인 것이다. 견주들이 길에다만 개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훈련소에 개를 버리기도 한다. 연락이 끊어지거나, 때로는 개를 적당한 곳에 버려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이유가 무엇이든 마음이 많이 아프다. 필요할 때만 반려 동물을 취하고 귀찮아지면 매정하게 버리는 사람들은 내게 사랑의 의미와 그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개들과의 생활은 나를 보다 더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삶의 스승 아닐까. 나는 내가 개들로 인해 행복하고 나로 인해 개들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개도 그러하기를 그 무엇보다도 희망한다.

 

 

작은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의무급식이야기[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작은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의무급식이야기[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이수진(학부모)

 

같은 동네에 사는 젊은 새댁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 올해는 우리 아이가 무상급식이 안된다는 데요, 얘기 들으셨어요?”

“아니, 왜? 작년엔 받았잖아. 학교에서 별소리 못 들었는데”

“유치원하고 중등은 지원이 없구, 초등만 준다는데요. 지역신문에 났어요.”
학교에서 학부모 운영위원을 하고 있고 지역에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일을 하다 보니 종종 학교 문제에 관한 문의 전화를 받곤 한다. 느닷없는 전화를 끊고 이래저래 알아보니 참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오마이뉴스

작년에 3개월간(9월-12월) 유치원 만5세가 경기도교육청 예산 지원으로 의무급식(무상급식)의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교육청에서 급식비를 100% 지원해주었으나 올해는 예산 부족으로 지자체에서 40%(약 1억 8천만 원)을 부담하고 경기도 교육청이 60%(약 2억7천만 원)을 분담하여 의무(무상)급식을 실시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시에서는 예산부족이라는 이유로 대응자금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예산편성안함). 해당 교육청에 알아보니 교육청 담당 장학사가 여러 차례 시장을 찾아 갔으나 거절하였다고 한다.

우리시가 예산부족으로 내세운 대응투자금 40%는 정확히 1억 8천 6십 8만 8천 원으로 우리시 전체예산의 0.04%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그 돈이 없어서 2억 7천 만원을 날려버리고 급식비를 내고 밥을 먹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중학교에도 똑같이 적용 돼서 중학교에도 우리시만 급식비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은 이런 사실을 주민의 의사를 묻는 공청회나 의견수렴의 절차 없이 시가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이다.

지역신문 귀퉁이에 난 기사를 보지 못했다면 영문도 모르고 당할 일이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아줌마들 사이에서 오가고 난 후 유치원 학부모들이 주축이 돼서 시청에 문의 전화를 하고 민원을 내기로 했다. 다른 시에서는 경기도교육청의 보조를 받아 무상급식을 실시한다는 데 왜 우리시만 못한다고 하는지 민원을 내니 돌아 온 답변 은 더욱 가관이다. “예산이 부족하다”, “일방적인 도교육청의 밀어붙이기 행정이었다”며 수요예측이 가능했던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도 않은 채, 학부모들에게는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3월말에 추경예산을 잡는 시의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학부모들이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유치원은 공립과 병설 유치원 학부모들이 연락을 해서 까페를 만들고 시청 앞에서 무상급식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고, 중학교 학부모들은 학부모회 회장들이나 학부모운영위원이 긴급하게 연락을 해서 회의를 열고 ‘의무(무상)급식을 바라는 학부모임’을 만들어 서명 작업과 일인시위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신속하게 모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지역이 워낙 좁은 까닭도 있지만 그동안 학부모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어느 정도는 마련되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인구 20만이 되지 않는 경기도의 작은 중소도시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촌지역이였다가 일명 신도시가 들어오면서부터 도농복합지역으로 바뀐 곳이다. 그렇다보니 신도시로 이주한 입주민과 기존 지역민과의 의식차도 있고 생활차이도 있다. 수도권이라고 하지만 농촌지역에 가까워 시청에 들어가면 지역 토박이 성씨(姓氏)를 쓰는 공무원들이 대부분일 정도였고 공무원들이 어찌나 권위적이던지 민원을 넣으러온 시민들에게 불친절은 기본이고 고압적 자세로 업무를 봐주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서울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들은 수시로 민원을 내고 전화를 걸어 공무원과 싸우는 일이 잦았고 시를 상대로 소송을 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시민의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게 됐고 많지는 않지만 지역공동체 일을 하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지역에서 일을 하다보면 답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워낙 보수성이 강한 지역이라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 거의 대부분 보수당 당원들이고 이들은 자기의 생각 없이 무조건 당의 입장으로 말한다. 무상급식만 하더라도 인터넷에서나 올라오는 말들이 서슴없이 시의원입에서 튀어 나온다.

예를 들면 ‘무상급식 하느라 예산이 전부 애들 밥먹는데 들어가서 시에 돈이 없다. 그래서 아직 도로를 못 만든다’라고 아파트 대표자들을 불러 모아놓은 자리에서 이야기 한다. 참고로 그 도로는 10년째 공사 중인 곳이다. 무상급식은 작년부터 이루어 졌는데 그전에는 왜 그 도로를 완성하지 못했느냐고 물으면 ‘너무 예민하신 것 아니냐, 뭐 그렇다는 얘기지 어떻게 그걸 일일이 말할 수 있겠느냐?“고 한다. 또 어떤 시의원은 ”무상급식하면서 급식질이 떨어져서 아이들이 맛이 없어 밥을 못 먹는다고 하더라“란 이야기도 한다. 학부모회 일을 하기 때문에 급식실 영양교사들을 만날 일이 있어 그 분들에게 물어보면 ”의무(무상)급식을 하고 나서는 예산이 안정화 돼서 오히려 급식질이 좋아졌다’고 한다. 무상급식을 하기 전에는 급식비를 못내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예산이 불안정하고 급식비를 못낸 아이들까지 먹여야 하므로 예산이 늘 부족했었다고 했다.

의무(무상)급식을 놓고 헛된 곳에 돈을 쓴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현장의 이야기를 한 번도 제대로 듣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각자 자기가 사는 곳에서 서명 작업을 받기로 하고 헤어진 중학교 학부모회 회장님들은 그 후 다시 모이질 않았다. 학교 측에서 정치적 문제가 개입된 것 같으니 학부모들에게 그 모임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였단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순수한 행동이 아니라 무상복지, 무상급식이라는 정치적 문제라나 뭐라나.

그렇다고 의무(무상)급식을 바라는 학부모 모임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위축되지는 않았다. 뜻있는 학부모들이 계속 활동하기로 해서 일인릴레이시위도 계획대로 진행됐고 서명 작업도 받아서 제출했다.

우리시에서 의무(무상)급식은 아직도 예산편성을 기다리는 중이나 유치원생은 곧 편성이 돼서 의무급식을 먹게 될 것 같고, 중학생은 좀 더 시위가 필요할 듯하다.

3월이라 해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지하철역 앞에서 일인시위에 참여하게 된 나는 지나가시면서 ‘수고하십니다’ 한마디 해주시는 아저씨들이 있어 가슴이 따뜻했고, 일인시위 한다고 아침부터 일부러 지하철역까지 나와 준 아줌마들이 있어 어깨가 으쓱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참고로 12년 2월 현재 경기도교육청 소속 30개 시군교육청 가운데 14개시(대부분 경기외곽지역)에서 대응투자을 하지 않아 의무급식을 하고 있지 않으며 4월까지 몇 개의 시가 대응투자 예산을 세워 이후 집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 우리가 가족일 수 있을까?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 우리가 가족일 수 있을까?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현남숙 (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

 

another year, 가족의 미래?

이번 겨울 아주 추운 어느날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다. 스크린에 올라오는 제목은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이었다. “another year”? 제목만 보아서는 신년에 잘 아울리는 영화 같았지만 아니었다. 첫 장면부터 불면증 환자가 등장한다. 불면증 치료를 받으러 온 중년 여성은 약만 원할 뿐 의사나 상담사와 대화를 거부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다른 삶”이라고 답하면서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음으로는 다른 삶을 원하지만 머리로는 삶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영화<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는 변화를 바라지만 변화가 쉽지 않음을 아는, 인생을 좀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변화에는 소통, 환대, 행복 등 여러 항이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난 가족이란 코드가 자꾸 들어왔다. 어떤 단위로,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 것인가에 관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 인식은 어제와 같을 수도 있고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another year”는 어쩌면 아직 기록되지 않은 가족의 시간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족인 자와 아닌 자가 함께 보낸 사계절

제도적으로 혈연 중심의 가족은 가족 구성원 이외의 자들에게 문턱이 높은 폐쇄적 관계이다. 하지만 심리적 존재들인 우리에게 꼭 그렇지 많은 않다. 멀리 사는 가족, 마음이 상한 가족, 서로를 통제하는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나 이웃과 더 가깝게 지내기도 한다. 이 영화는 한 혈연 가족과 그들의 친구들이 보내는 사계절로 유비되는 인생의 이야기다.

