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박물관[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14
그림자 박물관[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14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둥근 아침 해가 떠오르고 마을은 밝게 빛이 났어.
나루는 하늘을 나는 여행을 좋아했어.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둥근 아침 해가 떠오르고 마을은 밝게 빛이 났어.
나루는 하늘을 나는 여행을 좋아했어.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지난 주말 두 가지 판단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하나는 민주당 비대위 대표 박영선이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으로 활동하며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이상돈 교수를 비대위 위원장으로 내정했다는 정치적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 선거 개입 관련 재판에서 전 국정원장 원세훈에 내려진 법원의 판단입니다. 둘 다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예민한 문제인데, 저는 판단이라는 의미에서 한 번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따르면 판단은 보편과 특수를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는 크게 이미 존재하는 보편을 특수에 적용하는 규정적 판단과 특수로부터 보편을 찾는 반성적 판단이 있습니다. 전자는 도덕적이고 법적인 판단에서 많이 볼 수 있고, 후자는 미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에서 많이 내려집니다.
먼저 특수에서 보편을 찾는 정치적 판단을 보지요. 세월호 정국에서 비대위 대표를 맡은 박영선의 행로를 보면 괴이할 정도입니다. 새누리와의 협상안이 당내에서 두 번이나 부결이 되고, 유족들의 반발도 크게 샀지요. 협상 내용을 떠나서 협상의 기본적인 원칙과 방식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협상에 들어가려면 관련 당사자의 합의를 거친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상대측과 협상하고 와서 당내에서 그리고 유족들의 동의를 구하는 형태인거지요. 본말이 전도된 셈이지요. 비상 상황이라 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부결되었으면 다시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 실수를 두 번 되풀이하는 것을 보고 괴이쩍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두 번 실수는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새민련에서 그냥 넘어간 것도 문제이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새민련 내부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이상돈 교수를 영입하려 했다가 당내의 큰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아하, 이 대목에 와서 나는 박 대표가 정말 정치적 판단력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포스트 모던적으로 생각을 해서 여야와 진보/보수의 경계를 넘나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상돈 교수는 직전 대통령 선거까지 적장의 책사 노릇을 했던 자가 아닙니까? 그가 아무리 새누리를 비판하고 있고, 합리적 사고와 중도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적장의 책사를 자당의 비대위 위원장으로 앉히려는 생각을 했을까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 그렇게 했을까요? 나는 이것이 정치의 기본도 모르고, 정치적 판단이 전혀 안 돼 있는 데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현 상황이 아무런 질적 차이가 없이 무수한 잡다들의 혼재로 비춰진 것이지요. 다 그놈이 그 놈이고, 대신 좀 더 낫거나 좀 더 나쁜 정도의 차이로만 파악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상황의 보편적이고 객관적 의미나 원리가 파악이 안 되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한다는 것이지요.
칼 슈미트 이야기처럼 정치란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야 전선이 어디에 있고, 전략을 어떻게 세우며 전방과 후방에 인력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할 수가 있지요. 이건 강경파니 온건파니 하는 문제와는 상관도 없습니다. 그동안 새민련이 세월호 정국에서 허둥지둥 거리면서 새누리에 면박당하고 유족들 꽁무니를 따라 다닌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니까 어떻게 행동할 지 판단이 서지 않은 거지요. 한 마디로 정치적 판단력의 부재 혹은 무능, 정치에 대한 무감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입니다. 이럴 때는 다른 수 없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장수를 갈아치우는 수밖에요.
판단은 앞서의 경우처럼 특수한 상황으로부터 그 객관적 의미를 찾아가는 반성적 판단이 있는 반면, 어떤 원칙이나 규칙을 가지고 특수한 상황에 적용하는 규정적 판단도 있습니다. 국정원장이 지난 선거 정국에서 선거법을 위반했는지를 판단할 때, 국정원법을 위반해서 정치에 개입한 것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선거에 개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게다가 정상 참작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니까 사실상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은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명백히 국정원장이 직원들을 동원해서 11만 건이나 되는 댓글 공작을 한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고 구속도 되지 않았으니 국민의 법 감정이나 여론이 용납하기 힘든 것이겠지요.
법적 판단은 사건과 관련된 여러 증거들을 판단해서 해당 법 조항을 적용하는 것이지요. 이 때 이런 판단은 특수한 상황이나 증거에 어떤 조항이나 원칙이 적용되는 가가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상당한 증거 능력과 관련된 공방이 필요하죠. 본 사건의 경우에도 댓글 공작이 2012년 1월 전이고, 야당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특정 후보의 탈락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이런 댓글 행위가 일상적인 정치 행위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인지 등등을 따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증거가 확정이 됐을 때 검찰의 기소내용과 여기에 적용할 법조항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것이죠. 때문에 법원의 이런 판단은 상당히 정교하고 기술적인 법적 판단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법 실증주의자들이 말하듯 이 판단은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커피를 뽑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사건의 의미와 정치적 성격, 그 파장 등을 바라보는 재판부의 입장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재벌들이 탈세나 기타 등등으로 법원의 판결을 받을 때 이른바 국민 경제에 미친 공로나 영향 등을 판결 주문에 넣고 정상참작 운운하면서 집행유예로 빼 넣는 경우들이 다반사였습니다. 하자만 이것은 법치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재판부의 월권이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국민경제는 그들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에도 판사의 재량권과 해석권이란 차원에서 주관적이고 자의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법원이 재벌에 대해서 이런 봐주기식 판단을 상당히 제한하는 것은 법치와 사법부의 독립이란 측면에서 고무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재판부가 법조항이란 보편과 사건이라는 특수를 결합해서 판단할 때 자의성이 개입할 여지, 쉽게 말하면 정치적 판단의 여지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판결문이 문제가 됩니다.
이번 판결에서는 국정원의 정치적 개입은 인정했으면서도 집행유예로 빼준 것도 문제가 될 겁니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 기관, 특히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것을 인정하고서도 유야무야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판단이지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반 상식적인 정치적 판단을 재판부가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선거에 개입했는가의 여부를 판단할 때 적용한 법조항이 문제입니다. 법원은 선거법 제85조(선거운동금지)와 제86조(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금지)의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기소된 제85조 위반이 아니라고 합니다. ‘선거 또는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와 ‘선거운동’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공직선거법의 입법취지 및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지요.
제86조는 검찰의 공소장에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이 판단할 이유가 없어서 별론으로 처리를 했습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선거운동 한다는 것보다 외연이 넓고 포괄적이죠. 죄형법정주의 운운하는 것은 그만큼 법을 엄격하고 좁게 적용하겠다는 제스처지요. 여기서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연상케 합니다. 이미 국정원의 정치 및 선거 개입 여부에 대해 강력 수사하겠다고 했던 검찰 총장을 사생활 문제로 밀어냈고, 수사팀도 완전히 물갈이를 해놓았습니다. 이런 사전 정지 작업을 통해 건드리면 다친다는 무언의 경고를 한 셈이지요. 이제부터 검찰은 자기검열을 하게 된 것이고, 쉽게 말하면 알아서 기는 개가 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지요. 제86조는 이미 민주당에서 고발장을 제출할 때 적용한 법규인데 검찰이 그걸 몰라서 뺐을까요? 당연히 바보가 아닌 바에야 국민은 검찰과 법원, 그리고 그 윗선의 거래에 대해 상상력을 발동할 수밖에 없지요.
세 번째로, 선거운동금지에 관한 85조 적용문제를 보지요. 법원은 국정원의 조직적인 댓글 공작을 정치활동으로 인정했으면서도 집행유예로 무력화했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판단을 공소장에 없다는 것으로 빼버렸습니다. 이렇게 외연을 좁혀 놓고 나서 마지막으로 국정원의 조직적 댓글이 선거운동도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죄형법정주의 운운하면서 이렇게 좁고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느라 재판부도 고심 많이 했을 겁니다. 한 마디로 재판부는 축소전략을 쓴 것이고 이것이 일관성이 있다고 한다면 뭐라고 하겠나요? 법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는 것은 법원의 덕목이니까요?
그런데 담당 판사는 2013년 야당 시의원의 리트윗 단 한건에 대해 벌금 500만 원이라는 의원직 상실 형을 선고했고, 야당 후보자 배우자가 월간지에 보도된 내용을 인용해 상대 후보자의 부정축재 의혹을 제기하는 이메일 1건을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 쪽에서는 법을 한 없이 축소해서 적용하고, 다른 쪽에서는 한 없이 확장해서 적용한 셈이죠. 이러니 일반 국민의 법 감정은 법원의 판결을 고무줄 판결이라고 생각하고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로 생각하는 거지요. 법관의 자의성과 주관성, 게다가 정치적 판단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판결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겠죠. 당장 현직 동료 판사가 이 판결문을 가지고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비난하고 나선 겁니다. 동료의 판결문을 비판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용기 있는 행동일 것입니다.
중요한 대통령 선거 정국을 앞두고 정치에 개입은 했지만, 선거 운동은 아니라는 판단은 개도 웃을 일이지요. 손바닥으로 해를 가린다고 해서 가려질 수 있을까요? 법관들이 이렇게 뻘짓을 하니까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법원 판결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판결을 가지고 어떤 이들은 법관들이 형식논리도 모른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입니다. 검은 것을 검다 하고, 흰 것을 희다고 하지 못하는 거짓의 문제이지요.
나는 모든 법관들이 이렇게 정치성을 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물전의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소수의 출세지상주의 판사들이 사법부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지요. 당장 이 판결문에 대해 의롭게 문제제기를 하는 판사도 있고, 또 이재현 CJ 회장에 대해 과거의 재벌 봐주기 식과 다르게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는 재판부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번의 원세훈 판결과 2013년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국정원 수사 은폐 사건 판결 같은 것은 법원이 스스로 알아서 기는 개가 되는 치욕적인 판결이고, 사법적 정의를 크게 후퇴시키는 판결이라 생각합니다.
