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마르크스는 살아 있다, 21세기의 모습으로-마르크스, 엥겔스[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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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도 마르크스는 살아 있다, 21세기의 모습으로[마르크스주의 사상사] -①

 

강사 : 서유석(호원대 교수)
후기 : 이원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유령이 다시 돌아오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원래 상갓집에는 손님이 많이 온다지만, ‘죽은 개’ 그것도 동구권 붕괴 로 사망선고를 받은 지 20년이 된 ‘유령’의 제사치고는, 참석자들의 발걸음은 너무 가벼웠고 기대에 차있었다. 하나 둘 차던 좌석은 어느새 빼곡히 찼고, 심지어 창가에 둔 임시의자들에도 참석자들의 뭔지 모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한철연)가 공동주최하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사>는 상갓집이 아닌 잔칫집의 분위기로 3월 8일 16강 대장정의 첫 막을 올렸다. 추억과 기대를 품은 희망은 엄연히 다르다. 추억은 열정을 끌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2008년 서구 금융위기 이후 월가 점령 운동과 같이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열정은 130여 년 전에 죽은 마르크스에서 어떤 기대를 품고 다시금 그를 불러내고 있다.

이번 강연은 박제화된 마르크스를 박물관에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2012년의 살아있는 현실에서 마르크스와 그 사상사를 만나는 것이었고 그것이 강사와 참석자 모두의 바람이었다. 젊음의 에너지가 넘쳐 보이는 대학생부터 흰 머리의 노신사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참석자들이 모인 가운데 김성민 한철연 회장(건국대 교수)의 간단한 인사말로 16주간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첫 강연을 맡은 서유석 호원대 교수는 강연에서 마르크스사상의 세부적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키워드를 짚으면서 마르크스사상사의 주요 논점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21세기의 마르크스의 유효함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전체 강연의 서론 역할을 했다. 전체강연의 서론 격인 강연이기에 서유석 교수의 강연은 거시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어제와 오늘의 과제에 대해 안내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보적 사상들과 역사의 목마름

▲ 서유석 호원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서 교수는 현재 학계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지위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1989년 동구권 붕괴 이후 마르크스에 대한 회의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서구 학계에서도 일어났다. 서구의 주류 경제학에서는 마르크스는 이미 역사 속 연금술사였고 이는 사회과학이나 철학계에서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인기 상품이 사라졌다고 그 모든 수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듯 여전히 진보 사상에대한 수요는 대중 속에 남아있었고, 본디 자본주의는 수요에 대해서라면 충성스레 응답하는 의리가 있는 체제인지라 마르크스의 철학과 방법론이 아닌 다른 진보 사상으로 그 수요를 채우려 했다.

서 교수는 이러한 맥락에서 동구권 붕괴 이후 서구의 진보적 학계는 남은 대안으로서 미국의 존 롤스와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 그리고 프랑스의 에드가 모랭 등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미국의 진보적 정치철학자 N. 프레이저는 롤스로 대표되는 (재)분배 정의와 하버마스/호네트로 대표되는 담론과 인정의 정치를 20세기말 진보의 최대 과제라고까지 치켜세웠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런 대안들은 과거 수정주의 논쟁에서 마르크스(주의)가 거부한 대표적인 반대입장들이다.

서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사상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다만 파생되는 문제들만을 개선하려는 시도들이요, 무엇보다도 분배과정을 포함한 제 사회과정의 바닥에 있는 생산관계의 근원적 착취구조에 대한 고민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마르크스가 아나키즘이나 수정주의와 그토록 격렬한 논쟁을 벌인 맥락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의 이러한 지적은 지난 20년 동안 마르크스주의를 대체하려 시도한 여러 진보적 사상과 이념이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또 사민주의, 복지국가, 신사회운동, 생태주의, 소수자 운동 등의 신조류 속에서도 왜 역사가 채워지지 않는 허기 속에서 계속 목마름에 시달렸는지 잘 알려준다.

