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4-반성[양] 판단 형식에 관해[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4-반성[양] 판단 형식에 관해
1)
현존(질) 판단 형식의 끝에 부정적 무한 판단 형식이 긍정적 무한 판단 형식으로 이행한다. 이 긍정적 무한 판단 형식이 곧 반성 판단 형식 또는 양의 판단 형식의 첫 번째 형식인 단칭 판단 형식이다.
반성 판단 형식에서 주어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그것은 손으로 지시되는 어떤 개별적인 것이며, 술어 규정성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것이다. 술어는 추상적인 일반성에서 자기 관계하는 일반성 즉 개별성(단순성)으로 이행했다.
이 개별성이란 곧 주어에 내재하는 필연적 속성을 의미한다. 이 속성은 내포에서는 단순하며 개별적이지만, 외연에서는 하나의 개별자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별자 일반 즉 유에 속하는 일반성이다. 흔히 이를 추상적 공통성이라고 한다.
헤겔은 이를 “구별된 것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로 된 것으로서 결합한 일반자” 또는 “다양한 성질이나 실존의 상호 결합[Sich-Zusammennehmen]”으로 규정한다. 더 간단히 “결합한 일반성”, “반성된 그 자체 존재”이다. 예를 들자면, “이 사람은 죽는다”라든가 “이 물체는 경도가 강하거나 탄성이 크다”(논리학 2부, GW12, 71-72)와 같은 명제이다.
이런 일반성은 아직 사물에 고유한 본성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이른바 지각적 일반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반성(내적 일반성) 아래에는 여전히 직접성(추상적 일반성, 질)이 전제되어 있다.
“사실 이런 일반성은 더는 질적 판단에 속하는 추상적 일반성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 일반성이 유래한 직접적인 것에 대해 관계하여 그런 직접성을 부정하기 위해 자기 밑바닥에 놓는다. 개념은 현존을 규정하여 관계 규정으로 즉 다양한 실존 속으로 그 규정 자체가 펼쳐지는 것[공통성]으로 된다. 그 결과 사실 진정으로 일반적인 것은 내적인 본질이기는 하지만, 아직 그 본질은 현상 속에 있으며 그것이 지닌 상대적인 성격이나 그것이 징표에 그친다는 사실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그 자체로 자기에게 나타나는 일반성은 아니다.”(논리학 2부, GW12, 71)
2)
현존 판단 형식에서 운동은 술어 편에서 일어났으며 외적인 일반성이 내적인 일반성으로 발전했으니, 이는 곧 내재[화]의 운동이다. 이제 반성 판단 형식에서 운동은 반대로 술어의 개념 규정성은 고정되어 있고 주어에서 개념 규정성이 변화하게 된다.
반성 판단 형식의 처음에 등장한 것이 단칭 판단 형식인데, 여기서 주어는 개별자이지만, 술어는 여러 사물에 속하는 공통성, ‘그 자체 존재’이기에 주어인 개별자는 외연적으로는 술어인 ‘그 자체 존재’ 아래서 하나의 ‘실존하는 것이며 현상하는 것’ 즉 ‘우연적 존재’이다.
현존 판단 형식에서 술어는 외연적으로는 일반적이지만, 내포적으로는 개별적이어서, 그것은 ‘어떤 일반성’ 즉 속성이며 개념 규정상으로는 특수성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반성 판단 형식에서 주어는 외연적으로 개별적이지만, 내포적으로는 여러 속성의 결합인 일반성이니, 이런 점에서 마찬가지로 특수성이다. 그것은 ‘임의의 어떤 개별자’ 즉 여럿[Eininge]이다.
그 때문에 반성 판단 형식에서 운동이 시작된다. 여기서 “술어가 밑바닥에 놓여 있는 것이며, 주어는 이 밑바닥에 놓인 것[술어]에 대해 측정되어야 하며, 그것에 상응하게 규정되어야 한다.”(논리학 2부, GW12, 72) 이 운동은 이제 주어의 편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며 이 운동을 통해 주어는 개별자를 넘어서 특수성을 거쳐 일반적인 유로 발전한다. 주어가 일반적 유로 발전하는 것은 곧 외연에서 개별자가 일반적 유에 포섭되는 운동이다.
이렇게 주어가 일반적 유에 이르게 되면, 보편 판단 형식이 성립하게 된다. 단칭 판단 형식에서 주어인 개별자는 사실 내포적으로는 이미 일반자인데, 이 일반자가 곧 여러 대립하는 속성의 상호 통일이며, 자기를 통해 개별자를 산출하는 본질을 의미한다.
이 본질이 보편 판단 형식에서 자립적으로 출현하면서 주어인 일반적 유가 된다. 이 일반적 유는 “현상의 다양성을 거쳐나가면서도 자기를 유지하는 본질 규정”(논리학 2부, GW12, 72)이며, 거꾸로 개별자는 이 유가 실현된 것일 뿐이다.
