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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20-형식과 내용[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20-형식과 내용

1)

앞에서 형식과 본질(토대), 형식과 질료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본질론에서 주어는 종적 개체이며 그 술어는 종적 개체를 규정하는 근거 즉 그 기능이다. 헤겔은 이를 형식이라 했다.

기능이란 최종적 결과를 말하는데, 개체적 현존의 기능은 다양하게 규정된다. 그런 가운데 일단 감각적 질과 같은 형식과 독립적인 지각적 형식이 구분되었다. 이에 따라 그것에 대응하는 토대도 개체적 현존으로서 본질과 매체로서 질료로 구분된다.

형식과 질료, 독립적 기능과 매체 사이의 관계 끝에 헤겔은 새로이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설정한다. 이제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살펴볼 차례다.

2)

광합성의 기능과 꽃나무의 관계에서 광합성 기능은 독자적이어서 다른 식물의 기능이기도 하고, 꽃나무는 광합성 외에도 재생산 기능이나 영양분 유통 기능 등과 같은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형식과 질료는 각기 자립적이다.

그러나 잎의 기능인 광합성은 꽃나무 전체의 기능이라고 볼 수 있으며 여기서 양자는 본질과 현존 사이의 순수한 반성 관계를 지닌다.

형식과 질료는 한편으로 서로 무차별하고 다른 한편으로 상호 이행하는 상호 모순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 자립적인 것이면서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모순적인 것임이 드러났다. 그런 가운데 형식과 질료는 각자 이미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이 정립된다. 그러나 아직 이런 통일은 진정한 통일이 되지 못하고, 다만 서로 엇갈린 방식으로 일어나는 통일이 된다.

즉 하나의 형식 B는 다른 것의 형식 A에 대해에서는 질료가 되며, 다른 형식 D의 질료 C에 대해서는 형식이 된다. 즉 예를 들어 광합성 B는 꽃나무 C의 기능이면서 그 자체가 자기가 생산한 전분A의 질료가 된다. 꽃나무는 광합성의 질료 B인데, 꽃나무 자체 C는 어떤 식물 D의 형식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형식 B는 자기 옆에 질료 A를 가지며, 질료와 형식은 근원적으로 통일되어 있으므로 자기 옆에 A의 형식 X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식은 이제 두 가지 형식의 결합체라는 것이 드러난다. 다만 하나의 형식 B는 표면에 있고 다른 형식 X는 이면에 있다.

그것은 질료 B도 마찬가지다. 질료 C도 다른 것 D의 형식이 되면서 이미 D의 질료 Y를 함축한다. 질료는 그러므로 두 질료의 통일이며, 다만 질료 B가 전면에 질료 Y는 이면에 있게 된다.

사실 형식과 질료의 관계는 이미 각자 직접적인 것이므로,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형식은 자립적인 것이지만, 다른 형식과 개체적 현존인 매체 속에 공존하는 것이다.

3)

형식과 질료의 관계에서 형식은 독립적이었고 질료는 텅 빈 매체였다. 그러나 형식과 질료가 이처럼 층계화 함으로써 형식은 다른 형식과 질료는 다른 질료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런 층계화 속에서 아직 그런 연관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제 형식과 질료는 각자 통일적인 것임이 드러난다. 질료는 자기를 이루는 질료들의 통일이 된다. 예를 들어 꽃나무는 그것을 이루는 질료적 부분인 잎과 줄기, 꽃의 통일체가 된다.

이런 통일체로서 꽃나무는 하나의 고유한 질료적 특성을 지니게 되니, 바로 진달래가 된다.

이제 질료는 자기 나름의 형식 즉 특정한 질료로서 특정성을 가지게 된다. 헤겔은 이런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특정성을 지닌 질료를 내용이라 한다. 이 통일체는 이제 무규정적인 매체가 아니라 하나의 개체이다.

“질료는 오직 질료로서 질료가 아니라 본질[질료]과 형식의 절대적 통일인 한에서만 그 형식 규정의 근거이다. 마찬가지로 형식은 이와 동일한 통일인 한에서만 자기의 규정을 존립하게 하는[질료의] 근거가 된다.”(논리학, GW11, 300)

마찬가지로 형식도 통일적으로 된다. 하나의 형식은 다른 형식과 통일을 이루니, 하나의 형식은 이제 그 자신에서 타자로 이행하게 된다. 이런 이행을 통해 각 형식은 자기 내에서 한계를 지닌 것임이 드러나니, 이제 형식은 유한한 형식이다. 예를 들어 광합성의 기능은 독립적인 기능이 아니라 재생산 기능이나 영양분 유통 기능과 통일되면서 그런 전체적 기능의 한 계기가 된다. 형식에서 이 전체의 통일적 기능이 고유한 질료가 된다.

그러므로 질료와 형식은 이제 자기 자신과 타자의 통일이 된다. 형식과 질료의 관계에서 처음에 이 통일성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제 마침내 그 통일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헤겔은 형식과 질료의 ‘근원적인 통일’은 이런 모순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면서 ‘정립된 통일’로 이행한다고 한다.

“하나의 활동이 [타자를] 정립하는 가운데 자신을 통일 속에서 정립된 존재로 보존하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반발하게 하여 자기로서 자기에 관계하는 동시에 타자로서 자기에도 관계하는 것이다. 또는 질료가 형식을 통해 규정된다는 것은 근거로서 본질이 통일 속에서 자기 자신을 통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의 부정을 통해서 자기와 매개하는 것이다.”(논리학, GW11, 300)

4)

이제 전체적으로 통일된 질료 즉 내용과 전체 속에 하나의 계기로서 형식 사이의 관계가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내용은 질료의 통일체로서 자기의 형식을 지닌다. 그것은 곧 ‘진달래’다. 반면 형식은 통일된 전체의 한 계기 즉 ‘광합성’이다. 양자의 관계에서 한편으로 여전히 외면성이 등장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진달래와 광합성은 서로 외면적이다.

“내용은 우선 그 내용에 속하고 본질적인 하나의 형식과 하나의 질료를 갖는다. 내용은 형식과 질료의 통일이지만, 그러나 이 통일은 동시에 규정되거나 정립된 통일이므로, 내용은 형식에 대립한다.”(논리학, GW11, 301)

“내용은 두 번째로 형식과 질료에서 동일한 것이고 이 경우 형식과 질료는 무차별한 외적인 규정일 것이다.”(논리학, GW11, 301)

그러나 다른 한편 진달래는 질료적 통일체로서 개체이고 광합성이란 형식은 전체적 기능의 한 계기일 뿐이니, 이런 점에서 질료와 형식은 완전한 통일을 이룬다. 형식은 이제 본질이 되고 질료적 개체는 이 본질이 정립한 것이며 다시 본질로 되돌아가는 것 즉 본질을 매개하는 것이다.

