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운동30-현상의 개념과 법칙의 개념(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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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변증법 반성운동30-현상의 개념과 법칙의 개념

1)

본질론 2편 1장이 실존 장이고 이것에 이어서 2장에서 헤겔은 현상을 다룬다. 2편에서는 전체적으로 종적 개체들 사이의 실재하는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관계는 점차 가능성이 자기를 실현해 나가는 방식으로 다루어지는데, 최종적으로 내면과 외면의 관계에서 그런 실재하는 관계가 완성된다.

그 가운데 처음 나타난 실존 장에서 실존들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실존은 오직 심연 위에 떠돌고 있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관계는 아직 내면에 즉 가능성[an sich]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실존은 서로 상이한 것일 뿐이다. 판단 형식으로 본다면 이는 정언 판단 형식에 속한다. 여기서 실존은 주어에 해당하고 술어는 아무것도 서술하지 않는 단순한 이름이다. 예를 들어 “이것은 진달래다”라는 판단이다. 여기서 술어 ‘진달래’는 단순히 어떤 실존하는 것을 지칭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현상 장에 이르면 종적 개체는 서로 상이한 것을 넘어서서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이르게 되고, 판단 형식으로 보자면 그 관계는 곧 가언 판단의 형식으로 된다. 가언 판단은 법칙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p이면 q이다’라는 형식이다. 여기서 p, q에 해당하는 것이 현상이고, 양자의 관계를 이루는 전체가 법칙이다.

실존 장에서 나왔던 ‘성질’과 ‘질료’ 개념이 존재론에서 ‘질’과 ‘실재성, 규정성’(긍정 판단 형식)에 상응하는 것이었다면, 현상 장에서 전개되는 ‘현상’ 개념은 존재론에서 전개된 ‘부정성’라는 개념(부정 판단 형식)에 상응한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현상을 ‘반성된[즉 부정된] 실존’이라고 한다.

2)

우선 실존이라는 범주에서 어떻게 현상이라는 범주가 출현하는가를 보자. 현상은 실존이 물질로 해체되고 이 물질이 서로 관계하는 것을 통해서 나온다.

즉 현상 장에 끝에 여러 가지 물질이 하나의 개체 속에 들어있다. 이 물질은 규정적[bestimmt]이면서도, 독립적이기에 서로 대립적이다. 이런 대립적인 물질이 하나의 개체 속에 들어있으니, 이 물질은 서로 침투한다고 생각된다.

즉 어떤 물질은 다른 물질이 비어 있는 곳[poros]에 들어가 있고 거꾸로 다른 물질은 이 물질이 비어 있는 곳에 들어있다. 이런 물질은 자기가 존립하는 가운데 이미 자기의 비 존립 즉 구멍이 존재한다.

“사물 속에 포함된 구별된 것이 자립적인 물질이다. 이 물질은 모순적인 것이니, 왜냐하면 이 물질은 직접적으로 존립하면서 동시에 다만 낯선 것이 자립성 속에 그러므로 그 자신의 존립이 부정당하는 것 속에 자신의 존립을 가지며 다시 말하자면 바로 그러하므로 또한, 다만 자기에게 낯선 것을 부정하는 가운데 또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가운데서만 존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논리학, GW11, 342)

이런 상호 침투를 통해 물질과 물질 사이의 관계가 출현한다. 이 관계가 곧 법칙이다. 실존은 자립적인 것인데, 이것이 이런 관계 속에 하나의 계기가 되면 자신의 자립성을 부정당하게 된다. 여기서 법칙 속의 계기는 한편으로는 전체 속에 존재하므로 타자에 의해 정립된 즉 부정된 계기(-p)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직접 존재하는 것[존립하는 것:ㅔ]이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이중성을 지닌 것 즉 존립하는 것이 동시에 부정적일 경우 헤겔은 이를 ‘현상’이라고 한다.

서로 무차별하게 존재했던 실존에서 이런 관계가 출현한다는 것이 실존이 감추고 있는 근거인 본질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 과정은 근거로 복귀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아직 현상에서 본질로의 복귀는 중간에 머무른다. 왜냐하면, 여전히 실존이 가지고 있는 무차별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상은 우선 본질이 그 실존 속에 나타나는 것이다. 본질은 직접 실존에 현현한다. 실존이 직접적인 실존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된 실존으로서 존재하게 되면서 이 사실이 실존에 나타나는 본질의 계기를 이룬다. 달리 말하자면 실존이 본질적 실존일 때 현상이다.”(논리학, GW11, 341)

3)

헤겔에서 현상은 자립적인 존재[긍정성]과 정립된 존재[부정성]이라는 이중적 계기를 동시에 가진 것이다. 반면 가상은 부정적인 현상이 다시 자기를 부정하면서[이중 부정성, 정립된 존재로서 정립된 존재] 본질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본질론의 순서로는 가상이 먼저 나온다. 1편 본질의 반성 운동을 설명할 때 헤겔은 개념적으로 가상을 제시했다. 즉 종적 개체를 매개하는 것이 본질인 종인데, 본질은 종적 개체를 정립하고 이 개체의 부정을 통해 다시 본질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이 종적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종적 개체는 자기 부정적인 것, 정립된 것이 다시 정립되는 것 즉 가상으로 규정되었다. 그것이 앞에서 설명한 본질과 가상[Schein]의 관계였다.

