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4-실체에서 주체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4-실체에서 주체로
1)
헤겔은 칸트의 선험철학의 원리를 받아들이면서 칸트가 선험적 범주가 대상을 구성하는 것은 직관의 다양이 선험적 범주에 할당되는 것이며 따라서 개념은 공허한 형식이고 그 내용은 직관에서 주어지는 다양이라고 했던 것을 비판한다.
헤겔은 선험적 범주는 공허한 형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기의 내용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범주는 일반적 개념이지만, 동시에 자기 규정성을 지닌 구체적인 개념이다. 실재성은 범주 자신에서 나오므로 범주와 실재성, 개념과 대상은 합일하면서 객관적인 진리로 된다.
“또한, 여기[칸트적 심리적 관념론]에 속하는 것은 개념이 다시 직관의 다양이 없으면 내용이 없고 공허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개념이 선천적[apriori] 종합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개념이 그와 같이 선천적 종합이므로, 개념은 정말로 말해 규정성과 자기 내 구별을 지닌다. 규정성은 개념의 규정성이고 따라서 절대적 규정성, 개별성이므로 개념은 모든 유한한 규정성과 다양성의 근거이자 원천이다.”(논리학 2부, GW12, 23)
헤겔은 ‘선천적 종합’, 즉 개념에서 그 규정성이 나온다는 주장을 자기의 철학의 원리로 삼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어떻게 보면, 마치 나르시시즘적 원리처럼 보인다. 자기가 만들어놓은 것이니 그 속에 자기가 들어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렇게 자기가 만들어놓은 것은 주관적인 산물이며 그 너머에 대상 자체, 물 자체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2)
헤겔이 개념에서 규정성이 나온다고 했을 때 이 규정성이 자기 넘어 물 자체에 부딪힌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개념이 의식과 대상으로 분화되고 즉 그 자체 존재[an sich]가 대자 존재[fuer sich]와 대타 존재[Sein fuer andres]로 구별된다고 했을 때, 여기서 의식, 대자 존재란 곧 개념에서 나온 실재성, 규정성을 의미하며, 대상 곧 대타 존재는 이런 실재성과 규정성 너머에 등장하는 물 자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런 분화와 구별이 의미하는 것은 곧 개념에서 규정성이 나오는 순간 물 자체에 부딪힌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물 자체를 헤겔은 어떻게 극복하는 것일까? 헤겔을 비롯한 모든 당대 철학자들의 근본적 아포리아였던 이 문제를 헤겔은 정신현상학 서론[Einleitung]에서 의식 경험의 길이라는 방법을 통해 풀어나간다.
즉 하나의 의식은 일정한 범주를 통해 대상을 규정한다. 의식은 이 규정성을 자기의 범주에서 끌어내지만, 이 규정성은 그 너머 물 자체에 부딪힌다. 그런데 이때 물 자체란 자기의 전제가 되는 의식 때문에 생겨난 것이니, 본래의 물 자체가 아니라 ‘그 의식에 대해 그 자체적인 존재[Fuer es an sich Sein]’가 된다.
그러므로 의식의 범주와 물 자체는 서로 모순 속에서 빠지고 이로부터 의식은 자기 내로 반성하면서 새로운 범주로 이행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시 새로운 규정성이 출현하며 이 속에는 그 이전 범주에서 물 자체였던 것이 이 범주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 결과 이 새로운 범주에 대해 또 새로운 물 자체가 출현하게 되면서 운동이 계속된다.
이런 과정은 의식의 범주가 개별적인 것에서 포괄적인 것으로 발전하는 과정이며 대상이 점차 더 구체적으로 자기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이 두 과정이 맞물려 나가는 것이 곧 의식 경험의 길이다.
3)
정신현상학에서 서술된 이 의식 경험의 길은 역사적으로 의식의 형태들이 겪어나갔던 발전을 의미한다. 이 발전을 매개하는 것은 의식과 물 자체와의 모순인데, 이런 역사적인 의식 형태가 현재 의식의 평면에 투영되면서 논리적인 범주의 발전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논리적 범주의 발전에서도 범주는 그 자신에서 규정성과 실재성을 끌어내지만, 이는 곧 그 실재성을 넘어선 것 즉 물 자체와 모순에 부딪히게 된다. 그 결과 새로운 범주가 출현하면서, 논리적 범주의 발전이 일어나게 된다. 마침내 최종적으로 범주가 모든 실재성을 포괄하면서 더는 모순이 나오지 않는다면, 바로 이 범주가 최종적인 절대적 범주이며 곧 진리인 개념 즉 이념이다.
헤겔은 이런 논리적 발전을 통해서 칸트가 좌표축에 할당했던 범주를 논리적 순서에 따라서 전개한다. 헤겔은 칸트의 12개 판단 형식과 그 범주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만 칸트와 달리 이를 논리적인 발전에 따라서 배치했다. 헤겔은 의식 경험을 통해 일어나는 논리적 계기의 발전을 통해 개념으로부터 규정성이 나온다는 선천적 종합 개념이 단순히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헤겔은 하나의 범주와 다른 범주로 이행하는 과정, 즉 범주의 자기 내 반성 과정이 중요하게 된다. 그것을 매개하는 것은 물 자체와의 모순이지만, 이 자기 내 반성이 일어나는 과정은 사유의 과정이다. 바로 이 사유의 과정이 추론적 이성이 하는 일이며 이 추론적 이성이 사용하는 범주가 곧 반성 개념이 된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칸트가 무시했던 반성 개념의 역할을 사유 속에 제대로 위치시킬 수 있었다.
논리적 범주의 발전이라는 개념은 칸트와 헤겔에서 선험적 통각의 개념을 차이 나게 만든다. 칸트에서 통각과 범주는 서로 구별된다. 통각은 범주를 직관의 다양과 결합하는 기능을 지니지만, 그 자체는 독립적인 것으로서 범주 밖에 있다. 마치 그것은 플라톤에서 데미우르고스가 이데아와 아페이론을 결합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헤겔에서 범주는 선험적 통각이 자기를 구별하여 출현한 하나의 규정성이며, 통각은 이 규정성이 부딪히는 모순을 통해 다시 새로운 범주를 규정한다. 이 과정에서 범주는 선험적 통각의 본래 그대로를 드러내게 되면서 마침내 선험적 통각은 범주를 통해 자기를 실현하게 된다.
