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청춘의 서재]
‘청춘의 서재’라는 말 앞에 멈춰 섰다. 청춘에게 권하는 책에 대해 글을 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코너명일 테다. 그런데 이 말 앞에 한참을 멈춰 선 것은 이 말의 어색함 때문이었다. 청춘에게 ‘서재’라… 나의 청춘을 돌아 보았을 때 나의 청춘엔 ‘책꽂이’가 있었다. 편식과 잡식으로 엉성한 책꽂이였다. 도서 분류 기준표 상 고른 책, 혹은 인문, 자연, 사회 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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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서재’라는 말 앞에 멈춰 섰다. 청춘에게 권하는 책에 대해 글을 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코너명일 테다. 그런데 이 말 앞에 한참을 멈춰 선 것은 이 말의 어색함 때문이었다. 청춘에게 ‘서재’라… 나의 청춘을 돌아 보았을 때 나의 청춘엔 ‘책꽂이’가 있었다. 편식과 잡식으로 엉성한 책꽂이였다. 도서 분류 기준표 상 고른 책, 혹은 인문, 자연, 사회 별 […]
*『레닌 재장전 :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외 지음, 이현우, 이재원 외 옮김, 마티, 2010.)를 청년들에게 소개합니다.(편집자) 청춘의 서재, 그 무기력한 나날들 내 청춘의 날들과 그 서재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어리고 여린 마음에 처음 접하게 된 세상의 현실은 낯설고 두려워서 무언가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항상 주변을 배회하며 주저하기만 했다. […]
첫 번째 인연. 내가 처음 노신을 만난 것은 어린이 세계 문학 전집류에서였다. 세계 명작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실어 놓은 것이었는데, 거기에서 만난 노신의 《아Q정전》은 12세 무렵의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당시 나는 이 책을 위인 이야긴 줄 알고 빼들었다가 바보짓만 일삼는 인물의 이야기임을 깨닫고 이내 내팽개쳤다. 고전을 알아보기에는 아직 어렸나 보다. 노신의 의도를 짐작하게 […]
『김태권의 한(漢)나라 이야기』(비아북)를 청년들에게 소개합니다.(편집자)/ ?씬 레드라인? vs.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한 장면 1 vs. 100,000 즉 10만 대 1이다. 이건 도대체 무슨 숫자일까? 정확한 사실인지 아닌지 잘은 모르겠지만, 옛날 어느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다. 옛날 한국내전 즉 6.25 전쟁 때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 가운데 실제로 인명을 살상하거나 상해를 입힌 총탄의 숫자가 […]
비가 온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세상이 안개 속처럼 뿌옇다. 이제 봄이 오려는가. 촉촉하게 땅이 젖고 마음도 따라 젖는다. 구보씨는 비를 맞으며 잠시 걸어본다. 참 좋구나, 혼잣말을 되뇌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구보씨의 얼굴에 작은 빗방울들이 싱그럽게 와 닿는다. 비오는 걸 유난히 좋아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비만 오면 마냥 나가 뛰어다녔다. 장가가서 아이들을 낳은 뒤론 애들과 함께 […]
새해다. 그리고 새달이다. 물론 새날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시간은 언제나 새롭다. 흐르는 시간은 우리에게 새 것을, 새로움을 준다. 구보씨는 새해를 맞아 새삼스레 눈을 껌벅대면서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낡음이란 무엇인가? 낡음 또는 늙음은 어디서 오는가? 낡음이란 가두어진 시간이다. 새로움이 밖에서 온다면, 낡음은 안에서 쌓여간다. 정말 그런가? 정말 그렇다. 생각해 보라.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어떤 경계를 가진 유한한 […]
아뿔싸, 벌써 11월이다. 세월은 나이만큼의 속도로 간다더니, 구보씨도 제법 나이를 먹었는가 보다. 심장의 박동이 늦어지고 몸이 느려지면 상대적으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 마련이라 한다. 포유동물의 평생에 걸친 심장 박동 수는 생쥐건 코끼리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고 들었다. 코끼리가 생쥐보다 오래 살지만, 생쥐의 생체 리듬이 코끼리에 비해 빠르고, 그런 만큼 생쥐의 하루는 코끼리의 하루에 비해 길다는 얘기다. […]
아뿔싸, 벌써 11월이다. 세월은 나이만큼의 속도로 간다더니, 구보씨도 제법 나이를 먹었는가 보다. 심장의 박동이 늦어지고 몸이 느려지면 상대적으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 마련이라 한다. 포유동물의 평생에 걸친 심장 박동 수는 생쥐건 코끼리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고 들었다. 코끼리가 생쥐보다 오래 살지만, 생쥐의 생체 리듬이 코끼리에 비해 빠르고, 그런 만큼 생쥐의 하루는 코끼리의 하루에 비해 길다는 얘기다. […]
구보씨는 검소한 편이다. 눈에 띄는 사치(奢侈)라고 할 만한 건 평생 해 본 적이 없다. 그럴 형편도 못 되지만, 그럴 마음이 생겼던 때도 거의 없지 싶다. 그거야 철학자라면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더구나 구보씨처럼 근검절약이 강조되었던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말이다. 사치란 일종의 염치없음을 범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그리고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염치없음. 레비나스 […]
구보씨가 벗는 걸 좋아하긴 해도 아무 때나 벗고 다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옷에 크게 신경을 쓰지도 못하는데, 그건 구보씨가 구(舊)세대라서 그런지 모른다. 구보씨가 자랄 때만 해도 단정함 이상으로 옷차림에 관심을 갖는 건 그리 칭찬 받을 일이 못 되었다. 옷을 잘 차려 입고 다닌다는 말은 겉치레를 앞세운다는 뜻, 내면이 실(實)하지 못하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 못살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