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부터 (e)시대와철학에 실렸던 글들 중에서 편집자가 다시 뽑아올린 글

자기 계발? ‘기종’도 모르고 ‘스펙’ 쌓으면 뭐해?

미셸 푸코의 <자기의 테크놀로지>

김정신(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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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자신에 대한 진실’ 없는 ‘자기 계발’

 

<1960년을 묻다>(천년의상상 펴냄)에서 권보드래와 천정환은 자기 계발서 수요의 구조적인 조성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근대’는 모든 개인에게 ‘입신’과 ‘출세’를 과제로 삼게 했다. 봉건적 신분제가 해체되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이 자본주의 사회의 개별 주체로서의 권리와 기능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학교직장에서 남들과 교통하고, 나아가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욕망이 새롭게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적 인정과 성공이라는 재화는 제한되었으므로 남들보다 나은 개인의 자원(즉 학벌과 교양 같은 상징 자본, 화법과 사교술 같은 테크닉)이 필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같은 필요의 총칭이 ‘처세’이다. (…)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대학생이나 재테크에 열중하는 주부만이 아니라,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는 모든 ‘자기’들은 ‘자기’의 모든 것, 즉 돈과 경력, 라이프스타일과 몸, ‘마음‘과 ‘관계’ 및 ‘사랑‘을 돌아보고(알기, 성찰), 관리하고(관리, 경영), 발전하게 하기 위해(계발, 자조) 노력한다.” (<1960년을 묻다>, 377~379쪽)

흔히 말하는 ‘각자도생’의 일환으로 살아남기 위한 매뉴얼을 읽는 셈이다. 그런데 관리하든 발전하든 간에 매뉴얼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제품 인식이 먼저이다. 무턱대고 엉뚱한 기종에 다른 매뉴얼을 들이댈 수 없는 노릇인데, ‘자기 계발서’라는 실행 지침서를 적절히 사용하려면 자신의 ‘기종’부터 살펴봐야 한다. ‘자기’를 ‘계발’하려면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또한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아낸다고 할 때 얼마나 진실하게 수행될 수 있을까.

미셸 푸코는 1982년 버몬트 대학에서의 강의에서, 성의 금기와 제약 등을 다루면서 금기를 위해서는 자기 인식이 선결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 강의가 담긴 책 <자기의 테크놀로지>(이희원 옮김, 동문선 펴냄)은 금지를 지키든 위반하든 간에 그것을 결정하기 위해서, 자신에 대한 진실만을 말해야하는 의무를 갖게 됨을 들춰낸다. 그렇지만 자기 계발에 대해서도 그러할까. 우리는 각자도생을 위한 ‘자기 계발’의 강요 앞에, 자신에 대한 진실만을 말하고 있을까. 먹고 살려고 하는 수 없이 내맡겨 버리는 체념은 아닐까.

 

▲(미셸 푸코 지음, 이희원 옮김, 동문선 펴냄). ⓒ동문선

근대 개인들이 처한 상황으로부터 요구되는 ‘자기 계발’은, 푸코의 분석을 이용하자면 ‘자기 해석‘과 관련된다. 자신에 대한 이해 없이 무엇을 어떻게 스스로 계발할 수 있단 말인가. 뭔가가 계발된다고 해도 계발되는 것은 ‘처세’이지 자신이 아니다. 게다가 자신에 대한 진리만을 말할 수밖에 없는 장치가 강제되지 않는 한 진실만을 말하려 해도 나도 모르게 속아 넘어가지 않기란 도무지 쉽지 않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자신이라고 여기기도 하고, 내가 무언가를 원하는 줄로 알았는데 막상 성취되니 실은 그걸 원한 게 아닌 경우를 겪곤 하지 않는가.

대번에 연상되는 금언인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흔히 주제 파악을 하라는 즈음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델포이의 이 신탁은 인생에 관한 추상적인 원리가 아니라 기술적인 권고, 즉 신탁을 듣기 위해 인간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었다. ‘네 자신을 알라’는 ‘네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지 말라’를 의미하였다. 다른 해설자의 생각에 따르면, 그것은 ‘신탁소에 조언을 청하러 갈 때 정말 질문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라’는 것을 의미했다.” (38~39쪽)

그러나 물론 우리에게 ‘너 자신을 알라’는 신과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게 당연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1960년을 묻다>에서 전형화되어 드러나듯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이 가진 것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는 것이다. “즉 돈과 경력, 라이프스타일과 몸, ‘마음’과 ‘관계’ 및 ‘사랑'”을 돌보는 일이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 믿는다.

“인간이 배려해야 하는 자기란 무엇인가?”

 

푸코는 자기를 해석하는 일의 역사를 탐구하면서,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 I>(김주일?정준영 옮김, 이제이북스 펴냄)에 주목한다. 고대에 자기인식이 자기 배려에 따른 것이며, 이때의 자기 배려란 영혼을 돌보는 행위에 신경 쓰는 일이라고 정리한다.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은 엄밀히 말해 자신’의’ 몸이지 자신이 아니며, 하물며 몸이 사용하는 옷이나 신발 같은 것들은 더욱이나 거리가 멀다. 그런데 누구나 의문을 갖는, 영혼을 돌본다는 게 대체 무얼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얼마간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영혼을 돌보는 일과 정치 활동 사이의 연관관계를 제시한 점이다. 얼핏 자신을 돌보는 건 정치적인 활동에 대한 무관심일 듯싶은데, 오히려 자신에 대한 배려야말로 정치 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영혼은 신성한 요소(영혼의 원리, 혹은 본질)에 대하여 관조해야 한다. 이렇듯 신성한 관조 속에서 영혼은 정당한 행위와 정치 행동의 기반을 설립하는 제 규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혼 그 자체를 인식하려는 노력은 정당한 정치 행동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원리이며, 알키비아데스는 자신의 영혼이라는 신성한 요소를 관조하는 한 양심적인 정치가가 될 것이다. (…)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기 배려를 추구하는 행위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 전념하는 일은 정치 활동과 결합되었다.” (48~49쪽)

한나 아렌트가 ‘말하기의 무능력, 생각하기의 무능력, 판단하기의 무능력’이 만연하는 악을 만든다고 말했듯, ‘정당한 행위와 정치 행동의 규칙’을 ‘스스로’ 사고하는 일은 자신을 돌보는 일일 뿐 아니라 공적인 정치 활동에 필요한 일로 보인다.

자신에 대한 관심과 정치 활동에 대한 관심의 양자택일

 

겉보기에는 자신에 대한 관심과 정치 활동에 대한 관심이 별개의 것으로 보인다. 자신에 관심은 흔히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동일시되고, 정치 활동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이익 추구와는 구분되어야 할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다만 과연 얼마나 현재 정치 활동에 대한 관심이 자신의 이익 추구와는 별개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뤄볼 문제이다.

푸코에 따르면, 플라톤이 <알키비아데스I>에서 자신에 대한 인식이 영혼에 대한 인식이고, 이는 정당한 행위 혹은 올바른 행위에 대한 관조와 연관됨을 드러냈음에도 이미 고대에도 플라톤의 해결책과는 달랐다고 한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 전념하는 일과 정치 활동 사이의 연관관계에 대한 문제가 있다. 말기 헬레니즘과 제정시대에 이 문제는 별도의 대안책으로 제시되었다. 즉 언제 정치 활동에서 손을 떼고 자기에의 관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나은 일인가?” (49쪽)

흔히 연상되는 자기에의 전념이 내면으로의 침잠하는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배려는 새로운 자기 체험을 포함한다. 자기 체험의 새로운 형식이 출현한 시대는, 내성이 점차 세분화되었던 기원전 1, 2세기이다. 글쓰기 작업과 의미심장한 관찰 사이에 연관관계가 생겨났다. 생활과 기분, 독서에 세부적인 주의가 기울여졌고, 자기 체험은 글쓰기 행위에 의해 강화되고 확대되었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체험 영역의 문이 열린 것이다. (…)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예를 들면 일상생활의 세부 사항, 정신의 움직임, 자기 분석에 대한 (…) 세세한 관심이다.”(52쪽)

이제 자신에 대한 인식이나 배려는 일상생활의 “하찮고 세부적인 사항이 아주 중요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 세부사항이 바로 우리 자신-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느낀 것-이기 때문이다.”(55쪽)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 인간의 올바른 행위나 정당한 행위를 사색하며 관조하는 일이 제거된다. 이는 로마 제정이라는 시대적인 배경도 있겠지만,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자신을 배려하는 일이라면, 이제 “자신을 보다 잘 배려하려면 정치와 결별하여야 했다.” “정치 생활과 무관계한 자기 자신에의 배려의 보편성”(57쪽)이 등장한다. 이것을 푸코는 자기에의 배려는 “영구적인 의학적 배려가 되었다. 한순간의 그침도 없는 의학적 배려는 자기에의 배려의 핵심 사항의 하나였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진찰하는 의사가 되어야 했다.”(57~58쪽)라고 진단한다.

이러한 자기 배려 모델이 “언제 정치 활동에서 손을 떼고 자기에의 관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나은 일인가?”라는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자기 계발 그리고 그 대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볼 시간이다. 아마도 큰 무리 없이 ‘자기 계발’에의 몰두는 몰정치적이라는 데 수긍할 수 있을 듯하다. 올바른 행위를 숙고하고 판단하며 고민하는 일은 매우 불편할뿐더러 인간관계의 갈등을 초래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능력 개발과 원만하고 인상적인 대인 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몰두하는 일에서 어떻게 올바름에 대한 고민의 틈이 있겠는가. 당장 능률적인 일처리와 협력 관계를 재고한다면, 올바름을 머릿속에 떠올릴 새도 없다. 만약 누군가가 잘못되거나 그릇된 일이라는 클레임을 걸어온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게 느껴지는 식으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돌볼 만큼 한가롭지도 않다. 오히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삭제할수록 일처리는 능률적이다. 정당한 행위의 관조도 없이, 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대한 배려도 없이 ‘자기 계발’되고 있는 셈이다.

자신에 대한 진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일이 자신의 죄를 사하고 진정한 세계로 진입하는 관문이었던 중세도 아니고, 오히려, 자신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는 일에서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거나 잘잘못을 가리는 것과는 이미 결별한 시대에 살고 있는 대가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의 도식이 성립한다면, 자기 계발되면 될수록 자기 배려와는 멀어진다.

그렇다면 자신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대답을 할 차례이지만, 그것은 글쓴이의 능력을 벗어나 있는 일임을 고백하면서 다음의 문제제기를 음미하는 것으로 갈음하겠다. 푸코가 자기를 다루는 기술의 역사 혹은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의 역사를 탐구하게 된 것은 베버의 의문에서부터였다고 한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행동을 진실된 원리에 기초하여 규제하고자 한다면 자기 자신의 어떤 부분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금욕에 대한 이성의 대가는 무엇인가? 어떤 종류의 금욕에 승복해야 하는가?”

푸코의 의문은 이러했다.

“특정한 종류의 금기가 어떻게 특정한 종류의 자기 인식의 대가를 필요로 하는가? 자진해서 무엇인가를 포기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에 관하여 무엇을 인식해야 하는가?”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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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사회적’ 의미[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②

상품의 ‘사회적’ 의미-2강?

 

김우철(호서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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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자본주의 사회’란 ‘자본(capital)’을 중심으로 모든 사회생활이 영위되는 사회형태를 일컫는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또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자본’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자본’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본 개념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분해하여 이해한 다음, 그 단순한 요소들의 체계적인 조립을 통해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자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최초의 실마리 개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자본의 기본적 의미는 누가 보더라도 ‘부(富)’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자본은 그 자체로 일정량의 부 또는 재산을 뜻할 뿐 아니라 더 많은 부를 창출하기 위한 유력한 수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에 해당하는 ‘상품(commodity)’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상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분배-유통-소비의 전 사회과정을 관통하는 기본 요소로서, 사회적 부를 구성하는 ‘세포’ 형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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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품의 두 요인: 사용가치와 가치

 

상품은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용한 물품(또는 용역)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유용성을 가리켜 상품의 사용가치(use value)라고 한다. 하지만 상품은 사용가치 말고도 또 하나의 성질을 갖고 있는데, 바로 다른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성질, 곧 교환가치(exchange value)를 갖고 있다. 교환을 전제하지 않는 상품은 ‘생산물(또는 생산품)’일 수는 있어도 ‘상품’이라고 불릴 수 없다. 모든 상품은 사용가치와 아울러 교환가치라는 두 요인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상품의 사용가치는 이해하기가 비교적 쉽다. 그것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그래서 유용한 갖가지 감각적, 물질적 성질을 가리킨다. (쌀, 상의, 집 등의 사용가치) 그러나 상품의 교환가치는 눈에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자연적 성질이 아니다. 교환가치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교환가치는 우선 어느 한 종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양적인 관계로 나타난다. 두 개의 상품, 예를 들어 쌀과 상의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쌀 20kg이 상의 1벌과 교환된다고 하면 ‘쌀 20kg = 상의 1벌’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데, 이 등식은 이들 상품의 교환가치가 같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쌀 20kg = 상의 1벌’이라는 이 등식은 같은 크기의 공통된 무엇인가가 두 가지 다른 사물 안에 있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사물들의 양적 비교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것들이 공통의 질(質)로 환원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과연 쌀 20kg과 상의 1벌 속에 들어있는 ‘질적으로 똑같은 것’이란 무엇일까?

쌀과 상의를 동일한 것으로 만드는 공통의 속성은 상품의 자연적 속성일 리는 없다. 다양한 상품들이 교환된다는 사실은 그 상품들의 사용가치, 곧 자연적 속성이 남김없이 제거(=抽象)되어 공통의 속성으로 환원되고 있음을 전제한다. 따라서 우리가 교환가치에만 주목하면 모든 상품들 사이에는 사용가치상의 어떤 차별이나 구별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모든 상품을 같게 만드는 공통된 성질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노동생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쌀과 상의는 둘 다 노동생산물이라는 점에서 아무 차이가 없고 똑같은 사물이다. 단, 여기서 노동이라고 할 때 이 노동은 경작노동이라든가 재봉노동과 같은 유용한 물품을 만들어내는 구체적 형태의 노동이 아니다.

