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뭐 대단한 존재라고! 절망이 오히려 희망이라네! [철학자의 서재]

? 마크 트웨인의 <정말 인간은 개미보다 못할까>

 

김의수(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내가 보기에 진화는 엉터리다. 인간은 정말로 한심한 실패작이다.”
-커트 보네거트, <나라 없는 사람>(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19쪽)
 
 

아동 작가에서 신랄한 독설가로

10년 전만 해도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은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의 모험 소설 작가로만 알려져 있었다. 적어도 나에겐. 70년대를 유년 시절로 보낸 또래들은 마크 트웨인의 소설을 읽은 추억담이 있을 것이다. 소설만 아니라 TV에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도 방영됐다. 그래서 마크 트웨인은 아동 모험 소설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사회 비판가, 아니 독설가로 더 유명하다. 특히 미국의 제국주의 대외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는 유년기의 기억 외에 그에 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실상을 알고 크게 놀랐다. 오히려 사회 비판가로서의 말년 행보가 그를 이해하는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마크 트웨인을 새롭게 발견한 것은 작가 커트 보네거트를 통해서였다.

“유머는 인생이 얼마나 끔직한 지를 한 발 물러서서 안전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그러다 결국 마음이 지치고 뉴스가 너무 끔찍하면 유머는 효력을 잃게 된다. 마크 트웨인 같은 사람은 인생이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했고 그 끔찍함을 농담과 웃음으로 희석시켰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아내와 단짝 친구와 두 딸이 죽은 후였다.” (<나라 없는 사람>, 126쪽)

커트 보네거트의 소개에 따르자면, 마크 트웨인은 노년기에 이르러 미국이란 나라와 나아가 인류에게 희망을 잃은 듯하다. 실제로 그의 책 번역본 말미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그가 이 책을 쓴 시기는 60세를 바라보는 시기였다. 당시 병상에 누워있던 그의 부인 올리비아는 책의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부인은 책 출간을 만류했다. 그래서 1904년 부인이 사망할 때까지 책은 출간되지 않았다. 1906년 처음 발간되긴 하였으나, 특히 성직자들의 반응이 두려워 250부만 찍어 주변 지인들만 돌려봤다고 한다. 그리고 마크 트웨인 사후 7년이 되어서야(1917년) 정식 출간되었다.” (마크 트웨인, <정말 인간은 개미보다 못 할까>(박영선 옮김, 북인 펴냄) 203쪽, 내용 요약)
 
 

선행은 자기만족에 불과

그런 마크 트웨인이 보기에 애초에 인간은 기계에 가깝다. 이 기계가 외부의 힘에 영향을 받아 사유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뿐이다. 이때 외부의 힘은 교육과 훈련을 뜻한다. 그리고 교육도 외부에서 받은 영향의 결과물인데 그 영향의 대부분은 인간관계다(위의 책 90쪽). 즉 기질 차이만 제외하면 인간은 소속된 사회의 교육과 훈련에 의해 그 판단과 행동이 좌우된다. 여기서 인간관계는 사회적 관계로 풀어도 무방할 듯하다. 마르크스가 말한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구절이 연상된다.
 

마크 트웨인(1835~1910)


 
기질은 타고난 성질인데 이것만은 아무리 교육을 해보아도 없앨 수 없다고 한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기질에 압력을 가해 살짝 눌러 놓을 뿐이라는 것(위의 책 103쪽)이다. 프로이트는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서한에서, 인간의 공격 충동을 영구히 없앨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조절하는 노력은 가능한데 그게 바로 (교육을 포함한) ‘문화’다.

“인간의 공격적 충동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공격적 충동을 전쟁으로 발산할 필요가 없도록 그 충동의 방향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애쓰는 것이 고작입니다.” (…) “문화 발전은 어떤 종의 동물을 길들이는 것과 비교할 수 있고, 신체적 변화를 수반하는 게 분명합니다. (…) 문화 발전에 수반되는 ‘신체적’ 변화는 두드러지고 명백합니다. 그것은 본능이 지향하는 목표를 차츰 다른 데로 돌리고, 본능적 충동을 억제합니다.”

프로이트가 볼 때 본능은 없앨 수 없다. 문화로 방향을 조절할 뿐이다. 마크 트웨인이 볼 때 타고난 성질은 없앨 수 없다. 문화로 관리할 뿐이다. 그래서 양자 공히 인간 형성의 주요 기제로 문화의 역할을 거론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격렬한 논란은 선행이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주장에서 비롯됐다. 무릇 선행이란 누구에게나 지지와 동의를 얻는 보편적 행위, 즉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우하고 요즘 식으로 말하면 ‘힐링’하는 그런 행위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행위의 의미를 굳이 궁색하게 말하는 건 당시 미국 사회상과 관련 있을 것이다. 앞서 밝혔듯 종교계의 비난이 두려워 초판 간행수를 최소화했다는 게 단서다. 19세기 미국은 청교도 영향 하에 있었으니까, 사고방식과 행동 전반은 종교라는 이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주홍글씨>(1850)가 그렇고, 실화에 기반을 둔 영화 <크루서블(The Crucible)>(1998)의 어처구니없는 마녀사냥도 그렇다. 행동강령이 외부에서 주어지면 행동을 규제하는 건 당연지사고 규제의 정도 차가 있을 뿐이니까.

“오로지 타인을 위해 선의를 베풀 것을 요구한다네, 온전히 우선 의무를 위한 의무를 다할 것, 자기희생의 행위를 하라는 식의 요구를 내놓는 거야. (…) 인간의 내부에 깃든 절대 최고의 군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네. 그리고 우리 인간들 모두는 그 앞에 끓어 엎드려서 그 절대군주에게 호소하는 것이지. 그런데 거기가 틀리지. 다른 무리들은 교묘하게 속여서 몸을 바꾸니까.” (<정말 인간은 개미보다 못할까>, 108쪽)

때문에 애써 밖에서 찾지 말고, 나를 진정 기쁘게 하는 행위를 내 스스로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타인이 느끼는 감사함, 고마움은 부차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일단 선행의 이유가 내가 만족하고 즐거워야 한다. 나아가 사회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행에서 만족감(일종의 쾌감)을 얻을 수 있도록 교육을 통해 유도해야 한다.

“스스로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이웃과 넓게는 사회에도 선을 뿌리는 행위가 있어야 해. 그래서 그런 행위 속에서 우선 최대의 기쁨을 발견해낸다는 경지에 오르도록 뜻을 두어야겠지.” (위의 책, 106쪽)

마크 트웨인은 인간이 선행에서 최대의 만족을 얻는 것은 일정 수준의 도야를 거쳐야만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인간이 느끼는 기쁨이 반드시 선행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도 일상다반사니까.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자기만족의 전제 – 타인의 행복, 상호 존중

그런데 읽으면서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선행의 원칙은 무엇이어야 할까? 어떤 행위를 해야 나도 만족할 수 있으며, 또한 타인도 행복할 수 있을까? 이타적 행위가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 주도적 행위라면 내가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면 될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선배님의 글에서 그 실마리를 가져왔다. 다소 길지만, 의미심장한 내용이어서 인용한다.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묻는다. ‘한 마디 말로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한다. ‘그것은 서(恕)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편)

이 가르침은 이미 서(恕)라는 글자 안에 다 들어 있다. 서(恕)는 마음(心)이 같다(如)는 두 글자가 합쳐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공자는 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도 하라’는 식의 긍정형이 아니라, ‘하지 말라’는 식의 부정형으로 표현했을까? 공자뿐만 아니라 성인(聖人)의 가르침 거의 모두가 부정형이다. 우선 긍정형으로 가르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공자가 만약 ‘네가 원하는 대로 남을 대하라’고 했다면, 세상 끝장나게 돌아간다. 알다시피 우리는 그리 도덕적이지 못하다. 그렇기에 내가 원하는 것이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힘이 센 나쁜 사람은 힘이 약한 사람이 가진 좋은 것을 빼앗고 싶어 한다. 그런데 공자가 거기에다 ‘네가 원하는 대로 남을 대하라’고 하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빼앗게 될 것이다. 착한 사람은 자기 것을 남을 위해 내놓고 싶을 것이다. 마침 착한 사람과 게임을 하게 되면 그만큼 또는 그 이상 돌려받겠지만, 그러나 나쁜 사람을 만나서 자기 것을 내놓으면 그것으로 거래는 끝이 난다.

반면에 부정형으로 하면 사정이 바뀐다. 누구도 자기 것을 남에게 강제로 빼앗기고 싶지 않다. 따라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대로 남을 대한다면, 남의 것을 빼앗지 않을 것이다. 착한 사람도 부정형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나쁜 사람이 더러운 게임을 하고 싶더라도, 이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이 그런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기에 나쁜 짓을 그만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부정형은 무엇보다 보복의 악순환을 방지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남이 나에게 해를 끼쳤을지라도, 내가 보복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보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게 바로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내줘라’는 말의 숨은 뜻이다.”
(김범춘(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철학박사), ‘철학 강의(15) 사람의 도움원리’ 중에서 인용, ☞바로 가기 다음(DAUM) 카페 ‘fridaybeer’)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다! 인류사에 등장한 모든 참혹한 반인륜 사건, 인권침해의 공통점은 이 가르침과 상반된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의 강요에 의해 죽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친위대장교는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강제로 타인의 강압에 의해 성행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광주 인화학교 직원은 장애인 학생을 성추행한다.

결국 자기만족은 타인에게 억압이나 폭력이 아니어야 하며 타인의 행복이 전제될 때 비롯한다. 그리고 타인의 행복은 내 즐거움을 원해서 나 스스로가 선택한 행동이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기 주도적인 선행은 타인의 행복을 동반할 수 있다. 결국 이 원칙은 상호 존중이라고 말 할 수 있는데, 인권침해 예방의 원리로서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착각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책 전반에서 마크 트웨인은 인간이 변변치 못한 존재임을 누차 강조한다. 허나 책을 읽고 나서는 그 일관된 냉정한 태도야말로 인간에게서 희망의 근거를 찾기 위한 역설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정녕 인간에게 환멸을 느꼈다면 그런 주제에 관한 책을 쓸 의욕조차 없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마크 트웨인처럼 인간의 가능성에 붙어 있는 화려한 수사와 막연한 믿음을 제거해야 섣부른 희망을 품지 않을 것이다. 이 섣부른 희망은 결국 착각인데 이 착각이 매우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 조급한 희망의 결과는 상반된 현실이다. 그런데 이 현실은 직면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하다. 결과적으로는 절망의 과잉 상태에 빠진다.

