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사유하기 (1) : 연재를 시작하며

?

글: 이지영(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만일 가능하다면 어떤 형태의 사유인가’라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1990년대 이후 마치 유행처럼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사회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미술을 공부하는 이들이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분야의 연구자들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외국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영화가 기존의 모든 예술을 재매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와 더불어 대부분의 인문학 연구 영역들을 재매개하는 성격을 가지는, 말 그대로 ‘하이브리드’한 성격을 가진 예술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 방식이지만, 그러한 방식들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유효한 사유방식일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사회의 변화, 기술의 변화 그리고 영화(영화 자체 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여러가지 문화적, 제도적, 관행적 변화를 포함)의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유사한 방식으로 영화와 동영상, 비디오 등을 포함하는 유사 영화들에 대해 개입하고 언급하는 것은 과연 얼마나 적절하며 의미있는 발언일 수 있을까. 대상이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패턴으로 개입하는 사유 방식에 대한 반성적 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른 학문의 경우는 일단 제쳐두고, 철학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영화의 주제나 캐릭터, 스토리 등을 소재로 삼아 철학자들의 난해한 개념을 구체화시켜보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으로 이루어진 영화에 대한 철학의 개입 방식일 것이다. 예를 들어, ‘매트릭스(Matrix)’를 통해 호접몽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보드리야르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혹은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를 통해 인간의 자기정체성의 문제를 논할 수도 있다. 필자 역시 교양 강의에서 많이 사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파이트 클럽(Fight Club)’의 경우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떠올랐고, 프롬의 이론을 적용하면 영화에서 쉽게 이해가지 않던 부분들이 너무나도 선명히 의미를 드러내곤 했다. 현대 사회와 소외 그리고 집단과 폭력의 문제를 졸리지 않게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자료는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건대, 데이빗 린치의 영화들은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꿈의 의미를 설명하기에 너무나도 훌륭한 보조자료 역할을 해줬고, 미하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La Pianiste)’는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설명하기 위한 너무나도 자극적인 도입부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었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연구 분야와의 접합 지점을 찾아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재로 영화를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문학이나 다른 인문학 영역의 개입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식의 영화의 활용은 여러 긍정적인 측면들을 지닌다. 영화를 좀 더 진지한 분석과 탐구 대상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또한 난해한 이론들에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게 만들거나 어려운 철학 이론들이 얼마나 이 세상의 불가해한 모습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를 감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앞서 말했듯 필자 역시 아주 많은 영화의 도움을 받아 학생들을 덜 졸게 하면서 어려운 이야기들을 강의 시간에 전달해 왔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묻고 싶다. 이런 방법들은 영화로 사유하는 것인가 아니면 영화를 ‘소재’로 사유를 진행하는 것인가.

먼저 이에 대한 대답부터 하자면, 위에서 언급한 방법들은 영화를 소재로 삼아 사유에 도움을 얻는 방식이지 영화로 사유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방식 또한 긍정적인 측면들을 가지고 있음은 이미 지적하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새로운 사유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알고 있던 철학 이론들의 생생한 사례들을 영화 속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적용하여 풀어낸 것일 뿐,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유를 전개한 것은 아니다. 들뢰즈에 따르자면 철학적 사유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대상 속에서 발견해내는 재인식(recognition)이 아니다. 주어져 있는 사유의 틀을 넘어서며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과 사유 방식들을 창안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유라고 한다. 그래서 들뢰즈의 주장에 따르면 필자를 포함하여 수많은 학자들이 영화에 대해 개입한 방식은 매우 거칠게 말하자면 영화를 착취한 것일뿐, 진정한 사유와는 거리가 먼 견해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존의 방식들과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가.

영화로 사유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들뢰즈의 주장을 차치하고서라도 대체 왜 새로운 영화적 사유가 필요한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모두들 현재를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물론 이때 이미지는 영화나 사진을 포함하는 기계적으로 생산된 이미지를 의미한다. 길거리를 걸어다니건, 집안에서 쉬고 있을 때건,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을 때건, 심지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이미지들은 넘실댄다.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직관적이고, 선형적이라기보다는 비선형적 특성을 가지는 이미지들이 예전 책과 글이 차지하던 자리를 꿰찬지 오래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관적이고 비선형적인 이미지들을 전통적인 논리로 이해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힘은 언어의 논리와는 다른 작동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대가 어떤 방식으로 직동하고 있으며, 이 시대를 지배하는 이미지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예전 사유 방식을 적용하여 풀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거나 혹은 부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전철 안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동영상들(moving images) 속에 파묻혀 산다. 특히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비약적 발전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은 특정인들에게만 허락된 한정된 범위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생산하고, 수용하고, 공유한다. 예전 극장에서만 혹은 텔레비젼 모니터를 통해서 보던 영화는 어쩌면 지나간 시대의 상징일런지 모른다. (여전히 이 방식 또한 다수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의 사회적 위상이나 의미에 대해서는 동일하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영화는 어두운 극장을 나와 길거리로, 모바일 기기 속으로, 동영상 공유사이트, 개인 블로그와 같은 사이버 공간 속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며 변이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저 예전과 같은 방식의 영화만이 아니라 이를 포함한 더 넓은 영역의 영화(이런 맥락에서 ‘확장된 영화’라는 이름을 붙혀본다)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이 확장된 영화들은 많은 경우 줄거리, 캐릭터와 같은 기존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지 않는다. 이전과 같은 사유 방식으로는 이제 수많은 우리 주변의 확장된 영화에 대해 더 이상 의미를 풀어낼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 와버린 것 같다.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일 수 있을까. 그것은 영화를 소재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이미지 자체의 논리를 따라 그 사유의 궤적에 참여하는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화적 사유에 참여할 것인가. 물론 미리 정해져 있는 정답이 있다거나, 유일한 하나의 방식만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중에서 우리가 정말 새롭다거나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영화들의 공통점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적 사유는 계속해서 변화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감각적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 이미지의 논리를 사유하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로 우리를 열어놓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로 사유하기에 대한 한 가지 가능한 방식을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이 유일하거나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다는 이야기는 아님을 전제한 상태에서 말이다. 니체의 말처럼, 확신은 거짓말보다도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변화하는 와중에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영화의 기본적인 메커니즘들을 통해 영화적 사유의 궤적을 추적해보는 것이 앞으로의 연재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영화 이미지, 프레임, 쇼트, 몽타주, 서사, 시점 등의 기본적인 영화 개념들이 어떠한 사유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를 조심스레 따라가 보고자 한다. 변화의 과정 중에 있는 대상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피하면서 새로운 개념화를 끌어내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오류와 오해들로 짜여진 부끄러운 생각들이라고 나중에 분명 후회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변화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고, 나중이라고 오류가 없으라는 보장도 없으며, 나중에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지금 상태에서의 사유는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용기를 내어보고자 한다.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필자가 의지하는 사상가는 들뢰즈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영화에 대한 상당히 두꺼운 두 권의 책을 썼다. 사실 만만치 않은 책이다. 여전히 읽을 때마다 숨어 있던 새로운 문장들과 새로운 의미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래서 나의 들뢰즈의 영화책에 대한 독서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결코 완결될 수도, 완전해질 수 없는 들뢰즈와 영화에 대한 나의 이해를 바탕으로 영화 개념들에 대한 조금은 새로운 정식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물론 그의 영화책을 읽기 위해서는 들뢰즈의 철학과 특히 베르그손에 대한 그의 해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분리될 수 없는 방식으로 제시될 것이다. 마치 들뢰즈 사진 속의 이미지처럼, 영화와 철학이 거울을 마주한 채 서로 반영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철학이 영화적 사유에 개입하기를 희망한다.