구체적 유용 노동은 그 형태와 질이 서로 다르므로 상품들에 내재하는 문제의 그 공통의 속성을 설명해 줄 수 없다. 곧 구체적인 지출 형태와 무관하게 단순히 인간의 두뇌, 근육, 신경, 손의 지출이라는 의미의 ‘인간노동 일반’의 지출, 이것만이 모든 상품들의 공통의 속성을 설명해 줄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체노동을 추상한) ‘추상적 인간노동’이 대상화, 물질화되어 있는 것이 모든 상품에 내재하는 공통의 속성이다. 그리고 이 공통의 속성이 바로 가치(value)이다. ‘교환가치’는 한 상품에 내재하는 가치가 다른 상품들과의 교환관계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가치의 현상형태’를 말한다.
어떤 물적 존재는 가치가 아니면서도 사용가치일 수가 있다. 천연의 초원이나 야생의 수목과 같이 그 효용이 인간노동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특정한 물건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사용가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사용가치 곧 ‘사회적’ 사용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사회적 생산물은 반드시 교환이라는 절차를 통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야 한다. 상품 가치는 이와 같이 상품과 상품을 만들어낸 노동의 ‘사회성’을 실증하는 징표라고 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가치가 없는 생산물 또는 교환에 실패한 생산물은 사회성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고, 나아가 그 생산물을 생산한 노동 역시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노동이라는 사실을 실증한다.

이제 분명해졌듯이, 어떤 상품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그 안에 추상적 인간노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의 가치 크기는 그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추상적 노동의 양에 의해서 결정된다. 물론 노동의 양은 노동 시간으로 측정된다. 따라서 상품의 가치크기는 결국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단 이 경우 노동시간은 개별 생산자가 실제로 소비한 노동시간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란 특정 시점에서 사회적으로 표준적인 노동조건과 노동숙련 및 노동강도의 사회적 평균도를 가지고 어느 한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을 말한다.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은 노동의 생산성이 변함에 따라 당연히 변동한다. 노동의 생산성 그 자체는 특히 노동자의 평균적인 숙련도, 과학과 그 응용의 발전단계, 생산수단의 이용범위 및 자연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노동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어떤 상품의 생산에 요구되는 노동시간은 그만큼 단축되고 그 가치도 그만큼 작아진다. 상품의 가치 크기는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의 양에 정비례하고 노동의 생산성에는 반비례하여 변동한다.

칼 마르크스(1818 ?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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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치형태의 발전

 

앞서 확인했듯이, 상품은 사용 대상인 동시에 가치의 담지자라는 이중적인 물건인 한에서 상품이다. 상품은 자연형태(natural form)와 가치형태(value form)라는 이중 형태를 갖는 한에서만 상품이다. 문제는 사용가치의 대상성과 달리 가치의 대상성(value-objectivity)이 그 자체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나하나의 상품을 아무리 비틀고 세밀히 관찰해 보아도 우리는 그것을 가치물로서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상품의 가치가 순수하게 사회적 현실을 갖는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성의 획득은 상품들이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하나의 동일한 실체를 표현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 가치라는 것이 상품과 상품의 사회적 관계로서만 나타난다는 사실 또한 자명해진다. 이제 우리가 확인해야 할 점은 화폐형태에 이르기까지 상품의 가치관계에 함축되어 있는 가치 표현의 발전과정을 추적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화폐의 수수께끼도 마침내 풀리게 될 것이다.

먼저 다음과 같은 단순한 가치형태에 주목해 보자.

x량의 상품 A = y량의 상품 B
또는 x량의 상품 A는 y량의 상품 B의 가치가 있다

예) 쌀 20kg = 상의(上衣) 1벌
(쌀 20kg은 상의 1벌의 가치가 있다)

여기서 보듯이, 쌀이라는 한 단일 상품의 가치 표현은 상의라는 다른 상품과의 가치관계로 나타난다. 여기서 두 종류의 상품은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데, 쌀은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고, 상의는 그 표현의 재료가 된다. 전자는 능동적 역할을 하고 후자는 수동적 역할을 한다. 즉 쌀의 가치는 (상대를 통해 가치를 표현하는) 상대적 가치형태(relative value form)로 표시되고 있고, 상의는 (쌀의 가치를 직접 표현하는) 등가형태(equivalent form)로 존재한다.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서로 속해 있고 서로 제약하는 불가분의 두 계기이지만, 동시에 동일한 가치 표현의 상호 배타적이고 대립적인 양극이다.

어떤 상품이든 그 가치는 오직 상대적으로만, 즉 다른 종류의 상품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쌀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다른 어떤 상품이 그것에 대해 등가형태에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반면 등가형태로 등장하는 이 다른 상품은 동시적으로는 상대적 가치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극단적으로 서로를 배제한다.

가치형태의 양극인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위의 예에서 가치가 표현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쌀이라는 상품이다. 쌀 20kg의 가치가 자신과 상의 1벌의 가치관계 속에서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라는 양극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치 표현에서 쌀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자신의 가치존재를 상의라는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를 빌려 표현한다. 다시 말해, 쌀이라는 상품의 가치는 상의라는 상품의 자연형태를 빌어 그 자신의 사용가치와 구별되는 ‘자립적’ 존재형태를 획득하고 있다. 한 상품의 가치가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사용가치로서의 쌀은 상의와 물질적, 감각적으로 구별되지만, 가치로서의 쌀은 상의와 동등한 것이며 따라서 상의와 같은 것이다. 이리하여 쌀은 자신의 자연형태와 구별되는 가치형태를 획득하게 된다.

등가형태에서 보게 되는 첫번째 특성은 사용가치가 그 대립물인 가치의 표현형태로 된다는 점이다. 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자신의 가치 존재를 그 물질적 속성과 완전히 구별되는 다른 상품과 등등한 것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이 표현 자체는 그것이 어떤 사회적 관계를 감추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등가형태의 경우에는 그와 반대이다. 등가형태는 어떤 상품, 곧 있는 그대로의 물적 존재가 가치를 표현하고 따라서 그 자연 형태의 모습 자체로 가치형태를 띤다는 사실에서 성립하므로, 마치 그 등가형태라는 속성을 본래부터 지닌 듯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등가형태의 수수께끼이며, 이 등가형태가 완전히 발전되어 화폐의 형태로 전개될 때에 그 수수께끼는 비로소 모든 사람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참고: 구체적 노동이 그 대립물인 추상적 인간노동의 현상형태로 된다는 점 그리고 사적 노동이 그 대립물인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노동으로 나타난 점이 각각 등가형태의 두 번째, 세 번째 특징을 이룬다.)

상품 A의 가치는 상품 B가 자기 자신과 직접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표현된다. 상품 B에 대한 가치관계 속에 포함되어 있는 상품 A의 가치표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가치관계 속에서 상품 A의 자연형태는 사용가치의 모습으로서만 의미를 갖고, 상품 B의 자연형태는 가치형태나 가치 모습으로서만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한 상품 속에 갖추어져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의 내적 대립이 하나의 외적 대립을 통해 표시된다. 즉 자신의 가치가 표현되어야 할 한 쪽의 상품은 직접적으로는 오직 사용가치로서만 인정되고, 그 가치가 표현되는 다른 쪽의 상품은 직접적으로는 오로지 교환가치로서만 의미를 갖는 두 상품의 관계를 통해 표시된다. 따라서 어느 한 상품의 단순한 가치형태는 그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내적 대립이 겉으로 드러난 외적 대립의 형태다.

모든 노동생산물은 어떤 사회 상태에서나 사용 대상이다. 그러나 사용물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을 그 물적 존재의 대상적 속성으로 표시하는 역사적으로 규정된 하나의 발전단계에서만 노동생산물은 상품으로 전화(轉化)된다. 그러므로 상품의 단순한 가치형태는 동시에 노동생산물의 단순한 상품형태이고, 그리하여 상품형태의 발전은 가치형태의 발전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치형태의 발전은 화폐형태를 거쳐 자본형태에 도달할 때 최고 단계에 이르게 된다.

세계경제를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찰하기[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①

세계경제를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찰하기-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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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 [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 강좌의 강의록을 연재합니다.

????| 운영기간 : 2013년 4월 4일(목) ~ 7월 18일(목) (총 15강)?????? 매주 목요일 19:30~21:30

?????| 장?? 소 : 광진정보도서관 도서관동 1층 이야기방
?????| 대?? 상 : 성인, 50명
?????| 주?? 최 : 광진정보도서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건국대학교
?????| 주?? 관 :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정보정책기획단
?????| 후?? 원 : 알렙출판사

 

 

“핵심의 자유노동과 주변의 강제노동 간의 조화는 자본주의의 본질이며, …… 노동이 모든 곳에서 자유로울 때, 사회주의가 될 것입니다.”

“영향을 준 인물들을 물으신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분들을 거론하고 싶습니다. 칼 맑스, 페르낭 브로델(아날 학파), 요셉 슘페터, 칼 폴라니, 일리야 프리고진(신과학 운동) 그리고 프란츠 파농.”

월러스틴은 세 영역에서 세계체제 분석에 관하여 글을 썼습니다. 근대 세계체제의 역사적 발달,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의 현대적인 위기. 지식의 구조가 그 세 영역입니다. 다음과 같은 책들이 이 각각의 세 영역에 대응합니다. <근대 세계체제 3부작>, <유토피스틱스, 21세기를 위한 역사적 선택들> 그리고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19세기 패러다임의 한계들>.

이매뉴얼 월러스틴 ?프레시안

·『세계체제 분석』(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_ 이광근 옮김_ 당대)


이 소책자는 20세기 마지막 사반세기부터 세계화와 이에 대한 반작용인 테러리즘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국가들의 외적인 관계인 국제적인 틀로 이해하지 않고 장기간과 대규모의 시각에서 세계 체제로서 이해하는 월러스틴의 연구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좋은 입문서이다. 세계체제 분석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정치학, 경제학, 사회 구조, 문화라는 상자들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이 상자들은 실재가 아니라 상상적인 산물에 불과하다. 이렇게 현상들을 전문화하여 분석하는 것은 철학과 단절하여 부상한 19세기 사회과학의 특징적인 한계이다. 사회 현실은 신과학 운동에서 말하는 복잡성의 시스템이다. 그래서 다학문적인 방식이 아니라 일학문적인(unidisciplinary) 접근이 필요하다. 이것이 역사적 사회과학으로서 세계체체 분석이다.

·『자유주의 이후』(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_ 강문구 옮김_ 당대)


1980년대 말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연이은 구소련의 해체는 자유주의의 궁극적인 승리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월러스틴은 이에 대해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오히려 이 사건들은 자유주의가 붕괴되고 ‘자유주의 이후’의 세계로 확실히 들어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유주의는 그 자신의 논리 때문에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궁지에 몰렸다. 자유주의는 인권의 정당성과 민족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이 권리들의 완전한 실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인권과 민족의 권리가 모두에게 동등하다면, 항상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할 이 불평등한 자본주의 세계 경제는 유지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이 공개되면 이익을 많이 얻지 못하거나 손해 보는 계급들에게 이 체제는 정당성을 갖지 못할 것이다. 체제의 정당성이 사라진다면 체제는 존속하지 못한다. 이러한 위기는 총체적인 것으로, 이를 극복하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 만들 새로운 역사 체제는 아마도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체제는 아닐 것이다.

1. 월러스틴에 따르면 긴 16세기(1450-1640년)에 자본주의적 세계 경제의 탄생 이후 세 번의 역사적 전환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1) 16세기 자본주의적 세계 경제의 탄생, 2) 1789년 프랑스 대혁명, 3) 1968년 세계 혁명(근대적 세계체제의 헤게모니, 즉 중도 자유주의의 몰락의 결정적 계기). 여기에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 있는 콩종크뒤르(국면)적인 역사적 전환점으로 1) 1989년 동구권의 현실 사회주의 몰락(실은 자유주의의 몰락의 반증), 2) 2008년 美國發 세계 금융 위기가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려면 1876년 강화도조약에 의거한 개항, 1945년 광복과 1950년 6?25전쟁, 1960년 4?19민주화운동과 1961년 5?16군사정변, 1987년 민주화운동, 1997년 IMF외환위기 등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역사적 시점들입니다.

2. 초역사적인 불변의 구조와 법칙을 탐구하는 법칙정립적인 형식주의적 사회과학과 사건 중심의 에피소드를 기술하는 개성서술적인 실증주의적 역사의 이분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구조와 역사의 변증법의 결과로 나타난 주기(cycle) 개념으로 19세기 사회과학의 기본 전제인 일직선적인 발전 또는 진보 개념을 비판하며, 구조를 역사로부터 파악하고 특히 근대 세계체제(자본주의적 세계경제)의 역사적인 생성과 팽창 그리고 위기와 소멸을 추적합니다. 그것이 역사적 사회과학으로서의 세계체제론입니다.

3. 역사와 관련된 네 가지 시간 개념이 있습니다. 부수적이고 진정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는 실증주의적 사건적인 또는 에피소드적인 역사와 신화에 불과한 영원불변의 구조 대신에 역사적으로 장기 지속하는 구조적 시간과 그 구조 안에서의 중기적 주기적 과정으로서의 시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조적 시간으로는 자본주의적 세계경제로 대변되는 근대 세계체제의 탄생과 소멸의 기간이 대표적이고, 주기적 과정으로서의 시간에는 콘트라티에프 주기(50-60년 동안의 상승과 하강의 두 국면으로 이루어진 장기 파동 주기)가 대표적입니다.

4.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재규정(맑스로 다시 돌아가기)을 시도하여 임금노동 중심의 생산 일변도와 교환관계라는 유통 중심의 일면적 분석을 넘어서 제3세계 종속이론의 영향을 받아 핵심적인 생산과정과 주변적인 생산과정으로의 분업으로 세계체제를 분석함으로써 국민국가중심의 분석틀에서 벗어납니다. 상품이 독점적일수록 핵심에 속하고 경쟁적일수록 주변에 속하게 됩니다. 독점적일수록 자본가에게 돌아갈 잉여가치의 몫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를 시장과 동일시하고 않고 독점과 동일시합니다. 자본주의는 반시장입니다. 이윤 창출에 장애가 되는 자유 경쟁 시장이란 ‘인민의 아편’에 불과하고 현실의 시장은 그런 모습을 띠지 않습니다.

5. 근대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는 기존 체제에서 지구적인 잉여가치를 공유하는 인구의 수가 팽창되어 자본가들이 더 이상 이윤을 창출하기 어려울 때 나타납니다. 신자유주의는 헤게모니를 잃어가고 있는 미국의 자본가들이 현실 사회주의 몰락과 정보기술혁명을 빌미로 경제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기존의 헤게모니에 도전적인 국민국가들의 보호주의를 타파하여 인건비와 관세를 낮추려는 보수주의자의 일시적인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반동적인 세계화 전략으로는 이 구조적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이제 근대 세계체제는 조만간 분기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분기점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모순을 해결한 몰역사적인 유토피아 대신에 현실적인 역사적인 대안체제를 성찰함으로써 (물적인 불평등의 해소라는) 역사적으로 가능한 유토피아를 모색하는 유토피아학이 있어야 합니다.