1편에서 다루어진 본질과 가상은 본질론 전체의 운동을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본질론에서 생성하는 운동 과정의 진정한 출발점은 ‘실존’인데, 이 직접적이고 자립적이며 서로 무차별한 것이다. 이런 실존이 해체되어 물질의 법칙 관계로 되면서 이 법칙 관계를 이루는 요소는 현상으로서 규정된다. 그러므로 현상은 직접적인 실존에서 본질이 처음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현상에서 법칙은 자립적이고 서로 무차별한 물질들의 관계이므로, 외적인 관계이다. 여기서 반성은 아직 “낯선 외적인 반성”에 머무른다. 이 관계가 관계하는 요소들에 내재하게 될 때 이 현상은 마침내 자립성과 무차별성을 잃어버리고, 가상으로 되면서 본질이 본래대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헤겔은 이런 본질의 본래적 모습을 즉 가상을 3장인 관계 장에서 다룰 것이다.

“이런 의미[부정성]가 현상의 본질적 측면을 이룬다. 그것은 곧 현상이 실존 자체에서 반성의 부정성 즉 본질의 본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본질의 본성은 본질이 속했으며, 본질과 실존을 비교하는 것을 통해 이 실존을 현상으로 선언했던 낯선 외적 반성은 아니다.”(논리학, GW11, 342)

가상이 발전하여 드러내는 진정한 내적 관계를 통해 개체들을 전체로 묶는 일반적 본질이 출현한다. 이런 일반적 본질을 개체에 내재하는 종적인 본질과 구분된다. 이 일반적 본질은 개체들의 상호 관계를 통해 종적 본질이 자기를 드러낸 것이다.

헤겔은 이런 일반적 본질을 개체에 내재하는 본질 개념과 구별하여 개체들 전체를 의미하는 ‘사태’[Sache]라고 규정한다. 현상 장의 흐름은 이런 외적 관계가 내적 관계로 발전하면서 내적 본질이 외적인 관계, 즉 사태로 출현하는 과정이다.

4)

헤겔은 일단 위와 같이 실존과 현상을 개념적으로 구분한 다음 다시 현상과 법칙을 구별한다. 현상은 한편으로 실존이며 여기에 속하는 내용은 자립적이며 서로 무차별하다. 다른 한편 현상 속에는 이미 본질이 출현하니, 이때 현상은 본질적 내용을 지닌다.

이 본질적 내용은 실존의 부정성이며, 이는 다른 실존과의 관계 속에 하나의 계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이 실존의 부정성, 즉 관계 속의 계기가 곧 현상의 본질적 측면인 법칙을 이룬다.

이 현상의 본질적 내용은 이중성을 지닌다. 한편으로 이 본질적 내용은 비본질적 측면이 지닌 다양한 개별성,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연성에 비교해 보면, 그것은 자기와 동일하게 고요하게 불변적으로 머무르는 것이다.

현상의 비본질적 측면을 헤겔은 현상 세계라고 규정한다. 반면 현상의 본질적 측면을 법칙의 세계로 규정한다. 처음에 이런 법칙의 세계는 아직 현상 세계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지 않으며, 현상 세계에 내재하고 있다.

이 법칙의 측면에서 나타나는 본질적 내용은 현상의 비본질적 측면이 지닌 상호 무차별성과 달리 다른 본질적 내용과 맺는 관계 속에서 하나의 계기가 되니, 그것은 이 다른 내용에 대립하는 특정한 것이며 오직 이런 다른 내용과의 관계 즉 법칙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법칙 관계에서 한편으로 하나의 자립적인 것(존립하는 것)은 타자에 의해 정립되면서(부정되면서) 관계 속에 계기로(즉 정립된 것)으로 된다. 이런 관계는 상호적이므로 여기서 한편으로는 자립적인 것과 자립적인 것이 서로 우연한 관계를 맺는 것이며 여기서 하나의 존립은 타자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서로가 타자에 의해 정립되면서, 그 관계는 정립된 것이 정립된 것과 맺는 관계이다. 이제 이 관계는 필연적으로 된다. 여기서는 하나가 존립하는 것이 타자를 존립하게 만든다. 거꾸로 하나가 정립된다는 것은 동시에 타자가 정립된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정립된 것이 정립된 것에 관계하는 것이며, 가상이 다만 가상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5)

이 가운데 다만 관계 맺는 측면만 보면, 하나는 타자를 통해 자기와 매개하며 자기는 타자가 존립하는 매개가 될 뿐이다. 이 두 측면이 법칙적 관계에서는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여기서 현상하는 하나는 타자로 반성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기 내로 반성하는 것이다. 이런 매개를 통해 각자는 자기 관계하는 자립적인 것으로 된다.

“실존하는 것은 현상하는 것으로서는 타자로 반성되는 것이며 이 타자를 자기의 근거로 삼지만, 이 타자는 그 자체 다만 [다시] 타자로 반성되는 것일 뿐이다. 현상하는 것으로서 실존하는 것에 본질적인 자립성은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이므로 그 계기가 지닌 부정성 때문에 무가 무를 통해 자기 자신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실존하는 것의 자립성은 다만 본질이 빛 나는 것[Schein: 가상]이다.”(논리학, GW11, 343)

그러나 현상의 법칙 관계는 이렇게 순수하게 관계 맺는 측면만 가진 것은 아니다. 이 관계는 현상의 무차별한 관계 속에 들어있는 것일 뿐이다. 헤겔이 생각하는 이런 법칙의 가장 전형적인 예가 낙하 법칙과 같은 것일 것이다.

낙하 법칙은 흘러간 시간과 경과한 거리가 관계 맺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과 거리는 서로 무차별한 것이므로 이 낙하 법칙은 외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는 경험을 통해 파악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낙하 법칙은 더 근본적인 본질적 관계 즉 힘의 관계가 지구라는 구체적 공간에서 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본질적 관계는 아직 감추어져 있고 낙하 법칙에 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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