“내용의 자기 동일성은 한번은 형식에 대해 무차별한 동일성이지만 다른 한 번은 그 동일성은 근거[형식]의 동일성이다. 근거는 내용 속에 우선 사라진다. 그러나 내용은 동시에 형식 규정이 자기 내로 부정적으로 반성하는 것이다.“(논리학, GW11, 301)

“한편으로 내용에서는 근거가 자신이 정립되는 가운데서도 자기와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내용은 근거 관계 대립하는 정립된 동일성이다.”(논리학, GW11, 302)

5)

근거 관계는 형식과 본질, 형식과 질료를 거쳐 형식과 내용의 관계 이르면서 다시 본질적 통일로 되돌아 간다.

야기서 하나의 형식은 다른 형식과 통일되어 있고 질료도 전체적인 통일체를 이룬다. 질료는 통일적인 개체가 되고 형식은 유한한 형식이 된다.

“정립된 존재는 이런 동일성의 표면[an]에 형식 규정으로 존재하는 가운데 자유로운 정립태 즉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의 전적인 관계로서 형식에 대립한다. 이 후자의 형식은 전체적으로 자기 내로 복귀한 정립태이고 따라서 전자의 형식은 직접적인 것으로서 정립태 즉 규정성 자체이다. 근거는 이로써[정립태의 자기 복귀를 통해] 일반적으로 말해 규정된 근거로 되었다.”(논리학, GW11, 302)

여기서 ‘동일성의 표면에 있는 형식 규정’이 매체 속에 담긴 독립적인 형식을 의미한다면, ‘자유로운 정립태’가 곧 자기 자신에서 타자로 이행하는 형식 즉 유한한 근거를 말한다.

존재론에서 유한자는 이제 무한한 존재로 이행하게 되는데, 그런 이행은 유한자에서 결합하고 있는 두 성질이 외면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통일에 이르면서 무한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자에서 무한자는 악 무한이며 후자에서 무한자는 진 무한이다.

이런 악 무한에서 진 무한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앞으로 다루게 될 규정하는 근거에서 무제약자로 이르는 과정에 등장한 실재하는 무제약자(근거)와 완전한 무제약자(근거)의 차이가 된다.

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9-형식과 질료[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9-형식과 질료

1)

형식과 본질의 관계에서 형식은 주관적으로 파악된 우연한 기능이었다. 여기서 형식[술어]과 본질[즉 주어, 토대]는 서로 무차별했다. 형식은 생겼다가 곧 사라지는 명멸하는 것이었다.

경험이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되면, 술어와 주어, 근거와 토대의 관계는 형식과 질료의 관계로 발전한다. 여기서 형식은 지각적 일반성으로서 유기체의 기능이다. 예를 들어 이제 잎의 기능은 ‘꽃을 보호한다는 것’과 같이 주관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광합성 기능’과 같은 객관적인 기능으로 파악된다. 이런 기능은 단순히 꽃나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라면 거의 전부에 존재하는 것이니 일반성인 기능이다.

이런 객관성 즉 일반적 지각을 유지하면서 차원을 옮겨 꽃나무 전체를 보자. 꽃나무의 기능은 무엇인가? 우리는 꽃나무를 기능별로 분해한다. 꽃나무는 잎을 통해서는 광합성을 하며, 꽃을 통해서는 재생산하며, 줄기를 통해서는 영양분을 유통한다. 그래서 꽃나무의 기능은 재생산 기능, 영양분 유통 기능, 광합성 기능으로 각기 고립적으로 파악된다. 이 기능들은 아직 전체 속에 통일을 이루는 것으로 파악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되면, 질료는 서로 독립적인 형식이 공존하는 일반적인 매체로 규정된다. 즉 꽃나무란 서로 독립적인 형식을 담는 그릇이 된다. 서로 다른 형식은 하나의 매체 속에 들어 있다. 각 형식은 그 속에 독립적이면서 그렇다고 분리되지도 않는다. 조금도 빈틈없이 매체 속에 들어 있으니, 이런 관계는 마치 과거 고대 철학자들이 지각론자들이 다공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것과 유사하다.

2)

헤겔은 이와 같은 지각적 일반성으로서 형식과 매체로서 질료의 관계를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a) 예를 들어 꽃나무라는 매체와 광합성이라는 잎 기능의 관계를 보자. 광합성의 기능은 전체 꽃나무의 일부 기능일 뿐이다. 또한 이 기능은 꽃나무가 아닌 식물들에도 존재하는 기능이다.

그러므로 형식은 일반적이고 독립적인 것이므로 자기 동일적인 것이다. 질료는 무규정적인 것이지만, 매체로서 긍정적으로 존립하며 자립적이다. 양자는 각기 직접적인 것이며 그런 한 서로 무차별하다.

이 형식들은 서로 무차별한 것들이기에 서로 외면적으로 관계한다. 형식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니, 토대로서 질료 속으로 들어가서 비로소 존립할 수 있다. 매체로서 질료는 텅 빈 존재이니, 형식을 받아들여야만 어떤 무엇이 된다. 이런 점에서 형식과 질료는 상호 전제하게 된다.

“질료는 본질이라고 할 단순한 구별이 없는 동일성[매체]이어서 형식의 타자라는 규정을 지닌다. 따라서 질료는 형식에 본래적인 토대이거나 기체이다.”(논리학, GW11, 297)

“형식은 질료를 전제로 하는데, 그 이유는 형식이 자기를 지양하는 것으로서 정립하고 따라서 자기의 동일성을 자신의 타자로 삼아 그것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형식은 질료에 의해 전제된다. 왜냐하면, 질료는 직접 그 자체 절대적 반성인 본질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으로 즉 부정성이 지양된 것으로서 규정된 단순한 본질이기 때문이다.”(논리학, GW11, 297)

그러나 질료는 무규정적이니 무엇이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며 형식은 자립적이므로 어떤 질료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이런 외적인 관계 속에서 각자는 타자에 대립하는 것으로 규정되면서 타자에 의해 정립된다.

“형식은 질료에 관계하여 이와 같은 자기를 존립하게 하는 것을 타자로 삼아 그것에 관계하는 것으로 정립된다. 그에 반해 질료는 다만 자기에 관계할 뿐, 타자에 대해 무차별한 것으로 정립된다. 그러나 질료는 그 자신에서 형식에 관계한다. 왜냐하면, 질료는 지양된 부정성을 내포하면서 이런 규정을 통해서만 질료이기 때문이다.”(논리학, GW11, 298)

“질료는 형식을 타자로 삼아서 그것에 관계하는데 그 이유는 형식이 형식 자신에서 정립되지 않기 때문이며, 형식은 다만 잠재적으로만 질료이기 때문이다. 질료는 형식을 자기 내에 가둔 채로 포함하며 형식에 대해 절대적으로 수용적인 것이다. 그 이유는 질료가 이 형식을 절대적으로 자기 내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질료의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규정이기 때문이다.”(논리학, GW11, 298)

3)

b) 그러나 질료와 형식을 다른 측면에서 보자. 예를 들어 꽃나무의 기능 가운데 하나인 광합성의 기능은 단순히 꽃나무의 부분인 잎의 기능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전체 꽃나무의 기능이기도 하다.

꽃나무의 전체 기능은 보통 자기를 재생산하는 기능에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광합성 기능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기능이란 최종적 결과를 의미하니, 꽃나무가 최종적으로 광합성을 위해 현존한다고 말해도 된다.

