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시대-적절함의 가치를 조롱하다[시대와 철학]

과잉의 시대-적절함의 가치를 조롱하다[시대와 철학]

유현상(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불편한 진실-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과잉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이라도 지나치면 칭찬을 듣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안겨 준다. 나에 대한 과도한 칭찬은 늘 몸 둘 바를 모르게 하고 칭찬하는 이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상 어느 정도의 칭찬이 적절한지는 늘 칭찬의 대상자 자신이 정확하게 알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과잉이 야기하는 문제는 비단 칭찬에 관한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하기야 ‘과잉’이라고 하는 표현 자체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 법한 자태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난’ 이외의 과잉을 경험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수많은 과잉의 숲에서 숨 쉬고 있다. 문제는 과잉의 상태가 긍정의 요소마저 부정적 상황으로 치닫게 만든다는 점이다. 친절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프렌차이즈 식당에서는 주문을 받을 때 종업원들이 거의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는 듯이 자세를 낮추어 주문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위치에 있다고는 하지만 친절의 과잉으로 느껴져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이 겪는 불편함은 서비스 혹은 친절의 과잉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 중 아주 사소한 점에 불과하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사자들도 자발적이기보다는 고용주의 요구에 따른 것이기에 편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친절이든 칭찬이든 적절함을 잃어버릴 때 그것은 즐거운 감정의 형성에 기여하기보다는 찜찜한 뒷맛을 남기기 마련이다. 최근에 벌어진 대한항공 승무원 폭행 사건이나 전화 상담 업무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는 친절 과잉 사회의 폭력적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과잉의 ‘감정노동’에 도사린 이중의 착취

 
최근 각종 언론에서 우리나라의 생산성 향상율 저하가 경제 성장을 더디게 한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특히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이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뒤진다는 보도는 서비스 산업 종사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빌미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게 한다. 이러한 분석들은 1차적으로는 기업의 생산성 강화 노력을 촉구하는 근거로 작용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 강화로 이어질 개연성도 결코 낮지 않다. 특히나 서비스 산업의 최일선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분석이다.
 

그림출처: http://hook.hani.co.kr/archives/33293


 
감정노동의 문제를 대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열악한 근무 조건에 시달리는 감정 노동자들의 근무 실태를 다루는 기사들 대부분이 이른바 몰상식한 고객들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기업 임원에 의한 대한항공 여승무원 폭행사건에 대한 보도에서도 몰상식한 가해자의 행위와 대한항공의 대응 등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의 과잉의 근본적인 책임은 자본에 있다.
 
소비자들이 감정노동자들을 향한 과도한 친절 요구에도 분명 문제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과잉의 서비스에 익숙해진 결과이지 소비자가 먼저 요구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이른바 서비스 경쟁이라고 하는 경영방침이 종업원들에게 지나친 감정노동을 강요하고 소비자들의 태도는 그러한 대우에 익숙해진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소비자가 먼저 밥 먹으러 가서 무릎 꿇고 주문 받는 서비스를 기대했을 리 없고, 허리 깊숙이 숙이는 절을 요구하는 고객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잉의 서비스는 고용주들이 친절을 명백히 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우리가 이만큼이나 극진하게 서비스를 제공했으니 소비자는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못박아두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동일한 제품이 백화점에서 훨씬 비싸게 판매되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도 극진한 친절 비용까지 포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상 그러한 서비스의 제공자는 기업이 아니라 일선의 감정노동자이다. 그러므로 감정노동의 착취는 자본이 노동자들의 감정을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면 감정노동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으로 자본의 전형적 노동 착취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또한 소비자들로부터는 선택의 여지없이 불필요한 비용까지 지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소비자에 대한 착취 구조마저 도사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마치 과대 포장으로 제품 가격을 부풀려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여러 겹의 질곡

 

현재 우리나라에서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그리고 감정노동으로 분류되는 직종들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전문성을 요구하지도 않고 진입 장벽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역으로 말하면 노동 강도가 세고, 저임금일 가능성이 높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신분의 불안전성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필연적으로 여러 겹의 질곡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한다.
 
우선 감정노동자의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가 산업의 영역에서 강고하게 전이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여성의 노동을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산업화 시대에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저임금의 노동집약적 산업에 종사했던 상황이 서비스업으로 전환되었을 뿐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또 다른 질곡은 고용주와 소비자 어떤 쪽으로부터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장치를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감정노동자들에게 고용주의 권력과 소비자의 권리는 이중의 족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감정노동 자체가 이미 상품화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제공하는 감정노동자의 인격적 지위는 원천적으로 상실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정노동자들은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의 소외에 더해 고객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소외까지 경험하게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염려되는 점은 감정노동이 근본적으로 노동자 자신이 스스로에게서 겪는 자기 소외를 경험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자신의 본래 감정과 정서를 어느 정도는 감추어야 한다는 점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가장된 감정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은 스스로에게 견딜 수 없는 질곡이며, 지속적으로 자존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스트레스 이상의 부담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과잉의 억압은 일상을 왜곡한다

 

과도한 친절에의 요구는 일상의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존칭 사용의 왜곡이다. 고객에 대한 지나친 존칭 사용의 관례가 이제는 상품에 대한 존칭으로 굳어지고 있다. 티셔츠 한 장을 구매하려는 순간에 우리는 매장 직원으로부터 “그 제품은 세일중이세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상품에 존칭을 붙이면 우리는 그 상품을 떠받들어 사야 한다는 말인가? 누군가가 일부러 그러한 어법을 사용하라고 가르친 적은 없을 텐데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마치 군대에서 말을 할 때 ‘다’, ‘나’, ‘까’로 문장을 맺으라고 하는 어법을 요구한 결과 “다음 주에는 제가 휴가를 가지 말입니다.”와 같은 어색한 표현이 굳어지고 있는 현상과 같다. 존칭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부담이 모든 말에 존칭을 붙이는 식으로 왜곡되는 것이다.
 
산업 구조에서의 비중이 제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급속하게 확대되는 추세에서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제도적인 보호책 마련은 서비스 산업 생산성 향상보다 시급한 문제이다. 감정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단지 감정의 착취만이 아니라 미래마저 착취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존중은 그들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격적 존중의 태도를 훈련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산업 사회에서처럼 노동자들이 그러했듯 감정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서기 전에 국가와 사회가 먼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사가 아니라 중국사가 한의 역사:김택민이 쓴『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보고 듣고 생각하기]

한국사가 아니라 중국사가 한의 역사

-김택민이 쓴 『3000년 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신서원, 2006-

글:? 나태영(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여유 있으면 8천만 겨레 모두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중국사를 관통하는 고난에 비하면, 우리 역사 관통하는 고난은 소꿉장난 수준이다. 일제강점기 일본학자가 우리 고난 침소봉대했고 이병도 따르는 역사학자들이 계속 식민사관 대물림한다. 이병도는 을사5적 이완용 양아들이다.

한국이 951번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면, 중국 땅에서는 약 3만 번 전쟁이 일어났고, 일본에서는 약 2만 번 전쟁이 일어났다.

중국역사
맨 앞 1천년, 난세 870년 치세 130년
가운데 8백년, 난세 670년 치세 130년
마지막 1천년, 난세 700년 치세 300년(12쪽)

1979년에 박정희가 지 부하한테 총알 맞아 죽었다. 그 때 나는 중3 학생이었다. 1980년에 나는 고 1 학생이었다. 40대 중후반 윤리선생님이 침을 튀기면서 우리는 못난 민족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 『시련과 극복』이라는 책이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책 앞 부분에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한테 9백 몇 십번을 침략 받았다는 내용이 나왔다. 그 내용을 설명하시면서 윤리 선생님이 “우리 민족은 병신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뭐라 설명할 수 없었지만 좀 거시기 했다. 좀 억울했다.

중학교 때 국사 책 앞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고구려가 위장 관구검한테 공격 받아 왕이 어디로 도망갔다. 라는 내용이 말이다. 책을 쓴 학자들이 식민사관에 세뇌되어 그리 썼을 것이다. 중국학자들이 쓴 책을 보면 자기들이 진 전쟁에 대해 역사책 앞에서 다루지 않는다. 수나라, 당나라가 고구려한테 대패한 이야기 잘 다루지 않는다. 간혹 다루더라도 아주 쪼금 다룬다.
 

김택민,『3000년 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신서원, 2006. 사진출처: www.everedu.com/


 
1981년에 서울역 대일학원에 다녔다. 성문기본영어 들었다. 강사는 일본에서 살다가 오신 분이다. 그 분이 그러시더라.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 아닙니다. 원나라한테 침략 받을 때 우리 조상 여자들이 겁탈 당했습니다. 여러분 핏속에 몽골 피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와집 처마는 새 날개 모양입니다. 우리나라가 너무도 많이 다른 나라한테 침략을 받아서 새처럼 자유를 추구하는 마음이 생겨서 건물 처마가 새 날개 모양입니다.

그 분이 또 헛소리 하셨다. 우리가 세계에 내세울 유물이 석굴암이 아닙니다. 비원에 있는 아무개라는 목조건물입니다. 같이 일한 역사 강사가 그러더라. 우리 전통가옥 처마는 아래에서 볼 때 가장 웅장하게 보이도록 각도를 잡았다고 말이다.

우리나라 국사책에
일제 강점기 항목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 세계사 책에는

오호 16국 강점기,
요 강점기,
금 강점기,
원 강점기,
청 강점기

라는 항목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영어판을 1985년에 대학 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다. 일본 항목을 봤더니 1대 왕부터 몇 대왕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나온다. 상식 있는 일본학자들이 몇 대까지는 뻥이라고 인정하는 내용이 버젓이 사실인 양 나왔다. 대한민국 항목을 봤더니 단군 왕검 이야기 나오고 갑자기 서기 삼국시대 이야기 나온다. 단군 왕검 이야기는 신화로 나온다. 서양인들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보면 일본이 한국보다 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로 볼 것이다. 열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 항목은 이 나라 영문과 교수들이 영역했더구만. 당연히 원래 글은 식민사관에 쪄든 이병도 제자들이 썼겠지. 이병도가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 양아들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1985년에 대학생 사촌집에 갔다. 사촌한테 내가 물었다. 일제 시대와 해방초기에는 우리나라 마라톤 선수가 세계 맨 앞 이었는데 지금은 왜 성적이 나쁠까? 사촌이 그러더라. “조선 놈은 3일에 한 번씩 맞아야 정신 차려.” 식민사학자가 우리한테 심어놓은 말을 이 나라 최고 지성인이라는 대학생 입에서 나왔다. 깝깝했다.

이래서 나는 한국고대사에 관심이 많다. “조선 놈은 3일에 한 번씩 맞아야 정신 차려.” 이 말이 이 땅에서 없어지는 그 날까지 나는 한국고대사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3000년 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로 책 제목 바뀜)이 책이 많이 팔려야 화이사관 식민사관 문제 풀 수 있다.

구보씨, 잠에서 깨어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구보씨, 잠에서 깨어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문성원(부산대 교수)

 

?

나름 긴 잠이었다. 구보씨는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크게 하품을 하는 구보씨의 쩍 벌어진 입에도 비춰든다. 아직 졸음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듯 눈을 연신 비벼대는 구보씨, 그 부스스한 모습이 꼭 겨울잠이라도 자고 일어난 짐승 같다.

?

잠이란 참 좋은 거야, 하고 구보씨는 생각한다. 잠은 일종의 축복이지, 잠이 아니고서야 우리가 어떻게 거듭 새로워질 수 있겠어. 구보씨는 마사지하듯 양손으로 얼굴을 부비다가 다시 눈을 끔벅거려 본다. 세상이 맑고 투명하다. 언제 이렇게 환해졌을까. 저 멀리 신록의 산등성이가 뿜어내는 청량함이 피부와 와 닿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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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얼마나 잤지? 영 분명치가 않다. 거푸 퍼마신 술 탓일까. 한 동안 멍한 기분으로 끼적끼적 살아서일까. 그러나 어떻든 세월은 흐른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니 뭐니 하더니 계절은 이미 봄을 훌쩍 타넘고 있지 않은가. 한참을 자고 깨니, 어두운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다. 겨울잠을 자고 난 곰처럼, 구보씨는 뻐근한 팔다리와 몸뚱이를 이리저리 흔들고 비틀어본다.