 

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알렙

 

아프리카 연구에서 세계체제 분석으로

 

193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M. Wallerstein)은 1951년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아프리카 연구로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명해진 것은 전공과는 무관한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발상과 ‘근대 세계체제’라는 개념 덕분이었어요. 이 개념들은 1968년에 일어난 세계 혁명*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1958년부터 대학 강단에 섰고, 1968년 세계 혁명이 일어날 당시에는 컬럼비아 대학 사회학과에 재직하면서 아프리카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식민지에서 막 독립한 아프리카 신생국들에 대한 연구인지라, 항상 신문 표제(신문이나 잡지 기사의 제목)를 뒤쫓아 다니는 기분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시사적인 성격이 강한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더욱 깊이 있는 역사적 시야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때 그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서유럽의 국가들도 신생국 시절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신생국이던 시대의 서유럽 국가들을 연구해야겠다는 발상을 하게 된 거죠. 대략 16~17세기, 곧 근대적 국가 구조가 형성되던 시대 말이에요. 이런 생각으로부터 출발하여 역사적인 관점에서 근대 세계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역동성을 밝혀 낼 수 있었던 겁니다.

한편 그가 연구에 몰두한 때는 정치적 격동의 시기이기도 했어요. 게다가 1968년 일련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서방 세계에서 대규모 사건이 최초로 터진 곳이 바로 컬럼비아 대학이었습니다. 파리의 학생 봉기보다 한 달 앞서 일어났지요. 학생들이 내세운 주된 쟁점은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베트남 전쟁 문제였는데, 대학이 국방부와 다른 정부 기관을 위한 베트남 전쟁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등 전쟁에 연루되어 있다는 거였어요. 둘째는 인종 차별과 관련된 내용으로, 컬럼비아 대학이 흑인 지역 사회가 사용하는 공원 땅을 사들여 체육관을 지었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되었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교수들이 재빨리 모임을 만들어 중재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했어요. 이때 월러스틴은 이 모임의 공동 의장이었습니다. 일주일 뒤 학교 당국은 경찰 개입을 요청했고, 경찰이 학생들을 대학 건물에서 내쫓으면서 그들의 더 큰 분노를 불러왔죠.

학생 운동 사태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결국 월러스틴은 컬럼비아 대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예일대 석좌 교수이자 뉴욕 주립대 산하의 ‘경제, 역사 체제 및 문명들의 연구를 위한 페르낭 브로델 센터’(뉴욕 주립대 빙엄턴 캠퍼스에 위치)의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죠.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은 현대 역사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프랑스 아날학파(Annales School)**의 대표적인 역사가로, ‘프랑스 아날학파 세계 사회 학회(ISA)’의 회장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 ?1968년 세계 혁명- 1968년에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를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규모 시위를 말한다. 이들은 권위주의를 비판하고 베트남전 같은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특히 프랑스에서는 드골 정부에 항의해 400여만 명이 파업에 돌입했다. 68 혁명의 영향으로 체제가 흔들린 드골 정부는 이듬해 실시된 국민 투표에서 패배했다.
** 아날학파- 1929년 뤼시앵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가 처음 만든 역사 잡지 〈경제 사회사 연보〉(Annales d’histoire ?conomique et sociale, ‘아날’은 연보라는 뜻임)를 중심으로 모인 역사학자 집단을 가리킨다. 이들은 근대 전통 역사학에 반기를 들고, 인간의 삶에 관한 모든 학문 분야를 통합해 생활사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여, 1970년대 이후 세계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사회 과학의 기존 틀에서 벗어나기

 

월러스틴이 1968년에 일어난 대규모 사태를 ‘세계 혁명’이라 부른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 여러 곳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미국을 비롯해 서유럽과 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벌어졌죠. 형태는 제각각이었지만 그 바탕에는 되풀이되는 두 가지 공통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구(舊)소련’이, 외견상으로는 대단한 적대자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공모 관계라는 사실이었어요. 그리고 둘째는 반항하는 모든 사람의 주된 과녁이 자유주의적 보수(우파)가 아니라 ‘공산주의적 진보(좌파)’라는 점이었죠. 곧 1968년의 혁명 세력은 구(舊)진보 세력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도리어 문제의 일부가 되었다고 보았어요. 구진보는 모두 실패했다고 선언한 거죠.

이러한 생각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공통 주제는 그의 표현대로 하면 ‘세계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지구 문화(geoculture, 전 지구적으로 대부분 받아들여지는 이념이나 가치)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러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는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인종주의, 성차별)를 들 수 있어요. 이는 과거의 인종 혐오주의나 가부장제와는 달리 자본주의 제체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자본주의적 축적을 뒷받침하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유주의적 지구 문화에 대한 도전은 어느 나라에서든 옳은 사람들이 권력을 잡기만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그들이 체제를 의미심장할 정도로 개혁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실제로 1945년에서 1968년 사이의 세계 지도를 보면, 아주 많은 나라에서 진보를 대표하는 공산당 아니면 사회 민주당, 민족 해방 운동 세력이 권력을 잡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1968년의 사태는 진보 세력이 권력을 잡아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 거나 다름없었죠. 이로써 자유주의적 합의를 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금이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현실에서는 사라진 구(舊)자유주의가 다시 신(新)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출현합니다. 신자유주의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 자유방임주의와 시장 제도를 통한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주장한 미국의 경제학자)은 1968년 이전만 해도 미국 학계의 우스갯거리였어요. 그런데 1970년대 들어 갑자기 사람들이 그를 진지하게 대하더니 1976년에는 노벨 경제학상까지 주었죠. 그 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프리드먼과 관점을 같이하는 경제학자들이었어요.

결국 1980년대 말 공산주의가 몰락한 뒤에 부활한 자유주의적 보수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힘을 갖게 됩니다. 그렇지만 월러스틴은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진보 세력이 새로 대두할 공간도 열렸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제기한 ‘세계체제 분석(world-systems analysis)’ 작업이 호응을 얻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였죠.

월러스틴은 『세계체제 분석』에서 30년 동안 계속해 온 자신의 작업을 총괄적으로 요약하면서, 자신에게 제기된 비판들에 대해 간략하지만 종합적으로 반대 입장을 제기합니다. 여기서 그는 자유주의적 합의의 바탕을 이루는 일련의 지적 개념들이 기존의 사회 과학 전반을 지배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회 과학을 ‘탈사고(unthink)’ 해야 한다고 말하죠. 탈사고란 기존의 지배 관념들로부터 사회 과학을 해방시키자는 의미로, 진보적 사회 과학의 출발점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 ‘세계체제 분석’ 작업에서 월러스틴은 무엇보다도 분석의 단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어요. 종전에는 하나하나의 민족 국가를 분석의 단위이자 별개의 실체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각각의 나라가 일종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있다고 주장하는 서구 중심적인 발전 단계론에 알맞은 전제였죠. 낮은 계단에 있는 비유럽 국가들이 위에 있는 서유럽의 선진국을 학습하면서 위쪽으로 올라가게 된다는 거였어요. 이러한 생각은 근대화 또는 선진화 논리의 핵심이 됩니다.

이와 달리 월러스틴은 어떤 국가들이 아래 있는 건 다른 국가들이 다른 곳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아래로 밀려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곧 위아래가 모두 하나의 체제를 이루는 일부일 뿐이므로, 국가 단위의 분석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월러스틴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연구했어요. 더 나아가 세계체제에는 경제 외에 그 나름의 정치적인 구조, 곧 국가 간 체제(interstate system)가 있고 주도권(hegemony)의 발흥과 쇠퇴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게 되죠. 이와 더불어 그는 이러한 체제에 저항하는 반체제 운동들도 연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21세기의 역사적 선택

 

학문적 연구와 더불어, 월러스틴은 우리에게 정치적 실천에 나설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죠. 이와 관련해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 1917~2003, 러시아 태생의 벨기에 과학자로, 1977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음)의 ‘복잡성 연구(complexity studies)’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연구를 자연 과학, 곧 물리학·화학·수학·생물학 등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지식 운동이라 불렀어요. 그리고 이 아이디어들을 자신의 작업에 어떻게 하면 활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했습니다.

프리고진에 따르면, 한 체제 또는 체계가 균형 상태로부터 멀리 움직여 갔을 경우 체계는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아니, 못한다기보다 진동이 너무 커져서 분기(分岐, bifurcation)가 일어납니다. ‘분기’란 과학자들의 전문 용어인데, 갈라지면서 이쪽으로 갈 수도 저쪽으로 갈 수도 있어서 어느 쪽으로 갈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미리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쪽이나 저쪽으로 약간의 힘이 더해지기만 해도 아주 그리로 가게 되는 거죠.

월러스틴은 현재 세계체제가 위기와 혼란의 상황을 맞았다고 진단하고 있어요. 이와 관련해 우리는 이미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사건들을 목격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쌍둥이 빌딩에 대한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1957~ )의 영화 같은 공습은 물론,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투기 세력 등 곳곳에서 높은 수준의 폭력이 자행되고 있죠. 따라서 우리는 이런 체제의 위기 속에서 분기의 두 방향 가운데 어느 곳으로 진행할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어떤 것인가.’ 이것이 바로 월러스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인 동시에, ‘21세기의 역사적 선택들’이 뜻하는 바입니다.

 

말이 힘을 잃은 시대의 한반도[시대와 철학]

말이 힘을 잃은 시대의 한반도[시대와 철학]

조배준(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1. 아무도 믿지 않는 말잔치의 풍경

 

작년의 대선 결과가 충격으로 다가온 사람들, 그 이후에도 일련의 정치적 ‘꼬락서니’들을 넋 놓고 보아야만 하는 우울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봄’ 기운은 참으로 간절했었다. 그런데 연일 계속되던 북한의 ‘악다구니’와 그것을 교묘히 활용하는 남한의 위정자들은 이 ‘꽃샘추위’가 더 지속되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2013년 봄 연일 계속된 한반도 긴장 국면이 그 정점을 찍고 서서히 ‘대화 재개와 신뢰 구축’이라는 예정된 각본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 내부의 불안 요인을 잠재우는 거짓말과 남한 내부의 불안 요인을 증폭시키는 거짓말이 서로 교차하며 이익을 얻는 집단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거짓말 잔치의 풍경이 지금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파국’으로 치달을리가 없다고 모두 암묵적으로 전제했던 이 위험한 ‘쇼’의 각본은 사실 상호의 이익이 어느 수준을 넘어섰을 때 ‘불장난을 멈춘다’는 연출자들의 보이지 않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 이 정도 수위에서 북한, 남한, 미국, 중국 모두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는 내부세력을 단속하고 강성 군부를 통해 독재 리더쉽을 과시했으며, ‘핵 보유’와 도발의지를 통해 궁극적으로 원하는 점진적 개방과 투자를 위한 협상력을 강화했다. 남한의 박근혜 정부는 이 ‘북풍’을 통해 ‘낯 뜨거운’ 직무수행 능력을 덮어버리고, 뒤숭숭한 민심을 불안감과 외부 관심으로 얼기설기 솎아 내고 안보상황을 유리하게 환기했다. 물론 개성공단의 위기가 남북한 경제에 실제적으로 미치는 파급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은 양자가 서로 큰 부담 없이 다음 절차를 위해 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전술적인 조건이었다. 한편 이 기간 동안 미국의 공고한 군산복합체 지배계층은 최신 무기를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는 ‘모터쇼’를 성황리에 열었으며, 북한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방어하는 향후 ‘칭얼대는 아이 달래고 혼내기 액션’을 보다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북한이 쏟아내는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언사들은 실상 그들의 공포심과 두려움을 은폐하고 있으며, 그 ‘위험한 악동 코스프레’는 고립을 극복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계산된 행동의 일부일 뿐이다. 물리적 전쟁으로 결코 승리할 수도 없고, 전면전으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북한의 군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당랑거철(螳螂拒轍)의 호기롭고도 가련한 무기-핵무기를 빌미로 한 심리전쟁, 말의 전쟁-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당국의 언사가 호전적이면 호전적일수록 그 말의 진정성은 떨어지고 현실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그런데 무슨 사고만 터지면 ‘북한의 소행이다’라고 몰아가는 남한 정부와, 중국조차 믿을 수 없는 무기력한 힘의 대결에서 거짓말을 남발해서라도 작은 통제력을 갖추고자 하는 북한 당국의 몸짓은 어쩐지 서로 닮은 데가 있다. 이러한 북한 지배층의 위악(僞惡)의 포즈는 남한 지배 권력의 위선(僞善)적 포즈와 쌍을 이루어 전후 한반도의 인민들을 통치하는 가장 중요한 기만 술수였다.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한반도의 이 기묘한 호혜적인 관계는 2013년, ‘3대 세습권력’과 ‘독재자의 딸’이라는 최악의 조합이 갖고 있는 상호 필요성으로 인해 이 땅에서 다시 재현될 조짐을 보인다.

사실 남과 북의 권력자들이 모두 원하는 것은 아무도 믿지 않는 말을 하고 아무도 신뢰할 수 없는 이미지를 연출하면서도, 인민들로 하여금 마치 그 말과 이미지가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스스로 믿고 싶게 만드는 ‘연극적인 상황’이 아닌가. ‘거짓에 의해 지속되는 공동체’가 남과 북에서 모두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도록 한반도의 현대사는 모질게 흘러왔다. ‘능수능란한 사기꾼은 속고자 하는 사람들을 항상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의 조언이 오용되면 위험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기표가 함의하는 바를 모르고 ‘속은’ 사람이 아니라,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스스로 ‘속고 싶어서’ 그녀를 선택한 사람들이 많다면 향후 제도권 정치를 통한 삶의 개선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show’를 쑈인줄 알면서 그것을 적절한 수위에서 소비해주는 것과, 쇼가 아닌 삶과 역사의 문제를 쇼처럼 관람하고 방관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미 숱하게 속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속아 넘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의식은 끝내 자기 자신의 양심까지도 속이려 들것이다. 말 같지 않은 말도 반복적으로 들으면 고유한 세뇌 효과를 얻기 마련이고,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기 때문이다. 탈출구 없는 불안한 민중들이 상징조작과 선동의 효과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출 때의 참혹한 광경을 우리는 이미 20세기 전반의 파시즘에서 확인하지 않았던가.

