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 언어와 삶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비트겐슈타인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 언어와 삶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비트겐슈타인⑤

 

강사 : 김성우(올인고전학당 연구소장)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 언어와 삶

 

현대철학은 크게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를 위시한 ‘실천 지향의 철학’과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를 위시한 ‘해체의 철학’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둘은 기본적으로 기성의 사회제도나 기존 고정관념을 해체하여 새로운 사회제도와 인간의 출현을 도모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둘은 밀접하다.

신플라톤주의를 모토로 주체와 진리의 철학을 주장하는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는 니체나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1889~1951), 라캉(Jacques Lacan, 1901~1981) 등을 ‘반철학자(antiphilosophe)’라고 규정한다. 바디우가 말하는 체계의 철학은 진리관에 기초하여 이상적 사회나 국가를 이룩하는 견고함을 보여주는데 니체 계열의 학자들은 이 견고함을 부수고 해체하려 한다. 그래서 바디우는 이들을 기존의 철학 개념에 반(反)하는 철학자라고 하였다.

그런데 언어와 분석의 철학자로 알려진 비트겐슈타인이 ‘반철학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비트겐슈타인은 ‘침묵’을 통해 철학을 이론적 사유에서 실천적 사유로 전환시켰다. 이런 모습은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의 철학에서 받은 영향이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본격적으로 불교와 인도철학을 수용한 인물이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보면 비트겐슈타인의 ‘침묵’이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행위’가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현대철학에서 해체주의는 실체를 비실체화 시키는 것을 중요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철학을 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불교적 사유방식을 흡수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그 계열인 비트겐슈타인은 불교의 방식을 서양의 철학에 구현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인도와 불교의 사유체계를 본격적으로 수용하면서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다섯 번째 시간, 김성우 교수는 20세기 서구인들이 어떻게 불교나 인도철학을 소화·수용하여 서구문명의 과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그 모습과 의미를 살펴보는 과정이 곧 니체 계열의 철학적 정체를 처음부터 통틀어 확인해보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를 선불교적 스타일과 상응하여 연결시켜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아울러 김성우 교수는 니체 계열의 철학을 탐구하기 이전에 근대서양철학의 기본 골격을 규명하는 공부가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했다.

▲ 비트겐슈타인 ⓒ위키피디아

관념론이 남긴 유산과 헤겔의 지평

 

서양철학은 기본적으로 ‘주체(자아)’와 ‘객체(세계)’ 양자의 구분을 두고 근거로서 ‘신(神)’을 설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것은 서양철학의 기본적 3자 구도이다. 17세기에 들어오면서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가 명제 ‘코기토(cogito, 나는 생각한다)’를 통해 근대적인 사유의 출발점을 열었고 이것은 근대적 자아의식의 출발이 된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도 실체일 수 있다는 생각이 성립된 것이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철학 제1원리는 ‘내 생각’이 ‘내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에 유아론(唯我論)적 색채를 띤다. 이 유아론적 성격에 대해 로크(John Locke, 1632~1704)나 흄(David Hume, 1711~1776) 같은 경험론자들은 인간(주체)이 외부(객체)로부터 감각을 통해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존재로서 수용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의 주장은 인간이 고립된 실체로서 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존재임을 인식한 것이다.

하지만 칸트(Kant, 1724~1804)는 수용성을 제외하고 우리가 바라보는 객체는 주체가 구성한 것이라고 했다. 주체에게 포착되어 주체가 구성한 것은 ‘현상‘이고 주체에게 포착되지 않는 순수한 객체는 ‘물자체(Ding an sich)’이다. 칸트가 남긴 것은 바로 이 ‘현상’과 ‘물자체’의 이원론이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유아론적 사고방식과 경험론자들이 표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으로서 수용성을 강조하는 사고방식에 대해 칸트는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을 주체 지향적인 방식으로 재편하여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성(외부 사물을 받아들이는 감각기관)의 형식과 지성(수학처럼 바깥사물에 의지하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개념적이고 분별하는 사고)의 형식으로 나눈다. ‘감성의 형식’은 ‘직관형식’으로 시간과 공간에 관계하고 ‘지성의 형식’은 시간과 공간에 걸리지 않는 선험적인 형식으로서 ‘범주’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 속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연을 초월한 도덕적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칸트는 ‘물자체’의 세계를 ‘도덕의 세계’라 하였고 ‘객체 사물의 세계’를 ‘자연과학적인 세계’라고 하였다. 이 둘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인데 칸트의 의도대로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피히테(Fichte, 1762~1814)는 주체를 ‘절대자아’로 보아 모든 객체를 자신의 앞에 정립시킨다. 헤겔(Hegel, 1770~1831)은 이것을 주체적인 주체·객체라고 보았다. 반면 셸링(Schelling, 1775~1854)은 자연으로부터 주체와 객체의 통일을 만든다. 헤겔이 보기에는 지극히 객체적인 주체와 객체의 통일이다. 그래서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피히테와 셸링이 남겨놓은 주체와 객체의 통일 관계를 정신현상학을 통해서 정신이 어떻게 발전하여 이 단계에 이르렀는지 밝힌다. 김성우 교수는 이것으로 철학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지평이 완성되었다고 설명한다. 헤겔은 이 지평 위에 철학 체계를 세운다. 주체와 객체가 통일된 존재론적 원리가 논리학이고, 그 원리가 객체인 자연으로 드러난 것을 탐구하는 것이 자연철학, 주체의 영역에서 정신철학과 법·사회철학이 나온다. 그리고 이 둘의 결합을 ‘절대정신’이라 하여 절대정신은 ‘예술‘, ‘종교’, ‘철학’으로 발전한다.

칸트의 ‘선험적 자아’는 아직 실체가 아니었고 피히테의 ‘절대자아’도 행위와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실체로서의 자아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김성우 교수는 헤겔이 자연과 정신의 종합을 과연 이루었는지, 헤겔의 ‘절대정신’이 피히테의 ‘절대자아’를 의미하는 것인지의 문제는 아직까지 이견이 분분하다고 하면서 관념론의 지평에서 칸트가 말한 ‘선험적 자아’이건 헤겔이 말한 ‘절대정신’이건 모두 ‘보편적인 이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보편적 이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자아의 해체와 변혁의 사고

 

김성우 교수는 현대 철학에서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해체하는 세 방향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첫 번째, 이성 대신 육체와 삶의 철학, 생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니체 계열의 ‘해체주의 철학자’들이 속하는 부분이다.
두 번째, 삶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관점에서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하며 분배 활동을 하는 경제적인 관점과 연결하여 우리 삶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해 보자는 것이 마르크스이고 ‘역사유물론자’의 태도이다.
세 번째, 자아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배후’에서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나의 생각과 나의 여러 모습들을 결정하는 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것이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이다.

오늘날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전개할 때 앞의 이 세 인물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 맥락이 달라진다. 예컨대 프랑크푸르트(Frankfurt)학파는 마르크스 사상의 지평 위에 프로이트를 받아들여서 독일 나치즘의 권위주의와 대중들이 그 권위에 어떻게 굴복했는지를 분석하려 시도한다.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니체를 통해서 마르크스를 새롭게 해석하고 기존과는 다르게 어떻게 선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지젝(Slavoj zizek, 1949~)은 프로이트와 라캉, 마르크스와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점이 있다. 칸트는 우리가 어떤 것을 인식하거나 어떤 존재의 존재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가지는 가능성의 지평을 찾아보자고 하는데 그것이 ‘선험성의 지평’이다. 이 출발점 위에서 독일 관념론은 출발하고 헤겔은 ‘절대정신’이라는 차원으로 해명한다. 중요한 것은 헤겔처럼 그 물음을 확대해서 플라톤적인 ‘체계’를 말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칸트처럼 여전히 이율배반적인 비판(고진이나 지젝이 ‘시차’라고 말하는 개념)이 중요한가의 문제이다. – 그래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의 경우는 칸트적 사유(니체화된 칸트)를 통해 다시 변혁적 사고의 기초를 놓으려는 반면, 지젝은 비록 부정성의 주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헤겔처럼 주체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니체 계열의 비판과 해체주의 철학

 

오늘날의 서양철학에 있어서 변혁의 두 사고는 이렇다. 중심적인 조직이 필요한가? 아니면 개별적인 분자운동과 분자들의 연합이 더 중요한가? 김성우 교수는 “다시 말하면 사회의 영역에서 집중적인 변혁의 주체를 설정할 것인지, 아니면 분산적인 자유로운 연합을 택할 것인지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니체 계열의 철학이 주장하는 것은 세계의 구성과 체계,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노력들이 경화(硬化)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사회 내부에서 폭력이란 방식으로 전화될 수 있다는 표지판과 같다. 해체주의 철학자들은 경화된 사회와 생각들을 어떻게 탈 실체화 할 것인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니체 계열의 철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① 근거가 꼭 필요한가? ② 주체는 왜 그리도 오만한가? ③ 자연과학만이 진리인가?

이것은 주체의 문제이다. 주체가 객체를 보편적인 이성에 의해 받아들이고 정리하는 수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바로 탈 중심적인 사고와 논리를 지향함으로써 보편적인 형식의 이성이나 주체-객체의 논의를 버리고 ‘구체적인 삶’과 ‘생명력’에 주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보편적 정신에 가려진 ‘개체성(원자화된 자연과학적 단독자가 아님)’에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인간의 삶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푸코(Foucault, 1926~1984)가 말하는 ‘인간의 죽음’이나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가 말하는 ‘반휴머니즘’은 모두 이 주체가 현대 사회에서 보여주는 ‘반역성’을 지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중심주의 비판을 통해 ‘누구와 바꿀 수 없는 유일자로서의 나’의 삶에 대한 철학이 바로 ‘실존’하는 개체로서의 ‘나’를 규명하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들뢰즈나 가타리((F?lix Gattari, 1930~1992), 가라타니 고진,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 등이 이러한 해체론적 입장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나 지젝은 아마 이 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철학자들일 것이다.

20세기 ‘선사(禪師)’의 측면으로 보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니체 계열의 쳘학자들에게 보이는 해체론적 입장에서 근거를 제거하고 실체 없는 사유를 한다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개념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존주의로서 ‘삶의 철학’을 지향하는 중심에 서 있는 개체인 ‘나’는 부처가 말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인 존재이다. 이런 생각을 자신의 철학에 수용하여 언어와 수학적 한계를 명시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기존 서양의 언어를 해체하여 서양이 지닌 환상을 깨뜨리려는 20세기의 ‘선사(禪師)’로서 이해할 수 있다.

현대 해체론자를 의미하는 ‘반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불교적인 색채가 많은데 불가의 ‘선사(禪師)’들이 ‘선(禪)’을 중심으로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은 언어의 ‘매개성’을 극복하려는 태도이다. 언어는 우리를 진리에 이끄는 손가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혹시키는 손가락이기도 하다. 선종은 직접적인 깨달음을 추구한다. 선종에서는 전통적인 유학과 불교는 물론 부처도 부정한다. 이런 태도는 서양철학에 있어 기존의 전통적 학설관계를 무시하는 면모라고 볼 수 있다.

‘선사’들의 일화에는 극단적인 표현들도 많다. 김성우 교수는 그런 측면에서 비트겐슈타인도 자신의 삶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비엔나에서 유태계 철강의 부호였던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재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형제들에게 나누어주고 일부를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기부한 점이나, 안정된 대학교수의 길을 거부하고, 당시에 저명했던 지도교수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자신의 저서에 서설을 써준다는 호의를 내용이 오도될 수 있다는 자기 판단 하에 거절한 점, 그리고 스스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논리철학논고』를 참호 속에서 집필한 점 등. 이 순탄치 않은 그의 인생이 자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은 그가 죽음에 직면한 삶을 살면서도 ‘인식하는 삶’을 추구했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1916년 8월 13일 일기에 “인식하는 삶이야말로 세계의 궁핍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삶”이라고 쓴다. 그러나 “인식하는 삶은 단순히 과학적 언어의 명료화에만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의미에 대한 인식도 추구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또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그는 분석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삶과 분리된 언어의 한계를 언급하면서 “세계와 삶은 하나이며 삶이 세계”이기 때문에 ‘세계는 삶의 세계’가 된다고 말했다.

수학과 과학적 언어의 한계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김성우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비트겐슈타인의 주요 저서인 『논리철학논고』의 구조는 7개의 문장으로 압축되는데 가장 마지막 7번째 문장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학과 과학적 언어의 한계를 의미한다.

해체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이나 수학의 연구를 통해 그것들의 한계를 목도한 사람들이다. 일례로 화이트헤드(Whitehead, 1861~1947)는 가장 추상적인 수학적 기초를 탐구하다가 ‘과정철학’이라는 실존철학과 만나는 사유를 보여주었다. 화이트헤드는 서양의 과학과 수학의 언어가 지니는 한계를 극한까지 가보려 한 사람이고 그 안에서 절대적 진리 명제로서 완결된 인간 존재의 삶이 아닌, 삶의 과정으로서의 삶을 발견한다. –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이나 비트겐슈타인, 화이트헤드 같은 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이나 수학의 연구를 통해 그 언어의 끝을 가 본 사람들이다. –

형이상학을 뜻하는 ‘metaphysics’는 ‘physics’의 meta이다. 즉 ‘physics’를 이해하지 못하면 ‘metaphysics’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인데,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연 속의 존재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 世界-內-存在)’라고 표현했다. 주체란 삶의 과정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뜻으로 서양적 주체에 대한 해체의 한 방식이다.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은 당시 수학과 과학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고 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는 이른바 ‘윤리적 metaphysics’라고 할 수 있지만 칸트처럼 보편의 철학이 아닌 과정으로서 삶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비트겐슈타인은 ‘physics’의 문제점과 한계들의 극복을 언어의 한계를 명시하는 방식으로 이뤄낸다.