양자 사이에는 이전의 종의 재생산 관계를 통해 현존과 본질의 관계를 설명한 것과 같이 여기서도 본질과 현존의 반성 관계가 존재하게 된다. 양자 사이에는 앞에서 본질과 현존의 관계에서 설명된 것과 동일한 여러 가지 관계가 출현한다.

① 형식은 본질적으로 자기 부정적인 것이니, 이미 자기 동일성을 내포하면서 이 자기 동일성이 외면적으로 드러나면 곧 질료화 된다[materializieren]. 질료는 본질적으로 자기 동일적인 것이지만, 자기 부정성을 내포하니, 형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가능성이 실현되면 형성화 된다[formalizieren].

“형식은 자기 관계하는 부정적인 것이니 자기 내에 모순이며 자기를 해소하는 것이고 자기를 자기로부터 반발하고 규정하는 것이다. 형식은 질료에 관계하여 이와 같은 자기를 존립하게 하는 것을 토자로 삼아 그것에 관계하는 것으로 정립된다.”(논리학, GW11, 298)

“그러나 질료는 그 자신에서 형식에 관계한다. 왜냐하면, 질료는 지양된 부정성을 내포하면서 이런 규정을 통해서만 질료이기 때문이다.”(논리학, GW11, 298)

② 형식과 질료는 서로 구별되어 있으면서도 이런 본질의 반성 운동 속에서 내적으로 서로 관계하면서 이미 통일되어 있다.

“형식은 그 자체 절대적 자기 동일성이고 그러므로 질료를 자체 내에 포함하므로 마찬가지로 질료는 순수한 추상 속에서나 절대적 부정성 속에서 형식을 자기 자신 내에 가지므로, 질료에 대한 형식의 활동 그리고 질료가 형식에 의해 규정되는 것은 오히려 서로의 무차별성과 구별성이라는 가상을 지양하는 것일 뿐이다.”(논리학, GW11, 298)

③ 형식과 질료는 이처럼 서로 자기에서 타자로 이행하므로, 거꾸로 “그 자신의 비존재[타자]를 통해 자기와 매개하는 것”(논리학, GW11, 298)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운동이 이처럼 두 가지 운동으로 갈라지고 다시 통일된다. 이런 측면을 헤겔은 형식과 질료의 ‘근원적 통일’이라는 측면으로 말한다.

“이 두 가지 매개는 사실 하나의 운동이며 양자의 근원적 동일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양자의 소외를 내면화하는 것이다.“(논리학, GW11, 298)

“하나의 본질적인 통일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관계이며 이 통일은 자기를 양분하여 본질적인 동일성은 자기를 무차별한 토대로 규정하며 본질적인 구별이나 부정성은 규정하는 형식으로 규정한다.”(논리학, GW11, 298-9)

4)

c) 형식과 질료의 서로 무차별하다는 관계는 양자가 근원적으로 통일된 관계와 직접 결합한다. 양자가 결합하면서 ‘정립된 통일’이 발생한다.

① 그러므로 질료와 형식은 각자의 한편으로 자립적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의 자립성은 내적으로 이미 지양되어 있다. 예를 들어 광합성의 기능은 독립적 형식이면서 꽃나무 전체의 한 형식이다. 거꾸로 꽃나무는 전체를 담는 매체이면서 그중 하나의 기능이 그것의 형식이 된다. 그러므로 질료와 형식은 상호 모순인 것을 넘어서서 각자 자기 모순적인 것으로 된다.

“형식은 자립적인 것인 한에서 곧바로 자기 자신을 지양하는 모순이 된다. 그러나 형식은 또한 그 자체로서 정립되니 왜냐하면, 형식은 동시에 자립적이며 또한 동시에 타자에 본질적으로 관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논리학, GW11, 299)

“질료는 형식이 포함하는 것과 동일한 본래의 모순이다. 이 모순은 자기의 해소와 마찬가지로 다만 하나의 모순이다. 그러나 질료는 자기 내에서 모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질료는 무규정적인 자기 동일성인 동시에 절대적 부정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료는 자기 자신에서 자기를 지양하며 질료의 동일성은 자기 부정성 속에서 붕괴되고 이 자기 부정성은 전자[동일성]에서 자기의 존립을 획득한다.”(논리학, GW11, 299-300)

② 각자가 이중적인 측면을 지니므로, 그것의 지양도 이중적으로 일어난다. 형식은 자신의 자립성을 지양하면, 질료에 의해 정립된 것으로 되며, 이 질료를 전제하고 존립하게 한다. 형식이 질료에 의해 정립되는 측면을 지양하면, 질료를 통해 존립하게 된다.

질료도 마찬가지로 이중적 측면을 지닌다. 질료가 자신의 자립성을 지양하면 형식을 전제하게 된다. 반대로 질료가 정립된 측면을 지양하게 되면 형식을 통해 자립적인 것으로 된다.

-“형식은 자립성을 지양하며 자신을 정립된 것으로… 만들며 이 자신의 타자가 질료이다.”(논리학, GW11, 299)

-“형식이 정립된 존재를 자기 내로 반성하게 하는 것은 형식이 거기서 존립을 얻게 되는 질료와 합일하는 것을 의미한다.”(논리학, GW11, 299)

③ 이런 정립된 통일은 메비우스적인 띠를 닮았다. 여기서 타자를 부정하는 활동은 곧 자기를 부정하는 활동이 된다. 거꾸로 형식과 질료가 자기를 존립하게 하는 활동은 곧 타자를 존립하게 하는 활동이다.

“질료가 형식의 활동을 통해 규정된다고 할 때 이런 형식의 활동은 형식이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관계하는 데 있다. 그러나 거꾸로 형식은 이를 통해 질료에 대해 부정적으로 관계하기도 한다. 그러나 질료가 이렇게 규정된다는 것은 마찬가지로 형식 자체가 전개하는 고유한 활동이다.”(논리학, GW11, 299·)

“형식이 자기를 정립된 존재로 만드는 것은 형식이 질료를 규정된 것으로 만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논리학, GW11, 299)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고찰해 보면, 형식의 고유한 동일성은 동시에 자기를 소외하며 질료가 형식의 타자가 된다.”(논리학, GW11,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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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료는 자기 자신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이런 규정작용은 질료에 대해 외면적인 형식의 활동이다. 거꾸로 형식은 다만 자기를 규정할 뿐만 아니라 자기에 의해 규정된 질료를 자기 자신에서 가지며 그에 그치지 않고 형식은 이런 자기의 규정하는 작용 속에서 타자에 대립하여 관계한다.”(논리학, GW11, 300)

④ 그러므로 각자의 활동은 곧 타자의 활동이다. 각자의 타자에 대한 활동은 사실 하나의 동일한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활동은 곧 하나의 활동이 자기를 양분하는 운동이며 동시에 서로를 지양하여 통일로 복귀하는 운동이다.