지난 대선에서 나는 정권의 변화를 염원했다. 하지만 야당이 실력 없고 긴장감 없고, ‘허당’이라는 인식은 이미 지난 총선과정에서 확인됐고, 그 불안의 전조는 민선 5기 지방선거의 승리를 해석하는 당시 야당지도부의 태도에서 조짐이 보였다(기존 여당이 싫어서 반대급부로 찍어준 것뿐인데 자기들이 잘해서 이긴 거라고 자화자찬 하다니!). 하지만 이 정권 하에서 사는 게 하도 고통이라 이번만큼은 무조건 야당 단일 후보에 ‘올 인’했다. 그 후 회자되는 단어는 ‘멘붕’이다. 대선 이후 한 달 넘게 미디어의 정치면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나는 뉴스를 다시 보는데 2주일 걸렸다).

어떻게 보면 멘붕은 좀 더 냉정하지 못한 나 스스로가 선택한 착각의 결과일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해서 조급히 선택하는 미완성의 희망은 후폭풍이 거세다. 그럴 바에야, 냉정을 유지하는 것, 그 버티는 힘이 오히려 희망의 싹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버팀의 시작은 나와 타자가 동시에 행복해지도록, 거기에서 쾌감을 얻을 수 있도록 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단 프로그램으로 제안해야 한다. 상호존중과 연대 그리고 냉정! 마크 트웨인의 독설에서 얻은 교훈이다.

‘당파성’이 ‘객관성’에 앞선다.[철학을 다시 쓴다]-④

‘당파성’이 ‘객관성’에 앞선다.[철학을다시 쓴다]-④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 ‘있는 것’보다 ‘있을 것’이, ‘없는 것’보다 ‘없을 것’이 더 앞선다. 따라서 ‘당파성’이 ‘객관성’에 앞선다.

 
다시 한 번 제 신상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꽤 큰 변화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삶의 변화가 제 생각이나 느낌,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말투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글에 맞지 않는 사사로운 이야기일지 모른다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지난번 말씀드렸던 국립 대학 대학원의 교환 교수 노릇을 끝으로 저는 강단을 떠났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던 학교에 사표를 내고 서해안에 있는 조그마한 시골 동네 산자락에 묵어 가는 밭을 사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거의 한 해 반이 흘렀습니다. 늦깎이 농사꾼으로 처음부터 농사일을 다시 배우다 보니, 해뜨면 일어나 들에 나가고 해지면 개울물에서 손을 씻고 들어와 저녁을 먹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자는 날의 연속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이제 돌이켜보면 내가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애써 그 때 상황을 되살려 보려 합니다만 제 단순한 삶이 기억까지도 단순화시켜 버렸기 때문에 도대체 옛 기억의 복원이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실제 상황과 많이 다르더라도 그 동안 정신이 흐려져 꿈과 현실, 실제와 가상,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엉클어진 실타래를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탓이라 여기고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제가 하는 말에 두서가 없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그래서 칠판에 다음과 같은 몇 개의 메마른 문장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본디 뜻은 제 생각을 정리하고 학생들에게 제 머릿속에서 뒤엉켜 있는 검증되지 않은 이론들을 명확한 형태로 전달하려는 데 있었습니다만 그 작업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도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제 제가 그 때 적어 내려갔던 문장을 다시 적어 보지요.

1. 있었던 것이 있다.
2. 있었던 것이 없다.
3. 없었던 것이 있다.
4. 없었던 것이 없다.

“자, 보다시피 여기 적힌 문장들은 존재론의 차원에서 과거와 현재가 관계 맺는 네 가지 방식을 문장의 형태로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진술을 존재 판단이라고도 합니다. 이 판단들은 모두 사실 판단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문장들 가운데 1과 4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있음의, 또 없음의 지속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2와 3은 변화를 드러냅니다. 2와 3에서 우리는 ‘있음에서 없음으로 바뀜’(있었던 것이 없다.)과 ‘없음에서 있음으로 바뀜’을 상식의 기준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그러한 변화의 구체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있었던 것이 없다고 할 때 이 변화는 무엇인가 빠져 있다는 결핍을 나타낼 수도 있고, 군더더기가 없어졌다는 뜻에서 평형을 나타낼 수도 있고, 이러한 관계의 변화가 낳을 수 있는 여러 차원(현실, 심리, 판단……)의 달라진 사태를 확인할 수 있겠지요. 없었던 것이 있다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서 1, 2, 3, 4의 문장은 모두 객관화한 정보만을 제공하고 있을 뿐 그래서 어떻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한다, 그러한 지속이나 변화가 바람직하다, 바람직하지 않다 들에 대한 판단의 근거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속이나 변화가 미래의 영역, 곧 있을 것과 없을 것과 관계를 맺으면 사실 판단은 가치 판단으로 바뀌는 계기를 맞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학생 하나가 제 말을 가로막더군요.

“선생님, 있었던 것이 없다나 없었던 것이 있다는 판단이 그 안에 어떤 가치 판단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요. 실제로 오늘 저는 있었던 것이 없어서 기분이 몹시 언짢았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강의 발표 요지를 분명히 책가방 안에 넣고 왔는데 찾아보니 없더라고요. ‘기분이 안 좋다.’ 이것도 가치 판단이 아닙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없었던 것이 있다는 판단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지요. 이를테면 굶주린 사람에게 어떤 계기로 밥이 생겼다 할 때 그 사람에게 없었던 것이 있게 된 계기는 결핍의 충족이라는 점에서 ‘좋다’는 판단을 내리게 하겠지요. 반대로 갑자기 없었던 위장 장애가 생겨 배가 몹시 아프다면 ‘나쁘다’는 판단을 내릴 겁니다. 학교 교문이 자유롭게 열려 있다가 어느 날 전투 경찰들이 교문을 닫아걸고 기관총을 걸어 놓았다면 두렵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겠고요.

그러나 이러한 모든 가치 판단은 이제부터 말하려는 미래의 영역, 곧 있을 것과 없을 것의 관계 속에서 생겨납니다. 우리는 과거의 존재를 있었던 것으로, 현재의 존재를 있는 것으로, 미래의 존재를 있을 것으로 나타냅니다. 또 과거의 비존재를 없었던 것으로, 현재의 비존재를 없는 것으로, 미래의 비존재를 없을 것으로 나타냅니다.

그런데 있는 것, 없는 것, 있었던 것, 없었던 것과는 달리 있을 것과 없을 것이라는 말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단순한 예측이나 추측이고, 다른 하나는 마땅히 그러해야 함, 곧 당위〔sollen〕입니다.

‘여기 있는 칠판은 내일도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여기 없는 분필은 내일도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또는 ‘있을 것으로 여긴 모래무지는 없고, 없을 것으로 여긴 붕어는 많이 있다.’ 같은 말에서 있을 것과 없을 것은 추측이나 단순한 예상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요, 있을 것이 없거나 없을 것이 있는 세상은 나쁜 세상이다.’와 같은 말에서 있을 것과 없을 것은 단순한 예측이나 추측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여기에서 있을 것이라는 말에는 있어야 할 것이라는 뜻이, 또 없을 것이라는 말에는 없어야 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왜 있을 것, 없을 것이라는 말에 이런 이중의 뜻이 담겨 있을까요?

파르메니데스에서 아우구스티누스로 이어지는 서양 존재론의 전통에 따르면 미래는 ‘아직 없는 것’입니다. 앞에서 네 개의 문장을 보기로 들면서 ‘있었던 것이 있다.’나 ‘없었던 것이 없다.’는 있음의 지속 또는 없음의 지속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 없다.’나 ‘없었던 것이 있다.’는 말은 있음과 없음의 관계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한 적이 있지요?
 

보티첼리의 ‘아우구스티누스’. [중앙포토] http://p.joongang.co.kr/kr/news.do?_method=webcontent&newsid=20110624N0026#


 
과거와 현재의 관계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원인 또는 이런저런 원인과 조건에서 이런저런 지속이나 변화가 결과했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과거와 현재의 관계에서 필연의 법칙을 유추해 내는 거지요. 그런데 그 필연의 법칙은 엄밀히 말하자면 의식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속의 측면에서는 필연의 법칙을 끌어 낼 수 있을지 모르나 변화의 측면에서는 필연의 법칙이 안 나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있었던 것이 없게 되거나, 없었던 것이 있게 되는 이 극단의 변화에 어떤 필연성이 있습니까? 필연성이 없어서 필연의 법칙을 끌어 낼 수 없으니까 우리의 의식은 자꾸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바뀌거나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바뀌는 일은 일어날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모든 관계는 있는 것과 있는 것의 상관관계이고, 이 관계가 어느 측면에서는 지속으로, 어느 측면에서는 변화로 드러나는 것뿐이다.’ 하는 식으로 외곬으로 흐르게 됩니다.

그러나 앞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했듯이 있는 것은 하나로 있지 여럿으로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있는 것과 있는 것의 상관관계라는 말은 일상의 차원에서는 편의에 따라 쓰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어불성설이요 모순입니다. 마치 야바위꾼이 품속에 무엇인가 감추어 놓고 모르는 사람을 속이려 들듯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있는 것과 있는 것 사이에는 없는 것이 있어서 이 있는 것과 저 있는 것을 갈라놓는데, 없는 것을 있다고 하면 논리에 모순이 생기므로 없는 것은 없다고 하고 논의를 진행시키자.’고 강변을 하는 것입니다.

이 야바위 노름이 서양의 철학과 과학에서 어찌나 오랫동안 사람들을 세뇌시켜 왔던지, 지금 대부분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거나 이 엉터리없는 일면적인 의식의 법칙을 자연의 불변하는 법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형편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의 표정에 불만의 빛이 역력했습니다. 손을 드는 많은 학생 가운데 한 학생에게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이렇게 반박을 하더군요.

“지나친 매도인 것 같은데요. 만일에 선생님 말씀처럼 있는 것이 하나로 있고, 있는 것과 있는 것 사이의 관계 법칙이 야바위 노름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동안 물질의 최소 단위를 찾으려는 과정에서 밝혀진 물질세계의 여러 법칙들, 또 생명체의 최소 단위를 찾으려는 시도에서 파생된 여러 과학 기술의 축적과 그것이 인류 사회에 기여한 공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요? 도대체 시공 연속체인 이 우주 안에서 단위인 여러 하나를 찾으려는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철학이고 과학이고 다 사상누각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의 틀도 다 무너지지나 않을까요?”