#봄. 톰과 제리 부부 그리고 제리의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메리의 삶이 대화 속에 교차되어 그려진다. 제리는 심리치료사이고 남편 톰은 지질학자로 둘 다 타인을 잘 배려하는 인물이다. 부부는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친절하며 성공보다는 행복을 가꾸며 산다. 한편 이들의 주변을 맴도는 메리는 겉으로는 쾌활하지만 내면은 우울한 여성이다. 젊은 날 유부남과의 사랑에 상처받았고 지금도 자신이 아름답다고 믿지만 좁은 집에 월세를 내며 사는 가난한 중년의 독신 여성이다. 메리는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가족과 집과 대화가 있는 이들 부부에게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름. 톰과 제리의 아들 변호사인 조가 등장하지만 이 집의 문턱은 아직 친구들에게 열려있다. 한편 톰의 오랜 친구 켄도 등장한다. 켄 역시 메리처럼 독신이다. 젊어서는 직장 동료들간의 유대와 클럽에서의 여가로 고독할 새도 없었지만 이제는 동료들도 하나둘 떠나고 클럽에서도 반기지 않아 어디에도 갈 곳 없는 외로운 신세다. 고독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켄은 메리에게 수작을 걸어 보지만 메리는 늙고 뚱뚱한 켄에게 관심이 없다. 대신 톰과 제리의 아들인 조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표현한다. 메리는 이들의 진짜 가족이 되기를 꿈꾼다.

#가을. 톰과 제리 부부의 ‘정상’ 가족은 견고해지고 메리는 결국 그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인생의 수확기인 가을, 조가 아주 오랜만에 새로운 여자친구를 데려온다. ‘정상’ 가족의 결실을 맺으려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하필 이날 메리가 방문한다. 메리는 조의 여자 친구에게 질투를 느낀다. 이러한 상황을 들켜버리자 메리는 더 이상 넒은 의미에서의 가족도 될 수 없게 된다. ‘정상’ 가족을 방해한다는 의미에서 ‘가족의 타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제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실망스러웠다”고 언급하고 톰은 메리를 다시 초대할 수 없으리라는 암시를 한다.

#겨울. 톰과 제리의 집에 출입을 암묵적으로 금지당했던 메리가 다시 찾아온다. 가을까지만 해도 생기가 있었던 메리는 아끼던 차도 견인당하고 불면증으로 잠을 자지 못한 최악의 날, 늙고 초췌하고 무엇보다 절박한 모습으로 이 집의 문을 두드린다. 부부는 부재중이고 최근 부인을 잃은 톰의 형이 메리를 맞는다. 메리는 안타깝게도 톰의 형에게조차 자신이 그를 보살펴주겠다고 말한다. 메리는 다시 이들의 진짜 가족이 되고 싶은 것이다. 메리에겐 사랑의 감정보다 정서, 대화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가 더 크다. 농장에서 돌아온 부부는 메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직장에서 왜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느냐는 메리의 질문에 “여긴 내 가정이야”라고 말로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였음을 표현한다. 제리는 메리에게 전문적 상담을 받을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메리는 “단지 너와 이야기 나누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메리는 식탁에 앉았지만 더 이상 그들의 시선을 받지도,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한다. 행복한 톰과 제리 가족의 대화를 배경으로 카메라는 환대받지 못한 메리의 불안한 시선을 쫒는다.

 

가족의 역사를 갖지 못한 자들

톰과 제리 부부는 대체로 타인을 환대하는 좋은 이웃이다. 하지만 그들이 메리를 맞는 방식의 근저에는 혈연중심, 성별분업 중심의 전통적 가족 가치가 놓여있다. 톰과 제리처럼 가족을 가진 자와 메리와 켄처럼 가족을 갖지 못한 자의 관계에서 관계의 주도권은 대개 톰과 제리처럼 가족을 가진 자가 잡는다. 감독은 이러한 관계를 카메라의 중심 공간을 톰과 제리의 집에 맞추고 초인종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선별하는 것으로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 방식이나 감정으로도 드러낸다.

메리의 말은 늘 초점없고 삶에 필요한 정보에 취약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나 상처를 노출시킨다. 이에 반해 부부의 말은 어딘가 정리되어 있으며 관습적이며 교훈적이다. 제리는 메리에게 “성인은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말의 스타일만이 아니라 대화의 방향도 일방적이다. 메리는 제리에게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어, 나도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제리는 “나는 괜찮아”라며 메리의 대화 상대가 되기를 거부한다. 늘 메리만 자신의 결핍을 말한다.

톰과 제리의 ‘정상’ 가족의 규범은 메리에 대한 감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리는 처음에는 메리에 대해 자신만 행복한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메리가 아들 조에게 사심을 품은 것을 안 이후로는 급격히 변한다. 실망감으로 바뀌다 급기야는 심리치료를 요하는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염려로 바뀐다. 죄책감, 실망감, 병리적 염려는 대등한 관계에서의 배려나 공감이 아니다. 뭔가 도덕적으로 더 규범에 가까운 자가 갖는 우월한 감정인 것이다.

무엇이 톰과 제리 부부와 메리의 관계를 비대칭적으로 만들었는가? 영화의 한 대사가 자꾸 떠오른다. 제리가 메리의 상태를 걱정하던 어느 날, 톰은 난데없이 역사 이야기를 꺼낸다. “나이가 들수록 역사가 더 의미있어 지는 것 같아“라고. 이에 제리는 “우리도 역사의 일부가 될테지”라고 응수한다. 이 대목은 가족에 관한 오래된 서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들린다. 톰과 제리의 시간은 표준적 가족 서사에서 생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아들 조를 낳았고 삶의 중심적 서사에 부합하는 이야기들에 맞게 인생의 사계절을 보냈다.

하지만 결혼하지 못한/않은 메리와 켄의 삶의 서사는 근대 이후의 전통적 가족 서사에 엮여들지 못한다. 독신들의 삶은 결혼과 출산으로 노동과 세대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표준적 가족의 공식적인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메리와 켄도 그들 나름대로 의미있고 행복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행복했던 시간을 드러내지 않는다. 메리와 켄의 시간은 이 사회에서 역사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족에 관한 프로파간다의 이면

톰과 제리의 가족은 비교적 개방적이지만 이들 역시 전통적 가족, 기능적 가족, 혈연중심의 제도화된 가족 중심의 가치에 따라 산다. ‘이모’처럼 간주되던 메리가 조에게 관심을 갖는 ‘해프닝’을 겪자 이들은 일시에 가족의 문턱을 높인다. 톰과 제리의 가족은 타자에게 열려있고 환대하지만 그 개방성과 환대는 어디까지나 조건부이다. 결정적인 순간 ‘정상’ 가족의 가치로 돌아간다. 내 가족의 역사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너에게 가족의 문턱을 낮춰줄게, 너를 넓은 의미의 가족으로 환대할게!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정상’ 가족의 견고함은 페미니즘이 상상하듯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메리칸 뷰티>, <바람난 가족>, <후라이드 그린 포테이토>, <안토니아스 라인>, <퀼트>, <메종드 히미코> 그리고 <가족의 재탄생>까지. 영화로만 보자면 가족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정상’ 가족과 그 타자들의 출입의 문턱도 낮아졌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혼, 재혼, 노년 등의 이유로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꾸리거나, 평생 독신으로 정상 가족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의 방식은 가족 중심의 통합 서사에 작은 자리나마 엮여들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세상의 모든 계절”은 매우 솔직하다. 감독은 보수적인 정상가족의 가치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고 페미니즘의 다양한 가족(families)의 가치를 설득하지도 않는다. 어느 것이든 어떤 면에서는 현실의 갈등이나 상처를 봉합하는 프로파간다인 것이다. 대신 현재의 가족, 결혼, 삶의 양태의 상황에서 통합되지 못하고 서로 충돌하는 불편한 지점들을 노출시킨다. 가치나 이념으로 봉합되지 않은 실존하는 존재들의 삶의 모서리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인간은 앞으로도 대체로 ‘정상’ 가족의 형태로 살아갈 것이다. ‘정상’이 갖는 미덕이나 편안함 등 이점도 많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정상 가족으로 살아가지 못하는/않는 ‘정상’ 가족의 타자들의 삶의 방식도 그들이 ‘타자의 타자들’의 삶을 위협하지 않는 한 인정되어야 한다. 가족의 타자에 대한 형식적 인정은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각자 섬을 쌓고 사는 분리주의적 인정은 인정이 아니다. 상호 문턱을 넘나들며 가족에 관한 큰 서사와 작은 서사가 엮여 함께 삶의 역사를 만들어갈 때 서로의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명성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있다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명성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있다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이현재(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서울시장니 대권주자니, 요즘 누구나 한 번쯤은 안철수라는 이름을 입에 올렸을 것이다. 대안 정치를 고민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정치에 혐오감을 느낀 사람들까지도 그의 이름을 들먹였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였다. 오죽하면 원희룡은 근심 가득한 어조로 “강남 아줌마들조차” 안철수를 선호한다고 했을까.

