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드리언 리치(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2.  <피, 빵, 시>, 에이드리언 리치(下)

“위치의 정치학을 향하여”

 

정유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미국 산타 크루즈(Santa Cruz) 길가에 그려져 있는 에이드리언 리치 초상화)

 

  • 니카라과 혁명과 흑인 페미니즘

198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의 페미니즘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로널드 레이건의 집권 이후 1980년대 내내 언론·종교·대중문화·정치 등의 영역에서 페미니즘 운동에 반발하는 백래시(backlash)에 시달렸고 낙태를 둘러싼 이슈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이 가장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둘째, 냉전 체제 속에서 국제적인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타국에 대한 내정 간섭은 국제적인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미국 여성들과 남미 여성들의 국제적인 연대 또한 위태로워졌다. 특히 1979년 7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 Frente Sandinista de Liberacion Nacional)은 혁명을 통해 니카라과의 소모사(Somoza) 독재정권을 타도했지만, 니카라과의 좌경화를 우려하며 남미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기를 원하였던 미국 정부는 니카라과 내 반혁명세력인 콘트라(Contra)를 지원하였으며 그 결과 1980년대 내내 니카라과는 내전에 시달려야 했다. 무엇보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에서 니카라과 여성들은 무장봉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으며, 독재정권뿐만이 아니라 가부장제로부터 해방된 사회를 건설하는 기획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반혁명세력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정부에 대항할 수 있는 페미니스트들 간의 국제적인 연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였으나 80년대 페미니즘의 백래시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미국의 페미니즘은 니카라과 혁명이라는 이슈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

셋째, 미국의 페미니즘은 내부적으로 여러 분파들로 나뉘었고, 무엇보다도 제2물결 여성운동에 참여하였던 흑인여성들이 흑인운동 내에서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도 흑인 여성들은 주변화되어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흑인여성들에게 젠더와 인종 문제는 중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단지 백인 중산층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흑인 여성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의 시간 속에서 1984년 에이드리언 리치의 「위치의 정치학을 향하여(Notes toward a Politics of Location)」가 발표되었다. 이 글에서 리치는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우리’가 누군지, 그리고 ‘우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여성들이 단일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질문함으로써 여성운동의 위기에 응답하고자 하였다.

(니카라과 혁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여성들)

 

  • 타자와 몸의 위치성

미국이 니카라과 내전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단지 “여성으로서 나에게 국가는 없다”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을 피력했다. 오히려 리치는 “여성으로서 나에게는 국가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미국의 국가주의에 동조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지도 위에 그려진 미국이라는 공간에서 태어나고 자라나며 그 속에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 자신에게도 미국이 관여하고 있는 니카라과 내전과 그 내전이 일으키는 비참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리치에게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는 것은 곧 타자에 대한 자신의 책임성을 인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때의 위치는 단지 물리적인 위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치는 언제나 역사적으로 구성된 공간이었으며, 위치의 역사에는 타자들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다.

여성으로서 나에게는 국가가 있다. 즉 여성으로서 나는 단지 정부를 비난하거나, 혹은 “여성인 나의 조국은 전 세계다”라고 3번 말한다고 해서 국가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민족적 충성심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리고 국민국가가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다국적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얻는데 이용하는 구실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지도 위의 한 장소가 어떻게 또한 여성으로서, 유대인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내가 만들었고 또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역사의 한 장소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는 흑인 미국 시민들의 글에서, 그들의 행동, 연설, 설교들에서 내가 그들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있는 한 위치의 지점인 나의 백인성이라는 의미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또한 오늘날의 쿠바 여성들이 쓴 시를 읽으면서부터 누가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나의 시각 및 생각의 방식을 형성했던 하나의 위치, 또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하나의 위치로서 북아메리카인이라는 의미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나는 작고 가난한 나라이자 빈곤을 뿌리뽑기 위해 4년을 바친 사회인 니카라과를 여행하고 있었다. 니카라과와 온두라스의 경계선이 되는 언덕 아래에서 나는 등 뒤로 북아메리카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무게, 미국의 군사력, 미국의 엄청난 화폐 전횡, 미국의 매스미디어 등을 육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즉 내가 반체제 인사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권력의 부츠를 한껏 치켜올린 미국인의 한 성원으로서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으며, 우리가 남아메리카 전역에 드리운 차가운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지도 위에서 내 몸이 놓인 위치를 인식하는 것은 곧 몸 자체에 대한 질문, 즉 내 몸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 몸은 어디에 있으며, 내 몸은 무엇으로 보이는가와 같은 질문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순간 몸은 단일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특이하고 다양한 것들의 집합체임을 발견할 수 있다. 몸에는 변형되고 변색되고 손상되고 손실된 부분, 그리고 쾌락을 느끼게 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또한 몸의 피부색, 임신의 흔적 여부, 중산층으로 치과의 진료를 받은 치아의 흔적들은 내 몸이 특정한 역사의 지형을 지나왔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지형은 단일하지 않다. 여성으로서뿐만 아니라 백인으로서, 유대인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 다양한 정체성들이 혼합되어 있는 흔적들이 몸에 새겨져 있다. 이처럼 몸을 통한 사유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이 단지 성별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관계 안에서 복합적으로 구성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끔 한다.

위치의 정치. 나의 몸에서 시작한다 하더라도, 나는 처음부터 그 몸이 하나의 정체성 그 이상을 갖는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산부인과 병원에서 세계로 옮겨질 때, 나는 여자로 간주되고 여자로 취급받지만, 또한 백인으로 간주되고 백인으로 취급받는다. 그 사람이 흑인이든 백인이든 모두가 나를 그렇게 취급한다. 한 명의 흑인 아이가 인종과 성별에 의해 위치지어지는 것만큼이나 분명한 것은 내가 인종과 성별에 의해 위치지어진다는 것이다. 비록 백인 정체성이 지닌 의미가 백인은 우주의 중심이라는 가정에 의해 신비화되었을지라도.

(여성운동에 참여하는 흑인여성들)

 

  •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서 차이에 대한 인식으로

이 글에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더이상 여성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에 대한 믿음이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여성들의 공통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으며, 전세계의 모든 여성들의 고양된 의식과 함께 해방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시기에 에이드리언 리치는 더 이상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오히려 미국의 페미니즘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리’라고 말하는 경향은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자의 경험을 삭제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타자를 대신하여 말할 수 있다는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자신의 몸에서, 지도 위의 위치에서,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서 많은 차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여성운동을 지탱해온 ‘우리’, 그리고 단일한 정체성으로서의 ‘여성’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타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또 다른 기제임을 확인한다. 오히려 차이들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타자에 대한 인식 속에서 우리 또한 특정한 위치 속에서는 억압 기제의 일부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갖는 것을 에이드리언 리치는 페미니즘 위기의 시기 속에서 새로이 발견한 페미니즘의 방향으로 이해했다. 이런 점에서 에드리언 리치의 「위치의 정치학을 향하여」는 제2물결 페미니즘 이후를 고민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으며, 주디스 버틀러, 찬드라 모한티, 로지 브라이도티 등 많은 현대의 페미니스트 사상 속에 에이드리언 리치의 언어와 고민들이 스며들게 되었다. 그녀에게 ‘우리’를 상실하는 것, 더이상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공통되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신념과 희망의 상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우리’의 상실을 “계속 나아가기 위한 투쟁으로서, 그리고 책임을 향한 투쟁”의 토대로 만들고자 하였다. 페미니즘이 단일한 ‘우리’의 정체성으로 확립될 수 없으며, 타자에 대한 책임을 수반해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은 페미니즘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그녀의 생각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증명되고 있다.

 

  • 두 편에 걸친 에이드리언 리치의 글 어떠셨나요?
  • 다음으로는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가 연재됩니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 ⑤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플라톤 대화편의 고전 그리스어 텍스트의 모태는 19세기 초 독일의 고전문헌학자 베커(I. Bekker)가 유럽의 유수 도서관들을 찾아가며 그곳에 산재해있었던 수많은 중세 양피지 사본들(vellum codex)을 비교 교열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여러 해에 걸쳐 펴낸 이른바 베커판 교정본(校訂本)(1816-1823)이다. 이 후 여러 종류의 추가적인 교정본들이 후속해서 나왔는데 그 가운데 플라톤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표준적인 텍스트로 채택되고 있는 교정본이 19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펴낸 <플라톤 전집>(Platonis Opera) 이른바 버넷(J. Burnet)판 교정본이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된 지 101년 후인 지난 2003년에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한 새로운 옥스퍼드대학 판 교정본(S. R. Slings 편찬)이 출간되었다. 이 새 교정본을 보면 <국가>의 고전 그리스어 텍스트 역시 여러 곳이 수정되어 있다. 그런데 수정한 내용들이 대부분 소소한 것들이라 내용상 크게 주목할 만한 부분은 많지 않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기초 원전 텍스트가 달라진 터라, 1997년 버넷판을 텍스트로 삼아 <국가> 우리말 원전 역본을 펴낸 박종현 선생도 이러한 수정 부분들을 꼼꼼하게 반영하여 2003년에 <국가> 개정증보판을 새로 펴냈다. <국가> 박종현 역본의 본문 내용 중 *표 표시를 한 부분들이 새로 수정된 부분인데, 책 말미를 보면 달라진 부분들에 대한 고전어 텍스트 상의 근거가 부록으로 함께 실려 있다.