다른 학생이 일어나서 또 이렇게 말하더군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이 우주 안에서 양〔quantity〕의 최소 단위나 질〔quality〕의 최종 단위를 찾으려는 시도는 모두 부질없는 노력인 것같이 여겨지는데요, 그리고 그 최소 단위나 최종 단위가 확정되지 않으면 무엇을 무엇이라고 규정하거나 무엇이 얼마라고 측정하는 일이 불가능한데요. 질과 양, 척도 뭐 이런 것에 대한 규정이 없이 어떻게 어떤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나요?”

“잠깐, 내가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 성급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요. 그러나 그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미 꺼낸 말이니까 먼저 사실 판단에서 가치 판단으로 전환하는 데 아직 없는 것으로 규정된 미래가 어떤 구실을 하느냐에 대한 설명을 마저 하기로 합시다.

파르메니데스의 규정을 받아들이면 있을 것도 아직 없는 것이요, 없을 것도 아직 없는 것입니다. 있는 것(또는 없는 것)으로 규정되는 현재와 관계에서 아직 없는 것은 단순히 있는 것(없는 것)의 지속으로 나타낼 수도 있고 이 경우에는 지금 있는 것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낳겠지요. 또는 지금 없는 것이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예측을 낳을 겁니다.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바뀌는 변화(또는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바뀌는 변화)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있음과 없음을 저마다 독립된 항으로 놓고 실체화시키는 관점에서 보면 이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은 이러한 변화를 모순으로 보아 있을 수 없는 일로 못 박습니다.)

응답하라! 학생들의 시국선언에 침묵하는 언론과 어른들이여![시대와 철학]

응답하라! 학생들의 시국선언에 침묵하는 언론과 어른들이여![시대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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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대학의 어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난 6월 18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국정원선거개입 관련 시국선언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 의견을 수렴해 다음 달 중 시국선언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19일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과 경찰 축소수사에 대한 총학생회의 입장’을 발표했다. 이어 20일에는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시국선언 추진을 공식 발표했다. 비운동권 성향의 서울대 총학생회의 이러한 행보는 곧 다른 비운동권 총학을 포함한 대학들의 동참 선언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종교계도 서서히 이에 동참하고 있다.

이번 시국선언 추진 운동은 SNS를 통해 확산된 것과 비운동권 총학, 총학이 아닌 ‘보통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가 특징적이다. 총학이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시국선언에 불참하겠다고 밝힌 성신여대는 SNS를 통해 하루 만에 자신을 ‘보통 학생’이라 밝힌 119명이 모여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119명의 학생들은 정치적 중립의 기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총학생회장의 직함으로 대통령 직속 기구에 소속된 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 하면서 ‘사회문제에 학생 자격으로 목소리를 내는 시국선언’을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주저하는 총학의 언행은 모순입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현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에서는 정치외교학과 학생 4명이 ‘양심선언’을 발표했다. 이렇게 대학가에서 운동권, 비운동권의 범주를 깨고 자발적 정치참여가 시작되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다. 대학 내의 운동이 전멸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교수나 재야인사, 종교계에서 시국선언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먼저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반면에 교수 등의 대학가의 ‘어른’들은 그 어떤 뚜렷한 제스처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침묵은 촛불로까지 번지고 있는 대학가의 시국선언과 지지호소의 열기를 식히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시국선언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해야만했던 그 교수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다른 선언을 준비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때 당했던 상처를 아직도 수습 중인가? 그도 아니면 시국에 대한 온도차가 있는 것일까,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냉소주의에 빠져있는 것일까? 교수들도 개인적으로는 활발하게 의견개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집단적 입장 발표도 없는 작금의 상황에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20대는 88만원 세대, 혹은 삼포세대라고 일컬어진다. 기업은 그들에게 취업하고 싶으면 자신의 절박함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그 절박함이란 것은 수시로 학점으로, 토익 점수로, 해외연수경험으로, 자기소개서로 바뀌건만 취업문은 절대 넓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정부는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자신의 빈궁함을, 경제적 비참함을 만인에게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런 그들이 정치에 등 돌리도록 종용한다. 그런 세상에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그리고 그 노력에 지지를 호소하는 대학생들에게 지금 그 스승들, 멘토들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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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왼쪽부터 네번째)과 학생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규탄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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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언론의 권력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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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쪽 날개로만 힘겹게 날아오르려 하는 대학생들을 언론은 노골적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학생들의 시국선언을 파급력 없는 단순한 ‘선언’으로 끌어내리려는 언론은 침묵하는 방법으로 정치권력을 돕는다. MBC와 YTN의 메인 뉴스에는 시국선언에 대해 아직까지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또한 포털 사이트 ‘네이트(NATE)’에서는 21일에 ‘시국선언’ 단어를 검색하면 사이트가 먹통이 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논란이 커지자 네이트는 단순한 기술상의 오류라고 해명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시국선언’을 검색하면 검색어가 ‘시국의 선언’으로 자동으로 바뀌어 검색되는 기현상이 있었다. 또한 포털 사이트 ‘네이버’ 또한 21일에 ‘다음’과 달리 실시간 검색순위에 ‘시국선언’에 관련된 검색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이 시국선언을 검색하지 못하게 하려는, 이슈파이팅을 저지하려는 의도인지, 그저 단순 오류인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네이트와 네이버의 검색어 조작논란은 이러한 정치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매번 있었고, 그때마다 전문가들의 조작에 대한 근거제시와 함께 네티즌의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이보다 더 적극적인 언론들은 정치세력들과 함께 돌팔매질에 돌입했다. 조중동은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수사과정에 있는 사건에 대해 ‘시국’ 운운하는 것은 과잉행동이라는 자신들의 주장과 함께 따라서 ‘시국’에 대한 논쟁이, 선언에 찬성하지 않는 학생들의 반발이 학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기사를 싣고 있다. 그리고 특히나 학생들의 선언이 무게가 없다거나, 그저 또래의 유행 같은 집단행동이라는 등의 ‘권위 있는 교수’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 파급력을 깎아내리고, 갈등요소로 부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진부하지만 언제나 효과를 보장하는 ‘물타기 수법’도 등장하고 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이에 대한 수사 축소 및 은폐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한 사건을 앞에 두고도, NLL 대화록을 공개하겠다는 유치하고 진부한 협박이 통하리라 생각하는 정부와 국정원, 집권여당의 수준이 개탄스럽다. 하지만 그보다 더 쓰라린 점은 이러한 방법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점이다. 꾸준히 진행되어온 권력의 언론 잠식은 박근혜 지지율 70%라는 경이로운 효과를 드러냈다. 인사 참사와 외교에 대한 무능력이 여실히 드러났음에도 말이다. 그러니 권력이 학생들의 선언문따위야 묵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끝없이 ‘권력앓이’하고 있는 언론이 든든히 버티고 서서 적절한 어휘와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국정원의 선거개입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그 사안 자체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중대하고 위급한 문제임에도 언론은 애써 이것을 ‘민감한 정치적 문제’로, 따라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논조로 문제를 축소시키려 한다. 2008년의 촛불집회는 국민의 주권과 건강권이라는 이슈를 중심으로 공감대 형성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뛰었다. 그래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여론 형성과 의제 설정을 위해 제 4의 권력으로서 살아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언론은 이명박 정부의 방통위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해고·해직의 칼날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결국 괴사(壞死)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게 제 기능을 잃어버린 언론은 정권의 나팔수로 활동하던 지난 세월을 그대로 반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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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촛불은 번져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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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지역 대학생들은 21일부터 광화문에서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돌입했다. 주말인 23일에는 시민들이 합세하여 500여 명이 광화문에 모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 경찰은 최루액을 분사하였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고교생의 얼굴에 최루액을 분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첫 촛불집회에서 경찰은 집회의 양상을 고려하지 않고, 진압수위를 높이는 충성심을 보인 것이다.

‘민감한 정치적 문제’라는 용어로 국민을 주춤하게 만들고, ‘종북좌파’라는 틀거리로 학생들을 옭아매면서, 국정원의 NLL 대화록 공개라는 눈가리개를 통해 박근혜 정부는 촛불을 꺼버리고 싶어 한다. 이명박의 정치적 유전자를 물려받은 박근혜 정부는 촛불을 두려워하는 것 또한 닮아있다. 하지만 2008년에 비해 보다 더 정부에게 유리한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거기에 더해 미온적인 태도의 교수들과 어른들, 일베로 대표되는 젊은 ‘넷(net) 극우파’들의 극성스런 방해로 이번 학생들의 촛불은 채 자신을 다 태우지도 못하고 사그라져갈지도 모른다. 다시금 촛불이 번져갈 수 있을까? 그것은 ‘정상적인 나라’,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싶다는 학생들의 절실한 바람과 정당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답하고, 자발적으로 응하는 태도에 달려있을 것이다.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17)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17)

글: 이정호 (방송통신대학교 교수)

 
* 주제 3에서는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제8장 “Zur Philosophie, Wissenschaft und Redekunst”(Gesammelte Werke, Band VII, s. 275-421)의 내용을 수회에 걸쳐 발췌 요약하는 방식으로 소개한다.
 

주제 3 :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 그리스 철학과 과학의 지성사적 기원과 의미(1)

 

1. 추동과 저지의 양 측면

고대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에 대한 우리 논의의 목표는 그 구체적인 지식의 내용들을 서술하는데 있지 않고 이 학문들과 그리스 정신과의 관계를 서술하는데 있다. 사실 고대 오리엔트 남서부에 위치한 고대 국가들은 지식 축적의 측면에서 고대 그리스보다 시대적으로 훨씬 앞서 있었다. 특히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문화는 매우 다면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문화보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오래전에 성립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나라들이 힉소스(Hyksos) 같은 탐욕스럽고 미개한 나라들의 장기간에 걸친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도 굳건히 그 문화를 지켜왔다는 것은 매우 놀랍고도 위대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이룩한 최초의 위대한 종합이며, 또 이러한 국가들이야말로 지식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유용하게 사용한 최초의 국가였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까닭은 강력한 신관 계급이 그 일을 맡아 오면서 수많은 자료들을 축적해두었기 때문이다. 페니키아 문화는 이러한 고대 오리엔트 문화 중에서 그리스 본토에 이식된 최초의 햇가지라 할 수 있다.