검찰이야 행정부 소속이고, 최고 권력자의 입김이 검찰총장을 통해 압박으로 가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삼권이 분리된 법치국가에서 법원이 독립적으로 판단을 하지 못하고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국민으로서 대단히 불행하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법치는 헌법이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법을 운용하고 적용하고 또 판단하는 법관들이 법의 정신을 지키려고 노력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금력이 지금 정치를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국민을 소외시키고 있을 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사법부가 아닐까요? 이 점에서 본다면 법률적 판단은 단순히 보편을 특수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규정적 판단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특수가 지니고 있는 보편성을 알아가는 반성적 판단도 개입하고 이를 통해 법의 정신과 법치주의가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페북의 타임라인을 보다 보니 두 가지 기사가 유독 눈을 끈다. 하나는 삼성 반도체 노동자로 일을 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은 황유미 양의 아버지에 관한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경영판단의 원칙’에 관한 김 상조 교수의 시론이다. 둘 다 삼성과도 관련이 있다.
고 황양의 아버지는 인터뷰에서 항소심에서도 유가족의 판단에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딸이 백혈병에 걸린 지 9년만이고, 죽은 지 7년 만이다. 그 긴 세월 동안 꽃 같은 딸이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에 가슴아파하고, 또 그만큼 긴 세월동안 나 몰라라 하는 재벌 기업을 상대로 분노하면서 싸워왔던 아버지의 힘들었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한국사회에서 개인이 재벌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외롭고 힘들고 모든 것을 바쳐야 하면서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이겨내고 승리한 것이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힘이다. 그만큼 이런 승리는 보석같이 빛난다.
삼성반도체와의 싸움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직업병으로 판정된 것은 2 케이스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산재 보상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정치 논쟁은 끝이 없지만 법원의 판결은 중요한 판례로 유사 사건들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투쟁만을 일삼는 세월호 공방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삼성도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며, 다른 유사 사건들도 전향적으로 잘 마무리를 했으면 한다. 삼성이 오늘날의 성공 신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건희 회장을 위시한 소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그 이면에 수많은 직원들의 헌신과 고통, 그리고 반도체 사망자들처럼 산재로 죽어간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국민들의 소비와 국가의 정책적 지원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세계적으로 성장한 기업으로서 윤리의식과 책임의식을 같이 키워야 할 것이다.
사실 이번 판결이 나기까지 무려 7년이나 걸렸던 데는 삼성의 무력시위와 악의적인 방해 공작, 그리고 막강한 로펌의 인력들이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법률가들의 지원을 받았기는 하지만, 이런 삼성의 권력에 맞서 일 개인이 소송을 벌인다는 것 자체도 상상하기 힘들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과 같기 때문에 미국의 법정이었더라면 이번 판결에서 단지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 이상으로 소송과정에서의 재벌의 행태에 대해 ‘징벌적 손해 배상’이 적용되어 천문학적 책임을 물게 했을 것이다. 이 법은 우리 국회에도 상정이 되었지만 국회로 진출한 법피아들의 방해로 아직도 계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징벌적 배상 제도가 적용된다면 기업도 마음대로 소송과정에서 횡포를 부릴 수가 없을 것이다. 법원도 이 문제를 좀 더 전향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야 이 땅에 정의가 살지 않겠는가?
다른 하나는 2년 가까이 소액주주운동을 벌여온 김상조 교수의 ‘경영판단의 원칙’에 관한 글이다. 지난 세기 말 IMF를 겪고, 2009년 금융위기도 거쳐 온 기업들이 투자 불확실을 이유로 사내에 엄청난 유보금을 쌓아 놓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학도 천문학적 유보금을 쌓아 놓고 등록금 타령만 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유보금을 그대로 적립할 것인지 아니면 특정 부문에 투자를 할 것인지는 기업의 고유한 경영판단이라는 것이다.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현 경제 내각이 이 부분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용두사미 격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런 경영판단은 일종의 초헌법적인 통치행위와 비슷한 의미가 있다. 국정의 총책임자인 대통령의 판단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특별권력관계의 통치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정권 때 엄청난 부실과 이권으로 진행된 4대강 사업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날 헌법학자들은 이런 초헌법적 통치행위가 헌법의 정신을 무력화한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학설을 정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경영판단의 원칙이라는 것도 그 경계와 책임이 모호한 면이 적지 않다. 오늘날 기업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막중하다. 그런 기업, 특히 삼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경영판단의 잘잘못은 국가 경제와 국민들의 일상적 삶에도 큰 충격을 미칠 수가 있다. 때문에 그런 기업의 경영 판단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김 교수가 벌이는 ‘소액주주운동’도 그런 견제의 한 방식이다. 김 교수는 20년 전부터 경실련을 배경으로 소액주주 운동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삼성과도 많은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사실 이런 감시와 견제를 위해서는 단순히 분노와 의기만 믿고 할 수 없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요구된다. 때문에 이것은 그 방면의 전문가들, 지식인들만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뛰어들 수 있는 부문이다.
나는 김 교수를 보면서 이 땅의 지식인들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늠한다. 전문적 지식을 갖고 높은 연봉을 받는 대학교수들이 일반인들과 똑같이 피켓 들고 행진하고 단식 흉내 내고 하는 것은 직무 태만이고 유기이다. 물론 그런 행동들이 전혀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높은 연봉을 받는 만큼 그런 전문성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들은 사회를 비판하고, 국민들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이론을 만들어야 하고, 전문적 식견을 통해 그런 비리와 불평등을 실증적으로 밝혀내야 한다. 1980년대 초 프랑스에서 사회당이 압승을 거둔 데에는 68운동 세대들의 이론들이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대학사회의 구조적 부정의와 불평등과 싸워야 하고, 이제 노골적으로 극우행동을 하는 젊은 학생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싸워야 한다. 오늘날 자본과 권력에 의해 순치된 대학이 자기 검열에 급급하는 데 어떻게 사회 비판을 할 수 있겠는가? 세월호 문제가 정체된 데는 지식인들과 법률가들의 전문성이 실종된 상태에서 일반인들과 똑같이 행동한 책임도 크다. 공론장을 이야기하고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떠들던 이 땅의 수많은 하버마스리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할 뿐이다. 결국 그들에게는 피켓 들고 세월호 운운 하는 것과 이 땅의 현실과 유리된 이론들을 수입해서 저들끼리 골방에서 티격태격 하는 것 사이에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 같다.
사정은 정치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국회의원 한 명을 운영하는데 연간 들어가는 비용이 5-6억이 넘는다고 한다. 본인의 세비와 보좌관들의 연봉, 그리고 사무실을 운영하고 기타 등등으로 들어가는 비용이다. 입법과 의정 활동을 하라고 국회에 보내주었지만 이들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세월호 문제로 정치가 실종되는 동안 입법 활동을 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직무 태만이 아니라 유기이고 해고감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세비는 꼬박꼬박 챙기고 있다. 하다못해 감옥에 있는 통진당의 이석기 의원도 그동안 챙긴 세비가 6억이라고 한다. 거기다가 동료의원의 비리를 감싸는 방탄 국회를 만드는 데는 여야 없이 합심단결하고 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하루 종일 폐지를 줍는 이 땅의 노인들의 한 달 폐지 수입이 5만원이고, 사회 변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NGO 단체의 간사들이 한 달 100-150만원도 안 되고, 열심히 지식보따리를 들고 이 대학 저 대학으로 강의를 위해 뛰어다니는 대학 강사들의 연 수입이 1000-2000만원도 안 되는 현실을 그들은 아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탱자탱자 하면서 엄청난 세비만 챙기고 특권만 누리고 있는 것이다. 무노동 무월급은 파업현장의 노동자들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정치인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는 전문가들이 사라진 사회이고, 전문가들의 윤리와 책임의식이 실종된 사회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저 구석에 있는 지식인들의 이름은 꿰고 있지만, 우리 현실을 대처할 때는 그저 몸으로 때우는 것 외에는 -그것이라도 제대로 하면 모르겠지만- 할 줄 모르는 게 지식인이다. 아무런 전문적 훈련도 받지 못하고, 역량도 없는 인간들이 열심히 눈도장 찍어서 공천 받고 발품 팔아 당선되고 나면 나 몰라나라 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한 이 땅의 변화와 개혁은 요원할 뿐이다.
그림자들은 열린 문으로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고
마법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른 체 쿨쿨
마법나라의 젊고 힘센 왕이 되는 꿈을 꾸며
꿈의 나라로 빠져들어 갔어.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4달이 넘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책임이 있고,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오히려 딸의 죽음의 진상을 밝힐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는 유민의 아빠 김영오 선생만 37일이라는 초인적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듯하다. 그이의 얼굴, 그이의 눈빛을 바라 볼 때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길 없는 어떤 숭고함의 비극을 느낀다. 그는 법제정이 이루어지 지지 않는 한 죽음도 불사하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오늘 여야는 재협상을 통해 다시 합의안을 끌어냈다. 지난 번 합의안에 비해 특별히 주목할 사항은 1-1. 항목이다. 즉 “특별검사 후보 추천위원회 위원 중 국회에서 추천하는 4명 중 여당 2인의 경우 야당과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받아서 선정하여야 한다.”
이 합의안에 대해 김영오 선생을 위시한 유가족들은 당장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유가족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정국은 다시 화해와 타협이 불가능한 파국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김영오 선생도 목숨을 거는 단식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야 합의안과 유가족들의 반대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이처럼 죽음을 불사하는 단식을 지지할 수도 없고 허용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예민한 정국에서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다음에 제시하는 몇 가지의 이유는 내가 충심으로 제시하는 것들이다.