 

2. 불신시대의 언어와 무기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이익’이라는 말은 오늘날 정치와 경제 두 영역의 교차지점을 꿰뚫는 핵심적인 테제이다. 또한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라는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지도자 마르코스의 메시지는 이제 전혀 다른 맥락에서 지금-여기 상황에 적용된다. 진실을 거의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전체주의 체제 독재자의 말은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이데올로기를 실현한다. 늘 속셈을 숨기면서도 국가와 민족, 국민과 국익을 주워섬겨야 하는 선출된 권력자의 말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이데올로기를 구축한다. 자신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말을 확신에 찬 어조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서 내뱉는 것은 이제 국회의원에게도 필수적인 자질이 되었다. 필자는 “음란물의 유통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 중에 “누드사진”을 검색했다고 뒤늦게 수습하는 새누리당의 어느 중진 의원을 보면서 시궁창 똥물을 뒤집어 쓴 ‘공공언어의 무덤’을 목도했다. 공적 권력에 의해 공표된 말이 가장 의심스러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대의민주제 정치가의 기본적인 레토릭마저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남한의 위정자들을 보면, 혹시 그들이 쏟아내는 말은 스스로의 권위를 자해하는 무기이거나 스스로의 수준을 까발리는 풍자의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새 대통령이 정성들여 쓴 수첩에서 비밀스럽게 나온 비리 인사(人事)들이 만들어내는 저 지리멸렬한 가관을 보라.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보장’이라는 대선 공약(公約)을 첫 번째 보건복지부 장관인 그녀의 최측근이 “그것은 선거 캠페인용 문구”였다고 말하는 ‘셀프 공약(空約) 인증’을 보라. 실상 재벌과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를 만들 작정이면서도 선거에서는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거짓말할 수밖에 없고, 서민들과 노인들에게 어떤 식이든 복지 떡고물을 나눠주는 액션을 취해야 하지만 결코 재벌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 없는 자승자박(自繩自縛) 딜레마에 빠진, 구중궁궐 홀로 고고하고 불쌍한 ‘근혜 언니’를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이 청와대 발(發) 불신지옥-퇴행의 정치를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허허.

▲ 3월 21일 박근혜 대통령이?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이처럼 ‘거짓말’이 일상이고 진정성이 예외가 된 정치권력의 언어가 탐욕만이 승리를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의 언어와 쌍둥이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된다. 그래서 어느 누구의 말도 곧이곧대로 듣기 힘든 이 사회를 풍자하며, 언어의 새로운 의미를 공유하는 우스개 소리도 당연히 출현했다. 개그콘서트의 ‘현대레알사전’에서는 어휘의 사전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이해되는 현실의 진짜(real)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그 코너에서는 “직장인들에게 회식이란?” “‘사장님, 회식비로 차라리 월급이나 올려주세요’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 또 다른 뜻으로는 사장님이 카드만 주고 가셨으면 하는 것”이라고 폭로하며 시청자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한편 최근에 필자가 인터넷에서 재미있게 본 어느 댓글에서는 현실을 이렇게 조롱한다. “자유주의란? 돈에 구속당하는 것. 신자유주의란? 돈에 더 구속당하는 것.” 물론 원장님의 지침에 따라 편향된 정치적 댓글을 다는 것이 주된 업무인 국정원 일부 직원들에게는 언어의 의미와 변용 따위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에는 말이 가진 해방의 힘은 제거되고 구속력만이 작용할 뿐이다.

이제는 ‘텅 빈 개념’이 된 민주주의, 주권이라는 말이 그 사회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로 인식되는 사회에서는 불신 관계가 더욱 강화한다. 특권층과 기업을 위한 조치가 국민들을 위한 조치로 둔갑하는 사회에서 ‘점령당한 방송사’의 뉴스를 볼 때는 일단 의심부터 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국가의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글자 그대로 신봉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성경 말씀을 글자 그대로 믿는 신앙인과 대화할 때만큼이나 답답해졌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대의 고사성어를 잊을만하면 상기시키는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을 보며, 인민들은 공권력이 집행하는 정의(正義)와 국가가 보장하는 생존에 대해 기대감을 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이렇게 당당히 외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나는 오직 돈만 믿는다.”

더 많이 누리고 가진 자의 말일수록 믿을 수 없는 시대, 서로의 말이 말 같지 않아 말이 무기력한 사회, 음모론과 증권가 찌라시가 존중받는 시대, 곧 말뿐인 시대. 그래서 믿을 거라곤 내 재산밖에 없는 피곤한 사회, 돈이 있어도 고민, 없어도 고민이지만 어쨌든 돈이 무기인 사회, 곧 너도나도 ‘힐링’을 요구할 수밖에 없어서 잠이라도 푹 자고 싶은 프로포폴 권하는 사회. 불신-불안-공포가 대중의 가장 강력한 정서이자 가장 강력한 지배수단이 된 시대. 이것이 작금에 들어 더욱 퇴행할대로 퇴행한 저잣거리 정서이자 대중이 가진 시대정신의 실체라고 한다면 너무 비관적인 인식일까.

 

3. 불감증: 소통이 어려운 사회의 질병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죄송해요.” 이런 말을 남기고 자살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전교 1등’이라고 언론에 보도된 학생의 유서를 보았다. 이 유서에는 공표된 말과 실제 현실의 괴리가 심한 우리 사회의 가장 처절한 단면이 예리하게 드러나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면 보장된다는 행복한 미래에 관해 말씀하시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만을 믿고 그대로 따르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현재를 만드는가. 그 권위 있는 말이 사실과 진실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갈 때, 말은 거품이고 성적만이 실체인 학교에서 조숙한 그 아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타인과의 정서적 교류나 연대가 몰가치하며 불필요한 것으로만 폄하될 때 우리 내면은 얼마나 쪼그라드는가.

서로 다른 저마다의 생각은 효율과 성장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강요했던 ‘박통시대’의 시즌2가 그의 딸에 의해 도래했다. 전인교육, 감성교육 이런 말은 이제 중등교육 현장에서 구호로 외쳐지기도 민망해졌다. 공교육에서 외면한 역사교육, 시민교육으로 대학생들의 역사적?정치적 감수성도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다. 필자는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세력을 이루어 가고 있는 젊은 파시스트들이 이런 현상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부터 서열화와 폭력이 상식이 되면 민주(民主)와 다양성은 낯설고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진다.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 그렇게 훈육되고 있는데 학교폭력이 어찌 학교와 부모의 문제일 수 있겠는가. 이 사회에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가 이미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자신은 감당하기 싫은 고통과 폭력을 서로가 서로에게 강요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 아이들이 만들어갈 한반도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안전한 시대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시대가 될 수도 있다. 작년 대선 이후 가속화된 ‘늙은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젊은이, 젊은이를 믿지 못하는 늙은이’의 사회가 도착할 터널의 끝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에 담긴 파시즘적 상황보다 더 끔찍하다. 남한 내부의 사정이 이러할진대 어떻게 남과 북이 서로 대화하고 교류할 수 있는 각 영역의 광장들이 쉽게 열릴 수 있을까. 평화를 위한 ‘신뢰 프로세스’라는 것도 서로의 이익이 확대될 수 있는 조건의 확장이 아니라, 먼저 서로의 말을 믿을 수 있는 조건의 확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거짓’이 일상이고 ‘진실’이 예외적인 상황이 되면 말 자체는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는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우울증이 고립감을 키우는 개인적 정서의 문제라면, 불감증-타인의 고통에 반응하고 공공의 문제를 공적으로 인식하고 대처할 수 있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 자체를 상실하게 만드는-은 사회적 정서의 문제이다. 말의 힘이 무너진 시대에는 어차피 합리적인 대화와 소통이 불가능하기에 시민의 정치력이 쇠퇴하고 공공의 문제에 대한 불감증이 커지고 현실도피적 경향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이 힘을 가지는 관계, 즉 서로의 말을 믿을 수 있는 관계가 확산된다면 사람들의 약속과 상호연대는 보다 강력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인민들은 비로소 자율성과 감수성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사회의 한 조건은 공적으로 뱉은 말이 자발적인 권위를 갖출 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서로의 말을 경청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말을 뱉은 자들이 자신의 말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져야한다. 말이 가진 가치와 의미를 행동으로 실현하고 그 관계의 망들이 서로 엮여져 그것이 가장 강력한 권력이 되는 정치, 아니 그런 말과 말의 선순환 관계가 일상이 되는 사회. 그것이 현재 우리가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거짓말’이 아닐까.

국가보다 더 ‘행복한’ 우리 마을에 놀러오세요![철학자의 서재]

유창복의 <우린 마을에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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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부산대학교 비정규교수)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춤추는 숲>과 함께 사는 삶

 

지난 2월 마지막 목요일 저녁, 나는 동료들과 공부 모임을 하는 공간이자 매월 마지막 목요일이면 ‘초록 영화제’가 열리는 ‘공간 초록’으로 향했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여유가 없어 공부 모임은 물론이고 저녁 시간 영화제는 (육아하는 입장에서) 더더욱 언감생심이었죠. 2월 말 영화제를 기점으로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모든 곳에 가능한 한 참여하겠다고 목표로 삼았지만 절반의 성공에 만족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두 돌 된 아이를 달고 간 길이라 영화가 시작되고는 30분을 넘기기 어려웠거든요.

보고 싶었으나 다 보지 못했던 그 영화는 서울 마포의 성미산 공동체에 대한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이었지요. 공동체 문제는 현재 나의 삶이나 우리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내게 언제부턴가 새롭게 풀어가야 하는 오래된, 그러나 미지의 과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는 몰랐습니다. 그렇게 또 덮어 두었던 문제가 성미산 아래 마을의 골목골목을 여기저기 소개하는 경쾌한 자전거의 속도로 내게 다가왔습니다.

어차피 영화를 다 보지 못했으니 영화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다만 영화는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 사는 삶을 모색하고, 그것을 과감하게 실천해온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만 말해 둡시다.

애초에 그들은 공동 육아를 위해 모였고 그것이 마을을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그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요컨대 성미산 공동체 사람들은 사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그냥 감내하지도 않았지만, 우리 사회의 제도적인 공적 영역 속으로 휘발시켜버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미지의 공동의 삶의 방식을 발굴하려 했고, 또 그 이후의 것들(도시에서 마을을 이뤄 산다는 새로운 공동의 삶의 양식)을 만들어 가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17년의 지난한 시간을 아마도 영화는 매우 함축적으로밖에 보여주지 못했을 겁니다.

같은 것을 소유/소비하는 것과 공유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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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복 지음, 또하나의문화 펴냄). ⓒ또하나의문화

물론 성미산 공동체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산에도 화명동에, 반송에, 물만골에 서로 다른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삶 가운데 공통적인 것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얼핏 생각해도 이 함께 살아가는 존재 조건에서 면제된 이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를 볼까요? 우리들은 동일한 물건들을 소유/소비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스마트폰, 스키니진, 백팩, 브랜드 러닝화 등의 동일한 물건들로 공통적인 외형을 꾸미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 동일한 종류의 물건을 소유/소비하는 방식은 아주 개별적일 뿐입니다. 이때 개별성이란 서로 소통되지도 않고, 관계 맺지도 않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소유/소비 방식은 싸고 질 좋은 물건이거나 비싸더라도 브랜드가 품질을 보증해줄 수 있으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공통적인 가치는 삼성이냐 애플이냐, 나이키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실제로 그것이 어디서 왔고(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도 공통적이네요)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는 모르기도 하지만 관심사 밖이기도 합니다. 이런 단기적 소유와 묻지 마 소비는 나도 너와 다르지 않다는(즉, 나도 동일한 물건을 소유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필요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요(물론 이런 관점이 스마트폰이 우리 삶의 내용과 형식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개별화하는 이 도시에서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찾은 공통적인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요? 나의 관심은 여기에 있었고,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결국 유창복이 쓴 <우린 마을에서 논다>(또하나의문화 펴냄)을 들추어보게 되었습니다.

글쓴이 유창복은 사고로 부모 형제를 잃은 처형의 아이 아빠가 되면서 공동 육아의 터전으로 성미산 자락을 찾아든 이들 중 한 사람이지요. 그는 처음부터 마을 일에 참여적이지 않았으나, 그렇게 모인 이들은 아이들 먹을거리와 아이들 교육을 남다르게 고민하면서 마포두레생협, 도토리방과후학교를 만들면서 조금씩 마을의 기본적인 삶이 구성되면서 함께 해나게 되죠.

그런데 그 터전이 갑자기 위기 상황을 맞게 됩니다. 명목은 서울시상수도본부에서 성미산에 배수지 건설 사업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당시 성미산 땅주인이었던 한양대학교재단의 부동산 개발을 위해 성미산이 헐린다는 것이었죠. 그때 글쓴이는 자신은 몇 번 오르지 않던 성미산이 아이의 “꿈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동산”이라는 것을, 아이의 고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성미산 지키기는 주민 서명에 들어간 2001년 8월부터 상수도 사업본부가 서울시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업 철회를 밝히는 2003년 10월에 이르는 지난한 시간을 겪습니다. 그동안 마을에 들어온 이들과 원주민들 사이에 싹트기 시작한 공감과 지지는 120일 동안의 산상 철야 농성 과정에서, 서울시가 주민을 몰아내기 위해 보낸 용역 깡패를 막아내고 끝내 성미산을 지켜내면서 새로운 이웃으로, 다정한 마을 주민으로 다시 만나게 되지요.

물론 해피엔딩은 없습니다. 성미산의 위기가 거기서 끝나지 않거든요. 이후 새로운 땅주인이 된 홍익대학교재단이 주민 반대 끝에 홍익대학교 부속 초·중·고등학교를 짓게 되고 그 갈등과 민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또 다시 기숙사를 설립한다고 해 새로운 갈등을 예고하고 있지요.

‘성미산 마을 축제‘, 마을 문화 공간인 ‘성미산 극장‘, 12년제 대안학교인 ‘성미산 학교’, 대안 카센타인 ‘성미산차병원’, 동네 유기농 식당 ‘성미산밥상’, ‘마포FM’, 공동주택전문기획사인 마을 기업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등 이 마을에서 만들어진 무수한 새로운 공간과 실험적인 시도들에 대한 찬사나 부러움은 여기서 접어둘게요.

애초에 나의 의문으로 돌아가면 성미산 마을 공동체의 공통적인 것은 무엇보다 ‘성미산’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은 자연재로서의 산인 성미산이 아니죠. 함께 살며 놀며 기억을 만들고 오랜 시간 같이 고민하고 모색하고 투쟁하며 함께 지켜냈던, 시간과 함께 보냈던 장소로서의 성미산이지요. 그런 것은 손에 잡히는 유형의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변치 않는 동일한 것으로 유폐되어 있을 수도 없는 것이죠. 같이 기억하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매번 달라지고 공유하고 있지만 또 다른 시간과 공존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계속해서 덧붙여갈 수 있을 뿐이죠.