김성우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이 “사상 자체의 한계가 아니라 사상을 표현하는 것의 한계를 고려하려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과학적으로 무의미하지만 우리 삶에 의미가 있는 것들은 과학적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한다. 또 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가 중요한 이유는 탐구의 대상이 의식이 아니라 언어라는 점을 강조한다. “20세기의 철학은 19세기와는 다르게 의식을 탐구하지 않고 언어를 탐구한다. 언어는 의식보다 더 객관화되고 보편화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버마스(Habermas, 1929~)는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동체의 규범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언어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사적인 언어는 없다고 했다. 언어는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도 마지막에 『언어로의 도상에서』라는 책을 썼다. 이와 관련하여 김성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표현하려면 기존 언어의 한계에 맞닥뜨린다. 그렇지만 새로운 언어를 만들 수는 없다. 기존의 오류를 극복한 새로운 언어는 불가능하다. 기존 언어에 대한 ‘경고판’들만 있을 뿐이다. 이걸 언어적으로 잘 보여준 사람이 하이데거와 데리다이다. 비트겐슈타인도 초기에는 러셀의 영향을 받아서 새로운 언어를 구상하다가 한계에 부딪히자 철학적 탐구라는 새로운 작업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논증이 아닌 비유의 방법 : 선사의 화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보통 비엔나 학파나 옥스퍼드 언어철학 등의 분석철학적 전통과 연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일면이다. 다른 해석자들은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1813~1855), 데리다, 선불교(禪佛敎), 아방가르드 예술과 연결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의 철학적 스타일이 대단히 복합적이라 규정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어(Nicholas F. Gier)는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삶의 철학(Lebensphilosophie)’이 ‘언어철학(Sprachsphilosophie)’보다 우선한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매우 중요한 평가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의 언행이 매우 독특함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세계는 삶의 세계”나 “언어는 주요한 삶의 형태”처럼 그의 언행은 마치 선사가 화두(話頭)를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또 비트겐슈타인의 ‘인식하는 삶’으로서의 ‘철학적 스타일’은 ‘비유’를 통해 드러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세계는 객관적인 과학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삶의 세계’이다. 이 세계를 위에서 비행하며 바라보는 것이 조망이다”라고 했는데 이런 문장에 논증은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내가 창안한 것은 비유”라고 했다. 논증하지 않고 비유한다는 것은 선사들의 어법이다. “좋은 비유는 이해를 신선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말은 비트겐슈타인과 선종의 선사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비유를 통한 의미 전달의 방식은 직접 진리를 상대하고 사유하는 힘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비유의 방식들은 모두 불교를 받아들인 쇼펜하우어에게서 유래한다. 기어(Nicholas F. Gier)는 “비트겐슈타인과 불교(또는 선불교)와의 연관성은 쇼펜하우어를 통해서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트겐슈타인이 즐겨 사용하는 인간과 세계와의 연관성을 상징하는 ‘눈의 비유’나 ‘사다리의 비유’는 바로 쇼펜하우어로부터 차용한 것이다”라고 했다. ‘사다리의 비유’는 사다리를 통해 높은 곳에 올라갔으면 자기가 딛고 올라간 사다리에 집착하지 말고 사다리를 걷어 차버려야 한다는 것. 여기서 말하는 ‘사다리’는 바로 ‘언어’이다. 언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의미가 전달되고 소통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언어 자체를 두고 논증을 하거나 분석하는 방식은 일종의 집착과 같은 것이다.

이런 비유를 통해 그는 이 세계가 객관적인 과학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삶의 세계이고 세계를 ‘조망(?bersicht)’하는 것이 바로 ‘인식하는 삶’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유의 길에 “세계도 계속적인 흐름이며 삶도 계속적인 흐름”이라는 이정표를 세우는데 이 말은 니체의 말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자기 스스로를 독창적인 사상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새로운 사유노선들을 창조한 사람이 아니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그는 “내가 창안한 것은 비유”라고 한 것이다.

삶의 변화와 방향전환 : 치유의 철학

 

김성우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을 단편이 아닌 전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대단히 윤리적이며 종교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이 ‘침묵’의 의미”라고 한다. ‘침묵’은 바로 삶을 드러내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깨달음이라고 할까. 깨달음이란 지극한 앎이고 삶의 의미를 체득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수학과 과학적 언어의 한계를 경험한 비트겐슈타인은 다시 인간의 삶으로 돌아와 삶의 철학을 전개한다. 그 과정에서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드러내는 데에는 수학과 과학적 언어를 통해서는 불가능하고 ‘침묵’이라는 방식으로 비로소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삶의 변화와 ‘방향전환(혹은 깨달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그의 윤리는 지극히 종교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바뀜이 바로 종교적 깨달음이자 ‘구원(기독교적 구원의 의미는 아님)’이기 때문이다. 그는 삶을 치유, 즉 구원하기를 원한 것이다. ‘사람이 달라졌다’고 하는 말이 바로 삶이 변화하여 방향전환된 것이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가 『사회계약론』을 집필할 때 귀족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된 것도 이런 의미에서 ‘방향전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런 모습이 현대철학에서 마르크스의 경우 새로운 삶에 대한 사회적인 분석으로 나타나고 니체 계열의 경우 새로운 삶을 향한 결단과 각오가 엿보인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혼합되어야만 삶의 변화에서 사회의 변화 혹은 사회적 구원이 실현될 가능성이 보일 것이라고 김성우 교수는 지적한다.

이어서 김성우 교수는 강신익 선생의 말을 빌려 “진화의학에서 질병은 몸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질병은 정복해야 할 적이 아닌 순간 적응해 나가야 할 조건일 뿐”이라고 하였다. 즉 건강을 이상적 상태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 변화의 과정으로 보며 질병을 삶의 문제로서 적응해야할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비트겐슈타인이 “올바로 사는 사람은 문제를 비애로, 그러니까 문제로 느끼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느낀다; 말하자면 그의 삶을 둘러싼 빛나는 에테르로 느끼지, 문제성 있는 배경으로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일종의 ‘삶의 변화’와 ‘방향전환’을 통해 ‘철학적 치유’를 이뤄내는 것으로, ‘철학적 치유’란 삶의 문제로부터 기원한 질병을 사유의 길을 통해 감내하며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을 삶의 문제를 배제하고 오로지 언어분석에만 집중한 분석철학의 대표철학자로 알고 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삶과 언어는 분리될 수 없고 우리의 주체는 언어와 연결되어 생겨난 산물이기에 내가 나를 인식할 때 언어를 통해서 인식하게 됨을 분명히 하였다. 특히 과학적 언어에 대한 맹신이 현대에서 인식이나 언어를 삶과 분리시켜 보게 만들어 삶을 왜곡하는 ‘마야(M?y?)’로 기능하며 우리의 의식과 삶을 지배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 대한 탐구를 통해 삶에 대한 잘못된 그림을 버리고 삶의 방향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전체 언어를 갈아 일구어야 한다(하이데거의 말)”고 주장한다.

▲ 「논리철학논고」1922년 판. 출처 ⓒ Wikipedia

침묵의 이유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마법으로부터 치유되면 온전히 드러난 삶의 뜻을 명료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이 ‘침묵’을 말한 이유이다. 언어의 문법적 환상으로부터 생겨난 문제의 덩어리들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이 치유이기 때문에 치유 후에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어진다. 만약 다시 말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환상에 사로잡히고 말게 될 것이다.

김성우 교수는 이것을 유리에 비유한다. “유리는 아무리 투명해도 유리이다. 사람이 맨눈으로 대상을 보는 것도 이른바 유리와 같은 수정체를 통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투명해도 유리는 유리인 것처럼 삶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는 이상언어(본질적 언어, 순수한 언어)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침묵해야 마땅하며 또 침묵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삶의 뜻은 스스로 드러나는데 이 직접성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이후에 사다리는 필요 없으므로 버려야 하는 ‘직접성’이다. 높은 지붕 위에서 사다리를 지니고 걸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어라는 사다리를 버린 이 직접성은 그래서 신비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 ‘신비스러운 것’이라 해도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과학이나 수학도 여전히 맑은 유리로 만든 사다리를 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 드러나는 삶의 의미에 대한 ‘단순한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이 바로 ‘삶의 방향전환’이고 ‘돈오(頓悟)’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윤리학’이 과학보다 더 중요한 삶과 가치로 나아가는 길을 탐구했다고 강조했다.

비트겐슈타인 사유의 선불교적 스타일

 

비트겐슈타인은 서구철학의 지적 주류인 본질주의, 유아(唯我)주의, 논리주의(형식주의 및 그 한 형태로서의 실증주의)를 모두 비판한다. 지젝이 바디우를 공격할 때 불변의 형식을 지향하는 칸트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플라톤주의의 핵심 또한 논리형식주의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세 가지를 문법적 허구에서 오는 질병으로 본다. 기존의 서양철학을 해체한다는 것의 정수가 바로 이런데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사상가는 모든 연관들을 묘사하고자 하는 소묘가와 매우 비슷하다”고 언급한다. 김성우 교수는 “언어의 한계를 명료화함으로써 논리, 자아, 신과 같은 본질주의적 신학과 같은 문법적 환상을 없애고 직접적 단순함의 ‘일별(Einsicht)’로 삶의 세계의 전체 연관을 조망하고자 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스타일에서 우리는 선사들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벤야민이 말한 ‘짜임관계(constellation;星形)’ 또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연기법(緣起法)’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또 언어의 한계에 부딪히며 삶의 세계와 그 뜻이 스스로 드러나는 ‘직접적 단순성’을 추구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스타일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추구하는 선불교의 선승(주로 화두선을 하는 선승)들의 스타일과 닮아 있다.

비트겐슈타인과 선승들은 똑같이 ‘우상’의 파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고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섬광’과도 같은 ‘번득이는 통찰’의 ‘직접성’과 ‘단순성’은 선승을 그대로 빼닮았다.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한 삶의 문제는 ‘번뇌(煩惱)’라고 할 수 있는데 삶의 뜻이 언어화 하는 순간 그 뜻은 실체화 되어 다시 문제(번뇌)에 빠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논리철학논고』에서 “실로 언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드러난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김성우 교수는 “여기서 드러난 삶과 그 뜻이 신비스럽다는 것은 이 드러난 진리를 다시 새로운 우상으로 세우지 말라는 경고의 표지판이지 언어의 한계를 초월한 이상적인 영역의 존재가능성을 예고한 것은 아닌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비’라는 것은 메타가 아니라 ‘심층’이다. 선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일상이 바로 열반인 것이다. 열반은 현실을 넘어 초월한 다른 영역이 아닌 삶의 깊이에서 나온다. 결국 일상과 깨달음은 같다. 그리고 심층이기에 일상을 긍정하는 보수주의자의 태도에 머물지 않고 선승과 비트겐슈타인은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보수주의자의 일상은 환각에 빠진 일상일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이나 선승은 능동적인 자기 긍정에 도달하기 위해 엄격한 자기 부정(사다리 버리기)을 요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삶의 길이 드러나면 기존의 길로부터 ‘방향전환’을 하게 된다. 이 변화가 ‘치유’이다. 이런 이유로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침묵이란 그저 철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또는 삶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변화하도록 요구하는 길의 ‘안내판(이정표)’이다. 이런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지극히 선불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침묵은 인식하는 삶의 이정표 –

안과 밖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로서 인식하는 삶

 

비트겐슈타인은 『문화와 가치』에서 “철학자들의 언어는 이미, 말하자면 너무 꽉 끼는 구두에 의해 변형된 언어”라고 말했다. 김성우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에게 언어는 언어의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파리통으로 그 출구는 언어의 한계에 부딪혀 언어의 마법적 허구가 사라지면 드러난다. 언표 될 수 없는 침묵이 나의 세계를 드러내는 불교적 선수행이며 비트겐슈타인의 일생일대의 소망인 ‘인식하는 삶’의 이정표”라고 한다. 언어적 질병 속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던 삶은 이 질병의 치유 속에서 제대로 된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침묵의 수행을 통해 데카르트적인 안과 밖으로서의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이 사라진다. 안과 밖에 사라지고 삶, 즉 세계가 드러난다. 안과 밖이 사라지면 본체계와 현상계가 사라지고 선험적 주체가 사라진다. 다시 말해 ‘의식’이라는 ‘안’과 ‘감각대상으로서 객관세계’인 ‘밖’이라는 것을 전제할 때 생겨난 문법적 허구로서의 심리주의 실증주의, 논리주의와 선험주의에서 벗어나게 된다. 모든 본질주의적인 신학적 마법이 사라지면 동시에 생생한 삶의 세계의 흐름이 드러난다. 이로써 기존의 철학적 문제들이 사라지고 치유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성우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삶의 문제가 환상일지라도 이를 해결하는 치유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방편적으로나마 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트겐슈타인은 그야말로 침묵함으로써 삶의 문제는 철학적 문제가 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인식하는 삶’을 겨냥하다가 ‘살아가는 삶’은 놓쳐버린 것은 아닌가?”

김성우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이 비록 삶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결국 인식하는 삶에 머물고 만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일종의 비판으로써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김성우 교수에 의하면 선불교가 지혜의 측면과 자비의 측면이 결합으로써 그 스타일의 완전성이 추구된다면 이 자비의 측면, 즉 사회적 실천이 비트겐슈타인에게는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종교로서의 선불교와 철학으로서의 비트겐슈타인 사유의 차이가 드러난다.

 

형이상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 니힐리즘의 극복 시도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하이데거④

형이상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 니힐리즘의 극복 시도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하이데거④

?
강사 : 서영화(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서구 형이상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서구 사회 삶의 양식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소유의 양식’과 ‘존재의 양식’이 그것이다. 그에게 ‘존재의 삶의 양식’은 그리스도교의 순교자 인간개념이고 그 미덕은 ‘존재하기’, ‘주기’, ‘나눔’과 같은 가치들이다. 이와 대비되는 ‘소유의 삶의 양식’의 전형은 그리스 게르만 이교도의 영웅들이다. 이들의 미덕은 ‘소유’, ‘정복’, ‘승리’와 같은 ‘강함’의 가치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프롬이 얘기한 이교도의 영웅의 가치와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철학이 지닌 가치가 서로 유사하다고 보았다. 호머(Homer)의 『일리아스(Ilias)』는 그리스와 게르만의 영웅이나 정복자의 도덕을 미화하고 아름답게 서술한 서사시인데 그리스 게르만 영웅들은 죽음이 도사리는 전장에 언제라도 나가 싸우다가 죽을 수 있는 명예로운 삶의 방식을 택한다.

프롬은 이교도의 삶의 방식이 서구 현대의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과 같다고 했고, 인간은 다시 그리스도교 순교자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반대로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순교자 삶은 ‘노예의 도덕’을 찬양하고 굴종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인간 모델플라톤(Plato)적 인간, 기독교적 인간이다. 니체가 말하던, ‘죽음을 불사하고 자신을 고양시키는 인간’은 이른바 귀족적인 인간이고 자긍심과 품위를 지니는 인간이다. 니체에게 ‘선(善)’은 인간에게 ‘힘에의 의지’를 고양시키는 모든 것이다.

서영화 교수는 오늘날에 ‘힘’이나 ‘강함’과 같은 개념이 우리 삶에 큰 가치를 줄 수는 있지만 반대로 ‘존재’, ‘주기’와 같은 개념은 주체적인 삶으로 기능하기에 어느 정도 부족하다고 인식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물론 이 가치를 판별하는 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각 개인의 몫이기는 하다.

▲ 서영화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프레시안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 1

 

하이데거는 프롬과 니체가 지향하는 가치의 다른 점을 지적하면서 결국 자신은 니체가 말하던 정복하고 승리하는 힘과 귀족적인 삶의 가치와는 반대의 입장에서 니체를 바라본다. 프롬의 입장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고 이를 통해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은 니체와 하이데거 둘 사이의 대결로 볼 수 있다.

하이데거는 전기에는 니체의 입장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니체를 해석하지만 후기로 가면서 자신의 사상과는 대척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서 니체의 철학을 해석한다. 특히 하이데거 이전에는 니체의 철학이 전통 형이상학을 극복하려 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하이데거는 니체 철학이 오히려 전통 형이상학을 완성하고 있으며 플라톤주의의 핵심개념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은 니체 철학에 대한 하이데거 이전의 해석을 전복하는 사유이다.