첫째로, 선생의 뜻은 숭고하지만 생명까지 파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리자는 법을 죽음을 담보로 만들 수 없다. 선생의 결연한 입법 의지는 지금까지의 단식으로도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선생에게는 죽은 딸만이 아니라, 앞으로 잘 키워야 할 딸도 있다. 그 딸에게는 언니가 죽은 것이 깊은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아빠의 똑같은 모습을 대한다면 그것은 도저히 부모로서 보여줄 모습이 아니다. 아빠의 그런 행동은 진정성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가족이라는 큰 인륜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 개인의 목숨이 이 사회의 미래를 다 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져도 안 된다. 세상의 질서는 개인의 진정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단식은 도저히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 없는 약자가 자신의 의사와 의지를 표현하는 마지막 수단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을 불사하고 생명을 내 던지는 수단이 된다면 더 큰 인륜을 파괴할 수 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안에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인륜적 질서가 있다. 이 인륜적 질서가 파괴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겠는가? 개인의 진정성은 새로운 독단일 수 있고, 광기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특별법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특별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입법이 되어도 그 법에 따라 누가 어떤 의지를 갖고 조사를 하느냐가 있고, 조사의 결과를 가지고 법원에서 다툴 때도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지 모른다. 또 그 판단의 결과를 가지고 실행에 옮길 때도 수많은 방해와 공작이 있을 것이다. 싸움은 특별법 하나로 단판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는가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첫 단추 하나에 모든 것을, 특히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걸 수는 없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은 앞으로도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장소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 때마다 성숙한 국민의 비판 정신으로 장애물을 관철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특별법이 만능열쇠인 양 여기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지나치게 법을 물신화하고 신격화하는 것이다. 이제는 정파 간에 타협을 해야 할 때이다.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두 번째 합의안이 나왔다. 정치는 타협이고, 법은 그 타협의 산물이다. 이미 협상에 들어갈 때부터 성역 없는 수사권이 아닌 특검추천권을 쟁점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당 2인의 경우 야당과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받아서 선정하여야 한다”는 합의안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이 정도의 문제로 목숨을 건 단식을 계속할 수는 없다.
셋째, 법은 도덕이나 종교가 아니다. 도덕과 종교는 모든 악을 버리고 절대 선을 취하는 근본주의를 선택할 수 있지만, 법은 정치 세력 간에 타협할 수밖에 없고 차선책일 수밖에 없다. 국가는 이런 법에 의해서 움직이는 체제이다. 아무리 숭고한 뜻을 가졌다 하더라도 한 개인의 목숨을 담보로 그런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특별법이 유가족들의 뜻에 못 미친다고 하면,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의지와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그것은 유가족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야권의 정치적 역량의 한계이고, 세력이 불리한 탓이다. 그것은 입으로만 비판을 외칠 뿐 실질적인 변화의 역량 구체에는 관심 없는 이 땅의 양심 세력들의 한계 탓이다. 이런 부족한 역량과 불리한 세를 가지고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겠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독단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민주주의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법은 그 시대를 사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지의 산물이다. 특별법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의지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은 도덕이나 종교처럼 최선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의 입법을 원하면서 죽음을 불사하는 순교의 정신을 보인다면, 그것은 이 나라를 도덕 국가, 신정 국가로 되돌리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이다. 순결한 도덕과 종교의 정신이 잠시 우리 정신을 위안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법을 제치고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최종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좋든 싫든 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그 법은 정치 세력들 간에 타협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길래 어떤 철학자는 그 시대의 법은 그 시대의 국민의 정신의 수준을 대변한다고 말한 것이다.
여야 간의 합의안에 유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민단체와 새정련 내부에서도 다시 반발이 크다고 한다. 유족들의 반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더는 유가족들을 세월호 정국의 최전선으로 내밀어서는 안 된다. 그이의 끝없는 단식을 볼모로 현 정세에서 이룰 수 없는 조건을 더는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죽음을 불사한 단식을 영웅시하면 안 된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나쁜 것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새정련 내부에서 타협안을 거부하는 의원들의 비겁함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당신들의 무능함으로 현실 정치의 주도권도 내주고, 세월호 정국도 지지부진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풀어야 할 것을 풀지 못한 탓으로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볼모로 잡힌 것이 아닌가? 당신들이 진정으로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전에 의원직 총사퇴를 하라. 그 길만이 실종된 정치를 되살리고, 벼랑 끝에 선 유가족들을 살리는 것이다. 이제는 도덕과 종교가 아니라 정치가 나서야 할 때이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단식을 반대하는 이유는 한 가지로 모아진다. 이 세계 안에, 그리고 이 세계 밖에서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생명을 내 던지는 순간, 이 사회는 더 위험한 나락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부디 이제 그만 단식을 중단해주길 바란다. 선생의 숭고한 뜻을 가지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이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으로 나라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대한민국의 흥보 효과를 생각하고 있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시한 야권은 대한민국의 부정의를 알리고 세월호 문제를 풀어주었으면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기독교에 대해 별로 호의적인 사람도 아니고, 또 일 개인을 영웅처럼 숭배하는 분위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때문에 교황 방문을 그저 외국의 한 사절이 오는가보다 하는 정도로 데면데면하게 생각한다.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다. 부도덕하고 불평등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이탈리아 정치의 암적 존재인 마피아를 파문하고 또 한없이 고통받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교황의 모습은 종교 지도자 이전에 인간적으로도 존경할만하다.
나는 모든 것을 물질의 운동으로 믿는 소박한 유물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체 유심조를 순박하게 믿는 유심론자도 아니다. 아마도 유물론과 유심론의 절충이거나 양극단의 화합을 요구하고 중용을 찾는, 그래서 대개는 건전한 이성의 봉쌍스에 기대는 사람 정도가 나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교를 배척하지도 않고, 숭배하지도 않는다. 또 종교를 무시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종교 역시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인간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형식(Lebensform)으로 이해해도 좋다. 나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때로는 모든 종교에 대해 싸잡아 비판할 수 있는 거리 유지에 도움이 된다. 내 수업을 듣던 어떤 신심이 굳은 학생은 나의 이런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한 번은 창조 과학과 전도와 관련된 책 두 권을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종교에 한번 젖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서 내 학생의 부모인 목사에게 내 딸을 좀 인도해 줍사고 데려간 적도 있다. 내 딸도 한 1년 열심히 다니더니 나를 닮아서 그런지 그 다음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산을 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다름 아니라 전국의 유명한 사찰을 탐방하는 일이다. 그래서 유명 산천의 도처에 있는 웬만한 절들은 다 가봤고, 사찰마다 미묘한 분위기와 풍경의 차이 등을 좋아한다.
내가 결정적으로 유물론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 종교의 발생과 진화를 여러 가지 차원에서 설명하지만, 나는 종교를 결정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한다. 하나는 종교의 초월과 관련한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에서 종교가 던지는 메시지와 관련되어 있다. 종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인간의 유한성을 깨우치고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늪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는 바울의 고백은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음을 통렬히 고백하고 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아침 이슬과 같고 파도 거품과 같다는 금강경의 한 구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유한성에 대한 자각으로 인해 종교는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을 감각적이고 가시적이고 현세적인 것에만 머물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의 이 삶에 대한 우리의 단단한 시야를 끌어 올려 저 너머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현실 도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이러한 초월에 대한 자각은 현재의 삶을 보다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죽음에 대한 자각, 초월에 대한 의식은 현재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하고, 또 무엇을 지향할 것인지를 깨우쳐준다. 모든 상대적인 것들 너머의 어떤 절대자는 이런 유한자들의 불평등과 부정의, 부도덕 등을 성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하나의 지침이다. 맑스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폄하하고, 과학적 실증주의나 유물론이 비등할 때마다 종교를 전근대적이고 미신적이라고 부정해왔지만, 종교가 갖는 이런 초월에 대한 인간의 지향성을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고등 종교의 메시지는 한 결 같이 사랑과 자비 등과 같이 더불어 사는 인간들 간의 관계의 덕목을 중시한다. 이런 사랑과 자비는 빈부와 남녀,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이점에서 본다면 종교는 근대의 평등이나 인권 사상이 나오기 훨씬 이전에 평등과 인권의 사상을 선취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가 산상수훈을 할 때 전한 사랑의 메시지는 현실 세계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혁명적 메시지이다. 신은 인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불평등한 신분과 권력관계를 넘어서 있는 사랑이라는 것이 아닌가? 이런 예수의 모습이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구원과 희망, 혹은 해방의 선지자로 보였고, 기존 권력의 지배자들에게는 반역을 꾀하는 혁명가로 비춰졌을 것이다. 이런 사랑의 정신은 불교의 자비의 정신, 혹은 유교의 인(仁)의 사상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점에서 모든 고등 종교는 이 세계 안에서 인간들이 다른 어떤 조건이나 제약, 차이 등을 넘어서 서로 더불어 사는 지혜를 깨우쳐 주고 있다. 나는 현실 세계 안에서의 종교의 가장 큰 얼굴은 사랑 그 자체라고 본다. 그런데 꼭 근본주의가 아니라도, 종교의 이름을 걸고 증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경우를 우리는 부지기수로 본다. 종교가 현실 세계에서 하나의 권력이 되고, 이 권력 다툼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선봉장 역할을 하는 경우이다. 종교는 내면의 확신을 지지해주고 정당화해주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강하고 무서울 수 있다.