그리스가 문화적으로 발전한 것은 이보다 훨씬 나중의 일이다. 그리스 사람들이 기나긴 미개의 상태를 지나 국가의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여러 개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계급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또 그리스인들은 특유의 강한 그리스적 특징을 보전하고 있어서 극히 강력한 제약아래서만 외래 문물의 차용을 허락했다. 예를 들어 페니키아 문물의 영향을 접했을 때도 그들은 이 문물을 즉시 그리스화하여 그것이 거의 외래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자기나라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상형문자, 민용문자에 이어 병기된 로제타석 그리스어 부분

그런데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한 강력한 힘은 다름 아닌 그리스인들의 언어에 있었다. 그리스어는 그들의 시가(詩歌)에 기여한 그 이상으로 학문의 발전에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어는 장차 나타날 철학을 이미 잠재적으로 그 안에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스어는 아주 투명한 사상의 외피라고 말할 정도로 사상 특히 철학 사상을 표현하는 데 아주 적합하였다. 아마도 그것을 표현하는 그리스어의 유연성은 실로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개별 사물로부터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는 언어 세계로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자체로 이미 실천적 변증술(praktische Dialektik)의 토대가 됨으로써 철학 사상을 표시하는데 발군의 창조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최대의 그리고 결정적인 여러 가지 이념들은 이집트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어로 비구상적인 것들 혹은 추상적인 사상을 막힘없이 표현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해 보아야할 일이다. 셈족의 언어도 그리스어에는 한참 뒤떨어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헤브라이어로 번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아라비아인들조차 그리스인의 저작이 없었다면 철학을 손에 넣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리스인 이외에 원래 처음부터 철학에 도움이 되는 언어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인도인과 게르만인 뿐이었을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라든지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가장 초기의 그리스 철학자들 역시 철학적 사색의 각 과정에서 신화적 명칭을 부여하거나 추상적인 것을 의인화 했다. 하지만 이윽고 철학은 자기 고유의 말을 손에 넣었다. 즉 철학은 초기 시대부터 존재하고 축적되어 있었던 언어에 의지하여 보편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였고 또 그 의미가 매우 불안정한 심리적 표현들 이를테면 nous, psych?, thymos, phrenes, prapides 등의 의미를 안정화시켰다. 그들은 추상적 관념을 용이하게 명사로 만들어내는 그리스어의 특성을 충분히 활용하였던 것이다. 그리스인은 어떤 것을 개념적으로 드러내고자할 때 실로 간단하게 복합어를 만들어 그것을 표현할 수 있었고, 또 사태와 관련해서도 모든 동사와 명사를 전치사와 연결시켜 용이하게 잘 드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형용사와 분사를 중성명사화 하여 아주 쉽게 여러 가지 원리나 기본 물질 등을 표시할 수 있었다. 게다가 특히 더 주목할 만한 것은 그리스어에는 수동 형용동사(to lekteon)가 존재한다는 것, 동사의 부정과거(aorist) 용법 등을 통해 제약적인 것과 무제약적인 것이 드러내는 모든 표시와 음영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간태(주체의 동작이 그 주체에 관여하는 상태를 표시)를 통해 동사 개념의 미묘한 차이를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리스어는 부정사의 명사적 용법은 물론 관사를 이용하여 실로 다종다양한 것을 명사화할 수도 있다. 물론 그리스어의 이러한 풍부한 활용성에도 불구하고 약점 또한 없지 않다. 이를테면 재앙과 사악함을 kakon이라고 하는 말 하나로 사용하고 있다든지 ‘자의식(Selbstbewuβtsein)’을 나타내는 말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 등은 그 결함의 하나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리스어는 단지 사람들이 서서히 손에 넣어 익숙해진 도구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미 모든 정신적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는 대화로서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실로 meropes(사태를 구별하여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즉 그들은 부분과 전체, 특수와 보편을 식별하고 그것들에 명칭을 부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경우조차 어떤 말도 신성화 하거나 화석 같은 상태로 숭배하는 일이 없었다. 어느 것도 특정의 전문 용어 아래 예속되지 않았다. 어느 철학자, 어느 학파가 그 학파의 말을 완고한 의미로 사용하면, 동시에 다른 철학자들이 그곳에서 신기한 다른 것들을 끌어낸다. 여기에서도 오로지 시합 내지 경쟁(agon)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정신세계에서 드러나는 개별적이고도 유별난 그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그리스인은 그것을 나타내는 살아있는 표현을 늘 가지고 있었고 경험세계의 다양한 것들로부터 개념으로 상승하였다가 다시 개념으로부터 개별적인 것들로 하강하는 작업 또한 용이하게 수행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인은 사고의 모든 메커니즘을 상상의 소산으로부터 분리하여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일종의 논리학과 변증술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에 가세해 수사학과 소피스트의 철학은 시민들의 입을 더욱 활발하게 열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언어도 언어지만 비범하다고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인들이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철학적 자질이었다. 실로 그것은 인식의 가짓수 수준의 것이 아니라 어떤 인식에도 이를 수 있는 능력이었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큰 약점마저도 그들이 철학을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분명 철학은 강력한 종교의 한쪽 편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도나 이슬람교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이단이나 종파로서 발생한 것들이다. 그리스인의 경우, 철학은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생겨났지만 그것의 발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어떠한 힘도 제도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관들 누구도 종교와 철학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그리스 종교는 기존 지식과 신앙의 감독자였지만 동시에 사고의 소유자이기도 하였으므로 위계적인 계급(Kaste)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또 철학자가 등장할 때에 반드시 그것과 결부되어 있을 법한 특정의 ‘단체(Soziet?t)’도 존재하지 않았고, 관료 족속 따위의 특정 계층도, 분열을 조장하는 어떤 ‘교양(Bildung)’도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극히 다양한 환경이 있었고, 현자라고 여겨지는 사람들 또한 일종의 자명한 합의에 의해서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부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시민들은 이러한 현자들을 하나도 배척함이 없이 다 끌어안고 있었다. 또 정신적인 일에 종사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제약도 없었고, 자유민이라면 누구라도, 하물며 어떤 노예라도, 뿐만 아니라 비(非)그리스인들 조차도 그리스적 교양을 가지고 있으면 철학의 길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는 훨씬 커져갔다. 누구라도 실제로 철학에 종사할 수 있었고 철학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도처로부터 나타나 교사가 되었다. 계급대신에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는 학파(Schule)를 가졌던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10권 일부가 실린 가장 오래된 파퓌로스

그러나 이상에서와 같이 철학을 추동하는 수많은 조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 처음부터 철학의 형성을 저지하는 강력한 힘이 존재하고 있었다. 신화가 그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민족 형성기 이래 하나같이 영웅신들의 시대를 천진난만하게 살아왔고 그 후에도 신화는 실로 이 시대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으로서 중단되지도 축소되지도 않은 채 그리스인들을 지속적으로 지배하여 왔던 것이다. 이 빛나는 형상이 환영처럼 그리스인들의 머리 위를 맴돌았고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이 형상이 내비치는 상태에 가장 가깝고도 정당한 상속자라고 느꼈다. 그리하여 이 형상은 무섭도록 명백한 인생관으로 각인되면서 오랜 기간 철학을 대신했다. 이 형상이 지식을 대신한 까닭은 형상 스스로가 지식의 원형이었기 때문이고 자연, 우주관 그리고 역사, 종교와 우주생성론까지도 놀랄 만큼 상징적인 옷으로 치장하여 함께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화의 외형을 구성하고 있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시가(詩歌)들에 의해 신화는 불사신이 되었고 그리하여 신화는 그리스인에게 로맨티시즘이자 청춘으로 받아들여졌다. 신화는 고대 그리스인과 더불어 계속 살아있었고 고대 세계가 이어지는 동안 비그리스인에게도 계속 살아 있었다. 설사 종국적으로 신화가 단지 학술과 수집과 비교의 대상이 될 지라도 그것의 하나같은 표현이 예술과 시가인 한, 이 두 개의 분야에서 신화는 끊임없이 새로운 싹을 틔어왔다. 지식의 경쟁 상대이자 불구대천의 적(敵)인 신화는 오랜 동안 해석되고 새로운 해석이 더해지면서 거꾸로 뒤엎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사고와 지식을 일으켜 세우려고 한다면 먼저 신화를 전복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신화와의 결별은 아주 오랜 동안 더딘 속도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그 또한 결코 충분하게 완전히 이루어질 수도 없는 것이었다.

(2. 신화와의 결별. 다음에 계속)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한다[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⑥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한다-8, 9강

 

이순웅(숭실대 외래교수)

* 자본주의의 간단한 역사,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힘, 자본주의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 – 신의 역할을 하는 화폐

 

중세와 근대는 역사적 연속성이 있다. 두 시대는 이질적이지 않다.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의 등장으로 세속적 역사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화폐가 신을 대신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 때는 사제가 신을 내세우면서 권력을 누렸다. 그는 신의 대리자였다.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에는 금융자본가가 화폐의 중요성을 내세우면서 권력을 안착시켰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정치권력을 자기 앞에 내세운다. 그는 자신을 은폐하면서도 화폐가 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만큼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중세 시대에 신을 받아들인 것만큼이나 오늘날의 우리는 화폐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중세 시대에는 신을 모르거나 믿지 않거나 부정하는 자는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거나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오늘날에는 신을 부정할 자유가 생겼다. 그러나 불법적으로 정치권력에 도전하는 자 그리고 화폐를 부정하는 자는 철저히 응징 당한다.

우리 시대의 지배자들은 정치권력에 도전하려면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합법적어서는 정치권력을 바꿀 수 없다. 법 자체가 정치권력을 쥔 자, 나아가서는 화폐를 쥔 자들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법’이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돈을 경멸하는 자조차도 화폐가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잘 알지만,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어렵다.

새로운 대안은 정치권력을 쥔 자의 배후에는 금융자본가가 있다는 것, 금융자본가의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화폐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화폐는 비물질적 형태로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치 신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경배하도록 만든다.

결국 새로운 대안은 정치권력의 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화폐의 신적 성격을 부정하는 데서부터 발생한다. 신은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것일 수 있지만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화폐는 우리 생활 전체를 지배하지만 먹을 수도 없고, 아픈 것을 낫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창고에 쌓여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통장에 써 있는 숫자의 형태로, 장부상으로만 존재한다. 신을 믿는 자에게 신은 자신의 모든 것이지만, 신을 믿지 않는 자에게 신이란 집에서 기르는 개만도 못하다. 화폐나 신의 실재성에 관해 의심해보기, 무의식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고정 관념의 파괴, 즉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화폐 없이 살 수는 없는 건지 생각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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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세 –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Constantinus 1세(AD 274~337) – 고대 로마 황제(재위 306~337).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 또는 콘스탄틴 1세. 원래 태양신을 숭배하였으나 기독교에 깊이 경도, 기독교도가 되어 – 어머니가 기독교 신자였다고 함 – 313년 밀라노에서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勅令)(Milan Edict)을 공포, 신앙의 자유를 인정했다. 예수와 바울의 관계. 기독교는 예수의 제자들이 만든 종교가 아니다. 바울이 아니었다면 기독교가 생기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울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그렇다면 기독교(Christianity)의 의미는? 기독교는 예수 때문에 생긴 종교다. 예수가 자기를 따르는 종교를 만들라는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바울의 노력으로 기독교도 생겼다. 기독교도란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 예수처럼 살고자 하는 무리들이라는 뜻이다.