물론 서교수의 비판 어린 해석이 죽은 마르크스의 뇌를 복원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탈마르크스적 관점이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지점을 마르크스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기위해서는 잠시 죽은 마르크스를 다시 불러내 다시금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인간해방을 향한 끝없는 도전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만큼 다양한 해석과 오해를 낳은 학자가 있을까? 대표적 예로, 그의 정치학, 특히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을 들 수 있다. 20세기 독일 철학자 포퍼는 이런 모습의 마르크스를 히틀러와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전체주의의 선구로까지 묘사한다.

하지만 서 교수는 마르크스가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언급했는지, 그리고 1864년 이후 제1인터내셔널에서 이 문제를 두고 아나키스트들과 왜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혁명은 프루동이나 바쿠닌이 주장하듯 대중이 권력을 쟁취한다고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생산관계, 소유관계의 변혁이 곧 혁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혁명의 과도기 단계에 노동자 계급이 소유관계 재편의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 주장의 핵심이다. 당시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일정 단계에 이르면 인구의 대부분이 노동자 계급이 될 것이라고 믿었었다. 서 교수는 마르크스가 바쿠닌파와 논쟁할 당시 테러와 폭력이 아니라 오히려 의회전술을 중요시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 교수는 국가주의와도 분명한 경계를 그은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마르크스는 독일 사민당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라살(F. Lassale)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라살은 일종의 국가주의자로 국가를 계급 중립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이용하여 자본가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리라 믿었다. 마르크스는 그가 자본주의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에 변질될 것이라 비판했다. 결국 라살은 자본가에 대한 공격을 위해 당시 지주그룹(융커)를 대표하는 비스마르크와 타협을 하고 비스마르크식의 국가를 통한 개혁노선에 동의함으로써 수정주의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면 마르크스의 핵심 주장은 무엇일까? 서교수는 마르크스주의 키워드를 5가지로 뽑는다.

1) 역사적 유물론

2) 자본주의 비판

3) 혁명과 계급투쟁

4) 공산주의의 전망

5) 인간 해방에 대한 열망

 

경제구조인 토대가 정치, 문화구조인 상부구조를 떠받치는 것으로 보고, 그러한 문제의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서 교수가 주목한 마르크스사상의 첫 번째 키워드인 역사적 유물론이다. 한 사회를 설명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변혁하는 데 있어 경제적 토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문제의 근원인 경제관계는 그대로 두고 진행되는 재분배론, 복지론의 한계가 여기서 지적된다. 철학자 마르크스가 경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비판은 자본주의의 부정이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한다. 역사발전과정에서 자본주의 성숙한 생산력은 공산주의라는 인간해방 단계의 주요한 밑거름이 된다. 다만 그 역할을 다한 자본주의는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모순은 마르크스는 자본을 생산하는 과정에 대한 변혁을 통해서만 그 극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세 번째는 혁명과 계급투쟁인데 서 교수는 강연에서 혁명을 병의 근원을 찾아 바꾸는 것이라 비유했다. 마르크스 이전에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존재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기독교의 신부들과 수도승들 사이에서 나타난 것으로 신비주의적이거나 종교적인 색채가 강했다. 반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에 대한 분석과 계급의 관점에서 혁명을 다룸으로써 혁명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혁명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인간해방에 대한 현실성을 제시함으로써 이상사회를 천상이 아닌 지상에 구현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마지막인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대한 전망과 이어진다. 공산주의란 자본의 질곡과 국가의 억압이 없는 사회에 대한 전망이요 그리로 가는 운동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마르크스의 인간해방에 대한 열망으로 볼 수있다.

서 교수는 마르크스의 이러한 열망을 제1번으로 놓고 의도적으로 제일 마지막에 설명했다. 알튀세나 일군의 사회과학자들은 청년마르크스와 후기마르크스를 구분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에서 휴머니즘을 도려낸다. 그러나 서 교수는 창조적 노동을 하는 주체이자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결코 마르크스가 버린 것은 아니라 역설한다. 천지개벽이나 홍길동만을 기다리던 민중들에게 마르크스는 인간 자신의 힘으로 인간이 해방될 수 있는 현실성을 제시했다.