사실 종교가 현실 권력으로 변질되는 데는 종교 자체에도 원인이 있다. 예수나 석가, 혹은 마호메트나 공자와 같이 최초의 선지자의 메시지가 전달될 때는 사랑과 진리, 그리고 초월 등의 메시지는 선지자 자신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선지자가 죽고 나서 그의 메시지가 후대로 전달될 만큼의 생명력을 갖추려면 몇 가지 조건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선지자를 따르는 제자들 집단이다. 이런 제자들 가운데는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도 있고, 이 제자들의 제자들도 있을 것이다. 순전히 스승의 가르침을 전달하려는 이런 제자들 혹은 신자들의 집단이 후대로 가면서 전문화된 사제 집단으로 관료화될 수 있다. 그 다음 선지자가 죽고 나면 그의 가르침의 원형을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생긴다. 일종의 교리를 정립하는 것인데, 이것은 경전으로 완성된다. 경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단을 배척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다. 이렇게 정립된 교리가 초기 선지자의 가르침을 완전하게 대변하는지의 여부는 다를 수도 있다. 교리가 만들어지고 사제집단이 형성되면서 그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도 동시에 필요하다. 성당이나 교회, 그리고 사찰이 그 경우이다. 그러므로 모든 고등 종교가 역사적으로 등장하고 제도화되는 과정에서는 이 세 가지가 필수적으로 구비되는 것이다. 즉 선지자의 순수한 가르침이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역사화되고 제도화되는 과정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종교의 세속화라 할 이런 모습을 실정성(Positivit?t)이라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실정성은 최초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현실 속에 뿌리를 내리면서 현실 권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교리는 도그마(Dogma)로 화석화되고, 사제집단은 관료화된 기생집단이 되며, 교회는 세속 세계의 부와 권력의 집산지가 된다. 다시 말해 종교의 본질 중의 하나인 초월과 사랑의 정신을 망각한 채로 세속 권력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부패한 종교는 종교를 가장한 현실 권력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이런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등 종교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번에 내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신자들이 아닌 사람들까지 열광하는 데는 교황이 보여준 종교의 본래 정신과 본질을 그에게서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교황은 바티칸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현실세계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비판하고 경고한다. 오늘날 대안 없이 절대 강자들의 놀음 터로 변한 신자유주의의 자본의 논리에 대해 그는 거침없이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비판하고, 흔히들 말하는 낙수효과나 파이효과에 대해 “그릇과 파이만 키운다”고 독설을 퍼붓기도 한다. 벌써부터 교황의 이런 행보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은 교황을 마르크스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자로 낙인찍고 있다. 종교의 본래 정신으로 현실 자본주의나 기타 사회적 모순들을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얻어낸 제정분리와 탈 주술화의 정신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새로운 중세 화를 염려하기도 한다. 물론 교황식으로 비판한다고 해서 오늘날 자본주의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하지만 비신자인 일반인들까지 교황을 반기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 이 현실권력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깨뜨려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종교의 참다운 정신인 만인 평등의 정신과 사랑을 수평적으로나 수직적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을 교황의 거침없는 행보에서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교황의 정신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위로하고, 이 땅의 곳곳에서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며, 나아가서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위정자들과 고삐 풀린 한국식 신자유주의가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 같은 글이 <오마이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22095
세월호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윤일병 폭행치사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멀쩡한 아들을 나라를 지키라고 군대를 보냈더니 군 내무반에서 몇 달 동안 조직적으로 폭행을 당하다 사망했다니 부모 심정이 어떻고, 현재 군대에 있거나 앞으로 군대를 보내게 될 부모들은 또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국방의 의무는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이다. 그래서 20세 이상의 신체 건강한 성인남자라면 누구든 이 의무를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대한민국은 6.25 남북 전쟁을 경험했고, 현재도 평화상태가 아닌 휴전상태이기 때문에 남북간의 대치와 긴장이 적지 않다. 때문에 한국에서 군대의 역할은 사회의 어떤 부문 이상으로 막중하고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그런 군대에서 일어나는 폭행과 사망사건, 자살과 의문사 사건, 그리고 탈영병들의 총기 사건 등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다. 군은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개혁을 다짐하지만 사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수 십 년 전부터 있어 왔던 일이다. 윤일병 치사 사건을 이야기하다 보니 군대를 수 십 년 전에 제대한 내 대학동기들의 카톡방에서는 마치 어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한 체험담들이 올라오고 있다. 폭력의 체험이 그만큼 생생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몇 안 되는 사례지만, 나는 이런 사례들을 계기로 군대 폭력 백서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고통스러운 역사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첫번째 사례> 신** 현직 대학 교수?
“아마 우리 동기들 모두 비슷한 군대 시절 어두운 기억이 있겠지만 나도 80년 입대해서 **훈련소 조교로 근무할 때 고참의 술 외상값 20여만원을 대신 갚기를 거부했다고 10여명의 조교가 저녁부터 점호도 열외당한 채 그 병장 동기들로부터 4시간여 집단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 결국 내가 술취한 병장의 군화에 얼굴을 맞아 입술이 찢어져 집합은 끝났고 나는 의무실로 후송되어 열 바늘 이상을 꿰맸고 그 흉터는 아직도 내 얼굴에 대한민국의 병역의무를 마친 증거로 뚜렷히 남아있다. 사실 구타보다 내가 더 실망했던 것은 사고 후 헌병대와 보안부대에서 사고조사 과정이었다. 조교가 입술을 열 바늘 꿰맸고 타박상의 흔적이 온몸에 있고 당시에도 엄격한 구타금지 지침이 있었기에 의무장교가 신고를 해서 헌병대와 보안부대에서 조사를 나왔지만 구타금지 목표달성을 염려한 연대참모 장교들의 강력한 회유와 압력으로 나는 청소 중 넘어졌다고 진술하였고 수사관들은 내 온몸의 멍은 확인하지도 않은 채 단순 사고로 종결하였다. 이 과정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 끼어들어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과 절망감으로 인한 마음의 아픔이 구타로 인한 몸의 통증보다 몇 배는 아팠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사건을 보며 무려 30년도 전의 군대문화가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지만 우리세대가 보다 나은 미래를 물려줄 수 있기를 아직도 기대해본다.”
이 동기는 군대의 악습과 관련한 집단 폭력도 문제지만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의 문제점을 적고 있다. 군내의 불투명한 사고 처리 과정은 조직적인 은폐로 이어진다. 그동안 군대 내의 수많은 의문사, 자살 사건들에 대한 재조사도 필요하다. 따라서 사고 처리와 관련해서는 군 감찰만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군 외부의 민간 인사가 참여하는 전문 조사기구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백서 이야기를 했더니 내 동기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덧붙이고 있다.
“취지에 적극 동감하며 내경험 관련하여 첨언하면. 첫째 군대 내 폭력 등 사고 보다 투명하지 않은 사후 조사과정이 더 문제다. 즉 사고 관련하여 관리책임 문책 등의 불이익이 두려워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군대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폭력근절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고, 둘째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니 구성원 모두가 작더라도 개선을 향한 노력을 해야 할 듯. 내 경우 말년 병장의 외상술값을 후임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그 당시 그 부대에서의 관습이었으니 이를 거부한 것이 폭력사고를 유발했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물려받고 물려주는 악습을 되풀이 했을 테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지 모를 일 아니겠나. 외상값 대신 내 주고 물려주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도 적은 금액도 아니었고 젊은이의 순수함이 군대에 와서 오염되는 것 같아 그냥 몸으로 때운 셈이지 ㅠㅠㅠ”
<두번째 사례> 박** 기업임원 은퇴
?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젊은 날의 우리들의 모습이야. 나 역시 모종의 사건에 본의 아니게 개입되어 쇠파이프로 얻어맞다가 정신 줄을 놓고 회복실로 실려 간 일부터, 기억하기 싫을 정도의 구타를 여러 번 당했는데 어떤 때는 부대 내에 있으면 맞아 죽겠다 싶어 무단이탈 을 한 적도 있었네. 다 지난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네. 그러나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맞으면서도 끝까지 내 몸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삶에 대한 본능에 따라 처신하고 대응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네. 덕분에 제대할 때 앞 이빨 세 개를 포세링하고 나왔는데 군대서 공짜로 하는 대신 실험케이스로 그중 이빨 하나를 새로운 신경치료방법을 적용하다 실패해서 나중에 그걸 뜯어내는데 접착제가 얼마나 강한지 이빨 세 개가 통째로 빠질뻔 한 적도 있었다네. 각설하고 제대 후에 꾸는 가장 큰 악몽이 다시 입대하는 거라는데 나 역시 그런 꿈을 자주 꾸었다네. **이나 **나 다 나처럼 대부분의 우리 동기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하네. 그러면서도 잠시라도 윤일병 사건에 대하여 남의 일처럼 생각한 시간이 있는 듯하여 반성이 된다네. 아무쪼록 다양한 개선방안을 통하여 다음 세대에서 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기원하네.”
내가 백서로 만들자고 하니까 그는 처음에 자기 사례는 빼줬으면 한다고 말한다. 개략적으로 뭉뚱그려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체험만이라도 충분하다고 하니까 그는 더 심한 경험을 이야기해주면서 동의를 해준다. “스트레이트 100대라는 구타도 당해 봤지. 가슴 한 복판 동일한 위치에 정확히 100대를 주먹으로 맞는 구타 방법인데 맞고 나면 아파서 기침도 못하고 죽은 피가 흘러서 하체까지 피멍이 드는 그런 매도 맞고 버텼지. 한번은 참겠는데 두 번째는 진짜 죽겠더라. 그래서 다음 번에는 죽기를 각오하고 엉겨 붙어 끝장낸 적도 있었지.” 정말 일반인은 상상하기도 힘든 폭력이다. 이런 체험을 다시 기억하는 것조차 고통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동기의 이런 이야기가 참으로 용기 있는 고백이라 생각한다.
<세번째 사례> 홍** 대기업 임원?