기본적으로 앞으로 연재될 글들은 주로 들뢰즈 영화책의 이론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그의 이론을 현재에로 확장하고자 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의 영화들과 그에 대한 사유들이 담겨있는 그의 영화책은 그 이후 대략 30여년 동안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변화는 그 이후 너무나도 바쁘게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들뢰즈의 사유를 변화에 열어놓는 것은 아마도 들뢰즈 자신이 가장 원하는 사유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변화와 생성, 창조의 철학자인 그의 사유를 그의 죽음 이후의 시간에까지 열어놓는 것은, 설사 그의 이론을 변형시킨다 하더라도 가장 들뢰즈적인 사유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모바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기존의 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열어놓고 있는 시대이다. 열려있으며 새로운 연결접속이 무한히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시대에 대한 사유를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들뢰즈의 리좀적 사유와 영화에 대한 사유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들뢰즈 자신의 시대에서보다도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들뢰즈의 영화책은 그저 영화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들은 영화를 통한 사유를 보여주며, 그 사유가 향하는 곳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며, 그에게 영화란 이 세계와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관계와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 관계와 시선들이 영화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영화의 메커니즘들에 대한 개념화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들뢰즈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영화와 그것이 속해있는 세상은 어떤 색채일지를 보고자 한다. 상당히 편협한 방식일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솔직히 어쩔 수 없다. 상당히 좁은 우물이지만, 파고 내려가다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깊이 파내려간 다른 우물과 만날 것이라 믿으며, 이 우물을 통해 내 우물 속의 물만이 아니라, 저 땅속 깊은 곳에 흐르고 있는 다양한 물들이 좁은 내 우물을 통해 지상으로 나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기대와 두려움을 주절거리는 것으로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탁월함’의 행위 기준은 무엇인가?[고전은 숨쉰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소고 (上)

윤리학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을 이론학과 구별한다. 윤리학은 좋은 행위를 그 주제로 한다. 윤리학은 우리의 삶을 진작하기 위해 연구하는 분야다. 그래서 그 주된 관심은 인간의 행복(잘삶/성공)의 본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따라 덕(아레테)을 잘 사는 삶(eu prattein)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좋음 삶을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그는 윤리적 덕(정의, 용기, 절제 등)은 이성적, 감정적, 사회적 관계에 관련된 복합적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한다. 다만 플라톤과 달리 ‘최고의 좋음’을 파악하기 위해 학문적 훈련이나 형이상학적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는‘잘 살기’ 위해서는 친애(philia), 쾌락, 영예, 쾌락, 부와 같은 ‘좋음’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윤리학을 공부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개별적 좋음들’은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개별적 상황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적절한 교육, 습관을 들임으로써 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개별적 상황 속에서 특정한 행위를 선택하는 것은 이성에 의해 지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적 경우에 우리의 행위를 선택하게 해주는 실천적 지혜인 프로네시스(phronesis)는 단순히 일반적 행위규칙을 배우는 것으로 획득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행위, 숙고, 감정, 사회적 관계를 가지는 기술(techn?)을 통해 개별적 상황에 적합한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잘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윤리학에 관련된 두 작품; 『니코마코스 윤리학』, 『에우데모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개의 윤리적 작품을 썼는데 하나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이고 다른 하나가 『에우데모스 윤리학』이다. 이 두 작품은 ta ?thika라고 불리는데, 동일한 윤리적 기반에 서면서 두 작품은 거의 대등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작품은 동일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행복으로부터 그 논의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aret?(탁월성/덕)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간이 잘 살기 위해서는 좋음 성품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이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성품, 쾌락과 친애의 본질을 논의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에우데모스 윤리학』 8권 끝머리에서는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짤막한 논의로 마무리되고 있다. 신에 대한 ‘관조의 삶’이 최고의 좋음이라는 것이다. 외견상으로 이 두 작품은 동일한 논의구조를 가지지만, 그 내용과 구성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흔히는 『에우데모스 윤리학』이 『니코마코스 윤리학』보다 앞서 써진 저작이고, 나중에 보다 세련되게 후자의 작품으로 개선되어 완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얘기한 바대로 『에우데모스 윤리학』 1권은 행복, 최고의 궁극적 목적, 인간행위의 목적을 논의한다. 실천학문의 탐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것을 성취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음에 대한 지식이 그 성취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삶이 구별되고 있다. 사유하는 철학적 삶, 정치적 삶, 육체적 향락을 바라는 삶이 그것이다. 또 그는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를 거부하고, 어떤 경우든 좋음 자체는 실천적 삶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제2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좋은 영혼의 활동”(1219a35)으로 정의한다. 이어서 잘사는 것, 잘 행위하는 것, 행복하다는 것은 다 같다고 말한다. 대체로 제2권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의 논의를 담고 있다. 그밖에도 『니코마코스 윤리학』 2권, 3권 1-4장의 내용에 대응하는 논의로 전개되고 있다. 이 장에서는 모자라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는 중용, 여러 아레테들, 자유의지 문제를 자발성, 비자발성과 바람의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다.

3권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3권 6장 이하 4권에서 논의하는 개별적 탁월성을 열거하고 논의하는 대목과 들어맞는다. 이어지는 4. 5. 6권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5, 6, 7권과 동일하므로 사본에서는 빠뜨리고 있다. 이 권들은 각각 정의, 실천적 지혜, 자제력과 자제력 없음 등을 다루고 있다. 6권(『니코마코스 윤리학』7권) 후반부에서 다룬 쾌락의 문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에서 더 자세하게 논의된다. 『에우데모스』 7권의 주제는 친애(philia)다. 이 개념은 수평-수직적 관계, 동등한 관계를 비롯하여 사회적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이 주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8권 9권에서 보다 상세하게 논의되고 있다. 어쨌거나 살펴본 바와 같이 논의되는 주제의 배열은 다르나 주제에 대한 견해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런 점을 미루어보면 한 작품이 다른 작품을 재개정한 것으로 여겨지며, 대체로 『에우데모스 윤리학』이 『니코마코스 윤리학』 보다 앞서 쓰인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니코마코스 윤리학』는 『에우데모스 윤리학』의 편집자인 사촌 에우데모스가 침묵하고 있는 여러 사항을 부가적으로 첨가해서 편집된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큰 차이점으로 지적되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윤리이론과 정치학간의 긴밀한 연관성을 논의한다는 점은 주목해서 바라다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도 죽을 때까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의 솔론의 언명(‘끝을 보라’)을 고찰하고 있는 것도 다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정치적 삶보다 철학적 삶의 우월성을 논의하는 일련의 논의를 담고 있다는 점도 차이를 가진다.

최고의 좋음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묻는다. 최고의 좋음은 무엇인가? 이 물음이 윤리학의 출발점이다. 인간의 삶에서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물음을 다음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즉 만일 무한 소급에 빠지지 않아야만 한다면 이러한 최고의 좋음과 이러한 목적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데모스 윤리학』 첫머리에서 델로스 섬 성소에 있는 레토의 사원의 입구에 쓰여 있는 비문을 인용하고 있다. 처음으로 그 비문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은 좋음(to agathon), 아름다움(to kalon), 즐거움(to hedu)을 구별한다. “가장 정의로운 것은 가장 아름다움 것이다. 건강함은 가장 좋은 것이다. 자신의 마음의 욕망을 이루는 것이 가장 즐거운 것이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좋은 것인 행복은 가장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EE.1214a 5-7)

『니코마코스 윤리학』(1094a18-23) 첫머리에서도 비슷한 어조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1 그렇다면, 만일 행위될 수 있는 것이 그 자체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은 이것[목적] 때문에 우리가 바란다고 하면, [20]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것을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 왜냐하면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 과정은] 적어도 무한히 계속될 것이고, 그래서 욕구는 공허하고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이 목적이 좋음, 말하자면 최상의 좋음(ariston)일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서 우리가 바라는 ‘최상의 좋음’ 혹은 ‘최고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1) 만일 우리가 다른 것 때문에 모든 것을 선택한다고 하면, 욕구는 공허하고 쓸데없는 것일 것이다.
(2) 욕구는 공허하고 쓸데없는 것이 아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어떤 것 때문에 모든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자체를 위해서 어떤 것을 선택한다.
(5) 이것이 바로 최상의 좋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개하는 이 논변이 단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모든 것을 선택함이 없이, 그 자체를 위한 다른 것들의 선택 가능성을 배제하는 논변인 셈이다. 여기서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상의 목적이 있다는 점만을 주장한다. 1권 7장 들어 그는 다시 최상의 목적을 다루고, 특히 그 자체를 위해서 추구되는 ‘여러 목적’의 가능성을 다루고 있다. 그는 최상의 좋음이 ‘행복’(eudaimonia)이라 답한다. 이 답변은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이긴 하지만 일종의 쾌락주의적(hedonistic)이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쾌락이긴 보다는 일종의 ‘잘나감’(성공; success, flourishing)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치 식물이나 동물의 경우에 ‘한창때’(전성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완전한 탁월성에 따라 활동하며 외적인 좋음을 구비하고 있는 사람”(1101a15)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말한다. 그는 1권의 행복의 논의에서 행복이 외적인 좋음(ektos agathos)을 포함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런 의미라면 에우다이모니아는 번영, 성공이란 말에 더 적합한 번역어인 듯싶다.