사람들은 처음에 안철수가 좌파인지 우파인지를 궁금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안철수의 정치적 행보는 이러한 이원적인 도식에 맞추어 설명되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안철수를 기존 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들의 욕망을 잠깐 자극하다 지나가는 바람으로, 체계적 정치조직을 갖지 않기에 언젠가는 식어버릴 허상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평가는 왜 강남 아줌마들“조차” 안철수에 열광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즉 이런 식의 평가는 그가 보여주는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어떻게 그의 매력이 강남 아줌마들에게도 먹혀들어갔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강남 아줌마들은 그가 좌파이기 때문에 혹은 우파이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 같지 않다. 그는 아직 체계적인 정치 비전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여성 정책’에 대해 이렇다할만한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강남 아줌마들이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간 안철수의 매력에 빠져있다. 이 글에서 내가 묻고 싶은 그가 이들에게 불러일으킨 새로운 종류의 정치적 미감이 무엇인가이다. 안철수라는 인간이 보여주는 어떤 미감이 강남 아줌마들까지도 열광시켰던 것인가?

우선 “강남 아줌마”라는 호명방식이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들이 헉 소리 나게 값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막대한 수입을 올리거나 그런 수입을 보장하는 남편을 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부를 둘러싼 생존의 경쟁에서 이겨 승리를 쟁취한 사람들이다. 이를 대물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교육이기에 이들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결국 이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맹모삼천지교 이상의 것도 감수하며 값비싼 과외비도 마다하지 않는 소위 신자유주의 시대의 전형적 어머니상(?)으로 표상된다. 그런데 무한 경쟁에서의 승리만이 그들의 목표라면 이들은 왜 안철수를 자녀교육의 본보기라고 말하는가? 안철수는 자신의 이윤을 증폭시키거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관심을 가지기보다 자신이 일구어 온 기업 경영권을 사원들에게 넘기고 이제 자기 재산의 절반마저도 사회에 기부하려 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맘만 먹으면 정말 많은 것을 독점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가진 것을 내어 놓는다. 그는 기술뿐 아니라 재산을 무상 분배했다. 그런데 왜 적지 않은 강남 아줌마들은 안철수에 열광하는가?

그의 매력은 외모에서 나오는가? 물론 청년들은 그를 “귀요미”로 부르기도 하지만 통상 그의 외모는 그저 평범하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화려한 학력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학자와 기업가로서의 성공 때문인가? 물론 그것은 경쟁의 승리와 더불어 얻게 될 부와 명예의 조건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자 그의 강한 생존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의미심장한 지표이다. 돈을 많이 가진 기업가들이 정치에 입문하여 대중의 지지를 받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곧 그들의 부가 곧 그 인간의 강인함으로 읽혀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안철수에게 집중되었던 열광의 현상을 설명하는 결정적 지표일 수는 없다. 학벌 좋고 돈 많은 정치가들은 수두룩하지만 이들이 모두 열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미감이 이들을 자극하였는가?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들을 자극한 미감이 바로 그의 이타적 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보여준 나눔의 정신은 인간 존재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최상의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독점할 수도 있는 기술을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하였으며 이윤창출을 위해 쓸 수도 있었을 귀한 시간을 청년들과의 만남을 위해 기꺼이 썼다. 그는 대부분의 부자들이 그렇게 하듯 벌어놓은 돈을 과시적으로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위용을 널리 알릴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부를 기꺼이 사회적으로 환원하였다. 이러한 이타적 행동 자체가 결국은 이기적인 속성에서 발생한 것 아니냐, 혹은 그러한 전략 자체가 더 많은 부나 명예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여기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그는 소유나 과시적 소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가를 어필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타적 행위는 아무나 따라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토르 뇌레트라네르스 지음 / 박종윤 옮김,, 웅진지식인하우스, 2007.

이타적 행위가 곧 강인함의 표식이라는 점은 진화생물학자 토르 뇌레트라네르스에 의해 잘 설명된 바가 있다.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된 그의 저서에 나오는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깃털의 예부터 생각해 보자. 뇌레트라네르스에 따르면 다윈은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깃털을 보면서 생존의 문제와 관련된 자연선택론만으로는 이러한 진화의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자연선택론의 관점에서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깃털은 생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생존을 방해하는 핸디캡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윈은 성선택이라는 또 하나의 진화기제를 도입하게 된다. 수컷 공작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생존에 방해가 될 만큼 아름다운 깃털을 발전시키고 이러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강인함을 어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선택을 받고자 하는 인간들이 혹은 남성들이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해 감행하게 되는 어려운 일이란 무엇인가? 뇌레트라네르스는 흔히 이러한 강인함의 표출이 부의 과시적 소비, 문화적 지적 활동, 이타적인 행위 등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한 부족장의 포틀래치나 사치스런 선물, 부자들이 즐겨하는 과시적 소비는 성적 선택을 받기위해 자신의 강인함을 드러내 보여주려는 남성들의 짝짓기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전략에만 머물지 않는다. 뇌레트라네르스에 따르면 훌륭한 문화나 학식을 보여주는 행위,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 등은 생존을 위해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지만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일이며 이러한 점에서 가장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이타적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그러나 성적 파트너에게 자신의 강인함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전략이다.

뇌레트라네르스는 성선택의 과정에서 진화한 이타적 인간을 호모 제네로수스(the generous man)라고 명명한다. 그에 따르면 호모 제네로수스는 생존의 문제 따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가장 진화된 성선택의 결과이다. 물론 바야흐로 우리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 역시 이러한 강인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이론에 따르면 성적 파트너에게 강인함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진화된 전략은 이타적 행위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강남 아줌마들의 안철수 사랑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한다. 소위 강남 아줌마들은 이기적인 이해에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타성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강력한 존재를 선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뿐 아니라 호모 제네로수스에도 열광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안철수의 명성은 그가 무한 경쟁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타적 행위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호모 제네로수스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뇌리트라테르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명성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있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그간 우리 사회의 정치인들이 어떤 미감을 불러일으켰는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선택의 기제를 여성과 남성의 짝짓기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정치인과 추종자 혹은 대중의 관계에도 적용해보자. 어떤 방식으로 정치인들은 강인함을 증명하고자 했는가? 한 때 소위 돈 많은 정치인들, 높은 학력과 가문을 자랑하는 정치인들은 돈과 명예의 과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강함을 어필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온갖 부패상은 갖고 있던 성적 미감마저도 없애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의 강함은 대중을 번식시키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만 비추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호모 에코노미쿠스다. 물론 이들과 달리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을 위한 이타적 행위를 중시하는 정치인도 있다. 노동자를 위해 인생을 바친 노동 활동가들이나 소위 좌파를 자칭하는 정치인들은 전형적으로 이타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강인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역부족이다. 이들은 민중을 구하려했을지는 몰라도 가족은 거의 방치한 경우가 많았으며, 생존을 감수하는 강인함을 보여주기보다 생존 자체를 위한 투쟁에 전념하였다. 적어도 강남 아줌마들의 시각에서 이들이 보여준 이타심은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쥐뿔도 없는 것들이 타인을 위하는 만용을 부린다는 의심을 받기 십상이었다.

나는 안철수가 보여준 나눔의 행위는 이들의 이타적 행위와는 또 다르다고 생각한다. 안철수는 성공한 기업가이자 학자로서 나눔의 행위를 수행했다. 이것은 없는 사람의 나눔이 아니라 있는 사람의 나눔이다. 그는 이미 맘만 먹으로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누는 행위는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이타적 행위를 하는 것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인다. 전자가 증명된 강인함이라면 후자는 증명되지 않은 강인함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번식을 위해 가장 강한 수컷을 선택하고자 하는 강남 아줌마들에게 안철수의 나눔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매력적이지 않았겠는가?

이 글에서 나는 없는 사람의 나눔이 있는 사람의 나눔에 비해 덜 아름답다거나 덜 강인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강남 아줌마들의 시각에서 안철수의 나눔 행위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번식을 보장해 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으로 전달되었다는 점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장 이기적인 시각에서조차 안철수의 이타심은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이것은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정치적 미감이다.