종교(religion)의 의미. ‘신과 인간을 다시 잇는다’는 뜻. 이때 신은 전지, 전능, 전선, 영원불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존재이다. 구약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신과 함께 있었으나 지혜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금기를 어겨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그 후부터 인간에게는 신앙을 통해 신과 자신을 다시 연결해보려는 소망이 생겼다. 그런데 동양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 관념이 없다. 종교라는 말 자체는 서양 사람들의 신 관념에서 나온 말이다. 기독교는 서양 문화를 형성하는 한 축이다. 그리고 이라는 영상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독교는 자본주의의 발전과도 밀접한 연관을 지녔다. 유대인인 레비나스는 기독교의 타락을 지적하면서 유대교적 발상에서 일종의 대안을 찾고 있다. 그것은 메시아를 기대하는 것인데, 모든 사람이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대교와 불교적 발상의 결합이기도 하다. 유대교는 메시아를 믿고 기다리며, 불교는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 박해를 중지시키고 교회의 사법권, 재산권 등을 우대했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한편, 독립적인 재판까지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독립적인 재판을 한다는 것은 교회가 옳고 그름의 문제를 세속 권력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중세 말 또는 르네상스시기에 종교 재판의 힘이 막강해지는 데에도 기여한 셈이다.

갈릴레오는 정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을까? 부르노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중세에는 왕권(세속 권력)과 교권(교회 권력. 교황)의 대결에서도 교권이 우위를 차지했다. 나폴레옹 대관식(1804년)은 이 관계가 역전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밀라노 칙령의 정치적 의미 – 유일신교는 절대적 권력을 가진 1인 황제체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1인 황제의 권력은 유일신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신앙은 사회 통합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는 왜 박해를 받았나? 기독교는 육체, 지상의 문제는 덧없는 것이라 가르쳤다. 영혼, 그리고 그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안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세속 권력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유일신 신앙이 황제 1인의 유일한 권력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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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르네상스(Renaissance, 부활, 재생)

중세와 근세 사이(14~16세기)에 서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역사 시기와 그 시대에 일어난 문화운동. 고대 로마와 그리스 고전 문화의 부활, 재생. logos의 부활.
신앙과 이성, 종교와 과학, 신학과 철학, 천상과 지상, 영혼과 육체,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에서 후자가 중요시되는 시기. 정치적으로는 로마 공화정, 그리스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짐.

예를 들어 르네상스 회화에서는 그리스 신화, 기독교 창조 신화 등을 묘사하면서 인간의 벗은 육체를 등장시킨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영혼에서 육체로 관심을 돌림.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육체를 이용해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육체는 자본주의적 이윤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화장술, 성형수술의 중요성. 상품화가 전면화된 사회.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려면 재벌가 또는 유력 정치인의 딸이어야 하거나 절대 미인이어야 한다. 재력가끼리의 정략결혼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절대 미인은 미스코리아 출신이거나 주연급 탤런트 출신을 의미한다. 미인은 고가의 상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인이 아나운서가 되면 ‘현명함’이라는 인상이 보태져 그 가치(가격)가 더 높아진다. / 그러나 재력 없는 미인은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결혼이란 재산을 나누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능력(재력) 있는 아들을 둔 시어머니가 능력 없는 며느리에게 ‘열쇠를 많이 가져오라’ 요구하는 것은 등가교환을 하자는 것이다.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 그녀에게 사랑은 ‘개에게나 줘버릴 것’에 불과하다. 부등가 교환은 강도요 도둑질이기에 정당하지 않다. / 보드리야르의 ‘과잉순응’ 이야기.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게 살 수 있는가. 여성은 남성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미셸 푸코(1926~1984), 사진출처: www.changetimes.org

근대주의자들은 개인의 시대가 열리면서 공동체가 파괴되었다는 것을 잘 알려주지 않는다. 역사가 진보했다는 것을 말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

푸코는 왜 이성이 본래부터 억압적, 계급적, 당파적이라 했을까? <광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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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근세

르네상스(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에서부터 절대주의(絶對主義, absolutism), 중상주의(重商主義, mercantilism)가 전개되는 17~18세기까지의 시기(즉, 15~6세기부터 17~8세기까지).
자본주의 발전사에서 보면 이 시기는 자본의 원시적 축적기. 정치적으로는 신흥 상공인들과 왕이 일시적으로 결탁한 시기. 왕은 그들의 돈이 필요했고 그들은 왕의 법적 보호가 필요했다. 하지만 나중에 왕은 시민사회 형성의 걸림돌이 되어 상징적 존재로 전락하거나 제거된다. 영국의 명예혁명(1688)이나 프랑스 혁명(1789)은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

아메리카 대륙(신대륙)은 발견한 것이 아니라 유럽 자본 권력에 의해 침탈당한 것.
오만한 로크(John Locke, 1632~1704) – 소유권, 노동의 소중함을 강조한 그에게 신대륙은 주인 없는 땅. 그에게 인디언(원주민)은 없었다.

근대주의자들이 강조한 민주주의는 사실상 부르주아들만의 민주주의. 자유로운 자들만의 평등. 평등한 자들만의 자유.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강제. 법에 관해 되묻기

‘부자는 3대(代)를 못 간다’는 말은 허구. 남미를 정복한 스페인의 (돼지치기 출신)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 1475? ~ 1541)의 후손들은 지금도 잘 산다. 피사로 군대는 잉카 왕국으로부터 많은 황금을 빼앗았다. 이를 두고 피사로의 후손들은 잉카인들에게 금(화폐)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라고 말한다. 남미 진출이 피사로에게는 새로운 출세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었지만 원주민들에게는 문명의 몰락을 가져왔다.

벤야민의 예술사회학적 관점에 따르면 오늘날 서구 사회가 보여주는 물질문명은 야만적 행위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거대한 궁성도 마찬가지. 그러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피땀을 흘렸을까 생각해야.

1854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일군의 백인 대표단을 인디언 부족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인디언보호 구역을 제공할 테니 땅을 팔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했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소유관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대들(백인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시애틀 추장 연설,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 김종철 편, <녹색평론 선집 >, 녹색평론사, 2008, 23쪽)

테즈매니아의 비극 – 1876년 테즈매니아인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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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이나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성립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17~18세기 이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시민혁명을 통해 자본가는 정치권력까지 거머쥐고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식민지라는 시장을 둘러싼 자본 간의 전쟁. 식민지는 값싼 원료와 노동력의 공급기지. 상품의 판매 시장. 자기 증식의 한계가 해외로 눈을 돌리게 한 것.

동학 농민군을 물리친 것은 일본군.

잉여가치의 생산과 자본의 확대재생산은 식민지로부터의 초과 이윤에 의해 가능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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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쯤(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contemporary라고 할 때는 이 시기를 말한다.

1,2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파국을 보여주었지만 변신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동서냉전의 시대의 시대가 열리는가 하면, 제3세계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은 시장경제 원리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가는 시대.

1,2차 세계 대전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더 나쁜 악과 덜 나쁜 악의 대결. 세계 대전을 다루는 영화나 다큐멘터리에는 식민지(민중)의 입장이 빠져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인이 지혜로운 자였다. 그들은 정보의 보고(寶庫)였고 ‘도서관’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기술과 노동력이 요구된다. 노인의 지식이 쓸모없어졌고,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존경받기가 힘들어졌다. 돈이 있다고 해서 존경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식은 부모의 재산을 빨리 물려받기를 원한다. 재산을 물려주지도 않은 채 건강하게 오래 사는 부모는 자식이 출세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존재? 게다가 정보도 없고 돈도 없는 노인은 ‘천덕꾸러기’ 신세. 최첨단 지식을 습득하기도 어려운 상황. 그렇지만 적어도 ‘세상은 이런 거 아니니?’라고 말했을 때, 젊은 세대가 수긍한다면 여전히 지혜로운 자.

부자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으나 존경의 대상이 되기가 어려운 현실. 부자는 끊임없이 자애로운 이미지를 연출해야 한다. 기업 역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는다. 단, 이윤 추구 활동에 도움이 되는 한도 내에서.
주택문제의 본질은? 기사 참고

가격과 상관없이 집을 여러 채 소유한 순서로 본 100대 집부자 현황을 보자. 대한민국 최고 집부자는 혼자서 1083채를 소유하고 있다. 2위는 819채, 3위는 577채, 4위는 512채, 5위는 476채, 6위는 471채, 7위는 412채, 8위는 405채, 9위는 403채, 10위는 341채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다주택소유자 상위 100인 현황'(2005.8.12 기준)을 보면 ‘집을 여러 채 소유한’ 기준으로 집부자 100명이 갖고 있는 집은 모두 1만5464채로 나타났다. 최상위 집부자 10명이 소유한 집은 모두 5508채로 한 사람 평균 550채씩이다. 이들을 포함해 30명이 9923채, 50명이 1만1948채를 갖고 있다.

집을 200채를 갖고 있어도 집부자 20위에 들기 어렵고(21위가 212채), 100채 이상 소유한 사람도 37명에 달하며, 집을 가장 적게 갖고 있는 100위가 57채로 나타나 집 50채 소유한 사람은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0303175324&Section=

1848년, 프랑스에서 2월 혁명으로 세워진 의회공화정은 4년도 안 돼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를 통해 독재체제가 되었다. 보나파르트는 ‘빵과 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너희들을 배부르게 해주겠다는 말은 마취제가 되어 민중들을 현혹할 수 있었다. (정치학의 ‘자본론’. 마르크스,, 최형익 역. 비루트출판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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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신화, 환상, 마취제는 무엇일까?

근대(modern)는 신의 자리에 인간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신학적 영향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중세와 근대의 연속성. 화폐의 역할. 신화를 만들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근대 권력. 경제권력의 하수인이 된 정치권력.

오늘날 세계의 실제 주인은 월가(Wall Street)의 금융자본가. 미국의 정치판은 프로레슬링. 대중들이 보는 데서는 열심히 싸우는 척하다가, 싸움이 끝나면 맛있는 거 함께 먹으러가는 것. 케네디는 왜 죽었을까. 대통령 노릇 해보려다가 희생된 사람. 사실상의 마지막 대통령 (알렉스 존스 저,, 김종돈 역 노마드북스, 2010)

노암 촘스키 – 미국은 세계 최대의 테러리스트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가. 선거 때만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 아닐까.