“부정적인 것은 자기를 지양하므로 또한 긍정적인 것도 자기를 지양한다.”(논리학, GW11, 299)

“나아가서 형식의 활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에 못지않게 질료 자체의 고유한 운동이다.(논리학, GW11, 299)”

“하나의 근원적 통일이 자기를 양분하여 본질적인 동일성은 자기를 무차별한 토대로 규정하며 본질적인 구별이나 부정성은 규정하는 형식으로 규정된다.”(논리학, GW11, 298)

“본질과 형식의 통일은 형식과 질료에서 서로 대립적으로 정립되면서 절대적 근거가 된다. 이 통일은 자기를 상이한 것들로 만드는 가운데 상이한 것들이 지닌 밑바닥에 놓여 있는 동일성 때문에 그 관계는 서로 전제하는 것으로 된다.”(논리학, GW11, 299)

“양자 즉 형식의 활동과 질료의 운동은 동일한 것이지만,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활동이며 즉 정립된 것으로서 부정성인 반면 후자는 운동이며 생성이고 본래 존재하는 규정으로서 부정성이다.”(논리학, GW11, 300)

헤겔 변증법 반성운동18- 감각적 질로서 형식[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운동18- 감각적 질로서 형식

1)

유기체의 형식은 곧 그 기능이다. 유기체에서 기능은 유기체적 현존이 도달하는 결과 즉 기능에 의해 결정된다. 유기체의 기능에 관해서는 그 유기체의 현존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그 기능이 다르게 파악된다. 우선 하나의 유기체는 다른 유기체적 전체 속의 한 부분을 이루기도 하고 그것의 기능은 중간 과정을 거쳐서 도달하며 다른 기능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유기체의 기능을 이런 복잡한 기능들의 연관 전체 속에 어떻게 파악하는가에 따라서 유기체를 규정하는 근거인 형식이 달라질 수 있다. 마치 존재론에서 질이 감각적 질에서 일반적 지각적 성질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한성으로 발전하듯이 본질론에서 형식도 감각적 형식, 일반적 지각적 형식 그리고 유한한 형식으로 발전한다. 형식의 이런 발전에 따라서 현존도 다시 단순한 본질, 질료, 그리고 내용으로 발전한다.

2)

이 가운데 우선 감각적 형식을 보자. 유기체의 형식이 감각적 질처럼 우연한 기능으로 파악되었을 때 이 형식과 유기체의 현존 사이에는 본질에서 주어 술어의 관계를 갖는다. 이 관계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술어와 주어 사이에는 본질의 반성 관계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존은 그 기능인 형식과 무차별한 관계를 맺는다.

한편으로 보면, 잎의 현존은 ‘꽃을 보호하는’ 기능을 갖는다(“잎은 꽃을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할 때, 이 현존과 기능 사이의 관계는 적어도 판단 형식상에서는 본질의 매개 관계이다. 여기서 이런 관점에서 보는 사람은 잎의 현존 가운데 꽃을 보호하는 기능에 적절한 조직만을 보니, 양자는 서로 일치할 수밖에 없다.

양자는 동일한 것의 반복일 뿐이며 서로 순환적으로 규정된다. 이런 순환 속에서 현존은 다만 자기 동일성의 측면이며 형식은 자기 부정성의 측면을 지칭한다. 그러나 자기 부정성은 이미 자기 동일성을 포함하고, 자기 동일성은 자기 부정성을 매개한 것이니, 양자는 서로 이행할 뿐이다.

“자기 동일적인 부정적인 것[현존]과 자기와 동일적인 긍정적인 것[형식]은 하나의 동일성이다. 왜냐하면, 근거는 긍정적인 것의 동일성이거나 정립된 것의 자기 동일성[현존]이기도 하며 근거지워진 것은 정립된 것으로서 정립된 것이지만, 이런 자기 내로 반성하는 것은 근거의 동일성[형식]이기 때문이다.”(논리학, GW11, 294)

“형식은 그 고유한 동일성에서 본질을 가지며 이는 본질이 그 자신의 부정적 본성에서 절대적 형식을 갖는 것과 같다.”(논리학, GW11, 296)

3)

그러나 잎의 현존과 기능은 이처럼 자기 반복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 순환하고 있으니, 여기서 여기서 단적인(또는 직접적인) 전도의 관계가 출현한다. 헤겔은 이런 전도의 관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한다.

우선 형식과 개체적 현존 사이에서 근거 관계가 전도된다. 한편으로 형식이 근거이고, 다른 한편 토대가 근거가 된다. 어느 편이 근거이고 어느 편이 근거지워진 것이든, 근거일 때 직접적으로 규정되고, 근거지워질 때는 근거 관계 속에서 정립된다.

“현존은 아직 다만 정립된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본질적으로 근거를 전제로 한다. ..직접적인 것[현존]은 차라리 정립된 것이고 근거는 정립된 것이 아닌 것이다.”(논리학, GW11, 294)

“따라서 본질이 근거로서 규정되는 것[Bestimmtheit]은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으로 이중화된 규정이다. 이 규정은 처음에는 ① 본질[형식]을 근거로 삼아 정립된 것에 대립하는 본질이라고 규정되면서 정립되지 않은 것으로 존재한다. 두 번째로는 규정은 근거지워진 것, 직접적인 것인데[현존], 이는 그 자체로 대자적인 것이 아니라 ② 정립된 것으로서 정립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정립된 것으로서 정립된 것은 마찬가지로 자기 동일하지만 부정성이 지닌 자기 동일성이다.”(논리학, GW11, 294)

4)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형식과 현존은 서로 무차별하다. 형식은 주관적인 것이며 현존은 그것을 넘어서 있다. 그런 주관적 형식은 현존에 대해 외면적이며 현존은 그와 다른 무수한 형식으로 규정될 수 있다.

잎은 꽃을 보호하지만, 광합성을 하는 것이며, 심지어 재생산에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니, 그 중 주관적으로 어느 기능을 형식으로 규정하더라도 곧바로 무너지고 다시 다른 기능으로 규정된다.

그 때문에 이를 통해서는 어떤 것도 규정되지 않고 생물 세계 자체는 이름모를 꽃들처럼 잡다하게 흩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날 뿐이다. 그런 잡다성 앞에서 우리는 구토를 느끼거나 현기증을 느낀다.

그런 두 거지 관점에서 본다면, 근거 관계는 ‘순수한 반성’과 ‘규정하는 반성’의 결합이다. 순수 반성에서 현존은 정립된 것일 뿐이며(본질과 무구별적 통일) 규정하는 반성에서는 현존은 자립적인 것인데(본질과 구별 속에서의 통일), 근거 관계에서 현존은 두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

“따라서 이런 근거가 지닌 매개는 순수한 반성과 규정하는 반성의 통일이다. 그런 매개가 지닌 규정이나 정립되어 있음은 존립을 얻고 거꾸로 그런 규정의 존립은 정립된 것이다. 그런 규정이 존립한다는 것 자체가 정립된 것이거나 규정성을 갖기 때문에 따라서 그런 규정은 그 규정성의 단순한 동일성과 구별되며 본질에 대립해서 형식을 이룬다.”(논리학, GW11, 295)

이런 형식과 현존은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이라는 근거 관계에서 끊임없이 상호 위치를 전도하는 유희를 전개한다. 헤겔은 이 유희를 ‘상호작용’이라는 말로 규정한다.

