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31-무한 판단에 대해[흐린 창가에서- 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31-무한 판단에 대해
1)
존재론 2장 현존 2절 C 항의 제목은 ‘무한성’이다. 실제로 헤겔의 진정한 무한 개념 즉 ‘대자 존재’는 2장 3절에서 다루어지니, 그 앞의 2절 C 항은 사실 진정한 무한 개념에 이르는 과정에서 등장한 무한 개념을 다룬다. 여기서 다루어지는 것은 ‘악 무한’과 ‘무한 진행’이라는 개념이다.
무한성 개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양적 범주에 속하는 무한성 개념이며, 다른 하나는 질적 범주에 속하는 무한성 개념이다. 전자는 구체적 예를 들자면, ‘무한대’ ‘무한소’와 같은 개념을 다루며, 후자는 ‘규정할 수 없는 것’ 등을 말한다.¹
주1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수학적 무한성과 역학적 무한성을 구별했는데, 그 가운데 역학적 무한은 우리가 저항할 수 없도록 엄청난 위력을 지닌 자연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솟아오른 절벽이나 엄청난 화산의 폭발과 같은 것이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것도 양적인 무한성에 속한다. 칸트에서는 질적 무한성은 선험적 분석론에서 제시한 것과 같이 감각의 정도에서 제한적인 것을 말한다.
칸트는 양적 무한성 개념 다음에 질적 무한성을 다루었으나,² 헤겔은 질적 무한성 개념을 양적 무한성 개념보다 먼저 다루었다는 차이가 있다. 헤겔 논리학 존재론 2장은 질적 범주를 다루므로, 여기서 무한성 개념은 질적 무한성 개념이라 하겠다. ‘악 무한’이니, ‘무한 진행’ 또는 ‘진 무한’ 등의 개념은 모두 질적 무한성 개념과 관련된다.
주2 칸트에서 12 범주, 판단 형식은 먼저 양 범주가 나오고 다음에 질 범주가 나온다. 그러나 헤겔에서 12 판단 형식은 먼저 질 범주가 나오고 양 범주가 나온다. 칸트와 달리 헤겔에서 각 범주는 내적으로 다른 범주로 이행하므로 이런 이행 연관에서 볼 때 양 범주는 질 범주 끝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2)
헤겔 논리학의 전개 과정이 칸트의 12개 판단 형식 또는 12 범주를 바탕에 깔고 있다고 했는데, 그것에 비추어본다면, 여기서 무한성 개념을 통해 다루어지는 것은 소위 질적 범주의 무한 판단 형식이다. 이제 헤겔의 무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이 무한 판단 형식을 사유의 실마리로 삼아서 시작해 보자.
알다시피 형식논리학에서는 무한 판단 형식이란 독자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무한 판단은 부정의 부정이니, 긍정 판단과 같다. 형식논리학의 가장 기본적 법칙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중 부정의 법칙 즉 ‘-(-p)=p’이다. 형식논리학에서 무한 판단 형식을 굳이 따로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칸트는 선험 논리학의 차원에서 무한 판단 형식에 고유한 의미가 있다고 보면서 이를 독자적 판단 형식으로 격상했다. 칸트는 질적 범주는 그 의미가 시간의 내용과 관련된다고 보면서, 질적 무한성의 판단 형식 또는 무한성 범주는 ‘제한성’을 의미한다고 본다. 참고로 질적 범주에서 긍정 판단 형식은 실재성을, 부정 판단 형식은 부정성을 의미한다.