내 손으로 뽑아놓고 그에게 고개 숙이는 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는? 아감벤은 민주주의를 전체주의의 다른 이름이라 했다. 왜 그랬을까? 간접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탄생한 무솔리니, 히틀러 권력.

민주주의는 텅빈 기표인가? 랑시에르에 따르면 ‘정치 투쟁은 단어를 전유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누구의 민주주의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숨어있는 권력, 자본권력의 외피로서의 정치적 민주주의 문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열쇠.

있는 것이 아니면 없는 것이라고?[철학을다시 쓴다]-③

있는 것이 아니면 없는 것이라고?[철학을다시 쓴다]-③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이쯤에서 내가 첫 강의에서 한 말로 되돌아가기로 하지요. 같은 말을 되풀이하자는 뜻에서가 아니라, 딴 이야기를 하자는 뜻에서요.

다 아는 뻔한 말인데도 굳이 상기시켜 드렸듯이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은 하나도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 말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가장 큰 단위로 여기는 우주도 없습니다. 또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은 다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 말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가장 큰 단위로 여기는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 무한히 여럿이 됩니다.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은 빠진 것이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 말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가장 큰 단위로 받아들이는 우주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있는 것이 있다는 말은 하나가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 말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가장 큰 단위로 받아들이는 우주는 하나입니다.

이 네 마디 말은 저마다 존재론이나 우주론의 주춧돌로 쓸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말로 주춧돌을 놓느냐는 개별 상황이나 집단 상황의 반영일 수도 있고, 시대가 요청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이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이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을 주춧돌로 삼기 꺼리고 그 쪽으로 돌려지는 생각을 거짓으로 못 박아 자꾸만 외면하려는 데에 까닭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의식 안에 자리잡고 있고, 자꾸 자맥질시켜 물 속에 잠기게 하려고 해도 끊임없이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는 이 불길한 말에 끝까지 귀를 막을 수는 없지요.

더 솔직히 말할까요? 의식이 몰아내고자 하는 이 어둠의 소리는 사실 의식 활동의 숨은 전제들입니다. 없는 것이나 없다는 말을 빌리지 않으면 의식은 한 걸음도 발길을 떼 놓을 수 없습니다. 있는 것만 있는, 하나만 있는 세상에는 의식이고, 감각이고, 추억이고, 기대고, 행복이고, 불행이고, …… 그야말로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를 살려 내기 위해서도, 단위를 설정하고 법칙을 세우기 위해서도 이 세상의 삼라만상을 질과 양으로, 시간과 공간으로 나누고 그 나누어진 것을 다시 하나로 통일시키기 위해서도 없는 것이 있어야 하고, 있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있는 것을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이 참말이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거나(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이 거짓말인데, 참말이 참말로 들리는 것은 거짓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멀쩡하게 있는 것을 없다고 우긴다고 해서 없어지나요?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는 세상에는 있을 것도 없고, 없을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하나로 이어진 물의 흐름을 지난날의 물방울, 지금의 물방울, 앞날의 물방울로 나누어 고정시킨 뒤에 물방울 저마다에 있었던, 있는, 있을이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거꾸로 없었던, 없는, 없을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하지요. 그러면 지금부터 이 딱지 이론을 조금 가까이서 눈여겨보기로 할까요?”

“선생님께서 앞 강의 시간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고백을 장황하리만큼 길게 인용하신 것이 혹시 이 딱지 이론을 펼치기 위한 전제는 아니었나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과 연관되는 딱지 이론의 대가이니까요. 아다시피 아우구스티누의 시간은 살아 있는 시간(참된 운동)이 아니라 의식 속에 고정된(매장된) 시간 의식입니다. 이 점에서는 그 전통을 이어받은 후설(Husserl)도 마찬가지지요. 이 이론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모든 살아 움직이는 것을 움직이지 못하게 핀으로 고정시키는 의식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를 이미 없는 것으로 미래를 아직 없는 것으로 못박습니다. 그러니까 있었던 것은 이미 없는 것이고, 있을 것은 아직 없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지금 있는 것? 그것은 이미 없는 것과 아직 없는 것을 이어 주는 흔들리는 접점 노릇을 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거꾸로 말하면 이미 없는 것도 아니고, 아직 없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에드문트 후설(1859~1938) 출처: www.kitabinomurgasi.com

아우구스티누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없음과 연관지어 살펴보는 것도 흥미 있을 겁니다. 있음과 연관지어 있었던 것, 있는 것, 있을 것이 저마다 과거, 현재, 미래를 가리킨다면, 여기에 짝이 되는 없음의 계열은 없었던 것, 없는 것, 없을 것이 되겠지요. 여기에서 없었던 것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것은 이미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없을 것은 아직 있는 것을 가리키겠지요? 없는 것은 이미 있는 것과 아직 있는 것 사이를 이어 주는 흔들리는 접점 노릇을 합니다. 그러니까 없는 것은 여기에서 이미 있는 것과 아직 있는 것을 한편으로는 갈라놓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어 주는 징검다리 노릇을 하는데, 있는 것과 대비시켜 이야기하자면 이미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있는 것도 아닌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말장난 같다고요? 아닙니다. 나는 지금 여러분들을 붙들고 말장난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길은 멀고 마음은 급하고’라는 말이 내 심정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시간 축을 중심으로 우리의 의식 속에서 토막 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기능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본디 공간이 없는데 여기저기가 어디 있으며, 본디 시간이 없으니 과거가 따로 있고 현재가 따로 있고 미래가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마는 우리의 의식이 분별지를 요구하니 당분간 그 요청에 순응하기로 합시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이렇게 말하면서 저는 숨이 가쁘고 두려웠습니다. 제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음울하고 불길한 경고의 소리가 울려 왔습니다.

‘너는 지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 사유와 추론이 이루어지는 의식 공간에 한 발짝만 들어서도 의식의 칼날 아래 토막 나고 산산이 저며져서 형체조차 찾을 길 없는 것을 제물로 삼아 네 이론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다니, 바로 이런 오만을 경계하여 옛날 불가(佛家)에서 한 말이 있지 않더냐. 개구즉착(開口則錯). 입만 벙긋해도 틀린다. 차라리 입을 다물려무나.’

어쩌면 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직관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을 시간과 공간으로 파편화한 분별지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논하다니요? 이것은 작은 그릇 안에 큰 그릇을 담으려는 것이나 좁쌀 안에 우주를 집어넣으려는 시도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요,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습니다.

“자, 지금 우리는 시간 축 속에서 토막 난 운동의 시체들을 보고 있습니다. 이 여섯 토막 난 시체, 그야말로 육시처참한 시체의 부위들을 하나하나 들어 볼까요? 이것은 있었던 것, 이것은 그 짝이 되는 없었던 것, 또 이놈은 있는 것, 그 짝인 이놈은 없는 것, 그리고 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 뭉개져 버린 것은 있을 것, 그리고 이 흉측하게 생긴 놈은 없을 것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한 배에서 태어난 놈들인데, 그리고 본디 하나였던 몸인데, 이렇게 의식이라는 백정이 토막 내 놓으니까 저마다 다른 놈인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이제부터 시체 해부 시간인데 어떤 놈부터 분해를 할까요? 시간의 흐름을 따라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가자고요? 할 수 없지요. 여러분들의 의식이 그렇게 한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으니, 그리고 한 방향으로 고정된 시간의 회로를 유일한 흐름인 것으로 알고 있으니 그 요구를 따를 수밖에요.

우리는 앞에서 파르메니데스로부터 시작된 서구 철학의 오랜 전통을 짐짓 받아들여 과거는 이미 없는 것으로, 미래는 아직 없는 것으로 쳤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있음과 없음과 연관하여 정말 과거가 이미 없는 것이고, 미래가 아직 없는 것인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있었던 것과 연관하여 과거를 살펴볼까요? 있었던 것은 아까 내가 말했듯이 이미 없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있었던 것을 이미 없는 것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지난 날 있었던 것이 지금도 있을 수 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창 밖의 저 관악산이 지난날부터 있었던 것이고, 지금도 있는 것이고, 내일도 있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있었던 것은 이미 없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지금 있는 것, 앞으로도 있을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러니까 있었던 것의 테두리는 이미 없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지금 있는 것과 앞으로 있을 것까지 담을 수 있는 크기를 가졌다는 말이지요.

이와 연관되는 자세한 이야기는 뒤로 돌리기로 하고 이번에는 있었던 것과 짝을 이루는 없었던 것을 살펴보지요. 앞에서 짐짓 없었던 것은 이미 있는 것이라고 단순화시켜 규정했지만 지금도 없는 것이고, 앞으로도 없을 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네모난 동그라미라는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형상은 지난날에도 없었던 것이지만 지금도 없는 것이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있었던 것과 없었던 것에는 저마다 있음과 없음의 결이 동시에 숨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있음과 없음으로 추상의 최종 단계에서 나누어지는 원초적 관계가 어떤 때는 있었던 것으로 또 어떤 때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실체화의 오류’(이런 식의 거만한 표현을 싫어한다는 것은 전에 한 번 이야기했지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있음과 없음은 있었던 것에도 없었던 것에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과거를 이미 없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있었던 것을 이미 없는 것으로, 그리고 없었던 것을 이미 있는 것으로 단순 규정하고 더 넓은 테두리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만큼이나 섣부른 일이지요. 비록 우리의 의식이 이런 단순화를 통해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큰 힘을 얻기는 하지만요.

과거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현재와의 연관 속에서만 드러납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독립된 테두리 안에 들어 있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관계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데, 관계가 없으면 관계항도 없습니다. 관계항이 먼저고 관계가 나중이 아니라 관계가 먼저고 그 관계를 의식 공간에서 분석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관계항을 놓게 되더라는 이야기이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야기하자면 있음과 없음도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있는 것은 이 둘의 관계이고, 우리의 의식이 분석의 최종 단계에서 이 두 항을 실체화하는데, 여기에 따르는 위험이 너무 커서 서구 존재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함정에서 벗어난 철학자가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러니 어찌 나라고 해서 이 함정에서 쉽사리 비켜 서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지난날이다, 과거다, 있었던 것이다,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못박는 그 무엇은 스스로 아직도 흐르고 있고, 또 앞으로도 흐를 것이지만 우리 의식은 그것을 고정시켜 완고하게 기억 속에 가두고자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억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요동치고 반란을 일으키는 과거의 모습을 직관하는 힘을 점점 잃어 가고 있습니다. 과거는 추억과 반성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그렇게 되어 어쩔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니고 스스로 움직여서 현재와 미래의 모습까지도 바꾸어 낼 힘을 지닌 살아 생동하는 그 무엇입니다. 그러니 과거가 이미 없는 것이라느니, 우리의 의식, 우리의 기억, 우리의 영혼 속에 간직되어 있어서 우리 머리나 몸에 간직된 정보를 통해서만 현재나 미래에 힘을 미칠 수 있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과거는 있음과 없음이라고 실체화되어 고정된 그 어느 것이 아니라 그 나름으로 현실을 구성하는 함과 됨의 영역입니다.”