“이것이 형식과 본질의 절대적 상호 관계이어서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의 이 단순한 통일[ 본질]은 그런 상호작용 속에서 그러나 바로 그 자체 규정되거나 부정적인 것이 되니, 토대로서 자신을 형식으로부터 구별하지만[무차별성], 동시에 형식의 근거나 계기로 된다.” (논리학, GW11, 296)

5)

이상에서 보았듯이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의 전도와 더불어서 형식과 토대로서 본질은 각자 직접적인 것 존립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근거지워진 것, 정립된 것이 된다.

그런 이중성 때문에 이들은 한편으로는 각자 동시에 존립하고 무차별하며 바로 그 순간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연관된다. 이들을 연관의 측면에서 보면 서로 타자를 정립하고 이를 통해 자기를 존립하게 하고 동시에 그 순간 타자에 의해 정립되면서 이를 통해 타자를 존립하게 한다. 통일되는데, 이 통일성과 무차별성 역시 끊임없이 전도한다.

“그에 반해서 형식 규정은 본질의 표면에 있는 것으로서 규정이다. 본질은 그것들의 밑바닥에 있는 무규정적인 것으로 있으며 이 무규정적인 것은 자신의 규정에 대해 무차별하다는 규정 속에 있다. 반성규정은 그 규정 자체에서 존립을 가져야 하며 자립적이어야 한다고 가정된다. 그러나 반성규정이 자립적이라는 것은 반성규정이 해소된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 형식 규정은 타자에서 이런 해소를 갖는다. 그러나 그 해소 자체는 자기와의 동일성이거나 이 반성규정이 얻는 존립의 근거이다. ”(논리학, GW11, 295)

이런 형식과 본질의 관계에서 형식은 한편으로 형식이면서 곧바로 부정되며 토대 역시 한편으로 토대이면서 곧바로 부정된다.

① 형식의 몰락

“형식은 본질을 규정하지 않는다. 마치 형식은 진정으로 전제되어서 본질로부터 분리된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형식은 그렇게 하여 비본질적인, 끊임없이 몰락하는 반성규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형식 자체는 오히려 자기를 지양하는 근거이거나 자신의 규정에 속하는 동일한 관계이다.“(논리학, GW11, 296)

“형식은 자기가 정립되는 가운데 지양되고 지양되어 있다는 데서 존립하게 되는 모순에 처해 있다.”(논리학, GW11, 296)

② 토대의 몰락

“규정하는 형식은 정립된 존재를 지양하는 것에 관계하며[토대를 부정] 이를 통해 형식은 하나의 자기 동일성에 대해 그것이 마치 타자인 것처럼 관계한다. 형식은 자신을 지양된 것으로 정립한다. 이를 통해 형식은 그 동일성[토대]을 전제로 한다.“(논리학, GW11, 297)

③ 양자의 상호 몰락

“반성규정이 자립적이라는 것은 반성 규정이 곧 해소된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 형식 규정은 타자에서 이런 해소를 갖는다. 그러나 그 해소 자체는 자기와의 동일성이거나 이 반성 규정이 얻는 존립의 근거이다.”(논리학, GW11, 295)

④ 형식과 토대의 구별과 통일

“본질과 형식의 이런 구별에서 외적 반성이 머물러 있곤 한다. 구별은 필연적이지만, 이 구별 자체는 그들의 통일이다. 마치 이 근본적 통일이 자기를 자기로부터 밀쳐내고[구별] 정립된 것으로 만드는 본질인 것과 같다.”(논리학, GW11, 296)

헤겔 변증법 반성운동17-존재론에서 질과 본질론에서 형식[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운동17-존재론에서 질과 본질론에서 형식

1)

지금 다루어지는 관계 범주(정언, 가언, 선언 판단형식)에서 발전은 생물의 종적 본질이 실체 즉 사회적 유적 본질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생물에서 종적 본질은 개체적 현존에 내재하며, 개체적 현존이 재생산하는 운동을 매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체 즉 사회적 유적 본질은 인간이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는 사회이며 이는 개체적 개인을 벗어나 그들 사이의 관계로서 독립적으로 현존하는 것이다. 내재하는 종적 본질이 밖으로 드러나서 독립적인 유적 본질로 이행하는 것이 관계 범주에서의 운동이다.

그 가운데 정언 판단형식이 다루어지는 것이 1편 3장 근거 장이다. 여기서 1절이 절대적 근거이고 2절이 유한한 근거이고 3절이 무제약자다. 그 중 헤겔은 1편 3장 1절에서는 근거 개념을 다룬다.

서문에서 근거 개념에 관한 일반적 설명이 제시되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근거는 앞으로 전개되는 반성 규정 가운데 최초의 것이다. 근거는 근거지워진 것을 한편으로는 규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근거지워진 것이 근거의 토대가 된다.

근거의 운동은 근거와 토대 사이의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이다. 헤겔은 이 관계를 서문에 이어서 1절 절대적 근거에서 세 가지 관계를 통해 서술한다. 즉 형식과 본질, 형식과 질료, 형식과 내용의 관계이다.

이 관계는 제목 상 형식 즉 근거에 해당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근거지워진 토대와 관련하여 본질, 질료, 내용으로 전개하니, 발전이 주로 여기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관계의 발전에서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오히려 형식이다. 형식의 의미가 변화하면서 그것에 대립하는 타자인 토대의 의미도 변화한다. 토대는 본질, 질료, 내용으로 차례로 규정된다.

2)

이 세 가지 단계의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헤겔이 존재론에서 1편 2장 현존 장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헤겔의 판단형식에 관한 설명을 보면, 존재론 질적 범주의 전개(1편 2장과 3장)는 질적 판단형식에 상응하는데, 본질론의 전개(1편 3장과 2편 전체)는 관계 판단형식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질적 판단형식과 관계 판단형식은 술어에서 발전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반면 양적 판단형식과 양상 판단형식은 발전이 주어에서 일어난다.) 질적 판단형식에서 그 출발점은 긍정 판단형식에 대응하는 질의 범주다. 질은 유한성으로 나가고 대자 존재에 이른다. 대자 존재의 끝에서 부정 판단형식으로 이행한다. 본질론에서 관계 판단형식의 출발점은 근거이다. 이 근거는 유한한 근거로 나가고 무제약자로 이행한다. 이 무제약자에서 법칙으로 이행하면서 선언 판단형식으로 이행한다.

이런 상응 관계에 비추어 볼 때 근거를 다루면서 헤겔이 서술한 내용을 질적 판단에서 헤겔이 현존을 다루면서 서술한 것과 비교해 본다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3)

헤겔에서 처음 등장한 감각적인 질은 서로 무차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감각적 질은 쉼 없이 다른 것[Andersein]으로 바뀌어 나가는 명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감각적 질이 발전하면서 지각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성질이 등장한다. 이런 이행은 경험이 발전하는 것에 따라 일어난다.

그러나 어떤 것은 하나의 일반적 성질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일반적 성질[Bestimmtheit]을 가지니, 이것들은 어떤 것[etwas, Realitaet] 속에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매체 속에 서로 공존한다. 그것들은 서로 분리되지도 서로 통일되지도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 헤겔은 그러므로 어떤 것은 그 자기 자신에서[an ihm selbst] 타자로 이행한다고 한다. 이들의 관계를 헤겔은 그 자체 존재[an sich sein] 과 대타 존재[Sein fuer anderes]의 관계로 설명했다.