칸트가 무한 판단 형식을 독자적인 것으로 승인했을 때, 여기에는 무한 판단 형식에 관한 칸트 나름의 고유한 생각이 들어 있다. 보통 무한 판단 형식은 긍정적 무한 판단 형식과 부정적 무한 판단 형식으로 구분된다. 부정적 무한 판단은 계사는 부정이고 여기서 그 유에 속하는 모든 술어가 부정된다. 예를 들자면 “이것은 빨갛지 않고, 파랗지도 않으며, 노랗지도 않다 등”이다. 긍정적 무한 판단은 계사가 긍정이며, 여기서 술어는 그 유에 속하는 모든 술어 전체를 부정하는 술어다. 구체적 예를 들자면 “이것은 불멸적 존재다”와 같다.³
주3 부정적 무한 판단은 다음과 같이 변형할 수 있다. ‘이것은 P가 아니며, -P인 것도 아니다.’ 예를 들자면 “이것은 빨갛지 않고 빨갛지 않은 것도 아니다”와 같은 판단이다. 이 식은 긍정 판단과 부정 판단이라는 모순적인 것이 결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식은 부정적 무한 판단과 긍정적 무한 판단의 중간적 형태다. 사실 긍정적 무한 판단과 부정적 무한 판단 그리고 모순 판단은 차이가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만 다르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의 판단 형식으로 집어넣은 것은 긍정적 무한 판단의 형식이다. 그런데 긍정적 무한 판단에 관한 위의 예에서 술어 ‘불멸적 존재’란 ‘어떤 가사적 존재도 아닌 것’인데, 형식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런 ‘불멸적 존재’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지시하는지를 알 수 없다. 그것에 도달하려면 모든 가사적 존재를 부정해야 하므로 그런 불멸적 존재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불멸적 존재가 어떤 구체적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한자를 지시하는 술어가 되는데, 무한자는 경험적으로 주어지지 않으므로 시간적 내용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칸트가 무한 판단 형식을 12 범주에 집어넣은 것은 무한자에 대한 어떤 경험적 단서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서 칸트는 그 무한적 술어가 적용되는 경험적 단서 즉 시간적 내용을 ‘제한성’이라고 했는데, 긍정 판단 형식의 의미인 ‘실재성’도 아니고 부정 판단 형식의 의미인 ‘부정성’도 아닌 제한성이란 대체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칸트는 선험적 분석론에서 지성 개념의 도식성을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각은 각기 도나 양을 자기며 이것에 의해서 감각은 동일한 시간을 즉 한 대상의 동일한 표상에 관한 내감을, 감각이 없음-영 또는 부정-에 이르러 끝날 때까지 다소간에 메꿀 수 있다.”(칸트, 순수이성 비판, 최재희 역, 박영사, 1972, 170쪽)
이어서 칸트는 지성 개념의 원칙을 다루는 가운데 ‘지각의 예료’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험적 직관에서 감각에 대응하는 것이 실재성이요, 실재성의 결여에 대응하는 것이 부정성 즉 영이다. 모든 감각은 줄어들 수 있고 따라서 감각을 없애서 점차로 소멸할 수 있다. 그래서 현상에서는 실재성과 부정성 사이에 많은 가능적인 중간적 감각들의 연속적 연관이 있다.”(칸트, 순수이성 비판, 최재희 역, 박영사, 1972, 185쪽)
여기서 말하는 ‘중간적 감각들’이 말하자면 감각의 내포량에서 제한적인 것과 관련된다. 무한 판단 형식은 이런 시간적으로 주어지는 중간적 감각 내용에 상응하는 판단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 무한 판단 형식에 관한 칸트의 설명은 감각의 정도 즉 내포량과 관련되는데, 내포량의 제한성이 왜 무한성의 범주와 관련되는지에 대한 분명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짐작하건대 제한성은 긍정성과 부정성의 가운데 있으며, 그런 한 긍정과 부정의 결합이다. 앞에서 주3에서 설명했듯이 무한 판단은 긍정적 무한 판단이든 부정적 무한 판단이든 모순 판단으로 환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칸트가 제한성을 무한 판단의 의미로 본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제한성은 내포량의 측면을 말한다. 그런데 질적 판단 범주에서 내포량을 끌어들이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나중에 보듯 헤겔은 외연량과 내포량이라는 개념을 양적 범주와 관련해서 다룬다.
4)
헤겔 역시 논리학에서 무한 판단 형식을 끌어들여 독자적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 이유는 앞에서 칸트가 그러했듯이 무한 판단 형식이 독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헤겔 역시 무한성 개념을 ‘제한성’에서 끌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헤겔은 제한성을 감각의 정도 즉 내포량의 정도로 파악하지 않는다. 제한성 개념은 앞에서 설명했는데, 기억을 위해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이미 앞에서 유한성의 범주를 다룰 때, 규정성[Bestimmtheit]과 규정[Bestimmung]을 구분하였다. 규정성이 감각적 성질과 상응하는 것이었다면, 규정은 일반적인 속성과 상응하는 것이었다. 인식적 경험이 일반적 속성을 발견하기에 이름에 따라서 논리적 범주도 규정성에서 규정으로 발전했다.