“잠깐, 잠깐만요.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지금 증명되지 않는 수사로 우리를 현혹하고 계시는데, 과거가 그 나름으로 살아 흐른다느니,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느니, ‘함’ 곧 능동의 힘과 ‘됨’ 곧 수동의 힘을 지닌 무엇이라느니 하는 말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한 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저에게 대들듯이 따져 물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넘나듦은 우리의 의식, 우리의 말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현상은 아니지요. 이를테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지난 추석에 말이야. 고향에 갔는데, 차에서 내리니까 어떤 사람이 서 있어. 많이 본 얼굴이야. 가까이 가서 보려고 하니까 그 사람이 고개를 돌리지 뭐야. 그제야 기억이 났지. 어렸을 때 내가 무던히도 골려 주었던 초등학교 동창이야.’ 이 말 속에서,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자연스럽게 넘나듭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유전 정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생명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과거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미래입니다. 과거가 거미의 꽁무니에서 실을 빼내 거미줄을 치고, 벌에게 밀랍을 만들게 하여 정교한 육각형 집을 짓습니다. 죽어 없어진 저 하늘의 별은 몇억 광년을 가로질러 이 하늘에서 저렇게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럴 것입니다. 땅 속에서 뿜어 나온 과거의 불은 현재 저렇게 큰 바위로 웅크리고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부스러져 바닷속으로 흘러가서 밑에 깔렸다가 압력이 점점 커지면 다시 한 번 불길로 뿜어 오를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그런 힘이 주어질지는 모르지만 더 엄밀한 증명이 필요하다면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지요.”

그 학생은 못내 불만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지만 저는 그 학생에게 ‘자네의 그 표정을 만드는 힘도 자네의 과거일세.’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노동 가치를 재구성해 보자[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⑤

노동 가치를 재구성해 보자-6, 7강

 

이재유(건국대 외래교수)

 

제6강. 노동 가치를 재구성해 보자(1)

?

1. 노동 가치론을 둘러싼 논쟁

 

(1) 아담 스미스(Adam Smith)

아담 스미스는 이전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내적 연관에 대한 탐구를 노동가치설의 토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는 스미스의 『국부론』 서문에서 잘 나타나 있다. “부는 국민이 매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리품이고, 그것은 매년 국민의 노동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통일적으로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이론이 구축되었던 것은 아담 스미스에 와서이다. 스미스는 이전의 중상주의, 중농주의가 단편적으로 파악하였던 상업노동, 농업노동이 부의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일반이 부의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스미스는 처음부터 일관성 있게 상품 가치에 대한 분석을 행하지는 않았다. 즉 상품의 가치는 그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시간으로 정해진다는 명제를, 가치는 산 노동의 일정량을 살 수 있는 상품의 양 또는 상품의 일정량을 살 수 있는 노동의 양으로 결정된다는 명제와 혼동하였다. 전자는 스미스가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 특히 원시사회에서 노동자는 상품가치의 전액을 자기 노동의 보수로 받게 되며, 따라서 상품의 가치는 노동임금과 같게 됨을 자본주의 사회의 그것과 등치시키기 때문에 나온 가치 규정이었다. 그러나 후자는 임금과 잉여가치라는, 자본주의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경제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서 나온 가치 규정이었다. 전자로서는 임금과 잉여가치의 발생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후자로서는 이들의 발생을 해명할 수 있다.

아담스미스,표지. 출처: anticap.wordpress.com

이러한 상품가치에 대한 이중적 혼란은 잉여가치론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잉여가치는 전자의 가치 규정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고 오로지 후자의 가치 규정에서만 나온다. 일단 스미스는 노동자가 원료에 부가한 가치는 두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노동자에게 속하는 임금(노동의 가치)과 자본가에 속하는 이윤(잉여가치)이 그것이다. 그래서 스미스는 이윤이 노동자가 그에게 지불된 임금과 동일한 양의 노동량을 초과하여 원료에 부가한 노동의 부분 즉 잉여노동임을 솔직히 나타내었다.

“노동자가 원료에 부가하는 가치는 (……) 두 개의 부분으로 분해된다. 즉 일부분은 그 노동자의 노동임금을 지불하고, 다른 부분은 그 고용주가 전대한 원료와 노임과의 전 자본에 대한 이윤을 지불한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151쪽)

다시 말하면 이러한 잉여노동이 잉여가치의 기원임을 스미스는 분명히 밝혀 두고 있다. 또한 이윤, 지대가 모두 잉여가치의 분신임을 명확히 하였다.

“노동은 그 자신 노동으로 분해하는 가격 부분의 가치를 측정할 뿐만 아니라, 지대로 분해하는 가격 부분, 이윤으로 분해하는 가격 부분의 가치도 또한 측정하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153쪽)

그러나 스미스는 잉여가치와 이윤, 지대를 직접적으로 동일시하는 오유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잉여가치와 이윤, 지대는 동일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잉여가치가 이윤으로 전화될 때에는 상이한 자본의 생산 부문에 걸쳐 이윤율의 평균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윤과 잉여가치는 상이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잉여가치에서부터 이윤으로 나아가는 내적 연관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제 그는 상품의 가치를 전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상품의 가치는 노동임금, 이윤, 지대의 합이라고. 스미스는 이 부분에서 또 다시 노동의 가치를 노동력의 가치와 일치시키며, 따라서 이윤, 지대가 노동 가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본, 토지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스미스는 그가 애초에 발견하였던 가치 명제를 스스로 버리게 되었다.

(2)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리카도는 스미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스미스에게서 보이는 이중적 혼란을 일소하고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의 내면적 분석을 보다 고도로 발전시켰다. 리카도는 자신의 저서 『정치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에서 노동에 의한 가치에 대한 스미스의 이중적 혼란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는 (가치의) 표준 척도로서 어느 때에는 곡물을, 또 다른 때에는 노동시간을 들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노동시간은 어떤 물품을 생산하는 데 투하한 노동량이 아니라, 그 물품이 시장에서 지배할 수 있는 노동량인 것이다. 그는 마치 이것들이 두 개의 동일한 표현인 것처럼 (……) 논하고 있다.” (데이비드 리카도, 『정치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7쪽)

“한 상품의 가치, 또는 그 상품과 교환될 어떤 다른 상품의 양은 그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상대적 노동량에 좌우되는 것이지, 그 노동에 지불되는 보수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데이비드 리카도, 『정치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5쪽)

리카도는 상품 가치의 크기는 그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발달된 자본주의 생산에서는 가치의 외화 형태인 생산가격이 자본의 경쟁을 통해 가치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리카도는 여기서 성립하는 생산가격이 어디까지 노동량에 의한 상품가치 규정과 부합하는지, 또 양자 사이의 모순이 무엇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와 생산가격을 조화시키려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생산에 직접 투여된 노동량뿐만 아니라 기계나 건물 등의 고정 자본에 포함된 노동도 똑같이 가치결정의 요인이 되며, 따라서 그 속에 사용되는 고정자본의 비율에 비례하여 얻어지는 이윤양의 차이 때문에 가치와는 달라진 생산가격이 성립한다. 또한 이러한 이윤양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임금의 등락이 상품가치 자체의 변동의 요인이 됨을 리카도는 설명하고 있다. 즉 임금의 등귀는 필연적으로 이윤의 하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가치가 노동량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하는 것과 모순된다. 물론 리카도는 임금의 등락이 상품가치에 끼치는 작용이 그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의 변동이 가져오는 결과에 비하여 비율적으로 가볍기 때문에, 가치의 법칙은 여전히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노동시간과는 독립된 제 영향력이 가치 그 자체에 작용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가치법칙의 폐기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잘못은 리카도가 단순한 상품가치의 결정으로부터 잉여가치나 이윤이, 또한 일반적 이윤율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설명하지 않고, 애초부터 일반적 이윤율, 즉 생산가격의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3) 칼 마르크스(Karl Marx)

마르크스는 상품가치의 근원, 실체가 노동이라는 점을 밝혀낸 것이 스미스와 리카도의 커다란 공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르크스 역시 스미스나 리카도와 마찬가지로 노동이 모든 상품 가치의 근원임에 동의한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이 만들어 낸 모든 상품들과 구별되는, 상품을 만들어 낸 창조주이자 주체이며, 이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인간의 주요 특성이 바로 ‘노동’ 자체이고, 이러한 사실로부터 인간 노동 자체를 다른 모든 상품처럼 시장에서 판매할 수 없으며, 다만 이러한 노동의 구현체로서의 노동력(다른 모든 상품들도 노동의 구현체이다)이 다른 모든 상품들처럼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깨닫지 못했다고 마르크스는 말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과의 가치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노동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질 수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노동력은 이 노동력을 만들어 내는 창조주, 주체로서의 인간과 현실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특수한 상품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장에서 판매되긴 하였지만 아직 추상적이고 가능적인 형태에 머물러 있는 노동력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되기 위해서는, 즉 노동력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인간의 노동을 마르크스는 ‘인간의 살아 있는 노동’이라 하는데, 노동력과 기계, 원료 등을 결합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고, 이는 종전보다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내는데, 이 새로운 가치 부분이 바로 잉여가치이다. 그렇게 해서 잉여가치는 바로 자본, 지대에서 나오는 것(스미스, 리카도)이 아니라 바로 인간 노동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은 노동의 가치가 아니라 노동력의 가치이다.

또한 단순가격과 생산가격이 시장의 경쟁이라는 개념을 통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아래의 도표를 보면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 C(기계) V(노동력) S(잉여노동) C+V+S(단순가격) P(이윤) C+V+P(생산가격) P-S
자본가 Ⅰ 90 10 10 110 20 120 +10
자본가 Ⅱ 80 20 20 120 20 120 0
자본가 Ⅲ 70 30 30 130 20 120 -10

<표1>: 같은 부문의 자본들 간의 경쟁을 바탕으로 시장에서의 가격경쟁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 때문에 발생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암시하고 있는 표.

C(불변자본, Constant capital):기계, 공장부지, 원료 등을 뜻하는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자본을 뜻한다.
V(가변자본, Variable capital):노동자의 노동력을 뜻하는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본을 뜻한다.
S(잉여노동 또는 잉여가치, Surplus)
C+V+S:단순가격으로서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을 뜻하는데, 시장에 나오기 전의 그 상품의 가치를 나타낸다.
P(이윤, Profit):시장에서 그 상품이 팔렸을 때 실제 남는 이윤을 뜻한다.
C+V+P:생산가격으로서 단순가격이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통해 현실화된 가격이다.