?

잠은 우리를 순수하게 만든다. 꼬인 몸과 마음의 타래들을 풀어 원상태에 가깝게 돌려놓는다. 서로 얽혀 랙이 걸릴 지경인 프로그램들을 리세팅해주는 격이라고나 할까. 일반적으로 잠은 휴식이고 복구며, 재정비고 새로운 준비다. 활동의 감소와 위축처럼 보이는 잠의 비활성 상태는 깨어 있는 분주함 못지않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잠 잘 때 크고, 미인은 잠잘 때 예뻐진다지 않는가.

?

그러나 겨울잠은 좀 다르다. 거기엔 일종의 마비가 수반되는 까닭이다. 하기야 모든 잠이 얼마간 그렇긴 하다. 보통 우리는 꿈을 꾸는 수면 상태(REM 수면)에서 근육의 긴장을 놓아버린다. 하지만 겨울잠의 경우는 긴장 이완이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흔들어도 쉽게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활동이 정지되고 체온도 떨어진다. 동물들은 겨울잠을 자면서 꿈을 꿀까? 아마 아닐 것이다. 냉동 인간이 꿈을 꿀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가시에 찔려 잠든 숲속의 공주가 그 잠든 백 년 동안 꿈을 꾸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

하지만 ‘팻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까뜨린느 브레야 감독의 영화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는 가시에 찔린 공주가 잠든 사이에 나이도 먹고 꿈도 꾼다. 브레야는 잠이 마비 상태라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브레야의 공주는 그 꿈 속에서 평생의 연인을 만나고, 그 기억을 지닌 채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온다. 이 여성에게는 마비와 멈춤의 시간은 없다. 잠자기 전과 잠이 깬 후, 꿈꾸기 전과 꿈꾸고 난 후는 다르다. 그녀는 순진한 채로 머물러 있지 않다. 그래서 그녀는 깨어나 당당히 행동하고 남자 친구에게 당당히 이렇게 말한다. “난 혼자서 네 세계 속으로 들어갔던 거야.”

?

브레야는 긴 잠의 설정이 함축하는 정지와 수동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나 보다. 어쩌면 거기서 남성 지배의 사회가 설정한 순결과 정조의 이미지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일찍이 이링 페쳐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잠이 순결을 강요하는 상징이라고 해석하지 않았는가. 모름지기 젊은 계집은 정숙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잠은 그 기다림의 강제된 형태다. 그것은 물레 막대기의 뾰족함을 경계하지 못한 데 대한 벌이다. 방종의 유혹이 널린 현실을 함부로 돌아다닌 죄는 마비의 잠으로 가려지고 치장되어야 한다. 백 년 동안의 잠은 순결을 회복하고 보증하는 장치다.

?

이런 종류의 잠은 현실에 대한 외면이고 도피이면서 또한 현실의 강압에 대한 순응이기도 하다. 자고 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굴러간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는 궁전의 요리사가 요리하던 생선까지도 마법에 의해 잠에 빠지지만, 이렇게 잠든 환경은 잠자는 공주의 부속물일 뿐 시간 속 세상이 아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린 채 긴 잠에 빠진 공주는 과연 평화로울까? 그것은 마비의 평화로움, 마비의 순결함일 뿐이다. 더구나 그것은 과연 그녀를 위한 것일까?

?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성 감독 줄리아 리의 영화 ‘슬리핑 뷰티’는 이런 질문에 노골적으로 답한다. 돈이 아쉬운 미모의 대학생 루시는 마비되듯 잠든 채로 발가벗겨져 하얀 침대에 누워 있고 돈과 지위로는 아쉬울 것이 없는 노인네들이 차례로 그녀를 탐한다. 그러나 ‘삽입’은 금지다. 순결함이야말로 이들이 바라는 것이므로. 루시는 자신의 자궁을 결코 성소(聖所)라고 여기지 않지만, 그들은 그것을 원한다. 수동적이고 하얀 몸뚱이의 순수를. 약을 먹고 잠들었다 깬 루시는 자신이 잠자고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모른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계속 순수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더욱 더 더럽혀진 것일까?

?

이런 경우에 잠은 그 약점을 훤히 드러낸다. 이 잠에서 나는 세상과 교호적이지 않은 관계를 맺는다. 나는 세상을 무시하고 세상은 나를 유린한다. 나는 그 유린을 묵과하고 망각함으로써 세상에 아부한다. 때로 우리의 잠은 이렇게 비루하다. 거기에 비하면 동물의 겨울잠은 얼마나 안온한 축복인가. 매서운 겨울 날씨는 동굴에 웅크려 잠자는 짐승의 몸뚱이를 유린하지 못한다.

?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

“뭐가 말이야? 겨울잠 자던 곰? 아니면 나?”

?

“아니, 루시 말이야. 영화 ‘슬리핑 뷰티’의 루시라는 여자…”

?

Y다. 그녀도 일어났다. 그녀는 부스스하지 않고 얌체 같이 예쁘다. 언제나처럼.

?

“글쎄,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막상 돈을 몇 번 손에 쥐고 나자 잠잘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궁금한 거야. 그래서 침대에 눕기 전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지.”

?

“그럼 결국 알게 됐겠네?”

?

“근데 그렇게 영화가 진행되면 시시하지 않겠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고서는 마비된 순수를 파는 일을 그만둔다? 아니면 분노에 차서 복수를 한다? 이거 다 너무 통속적이잖아.”

?

“왜, 그 더럽고 못된 노인네들을 혼내 주는 게 괜찮을 것 같은데. 폭로해서 몰락시킨다든지 아니면 짤 라버린다든지 해서 말이야. 난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걸 생각만 해도 오싹해. 검사들 접대 사건만 해도 그렇잖아, 그 개새끼들… 그래도 정신 못 차리고 윤창중이 같은 기가 막힌 일도 생기고…”

??

“허, Y야, 잘 자고 나서 왜 그래? 아무튼 이 영화에선 그런 식으로 처리하진 않아. 줄리아 리라는 감독이 시나리오도 썼는데, 그 여잔 루시를 유린하는 현실 자체의 공허함이나 균열을 드러내려 하지. 싸움으로 몰고 간다면 그 노인네들, 그러니까 지배 계층의 패배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환상적 만족에 그치지 않겠어? 아니면 그저 그런 고발 영화가 되고 말거나…”

?

“줄리아 리? 그 사람 한국계야?”

?

“아니, Leigh라고 쓰는데, 호주 여자야. 소설도 쓰는 작가고. 그런데 이 영화 원작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이지.”

?

“가와바타?

?

“가와바타? [설국]의 그 가와바타 말이야?”

?

“맞아. 그 사람 소설에 [잠자는 미녀]라고 있거든. 1960년에 발표한 거니까 줄리아 리의 영화보다 50년 전이지. 거기서도 잠재워 놓은 젊은 처자를 탐하는 노인이 나와. 영화의 기본 얼개는 이 소설에서 따왔다고 봐야지. 하지만 세부 내용이나 분위기는 꽤 달라. 무엇보다 가와바타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에구찌(江口)라는 노인네거든. 이 노인네가 수면제를 먹여 잠재운 여자랑 동침할 수 있게 해주는 유곽을 찾아가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 거야. 여러 번에 걸쳐 이 여자 저 여자랑 같이 자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거지.”

?

“그게 무슨 이 생각 저 생각이야, 이런 지랄 저런 지랄이지. 드런 놈들, 구역질 나.”

?

“하하… 왜 나한테 그래? 가와바타 소설이 남성 중심적인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섬세함이 있잖아… 아무튼 그래서 영화에선 여자를 주인공으로 놓는 거 아닐까. 루시라는 여자가 겪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거든. 하긴 영화에서도 에구찌 비슷한 노인네가 나오긴 해. 공허해하고 우울해하며 삶에 그다지 애착을 갖지 못하는 노인네… 이 노인네는 결국 잠든 루시 옆에서 약을 먹고 죽지. 가와바타 소설에서는 옆에서 자던 여자가 죽거든. 나는 이게 현실의 공허와 균열을 나타내려는 장치라고 봐. 루시를 유린하는 현실은 실상 노쇠한 무의미의 현실, ‘뼈가 부러진’ 현실이야. 그 현실은 이제 절망하여 스스로 무너지지. 그렇지만 루시처럼 마비 상태로 잠들어 있으면 깨어나서는 소스라치며 놀라 소리 지르게 돼. 이건 잠의 부정적 이미지야. 망각과 아부의 잠, 그건 결국 죽음과 동침하는 잠이고 죽음과도 같은 잠이지. 루시의 카메라에 찍힌 잠의 모습처럼. 그게 싫으면 깨어 있어야 하는 거야. 불면(不眠)의 주의력으로 눈을 똑바로 뜨고 말이지.”

?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아까는 잠이 축복이라고 하지 않았어? 횡설수설하는 것을 보니 아직 잠이 덜 깬 거 아냐?”

?

“내 참, Y야, 그러니까 잠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거야. 꿈꾸는 잠과 마비의 잠. 회복과 갱신을 위해서는 잠을 자되 넋을 놓고 있지는 말아야 하는 거라구. 꿈도 없는 깊은 잠은 꿈꾸는 잠과 결합되어 있을 때만, 또 야경(夜警)의 매서운 눈초리와 결합되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겨울잠을 잘 수 없는 거지. 우리네 삶에는 겨울을 피해갈 수 있는 안온한 동굴이란 없으니까…”

?

“하지만 구보야, 내가 볼 때 나쁜 잠과 좋은 잠을 가르는 특징은 딴 데 있어. 그렇게 잠꼬대처럼 복잡하지 않고 아주 단순한 거라구.”

?

“뭔데?”

?

“코 골지 않는 거. 구보야, 내가 왜 이런 말 하는지 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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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과 베토벤

 

강사 : 이관형(서울과학기술대학교 외래교수)
정리 : 박태근(알라딘 인문 MD)???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프레시안>, 출판사 알렙이 기획한 ‘교양 대한민국, 청춘의 고전’ 시즌 3 두 번째 강좌.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외래교수 이관형이 강연자로 나서 근대 철학과 근대 음악의 거장으로 꼽히는 헤겔과 베토벤을 겹쳐보며 철학과 예술을 통한 인간 정신의 자유가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본다.