진실을 말하고, 자유를 얻다-영화 ‘헬프’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진실을 말하고, 자유를 얻다-영화 ‘헬프’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조주영(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박사 수료)

 

 

그런 때가 있다. 잠은 벌써 깼는데 일어나기가 너무 싫어서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다 해가 중천일 즈음, ‘그래도 하루를 이렇게 보내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슬금슬금 일어나면서 속으로 걱정한다. 반나절 밖에 남지 않은 시간동안 뭐부터 해야 하나, 할 일은 많은데 왜 이렇게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걸까. 오늘 하루도 그냥 이렇게 흘려보내면 안 되는데. 공부는 해서 뭐하나. 남 줄 것도 아닌데. 아, 아니다. 남 주려고 공부하는 거였지. 그래도 하면 뭐하나. 글 좀 끄적거린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나는 왜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에 다달아 나오는 건 한숨뿐인, 그런. 요즘이 딱 그런 시기인 것 같다. 공부는 안 되고, 안 되니까 하기 싫고, 하기 싫으니까 잡생각만 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연애를 하기를 하나, 모아둔 돈이 있기를 하나, 아~ 인생 참 꿀꿀하다, 정말.

영화 <헬프>

?<헬프>, 누구도 묻지 않던 질문을 제기하다

때는 1960년대. 노예제도는 철폐되었지만 인종차별이 여전히 심했던 미국 미시시피 주 잭슨 마을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스키터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신문사에 들어간다. 장차 작가나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인 그녀에게 주어진 첫 번째 일은 바로 일간지에 실릴 칼럼을 쓰는 것! 칼럼의 주제는 양파 다듬을 때 눈물이 안 나는 방법이랄지, 와이셔츠 깃을 하얗고 빳빳하게 다릴 수 있는 방법 등 온갖 집안일의 팁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안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이 백인 아가씨가 그 방법을 알 리 없고, 해서 스키터는 친구네 집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에게 도움을 받기로 한다.

힐리(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역)는 가정부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스키터가 못마땅하다. 가정부는 꼭 필요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힐리는 가정부와 같은 화장실을 쓰거나 같은 식기를 쓰거나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는 없다. “그들과 같은 화장실을 쓸 수는 없어. 흑인들한테는 병균이 있대. 내 아이에게 병균이 옮으면 안 되잖아? 내 아이의 건강은 내가 지키겠어!”

가정부한테 자신의 아이를 돌보게 하고, 가정부가 해 주는 음식을 먹고, 가정부가 청소해주는 집에 살면서 화장실은 같이 쓸 수 없다니!

“그렇게 하는 게 그들에게도 좋을 거야. 개인 화장실을 갖게 되니 좋지요, 에이블린?”

스키터 역시 흑인 가정부의 손에 자랐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왔을 때, 자신을 키워 준 가정부는 이미 해고된 후였다. 자신에게 가장 친밀한 존재였는데, 한 마디 말도 없이 해고해버리다니! “화장실을 따로 쓰게 하는 법안” 제출에 여념이 없는 힐리도, 긴 세월 함께 해 온 가정부를 단번에 해고해버린 어머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자신의 글을 쓰고 싶어했던 스키터는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다. 바로 그들의 입장에서!

스키터는 어느 누구도, 당사자들조차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삶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에이블린,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삶은 어땠나요? 처음부터 가정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나요? 다른 삶을 꿈꾸었던 적은 없나요? 당신의 아이 대신 백인의 아이를 키우는 심정은 어떤가요?”

처음부터 가정부로 살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도 가정부였고, 할머니는 노예였다. 다른 삶은 생각해보기 힘들었다. 아들이 하나 있었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어느 날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그 위를 트럭이 밟고 지나갔다고 했다. 백인들은 다친 아들을 가축처럼 트럭에 실어 흑인들만 다니는 병원 문 앞에 던져놓고 경적만 한 번 울리고 돌아갔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손 쓸 방도가 없어 집으로 돌려보냈고 아들은 내 눈 앞에서 죽었다.

책을 쓰는 일이 스키터에게는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에이블린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그 일은 꼭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 되어버렸다. 에이블린에게도 스키터의 제안이 처음에는 탐탁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느 때처럼 길을 가다가 백인이 쏜 총에 맞아 죽게 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던 시절이었다. 백인과 어울렸다는 이유만으로도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면서 책을 쓰는 일은 자신과 아들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노라고, 여기 이렇게 살다 죽은 생명도 있노라고.

잭슨 마을의 가정부들 사이에 스키터와 에이블린이 하는 일이 은밀히 알려지고, 그들의 작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흑인 가정부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그렇게 책은 출판되었지만 마을의 문제는 여전하다. 흑인 여성들은 여전히 백인 가정의 가정부로 일하고, 그들에 대한 차별도 여전하다. 스키터의 남자친구는 괜한 문제를 건드렸다며 화를 낸다.

“아무도 그들의 일에 관심 갖지 않아! 지금 이대로 좋은데 왜 문제를 만들려고 해?!”

하지만 스키터는 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그들 역시 지금의 삶에 만족 할 것이라는 건 우리 생각일 뿐이다.

 

공감의 힘

스키터가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삶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깊은 공감으로부터 우러나온 진심이 흑인 가정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줄 용기를 갖게 만든 것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하나는 백인 고용주 셀리아(제시카 차스테인 역)와 흑인 가정부 미니(옥타비아 스펜서)의 관계가 점차 변화해 나간 것, 다른 하나는 스키터의 어머니가 스키터에게 가정부를 해고하던 날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장면이었다.

미니는 힐리의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였지만, 집안에 있는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힐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미니가 도둑질을 해서 해고한 것이라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미니는 한동안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일을 하지 못하는 동안 미니는 집에서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던 중 에이블린의 소개로 마을 외곽에 있는 세일라의 집에서 일하게 된다. 세일라는 마을 여자들에게 따돌림을 받아 미니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것이다. 힐리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는 미니는 백인 여자들과 거리를 두기로 결심하고 세일라에게 거리를 두려 하지만, 그녀가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고 괴로워 할 때 그 곁을 지켜주며 마음을 열게 된다. 세일라 역시 미니에게 위로를 받으며 그녀에게 의지하게 되고, 미니가 남편에게 맞아 눈에 상처가 난 걸 보고는 “당신은 맞서 싸울 힘이 있는 사람인데 왜 맞고만 있나요? 나라면 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날려버리겠어요.”라며 위로해준다. 용기를 얻은 미니는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온다.

스키터의 어머니도 가정부와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손님들이 있을 때 가정부의 딸이 어머니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 손님들은 흑인 가정부의 딸이 백인 주인집의 거실에 들어오는 게 못마땅했는지, 스키터의 어머니에게 여자를 당장 내쫓고 가정부도 해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눈치를 보던 스키터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가정부를 해고한다.

진실에 눈뜨게 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진실에 눈멀게 하는 관계가 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미니는 셀리아와의 관계에서 용기를 얻어 남편을 떠날 수 있었고, 아이를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셀리아는 미니와의 관계를 통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떤 관계는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반면에 스키터의 어머니는 집에 왔던 손님들보다도 가정부와, 그리고 그녀의 딸과 더 친밀한 관계였음에도 손님들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두려워 자신과 가정부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밝히는 대신 가정부를 해고하는 쪽을 택한다. 어떤 관계는 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은 어떤 관계일까? 삶을 변화시킬 힘을 주는 관계일까 상처를 주는 관계일까?

영화의 마지막에 에이블린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내 삶에 대해 묻기 전에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 삶을 뒤돌아보면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됐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난 후 이웃들을 더 잘 보살필 수 있게 되었다. 진실을 말한 뒤 자유를 얻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며,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공부는 해서 뭐하나. 이까짓 글 좀 끄적거린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하는 한탄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 이 여성들이 보여 준 연대는 정말 소소한 일상적인 것―화장실 쓰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지 않은가? 내가 감지하고 있지 못할 뿐이지,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탄은 이제 접고, 진실에 눈멀게 하는 관계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나로 인해 관계들이 잘못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겠다. 그리고 나의 글쓰기가 세상을 바꾸는 작은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련다.

세상을 짊어진 어머니 이소선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세상을 짊어진 어머니 이소선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강 지 은(건국대학교 강사)

 

 

“엄마 배고파”

열 두 살 우리 딸이 학교에 다녀와서 제일 먼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일 때문에 나가야 할 땐,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이 되면 듣지 않아도 들리는 듯 귓가에 맴도는 소리이기도 하다. 가끔 바쁘거나 온 몸이 귀차니즘으로 가득한 마흔 한 살의 엄마는 천 원 짜리 한 두 장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런데 왜 맨날 나보고 배고프다고 하지? 그건 말하나 마나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영화 ‘어머니’ 포스터

“엄마 배고프다 …” 이소선은 아들의 마지막 말을 듣고 기도 차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던지 이소선은 정신을 잃었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던 아들 전태일이 열악한 노동현실을 바꿔야한다 외치며 불꽃으로 산화한 그 날, 병원에서 이소선은 배고픈 아들을 그렇게 보냈다. 마흔 한 살에 아들을 보내고, 마흔 한 해를 아들의 부탁과 함께 살아온 이소선은 2011년 9월 3일 영면하였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연약한 시다들이 배고픈데, 이 암흑 속에서 일을 시키는데, 이 사람들은 좀 더 가면 전부 결핵 환자가 되고, 눈도 병신 되고 육신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게 되요. 이걸 보다가 나는 못 견뎌서, 해보려고 해도 안 되어서 내가 죽는 거예요. 내가 죽으면 좁쌀만한 구멍이라도 캄캄한데 뜷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서 그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오도엽 씀, 후마니타스, 83-84) 그토록 자상한 아들, 그토록 어여쁜 아들이 불타 익어 숨이 넘어가면서 한 부탁을 이루어내려고 어머니는 평생 뒤도 안 돌아보고 살았다.