행복은 순수하게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 행복은 목적들 중에서 유일무이한 상태를 가진다. 그것은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일 수 없다. 그것은 유일한 완전한( teleion) 목적이다. 어떤 목적들은 가령 부나 음악적 도구들은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선택된다. 행복은 완전한 목적이라면, 그 밖의 지성, 영예, 쾌락은 어떤가? 그것들도 부분적으로는 그 자체를 위한 목적으로 선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 부는 예외일 수 있다 – 어떤 다른 것을 위한 수단으로 선택될 수 있다. 이를테면 지성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행복에 대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누구도 행복을 어떤 다른 것을 위한 수단으로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늘 목적으로 그 자체적으로 선택된다. 행복은 그 자체로 인생을 가치 있는 삶으로 만든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최선의 좋음이라는 결론을 지지하기 위해 또 다른 고려를 가져온다. 완전한 좋음은 자기 충족적이라는 것(autarkeia)이다.

(1097b 15 이하) 어쨌거나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삶을 선택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무언가를 그리고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는 것을 자기충족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 [20] 그렇다면 행복은 명백히 완전하고 자기 충족적인 어떤 것이다. 그것은 행위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의 목적이니까.

여기서 충족을 말하는 경우에 그는 고립적 삶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친구, 가족을 포함하는 사회적 생활을 고려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적으로 폴리스적 동물(z?on politikon)이기 때문이다.

목적으로서의 좋음과 자족으로서의 좋음

행복은 행위가 목표로 하는 목적이다. 자족은 사람을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오직 목적으로도 그 자체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자족적인 좋음이다. 그것은 근대철학적인 언어표현으로는 ‘내재적(본래적)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과 함께 나란히 갈 수 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나는 무언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관계를 맺는다. 우리가 그것을 그 자체적으로 평가하는지 혹은 그렇지 않는지에 달려 있다. 다른 하나는 좋음의 본질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그 자체로 좋은가 혹은 그것이 어떤 다른 것의 좋음에 의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우리가 목적으로 평가하는(가치를 매기는) 것은 내재적 혹은 ‘자족적’ 가치를 결여하고 있다. 우리는 내재적인 ‘자족적’가치를 가진 것을 목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기능논증은 무엇을 말하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의 답은 기능(ergon) 논증을 통해서 발견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떻게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기능개념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았다. 그 논증은 인간에게 좋은 것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작업이다.

(1097b23 이하) 그런데 어쩌면, 만일 우리가 인간의 기능(ergon)을 파악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5] 왜냐하면 피리(아울로스) 부는 사람, 조각가 및 모든 기술자 그리고 일반적으로 어떤 기능과 행위를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되었든지 간에 그 좋음은, 즉 잘(to eu)은 그 기능 안에 달려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과 같이, 만일 사람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사람에게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물의 기능은 그것이 무엇인가에 결정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좋은 것으로 만드는 것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아울로스 부는 사람의 기능은 아울로스를 부는 것이다. 좋은 아울로스 부는 사람은 그것을 ‘잘’ 연주한다. 이와 같은 것이 인간을 위한 기능에도 있는가? 만일 있다면, 우리에게 좋은 것을 말하도록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생물과 비교해 보자. 인간은 여러 기능을 가지고 있다. 생물로서 인간은 영양섭취, 성장, 장소운동, 감각지각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기능들은 식물, 동물들도 나누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고유한(idion) 기능은 무엇인가? ‘이성적 부분의 실천적 삶’, ‘이성적 원리를 가지는 요소들의 능동적 삶’이다.

(1098a3 이하) [13] 이렇게 되고 보니, 남는 것은 이성(로고스)을 가지고 있는 영혼의 그 부분의 것의 어떤 종류의 행위적 삶이다. 이것의 한 부분은 이성에 따르는 한에서 이성적이고, 다른 한 부분은 [그 자체가] 이성을 가지며 생각하는 한에서 이성적이다. [5] 게다가, 이러한 [행위적 또는 이성적] 삶은 또한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해지는데, 우리는 현실 활동(에네르게이아)에 따르는 [인간에게 특별한 기능이 될 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보다 고유한 의미에서 삶이라고 말해지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유한 기능은 무엇인가? 만일 좋음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고유한 기능을 성취하는 것이라면 또 인간의 기능은 ‘이성적 원리에 따라는 영혼의 활동’이라면, 인간의 좋음은‘탁월성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 즉 aret?이다.(1097a15; 1098a8).

그런데, 만일 인간의 기능이 이성에 따르는 혹은 적어도 이성이 빠지지 않은 영혼의 활동(energeia)이라고 하면, 또 우리가 어떤 것의 기능이 그 종류의 것의 뛰어난 사람의 기능과 종류에서 같다고 말하면, – 마치 하프 타는 사람과 하프에 뛰어난 사람의 기능이 같은 것처럼 -, [10]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 기능에다 덕에 따르는 뛰어난 성취를 덧붙인다면, 이것은 모든 경우에 대해서 단적으로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 논증의 구조는 먼저 인간에게 좋음이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 목적으로부터의 논증과 자족으로부터의 논증은 인간의 좋음은 행복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능 논증은 인간의 좋음은 이성적 부분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이 세 논증들은 인간의 좋음을 설명하는 경쟁적 논증이 아니다. 오히려 이 논증들을 통해서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것이다. 다시 말해 행복은 이성적 부분에 따라는 영혼의 활동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이 행복은 우리의 기능을 잘 활용하는 데 놓여 있다. 이 설명에 따르면 행복이 곧 아레테인 셈이다.

한 마리 제비가 여름을 만들지는 않는다. 좋은 날 하루가 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니까(1098a17).

행복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행복한 하루나 짧은 시간이 지극히 복되고 행복한 만들지도 않는다. 그것은 지속적인 성품의 발현에서 오는 것이다. 탁월성 곧 덕은 습관을 통해 획득된다. 도덕적 탁월성은 우리가 그것을 활용하기 전에조차 가지고 있는 시각과 같은 자연적 능력과 대조된다. 도덕적 탁월성의 경우에 우리는 ‘행함으로써’그것을 배운다.

(1103a28 이하) §4 게다가 본성적으로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것에서 우리는 먼저 그것들의 능력을 얻고 나중에 그 활동을 드러낸다. 이것은 감각들의 경우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감각들을 자주 보거나 혹은 자주 들음으로써 획득하는 것이 아니고, [30] 오히려 [이런 감각을] 사용하기 이전에 그것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 그것들을 사용함으로써 그것들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러 기예의 경우에서도 이와 마찬가지 덕들은 우리가 먼저 활동시킴으로써 우리는 덕들을 얻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배웠을 때 만들어야만 하는 그것을 만듦으로써 우리는 기술들을 배우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건축해봄으로써 우리는 건축가가 되고, 또 기타라를 타봄으로써 기타라를 타는 악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1103b] 따라서,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옳은 행위들을 함으로써 옳게 되고, 절제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제 있게 되며, 용감한 행위를 함으로써 용감하게 된다.

아레테는 지식, 선택, 성품을 포함한다. 예술작업이나 음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생각을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덕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무엇을 행위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행위했는가 이다. 행위자는 행위를 선택하는 경우에 어떤 상태에 있어야만 한다. 먼저 그는 앎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행위를 선택해야 하되 그 행위자체 때문에 선택해야만 한다. 그 행위는 확고하고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덕에 따라 행해진 행위들은, 설령 그것들 자신들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올바르게 혹은 절제 있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30] 오히려 행위하는 사람이 그것들을 행할 때 어떤 [올바른] 상태에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먼저 그는 [자신이 덕 있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고, 다음으로 그는 행위들을 합리적으로 선택(prohairesis)하되 그 행위 자체 때문에 선택해야 하며, 그리고 셋째로 그는 또한 행위들을 확고하고 또 결코 흔들리지 상태에서 행해야만 한다.(1105a31-1105b1)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행위에 앞서 앎을 중시하는 소크라테스-플라톤적 주지주의적 생각과는 다르게 탁월성의 소유여부와 관련해서는‘안다는 것’은 아무런 중요성을 가지지 않거나 작은 중요성만을 가진다는 점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조건이 탁월성을 생겨나게 한다는 점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애써 강조한다. “이 두 조건들은 올바른 행위들과 절제 있는 행위들을 빈번하게 행하는 것에서 생겨나는 것들”이기 때문에 올바른 습관과 반복된 덕의 발현이 용기와 절제 같은 개별적 덕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이다.

중용과 행위의 기준은 무엇인가?