헤겔에서 범주의 생성 운동을 통해 출현한 ‘개념’이라는 범주에서 마침내 통각은 자기를 본래 모습대로 드러내니, 그런 점에서 앞에서 개념이 곧 선험적 통각 또는 자기의식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범주의 전개 운동 자체는 결국 선험적 통각이 자기를 드러내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칸트는 범주가 규정성을 산출한다는 선험철학의 원리에 이르렀으나, 범주를 여전히 형식적인 좌표축으로 보면서, 다시 형식 논리학에서의 추상적 일반적 개념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나 헤겔은 범주가 규정성을 산출한다는 선험철학의 원리를 지키면서 이를 범주의 발전과 결합하면서, 물 자체의 문제를 극복하게 되었다. 그 결과 헤겔은 형식 논리학과는 전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논리학을 형성할 수 있었다.
논리학의 핵심은 곧 판단이다. 논리적 범주란 곧 판단의 형식 즉 주어와 술어의 관계인 계사를 규정하는 개념이다. 판단의 형식은 12개가 있는데, 이 12개의 범주는 서로 다른 내용을 지닌다. 이 범주가 지닌 내용은 이 판단 형식이 구체적인 판단으로 나타날 때 지니는 내용과 구별된다.
예를 들어 질적 긍정판단은 예를 들어 ‘이것은 빨갛다’와 같은 판단의 형식을 말한다. ‘이것의 빨강임’이라는 특정한 사태는 긍정판단의 구체적 내용이지만, 긍정판단의 판단 형식은 개별자인 주어와 일반적인 성질인 술어 사이의 관계이다. 이 판단형식 자체의 내용은 개별자와 일반자의 관계이다.
이런 질적 긍정판단 형식은 정언판단 형식과 구분된다. 이 정언판단의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진달래는 봄꽃이다’와 같은 판단이다. 문법적 형식으로만 보면 질적 긍정판단과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주어와 술어의 논리적 관계를 보면 후자의 경우 주어는 개별자가 아니라 일반자(즉 ‘진달래’)이다. 그리고 술어는 유적 일반자(‘봄꽃’)이다.
이처럼 구체적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판단 형식 자체가 즉 범주가 다른 범주와 지닌 차이가 곧 판단 형식의 내용이다. 이런 판단 형식은 직접적으로 보면 진리이지만, 이미 자체 내 모순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질적 긍정판단 형식은 개별자와 일반자가 대립하니, 이 양자의 통일성을 주장하는 질적 긍정판단 형식은 이미 그 자체 모순이다. 그러므로 이 질적 긍정판단 형식은 이런 모순에 부딪혀서 다른 범주 즉 다른 판단 형식으로 이행한다.
“이 절대적 형식은 자기 자신에서 자신의 내용을 갖거나 실재성을 갖는다. 개념은 진부한 공허한 동일성이 아니므로 자신의 부정성이나 절대적 규정이라는 계기 속에 구별하는 규정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말해 논리학의 내용은 절대적 형식의 그런 규정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내용은 절대적 형식을 통해 스스로 정립한 것이며 따라서 또한 그 자신에 적합한 내용이다.”(논리학 2부, GW12, 25)
어떤 판단 형식 속에 내재하는 모순은 그 자체로 드러나지 않는다. 처음에 아직 경험이 제한되어 있을 때 판단 형식은 통일성을 지니고 그 모순은 감추어지지만, 경험의 발전에 따라서 이 판단 형식의 모순이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논리적 범주의 발전은 경험의 발전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런 경험의 발전을 통해서 이런 논리적 범주의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다만 정신현상학에서 의식의 발전이 역사적으로 일어나는 것과 달리 논리적 발전은 이런 경험의 발전을 의식 내에서 즉 현재 의식의 평면 위에 투영된 방식으로 겪을 뿐이다.
5)
구체적 내용이 아니라 판단 형식 그 자체의 내용이 판단 형식과 부딪히는 모순이 논리적 범주, 판단 형식의 발전을 이끄는 힘이다. 헤겔은 이점을 진리의 이념과 연관하여 설명한다.
진리는 알다시피 대상과 개념의 일치이다. 논리적 범주는 구체적 내용이 없는 일반적 형식이므로 이 일반적 형식에 관해 진리를 따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논리적 범주 즉 판단 형식 자체가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면, 판단 형식과 그 내용 사이의 모순이 성립하고 거꾸로 양자의 일치인 진리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논리적 범주도 형식과 내용, 개념과 실재성의 일치인 진리를 향해 나간다. 논리적 범주 역시 진리를 향해 생동적인 운동을 전개한다. 이 생동적 운동은 모순을 겪어나가는 운동이다.
“논리학은 절대적 형식의 학문이므로 이런 형식성은 참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서 자기의 형식에 적합한 하나의 내용을 가져야 한다. 그런 요구는 논리적으로 형식적인 것이 순수한 형식이어야 하고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참된 것은 순수한 진리 자체이어야 하면 할수록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형식적인 것은 자체 내 규정이나 내용에서 훨씬 풍부한 것으로 사유되어야 하며 또한 구체적인 것에 대해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보다 무한히 더 큰 작용력을 지닌 것으로서 사유되어야 한다.”(논리학 2부, GW12, 27)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3-칸트 비판[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3-칸트 비판
1)
앞에서 헤겔의 ‘개념’이 논리적 범주로서 다른 범주와 구별되는 내용적 의미를 살펴보고 동시에 일반적으로 논리적 범주가 지닌 의미가 형식 논리학에서의 의미와 어떻게 구별되는가 살펴보았다.
이제 개념의 일반적 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에 이르렀다. 그것은 곧 개념이 선험적 통각 즉 ‘주체’라는 주장인데, 이를 위해 헤겔은 스피노자의 실체 개념이 칸트에서 주체 개념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이해의 맥락으로 제시한다.
그는 여기서 철학적 비판이 가진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데 이는 정신현상학에서 이미 서술했지만, 여기서 되풀이된다. 즉 어떤 체계에 대한 비판은 그 체계를 그 체계 밖에서 단적으로 부정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비판은 비판하는 철학이 전제하는 근본 규정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만, 비판받는 철학은 자기의 근본 규정을 고집하면서 비판하는 철학의 근본 규정을 거부하니, 비판은 마치 적이 없는 곳에서 싸움을 전개하는 것과 같다.