열 서너 살 시다들이 종일 굶고 일하는 것이 안타까워 버스비로 풀빵을 사먹이던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은 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마흔 한 해 동안 세상의 어머니이기를 자처했다. 중앙정보부와 평화시장 사업주들이 돈다발을 들이밀었어도 거절한 건 아들 때문이었다. 내 식구 배부르게 할 수는 있지만 그건 아들이 바라는 세상은 아니었다. 모든 회유책에서 끈질기게 벗어난 이소선은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를 16인 이상 고용업체까지 확대할 것이며, 근로기준법을 위반할 때 내리는 벌칙도 강화하겠다는 약속과 전태일이 항거하며 요구한 사항을 들어주겠다는 합의서를 받고 아들의 장례식을 치렀다.

 

배고픈 노동자들의 어머니

배고픈 노동자들의 어머니가 되기를 자처한 이소선은 시내에 빌딩을 살 수 있는 돈 대신 노동조합을 선택한다. 전태일이 분신 항거한 지 2주일 만에 청계피복노동조합은 만들어졌지만 얼마 못가 사업주와 정부의 탄압에 온몸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형사들과 몸싸움도 해야했고 수없이 유치장 신세를 졌으며 징역을 살았다. 독재정권과 경찰들에겐 ‘빨갱이 년’이었다. 도대체 이 땅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길을 어머니는 걸었다. 이소선은 헌옷 장사를 했다. 전태일이 죽기 전에는 전태일을 위해서, 아들이 죽고 나서는 새로 생긴 아들들을 위해서 헌옷을 모아 팔았다. 다른 이들은 재수 없다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죽은 사람 옷도 영안실에서 구해왔다. 이렇게 돈이 생기면 이소선은 조합으로 달려가 끼니 거른 조합 간부들에게 줄 라면을 끓였다. 평화시장 옥상에다 큰 들통을 걸어 놓고 나무를 지폈다. 새벽 두시부터 국숫집에 가 줄을 서서 싸게 사온 ‘파지 국수’로 만든 우거지 죽으로 조합원들의 끼니를 챙겼다.

철거반이 부술 때마다 전태일이 다시 짓곤 했던 블록집 쌍문동 208번지에서 어머니와 함께 전태일을 닮은 청년들이 전태일의 꿈을 꾸었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 내려야 했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는 결코 노동조합을 성장하게 두지 않았다. 박정희가 79년 10월 26일 죽고 새날이 올 줄 알았던 사람들은 얼굴만 바뀐 군사 독재에 또 다시 부딪혀야 했다. 전두환 정권 역시 노동조합을 수없이 탄압했다. 독재자들에 대한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던 시절을 이소선은 온몸으로 부딪혀 싸웠다. 때로는 수배자들을 보호했으며, 때로는 자신이 수배자가 되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 폐쇄되었던 청계노동조합은 1984년 3월에 청계피복노동조합복구위원회의 이름을 다시 걸었다. 이는 다시금 노동조합과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 후로도 숫한 파업의 현장과 집회를 누비며 노동자들의 단결을 외쳤던 이소선은 전두환 독재정권의 폭압에 분신항거하는 또 다른 전태일들을 가슴으로 묻었다. 1986년 3월 17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한 신흥정밀 박영진의 마지막 유언을 받으며, 1987년 8월 22일 경찰이 쏜 최루탄에 심장을 맞아 죽은 이석규의 시신을 지키며 이 땅에서 힘없고 배고픈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받아냈다.

 

억울한 죽음은 다시 없게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숱한 이들이 죽음으로 항거했지만 이들의 죽음이 제대로 밝혀지지는 못했다. 유족들은 자식들이 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평범한 시민이 권력에 홀로 맞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유가족들은 이소선을 찾아왔다. 노동조합의 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이소선은 전태일과 같은 죽음을 막기 위해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를 출범시키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배운 것 없어 회장같은 일은 나서서 하지 않은 이소선이지만 전두환 정권에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거친 길을 떠안았다. 이소선은 쇠사슬에 묶인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민주주의의 어머니가 되었다. “독재의 똥개들아! 나도 잡아서 죽여라. 나도 방패로 찍어 죽여라!”(『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245) 서슬퍼런 군사 정권에 목숨걸고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이는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어머니 뿐이다. 어머니의 외침에 유가협 부모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이 글의 자료는 전적으로 오도엽이 꼬박 5백일 동안 이소선과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2008년 12월에 출판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오도엽은 이소선에게 마지막으로 이리저리 하고 싶은 말을 묻는다. 『전태일 평전』의 인세를 고스란히 이소선의 활동에 쓰라고 준 조영래 변호사, 군홧발 무섭던 1980년 남산에 잡혀갔을 때 동상 걸린 발에 약을 사다 발라주던 젊은이, 수배당해 도망다니며 얻은 결핵을 제대로 치료도 못할 때 자기 집에 숨겨주고 주사 놔주었던 간호사, 자기보다 나이 어린 이소선에게 어머니라 부르며 존경하고 도왔던 문익환 목사님, 전쟁 끝나고 오갈 데 없는 이소선의 식구들에게 처마밑을 내 주었던 집주인, 청계 조합원들… 그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했다. 그리고 아들의 원을 풀어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자식들, 독재 때보다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미안함을 전했다.

 

어머니는 가셨지만…

척박한 이 땅에 전태일이 노동조합의 씨를 뿌렸다면 이소선 어머니는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았다. 노동자들이 전태일의 꿈을 따라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민주노총이 건설되었다. 어머니는 민주노총이 만들어질 때 제일 기뻤고 다음으로 기쁜 게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 만든 것이라 했다. “잘난 척하지 말고 소외받은 사람 곁으로 내려가서, 고통받는 노동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차별 없는 세상 만드는 데 힘써야지. 욕심부리지 말고 차근차근 국민 지지받아 국회도 많이 가고, 그래서 나중에는 대통령도 하면 좋지 않겠냐”『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283). 이론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마흔 한 해 아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가면서 터득한 진리이다. 이런 어머니를 위한 훈장 추서가 기각되었다. 민주인사들에게 수여하는 이 훈장이 기각된 이유는 다른 민주인사들과 비교 검토할 수가 없어서란다. 지금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예처럼 사는 현실을 두고 어머니는 국가가 주는 훈장을 가슴에 달지 않을 것 같다. 어머니가 바라는 것은 명예도 아니고 돈도 아니지 않았던가.

 

속. 상. 해. 하. 지. 마.

고령과 지병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어머니를 담으려고 했던 영화가 올해 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의 개봉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실 줄은 아마 제작진도 몰랐을 것이다. 이제 어머니는 없다. 한국의 아픈 근대사와 싸우고 보듬었던 시대의 어머니는 마흔 한 살에 아들을 보내고 마흔 한 해를 살다가 지난 달 잠들었다. 어머니의 영화도 참 힘든 길을 가고 있다. 상업영화가 아니니 후원도 필요하다(http://sosun.tistory.com/). 어머니의 길을 오롯이 남기진 못하겠지만 최소한 그를 기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속.상.해.하.지.마.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에게 말한 것처럼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 같다. 속상해 하지 않으련다. 대신 꿈꿀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머니를 기리며 어머니의 꿈을 함께 그리는 것이 아닐까.

 

사족 한 마디

이제 곧 대한민국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총선, 대선을 치러야 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여성 후보들이 등장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선거들에서도 여성 정치인의 약진이 펼쳐질 것이다. 정말 한 마디만 하자. 함부로 어머니의 마음가짐으로 정치에 나왔다는 말을 하지 말자. 채 한 줌도 안 되는 일부 고위층을 위하여 출마하는 여성정치인은 정말 어머니, 엄마를 입에 담지 말자. 우리에게 필요한 어머니, 엄마는 이 땅의 아픈 손가락들을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로 챙기는 욕심이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 정말 한 마디만 더 하자. 이소선 어머니의 마음으로 정치할 수 있는 여성 정치인이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우리가 손을 보태자.

소금꽃나무, 상처 그리고 치유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소금꽃나무, 상처 그리고 치유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연 효 숙(연세대)

 

 

1. 소금꽃나무들

유난히도 비가 많이 와서 그다지 덥지 않았던 2011년 여름. 요즘 9월 들어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제법 가을 냄새가 난다. 그러나 부산 한진중공업의 85호 크레인에서 250여일을 지내며 아직도 내려오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 좁은 크레인에서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얼마 전에는 위를 다쳐 죽으로 연명한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 왔다.