니체는 기본적으로 플라톤주의 진리체계를 비판한다. 플라톤주의의 진리는 수학적 진리와 관계하고 수학적 진리에는 시간이 개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리는 무시간적으로 참된 것이다. 삶에 있어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확고한 것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편집증적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니체는 형이상학적 진리를 생의 보존을 위한 지지대나 의지처로 보았고 나약한 자들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서영화 교수는 “만일 성경에서 말하는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라는 구절은 니체에게는 맞지 않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니체는 플라톤의 이데아적 세계관이나 서구 기독교의 세계관은 가장 저열한 방식으로 힘에의 의지를 발산한다고 보았다. 플라톤주의와 서구 기독교는 죽음 이후 저편의 이데아계와 천국을 말하면서 지금 보이지 않는 평화롭고 안락한 세계를 통해 사기를 치는 것과 같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니힐리즘과 새로운 가치의 창출

 

니체는 서구 기독교의 가치를 전부 무의미한 것으로 바꾼 사람이다. 니체는 자신의 ‘우주론적 가치들의 붕괴’라는 제목이 달린 단편 2번(ⅩⅤ145쪽 이하)에서 니힐리즘에 대해 “그것은 ‘최고의 가치들(die obersten Werte)’이 무가치하게 된다는 것이다(sich entwerten).”라고 메모를 남겼다.

니체가 말한 니힐리즘은 새로운 것의 개시를 의미한다. 인간의 모든 가치가 허무해지고 살아야할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무기력의 대명사가 아니다. 니체 이전 플라톤적인 세계 속의 진리는 인간이 개입할 수 없었지만 니체는 이 ‘진리’를 ‘가치’의 개념으로 바꾸었고 인간 스스로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니체에게 있어 니힐리즘의 도래는 어떠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 주체에 의해서 비로소 도래되어야 할 것이고 최고의 가치들은 결코 저절로 붕괴되지 않으며, 인간에 의해 투입된 가치들을 박탈하는 것은 새로운 인간이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근거로 삼아 존재자 전체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는 니힐리즘의 극복을 주장했다. 무엇보다 가치가 박탈된 후, 세계가 전적으로 무가치한 것으로 인식될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결정적인 의지는 인간에게서 발원하는 것이다. 니힐리즘의 극복으로서 새로운 가치정립의 행위 주체는 인간이 된다.

서영화 교수는 “니체의 관점에서 보면 현대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조차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창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평한다. 기존의 것을 통해 새로운 기호의 대상만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기업이나 산업시스템의 혁신이라는 것은 ‘기호의 창출’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가치의 창출’은 될 수 없다.

주체성의 형이상학의 완성 : 니체

 

전통 형이상학의 주지주의적 관점은 사물의 본질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니체는 모든 사물에게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원리는 의지의 작용이거나 혹은 맹목적인 충동의 산물로 보는 입장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쇼펜하우어(Schopenhauer)의 연장선에서 니체 사유의 고유성을 확인할 수 있다.

플라톤에게는 무시간적인 이데아의 세계와 일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진리였지만 니체는 생성하는 세계와 일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생의 최상의 가치로 보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니체를 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적 가치를 완전히 무너뜨린 사람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니체가 단지 플라톤주의를 전도하여 위아래를 바꾸어놨을 뿐, 플라톤주의의 핵심개념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바라본 니체의 한계점이다. 서영화 교수는 “기존의 것을 뒤집는 파격은 감행할 수 있지만 그 파격은 기존의 것에 한정되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이데거 이전에는 니체를 형이상학자로 보지 않고 니체의 잠언들을 문학적 이해의 유산으로 보았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기존에 문학가로 알려져 왔던 니체를 서구 근대 형이상학의 완성자로 위치시킨다. 하이데거에게 서구 근대의 특징은 인간이 존재자의 척도와 중심이 되는 시대이고 그것의 완성은 니체에게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니체를 플라톤적 형이상학과는 구별되는 ‘주체성의 형이상학자’로 보았다. 이후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은 니체 철학을 구분하는 큰 분기점이 된다.

니체의 초인에 대한 교설

 

▲ 서영화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프레시안

니체에게 인간은 새롭게 가치를 정립하는 자이어야 한다. 니체가 말한 ‘초인(?bermensch)’은 세계 속에서 새로운 가치 정립의 주체로서 있으며,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고 명령하는 자라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어떤 인간 종보다도 근본적인 힘을 획득한 자라고 할 수 있다. 니체의 이 초인에 대한 교설은 존재자 전체의 척도와 중심이라는 근대 형이상학적 인간상을 본질로 규정한다.

하이데거는 『니체와 니힐리즘』에서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시대는 인간이 존재자의 척도와 중심이 되는 것을 통해 규정된다.”고 하였다.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의 사유를 근대의 시작으로 보았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런 근대적 사유가 칸트에서 라이프니츠로 이어지고 니체에게서 완성된다.

칸트는 표상되는 세계 이외의 것은 알 수 없어서, 물(物)자체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표상된 세계가 곧 그냥 존재하는 세계이고 이 외부에 참된 세계를 설정할 수 없으며 설정해도 곧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근대 형이상학자들은 우리에게 표상되고 현상된 것을 참으로 인정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칸트의 ‘공적’이다. 서구 근대인들은 인간의 표상체계에 대한 나름의 확신이 빨랐고 세계를 구상하는데 있어 백지 위에 새로운 문명을 이룩한다는 신념을 이어나간다. 서영화 교수는 “고대와 중세의 인간이 만약 퍼즐판 위에 맞는 퍼즐조각을 끼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면 서구 근대인들에게는 퍼즐의 원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계획 하는 대로 건물과 도시를 건축하고 산업사회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초인의 교설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의 최고의 승리를 구가한다”고 평했다. 그리고 니체에게서 발견되는 초인의 개념은 에른스트 윙어(Ernst J?nger, 1895~1998)에게서 형이상학적인 의미로서 노동자와 군인이라고 표현된다. 이것은 오늘날 존재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현실적인 것 전체를 규정하는 형상을 노동자와 군인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이로써 인간 스스로가 만드는 자가 되었고 스스로 이데아와 신의 영역에 자리하게 되었다.

영원회귀와 소멸에의 복수의지

 

오늘날 니체는 누구보다 생성의 철학자이자 생에 대한 긍정의 철학자로서 간주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는 니체의 형이상학적 사유의 결과물로서 ‘동일한 것’은 모든 존재자의 공통적인 본질인 ‘힘에의 의지’라는 존재의 표현이라고 한다. 동일한 것이 ‘영원하게 회귀한다는 것’은 존재의 존재방식을 가리킨다.

니체는 생성과 소멸하는 것에 대해 감당 못하는 나약한 인간들이 여기에 복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초시간적인 이상을 절대적인 것으로 정립하여 시간적인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경멸했고 또 『파이돈(Phaidon)』에 보면 소크라테스(Socrates)가 자신이 왜 죽어야만 하는지 제자들에게 설명하는 구절이 나온다. 니체는 이것을 매우 비겁한 것으로 보았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소멸에 대한 복수 정신과 생에 대한 경멸의 태도인 것이다.

이러한 복수정신을 통해서 내세는 보장되겠지만 우리가 숨 쉬고 사는 이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의하면 니체에게서 시간에 대한 긍정은 ‘사라짐이 공허한 것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의욕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생성이 있으면 소멸이 있다. 하이데거는 니체가 생성은 긍정하지만 함께 결합될 수밖에 없는 소멸은 긍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마치 소멸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영원하게 되돌아오는 것을 긍정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이런 니체 해석은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Dasein)’라는 삶의 방식을 분석하면서 ‘죽음’에 대한 해석에 기인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기본조건은 죽음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앞에 두면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회상하게 된다고 한다. 회상은 과거 자기로의 복귀이다. 이는 통속적 인간으로서 본래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세인(世人;Das Mann)’의 삶에서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리는 시점이기도 하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인 죽음이라는 것을 통과하면서 ‘일상의 공공의 세계’가 새로운 세계로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경험되는 죽음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고 아무도 경험해줄 수 없는 것으로 철저히 단독화 되어 자신의 삶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데거에게 죽음과 같은 의미인 소멸은 간과될 수 없는 것이다.

니체의 전통 형이상학의 전복은 생에 대한 긍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전통 형이상학의 무시간적인 것, 이데아에 대한 것, 신에 대한 긍정이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니체의 생에 대한 긍정은 소멸을 영원히 회귀하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하이데거에게 소멸은 영원히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이라 상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니체가 인간중심적인 철학을 전개했고 전통 형이상학을 비판했음에도 하이데거에게는 여전히 형이상학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하이데거가 보기에는 니체에게서 소멸에 대한 적의가 고도의 정신화된 복수 정신으로 변형된 것일 뿐, 니체 자체도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 2 : 죽음, 나약함, 늙음의 의미

 

▲젊은 시절의 하이데게

?

“니힐리즘은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근본입장, 즉 무(無)를 그의 본질에 있어서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 이상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입장을 향해서 치닫는 형이상학의 역사일 것이다.” – 하이데거, 『니체와 니힐리즘』 中 –

하이데거는 니체가 사유의 무능력을 보여준다고 했다. 무와 소멸의 의미를 정신화된 영원한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참된 본질에 대해 사유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에서 주요점은 니체의 생의 의지라는 것에서 늙음이나 나약함, 죽음과 같은 가치는 아예 빠져있다고 본 것이다. 하이데거는 죽음과 나약함, 늙음과 같은 가치조차 배제되지 않은 생성을 말한다. 들뢰즈(Deleuze)도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천개의 고원』에서 동일자의 영원회귀가 니체가 형이상학적인 원리로 받아들인다고 비판한다.

서영화 교수는 그 사회가 생의 약동만을 최고의 가치로 표상할 때, 그리고 생과 젊음과 같은 긍정적 힘이 최고의 가치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죽음, 늙음과 나약함은 존재의 저편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니체 개인의 삶에서 죽음은 생에 부재하는 것이면서도 끊임없이 생을 전체화시켜 더 좋은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하이데거에게 늙음과 나약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신이 타자와 다른 여타의 존재자와 관계하면서 서로 빚을 지고 있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게 한다.

니체 철학의 대척점에서 하이데거는 죽음, 나약함, 늙음 등의 가치는 생을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을 지탱하는 본질적인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즉 잘 사는 법에 대한 성찰을 선사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자기에 대한 이해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 공동체 내에서의 삶에 대한 이해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이교도의 영웅인가 아니면 존재하기, 주기, 서로 나눔의 세계관인가? 언뜻 보면 쉬워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아 깊이 생각해봐야할 이러한 질문을 끝으로 이번 강의는 마쳤지만 이 마지막 문제제기는 아마 우리가 우리의 삶 전반을 통해 체득해야할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48%의 좌절, 51%의 승리?; ‘어머니 박정희 혹은 박근혜 앓이’ 사성제(四聖諦)-③[시대와 철학]

48%의 좌절, 51%의 승리?; ‘어머니 박정희 혹은 박근혜 앓이’ 사성제(四聖諦)-③[시대와 철학]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4) 도제(道諦): 방법은 없는가?

 

기억의 전이

 

구제금융기와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거치면서 우리는 빈곤의 재림이라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공포에 직면한 51%들은 무의식적으로 박정희식 개발 모델을 대안으로 떠올렸다. 지금까지 효과를 봤던 익숙한 삶의 방식을 다시 한 번 적용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몸과 정신에 깊숙이 각인된 개발주의적 기억은 성장 모델이 효과적이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의 51%는 필연적 삶의 욕구를 다시 한 번 집단화함으로써 이 환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업식(業識)에 끌려다니다가 호되게 당하고 있다.

현재는 과거가 아니다. 우리가 겪는 현재의 고난은 과거의 어려움과는 다르다. 물론 그것의 겉모습은 실업, 부도, 빈곤 등과 같이 과거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출현한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은 과거와 같이 재화량의 절대 부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재화량의 과도한 잉여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한 데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경제적 공포를 과거의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고, 과거에 효과를 봤던 방법을 다시 사용하려다가 재난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현재가 과거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재의 경제 위기를 과거의 그것과 동일하게 해석하게 된 이유는 현재의 빈곤에서 과거의 적빈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이 부당한 기억의 전이는 과거의 독재자를 경제적 영웅으로만 회상하게 하는 기억의 선택을 만들어냈다. 또한 한국의 대중은 이제는 낡아버린 시대의 욕구인 개발주의적 삶의 방식을 다시 한 번 관철해서 그때의 기쁨을 또 다시 맛보고자 했다. 기억의 부당한 전이와 필연적 삶에 대한 집착에서 기인한 이른바 ‘응답하라 70년대’의 간절한 외침은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추억 놀이를 불러일으켰고 불행하게도 그것은 정치적 세력의 형성으로까지 이어졌다. 기억의 부당한 전이를 교정하고 필연적 삶에 대한 집착의 업식을 끊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그것은 필연적 삶의 악순환을 끊고 정치적 삶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성취될 수 있다.

 

무임승차를 넘어서

 

필연적 삶에 대한 집착을 끊는 길은 정치적 삶의 양식을 다방면에서 시도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다. 현재 국민 대중의 관심사는 소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거주의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자식을 바르게 교육시키고, 안온한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요구에 대해서 경제 구조 혁신을 통한 질 좋은 일자리 확보와 복지 제도의 확충으로 호응하고자 한다. 성장 일변도의 경제 운영의 방식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흐름은 이미 거스르기 힘든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게 분화된 계층 및 세력과의 정치적 합의 과정을 요구한다. 과거에는 이 과정이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나 정당에 의해 추진되었다. 특정 정당이나 대통령에게 권력을 몰아줌으로써 국민의 요구를 대리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리인을 통한 추진 방식은 현대 복잡사회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현대 사회는 단일한 지도력을 토대로 사회적 갈등을 무마시킬 수 있는 단순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자기 기획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시민들이 경제 활동을 자기 삶의 중심축으로 삼던 지금까지의 태도를 버리고 민주적 참여를 자기 삶의 핵심으로 여기게끔 하는 정치적 삶의 수행을 요구한다.

하지만 국민국가적 규모의 정치 공동체에서는 이러한 대의제적 방식을 채택해야만 하는 현실적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근대 민주주의의 선진국들은 의회 민주주의와 거대 행정 체제를 결합하는 국가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 체제는 사실 시민들의 자치적 활동과 그 활동의 역사에서 노출된 단점을 극복하면서 형성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의 정치 체제는 시민의 자율적 구성 활동의 오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법적, 행정적 요구에 직면하여 정치 엘리트들의 인위적 구상에 의해 단기간에 만들어짐으로써 시작된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한국 국민의 의식 속에는 자신들이 오늘날의 정치 공동체를 건립한 주인이라는 의식이 희박하다. 더구나 많은 한국인들은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폭력적으로 취급당한 상흔을 간직하고 있기에 국민국가라는 근대적 정치 공동체는 개인적 삶의 보존을 위해 전략적으로 활용되는 수단으로서의 이해되는 경향성을 띤다.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군사 정부 는 국민들이 자율적 시민으로서 공적 활동에 임할 수 있는 공간을 아예 봉쇄했기 때문에 필연적 삶 외에 정치적 삶을 경험하는 것은 소수 예외적 인물들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까닭에 대다수 한국인이 필연적 삶의 방식에 익숙할 뿐, 정치적 삶의 양식에는 이물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자료사진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분명히 민주적 입헌국가 체제를 자율적으로 수립했던 경험이 있다. 1987년 6월 항쟁이 그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 우리는 필연적 삶 이외의 공적 시민으로서의 자치의 경험을 끊임없이 늘려나가고 있다. 정치적 삶의 방식이 필연적 삶의 습관을 압도할 수 있으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민주적 의사소통과 합의의 절차를 존중하는 삶의 양태는 온갖 꼼수의 방해를 헤쳐 나가고, 구성원 간의 지난한 이해의 과정을 참아내야 하기 때문에 시민 자치라는 정치적 삶을 중단하고 특정 대리인이나 체계에 임무를 맡기는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민주적 헌정 체제의 수립 이후 한국 국민들이 범한 실수도 바로 이러한 유혹에 빠진 것이었다. 시민적 자치의 발걸음을 이어가지 못하고 대의적 기관과 정치인에게 정치적 업무를 맡겨버리면서 혼란은 가중되었다.