 

뜻은 있으나 목적은 없는

 

우리는 그동안 숱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실패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지난 시대 가장 대표적인 공동체가 이념적 공동체와 종교적 공동체였다면 전자는 이미 그 생명을 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귀농을 꿈꾸는 이들은 소비와 쓰레기의 순환에 갇힌 도시를 피해 농촌으로 가지만 그들이 거기서 또 다른 마을 공동체를 꿈꾸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가 성미산 공동체에서 주목하는 것은 “성미산 마을은 비전 세우고 쫓아간 게 아니라, 일상의 필요에 따라 마을 일을 하면서 능력들이 성장한 사례”라는 점입니다. 20~30명 규모의 공동 육아 울타리만으로 육아가 끝나는 것이 아니듯이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수하게 많습니다. 결국 이들은 “아이 하나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점점 구체적으로, 온몸으로 깨닫는 과정에서 애초에 생각지 않았던 일들을,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전인미답의 길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가고 있는 것일 뿐인 거죠.

최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다양한 방식으로 쏟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의 내용을 논의하고, ‘공통적인 것’을 규명하는 데 관심이 많고 저도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입니다. 사실 자본주의적인 삶의 방식은 인간을 개별적인 존재로 개인화하면서 더 효율적으로 돌아가지만 인간이 처음부터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집단적인 공통성을 토대로 연결되고 구성된 존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나의 토대를 이루고 내가 연결되어 있고 나를 구성하고 있는 이 공통적인 것을 이미 주어진 것이며 사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공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저 역시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내 삶의 자리를 만들고 있는 것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보니 어느 하나 그냥 주어지는 것이 없더군요.

그렇지만 “육아·교육·먹을거리·생활필수품·놀이·소통 등 어느 것 하나 도시의 빠듯한 살림살이에 절실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절실한 생활의 필요를 느껴 시장에 가 보니 마땅한 해결책도 없다. 있어도 지나치게 비싸서 엄두가 안 난다. 국가를 쳐다보니 아예 관심이 없거나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채다. 어떻게 하나? ‘시장과 국가가 해 주지 않으면 내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다’.” 이것이 바로 성미산 마을의 역사를 만드는 뜻이었다고 봅니다.

“절실한 필요를 느낀 사람들이 직접 해결하는 거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질 않지만 여럿이라면 가능하다. 공동의 필요를 느낀 여럿이 협동하면 뭐든 된다. 한 번의 성공적인 협동은 또 다른 협동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협동이 오히려 번거로울 때도 많다. ‘차라리 혼자 하고 말지’할 때가 많을 정도로. 원활한 소통 경험은 협동의 성능을 높이고 성공률을 높인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삶을 원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지만 성미산 공동체가 우리에게 하나의 가능성이, 그 가능성의 모델이 되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허나 책을 읽을수록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처럼 현재의 삶의 방식에 불만이 많다면, 그래서 나-우리의 삶을 바꾸는데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의 이야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더 읽을거리

윤태근의 <성미산 마을 사람들-우리가 꿈꾸는 마을, 내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을>(북노마드 펴냄), <우린 마을에서 논다>가 마을 1세대의 투쟁과 소개에 많이 할애되어 있다면 마을을 이루는 공동체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두 번째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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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크기,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자본론 강독]-④

가치의 크기,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자본론 강독]-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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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참석 : 이재유, 김선이, 김성심, 나태영, 박종호, 신재길, 신준하, 윤지미, 최혜진

정리 : 신재길(2012교육강좌 수료, 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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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도 교육강좌 후속 세미나로 [자본]을 읽고 있습니다. 세미나 팀에서 매번 정리하여 웹진에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맑스는 인간노동으로서의 가치실체와 인간노동의 응결체로서의 가치를 설명하고 이제 가치의 크기로 이야기를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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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치의 크기는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

“사용가치 또는 유용한 물건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다만 거기에 추상적인 인간노동이 체현되어 있거나 대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치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하는가? 그 물건에 들어 있는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인 노동의 양에 의해 측정한다. 노동의 양은 노동의 계속시간으로 측정하고, 노동시간은 시간. 일 . 주 등을 기준으로 측정한다.” (자본론1상 48p 김수행 역)

▲ 마르크스와 [자본]

그런데 이렇게 가치의 크기를 생산에 지출된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한다면 한 가지 불합리한 요소가 발생한다. 즉 나태하거나 미숙련한 노동으로 생산에 시간이 많이 지출되면 될수록 가치가 크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시간을 개인들의 사적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다. 그러나 맑스가 말한 가치크기의 기준으로서의 노동시간은 개인적인 사적노동시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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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치크기의 기준은 사적노동시간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다.

개인적인 노동은 무수한 질적 양적 차이로 인해 동일한 크기 즉 동일한 시간으로 측정할 수 없다. 따라서 가치의 실체인 인간노동의 크기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인간노동이 동질적 노동일 것을 요구한다.

“가치의 실체를 이루는 노동은 동등한 인간노동이며, 동일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다. 상품세계의 가치로 자기를 표현하는 사회의 총노동력은, 비록 무수한 개인 단위의 노동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여기에서는 거대한 하나의 동질의 인간노동력으로 간주된다.”(자본론1상 48p 김수행)

이러한 개인적 차이를 무시한 동질적 노동력의 지출을 시간으로 나타낸 것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며 이를 기준으로 가치의 크기를 측정한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란 주어진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조건과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평균적 노동숙련도와 노동강도 하에서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노동시간이다.”(자본론1상48p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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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은 개별적 상품생산자들의 생산조건에서의 차이로 하여 서로 다른 무수한 개인적 노동시간 지출의 사회적 평균으로 나타난다.

즉 개별적 생산자 각자가 1미터의 아마포를 생산하는데 드는 개인적 노동의 양이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1미터의 아마포는 하나의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가치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기초한 가치이다. 따라서 상품의 교환가치는 그것의 사회적 가치에 의해서 결정되고, 사회적 가치는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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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같은 외투를 생산하는 세 그룹의 생산자들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기술적으로 가장 우수한 A그룹은 외투 한 벌 만드는데 16시간이 든다고 가정하고 B그룹은 18시간을 C그룹은 20시간을 소비한다고 하자. 그리고 A그룹은 100벌, B그룹은 1000벌 C그룹은 100벌의 외투를 생산해 시장에 내놓는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대부분의 외투를 생산하는 B그룹의 18시간이라는 개별적 노동시간이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 된다. 따라서 16시간의 개별적 노동시간도 18시간으로 20시간의 개별적 노동시간도 18시간으로 그 가치의 크기가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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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은 노동생산성에 따라 변한다.

“노동시간은 노동생산성이 변할 때마다 변한다. 노동생산성은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자들이 평균적 숙련도, 과학과 그 기술적 응용의 발전 정도, 생산과정의 사회적 조직, 생산수단의 규모와 능률, 그리고 자연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자본론1상 50p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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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든 예에서 A그룹의 우수한 기술이 보편화되어 이제 A그룹이 1000벌을 생산하여 시장에 공급하게 되면 사회적 필요노동시간도 18시간에서 16시간으로 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노동생산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한 물품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은 그만큼 작아지며, 그 물품에 응고되는 노동양도 그만큼 적어지고, 따라서 그 물품의 가치도 그만큼 작아진다. 반대로 노동생산성이 낮으면 낮을수록 물품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은 그만큼 커지며, 그 물품의 가치도 그만큼 커진다. 이와 같이,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량에 정비례하고 노동생산성에 반비례한다.”(자본론1상50p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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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상품의 생산량과 상품의 가치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상품의 생산량이 증가하면 그만큼 비례하여 사용가치는 증가하지만 가치는 증가할 수 도 있고 감소할 수 도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생산성이 증가함에 따라 사용가치는 증가하고 가치는 감소한다. 즉 어느 한 상품을 생산하는데 노동시간의 투입은 줄어들고 사용가치의 생산 즉 상품의 생산은 양적 질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갖는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를 아이패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아이패드1에서 아이패드4까지 출시되는 동안 그 성능은 계속 좋아졌지만 즉 사용가치는 증가하였지만 그 가격은 동일하게 출시되었다. 이는 가치는 같으나 사용가치는 증가한 샘이다. 또 대량생산체계를 갖추면 보통 가격이 저렴해 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도 같은 이치이다. 즉 상품의 가치는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량에 정비례하고 노동생산성에 반비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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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치의 크기는 생산조건이라기 보다 재생산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이제 개별적 생산자의 다른 생산조건의 차이가 아니라 같은 생산자의 시간에 따른 다른 생산조건의 차이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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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산자가 외투 한 벌 생산하는데 어제는 18시간을 지출하였는데 오늘은 생산조건의 변화에 따라 16시간만 지출해도 된다면 어제 생산된 외투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쉽게 16시간이 기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어떤 상품생산의 사회적 필요시간은 그 상품이 생산된 때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재생산을 기준으로 한다. 상품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시점은 현재이다. 따라서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는 과거의 가치가 아니라 현재의 재생산 가치로 평가된다. 같은 상품이라면 과거의 생산에 투입된 노동시간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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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재생산이 불가능한 유일한 생산물은 가치를 가늠할 수 없다. 그런 생산물로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대표적일 수 있을 것이다. 베토벤의 음악이나 피카소의 그림 등은 유일무이한 것이기에 가치를 가늠할 수 없다. 이런 음악이나 그림을 복제한다면 복제품은 복제에 들어가는 노동시간만큼의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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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품의 이중성

이제 맑스는 가치와 사용가치의 관계를 간략히 정리하면서 제1장 상품 제1절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의 실체, 가치의 크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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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어떤 물건은 가치가 아니면서도 사용가치일 수 있다.”(자본론1상, 51p, 김수행)

이런 경우는 “그 물건의 유용성이 노동에 의해서 중개되지 않는 경우”(상동)라고 설명하고 그 예로 “공기, 처녀지, 자연의 초원이나 야생의 수목 등”(상동)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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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어떤 물건은 상품이 아니면서 유용하고 또 인간노동의 생산물일 수 있다.”(상동)

이런 예로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써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상동)경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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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어떤 물건도 그것이 사용대상이 아니고서는 가치일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소용없는 것이라면 거기에 들어있는 노동은 노동으로서 계산되지 않으며, 따라서 가치도 형성하지 못한다.”(상동)

이제 제2절에서 상품의 이중성의 근거이자 기반으로서의 노동의 이중성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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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나오지 않는 음악, 진짜 음악이다?[청춘의고전3]- ①

<장자>와 존 케이지의 ‘4분 33초’

 

강사 : 전호근(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정리 : 박태근(알라딘 인문 MD)

 

 

?* 본 기사는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프레시안>, 출판사 알렙이 기획한 ‘교양 대한민국, 청춘의 고전’ 시즌 3가 지난 1월 문을 열었다. ‘청춘의 고전’은 지난 두 해 영화와 미술을 고전과 함께 읽어가며 젊음의 공간 홍대 앞에 철학의 열기를 불어넣었다. 이번 시즌 3는 정독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음악의 선율과 철학 고전의 만남을 시도한다. 1월 9일 첫 강을 시작으로 6월 30일까지, 매월 둘째, 넷째 주 수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총 12강으로 진행된다.??

국악과 오페라, 재즈와 힙합, 비틀즈와 싸이까지, 각양각색의 음악들이 어떤 고전을 만나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낼지 기대가 된다. 첫 강좌는 침묵의 음악으로 불리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와 <장자>의 음악론을 겹쳐 읽으며 음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지난 1월 9일, 뜬금없는 성덕대왕신종 타종 소리로 시작된 전호근 교수(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의 강의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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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들었던 하늘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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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들려드린 소리는 에밀레종으로 알려진 신라 성덕대왕신종의 소리입니다. 왜 이 소리로 강연을 시작했는지를 염두에 두시고 오늘 강의를 따라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들어볼 음악은 음악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음악입니다. 장자는 음악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사람입니다. 그는 전국시대 사람인데, 그때는 말 그대로 전쟁의 시대였습니다. 그 참혹한 시대를 살았던 게 바로 맹자와 장자입니다. 맹자가 활동했던 무대는 천하입니다. 천하를 다스리려고 하는 거지요. 장자는 반대로 천하를 다스리지 말아야 한다는 쪽입니다. 그래서 장자의 활동 무대는 강호입니다. 강호는 강과 호수입니다. 강과 호수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물고기입니다. 물고기가 강과 호수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사람도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이게 장자의 도입니다. 지향이 다른 거죠.?

그래서 맹자와 장자가 지향하는 음악도 다릅니다. 우선 공자는 고전파 음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공자는 엄격한 양식을 추구했기 때문에 클래식이 아니면 쳐주질 않았는데, 맹자는 클래식과 유행가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유행가라 하더라도 백성들과 함께 즐기면 높은 정치적 이상을 품은 것이기 때문에 높이 평가했고, 클래식이라 하더라도 여민동락(與民同樂)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봤습니다. 공자와 비교하면 대중지향적인 음악가라고 봐야겠지요. 어떻게 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들을까, 이걸 중요하게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장자는 공맹과 또 다릅니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음악론은 천뢰(天?)입니다. 하늘 천(天)은 자연을 뜻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신성한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나무 한 그루, 돌 하나가 다 신성한 존재였습니다. 이런 신성한 존재의 대표가 바로 천입니다. 초월의 영역에 있는 거죠. 유가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고 하여 이를 내면으로 끌어들였는데, 장자는 이를 자기 내면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자기가 자유로 나가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물론 장자는 연주를 하진 않았으니 그 음악론은 텍스트로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장자의 음악론과 일치하는 오늘의 음악을 찾은 겁니다. 바로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입니다. 우리는 근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음악을 듣는 거지, 아마 장자 시대였다면 4분 33초가 아니라 훨씬 길었을 겁니다. 다행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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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음악을 넘어서려는 시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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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이지의 음악을 듣기 전에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아까 천뢰 가운데 천이 자연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렇다면 자연을 잘 표현한 음악, 뭐가 있을까요? 비발디의 ‘사계’, 슈만의 ‘봄’,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있을 겁니다. 이런 자연에 대한 모사는 우리를 감탄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치 ~ 같다’, ‘마치 ~처럼’이라는 겁니다. 장자와 존 케이지는 여기에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이따 들어볼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도 마찬가지고요. 우선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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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전원 교향곡’, 4악장 폭풍, 5악장 폭풍이 지나간 후의 평화(강연장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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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에 팀파니를 세게 치는 소리는 천둥과 번개를 뜻하고, 현이 떠는 소리는 비바람이겠지요. 바이올린 고음으로 빗소리를 표현하기도 하고요. 5악장에서는 목동의 풀피리 소리도 들리고, 바순으로 묘사한 새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듣는 게 작곡가의 의도에도 맞고 적당한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음악에 나온 새소리가 정말 제대로 된 새소리인가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올리비에 메시앙입니다. 메시앙이 ‘새의 카탈로그’라고 하는 작품을 남겼거든요. 그중에서 꾀꼬리를 들어보겠습니다. 피아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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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메시앙, ‘새의 카탈로그'(강연장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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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앙은 우리가 꾀꼬리 소리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건 우리 입장에서 마음대로 묘사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하면서, 정말 새 입장에서 새소리를 표현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관점에서 만들어낸 게 이 작품입니다. 새가 듣는 새소리와 우리가 듣는 새소리가 다르다는 말이지요. 같을 리가 있겠습니까. 같을 리가 없지요. 우리가 흔히 프랜시스 베이컨을 이야기하면서 종족의 이돌라(idola, 우상)를 이야기하는데, 이게 바로 종족의 이돌라입니다.?