* 폴레마르크스가 소크라테스 일행을 불러 세워 체류를 권하는 부분[327c]에도 그러한 수정 내용이 들어 있다. 1997년판 박종현 역본에는 “그렇다면 아직도 한 가지가 남아 있지 않겠소? 여러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보내 주어야만 되게끔 설득할 수 있을 때의 경우가 말이오.”로 번역되어 있지만, 2005년 개정판 역본에는 “그러면 아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보내 주어야만 되게끔 우리가 설득하게 될 경우가 남아 있지 않소?”로 바뀌어 있다. 이것은 버넷판 텍스트에서 두 단어로 분리되어 실려 있는 ἓν λείπεται(한 가지가 남아 있지 않겠소?)라는 구절이 새 텍스트에서는 ‘하나’의 뜻을 가진 ἓν을 후속 동사에 붙여 그냥 ελλείπεται(남아 있지 않겠소?) 한 단어로 수정된 데에 따른 것이다. 내용 상 ‘한 가지’라는 뜻이 없어진 것이다. 사실 고전학자들 사이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부분을 ἓν λείπεται로 볼 것이냐 ελλείπεται로 볼 것이냐 논쟁이 있었는데 결국 새 교정본에서는 ελλείπεται쪽을 택한 것이다. 이렇듯 고전학자들은 텍스트 상의 단어 하나하나를 따져가면서 과연 어떤 것이 플라톤 당대의 텍스트와 일치하는 것인지를 두고 지금도 씨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수정 부분은 내용적으로도 왜 그런 수정이 이루어졌는지 눈여겨 볼만한 사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전후 내용을 보면 폴레마르코스가 소크라테스 일행을 불러 세워 대짜고자 ‘우리가 몇 명인지 아시냐? 우리 보다 더 강하시면 청을 물리치고 시내로 가시고 아니면 이곳에 머물러 달라’는 식으로 요청하자 소크라테스는 설득이라는 방법이 있는데 왜 그리 무턱대고 강권하느냐고 반문한다. 이에 폴레마르코스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설득이 통하겠느냐’는 식으로 다시 반문하고 글라우콘이 ‘결코 그럴 수는 없다’고 대답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 장면은 플라톤이 앞으로 전개될 트라쉬마코스와의 만남을 예고하는 일종의 복선으로 여겨지는 장면이다. 트라쉬마코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가로 막고 나선 다음, 소크라테스의 말은 아예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펴다가 소크라테스의 비판에 밀려 겉으로는 고분고분해지지만 속으로는 끝까지 설득되지 않은 채 자기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이 장면에서도 폴레마르코스는 마치 트라쉬마코스처럼 처음부터 막무가내 힘으로 길을 막고 서서 자기 요구를 내세우고 있고 소크라테스는 설득의 방법도 있다고 반문하지만 그는 아예 설득할 받아들일 생각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고 대꾸한다. 이럴 경우 과연 소크라테스로서는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설득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면 그냥 강압에 밀려 폴레마르코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곳의 경우처럼 함께 구경을 하자는 수준의 강권이야 크게 문제 삼을 것은 없겠지만, 트라쉬마코스의 요구처럼 정의와 행복의 관계를 묻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서는 결코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결코 굴복을 거부하고 마땅히 그에 맞서 싸우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에 대한 설득을 접고 제2권부터 그의 입장을 압도하고 남을 만한 대안적 주장을 제시한다. 트라쉬마코스는 자신의 주장이 완전히 논파되었음에도 속으로는 여전히 근본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를 통해 ‘아집이란 비록 논파는 될 지라도 결코 파괴되는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 부류의 주장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란, 합당하고 설득력 있는 근거를 내세워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주장을 받아들이게 하여, 그 주장의 정당성을 사회적 변화의 동력으로 관철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국가> 제1권에서 플라톤이 말하고자 하는 제2권 이하에 대한 철학적·문학적 함의이다. 이렇게 보면 이곳에서도 폴레마르코스의 강권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소크라테스에게 설득 한 가지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설득 한 가지만 남아 있다면 그게 실패할 경우 강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입장에도 맞지 않는다. 그리고 이 부분이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고하는 복선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라면 더더욱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해당 부분 텍스트의 수정이 이루어졌을지 모른다. 그렇게 보면 그것은 매우 의미 있는 합당한 수정이 아닐 수 없다.

* 그래서 아테이만토스는 폴레마르코스가 강권하는 모습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는지 바로 대화에 끼어들어 다른 방식으로 소크라테스의 체류를 권한다. 아테이만토스의 말에 소크라테스가 새로운καινόν 것이라고 관심을 보이자 폴레마르코스도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그의 말을 거들고 글라우콘도 소크라테스에게 머물기를 권한다. 폴레마르코스도 최소한 소크라테스가 젊은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서둘러 돌아가려한 것으로 보아 시간은 저녁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폴레마르코스의 제안대로 축제 현장이 아니라 그 전에 일단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폴레마르코스의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소크라테스는 폴레마르코스의 아버지 케팔로스와 만나 인사를 나눈다.

 

  1. 케팔로스와 대화(328b~331d)

 

2-1(328c-328e): 소크라테스 케팔로스를 만나 노년의 즐거움을 묻다.

 

[328c]

* 그런데 폴레마르코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일행의 수를 내세워서까지 가는 길을 막아선 이유가 단지 마상 횃불경주와 철야제 구경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어색해 보인다. 사실 폴레마르코스의 제안에 따라 집으로 오게 되었지만 전후 상황을 보면 케팔로스가 아들 폴레마르코스를 시켜 구경 안내를 핑계로 소크라테스를 집으로 불러들인 것이라고 봐도 이상할 것이 없다. 케팔로스 이외에 여러 사람이 그곳에 함께 있는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사실 당시 아테네의 유명 정치가나 부유층의 집은 소피스트들을 비롯해서 당대 많은 유력 인사들이 드나들거나 머무는 일종의 고급 사교 무대였다. 페리클레스의 집에 수많은 소피스트들이 아예 식객으로 늘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캐팔로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친구나 친척처럼 자주 찾아달라고 말하는 것도 다른 소피스트나 유력인사들이 그러하듯 소크라테스도 그러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케팔로스는 당대 아테네 여러 유력인사들은 자기 집에 자주 드나드는데 유독 소크라테스만은 그리하지 않아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다. 케팔로스는 소크라테스를 기다렸다는 듯 반기면서 ‘실은 자주 찾아와야만 한다.’χρῆν μέντοι.(328c), ‘이제 더 자주 당신이 이리로 와야 한다.’νῦν δέ σε χρὴ πυκνότερον δεῦρο ἰέναι.(328d)는 말로 반복해서 강권하고 있는데 그의 이러한 모습도 그러한 서운함 때문일 것이다.

* ‘내가 오랜만에 그 분을 뵌 탓이기도 하지.’διὰ χρόνου γὰρ καὶ ἑωράκη αὐτόν. 케팔로스가 아주 늙어보였다는 앞의 말과 더불어 이 말은 소크라테스와 케팔로스가 서로 상당 기간 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소피스트들이나 유명 인사들처럼 케팔로스 같은 유력 인사들 집에 드나들기를 좋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케팔로스 역시 자기가 기력이 있으면 소크라테스를 찾아갔을 것이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지난날 그 긴 시간 동안 소크라테스를 제 발로 찾아간 적도 없어 보인다. 어쩌면 케팔로스는 거류외인으로 아테네로 건너와서 부를 쌓고 여유자적하고 품위 있는 삶을 보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소크라테스에게 과시하려고 폴레마르코스를 시켜 그를 불러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플라톤은 그러한 케팔로스의 모습을 통해 크게는 상업주의, 부와 가난의 문제를 포함해서 당대 신흥 기득권 부유층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이미 고인이 된 케팔로스를 시대착오를 무릅쓰고 하나의 대표적 인물로 대화편에 등장시켰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플라톤의 대화편의 주요 등장인물들 가운데 시인과 소피스트, 장군 등 수많은 사람들 이외에 거류외인이자 상공업에 종사하는 인물은 케팔로스가 유일하다.

* 이런 측면에서 보면 케팔로스의 등장은 <국가> 전체의 구상 하에서 주도면밀하게 도입부를 구성하고자 하는 플라톤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실제로 <국가> 제1권은 당대 신흥 부유층인 케팔로스의 등장과 그의 훈계조의 과시로부터 시작하여, 폴레마르코스의 입을 통해 아테네의 주류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시인들의 주장으로 이어진 후, 트라쉬마코스의 거친 입을 통해 또 다른 당대 신흥 지식인 세력으로 크게 부상한 소피스트의 도발적인 도전을 그려냄으로써 그 극치에 이른다. 이처럼 대화의 목적과 동기는 물론 등장인물의 특징과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플라톤의 아주 섬세하고도 주도면밀한 문학적 철학적 플롯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이런 점에서도 <국가> 제1권은 <국가>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가 된다. 정의의 문제를 둘러싼 당대의 도전과 도발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처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원초적인 문제의식과 실마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후에도 계속 강조하게 될 것이다.