여기서 경험이 더 발전하면, 어떤 것이 지닌 일반적 성질은 그것이 지닌 다른 일반적 성질과 결합해 있어서 그것은 서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서로 통일된 것은 이제 하나의 개별자를 형성한다. 여기서 개별자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성질[속성] 즉 규정과 다만 몇몇 개별자에 속하는 상태[우연성]가 구분된다.

나아가서 하나의 개별자에는 두 가지 이상의 일반적 성질 즉 속성이 등장한다. 두 가지 성질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성질이 이미 그 자체에서, 본래[an sich] 타자로 이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의 성질은 어떤 개별자의 고유성[형상]을 의미하는 것[Sollen]인 동시에 개별자의 고유성을 부정하는 한계[Grenze]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그런 개별자는 그런 성질의 관점에서 보면, 그 자체에서 한계를 지닌 것 곧 유한한 존재[Endliche]로 규정된다.

유한한 존재에서 개별자의 고유성으로 여겨진 하나의 형상은 관점에 따라서 선택된 주관적인 것임이 밝혀진다. 개별자의 진정한 본성은 오히려 이 다양한 속성들 사이의 관계 즉 법칙적 관계로 밝혀지면서 이 법칙적 관계를 매개하는 질적 무한자가 출현한다. 이것이 곧 대자 존재다.

4)

이제 본질론에서 본질에서 근거와 근거지워진 토대 사이에서도 유사한 관계가 펼쳐진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존재론에서 주어 술어의 의미와 본질론에서 주어 술어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존재론에서 질은 물체적 개별자를 주어로 하고 그것의 술어인 성질이 되었다. 예를 들어 ‘이것은 붉다’와 같은 판단에 성질 ‘붉다’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 본질론에서 근거와 토대 역시 주어 술어 관계를 지니는데, 이때 주어가 되는 것이 토대이고 술어가 되는 것이 근거이다. 본질론에서 주어가 되는 것은 유기체적 개체 즉 생물체이다. 여기서 개체란 곧 유기적으로 이루어진 조직체다. 헤겔은 유기체적 개체를 규정하는 술어를 형식[Form]이라고 이름 붙이는데 이 유기체적 개체를 규정하는 술어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존재론에서 술어는 질적 규정이나 양적 규정과 같은 것인데, 생물적 개체는 그와 같은 질적, 양적 규정으로 규정될 수 없다. (물론, 그런 생물적 개체도 하나의 물체적 개별자라는 점에서는 그런 질적, 양적 규정을 파악한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을 물체로서가 아니라 생물적 개체라고 하는 측면에서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생물적 개체를 규정하는 것 즉 그 형식적 근거는 무엇인가? 생물체의 경우는 결국 그것이 수행하는 결과 또는 기능(또는 목적인)을 통해서 규정될 수밖에 없으니, 이런 기능이 곧 그것의 근거 즉 형식이 된다.

구체적 예를 들자면 ‘이 꽃은 진달래다’와 같은 판단이다. 여기서 주어 ‘이 꽃’은 어떤 종적 개체를 지시한다. 술어는 ‘진달래’는 단순히 어떤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진달래’란 술어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곧 이 개체가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결과 즉 재생산되는 종적 본질을 의미한다. 다만 이 종적 본질을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다.

5)

그런데 어떤 유기체 즉 생물적 개체의 형식을 이렇게 최종적으로 재생산되는 종적 본질로 규정하는 것은 논의의 결과를 선취하여 이루어지는 주장이다. 생물적 개체가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결과 즉 그 기능을 이런 재생산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

복잡한 생물체의 경우 유기체적 구성은 복잡하다. 어떤 꽃을 보면 잎이 있고 뿌리가 있으며 줄기가 있다. 꽃은 더 세부적으로 보면 꽃잎과 수술과 암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각각에는 고유한 기능이 있으니, 예를 들어 잎은 영양 획득의 기능을, 꽃은 재생산의 기능을, 줄기는 영양분을 유통하는 기능을 지닌다. 그러므로 어떤 유기체를 무엇이라고 규정할 때, 그 규정은 다양하게 파악될 수 있다.

어떤 꽃은 전체적으로 볼 수도 있고 구분해서 꽃과 줄기, 잎으로 분리해서 볼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결국 재생산이 유기체의 기능이라 할 수 있으나 각 부분을 분리해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체로 우리는 먼저 이렇게 유기체의 각 부분을 분리해서 보면서 각자에게 고유한 기능을 부여한다. 꽃과 줄기, 잎에는 위에 말한 것과 같은 각자 독립된 기능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유기체의 기능을 이처럼 분리해서 보는 경우와 그 유기체를 유기체 전체 속에서 보는 경우 그 기능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잎은 고립해서 보면 광합성을 하는 수단이니, 영양 획득하는 기능이 그것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잎이 그런 기능만 가진 것일까? 잎은 전체적으로 보아 유기체의 일부이며, 그런 만큼 다른 기능도 포함한다. 즉 잎에는 영양 유통의 기능도 심지어는 재생산의 기능도 존재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잎이 영양 획득 기능을 한다는 것은 고립적인 관점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잎이 고립적으로 보아서 광합성을 한다는 규정도 사실 과학적으로 상당히 발전된 다음에야 나타난 것이다. 처음 잎이 꽃을 관찰했을 때 사람들은 그 기능을 주관적인 판단으로 규정했다. 잎은 처음엔 꽃을 보호하는 기능으로 파악되었고 꽃은 벌을 유혹하는 기능으로 파악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우연한 것을 그 고유한 기능으로 파악한 것이다.

6)

이처럼 유기체에 대한 파악의 출발점에서 서서 유기체의 주관적인 우연한 기능을 유기체의 형식으로 파악한다면, 이것은 마치 존재론에서 어떤 개별자를 감각적 질로 파악한 것과 같은 것이다.

마치 감각적 질이 명멸하듯이 유기체를 규정하는 어떤 기능 즉 형식도 마찬가지로 명멸한다. 여기서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하나의 형식은 존재했다고 곧 사라지고 다른 형식이 출현하니, 그 형식은 개체적 현존에 대해 명멸하는 관계에 있다.

나아가 형식인 기능을 고립된 기능으로 파악한다면, 이는 마치 존재론에서 독립적인 성질로 파악하는 것과 같으니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매체와 개별자 사이의 관계가 반복된다.

마지막으로 존재론에서 성질의 관계가 출현하면서 유한자로 이행하듯이 여기서도 기능들 사이의 관계가 출현하면 유한한 근거로 이행하게 된다. 헤겔은 이런 이행을 형식과 본질, 형식과 질료, 형식과 내용이라는 근거와 토대 사이 관계의 발전을 통해 설명한다.

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6-본질에서 근거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6-본질에서 근거로

1)

앞에서 본질의 운동을 두 가지 축에 따라 살펴보았다. 하나의 축은 본질과 개체적 현존 사이 반성운동의 측면이다. 이 측면에서 반성은 외적 반성에서 내재적 반성 또는 규정하는 반성으로 나갔다. 이 축을 본질과 관계하는 수직축이라 하자.