이날 강연은 바이올리니스트 최윤정, 피아니스트 최규진이 함께 연주한 베토벤의 <로망스>로 시작했는데, 정작 강연 안에는 음악이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만 없을 뿐 인간 정신의 자유가 만들어내는 화음은 어느 음악 못지않게 매혹적이었다. 헤겔이 전하는 묵직한 철학의 사유, 베토벤이 전하는 감각적인 음악의 사유에 들어가 보자. <편집자>

 

ⓒ알렙(조영남)

공교롭게도 베토벤과 헤겔은 1770년 같은 해에 태어났습니다. 서로 알고는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헤겔이 베토벤에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살아서 로시니, 죽어서 베토벤’이란 말이 있는데 로시니는 생전에 각광을 받았고, 베토벤은 그렇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빈 고전파를 띄우기 위해 베토벤 영웅 만들기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베토벤 그리고 ‘짜자자잔’ 하는 <운명>은 다들 알고 있잖습니까. 오늘 강의에서는 베토벤과 헤겔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당대의 지적 배경과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세계의 세계화’는 근대의 산물이다

한동안 ‘글로벌’이 유행했지요. 그런데 요즘 글로벌이라고 하면 글로벌 금융 위기밖에는 없습니다. 글로벌, 그러니까 세계화라는 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과거를 돌아보면 교류가 있었다고 해도 ‘세계가 하나다’라는 인식은 없었을 겁니다. 근대화가 되면서 그런 의식이 생겨난 거지요. 근대의 핵심은 상공업에 있는데, 농업에 기초한 이전 시대에서 벗어나 획기적인 삶의 변화가 생긴 겁니다. 산업혁명을 통해서 농업 사회에서 상공업 사회로 바뀐 거지요. 이 과정은 혹독했습니다. 산업혁명 초기에 어린이와 여성의 노동 참여가 그랬지요. 물론 이를 통해 여성이 참정권을 얻기도 했지만요. 세계화와 관련해, 당시를 지배한 제국주의를 생각할 수 있을 텐데요. 서양이 동양에 올 때 배에 태우는 세 부류가 있습니다. 선교사, 상인, 군인이지요. 이게 바로 근대의 표상인데요. 기독교와 자본주의와 폭력입니다. 무력과 상품과 종교를 매개로 유럽이 전 세계를 유린한 겁니다. 지금도 유럽의 평화 뒤에는 아프리카의 고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우리는 여전히 그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걸로 보입니다. 우리도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죠. 그 증거가 바로 이 자리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생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면 베토벤이나 음악 이야기를 할 수 없었겠지요.

제가 왜 근대화, 세계화 이야기를 먼저 꺼냈느냐 하면, 바로 ‘세계정신’이란 표현을 헤겔과 베토벤에게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각각 철학과 음악에 세계정신을 담아낸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근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중세에는 신이 주인이고 주어입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면 인간이 주인이 됩니다. 인간이 주체가 되는 거지요. ‘신은 죽었다’는 표현도 근대에 들어서야 등장한 겁니다. 그런데 이때 신만 죽은 게 아닙니다. 자연도 죽습니다. 이성을 지니지 못한 존재는 곧 죽은 겁니다. 그래서 자연이 죽은 거지요. 이제 인간의 이성만 남았는데, 이런 생각을 시작한 데카르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동물은 사유하지 않고, 정신적 세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동물은 기계와 똑같은 순수 메커니즘일 뿐이다. 누군가 동물을 때리면 그 동물은 곧 울부짖는다. 이것은 누군가가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기만 하면 즉시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춘수의 시에도 이런 말이 나오지요.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 데카르트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표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제국주의를 통해 이런 근대정신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데, 이 영향으로 사람들이 마주한 새로운 삶의 양식이 바로 근대입니다. 과거 로마나 몽골이 큰 영토를 장악했다고 해도,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바꿔놓지는 못했기 때문에 세계화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근대에 이르러서야 ‘세계적’이라는 말이 가능한 거지요. 근대에 들어서면 그 사람이 유럽에 살든지 동아시아에 살든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잖아요. 물론 문화적 차이야 있겠지만요.

 

‘세계정신’ 탄생의 역설

 

그럼 베토벤과 헤겔이 활동한 독일의 근대화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괴테는 독일문학을 세계문학으로, 헤겔은 독일철학을 세계

▲ 베토벤. ⓒko.wikipedia.org

철학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베토벤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표현인데요. 베토벤도 독일음악을 세계음악으로 만든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왜 이들에게 ‘세계적’이란 표현을 쓰느냐 하면, 이들이 근대정신의 총아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근대화와 세계화의 연관성에 대해 말씀드린 걸 떠올려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당시 독일은 유럽에서 후진국에 속했습니다. 독일이라는 하나의 국가도 형성하지 못한 상태였지요. 이런 후진국에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거장이 동시에 출현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 아닐까요. 영국은 명예혁명과 산업혁명을 주도한 나라고, 프랑스는 풍요로운 농업 자원에 시민혁명이 더해져서 현실에서의 자유국가를 실현하는 상황이었는데, 독일은 시민이란 계급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혁명을 주도할 세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몽’에 집중한 거지요. 시민을 키워내야 했으니까요. 물론 당시 유럽 전역이 계몽주의의 열풍이었지만, 독일은 혁명의 가능성이 적었기 때문에 여기에 더 집중을 한 겁니다. 이런 분위기에 현실에서의 자유국가 형성에서도 어려움을 겪으니 ‘사유의 자유’에 더욱 힘을 쏟은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터졌을 때, 유럽의 지식인들이 열광을 했지요. 자유, 평등, 사랑의 정신에 입각한 정치 제도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혁명의 성공 이후 공포정치가 나타났지요. 로베스피에르 같은 사람이 꿈꾼 건 절대적 자유와 평등인데 ‘절대적’이라는 게 현실에서 가능할 리가 없잖습니까. 여기에서 이탈한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이기 시작하는데, 결국 그 자신도 교수대에서 목숨을 잃게 된 거지요. 이런 상황을 보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절대 자유는 현실에 없는 게 아닐까?’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 사상에서의 자유를 꿈꾸게 된 겁니다.

당시 나폴레옹이 자기네 나라를 쳐들어올 때 지식인 사회는 이를 크게 반겼는데, 프랑스 혁명을 자기 나라에 전파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헤겔이 <정신현상학>을 쓰다가 나폴레옹 군대가 들어온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저기를 보라, 말을 탄 세계정신이 지나간다.”고 말하기까지 했겠습니까. 베토벤은 어떻습니까. ‘보나파르트’라는 곡을 만들어 헌정하려고도 했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어떻게 됐습니까. ‘보나파르트’라는 곡이 <영웅>으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혁명이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거지요. 이런 답답함이 사유와 내면에 집중하게 된 결과를 낳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비슷한 시기에 대문호, 대철학자, 대음악가가 나온 거지요.

 

헤겔의 자유; 예술, 철학, 종교

 

이제 헤겔과 베토벤이 자유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헤겔은 독일에서 분열을 봤습니다. 분열된 국가 그리고 분열의 소산인

▲ 헤겔. ⓒgreenbee.co.kr

근대, 두 가지 분열을 동시에 본 겁니다. 근대는 세분화되어 각각 독자적 발전을 추구하거든요. 정치권력 분권, 경제적 분업, 분과 학문이 그 모습이지요. 한편 근대는 통합이기도 합니다. 시장 원리로의 통합 말입니다. 그러니까 돈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거지요. 돈은 많아졌는데 돈에 대한 면역 체계는 떨어졌다고 하겠습니다. 이렇듯 근대는 분열과 통합이 동시에 일어나는 과정인데, 헤겔은 여기에서 분열을 본 겁니다. 무슨 분열을 봤느냐. 바로 주관과 객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연과 정신, 이론과 실천, 진리와 도덕, 자유와 필연의 분열과 대립입니다.

근대 이전까지는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삶이었지요. 그런데 근대 문명의 발달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소원하게, 서로 소외시키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자연은 인간 앞에 놓인 대상이 된 겁니다. 이런 주인과 대상 간의 분열을 철학에서는 주관과 객관의 분열이라고 합니다. 자연과 정신이 나뉘는 거지요. 이때부터 인간의 사유는 무한을 지향하기 시작합니다. 자연을 한계로 보고 그걸 넘어서려 하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자연과 정신의 조화는 없습니다. 근대 자체가 이 조화를 깨뜨리고 나온 거니까요. 자연과 조화롭게 산다는 건 동물적 삶이겠지요. 그런데 인간은 이미 선악과를 따먹은 겁니다. 문명화의 길에 들어선 거지요.

저는 근대 이후 둘의 화합은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인류가 파멸로 간다는 세간의 말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릅니다. 헤겔이 말한 분열이 바로 이겁니다. 그는 여기에서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말하는데, 예술, 종교, 철학(학문)이 인간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본 겁니다. 자연 세계는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돌이나 인간이나 중력의 법칙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건 매한가지잖아요. 이에 비해 인간의 사유는 법칙에 구속받지 않고 여러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의 가능성은 결국 정신에 있는 것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뭐냐. 헤겔이 볼 때는 그게 바로 예술, 종교, 철학이라는 겁니다. 절대정신이 실현되는 영역이 이 셋이라는 거지요.

오늘은 예술에 대해 얘기해볼 텐데요. 헤겔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하찮게 봤습니다. 특이하죠? 우리 상식에는 자연이 예술보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칸트도 우리처럼 생각했거든요. 예술은 자연의 모방일 뿐이라고요. 그런데 헤겔은 알프스를 보고도 ‘무한하게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형식의 나열’이라는 재미없는 말만 했거든요. (웃음) 자연이 아름답다는 건 기껏해야 ‘조화롭다’ 정도라는 겁니다. 헤겔은 인간의 정신을 훨씬 높이 평가했습니다. 흙에서 나온 인간이 흙을 사유하게 되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은 거지요. 이걸 가능하게 해준 게 바로 정신이니까요. 그래서 헤겔이야말로 진정한 근대주의자라고 불리는 겁니다.

헤겔은 예술이 가장 발전한 시대를 고대 그리스 시대로 꼽습니다. 헤겔은 예술이 상징적 예술 형식, 고전적 예술 형식, 낭만적 예술 형식으로 발전해왔다고 보는데, 상징적 예술 형식의 단계에서는 인간의 의식 수준이 자연의 풍요로움을 따라가지 못한 상황이라고 보고, 고전적 예술 형식의 단계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가장 잘 조화를 이루던 때라고 보는데, 이걸 잘 드러낸 게 그리스 건축이라는 겁니다. 마지막 낭만적 예술 형식에 이르면 무한한 인간 정신이 유한한 자연을 압도하기 때문에 예술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발견될 수 없는 거지요. 예술을 통해서는 정신의 자유가 드러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와 철학을 이보다 높은 단계로 보고, 철학을 통해서만 인간 정신의 자유가 드러날 수 있다고 한 겁니다. 이제 그림이 그려지시죠?

정리하면 헤겔이 보기에는 철학을 통해 세계에 대한 개념적 파악을 하는 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자유인 겁니다. 그런데 제가 해보니까 전혀 자유롭지 않더라고요. 매일 책만 읽는다고 아내에게 구박을 받습니다. (웃음) 개념적 파악과 현실적 상황의 괴리 때문이겠지요. (웃음) 어쨌든 헤겔은 이렇게 봤다는 거죠. 제가 농담처럼 말씀드렸지만, 어떤 면에서는 헤겔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요. 철학 공부를 하다 깨닫는 희열이 있거든요. 그런데 정말 예술, 종교, 철학 빼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저도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헤겔이 유효한 까닭이기도 하겠지요.

베토벤의 음악; 정신적인 생명을 감각적인 생명으로

이제 베토벤을 살펴볼까요. 그런데 헤겔은 베토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합니다. 모차르트나 로시니에 대해서는 극찬을 하면서도 베토벤에 대해서는 말을 안 했거든요. 헤겔 전집에 베토벤이라는 이름이 아예 나오질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번에는 베토벤이 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베토벤은 형편이 좋지 못했고, 그래서 음악을 하는 과정을 보면 생계를 위한 모습도 종종 보입니다. 그 삶을 살펴보면 베토벤이 공부를 깊이 있게 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로맹 롤랑의 <괴테와 베토벤>(웅진닷컴, 2000)을 보면, 베토벤이 “음악은 정신적인 생명을 감각적인 생명으로 옮겨주는 행위”라고 했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헤겔과 똑같은 말인데요. 예술이라는 건 인간 안의 정신을 감각화시키는 거라는 말인데, 헤겔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보통은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술이라는 건 아름답게 꾸민다거나 인간의 정서에 도움을 준다거나, 이렇게 생각을 하겠지요.