그럼 이제 오늘의 주인공, 존 케이지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우리 귀에 들리는 대부분은 소음이다.” 방금 들은 꾀꼬리 소리가 사실 소음에 가깝지요. 우리가 전통적 음악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듣기가 힘든 겁니다. 한 시간이 넘는 베토벤의 음악은 들어도, 메시앙의 8분 남짓한 꾀꼬리 소리는 듣기가 힘든 겁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귀에 들리는 대부분은 소음입니다. “우리가 소음을 귀찮아하면 소음은 우리를 괴롭힌다.” 어떤 사람에게 음악이 다른 사람에게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주의 깊게 들으려 한다면 마침내 소음이 얼마나 환상적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소음이야말로 경이로운 음악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이제 ‘4분 33초’ 연주 영상을 함께 보실 텐데요.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음과 침묵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고, 이 둘로 작곡을 하는 것이다.” 소리가 나는 게 있으면 안 나는 것도 있는 겁니다. 배경에 흐르는 음악과 앞쪽에 나오는 음악의 주파수가 같으면 우리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고요함이라는, 정적이라는 게 없으면 음악이 들릴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조합해서 작곡을 한다는 겁니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티비를 통해서 이 공연을 보는 분들은 티비의 음량을 줄이고 주변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그리고 끝나고 나면 또 자막이 나옵니다. 이 공연에 피아노 연주자로 나온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의 이야기인데 “이 곡을 처음 연주할 때, 상당히 많은 예술가들이 와 있었습니다. 고함을 치고 대소동이 일어났지요.” 이게 4분 33초의 악보입니다. 무려 3악장으로 나뉩니다.(웃음) 이걸 악보로 만들어서 팔아먹었어요. 대단하지요.(웃음) 그럼 감상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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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케이지 ‘4분 33초’ 악보.

어떠십니까? 공연 당시에는 난리가 났답니다. 왜냐하면 입장료가 있었거든요.(웃음) 데이비드 튜더는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였는데, 저 사람도 4분 33초 동안 시계만 보다가 일어선 겁니다. 일종의 사건인데요. 오늘은 여러분들은 이 곡이 어떤 건지 알고 보셨기 때문에 사건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만약 이런 걸 처음 경험했다면 그건 사건이었겠지요.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기다릴 때의 정적, 기침 소리, 기대감, 설렘이 있을 테고요. 그렇게 긴장하고 기다리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나고 연주도 시작되지 않으면 처음에는 갸우뚱하겠지요. 그러다가 웃음소리도 날 것이고, 화를 내기도 할 것이고, 걱정하기도 하겠지요. 이런 다양한 상황이 존 케이지가 의도한 겁니다. 소란이 크면 클수록 음량이 큰 음악이 되는 거지요. 이런 식으로 소음을 음악 속으로 끌어온 사람이 또 있습니다. 함께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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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 고가 사다리 차의 종소리(강연장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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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에는 조가 없습니다. 장조나 단조가 없는 정말 다른 음악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소음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다 놀랐지요. 그런데 아이브스는 우리가 실제 듣는 소리는 이렇다고 말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는 거죠. 만약 영화를 만들 때 우리 일상을 그대로 담아서 스크린에 올리면 깜짝 놀랄 겁니다. 실제 그런 영화가 있기도 하고요. 바로 그런 식의 음악인데, 그래서인지 1901년 즈음에 이 음악을 작곡했는데 50년이 지나서야 처음 연주가 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거지요. 차례로 들어본 이런 음악들이 음악의 근본에 대해 물음을 던진 사람들의 작품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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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음악, 대지의 음악, 하늘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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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제 텍스트 속에서 이런 내용을 찾아보겠습니다. 장자의 음악론에 관한 대목을 해설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제물론(齊物論) 제1장인데요, 하늘의 음악은 소리가 없다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정말 소리가 없거든요. 존 케이지 식으로 하면 소음일 수도 있겠고요. 앞에서 들은 음악을 통해서 소리가 없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짐작을 하실 수 있을 텐데요. 소리 없는 것을 어떻게 소리가 나게 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어떻게 들리게 할 것인가, 이게 존 케이지가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하고, 장자가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하고, 신라 사람들이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까 성덕대왕 신종 소리를 들려드린 겁니다. 같은 발상입니다.?

남곽자기라는 사람이 있는데 <장자>에서 도를 아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성곽 남쪽에 사는 사람인데, <장자>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도를 아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이처럼 <장자>에서는 우리가 정상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고 비정상이라고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나옵니다.?

안성자유가 앞에서 모시고 서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찌된 일입니까? 사람의 몸뚱이는 참으로 말라버린 나무와 같아질 수 있으며 마음은 참으로 불 꺼진 재와 같아질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 안석에 기대있는 사람은 전에 안석에 기대 있던 사람이 아니십니다.”?

남곽자기가 현실의 세계가 아닌 도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달라 보이는 거죠. 그 도의 세계를 음악에 빗대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음악에 빠져있을 때 상태는 다르잖아요. 그걸 얘기하는 대목입니다. 다음은 남곽자기의 대답입니다.?

“연아, 너의 질문이 참으로 좋구나! 지금 나는 나를 잃어버렸는데, 네가 그것을 알아차렸구나! 너는 사람의 음악은 들었을지라도 아직 대지의 음악은 듣지 못했을 것이며 대지의 음악은 들었어도 아직 하늘의 음악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겁니다. 남곽자기가 도의 세계에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그걸 음악을 통해서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음악을 감상하는 행위를 낮춰 보면 안 됩니다. 우리가 베토벤 음악을 듣고 감동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베토벤이랑 동일한 수준에 갔다는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인뢰(人?), 인간의 음악을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럼 지뢰(地?), 대지의 음악은 무엇일까요. 글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람의 음악, 대지의 음악, 하늘의 음악에 대해 묻는 부분입니다. 남곽자기의 대답을 잘 들어보면 음악에서 어떤 것이 표현되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안성자유가 묻습니다. “감히 그 이치를 여쭙습니다.”?

“대지가 숨을 쉬면 그것을 바람이라고 하지. 이 바람은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일어나면 온갖 구멍이 소리를 내. 너는 저 멀리서 울리는 바람소리를 듣지 못했는가. 높은 산 깊은 숲 속에서 둘레가 백 아름이 넘는 커다란 나무의 구멍이, 어떤 것은 콧구멍 같고, 어떤 것은 입 같고, 어떤 것은 귀 같고, 어떤 것은 가로 나무 같고, 어떤 것은 나무 그릇 같고, 어떤 것은 절구통 같고, 어떤 것은 깊은 웅덩이 같고, 어떤 것은 얕은 웅덩이 같은데, 거기서 물이 급히 부딪치는 소리, 화살이 아는 소리, 꾸짖는 소리, ‘헉헉’ 들이마시는 소리, 외치는 소리, 볼멘소리, 웃는 소리, 아양 떠는 소리가 나지. 앞의 바람이 우우하고 불면 뒤의 바람이 따라서 웅웅 소리를 내. 가벼운 바람이 불면 가볍게 화답하고,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면 크게 화답을 하는데, 사나운 사람이 지나가면 바로 모든 구멍이 텅 비어서 고요해지지. 너도 바람이 지나간 위에 나뭇가지들이 흔들흔들 살랑살랑 대는 모습을 본 적이 있겠지.”?

이게 바로 장자의 지뢰입니다. 흔히 자연의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대대로 문장가들이 이 부분을 흉내 내어 글을 짓습니다. 박지원은 시골 사람 코 고는 소리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정말 대단합니다. 코 고는 소리를 물 끓는 소리, 톱질 하는 소리, 새끼 돼지가 새근대는 것 같다며 다채롭게 묘사하거든요. 아마 올리비에 메시앙이나 찰스 아이브스 같은 사람이 박지원을 만났으면 아주 좋아했을 겁니다. 자기처럼 소리를 들을 줄 안다고요. 우리는 그렇게 귀가 열려 있지를 않지요. 듣고 싶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겁니다.?

안성자유가 이렇게 말했다. “대지의 음악은 여러 구멍에서 나는 소리이고, 사람의 음악은 피리에서 나오는 소리인 줄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음악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남곽자기가 이렇게 대답했다. “불어대는 소리는 만 가지로 같지 않지만 그 소리는 각자 자신의 구멍으로부터 말미암는데 모두가 다 그 스스로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여기지. 그렇다면 그 구멍들이 성난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은 누구일까.”?

각자 자기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를 내게 하는 존재가 따로 있느냐 하는 게 문제가 됩니다. 남곽자기의 말에 따르면 이게 바로 천뢰(天?)인 겁니다. 남곽자기는 불어대는 소리가 만 가지로 같지 않다고 했는데 구멍의 생김새에 따라 소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자기의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구멍들로 하여금 각자의 소리를 내게 하는 존재는 그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은 <노자>에도 나오는데요. ‘태음(大音)’이라는 겁니다. 노자에는 태음과 비슷한 층위에 있는 것들이 여러 개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대방무우(大方無隅)입니다. 커다란 네모는 모퉁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네모를 네모라고 부르는 건 네 개의 모퉁이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그런데 가장 커다란 네모는 모퉁이가 없다는 겁니다. 한 변의 길이가 무한이면 모퉁이가 없겠지요. 이게 대방무우입니다. ‘태음희성(大音希聲)’이 같은 이야기인데, 가장 큰 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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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소리를 담아낸 성덕대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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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들었던 성덕대왕신종의 소리를 다시 떠올려보지요. 성덕대왕신종은 그 아들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주조를 시작해서 다시 그 아들에 이르러서야 완성이 됩니다. 이 종에는 이런 내용이 새겨져 있는데요.?

지극한 도는 형상 밖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 지극한 도는 보이는 것을 포함할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그것을 살펴보아도 그 근원을 볼 수가 없다. 커다란 소리가 천지 사이에 진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들으려 해도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소리가 나는 종인데, 거기에 새겨진 글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소리로 만든 게 되겠지요. 장자가 이야기한 천뢰나 노자가 이야기한 태음을 신라인들이 작곡한 게 성덕대왕신종인 겁니다. 자기 아버지 성덕왕의 훌륭한 덕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해지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에, 종소리의 여운이 길게 남도록 주조한 겁니다. 이게 신라 사람들의 들리지 않는 소리에 대한 해석입니다.?

다시 장자로 돌아가면 하늘의 음악은 사람의 음악과 대지의 음악 각각이 소리 나게 하지만 자기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연주하지 않는 음악이지요. 존 케이지의 발상과 같습니다. 소문이라고 하는 뛰어난 연주자가 있었는데, 장자는 “소문이 거문고를 연주하면 한 곡만 연주하는 것이고, 소문이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으면 모든 곡을 연주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연주회에 가서 베토벤의 교향곡을 들었다고 하면 그 한 곡을 듣고 온 겁니다. 그런데 어떤 연주에 가서 존 케이지의 음악을 들었다고 하면 수많은 음악을 듣고 온 거지요. 같은 말입니다.?

이처럼 장자와 노자가 말한 음악을 현대 음악에서는 존 케이지나 올리비에 메시앙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라인들로 치면 성덕대왕신종의 소리입니다. 제가 들려드린 소리는 1964년에 녹음된 소리입니다. 아마 이런 음악들을 한 번에 연주한 연주회는 없었을 겁니다.?

장자는 자기 논리의 탑을 엄청나게 쌓아올리고 나서 다시 그걸 무너뜨립니다. 멋진 해결책을 내놓는 게 멋진 철학이냐, 아닙니다.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내놓는 게 철학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장자>를 읽는다는 건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해결책이 중요해서 그걸 읽는 게 아니라 던진 질문이 유효하다는 말인 겁니다. 아마도 오늘 강의의 질문도 명쾌한 해답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우리 삶이 어떤 점에서는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과도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직접 마주하는 것. 그게 바로 아이브스의 음악이나 장자의 음악론이 던진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좀더 치열하게 이런 작품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감상을 하신다면 더 많은 감동과 음악에 대한 견해를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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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연과 함께하는 철학 세미나 2기[ⓔ시대와철학알림]

한철연과 함께하는 철학 세미나 2

현대 정치철학과 영화철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이하 한철연)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진보적 철학자들이 자유롭게 공존하는 모임입니다. 철학을 기반으로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위한 철학 세미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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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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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원전 강독 연습

강사: 서유석 (호원대 교수)

강독 교재: Axel Honneth, “Umverteilung als Anerkennung(인정으로서의 재분배)” (2003)

기간: 420~ 817(16) 토요일 오전 10- 오후1

*독어 철학텍스트 강독(독일어 초보자도 환영, 문법 강의 함께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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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영화철학)

들뢰즈 <시네마2>읽기

강사: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기간: 417~ 109(24) 수요일오후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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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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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페미니즘 정치학

1강 버틀러 <젠더 트러블>읽기 (1): 섹스, 젠더, 욕망, 권력

2강 버틀러 <젠더 트러블>읽기 (2): 수행성의 정치학

(강사: 연효숙, 연세대 외래교수, 여성과 철학 분과 회원)

3강 깁슨그래함 <자본주의의 종말>서문

4강 깁슨그래함 <자본주의의 종말>4

(강사: 이현재, 서울시립대 HK 교수, 여성과 철학분과 회원)

기간: 419~ 517(4) 요일 오후 7-10

지젝의 철학적 구도: 하이데거 비판과 헤겔의 계승

1-2왜 지젝은 하이데거를 비판하는가?

Slavoj ?i?ek. “Why Heidegger Made the Right Step in 1933”, International Journal of Zizek Studies. Vol. 1, No. 4., 2007.

(강사: 서영화, 한신대 외래교수, 변증법과 해체론 분과 회원)

3오늘날 헤겔주의자가 되는 게 가능한가?

Slavoj ?i?ek, Less than Nothing, 24Is It Still Possible to Be a Hegelian Today?

