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것, 적과 동지의 구별- 레닌, 베른슈타인, 카우츠키, 트로츠키[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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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것, 적과 동지의 구별- 레닌, 베른슈타인, 카우츠키, 트로츠키[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②

 

강사?: 박영균(건국대학교 HK교수)
후기 : 이원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자본주의가 유일한 승자로 우뚝 선 21세기에 감히 마르크스를 떠올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레닌을 떠올리는 것에는 더욱 큰 용기가 필요하다. 여전히 탈자본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마르크스는 희망이다. 하지만 ‘혁명’의 붕괴에 대한 책임의 짐을 누군가는 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레닌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엄하다. 따라서 21세기에 마르크스를 찾는 사람들은 나쁜 엥겔스와 과격한 레닌을 제외한 ‘순결한 마르크스’를 떠올리거나, 트로츠키나 멘셰비키와 같은 실패한 혁명가를 들여다보며 ‘혹시 이들이 성공했다면’이라고 기대를 품는다.

그러나 문득 이것이 또 다른 레드컴플렉스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레닌과 소비에트를 묻어두고 마르크스주의를 불러내는 것은 일종의 자기검열을 통과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앤디워홀이 그리고 나서야 체게바라가 우리와 친해졌듯이 최근 지젝의 책들이 유행을 한 후 지젝의 명성을 빌어 레닌에 대한 금기가 조금씩 풀어지고 있는 듯 하다. 마르크스를 떠올리는 것이 19세기의 그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듯 레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허락하면서 사도바울에게는 아무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면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닐까?

2강에서는 박영균 교수(건국대 HK교수)가 그동안 가장 금기시되어 왔던 마르크스주의자 레닌을 중심으로 그와 시대적 흐름을 함께 한 세 인물 베른슈타인, 카우츠키, 트로츠키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다. 여기서 그는 크게 세부분으로 시대를 나누어 시대별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첫 번째는 제1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엥겔스에 이어 제2인터내셔널의 성장과 와해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를 설명했다. 그 뒤 두 번째로 제3인터내셔널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레닌과 트로츠키를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스탈린과 대립하는 제4인터내셔널의 트로츠키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강연을 전개하였다. 박 교수의 이번 강연은 18세기 말-19세기 초 시대적 흐름, 제국주의 전쟁을 둘러싼 분열 1914년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1차 세계대전→1917년 러시아혁명→제3인터내셔널과 바이마르공화국→1928년 세계대공황과 나찌즘→제2차 세계대전이란 역사적 격변 속에서 마르크스 ‘사도’들의 행적에 대해 안내하며 그들의 현재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되었다.

 

정치적인 것, 적과 동지의 구별

박 교수의 말대로 현대는 가히 빈곤의 시대이다. 상대적인 빈곤뿐만 아니라 현대인은 경제, 환경, 육체, 문화에 있어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극복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지만 그 노력의 비용은 항상 국민의 세금이거나 노동자의 생존권인 반면 결실은 자본의 소유가 되었다. 박 교수는 레닌의 문제의식이 이러한 비대칭적 관계인 자본과 노동의 본질적 대립에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자본은 자기 가치를 증식하기 위해 노동을 임노동으로 포획해야 하는 데 여기서 노동자는 노동과 임노동으로 분열되며 이것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투쟁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레닌은 여기서 ‘당파성’을 본다. 이미 적대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세계에 우리는 한편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이라크전쟁이 보여주듯 보편성을 내세우는 것은 가장 기만적인 정치행위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정치는 타협이나 윤리가 아니라 적과 동지의 구별일 수밖에 없다. 레닌이 말하는 ‘당파성’이란 여기서 비롯된다.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체하지 못한다.” 관념적인 힘이 아니라 실제적인 현실의 힘을 강조하는 것인데 레닌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레닌은 이러한 실제적 힘이 화해되지 않는 당파성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주요 담론을 쥐고 있던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는 정치에서 당파성을 은폐함으로써 실제적인 혁명의 힘을 상쇄시키는 것으로 보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진행했다. 이들을 가르는 선은 제국주의와 민주주의를 보는 관점의 차이이다. 하지만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와 카우츠키의 중앙파는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결국 경제주의와 진화론으로 빠져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한, 스탈린의 사회주의 생산양식론 또한 생산력주의-경제주의에 빠져들었다고 그는 비판하고 있다. 이에 박 교수는 이런 경제주의는 변증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 생산력이라는 양의 발전이 그것의 사회화라는 질적 발전으로 자연스레 전환된다는 것이 수정주의와 경제주의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친구사이가 연인으로 발전하려면 친구였던 그 관계가 아닌 연인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시작이 필요하듯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전혀 다른 형식이기 때문에 자연스런 전환이란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가 레닌에게 주요한 과제였다는 것이다.