어쨌든 헤겔과 베토벤이 이 부분에서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헤겔도 예술이 자유의 영역인 이유는 인간 정신을 감각적인 형태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했거든요. 달을 가리키는데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냐는 이야기가 있지요. 헤겔의 예술관은 손가락을 보는 겁니다. 예술 작품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예술 작품 속에 진리가 들어있고, 예술 작품은 진리가 감각화되어서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헤겔처럼 진리를 찾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면 너무 피곤하겠지요. (웃음) 예술 작품이 주는 미라는 건 진리가 던지는 미가 투사되어 나타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얼마나 진리를 잘 드러내느냐에 따라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이 가려지는 겁니다. 헤겔 미학은 그의 철학과 함께 헤겔 사후 현대 사상에서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예술이라는 게 정신을 감각화시킨 것인지, 예술이라는 게 과연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인지. 이 부분에서 헤겔과 베토벤의 생각이 겹치는 겁니다. 헤겔과 베토벤은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지만, 각자의 영역을 통해서 자신의 정신세계와 정신의 진리를 철학과 음악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는 거지요. 헤겔이 베토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둘 사이에는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지요. 오카다 아케오의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 음악사>(삼양미디어, 2009)에 나온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았는데요.

“고전주의 이전의 음악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18세기 중엽 시민계급의 성장과 계몽주의의 전개와 함께 고전주의가 출현하였으며 이로부터 근대 시민을 위한 음악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음악적으로 귀족 세계와 연을 끊게 되는 것은 고전주의(빈 고전주의)의 3대 거장 중에서도 베토벤에 이르러서다.”

▲(오카다 아케오 지음, 이진주 옮김, 삼양미디어 펴냄). ⓒ삼양미디어

그러니까 베토벤 역시 귀족의 후원으로 연명을 했지만 귀족 세계를 드러내는 음악의 형식을 처음으로 거부했다는 겁니다.

“교향곡을 예로 들면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경우 제3악장은 반드시 미뉴에트를 쓴다. 그리고 미뉴에트의 중간에는 민중적인 성격트리오가 들어간다. 귀족의 만찬에 농민들도 초대하여 양자가 어우러짐을 상징하기 위해서이다. 그렇지만 이런 화해는 귀족의 덕과 포용력에 의한, 즉 귀족의 우위에서 이루어지는 일시적인 화해, 위장된 화해에 불과하다. 베토벤은 여기에 교향곡 제1번 제3악장에서 보듯 제목은 미뉴에트이지만 실제로는 스케르초를 집어넣는다. 미뉴에트에서와 같은 화해는 더 이상 없다.”

그래서 베토벤에 이르러서야 정말 시민을 위한 음악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겁니다. 보통 빈 고전주의를 시민 음악의 시작으로 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귀족 세력과의 결별은 베토벤에 와서야 가능했다는 거지요. 또한 마지막 악장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대개 4악장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거든요. 그런데 베토벤의 6번 전원 교향곡을 보면 마지막 악장에서도 계속해서 상승합니다. 타협을 하지 않는 거지요.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도 특이한데, 이 합창에는 천 명, 만 명이 참여할 수 있거든요.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이런 참여가 불가능합니다. 귀족적이고 선이 가늘기 때문이지요. 이런 면에서 베토벤에 이르러서야 근대 시민의 음악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베토벤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이처럼 베토벤과 헤겔은 사유와 정신의 자유를 보여주는데, 제 생각에는 인류사가 지속하는 한 두 사람은 거의 불멸의 존재로 남을 거라고 봅니다. 두 사람이 다룬 주관과 객관, 정신과 자연의 분열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고, 둘 사이에서 나름의 자유를 보여준 두 사람의 철학과 음악의 수준을 우리는 여전히 뛰어넘지 못한 걸로 보이거든요. 현대 철학에서는 여전히 헤겔 죽이기가 과제인데, 이는 그만큼 헤겔이 쉽게 죽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요.

전통적으로 진선미란 세 가지 정신적 가치가 있는데, 진리를 모르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고, 선이 없으면 나쁜 놈 소리를 듣기 쉽습니다. 그리고 미의식이 결여되면 센스가 없다는 평가를 받지요. 사실 선이 없는 게 제일 안 좋은 거죠. 물론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진리를 모르는 것도 치명적이겠지만요. 그나마 제일 문제가 덜 되는 게 미적 감각입니다. 그런데 사회가 바뀌면서 경제적인 소외나 복지뿐 아니라 문화적 소외, 문화적 복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미의식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나뉘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친구들은 미의식이 결여된 걸 창피한 일로 여깁니다. 어쩌면 오늘 헤겔과 베토벤을 불러내 인간의 자유를 철학과 예술에서 찾아본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근대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근대에 드러난 이 ‘세계정신’은 여전히 눈여겨봐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청춘의 고전3> 음악회를 성황리에 마쳤습니다[ⓔ시대와철학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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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출연진이 무대에 올라 황병기의 [비단길]을 연주하고 있다. ⓒ프레시안(민정훈)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정독도서관, 알렙출판사가 공동 주최한 행사인 ‘철학자와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가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의 사회로 5월 11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이번 음악회는 교양강의 [교양 대한민국, 청춘의 고전3] 강좌의 강사진이 간단하게 철학이야기를 진행하고 이와 관련된 음악을 연주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강지은 건국대 외래교수와 이순웅 숭실대 외래교수, 김성우 올인고전학당 연구소장의 순서로 진행된 이날 음악회에는 100여명의 관객이 정독도서관의 잔디밭과 주변을 가득 채운 채 진행되었다.?

연주자로는 클래식 연주악단인 E&I 앙상블과 퓨전 국악트리오인 강은일해금플러스, 그리고 신진 레게밴드 레드로우가 참여했다

강지은 교수는 [니벨룽의 반지]로 잘 알려진 바그너의 음악과 철학자 니체의 사상을 짚어보는 강연을 맡았다. 강 교수는 바그너와 니체의 개인적 인연에서 시작하여 서로의 사상에 끼친 영향 등을 중심으로 설명하였다. 강 교수는 “획일화된 대중문화로 병들어가는 현대 사회를 향한 힐링의 메시지를 니체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하며 니체의 사상과 음악, 바그너, 비제 등을 읽고 사색하도록 청중에게 안내했다.?

E&I 앙상블은 바그너의 대표작인 [니벨룽의 반지] 1편에 해당하는 [라인의 황금] 서주를 실연해 보였으며 원래 니체가 작곡한 성악곡 ‘영원’을 편곡하여 연주했다. 이어 연주된 아바네라는 니체가 바그너를 부정하고 대신 비제를 극찬하며 인용했던 오페라 [카르멘]의 삽입곡이다.?

두 번째 강연은 이순웅 교수가 맡았다. 이 교수는 “우물 안에서 벗어나 박스를 박차고 철학과 음악의 퓨전 요리를 만들어보자”며 “재즈는 자유로움의 대명사고, 삶처럼 유동적이며, 삶처럼 즉흥적”이라고 설명했다. 강은일해금플러스의 연주는 이 교수의 이야기와 하나가 되었다. 이미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한 국내의 대표적 젊은 해금 연주자인 강은일의 연주에 맞춰 콘트라베이스와 키보드가 재즈 연주자 커티스 풀러의 대표곡 [러브 유어 스펠 이즈 에브리웨어]를 색다르게 각색해 연주했으며 화려한 연주에 관객의 박수가 쏟아졌다.?

약간 뜨겁게 느껴질 정도의 햇살이 내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잡은 관객들은 마지막까지 함께하였으며 그 자리는 대중음악과 철학의 만남이었다. 김성우 소장은 비틀스와 아바의 음악으로 지젝의 융합 철학을 설명했다. 당대의 다양한 흐름을 받아들여 향후 대중음악을 정의한 두 그룹의 존재 의의가 변방의 고유성과 세계적 보편성을 융합해 젊은 철학의 거두로 성장한 지젝의 그것과 닮았다는 설명이었다. 연주를 맡은 레드로우도 비틀스의 [컴 투게더]를 2인 레게 연주로 편곡해 큰 박수를 받았다.

?공연 마지막은 전 출연진이 무대에 올라와 비틀스의 [렛 잇 비]와 아바의 [댄싱 퀸], 그리고 황병기의 [비단길]을 연주하는 순으로 마무리했다.?

지난 1월부터 진행된 [교양 대한민국, 청춘의 고전3] 강좌는 매달 두 차례씩 12회 예정으로 정독도서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2011년부터 프레시안이 공동 주최한 [청춘의 고전] 강좌 시리즈는 영화와 미술, 음악 등 우리 일상의 예술을 통해 철학의 세계를 음미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다음달까지 둘째, 넷째 수요일 저녁 7시에 진행된다.?

이 강좌 내용은 각각 [청춘의 고전],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이 중 [청춘의 고전]은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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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선포했던 북한, 사실은 세계평화를 원한다![철학자의 서재]

가라타니 고진의 <정치를 말하다>

 

이정은(연세대학교 외래교수)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불안한 사회에 살면서도 별로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불안한 정세 때문에 외부 투자자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나라가 있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종군 기자를 급파하게 만드는 나라가 있다. 외부에서는 전쟁이 일어난다고 난리법석인데, 정작 내부에서는 조용한 일상만 반복되는 이 나라, 그래서 급파된 종군 기자들이 본국으로 송출할 전쟁 기사를 쓰지 못하는 이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

급파된 종군 기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이해당사자인 이 나라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전쟁 불감증에 걸려있기라도 한 것인가? 무덤덤함을 일상적 태도로 만든 요인이 있을 테고, 그 요인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로 상상 가능하다.

전쟁 도발 운운하는 북한이 실제로 전쟁을 원한다기보다는, 전 세계인이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써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관심과 신경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구하겠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이다. 도발 가능성이 높은 집단도 평화와 안정을 갈망한다는 것에 귀추를 주목해 보자.

무서운 전쟁 무기나 핵무기는-간혹 그런 자들이 있다고 해도-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은 아니다. 상대국의 도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며, 만약의 사태를 위한 대비용이다. 전쟁 대비는 자국의 안정과 평화를 지켜낸다는 데 목적이 있지, 전쟁 도발에 있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을 야기하는 강한 몸짓은 평화를 실현하고 싶다는 우회적 몸짓이다.

우회적 몸짓은 오늘날의 한반도 상황을 고려하면, 북한이 그들을 한 국가(state)로 인정해달라는 것, 달리 말하면 침략국 지위를 벗어나서 독립 국가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며, 정당한 국가로서 소통하는 국제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렇듯 ‘한 국가’로 인정받는 것은 전쟁을 운운하게 할 만큼 중요하다. ‘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벼랑 끝 전술을 끊임없이 구사하는 점에 주목하면,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 형태와 그로 인해 펼쳐지는 국제 관계는 ‘국가’라는 단위와 국가 수준의 상호 소통을 필히 요구한다.

▲(가라타니 고진·고아라시 구하치로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펴냄). ⓒ도서출판b

공동체 관계에서는 ‘국가’가 본질적임을 세계사적 흐름에서 분석하면서 자본 팽창에도 불구하고 경제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국가의 고유성과 근원성이 존재한다고 강조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가라타니 고진이다. 고진은 문학 비평을 통해 국가 논의를 점차로 구체화해 나간다. 특히 후기로 이어지는 <트랜스크리틱>(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한길사 펴냄)이나 <세계 공화국으로>(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펴냄)에서 ‘자본=네이션=국가’라는 도식을 만들고, 국제 관계에서 국가의 역할과 평화로운 국가 관계를 구현하는 방법, 즉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고진은 그러한 고민과 사상 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인터뷰 형식으로 출판된 <정치를 말하다>(가라타니 고진·고아라시 구하치로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펴냄)에서 보여준다.