“요즘 군대내 폭력 문제가 집중 터져 나오고 있는데 나도 4학년 1학기 마치고 79년 10월 **훈련소로 입대하여 군복도 입기 전에 민간인 복장의 장정시절에 내무반에서 3시간 넘게 폭행당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날밤 불안, 설렘, 호기심 등 복잡한 심정으로 조신 있게 있던 중인데 느닷없이 옆 내무반 고참 하사가 들어와서 어깨안마를 하라고 했지요. 난 그저 투닥 투닥 두드렸는데 “이 새끼가 안마를 하나 구타를 하나”하면서 확 일어나서 째려보면서 ‘엎드려 뻗쳐’부터 마구시키는데 내가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니까 그때부터 본격 때리고 차기 시작하여 7시부터 10시까지 폭행을 당했지요. 난 폭행당하면서도 그놈 얼굴을 정면 응시하면서 “아 저놈이 악마의 화신이구나.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고 속으로 이를 갈았지요. 지금도 그놈 얼굴을 기억합니다. 10시 취침나팔 때문에 폭행은 멈췄지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11-12시, 1-2시, 3-4시에 걸쳐 3회 불침번을 서도록 지시하면서 그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내일 아침 전체 벌주겠다고 협박하여 골병든 몸으로 잠도 못자고 불침번을 3회 서게 되었지요. 동료장정들이야 공포감에 침묵했지만 우리 내무반장 병장은 왜 가만히 있었는지, 그 비굴함과 무책임감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 폭행하사는 정**, 군번은 얻어맞으면서 외웠는데 지금은 잊어 버렸네요. 제대를 1주일 앞두고 외부 산으로 싸리나무 작업을 나갔다가 고생하고 와서 화풀이했다고 나중에 들었지요. 다음날 의무대로 신체검사 가서 군의관한테 신고했고, 의무대장 면담을 요청해서 의무대장실에서 사실을 그대로 설명하고 폭행자 정**을 처벌하고 방치자 내무반장을 교체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중대장 대위가 불려와 내가 보는 앞에서 의무대장 중령한테 워커발로 조인트 까이고 나서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 고향 초를 한 갑 주면서 피우라 하고 커피까지 직접 타주었지요. 악마 정하사가 바로 와서 내 온 몸을 안티프라민과 무슨 약으로 바르면서 하는 말이 “너가 항복하지 않고 계속 개기면서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아서 너가 무서웠다. 그리고 반성문 쓰라 할 때 쓰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거기서 그쳤을 텐데” 하면서 도로 나를 원망하는 투여서 기가 막혔지요. 법대로 군사재판을 받게 할 것을 계속 주장했지만 중대장이 **대 ROTC 말뚝인데 남한산성 군 형무소로 갈 경우 자기도 옷 벗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여 자대영창 최고인 15일 영창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문제 제기하지 않기로 했지요. 계속되는 가슴 통증을 느끼며 본격 훈련받던 중에 여호와의 증인으로 총 들기를 거부하여 영창 갔다 온 동료에게 정** 하사 영창 생활을 물어봤더니 그 새끼 하는 말이”제대 말년에 재수 없게 똥 밟았다”고 하면서 아직도 반성하지 않아서 아주 괘씸했던 기억이 납니다. 논산 훈련소를 마치고 나올 때 소원수리제도가 있었는데 그때 중대장과의 약속을 지켜 아무런 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악마의 화신 정**을 지금 만나도 뺨 때기 때려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동기는 자신이 당한 부당한 폭력을 교훈으로 삼아 자신이 상급자가 되었을 때 그런 폭력을 없앴다고 한다. “내가 확 바꾼 게 아니라 내 입대 당시 구타금지가 실시되고 얼차려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일부에서 구타가 근절되지 않았던 게지. 그 때도 군 인권뿐만 아니라 군 전력 차원에서 구타금지를 강력 실시하긴 했었지. 그래서 구타 행위가 적발되면 처벌하였어. 내가 입대하니까 유신군대라 하면서 구타 없는 군대라고 홍보하더군. 그전에는 구타가 일반화되어 있었고 당연시 되었다더군. 내가 **3사관학교 병원 부대에 배치되어 일부 잔존하는 구타까지도 고참되었을 때 근절시켰다는 게야. 물론 나는 자대 배치 이후 한 번도 맞은 적은 없었고 얼차려만 받았지. 만기 제대가 아닌 교련 혜택 6개월 단축 제대로 병장 고참 기간이 짧았긴 해도 그 기간만큼은 확실히 금지시켰네.” 이 동기의 경우를 보면 군내 폭력 문제는 책임자의 의지와 문화 개선 등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폭력을 되물림하지 않으려는 상급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네 번째 사례> 이** 현직 기업 대표?
“ㅎㅎ**가 고생 많았구나.^^그런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경험이 없는 친구들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하사로 수용 연대에서 차출되어서 훈련도 그렇고 자대에서도 병들과 싸우고 선임하사들한테 터지고. ㅠㅠ?
근데 빠따는 치면 안 되겠더라구. 내가 선임되면서 빠따를 안치니 제대 이틀 남겨놓고 후배들이 계곡에서 벌거벗은 채 슬레트 깔고 돼지고기 구워먹으면서 쏘주를 같이 하는데 빠따 한 대씩 맞아 보겠다는거여…술김에 그랬겠지만 속으론 이런~미친 놈 있나? 그러면서 벌거벗은 몸에 한 대를 때렸어…그랬더니 피가 근육 속에 터져 번지는 게 눈에 확 들어오는 거야…?
군복위로 때리니 그런걸 모를텐데 몇 십대씩 맞었을 땐 몰랐던거지. 암튼 폭력은 없어져야지..”?
이 동기의 경우는 농담삼아 빠따를 쳤을 때의 경험을 적어 주었다. 폭력은 피해자 못지않게 가해자에게도 충격과 고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이런 사례도 있다. “내 동갑 외사촌도 자대에서 머리를 가격당해. 의병 제대 했고. 거의 집안 망하다시피 했고. 얼마 전 죽었지. 원호 대상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집안 마다 그런 사연들 하나쯤 있지.” (오**, 현직 대학교수) 군대 폭력으로 불구가 되는 경우, 게다가 원호 대상으로 지정되지 못했을 경우, 그로 인해 한 집안이 붕괴되는 경험도 적지 않을 것이다. 모든 고통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떠맡을 수밖에 없는 경우이다.
<다섯번 째 사례>?
윤일병 사건에 대한 단상 김** 현직 변호사.?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어느 한 청년이 2달 동안 매일 폭행당하다가 비참하게 죽어버린 최근 사건에 대해 세상이 시끄럽다.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 지휘, 통솔라인의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를 위해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고 여러 언론들이 북과 장구를 치고 있다. 이미 벌어진 비극적 사건이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윤일병은 2달 동안 폭행을 당해 죽음에 이르는 시간동안 왜 항거하지 않았을까? 가해자들의 상급자에게 직보함으로써 군대 내의 폭력 상황에 대한 저항을 왜 하지 않았을까? 아마 윤일병도 이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했겠지만 저항해도 별 수 없다고 스스로 체념했을지 모른다.?
돌이켜 나의 군대생활을 회상해 본다.
내가 79년 1월에 육군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사단 ***연대에서 성스러운 병역의무를 다하고 있을 때인 1980년에 전두환을 간접방식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위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위원선거가 있었다. 당시 주소지 동사무소에서 부재자투표용지가 오지 않은 30여명의 사병들 때문에 100% 투표율을 달성할 수 없다고 열이 받은 인사장교가 관련자 모두를 연병장에 모아놓고 뺨 한대씩 후려친 일이 있었다. 나도 그중에 끼어 있어서 느닷없이 뺨맞으면서 왜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뺨맞는 것인지에 대해 나는 억울해 했다가, 그 자리에서 인사장교가 나눠준 2박3일 휴가증을 받아 쥐고 병영을 나설 때엔 뺨맞고 휴가 나온 것이 차라리 더 낫다는 생각도 했다. 그에 보답(?)하느라 서울에 있는 동사무소까지 가서 투표용지를 받아 결국 ***연대 100% 투표율 달성에 기여한 사실도 있었다. 이 때만 해도 군대에서 상급자로부터 폭행당하는 것에 대해 저항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때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은 상병시절에 10여명의 헌병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일을 겪고서야 나는 뒤늦게 저항했다. 내가 폭행당해야 할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설명했음에도 헌병들은 내가 끝까지 변명한다면서 30분이 넘도록 내게 무자비한 집단린치를 가했다. 내 눈은 밤탱이가 되고, 입술과 코는 터져서 피범벅이 되었으며, 허벅지와 등짝은 군화발로 짓이겨져 퍼렇게 멍이 들어 내 온몸은 완전히 망가졌었다. 사건의 내용인 즉, 당시 나는 ***연대 암호병이라 통신대 소속으로서 그 날 전화교환대 야간당직을 새벽 4시부터 5시까지 지켜야 하는 불침번이었는데 내 앞 불침번이 잠들었다가 나를 깨우지 않고 그대로 잠자다가 헌병대장의 전화를 받지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헌병들이 조사하다가 내 당직시간에 상황이 벌어진 문제를 두고 나를 추궁했으나, 앞 당직이 나를 깨우지 않아서 당직을 못 선 것이니 내 잘못이 없다고 항변했다가 나는 10여명의 헌병들에게 그야말로 개같이 얻어맞았던 것이다.
나 혼자만이 거처하는 암호실에 돌아와서 서럽게 울다가 이대로 참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나는 보안대장을 찾아갔다.?
연대암호병인 나는 2급 군사비밀에 해당하는 난수표 암호자재를 취급하기 때문에 보안대 관리 하에 있었다. 나는 보안대장에게 내가 헌병들에게 당한 일을 모두 이야기했고, 국가의 중요 군사비밀을 취급하는 암호병으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헌병들에게 개취급을 당하여 자존심이 심히 손상된 나의 심정을 전달했다. 내 얘기를 들은 보안대장은 그 자리에서 문제의 헌병들을 보안대로 당장 오라고 소집시키더니 내가 보는 앞에서 그들을 완전히 작살내버렸다. 내가 30분 동안 얻어 터졌다고 했더니 보안대장은 엉망이 된 내 몸을 그들에게 보여 주면서 10여명의 헌병들을 1시간동안 몽둥이찜질 및 군화발로 짓이기며 그야말로 아작을 내버렸다. 헌병들은 모두 반죽음이 되어 기어서 돌아갔다.
그 다음날 헌병대장(수 년 동안 진급 못한 고참 대위)이 나를 부르더니 내게 협박을 했다. 나 때문에 헌병들이 보안대장에게 아작이 났으니 앞으로 내가 제대할 때까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서 반드시 내 호적에 빨간 줄이 가게끔 영창에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 준법생활을 철저히 하여서 결국 그의 호언장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 때였고 고참 대위인 헌병대장은 준위 계급인 보안대장에게 직접 항의하지도 못하고 만만한 내게 화풀이만 했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부터는 121연대에서 사병들에게 그 위세를 떨던 헌병들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다.?
.
왜 윤 일병은 저항하지 못했을까가 나는 정녕 안타깝다.
내년에 군입대해야 하는 내 아들에게 나는 오늘도 권했다. 맞아 죽을 때까지 2달동안이나 그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불의에는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소한 불의에 매번 시시콜콜 따지지는 말라는 친절한 말도 덧 붙인다.
세월호 사건, 윤일병 사건 등등 이성적 사회로서의 합리적 상태가 아닌 모든 비정상 사건들에는 가해자인 인간들의 추악한 모습이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가해자를 비난하는 소리들이 터져 나오고도, 또 세월이 흐르고 나면 다시 비슷한 사건들이 어김없이 되풀이 되고야 만다.
이 사회에 해 끼치는 자들에 대한 질타는 역사에도 항상 있어 왔기 때문에, 그러고도 또다시 되풀이 되는 추잡한 모습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가해자들에 대한 질타만으로는 안 되고, 불의에 항거하는 힘을 이 사회 구성원 각자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는 내 일이 아니라며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다가 내게 구체적인 불의로 닥치고 나서야만 비로소 뒤늦게 정의에 대한 관심을 쏟고 소리치는 것은 위선이다.