반성 판단 형식의 끝에 주어가 일반적 유로 규정되면서 주어와 술어의 균열이 다시 출현한다. 술어는 여전히 내적 필연성이니, 아직 주어의 일반적 유에 해당하는 본질적인 것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 때문에 또다시 새로운 판단 형식 운동이 생겨난다. 그것이 필연적 범주에서의 운동이다.
3)
반성 판단 형식에서 이런 운동은 객관 논리학에서 양의 범주가 발전하는 것과 상응한다. 양의 범주는 정량에서 양의 관계인 척도로, 그리고 다시 척도가 서로 관계하는 척도 관계로 발전한다. 이런 발전 끝에 마침내 본질이 출현한다.
양의 범주의 이런 발전을 반성 판단 형식의 발전에 비추어 보면, 처음 정량은 단칭 판단 형식에 해당한다. 정량이란 일반자인 양적인 것이 실현된 개별적인 것이다. 그것은 크기를 지닌 개별자거나, 무게를 지닌 개별자일 뿐이다.
정량의 관계로서 척도는 양적인 것에서 처음 질적인 것을 출현하게 한다. 이 질은 이 양적인 것을 특정하게 만드는 것이니, 이런 특정한 것들이 특칭 판단 형식의 주어를 이룬다. 마침내 척도 관계에 이르면, 이 척도 관계는 개별자를 재생산하는 본질이다. 그러므로 척도 관계는 일반적 유를 이루며 보편 판단 형식의 주어가 된다.
반성 범주에서 주어가 개별성에서 특칭으로 그리고 보편으로 발전하는 것은 단순히 주어의 외연에서 양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자연에서 양적인 것이 질적인 발전이 일어나는 것에 상응한다.
모든 양적인 것이 이렇게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양적인 것 가운데 일부만이 즉 척도만이 특칭 판단 형식에 이르며, 그 가운데서도 다시 척도 관계 또는 유기체적 관계를 지닌 것만이 보편 판단 형식에 이른다.
4)
반성 판단 형식의 운동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 단칭 판단 형식이다. 이 단칭 판단 형식의 형식은 “개별자는 일반자이다”(논리학 2부, GW12, 72)인데, 긍정 판단 형식의 형식과 유사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긍정 판단 형식의 형식에서 술어는 추상적 일반성이지만, 단칭 판단 형식에서 술어는 반성된 일반성, 즉 내재하는 필연적 속성을 의미한다.
이런 단칭 판단 형식에서 주어는 이미 반성된 일반성에 속하는 개별자이므로, 주어는 단순한 지시어로 지칭되지 않으며 지시되는 동시에 그것의 일반성 유가 표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단칭 판단 형식의 주어는 예를 들어 어떤 고유한 이름인 ‘카이유스’가 아니라 ‘카이유스와 같은 것’ 즉 ‘이 사람’이어야 한다.
단칭 판단 형식에서 지시사가 일반적 유를 가리킨다는 것은 단순히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만이 아니라, 단칭 판단 형식의 형식 자체에 의해서 즉 술어가 구체적 일반성이니까 주어는 그런 일반성의 예가 되므로 그런 내용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단칭 판단 형식에서 아직 개별자가 속하는 일반적 유가 직접,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일반적 유는 다만 간접적으로만 또는 모호하게만 자기를 드러낼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사람]은 가사적이라’고 할 때 ‘이것’에는 이미 ‘사람’이라는 일반적 유가 들어 있지만, 이는 암시될 뿐이다.
“따라서 몇몇에는 더 일반화하는 내용이 부가되니, 말하자면 인간이나 동물 등이다. 이것은 경험적인 내용일 뿐만 아니라 판단의 형식상 규정된 내용이다. 이 내용은 즉 일반적인 것이니, 왜냐하면 몇몇이라는 것은 일반성을 포함하고 동시에 반성된 개별성 밑바닥에 놓여 있으니 이 일반성은 개별자로부터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좀 더 상세하게 보자면, 반성된 개별성은 또한 일반적 본성이거나 인간이나 동물의 유이므로 이런 일반성은 반성 판단의 결과를 예고한다.”(논리학 2부, GW12, 73)
5)
이런 단칭 판단 형식에서 주어인 개별자는 이미 그 자신이 어떤 개별자의 집단, 일반적 유에 속하는 하나일 뿐이다. 이 개별자는 다만 그 유에 속하는 원소의 한 가지 예로서만 언급될 뿐이다. 그러므로 단칭 판단 형식은 사실 이미 특칭 판단 형식이다.
‘이것은 빨갛다’라는 질적 긍정 판단 형식 형식에서 술어는 사실 개별적이다. 그 ‘빨간색’은 이것이 지닌 ‘개별적인 빨간색’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추상적 일반성은 외적인 일반성이므로 동시에 추상적 개별성이다. 그러나 단칭 판단 형식에서 술어는 이미 반성된 일반성이다.