따라서 서 교수는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적 현실성에 대해 다시금 주목해한다고 설명한다. 마르크스는 때에 따라 의회전술도 긍정했으며 과도기적 전략에 대해서 유연하게 대처했다. 서 교수의 이런 지적은 그 동안 마르크스를 도식화시키고 박제화 시켜온 행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21세기에도 마르크스는 살아있다. 다만 21세기의 모습으로

서 교수는 이번 강좌의 흐름에 따라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을 간략히 요약하고 앞으로 마르크스주의가 나아갈 점에 대해 설명하면서 강연을 정리하였다. 자본주의의 붕괴 조짐이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의 전략에 대해 역설하지만 개량주의로 기우는 베른슈타인, 자본주의 안에서 분노뿐만 아니라 설득과 도덕적 동의가 발생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해 도덕적, 지적 동의로서 헤게모니의 확보를 역설한 그람시, 사회주의로의 전환에 있어 인간의 실천과 상부구조의 역할을 설명한 루카치, 자본주의에서 인간이 전체주의에 빠지는 이유와 마르크스적 문제의식에 무의식 개념을 접목시키는 프랑크푸르트학파등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사는 마르크스의 인간해방에 대한 고민을 21세기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19세기의 마르크스는 성인이 아니다. 그의 시각 모두가 시공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며 그가 보지 못한 것도 있다. 서 교수는 복지국가와 파시즘의 탄생을 마르크스가 미처 보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복지국가는 국가주의자들의 회유이자 서구의 식민지배 착취의 전리품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시민운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또 복지국가 덕에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예상과 달리 분노로 가득차지 않고 도덕적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달하면 보편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이 각성하고 허위의식을 가진 부르주아에 대해 일관적 비판의식을 가질 것으로 여겼으나 오히려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권위주의에 복종하는 파시즘이 나타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는 그가 제시하지 못한 문제에 이미 어느 정도 정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예상 밖으로 자본주의는 건재함을 과시하는 이 시대, 그가 다시 요청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복지국가의 헤게모니는 항상 자본에 대한 분노를 잠시 가라앉히는 임시방편의 역할만 자임한다. 따라서 자신의 유지를 위해 민중의 피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 근원적 성찰은 여전히 마르크스를 이 시대에 부활시킨다. 사회의 경제적 토대에 주목함으로써 문제의 뿌리에 접근하려는 마르크스의 과학적 분석은 여전히 그 유효성을 지닌다.

또 혁명의 시대에도 의회전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그의 유연성은 마르크스주의가 외골수임을 거부한다. 마르크스는 “시대 속에 문제가 있고, 시대 속에 답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구체적 현실 분석과 시대의 문제에 주목할 것을 요구했다. 파시즘이 대두할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에 유연히 대처하지 못하고 또 일부는 오히려 거기에 편승한 것은 도식화된 마르크스주의 안에 갇혀 시대의 문제를 읽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서교수는 마르크스가 오늘날 살아있다면 한국사회 진보의 의제들인 경제개혁, 정치개혁, 생태, 여성, 노령화, 교육, 부동산, 미디어, 균형발전, 인권 등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을까 하는 물음을 던졌다. 강연은 우리 앞에 살아 움직이는 현실 속에서 인간의 문제를 끝없이 고민하고 제시한 마르크스의 문제의식 자체가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라는 배움을 남기고 다음 주의 주제로 넘어갔다.

강연을 마친 후 약 20여명의 참석자가 남아 첫 강의에 대한 평가 겸 자신을 소개하는 뒷풀이자리를 가졌다. 다양한 삶의 과정만큼 다양한 참가사연들의 만남이었다. 사업가, 학생, 문화평론가, 뮤지컬배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참석자들이 자신을 소개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친목을 다졌다. 중년들은 젊은 날의 열정 또는 삶을 되새기며, 청년들은 오늘의 삶을 고민하며 강연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맥주 캔의 작은 용량과 늦은 시간 때문에 아쉬운 자리는 길게 가지 못했지만 남은 15주간의 여정에 기대를 품으며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의 첫 밤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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