* ‘머리에 제관을 쓰신 채ἐστεφανωμένος…. 뜰에서 막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네’τεθυκὼς γὰρ ἐτύγχανεν ἐν τῇ αὐλῇ. 여기서 제물을 바친 대상은 제우스임이 분명하다. 아테네인들은 집 뜰(ἑρκος)에 제단을 만들어 제우스를 가정을 지키는 신으로도 섬겼다. Ζεὺς ἑρκεῖος는 이 경우에 붙여진 제우스의 이름이다. 이처럼 집에서 제단을 꾸미고 제사를 드리는 모습은 아테네인들의 일상적 삶의 일부였고 그 대부분은 오늘날도 그러하듯이 개인과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전란의 혼란기에 일반 대중이라면 몰라도 아테네 사회 지도층인 케팔로스가 제사를 드리면서 공동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저 재산에 기대어 자신의 안녕과 사후 구원에 관심을 쏟는 모습에 비판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것은 나중에 호메로스 시가와 시인들에 매달려 있는 아테네인들의 종교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과도 연결된다.

 

[328δ]

* ‘적어도 내 경우에는 육신과 관련된 다른 즐거움이 시들어짐에 따라 그 만큼 대화에 대한 욕망과 즐거움이 증대된다는 사실을 잘 아셔야 한다.’ὡς εὖ ἴσθι ὅτι ἔμοιγε ὅσον αἱ ἄλλαι αἱ κατὰ τὸ σῶμα ἡδοναὶ ἀπομαραίνονται, τοσοῦτον αὔξονται αἱ περὶ τοὺς λόγους ἐπιθυμίαι τε καὶ ἡδοναί. 케팔로스의 이 말은 정신적 즐거움이 육체적 즐거움에 반비례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 즐거움에 부차적인 것임을 은연 중 내포하고 있다.

* ‘잘 아셔야하오’εὖ ἴσθι, 젊은이들과 ‘어울리시오’σύνισθι, 자주 ‘찾아주시오’φοίτα 이곳 케팔로스의 말에는 명령형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고대 그리스어 긍정 명령형의 용례가 모두 강제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케팔로스의 말에는 전체적으로 연장자임을 내세워 소크라테스를 내려다보며 훈계조로 강권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 여기서 ‘다른’ἄλλαι이라는 표현은 노인이 되어도 시들지 않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도 있음을 시사한다. 하긴 늙어서도 맛있는 것을 찾거나 다른 위안거리에 집착하는 일은 시들지 않는다. 그래도 이 표현은 그냥 이러 저러한 육체적 즐거움들을 나타내는 용도로 쓰였다고 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만약 직접적인 ‘다른’의 의미로 썼다면 여기서 ‘시들어가는 즐거움’이란, 전후 문맥상 성적 쾌락일 것이다.

* 아테네에서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라기보다는 대체로 출산을 위한 방편으로 부모와 친척들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성적 쾌락을 위해 외도를 일삼거나 연애 대상으로 따로 정부를 두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데모스테네스는 귀족이라면 적어도 2-3명의 정부는 있어야한다고까지 말했다고 전해진다. 부부간에 성적인 교감과 정신적 유대의 일치와 상승을 꿈꾼다는 것은 거의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사회적 관습상 부부간의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쾌락의 공존은 구조적으로 이미 기대할 여지가 없다.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 부부간의 일편단심과 사랑은 말 그대로 신화적 로망에 불과하다. 요컨대 여성은 장차 가사와 출산, 육아를 위한 일종의 도구이자 재산 정도로 여겨졌던 것이다. 플라톤이 주장한 수호자들 간의 처자공유는 기본적으로 가족이기주의, 귀족 내 자기 혈족주의가 빚어내는 반공동체적 경향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출산을 주목적으로 한 당대의 기계적인 결혼관을 기저에 깔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플라톤이 능력에서 여성을 차별하지 않은 것은 당대의 의식 수준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기는 하나 인격체로서 여성의 성적 자의식과 자기정체성에 관해서는 여전히 시대적 무지의 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328e]

* 소크라테스도 노인과 대화하는 걸 기뻐한다고 말한 후 케팔로스의 삶의 여정에 관해 물으면서 특히 ‘노년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 어려운 고비인지 의견을 구한다.

* 육신과 관련된 다른 즐거움이 시들어짐에 따라 그 만큼 대화에 대한 욕망과 즐거움이 증대된다는 케팔로스의 말에 소크라테스도 ‘실은 저로서도 많이 연로하신 분들과 대화하게 되는 걸 기뻐합니다.’χαίρω γε διαλεγόμενοςτοῖς σφόδρα πρεσβύταις.라고 호응한다. 앞에서 케팔로스가 ‘대화에 대한 욕망과 즐거움’이고 말했을 때 대화의 원어는 logos이고 케팔로스의 말을 받아 소크라테스가 말한 대화의 원어는 dialogos이다. 물론 dialogos에는 일반적인 대화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케팔로스가 logos라고 표현한 것을 염두에 두고 아마 중의적으로 이 표현을 썼을 것이다. 케팔로스가 원하는 것은 담소이지만 소크라테스가 바라는 건 문답이다. 케팔로스는 소크라테스적 문답을 감당하기에는 이미 기나긴 인생경험을 통해 생각이 굳어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런 노인들의 생각은 경륜의 측면과 함께 아집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 ’들어서 알아야한다‘에 쓰인 πυνθάνομαι는 ‘듣거나 물어서 아는 것(to learn by hearsay or by inquiry)’을 의미한다. 케팔로스는 앞서 소크라테스에게 훈계조로 강권하다시피 말을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케팔로스에게 노년의 삶에 대해 배우되 단순히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묻고 따지는 방식도 병행해서 배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 ‘노년의 문턱’’ἐπὶ γήραος οὐδῷ이라는 말은 <일리아스> 22권 60, 24권 487에서 처음 나타나는 어귀로 부양자가 없이는 따로 살아가기 힘든 단계의 노년 시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인간은 출생의 문턱을 넘어 이생을 살다가 노년의 문턱을 넘어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행자로 여겨진다. 케팔로스는 아테네 몇 안 되는 부유층으로 집도 여러 채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노년의 문턱을 넘어 장남인 케팔로스의 부양을 받으면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어르신께서 어떻게 알려 주실 것인지’ἢ πῶς σὺ αὐτὸ ἐξαγγέλλεις. 여기서 쓰이고 있는 ἐξαγγέλλεις는 무대 뒤에서 연극의 진행 상황을 말로 알려주는 ‘전달자’를 뜻하는 연극용어 ἐξάγγελος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케팔로스에게 인생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노령의 의미를 알려주는 전달자 역할을 부탁하고 있다.

 

 

에이드리언 리치(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1.  <피, 빵, 시>, 에이드리언 리치(上)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

 

정유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1970년 5월 1일 뉴욕에서 열린 ‘제2차 여성연합대회(Second Congress to Unite Women)’에는 전에 없던 긴장이 감돌았다. “연보라색 골칫거리(Lavender Menac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스무 명의 여성들이 행사장 앞에서 소란을 피우며 훼방을 놓았다. 이 여성들은 주류 페미니즘 운동이 레즈비언들을 차별하는 것에 대해 큰소리로 항의하였다. 티셔츠에 적힌 “연보라색 골칫거리”라는 글귀는 미국에서 제2물결 여성운동을 선도적으로 이끌던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이 레즈비언 운동을 비난하며 연보라색 골칫거리(Lavender Menace)라고 이름붙인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베티 프리단과 그녀가 회장으로 있던 전미여성기구(NOW,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는 여성의 평등권을 보장받기 위한 운동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 시기에는 남녀평등 헌법 수정안을 국회에 통과시키기 위한 운동이 가장 주요한 이슈였다. 따라서 전국여성단체의 운동을 주도하던 회원들 중 일부는 레즈비언들이 젠더 이슈보다는 섹슈얼리티를 의제로 내세우는 것이 오히려 여성운동이 확장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주류 페미니즘과 레즈비언 페미니즘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가운데에서 에이드리언 리치의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Compulsory Heterosexulity and Lesbian Existence)‘이 1980년 <기호들(Signs)>지에 발표되었다. 이 글은 발표와 동시에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이성애를 여성 억압의 주요 원천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레즈비언 페미니즘에 주요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연보라색 골칫거리(LAVENDER MENAC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항의하는 여성들

 