김진숙,52세 비혼(非婚).2011년 들어서 더 유명해진 그녀! 그녀가 남자였다면 뒷바라지하는 아내나 가족들이 있었을 터인데, 그녀는 혼자이다. 물론 85호 크레인 바로 아래에는 그녀를 지키는 한진중공업 해직 동료 노동자들이 있고, 많은 이들이 그녀의 길고 끈질긴 투쟁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솔직히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1차 희망버스에 오를 희망자들을 구한다는 메일을 열어 보고서 그제서야 김진숙이 눈에 들어 왔다. 물론 그 전에도 그녀 이름은 들었지만 나는 모른 채 했었던 것 같다. 나를 위시한 우리 이웃들이 그녀에게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을 때조차, 그녀는 칼바람의 겨울부터 봄을 지낸 후, 뜨거운 여름을 지내고 가을바람이 서늘하게 부는 요즘까지 85호 크레인에서 요지부동 내려오지 않고 있다.

희망버스가 4차까지 떠났다. 그래도 나는 이 희망버스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하고, 그저 뒷켠에서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아무런 응원도 격려도 희망의 메시지도 보내지 못하고, 그냥 살기 바빠서…. 라는 핑계만 만들고 있을 뿐이다. 무기력과 자괴감이 슬며시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인에게서 들은 그녀가 쓴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김진숙 지음,<소금꽅나무>, 후마니타스, 2007.

 

그녀가 쓴 책, 『소금꽃나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응? 소금꽃나무라고? 세상에 그런 꽃나무가 있나? 뭐지? 궁금했다. 책을 봤다. 아! 소금꽃나무는 노동자들이 흘린 땀이 소금이 되어 등짝에 달라붙어 마치 허옇게 핀 소금꽃나무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소금꽃을 피워내는 노동자들이 바로 소금꽃나무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달밤에 하얀 소금을 뿌린 듯 피어 있는 메밀꽃의 서정보다 더 진한 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소금꽃을 피워내는 많은 소금꽃나무들이 있다. 이들이 땀흘려 배출한 소금 결정체인 소금꽃나무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은 피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2009년 봄 77일간의 기나긴 쌍용자동차 파업은 경찰의 잔인한 진압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동안에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은 극한의 투쟁을 벌였고, 진압 과정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치유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상처들이 이 후에 남겨진 것이다.

 

2. 상처받은 자들의 절규

김진숙, 그녀는 매우 강한 여성이다. 통일문제연구소장인 백기완 선생은 그녀를 80평생 만난 여자 중 최고의 여자라고 했다. 그만큼 속이 단단하고 인내심이 강한 여성이다. 고공 크레인에서 250여일을 넘겨가며 버티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아마 유래가 없을 것이다. 김진숙은 강한 여성이니 그정도 시련은 견뎌낼 것이다, 라고 그녀를 믿고 방치하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일까?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왜 그녀라고 상처를 받지 않겠는가. 철의 여인이라 잘 버텨 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모질고 독한 년(?)이라고 이를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입었을 상처를 인간적으로 깊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그녀가 입은 상처와 상흔은 한진중공업 사태가 해결되고, 그녀가 크레인에서 내려 올 때 비로소 헤아려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꿋꿋하게 버티고 있지만, 그녀도 꽃을 보면 감동하고 마음이 설레는 평범한 여성이 아니겠는가. 부디 상처를 덜 입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금꽃나무』에 보면 그녀의 가족사를 언급한 ‘상처’의 부분이 있다. 나도 읽다가 고통이 와 닿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슬그머니 책을 덮어 버리게 된다. 노숙자로 전전하다가 10여년 만에 경찰서로부터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소식이 날라 온 남동생의 비참한 죽음! 그 딸인 채 스무살이 안된 조카가 가출 2년 만에 몸이고 마음이고 간에 만신창이가 되어 미쳐 버린 채 돌아오고…… 그래도 애써 태연한 척 그녀는 그 상처들을 담담하게 적고 있다.

어디 그녀의 피붙이 가족들만이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으랴! 한진중공업에서 파업 철회 투쟁을 하다, 불의의 객이 되어버린 적지 않은 가장들, 그 소금꽃나무들의 죽음이 새긴 상처. 그 상처가 분노가 되어 한여름엔 지글지글 끓는 크레인의 철골 위에서, 한겨울엔 살을 에이는 듯한 찬바람의 서슬 속에서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지금껏 250여일 가까이 김진숙은 내려오지 않고 있다. 85호 거대한 크레인보다도 더 강한 그녀이지만, 예쁜 꽃과 같은 감성을 지닌 그녀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을 상처는 누가 언제 어떻게 보듬어 줄 것인가.

얼마 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상처를 보여준, KBS스페셜, “심리치유, 8주의 기록, 함께 살자!”를 시청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와 마인드프리즘 팀에서 이들의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짧은 8주 동안 치료하면서 살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죽음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진다. 베란다에 서면 자살 충동이 일어난다. 늘 가까이 있는 죽음의 유혹, 끝없는 무력감과 고통스러운 기억들의 반복, 시시때때로 솟구치는 분노와 사람들에 대한 깊은 불신. 그들의 삶과 마음은 바로 불지옥이었다.

정혜신 박사는 이들이 77일간 쌍용자동차 파업 기간에 겪은 고통, 폭압적인 진압, 경찰에 의한 체포 등에서 입은 상흔을 원자폭탄에 피폭된 상태에 비견했다. 그만큼 엄청난 영혼의 손상을 입은 것이다. 이 영혼의 손상은 한 개인의 영혼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후, 삶은 철저히 무너졌다. 자살과 심근경색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평균 3배 이상이 되었다.

한 정리해고자의 “내가 무슨 지독한 죄를 지었기에 이런 끔찍한 대우를 받는지…..”라는 가슴을 후펴파는 절망스러운 목소리가 귀전에 남아 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쌍용자동차에 취업했고, 또 정리해고 후에도 여전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생존의 투쟁을 했을 뿐인데, 그들에게 돌아왔던 건 무자비한 폭력과 상처 뿐이었다.

이러한 상처들에 겹쳐지는 얼굴들, 청년 실업의 문제!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얼굴들이 대체로 어둡다. 기운이 없고 패기가 없다. 무슨 죄를 지은 양, 어깨가 축 처져 있고 눈동자에 슬픔과 암울함이 비친다. 기운이 하늘을 찌른다 해도 모자랄 20대 청춘들의 얼굴에 그늘이 지고, 언제 폭발할지 모를 상처들이 가슴 속 깊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왜 우리 세대만 이런가? 우리는 왜 이렇게 저주받고 있는가? 청춘들의 좌절과 분노와 절망에 대해 우리 사회는 냉담으로 초지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언제까지 이러한 상처 내기를 되풀이할 것인가? 국민을 위한 국가는 진정 없는 것인가? 이 국가는 도대체 어떤 국가라는 말인가? 그래, 이 국가는 특권층을 위한, 강한 자를 위한 국가가 아니었던가? 힘과 권력으로 상징화된 강한 남성의, 강한 아버지의 국가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상징화된, 폭력과 압제의 코드가 교묘하게 숨겨진 아버지의 국가, 상징계의 국가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 그 위력에 우리는 왜 이렇게 무기력한가? 약한 아버지, 약한 남성, 약한 여성, 약한 청소년들은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 상처받은 영혼들을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3. 트라우마는 치유 가능할까?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왜 그 생채기가 났는가를 아는 것인데,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저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바꿔볼 도리가 없는 것 아니냐 하는 패배의식이 우리를 더 병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응급처치하고 대증적인 요법만으로 땜질해서는 곤란하다. 상처의 원인을 찾아 그 병원균을 없애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병원균이 무엇인지는 암묵적으로 다 알고 있다. 병원균이 천하무적이어서 어쩔 도리가 없고, 그저 그 속에서 꼼짝없이 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도 모르게 체득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처는 계속 나고 곪아 터져 우리의 삶을 파괴시킨다. 그래서 상처를 직시하고 그 병원균을 처치할 새로운 치료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아버지의 이름에 맞서는 여성주의가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그 중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보살핌의 윤리’다. 보살핌의 윤리를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변형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 윤리를 그저 여성들의 자애롭고 따뜻한, 자칫 한가한 덕목으로만 쓸 것이 아니라, 진짜 상처 치유를 위한 적극적인 방식으로 활용할 때가 왔다. 우리 사회와 같이 온통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에게는 ‘보살핌의 윤리’가 ‘치유의 윤리’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여성주의적 보살핌의 윤리가 치유의 윤리로 버전업되어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그런데 치유의 방법과 길은 그다지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치유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정신과 전문의나 상담 치료소 등이 그 몫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방향을, 어떤 대안을, 어떤 희망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여성주의자들이 이 치유에 동참하고 연대할 수 있는 부분적인 몫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우리 사회와는 상당히 다른 환경이지만,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테바가 『시적 언어의 혁명』에서 말한 기호계가 떠오른다. 기호계란 무엇인가? 폭력적인 아버지의 이름인 상징계를 거부하고 맞서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적 질서이다. 이 기호계가 상징계의 폭력으로부터 입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

