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시간, 버팀목 [시가 필요한 시간]

열여덟 번째 시간, 버팀목

 

마리횬

 

  • 귀로 읽는 시간

안녕하세요, 시가 필요한 시간의 마리횬입니다. 7월이 시작되고도 벌써 보름이 흘렀네요.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학교들이 전면 온라인수업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진통을 겪은 지도 벌써 4개월여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종강을 하고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학생들의 성적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죠?

2020년의 절반을 보낸 나에게 중간 성적표를 매겨본다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남은 절반을 시작하면서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2주에 한 번씩 좋은 시를 소개하는 이 “시가 필요한 시간”을 더 열심히 꾸며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운동도 할 거구요, 주변 사람들도 좀 더 살뜰히 챙기는 하반기를 보내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오늘 들려 드릴 시는 복효근 시인의 시 <버팀목에 대하여> 입니다. ‘버팀목’이라고 하면, 혼자 뻗어 자라나기에는 좀 얇은 가지들을 지탱해주려고 옆에 꽂아두는 나무 막대기를 말하죠? 방울토마토나 고추 같은 식물을 키울 때 옆에 세우고 식물이 기대어서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버팀목입니다. 이 시는 시 텍스트 자체가 주는 메시지가 워낙 선명해서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복효근 시인의 시 <버팀목에 대하여> 들어보시죠.

 

 

 

버팀목에 대하여

                                복효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 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 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 귀로 읽는 시간

복효근 시인의 시 ‘버팀목에 대하여’ 들어보았습니다. 많은 생각들이 드는 시죠? 저도 읽으면서 약간 울컥했습니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 이것이 다 나 혼자의 힘으로 된 거 같아 보일 때가 있죠. 특히 성인이 되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거나,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면서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뭔가 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많은 거 같아요.

이 시의 첫 시작에 ‘태풍에 쓰러진 나무’가 나옵니다. 험한 바람에 쓰러져 있는 다 자라지 못한 나무 한 그루가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가 그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으면서, 옆에 각목을 하나 세워서 기댈 수 있도록 버팀목을 세워주죠.

쓰러졌던 나무는 버팀목인 각목에 기대어 다시 살아갑니다. 잔뿌리를 하나씩 내리고 곧 다시 싹도 틔우게 될 거예요. 하지만 각목은, 그 역시도 한 때는 살아있는 나무였겠지만, 이제는 깎이고 다듬어져서 더 이상 생명력이 없는 ‘죽은 나무 가지(조각)’에 불과하죠. 죽은 나무인 버팀목은 자신의 어깨를 산 나무에게 내어주면서 나무가 잘 자라도록 옆에서 자기 역할을 다 합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 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살아있는 나무가 싹을 키우고 잔뿌리를 내리며 자랄수록, 각목은 점점 햇빛과 비바람에 마모되고… 무수한 시간이 흐르면 결국 삭아 없어지게 됩니다. 버팀목이 삭아 없어질 만큼의 세월이라면, 과거 태풍에 쓰러졌던 나무도 그만큼 성장해 있겠죠.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고 잘 자란 나무는 이제 어떤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어엿한 거목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시인은 나무가 더 이상 쓰러지지 않는 이유가 그 자체의 건장함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큰 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대해진 나무가 스스로 서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그 나무를 버티게 해 주는 ‘사라진 버팀목’이 있다는 것이죠. 그 대목에서 이제 시인은 나무에서 ‘나 자신’에게로 시선을 옮깁니다. 내가 바로 쓰러졌던 나무인 셈이고,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버팀목이 되어준 누군가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허위허위’라는 말은 순 우리말로, 사전에서 뜻을 찾아보면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먼저 ‘손발 따위를 이리저리 내두르는 모양’이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손을 휘저을 때 “훠이 훠이”하는 의성어를 사용하는데, 그 모양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힘에 겨워 힘들어하는 모양’이라는 뜻도 있어요.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두 가지의 뜻이 한 단어에 들어 있죠? 이 두 가지의 뜻은 시 안에서 절묘하게 만나게 됩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보면”이라는 말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서 허공에 손을 이리저리 내두르는데 무언가 만져지는 것이 있다’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내가 혼자 힘겹게 걸어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곁에 누군가가 있었다’ 라는 뜻이 될 수 있죠. 시인은 아무도 곁에 없는 것 같고, 내가 혼자 힘겨워하는 것 같지만, 아버지와 이웃들의 보이지 않는 사랑과 응원이 나의 버팀목으로 서 있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 이웃들이 태풍에 쓰러졌던 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듯이,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지금 싹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라고 시가 끝나고 있는데요, 이 시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지금의 내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버팀목과 같은 가족, 친구, 이웃들의 격려와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내가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 역시.. 단순히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혹시 지금 태풍 같은 어떤 어려움에 넘어져 계신 분들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손을 허위허위 저어봐도 아무도 없는 것만 같은 외로움에 있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고, 여러분을 든든히 지켜 줄 버팀목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것을 꼭 붙들고 다시 일어설 힘을 내시라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버팀목을 힘입어 든든한 나무로 자라셨다면,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댈 어깨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시면 어떨까요.

오늘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악동뮤지션과 양희은씨가 함께 만든 ‘나무’라는 곡을 가져왔습니다. 이 곡은 악동뮤지션의 찬혁군이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갔던 경험을 가지고 작사 작곡 한 노래로 알려져 있죠. 이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그가 떠난 자리는 나무랄 것 없이 텅 비어 있었다”라고 끝나는데요, 이 <버팀목에 대하여> 라는 시에서의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여전히 내 곁에 자리잡고 있는 아버지”라는 시 구절과 뭔가 연결되는 것 같고 함께 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 골라 보았습니다. 마침 또 제목이 ‘나무’라구요.

오늘 하루도 힘 내시고, 이 시와 노래 한 편이 여러분에게 버팀목이 되길 바라며,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양희은, 악동뮤지션 – 나무 https://youtu.be/GLQTRlYyPco

 


필자 마리횬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