“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대하여, 마땅한 사람들에게 대하여, 마땅한 목적을 위해서 그리고 마땅한 방식으로 이런 것을 겪는 것은 중간적이며 또 최선의 것이고, 또 바로 이것이 덕에 고유한 것”인데, 이 덕에 맞는 행위가 중용의 행위이고, 이 중용의 행위는 탁월성을 소유한 사람이 행하는 행위다. “탁월성은 중간적인 것을 겨냥하는 한, 일종의 중용이다.” 그러니까 탁월한 사람이 탁월성의 기준을 제공하는 셈이다. 누군가는, 그렇다면 탁월성이란 무엇인가, 탁월성의 기준은 무엇인가라고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탁월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탁월성을 발휘하는 사람이 바로 탁월성의 척도라고 답한다면, 논리적으로 순환의 오류에 빠진 것이라고 공격할 것이다. 정의롭지 않고 절제가 없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우연히 그 탁월성을 모르면서 정의로운 행동이나 절제 있는 행동을 하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도 정의로운 사람, 절제 있는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는가?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중용은 두 악덕인 지나침에 따른 악덕과 모자람에 따른 악덕 사이의 중용이다. 그렇다면 누가 하는 행동을 중용의 모델로 삼을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 대답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다.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덕은 우리와의 관계에서의 중용에서 이루어지는 합리적으로 [행위와 겪음을] 선택하는 [품성의] 상태이다. 1107a [이 중용은] 이성에 의하여 규정되는데, 다시 말해서 실천적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규정하는 경우에 규정할 수 있는 이성에 의하여 규정된다.

그러니까 지혜 있는 사람,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가진 탁월함을 소유한 사람의 행한 행위가 한 특정한 행위의 중용을 결정하는 척도가 되는 셈이다. 부분적으로 이 정의는 1105a31, 1103b21에서 예견되었다. 가령, 1103b19 이하에서 그는 습성화는 품성에 중요한 요인임을 밝히고 있다.

욕구나 노여움에 관한 것들의 경우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처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렇게 행동하는가 또는 저렇게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어떤 이들은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또 온화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성마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동일한 상황 속에서 이렇게 행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행함으로써 그러저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므로, 한 마디로 말하여, 품성상태(hexis)들은 그 품성상태들과 비슷한 활동들[의 반복]에서 생긴다. §8 이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의 활동들에 어떤 성품을 부여해야만 한다. 이것들에서의 차이들이 품성상태에서의 [대응하는] 차이를 초래하는 것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곧장 이런 혹은 저런 습관을 획득하는 것은 결코 사소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25] 오히려 아주 큰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고, 아니 모든 차이가 거기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에 대한 언급은 1106b8-16에서 끄집어내질 수 있다. 그곳에서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중용을 발견하는 기술자에 대응한다.

§9 따라서 만일 모든 전문 지식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즉 중간적인 것을 바라보면서 또 이것에로 그 성과물을 이끔으로써 그 기능을 잘 해내는 것이라고 하면([10] 바로 이것 때문에, 실제로 우리는 흔히 잘 만들어진 작품을 두고 더 이상 뺄 것도 없고 더 보탤 것도 없다고 말하곤 한다. 이때 우리는 지나침과 모자람이 그 작품의 좋은 것을 손상시키지만, 중용(mesit?s)은 그것을 보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바로 이것 때문에] 좋은 기술자들은, 우리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 작품을 만듦에 있어서 중간적인 것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또 만일 탁월성이 [15] 또한 자연(physis)과 마찬가지로 어떤 기예보다도 더 정확하고 더 나은 것이라면, 덕은 중간적인 것을 목표로 삼는 것(stochastik?)일 게다.

김재홍(정암학당) /

손자병법과의 만남[고전은 숨쉰다]

인생이 복잡하고 힘들다고 느낄 때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복잡한 인생을 간단하게 네 글자로 정리하면 무엇일까. 결국 생노병사 혹은 희노애락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정리를 하면 비록 잠시일지라도 마음이 초연해지면서 편안한 것을 느낀다. 만약 이 네 글자를 두 글자로 더 줄인다면? 결국 생사일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생에서 시작해서 죽음으로 가는 도정에 있다. 우리는 무덤으로 가는 도정에서 수 없는 도전과 선택에 직면한다. 그리고 이들과 싸움을 벌여야 한다. 비록 싸움을 전문적으로 하는 군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렇다. 인생은 결국 싸움이다. 정도와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인생에서 자신이 직면한 문제와 싸움을 벌어야 한다.

일찍이 마오쩌둥은 “하늘과 싸우니 그 즐거움이 무궁하고 땅과 싸우니 그 즐거움이 무궁하며 인간과 싸우니 그 즐거움이 더더욱 무궁하다”라고 설파했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그렇지 않았다. 늘상 싸움을 회피만 했지 정면으로 부딪혀 싸움을 벌이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고 가끔 반성한다. 또한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었더라도 이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터인지 한번 손자병법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을 손에 집어 들고 읽지 못했다. 왠지 출세를 위한 얄팍한 실용서를 읽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 때문이다. 전략이니 전술이니 모략이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결국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손자병법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우선 ‘쯔끼다시’ 삼아 손자병법과 마주치게 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아주 좋아하는 중국의 학자 중에 진커무(金克木)이라는 분이 있는데, 1912년 생으로 십 년 전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책을 서가의 아주 좋은 자리에 모셔 놓고 가끔 꺼내 읽는다. 그분의 글은 남자한테 뿐만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참 좋은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참 난감하다. 크게 보면 20세기 동서양의 문화와 철학을 주제로 한 다양한 경험과 통찰을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에세이 형식으로 아주 짧게 쓴 것들이다.

그분의 책 중에 연탁춘니(燕啄春泥)라는 정말 작은 책이 있는데 제목이 참 운치가 있다. 제목처럼 제비가 봄 진흙을 쪼듯이, 혹은 제비가 쪼아 놓은 봄 진흙처럼 짧은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봄이 돌아와 그동안 마음에 하나하나 간직해두었을 이야기들이다. 이런 그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읽을 때마다 의외의 소득에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그리고 긴 여운이 남는다. 좋은 차라도 있다면 차를 마시면서 그의 짧은 글을 읽고 있으면 정말 행복하다는 기분이 절로 들었다.

그의 전공은 본래 인도문화인데 북경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이후에도 죽는 순간까지 다양한 글을 쓰다가 88세의 일기로 돌아가셨다. 70세 이후에 컴퓨터를 배웠다는데 돌아가신 후에 그가 글을 쓸 때 사용한 손녀의 컴퓨터 하드를 조사해보니 여러 권의 책의 구상이 나왔다고 한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 세기 30년대에 꽤 유명한 시인이었으며, 여러 대학에서 다섯 개국의 언어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한동안 뽕잎을 먹기만 하던 누에가 어느 순간 실을 토해내듯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하다가 만년에 정력적으로 글을 남긴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의 시나 전공 분야의 글은 내가 문외한인 고로 별로 읽지 못했지만 그분의 수필은 우연한 기회에 읽고 빠져들게 되었다. 한 때 이분의 ‘폐인’이 되어 그의 글이 자주 실리던 잡지에 새롭게 발표되면 만사 제치고 구해 읽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작정 그분의 일화를 떠들어 민폐도 많이 끼쳤다. 이 자리에서 한 가지만 소개해보겠다.

젊은 날 그는 지방에서 올라와 지인의 소개로 어렵사리 북경대학 도서관에서 사서 보조원으로 잠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는 도서관 카운터에 앉아서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서고에 가서 책을 찾아 주기도 하고 반납한 책을 받는 단순한 일을 하였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일만을 한 것이 아니라 빌려 준 책이나 반납한 책을 일일이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빈 시간이 나면 그 책을 반드시 찾아 읽었다. 서고 속의 수많은 책 중에서 왜 저 사람은 그 책을 읽었을까 하는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하루는 한 문학 전공의 여학생이 오래된 잡지를 빌리러 왔는데 서고에 간 다른 동료가 책 찾는 시간이 길어져 그 여학생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마침 당시에 썼던 졸업 논문 원고를 가지고 와서 카운터에 올려 놓고 있었는데 오래된 잡지는 지도교수의 지적을 받고 참고하기 위해 빌리러 온 것이다. 그가 그 원고에 관심을 가진 눈치를 보이자 최고 학부의 그 여학생은 자신이 있었던지 보라고 건네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잠시 펼쳐보니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모두 다 아는 내용도 일정한 형식을 갖추면 대학의 졸업 논문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이야기다.