4132Hegel versus Heidegger

4강 헤겔 변증법이 정신분석학을 만났을 때

Slavoj ?i?ek, Less than Nothing,38Lacan as a Reader of Hegel

(강사: 김성우, 兀人 고전학당 연구소장, 변증법과 해체론 분과 회원)

기간: 531~ 621(4) 요일 오후 7-10

아렌트의 정치철학

1~4강 한나 아렌트 <칸트 정치철학 강의>읽기

(강사: 이정은, 연세대 외래교수, 헤겔분과 회원)

기간: 628~ 726(4) 요일 오후 7-10

맑스주의 이데올로기론

맑스주의 이데올로기론

1~2강 맑스·엥겔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맑스의 [자본론] ‘상품’장 읽기

3강 알튀세르의 [레닌과 철학]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 읽기

4강 지젝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읽기

(강사: 박영균, 건국대HK 교수, 맑스분과 회원)

기간: 8월 2일 ~ 8월 30일 (4주) 금요일 오후 7-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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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5월 24일, 그리고 8월 23일은 금요일 월례발표회, 7월 둘째 주 금요일은 한철연 전체 모꼬지 행사 관계로 휴강

* 현대철학 Ⅱ 16강 수강신청 시 전체 수강 필수

대 상: 대학원 재학생 및 수료생, 학부 3-4학년

(철학을 토대로 연구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

*들뢰즈 <시네마2>강독의 경우, 철학·영화·예술학 전공 대학원생

*독일어 강독의 경우, 철학과 대학원생

수업 방식: 세미나(필요한 경우 강의 방식 병행)

신청 방식: 메일 (yhseo2001@naver.com)로 자기소개서를 보내주세요.

(자기소개서 다운로드: 한철연 홈페이지(hanphil.or.kr) 공지사항)

수 강 료 : 없음 (과목당 최대 수강 인원 10, 최소 수강인원 3, 3명 미만 시 폐강)

문 의: 02-332-4301, yhseo2001@naver.com

시 간:20124월 중순-8월 중순(10월 초순),

토요일 오전 10오후 5, ·금요일 저녁 7-10

장 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세미나 1, 2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진짜 사랑 원한다면, ‘하나 되자’고 하지 말자![철학자의 서재]

뤼스 이리가레의 <사랑의 길>

 

김세서리아(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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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사랑, 하나가 된다는 것?

 

사랑해요”란 말이 아직도 서툴고 낯설게 느껴진다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사랑’은 우리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말이 되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홈쇼핑 교환인의 멘트에서부터 유치원 아이들의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재잘거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광고 카피 등은 우리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사용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층위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 그 대상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지만, 사랑한다고 할 때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의미는 가까움, 친밀함의 의미이다.

이러한 때문에 우리에게 종종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라 이해된다. 너와 나 사이의 다름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 그리하여 ‘우리’로 뭉쳐지고 거듭나는 것, 내 것이 네 것 되고 네 것이 내 것 되는 경지,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유토피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을 이해하는 속에서는 둘 또는 그 이상으로 분리되는 것, 그들 간의 차이가 남아 있는 것은 사랑이 없는 것, 사랑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한 때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서로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이러한 상태에서는 불완전하다. 자연히 우리는 완전하였던 상태로의 복원을 소원한다. 사랑이란 바로 이러한 하나됨에 대한 그리움과 그것의 추구이다.

▲(뤼스 이리가레 지음, 정소영 옮김, 동문선 펴냄). ⓒ동문선

플라톤의 <향연>(천병희 옮김, 도서출판숲 펴냄)에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에 대한 논리는 하나됨의 사랑을 보여주는 전형일 것이다. 사랑은 둘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며, 사랑에 의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힘입어 사랑이 둘 또는 그 이상으로 분리된 사람을 하나로 만드는 강력한 힘이라는 생각은 매우 일반화되어 있다. 그래서 그만큼 혼자인 사람은 완전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데올로기도 강력하게 작동한다. 민족애, 동포애, 형제애는 각 구성원이 하나임을 과시하는 사랑의 표식이며, 그래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큰 거부감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한 몸 이미지를 지닌 상상의 공동체가 된다.

모든 것이 동일하다는 것은 자주 혹은 때때로 가장 최상의 원리처럼 생각되곤 한다. 동일함을 추구하는 것은 그 안에 어떠한 대립도 나타나지 않는 통일적인 힘을 상정하며, 또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힘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한 몸 되기의 힘이고, 사랑은 소통의 힘이며, 한 몸이 되어야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차이, 사랑

 

하지만 통일적이고 영원하며 절대적인’하나’의 원리는 사실은 자신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그래서’하나’가 되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이룰 수 없다. ‘하나’라는 영원하고 통일적인 힘은 유일무이한 진리를 등장시키고, 그것과 다른 종류의 것들은 강제로 흡수해버리거나 아니면 미리 마련된 기준에 의해 나머지 것들을 지평 밖으로 내쳐 버리는 방법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하나 됨은 가까움의 극단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움을 최극단까지 몰고 가면 결국 그 가까움에는 어떤 거리도 남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사실 진정한 가까움이나 다가감이라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그런 속에서는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없으며, 그러한 것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내 방식대로 길들이거나 나에게로 동일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항간의 말은 이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나 됨이 폭력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부자가난한 자, 어린이와 어른,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 기득권자와 소외된 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여성과 남성, 제1세계 백인 중산층 여성과 유색 무산자 계급의 여성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은 사실은 평등이 아니라 평등을 가장한 차별이며 온전한 소통도 이루어질 수 없게 만든다.

소통을 가장한 하나 됨의 막힘 논리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예컨대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을 동일화하는 의식은 종종 노인들이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능력이나 잠재력을 얼마나 똑같이 가지고 있는지를 증명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노인과 젊은이 간의 소통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인생의 어느 특수한 단계에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여러 가지 특별한 의미를 무시하고 간과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한다. 사실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을 동일화하려는 사고는 노인들의 특수성이나 능력을 평가절하하게 만든다. 노인들의 가치를 젊은 사람의 기준에서 측정하기 때문에 젊은이에 못 미치는 체력 혹은 능력을 가진 노인은 유용성의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노인들이 갖는 혜안이나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지니는 감정의 특수한 효과들은 무시되고, 노년은 개인적인 발전이 침체되는 운명으로 낙인찍힌다.

어린이와 어른을 동일화하는 것,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동일화하는 것, 예컨대 젠더를 고려하지 않는 것 역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빚어낸다.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우하지 않는 것은 어린이를 그저 작은 어른으로 취급해버림으로써 어른의 일에 어린이를 가담시킨다. 또 장애인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비장애인과 동일화하는 것은 장애인의 상황을 더 열악한 데로 전락시켜 버린다. 남녀의 같음을 강조하는 것 역시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동일성 혹은 통일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는 젠더의 관점에서 가장 비판받을 수 있다. 동일성의 원리에 따라 합리적 이성이 전제된 남성의 유형을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요구하면서 여성의 특수한 경험을 무시하게 되고, 그러한 속에서 남녀 간의 진정한 소통은 이루어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간격, 소통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자와 나의 접촉이 핵심일 것이다. 이때 가까움, 친밀성을 뒤섞는다든지 융합으로 환원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차이, 다름을 인정하고, 거리두기, 간극을 상정하는 방식으로 접촉의 의미를 생산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타자가 나와 차이난다는 것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타자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 각각을 우리 자신들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우리가 닿아왔던 그 부분을 파괴해버리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방식을 이리가레는 감각적인 어루만짐, 가까움을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가까움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에 다다랐다가는 다시 그것을 닫고 물러나야 함에서 찾는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접촉, 어루만짐, 가까움 이런 단어 옆에 간격, 차이, 다름이라는 단어들을 함께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간격이란 이미 드러난 것을 통해 한쪽이 다른 한쪽을 그저 삼켜버리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피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자신을 재발견하고 타자를 재발견하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것으로서의 간격, 안-사이, 사이-공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에게 향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즉 나에게 익숙한 공간-시간이 아닌 다른 공간-시간들을 만들어야 한다.

소통이라는 말에는 모든 것이 교환되고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포기되어야 함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하고, 전체를 교환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은 소통을 불가능한 상태로 모는 것이다. 한쪽이나 다른 한쪽의 내밀함을 침해하지 않고 자유로운 공간을 지킴으로써 사이의 친밀함이 생겨나도록 하는 것은 소통의 방식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타자에게 말을 하면서도 어떻게 타자를 놓아둘 것인가의 문제,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타자가 타자로 존재하고 계속 그렇게 남아 있도록 북돋아 주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관계, 머물기 그리고 사랑의 도(道)
사랑하는 데에도 지혜가 필요하고, 일종의 도를 터득해야 할까? 뤼스 이리가레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사랑의 길>(정소영 옮김, 동문선 펴냄)에서 제시한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두 부분이 갖는 관계의 원래 자리를 일구어야 하며, 그 일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고, 이 책은 그것을 가능하게 할 배경을 그려 보이는 것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리가레에 의하면 이러한 방법은 우리가 현재 믿고 쓰는 묘사적이고 서술적인 언어를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런 언어들로는 이미 존재하는 인물이나 사물, 이미 과거의 사실이거나 말해진 것을 통해 과거로 밀려난 인물이나 사물에 상응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무언가를 존재하도록 만드는 일, 과거의 것과 현재나 미래의 것이 서로 만나는 장을 마련하는 일, 또 그것을 표현할 말이나 몸짓, 맞아들이고 축하하며 지금 현재와 미래에 그것을 일굴 만한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리가레에게서 이러한 작업은 인간 되기, 관계 맺기의 능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존재를 증언하는 것은 유일하고 동일한 하나의 주체와 함께 전유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전체와의 연결이 아니다. 인간 되기, 관계 맺기란 맹목적으로 자신을 전체 안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역사를 공들여 만들어온 주체가 스스로 그 일을 해온 방식에 대해 질문하고, ‘어떻게’라는 방식을 모두 소진하지 않는 존재의 방식으로 이해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모종의 제스처가 없이 타자와의 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리가레는 타자와의 관계를 이루는 것은 그저 형식적인 몸짓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자의 존재, 나아가 자신의 존재에 상응하는 실제적 내용을 표현할 제스처, 관계에 들어서기 위해 필요한 차별화된 세계를 타자에게 제안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체가 타자에의 친근함, 세계에의 친근함을 찾는 것은 거리를 극복함으로써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 안에 머물 수 있는 능력, 자신을 둘러싼 것들과 다르게 자신의 자율성 속에서 존재하는 능력을 통해서이다. 또한 이것이 생겨나는 데 있어서 타자의 역할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자신으로부터 일어나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임을 밝힌다. 이러한 속에서 주체는 구성되고 타자 역시 구성된다. 주체는 자신을 인간으로 구성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주관성의 객관성을 구성한다. 타자를 위한 자리만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를 위한 자리를 자신 안에 마련하면서 인간다움을 이루어낸다.

이렇게 보면 사랑이란 인간 되기의 작업이며 이는 상호간의 차이를 존중하는 두 주체에 의해 건설된다. 나와의 관계에서 네가 생겨나려면 나는 타자가 신뢰할 수 있는 그의 존재에 대한 성실함을 확보해야 한다. 그 시간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는 너와 나 자신 모두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 함께 전유하기는 둘 또는 그 이상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동반한다. 타자에게 다가가는 법, 우리 안의 타자와 우리 사이의 타자와 함께 갈 가까움의 장소를 마련하는 법, 그리고 자신 안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 그것이 사랑의 도이며, <사랑의 길>이 보여주는 하나의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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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16)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16)

글: 이정호 (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주제 2 : 아테네 민주정과 그 형성

 

5. 아테네 민주정 약사(略史) – 최초의 민주주의 그 의의와 한계(2)

 

 

두 차례에 걸친 그리스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격노한 다레이오스 1세는 다시 원정을 준비했으나 끝내 숨을 거두고 이후 기원전 480년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30만의 병력과 1000척에 가까운 군함을 이끌고 다시 그리스를 쳐들어 왔다. 이것이 3차 페르시아 전쟁이다. 그리스 북방의 마케도니아로부터 남하해 온 페르시아군을 맞아 그리스 연합군은 테르모필라이(Thermopylai)에서 첫 방위전을 펼쳤다. 그러나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연합군 7000명 모두가 마지막 한명까지 목숨을 바쳐 용감하게 싸웠음에도 페르시아 대군의 위세를 꺾을 수는 없었다. 테르모필라이의 방위전을 돌파한 페르시아군은 이후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마침내 아테네까지 함락되면서 아테네는 물론 그리스 전체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아테네를 구한 사람이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kl?s)이다. 페르시아군은 남쪽 해안 루트를 통해 해군력을 총동원해 아테네를 굴복시키기 위한 마지막 총공세를 펼쳤는데 데미스토클레스가 지휘한 아테네 해군이 페르시아의 대함대를 살라미스만으로 유인해 페르시아 해군력이 거의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대파해버린 것이다. 이것이 기원전 480년에 있었던 유명한 살라미스(Salamis) 해전이다. 그런데 살라미스에서 아테네 해군의 대승은 단지 아테네 해군의 전술능력과 용맹성으로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치밀한 사전 준비와 행운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1차 침공이후 해군력의 증강이 요구되었을 때 다행스럽게도 라우리온(Laurion) 광산에서 엄청난 양의 은광이 발견되었고 그곳에서 얻어진 재화 모두를 군함건조에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쉽지 않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아테네에서는 고대 이래 나라건 개인이건 큰 부가 생길 경우 최대한 시민들에게 분배하는 게 오래된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부유한 자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요구되어 사회 문제가 된 공적 기부제(leitourgia) 또한 원래는 그러한 전통적 관습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습적 분배 대신 군함 건조에 자금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테미스토클레스의 탁월한 설득과 그에 대한 시민들의 지혜로운 동의가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테미스토클레스는 군함의 건조를 계획하면서 특별히 해상에서 기동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아테네 해군 고유의 삼단노 군선(tri?r?s)의 기능을 더욱 강화시켰다. 당시 해전에서는 상대 함정을 수직으로 부딪쳐 파괴하는 것이 최상의 전술이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크기가 크면서도 기동력이 빠른 배가 필요했다. 적은 수의 군함으로 많은 적함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도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새로 건조되는 삼단노 군선은 당시로선 아주 큰 규모인 길이 40미터, 폭 4~5미터의 거대군함으로 만들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최대한 노(櫓)의 숫자를 늘리고, 노수(櫓手)들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배의 하부를 3단으로 설계하였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페르시아의 해군이 주로 전투원으로 구성된 750척의 배를 구비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아테네 해군은 380척에 불과했지만 승조원의 절반이 노수들이었다고 하니 가히 군선의 기동력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알 수 있다. 결국 페르시아 해군은 살라미스에서 200여척의 배를 잃고 크게 패전한 후 크세르크세스 1세의 뒤를 쫓아 퇴각했고 그리스 본토에 아직 머물러 있던 나머지 병력도 아테네·스파르타 연합군에 의해 기원전 479년 프라타이아에서 최종 격퇴되면서 페르시아 전쟁은 그리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데미스토클레스(기원전 525-459)

고대 아테네의 주력 군함 삼단노 군선(tri?r?s)