한국 사회의 복잡한 갈등과 요구는 특정 인물, 정당, 행정 기관 체계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선지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 프로그램과 경제 구조의 혁신을 기획하는 정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답과 해결책을 시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제안하거나 추종할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한 한국의 대중은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잘 시행되는지 간이나 보려는 무임승차자의 자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 엘리트들은 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주도하는 역할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노력들이 서로 소통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는 여건 조성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그들은 시민의 적극적 활동을 통해 제안된 대안들을 정부 정책과 연결하는 노력을 다양하게 시도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자신들의 이념이나 정책 방향과 부딪힌다 해도 정치 엘리트는 그것을 수용하는 데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대리인 혹은 대리 기관들이 아무리 순정을 다 바쳐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복잡사회로 접어든 한국 사회의 현실은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켜 버릴 것이다.

현대 한국은 숲의 왕을 옹립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황금가지적 주술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대통령에게 모든 희망과 기대를 걸고 권력을 몰아주는 수동적 해결책을 고수하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구원자 신드롬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51%의 승리감과 48%의 절망은 결국 100%의 배신감으로 보복할 것이다. 구원자가 추진하던 개혁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대중의 좌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좌절은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자극하여 결국 민주주의 자체를 회의하게 만드는 움직임을 낳을 수 있다. 이 움직임은 박정희 신드롬 정도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전체주의 운동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튀어

 

황금가지적 민주주의, 즉 구원자적 대의제 민주주의를 정치적 삶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적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외적 제도의 수혜자로 멈춰 서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활로서의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시민들이 공동체적 협력을 통해 새로운 삶의 대안을 마련하고 기존과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하는 노력을 어려워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야 말로 제도가 기획해주는 삶이 아니라 자기가 기획하여 실현시키고 그것의 지속을 제도에게 압박하는 정치적 삶을 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영원토록 남한테 얻어먹는 신세로 남아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직접 해먹는 요리가 더 맛나듯이 직접 마련하는 삶의 양식이 더 빛날 수 있다. 제도가 우리가 원하는 일자리도, 교육도, 의료도, 주택도, 문화도 주지 않는다면 직접 만들어 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작고 빈약하며 불편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삶의 대안들은 늘어나기 마련일 게다.

체계의 시선에서 방치된 서민들에게 기존 제도 정치와 경제는 이미 ‘차가운 북쪽’이다. ‘북쪽의 제도’에서 얼어죽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난 앉아서 죽기 싫다. 어차피 버려진 몸, 자치의 삶을 상상하고 구현해보는 ‘남쪽’으로 튈 테다. 모든 버려진 이들의 동참을 바란다.

 

(끝)

 

당신은 진짜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나?[철학자의 서재]

당신은 진짜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나?[철학자의 서재]

샹탈 무페의 <민주주의의 역설>

남기호 연세대학교 강사

 

*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얼마 전 대선으로 국민의 절반은 무척 기뻐하고 나머지 절반은 무척 낙담했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쨌든 사회 복지가 정책의 전면에 등장할 것이며, 비리 척결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기에 어느 정도 정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됐든 이제 선거는 비교적 공정하게 치러지기에 정치 행위는 대다수 선거권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정치의 개선은 국민 모두의 사회 문화적 책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주변에 늘 전경들을 볼 수 있었던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꽤나 좋은 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정권 말기가 되면 비슷한 문제들이 터지고 고질적인 병폐가 반복된다.

흔히들 지금한국 사회를 소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 실질적 민주주의 시대라 부르곤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제 정치적으로 안착한 상태이니 무엇보다 시민 삶과 관련된 민주주의의 내실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경제 민주화니 교육 민주화니 사회 복지니 반값 등록금이니 하는 말들은 다 비슷한 말들이다. 그러나 내실을 기하는 이 모든 문제의식들은 한 가지 논점을 기정사실로 전제한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민주화된 사회이다. 정치, 문화, 경제,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의사 표현할 수 있고 단체를 결성할 수 있으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말 그런가.

민주주의의 역설

▲ <민주주의의 역설>(샹탈 무페 지음, 이행 옮김, 인간사랑 펴냄). ⓒ인간사랑

일반적으로 현대 민주주의는 근대 정치의 산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 근대 정치사상가 중 자신의 이론에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여가며 논의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기적인 인민 집회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려던 장 자크 루소조차도 민주정은 역사상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제도라 말한다. 오늘날 민주적이라 평가되는 사상들을 피력할 때 그들은 오히려 공화주의나 입헌주의란 표현을 즐겨 사용하곤 했다.

근대인들에게 민주주의란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를 의미했으며, 쉽게 대중 선동에 휘말려 소크라테스를 죽일 수도 있는 정치 제도 정도였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그렇게 목말라하고 찬양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과연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테네 중우 정치의 위험을 극복했는가. 민주적 자유는 정치적 억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가. 민주적 평등은 사회적 차별을 능동적으로 극복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절차적으로 보장된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이 더 쉽게 억압과 차별을 조성하지는 않는가.

샹탈 무페는 바로 이 역설의 관점에서 현대 민주주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역설이란 간단히 말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결코 화해될 수 없는 긴장을 의미한다. 언뜻 보면 이상한 말처럼 들린다. 우린 분명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기에 말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 민주주의의 계보를 좇아가며 힘들게 에둘러 갈 필요는 없다. 우리 삶에 흔히 문제되는 것들은 자유와 평등 간의 충돌로 요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기업에게 영업의 자유를 먼저 보장해야 하는가, 아니면 골목 상인들의 평등한 상권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하는가. 교육의 평등을 고려해 등록금을 없애야 하는가, 아니면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 자유롭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가. 왜 내가 자유로운 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타인의 평등한 복지를 위해 세금으로 내야 하는가. 나는 정치가를 자유롭게 비판한 것뿐인데, 왜 그 정치가는 자신의 평등한 인권이 침해되었다고 고소하는가.

사실 근대의 많은 사상가들이 꺼려했던 민주주의란 표현이 대중적으로 일상화된 것은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으로 한 프랑스 혁명 전후 시기였다. 이 혁명 이념들이 민주주의 정치사상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850년대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의 논의들은 대부분 자유와 평등을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들로 가정한다. 나치에 이론적으로 봉사독일의 칼 슈미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페의 역설은 이 슈미트의 민주주의 이론에 의거한다.

슈미트의 경고

독재에 봉사한 사람의 이론은 물론 위험하다. 그러나 위험하다고 해서 전혀 교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슈미트는 나치 당원에 가입하기 이전부터 현대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democracy)는 원래 인민 즉 데모스(demos)의 지배(kratia)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민이 있어야 하고, 이들의 지배권이 있어야 한다. 인민 주권이란 말이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지닌 인민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일 수 없다. 주권을 지닌 인민이란 엄밀히 말해 민족적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동질적인 공동생활을 영위해 온 사람들로 국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권을 지닌 인민이란 그런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평등 개념이지 지구상의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인 개념일 수 없다. 이러한 인민 주권 개념에 기초해서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제한을 철폐하려는 흐름이 있다. 자유(freedom)란 본래 어떤 제한이나 속박으로부터(from) 벗어남(free)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어야 하고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거나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슈미트는 자유주의가 경제적 개념이지 결코 정치적 개념이 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자유주의 경제 논리에 의거해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이 많은 국가의 주권을 침해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요즈음 글로벌 세계 시장이니 인터넷 국제 소통이니 하는 것들도 슈미트에겐 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성을 해치는 흐름일 뿐일 것이다. 막대한 피해 보상금을 떠안고 허덕이던 패전국 독일의 인민으로서 슈미트의 고민은 그러했다.

따라서 슈미트의 결론은 이렇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제한적 인민의 평등한 주권을 해체하는 모든 요소는 제거되어야 한다. 히틀러의 민족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가 인종을 차별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과 잘 맞닿는다. 그렇다고 슈미트의 결론을 무조건 부정할 수만도 없다. 우파든 좌파든 민주주의 정치는 어느 정도 제한된 평등 개념에 기반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가 자유주의를 무제한 허용하게 되면, 국가적 정체성이 뒤흔들릴 수 있고 시민의 공동체적 삶이 파괴될 수 있다. 과도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점점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무페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평등과 자유의 결코 화해될 수 없는 긴장을 슈미트처럼 상호 배척적인 권력관계로만 보지 말고 항상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경쟁적 대립 관계로 보자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설은 결코 조화되거나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 편의 승리만 노릴 수도 없다. 차라리 이 역설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인정하고 상호 다원적 경쟁의 관계로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실 민주주의 진단

민주주의의 역설을 한 편의 승리를 통해서만 해결하려 할 때 생기는 문제점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한적 평등이 극단화되면 북한 같은 사회가 될 것이다. 시민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다른 민족이나 시민에 대한 차별 의식이 기세를 발휘할 것이다. 민족의 평등한 주권 운운하며 매년 북쪽에 풍선을 날리는 사람들의 극단적 민족주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유주의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면 양육강식의 사회가 될 것이다.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입도 자유라는 인권에 의거해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흔히 받아들이는 위험한 자유주의도 있다. 이른바 재테크라는 말로 통용되는 우리 일상의 돈놀이가 전부 그렇다. 집이 기본적인 거주의 평등한 보장을 넘어서 개인의 자유로운 자본으로 인식된다.

땅도 마찬가지이다. 기업가만 자본가가 아니라 집이나 땅, 어떤 것이든지 팔 수 있는 것을 가진 자는 다 자본가이다. 재산 증식을 위해 대출까지 받아가며 집을 사고 땅을 사고 주식 시장으로 몰려간다. 그 속성으로 볼 때 자본주의가 이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과도한 자유주의는 의회 정치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자유로운 의사 진행 발언으로 끊임없이 회의만 하고 국가 중대 사안의 결정은 한없이 지연된다. 그러다 안 되면 날치기를 한다. 모두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침식해 평등을 무제한적으로 허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무페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자유주의에 침식당한 것으로 진단한다. 특히 시민의 자유라는 수식어로 재산 증식의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을 무수히 쏟아내는 인기 영합적 우파 정당이 많은 국가들에서 권력을 잡았다. 전통적으로 복지를 주장하던 좌파 정당들은 이미 신자유주의에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그래서 복지조차도 승리한 우파의 담론이 되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우파의 복지 정책이란 자유로운 경쟁에서 이긴 자가 자비롭게 나눠주는 혜택 그 이상이기 어렵다. 언제쯤 우리는 가난한 자가 자존심을 구겨가며 혜택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복지는 목마르게 간청하는 혜택이 아니라 평등한 시민의 기본권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페의 경쟁적 다원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좌우 경쟁 세력들 간의 상호 인정이 필요하다. 복지가 경제 논리에 의해 희생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좌파가 필요하고 자유로운 삶이 인민의 평등 논리에 의해 억압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우파가 필요하다. 이렇게 경쟁적 다원주의는 좌우파 정당의 존립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런 구도 하에서 매번 선거를 통해 한 쪽이 권력을 잡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다른 한 쪽을 정치적 심의 과정에서 배제해서도 안 된다.

민주적 합의의 조건

그렇다면, 경쟁적 다원주의에서 민주적 합의는 어떻게 도출될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무페는 민주적 합의 모델로서 존 롤스나 위르겐 하버마스가 아니라 분석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참조한다. 그가 보기에 롤스는 자유주의에, 하버마스는 민주주의에 너무 편향되어 있다. 어느 쪽으로 편향되어 있든 이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의 합리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은 권력을 잡는 데에 있지 합리성을 내세우는 데에 있지 않다. 그리고 선거를 통한 권력 획득의 기준은 언제나 시민들의 삶의 형태를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있다. 자유주의가 더 옳은지, 민주주의가 더 옳은지, 자유민주주의 말고 더 좋은 체제가 있는지, 이런 문제들은 모두 경쟁적 다원주의의 과정을 통해 결정될 열린 문제이지, 정치 행위 이전에 미리 결정되어야 할 닫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 획득을 본질로 하는 정치 행위는 차라리 비트겐슈타인의 맥락주의에 의거해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에 따르면 경쟁하는 다원적 정치 세력들은 정치 현장에서 시민의 삶을 놓고 언어 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더 나은 시민의 삶의 형식을 제공한 쪽이 권력을 획득한다.

그러나 물론 권력 획득과 행사에는 엄중한 책임이 따르며 경쟁 세력들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 늘 심판받는다. 경쟁적 다원주의에서 집권 세력은 언제나 일시적인 승리자일 뿐이며, 모든 합의는 잠정적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결과일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한 민주주의라면 언제나 민주적 대립 자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결정이든지 늘 배제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시적 결정을 절대화해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하려 해서는 안 된다. 경쟁자 없는 정치는 항상 독재로 치달았다. 그때마다의 결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결정에 반대하는 세력을 경쟁자로서 인정하고 표출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페가 제시하는 문제의식과 그 대안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역설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것은 참된 민주주의가 아니다. 갈등과 대립은 민주주의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 건강성의 지표인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런 이론적인 흥미만 생기지 않는다. 지난 선거철에 모 대학 교수는 좌파의 비판을 재비판하는 일방적인 보고서를 학생들에게 과제로 냈다고 한다. 요즈음은 과격한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인터넷을 도배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누구는 처벌받고 누구는 점잖게 계도된다. 비리로 투옥된 전직 대통령 가족은 벌써부터 사면한다고 난리다.

우리에게 한번이라도 건강하고 책임 있는 경쟁 관계가 유지된 적이 있는가. 교육도 직업도 재산도 승자독식이 합리화되는 사회에서 정치마저 날치기를 빈번하게 일삼는다. 우리는 진정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교환가치[자본론 강독]-③

교환가치[자본론 강독]-③

*상품은 다른 것과 교환되는 사용가치이다.?
?

 

세미나 참석 : 이재유, 김선이, 김성심, 나태영, 박종호, 신재길, 신준하, 윤지미, 최혜진

정리 : 신재길(2012교육강좌 수료, 한철연 회원)

?

?*? 2012년도 교육강좌 후속 세미나로 [자본]을 읽고 있습니다. 세미나 팀에서 매번 정리하여 웹진에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앞에서 상품의 유용성인 사용가치를 살펴보았는데 물건은 사용가치만 가지고는 상품이 되지 못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생명에 필요한 공기는 그 사용가치 면에서 보면 비할 바 없이 크지만 아직까지는 교환되고 있지 않다, 즉 교환가치가 없다. 어떤 사용가치가 상품이 되는 것은 교환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결국 상품을 분석한다는 것은 교환가치를 분석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교환가치는 우연적이고 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맑스는 교환가치가 나타나는 현상에서부터 시작한다.