 

당파적인 외부성의 유물론

변혁의 주체에 대한 문제는 레닌에게 혁명을 관념화하느냐 현실화하느냐라는 문제였다. 레닌은 부르주아만의 정부를 세운 뒤 이후에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말한 멘셰비키나 변혁의 주체에서 농민을 제외한 트로츠키의 주장이 마르크스의 지나친 도식화 또는 관념화라 비판했다. 이미 발생한 혁명에서 그 혁명을 유지할 의지나 여력이 없는 부르주아를 내세우는 것과 러시아 농민의 처한 계급적 모순을 외면하거나 접어두는 것은 레닌에게는 혁명의 관념화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닌은 주어진 정세의 구체적 상황에 근거한 구체적인 전술을 내세웠으며 주어진 상황에서 그것이 최대한 ‘해방’을 앞당기는 전술이 될 수 있는 정치적 개입을 전개하였다. 그 구체적인 전술이 1905년 두 가지 전술을 둘러싼 논쟁과 ‘제국주의전쟁을 내전으로의 전화’, 1917년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이었다.

박영균 건국대HK교수

박 교수에 따르면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를 일으킨 사건은 제국주의전쟁이다. 카우츠키나 베른슈타인의 애매한 입장은 ‘반전평화’와 달리 레닌은 ‘제국주의전쟁의 내전으로의 전화’라는 극단적인 슬로건을 제출했다.그러나 이것은 제국주의를 정책으로 보는 카우츠키와 독점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단계로서의 정치로 본 레닌의 차이에 비롯되며 제국주의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혁명’뿐이라는 레닌의 당파적이고 실천적인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1917년 2월혁명 이후 왕년의 볼셰비키들을 비롯하여 부인인 크룹스카이야조차 ‘혹시 레닌이 미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당혹스런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을 레닌은 제출했다. 이것은 레닌이 1905년의 노동자?농민의 혁명적 독재라는 슬로건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년의 볼셰비키는 레닌의 이런 실천적 유물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따라서 레닌의 정치학은 철저하게 당파적이고 극단적인 외부성의 유물론이라고 박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양의 축척이 질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양질전화’가 아니라 ‘질적 형식의 우위성’이라는 관점은 레닌에게서 혁명이 자본주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새로운 형식의 창출이라는 사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레닌에게 그토록 많은 악명을 부여했던 ‘외부로부터의 도입’이라는 테제에 근거한 전위정당론인데 박 교수는 이러한 생각이 나타나게 된 사회존재론적 근거에 주목하였다.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은 지금의 시대에서 찾을 수 없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한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기본 테제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한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라는 것 반대 테제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이렇게 될 때 사회적 존재와 의식이 동형적인 것은 오직 부르주아뿐이며 노동자는 의식과 존재가 불일치하는 모순적 존재가 된다. 그러나 더 나아가 그는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력이 매스미디어나 학교와 같은 ‘이데올로기 지배 장치’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인간’ 그 자체의 물질적 토대를 갖는 이데올로기가 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박 교수는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등가형식에 너무나 익숙하며 그것을 깨기란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무의식적이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가진 물질성은 자본주의적 삶이라는 관계 형식 그 자체이며 여기서 노동조합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레닌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으며 ‘외부로부터 도입’이라는 테제를 통해서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형식으로서 전위당 노선을 제출한 것이다. 여기서 당이라는 조직 형식은 노동자들의 내적 분열을 포획하는 자본주의에서의 토대-상부구조의 동형성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레닌의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정치적 질서와 사회변혁의 틀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있어야 할 것’을 창출하는 권력의 의지적 집합체이자 새로운 대중의 정신을, 대중 스스로 창출하게 하는 ‘창조자요 선도자’의 역할을 한다. 박 교수는 레닌이 전위정당을 설명하며 주목하고자 한 것은 일반적으로 그를 비판하는 소위 먹물들의 지도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적 정치의식으로 조직할 수 있는 ‘형식’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닌은 노동조합적 경제투쟁, 노동조합적 정치투쟁, 사회민주주의적 정치투쟁 등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즉, 임금노동 안에서 존재하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운동은 경제투쟁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노동법 개정과 같은 투쟁은 레닌이 말하는 본질적 의미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정치투쟁이 아니라 노동조합적 정치투쟁으로서 경제투쟁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레닌