위선이다.
위선이다.
이 사회가 아직도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정의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나와는 직접 이해 관계없는 일로 외면해온 큰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대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나라를 방문하는 날이 다가온다.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한다…………
이 동기는 부당한 이유로 무지막지하게 당한 폭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한 경험을 통해 “불의에 항거하는 힘을 이 사회 구성원 각자가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조직적이고 반복적인 폭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는 분명 필요하겠지만, 보통 사람 이상의 용기를 주문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실 이런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면 두려움 때문에 저항할 의지를 상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리라. 그럼에도 폭력을 감수하고 묵인하기 보다는 강하게 저항하고 폭로하는 것이 폭력을 재발하는 데 훨씬 도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몇 안 되는 사례지만 충격적일만큼 끔찍스럽다. 수 십 년 전의 이야기지만, 그 고통의 체험이 너무 뼈저린 탓에 지금 들어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런데 오래 전의 이야기이고, 지금의 군 폭력 행태는 그 때와 다르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또 이런 사례를 적시하려고 하면 어떤 이들은 왜 오래 전 이야기까지 들추어서 군을 음해하려고 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가 신성한 것처럼 군대는 국민을 외적으로부터 지켜주는 신성한 역할을 하는 집단이다. 이런 군대가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당하고, 군대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집단이 된다면, 그런 군대는 결코 강한 군대가 될 수가 없다. 군대 폭력 문제는 일회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폐쇄적 조직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의 시정되지도 않고 있다. 그러니 오죽하면 윤일병처럼 맞아죽던지, 아니면 육군 22사단의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인 임모 병장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이번 기회에 군대 폭력과 의문사, 자살, 총기 사건 등에 관한 백서같은 것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리하여 이런 백서가 군의 민주화와 개혁을 이루고, 국민의 군대와 강한 군대로 재탄생하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통스런 트라우마를 고백하고 공개하는데 동의해준 내 동기들의 용기에 감사드린다.
3.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리저리 떨어질 이파리처럼 같은 가지에 났어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고 나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별로 다르지 않다. 모든 종교는 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사후 세계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는 데서 탄생한다. 모든 예술은 이 죽음과 관련된 여러 의식을 미학화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려는 데서 탄생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는 철학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철학은 종교나 예술과 다르게 합리적 언어로 서술하고 논증하려 할 뿐이다. 고대 문헌들 가운데 이 죽음과 관련해 빼어난 성찰을 보여주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플라톤의 『파이돈』이라는 작품이다. 초기 플라톤의 작품은 대부분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행적과 관련되어 있다. 청년들의 정신을 타락시키고 신을 모독한다는 죄로 고발을 당한 소크라테스가 법정으로 가다가 제사장 에우튀프론을 만난다.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고소하러 가는 그와 경건과 불경의 문제를 토론한 작품이 『에우튀프론』이다.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가 배심원인 아테네 시민들을 향해 자신의 행위를 변호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 『변명』이다. 빌어도 시원찮을 소크라테스는 도리어 아테네 시민들을 향해 당신들의 영혼을 살피라고 충고한다. 괘씸죄까지 더해져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가 감옥에 갇힌다. 당시 감옥의 소크라테스는 바로 사형을 당하지는 않는다. 외국으로 나간 아테네의 배가 들어올 때까지 사형선고를 유예 받는다. 이때 돈 많은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인 크리톤이 소크라테스를 감옥에서 탈출시켜 외국으로 망명시키려고 소크라테스와 논쟁을 벌인다. 여기서 잘못 알려진 ‘악법도 법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작품이 『크리톤』이다. 그런데 사형을 받기 바로 전날 밤에 마지막으로 파이돈이 스승을 설득하러 들어갔다가 나눈 대화가 ‘죽음’에 관한 유명한 작품인 『파이돈』이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인간의 영혼이 무엇이고, 이 영혼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자못 날카로운 논증을 통해 설명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 이유가 아니라 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몇 가지를 적어보자.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다.”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
영혼과 육체는 본래 다른 존재이다. 정신과 육체를 별개로 보는 이원론의 시작이다. 영혼은 비물질적이고 단일하고 죽지 않는 것이다. 복합물이 아니기 때문에 나누어지지 않으며, 파괴되지도 않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도 않는다. 육체는 그 정반대이다. 육체는 물질적이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생멸을 반복한다. 플라톤의 『공화국』에 등장하는 ‘에르(Er)의 신화’를 보면 영혼은 본래 이데아의 세계에 거주한다. 이 영혼이 이승으로 넘어오면서 망각(레테Lethe))의 강물을 마시면서 이데아의 세계의 기억을 상실하고 육체의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플라톤을 거부하는 현대의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그를 패러디해서 정 반대로 표현한다. “영혼이 육체의 감옥이라고”. 육체의 감옥에 갇힌 영혼은 빠삐용처럼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한다. 그 때 도와주는 것이 철학이다. 때문에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 이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다. 육체가 죽을 때 비로소 영혼은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본래 고향인 이데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플라톤의 생각은 얼마나 기독교적인가? 이 철학의 수업을 받은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플라톤 철학이 기독교를 그리스에 전파하는데 어울린다고 본다. 아우구스투스는 플라톤의 이원론을 따라 ‘신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의 두 세계로 나누는 기독교의 역사철학을 정립한다. 기독교의 몸을 빌린 플라톤의 철학이 중세 천년을 지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감옥으로부터 탈출시키려고 온 파이돈 앞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자신이 감옥을 나갈 수 없는 이유, 그리고 결연히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득한다. 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난 해방이고, 이데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영원한 자유의 시작이다. 이보다 더 큰 확신이 있을까? 이처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탈옥을 시킨단 말인가? 몽매한 제자들은 그저 이 뛰어난 스승의 말에 설득당하고 감복할 뿐이다. 하지만 치밀하고도 논리적으로 설명하던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을 놓치지 말 일이다. “나도 그 세계를 직접 가본 것이 아니라 전해들은 것이네, 그래서 꼭 내 말과 같지 않을 수도 있다네…이렇게 믿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라 하겠으나, 그 모험은 아름다운 것일세”(플라톤, 『파이돈』) 그렇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직접 경험한 바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신화를 전달한 것이고, 다만 그 신화가 그럴 듯해서 그것이 옳다고 확신한 것이며, 이러한 확신이 강해질수록 더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아닌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모든 이야기, 신화와 설화, 종교와 이성의 논증 등은 다만 이러한 완벽한 무지에 기초해 있을 뿐이다. 그 세계는 우리가 경험한 것도 아니고, 합리적으로 논증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것이 어디 죽음뿐이겠는가? 영혼은 어떻고, 세계의 유무한성은 또 어떤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창조주라고 하는 신의 존재는 또 어떤가? 많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신 존재 증명을 둘러싸고 무수한 논쟁을 벌였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논쟁은 사상누각에 불가할 뿐이다. 근대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데카르트 조차 이런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쓴다. 사유하는 자아(코기토)를 새로운 세계의 원리로 정립했지만, 여전히 이 자아를 보증서줄 절대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의 유명한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이 나온다. 신은 개념상 완전한 존재이고, 완전하기 때문에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 의 ‘합리적 심리학’에서 제시한 신 존재 증명 비판은 그런 논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을 밝힌다. 관념 속의 백 탈러(당시 독일 화폐)와 실제 내 호주머니 속의 백 탈러는 다르다. 관념 속의 신은 현실 속의 신이 아니라고. 존재는 신이라는 완전성의 개념에 속하는 술어가 아니라고.
이런 오래된 형이상학적 문제들의 약점은 경험적으로 검증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학이 발달하고 실증주의적 세계관이 비등할 때, 형이상학의 존재는 끊임없이 위협을 당한다. 근대 경험론의 유명한 회의주의자는 신학과 형이상학에 관련된 모든 책들은 백해무익하므로 불쏘시개로나 쓰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먼 옛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랜 철학의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자처한 20세기 비엔나 서클(Vienna Circle)의 논리실증주의자들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가지의 명제만이 있다. 하나는 의미 있는(meaningful) 명제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 없는(meaningless) 명제이다. 무엇이 의미 있는 명제인가? 경험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명제와 참과 거짓이 확실한 논리적인 명제가 그렇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다.”는 명제가 전자에 해당되고, “3*5=12”라는 명제는 후자에 해당된다. 전자는 참인 명제이고, 후자는 거짓 명제이다. 이와 다르게 경험적으로 검증도 안 되고, 논리적이지도 않은 명제는 무의미한 명제이다. 가치와 관련된 도덕 명제나 검증이 불가능한 영혼의 불사나 신의 존재와 같은 형이상학적 명제와 신학적 명제는 무의미한 명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명제들은 그저 ‘개소리’나 다름없이 무의미한 명제이다. 그들은 이런 ‘검증이론’(Verification theory)을 가지고 철학의 오랜 아포리아들을 해결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철학은 이제 종언을 고해야 하는가? 철학은 그들의 도발적인 주장 이래로 더 이상 그런 형이상학적 문제들에 관심을 갖지 않는가? 과학이 발달하면 영혼에 관한 오랜 갈증이 해소되고, 신에 관한 물음을 더는 하지 않는가? 이런 말만 덧붙이겠다. 비엔나 서클의 수장인 모리츠 슐릭은 강의를 하다가 학생의 권총을 맞아 죽고, 그 서클 멤버들도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고. 개를 오래 키워 본 경험으로는 개소리에도 미세한 변별이 있고, 그 차이에 무수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4. “아, 극락세계에서 만날 나는 도를 닦고 기다리겠노라.” 월명은 죽은 누이와 극락세계에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착한 누이가 선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극락왕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때문에 자신도 선한 삶을 살고자 도를 닦고,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겠다고 한다. 죽음은 그냥 죽음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후의 세계에서의 보상과 징벌의 문제는 이승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죽음은 곧 삶의 문제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왜 우리는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런 생각의 밑바탕에는 숨은 전제가 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 이는 받아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받는다는 사실의 문제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이 불공평하고 부 정의한 세상에서 그나마 살아갈 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연 그것은 사실 명제인가? 그것은 소망에 불과하지 않은가? 착하게 사는 사람이 과연 상을 받고, 나쁘게 사는 사람이 과연 벌을 받고 있는가? 하지만 잠시 눈을 돌려 세상을 냉정하게 있는 그대로 보라. 과연 그런가고. 오히려 이기적이고 사람들을 이용하려 들고 나쁜 짓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살고,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도 누리고 그러지 않는가? 착한 사람들은 그저 멍청하게 당하기만 하고 어렵게 살고 있지 않는가? 이런 현실 속에서 착하게 살라고?