“진정한 반박은 적의 힘 속으로 들어가서 적의 힘이 닿는 범위 안에서 자기의 진을 치는 것이어야 한다. 적을 적 자신 밖에서 공격하고 적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권리를 보유하는 것은 분투하는 것이 아니다.”(논리학 2부, GW12, 15)
그러므로 진정한 비판이 되기 위해서는 적이 진지를 차린 곳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내부에서 무너뜨려야 한다. 이것은 곧 그 체계 자신이 부딪히는 모순을 통해 스스로 부정되는 것이며 즉 그 체계 자신이 유래한 특수한 원리에 대한 부정이다.
즉 어떤 체계에 대한 비판은 ‘특정한 부정성[bestimmte Negation]’에 기초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기 내 반성이 일어나 더 일반적인 체계가 제시되고, 지금까지의 체계는 그 일반적 체계의 한 부분으로 포함된다. 헤겔은 스피노자 체계에 대한 비판도 이런 내적인 부정, 즉 ‘특정한 부정성’을 통해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2)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비판과 관련하여 헤겔은 이미 본질론에서 ‘절대자’ 개념을 논하면서 어떻게 스피노자가 한계를 드러내는지 보여주었다. 거기서 그는 스피노자의 실체는 출발점에서는 ‘자기 원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기를 규정하는 원리로 제시했으나, 곧이어 이런 실체를 모든 규정성에 대한 단순한 부정으로 순수한 자기 동일성으로 규정하는 데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스피노자의 실체 개념이 지닌 자기 원인이라는 개념은 라이프니츠에서 모나드 개념으로 발전했다. 라이프니츠는 자기를 산출하는 표상 개념을 통해 자기 원인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으나, 그로서는 이런 모나드가 개별적이며 따라서 이런 모나드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었으니 결과적으로 라이프니츠는 예정조화설에 빠지고 말았다.
이런 비판을 넘어서 헤겔은 실체는 곧 서로 대립하는 개체의 상호작용하는 관계라는 개념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통해 앞에서 말했듯이 ‘주체’라는 개념을 끌어냈다. 헤겔은 이런 주체라는 개념이 곧 칸트의 순수 통각 개념으로 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칸트의 철학은 선험철학이며 여기서 선험적 통각의 통일은 범주를 통한 통일이다. 이런 통일을 통해 직관을 통해 주어지는 다양이 통일되면서 객체가 출현하게 된다. 여기서 주관 속에 있는 범주와 직관을 통해 주어지는 대상이 통일되면서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의식의 주관적 통일]에 대립하여 표상의 객관적 규정이 지닌 원리는 통각의 선험적 통일이라는 근본 명제로부터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 규정이라고 할 범주를 통해서 주어진 표상의 다양이 규정되니, 이 다양은 의식의 통일로 이끌려진다.”(논리학 2부, GW12, 18)
“이와 같이 대상이 정립되면서 대상은 그 자체로 자기에 대해 존재하거나 객관적인 대상으로 된다. 따라서 대상은 개념 속에서 이런 객관성을 가지며 이 개념은 대상이 수용되는 자기의식의 통일이다. 따라서 대상의 객관성 또는 개념은 그 자체 자기의식의 본성일 뿐이며 주관 자체와 다른 계기나 규정을 가지지 않는다.”(논리학 2부, GW12, 18)
직관의 다양을 통일하는 선험적 통각의 통일은 그러므로 대상을 정립하는 주체의 활동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칸트에서 비로소 ‘개념’으로서 주체가 출현했다고 보며, 헤겔의 철학은 칸트의 이런 선험적 철학의 원리를 받아들이며, 그 자신을 선험주의자라고 자처하기에 이른다.
3)
칸트의 선험적 통각의 통일에 관한 헤겔의 설명은 곧바로 의문에 부딪힌다. 통각의 통일은 결국 주관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칸트가 주장한 것처럼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현상 세계를 산출하기는 하지만, 물 자체를 인식하는 객체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헤겔이 직관의 다양을 선험적 통각이 통일하면서 객체에 이른다고 말한 것은 칸트에 대한 오독이 아닐까?
바로 여기서 칸트와 헤겔의 차이점, 헤겔이 칸트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헤겔은 오히려 칸트가 참다운 철학의 원리 즉 개념과 주체에 이르렀으면서도, 다시 이를 내던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칸트가 선험적 통각의 개념 즉 범주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범주가 직관의 다양을 통일한다는 것을 마치 ① 선험적 통각의 범주가 마치 하나의 좌표계를 이루고 있으면서 경험을 통해 주어지는 직관의 다양을 그 주어지는 모습에 따라(즉 직관의 계기와 동시성 사이의 관계 즉 도식) 이런저런 범주에 할당되는 것처럼 생각했다.
여기서 직관의 다양과 범주가 통일되기는 하지만, 이 통일은 다만 외면적이다. 그것은 마치 음양의 축을 설정해놓고 모든 주어지는 것을 이런 음양의 좌표축에 할당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좌표축과 대상이 결합하기는 하지만, 이 결합은 외면적인 것에 그친다.
사실 무엇이든 이 음양의 좌표축에 따라서 할당할 수 있으니, 이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땅은 모두 붉게 칠하고 하늘은 모두 푸르게 칠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나중에는 밤에 모든 소가 까맣게 보이듯이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색으로 칠해질 수도 있다.
4)
중요한 것은 이렇게 보면, 통각의 선험적 범주는 스스로 내용을 산출하는 것이 아닌 ② 공허한 형식적 개념으로 다시 떨어진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런 생각은 칸트 자신이 범주가 직관의 다양을 통일한다는 원리와 모순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헤겔이 보기에 이런 선험적 통각의 원리에 따르면 범주가 자신의 대상을 스스로 산출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지성은 이런 방식에서는 독자적인 공허한 형식이며 이 형식은 부분적으로는 앞에서와같이 주어진 내용을 통해 실재성을 얻으며 부분적으로는 그런 내용을 추상하여 즉 그 내용을 어떤 것이기는 하지만, 개념에서 보면 다만 쓸모없는 것으로 제거한다.”(논리학 2부, GW12, 20)
결국, 칸트는 직관의 다양이 일정한 좌표축에 할당된다고 보았으며 선험적 범주가 직관을 규정하는 것은 이런 할당에 한정하면서, 헤겔로 볼 때 칸트가 범한 가장 중요한 실책은 ③ 반성 개념을 무시했다는 데 있다.