박 교수는 지젝의 말을 빌어 ‘스탈린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자기통치라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레닌의 기획은 자유주의와 대의제 속에서 발생하는 이데올로기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로자와 그리고 후세에서 진행되는 비판에서 레닌의 가장 큰 죄목은 당의 관료화와 민주주의의 파괴였다. 그러나 우리가 대의제에 익숙해지면서 자기통치라는 민주주의 가장 기본 덕목을 잊은 건 아닐까? 박 교수는 국민의 집합적 의지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는 마키아벨리를 인용하면서 레닌과 그의 당이 추구하고자 한 것을 보다 깊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카우츠키나 베른슈타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강조는 본질적으로 서구적인 의회체계, 보통선거권과 정당체제에 기초한 대의제적 민주주의만을 민주주의로 사고하는 데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되새겨보면 투표일을 제외하고 우리가 스스로를 통치한 적이 있을까? 물론 직접민주주의로 가기에는 난관들이 많다. 그러나 레닌은 이 길을 가고자 했으며 소비에트는 그런 형식 중에 하나였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카우츠키-베른슈타인의 민주주의와 레닌의 민주주의는 서로 그 개념이 다르며 이 개념의 차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마치 레닌은 반민주주의자, 독재의 옹호자, 전체주의자로 읽게 된다고 하면서 본질적으로 레닌은 더 철저한 민주주의를 추구하고자 했으며 그것이 그의 실패를 낳은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박 교수가 보기에 소련의 붕괴의 원인은 역사적으로 그 연원을 올라가보면 레닌의 이런 기획에도 불구하고 인민의 ‘자기통치’를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주체형성과 ‘직접민주주의라는 통치형식’을 창출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즉, 코뮌이라는 직접민주주의의 통치형식이 소련에서는 당과 소비에트의 역전으로 집행기구로 전락한 데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소련 붕괴에 대한 책임의 주체로서 스탈린과 레닌을 완전히 나누는 데 반대한다. 물론 그 둘의 결정적 차이가 있으며 이는 레닌의 말년에 트로츠키와 레닌이 스탈린에 대한 반관료주의투쟁을 전개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박 교수는 스탈린이 왜 권력투쟁에서 승리했는지, 그리고 당관료들이 어떻게 스탈린을 중심으로 소련의 권력을 장악했는지를 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맑스주의 안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레닌이 실패한 곳에서 레닌을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레닌의 실패를 베른슈타인이나 카우츠키를 통해서 보완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베른슈타인이나 카우츠키의 민주주의는 대의제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으로서, 레닌보다 퇴행적이기 때문이다.

이날 강연은 긴 시간 지속되었다. 3시간이 넘게 지속된 강연을 마치고도 끝없는 질문과 토론이 오갔으며 강연은 결국 11시가 넘어서 끝났다. 이 시대에 ‘무장한 예언가’이자 혁명적 힘의 철학인 레닌의 부활에 관심이 주목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시대가 더 이상 그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실패하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옛날의 공식들을 붙잡고 공상적이고 낭만적인 열정을 쏟아내는 것일까?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가야 할 것이다. 다만 확실한 건 이 강의실에서 다루어진 레닌은 열정적으로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사유의 고리들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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