그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대학도 나오지 않은 자신이 당시에 이미 대학 졸업생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말년에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면서 당시 책을 빌리기 위해서 건냈던 책 이름을 적은 쪽지로 자신에게 무언의 수업을 하고 간 수 많은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한편 호기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언급하면서 한 이야기다. 그는 젊은 시절 도서관에서 일한 1년 남짓한 짧은 기간이 일생 중 가장 공부를 많이 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한 노학자가 풀어놓는 그때 그 시절의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상태가 지나쳐 꿈 속에서 그분을 두 번 만난 일도 있고 급기야 진짜 한번 만나보겠다고 무모하게 중국에 찾아 간 일도 있었다. 결국 만나 뵙지는 못했다.

헌데 중국사상사로 유명한 런지위(任繼愈)라는 학자가 생전에 그를 두고 내린 짧은 인물평에 이런 말이 있었다. “병서에 싸움을 잘 하는 자에게는 가지 않는 길이 있으며 공격하지 않는 성이 있다는 말이 있다. 김공(金公)의 학문을 보면 병서를 잘 읽은 분이다.”

이 말은 원래 손자병법의 「구변」편에 나오는 말이다. 그의 글이나 학문의 어떤 부분이 가지 않은 길이고 공격하지 않은 성이었는지 지금도 잘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인물에 대한 병법을 동원한 이 묘한 인물평이 계기가 되어 손자병법에 대한 흥미가 엉뚱하게 솟았다.

그러고 보니 연암 박지원이 글쓰기와 병법을 연관시켜 서술한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이라는 글이 있다.

“글을 잘 하는 자는 아마도 병법을 잘 알 것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이란 적국이요, 고사(故事)의 인용이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요, 글자를 묶어 구절을 만들고, 구절을 엮어 문장을 이루는 것은 부대가 대오를 이뤄 행군하는 것과 같다. 운(韻)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으며, 조응이라는 것은 봉화를 올리는 것이요, 비유란 기습 공격하는 기병(騎兵)이요, 억양반복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題)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요,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고, 여운을 남기는 것이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연암의 말에 비추어볼 때 그분은 확실히 병법에 능한 분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별다른 인 연이 없던 내가 어떻게 그의 글에 사로잡혔겠는가. 그가 글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 병법에 능한 분이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앞서 그분을 만나러 중국에 갔다가 못 만났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전화통화는 나누었다. 미리 준비한 예의바른 말로 뵙기를 청했지만 그분의 완곡한 거절로 결국 만나지 못했다. 팔십 노인의 정중한 거절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나는 결국 성을 공략하지 못했고 그분은 자신의 성을 잘 방어하셨다.

그는 한 책의 서문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일찍이 명예롭게 강호를 떠나겠다고 ‘금분세수(金盆洗手)’했는데 왜 책을 다시 내서 서문을 쓰고 있느냐 하면 관세음보살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늙은 자신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고 아무리 거절을 해도 한 출판사의 여성 편집자의 거듭된 요청에 결국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 신세가 되어 결국 책을 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은 수 십년 동안 곧 죽을 것이라고 온갖 핑계를 대고 곧잘 거절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여성 편집자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아서 결국 책을 출판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비해 나는 단 한 수에 무너져 결국 그분 살아생전에 만나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준비가 부족했다.

타국에서 불원천리 찾아온 독자를 거절한 그분의 냉정함이 섭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현명한 처신을 한 것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은 무모한 외국 독자를 만나 무슨 곡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겠는가. 자신을 좋아하는 외국 독자를 만나 기분이 좋아 인증샷의 요구에 응하고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다음에 헤어지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이분과의 만남이 불발했다고 해서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손자병법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리고 거절을 잘 해야 된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손자병법을 읽는다고 병법에 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손자병법을 읽고 나서도 후배의 요구에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고 맛도 없는 이 ‘쯔끼다시’ 같은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나중에 정말 맛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아예 ‘회’를 내놓지 않을 작정이다. 왜냐하면 ‘쯔끼다시’가 맛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그래도 견딜 만하지만 ‘회’마저 맛이 없다고 한다면 그 절망에서 어떻게 헤어 나올 수 있겠는가. 그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황희경(영산대 교수) /

강태공은 왜 미끼없이 낚시를 했을까[고전은 숨쉰다]

산이란 산, 새 한 마리 날지 않고(千山鳥飛絶)

길이란 길, 사람 자취마저 끊겼는데(萬徑人?滅)
외로운 배,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孤舟蓑笠翁)
홀로 낚시질, 차디찬 강에 눈만 내리고(獨釣寒江雪)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강설’(江雪)이다. 이 시의 정경은 수많은 화가들이 묘사했던 화제(畵題)이다. 남송 시대 마원(馬遠, 1160~1225)의 ‘한강독조도’(寒江獨釣圖)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최북(崔北, 1712~1786))의 ‘한강독조도’도 있다.

고전을 두루두루 꿰뚫으신 어른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기대를 한껏 했지만 어르신은 그저 간단히 코멘트만 하시고 수업을 진행하셨다. 어느 날 수업 중 당시의 백미라던 ‘강설’이 나왔을 때도 난 짐짓 딴청을 피우며 듣고 있었는데 어르신께서 이 시를 볼 때마다 복괘(復卦)가 떠오른다고 단 한마디 하셨다. 순간 엉? 하고서 왜? 했다가 아! 했다.

난 자신의 섹스 경력을 자랑인양 떠벌리는 사람이 느끼는 섹스의 쾌락을 신뢰하지 않는다. 포르노를, 그렇다, 오해하지는 말자, 아주 가끔 본다. 가만히 생각해 본 일이 있다. 어떨 때 난 흥분했고 어떨 때 짜증을 냈던가.

자연스러움이 답이었다. 리얼한 자연스러움, 위선적이지도 위악적이지도 않으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자연스러움. 그 자연스러움을 상대에게 요구하거나 강제하지도 않으면서도 서로 몰입되는 도취의 순간. 나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서(시선을 의식하면서 쾌락의 쇼를 부리는 모습은 얼마나 짜증이 나는가.) 오직 몰려오는 흥분에 도취한 몸의 모든 미세한 떨림을 느낄 때, 나는 그 리얼한 몰입에 함께 도취되는 합일을 잠깐, 그래 오해하지는 말자, 잠깐 느끼고, 아! 했다.

‘강설’의 시에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늙은이의 시선과 나의 시선. 그러나 늙은이는 나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서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산과 사람 자취마저 끊긴 길을 배경으로 한겨울의 한없이 내리는 눈 속 외로운 배 위에서 생명력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낚는 즐거움에 몰입해 있다. 입질과 손맛을 즐기는 늙은이의 눈빛이 번득인다.

보이지는 않지만 물속에 있는 물고기란 『장자』의 ‘호수가 다리 위의 물고기’(濠梁之樂)나 『중용』의 ‘물고기는 연못에서 즐겁다’(魚躍于淵)는 『시경』 구절이 상징하듯이 ‘즐거움’을 상징한다. 리얼한 자연스러움이다. 시를 읽고 늙은이의 자연스런 몰입을 몰래 훔쳐보며 나도 모르게, 다시 말하건대 오해하지는 말자, 그 즐거움에 합일되는 순간, 아! 했다.

즐거움과 낚시질

‘강설’을 복괘와 함께 읽을 때 주목해야 할 것은 ‘즐거움’과 ‘낚시질’이다. 복괘는 자연스러움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복괘는 『주역』의 괘 가운데 여러 학자들이 칭송하고 놀라워했던 괘이다. 왜일까. 복괘는 동지(冬至)에 해당한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양(陽)의 기운이 비로소 차가운 땅에서 올라오려는 순간으로 생명이 막 소생하려는 때이다. 생명력의 회복이 복괘다. 복괘의 괘사는 이렇다.

“회복은 형통하니, 나아가고 들어옴에 막힘이 없다. 친구가 와야 허물이 없다.(復, 亨, 出入無疾, 朋來, 無咎.)”

간단하다. ‘출입무질’(出入無疾)과 ‘붕래무구’(朋來無咎). 먼저 ‘출입무질’이란 무슨 말인가. 생명의 힘이 정치권 안으로 들어왔으니 ‘입’이고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니 ‘출’이다. ‘무질’이란 억지로 강제하지 않고 막힘이 없이 자연스럽다는 의미다. ‘붕래무구’란 동지(同志)들이 즐거움을 함께 하려고 모여들어 연대해야 완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천지’(天地)의 마음을 본다고 한다.