표에서 자본가Ⅰ,Ⅱ,Ⅲ 모두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 데 총 100원(C+V)을 투자하고, 잉여가치율(S`=V/S)이 모두 100%라고 가정한다. 이때 상품은 단순가격으로 팔리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경쟁에 따라 단순가격들의 평균으로 120원에 팔리게 된다. 그러면 자본가 Ⅰ,Ⅱ,Ⅲ 중 자본가Ⅰ이 가장 많은 이득을 취한다. 즉 단순가격에 10원의 이득이 더 붙는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자본가Ⅱ이고, 그 다음에는 자본가Ⅲ이다. 자본가Ⅱ는 단순가격과 생산가격이 같고, 자본가Ⅲ은 단순가격에서 -10원을 손해보고 있다. 가격경쟁에서 자본가Ⅰ이 우위를 점하면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그런데 우위를 점하고 있으면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요인이 무엇일까? 그것은 자본가Ⅰ이 자본가Ⅱ,Ⅲ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C/V)가 높다는 것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가 높다는 것은 가변자본이 적어진다는 것, 즉 노동자의 임금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적어지고, 불변자본이 많아진다는 것, 다시 말해 사람이 일하던 것을 기계로 대체한다는 것이며, 그 기계의 효율을 최대한 높여서 노동 강도를 엄청나게 강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구조조정’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가변자본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가변자본에 의하여 생겨난 잉여가치(S)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잉여가치가 줄어든다는 것은 이윤율(S/C+V)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이윤율은 경제성장률 지수의 척도이다. 위 표에서 보다시피 자본Ⅲ의 이윤율은 30/100인데 자본Ⅰ의 이윤율은 10/100이다. 서구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이 1~2%대에 머무르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이윤율 저하 경향은 자본의 이윤 증대를 꾀한 결과이며, 이는 곧 노동력을 감소시킨다. 그리고 이 노동력의 감소는 다시 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가져와서 자본의 이윤 증대를 꾀하게 되며, 다시 노동력을 감소시킨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순환과정은이다. 노동력의 감소는 노동자의 임금 전체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며, 비정규직과 실직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순화과정이 계속 되풀이되면서 대다수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황폐해진다.

2. 노동의 가치와 소외, 가치와 가격

 

1) 노동의 가치와 소외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과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외가 발생하는 것은이 아니라 물적인 형태로서의으로부터 발생한다.

노동력이란 자연과의 관계, 나아가 사회적 관계를 실현시키는 인간의 구체적 실천활동 일반이 아니라, 자본가와 관계 맺는, 즉 자본에게 종속되고 착취되는 관계로서 노동자가 판매하는 상품의 실체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노동은 자연과의 관계, 나아가 사회적 관계, 즉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실현시키는 인간의 구체적인 실천적이고 변혁적인 활동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변혁시키는 실천활동이다.

2) 가치와 가격
가치란 자본주의 하에서의 역사적 개념으로서 모든 인간관계를 상품관계로 변환시키는 척도이다. 그리고 이때의 가치는 노동의 가치가 아니라의 가치이다.

“상품 시장에서 화폐소유자와 직접 대면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자이다. 후자가 판매하는 상품은 그의 노동력이다. 노동은 가치의 실체이며 또 내재적 척도지만 그 자체는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자본론』번역본(김수행 역), 726~7쪽)

이 노동력의 가치는 그 자체로 인간 노동의 소외 형태이다. 왜냐하면 인간 삶의 목적이 이 가치에 종속당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이 가치로서는 인간 자신의 삶의 목적을 실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노동력 가치의 현상 형태가 가격인데, 가격은 구체적으로 임금의 형태로서 우리 눈에 나타나게 된다. 가격 또는 임금은 노동력의 가치와는 다르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경쟁 개념이 도입되기 때문이다. 또한 임금은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이것도 동일 부문의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경쟁을 통해 이루어진다)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최저임금제는 바로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에 근거해 책정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노동력의 가치의 현상 형태인 가격 또는 임금은 인간 노동이 소외된 형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개별 노동자의 임금인상에 매달리거나 생산성을 담보로 하는 임금인상은 인간 노동 소외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7강. 노동의 가치를 재구성해 보자(2)

1. 자본주의 경제의 양면성

자본의 이익을 최대한 늘리면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은, 제레미 리프킨(『노동의 종말』의 저자)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중적인 측면을 가지게 된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과학기술이 발전하게 됨에 따라 이전에는 인간의 노동을 통해 이루어졌던 일들이 기계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시기에는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가 거의 필요 없는 농장과 공장 및 사무실이 등장하게 될 것이며, 아주 정교화된 지식 분야에서만 소수의 엘리트 노동자만이 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죽어라 일하기를 강요당하는 산업사회의 노예노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됨에 따라서, 인간이 노동할 수 있는 노동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며, 이는 전반적으로 노동자의 일자리 수가 엄청나게 줄어듦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노동자가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임금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을지가 불분명해짐으로써 생계가 아주 불안정해지고, 이는 곧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이는 현재에도 필요할 때만 노동자를 쓰는“노동 유연화 정책”, “구조조정 정책”과 맞닿아 있다.

 

2. 분배, 교환의 기준 1-리프킨(노동시간)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제레미 리프킨은 경제적 측면에서의 이러한 모순을 경제에만 맡겨 두어서는 더 많은 고통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측면에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하나는 실업에 따른 범죄 계층의 증가에 대응한 경찰력의 증가와 감옥의 증설이고, 다른 하나는 제3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이 두 가지 중에서 두 번째를 위하여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는 제3부문의 영역은 사회?문화적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공식적, 비공식적인 비영리적 활동을 포함하는 영역이며, 이 영역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적 유대와 사회적 질서를 창출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영역은 경제적 이익(자본의 이익)을 창출하는 시장의 영역과 대립되는 모든 비영리적 자치 활동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활동 영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 자산으로서 이 활동 또는 이 활동의 결과물, 그리고 정부의 재원이 이 이 영역에서 어떻게 분배, 교환되고 소통될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기준으로 분배, 교환되고 소통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들에는 시간은행(time bank), 타임 달러(time dollar) 등의 제도가 있다.

이 제도의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다. 어떤 특정인이 자진해서 자신의 전문적인 활동(노동)을 한 시간 제공하면, 한 시간 달러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이 보상은, 여러 전문적인 활동들이 서로 질적으로 아주 다를지라도, 한 시간 달러로서 동등하게 이루어진다. 즉 각 활동(노동) 시간은 기여한 바의 특징과 종류에 관계 없이 동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고 있는 이 제도 운영 방식은 사실상 본질적으로 시장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위의 자본의 생성(시장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과정에서 보았듯이, 질적으로 서로 다른 노동 생산물이 교환되는 기준 역시도 1시간, 2시간 등으로 표현되는 자연 시간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시장 영역과 대립되는 제3부문 영역 사이의 교환, 분배 소통 방식의 기본적인 구조는 동일하기 때문에 이 두 영역 사이의 차이점이 사라진다. 이는 곧 위에서 말한 부정적인 측면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깊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많아질 수 있음을 뜻하게 된다.

이 제도는 19C에 J.그레이, P.J.프루동, R.오언 등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주장되었던 노동화폐 제도와 유사하다. 노동화폐는 금을 화폐로 사용하지 않고 노동시간을 화폐단위로 하여 노동자 자신들의 노동과 노동생산물이 국립중앙은행을 매개로 교환되는 제도이다. 즉 몇 시간 노동을 했는가 하는 증명서로서의 노동화폐를 국립중앙은행이 발행하고, 이 노동화폐를 다시 중앙은행에 가서 자기가 필요한 물건으로 교환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오언에 의해 실행에 옮겨져 1832년 노동화폐로 노동생산물을 교환하는 국민평형노동교환소가 설립되었지만 3년을 못 넘기고 실패로 끝났다.
?

3. 분배, 교환의 기준 2-맑스(각자의 필요)

이렇게 노동시간을 기초로 분배, 교환되는 방식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기본 구조이다. 그런데 이 구조에서는 내가 1시간을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1시간의 보상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노동시간은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은 과학기술의 발달 정도, 숙련 정도, 교육을 받은 정도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이 중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을 받은 정도인데, 왜냐하면 과학기술에 어느 정도 정통하고 있으며, 숙련되었는가를 객관적으로(수치상)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교육을 받은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교육을 비롯해 더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며, 이는 곧 사교육비의 엄청난 증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리프킨이 말하고 있는 시간은행 같은 경우는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시간은행에서의 시간 역시도 결국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으로 환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교수의 노동 1시간과 블루칼라 노동자의 노동 1시간이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어 노동자의 생계가 엄청 위협받음과 동시에 부익부빈익빈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이 존재한다. 이 다른 방식은 다름 아니라 맑스가 말하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즉 각자의 욕구에 따라 분배, 교환, 소통되는 방식이다. 이 방식 속에서는 그 누구도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방식을 대단히 현실과 동떨어진, 유토피아적이고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이미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의 방식에 움터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연인, 동아리 등등의 관계에서 말이다.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이익이나 손해 등을 따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각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이 방식은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 방식을 어떻게 의식적으로 사회 전체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실현가능함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 보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가면 서로가 서로에게 먹을 것과 담요, 음료수 등을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주고받는다. 서로에게 격려와 희망, 연대의 벅참을 주고받는다.

국외로 보면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이 민중무역협정(PTA)(미국을 축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해서 만든 협정)이라는 것을 체결하였다. 자유무역협정은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이것은 화폐의 양으로 나타난다)에 따라 분배, 교환,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민중무역협정은 각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자의 양에 따라 분배, 교환, 소통하는 방식이다. 쿠바는 베네수엘라로부터 석유를, 볼리비아로부터 천연가스와 콩을, 베네수엘라는 쿠바로부터 의사를 비롯한 선진 의료제도를, 볼리비아로부터는 천연가스와 콩, 밀을, 볼리비아는 쿠바로부터 의사를 비롯한 선진 의료제도를, 베네수엘라로부터는 석유 등을 필요한 만큼 서로 주고받는다.

우리가 노동하는 것은 각자가 필요한 것을 얻고 충족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것이 바로 노동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분배 형식으로서의 노동시간이 문제가 아니라이 문제이다. 분배형식으로서의 노동시간은 결국 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인 생산의 기초가 된다. 그렇지만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생산양식, 즉 계획 생산 양식은 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인 생산 양식의 대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