여성 억압의 원천으로서 강제적 이성애

에이드리언 리치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에 대한 여성들의 내재적인 욕망을 자연적인 것으로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거나 의문시하지 않은 데에 문제를 제기한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은 남성과의 결혼이 아무리 불만족스럽고 억압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인생에서 불가피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리치가 보기에는 이성애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자 제도이며, 여성 억압의 근원이다. 남성적 권력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제어하면서 유지된다. 캐틀린 고프(Kathleen Gough)를 인용하면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남성적 권력의 작동 방식을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부정하고, 강제적으로 섹슈얼리티를 남성에게 향하도록 하는 것, 여성들의 생산력을 제어하기 위해 여성들의 노동을 명령하고 착취하는 것, 여성들의 아이들을 통제하고, 그녀들에게서 아이들을 빼앗는 것, 여성들을 신체적으로 구속하고, 여성들의 운동을 막는 것, 여성을 남성들 사이의 거래의 대상으로 사용하는 것, 여성들의 창조성을 속박하고, 사회의 지식과 문화적 성과의 거대한 영역에 여성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억압의 형태는 단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불평등과 재산 소유의 문제로만은 해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페미니스트들이 여성해방에 이르기 위해서는 단지 남성과 동등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이성애라는 제도에 대해 의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에 있어 ‘대부분의 여성은 선천적으로 이성애자이다’라는 가정은 이론적으로 정치적인 장애물이다. 이러한 가정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레즈비언 존재가 역사에서 누락되어 왔으며 질병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며, 레즈비언을 고유한 존재로 보기보다는 예외적인 존재로 보기 때문이며, 만약 당신이 자유롭고 ‘선천적인’ 이성애자로 생각한다면 여성에게 이성애란 ‘선호’가 아닐 수 있고, 오히려 강제적으로 부여되고 관리되고 조직되고 선동되고 유지되어온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애를 하나의 제도로 이해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경제적 시스템 또는 인종주의라는 계층 질서가 육체적 폭력과 허위의식을 포함한 다양한 힘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성애가 여성의 ‘선호’나 ‘선택’이라는 것에 의문을 던지는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리고 이어지는 지적이고 감정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이성애와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페미니스트에게는 특별한 용기를 요구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보상은 매우 클 것이다. 그것은 자유로운 생각, 새로운 길로의 탐험, 거대한 침묵으로부터의 균열, 인간적 관계에 대한 새로운 확신과 같은 보상을 가져다 줄 것이다.”

 

레즈비언 존재(lesbian existence), 레즈비언 연속체(lesbian continnum)

강제적 이성애라는 제도 내에서는 레즈비언이라는 존재가 비가시화되고 삭제된다. 이런 가운데에서 레즈비언의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리치는 레즈비언주의(lesbianism)이라는 용어보다는 “레즈비언 존재”“레즈비언 연속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레즈비언 존재라는 말을 통해 리치는 레즈비언이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다는 것과 더불어 레즈비언 존재의 의미가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레즈비언 연속체라는 말을 통해 단지 여성이 다른 여성에서 성적으로 이끌리는 것뿐만 아니라 한 여성의 인생이나 역사 속에서 여성들과 동일시해왔던 경험까지로 레즈비언의 의미를 확장시키고자 한다. 이처럼 확장된 의미에서 레즈비언 연속체는 여성들이 우애와 즐거움을 나누는 일상적인 관계의 영역까지 확대된다. 따라서 여성들이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여성들은 가부장제 속에서는 비가시화되고 삭제되고는 하는 레즈비언 연속체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레즈비언 연속체의 발견을 통해 여성들은 여성들을 서로서로 북돋아줄 힘을 발견하고 해방의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여성들이 레즈비언 연속체로 존재할 가능성-여자아이가 엄마의 젖을 빠는 것에서부터, 엄마가 된 여성이 어렸을 적 엄마의 모유 냄새를 회상하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에 이르기까지, 버지니아 울프가 묘사한 클로이와 올리비아의 관계처럼 함께 실험실을 공유하는 두 여성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여성들이 90세에 죽어가는 여성을 쓰다듬어주고 어루만져주는 것에 이르기까지-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레즈비언과 동일시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레즈비언 연속체의 안과 밖을 오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를 연결하기

후에 에이드리언 리치는 이 글을 썼던 동기에 대해서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 사이의 틈을 연결하는 다리를 그려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했듯 주류 페미니즘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을 오히려 자신들이 일궈나가는 정치적 목표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여겼으며,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주류 페미니즘이 여성해방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남성들이 일궈낸 제도 속으로 편입해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을 불만으로 여겨 갈등이 첨예해지는 상황이었다. 이 갈등 속에서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이었던 리치는 레즈비언의 의미를 확장하여 페미니스트들도 포괄할 수 있는 레즈비언의 의미를 구성하고자 하였으며, 가부장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의 공통적 목표로 설정하였다.

물론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시도였다. 레즈비언의 의미를 여성과 여성들 사이의 일상적 관계 형성, 그리고 심지어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로까지 확장시키는 바람에 레즈비언의 고유한 정치적 의미는 오히려 약화되었으며,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를 공통의 젠더 이슈로 연결시키면서 남성 게이와 레즈비언의 동맹 또한 상대적으로 약화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리치의 글은 여전히 현재적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공적인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 성역할을 고정시키고 임금차별하는 것 외에도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금지하는 것을 통해 기능한다는 그녀의 주장은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에게는 언제나 여성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언제나 사랑해 왔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을 통해 새로운 사랑, 대안적 사랑의 가능성을 여는 것 또한 우리시대의 페미니즘에게 깊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가 수록된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 모음집 <피, 빵, 시(Blood, Bread, and Poetry)>

 

에이드리언 리치의 페미니즘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가 이 발표되던 1980년에 에이드리언 리치는 만 51세였고, 세 아이의 엄마였으며, 동시에 레즈비언이었다. 1950년대까지 최상위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자 유명한 여성 시인으로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아내와 엄마로서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하였지만 그렇게 노력하면 할수록 공허함과 무기력함에 시달렸었다. 그러던 중 1966년에 리치의 가족이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리치는 반전운동, 시민권 운동, 그리고 무엇보다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면서 리치는 자신의 고립감과 우울감의 원인을 가부장제와 연결시켜 이해하게 되었고, 마침내 남편을 떠났다. 이후 자메이카 출신의 소설가인 미쉘 클리프(Michelle Cliff)와 레즈비언 연인관계를 지속하였다. 뛰어난 시인이었지만 가정이라는 삶 속에 갇혀 있던 그녀에게 페미니즘은 정치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런 점에서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라는 에세이는 그녀의 삶의 전환을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글은 우리에게 여전히 다양한 사랑의 가능성이 가부장제로 인해 보이지 않고 가려져 있으며, 이 숨겨진 사랑의 발견이 우리에게 더 많은 만남과 창조성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서울자유시민대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8년 네트워크 시민대학 ‘2기’ 수강 안내

한철연 2018년 네트워크 시민대학 ‘2기’ 수강 안내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 자유시민대학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인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강좌의 2기 수강생을 모집합니다.

현재 1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본 강좌는 1기(7월 23일~10월 1일)와 2기(9월 17일~11월 26일)로 나누어 진행하는 바, 9월 중순 이후 2기 강좌 시작 시기가 도래하여 안내 드립니다.


2기 강좌는 09월 17일부터 11월 26일까지(2기) 매주 월요일 7시, 총 10주 동안 서교동 한철연 강의실에서 진행합니다.

참고로 1기와 2기의 강좌 프로그램(주제)은 동일합니다.

○ 교육 기간 : 2018년 09월 17일(월) ~ 11월 26일(월) 저녁 19:00~21:00
○ 교육 장소 : 서교동 소재 태복빌딩 302호 한철연 강의실(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14) 전화 : 02-332-4301

○ 한철연 오시는 자세한 길 안내는 한철연 홈페이지www.hanphil.or.kr/notice/view.asp?key=162>www.hanphil.or.kr/notice/view.asp?key=162>http://www.hanphil.or.kr/notice/view.asp?key=162 공지 글의 첨부파일 지도를 확인하시면 좋습니다.

○ 수강 대상 : 20세 이상 서울시민(경기도민도 가능)
○ 수강 인원 : 선착순 20명
○ 신청 방법 : 한철연 공식메일 kophil@daum.net으로 성명, 생년월일, 성별, 휴대폰 번호, 이메일을 꼭 적어서 신청해 주세요.