『사기열전』을 쓴 중국의 유명한 사마천은 그 책을 이런 물음으로 시작한다. “과연 하늘에 道가 있는가?” 백이와 숙제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수양산으로 들어간 충절의 정치인이다. 그들은 주나라의 무왕이 통치하는 곳에서 나는 어떤 것도 먹을 수 없다고 하면서 결국은 굶어 죽었다. 양심과 절개를 지킨 사람들의 말로는 비참하게도 굶어 죽은 것뿐이다. 반면 유명한 악인 도척은 온갖 악행을 일삼고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무병장수까지 한다. 그는 사람의 생간을 매일같이 먹었다고 한다. 얼마나 악인이면 공자까지 그를 교화하러 들어갔다가 손을 내두르고 물러날 정도이다. 『장자』의 잡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물론 사실은 아니고, 다만 유가를 패러디하기 위해 노장(老莊) 쪽에서 만든 이야기이리라. 사마천은 선인과 악인을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시키면서 과연 하늘에 도가 있는 가고 묻는다. 만일 도가 있다면 당연히 선인은 상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 세계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더 빈발하지 않는가? 그러니 다시 한 번 묻는다. 과연 하늘에 도가 있는가? 이런 물음을 던진 사마천의 내력이 있다. 그는 이릉(李陵) 장군이 흉노와의 전쟁에서 중과부적으로 패배한 사건에서 이릉을 변호하다 무제(武帝)의 노여움을 사서 남자로선 치명적인 거세의 궁형(宮刑)을 받게 된 것이다. 사실 다른 대신들처럼 비겁하게 이릉의 등에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솔직하게도 진실과 소신을 지킨 것이고, 그 대가는 너무도 비참했다. 그런 참담을 견디지 못해 자살까지 하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그 억울함을 누대에 남은 명저 『사기』를 쓰는 일로 대신한 것이다. 때문에 그가 이 『사기열전』을 시작하면서 던진 물음은 너무나 절실한 윤리적 물음이다. “과연 하늘에 道가 있는가?” 과연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아야 하는가? 하지만 이것은 당위이고 요청이다. 적어도 선하게 살아야 한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은 오래 된 물음이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숱한 종교와 철학이 등장한다. 불교는 인과응보를 이야기한다. 선인선과고 악인악과라는 것이다. 선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고 한다. 금생의 복이 없다면, 그것은 전생에 나쁜 업을 지었기 때문이다. 내생의 복은 금생의 선업을 쌓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해야 한다고 불교는 가르친다. 이 인과응보론이 교조화되면 현실 합리화의 논리로 변질될 수도 있다. 다 과거의 인연이고 업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는 여자로 태어난 것,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 가난한 것 등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닐까? 극락과 연옥, 천국과 지옥은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도록 유도한다. 선한 자가 복을 받고, 악한 자가 벌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사후 세계의 심판을 이용한 징벌과 보상이다. 하지만 사후 세계나 심판자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구나 그것은 공포와 두려움을 이용한 타율적 강제이다. 이런 공포와 강제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도덕이란 무엇인가? 도덕적 행위란 단지 연민과 동정심으로 행하는 행동인가? 이런 감정을 갖고 선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루소나 흄과 같은 근대의 많은 계몽 사상가들은 이런 동정심을 통해 가난한 자와 병약한 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공리주의자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킨다면 그것이 도덕적이고 선하다고 말한다. 행위의 동기와 상관없이 좋은 결과만 있으면 도덕적이며 선하다고 보는 것이다. ‘돼지의 쾌락’이라 비난 받는 면이 없지 않지만, 공리주의자들의 견해는 사회 정책적 차원에서 사회를 개량하고 개선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칸트는 이런 접근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무엇이 도덕적이고, 왜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짐승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길이다. 개가 도덕적으로 행동하는가?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일한 소를 도덕적이라고 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동물들의 행위를 도덕적 행위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덕은 인간에게 고유한 행위가 아닐까? 인간의 행위 중에서 동물의 행위와 비슷한 행위를 제한다면 도덕적 행위가 남지 않을까? 무엇이 동물의 행위이고, 무엇이 인간의 행위인가? 애완동물을 키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동물도 감정이 있다. 어떤 때는 인간보다 더 정서적으로 반응을 잘 한다. 이런 감정은 항상 그 감정을 유발한 원인이 있다. 기쁘게 하는 것, 슬프게 하는 것, 화가 나게 하는 것, 사랑하게 하는 것 등 모두가 어떤 원인이 있어 그것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고, 그 각각에 대응하는 감정이 나타난다. 이런 감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감정은 원인과 결과의 고리에 갇혀 있다. 편의상 우리는 이것을 ‘~때문’(because of)의 산물이라고 하자. 인간은 항상 ~ 때문에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가지며, 동물도 그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칸트는 숭고한 도덕을 이런 동물적 감정에 정초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감정은 비루하고 비천하기 때문이다. 도덕은 자유로운 존재의 자유로운 행위에 기초해 있다. 타율적 강제나 외부의 공포 때문에 선한 행동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노예의 도덕일 뿐이다. 나중에 니체는 원한(르쌍티망) 감정으로 타자를 부정하는 행위를 ‘노예의 도덕’으로 보고,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고귀한 도덕을 ‘주인의 도덕’으로 본다. 그리스의 자유인들에게는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 안에 목적을 갖는 행위가 정치적 실천(Praxis)이다. 정치는 자유인들만의 활동이다. 반면 타자를 위해 봉사하고 행위의 목적을 타자에게 두는 것은 비천한 여성이나 노예가 담당하는 노동(Arbeit)이다. 이점에서 칸트가 생각하는 도덕은 자유의지를 가진 자의 덕목이다. 자유인의 도덕적 행위는 외부의 원인에 종속되거나 타율적 강제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 안에 행위의 동기를 가지는 행위이다. 편의상 이런 행위를 ‘~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의 행위라고 하자.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손해가 남에도 불구하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착한 마음으로 착한 행동을 하는 것, 그것만이 도덕적이라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보자. 밤에 산을 넘던 사마리아 장사꾼은 강도의 피해를 입고 신음하는 사람을 만난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무섭고 떨리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갖는 두려움과 떨림은 모든 생명체의 자연스런 보호 본능이자 감정이다. 당연히 도망가고 싶을 것이다. 합리적(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도 마찬가지이다. 산속에서 이런 피해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 또한 똑 같은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강도는 주변에서 똑같이 노릴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래서 감정적인 반응이나 이성적인 계산은 똑 같이 이유(~ 때문에)를 들어 빨리 도망가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사마리아 인의 착한 마음(선의지)은 이런 이유를 넘어선다. 그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강도를 당할 수 있다는 합리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부상당한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덕의 뿌리는 감성이나 이성이 아닌, 전사들의 용기와 같은 의지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인간은 순응하는 인간이 아닌 용감한 인간이다. 그렇다. 도덕이란 이런 선의지에 기초해 있다. “이 세계에서 또는 도대체가 이 세계 밖에서까지라도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선의지뿐이다.”(칸트, 『윤리형이상학기초』) 그것은 감정도 아니고 결과에 대한 고려나 계산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인간의 착한 마음일 뿐이다.
그러므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우리는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고 선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의지는 의무감이다. 의무란 무엇인가? 의무란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 말미암은 행위의 필연성이며, 도덕은 이런 선의지에 기초해 있다. 마땅히 법칙에 따르는 행위, ‘마땅히 ~해야 한다’의 명령에 따르는 행위이다. 하지만 이 명령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타율적 명령이 아니다. 자유로운 인간 스스로 부여한 규범이자 명령, 곧 자기 입법이고 자율(autonorm)이다. 때문에 이런 도덕법칙을 따를 때 그는 비로소 자유롭다. 자유로운 인격의 왕국에 거주하는 인간이 따르는 보편적 도덕 법칙이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령’이다. “마치 너의 행위의 (주관적) 준칙(maxim)이 너의 의지를 통해서 보편적인 자연법칙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 하라.” “너의 인격에 있어서나 어떤 다른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나 인격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취급하고, 단지 수단으로서 만은 결코 사용하지 않도록 행위 하라.”(칸트, 『실천이성비판』)
이런 칸트의 생각이 너무 추상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이는가? 도덕적으로 행동하려 하다 보면 늘 손해를 볼 뿐이고, 결국 선인보다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 칸트는 결과의 유 불리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까닭은 우리가 인간이므로,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이므로, 우리가 선의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가 비도덕적으로 행동할 이유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땅히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러므로 도덕적 행동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의지의 선택은 비도덕적으로 행동할 무수히 많은 이유와 유혹에도 불구하고, 또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이루어지는 힘든 인간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도덕적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힘든 선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치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무리치는 예수처럼, 오직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왕궁의 호사로운 삶을 박차고 나간 석가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 공자처럼 사는 것이다. 평범한 우리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리한 요구인가? 그렇지 않다. 마땅히 도덕 법칙에 따라 살아가려는 인간은 이미 성인의 반열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개가 아니다. 인간은 소가 아니다. 인간은 이미 성인(聖人)이다. 이런 성인을 어떻게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겠는가?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우리는 이런 인간들의 ‘목적의 왕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모든 위대한 종교는 이런 인간들 속에 감추어진 신성(神聖)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당신이 이미 부처라고, 인간이 곧 하늘이라고.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떠한가? 그 세계 안에 거주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어떠한가? 그 세계에서 목적으로 대접받는가, 혹은 수단과 소모품으로 취급되는가?