상징계가 유일하다고 믿는 그 맹신을 던져 버려야 할 것이다. 세상은 다양한 질서로 짜여 있으며, 우리도 새로운 질서를 다양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상처투성이의 삶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롭게 횡단하고 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주체가 되려면, 먼저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할 것이다. 그 치유의 길은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하드한 혁명보다 마음 속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소프트한 혁명이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여성주의자들도 이들의 치유에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딸바보, 그 가부장성에 대하여 [배운년, 미친년, 나쁜년]

딸바보, 그 가부장성에 대하여 [배운년, 미친년, 나쁜년]

김세서리아(성신여대 연구교수)

 

‘딸바보’라는 신조어가 있다.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란다. 어떤 연예인은 ‘딸바보의 원조’라 하고 또 다른 연예인은 ‘딸바보의 종결자’라 불리운단다. 주변의 남자 선후배들 역시 딸바보 임을 자처하는 이가 많아졌다. 핸드폰 단축번호 1번을 딸아이의 핸드폰 번호로 저장하기도 하고 컴퓨터, 핸드폰의 바탕화면을 딸아이의 사진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게다가 딸 아이 사진을 서슴없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자랑까지 한다. 이처럼 아버지와 딸 관계가 남달라지고 ‘딸바보’라는 용어가 새로운 남성상을 대변하게 된 세태를 두고 가부장제가 그만큼 약화된 것을 증명하는 것일까? 이제는 어머니-자녀의 관계, 모성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자녀의 관계, 부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이르게 된 것이라 말해도 좋을까?

 

모성과 가부장제의 변주곡

가부장제와 모성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 모성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것이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은 거의 일반화된 논의다. 모성을 여성의 본질적 특성으로 규정하고 여성 일반에게 강요하는 것은 확실히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과 부합하며 이러한 생각에서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모성을 여성억압의 원천으로 간주한다. 지나온 역사 속에서 모성과 가부장제가 상호 긴밀하게 연관되고 모성이데올로기가 가부장제에 봉사하였던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처럼 가부장제가 모성 강조에 언제나 협조적인 것은 아니다. 그 둘의 관계 양상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모성과 가부장제는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지만 종종 갈등하고 모순 관계에 놓인다. 그래서 가부장제 질서를 위하여 모성이 포기되거나 모성의 강조가 가부장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상황을 산출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 유교 사회에서 모성은 출산-태교-자녀교육의 과정으로 이어지면서 여성들의 중요한 규범적 책무로 되었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모성이 사라진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전통 유교 사회에서 모성이 강조되는 궁극적인 목적은 가부장 질서를 유지하고 공고화 하는 데 있었고 따라서 어머니-자녀의 직접적이고 친밀한 관계 보다는 어머니-자녀 관계에서 나오는 정서(모성)를 다른 사람들에게로 얼마나 잘 확장하였는가가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보다 부모 봉양이나 조상의 제사가 더 우선시되는 전통 유교의 정서는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통 유교 사회에서 출산과 자녀 교육의 의미는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부모와 조상에 대한 효,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가부장제 질서를 공고히 하는 것에 있다. 때문에 자녀와의 친밀한 정서보다는 자녀를 기르는데 부지런히 애쓰고 그 성공을 바라는 것의 목적이 가문을 이어가며 죽은 사람을 잘 보내고 살아있는 사람을 잘 봉양하려는 것에 두어져 있다.

열녀 이 씨의 이름은 아무개로 선비 김 아무개의 아내이다. 나이 스물 하나에 그 남편이 병들어 죽자 바로 머리를 풀고 짚자리를 깔고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입관한 뒤에 관에 기대 곡을 하고 말했다. “장례가 끝나면 따라 가겠습니다.” 달을 넘기면서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졸곡(삼우제 뒤에 지내는 제사) 때 곡을 하며 말했다. “홀몸이 아니니 감히 당신의 자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일 년 뒤에 따라 가겠습니다.” 해산을 해서 아들을 낳았으나 아들로 여기지 않고 여종을 골라 그에게 젖을 먹이게 하였다….“제가 복이 없어서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아내로서 마땅히 따라가야 합니다. 이제 저 어린 아이로 핑계를 대고 남편이 제게 말한 것을 어찌 감히 지키지 않겠습니까?” 아이를 불러 이마를 세 번 어루만지고 방으로 들어가려 하니 유모와 종들이 그를 엄하게 지켰다. ··· 여종이 자리를 정돈하고 베개를 편히 하자 손을 바로 해서 배에 얹고 눈을 감고 죽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정려를 내렸다. (이옥李鈺, 「열녀이씨전烈女李氏傳」)

“당신은 이 미망인을 염려하지 마시고 편안히 지하로 돌아가십시오. 저는 당신이 죽으면서 남긴 부탁 때문에 차마 바로 죽지 못합니다. 당신의 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아이의 나이가 5살이 되고 그때는 아이가 혼자서도 보전할 수 있겠지요. 그날이 되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탈상이 다가왔는데 딸이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다.······시부모는 그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눈치 채고 여종에게 지켜보라고 주의를 주었다. 하루는 여종을 시켜 딸의 약을 구해오게 하고는 지니고 있던 남편의 작은 띠로 들보에 목을 매고 죽었다. (황용한黃龍漢, 「열부함양박씨전烈婦咸陽朴氏傳」)

열녀 함양박씨 정려비/ 출처: 함양군 문화관광사이트 http://tour.hygn.go.kr

이와 같이 가부장제 이념이 우선하는 사회에서 모성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기는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모성 강조는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모성은 무시되어야 했다. 따라서 가부장제를 강조하는 만큼 모성이 강조되는 구도를 지니지만, 또한 가부장제 강화와 부계혈통을 잇는 목적의식이 강한 그만큼 어머니-자녀 관계에서 나타나는 친밀한 정서는 은폐되거나 축소되었다. 모든 여성에게 부과되는 모성이라는 본질적 의미로서의 정체성과 가족 구조의 재생산을 위해 부과되는 규범적 의미로서의 정체성은 가부장제 안에서 통합되는 상보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이 둘은 종종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된다. 또 가부장제 이념과 정서적 모성이 상충했을 때에는 가부장제 이념이 더 우선한다.

 

어머니/딸, 아버지-딸, 그리고 가부장제

전통 사회는 현대 사회보다 훨씬 더 가부장제적이라고 여겨지고, 그래서 모성도 더 강하게 부추겨졌다고 간주된다. 분명 이념과 질서, 가문의 영화와 존속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이해되었던 전통 사회에서 어머니-자녀의 관계는 강조된다. 하지만 그 관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대 가족에서만큼 어머니-자녀의 친밀감과 정서적 유대가 강조되지는 않는다. 즉 현대 가족이 모성에 근거한 자녀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그만큼 어머니의 직접적인 보살핌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 비하면, 전통 가족에서의 어머니 역할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전통 사회에서 모성의 핵심은 어머니-자녀 관계가 남성 혹은 가부장제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달려 있었고, “가부장적인 친족체계 하에서 여성은 남성의 자녀를 갖는 자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씨(seed)라는 개념”이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모성을 강조하는 목적 자체가 가부장제 옹호와 부계혈통 강화에 있었으므로, 아이를 남성의 소유로 계승시키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의 존재는 가능한 은폐되거나 축소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머니-자녀의 관계는 한편으로는 강조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하게 무시되어야 한다. 출산이라는 여성의 일을 본성으로 규정하면서 그에 수반하는 여러 가지 보살핌의 실천과 심리들을 통해 거대한 모성 이데올로기를 산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출산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철저하게 모성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통 유교 사회의 씨받이 같은 제도는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공고화하기 위하여 출산과 연관한 모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모성을 무시하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는 딸들이 어머니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신에게 남근을 주지 않아서라고 본다. 또 어머니-아들의 관계는 어머니 자신의 낮은 지위와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 아들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는 기대로 설명된다. 때문에 어머니-딸의 관계와는 다른 위치에 놓인다. 아들을 위해 딸을 희생시키는 어머니는 딸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위치에 있다. 이에 반해 어머니를 대신하는 자상한 아버지는 남성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

때때로 “나는 여성보다는 남성과 친하고 남성에게서 동료애를 더 느끼며 남성에게서 더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하는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하였다고 일컬어지는 여성들을 만난다.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 어느 누구라도 자신을 도와주고 힘을 북돋는 사람에 대해서는 감사와 호의의 마음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도 자체가 여성들의 지위를 상승시키거나 혹은 가부장제를 약화시키거나 남성과 여성의 화해 무드로 나아가게 하지는 않는다. 딸이 아버지와 친하게 되는 상황에는 여전히 아버지의 힘이 자리하고 있으며, 딸은 아버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남성들은 자기 아내에게는 주지 않을 도움, 사랑을 딸들에게는 아낌없이 준다. 이렇게 보면 아빠들의 딸바보 행진은 가부장을 넘어서는 길목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2011년 여름, 로맨스 드라마에서 여성이 ‘구원’(?)받는 법[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2011년 여름, 로맨스 드라마에서 여성이 ‘구원’(?)받는 법[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김은주(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박사 수료)

 

신문을 보다가 다음과 같은 기사를 발견했다. 20-30대 미혼여성 60%. 조건 맞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응답. 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여성은 비정규직이었지만, 자신보다 나은 조건을 갖춘 안정적인 정규직 남성과 결혼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독신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을 밝혔다. 혹자는 이 기사를 보며, ‘여자들은 원래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해. 속물!’ 이라고 단정 짓고 끝낼지 모르겠다.