또 하나의 축은 개체적 현존들 사이의 축이다. 여기서 개체들은 상이성의 관계로부터 대립 관계를 거쳐 모순의 관계로 발전했다. 이를 수평축이라 하자.

반성운동은 이제 이 수평축의 운동과 수직축의 운동 사이의 관계를 통해 전개된다. 그 출발점은 외적 반성운동에서 주관적 본질과 상이한 현존의 관계이고 그 도착점은 내적 반성운동이며 현존의 모순적인 관계이다. 이 관계는 상호작용 속에서 전진하는데, 수직축에서 한 단계 높아가면 수평축에서도 한 단계 발전한다.

이런 반성운동의 전개 과정은 판단에 비추어 본다면(나중에 헤겔이 2부 주관 논리학 개념론에서 판단을 다루면서 설명하는 것에 따르자면), 관계 범주와 양상 범주(헤겔에서는 개념 판단형식이다)의 발전을 매개한다. 즉 본질론 1편 3장이 정언판단을 다루고, 2편 현상 편이 가언판단과 선언판단을 다루고 3편 현실 편이 양상 범주를 다룬다. 본질론에서 범주의 전개 과정과 판단형식 사이의 이런 관계는 존재론에서 질의 운동이 판단의 질적 범주에 상응하고, 양의 운동이 판단의 양적 범주에 상응했던 것과 같다.

2)

반성운동에서 개체적 현존을 매개하는 것이 곧 본질이다. 본질은 개체적 현존을 부정하고 다시 자기를 개체적 현존으로 정립한다. 본질은 자기를 반발하여 개체적 현존을 정립하고, 다시 이 개체적 현존을 부정하여 자기 내로 복귀한다.

여기서 본질은 이데아와 같이 초월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본질은 개체적 현존의 지속적인 재생산 가운데서 존재하는 것 즉 개체적 현존에 내재하는 운동으로서만 존재한다. 이런 개체적 현존은 본질의 내재하는 운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개체적 현존은 단순히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매개로 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지속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운동 속에서 개체적 현존은 자기를 부정하는 가운데서만 존재한다. 반면 본질은 자기를 재생산하는 가운데서만 존재하니, 이 동일한 운동이 지닌 두 대립하는 측면에서 자기를 부정하는 절대적 부정성의 측면이 곧 개체적 현존이며 이를 통해 자기를 지속하는 동일성의 측면이 본질이다.

개체적 현존과 본질 사이의 이런 관계는 마치 존재론 처음에 존재와 무 사이의 관계와도 같다. 생성은 존재가 무로, 무가 다시 존재로 이행하는 가운데서만 있으니, 양자는 직접 결합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개체적 현존과 본질이라는 두 가지 측면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한다. 개체적 현존의 절대적 부정성의 이면이 곧 본질이며 본질의 자기 동일성의 이면이 절대적 부정성이다. 헤겔은 이처럼 동전의 양면으로 결합한 전체를 본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이 전체를 개체적 현존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처음 무는 존재와 단순한 직접적인 통일 속에 있었듯이 또한 여기서 우선 본질의 단순한 동일성은 절대적 부정성과 직접적인 통일 속에 있다.”(논리학, GW11, 291)

본질 전체가 전개하는 이런 운동이 지닌 대립하는 측면을 분리해서 보게 되면, 하나는 절대적 부정성의 운동이 다른 하나는 지속하는 존재의 운동이다. 전자가 곧 개체적 현존으로서 본질의 측면이며 후자가 곧 근거로서 본질의 측면이다.

3)

그러나 반성이 일어나기 전, 처음에 본질과 개체적 현존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때 본질은 개체적 현존의 성질 가운데 주관이 선택한 것이며 개체적 현존에 대해 외면적인 것이다.

개체적 현존은 우리 눈앞에 직접 현존하는 것이며, 그것은 본질이 스스로 정립한 것이 아니다. 본질 역시 주관적인 선택에 따른 것이니 직접적인 것이며, 개체적 현존의 자기 부정을 통해 출현한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양자는 서로 외면적이다. 이 관계는 아직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의 관계가 아닌 서로 무차별한 관계이다.

“그러나 이런 근거로서의 규정성은 본질 자신을 통해 정립된 것이 아니다. 또는 이 본질은 이러한 본질의 규정을 그 자체로 정립하지 않은 한에서 아직 근거가 아니다.” (논리학, GW11, 291)

그러나 개체적 현존과 본질 사이에 반성을 통해 일정한 관계가 출현하면서 양자 사이에 근거 관계가 출현한다. 여기서 개체적 현존을 통해 지속하는 본질은 개체적 현존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근거가 된다. 반면 본질을 통해 재생산되는 개체적 현존은 이제 그런 본질을 통해 규정된 것, 정립된 것이 되니, 그것을 헤겔은 근거지워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질의 반성은 자신을 그 본래적 모습으로 즉 부정적인 것으로서 정립하고 자신을 규정하는 데 있다.”(논리학, GW11, 291)

이 근거 관계란 본질의 반성운동이 전개하는 관계 가운데 최초에 출현한 관계이다. 반성은 외적 반성은 내적 반성으로 이에 따라서 현존은 상이성에서 대립으로 나간다. 외적 반성 가운데 최초의 반성이 근거이며 상이한 것 가운데 최초의 상이한 현존이 곧 근거지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근거 관계는 반성운동이 밑바닥[zugrunde]에 놓여 있는 것일 뿐이다.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나가는 인식의 출현 과정에서 이것은 최초의 것이지만,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나가는 논리적 서술에서는 최종적인 것이다. 인식론적으로는 반성이 최초로 시작하기에 논리적 서술에서는 반성이 최종적으로 등장해서 반성 자신을 넘어서 직접적인 것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근거는 본질의 반성규정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 마지막의 것이며 그런 반성규정이 자기의 규정[즉 반성이라는 규정]을 지양한 것[직접적인 것]을 의미하는 규정일 뿐이다. 반성규정은 밑바닥에 이르면 진정한 의미를 즉 자기[반성]이 자기 내에서 절대적으로 반발된 것[반성이 아닌 것]이라는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므로 이제 본질에 속하는 정립된 것은 정립된 것이라는 사실이 지양된 것[직접적인 것]으로서만 존재한다.” (논리학, GW11, 291)

그러므로 여기서 근거로서 본질은 아직 개체적 현존에 내재하는 본질이 아니라 외적인 직접적인 본질이다. 이 외적 본질은 자기를 부정하면서 개체적 현존을 규정하는데, 그 결과 본질과 개체적 현존의 관계는 자기 동일성의 관계가 된다.

“본질은 근거로서 규정되는 가운데 규정되지 않은 것[직접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자기가 규정된다는 것을 지양하는 것만이 그 자신의 규정작용이다. 이렇게 본질이 자기 자신을 지양하는 것으로서 규정되는 가운데 본질은 타자[개체적 현존]로부터 나오는 본질이 아니라 자기를 부정하는 가운데서도[in seiner Negativitaet: 개체화 속에서도] 자기와 동일한 본질이 된다.”(논리학, GW11, 291)

하지만, 이런 처음 등장한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의 동일성은 사실 외면적이고 주관적이고 형식적인 동일성에 지나지 않으며 개체적 현존은 본질의 진정한 토대가 되지 못하고 본질은 개체적 현존을 진정으로 규정하지 못한다.