즉 칸트는 선험적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서 12개의 판단 형식 즉 범주를 제시했다. 이 범주는 지성이 가지고 있는 범주인데, 지성은 판단의 능력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선험적 통각 속에는 또 다른 능력이 있으니 곧 추리의 능력이고, 이것이 바로 이성이다.
이런 이성의 능력에 속한 범주가 곧 반성 개념인데, 칸트는 이런 반성 개념이 선험적 통각의 통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런 반성 개념의 역할을 다만, 순수이성 비판에서 라이프니츠의 반성 개념을 비판하는 부록에 잠깐 언급했을 뿐이다.
“칸트는 다만 감정과 직관만 지성 앞에 둔다. 우선 그는 이미 그 자신의 이런 계단화가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그 단서는 곧 그가 반성 개념에 관한 하나의 논문을 선험 논리학이나 지성론의 부록으로서 덧붙인다는 데 있다.이 반성 개념의 영역은 직관과 지성 사이에 그리고 존재와 개념 사이에 놓여 있는 영역[즉 본질론의 영역]이다.”(논리학 2부, GW12, 19)
직관의 다양이 범주에 할당된다는 칸트의 입장은 결국 ④ 범주 전체를 대상에 대해 외면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범주 전체는 그 어느 것이든 그 너머에 물 자체가 존재하게 되며, 이런 물 자체에 이 범주를 적용할 수는 없다. 만일 물 자체에 이런 범주를 적용하는 순간 여기서 이율배반이 나오게 된다.
“칸트는 이성의 범주에 대한 태도는 다만 변증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사실 이 변증법의 결과를 다만 전적으로 무한한 무인 것으로서 파악하니, 이를 통해 이성의 무한한 통일은 또한 여전히 종합을 잃어버리고 이로써 출발점이었던 사변적이고 진정한 무한한 개념을 잃어 버린다.”(논리학 2부, GW12, 21)
5)
결론적으로 칸트는 출발점에서는 범주가 대상을 구성한다고 했으나 곧 이를 단순히 범주가 대상에 할당되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자기의 출발점을 부정하고 말았다.
“두 번째로, [한 측면에서] 개념은 인식에서[선험적 인식] 객관적인 것으로서 제시되었으며 따라서 진리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개념과 같은 것은 어떤 주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실재성은 주관에 대립하는 객관성이라는 뜻으로 이해되면서 그와 같은 주관적인 것으로부터 실재성을 끌어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논리학 2부, GW12, 19)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2-상호작용과 개념[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2-상호작용과 개념
1)
헤겔은 개념론에 들어가기 전에 ‘개념 일반에 관해’라는 글을 붙인다. 아마 개념론의 서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서문은 약 19쪽에 달하니 1부 객관 논리학 앞에 붙인 부분(‘Vorrede’ 4쪽, ‘Einleitung’ 15쪽, ‘Anfang der Logik’ 8쪽)에 못지않게 길다. 여기서 헤겔이 다루는 핵심적인 주제는 곧 논리학과 관련하여 칸트 선험철학의 의미와 그 한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논의의 출발점은 논리학(헤겔적인 의미에서 주관 논리학을 의미한다)의 출발점인 ‘개념’(개념에 관한 헤겔의 독특한 의미를 표시하기 위해 앞으로 헤겔적인 개념에 관해서는 ‘개념’를 사용하고자 한다)의 출현이다. 다른 학문의 경우 그 출발점, 원리는 단순히 전제되며, 이 전제는 이웃하는 학문에서 빌어오거나 더 높은 차원의 학문에 의존한다. 그러나 논리학은 자기의 원리를 다른 어디에서도 끌어올 수 없고 오직 자기 자신에서 끌어내야 하니, 논리학은 자기 자신을 근거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논리학의 원리는 마치 유클리트 기하학에서 공리처럼 전적으로 직접 주어지는 것으로 전제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헤겔은 오히려 논리학의 원리는 모든 존재자 속에 자기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이 구체적 존재를 규정하고 정립하니, 논리학의 근거는 거꾸로 모든 존재자로부터 가장 일반적으로 끌어낸 것이라고 한다. 이 도출의 과정이 논리학의 근거가 생성하는 과정이며, 즉 근거로 복귀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자기를 정립하는 운동, 즉 추상에서 구체로 나가는 운동과 근거로 복귀하는 운동, 즉 개별적 존재에서 일반적 원리로 나가는 운동은 서로 대립적이면서 서로 순환한다. 이 순환은 이미 정신현상학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직접적인 것은 매개된 것으로 전환하며 거꾸로 매개된 것은 직접적인 것으로 전환한다.
“개념의 생성은 이런 직접적인 생성의 운동을 통해 서술된다. 그러나 개념의 생성이 지닌 의미는 모름지기 생성이 항상 그렇듯이 이행하는 것이 자기의 근거로 반성한다는 것이며 우선 앞선 것이 이행해 들어간 나중의 것이 처음에는 타자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 처음의 것이 지닌 진리를 이룬다는 것이다.”(논리학 2부, GW12, 11-12)
“추상적으로 직접적인 것은 사실 최초의 것이다. 그러나 이 직접적인 것은 추상적인 것인 한에서 오히려 매개된 것이며 그러므로 이 직접적인 것이 진정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면, 그 토대는 이 매개된 것에서 비로소 찾을 수 있다.”(논리학 2부, GW12, 11)
이런 관점에서 주관 논리학의 원리는 앞에서 객관 논리학에 존재에서 본질로, 본질에서 다시 절대적 관계로, 여기서 실체관계, 인과 관계, 상호작용을 거쳐 생성된다고 한다. 헤겔은 이 과정을 다시 한번 간략하게 서술한다.
2)
헤겔을 따라 이 과정을 간략하게 서술하자면, 이렇다. 즉 실체관계는 서로 무차별한 우발적 존재의 관계였다면, 인과 관계는 개체가 각자 자립적인 동시에 타자와 관계한다. 그 결과 인과 관계의 연쇄가 출현하고 마침내 상호 인과 관계 즉 상호작용이 출현한다.