이 말을 동시에 이해하기 위해 ‘안연’(顔淵)과 ‘강태공’(姜太公)을 함께 겹쳐 보아야 한다. 정이천은 복괘를 안연과 비교한다. 안연은 ‘안빈낙도’(安貧樂道)로 유명하다. 그는 도를 즐거워했다. 진정으로 도를 즐겼던 인물로 삶의 모든 순간을 도의 즐거움으로 채우기를 원했던 사람이다.

들뢰즈의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이런 말을 보았다. “철학자에게서 검소함은 도덕적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철학 그 자체의 ‘결과’이다.” 이 말을 패러디 해보자. “철학자에게서 즐거움은 도덕적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철학함 그 자체의 결과이다.”

‘안빈낙도’란 가난을 칭송하는 말이 아니다. 진정한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다. ‘안빈낙도’를 외치며 자신의 가난함을 정당화하는 것은 위선이다. ‘낙도’하기 위하여 가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은 ‘낙도’의 결과일 뿐이지 가난하다고 ‘낙도’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낙도’하기 위해 가난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도’를 즐겼다고 스스로 의식하면 그것은 도를 즐긴 것이 아니다. 시선이 개입되지 않는 완전한 몰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낙도’하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지 않는 몰입이어야 한다. 제자가 정이천에게 안연의 즐거움을 물었을 때 정이천은 “안연으로 하여금 도를 즐기게 한 것은 안연이 아니다.”(使顔子而樂道, 不爲顔子矣)라고 대답했다.

곱씹어 볼 말이다. 안연은 도를 즐겨야 한다고 의지를 발휘하지도 않았고 도를 즐기고 있다고 스스로 의식하지 않고서 단지 수동적으로 몰입 당했을 뿐이다. 포르노에 나온 사람의 리얼한 자연스러움과 동일하다.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연은 단지 스스로의 즐거움에만 몰입하는 쾌락주의자였을까. 복괘에서 “친구가 와야 허물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친구들이 오지 않는다면 그 즐거움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즐거움과 더불어 ‘낚시질’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일상 언어에서 낚시질이란 말은 흔히 사용된다. 나도 인터넷에서 얄궂은 말에 낚시질을 많이 당했다. 허탈하게 낚인 것이다. 또한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유혹할 때도 낚시질한다고 표현한다. 이 낚시질이란 말에는 분명 족보가 있다.

중국 문화에서 낚시질은 상당히 중요한 상징이다. 낚시질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강태공’이다. ‘강태공’은 바로 주(周)나라 초기의 정치가로서 무왕(武王)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던 태공망으로 잘 알려진 여상(呂尙)이다. 하루는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는데 인재를 찾던 주나라 문왕이 그를 보고 재상으로 등용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는 무엇을 낚고 있었을까? 군주의 마음을 낚시질했던 것이다.

『귀곡자』에는 재미난 표현이 있다. 『귀곡자』는 유세술(遊說術)과 모략에 관한 책인데 군주에게 유세를 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귀곡자는 상징과 비유를 통해 상대방의 속내와 의도를 떠보는 방식을 ‘사람을 낚는 것’(釣人之網也.)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도 상대방의 마음을 떠보는 행위를 낚시질로 말하지 않는가.

유세란 그리스 시대의 수사학과 비슷하다.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다. 귀곡자는 “유세는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지만 상대를 기쁘게 해야 한다”(說者, 說之也)고 말한다. ‘유세’(說)는 ‘설(說)명’하고 ‘설(說)득’하여 상대를 기쁘게 ‘열(悅)광’하게 해야 한다. 설(說)이라는 한자는 유세, 설명, 설득, 기쁨의 뜻이 들어있다. 주목해 보자. 공통적으로 들어간 한자가 있다. 바로 태(兌)라는 글자이다.

유혹하지 않는 유혹

『주역』에 바로 ‘태괘(兌卦)’가 있다. 태괘는 연못을 상징하는데 물이 만물을 윤택하게 해서 기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주역』 ?설괘전?에서는 이 태괘가 입(口)를 상징한다고 되어있는데 입이란 말재주를 상징한다. 물이 만물을 윤택하게 하듯이 말로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는 뜻일 것이다. 유세를 통해서 상대를 감동시켜 설득한다는 말이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낚을 때 ‘뻐꾸기’, 즉 ‘말빨’이 전부는 아니지만,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말로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다가 아첨과 기만에 빠지기 쉽다. 말이란 진정성이 없다면 허울일 뿐이다. 진정한 뜻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태괘의 ?단전(彖傳)?에서 “속으로는 강직한 뜻을 가지고서 겉으로는 부드럽게 상대를 기쁘게 한다”(剛中而柔外)고 말한다. 정이천은 “마음을 감동시켜서 기쁘게 설복하게 만든다.”고 설명하는데 왕필의 주석이 재미있다.

“상대를 기쁘게만 하고 자신의 강직한 뜻을 어긴다면 아첨이고, 강직한 뜻만 지키려다가 상대를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폭력이다.”(說而違剛則諂, 剛而違說則暴)”

상대 기분만 맞춰 아첨하다가는 자신의 뜻을 잃게 되고 자기의 뜻만을 상대에게 강제하는 폭력은 상대를 저항하게 만들어 설득시키기 어렵게 한다. 아첨하지도 않고 폭력적이지도 않게 상대를 설득하는 유세의 방식은 무엇일까.

강태공은 미끼를 쓰지 않고 곧은 바늘로 낚시를 했다고 한다. 세월을 낚기 위해서였을까? 곧은 낚시 바늘이란 미끼를 낄 수가 없다. 미끼란 무엇일까. 낚아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상대를 유혹하려는 속임의 수단이다. 미끼를 던진다는 것은 물고기를 속여서 미끼를 물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일상 언어에서도 미끼를 던진다는 말을 사기 치기 위한 술수를 말한다. 맹자는 미끼 던지는 낚시질을 증오했다.

“선비가 말할 만한 때가 아닌데 말을 하면 이는 말로써 미끼를 던져 낚는 사기술이고 말할 만한 때인데 말하지 않으면 이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미끼를 던져 낚는 사기술이다. 이는 담을 뚫고 넘는 좀도둑질이다.”(士未可以言而言, 是以言?之也, 可以言而不言, 是以不言?之也, 是皆穿踰之類也.)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맹자는 말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말할 만한 때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말할 만한 때 말을 해야만 한다. 낚시질하되 미끼를 던져 사기 치지 말라는 것이다. 강태공도 낚시질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미끼를 쓰지 않고 곧은 바늘로 낚시하며 사람을 낚으려고 했을 뿐이다. 강태공은 『육도(六韜)』라는 병법서를 쓴 유세가였고 전략가였다.

다시 ‘강설’의 장면을 복괘와 함께 생각해보자. 한겨울 새조차 없는 산속 강가 차디찬 얼음 위에서 늙은이는 생명력이 넘쳐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낚으려 한다. 안연처럼 그 즐거움에 몰입되어 있으면서도 강태공처럼 미끼를 던져 사기 치지 않고 미끼 없이 군주의 마음을 설득시켜 변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세월을 낚는다는 말은 곧 때를 기다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안연과 같은 ‘낙도(樂道)’가 강태공의 낚시질처럼 타인에게 영향을 미쳐 낚이게 한다.

몰입의 즐거움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쳐 변화를 가져온다. 다시 한번 들뢰즈의 말을 패러디해보자. “철학자에게서 타인의 변화는 도덕적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철학함 그 자체의 결과이다.” 혹은, “철학자에게서 사회의 변혁은 도덕적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철학함 그 자체의 결과이다.”

상대를 설득하여 변화시키려면 자신이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진짜 즐거워서 즐겁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않은 상태로 몰입해야 한다. 유세란 자신의 즐거움이 발휘하는 감동의 효과이다. 즐거워야 한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 그러나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 라고 말하며 어금니 꽉 깨무는 순간, 지고 만 것이다. 말했다는 것은 이미 부러워함을 스스로 인지했다는 증거이므로.

즐거운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공자는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그런데도 사계절은 운행되고 만물은 생겨난다.”고 하면서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정말 침묵을 지키겠다는 뜻이었을까. 왜 말을 하지 않으려 했을까. 하늘은 말이 없이도 영향력을 미치고 만물을 복종시킨다. 말없음의 말의 효과이다.

성인(聖人)은 말이 없다. 타인에게 말하려고 한다는 것은 인정과 복종을 구하는 것이다. 성인은 자신의 즐거움을 타인에게 자랑하지 않으며 강제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말없음의 즐거움이 상대를 감동시켜 변화를 일으킨다.