“최초로 존재하는 직접적인 것으로서 규정[개체적 현존]으로부터 나와서 근거로 나가는 한에서(자기 자신을 통해 몰락한 [반성] 규정이라는 성격을 통해) 이 근거는 처음에는 최초의 것을 통해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규정작용은 한편으로 본다면 규정작용을 지양하는 것이며 본질의 동일성을 다만 회복하고 순화하고 개시하는 것이다. 그런 본질의 동일성은 곧 잠재적인[an sich] 반성규정이다.”(논리학, GW11, 291)

“그러나 다른 한편 이 규정작용으로서 부정하는 운동은 직접적인 것으로 출현했던 앞서의 반성 규정성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런 직접적인 반성규정은 근거에서 나타나는 자기 자신을 배제하는 반성에 의해서만 정립된 것이며 여기서 정립된 것이거나 지양된 것으로서만 정립되는 것이다.”(논리학, GW11, 292)

4)

앞에서 말한 반성 즉 절대적 부정성의 자기 동일성은 순수한 매개였다. 이것은 “무가 무를 통해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운동”이며 “자신을 타자 속에 비추는 것”이다.

헤겔은 최초로 일어난 반성 관계인 근거 관계를 앞에서 말한 반성의 순수한 개념에 따른 매개와 달리 직접적인 것이 가지는 매개라는 점에서 ‘실재적인 매개’라 한다.

“근거는 실재하는 매개이다. 왜냐하면, 근거는 반성이 지양되는 한에서 반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근거를 자신의 비존재를 통해서 자기 내로 되돌아와서 자기를 정립하는 본질이다.”(논리학, GW11, 292)

여기서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은 직접적인 것들의 외면적 관계이다.

“지양된 반성이 지닌 이런 계기들에 따라서 보면 정립된 것은 직접성의 규정을 획득하며 관계 밖에 즉 자기를 비추는 것 바깥에 있는 자기와 동일한 것의 규정이다.”(논리학, GW11, 292)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권, 3권, 4권의 3장까지(2) [건국대학교 다자인多字人]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권, 3권, 4권의 3장까지(2)

 

건국대학교 다자인多字人

 

 

(이어서)

 

  1. <형이상학> 3(B)권

 

<형이상학>의 3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탐구되는 학문과 관련하여 이 학문의 물음 즉, 철학이 물어야 하는 주제가 어떤 주제들인지를 나열한다. 이 물음들은 철학적 난점들 즉, 아포리아(Aporia)들로 제시되며, 이는 형이상학이라는 학문의 어려움과 탐구 주제를 보여준다. 로스(W. D. Ross)의 구분에 따르면 아포리아들은 총 15개가 제시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 하나의 학문이 네 가지 원인을 모두 다룰 수 있는가? 2) 공리들을 다루는 것은 실체에 대한 학문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학문이 그것들을 다루는가? 3) 하나의 학문이 모든 실체를 다룰 수 있는가? 4) 실체에 대한 학문은 실체에 속하는 부수적인 것들도 함께 다루는가? 5) 감각적이 아닌 실체들도 있는가? 그렇다면 그 종류는 얼마나 되는가? 6) 유들이 사물의 첫째 원리들인가, 아니면 사물들에 내재하는 부분들이 첫째 원리들인가? 7) 유들이 원리들이라면, 최상의 유들이 그런가 아니면 불가분적이 그런가? 8) 개별적인 것들과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이 있는가? 9) 첫째 원리들은 각각 종이 하나인가 아니면 수가 하나인가? 10) 가멸적인 것들과 불멸적인 것들의 원리들은 같은가? 11) 있는 것과 하나는 실체들인가 아니면 속성들인가? 12) 수학의 대상들은 실체들인가? 13) 감각물들이나 수학의 대상들뿐만 아니라 이데아들도 있는가? 14) 첫째 원리들은 가능적으로 있는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있는가? 15) 첫째 원리들은 보편자인가 개별자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물음들을 이전 철학자들의 논의들을 참조하면서 이 물음들이 단순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아포리아에 빠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형이상학>의 3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아포리아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지 이 물음들과 관련하여 여러 난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 그럼에도 이 아포리아들은 <형이상학>에서 큰 의미가 있는데, 왜냐하면 여기서 말해지는 아포리아들이 책이 탐구하는 학문 즉 형이상학의 범위와 문제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1. <형이상학> 4권(Γ) 3장까지

 

4권에서는 드디어 본격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논증이 펼쳐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먼저 형이상학을 ‘있는 것을 있는 것으로서 탐구하는 학문’으로 규정하면서, 있는 것인 한에서 있는 것의 첫째 원리와 최고의 원인들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이때, ‘있는 것’이라는 말은 다의적이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있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리하면서 철학이라는 학문을 설명한다. 있는 것은 실체와의 관계에 따른 하나의 원리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가령, 실체도 있는 것이고, 양태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원리를 지닌 것들은 저마다 그 원리를 따르고, 그것과 관계된 것으로 말해지는 것들을 탐구하는 하나의 학문이 있다. 이러한 실체 자체와 그 관계를 통해 다의적으로 있는 것 모두를 탐구하는 학문이 철학이다.

 

하나의 유에는 하나의 학문이 할당되고, 하나의 학문은 할당받은 유와 그 유에 속한 종들에 관한 분과들을 종으로 지니기 때문에, 철학은 있는 것의 유에 속한 종들만큼의 분과들을 그 종으로 지닌다. 따라서 있는 것의 유와 하나의 유는 서로의 유에 속한 종들이 일치하며, 하나의 유에 속하는 종들을 탐구하는 것 또한 철학과 그에 속한 분과들의 몫이다. 따라서 하나의 유에 종으로 속하는 동일성과 동질성 그리고 그것들에 반대되는 다름과 이질성 또한 철학의 탐구 주제에 속한다. 반대자들은 동일한 원리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같음과 다름 그리고 실체를 다루는 학문을 고찰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철학자의 일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첫 번째 뜻에서 있는 것, 즉 실체를 탐구하고, 하나와 여럿,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반대자들, 그리고 있는 것과 실체에 속하는 부수적인 것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을 탐구하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증의 첫째 공리 즉, 모순율을 탐구한다. 언뜻 수학에 몫인 듯 보이는 공리에 대한 이 물음은, 이 공리가 특정한 유에만 고유하게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철학의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공리들에 대한 고찰 역시 보편적으로 있는 것과 첫째 실체에 대해 고찰하는 사람이 할 일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공리를 모순율로 제시하며 모순율에 대해서 모든 원리 중에서 가장 확고한 원리에 대해서는 잘못을 범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무전제적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것이 있으면서 동시에 있지 않을 수는 없고, 반대되는 것들이 동시에 동일한 것에 속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모순율은 여타의 모든 공리들에 대해서도 그것들의 원리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