이런 상호작용에서 원인(능동적 실체)과 결과(수동적 실체)는 상호 교체된다. 원인의 작용에 의해 결과는 자신의 전제된 직접성을 벗어나 정립된 존재가 되면서 원인이 된다. 이 결과를 원인으로 해서 원인도 전제된 직접성을 벗어나 정립된 존재 즉 원인이 된다.
“능동적 실체는 작용을 통해 즉 자기가 자기를 자기 자신의 반대물로 정립하는 가운데 즉 그와 동시에 이런 전제된 타자 존재 즉 수동적 실체를 지양하는 것을 통해서 원인이나 근원적 실체로서 자기를 계시한다. 거꾸로 이렇게 작용이 가해짐으로써 정립된 것은 정립된 것으로, 부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으로 되며 따라서 수동적 실체는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으로 계시되고 원인은 자기 자신의 타자 속에서 전적으로 다만 자기와 합일할 뿐이다.”(논리학 2부, GW12, 13)
이 두 가지 상호적 인과는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니, 이 관계를 상호작용이라 한다. 이 과정에서 원인은 역시 자기를 결과 속에 정립하면서 자기 동일적인 것으로 되니, ‘자기 관계하는 존재자’(일반성)가 된다. 반면 결과는 근원적인 원인에 대립하는 것이니 이미 부정적인 존재인데, 원인에 의해 부정되면서 자기 부정적인 것 즉 가상으로 되니,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개별성)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측면 즉 타자가 자기에 동일하게 관계하는 것이거나 부정적으로 관계하는 것은 각자 자기 자신의 반대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즉 동일성의 관계와 부정성의 관계는 동일한 것이다. 실체는 이제 자기의 대립물 속에서 자기 자신과 동일하며 이것이 두 가지로 정립된 실체의 절대적 동일성을 이룬다.”(논리학 2부, GW12, 13)
이런 상호작용을 매개로 해서 가능성으로서 절대자가 실제성으로 실체가 되며, 이런 매개는 자기를 근거로 하는 것이기에 항상적으로 일어나니 절대자의 실현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처럼 필연적으로 실현된 절대자가 곧 실체다.
이렇게 절대자가 실현된 실체는 필연적 실현인 한에서 무조건적인 것이니 곧 자동적인 것[automatische]으로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것인 동시에 절대적으로 우연한 것이다. 이런 실체가 곧 ‘개념’으로 규정된다. 이 ‘개념’이 곧 앞으로 전개될 개념론의 출발점 곧 원리가 된다.
3)
앞에서 말했듯이 개념은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매개로 한다. 이 관계를 목적론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면, 양자의 통일성으로서 가정된 절대자가 양자로 분화되며, 이런 분화가 다시 통일되어서 양자의 통일적인 관계 즉 ‘실체’가 출현한다.
이런 통일성으로 가정된 절대자 즉 목적으로서 절대자가 곧 개념이니, 개념은 이미 이런 관계 속에 그리고 이 관계를 통해 전개되는 운동 속에 있는 것으로 가정되고 있다. 여기서 목적으로서 개념은 서로 대립하는 개체로 분화되고(개념이 부정된 것, 정립된 것) 이 분화된 개체의 상호 관계를 통해(부정된 것의 부정, 정립된 것의 정립됨) 실현되니 이는 과정은 하나의 이중 부정 운동으로 서술할 수 있다.
우선 출발점에 있는 개념은 장차 분화될 가능성을 지니지만, 아직은 단순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이루어지는 개념의 실현은 이중적인 부정성(부정의 부정)을 통해 회복되는 자기 관계(일반자)이다. 거꾸로 매개가 되는 개체는 개념이 부정된 것이지만, 타자와 관계하면서 다시 이것이 부정되는 것이니, 자기 부정성 또는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개별자)이다.
그러므로 일반자나 개별자는 각자 속에 이미 타자가 들어 있다. 즉 일반자의 자기 관계 속에는 자기 부정성으로서 개별자가 들어 있으며, 개별자의 자기 부정성 속에는 이미 일반자의 자기 관계가 들어 있다
“개념 규정성의 각각은 총체적인 것이며, 각자는 타자의 규정을 자기 내에 포함하며 그러므로 이 총체적인 것은 전적으로 다만 하나이지만, 동시에 이와 같은 통일성은 자기 자신을 이러한 이원적인 것이라는 자유로운 가상으로 분화한다. 이런 이원화는 개별자와 일반자로 구별되는 가운데 완전한 대립으로 나타나지만, 이 대립은 그에 못지않게 가상이기에 하나가 파악되고 언표되면 그런 가운데 다른 것도 직접 파악되고 언표된다.”(논리학 2부, GW12, 16)
4)
헤겔에서 이 ‘개념’으로 지칭되는 것은 아주 특정한 것이니 그 출발점은 실체이다. 즉 생명체의 집단(암수 결합체)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개념의 단초, 출발점에 지나지 않으며 본래 개념은 주관이 출현하면서 나타난다.
여기서 헤겔은 주관을 흔히 영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단순히 자기 동일성에 머무르는 것, 데카르트적 에고로 파악하지 않는다. 이 주관은 순수한 자기의식 즉 칸트가 말한 통각에 해당하는 것이니, 이 자기의식은 처음에 순수하게 자기 관계하는 것이며, 이것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자기를 의식과 대상으로 분화하여 대립하는 가운데 다시 양자를 통일하여 자기 관계하는 통일에 이른다. 이런 전개 방식은 개념의 전개와 동일한 방식으로 전개되니, 이 주관이야말로 개념의 구체적인 예가 된다.
“개념은 그 자체 자유로운 현존에 이른 한에서는 주관이나 순수 자기의식과 다른 것이 아니다. 주관은 사실 개념이며 즉 특정한 개념이다. 그러나 주관은 순수한 개념 자체이며 개념으로서 현존하기에 이른 것이다.”(논리학 2부, GW12, 17)
앞에서 개념의 단초인 실체 즉 암수 관계에서는 아직 상호작용은 불완전하다. 암수 관계에서 개념적 실체는 아직 자동적인 우연성에 머무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암수 관계는 각자 개별적인 생명체이면서 성적 관계에서만 상호작용이 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실체는 아직 개체에 내면적으로 머무르는 잠재적인 개념이다.