서울 및 수도권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 2기 프로그램 강의별 내용

2기 강좌의 강사들은 1기 강좌와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 1주 09.17(월) : 서양 고대 그리스에서의 민주 시민의 탄생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역사를 개관해 보고 그것의 현재적 의미와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 2주 10.01(월) : 동양 고대 민본주의와 시민
    (춘추전국시대에 제안된 민본주의적 통치 원칙의 규범적 의의를 살펴보고 그것이 과연 현대 민주주의의 원칙과 공존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 3주 10.08(월) : 근대 부르주아는 어떻게 시민이 되었는가? 도시공간의 출현, 커피하우스, 살롱(근대에 커피하우스와 살롱의 공간에서 재건된 부르주아적 시민과 고대적 시민이 어떻게 다른지 고찰해 본다.)
  • 4주 10.15(월) : 프랑스 혁명과 광장에 선 시민(프랑스 혁명기에 평민들은 어떻게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 5주 10.22(월) : 근대 노동자와 21세기 노동자
    (19세기 이후 프롤레타리아는 어떻게 자신의 계급적 요구를 보편적인 정치적 요구로 전환시켰는지 고찰해 본다.)
  • 6주 10.29(월) : 백성에서 시민으로 향하는 여정(동학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조선의 백성은 어떻게 자립적 시민으로서의 자기 요구를 정치화하였는지 살펴본다.)
  • 7주 11.05(월) : 서울 속의 동학혁명 현장 탐방 – 일시 변동 가능
    (동학혁명의 현장을 직접 탐방함으로써 책 속에 갇힌 역사를 몸의 경험으로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다.)
  • 8주 11.12(월) : 중국에서 시민 되기의 행로
    (이천년에 걸친 동아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동아시아적 형태의 공화국 역사를 시작한 신해혁명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전망해 본다.)
  • 9주 11.19(월) : 근대 여성은 어떻게 시민이 되었나?
    (가부장적 가족 질서와 친밀성 영역의 사적 억압을 정치적 해방의 요구로 전환시킨 여성 운동의 의미를 현대 한국의 현실에서 재음미해 본다.)
  • 10주 11.26(월) : 광화문 광장의 함성, 시민들의 목소리
    종합 토론(촛불정치의 현장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던 혁명 정치의 파편을 제도정치 비판의 관점에서 토론해 본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9.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上)

 

이지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1960년대에 시작된 소위 ‘여성주의 제2 물결’을 대표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1945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유대인 부모의 여섯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몬태나주 캔자스시티에서 자라났다. 격동의 60년대에 워싱턴대학교를 졸업한 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Institute of Chicago)에서 회화를 공부하였다. 1960년대는 한국 전쟁 후 잠시 소강 상태를 보였던 동서 냉전이 다시 격렬해져 당시 소련과 미국 사이의 대립이 핵전쟁 불사의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던 시기였다. 특히 미국이 주도했던 베트남 전쟁은 60년대 내내 미국을 괴롭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냉전의 위협과 길고긴 전쟁에 회의감을 느낀 청년세대는 기성 세대의 권위주의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새로운 청년 문화를 형성했다. 68운동, 프라하의 봄, 반전 운동, 인권 운동, 흑인 해방 운동, 학생 운동에서 우드스톡 페스티벌로 대표되는 히피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양상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20대를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보내며 학생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던 경험은 파이어스톤으로 하여금 모든 사회 문제 중에서 ‘페미니즘의 문제를 여성들의 최우선적 과제로 볼 뿐 아니라 더 큰 혁명적 분석에 있어서도 가장 중심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으로 이끌었다.

이 시대 서구의 젊은 여성들은 여타 사회 운동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모든 사회 운동에서 여성 문제는 주변부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당하거나 더 나쁘게는 “여성”에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외면당했던 것이다. 예컨대 “자신의 억압을 중심으로 하는 풀뿌리 운동 조직, 피 흘리는 대중에 기반할 필요성, 지도력과 권력 놀음의 종식”을 내세웠던 흑인 운동조차도 이 중요 원칙을 여성들에겐 적용하지 않았다. 흑인 운동에서 흑인 여성은 단지 보조자였고, 발언권이 적거나 없었으며, 흑인 남성들은 흑인 여성 위에 군림하고 명령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억압받고 있었기 때문에 억압받는 이들의 처지에 누구보다도 크게 공감하고 이들의 해방 운동에 헌신할 수 있었으나 그 운동들은 정작 여성 자신의 해방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파이어스톤의 기념비적 저작 『성의 변증법』에 잘 녹아있으며 이 책의 근본 정신의 토대를 형성했다.

 

  • 페미니즘 제 1물결,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넘어 여성 억압의 본질적 구조로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 서두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성적 계급(class)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그것은 약간의 개혁이나 여성의 노동 세력으로의 완전한 통합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피상적 불평등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파이어스톤은 여성을 하나의 계급이라고 선언한다. 여성의 억압에서의 해방은 약간의 개혁 즉 파이어스톤 당대까지 지속되었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슬로건이라 할 수 있는 “남성과 동등한 법적 대우를, 여성에게 참정권, 취업권, 재산권을!”이라는 슬로건의 실현으로 쟁취될 수 없는 것이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대표적 실천 운동으로 손꼽을 수 있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남성과 동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법적 권리, 교육의 기회 등이 주어져야 하며 이에 따른 결과로 남성과 동등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의 문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세기 서구에서 시작된 이들의 희생적 실천 운동이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으나 이들은 남성을 인간의 이상적 기준으로 생각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참정권 등이 실현되자 여성 운동은 1960년대가 오기까지 오랜 침묵의 시간을 맞게 된다. 여성은 남성의 정치 운동의 부수적 역할을 맡아 남성 기득권 강화에 기여하거나, 여성의 직업으로 특화된 남성 보조적인 하위 직업에 종사하며 착취당하거나, 가정에서 어머니 모성의 가치 있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분투하면서 갈팡질팡했다. 앞서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예를 들어 살펴보았듯 여성이 참정권 등을 얻고 고등 교육을 받게 되었다고 해서 여성의 지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법적 지위의 문제와 무관하게 일상의 모든 곳에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는 여성 억압은 정치, 사회, 문화 전방위적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파이어스톤은 이와 같은 사정이 이전 여성주의 운동이 여성 억압의 문제에 피상적으로 접근한 까닭이라고 파악한다. 여성 억압은 단지 이상적 지향점을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한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맑스-엥겔스가 그러했듯 변증법적 유물론의 과학적 분석 방식을 통해 억압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것이다. 파이어스톤은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에서 여성 억압의 문제를 다룬 것이 불충분한 시도였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를 ‘생산 양식과 교환 양식의 변화, 사회의 계급 분화와 계급간의 투쟁’을 통해서 설명하면서 여성의 억압에는 이런 경제적 여과기라는 틀에 걸맞는 방식을 통해서만 접근했던 것이다. 지배 계급과 노동 계급, 이들 두 계급의 투쟁사라는 역사 분석은 불충분하다. 이 기저에 존재하는 것은 남성 계급과 여성 계급 사이에 존재하는 지배와 착취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억압의 역사다. 따라서 다만 여성이 노동의 전면에 나서고 온갖 법적 권리를 얻는다고 해서 여성의 진정한 해방이 올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 생물학적 조건, 생식능력과 육아

 

노동 계급에 대한 착취보다 오래되고 고질적인 것은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다. 이것은 남성 계급과 여성 계급의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한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생물학적 차이, 아이를 임신하기 위한 기관 발달이 무력을 약화시키고 임신과 육아의 긴 시간 더욱 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 자연적 사실이 인간 최초의 불평등 구조의 핵심이다. 이러한 기능의 차이는 여성의 생식 능력을 숭배하는 드믄 곳에서조차 남성의 여성 착취와 지배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 생물학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한 가족에는 이처럼 자연 본질적 불평등한 힘의 분배가 내재해 있다. 남성과 여성의 자연적 생식 차이는 모든 계급 제도의 전형이자 최초의 노동 분업의 형태이다. 또 맑스-엥겔스가 파악한 인간의 역사로서의 노동 계급과 지배 계급의 투쟁의 역사, 그 악의 근원인 사유 재산 제도의 자연적 근거이자 권력욕의 근원이다.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에서의 해방 없이 여성의 진정한 해방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평등, 해방은 불가능한 꿈인 것이다.

생물학적 힘의 불균형이 여성의 필연적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물리적 힘의 지배를 그대로 수용하는 동물이 아니란 점에서 지당한 것이다. 인간은 정의(justice), 도덕 관념과 자연 과학의 발전을 통해 동물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벗어나는 길을 걸어왔다. 만일 물리적 힘의 지배라는 자연의 질서를 그대로 옳음으로 수용하고 그것이 곧 정의였다면 인간은 여전히 노예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자연의 잔혹한 질서의 인간적 개편에 자연 과학의 발전이 엄청난 기여를 해왔다는 것은 맑스-엥겔스의 유물 사관의 하부-상부 구조의 변화 분석 또한 입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맑스-엥겔스가 그들의 불충분한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통해 인간의 해방을 위해 생산 수단의 노동 계급의 점유를 말했던 것처럼 여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생식 수단을 여성이 완전히 점유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울자유시민대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8년 네트워크 시민대학 1기 수강 안내

 

<서울자유시민대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8년 네트워크 시민대학 1기 수강 안내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이하 한철연)는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 자유시민대학의 지원을 받아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란 주제의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오는 7월 23일부터 10월 1일까지(1기) 매주 월요일 7시, 총 10주 동안 서교동 한철연 강의실에서 진행합니다.

강좌는 1기(7월 23일~10월 1일)와 2기(9월 17일~11월 26일)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지금 안내하는 수강생 모집은 1기에 해당되며, 2기는 추후 다시 공지할 예정입니다. 참고로 1기와 2기의 강좌 프로그램은 동일합니다.