한반도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일본도 대미 관계에서 국가의 자존심과 굴욕적 상황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민족적 자존심을 우리랑 비슷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고진은 고민의 출발점을 1960년대 ‘일미 안전 보장 조약 개정 반대’ 운동을 벌였던 상황에서부터 설명한다. 그는 이 세대를 유럽의 68세대와 같은 세대라고 규정한다. 일본의 학생 파워가 스탈린식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신좌익 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발휘되었으며, 이 당시에 ‘국가’와 ‘네이션’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한미 관계도 국가 간 문제와 남북 민족 문제가 서로 연결되어 지속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면서 우리네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효순이·미선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 간 상호 인정의 틀에서 동등한 한미 관계 문제를 고민하게 됐지만, 아직도 미진한 면이 많다. 하지만 남북 문제에 뒤따르는 민족 문제는 한반도가 고진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전쟁 발발과 관련된 세계 평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평생의 문제의식을 형성하고 그 뒤의 행보를 이끌어간 사상적 변화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정치를 말하다>는 우리네 삶을 위해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고진은 “일본이 메이지 이래로 봉건 사회에 존재했던 자치적인 개별 사회를 전면적으로 해체하여 전부 전체 사회로 흡수하고 급속한 근대화를 달성”(153쪽)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중간 계급이 지속적으로 소멸했고 ‘대의제는 귀족정’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진단한다. 몽테스키외의 주장에 비추어 보면, 중간 계급의 소멸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고진은 “중간 세력이 일본에서 거의 소멸한”(156쪽) 2000년을 돌아보면, 일본은 데모가 없는 나라가 되었고, 민주주의 실현에서 맹점을 지닌 나라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면서 바다 건너 한국에는 데모가 있다는 것에 부러움을 표한다.

고진은 중간 계급이 소멸하면 민주 정치가 점차 전제 정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는데, 이런 우려를 한국 사회에도 적용하거나 예단할 수 있을까?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진은 ‘대의제 이외의 정치 행위’를 찾는다. 그는 “대의제만으로는 민주주의일 수 없습니다. 실제 아메리카에서는 데모가 많습니다. 선거 운동 그 자체도 데모 같은 것입니다. 데모와 같은 행위가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입니다.”(160쪽)라고 말한다.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펴냄). ⓒ도서출판b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팽창이 극에 달하고 있어서 국가가 자본으로, 정치가 경제로 환원되며, 국가와 정치가 자본과 경제에 휘둘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런 상황이기에 더욱 더, 고진은 자본과 구별되는 국가 및 네이션(민족)의 독자적 역할을 강조한다. 독자성을 강조하는 것은 세계 평화를 위해 국가라는 단위의 독립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잘 생각해 보면, 자국의 안정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자국 중심의 이해관계를 펼치는 가운데서도, 오히려 국가의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세계 평화를 실현해야 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세계적 차원의 평화라는 착상이 없이는 자국의 평화도 보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진은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이면서 ‘국가를 넘어서는 대안’을 마련하는 데 통찰력을 주는 ‘칸트의 영구 평화론’에 심취한다. 칸트의 세계 시민 사회와 세계 국가를 ‘세계 공화국’이라는 용어로 발전시키면서 ‘트랜스크리틱’을 펼쳐 나간다.

그는 9.11 이후에 특별히 더 국가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동체 관계에서는 ‘국가’가 본질적임을 세계사적 흐름에서 분석하면서 국가의 본질과 기원을 추적하면 “국가는 처음부터 다른 국가에 대해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 간 경계가 해체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도 “다른 국가와 무관하게 일국만의 국가 지양”(99쪽)은 있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아나키스트적 공산주의가 국가와 민족 문제에 걸리면 자꾸 넘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기반으로 ‘국가를 넘어서는 대안’을 탐구해야 하며, 그래서 고진은 칸트의 ‘세계시민사회와 세계국가’로 나아간다.

왜 칸트인가? 고진은 공산주의라고 해도 ‘어떤 이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이념을 강력하게 설정할 때 생기는 부작용도 있다. 마르크스에게도 공산주의 이념은 있었지만, 그것은 결코 칸트가 말하는 ‘구성적 이념’은 아니었다. 공산주의 이념을 구성적 이념으로 오인했기 때문에 소련식 사회주의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서, 고진은 이를 돌파할 방법을 찾아 나간다.

칸트가 ‘구성적 이념과 규제적 이념’을 구별하는 것은 규제적 이념에 구성적 이념을 적용할 때 이성의 폭력이 생겨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련식 사회주의는 ‘이성의 구성적 사용이자 이성의 폭력’이다. ‘마르크스가 부정한 것’은 ‘공산주의 이념’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구성적 이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성적 이념을 휘두르다 스스로 좌절한 사람들이 이번에는 이념 일반에 대한 원망”(72쪽)을 터뜨리는데, 그 결과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그러나 고진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기보다는, 포스트모더니즘에는 칸트와 마르크스의 규제적 이념과 만나는 지점이 있고, 그것 때문에 칸트와 마르크스를 통한 ‘트랜스크리틱’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고진은 자신의 복안을 이렇게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한 비판을 받아들인 후에 코뮤니즘이라는 형이상학을 재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칸트가 불가결했던 것입니다.”(74쪽)

물론 고진이 칸트를 결정적으로 도입한 것은 정치적 대안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 간 경계를 넘어서는 자본주의 팽창, 신자유주의 효과는 경제 문제와 정치 문제를 동시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불리는 사태는 1970년대 선진국에서 발생한 이윤율 저하, 만성 불황이라는 위기에서 시작”(126쪽)되었는데, 지금 상황은 선진국의 내구 소비재 보급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새로운 자본주의 활로를 찾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고진이 보기에, 이런 활로를 개척하는 것은 “아메리카의 군사적 헤게모니에 대한 의존”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라기보다는 신제국주의”(126쪽)라고 진단한다.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한길사 펴냄). ⓒ송태욱

자본 팽창 속에서 신제국주의를 포착하는 고진이 ‘국가와 네이션’의 독자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고민과 맞물려서 고진이 지적하는 것이 걸프 전쟁(1991년)이다. “소련의 붕괴, 냉전 구조의 붕괴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뼈저리게 느낀 것이 걸프 전쟁”(76쪽)이었고, 국가 간 대항 세력이 없으면, 일방적 국제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구 평화론은 혁명을 목도하면서 전쟁 위협을 뼈저리게 느낀 칸트가 결국 국제 관계는 평화 운동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평화 실현은 국가 관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국가를 넘어서는 세계 공화국’이라는 국제적 대안이 있어야 현실력을 갖는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고진이 이렇듯 칸트를 대안으로 삼은 데는 정치 문제만이 아니라, 칸트 이면에는 윤리를 ‘주관적 문제’로만이 아니라 ‘경제적 문제'(75쪽)로도 생각한다는 자각 때문이다. 칸트는 도덕성의 근간으로 “타인을 수단으로 대우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우하라”고 주장하는 데, 타인을 수단으로 대우하는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이며, 타인을 목적으로 대우할 수 없는 구조가 ‘자본주의 경제 구조’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를 타개하고자 “상인 자본을 게재시키지 않는, 생산자들의 어소시에이션(협동조합)을 제창”(76쪽)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밖에서 이루어지는 대안이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안이다. 그리고 칸트는 아무리 정의로운 사회라고 해도, 경제적 궁핍이 심각하면, 인간의 목적성과 존엄성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다고 본다. 경제적 궁핍을 해소하는 대안이 필요하며, 그것은 정치 행위를, 그래서 국가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풍요로움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각 공동체를 ‘한 국가’라는 단위로 인정하고, 국가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국제 관계와, 국제 관계의 연합된, 통일된 이념적 장치-물론 규제적 이념적 장치-로서 세계 공화국을 고찰해 보자.

그렇다면 전쟁과 분쟁을 원한다는 북한에게도 독립된 국가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첫 단계가 될 수도 있다. 우회적 몸짓을 통해 평화를 보여주는 북한, 이런 우회적 몸짓을 읽어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우회적 몸짓을 애써 무시하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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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승천기 & 나치 식 경례, 학생들을 욕하지 마라!

김일옥·한상언의 <욕심쟁이 왕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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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현(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01. 반성하다.

‘철학자의 서재‘에 원고를 싣기로 했다. 갚지 못한 원고 빚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철학 공부’를 업으로 삼겠다고 나섰다면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일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쓴 소리’가 되든지 ‘단 소리’가 되든지 혹 ‘잔소리’가 되든지 간에 말이다. 나는 철학함의 진의(眞意)가 적어도 ‘지금, 여기 그리고 우리’의 영역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여튼 천장 끝까지 책이 빽빽하게 쌓여 있어. 뭐, 이깟 책을 도둑놈이 삶아 먹겠어? 아니면 이불처럼 덮고 자겠어? 도둑놈은 ‘책이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지. (13쪽)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먼지 쌓인 책장을 꼼꼼하게 뒤진다. 서평소개할 책을 고르는 엄중한 시간이기 때문에 조심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마주한 자리다. 먼저 너무 가벼워 보이는 책들은 넘어간다. 어울리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철학자다움(?)’이 살포시 풍기는 그런 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무겁지 않은 주제이면서 동시에 가볍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어야 한다. 학위논문 준비도 탈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티를 좀 내줄 수 있는 주제라면 완벽한 선택일 테지.

▲(김일옥 글, 한상언 그림, 별숲 펴냄). ⓒ별숲

물론 ‘철학자의 서재’에 별도의 투고 규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런저런 요구사항은 전혀 없다. 다만 ‘철학자’라는 주체와 ‘서재’라는 공간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오묘한 시너지를 일으키기 때문에 지레 겁을 먹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나도 철학자인가?’에 대한 성찰(?)을 먼저 해야 하고, ‘서재’라기엔 너무 초라한 책장 앞에서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책들을 뒤져야 한다. 과하지 않아서 좋은, 묵향(墨香)이 솔솔 나는 그런 책을 찾기 위해서.

글 좀 안다고 거들먹거리는 게 눈꼴이 시었지만 도둑놈은 꾹 참았어. (15쪽)

소름이 돋았다. 문득 학부 시절 후배의 절규가 떠올랐던 것이다. 뭔가 있어 보이고, 좀 멋져 보이면서도 심오한 의미를 지닌 것처럼 포장하면서 가식을 떨려고 분주히 움직이다가 문득 10년도 더 지난 그때, 그의 말이 비수가 되어 내게로 왔다. 예리한 비수는 깊은 생채기를 내고야 만다. “철학자들의 심오한 시부렁거림에 기죽지 말지어다.” 반성해야지.

#02. 동화를 읽다.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책은 가장 최근에 몰입해서 읽었던 책으로 하자. 이왕이면 중간에 포기한 책 말고 끝까지 정독했던 책으로 하자. 그리고 읽어가면서 느꼈던 단상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나가자. 그래서 택한 책이 <욕심쟁이 왕도둑>(김일옥 글, 한상언 그림, 별숲 펴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데 흥미진진한 도둑놈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동화의 매력이란 생각보다 놀라웠다. 크게 세 가지 정도를 배울 수 있었는데, 먼저 내 어휘 능력의 형편없음을 깨닫게 되는 기회였다는 것. 대학에서 강의깨나 한다고 자부했는데 생소하고 헷갈리는 어휘들을 만난 것이 여러 차례다. 가장 놀랍고 창피했던 때는 ‘알나리깔나리’가 표준어라는 사실을 난생 처음 알게 된 순간이다.(웃음) 혹시 당신은 아직도 ‘얼레리꼴레리’가 표준어라고 생각하시는지?

책의 뒤표지에는 요약된 넉 줄의 이야기와 배경 삽화가 있었는데 동화의 내용을 너무나도 잘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이것은 마치 영화 광고에 ‘영화헤살꾼(스포일러, spoiler)’이 버젓이 등장해서 줄거리를 줄줄 읊어주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만약 실제로 그런 광고가 만들어진다면 아마도 많은 어른들은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 영화는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에게는 이런 과도한 친절(?)이 책을 읽고 싶도록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놀라웠다.