반면, 주관에 이르게 되면, 개체의 사회적 상호작용적 관계가 출현하며 상호작용은 전면적으로 일어나며 그 관계는 완전히 자유로운 것으로 등장한다. 이런 상호작용으로 성립하는 실체는 개체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 즉 사회가 된다. 이런 주관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개념이며 동시에 실현된 개념이다.
“주관은 순수한 자기 관계하는 통일성이며 이것은 직접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며 오히려 주관이 모든 규정과 내용을 제거한 채 한계 없는 자기 동일성의 자유 속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관은 일반성이며 통일이어서 다만 추상작용으로 나타나는 그와 같은 부정적 태도를 통해 자기와 통일을 이루고 이를 통해 모든 규정된 것을 자기 내에 해소한 채로 포함하는 것이다”(논리학 2부, GW12, 17)
5)
이와 같은 ‘개념’은 논리적인 범주 가운데 하나이다. 12개 판단 형식은 각기 독자적인 논리적 범주를 이루는데, 헤겔에서 ‘개념’은 이런 논리적 범주가 마침내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과로 등장하는 것이다. 즉 ‘실체’ 범주에서 단초적으로 ‘개념’이 출현하며 본래적인 ‘개념’은 비로소 ‘주체’에 이르러 완성된다.
지금까지 논의한 ‘개념’은 이런 최종적 논리적 범주로서 ‘개념’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은 헤겔의 ‘개념’이 그 앞에서 다룬 논리적 범주 ‘질’이나 ‘양’ ‘본질’ 등과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논의이다. 즉 ‘개념’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논의다.
그런데 논리적 범주 중의 하나로서 ‘개념’은 헤겔의 다른 논리적 범주와 마찬가지로 형식적인 측면에서 공통 규정을 지닌다. 헤겔에서 모든 논리적 범주 즉 판단 형식은 형식상 내용을 자기로부터 규정한다.
그 때문에 헤겔은 앞에서 제기한 ‘개념’에 관한 논의에서 이제 방향을 돌려, 판단 형식으로서 논리적 범주가 지닌 근본적인 특징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다. 이것을 통해 그는 그 자신의 주관 논리학이 기존의 형식적 논리학과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보여주려 한다.
그를 따라 우리도 이제 논리적 범주의 형식적 의미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헤겔이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 곧 칸트이므로 칸트의 기여와 한계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이 지금 다루는 개념에 관한 일반론의 핵심 주제이다.
기존 논리학에서는 논리적 범주와 일반적 개념 사이의 구별에 주목하지 않는다. 소의 개념이나 꽃의 개념은 추상적인 일반성을 의미한다. 이 추상적 일반성이 구체적 내용과 무관하고 외면적인 형식이듯이, 마찬가지로 논리적 형식 즉 판단 형식이란 구체적인 다양한 판단 내용과 무관하다.
기존 논리학에서는 판단의 형식 즉 논리적 범주는 질과 양, 긍정과 부정을 교차한 네 가지 판단 형식밖에 없다. 판단 형식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공허한 형식(긍정과 부정, 개별과 일반이며, 판단에 대해 외면적으로 관계한다. 여기서 부정이니 양화니 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논리적 추론 형식즉 대당관계라는 직접적 추론 형식이다.
그러나 칸트는 이런 판단 형식 즉 논리적 범주를 확장해서 12개의 판단 형식이나 범주를 제시한다.
칸트가 이렇게 판단 형식을 확장한 것은 단순히 종류를 확장한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칸트는 이른바 선험철학의 원리를 통해 이런 판단 형식이 지닌 의미 자체를 형식 논리학과 근본적으로 구별해 새롭게 부여했다.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객관 논리학에서 주관 논리학으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객관 논리학에서 주관 논리학으로
1)
헤겔 논리학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헤겔 논리학 1부(존재론, 본질론)는 1813년 부활절 직전 발간되었다. 논리학 2부(개념론)이 발간된 것은 1816년 10월 초였다. 2부가 발간되는데 무려 3년 이상 지체된 것이다.
그는 개념론 앞에 ‘일러두기[Vorbericht]’(1816년 7월 21일 작성)에서 지연된 책임이 “그가 맡은 직책이나 다른 개인적 사정으로 산만하게 일할 수밖에 없었다”(논리학 2부, GW12, 6)는 데 있다고 한다. 이 시기 그는 뉴른베르크에서 김나지움 교장을 하고 있었으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의 번잡함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책임이라면 1부 논리학 작성 시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차라리 그가 이 일러두기에서 개념론을 작성하는데 1부를 작성하는 데서 부딪힌 것과는 다른 어려움을 호소했는데, 그런 어려움이 그의 길을 더디게 했던 것이 아닐까?
헤겔의 논리학 1부는 여기에 논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논리학 2부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확립된 논리학의 주요 내용(판단론, 추리론)이 들어 있으니, 논리학이라 불러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그는 1부를 쓸 때는 “발판이 되거나 재료를 주고 전개할 길잡이를 보장할 만한”(논리학 2부, GW12, 5) 이전 철학자들의 노력을 발견할 수 없어서 그야말로 황무지에 아무런 설비도 없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어려움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러나 아예 아무것도 없는데 새로운 것을 짓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제 2부 개념론에 이르면, 이전 논리학의 “완전히 완성되고 심지어 석화된 재료가” 마치 장애물처럼 깔려 길을 막고 있어서 게다가 저마다 이전 시대에는 진리라는 영예를 부여받은 것이니 “이를 유동화해서 그와 같은 죽은 소재에 생동적인 개념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고 한다.(논리학 2부, GW12, 5)
2)
헤겔이 부딪힌 어려움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큰 문제는 아니지만, 어떻든 논리학 3부 개념론은 한 사년 뒤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에게 떠오르는 진짜 문제는 이런 논리학이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내용을 담은 부분 다음에 배치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몇 가지 단서를 좇아가 보면, 어느 정도 그 이유가 짐작은 된다. 헤겔은 밤베르크 시절 니트함머로부터 학생들을 위한 논리학 교과서를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이게 그가 논리학을 작성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이다. 이에 대해 답장하면서(1808년 5월 20일) 자기의 철학적 견해가 완성되지 않아서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
이 답장에서 그는 기존 논리학에 관해서 강한 불만을 드러내면서 “그것은 그런 방식으로 지속할 수 없는 것”(논리학 2부, GW12, 323)이라고 평가하며 기존 논리학의 내용이라면 “두 장[오늘날의 A4용지가 아니라 당시 작성의 기준이 된 전지를 의미할 것이다]이면 충분히 서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상의 내용이라면 “심리적으로 느끼는 가련함을 통해서 확장되는 것”(논리학 2부, GW12, 324)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미 그는 1801/2 예나 시대에서부터 기존 논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개편하려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1807년 발간된 그의 예나 시대 체계화 기획 2권을 보면, 이런 시도가 눈에 띈다. 이미 여기서 그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연결시켜 사유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1. 논리학, 2. 형이상학, 3. 자연철학을 다루는데, 그 가운데 논리학은 1) 단순 관계(질, 양, 무한성)와 2) [절대적] 관계로 나누어지며, 그중 [절대적] 관계는 다시 ① 존재[실체] 관계와 ② 사유 관계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존재 관계는 논리학[GW11] 1부 객관 논리학 본질론 마지막 ‘절대적 관계’와 일치하며, 사유 관계가 앞으로 다룰 2부 주관 논리학 개념론 1편의 판단, 추리론과 일치한다.