 

상세내용

교육 기간 : 2018년 7월 23일(월) ~ 10월 1일(월) 저녁 19:00~21:00

교육 장소 : 서교동 소재 태복빌딩 302호 한철연 강의실(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14) 전화 : 02-332-4301

♦ 한철연 오시는 자세한 길 안내는 한철연 홈페이지http://www.hanphil.or.kr/notice/view.asp?key=162 공지 글의 첨부파일 지도를 확인하시면 좋습니다.

수강 대상 : 서울 시민

수강 인원 : 선착순 20명

신청 방법 : 한철연 공식메일 kophil@daum.net으로 이름, 생년월일, 성별, 휴대폰 번호, 이메일을 꼭 적어서 신청해 주세요.

 

서울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 1기 프로그램 강의별 내용

1주 07.23(월) : 서양 고대 그리스에서의 민주 시민의 탄생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역사를 개관해 보고 그것의 현재적 의미와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2주 07.30(월) : 동양 고대 민본주의와 시민

(춘추전국시대에 제안된 민본주의적 통치 원칙의 규범적 의의를 살펴보고 그것이 과연 현대 민주주의의 원칙과 공존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3주 08.06(월) : 근대 부르주아는 어떻게 시민이 되었는가? 도시공간의 출현, 커피하우스, 살롱

(근대에 커피하우스와 살롱의 공간에서 재건된 부르주아적 시민과 고대적 시민이 어떻게 다른지 고찰해 본다.)

4주 08.13(월) : 프랑스 혁명과 광장에 선 시민

(프랑스 혁명기에 평민들은 어떻게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5주 08.20(월) : 근대 노동자와 21세기 노동자

(19세기 이후 프롤레타리아는 어떻게 자신의 계급적 요구를 보편적인 정치적 요구로 전환시켰는지 고찰해 본다.)

6주 08.27(월) : 백성에서 시민으로 향하는 여정

(동학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조선의 백성은 어떻게 자립적 시민으로서의 자기 요구를 정치화하였는지 살펴본다.)

7주 09.03(월) : 서울 속의 동학혁명 현장 탐방

(동학혁명의 현장을 직접 탐방함으로써 책 속에 갇힌 역사를 몸의 경험으로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다.)

8주 09.10(월) : 중국에서 시민 되기의 행로

(이천년에 걸친 동아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동아시아적 형태의 공화국 역사를 시작한 신해혁명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전망해 본다.)

9주 09.17(월) : 근대 여성은 어떻게 시민이 되었나?

(가부장적 가족 질서와 친밀성 영역의 사적 억압을 정치적 해방의 요구로 전환시킨 여성 운동의 의미를 현대 한국의 현실에서 재음미해 본다.)

10주 10.01(월) : 광화문 광장의 함성, 시민들의 목소리

종합 토론(촛불정치의 현장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던 혁명 정치의 파편을 제도정치 비판의 관점에서 토론해 본다.)

 

아래 웹자보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존 스튜어트 밀 (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이 직업을 선택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즉 ‘공적 영역’ 진출의 자유와 자격을 논한다. 여성이 (사적 영역인) 가정에 머무는 것은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그것이[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이] 부정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다수 남성들이 가정 내에서 여성이 집안일에만 전념하고, 가정 내에서 여성의 복종이 유지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전체가 아니라 남성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해 지속되어 온 관습이다. 그리고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배제는 여성에 대한 억압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해악이다.

인류의 절반이 스스로의 책임 아래 각자가 원하는 대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평등한 도덕적 권리를 부인하는 것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여성의 투표 행사 권리는 모두가 마땅히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기보호의 수단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헌법의 역할은 사람들의 신탁에 있어 필요한 모든 안전장치와 제한으로 선거권을 보호하는 것이며, 법적 보호를 받는 모든 사람은 누가 어떤 법을 만드는지 알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밀은 여성이 공적 책임을 맡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공직은 ‘자격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여성이든 공개경쟁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그런 일을 할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단지 몇몇 여성이라도 그 자리에 대한 자격이 인정될 경우, 그런 가능성을 막는 것을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또한 밀은 여성의 교육 받을 권리를 주장한다. 그는 남성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정신적 차이는 그들의 교육과 상황 차이에 의해 비롯되는 것일 뿐이라는 점에서, 남녀 간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생각 역시도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언제나 억압의 상태에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본성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훼손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여성의 본성을 남성의 본성처럼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놓아둔다면, 그리고 만일 인간 사회의 조건이 남녀에게 공통으로 줄 수 있는 것 외에 어떤 인위적인 성향도 여성에게 가하지 않는다면, 남녀의 성격과 능력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남녀의 차이조차 자연적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후천적인)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밀은 만약 여성이 실제로 열등하다고 하더라도, 약점 있는 남자 또한 많은데, 그들은 [여성과 달리]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에 의해 교정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여성도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아 교정될 수 있다면, 여성 역시 남성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완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밀은 여성의 종속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여성 해방을 논했던 최초의 남성 철학자이다. 그 자신은 자신의 성별 때문에 종속의 경험이 없음에도, 그토록 여성 해방을 주장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밀은 여성의 종속이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며, 여성이 자유로워지면 인류 전체는 진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여성이 자유로워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혜택은 당연히 여성의 사적 행복이다. 인간은 타의에 이끌려 사는 것보다 합리적 자유에 따른 삶을 살 때 행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무제약적인 자유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의무감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양심과 일치하는 사회적 제약에 따라 스스로의 행동을 규율하는 자유를 일컫는다. 또한 각자의 능력을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발휘하는 것도 행복의 한 원천이다.

나아가 여성이 자유로워진다면 남성의 도덕적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밀이 살았던 당시의 남녀 관계는 오히려 남성들에게 도덕적 해악을 끼친다. 정당한 근거 없는 남성의 여성 지배는 모든 이기적 경향, 자기 숭배, 옳지 못한 자기 선호에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왜냐하면 실정법이 단지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본인보다 우월한 여성들까지도 포함해] 인류 절반보다 우월한 자리에 올라갈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은 이런 믿음이 개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남성의 삶 전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다른 하나의 성 전체 위에 있다는 느낌과 그들 중 한 여성에 대한 사적이고 개인적인 권위의식이 합쳐지면,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우연적인 이점을 자랑하는 최악의 종류의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이 악덕이 그들과 동등한 다른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도전 받아 억제된다면, 그들은 그것을 인내해야 할 의무가 있는 위치의 사람들에게 분풀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밀은 여성 해방이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 근거로 밀은 그 당시의 도덕과 정치에 있어서 원리를 들어 그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정의의 원칙의 적용 범주는 행위자가 아니라, 행동만이 존중 받는 것이다.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가, 즉 출생이 아니라, 공적만이 모든 권력과 권위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과 당시의 남녀 관계는 모순적이다. 양립 불가능한 이 두 원칙 중 부정의, 즉 특정 개인이 타인에 대해 지속적인 권위를 지니는 것을 허용하는 것에 봉사하는 원칙을 폐기하지 않는다면, 정의의 원칙을 세우려는 교육과 문명의 모든 노력은 허사일 뿐이다. 여성의 억압, 즉 세계가 소유하고 있는 재능의 반을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심각한 세계의 손실이며, 여성에게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재능의 양을 늘리는 것은 인간사를 위해 유용할 것이다.

 

  • 『여성의 종속』의 이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밀은 자신의 도덕론의 주체와 대상을 명시적으로 여성에게까지 확장할 것을 주장한 최초의 남성 철학자이다. 그는 개인의 자유는 다른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사회 전체의 행복을 늘리기 때문에 이롭다는 공리주의적 관점과 행위자가 아니라 행위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정의의 원칙을 바탕으로, 여성의 권리 보장과 제도적 차별을 없앨 것을 강조했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같은 인간으로 고려해야 함을 호소한다. 밀 이후에 ‘포스트 페미니즘’ ― 접두사 ‘post’(이후)와 ‘페미니즘’이 결합하여 ‘요즘 시대에 여성차별이 어디 있느냐, 페미니즘은 낡은 유물이다, 페미니즘이 필요한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안티 페미니즘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말 (이와 전혀 다르게, 원래는 포스트 식민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포스트 구조주의 등에 영향을 받은 페미니즘 흐름의 한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 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여성의 공적 영역에의 진출은 확대되었고, 헌법은 여성의 모든 권리를 보장하며, 적어도 제도상으로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은 이제 없다. 기혼 여성들 또한 이제는 배타적인 자신만의 재산을 가질 권리와 결혼 관계를 그만둘 권리를 가지며, 이혼할 때 아이 양육권은 협상으로 분배된다. 어쩌면 밀이 기대한 ‘차별’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밀이 기대한 차별 없는 세상에서 여성의 일생은 그 당시의 여성들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김지영 씨가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어디에나 갈 수 있도록, 그녀의 성별이 그것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녀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정작 뭔가 하려고 하거나, 어디 가려고 할 때, 이제 ‘맘충’이라는 비난, ‘여자 직업으로 선생님만 한 게 있는 줄 알아?’라거나 ‘그냥 얌전히 시집이나 가’라는 말,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워’ 한다는 소리와 마주친다. 차별의 시대는 이제 혐오의 시대가 되어, 여전히 여성의 억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여성 해방에 있어 법 혹은 제도의 역할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자유 실현을 위한 기존 제도에의 도전은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성과 똑같은 ‘인간’으로서 여성의 동등한 권리/기회 보장을 넘어서, 페미니스트들은 사소하고 주관적인 경험으로 생각되어 온 여성의 경험에 ‘성희롱/성폭력’ 등으로 명명하여 하나의 사회 문제로 제도 내에 기입했고, 고용이나 채용 등에서 여성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는 ‘적극적 조치’를 제도적으로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모든 인간을 동등한 주체로 볼 것과 모든 인간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밀이 이러한 도전들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밀이 『여성의 종속』 서두에서 여성 억압을 유지하는 제도의 유일한 근거로 제시한,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의 ‘강렬하고 뿌리 깊은 감정’을 제거하기 위한 시도로서, 그는 이러한 도전들의 유효함을 인정하지 않을까?