 

“교환가치는 우선 양적 관계, 즉 어떤 종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비율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비율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동하므로, 교환가치는 어떤 우연적이며 순전히 상대적인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상품 자체에 고유한 내재적인 교환가치라는 것은 일종의 형용모순처럼 보인다.”(김수행역 자본1상 45p)

 

?맑스는 이렇게 간단히 교환가치의 현상을 표현한다. 위 문장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교환가치의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교환가치는 사용가치간의 교환비율로 양적 관계라는 것. 둘째로 그 비율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즉 1쿼터의 밀 = x량의 구두약 = y량의 명주 = z량의 금 등등으로? 상이한 상품과 다양한 비율로 교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교환가치는 우연적이고 상대적이며 내재적 가치란 있을 수 없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우연적이란 외적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나 결과를 말하고, 상대적이란 다른 것과의 비교에 의에서만 규정되는 것으로 다른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상품의 교환가치는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로 표현되기 때문에 우연적이고 상대적으로 보인다. 즉 밀은 구두약, 명주, 금 등의 다른 사용가치로 표현된다. 1쿼터의 밀 = 1쿼터의 밀의 등식으로 표현한다면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결국 밀은 밀 자체적으로 그 교환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품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이 보인다.

내재적이란 어떤 결과나 현상이 내적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며 다른 것과의 비교가 필요 없이 그 자체로 규정되는 것이다. 내재적인 것은 다른 것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따라서 다른 것의 변화로 자신이 변하지는 않는다. 이렇다 할 때 다른 상품과의 비교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는 교환가치는 내재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 같다. 즉 밀의 교환가치는 구두약이나 명주, 금 등의 교환가치의 변화에 따라 그 교환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밀의 내재적 가치는 없는 듯 하다.

그런데 맑스는 이와 같은 상품교환의 현상으로부터 다른 결론을 이끌어 낸다.

 

?*교환가치는 서로 다른 상품의 동일한 그 무엇을 표현한다.

 

맑스는 상품교환이라는 현상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 교환되기 위한 전제조건에 눈을 돌린다. 맑스는 1쿼터의 밀= x량의 철 이라는 한가지 등식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이 교환등식은 등식이기에 어떤 ‘같은 것’을 표현한다 즉 “양자에 공통된 어떤 것의 동일량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른 것들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는 없다. 사람을 비교할 때 키와 몸무게를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A는 키가 180cm = B는 몸무게가 100kg라고 하면 바보취급 받는다. A의 키 180cm = B의 키 180cm 이든지 A의 몸무게 100km = B의 몸무게 100kg 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등호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을 비교할 때 몸무게나 키가 그 기준이 되듯이 1쿼터의 밀과 x량의 철을 등호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서로 공통된 기준이 필요하다. 즉 상품이 교환되기 위해서는 내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 공통된 내적 기준이 상품이 교환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교환가치가 표현하는 동일한 그 무엇은 자연적 속성일 수 없다.

 

그러나 공통된 기준은 사용가치일 수 는 없다. 상품의 교환은 사용가치의 교환이며 사용가치의 차이를 전제로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연필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꼭 같은 연필과 서로 교환해 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공통물은 상품의 기하학적. 물리학적. 화학적 또는 그 밖의 다른 어떤 자연적인 속성일 수가 없다” 이런 자연적 속성은 바로 사용가치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나 무게 부피 등등의 자연적 속성은 교환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는 밀과 철을 에너지로 환원해도 에너지나 무게를 기준으로 교환되지 않는 것은 자명하다. 철과 금을 같은 무게로 교환할 바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한 그 무엇이 자연적 속성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속성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교환가치는 동일한 그 무엇의 표현양식(현상형태)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특정한 상품의 서로 다른 교환가치는 동일한 그 무엇을 표현하고 있으며, 둘째 교환가치는 교환가치와는 구별되는 그 어떤 내용의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김수행역 자본론1권 상 45p)

 

교환가치는 동일한 그 무엇을 전제할 뿐만 아니라 그 무엇을 표현하는 양식이나 형태이다. 이점이 교환가치의 의의가 될 것이다. 교환가치는 그 어떤 내용의 표현양식이나 현상형태에 지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그 동일한 무엇을 표현형태로 보여준다. 교환가치는 동일한 그 무엇이라는 내용자체는 아니지만 교환가치가 없이는 그 동일한 무엇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동일한 그 무엇이 내용이라면 교환가치는 형식이다. 일정한 내용은 반드시 일정한 형식을 가지며 일정한 형식은 일정한 내용을 담으면서 그것을 표현한다. 그러나 보다 결정적인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비유적으로 한 물체의 온도를 상품의 ‘동일한 그 무엇’이라 가정한다면 수은주의 높이는 그 상품의 교환가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온도는 그 자체로 보이지 않지만 수은주라는 다른 물질의 변화로 온도 변화를 나타낼 수 있다. 수은주의 높이라는 형식적이고 수량적 수단으로 온도를 나타낼 수 있다고 해서 수은주의 변화가 온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수은주가 온도의 변화를 나타낼 뿐이듯이 교환가치도 ‘동일한 그 무엇’의 변화를 나타낼 뿐이다.

이제 맑스는 ‘동일한 그 무엇’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푸른 하늘 밑에는 내 살던 집이 있겠지[치유시학]

?

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오래된 풍경

 

기억 속의 풍경은 원색보다는 무채색에 가깝다. 아주 오래된 시간 속의 풍경이 원색으로 재현된다는 것은 그 기억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색깔만이 아니라 어떤 소리, 어떤 풍경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고 점점 더 뚜렷하게 기억으로부터 떠오른다.

나에게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시간은 유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교실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 주변에는 가지가 늘어져 땅에 닿는 버드나무가 있었다. 버드나무 잎은 처음에 연한 노랑을 띤 연둣빛에서 점점 초록으로 물들어갔다. 연못에 담긴 버드나무 잎을 보는 내내 나는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매일 걸어 다니는 등교 길에서 이른 아침에 만나던 초록빛 군무는 가끔 꿈에서도 만난다. 보리가 익기 전, 바람 따라 춤을 추던 보리들은 초록빛 바다였고, 나는 그 초록빛 군무에 넋을 잃고 서 있곤 했다. 마치 바람마저 초록빛이 되어 그 바람 속에 서 있는 나는 투명한 초록빛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착각에 빠졌다.

나이 들어가면서 힘들거나 분노를 느낄 때 어린 시절의 그 기억들은 나의 마음을 평화롭게 가라앉혀 주었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땐 참 행복했지.’라는 생각에 젖어들고,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고 나는 살아야 할 의미가 있는 가치로운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도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고, 그 행복에는 이유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또 다른 행복감을 느꼈다.

유년의 시간은 그런 것이다. 시인 김춘수도 유년의 기억을 천사와 함께 하고 있다. 남녀의 구별이 없고 선과 악의 구별이 없는 시간, 그 시간이 천사와 같은 유년이 아닐까. 노자가 말하는 무위의 시간, 본성과 자연에 충실한 시간이 유년이 아닐까. 따라서 유년은 순수 그 자체일지 모른다. 유년은 온전함 그 자체일지 모른다.

시인 천상병은 ‘뼈와 살을 태우던’ 고통의 기억을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지워낸다. 천상병의 초기 시는 매우 어렵고 형이상학적인 면이 있지만, 고통의 시간 이후에 쓴 시들은 점점 후기로 갈수록 어린 아이처럼 기교가 없어진 단순?간결한 미를 지닌다. 천상병의 아내 목순옥은 약을 먹기 때문에 단순해진다고 말했다지만, 천상병은 본성에 충실하고 자연에 가까웠던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그의 고통을 스스로 치유했다고 본다.

어떤 인위성도 없고 강압적인 힘도 없던 그 시절이 유년이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 본성과 자연성을 하나씩 상실해 갈 때마다 유년의 기억도 하나씩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가라앉는 것이리라. 그러다 지극한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그 시간의 끝에서 나를 바라볼 때 유년의 기억은 마치 거짓말처럼 하나씩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고향을 노래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의 시는 유년의 기억으로 가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에 돌고 도니

부평 같은 신세가 되어

어언간 60여년이 되었구나.

세월은 빨라 유수와 같으니

내 청춘은 흘러흘러

머리에는 벌써 백발이 휘날리네.

아, 고향에 가고 싶다

보고 싶기도 하다

못 가는 신세가 되었으니

저 푸른 하늘 밑에는

내 고향 내 살던 집이 있겠지.

 

집옆에서는 올해에도 살구나무에

활짝 핀 살구꽃이 피었겠지

마당 뒤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꽃이 떨어지면

바가지로 주워담아

실로 꿰어서 목에 걸던

그 어린 시절이 그립구나

장독 뒤에는 목단꽃이

활짝 피어 그 옆에는 나리꽃이

돌담 위에는 호박 덩굴이 올라가서

금년에도 익은 호박이

주렁주렁 누렇게 매달렸겠지.

삽짝거리로 나와서

돌다리를 건너

사랑하는 모교에 가고 싶구나

칠계단을 올라가면

우편에는 벚꽃나무와

좌편에도 벚꽃나무가

엉겨 붙어서 봄이 되면

벚꽃이 장관이더라.

사계단으로 올라가니

매실 열매가 무르익어서

벌겋게 익으면 많은 사람 보시기에

입맛을 돋운다.

그리고 칠계단으로 올라가 서니

큰 운동장에서는

우리가 뛰놀던

그 모습들이 떠오르네.

운동장 옆에는

전부 벚꽃나무가 줄을 서서

너무나도 아름답더라.

친구들과 사진 찍던

그 추억이 떠오르며

선생님과 기념촬영도 했건만

모교가 잊혀지지 않고

사무치도록, 꿈속에서도 그리워지네.

 

언제나 가보리

언제나 보고 싶어

먼 산만 바라보네.

-<고향> 전문-

 

9번째 시 [고향]에서 할머니는 고향을 회상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말과 말 사이에 으레 있던 침묵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 보며 천천히 말을 하던 평소와 달리 나를 보며 동의를 구하기도 했다. “봐라, 김선생. 니 감꽃으로 목걸이 걸어봤다 했제?” “니 감꽃 냄새 기억하나?” 할머니는 나의 맞장구에 씨익 웃으며 시를 읊었다.

특히 시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과 동네, 그리고 학교를 정확하게 묘사했다. 마치 지금 이 순간 그 곳을 걷고 있는 것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한 구절 한 구절 시를 읊어 나갔다. 할머니의 시를 받아 적는 동안 잔잔한 호수 가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져왔다. 기억 속의 고향은 꽃밭이었다.

할머니는 시 [고향]에서 ‘가고 싶다’ ‘그립구나’ ‘아름답더라’는 표현으로 고향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갈 수 없는 마음을 “저 푸른 하늘 밑에는/내 고향 내 살던 집이 있겠지.” “언제나 가보리/언제나 보고 싶어/먼 산만 바라보네”라는 표현으로 묘사했지만, 그 그리움마저도 할머니에게 찾아온 작은 행복을 어쩌지 못했다.

시 [고향]에 묘사되는 여러 종류의 꽃은 “사무치도록, 꿈속에서도 그리워지”는 고향이 할머니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말해 준다. ‘집 옆에는 활짝 핀 살구꽃’이 있었고, ‘마당 뒤에는 감꽃’이 가득 떨어져 ‘바가지로 주워 담아 실로 꿰어 목에 걸’고 다녔다. ‘장독 뒤의 목단꽃과 그 뒤에 피어 있는 나리꽃’ ‘돌담 위를 오르는 호박 덩굴’에는 ‘누렇게 익은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유년의 집은 이제 갈 수 없지만 할머니의 기억 속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다.

“삽짝거리로 나와서/돌다리를 건너” 학교에 가면 그 곳은 벚꽃천지였다. “벚꽃이 그렇게 많았어요?” “하모. 요요 칠계단이 있었거든. 조게는 사계단이 있었고”라며 말을 이어가는 할머니는 마치 나의 손을 잡고 그 계단을 오르는 듯이 보였다. 두 팔을 넓게 벌려 한 손으로는 “여게 칠계단이 있는 기라”하며 허공의 한 지점을 가리키고, 다른 손으로는 허공의 어딘가를 가리키며 “여게는 사계단인데, 계단을 오르다 서서 돌아보면 온통 벚꽃천지제.”

뭉툭한 할머니의 손끝을 따라 좁은 방안 가득 벚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큰 운동장 한쪽에서는 어린 할머니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뛰고 있었고, 계단 위에서는 또 다른 어린 할머니가 학교를 가득 덮고 있는 벚꽃을 경이로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어린 할머니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벚꽃들은 우리가 앉아 있는 방안 가득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덥던 여름 날 할머니의 집을 처음 방문하던 그날, 나를 맨 먼저 반겨준 것도 꽃이었다. 대문도 없고 울도 없는 집에 울타리 대신 피어 있던 코스모스가 생각났다. 그 마을은 꽃이 없는 집이 많았다. 많은 집들이 마당을 시멘트로 개조하였고, 마을 곳곳에도 산속 시골마을치고 꽃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 입구 교회 옆에 있던 키 큰 야생화가 그나마 눈에 띄었다. 교회 예배실 앞에는 화분에 꽃이 담겨 있었다.

 

?

?
?
유년의 문이 열리다

 

할머니의 유년 기억 속에 유난히 꽃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잊고 있었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꽃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발병을 알고 난 뒤부터 할머니의 삶에서 꽃은 사치였는지 모른다. 발병과 함께 시작된 할머니의 고통 속에서 꽃은 더 큰 상처로 남았던 게 아닐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는 꽃으로부터 할머니는 상실의 아픔을 더 크게 느꼈을지 모른다.

시인 김춘수는 꽃을 보며 환희와 행복을 노래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가지의 끝에서 수없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시간의 운명을 보았다. 김소월은 저만치 홀로 피어 있는 꽃으로부터 끝없이 순환하고 있는 시간의 흔적을 찾았다. 삶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꽃은 아름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할머니에게도 유년의 꽃은 깊은 절망과 메울 수 없는 상실의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 즉 쾌락은 매우 간단하다. 보고 싶으면 보고, 보아서 좋으면 즐기면 된다. 간단한 쾌락 대신 고통이 자리 잡는 것은 자아의 붕괴를 의미한다. 더 이상 내가 나를 즐겁게 바라보지 못할 때, 나 자신으로부터 행복을 찾을 수 없을 때 우리의 자아는 이미 붕괴되어 있는 것이다.