형이상학은 사유 법칙(동일율이나 배중율, 모순율)과 전체로서 세계나 영혼을 다루고 있다. 헤겔은 사유 법칙은 논리학 1부 객관 논리학 본질론 1편에서 다루고 전체로서 세계나 영혼은 2부 주관 논리학 개념론 2편에서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다룬다.
이상의 편제를 보면, 대 논리학에서 객관 논리학과 주관 논리학에 속하는 부분이 예나 시대에서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에 걸쳐 흩어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이를 통해 한편으로 이미 헤겔이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연결해서 사유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아직 나중에 형이상학에 가까운 객관 논리학과 기존 논리학에 가까운 주관 논리학이라는 구별이 확립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자기의 철학에 기초한 새로운 논리학을 발간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는 이미 니트함머의 권고를 받은 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시도의 정체는 1813년 논리학 1부가 발간된 이후 등장한 출판사 광고문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 광고문에 따르자면, 새로운 논리학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예리함을 끝까지 함께 하며”
② “이를 자기의식으로 성장한 시대 정신에 적합한 형태로 고양하고”
③ “진정하게 해명된 형이상학을 통해 일찍이 너무 성급하게 추방된 신비를 철학에 다시 부여하고”
④ “철학에 본래적인 원리와 고유한 방법을 확신하게 하며”
⑤ “이성에 그 오래된 영원한 권리인 진리에 대한 자립적인 생산자라는 지위를 새로이 바치는 것”(논리학 2부, GW12, 327)
펠릭스마이너 판 논리학(GW12)의 편집자에 따르자면, 이 광고문의 작성자가 누군지는 전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위의 구절을 보면 헤겔 논리학에 대한 철저한 이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헤겔 논리학을 나오자 말자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헤겔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지 않을까 한다. 아니 필자의 생각으로는, 오늘날까지도 정말 이렇게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위의 광고문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광고문의 구절은 헤겔 논리학의 핵심을 짚어내고 있는데, 한 가지가 눈에 뜨인다. 즉 자기의식 시대에 적합한 형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기의식 시대란 다름 아닌 칸트가 제시한 선험철학의 원리를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후진적 독일에 살았던 헤겔로서는 그 시대 원리인 선험철학의 원리가 하나의 시대 정신으로 논리학을 비롯하여 모든 영역으로 확산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혁명이 달성된다고 보았을 것이다. 정신현상학에서 그는 이 시대를 ‘탄생과 이행의 시대’로 규정한 바 있다.
4)
칸트의 원리에 따르면 사유 범주는 직관의 다양을 구성하여 객관적으로 통일한다. 사유 범주는 곧 존재의 본질을 의미하니 그것이 곧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유 범주를 다루는 논리학은 곧 존재의 신비를 드러내는 형이상학이 된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도 읽어보면 판단과 주어, 술어 등의 구조가 밑바닥에 깔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서 ‘실체’란 문장의 주어가 될 수 있는 것이며, ‘양상’이란 곧 술어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이미 나중에 칸트에서 드러나는 “논리학이 곧 형이상학”이라는 주장의 단초가 발견된다고 하겠다.
헤겔은 그런 점에서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리함’이라고 보고 위의 광고문에서 보듯이 이를 계승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논리학이 형식화하면서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예리함을 놓치고 있다고 보는 비판적 의식이 담겨 있다.
논리학이 형식화함으로써 논리학은 순수한 필연성의 체계가 되었지만, 대신 공허한 형식적 동어반복에 그치며 그것은 구체적 내용을 상실한 채, 흔히 사유의 법칙이라고 하지만, 진리의 인식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마치 공허한 사유의 논리처럼 보이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논리학이 다시 진리의 생산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리함을 살리는 것이라고 한다. 즉 논리적 구조 속에서 존재의 본질적인 구조를 엿보는 것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그의 시대 철학이 수학에서 방법론을 빌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는 거기서 수는 양적인 것이므로, 양적인 것에서나 적용되지 더 복잡하고 구체적인 생명이나 정신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비판하면서 철학은 고유한 방법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철학의 고유한 방법론은 무엇인가, 앞에서 헤겔이 호소한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를 생각해 볼 때, 그의 형이상학의 방법론은 바로 논리학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논리학이 궁극적으로 판단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헤겔의 방법론은 곧 판단 즉 문장의 구조로부터 끌어낸 것이니, 어쩌면 헤겔이야말로 언어 철학의 시조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5)
논리학이 형이상학 즉 존재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굳이 객관 논리학과 주관 논리학이라고 구분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의 논리학이 전개되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헤겔에서 논리학은 추상적 존재가 구체화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나가는 생성 또는 근거로의 복귀 과정이다.
논리학에서 처음 출발점인 현존은 가장 개별적인 것이고 가장 직접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내적인 근거가 되는 논리적 범주가 아직 등장하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존재론이며 이 현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 배후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파악하는 형이상학이 필요하다.
그런데 1부 객관 논리학의 마지막에 일반적인 실체가 상호작용을 거쳐 주관적인 개념이 되면서 이제 논리적 범주가 우리 눈앞에 직접 등장한다. 그 결과 여기서부터는 순수한 논리학적 내용이 다루어지게 된다. 그 때문에 객관 논리학 대신 주관 논리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생각해 보면 ‘객관 논리학’에서 강조점은 논리학보다는 ‘객관’ 즉 존재론에 있으며, ‘주관 논리학’에서는 강조점이 곧 ‘논리학 자체’에 주어진다.