 

  • 두 달에 걸쳐 두 편으로 연재된 존 스튜어트 밀에 관한 글 잘 읽으셨나요?
  • 다음 달(6월)에는 미셸 푸코에 관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8년 봄 제54회 정기 학술대회 안내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8년 봄 제54회 정기 학술대회

[코뮨, 국가 그리고 해방적 시민권 : 맑스 탄생 200주년과 오늘날의 급진정치]

*일시 – 2018년 05월 26일 토요일 12:30 ~ 18:00
*장소 – 건국대학교 상허연구관 418호

한철연 회원 및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존 스튜어트 밀 (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에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이론과 사상을 발전하고 확대하는 데에 기여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매달 초, 중순] 연재할 예정이며, 매달 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다룰 것입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 및 업로드 담당 – 서누)

 

 

서양 근대철학의 이상은 인간에서 시작한다. 그 이상은 인간의 능력으로부터 출발해, 세계를 향하고, 인간에게로 되돌아온다. 모든 인간의 평등에 대한 사상들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그런데 여기에는 큰 약점이 있었다. 그 ‘인간’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는 모든 인간에게 사유 재산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영국에서 여성의 재산권이 온전히 보장된 것은 1882년 재산법 통과에 이르러서였다. 또한 ‘사회계약론’으로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의 저서 <에밀>에서 자연적 본성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이성 능력이 다르고, 그 차이에 따른 양성의 역할이 다르다고 말했다. 루소에 따르면, 여성은 본성적으로 도덕적 자유를 성취할 만한 정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구성원 즉 시민으로서의 자질이 결여되어 있다. 루소는 남녀의 차이를 자연적인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를 정당화했다. 그리하여 루소가 주장한 ‘천부 인권’은 여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편 프랑스 대혁명 이후, 1789년 프랑스에서 라파이예트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했고, 같은 해 남성 시민들에게 비로소 ‘보통 선거’에 가까운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프랑스 여성들이 투표를 통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무려 1944년에 이르러서였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이 <여성의 종속>을 저술하던 19세기의 영국에서 위와 같은 성차별은 제도뿐만 아니라 생활양식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성은 생물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주로 남성과의 차이에 의해 규정되었으며, 이러한 차이는 역할 분리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가 뚜렷해지면서,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여성은 순결한 존재로 사적 영역을 지키면서 남성을 위안하고 돌보는 역할만을 맡아야 했다. 그럼에도 19세기 후반, 20여 년간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여성의 고등교육 기회 확장, 여성 노동시장의 증가, 투표권이나 산아제한에 대한 캠페인 등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반드시 수행해야만 한다는 전통적 관점에 대해 여성들이 자각하고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밀은 ‘남성에의 여성의 종속’은 문명사회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남성과 다를 바 없는 여성의 완전한 자유와 평등의 쟁취를 목적으로 <여성의 종속>을 쓴다. 그리고 여성 억압은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강렬하고 뿌리 깊은 감정 외에 정당한 이유나 근거 없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지적한다. 특히 그는 ‘모든 인간의 평등’이라는 이념이 확산되어 점차 철폐돼 가던 노예제와, 그에 반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여성 억압을 비교하면서 사회에 탄원한다.

밀에 의하면 자유와 평등의 추구는 선험적 진리이며, 공공의 이익(general good)을 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떠한 법적 차별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남성의 여성 지배’라는 제도는 이러한 선험적 진리에도 어긋나며, 공공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도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대안, 예컨대 ‘여성의 남성 지배’나 ‘두 성의 동등한 지배’가 시도된 후에 적극적인 비교를 통해 판단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의 여성 지배’라는 원칙은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한다는 강자의 법칙 외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러나 문명과 도덕이 발전한 사회에서 강자의 법칙은 인간사회를 규율하는 원리로서 적절하지 않으므로, 이마저도 ‘남성의 여성 지배’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

한편 여성은 지배 받아야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논거로 남성의 여성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람도 있었다. 밀은 일반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은 정말로 ‘그러한 것(본성)’혹은 ‘그러해야 하는 것(당위)’이 아니라, 관습적인 것이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역사적 사례를 들어 반박한다. 봉건 시대에 귀족의 평민 지배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이제는 모두가 정당하게 인정하는 일반 시민(당시의 농노)의 정치 참여는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고대의 스파르타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신체적 훈련을 받았고, 이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은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능력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남성의 여성 지배’는 여성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것도 아니다. 밀이 <여성의 종속>을 저술하던 당대에는 ‘남성의 여성 지배’에 부당함을 느끼며 직접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쓰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었고, 선거권 운동과 더불어 교육권, 노동권 보장을 획득하려는 정치적 집단들이 조직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는 지속적인 세뇌와 정치적 운동에 참여했을 때 우려되는 남편의 학대 때문에, 여권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여성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면서, ‘남성의 여성 지배’는 여성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여성의 전반적 지위가 내려가느냐 올라가느냐를 따져보는 것이 한 민족 또는 한 시대의 문명 발전 정도를 가늠하는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밀은 앞선 논의들을 종합하며 불평등한 권리의 구조는 인간 발전의 전 과정, 즉 역사의 흐름과 인간사회의 진보적 경향, 그리고 미래와 조화롭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와 낡은 과거를 가르는 기준은 인간이 출생조건에 의한 억압에서 벗어나 능력과 기회를 이용하여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사자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놔두는 것이 발전을 이루는 사회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법과 제도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현대의 사회 원리에 어긋나는 거의 유일한 사례이며, 현대 세계의 진보적 흐름과 대립되는 것이라고 본다.

특히 밀은 당대의 결혼 제도가 여성에게 전적으로 불(합)리한 제도임을 자세히 밝힌다. 결혼한 여성의 법적 지위를 살펴보면 [노예제와 같은 법적인 신분 차별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남편의 노예와 다름없다. 아내는 결혼식 단상에서 남편에게 평생의 복종을 맹세하고 나면, 평생을 통해 그것을 지켜야 한다. 여성은 남편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남편의 허락 없이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나아가 아내는 어떤 것도 소유할 권리가 없다. 상속을 통한 것이든, 노동을 통한 것이든. 여성이 어쩌다 재산을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은 결혼과 동시에 사실상 남편의 소유가 된다. 아내의 것은 무엇이든 남편의 것이 됨으로써 ‘법 안에서 한 사람’이 되지만, 그 규정은 반대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만이 자녀에 관한 법적 권리를 갖는다. 여성은 남편의 대리로서가 아니면,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영화 ‘서프러제트’ 中, 여권 운동에 참여하여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다른 집에 입양 보내는 주인공 모드의 남편. 여기에서 모드는 반대할 권리가 없어 아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남성이 여성을 노예처럼 부리고,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실제 결혼생활에서 받는 대우와 상관없이 이 제도는 그 자체로 부조리하다. 이 제도를 악용할, 사악한 남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이 제도에 의해서 목격되는 불평등은 정당한 것이 아니며 잠재적 폭압을 합법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제도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선한 사람들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을 염두하고 만들어져야 한다. 모든 남성은 결혼하는 순간 남편으로서의 완전한 법적 권력이 부여되고 보장되지만, 남편들 중 그 누구도 결혼 전에 절대권 행사에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 법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두 사람 중 어느 한 쪽은 관계를 취소할 수 없는데, 이들의 자발적인 결합에서 한 사람이 절대적인 주인이 되는 것은 옳지 못하며, 특히 법이 누가 주인이 되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아이리스 영 (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정의란 무엇이며, 부정의란 무엇일까? 억압당하는 집단은 부정의를 겪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의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억압이란 무엇이며, 누가 어떻게 억압당한다는 것일까?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차이의 정치와 정의>에서 유명한 ‘억압의 다섯 가지 모습들’을 제시한다. 영은 철학에서 논의되어 왔던 기존의 정의론을 비판하면서, 정의와 부정의는 분배 문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억압’과 ‘지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억압이란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사회적으로 인정된 환경에서 좋은 기술들을 익히고 사용하는 것을 막는 제도적 과정 체계”(p.99.)를 뜻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표현(self-expression)과 관계된다. 한편 지배는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할지 결정할 때 참여하지 못하게 금제하거나 막는, 또는 행위조건들을 결정하는데 참여하지 못하게 금제하거나 막는 제도적 조건들”(p.99.)을 말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결정(self-development)과 연결된다. 영은 이런 억압과 지배를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정의라고 주장한다.