결혼이 행복한 로맨스의 결말이라는 공식은 무너진 지 오래다. 그렇지만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이제 낭만적 사랑인 로맨스와 결혼은 완전히 분리되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은 이제 점점 더 경제적 안정성의 담보물이자 계급 상승의 수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확실하지 않다면, 미혼 여성에게 결혼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현실에서 결혼과 로맨스는 결코 닿을 수 없는 평행선처럼 점점 더 무관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사에도 불구하고, 소위 ‘로코’라고 불리는 로맨스 코메디와 일일 연속극의 여주인공은 여전히 로맨스에 몰입하며 결혼에 분투하면서, 답답한 일상과 현실의 시련으로부터 ‘구원’받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2011년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어떻게 ‘구원’받는가?

앤서니 기든스에 따르면, 연예소설로서의 로맨스는 대중이 읽은 최초의 문학 장르이다. 특히 19세기에 혼인 관계를 경제적 가치와 분리하기 시작하면서, ‘로맨싱(romancing)’은 구애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러한 로맨스 개념은 부르주아 집단에서 주로 지속되었던 낭만적 사랑의 개념이 사회에 확산되면서, 사랑의 이상으로 자리 잡는다. 또한 혼인 관계가 보다 폭 넓은 친족 관계로부터 분리됨에 따라, 로맨스는 결혼으로 귀결되면서 더욱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낭만적 사랑인 로맨스에서 성공한 남편과 아내는 아이와 상관없이 부부 관계에 헌신하는 일종의 정서적 공동체를 성립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형적인 로맨스와 결혼의 관계는 현재의 트랜디 드라마에서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지는 않다. 하나의 변수를 더 넣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미혼인 여주인공의 직업과 경제 사정이다.

요즘 ‘로코’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집안의 경제 사정이 안정적이며 전문직인 여성, 경제 사정이 좋지 않지만 전문직 여성이 될 수 있는 여성, 별 볼일 없는 집안에 스펙조차 없는 여성. 첫 번째 부류가 무용과 졸업생이나 기생이 된 “신기생뎐”의 단사란, 두 번째는 재벌남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5급 행시를 패스한 공무원인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공아정, 세 번째는 스펙 자체가 없어 ‘식모’를 직업으로 택한 “로맨스 타운”의 노순금이다.

아직 종영을 하지 않은 로맨스 타운을 제외하고는 두 부류의 여주인공 모두 결국 결혼에 성공하는 해피엔딩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완전히 성공한 결혼으로 골인하는 전형적 로맨스는 첫 번째 여주인공에게 일어난다. “신기생뎐”의 단사란은 재능과 미모, 자존심도 있지만, 돈에 눈이 먼 계모의 강요로 결국 기생이 된다. 그렇지만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재력 있는 남성과 결혼하여 구원받는다. 드라마의 주요한 내용은 결혼에 어떻게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사건과, 결혼 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이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가장 바닥의 상황에서 시련을 겪는 품위 있는 여주인공이 가부장제의 처가 되는 결혼에 성공하여 행복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

두 번째 분류인 공아정은 행시를 패스한 엘리트 여성이지만 ‘결혼’을 해보고 싶어서 거짓결혼을 하는 활극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거짓 결혼 상대자인 재벌 남성과 사랑에 빠지면서 여주인공이 원했던 것이 낭만적 연애였음이 밝혀진다. 두 주인공 모두 경제적인 시련은 겪지 않는다. 그녀의 시련은 사랑으로 인해 직업을 잃을 뻔 하는 사건에 있다. 일이냐 사랑이냐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일을 인정해주는 재벌남과 그의 배려를 사랑으로 이해하는 여주인공의 결혼 승낙을 통해, 드라마는 해피엔딩에 이른다. 이 드라마의 주요한 축을 이루는 로맨스는 경제적 현실을 고민하는 않은 주인공들에게 분명하게 보장된다. 문제는 결혼에 있다. 드라마의 엔딩은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는 사랑의 확인으로 끝난다. 결혼을 상징하는 웨딩드레스 장면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일과 사랑 모두를 붙잡는 것, 그것이 그녀의 행복이다. 두 번째 부류의 여성에 있어서, 로맨스는 결혼과 무관하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일과 사랑의 공존이지 구체적으로 결혼은 아니다.

 

드라마 ‘로맨스타운’

 

위의 두 부류의 드라마에 비해, “로맨스 타운”은 로맨스와 결혼에 대해 냉소적이다. 여고 동창인 두 여성은 어떤 남자를 만나는가에 따라 식모가 되고 사모님(미모의 여성이 성공한 남성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사모님은 트로피 사모님이라고 불린다.)이 된다. 드라마는 오히려 결혼이 계급을 구축하는 도구라는 사실만을 명료하게 보여줄 뿐이다. “로맨스 타운”은 점점 로맨스와 무관해진 채, 로또에 당첨된 식모들의 추리 복수극으로 나아간다. 스펙도 내세울 집안도 없는 여성에게 있어 로맨스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여주인공은 정서적 위로와 다정한 친밀감을 로맨스 상대에서가 아니라 식모들의 공동체에서 찾는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그녀, 노순금에게 있어서 사실상의 구원은 로맨스의 대상인 남자가 아니라 로또이다.

드라마에서 더 이상 로맨스와 결혼은 짝을 이루지 않으며, 여주인공들에게 구원은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결혼은 더 이상 로맨스에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돈 없는 남자와의 로맨스 역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로맨스에 가장 몰입하고 있는 여주인공은 누구인가? 위 세 부류에 해당하지 않은 번외편이자, 가장 적극적인 시청률을 자랑하는 저녁 8시 매일 연속극의 여주인공이다. 주인공인 아줌마는 더 이상 남편의 불륜에 목매거나 이로 인해 망가지지 않는다.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 받은 여주인공 아줌마는 캐리어 우먼이 되어 성공하고, 자신에게 목숨 거는 애교덩어리 식스팩 말 근육 총각과 사랑에 빠진다. 이제는 매일 연속극의 단골 소재가 되어버린 ‘줌마렐라’의 탄생! 아줌마는 결혼에 실패했지만, 로맨스에 성공한다.

여기서 로맨스가 결혼으로 다시 이어지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로맨스만이 중요하다. 아줌마는 로맨스를 겪으면서 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이자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으며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줌마렐라 소재가 인기를 끄는 것은 줌마렐라야 말로 낭만적 사랑, 다시 말해, 가족이나 계급, 돈과 상관없이 인격과 인격의 만남으로 정서적 친밀감에 이르는 데이트와 구애의 과정인 로맨스를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불굴의 며느리”에서 아줌마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이혼당한 직후 비정규직인 콜센터 직원인 오영심(신애라 분), 그녀가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하버드 졸업하고 월 스트리트서 펀드 매니저로 일하던 재벌 2세.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오영심 역을 맡은 신애라가 1994년에 방영된 “사랑을 그대 품안에”라는 성공한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사실에 있다. 신애라가 맡은 여주인공은 집안도 별 볼일 없고 심지어 백수 오빠까지 딸린 백화점 비정규직 직원이었지만 재벌 2세와 극적인 로맨스 끝에 결혼에 성공한다. 실제로 신애라는 이 드라마 후 남자 주인공인 차인표와 결혼하여 드라마의 실사의 주인공으로 이목을 끌은 바 있다.

성공한 로맨스 신화의 주인공인 신애라가 십 오년 후, 줌마렐라라는 새로운 로맨스 장르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2011년 여성이 어떻게 구원받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여성은 결혼으로 구원받지 않고 로맨스로 구원받는다. 그런데 시청자 모두가 알고 있듯, ‘줌마렐라’의 로맨스는 환상이다. 구원은 그래서 거짓이다. 그래, 구원은 없다. 잔혹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