마지막으로 동화는 줄거리 자체가 재밌어서 어른들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13년 전,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 아름다운전태일 펴냄) 이후 아주 오랜만에 단숨에 읽은 책이다. 피가 끓어오르는 ‘분노’도 아니고, 애달픈 사랑 이야기의 ‘슬픔’도 아니었다. 순전히 소소한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꼼꼼하게 정독을 해도 30분이면 다 읽는 분량이지만. 집 근처 도서관에서 아이보다 더 동화책에 열중했던 엄마들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문제는 나중에 터졌다. 읽기는 재밌게 읽었는데 막상 서평을 쓰려고 생각하니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제 버릇 개 못 주는 법이라고 했던가? 서평을 쓰겠다고 컴퓨터를 켜고 맨 처음 했던 짓(?)이 국립국어원에 접속해서 ‘도둑’의 사전적 의미를 찾는 것이라니. 사람은 쉽게 안 변하나보다.

‘욕심쟁이 왕도둑’이라는 제목도 마음에 걸렸다. 제목만 가지고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헤아리기 어려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의 지인들에게 제목을 보여주고 의미를 추측해보도록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재미나다. “그러니까 결국 왕이 도둑놈이라는 거 아니야? 때가 때이니만큼 그런 의미로 나온 책 아니겠어?”, “도둑놈 성씨가 왕씨(王氏) 아니야?”

#03. 도둑맞은 학생들

▲ 논란을 불러일으킨 합성사진.

얼마 전의 일이다. 모 대학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만든 합성사진 한 장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를 배경으로 삼아 나치 식의 경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은 보는 어른들을 경악케 했다. 문제의 모 대학이 강원도에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3년째 출강을 하는 학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이번에도 비껴가지 않았다.

지난 3년간 수업을 통해 만났던 이 학교의 학생들은 대체로 수업에 충실했으며 밝고 명랑했다. 전체적인 학업 분위기도 좋아서 수업 내내 유쾌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토록 엄청난 사건을 일으킬만한 심각한 철부지 집단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욱일승천기’가 무엇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군이 사용했던 깃발로 일본의 군국주의의 야욕을 형상화한 깃발이 아니던가? 위안부 문제처럼 일제 강점기에 자행된 수많은 악행들이 아직 해결되지도 않은 지금,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전범의 상징을 도용할 수 있는가?

사건이 터진 바로 다음 주, 씩씩거리면서 학교로 향했다. 강사 휴게실에서 앉아서 어떻게 혼내줘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강사의 이야기를 엿들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내가 너희들 때문에 창피해서 못살겠다. 아니 어떻게 욱일승천기로 디자인을 할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니? ……”라며 들어가는 강의마다 잔소리를 해댄다는 것이다. 분명 좀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학생들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문득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문제의 사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나치 식의 경례’와 ‘욱일승천기’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치 식의 경례 모습은 실제로 연출한 것이고, 배경은 컴퓨터 작업을 통해 삽입된 것이다. 만약 ‘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넣지 않고 단지 나치 식의 경례만을 사진에 담았다면 이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왜? 우리와 나치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프랑스에서라면 어땠을까?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의 공격은 ‘나치 식의 경례’에 초점이 맞춰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었던 학생들의 잘못이라는 게 결국 ‘나치 식의 경례’와 ‘욱일승천기’의 무게감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함에 있는 셈이다. 바꿔 말해서 이 둘의 함의가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먼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별다른 의식 없이 혼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접근은 달라져야 한다.

2005학년도 수학능력시험부터 국사 과목은 선택과목으로 전락했다. 필수 과목이 아닌 이상 학생들이 공부할 이유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생님이나 부모님도 시험에 나오지 않는 과목을 배우라고 하지 않는 세상이니까. 당시에 이들은 모두 초등학생들이었다. 일제강점기도 모르면서 ‘뽀로로‘만 좋아한다고 역정을 내시는 훌륭한 부모님을 만났다면 달라졌겠지만 대부분의 초등학생 중에 ‘일제강점기’ 따위에 관심을 두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들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우리의 역사는 늘 선택과목이었다. 즉, 그들에게 근현대의 슬픈 역사는 머나먼 이야기로 치환된다.

교양으로라도 일제강점기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보통 대한제국이 멸망한 1910년부터 해방을 맞이하는 1945년까지를 일제강점기로 보는데, 이 시기를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현재 연세가 90이 넘으신 분들이다. 문제의 학생들과는 70년의 간극이 존재하는데 이 둘이 만나서 당시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해 들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럼 텔레비전이나 영화, 책에서 배울 수는 없을까?

일본의 극우 세력이 과거의 만행을 합리화할 때, 우리는 입으로만 ‘역사 왜곡 하지마라’고 떠들어댄다. 정작 자기 나라 아이들에게도 필수로 내세우지 못하는 역사 따위를 다른 나라에서 뭐라고 가르치든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역사를 배울 기회조차 빼앗긴 아이들과 그것을 빼앗은 도둑놈. 배우지도 않은 내용으로 시험을 치르고도 틀렸다고 호된 비판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과 그런 비판을 하고 있는 도둑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면 나와 일하고,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숨는다. 나라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는데도 가난하고 미천한 것은 치욕이요, 나라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지 않는데도 부유하거나 귀한 것도 치욕이다.” <논어> 중 ‘태백’ (황희경 옮김, 시공사 펴냄)

동화책 한 권 읽고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해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욕심쟁이 왕도둑>도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동화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참 다행이지만 현실과는 너무 다른 결론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나뿐일까?

일제의 치하에 있을 때나 해방된 이후에나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있다. 불길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인간 증오의 토대-지배(쫒겨 돌아오다) [노동이야기]- ⑥

?인간 증오의 토대-지배(쫒겨 돌아오다)[노동이야기]-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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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 원(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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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항에서 일하다 쫓겨 돌아왔다. 사정은 이렇다. 오랜만에 비가 왔다. 오전부터 함께 일하는 이들, 새우등 배 씨, 전 씨 알 씨와 막걸리를 마셨다. 장항 항구와 여기 저기 거리 구경도 하다가, 밥집에서 점심 식사하며 또 마셨다.

평일에는 모두들 일이 끝난 후 저녁 식사에 술들을 고파 했다. 그러나 누구도 “술 한 잔 마시자”라고 말 못했다. 유일하게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공사 책임자이지만 아주 가끔일 뿐, 좀체로 술 한 잔 하기 어려웠다.

막걸리 앞에서 나는 발 달린 비지밥통이다. 점심에 술 마신 후에는 걸을 수가 없었다. 동료들에게 부축해 주기를 부탁했다. 여관으로 왔다. 사 들고 온 막걸리를 한 잔씩 더 하기로 했다. 방 문 앞에 와서 부축했던 이들이 나를 들이 밀었다. 그 순간 중심을 읽고 앞으로 넘어지며 막걸리 병에다 눈을 박았다.

이튿날 일하러 갈 수가 없었다. 정신은 몽롱했으며, 눈은 끔찍했다. 현장에서는 누가 다치는 것에 크게 신경 쓴다. 얼굴에 상처 있으면 누가 볼까무서워 공사 책임자가 우선 꺼린다. 거기에다 문자로 공사 책임자에게 헛소리까지 했다. 그의 답문 메세지는 화가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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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캐릭터들

장항에 오기 전에는 이 팀과 홍성에서 경사면 공사를 했다. 나의 임무는 ‘열차 감시원’이었다. 공사 중에 열차가 오가면 휘슬을 불어 노동자들이 대피하도록 한다. 처음에는 이 일만 했다. 그러나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현장에서 감시원 노릇만 할 수는 없었다. 한 발 한 발 일에 적시다 보니 나중에는 열차 감시보다 작업자가 되어 있었다.

지하수가 흐르거나 비가 오면 선로의 자갈에 물이 고인다. 이 물들은 약한 지면이나 낮은 경사면에 몰리고, 이 물들이 선로 경사면을 파먹게 마련이다. 따라서 자주 경사면을 보수해 줘야 한다. 포크레인이 작업을 하지만 장비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은 순전히 인력으로 해야 한다.

ⅰ) 포크레인이 진입할 길을 만들기 위해 휀스를 철거한다.

ⅱ) 포크레인이 무너진 경사면을 흙으로 채운다.

ⅲ) 작업이 끝나면 그린 망을 씌우고 풀씨를 뿌린다.

ⅳ) 휀스를 원위치대로 복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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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 김 사장은 오랫동안 경사면 작업을 했다. 가파른 둔덕에 장비를 고정하면 작업할 때는 완전히 누운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하루 종일 쉬는 법이 없었다. 그는 저녁이면 끙끙 앓는 소리를 했다. 그는 공사 책임자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4.5톤 트럭을 운전해 자질구레한 짐들을 가지러갈 때면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불평을 했다. 그러나 사장 앞에서는 활짝 웃는 낯빛으로 응대했다. 나는 일종의 감정노동도 겸한 셈이다.

나는 주로 휀스 작업을 했다. 몇 년 전에도 해 본 일이라서 손에 익숙했다. 주로 중국동포 새우등 배 씨와 우즈베키스탄 동포 알 씨와 손을 맞춰 일했다.

새우등 배 씨는 나이가 무척 많아 보였다. 그러나 연변에서 농사꾼이었다는 그는 일 하는 데 익숙했다. 왜 그처럼 나이 많아 보이느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도 화내는 법 없이 재미있게 답했다.

“아이들 잘 먹이려고 일 하다가 이렇게 늙었지.”?

그는 15년 전에 상처한 이후로 아이들을 혼자 키웠다고 했다. 지금은 모두 장성했다. 배 씨의 고향 친구 전 씨에 의하면, 배 씨가 아이들을 키우며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배 씨가 일하는 것을 보자면, 하루 종일이라도 삽질 할 기세이다. 작은 체구에 끈질기게, 부지런히 일했다.

가장 오랫동안 내 기억을 괴롭힌 것은 홍성에서 일할 때의 안전관리자였다. 그는 고위 공직자 출신이었다. 그는 내 임금의 세 배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이상한 내역으로 백 만원을 더 받는다고 했다.

그와 처음 만난 날, 명언만 뱉아내는 그의 발언에 그의 성격에 이상한 느낌을 갖기는 했다. “우리 일반인들은 운동권을 사기꾼으로 안다”는 멘트에서부터 “전두환 같은 사람이 나와서 (운동권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는 말끝마다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종북좌파”였다. “종북좌파는 북한에 가서 살아야 돼”라고 덧붙였다.

북한 핵실험 이후 그의 명언은 품격을 더 했다. “지금이라도 본때를 보여줘야 해”로 시작해서, ‘골통 보수’가 아닌 ‘보수 꼴통’인 자기들이야말로 ‘애국자’라고 했다. 1993년인가, 북한이 핵실험할 때 미국방장관이 인터뷰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을 검토했다. 그러나 전쟁 나면 한국군 수십 만, 미군 5만여 명이 전사할 것이요, 이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 핵실험 응징을 포기했다. 또한 전쟁 나면 한국은 지금의 경제력을 포기해야한다는 반박에, 그것은 “종북좌파”들이 만든 말일 뿐이라며, 지금 북한을 응징하지 않으면 대대로 북한에 눌려 살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 나라의 진정한 안전과 관심사들”에 관해서는 읽을 생각도, 들을 생각도, 기억하지도 않으려 하는 그의 무식을 탓했다.

자기 의견에 맞지 않으면 모두 고무줄 논리로 종북좌파라고 매도하는 그의 인간증오의 원인이 되는 트라우마가 뭔지 그의 이야기에서 찾고 싶었다. 그가 고위 공직에 있을 때 노조와 맞부딪혔다. 그는 당시 “무척 고생했다”라고 말했다. “전두환 때는 편했어. 노조가 힘이 없었거든. 그런데 노태우 때부터 힘이 세진거야. (노조가 자기를) 원수 대하듯 대드는 통에 무지 고생했다.”

노조가 약했을 때는 (그가) 편했다는 말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부정적인 내용이 더 클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랬다. 야만과 공적 살인, 인간의 권리를 짓밟히는 시절이 그에게 좋았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자면, 다른 사람들을 짓밟은 토대 위에서 그의 공직생활이 좋았다는 의미 아닌가?