물론 영이 분배 부정의, 즉 재화나 지위에서의 불평등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배 문제는 정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분배의 문제가 정의의 전부라고 간주하게 되면, 우리는 그러한 불평등한 분배 부정의를 낳은 생산조건과 제도적 맥락, 노동 분업의 문제, 의사결정 권력 문제, 문화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된다. 또한 분배에만 주목할 경우, 분배와 관련될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구조적인 ‘억압’이라는 문제는 도외시된다.

억압이라는 용어는 우선 전통적으로 독재국가에서 탄압받는 시민들을 일컬을 때 사용되거나, 제국주의 식민지 국가나 공산국가들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영에 따르면 억압은 심지어 발전된 서구 자유주의 국가에서도 존재하며, 반드시 억압하는 자가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억압은 제도적인 조건이기에 단순히 사회적 지위나 생산관계로 인해 누군가가 특권을 얻고 누군가는 차별을 당하는 상황 자체도 억압이 된다.

억압이라는 용어가 부정의의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은 주로 신 사회 운동, 즉 사회주의 이후의 다양한 정체성 운동인 페미니즘, 게이/레즈비언 해방운동, 아프리카계 미국인 운동, 환경 운동의 약진 덕분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억압을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은 이러한 현실 운동의 주장들에서 출발한다. 주로 이들이 억압을 개선하거나 종식해달라고 요청할 때, 어떤 억압의 양상들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은 이러한 억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면서, 이 억압당하는 집단들은 착취, 주변화, 무력화, 문화제국주의, 폭력이라는 억압을 체계적으로 겪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착취(exploitation)’는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목적(의도)에 따라서, 그리고 이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 통제 하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 즉 “사회집단의 노동 산물이 타 집단에게 이득이 되도록 이전되는 항상적 과정”(pp.123-124)을 일컫는 용어로, 물론 맑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영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 문제를 넘어서 여성의 에너지가 남성으로 이전되는 ‘젠더 착취’로 착취 개념을 확장시킨다. 젠더 착취에는 두 가지 양상이 있는데, 예컨대 여성이 보수를 받지 못하고 가사 노동을 하게 되는 것처럼 물질적 노동의 과실이 남성에게 이전되는 것과, 성애화 된 직종에 종사하거나 직장에서 긴장관계를 누그러뜨리는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것처럼 여성의 정서적, 성적 에너지가 남성에게 이전되는 것이 있다. 영에 따르면 이런 착취는 단순히 노동 산물이나 에너지에 대한 착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착취하는 집단은 착취를 통해서 부나 이윤뿐 아니라 권력을 소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둘째는 ‘주변화(marginalization)’로, 이는 “노동 시스템이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하지 않으려는”(p.131) 것을 일컫는다. 청년 실업이나 노인, 신체 장애인과 정신 장애인, 재취업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주변화로 인해 고통 받는 집단에 해당된다. 주변화를 경험하는 집단은 불안정한 고용과 실업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복지에 의존한다는 비난 등으로 인해 의미 있는 노동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채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는 억압을 경험한다. 따라서 영은 “어쩌면 주변화야말로 가장 위험한 억압 형태일지도 모른다”(p.132)고 설명한다.

세 번째, ‘무력화(powerlessness)’는 “간접적 의미에서의 권한이나 권력조차도 전혀 가지지 못하는 것”,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하지만 명령을 내릴 권리는 거의 갖지 못하는 상태에 처한 것”(pp.137-138)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의사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권력 자체가 박탈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무력화인 것이다. 예컨대 비전문직 노동자들은 고소득 전문직 노동자들에 비해 업무에서의 자율성이 거의 없고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불가능하며 상급자의 지휘나 감독만을 받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대한 전문성이나 통제력을 가지지 못한다. 공사장의 인부는 전기 기술자, 건축 기술자 등 숙련 노동자에 비해 천시당하거나 권한을 갖지 못한다.

네 번째 억압은 ‘문화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이다. “지배 집단의 경험과 문화를 보편화하고 유일한 규범으로 확립하는 것”(p.142)으로서, 이는 지배 집단이 자신들 역시 특수한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관점이나 견해가 보편적인 것인 양 강요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예컨대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 흑인이나 여성들은 열등하다는 레테르를 붙이거나 동성애자들은 난잡하다는 식으로 표지를 붙이는 방식이다. 이러한 피억압 집단을 향한 지배 집단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보편적인 문화로 제시됨으로써, 피억압 집단의 관점이나 정체성은 배제되고 차별 당하게 된다.

마지막 억압은 ‘폭력(violence)’로서, 영에 따르면 폭력은 단순히 개별 행위자의 행위가 아닌, 사회적인 맥락에서 비롯될 수 있는 체계적인 속성을 가진다. “폭력이 개인적으로 저지르는 도덕적 잘못이라는 점을 넘어서서 사회 부정의의 한 현상이 되는 것은 폭력이 가지는 체계적 속성, 즉 폭력이 사회적 실천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이다.”(p.148) 다시 말해, 특정한 제도와 사회적 실천이 특정한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폭력 행위를 부추기고 관용하고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사회적 환경(맥락)이 결국 그 폭력을 재생산하기 때문에,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체계적 폭력(systematic violence)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을 성폭행하거나 동성애자를 구타하는 행위에는 그러한 행위들을 방조하고 묵인하는 제도적이고 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이렇게 억압의 다섯 가지 양상을 통해 영은 지금까지의 분배 중심의 정의론이 문화 제국주의나 폭력과 같은 억압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런 억압들은 ‘사회집단’으로서의 약자들에게 가해진다는 특성이 있다. 영은 집단을 단순히 이런저런 속성들로 자의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집합체(aggregate)나, 혹은 가입과 탈퇴가 비교적 자유로운 공식적인 결사체(association)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정의론은 개인이 집단 이전에 있다는 자유주의적인 인간관을 전제한다고 비판하면서, 이처럼 개인들의 묶음들로 집단을 바라보는 관점은 피억압 집단이 발생하게 된 사회․역사적 맥락을 도외시함으로써 억압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존의 정의론은 억압당하는 사회집단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락시킴으로써 차이를 은폐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집단이 다 억압 받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가톨릭 신도들은 독특한 관행과 상호 친밀성을 가진 특유한 사회집단이기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억압받는 집단은 아니다. 영에 따르면 “한 집단이 억압 받는지 여부는 다섯 가지 조건(착취, 주변화, 무력화, 문화제국주의, 폭력) 중 한 가지 조건이나 그 이상의 조건들을 충족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p.120). 예컨대 영의 ‘억압의 다섯 가지 조건’을 고려해 봤을 때, 사회집단으로서의 ‘남성 집단’은 인종, 성적 지향, 계급이나 학벌 등으로 차별받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남성으로 억압을 경험한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영은 이처럼 억압에 대한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집단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억압들을 범주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어떤 제도나 정책이 이 억압의 범주들 중 하나를 강화한다면, 그것은 부정의한 것이 된다. 영은 이 기준들을 통해 차이를 가지는 사회집단들이 경험하는 억압을 제거해 나가는 정의를 주장한다. 동일성을 통해 차이를 없애기 보다는, 차이를 의식하고 이를 인정하는 것이 좀 더 정의롭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녀는 젠더 중립적인 정책보다는 젠더 의식적인 정책을, 집단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참여 민주주의로서의 집단 대표제(group representation), 소수자 우대 정책 등을 제시한다. 차이를 고려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분배를 넘어서는 쟁점들을 정의에 수용하라는 영의 이런 주장은, ‘급진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 개념을 통해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등의 사회집단 간 차이를 민주주의에 수용할 것을 주장하는 무페와 라클라우의 정의론, 분배/인정의 이원론적인 정의관을 주장하는 프레이저의 정의론, 좋은 삶을 정의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는 역량(capability) 접근법인 누스바움의 정의론과 같은, 분배 정의론이 오히려 차이를 무시하고 억압을 강화하는 지점을 비판하는 다른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들의 입장과도 공명하는 듯하다. 영은 물론 이런 차이가 본질적이거나 영속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차이를 가질 뿐 아니라 억압당하고 있는 집단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이다. 결국 영의 입장처럼, 추상적인 원칙이나 동질적이라고 가정되는 시민 공중이라는 망상에 근거할 것이 아니라, 억압당하고 있는 집단들에게 가해지는 부정의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 진정으로 ‘정의’가 아닐까?

 

(두 편으로 연재된 영에 관한 글 잘 읽으셨나요-? 4월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예속>에 관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