어떤 것은 일반적 규정을 지니지만, 동시에 외적이 여러 규정성을 지닌다. 이 규정성은 어떤 것에 대해 무차별한 외적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소금에서 짠맛이 규정이라면, 흰색은 무차별한 규정성이며, 이런 규정성은 외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소금은 흰색이기도 하며, 보라색이기도 한데, 여하튼 짠맛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것에서 우리의 경험이 더 발전하면 어떤 것에서 여러 속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다양한 속성들은 한편으로 독립적인 성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사물의 속성인 한에서 동일한 어떤 사물에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즉 시공간적으로 공존한다는 말이 아니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동시에 있어야 한다. 이를 비유적으로 교차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5)
어떤 사물에 대해 이렇게 교차하는 속성들이 발견될 때 이런 인식적 경험을 기초로 해서 어떤 속성은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어떤 속성은 다른 속성이 있으므로 해서 더는 어떤 사물의 고유한 규정 즉 그 자체 존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규정 즉 속성이 다른 규정에 대립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하는데, 이 규정이 부정된다는 점에서는 제한성이다. 그 자신에서 자기를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당위다. 그 사물의 당위는 제한을 넘어선다. 예를 들어 소금의 속성인 짠맛은 소금의 다른 속성인 입방체와 대립한다. 그런 점에서 짠맛은 제한성을 지닌다. 그런데 이런 제한성을 스스로 넘어선다는 점에서 짠맛은 동시에 당위다.
여기서 보듯 헤겔은 제한성을 칸트에게서처럼 감각의 정도와 관련시키지 않고 어떤 속성이 지닌 제한성과 관련시킨다. 즉 어떤 속성이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한다는 측면 때문에 그것은 제한적인 것이다.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하면, 외적인 부정에서처럼 그것 외 다른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소금의 ‘짠맛’을 그 자체에서 부정하면, ‘수3’이 되거나 ‘코끼리’가 되거나 ‘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짠맛’과 다른 속성 즉 ‘입방체’가 된다. 즉 그 부정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 일어나는 부정이며, 그러므로 그 부정은 ‘특정한 부정[bestimmte Negation]’이다.
이러한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부정된다는 것과 구분된다. 소금이 ‘흰색’이었다고 ‘보라색’으로 바뀌면, 즉 규정성이 변화하면(양상 변화) 이는 외적인 양태에서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는 소금의 ‘흰색’이 그 자체에서 일어나는 부정은 아니며, 외적인 방식으로 일어나게 된 부정이다.
6)
어떤 속성 즉 규정이 제한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당위와의 관계는 앞에서 설명했다. 어떤 것이 제한적이므로 그 자체에서 부정이 일어나면서 부정 판단 형식이 출현한다. 그런데 이런 하나의 속성은 다른 많은 속성과 교차하고 있으므로 이런 자기 부정성은 끝없이 계속될 수 있다. 헤겔은 이런 계속되는 부정성을 통해 무한 판단 형식이 출현한다고 본다.
칸트에서 무한 판단 형식이 긍정적 무한 판단이었다면 헤겔에서 무한 판단 형식은 일단 부정적 형식을 취한다. 구체적 예를 들면 “소금은 짠맛도 아니고, 입방체도 아니며, 또 …도 아니다 등.
“그러나 무한한 것은 단적으로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무한한 것은 유한한 것의 부정으로서 규정되며, 따라서 무한한 것 속에서는 명백하게 제한성과의 관계는 제거되고 그런 제한성은 무한한 것에서는 부정되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124쪽)
그러나 이런 무한 판단 형식은 사실 부정 판단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반복되는 것일 뿐 제한성의 수준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헤겔은 이런 무한성을 악무한이라고 하며, 이런 악무한의 단계를 다시 벗어나게 될 때 진정한 무한 개념이 출현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제한성의 부정을 통해서 무한한 것은 사실상 이미 제한성과 유한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요한 것은 무한성의 진정한 개념은 악무한으로부터 구별되며, 이성의 무한한 것은 지성의 무한한 것과 구별하는 것이다. 후자는 유한화된 무한한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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