내 주변에서 우파를 만난 적 있다. 고향이 대구인 그 사람, 단 한 명이다. 귀중한 모임이 있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그가 공부한 것이나 글 쓰는 내역(윤리학)과 달라 무척 갈등했다. 결국 나는 그 모임을 포기해야만 했다.

홍성에서 처음에는 나, 포크레인 김 사장, 안전관리자와 여관방을 함께 썼다. 안전관리자가 여관에 들어와 보고는, 내게 ‘공사책임자에게 방을 따로 얻어달라’고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특유의 사람을 매너지(manergiment)하는 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다른 방으로 옮겨 앉았다.

안전관리자는 아침에 역장(이나 공사관리 공무원)과 미팅을 했다. 가끔 그와 함께 역에 나갔다. 우연찮게 풀무 전공부 홍 선생님을 역에서 뵈었다. 홍 선생님이 사모님께 나를, ‘교수님’이라고 소개했다. 홍 선생님은 노동에 관심이 많으시다. 나는 더 이상 강의는 안하고 노동한다고, 글도 쓴다고 근황을 이야기했다. 홍 선생님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 웹진(인즉 동료들)과 함께 글 쓴다는 사실을 축하하고 격려해 주었다.

안전관리자와 나는 저녁 식사에 거의 항상 막걸리를 반주 삼았다. 두 세병 막걸리 값은 그가 냈다. 그의 숙부는 건국 후 초대 정부 부서의 총장을 지냈다. 그의 숙부도, 그의 부친도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연금, 개인연금, 건물세 등을 받는다. 여기 일 안 해도 먹고 살 만큼 큰 돈을 가지고 있단다. 그러나 그는 일 년에 7개월 이상을 일한다고 했다. 그는 노동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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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여덟 명이 한 팀이다. 공사 책임자인 사장, 포크레인 김 사장, 안전관리자, 나, 일을 진행하는 박 씨, 새우등 배 씨, 전 씨, 알 씨다. 포크레인이 못 들어가는 곳의 경사면이 무너져 있다면 마대에 흙을 담아 축대를 쌓는다. 흙은 경사면 아래에 있고 무너진 곳은 몇 미터 높이에 있다. 흙을 담아 사람과 사람 손을 통해 위로 전달한다. 그 작업이 힘들었다. 작업 경험이 많은 박 씨는 팀장 노릇을 했다. 다른 작업자들은 그에게 꼼짝 못했다. 배 씨만이 “일 시키면 사장이야”라고 불평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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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도 경사면 보수 작업을 했다. 그 때에도 일을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했다.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노가다 판에는 이상한 폭력이 있다. 말이 공손하지들 못하다. 특히 나쁜 사람들이 아닌데, 말은 폭력적이다. 그것을 견디기 힘들었다. 이것은 내 문제일 수 있다.

군대 제대 후 한 6개월을 아직 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항상 다리를 오그리고 자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폭력 노출증’에 시달렸던 셈이다. 무엇인가 압박해 오는 질서를 지금도 참지 못한다. 은근한 폭력, 주먹이 아니지만 분위기와 말투, 쓰는 용어들이 폭력적이다. 특유의 충청도 서부 사투리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노가다 판의 생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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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항으로 옮겨 와서는 보도 벽돌을 들어내고 벽돌보다 넓은 점자 보도블럭으로 교체하는 작업이다. 장항에 와서는 모두 여관에서 잔다. 공사 책임자 사장, 박 씨, 새우등 배 씨, 전 씨, 알 씨, 나, 그리고 안전관리자 김 씨 형님이 새로 가세했다.

ⅰ) 빠루를 이용해 벽돌을 걷어올린다.

ⅱ) 손수레에 담아 항공마대로 벽돌을 옮긴다.

ⅲ) 벽돌을 빼 낸 자리에 다시 보도블럭을 심는다.

ⅳ) 크레인을 이용해 항공마대를 밖으로 옮긴다.

ⅴ) 항공마대에 담긴 벽돌은 폐기장에 갖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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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벽돌을 걷으면 배 씨와 나는 항공마대로 옮기는 일을 했다. 3일간 벽돌을 옮겨 나르다 보니, 형광 천을 붙인 안전조끼를 보기도 싫어졌다.

벽돌을 다 걷은 후 보도블럭을 다시 심는 작업이다. 세 사람이 수레를 이용해 보도블럭을 날라오면 박 씨가 보도블럭을 심었다. 다리를 불편히 하는 박 씨에게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안 아프다면 이 나이에 사람이 아니지, 참고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나는 보도블럭을 심는 박 씨를 앞 서 나가며 모래를 손보았다. 박 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보도블럭을 심어 보았다. 열 장도 심지 못 해 허리가 끊어지듯 아파왔다. 내일 비가 온댔지, 육체가 일기예보를 해 준다. 그리고 다음 날, 내가 술 취해 쫓겨오게 된 날이다. 아침부터 비가 왔다.

폐기물 비용은 비싸다. 폐기장에서는 벽돌을 부수어, 모래와 흙을 분리한다. 생생한 벽돌을 돈 주고 부순다니, 아깝다. 민표에게 메세지 했다. “안녕, 나 장항역. 재활용 벽돌 무제한.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운임 부담해 가져가면 좋지.”

민표가 자기 친구를 통해 벽돌을 처치해 주었다. 회사는 폐기물을 재활용 처리한 덕분에 몇 백 만원 이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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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홍성에서의 안전관리자가 하던 말들을 곱씹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록 이 시대의 노동하는 인간들의 고통을 더 생각하게 된다. 대조적인 두 가지 예가 생각난다.

나는 강사 하던 대학교에서 1급 공무원 출신이 교수로 취임하는 것을 보았다. 2천년 초반 교육법이 바뀌면서 만들어진 제도 덕분이었다.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정치 계열에 특히 그런 사람들이 많이 왔다.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자였다. 함께 식사한 (고위 공무원 출신) 사람들로부터 강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개는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들의 경험이 필요하다면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수란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지 경험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 빽이면 돈 들고 가는 인간보다 우선 교수가 되는 학교였다.

이해할 수 없던 것은 89년이었다. 나는 전교조 노동자 선생을 교장이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해고하는) 현장 농성장에 있었다. 권력의 강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노동조합 자체가 징계위원회(학교 이사들)에게 불리하다는 상황을 즉각적으로 알고 실천한 것이다. 새파란 젊은이들을 자른 이들은 모두 이 지방에서는 유력한 인사들(돈 많고 잘 사는)이었다. 노동조합이 없다면 ‘자유로운 닭장 속의 여우’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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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및 자본의 ‘물신적’ 성격[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③

상품의 ‘사회적’ 의미-3강?

 

김우철(호서대 외래교수)

 

 

4. 가치의 화폐형태

 