죽음은 모든 것을 무화하는 절대 부정이다. 그래서 죽음은 슬프고, 고통스럽고, 모든 것과 단절되는 두려움이다. 이 생사의 문제 앞에서는 다른 어떤 문제도 가볍다. 부귀와 권력도 이 앞에서는 한 없이 무력해진다. 성서의 온갖 이야기, 팔만 사천의 법문조차 이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낱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다. 인간 문명이 쌓아 올린 온갖 지식과 기술, 그리고 과학조차 이 절대 부정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죽음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우리를 생각의 극단으로 끌고 간다. 죽음은 삶의 무게조차 사소하게 만든다. 죽음 앞에 서면 우리는 삶을 더 진지하게 성찰하게 된다. 과연 어떤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장례식장을 다녀오면서 생각한 죽음에 대한 단상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읽어보자. 어떻게 다가오는가?
生死路隱 죽고 사는 길이
예 이샤매 저히고 이 세상에 있으므로 두려운데
나는 가나다 말도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니르고 가나닛고 못다 하고 가버렸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라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닙다이 이리저리 떨어질 잎처럼
한 가재 나고 같은 가지에 났어도
가논 곧 모다온뎌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으 彌陀刹애 맛보올 내 아아! 극락에서 만날 나는
道 닷가 기드리고다 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노라.
<끝>
열쇠가 너무 많아 박물관의 열쇠를 찾아내기가 어려웠어.
그런데 아침해가 방긋하고 올라오자 열쇠 하나가 빤짝하는거야.
문을 열자 죽어 있던 그림자들이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살아났어.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나이를 먹을수록 자주 가는 곳이 있다. 하나는 결혼식장이고, 다른 하나는 장례식장이다. 젊은 시절에는 친구들 결혼식장을 다녔지만, 이제는 친구 자녀들의 결혼식장이다. 결혼식장은 선남 선녀가 사랑을 다짐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 하는 자리이니까 보는 사람도 즐겁다. 젊었을 때는 나도 그런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즐거웠고, 나이를 먹어서는 나도 저런 사랑과 결혼을 한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추억을 되돌릴 수 있어 기쁘다. 하지만 장례 식장을 다녀올 때는 마음이 무겁다. 축하해주러 가는 길이 아니라 슬픔을 위로하고 함께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래도 부모님 연배의 죽음을 슬퍼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드물지만 주변 친구들이나 그 부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주고 위로해주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자식 세대들의 죽음을 대할 때는 그 아픔이 더 크다.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듯, 그런 고통은 참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친동생의 딸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을 때, 올 해 친구의 다 큰 아들의 죽음을 대했을 때는 그 고통을 그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참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깝게 지내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는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중학교 시절부터 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얼굴들, 오래 전이어서 이제는 그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부모의 죽음, 세월호의 죽음들… 아, 생명은 이렇게 죽을 밖에 없는 것인가? 일전에 대학 동기의 모친상을 다녀오고서 잠시 잊고 있었던 죽음을 생각해본다.
오래 전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암송하던 시 <제망매가>이다.
죽고 사는 길이
이 세상에 있으므로 두려운데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하고 가버렸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리저리 떨어질 이파리처럼
같은 가지에 났어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 극락세계에서 만날 나는
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노라
(월명사, 제망매가)
그 당시는 별 생각 없이 외웠지만 지금 다시 보니 죽음에 관한 성찰이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의 우발성,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이파리 같은 생명의 유한성, 태어난 곳은 하나이고 분명해도, 죽고 난 후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후의 세계는 과연 있는 것인가? 죽음 이후에 대한 인간 지식의 완벽한 무지, 죽음 이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극락과 천국에서의 만남을 위해 도를 닦고 선을 행하겠다는 윤리적 결단,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극락정토는 있는 것일까? 죽음은 삶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이 짧은 시 안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죽음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배에서 태어난 누이가 먼저 간 것을 슬퍼하며 쓴 시이지만 어찌 이것이 오누이만의 사별에 한정될 수 있겠는가?
1. “죽고 사는 길이 이 세상에 있으므로 두려운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어두운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사람들의 통속적인 생각을 넘어선다. 만물이 유전한다는 그의 철학은 변증법의 시작을 알린다. 그의 잠언은 이렇다. “삶은 죽음이다.” “시작은 끝이다.” 만물의 시작에서 종말을 이야기하고, 생명의 탄생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어두운 철학자의 말을 사람들이 깨닫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죽음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삶이 없다면 죽음도 없는 것이고, 시작이 없다면 끝도 있을 수 없다.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오직 사물의 한 면만을 보려고 한다. 탄생과 소멸, 만물의 끊임없는 변화를 그는 타오르는 불의 이미지로 묘사한다. 불교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지혜를 더 깊게 해준다. 불교의 가장 기본 철학인 사성제(四聖諦)는 고(苦)에서 시작한다. 고는 어디서 오는가? 생명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모든 생명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데서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명이 탄생하면서 이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 먹어야 되고, 먹기 위해서 일해야 되고, 이 몸이 힘들다 보면 병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면 결국 이 생명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본다면 모든 고통은 이 몸을 타고 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자연법칙과 같은 필연성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사물의 한 면만 보는 것이 아닌가? 아름다운 꽃이 영원히 피워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불교는 이런 생명의 고통을 해결하려 한 것이다. 난세에 몸과 생명을 보존하려 했던 중국의 도가들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양생을 위한 수련에 힘쓴다. 하지만 열심히 수련해 동안을 유지하고 장생불사의 건강하던 도인의 몸도 한 순간에 호랑이의 먹이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양생법이 해답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몸과 생명이 낳고 죽는 그 까닭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장자』 외편에는 부인상을 당한 장자가 죽은 부인의 시신을 앞에 두고 덩실 덩실 춤을 추는 이야기가 나온다. 친구 혜자가 문상을 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 한다. 아무리 부인이 죽으면 사내들은 뒷간에 가서 웃는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춤까지 추는 것은 심하지 않은가? 이 때 장자가 말을 한다. “그렇지 않네, 아내가 죽었을 때 나라고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나? 그러나 그 시작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 본래 삶이란 게 없었네.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던 것이지. 그저 흐릿하고 어두운 속에 섞여 있다가 그것이 변하여 기(氣)가 되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되었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되었지. 이제 다시 죽음이 된 것인데, 이것은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의 흐름과 맞먹는 일. 아내는 지금 ‘큰 방’에 편안히 누워 있지.”(『장자』) 삶과 죽음에 관한 우주의 영원한 이치와 작용을 깨달은 장자가 어찌 곡을 할 것이고, 어찌 춤을 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토아의 현인들도 죽음에 대한 이런 깨달음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기독교는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엄연한 진실과 그로 인한 고통의 감정을 강조한다. 사도 바울은 어두운 사망의 골짜기를 헤맬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통렬하게 일깨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모든 생명은 곧 죽을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 이 고통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오직 우리를 창조한 신에 귀의할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철학과 종교는 죽음이라는 엄연한 사실과 그로 인한 고통을 해결하려는 몸짓의 표현이리라. 아침 이슬과 같은 이 생명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법을 깨닫게 하거나, 이 유한한 생명을 창조한 무한한 신의 존재에 귀의하거나 이다. 혹은 우주의 영원한 이법 속에서 삶과 죽음의 물리적 법칙을 깨닫는 것이다. 가을 날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당신은 눈물이 흐르는가? 돌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모습을 보면 당신은 슬픈가?
2. 죽음은 어떻게 오는가? (죽음의 우발성과 우연성)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하고 가버렸느냐.” 천수를 누리다가 돌아가신 분을 문상 갈 때는 비교적 마음이 가볍다. 모든 죽음의 이별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천수를 누리고, 갈 때를 알면서 돌아가신 경우에 우리는 호상이라는 말을 한다. 이런 호상을 맞이할 때는 산 사람들의 마음도 무겁지는 않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예측한단 말인가? 아침에 잘 다녀오겠다고 나간 사람이 사고로 갑자기 죽을 때처럼 죽음은 종종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를 ‘위험 사회’로 규정한다. 이런 위험은 곳곳에 널려 있다. 거대 도시에서 교통사고, 건물 붕괴, 화재 등의 재난은 다반사다. 재난 사고에 취약한 우리의 경우는 이런 사고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래서 더 위험한 것이다.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 재해도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로 더 빈발해진다. 미국 같은 경우는 종종 총기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 행위로 멀쩡한 시민들이 다치거나 죽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고는 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로부터 빼앗아 간다. 우발적인 죽음으로 인한 갑작스런 이별을 대할 때 우리는 어떤가? 벌써 두 달이 넘도록 전국을 난타하고 있는 세월 호 대 참사는 갑작스럽게 닥쳤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다. 죽음을 대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산자들은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산자들은 자신들의 이 비통한 마음을 죽은 자들에게 투사를 한다. 그래서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은 영들은 필시 구천을 떠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영혼결혼식도 하고 천도 제를 지내기도 한다.
이런 우발적인 죽음과 달리 자발적인 죽음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가 세계 제 1위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자살을 자발적인 죽음이라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비록 자신이 선택한다 할지라도 엄밀한 의미에서의 자기 결정은 아니다. 자살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선택할 수밖에 없는 타살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선택에 관한 라캉의 유명한 예가 있다. 밤길 골목에서 강도를 마주친 어떤 사람이 “죽을래 돈을 내 놓을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외양은 선택의 형식을 취했지만 내용상으로 그가 선택할 다른 여지는 없다. 돈을 내놓기 싫다고 하면 죽을 수도 있고, 죽고 나면 돈도 뺏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할 때는 그것 외에는 달리 선택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으로 봐야 옳다. 때문에 높은 자살 율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자율의 형식을 가장한 타율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자발적인 죽음도 있다. 이른바 영웅적인 죽음이 그렇다. 설령 죽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감히 죽음과 대결하고 그 죽음을 넘어서는 죽음이다. 자기 생을 통해 타인들의 생명을 구하려는 영웅들의 죽음이 그렇다. 생명보존의 욕구는 모든 생명체의 자연적 본능이다. 그런데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위험한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이루어지는 영웅적 선택이다. 하이데거는 이런 형태의 죽음은 죽음을 미리 앞서 예비하는, ‘죽음에 대한 선구적 결단’으로 묘사한다. 이런 결단은 오직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에게만 가능하다. 인간만이 자신의 신체가 소멸되는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다. 아마도 인간 정신의 위대함은 이런 자발적이고 영웅적인 죽음에서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의 신체는 소멸해도, 그의 정신은 산자들의 기억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