자아의 붕괴는 지극한 심적 고통을 동반한다. 고통은 그것과 연관된 것들을 무의식의 세계로 밀어 넣고 문을 잠가 버린다. 이 고통의 끝에서 유년의 기억이, 꽃의 기억이 되살아나 그 기억을 이야기하며 지금 현재를 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무엇이 60년 동안 굳게 닫혔던 무의식의 문을 열게 했을까?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아니 오히려 꽃의 기억이 할머니의 얼굴에 홍조를 가져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야야, 김선생. 벚꽃나무가 얼매나 큰지 모른다. 그 큰 나무들이 전부 꽃을 활짝 피우면 학교는 꽃밖에 안 보이는 기라. 이리이리 계단에 서서 손을 내밀면 꽃이파리가 손바닥에 떨어진다. 후 하고 불면 또 날아가는 기라.” 나도 할머니를 따라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바닥을 떠난 벚꽃 하나가 내 손바닥 위에 앉는 환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친 노무현이면 콩쥐, 친 이명박이면 팥쥐?![철학자의 서재]

친 노무현이면 콩쥐, 친 이명박이면 팥쥐?![철학자의 서재]

오항녕의 <조선의 힘>

 

오상철(한철연 회원)

 

*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PC방에서 들킨 대한민국

대선 기간 막바지, PC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문재인은 빨갱이야”, “맞아 맞아, 근데 박근혜는 친일파래”, “히히, 그럼 누구 찍어?” 희희낙락하며 주고받는 이 대경대화에 아연실색하여 돌아보니 허탈하게도 초등학생 몇몇 애들이었다.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좋은 놈이야?’

아이들은 한 후보를 빨갱이라 하고, 한 후보를 친일파라 말하고 있었다. 주변, 특히 인터넷에서 연일 쏟아지는 책임 불명의 말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발음되고 언어기능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조용히 모니터 화면에 몰두했다. 세상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결정하는 일이 당장의 온라인 게임보다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흐름이다.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게, 회자되는 소재에 대해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아이들은 각자 사유에 의한 판단이 아닌 직관적인 선택을 했고, 그 둘의 차이는 다행히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어느 무리에 소속되기를 바랐을 뿐이니까. 선택은 나열된 사안 중에 단지 한 가지를 고르는 행위이고, 판단은 특정한 상황에서 사리 분별을 통해 결정하는 행위라고 하자.

PC방 아이들은 손쉽게 ‘선택’했지만 그것은 ‘판단’이 아니다. 그리고 선택도 단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양자택일 구조의 선택이었다. 한쪽이 좋은 사람이면 한쪽은 나쁜 사람이다. 다른 경우는 없다. 내 편은 좋은 사람이고, 내 편이 아닌 사람은 적이고, 적은 나쁜 사람이다. 비단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논리 구조의 문제일까? 선택에는 마땅히 그 선택을 이유로 한 목적이 수반된다. 그런데 그 목적이 단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요즘 한국에선 특정 당의 정책을 비판하면, 당 그 자체를 비판하는 정치 세력으로 치부된다. 만약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곧 반정부주의자로 둔갑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복지 정책에 비판적인 사람과 정부 정책에 긍정적인 사람이 있다. 전자는 기존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후자는 기존 정책이 유지되길 바란다. 점진적 보완과 수정으로 정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을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정부의 정책은 다양하고, 그 분야에는 가짓수도 대단히 많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 중 일부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말미암아 그를 반정부주의자로 매도하고, 심지어 비난한다. ‘정책’에 관한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정책’ 선택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꼬고 야유한다.

‘정책의 다름’이 무엇인지, 왜 그런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이 신뢰하는 대상의 한 부분이라도 누군가가 문제 삼으면 곧바로 선택에 들어간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 반정부주의자고, 나쁜 사람이다. 이런 바탕에선 정책을 논할 수 없다. 이런 판은 광장이라 할 수 없다. 인터넷 공간을 부유하는 한낱 정체불명의 구호들을 입으로 배설하고 있던 PC방 초등학생들의 수준과 무엇이 다른가?

자기 사유화를 거치지 않은 채 ‘선택’에만 국한한 논의는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고, 타당한 정치적 행위 자체를 불신하게 하는 상태까지 이르게 한다. 결국 선택의 목적이 적에 대한 확신이나 자기 방어가 되어, 스스로 만든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우리 사회는 이미 상당 부분 이런 이분법적 사고 프레임에 잠식되어 있다.

나는 우선 이런 사태의 원인 중에 하나를 일제 식민사관이 만든 조선 역사 왜곡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오항녕의 <조선의 힘>(역사비평사 펴냄)에선 이 프레임에 대한 한 편의 근거를 제시한다.

콩쥐/팥쥐 프레임

?

▲ <조선의 힘>(오항녕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역사비평사

오항녕의 <조선의 힘>은 조선이 왕조를 500년간 지속할 수 있었던 저력에 관해 말하고 있다. 최고 권력자인 왕에 대한 교육과 견제 작용의 경연(經筵), 역사의 흔적 실록(實錄), 200년간 진행된 대동법(大同法), 오래된 미래 조선 성리학(性理學) 그리고 조선에 대한 여러 오해들을 풀어가면서 조선 시대의 가치를 조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조선이 근대로서 전환 실패에 따른 실패한 체제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근대로의 전환은 시험에 합격, 불합격을 따지듯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일부만 제외하고는, 지구상에 조선을 비롯해 대부분의 문명들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를 자신들의 미래로 생각하지 않았다.” (5쪽)

근대를 척도로 한 역사의식과 서구 역사를 잣대로 한 시대 의식이 조선을 편견으로 바라보게 하진 않았을까? 그리고 우리의 유전인자에 원래 사대주의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식민사관의 세뇌가 우리의 역사적 자부심을 억압하고 있진 않는가?

저자는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폭력적인 프레임을 말한다. 근대를 절대화하여 ‘근대=선’/’조선=전통=악’이란 도식이다. 나아가 ‘사대=나쁜 나라’ 대 ‘주체=좋은 나라’라는 전형적인 ‘콩쥐/팥쥐’ 구도를 형성한다고 한다.

‘콩쥐/팥쥐’ 구도는 판단이 아닌 선택이고, 선택이 아닌 강요이다. 이미 좋은 편, 나쁜 편이 결정되어, 좋은 편은 무엇을 해도 좋은 일이고, 나쁜 편은 무엇을 해도 나쁜 일이 되는 구조, 그리고 내 편이 아니면 다 나쁜 편이고 내 편을 싫어하면 다 나쁜 편이 되는 구조에서 우리의 선택은 ‘과연 선택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돌출시킨다.

조선의 팥쥐 대동법, 성리학, 사대

조선에는 어떤 콩쥐와 팥쥐가 있을까? 먼서 대동법 콩쥐/팥쥐를 살펴보자. 대동법은 공납의 폐해를 개선하고자 백성을 위해 펼쳤던 정책이다. 약 200년이 걸린 이 정책은 조선 사회의 획기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대동법을 정책이 아닌 지주/소작이라는 계급론으로 환원하여, ‘콩쥐/팥쥐’의 구도로 만들어 버렸다. 양반은 지주이자 팥쥐, 백성은 소작이자 콩쥐로 만들었다. 그리고 양반 세력에 맞서 대동법을 실행하고자 했던 왕도 콩쥐가 되었다.

사람들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똑같은 놈들이지, 그놈이 그놈이야” 하면서 정치인들을 같은 부류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을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자들로 보면서 서민과는 다른 집단으로 만들어 버린다. 대동법은 누가 추진했을까? 백성을 사랑한 왕이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양반들과 싸워서 이긴 결과일까? 아니다. 대동법의 제안도 실행도 모두 양반들로부터 비롯되었다.

“관료들이 양반이었고, 지주들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정책을 논의하고 실행할 때 어떤 관료는 정통한 지식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개혁을 추진하고, 어떤 관료는 사안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며, 어떤 관료는 반대하기도 한다. 방향이 같아도 진단이 다를 수 있고, 그에 따라 급선무를 달리 생각하기도 한다. 재정 안정을 고려할 수도 있고, 군비를 고려할 수도 있으며, 민생을 고려할 수도 있다. 이렇게 다기요소를 제도화해 현실에서 운영하는 것이 정책이다.” (127쪽)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환멸은 그들을 정책을 내는 사람이 아닌 계급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팥쥐가 있다. 조선 성리학이다. 사람들은 흔히 조선이 망한 이유를, 현실 감각이 없는 이상주의 성리학자들이 조선을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라의 발전과 백성의 안위는 뒤로 한 채, 예송 논쟁과 형이상학 논쟁(주리(主理)-주기(主氣))에 대한 담론만 일삼았기에 나라가 강해지지 않고, 일본에게 강제 합병되어 조선이 망했다고 한다. 500년간 이어진 왕조에 대해서 너무 가혹한 평가가 아닐까? 이런 논리는 성리학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주기-주리의 개념을 통해 정치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실제적인 사상사와 정치사의 분리 현상이다. 일제 시대의 다카하시 도오루의 주리-주기 논리를 이어받은 이병도가 여러 유보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단칠정 논쟁과 호락 논쟁을 관념적 독단 정도로 이해하고, 나아가 조선 정치사의 흐름을 식민지 시대 일본 학자들의 당쟁론 정도에서 이해하게 되는 근원적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190쪽)

조직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를 제시한다. 그리고 조직은 지향하는 이념의 이론을 체계화하고 공고히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의 체계화 과정만 싹둑 잘라 놓은 단편만으로 조선 성리학자들을 판단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관념 논쟁에만 빠져있던 성리학자는 팥쥐가 되고, 현실적인 이단자는 콩쥐가 되었다. 그리고 나쁜 성리학자들은 주자학과 다른 경전 해석을 하거나 유학이 아닌 다른 학문을 하는 좋은 이들을 이단이자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조선의 지배층은 자아도취에 빠진 히스테리 환자이자, 소인배 집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과거 청산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기 위한 기본 전제이다. 역사 정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당당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다. 친일파 청산도 같은 선상에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대한민국의 친일파에 대한 처분은 그리 명백하지 못하다. 아니, 아직도 끌려 다니고 있다. 우리가 당당하지 못한 이유는 혹시 팥쥐가 되어버린 조상 때문은 아닐까.

마지막 팥쥐는 ‘사대(事大)’이다. 사대란 약자가 강자를 섬긴다는 뜻이다. 후금이 만주에서 흥기했을 무렵 조선의 왕은 광해군이었다. 동생들을 죽이고, 어머니를 폐한 패륜아이자, 끝없는 궁궐 공사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낸 광해군은 후금과 명나라 간에 실리 외교로 재조명받는 왕이 되었다. 실리 외교를 펼친 광해군은 콩쥐가 되고, 사대주의 명분론으로 국익을 망친 반정 세력은 팥쥐가 되었다. 명분은 헛된 것이고, 실리는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명분과 실리는, 같이 가면 좋은 것이 아니라, 원래 같이 가는 것이다. 명분 없는 실리는 오래 가지 못하고, 실리 없는 명분은 공허한 것이다. 곧 원칙 없는 정책, 비전 없는 정책이 오래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분과 실리를 나누어 어떤 역사적 사실을 해석했던 우리의 오염된 관점을 이쯤에서 반성해야 한다.” (223쪽)

정책에서 명분만 있는 혹은 실리만 있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명분과 실리라는 이분법적 구조에서 명분만 따지는 사대주의자들을 비판할 근거가 생겼다.

“광해군의 실리주의 외교와 반정 세력의 명분론을 대립시키면서, 이 명분론을 명에 대한 사대주의로 규정했다. 식민사관의 사대주의론은 이렇게 광해군이 부활하면서 완성되었다. 타율성론-사대주의론-실리 외교론은 정교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다. 사대주의론은 식민지 조선인, 특히 지식인들에게는 치명적인 상처였다. 죽은 자만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망한 나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사대주의-명분론 vs 실리론” (235쪽)

오항녕이 말하는 콩쥐/팥쥐 구조는 완성되었다. 이제 현재 대한민국에서 콩쥐/팥쥐 구조를 맛보기로 하자.

콩쥐/팥쥐 맛보기

현재 한국에서 콩쥐/팥쥐 구도를 살짝 대입해보자. 노무현-친노 세력이라는 팥쥐를 만들었다. 콩쥐는 반노 세력이지만, 그 의미의 폭은 확실하지 않다. 애초에 ‘친노’라는 개념 자체를 일부 언론에서 폭력적 이분법 논리로, 더군다나 그 스펙트럼조차 모호하게 퍼뜨렸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들은 노무현을 팥쥐로 만들고, 노무현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정책이나 정치력과는 상관없이 필요성이 있다면 어떤 관계든 끌어와서-팥쥐로 몰고 한 패거리라고 몰아붙인다.

노무현은 나쁜 사람인가? 대통령 시절의 자질 문제인지, 정치적인 이유인지, 자신의 이익과 관련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고, 한국을 망쳤기 때문에 나쁜 놈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반대하는 여러 사람들을 노무현과 함께 팥쥐로 만들어버렸다. 노무현과 관련된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노무현을 비판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구도를 만들었다. 비판하는 사람 중 문제가 있는 사람은 그들과 무관하다고 말하거나 꼬리 자르기를 하였다. 이는 프레임을 동등하게 형성하지 않고, 편한 대로 형성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는 논의의 차원을 벗어난 통일성 없는 잣대이다.

오항녕은 이러한 프레임에 대해 “<국화와 칼>이란 책이 출간된 뒤, 마치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이나 21세기 한국 지식인들이 그러하듯이, 일본의 지식인들도 베네딕트가 강제한 ‘표상’에 대응했다. 전형적인 것이 1950년에 글을 발표한 와쓰지 데쓰로처럼 ‘일부 일본인은 그렇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대응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 그 프레임에 빠진다. 말하자면 해당 명제에 대항한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내면화해버리는 것이다”(237쪽)고 말한다.

중용의 역설 : 진짜 우리의 이름은?

한쪽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중도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다른 이들을 되도록 자극하지 않고 스스로도 자기 시야에 매몰되지 않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장려하는 중용의 미덕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과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가 주류를 이루는 요즘의 여론 환경에서 사람들은 앞 다퉈 극단을 좇는지도 모른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하나의 극단적인 주장이나 입장이 없으면 주목받지 못한다는, 수많은 정보와 말들의 편린 속에서 묻혀버릴지도 모른다는 강박이 시나브로 우리의 의식을 점령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예컨대 ‘비겁’과 ‘만용’ 사이의 가운데쯤에서 ‘용기’를 택하듯이 극단(side)과 극단(side)을 피해 가운데를 선택하는 서양 철학에서의 중용 개념과, 동양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중용 개념은 사뭇 다르다. 왼쪽의 모서리(side)와 오른쪽의 모서리(side) 사이의 가운데 어디쯤을 선택한다 한들 그것 역시 결국은 하나의 모서리(side)가 될 수밖에 없다. 동양 철학에서의 중용이란 단지 입장의 양 극단을 피하라는 구호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존에 산재한, 그리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편견과 미혹 없는 마음으로 사물을 평직(平直)하게 바라보는 것.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한 일련의 공부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중용이란 결국 하나의 온당한 모서리(side)를 가지기 위한 치열한 성찰과 연마(硏磨)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완벽한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지만, 어쩌면 그것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더 나은 방법론을 개발하고 관점을 공유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거기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진실은 하늘의 몫이지만,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이라고, 성리학의 발달과 함께 사서의 하나가 된 중용의 저자는 말했다. 세상엔 정말로, 콩쥐도 팥쥐도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이름이 콩쥐이고, 팥쥐일 필요는 없다. 콩쥐와 팥쥐 사이, 진짜 이름을 찾은 사람끼리 있는 힘껏 자기 모서리를 부딪치고 또 조율하는 세상을 바란다.