술어인 그 반성된 일반성은 주어인 개별자에서 실현되지만, 이 일반성이 이미 여럿에 속할 가능성을 지닌 내재적 일반성이므로 다른 개별자에 속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러므로 반성된 일반성이 실현되는 집합은 이미 여러 개별자다.
예를 들어 ‘이 사람은 죽는다’라는 단칭 판단 형식에서 ‘죽는다’는 술어는 내재적 일반성이다. 그러므로 ‘죽는 것’은 이미 여러 존재자에 공통적인 것이다. 따라서 주어인 개별자 즉 ‘이 사람’은 술어인 ‘죽는 것’이 포함하는 원소의 한 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단칭 판단 형식은 특칭 판단 형식으로 이행한다.
이미 단칭 판단 형식에서 주어인 ‘이것’은 일반적 유라는 것이 암시되지만, 거기서는 아직 정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특칭 판단 형식에 이르면 주어인 ‘몇몇’은 어떤 일반적 유에 속하는 몇 가지임이 정립된다. 그러므로 특칭 판단은 단순히 ‘몇몇’이라 할 수 없고 이미 어떤 유가 전제된다. 즉 ‘몇몇 사람’이든가 ‘몇몇 사물’이든가 등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것[Dieses]은 본질적으로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그 일반적 형식에 따라서 본다면, 일반적으로 말해 긍정 판단인 것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반성 판단은 단순히 긍정적인 판단은 아니므로 부정은 술어에 직접 걸리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술어는 주어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어가 가변적인 것이며 규정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부정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의 이것이 아닌 것이 반성의 일반자이다.’”(논리학 2부, GW12, 72-73)
이런 특칭 판단에서 주어가 개별자에서 여러 개별자로 확대했을 때, 이 여러 개별자는 단순히 아무 개별자나 끌어모으면 되는 것은 아니다. 원숭이, 장미, 종이… 등 서로 무관한 것을 아무리 끌어모은다고 해도 특칭 판단이 되지 않는다.
특칭 판단이 되려면 술어인 일반적인 속성을 지닌 것이어야 하며, 이런 일반적 속성을 지닌 것이기 위해서는 양적으로 단순한 정량이 아니라 정량의 관계를 통해 출현하는 척도를 지닌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단칭 판단 형식에서 특칭 판단 형식으로의 이행은 이런 정량의 발전에 따른 것이다.
6)
특칭 판단 형식은 단칭 판단 형식에 이미 잠재된 특칭성이 정립된다. 특칭 판단 형식의 주어는 특수성이다. 그러므로 그 형식은 ‘특수성이 일반성이다’라는 형식이다. 여기서 특수성은 개별자가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자가 유지된 채로 그것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런 개별성의 확장은 외적 반성에서 일어나며, 예를 들자면 이 특수성은 ‘몇몇[Einiges]’이다.
특칭 판단 형식의 형식은 ‘몇몇의 것[사람이나, 사물]은 그러하다[속성]’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주어인 ‘몇몇’은 일반적 유를 전제로 하고 나아가서 그런 일반적 유의 일부라는 사실이 암암리에 전제되어 있다.
그러므로 특칭 판단 형식에서 ‘몇몇의 것이 그러하다’라면, 그 판단 형식은 이미 자기 속에 ‘[앞의 것과 다른] 몇몇의 것은 그러하지 않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즉 특칭 긍정 판단 형식은 특칭 부정판단 형식을 함축하며,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몇몇 사람이 행복하다면, 이는 몇몇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함축된다.
여기서 부정은 계사에 걸려 있지만, 전적인 부정이 아니다. 그것은 현존 판단 형식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부정이다. 그러나 현존 판단 형식 부정이 술어에 걸린다. 반면, 여기서는 부정이 주어에 걸려 있다. 그러므로 특칭 부정 판단 형식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앞의 것과 다른] 몇몇 개가 아닌 것은 그러한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 여기서 주어에 걸린 부정이 계사로 이전되면서, 특칭 부정 판단의 형식 ‘몇몇의 것은 그렇하지 않다’라는 형식이 만들어진다.
“몇몇의 개별자는 반성에 속하는 일반자다라는 [특칭] 판단은 처음에는 긍정적인 판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판단은 마찬가지로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몇몇이라는 것이 일반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일반성에서 보자면 이 몇몇은 포괄적인 것으로 고찰될 수 있을 것이지만, 이 몇몇이 특수성인 한에서 이 몇몇이란 그런 일반성에 마찬가지로 적합하지 않다. 주어가 단칭 판단의 이행을 통해 획득했던 부정적 규정은 위에서 제시된 것처럼 또한 관계의 규정 즉 계사의 규정이다.”(논리학 2부, GW12,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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