결국 성인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쾌락에 도취된 사람, 이 우주 한 가운데 오직 자신만이 홀로 서서 쾌락에 흠뻑 취하는 사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욕망을 충족하는 ‘변태’(變態)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쾌락에의 도취는 주변 사람들을 유혹하고 전염시켜 열광을 불러일으킬 때 완성된다. “친구들이 모여들어야 한다.”

타인에게 말하지도 않고 즐거움을 전염시켜야만 하는 모순, 유혹하려 하지 않고 유혹해야 하는 모순을 실천해야만 하는 사람, 이것이 성인의 위대한 기상이다. 그러나 유혹하지 않는 ‘척’하면서 유혹한다면? 사기꾼일까? 오해하지는 말자, 그러나, 문제는? 전략 없음의 정치 전략이다. 전략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전략적 효과를 내는 이중 전략이다.

심의용(서울예대 강사) /

항우는 왜 강을 건너지 않았을까[고전은 숨쉰다]

?조의제문(弔義帝文)?은 조선시대 김종직(金宗直)이 세조찬위를 풍자하여 쓴 글이다. ?의제(義帝)를 조상하는 글?이란 뜻으로 서초패왕 항우(項羽)를 세조에, 의제(義帝)를 노산군(魯山君)에 비유해 세조찬위를 비난한 내용이다. 이 글 때문에 김일손 등 많은 사림들이 죽고 김종직은 부관참시되는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났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의 역린(逆鱗)을 잘못 건드리면 지식인은 화를 당하거나 알량한 생계를 잃게 되고 민간인은 불법사찰을 받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싶다.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칭했던 항우가 해하(垓下)에서 한나라 군사의 포위망에 갇힌다. 이때 한나라 병사들은 초나라 병사들을 항복시키려고 그들 진영을 향해 초나라 민요를 연주한다. 이것이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이에 항우는 홀로 적진으로 뛰어들어 포위망을 뚫고 말을 달려간다.

항우가 오강(烏江)에 이르렀을 때 오강의 정장(亭長)은 강동이 비록 작은 땅이지만 오강을 건너가 그곳 왕이 되어 후일을 기약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항우는 하늘이 망하게 하는데 강을 건너가면 무엇 하며 수많은 젊은이를 죽게 했는데 그들의 부모형제를 볼 면목이 있겠느냐며 웃으며 거절한다.

항우는 정장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사랑하는 말 추(?)를 주고 혼자서 한나라 군사 수백 명과 싸우지만 역부족이다. 그는 자신의 시체를 천금만호로 사려는 유방에게 팔라며 시혜를 베풀 듯 스스로 목을 찔러 죽는다.

영웅인가 고집불통인가

진리는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이란 더욱 그러해서 그 주위만 뱅뱅 맴돌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 근거한 진실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항우의 최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오강을 건너가 살 수 있었음에도 건너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 것에 대한 평가는 서로 엇갈린다. 영웅으로 칭송하는 이도 있고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다. 송나라 여류시인 이청조(李淸照)는 이런 시를 썼다.

살아서도 사람 중에 호걸이더니(生前做人杰)
죽어서도 귀신 중에 영웅이구나(死亦爲鬼雄)
지금까지 항우를 그리워함은(至今思項羽)
강동을 건너가길 마다했기 때문이라네.(不肯過江東)

항우는 명문가 출신으로 자부심과 더불어 권력에 대한 욕망에 넘쳤던 사람이었다. 진시황의 순행 행렬을 보고 “저것을 빼앗아 대신할 만하다.”라고 외칠 정도였다. 그게 지나쳐 자만으로 흘러 휘하의 인재들을 의심하여 잔혹하고 비정한 짓들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유방(劉邦)은 너그럽고 인재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모택동은 “항우는 정치가가 아니다. 유방이 고단수의 정치가이다.”고 평했으며, 항우가 사면초가를 당하여 지은 ‘해하가(垓下歌)’ 위에 이렇게 적어놓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내는 다른 의견을 듣지 않는다.” 고집불통이란 말이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이런 고집불통을 못내 안타까워한다.

?제오강정(題烏江亭)?의 마지막 구절이다.

승패는 병가로서도 기약할 수 없으니(勝敗兵家事不期)
수치를 감싸고 견디는 것이 사내인 것을(包羞忍恥是男兒)
강동의 자제 중에는 준재가 많으니(江東子弟多才俊)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왔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捲土重來未可知)

두목은 개인적인 수치를 감내하고서 권토중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시했기 때문에 진정한 남아(男兒)이지 못했던 항우를 탓하고 있다. 무엇이 이청조와 두목, 두 사람의 시선을 갈라놓았을까. 왜 항우는 오강을 건너지 않았을까.

항우가 죽기 전에 우희 앞에서 노래했던 ‘해하가’를 보자.

힘은 산을 뽑고도 남음이 있었고 기백은 천하를 덮었노라!(力拔山兮氣蓋世)
때가 불리한데 오추마마저 달리지 않는구나!(時不利兮?不逝)
오추마야 너마저 달리지 않으니 어찌할 수 있겠는가!(?不逝兮可奈何)
우희야, 우희야, 너를 어찌한단 말이냐!(虞兮虞兮奈若何)

항우는 ‘어찌할 수 있겠는가(可奈何)’라고 말한다.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장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마음을 섬기는 자는 눈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감정의 요동이 없이 그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서 운명처럼 편안하게 생각한다. 이것이 최고의 덕이다.”(自事其心者, 哀樂不易施乎前, 知其不可奈何而安之若命, 德之至也.)

장자가 말하는 ‘어찌할 수 없음’(其不可奈何)은 항우의 표현과 동일하며 이 말은 ‘부득이(不得已)’함을 말한다. 이 어찌할 수 없음을 명증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장자는 최고의 덕이라 평한다. 항우가 오강을 건너지 않은 이유를 먼저 이 말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득이함의 결단

『주역』을 철학적으로 해석한 정이천은 이 문헌을 ‘결의(決疑)’라는 말로 규정한다. ‘의심을 결단한다.’는 뜻이다. “고대인들이 점을 친 것은 의심을 결단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지금 점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자기 운명이 잘 될 것인지 못 될 것인지를 헤아리고 자신이 잘 살 것인지 못 살 것인지를 살피려고만 드니, 어찌 미혹된 것이 아니겠는가.” 현대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이청조는 왜 항우를 영웅시했을까. 『주역』에는 ‘결단’에 대한 괘가 있다. 쾌(?)괘이다. 쾌괘는 둑이 무너져 물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으로 이미지화된다. 쾌괘 바로 앞의 괘가 익괘(益卦)인데, 가득 찬다는 뜻이다. 물이 둑에 가득 차면 어찌되는가. 둑이 무너져 내린다. 가득 참이 극에 이르면 둑이 무너져 내리듯 결단을 내린 후에 ‘그친다.’ 여기서 쾌(?)와 결(決)과 쾌(快)의 문자적 유사성에 주목하자. 쾌(?)괘란 결(決)단으로 멈추니 마음이 쾌(快)적하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결단을 내린 후에 그친다고 했는데 이 ‘멈춤’에 관한 괘가 간괘(艮卦)다. 간괘란 멈춰야만 할 때 멈추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형기의 ‘낙화’라는 시의 첫구절은 이렇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야할 때를 알고 등을 돌리는 모습, 이것이 간괘가 상징하는 가장 적절한 모습이다. 이청조가 항우를 영웅으로 평가하는 이유를 이 괘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멈춤’을 상징하는 간괘에 달린 괘사(卦辭)는 이렇다.

“그 등에 멈추어 그 몸을 보지 않는다. 정원에 가더라도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허물이 없다.(艮其背, 不獲其身, 行其庭, 不見其人, 无咎)”

정이천은 ‘등을 지고 몸을 보지 않는 것’을 자기에게 ‘합당한 몫’[分, moira]에 편안한 마음으로 멈추는 것으로 해석한다. ‘순리이합의’(順理而合義)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자연적 필연성에 따라서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욕망과 무관하게 자신에게 합당한 몫으로서의 올바름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후회도 분노도 원망도 아쉬움도 없다. 주어진 몫이 해로운 것이든 이로운 것이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복종한다.