?
?
?

사회주의의 첫걸음, 재벌 딸과 노동자 아들 결혼부터![철학자의 서제]

사회주의의 첫걸음, 재벌 딸과 노동자 아들 결혼부터![철학자의 서제]

조지 버나드 쇼의 <쇼에게 세상을 묻다>

김정철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2012년 대선이 끝났다. 주어진 결과에 대해 누군가는 안도와 함께 환호할 테고, 누군가는 아쉬움을 넘어 절망에 가까운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또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냐며 관심도 없는 사람도 있겠다. 정당한 절차에 따른 결과인 만큼, 일단 결과는 인정하고 볼 일이다. 이제는 승리한 진영과 실패한 진영 모두 결과에 대한 분석과제를 파악하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저마다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내게는 이런 분석에 힘을 보탤 능력이 없다. 단지 유권자들이 어떤 경위로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모든 유권자는 후보들을 정책적으로 따져보고,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선택을 했을까? 정말 세대와 지역갈등만으로 설명이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정치를 왜 알아야 하나?

최근에 나온 책 가운데 버나드 쇼의 만년 저작 <쇼에게 세상을 묻다>(김일기·김지연 옮김, 뗀데데로 펴냄)가 눈에 띄었다. 거의 100년을 살았던 영국의 극작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쇼는 풍자와 독설로 유명한 인물이다. 극작가의 정치론답게 책은 첫머리부터 정치와 관련된 이 책이 지루하다면 차라리 추리 소설이나 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쇼는 토지와 정당 제도, 민주주의의 기원과 불평등이 나타난 원인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야말로 ‘정치와 관련된 모든 것’을 말하기 위해 각 분야 별로 상당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쇼는 본인이 만년에 정치에 관련된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의 정치적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요즘에는 누구나 정치에 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 대부분이 아주 기초적인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 우리가 ‘조금밖에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는 것과 다르다. 그 ‘조금’의 차이가 평화롭고 합헌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국토의 절반을 폐허로 만드는 내전을 야기하기도 한다.”

▲ <쇼에게 세상을 묻다>(버나드 쇼 지음, 김일기·김지연 옮김, 도서출판 뗀데데로 펴냄). ⓒ뗀데데로

우리는 쇼가 말하는 ‘조금’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선거 때만 다가오면 우리는 저마다 후보들을 평가하고 논쟁한다. 그러나 저마다 평가의 잣대는 일정하지 않다. 대부분 일부만 보고 정치의 모든 부분을 설명하려 든다.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벌이지만, 결론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할 몫이 되어버린다. 선택권의 행사는 잘 했지만,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장면을 우리는 이미 수도 없이 보았다. 우리가 정치에 대해 ‘조금’도 몰랐던 탓이 아닐까.

유권자의 선택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문제는 경험에 따른 선택 기준이 개인에 따라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보들의 정책을 냉정하게 살피고 투표를 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구는 단순히 고향이 같아서 찍고, 누구는 특정 후보가 싫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후보를 찍는다. 혹은 특정 정당만 보고 찍는 경우도 있다.

물론 경험의 다양성은 어쩔 수 없다. 자라환경, 가지고 있는 재산과 규모, 소속된 일터의 성격, 사회적인 명성과 위치 등 수많은 요소들이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선거의 흐름에 따라 감정적으로 투표를 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정책의 성격과 방향을 보고 선택한다. 이런 경향은 진보와 보수, 지역과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경험의 다양성에 비해 찍을 수 있는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던진 한 표 한 표는 모두 동등하며 소중하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정치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갈등의 원인 : 소득의 불평등

쇼의 설명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결국 평등을 의미한다. 자연이 부여한 각자의 재질과 능력은 다르지만 신체적인 욕구는 모두 같다. 따라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식주는 골고루 분배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같은 계급의 선원은 같은 돈을 받는다. 여기에 개인의 자질이나 재능의 차이는 고려되지 않는다. 자질이나 재능은 돈으로 평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에 따라 쇼는 소득의 평등화를 주장한다. 소득의 평등화는 (단순히 모두의 소득이 동등해지는) 수학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일정 단계에 이르면 수학적 평등이 무의미해진다. 1년에 수백 파운드도 못 버는 계층과 수천 파운드를 버는 계층의 차이는 끔찍하다고 말한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두 계층 사이에 결혼이 제한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사회는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쇼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모든 국민이 충분한 소득과 평등한 기회를 누리며 누구나 계층에 관계없이 결혼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필수품과 사치품이 우선순위에 따라 생산되고, 돈에 매수된 변호사들이 사법 정의를 흔들지 못하게 될 때 비로소 그러한 사회가 가능해질 것이다. 소득 평등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들이 민주적 사회주의의 진짜 목표다. 현재의 사회 계층이 전체적으로 상향 조정되면, 인간이 타고난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소득과 계층에 관계없이 결혼할 수 있는 사회’라니. 가능하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참 꿈같은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는 일은 찾기도 쉽지 않고, 결혼은커녕 연애마저 포기해야할 지경에 놓인 21세기 초 한국 젊은이들의 상황을 보면 쇼는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소득의 불평등이 해소되면 다음과 같은 단계로 이어진다.

“1년에 수천 파운드를 버는 A는 1주일에 고작 몇 파운드 버는 B에 대해 거의 전제 군주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겠지만, B도 수천 파운드를 벌게 되고, A는 한 10만 파운드쯤 번다면 B가 A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 누구든 사회 계층에 관계없이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우리 모두가 정치적으로 평등해질 것이다.”

소득 불평등 해소의 기준으로 ‘결혼의 가능성’을 지적한 점은 지금 봐도 탁월하다. 이 땅의 젊은이들은 ‘결혼’이라면 경제적인 부분 말고도 따질 부분이 많아 상상만 해도 피곤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결혼은 두 사람의 사랑 외에도 경제적인 측면과 계층적인 측면까지 결합되어 있다.

쇼가 말하는 ‘소득의 평등’은 오늘날 주장되고 있는 ‘기본 소득’ 개념과도 비슷하다. 사람으로서 최소한 누려야 할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자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쇼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소득의 평등이 곧 정치적인 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단순히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평등한 것은 아니다. 소득의 불평등이 해소되면, 계층과 갈등 자체가 사라지게 될까? 쇼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사회주의 체제에도 계층이 존재할까? 정당, 종교, 노동조합, 전문가협회, 클럽, 정파, 파벌에 더해서 새로운 전문가 집단까지 존재해야 할까? 물론이다. 아마도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겠지만 항상 대화하고 서로 혼인할 수 있는 조건, 그러니까 평등한 관계를 맺으며 엄청나게 많은 계층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계층 간 갈등이 있다고 해도 갑을 관계의 갈등이 아니다. 평등한 관계를 전제한 갈등이다. 누구나 어느 계층에 속해 있고, 외부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본인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며 토론할 수 있다. 다만 쇼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점진적인 단계에 따라 소득의 평등화를 이뤄야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사실 소득 불균형은 비정규직 문제, 비현실적인 최저 임금 문제만 제대로 해결되어도 지금의 절망적인 상황은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여가와 미학적 인간

쇼는 19세기의 사회주의가 가난을 해소하는 데 지나치게 집착한 반면 여가와 문화를 향유하는 데에는 지나치게 소홀했다고 평가한다. 바로 소득의 불평등을 해결한 다음 단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소득의 평등은 곧 여가를 가져온다. 최소한의 시간만 노동에 투자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에, 굳이 애써서 돈을 더 벌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여가의 활용이다.

“인간은 자연에 예속된 존재라는 것은 초당파적인 대전제이다. 따라서 노동이라는 짐을 분담하고 여가라는 이득을 나눠가짐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최대한도의 복지를 누리도록 인간사회를 조직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이다. (…) 여가가 없는 시민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90퍼센트의 사람들은 항상 일만 하고 여가를 갖지 못하는 반면 10퍼센트의 사람들은 늘 여가를 즐기고 전혀 또는 거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유란 허깨비에 불과하다.”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얼마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지는 체감하기 어렵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제대로 누리려면 여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여가의 활용은 미학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미학이라니? 예술을 말하는 건가?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저런 배부른 소리를 꺼내는 것 자체가 어이없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여가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한다. 이들에게 미학적인 취미는 사치에 불과하다. 쇼는 이런 생각은 오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예술에 대한 그러한 오해가 생긴 이유는 간단하다. 특정 계급이 토지를 전용하면서 임금노동자(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생겨났고, 이 임금 노동자들이 먹고살기 바쁜 나머지 문화와 여가와 용돈은 꿈도 못 꾸는 상황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쇼는 계층과 소득 불평등의 기원을 토지 문제로부터 설명해 나간다. 미학적인 취미를 만족시킬 수 있으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60년 전에 한 말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돈도 시간도 부족하다. 심지어 우리는 여가가 있어도 어떻게 쓸지 제대로 배운 적조차 없다. 우리에게도 미학 교육이 필요한 까닭이다. 단순히 시험을 위한 교육이 아니다. 쇼가 말하는 미학 교육의 목표를 다음과 같다.

“우리는 취향을 가진 수백만의 관중, 청중, 감식가, 비평가, 애호가를 길러내야 한다. 한마디로 타고난 재능을 가진 한 줌의 프로페셔널을 길러내는 한편 수많은 아마추어들도 양성해야 한다.”

사람들을 모든 분야의 천재로 길러내는 교육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학 교육을 통해 누구나 취향에 맞는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제공할 수 있다. 꼭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다. 쇼가 보기에 가난, 무지, 고된 일, 배고픔은 재능과 천재성을 가로막는 벽이다. 공평한 출발선이 주어지면 천재성은 스스로 드러나고, 발현될 것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격변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해방과 동시에 이념의 대결과 지역 간 갈등이 이어졌고, 이제는 세대 간 갈등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비해 다양한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가로막는 제도의 개선과 사회의 여러 불평등한 요소를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중반 영국과 21세기 초 한국의 상황은 동일하지 않지만, 쇼의 정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겉으로 드러난 세대와 지역의 갈등 이전에 근본적으로 소득 불평등의 측면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정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핵발전소 도시 No! 에너지 자립 도시로![철학자의 서재]

핵발전소 도시 No! 에너지 자립 도시로![철학자의 서재]

헤르만 셰어의 <에너지 명령>
강경표 중앙대학교 강사?

 

*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갈림길에 서다

기본적인 에너지 사용량이 늘고 있다. 지금전구 하나를 밝히고 라디오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는 세상이 아니다.

수많은 가전제품의 소음이 집안을 장악한다. 미세한 냉장고 소리, 컴퓨터 하드디스크 구동음, 메시지가 왔다는 스마트폰의 울림 등이 이미 내가 많은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앞으로 통신망을 기본으로 모든 전자 제품을 제어하는 유비쿼터스 도시에 살게 된다면 기본적인 전기 에너지 사용량은 더 늘어날 것이다.

에너지 효율이 좋은 제품이 쏟아져 에너지 사용량이 줄 수도 있지만 효율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안락함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제품들도 나올 것이다. 우리는 분명 그런 제품들을 사용할 것이고, 그때마다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점점 증가할 것이다.

그 많은 에너지는 어디에서 구해야 할까? 우리가 사용하는 핵에너지와 화석 연료만으로 그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을까? 위험성과 환경 파괴라는 부담을 지면서까지 우리는 그 에너지를 계속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 <에너지 명령>(헤르만 셰어 지음, 모명숙 옮김, 고즈윈 펴냄). ⓒ고즈윈

이미 두 에너지의 사용량이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를 찾자!’, ‘대안 에너지가 답이다!’ 이런 사실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2010년 타계한 헤르만 셰어의 <에너지 명령>(모명숙 옮김, 고즈윈 펴냄)은 그의 마지막 저서이자 우리가 가야 할 에너지 정책의 방향과 행동 강령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셰어는 에너지 문제가 우리 모두고민해야 할 사회 윤리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순전히 경제학적인 에너지 토론에 관여하는 것은 극히 근시안적이고 미래를 망각하는 시각이다. 이런 에너지 토론은 논쟁을 실제적인 가격 비교의 단순한 형태로 환원한다. 에너지 변화에 결정적인 것은 재생 가능 에너지의 사회적 의미와 시각이다.” (329쪽)

그러나 지난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 그 누구도 에너지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아니 토론하지 않았다. 단지 이 추운 겨울, 핵발전소를 가동 못해 블랙아웃을 걱정하는 정부가 “전기를 아껴 쓰자”고 외치고만 있을 뿐이다.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을까? 검소함과 절약을 익혀 누구나 에너지를 아끼고 소중히 하며 살고 있을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며 살려고 할까? 불행히도 지금 내 대답은 후자에 더 가깝다.

대선 후보들의 슬픈 에너지 공약

지난 18대 대선의 화두는 단연 ‘경제 민주화’였다. 그러나 각각의 후보마다 내용이 다른 ‘경제 민주화’라는 용어 때문에 공약의 차별성이 보이지 않았다. 공약에 투표하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에너지 공약 또한 차별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핵에너지와 화석 연료 의존도가 각각 31퍼센트, 65퍼센트인 상황에서 단번에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가 핵 발전에 대해서는 국민의 안전을 고려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짧은 에너지 공약을 통해 보였을 뿐이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이야 누구나 아는 일이니 신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재생 가능 에너지에 있다. 대선 후보들은 재생 가능 에너지 공약은 자신들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도 한참 후인 2030년쯤으로 미뤄버렸다. 어떤 재생 가능 에너지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고민한 흔적도 없었다. 구체성도 결여되어 있었다. 단지 먼 미래에는 재생 가능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을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셰어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지난 대선 주자들의 재생 에너지 공약은 다음과 같은 행동 양식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주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그 방향으로 성큼성큼 빨리 나아가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또 이런 구실로 시간을 벌어서, 지금까지 해 왔던 것을 가능한 오래 유지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종래의 에너지 공급 구조를 깨부술 용기가 부족하다. 또 누군가는 에너지 변화를 어떻게 실제로 구현할 수 있을지 방책도 구상도 없다.” (14쪽)

대선 후보들의 에너지 공약이 슬픈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이 끌어나갈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집중적 에너지 공급 정책을 바꿀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권력이다. 에너지원이 집중되면 권력도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핵에너지가 매혹적인 이유는 그 에너지가 권력과 함께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방 자치를 얘기하는 대선 후보들은 지방에 더 많은 권한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지방 분권에 필수적인 지방세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기존의 정치가 그랬듯 말 잘 듣는 지방 정권을 유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핵에너지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들도 핵이라는 에너지 권력의 매력에 빠진 게 아닐까?

아직까지는 돈이 곧 권력이다. 돈줄을 움켜쥐고 있는 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에너지 소비가 점점 증가하고, 기존의 전통적 에너지가 점점 부족해지는 미래에는 에너지를 가진 자가 더 강력한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핵에너지의 속성이 권력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박원순 서울 시장님께

절대 왕정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독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우리는 몸소 배워왔다. 지배와 피지배의 사슬을 벗어나는 길은 권력을 분산하는 데 있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에너지를 생산하고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에너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기반을 지닐 수 있다.