 

그런데 페르시안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계기가 된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대승은 흥미롭게도 차츰 아테네 정치지형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으로 작용하였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아테네에서 정치적 발언권과 시민으로서의 긍지는 전쟁 기여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한 시민의 수만 해도 4만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하니 전쟁이 끝난 후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스스로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고양되어 있었을까 짐작이 가고 남는다. 게다가 승조원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노수들은 무구를 갖출 재력도 없어 그 동안 전쟁에 참전할 능력도 없었고 그에 따라 어떠한 시민적 명예도 누릴 수 없었던 무산 시민들이었으니 그들의 자부심은 가히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감격적이었을 것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이러한 고양된 시민의식은 그대로 아테네의 정치 및 권력지형에 반영되어 마침내 아테네 시민이면 귀족이건 무산 시민이건 간에 어떠한 차별이나 제한 없이 모두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발언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의 힘은 날로 커져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최고의 영웅으로 최고의 권력에 오른 테미스토클레스마저도 도편추방투표를 통해 국외로 추방할 정도로 그 위세를 발휘하였다. 물론 테미스토클레스의 탄핵이 정치적 음해가 개입되어 이루어진 누명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지만 어쨌거나 정치적 사안과 관련한 결정과정에서 정치적 주체로 떠오른 시민의 힘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아테네 정치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원전 461년 급진적인 민주정을 펴다 암살당한 에피알테스(Ephialt?s)에 이어 아테네 민주정의 지도자가 된 사람이 페리클레스(Perikl?s)이다. 페리클레스는 이후 30년 가까이 오랫동안 아테네의 지도자로서 군림하면서 아테네의 민주정이 확고하게 제도적으로 자리 잡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가 오랫동안 도편추방 당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며 그런 일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인격과 탁월한 정치적 역량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장군직에 선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플라톤은 페리클레스 치하의 아테네의 정체를, 사람들은 민주정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민중의 찬성이 수반된 귀족정이라고 평하고 있다.([메넥세노스] 238c,d) 그러나 페리클레스의 치세는 아테네로서는 최고의 번성기였을지는 몰라도 그리스 전체역사의 측면에서 보면 그리스의 몰락을 앞당긴 시대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페리클레스는 페르시아 전쟁 종전 이 후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인접 폴리스들을 끌어들여 델로스 동맹을 결성하여 맹주로 자처하고 군자금을 거둬 비축해왔으나, 그 비용을 아테네의 신전 건축과 정치수당을 지급하는데 유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에 반발하는 폴리스들을 군사력으로 제압하여 그리스 사회를 아테네 중심으로 제국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상징으로 꼽히는 파르테논 신전 등 화려한 건축물도, 인류의 빛나는 유산으로 평가되는 여러 문학적·철학적 성취도 그리고 아테네 민주정을 실질적으로 유지시키고 있었던 시민들의 여유와 경제적 번영도 실제로는 모두 다른 폴리스의 희생은 물론 시민들을 대신하여 아테네 경제를 떠받들고 있던 노예들의 희생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민중최고재판소 재판관을 추첨하는데 쓰였던 도구들

 

페리클레스에 의해 주도된 이러한 패권적 제국주의의 경향은 결국 페리클레스 사후 스파르타의 반발을 야기하여 장기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휩쓸리게 함으로써 아테네는 물론 그리스 사회 전체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게다가 아테네의 민주정 또한 내전을 겪으면서 선동정치가의 득세 등 퇴행을 거듭하여 일시적으로 과거 정체로의 복귀를 꿈꾸는 과두주의자들의 반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내전이 끝난 직후에는 30인 참주들에 의한 비극적인 폭압정치가 자행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 참주정은 민주정으로 곧바로 복귀되었지만 아테네 시민들의 민주정에 대한 신념과 자부심은 이미 전성기를 이루었던 페리클레스 치세에 비해 현격하게 저하되어 있었다. 역사를 통해 부르크하르트 등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아테네 민주정의 치명적 과오로서 지적되고 있는 뮈틸레네인들에 대한 처벌을 둘러싼 민회의 결정, 아루기누사이 해전 장군들에 대한 처형사례, 니키아스의 주저가 빚어낸 시켈리아 해전의 참극,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처형 사례는 모두 아테네 민주정의 전성기 이후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 또는 그 직후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에서 조차 아테네 민중들이 선동정치가(D?mag?gos)들에 의해 휘둘려 비합리적이고도 어리석은 판단과 광분으로만 일관했다고 여기는 것은 그릇된 판단이다. 앞에서의 사례들에 대한 일부 학자들의 평가 또한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이른바 선동정치가라고 불리던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수공업자·상인 등 평민 출신으로 처음 등장하여서는 원래 이름 그대로 민중(d?mos)의 의견을 대신 앞서서 표현하고 선도하는(ag?gos) 긍정적인 역할도 하였고, 민회의 결정과 관련해서도 민회가 일년에 40차례이상 수십 년에 걸쳐 수천 건 이상을 다루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위에서 알려진 몇 가지 사례들은 오히려 예외적인 소수의 오류들이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 동안 아테네 민중들이 보여주었던 민회에서의 열정과 전장에서의 헌신적인 용감성은 모두 맥동치는 국가성원으로서의 움직임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 그 기간 동안 시민대중들 또한 의연하게 절제와 지혜를 발휘했던 적도 적지 않았다. 특히 30인 참주들을 축출 직후 극심한 갈등국면에서 아테네 시민 전체의 평화를 위해 아테네 민중들의 화해 조치와 처신은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고 발전되어온 아테네 시민의 성숙된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처형과 관련해서도 당시의 아테네 민중의 정서와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정황상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여지도 없지 않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이라는 장기간의 비극적인 내전을 치르면서 아테네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종전 직후 들어선 30인 참주정은 아테네 민중의 비극적이고도 음울한 정서를 치유하기는커녕 폭정과 정적에 대한 대학살을 통해 민중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감과 상처를 안겨 주었다. 복구된 민주정의 지도자들에게는 이러한 정황을 전환시켜줄만한 어떤 정치적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희생양으로 소크라테스만큼 호재가 될 만한 인물도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30인 참주들의 측근이었고 민주정의 이데올로그들인 소피스트들에게는 눈의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그가 말하는 다이몬(Daimon)이라는 신령은 아테네인들의 일상적 종교생활에서 이교(異敎)신이라 여겨질 만큼 아주 낯선 것이기도 했다. 결국 민주정의 지도자들의 기대와 의도대로 민중들은 이미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자신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취할 수 있는 희생 제물로서 암묵적인 교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황이 시대의 현인 소크라테스까지 처형한 아테네 민중과 민주정의 처사를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일 수는 없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재판 등 일부 부정적인 사례들을 빌미로 아테네 민중들이 오랜 기간 이룩해온 정치적 이념 즉 ‘정치적 결정 및 재판에 대한 민중의, 민중에 의한 지배’까지 일거에 매도해버리는 처사 또한 부당하다. 플라톤의 [변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은 일단 절차상으로 보면 이른바 민주정이 이룩해온 전통적인 법적 절차에 의거해 진행되었고 그에 따라 피고인 소크라테스에게도 변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허용되었다. 아마도 [변명]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재판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발언을 기록하였다고 하면 우리는 인류역사를 통해 고·중세 시기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고대 아테네 민주정 고유의 공개적이고도 민주적인 재판과정의 전모를 알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비록 아테네 말기의 정치적 정황이 아테네 민주정과 재판에 대한 신뢰를 크게 무너뜨리기 했지만 사실 아테네 민주정이 오랫동안 지향하고 견지해온 재판의 이념 자체는 고대 세계의 재판 그 어떤 사례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공정성을 수반하고 있었다. 민중 최고 재판소(heliaia)의 경우 기본적으로 재판관을 당일 추첨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재판의 전 과정에서 원고의 논고는 물론 피고가 의견과 이의를 제의할 수 있는 기회가 최대한 허용되었고 재판관들 또한 재판과정 내내 이의의 추가적인 존재 여부를 끊임없이 재확인하면서 재판을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는 소크라테스 재판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아테네 민주정이 발전시켜온 또 하나의 민주적 이념과 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상 우리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유래된 민주주의의 이념적 지표로서 다수 대중들에 의한 다수결의 원리를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꼽는다. 그러나 아테네 민주정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초에는 다수결의 원리에 앞서 본질적으로 다수 의결과 관련한 일체의 사안들에 대한 정보의 공유 그리고 그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토론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고대 아테네 민주정의 뿌리에는 다수결과 더불어 합리적이고도 공개적인 토론의 정신이 핵심적인 지배원리이자 이념으로서 함께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민주정하에서 죽임을 당했고 플라톤은 그 민주정을 비난하였지만 그들 사상의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치열한 토론 정신은 다름 아닌 백가쟁명의 민주정 아테네의 토양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의 이념의 측면에서도 그와 같은 정보의 공유와 토론의 정신은 다수결의 원리의 정당성을 담보해주는 필수적이고도 핵심적인 조건이다. 이런 점에서 아테네 민주정의 이념은 거대 이익집단의 정보조작에 의해 민중의 진정한 뜻이 왜곡되기 일쑤인 현대 민주주의에도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준다. 진실은 다수결의 지지를 받지 않아도 궁극적으로는 인류에게 선과 덕을 가져다주지만 왜곡된 정보와 거짓에 기초한 다수결은 그 자체로건 결과적으로건 그 결의에 지배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네의 민주정이 고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기 힘든 그와 같은 빛나는 이념과 지향을 가지고 있었을 지라도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비교해 보면 근본적으로 아주 많은 상이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간과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한계 또한 내포하고 있다. 우선 가장 큰 차이는 현대의 민주정이 대의제에 기초한 간접 민주정을 취하고 있는데 비해서(물론 일부 국가에서 직접 민주정의 요소를 이용하고 있고 또 오늘날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직접민주정의 시도 또한 논의되고 있지만) 아테네의 민주정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직접 민주정 체제였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아테네의 최고 결정 기관인 민회의 경우 18세 이상의 성년 남자 시민이면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었으며 누구든 제한 없이 평등하고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었다. 표결은 오늘날과 달리 비밀 투표가 아닌 거수로 정해졌지만 도편추방여부 등 일부의 경우는 비밀투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민회는 1년에 40회 정도 열렸고 국가 중요사안 일체가 심의되었다. 아무리 직접민주정이라고는 해도 열흘에 한번 정도 열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아테네 민주정이 정치 기능에 있어 정책의 적극적 수립보다는 사법적(司法的) 성격에 크게 치중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민회는 워낙 많은 사람들의 참석을 요하고 도심에서만 열려 처음에는 정족수를 채우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페리클레스가 민회 참석자들에게 일상인들의 하루 수입에 준하는 정치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 이후 도심에 살든 시골에 살든 생업까지 접고 회의에 참석하는 등 참석률이 크게 높아지기 시작했고 시민의식은 물론 정치에 대한 아테네인들의 관심 또한 그 만큼 높아졌다.

그러나 여성이나 거류외인 그리고 노예에게는 여전히 참정권이 허락되지 않았다. 당시 인구분포로 보면 인구의 40%정도에 달하는 노예를 포함하여 이들의 수가 전체인구의 70-80 %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엄격한 의미에서 민주정이라고 보기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무엇보다도 아테네의 민주정은 사회경제적으로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노예들의 희생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시민들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인 아테네 경제활동의 대부분을 노예들이 떠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수당 또한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상당부분 델로스 동맹 기금에서 유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정당성을 결여하는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아테네 민주정은 인접 폴리스의 희생은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다수의 기층 민중에 대한 착취를 기초로 성립한 특권화된 과두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예제가 아테네뿐만 아니라 고대세계 전반에 유포된 제도였다는 점에서 그것이 곧 아테네 민주정의 본질적 한계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아테네 민주정에서는 대부분의 관직이 추첨으로 이루어져 정치참여 또는 권력행사에 철저히 특권화가 배제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주요 행정직의 경우는 미리 기본적인 자질을 심사(dokimasia)했으며 특히 가장 중요한 군사직책 즉 장군(strat?gos)이나 재정업무에는 고도의 전문성을 인정하여 선거를 통해 선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연임도 가능하였다. 페리클레스가 장기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장군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네의 최고 사법 기관으로서 민중 최고 재판소에서 판결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배심원(전문적인 재판관이 따로 없었으므로 이들이 곧 재판관(dikast?s))은 일관되게 그 재판 당일 즉석에서 추첨에 의해 선발하여 누구도 사전에 뇌물수수나 모의가 불가능하게 하였다.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

그러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정치 수당의 지급도 중지되고 아테네의 경제상황 또한 날로 악화되어갔다. 앞장의 논의들에서 살펴보았듯이, 특히 가장 큰 타격을 받은 테테스 층의 귀족들에 대한 공공연한 기부요구, 상습적인 무고(誣告)를 통한 이권수수가 횡행하면서 점차 아테네의 공동체 정신도 사라져갔고 인접 폴리스와의 잦은 전쟁과 정책에 대한 대립과 분열로 민주정의 기본골조도 붕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북쪽 변방국가에 불과했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의 새로운 강자로 부각되면서부터 아테네는 친(親)마케도니아파와 반(反)마케도니아파로 분열되어 끊임없이 정쟁만을 일삼다 기원전 350년쯤에는 제국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력이 쇠진해졌다. 그 싸움의 중심에는 마케도니아와 평화를 유지하면서 아테네의 재건을 도모하려는 이소크라테스(Isokrat?s)와, 마케도니아를 그리스의 자유를 위협하는 정복자로 간주하고 그와 싸울 것을 주장하는 데모스테네스(D?mosthen?s)가 있었다. 끝내는 데모스테네스의 주장에 따라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에서 필리포스(Philippos)왕과 전쟁을 벌이지만 처절한 패배를 맞이함으로써 해상왕국에로의 복귀를 꿈꾸던 아테네는 짧은 전성기를 뒤로 한 채 마침내 종말을 맞이하고 만다.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322)

고전기 그리스는 아테네의 패권적 제국주의가 빚어낸 내분으로 결국 몰락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그것은 적대국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군사적 팽창주의로 이어졌다. 도시국가의 철학 또한 오랜 전란기를 통해 안심입명의 개인주의로 해체된 이래 헬레니즘과 코스모폴리타니즘으로 표징되는 또 다른 세계주의로 재편되었다. 때마침 근동 지방에서도 유대교의 민족주의적 폐쇄성을 넘어 보편주의를 기치로 종교적 세계주의가 등장하였다. 우연찮게도 기원전후에 등장한 이러한 세계주의적 경향들은 마침내 하나의 세계사적인 흐름으로 통합되면서 제국주의 거대 로마로 흘러 들어갔다.

(주제 2 : 아테네 민주정과 그 형성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