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ries by admin

구보씨 누드모델을 꿈꾸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 생각]

더운 날씨다. 무덥고 갑갑하다. 훌훌 벗어던지고 싶은 때다. 구보씨가 딱히 여름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벗는 건 좋아한다. 아니, 그보다는 걸치고 입는 것을 그닥 기꺼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그렇다 보니, 이런 날씨에 집에 있을 때면 거의 벌거벗고 있을 때가 많다. 원래 인간은 열대 동물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퍼져가기 시작한 것은 […]

구보씨, 축구를 보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 생각]

“타인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지.” 십여 년 전에 구보씨가 들었던 말이다.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자주 떠오른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씨익 웃으면서 동의를 구하듯 구보씨를 쳐다보았는데, 그 표정 역시 잊히지 않는다. 구보씨가 취직 때문에 여기저기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니던 때였다. 한 학교에서 다른 사람을 쓰기로 거의 결정이 되었다가, 무슨 사정 때문인지 취소가 되고 다시 […]

구보씨, 장미 향기를 맡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 생각]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구보씨는 오월의 태양 아래 막 피어난 붉은 장미 몇 송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건 구보씨가 본 적도 없는 오래 전의 연극 제목이었는데, 웬일인지 버릇처럼 입에 붙어 예기치 않은 순간에 튀어나오곤 했다. 장미의 향은 강하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코를 흠흠 거려야 간신히 약한 자극이 올 정도다. 요즘 꽃들은 […]

구보씨,구보씨를 말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 생각]

요즘은 날씨가 참 궂다. 그래도 꽃은 핀다. 구보씨가 사는 곳은 한반도 남쪽 끝자락이라서 그런지 벌써 진달래도 피고 목련도 피었다. 아직 가지뿐인 나무들 틈새에서 갓 피어난 진달래는 속도위반이라도 한 처자처럼 약간 수줍어 보인다. 봄이 오면 꽃이 핀다. 여기 감상이 없을 수 없다. 상투적이고 인간 중심적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사람도 꽃처럼 가고 또 새로 오지만, 꽃 […]

베르히만의『침묵』[철학적 인간극장]

1 베르히만의 영화 침묵은 그의 ‘실내악적 영화’의 간결성이 형식적으로 처음 완성된 영화라고 평가된다. 이 영화에서 소년 요한과 그의 어머니 안나 그리고 이모 에스더는 함께 외국 여행에서 고향 스웨덴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새벽에 기차 안에서 기침 발작을 일으킨 에스더 때문에 이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의 어느 낯선 도시 티모카의 한 호텔에서 잠시 머무르게 된다. 영화는 기차 안에 […]

영화 『스파이더』와 편집증[철학적 인간극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스파이더(2002)』는 편집증 환자를 다루는 영화이다. 필자는 정신분석학을 연구하면서 라캉의 실재계 개념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없어서 막막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많은 도움을 얻었다. 1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스파이더로 불린다. 그에게 전형적으로 편집증의 증세가 나타난다. 그는 행동이 지독히 느리고, 자폐적으로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그는 자기만이 아는 글자로 노트를 […]

신의 침묵[철학적 인간극장]

잉그마르 베리히만의 영화 [겨울 빛 ] 이 영화는 빛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는 시작하면서 성찬식 의례를 보여준다. 시간은 정오이다. 밖에는 이미 눈이 내렸고 앞으로 또 눈이 내릴 듯이 캄캄하다. 북유럽의 겨울 빛은 차갑고 약하다. 겨울 빛은 마치 불투명한 잿빛 유리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렴풋하게만 드러난다. 그 겨울 빛 아래 박수근의 그림에서 나오는 듯한 나목이 간신히 버티고 있다. […]

하얀 리본-계몽의 진실 [철학적 인간극장]

엄숙한 정적. 이 영화는 일차 세계 대전 직전 오스트리아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지주의 성관을 교회와 농장 관리인의 집,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가 둘러싸고 있다. 여기는 아직도 중세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 사회는 지주인 남작과 엄격한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다. 이 사회는 사람들이 입은 목을 채운 검은 옷처럼 숨 막힐 듯하다. 흑백 화면에 […]

사은품과 ‘교양인’, 정치가[철학적 인간극장]

사은품. 나는 직업상 폰 마케팅의 적합한 대상이 된다. 그래서 연구실에 앉아 있으면 거의 매일 폰 마케팅과 싸운다. 어떤 때는 하루 내내 누구도 만나지 않고, 심지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적도 있으니, 연구실 안에 전화기 벨이 울리면 반가운 마음에 덥석 수화기를 들어보면 영락없이 폰 마케팅이다. 하도 자주 당하는 일이라 나도 요령이 있다. 그런데 최근 사은품을 준다는 […]

나르시스트와 천안함[철학적 인간극장]

나르시시즘과 권력.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성격들 중의 하나가 아마 나르시스트가 아닐까 한다. 자신의 모습에 매혹되어 물에 빠져 죽은 나르시스트는 그리스 신화에서 처음 주목받은 이후 많은 철학자, 예술가들이 분석하려 했던 대상이었다. 그런 분석 가운데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분석이 특히 주목받을 만하다. 라캉은 거울 단계(상상계)라는 개념을 통해 나르시시즘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나르시스트는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에서 자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