누구나 에너지를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은 자연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자연이 제공하는 공기와 물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내리쬐는 햇빛과, 귓불을 스치는 바람에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자연 에너지에도 비용을 지불해야 할까? 그렇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최소한 자연 에너지를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에너지로 바꾸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해야 할까? 바로 그 에너지를 사용할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아직은 많은 비용을 감당해야 하기에 기존의 에너지와 재생 가능 에너지의 발전 단가를 비교해 가며 핵에너지가 가장 싼 에너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주 많다. 특히 에너지를 소비할 줄만 아는 대도시 시민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값싸고 좋은 에너지원을 당신들이 사는 도시에 놓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사정이 달라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지금은 서울 시장이 된 박원순의 ‘원순닷컴’을 보면 “송전탑을 보며 에너지의 분권화를 생각한다”는 짧은 글이 있다.

“제가 언젠가 독일을 여행할 때 독일은 전기의 생산을 지역마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마을 단위로 작은 발전소를 가지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원거리를 송전함으로써 누전도 방지하고 동시에 발전의 집중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도 방지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에너지 분권, 발전의 분산-저 큰 송전탑을 보면서 해 본 생각입니다.” (‘원순닷컴’, 2010년 6월 18일)

서울 시장이 된 지금도 그 생각을 유지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박원순 시장님, 그 많은 송전탑이 어딜 향해 있는지 알고 계시죠? 바로 특별하고도 특별한 서울특별시입니다. 바쁘시겠지만 혹시 서울특별시가 소유한 가장 많은 재생 가능 에너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셨나요? 바로 똥과 쓰레기입니다. 1000만 시민이 배출하는 똥과 쓰레기로 재생 가능 에너지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제 상상이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제가 에너지 분권을 상상하며 자료를 찾을 때 국내에서는 처음 발견한 글이기에, 시장님의 글이 마음남아 있어 이렇게 적어봅니다.”

그래도 에너지 분권이 답이다

서울특별시만 놓고 보면 에너지 분권은 쓸모없는 개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 일부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키고 균형 있는 지역 발전을 꿈꾸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분산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에너지 분권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새로운 에너지 생산을 위한 입지의 인가권을 얻는다면, 이와 함께 사회적 보상을 배려할 가능성도 생긴다.” (252쪽)

최소한 신도시를 개발하거나 도시를 재정비할 때 고려해 볼 만한 사항부터 생각해 보자. 새롭게 짓는 아파트 옥상마다 태양광 설비를 놓는 것은 어떨까? 최소한 공용 전기만이라도 자연으로부터 얻고, 관리비 지출을 줄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미 목포옥암 푸르지오에서 실천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좀 더 나아가 에너지 분권이 더해진 지방 분권 도시를 상상해 본다. 만약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에너지 값을 할인해 주는 도시가 있다면 당신은 그 도시로 이주할 생각이 있는가? 전기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이주를 고민해 볼만하다. 각각의 도시들이 에너지 자립 기반을 갖는다.

도시의 특성에 맞는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에너지원을 기반으로 지방 자치를 실현해 간다. 지방자치단체가 도시에 맞는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고 에너지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면, 든든한 에너지 기반을 갖춘 도시에는 당연히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집 앞의 핵에너지와 화석 연료 사용은 지방자치단체 스스로 자제할 것이다.

미래 우리는 이런 도시 광고를 접할 수도 있다.

“우리 ○○시는 시민이 사용하는 에너지 가격을 20퍼센트 인하합니다.” “△△시로 오시면, 다른 지역보다 전기료가 10퍼센트 저렴합니다.”

에너지 기반을 갖춘 도시가 사람들에게 손짓한다.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도시로 이주해갈 것이다.

이제 18대 대선은 끝났다. 새로운 정부는 에너지 분권이 가능하도록 초석을 마련해야 한다. 핵발전소가 필요하다는 뉴스보다는, 핵발전소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원이라는 광고보다는, 재생 가능 에너지가 필요한 이유와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만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를 충당하기에는 아직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 활성화를 꿈꾸는 이유는 지구상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1만 배 정도의 햇빛이 지구를 비추고 있다. 이 정도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인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과학자에게는 기술 개발을 독려하며, 기업이 재생 가능 에너지의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길을 찾아 준다면, 대한민국의 재생 가능 에너지 미래도 어둡지만은 않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재생 가능 에너지는 에너지 특성상 핵에너지와 같은 집중 구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에너지 분권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이다. 또 지방 정부에게 에너지 권한을 넘겨줄 때 지속 가능한 지방 자치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유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상도 해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효율 좋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 언젠가는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내 손으로 온전히 생산해 내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때가 너무 늦지 않게 찾아오기만을 바랄뿐이다.

?
?
?

<광해>는 ‘강제 천만’? 관객 끈 진짜 이유는?[철학자의 서재]

<광해>는 ‘강제 천만’? 관객 끈 진짜 이유는?[철학자의 서재]

[철학자의 서재] <맹자>

박영미(한양대학교 강사)

 

*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를 영화가 대신하다

대통령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때쯤 되면 각 후보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정책들을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해야 하고, 그것은 서로 비교되어야 하고 검증받아야 한다. 그 정책들이 적어도 앞으로 5년간의 대한민국을 이끌고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적어도 지금쯤 우리는 각 후보자들, 아니면 캠프들의 치열한 정책 공방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진지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지금 대한민국에서 볼 수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들의 둘 곳 없는 정치적 욕망을 한 편의 영화에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 <광해>가 개봉한다고 할 때도, 관객 수가 500만 1000만을 넘는다고 할 때도 나는 이 영화를 봐야할 어떤 이유도 찾지 못했다. 일단 이 영화의 제작사와 배급사가 평소에 마땅치 않았고, 주연 배우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스크린을 독점한 대기업이 이때쯤은 이런 것이 잘 먹힐 거라며 쳐놓은 그물 같아서 그 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가기 싫었다는 것이 가장 컸다. 그런데 어느 평론가가 ‘<광해> 강제 천만 사태’라고 명명하듯이 영화의 무엇이 사람들을 이끄는지는 궁금했다.

진짜 왕 노릇은 공감으로부터 시작된다

▲(맹자 지음, 박경환 옮김, 홍익출판사 펴냄). ⓒ홍익출판사

진짜 왕은 정적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웠고 그에게 정치는 하나를 내어주고 하나를 얻는 파워 게임이었다. 그러나 광대 출신 가짜 왕은 대역 왕 노릇을 하면서 백성들의 고통을 알아가고 함께 아파한다. 일일 드라마처럼 누가 봐도 빤한 대립 구도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사월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자신의 먹성 때문에 끼니를 거를지 모를 나인들을 걱정하며, 중전의 웃음기 없는 얼굴을 염려하는 그에게 점점 마음이 끌려간다.

제 선왕이 통일된 천하의 왕이 될 수 있을지를 묻자, 맹자는 백성들을 잘 보호해 주면 가능하며 제 선왕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제사에 끌려가는 소를 차마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양으로 바꾼 사례를 들면서 “왕의 은혜가 동물에게 미칠 정도로 충분하면서도 그 공적이 백성들에게 미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 백성들이 편안하지 않은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통일된 천하의 왕이 되지 못하는 것은 실은 하지 않기 때문이지 못 해서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44~48쪽)

맹자는 통일된 천하의 왕이 되는 시작이 제사에 끌려가는 소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부터라고 말한다. 소에 대한 연민은 비록 그 대상을 양과 바꾸는 것이라 할지라도 눈앞에 펼쳐진 곤경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며 느끼게 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바로 공감의 마음이다. 그리고 소에게도 미친 왕의 공감의 마음과 그 실천(양으로 대체함)이 백성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은 왕이 ‘못하는 것이 아닌,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백성의 곤궁에 공감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치를 실천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질책이지만 그래도 소의 곤경에 공감하는 마음을 가진 당신에게 희망이 있다는 격려이기도 하다.

공감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정치는 “내 집안의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남의 어른에게까지 이르게 하고, 내 아이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 남의 아이에게까지 이르게 한다.”(상동) 그리고 이렇게 공감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정치는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목표로 한다. 맹자에게 정치의 시작과 끝은 공감, 즉 고통도 즐거움도 함께 느낌이다. 함께 느낀다는 것은 나의 마음이 너에게로, 너의 마음이 나에게로 경계 없이 다가서는 것이고,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정치를 맹자는 차마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정치(不忍人之政)라고 한다.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에 토대한 정치이며, 인(仁)의 단서인 측은지심이 확충되어 실천된 정치인 인정(仁政)이다. 영화에서 내 마음을 이끈 것은 가짜 왕의 진짜 마음, 측은지심이었다.

선한 마음만으로는 좋은 정치를 할 수 없다

가짜 광해는 진짜 광해가 주저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한 땅과 세금 문제인 대동법과 대외 관계 문제인 등거리 외교를 실행한다. 공감이 정치의 시작이고 끝이라고 여긴 맹자이지만 그 마음만으로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선한 마음만으로 정치를 행하기는 부족하다고, 제도도 스스로 실행될 수는 없다.”(187~190쪽) 정치가의 선한 마음은 제도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백성을 위한 제도 역시 정치가의 선한 마음이 없이 실행되기 어렵다.

“인仁한 정치는 반드시 토지의 경계를 확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경계의 확정이 바르지 않으면 정전의 토지가 균등하지 못하고, 토지의 수확에서 얻는 봉록 역시 공평하지 못하게 된다.”(144~149쪽)

정전(井田)은 국가에서 백성에게 토지를 나눠줄 때 우물 정(井)으로 구획하는 것으로, 아홉 조각 중 여덟 조각은 사전(私田)으로 1가구당 한 조각씩 분배하고 남은 한 조각은 공전(公田)으로 함께 경작하여 그 소출을 세금으로 낸다. 맹자는 토지 분배방식으로 정전제를 주장하는데, 정전제는 경제생활뿐 아니라 사회생활의 근간이 된다.

조세는 정전제에서 공전을 공동 경작하여 내는 것이다. “농사짓는 사람에게 조법을 적용하고 따로 세금을 거두지 않으면 천하의 농부들이 모두 기뻐하며 그 나라의 땅에서 농사 짓기를 원할 것이다.”(104~105쪽) 정전제와 9분의 1 조세 제도를 통해 맹자는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충분하게 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먹여 살릴 만하게 하여, 풍년에는 언제나 배부르고 흉년에도 죽음을 면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조법은 풍년과 흉년에 따라 세액이 달라지므로 국가에게는 재정의 항상성이 문제가 되지만, 국가가 풍년과 흉년에 그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국가는 토지와 세금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약자를 보살펴야 한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이를 홀아비라고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이를 과부라고 하며, 늙고 자식이 없는 이를 독거노인이라 하고, 어린데 부모가 없는 이를 고아라고 한다. 이들은 천하에 곤궁한 백성으로 그 처지를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는 이들이다. 문왕은 인한 정치를 펼 때 이 네 사람들을 가장 먼저 보살폈다.”(67~69쪽)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 안전망의 확충은 정치가 최우선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토지, 세금, 복지 제도를 갖춘 후에 교육이 필요하다. “상(庠과) 서(序)에서의 교육을 엄격하게 시행효도와 공경의 의미를 거듭해서 가르치면 머리가 희끗한 사람이 길에서 짐을 지거나 이고 다니지 않게 될 것이다.”(51~55쪽) 맹자는 인간다움의 확충이 백성에게는 안정된 생업 이후에야 이루어질 수 있는 또는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그의 계급적 인식의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좋은 정치는 제도를 통한 안정된 생활이 우선함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성이 공감의 주체다

가짜 광해는 명에 파병하고 사대의 예를 갖추어야 한다는 신하들에게 “적당히들 하시오. 대체 이 나라가 누구 나라요? 나에겐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들의 목숨이 백 곱절 천 곱절 더 중요하다”고 일갈한다. 이쯤 되면 진짜 왕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진짜 왕은 이미 세습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백성과 공감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자이다. 진짜가 사실은 가짜였고 가짜가 진짜인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와 가짜를 판단해 정치권력을 맡기는 것은 누구일까? 맹자에게 그것은 백성의 선택이다.

양 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나는 진심으로 백성을 다스립니다. 하내 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곳의 백성들을 하동으로 이주시키고 노약자들에게 식량을 풀어 구제해줍니다. 하동 지방에 흉년이 든 경우에도 그렇게 합니다. 다른 나라를 보면 저처럼 마음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줄어들거나 내 나라의 백성들이 늘어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요?”(36~39쪽)

양 혜왕은 흉년에 백성을 구제했던 것을 내세우며 자신이 누구보다 백성을 사랑한다고 자부한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백성들에게 큰 은혜를 베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그럼에도 자신보다 잘 통치하는 것 같지 않은 이웃 나라 백성들이 자신의 나라로 옮겨 오지 않는 것을 의아해 한다. 그에게 통치는 백성에 대한 시혜이고, 백성은 자신의 소유물로 더 많은 수가 확보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이런 양 혜왕에게 맹자는 그의 태도가 전쟁에서 “오십 보를 도망간 사람이 백 보를 도망간 사람을 보고서 비겁하다고 비웃는 것”과 같다고 질타한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것은 시혜를 좋은 통치 행위라고 생각하는 왕이 나쁘지는 않더라도 나라를 옮겨 가면서까지 함께 해야 할 왕은 아니라는 백성들의 정확한 판단과 선택이다.

왕의 진짜/가짜 마음과 행위를 판단할 수 있는 백성은 공감에 반응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감을 이끌어내는 주체다. 바로 정치의 주체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군주는 하찮다. 그러므로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천자가 된다.”(209쪽) 그리고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들은 위임한 정치권력의 회수를 선택할 수 있다. “인을 해치는 자는 남을 해치는 사람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는 잔인하게 구는 사람이라고 한다. 남을 해치고 잔인하게 구는 사람은 인심을 잃어 고립된 사람일 뿐이다. 인심을 잃어 고립된 사람인 걸과 주를 처형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73~74쪽)

영화 <광해>의 ‘강제 천만’은 무엇을 말하는가?

일요일 저녁 TV를 틀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리더의 조건’을 이야기한다. 역시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누군가 이번 정권을 지나면서 대통령에게 ‘감성적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으며, ‘감성적 능력’은 아픔을 가진 사람의 그 아픔에 가 닿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의 지적처럼 영화 <광해>의 천만 관객 돌파는 가짜 ‘광해’의 진짜 마음에 대한 공감과 환호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정치 현실과 정치인들의 모습에 대한 질책을 의미할 것이다.

의도한 것이었는지 프로그램의 시작은 ‘나는 비정규직이다’였다. 임금 노동자의 50퍼센트가 비정규직인 대한민국, 그들의 아픔은 수많은 또 다른 아픔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와 같은 아픔을 함께 나눌 정치와 정치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과연 그런 정치와 정치인을 요구하고 가질 자격이 있는가? 정작 나는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고 함께 나누지 않으면서 영화처럼 진짜 마음을 가진 왕이 나타나 좋은 정치를 해준다면 그것을 누리고만 싶은 것은 아닌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자신이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임을,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한 영화 <광해>는 설레고, 슬프고, 아픈 영화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