이상을 통해 헤겔이 객관 논리학과 주관 논리학으로 구분하고, 주관 논리학에 와서야 비로소 기존의 논리학에서 다룬 내용을 즉 판단과 추론을 다루게 된 이유가 드러난다고 하겠다.
<이기주의>, 빅토르 세르주(1913년 1월), 옮긴이 박종성
이기주의Egoism
빅토르 세르주Victor Serge , 1913년 1월, 옮긴이 박종성
이기주의는 모든 동물적 사고방식의 기초를 이룬다. 필수적인 것이기에, 그것은 정당하다. “정당하다니” — 아주 그럴듯한 표현이다. 사실, 우리의 언어는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기주의가 원초적이고 부인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의 선과 악을 초월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이기주의를 여러 형태로 어렴풋이 보게 되는데, 이는 두 가지 본질적인 형태로 축소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는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사이의 갈등, 즉 약자의 이기주의와 강자의 이타주의 사이의 갈등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약한 사람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편협하다. 약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힘이 부족한 존재다. 가난한 사람이 베풀 수 있을까? 자신에게 관대하고, 돈을 아낌없이 쓰고, 낭비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을까? 아니다. 그는 자신의 돈 한 푼까지도 허투루 쓰지 않으며, 자신의 적은 재산을 늘릴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빈틈없이 살핀다. 그는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면으로 침잠하며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고 있으며—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정당하지만—이타주의와는 정반대에 있다.

* 빅토르 세르주(Victor Serge, 1890~1947)는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에서 출발해 볼셰비키 혁명가로 활동하다가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반스탈린주의 좌파 지식인이자 작가다. 청년 시절 프랑스 파리 등지에서 활동하며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 등의 영향을 받은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흐름에 깊이 몰입했다.
이타주의자란? 자신을 내어주고, 애를 쓰며, 자신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 바로 그이며, 이는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타주의는 강자의 이기주의가 논리적으로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 선함, 관대함, 헌신, 자기희생은 힘과 건강의 특징이다. 그것은 더 높은 차원의 기쁨을 주는 이기주의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감정들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의 생명력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력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높은(superior)”이라는 말에는 도덕적 가치가 담겨 있지 않다. 이 말은 삶과의 관계에서 우월하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강한 자가 강한 것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우리는 그것이 자기 의지(own will)로 자신을 강하게 만든 개인의 문제일 때만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엄격한 결정론자는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와 그의 궤변은 그곳에 내버려두자.
의지와 마찬가지로 이기주의 역시 유전, 교육, 그리고 특정 질환에 의해 변형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례적인 인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이 요인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 부류는 강인하면서도 저속하게 이기적인 개인이고, 우리가 감탄하게 되는 또 다른 부류는 자신의 신념으로 강해져 –영웅적으로 이타적인 사람이 되는 약한 개인이다.
Tweet[신간 소개] 박종성, <막스 슈티르너, 유일자와 그의 소유>, 커뮤니케이션북스, 2026
[신간 소개] 박종성, <막스 슈티르너, 유일자와 그의 소유>, 커뮤니케이션북스, 2026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어떻게 우리의 삶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외부의 힘에 종속되지 않고 나 자신을 창조하며 소유할 수 있을까? 막스 슈티르너는 개성을 짓밟는 교리와 신념, 개인을 둘러싼 뿌리 깊은 고정 관념에 타협하지 않는 자기중심주의로 맞선다.
대의의 근거를 ‘창조가 깃든 무’에 두고 나에게 이질적인 모든 신성한 것을 파괴하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자기사랑과 자기해방의 철학은 우리에게 유일자가 되는 방법, 즉 정신과 정신세계의 창조주이자 소유자로 우뚝 설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 책은 슈티르너의 주저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중심으로 슈티르너 사상을 열 가지 키워드로 살핀다. 자기중심성이 어떻게 종교·철학·도덕 배후의 공허함을 폭로하고 서로가 서로를 향유하고 이용하는 ‘유일한 개인들의 연합’으로 나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슈티르너가 어떻게 니체에 앞서 허무주의로의 전환을 포착하고 ‘창조가 깃든 무’를 반본질주의적인 자아 개념으로 세웠는지 확인할 수 있다.
슈티르너를 둘러싼 평가는 다채롭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슈티르너 철학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이는 슈티르너가 마르크스와 헤겔 좌파들에게 미친 막대한 영향을 방증한다. 이후에도 슈티르너는 시대에 따라 니체의 선구자, 실존주의의 선구자, 초기 포스트구조주의자, 개인주의 아나키즘의 시조로 재평가받았다. 그만큼 슈티르너의 사유는 지속력과 여러 세대에 유효한 가치를 지닌다. 이제 그 사유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 1806∼1856)는 1806년 바이에른주 바이로이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807년 4월 19일, 37세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어머니는 약사와 재혼했고, 서프로이센의 쿨름에 정착했다. 20세가 되었을 때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문헌학, 신학, 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자신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헤겔의 강의에 출석했다. 1841년 베를린에 머무르는 동안 자유인 모임에 참여했다. 주저로 ‘유일자와 그의 소유’가 있으며, 이 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 ‘슈티르너 비평가들’을 써서 반박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애덤 스미스와 장바티스트 세의 글을 번역했다. 1852년에 ‘반동의 역사’를 썼고, 1856년 벌레에 물린 뒤 열병을 앓다가 그해 6월 25일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브루노 바우어와 루트비히 불만이 참석했다.
지은이 박종성은 건국대학교에서 ‘슈티르너의 유일자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2014)’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으로는 “슈티르너의 ‘자유주의’ 국가 비판의 현대적 의미”(2011), “슈티르너의 ‘변신’ 비판의 의미”(2020, 제8회 소송학술상 수상), “유일한 사람의 사랑”(2021), “식민지 조선에서 슈티르너 철학의 변용과 그 의미 및 한계: 염상섭의 「지상선을 위하여」를 중심으로”(2022), “철학자를 조롱하는 철학자”(2023) 등이 있다. 현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이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사이고, 한신대학교, 건국대학교 강의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글은 <매일일보>에 게재된 신간 소개를 재인용한 것입니다.
https://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14013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