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필요한 스물일곱 번째 시간, 꽃 [시가 필요한 시간]
시가 필요한 스물일곱 번째 시간, 꽃
마리횬
오늘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꽃’에 관한 시를 함께 읽어볼까 합니다. 국내에 발표된 꽃에 관한 시는 정말 많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가장 먼저 생각나고, 나태주 시인의 동명의 시 <꽃>도 있죠. 복효근 시인의 <안개꽃>이라는 시도 생각납니다. 좋은 시들이 참 많이 있는데 다 소개해드리지 못해서 아쉽네요.
오늘 소개해 드릴 시는 <사람의 꽃이 되고 싶다>라는 제목의 시로, ‘이채’라는 필명을 쓰는 시인의 작품입니다. 저는 이 시를 통해 처음 만나는 시인인데요, ‘꽃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 준 시라서 가져와 봤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관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 한번쯤 되돌아보게 하는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듣고 올까요?
사람의 꽃이 되고 싶다
이채
그대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다 해도 서로의 꽃이 될 수 있을까
꽃집으로 들어설 때의 설레임과
한아름 꽃을 안고 집으로 오는 동안
한 잎 한 잎 고운 향기 맡으며
상큼한 웃음 감추지 못하던 그 표정으로
나는 그대에게 어떤 꽃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발을 밟은 그대라면
어깨를 부딪친 그대라면
길을 묻는 그대라면
서로의 이름은 몰라도 은은한 들꽃 같은 향기로
미소가 예쁜 친절한 꽃으로
사슴의 눈망울을 닮은 착한 꽃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저마다 뜰은 있어도 가꾸지 않고
꽃병은 있어도 꽃이 없는 창가에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본다 한들
시끄러운 귀로는 물소리를 들을 수 없고
불만의 목소리로 백조의 노래를 부를 수 없으며
비우지 못한 욕심으로 어떻게 새들의 자유를 이해할 수 있을까
부족함 속에서도 늘 감사하는 행복의 꽃
작은 것에서도 소중함을 느끼는 기쁨의 꽃
보이지 않는 숨결에도 귀 기울이는 관심의 꽃
누구에게나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꽃
사막에서도 물을 길어 올리는 지혜의 꽃
사람의 뜰에는 만 가지 마음의 꽃이 있어도
어느 꽃도 피우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네…
우연히 길에서 이름모를 들꽃들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꽃의 이름이 뭔지도 모르지만, 꽃들은 우리가 누구든 간에 만나는 모두에게 자신의 빛깔과 향기로 친절히 미소를 지어줍니다. 그에 비해서 우리 인간은 어떤 가요? 서로 잘 아는 사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너그럽죠. 특히 나와 어떤 이해관계가 있다거나,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굉장히 친밀합니다. ‘학연’, ‘지연’이라는 말이 괜히 만들어지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반대로 나와 그다지 상관이 없는 사람이거나 잘 모르는 사람, 시인이 시에서 말하듯 버스에서 실수로 부딪히거나 발을 밟은 사람, 길에서 방향을 묻는 사람을 마주칠 때, 괜스레 무관심하게 되고, 그 관계에서 ‘나’와 ‘내 기분’이 우선 되어 가끔 무례하게 행동할 때도 있습니다.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하기 위해 꽃집에 가서 한아름 꽃을 포장해 나설 때의 그 기분과 행복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꽃은 우연히 마주친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아름다운 향기와 빛깔로 행복감을 나누는데, 우리는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죠.
‘전혀 모르는 사람, 우연히 만난 사람을 어떻게 ‘행복한’ 표정으로 대할 수 있다는 말이지?’라고 고개를 갸우뚱 하고 계신가요?
저는 호주에서 2년간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이 시를 읽으면서 호주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외국에서 거주하면서 많이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서로 전혀 모르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길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으면서 인사한다는 것이었어요. 버스에서 부딪히거나 우연히 스치는 경우,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움직이다가 눈이 마주친 경우에도, 한국에서라면 눈을 피해버리거나 무표정으로 넘어가기 일쑤인데, 호주 사람들은 서로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얼굴에 미소를 지어 줍니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라고 한마디 건네기도 하고 말이죠.
일부러 억지로 하지 않아도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고 있다는 여유와 따뜻함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마다 뜰은 있어도 가꾸지 않고
꽃병은 있어도 꽃이 없는 창가에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본다 한들
시끄러운 귀로는 물소리를 들을 수 없고
불만의 목소리로는 백조의 노래를 부를 수 없으며
비우지 못한 욕심으로는 새들의 자유를 이해할 수 없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2021년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향상되었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기술적으로도 많은 나라를 앞지르는 그야말로 ‘선진국’을 향하고 있죠. 이 시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저마다 뜰”, “꽃병”, “아름다운 호수”가 갖추어진 셈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말합니다. 서로를 위하는 여유와 따뜻함이 없는 삶이라면, 저마다 뜰이 있더라도 그것을 가꾸지 않는 삶이며, 꽃병은 있지만 꽃이 없는 쓸쓸한 창가라고 말이죠.
당장 ‘뜰’도 없고 ‘꽃병’도 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이야기와 요구가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뜰을 갖추고 꽃병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더 중요할 테니까요. 하지만 이제 저마다의 뜰과 예쁜 화병까지 가지게 된 우리라면,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길 권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뜰을 가꾸고, 꽃병에 꽃을 꽂으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꽃을 가꿔야 할까요?
부족함 속에서도 감사하는 행복의 꽃
작은 것에서도 소중함을 느끼는 기쁨의 꽃
보이지 않는 숨결에도 귀 기울이는 관심의 꽃
누구에게나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꽃
사막에서도 물을 길어 올리는 지혜의 꽃
이것이 바로 우리가 꽃에게서 배워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꽃들은 비바람이 불더라도 햇빛이 쨍쨍하더라도, 어떤 부족한 것이 있어도 늘 그 자리에 피어나요. 찌는 듯한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잠깐 내리는 소나기에 감사하며 아름다운 빛깔을 만들어 내죠. 물이 한 방울도 없을 것만 같은 절벽에서도 지혜롭게 물을 찾아서 자기 자신을 피워내는 꽃을 보면, 내게 부족한 것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겸손히 자기의 역할을 다 해내는 꽃의 덕목을 발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꽃송이라도 저마다 아름다운 빛깔과 지워지지 않는 향기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쁜 일이 있을 때 꽃으로 축하하고, 사랑의 마음, 감사의 마음도 꽃으로 표현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에 꽃으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이겠죠.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존재가 ‘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어느 꽃도 피우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고 겸손하게 고백하면서 시를 마치고 있습니다. 행복의 꽃, 기쁨의 꽃, 관심의 꽃을 피워 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사소한 것부터 목표를 정해 하나씩 고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나태주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 노랫말을 붙여서 만든 노래 가져왔습니다. 가수 정밀아가 부른 <꽃> 들으시면서, 이번 한 주간 내 마음에 어떤 꽃을 피울지 다짐해보시면 어떨지요.
정밀아 – 꽃, 주소: https://youtu.be/r1QVbQtwr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