단순한 가치형태에서 이제 (전개된 가치형태를 건너뛰어) 일반적 가치형태로 시선을 옮겨보자. 일반적 가치형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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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의 상의 =
10 kg의 차 =
1 쿼터의 밀 = 20kg의 쌀
2 온스의 금 =
x량의 상품 A =
등등의 상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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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가치형태에서는 모든 상품의 가치가 상품 세계로부터 분리된 한 종류의 상품, 곧 쌀로 표현되어 있다. 각 상품의 가치는 이제 쌀(의 사용가치)과 동등한 것으로서 모든 다른 사용가치로부터도 구별되며, 이를 통해 그 상품과 상품들의 공통적인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이 형태가 비로소 현실적으로 모든 상품들을 가치로서 서로 관계 맺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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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형태와 달리 일반적 가치형태에서는 모든 상품이 동일한 등가물로 자신들의 가치를 표현하기 때문에 일반적이고 통일적인 가치 표현을 획득하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상품의 가치 대상성은 그것이 이들 물적 존재의 순전히 ‘사회적 현존재’인 까닭에 모든 상품의 전면적인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 따라서 모든 상품의 가치형태는 사회적으로 타당한 형태여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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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쌀의 자연형태는 상품 세계의 공통된 가치자체이며, 그래서 쌀은 다른 모든 상품과 직접적으로 교환될 수 있다. 물체형태로서의 쌀은 일체의 추상적 인간노동의 눈에 보이는 화신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곧 쌀을 생산하는 경작노동은 일간노동 일반의 ‘일반적’ 현상형태로 간주된다. 이리하여 상품에 대상화된 현실적 노동은 노동의 모든 구체적 형태 및 유용한 속성이 사상된 노동으로서 소극적으로만 표시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모든 현실적 노동을 그것들에 공통된 인간노동이라는 성격, 곧 인간노동력의 지출로 환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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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등가형태는 가치 일반의 한 형태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어떠한 상품에도 귀속될 수 있다. 다른 한편 한 상품이 일반적 등가형태에 있는 것은 오직 그 상품이 다른 모든 상품에 의하여 등가물로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배제가 궁극적으로 한 특수한 상품에 한정되는 순간 비로소 상품 세계의 통일적 상대적 가치형태는 객관적인 고정성과 사회적인 타당성을 획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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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연형태에 등가형태가 사회적으로 결합되는 특수한 상품은 이제 화폐상품(money commodity) 곧 화폐가 된다. 이 일반적인 가치형태에서 쌀이라는 상품을 금이라는 상품으로 대체시키면 바로 가치의 화폐형태(네 번째 가치형태)에 도달하게 된다. 금은 보편적 등가물이다. 화폐형태는 직접적인 일반적 교환가능성의 형태 또는 보편적 등가형태가 이제 사회적 관습에 의하여 금이라는 상품의 특수한 자연형태와 궁극적으로 결합되었음을 보여준다. 상품 세계의 가치 표현에서 금이 보편적 등가의 지위를 독점하자 금은 곧 화폐상품이 되고, 일반적 가치형태는 화폐형태로 전화(轉化)된다. 이미 화폐상품의 기능을 담당하는 상품, 곧 금에 의한 한 상품의 단순한 상대적 가치표현이 가격형태이다. 따라서 쌀의 ‘가격형태’는 ‘쌀 20kg = 금 2 온스’ 또는 ‘20kg의 쌀 = 2 파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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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Kapital]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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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품의 물신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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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은 “형이상적인 좀스러움과 신학적 변덕으로 가득찬 매우 기묘한 물건”이다. 상품이 사용가치인 한에서는 아무 신비한 것이 없다. 그러나 예를 들어 탁자가 상품으로 나타나면 그것은 곧 “감성적인 동시에 초감성적인” 하나의 물품으로 전화한다. 상품의 이러한 신비적 성격은 그 사용가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거니와 가치 규정의 내용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다. 즉 추상적 인간노동이 가치의 실체를 이룬다는 점, 그리고 가치의 크기가 노동 지출의 지속 시간 또는 그 양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를 위하여 노동하는 한 노동이 사회적인 형태를 갖는다는 점 등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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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상품형태의 수수께끼 같은 성격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바로 이 ‘상품형태’ 자체로부터 나온다. 모든 인간노동의 동등성은 노동생산물의 가치에 의해 사물적으로 표현되며, 생산자들의 사회성을 실증해 주는 생산자들의 상호관계는 노동생산물들의 사회적 관계라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따라서 상품형태의 비밀은 단순히 다음과 같은 점에 있다. 상품형태는 인간에 대하여 인간 자신의 노동이 갖는 사회적 성격들을 노동생산물 자체의 대상적 성격들로 보이게 만들거나 이 물적 존재들의 사회적인 자연속성으로 비쳐보이게끔 만들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도 생산자들 외부에 존재하는 갖가지 대상들의 사회적 관계로 비쳐보이게끔 한다. 이러한 교체를 통하여 노동생산물은 상품이 되고 사회적인 물적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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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형태나 이 형태가 나타나는 바의 노동생산물들의 가치관계는 노동생산물의 물리적인 성질이나 그로부터 생겨나는 물적 관계와는 절대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일 뿐이며 여기에서 그 관계가 사람들의 눈에는 물체와 물체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마치 종교적 세계의 신비경에서 인간 두뇌의 산물들이 그 자신의 생명을 부여받아 독립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품 세계에서는 인간의 손의 생산물이 그렇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는 일종의 물신숭배(Fetischismus)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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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용 대상이 상품으로 되는 것은 그것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영위되는 사적 노동(private labor)의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사적 노동의 복합체는 사회적 총노동을 이룬다. 생산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생산물을 교환함으로써 비로소 사회적으로 접촉하게 되기 때문에 그들의 사적 노동이 지닌 사회적 성격도 이 사물들의 교환 속에서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사적 노동은 교환을 통해 노동생산물과 그것에 의해 매개되는 생산자들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사회적 총노동의 한 부분임을 실증받는다. 그러므로 생산자들에게는 그들의 사적 노동의 사회적 관계가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관계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과 사람의 물적 관계 또는 물적 존재와 물적 존재의 사회적 관계라는 ‘사물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상품생산이라는 특수한 생산형태가 지니고 있는 핵심 원리는 서로 독립된 여러 사적 노동들의 특수한 사회적 성격이 그 노동이 지니는 인간노동으로서의 동등성에 있으며, 이렇게 ‘동등한 노동’에 의해 매개되는 ‘노동의 사회성’이 노동생산물의 ‘가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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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노동생산물이 같은 종류의 인간노동의 단순한 물적 외피로서 인정되기 때문에 그들의 노동생산물을 가치로 관계 맺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종류가 다른 자신들의 생산물들을 서로 교환할 때 그것들을 먼저 가치로 등치시킴으로써 그들의 서로 다른 노동들을 인간노동으로서 서로 등치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행한다. 가치의 이마에는 가치가 무엇인가가 써 있지 않다. 오히려 가치는 각 노동생산물을 하나의 사회적 상형문자로 전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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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내가 상의나 구두 따위가 추상적 인간노동의 일반적 사물화로서의 쌀과 관계한다고 말할 경우, 이 말의 괴상망칙한 성격이 곧바로 느껴진다. 그러나 상의나 구두 등의 생산자들이 이 상품들을 보편적 등가물로서의 쌀(또는 금이나 은)과 관계를 맺어줄 경우에는 사회적 총노동에 대한 그들의 사적 노동의 관계가 바로 그 괴상망칙한 형태로 그들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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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생활과정, 즉 물질적 생산과정의 모습은 그것이 자유롭게 사회화된 인간의 산물로서 인간의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통제 아래 놓여질 때 비로소 그 신비의 베일을 벗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사회의 물질적 기초, 곧 그 자체 또한 장구하고 고통에 찬 발전사의 한 산물인 일련의 물질적 존재조건이 필요하다. 이제 정치경제학은 불완전하게나마 차이와 가치크기를 분석하고 이 형태들 속에 숨겨져 있는 내용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왜 이 내용이 저 형태를 취하는가, 요컨대 왜 노동이 가치로 표시되고 그 지속시간에 의한 노동의 계측이 노동생산물의 가치크기로 표시되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제기조차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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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화폐의 물신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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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출현은 서로 다른 노동생산물들이 실제로 등치되고 따라서 상품들로 전화되는 교환과정의 필연적 산물이다. 교환의 역사적인 확대와 심화는 상품의 본성 속에 잠자고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의 대립을 발전시킨다. 그리하여 상품과 화폐로의 상품의 이중화를 통하여 상품 가치의 자립적 형태가 얻어질 때까지 그 과정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노동생산물의 상품으로의 전화가 성취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상품의 화폐로의 전화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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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확인했듯이 화폐형태란 다른 모든 상품의 관계가 반사되어 하나의 상품에 고착된 것이다. 어려운 것은 화폐가 상품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무엇 때문에 상품이 화폐가 되는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x량의 상품 A = y량의 상품 B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 표현에서 다른 어떤 물품의 가치크기를 표시해 주는 물품이 마치 이러한 관계로부터 독립된 ‘사회적인’ 자연속성으로서 등가형태를 취한다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이 잘못된 외관의 고정화 과정을 추적했다. 보편적 등가형태가 어떤 특수한 상품의 현물형태에 달라붙게 되거나 화폐형태로 결정화되자마자 이 외관은 완성된다. 다른 상품들이 각자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어느 한 상품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그 상품이 비로소 화폐가 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그 한 상품이 화폐이기 때문에 다른 상품들이 그 한 상품으로 각자의 가치를 일반적으로 표시하는 듯이 보인다. 그것을 매개하는 운동은 그 자신의 결과 속에서 소멸하여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상품들과 독립적으로 그것들 자체의 완성된 가치자태가 상품들 밖에 그리고 상품들과 나란히 존재하는 하나의 상품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금과 은이라는 화폐상품들은 대지의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이미 모든 인간노동의 직접적 화신인 것처럼 보인다. 이리하여 화폐의 마술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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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본의 일반적 정식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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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유통은 자본(capital)의 출발점이다. 상품생산 및 상품유통, 즉 상업은 자본이 성립하기 위한 역사적 전제이다. 16세기 근대 세계무역과 세계시장의 형성으로부터 자본의 근대적 생활사가 시작되었다. 역사적으로 자본은 어느 곳에서나 처음에는 우선 화폐 형태로서 (즉 상인자본 및 고리대 자본이라는 화폐재산으로서) 토지소유에 대립하지만, 그러나 화폐를 자본의 최초의 현상형태로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가 자본의 발생사를 일일이 살펴볼 필요는 없다. 동일한 역사가 날마다 우리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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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로서의 화폐와 자본으로서의 화폐는 우선 양자의 유통형태의 차이에 의해 구별될 뿐이다. 상품유통의 직접적 형태는 C-M-C로서, 상품의 화폐로의 전화 및 화폐의 상품으로의 재전화, 곧 구매를 위한 판매로 나타난다. 반면에 M-C-M이라는 화폐유통은 화폐의 상품으로의 전화 및 상품의 화폐로의 재전화, 곧 판매하기 위한 구매로 나타난다. 이 운동을 통해 후자의 유통을 담당하는 화폐는 자본으로 전화되며, 그 사명으로 볼 때 그것은 이미 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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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M-C-M은 (C-M-C의 유통과 달리) 최종 목적이 판매자로서 화폐를 취득하는 데 있다. 그가 처음에 화폐를 내놓기는 하지만 이는 다만 그것을 다시 손에 넣기 위함이다. C-M-C의 유통의 목적이 사용가치라면, M-C-M의 목적은 교환가치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이 M-C-M은 양극의 질적 차이에 의해 내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양극의 양적인 차이에 의해 그 내용을 갖는다. 결과적으로 최초의 유통에 투입된 것보다 더 많은 화폐가 유통에서 끌려나온다. 예를 들어 100파운드의 화폐로 구매한 면화가 100+10파운드로 다시 판매된다. 그러므로 이 과정의 완전한 형태는 M-C-M’이고, 여기서 M’=M+ΔM이다. 즉 M’는 최초에 투하된 화폐액+어떤 증가분과 동등하다. 이 증가분 또는 최초의 가치 이상의 초과분이 잉여가치(surplus value)이다. 최초에 투하된 가치는 유통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크기를 변화시키고 잉여가치를 덧붙인다. 다시 말해 스스로를 가치증식시킨다. 그리하여 이 운동은 가치를 자본으로 전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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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M’에서 화폐는 가치의 일반적인 존재양식으로서, 상품은 그 특수한 존재양식으로서 기능한다. 이 운동 속에서 가치는 소멸하지 않고 끊임없이 한 쪽 형태로부터 다른 쪽 형태로 이행하여 ‘하나의 자동적인 주체’로 전화한다. 가치가 잉여가치를 부가시키는 운동은 가치 자신의 운동이며 가치의 증식이고 따라서 자기증식이다. 그 운동은 자기목적적이며 그래서 무제한적이다. 가치는 그것이 가치이기 때문에 가치를 낳는다는 신비한 성질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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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가치는 자기 스스로 운동하는 실체로서 나타난다. 이 실체에 대하여 상품이나 화폐는 어느 쪽이나 단순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제 가치는 갖가지 상품의 관계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자기 자신에 대한 사적 관계에 들어간다. 그것은 본원적 가치로서의 자기를 잉여가치로서의 자기로부터 구별짓는다. 곧 아버지 신으로서의 자기를 아들 신으로서의 자기로부터 구별하는데, 아버지나 아들은 모두 같은 나이이고 게다가 둘은 한 몸인 것이다. M-C-M’, 이것이 자본의 일반적 정식이다.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단기 집중 강좌[ⓔ시대와철학알림]

[주말 특강] 5월 18일부터 4주간…마르크스에서 지젝까지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5월 18일(토)부터 4주간에 걸쳐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에 관한 단기 집중 강좌를 실시합니다. 이번 강좌는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오월의 봄) 출간을 계기로 이뤄지는 것으로, 이 책은 지난 해 3월부터 6월까지 절찬리에 진행된 마르크스주의 사상사 강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번 단기 집중 강좌는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에 소개된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16명 중 마르크스, 레닌, 로자, 그람시, 벤야민, 알튀세르, 네그리, 지젝 등 8명에 대해 이 책의 저자들이 직접 강의합니다. 저자들의 직접 강의인 만큼 보다 충실한 수업이 될 것입니다.

 

20여 년 전 소련의 붕괴와 함께 ‘죽은 개’ 취급을 받았던 마르크스 사상은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도래와 함께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월가 점령 운동‘(Occupy Wall Street)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서 점점더 그 위상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극심한 양극화와 부의 편중으로 대다수 민중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도 대안으로서의 마르크스 사상은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수업은 하루에 2강씩 진행이 되며 5월 18일부터 6월 15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1시 30분부터 6시까지 진행됩니다.(6월 1일은 강의가 없습니다.) 총 4주 8회에 걸쳐 진행될 이번 강좌에서는 마르크스, 엥겔스에서부터 그람시, 알튀세, 네그리. 지젝까지 주요한 마르크스주의사상가들의 고민을 통해 오늘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성찰해 봅니다.



◆신청 안내

전체강의신청 : 개인 22만원/ 커플신청(2명이 함께 신청할시) 34만원
**전체강의 신청시 교재인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를 현장에서 드립니다.

개별강의신청 : 1강에 3만원(1주에 2강 수업이 진행됩니다.)

무통장 입금 후 메일(admin@pressian.com)로 성함과 연락처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국민은행, 292501-01-121940 예금주:(주)프레시안]
문의: 02-722-8546(담당자 민정훈)

◆강의 시간

5월 18일부터 6월 15일까지 매주 토요일 1시 반-6시 까지(30분 휴식) 2강을 연속해서 4회 집중 강의(하루에 2강씩 진행됩니다, 6월 1일은 강의가 없습니다.)

◆강의 장소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3번 출구 프레시안 1층 강의실
(3번 출구로 나와 자이갤러리(메세나폴리스 모델하우스)에서 우회전, 300미터 정도 직진, 왼쪽에 BK빌딩. 양화로 10길 49)

◆강의 일정

5월 18일(토)강사 : 박영균 건국대 HK교수
1강 : 마르크스, 엥겔스 – 우리가 다시 마르크스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2강 : 레닌 – 고독한 사유가 빚어내는 혁명의 정치학

5월 25일(토) – 강사 : 이순웅 숭실대 외래교수
3강 : 로자 – 로자는 역사를 어떻게 보았는가
4강 : 그람시 – 헤게모니와 주체 형성의 문제

6월 8일(토) – 강사 : 연효숙 연세대 외래교수
5강 : 벤야민 – 고통의 기억과 유물론적 구원유토피아
6강 : 알튀세르 – 과학적 맑스주의를 위하여

6월 15일(토) – 강사 : 김성우 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7강 : 네그리 – 낡은 봉합선을 뜯고 새 실을 잦는 철학자
8강 : 지젝진리의 정치로서 레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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