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시간, 충고 [시가 필요한 시간]

시가 필요한 스물두 번째 시간, 충고

 

마리횬

 

시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어느덧 9월 중순이 되었고, 하늘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요즘이죠. 가을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시를 통해 듣는 충고의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고 부러진 나뭇가지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오늘은 길가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워 들고 있는 박노해 시인을 만나봅니다.

 

 

도토리 두 알

                             박노해

 

산길에서 주워든 도토리 두 알

한 알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

한 알은 크고 윤나는 도토리

 

나는 손바닥의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했는가

내가 더 크고 더 빛나는 존재라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크고 윤나는 도토리가 되는 것은

청설모나 멧돼지에게나 중요한 일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참나무가 되는 것

 

나는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숲으로 힘껏 던져주었다

울지 마라, 너는 묻혀서 참나무가 되리니.

 

박노해 시인의 시 <도토리 두 알> 들어보았습니다. 뭔가 뒤에 더 할 말이 있는데 여운을 남기며 시가 끝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처럼 내가 겪었던 작은 사건을 가지고 그 사건 자체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통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들이 참 좋습니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보고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면서도 부럽죠. 오늘 주제를 ‘충고’라 하고 이 시를 들려 드렸는데, 여러분은 이 시에서 어떤 충고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하네요.

시 텍스트를 보면, 시의 시행들이 이어지다가 중간에 한 줄이 툭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손바닥의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라는 시행이 툭 놓이죠. 그러면 그 순간, 시를 읽는 템포가 살짝 늦춰집니다. 그리고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라는 시행 후에 또 다시 시행이 구분되면서, 다시 한 번 약간의 공백이 생기게 되고 그 틈에 독자로 하여금 도토리의 모양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줍니다. 혹은 도토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약간 벌어주는 효과가 있죠.

요즘 공원이나 산길을 (마스크를 쓰고) 산책하면서 보니, 도토리가 적지 않게 떨어지기 시작하더라구요. 그 모양을 보면 각기 다양합니다. 시인이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는 도토리 두 알처럼 말입니다. 시인은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 한 알, 그리고 크고 윤나는 도토리 한 알을 주워 들면서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했는가

내가 크고 빛나는 존재라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

 

진정 무엇이 중요한가

 

‘도토리 키 재기’ 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누가 더 크고 더 빛이 나는지를 아무리 따지고 아무리 경쟁을 해도 사실 모두 작은 도토리일 뿐이죠. 누가 더 잘났는지 경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시인이 던지는 질문이 의미심장합니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했는가?”라는 물음에는 우리도 그러한 존재라는 것, 우리 인간이야말로 사실은 필사적으로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요?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느냐”라고 물어보면서,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라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도토리는 다람쥐와 같은 동물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또 사람들이 먹는 맛있는 도토리묵의 재료로도 사용되지만, 그런 것들은 동물이나 인간에게나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정작 도토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라나서 거대한 도토리나무가 되는 것, 이 시의 표현을 빌리면 ‘참나무’가 되는 걸 겁니다. 그것이 도토리의 사명이겠죠. (‘사명’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요?)

참나무가 되려면 도토리는 땅에 묻혀서 썩어져야 합니다. 썩어야 뿌리가 나고, 뿌리를 내리고 자라야 떡잎을 낼 수 있어요. 그런데 땅에 묻혀서 썩어질 도토리에게 ‘크기’가 중요할까요? 땅에 묻혀서 썩어져서 뿌리를 내리는데 도토리의 ‘윤기’가 중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참나무가 되는 과정에서 크기나 윤기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보기에 크기가 작고 윤기가 없더라도, 결국은 도토리보다 몇 백 배는 더 큰 나무가 될 테니, 지금 당장의 도토리의 크기나 윤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죠. 시인은 도토리에게 던진 물음을 우리에게도 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정 무엇이 중요한가?

 

이 물음이 우리에게도 동일하다면, ‘너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라고 묻는 물음에 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지금 당장의 겉모습이나 내가 가진 조건을 내세우기보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내 삶에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사명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그것에 합당한 ‘훨씬 더 중요한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차례입니다.

시인은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숲으로 던져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도토리의 심정을 표현하면서 ‘울지 마라’라고 하죠. 어쩌면 ‘먼 곳으로’ ‘빈숲으로’ ‘홀로’ 던져지는 도토리의 심정은 참담하고 속상하고 슬플지도 모릅니다.

비옥한 땅에서 참나무가 되라고 멀리 던져준 것인데, 지금 당장은 홀로 빈숲에 떨어진 상황이니, 게다가 내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던져졌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정말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도토리는 멀리 빈숲으로 던져졌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다니는 청설모나 다른 짐승들에게 먹히지 않고 결국 참나무로 자라게 될 겁니다. 지금 당장은 깨닫지 못하지만, 외로움과 힘듦의 시기를 견디면 뿌리가 내려오고 싹이 나고, 점점 나무로 자라게 될 겁니다. 시인은 그걸 보고 있죠.

혹시 여러분 중에, ‘아… 나는 너무 작고 보잘것없는 것 아닐까..’ 라고 스스로를 작게 여기면서 참나무가 될 자기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내놓은 기준과 다수가 말하는 가치관에 자신을 비교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가 주는 충고를 마음에 새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정 무엇이 중요한가… 도토리에게 중요한 것이 결국 ‘얼마나 큰가’ 하는 ‘크기’나 ‘얼마나 반짝이느냐’ 하는 ‘윤기’가 아니라, 결국 ‘참나무가 되는 것’이라면, 지금 나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나는 그 중요한 것을 따라 살고 있는가 한 번 짚어 보고 돌이켜 봐야 하겠죠.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샘 옥(Sam Ock)의 <Meet me>라는 곡을 가져왔습니다.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나는 한 명의 어린 아이에 불과하지, 몇 백만 명의 어린 아이 중 그저 한 명일 뿐. 내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무리 노래를 부른다고 해도 그 노래가 높은 곳의 당신에게 들릴 수나 있을까?”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멀리 던져진 작은 도토리와 같은 마음의 가사이죠. 하지만 이 노래는 ‘네가 굳이 높은 곳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괜찮아. 비록 여전히 어둡고 낮은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 너의 노래를 듣는 이가 있어. 그리고 너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할거야’라고 이어집니다. 숲 속에 던져진 작은 도토리 같은 시기를 겪고 계신 분들, 참나무가 될 인내의 시기를 겪고 계신 분들께 이 노래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져와 보았습니다.

오늘 시가 필요한 시간은 여기까지입니다. 가을의 청명한 하늘을 마음껏 즐기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시가 필요한 시간 이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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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옥(Sam Ock) – meet me 주소 – https://youtu.be/Rii2mrgI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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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마리횬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