그래서 마음이 ‘안중견실(安重堅實)’하다고 정이천은 해석한다. 마음이 ‘편안(安)’하고 ‘진중(重)’하며 ‘견(堅)고’하고 ‘진실(實)’하다는 말이다. 쾌괘에서 말했던 결(決)단하여 마음이 쾌(快)적하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항우는 마지막 순간에 왜 자살이라는 결단을 했을까. 항우는 마지막 순간 서초패왕이라고 착각했던 어리석음과 오만을 깨닫고서 권력을 향한 자신의 욕망이 자초한 모든 결과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스스로 자초한 결과에 대한 명증한 이해를 통해 그것이 자신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 어찌할 수 없음을 자신에게 ‘합당한 몫’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항우는 자살하는 순간에 이 ‘어찌할 수 없음’에 직면했고 부득이한 필연성을 결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단은 이것보다는 차라리 저것을, 나쁜 이것보다는 더 좋은 저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부득이한 필연성에 ‘복종’하는 것이다. 항우는 오강을 건널 수 있었는데도 건너지 않았던 것은 강동으로 갔을 때의 이해(利害) 관계를 따져보고 나서 보다 더 좋은 것을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오직 그것만을 할 수밖에 없는 그 필연성을 따랐을 뿐이다. 이청조가 그리워했던 영웅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항우의 광기

그러나 항우는 그 순간 마음이 편안하고 쾌적했을까. 두목은 왜 항우를 안타깝게 생각했는가. 『주역』에는 또한 대장(大壯)괘가 있다. 굳센 양(陽)의 힘이 강성하게 성장하고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항우의 삶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이 괘의 마지막 상육(上六)은 무모한 돌진을 경계하고 있다. 마지막 효(爻)는 이렇게 묘사한다.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물러날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다. 좋을 것이 없다. 어려움을 알고 신중하면 길하다.(?羊觸藩, 不能退, 不能遂, 无攸利, 艱則吉.)”

진퇴양난이다. 항우가 왕성한 힘을 펼치며 파죽지세로 나가다가 사면초가를 당한 형세와 유사한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대장괘의 ?상전(象傳)?에서는 이런 형국에 이르게 된 원인을 ‘주도면밀하고 신중한 헤아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진퇴양난에 몰렸을 경우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물러서야 한다. 그래서 ‘어려움을 알고 신중하면 길하다’ 했던 것이다.

항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오강을 건너 스스로 자초한 추악한 결과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루고 다시 후일을 신중하게 도모했어야 했던 것이다. 두목의 생각과 유사하다.

그러나 왜 신중하게 헤아리지 못했을까. 정이천은 이렇게 해석한다. “자질이 나약해서 자신을 이기고 의로움을 취할 수가 없기 때문에 물러서지도 못하고, 용감하게 나가려는 욕망에만 차 있지만 나약하기 때문에 결국 좌절하고 위축되어 나가지도 못한다.” 정이천의 해석에 의하면 나약했기 때문이다. ‘수치를 감싸고 견디’며 물러날 수 있는 신중한 용기는 ‘역발산기개세’를 과시하며 수 백 명의 군사와 싸우려는 무모한 광기와는 다르다. 두목은 이런 광기에서 그의 나약함을 보았던 것이다.

스스로 서초패왕이라고 생각했던 항우의 오만은 뜻하지 않았던 어려움에 직면해서 좌절했고 서초패왕이라는 믿음에 의심의 균열이 일어났다. 그렇게 자신의 나약함에 무의식적으로 직면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약한 주체는 자신이 나약하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려는 과장된 행위를 하게 된다. 자신의 시체를 시혜를 베풀 듯이 유방에게 팔라고 소리치며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던 것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려는 과장된 행위가 아닌가.

스스로를 처벌하듯이 자살하는 것이 항우의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나약함에 직면하여 그것을 부정하려는 광기가 항우의 진실이었을까. 나는 이 두 가지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처벌할 수밖에 없어서 그 부득이함에 따르고야 마는 행위는 자신에 대한 매저키스트적 복종으로서 자기를 학대하는 사디스트적 폭력이며,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던 나약한 주체가 자신을 버린 하늘에 대해 분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용맹을 세상에 과시하는 사디스트적 광기는 자신의 시체를 시혜 베풀어주듯이 포기하는 메저키스트적 절망이다.

자기 학대와 자기 포기가 곧 자포자기(自暴自棄)다. 결국 사도매저키즘적인 잔혹극이 바로 항우의 마지막이 아닐까.

심의용(서울예대 강사) /

영웅들 간의 경쟁, 어떻게 볼 것인가?[고전은 숨쉰다]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대한 두 번째 소개글입니다. 수많은 서양 고전학자들의 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았지만, 그들의 논쟁을 배경으로 접근했습니다.(필자)

우리 시대의 화두, ‘경쟁’

‘경쟁’은 한국 사회의 화두이다. 입시 경쟁, 취업 경쟁, 하다못해 유치원 입학 경쟁까지. 아니 한국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분유를 먹느냐를 가지고 경쟁해야 하며 죽고 나서는 어떤 식의 장례를 치루고 어느 곳에 묻히느냐까지도 경쟁해야 한다. (죽고 나서도 경쟁해야 한다니 이처럼 어이없는 일이 또 있겠는가!) 그리고 이 같은 경쟁문화 속에서 한국인들이 극심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이다. 며칠 전 이런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씁쓸한 기사가 떴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7월 9일자 아시아판에서 ‘한국인들은 경쟁심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 같은 경쟁심이 한국의 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같은 경쟁심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이다. 이 기사는 故 박용하 씨의 자살을 다루고 있는데, 기사 제목은 ‘한국의 자살: 출구 전략’이었다. 이 제목은 삶의 출구 전략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인의 자살율은 OECD 국가 중 최고이다.)

한국 ‘사회’의 자살율이 높다는 것에 대해 흔히 이루어지는 분석은 이렇다. ‘한국은 극심한 생존 경쟁 사회이다.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로 몰아가게 하고 있다.’ 뭔가 꽤나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는, 가장 안 좋은 형태의 사회학적 설명이다.(실질적으로는 자유로운 개인의 동기가 배제된 ‘추상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요즘 자살하는 한국인들이 생존 경쟁에 졌기 때문에 자살한 것일까? 이런 설명이 타당하려면 자살자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가 ‘오로지’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이 물음을 예비적인 실마리로 삼아 『일리아스』와 관련된 논란을 다루어보도록 하자.

제로-섬 게임인가?

알다시피 생존 경쟁 사회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설명 논리 가운데 하나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다. 게임 참여자들의 이익과 손실은 정확히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누군가가 이익을 보면 다른 누군가는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꽤 이름 있는 서양 고전학자들이 호메로스 사회를 제로-섬 모델로 설명하려 한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애드킨스(Adkins)이다.

애드킨스의 접근은 좀 더 거시적인 시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호메로스 사회에서는 경쟁적(competitive) 가치가 연합적(co-operative) 가치를 압도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흔히 고대 희랍을 ‘경쟁(ag?n) 문화’로 간주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이런 해석은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인다. 어쨌든 호메로스 영웅들은 명예(tim?)를 두고 경쟁하는데(이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에 제로-섬 모델을 적용하면, 자기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경우는 타인을 모욕(불명예)할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명예는 공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배타적이다. 이런 점에서 애드킨스가 왜 호메로스 사회를 경쟁적 가치 체계가 지배했다고 보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일리아스』I권에서 아가멤논은 원래 아킬레우스에게 ‘명예의 선물’(geras)로 주어진 어여쁜 색시 브리세이스를 빼앗음으로써 아킬레우스를 모욕한다. 사실 『일리아스』에서 명예에는 대개의 경우 물질적 보상(geras)이 주어진다. 애드킨스는 이 점에 주목해서 호메로스적 영웅들이 추구한 명예가 근본적으로 소유지향적(possessive)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호메로스 사회를 ‘결과 문화’(result-culture)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여기에 제로-섬 모델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은 설명 구도가 된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는 물질적 보상으로 주어지는 명예를 소유하려고 배타적인 경쟁 관계에 서 있다. 그리고 영웅들에게는 행위의 의도와 방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과만이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애드킨스가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런 귀결이라 할 것이다. “트라쉬마코스를 긁어라. 그러면 아가멤논 왕을 볼 수 있을 것이다.”(Adkins,A.W.H.,Merit and Responsibility,1960.)

트라쉬마코스라는 인물이 플라톤의『국가』I권에서 이기주의적 결과주의자로 제시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애드킨스도 호메로스 영웅들을 어느 정도 그렇게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호메로스 영웅들은 트라쉬마코스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이 꽤 복잡하긴 했지만, 애드킨스의 설명을 듣다보면 홉스가 연상되지 않는가? 영웅들 간의 관계는 배타적이다. 그들은 공유할 수 없는 명예를 서로 빼앗아서 자기가 소유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때의 명예에는 ‘언제나’ 물질적 보상이 주어진다. 이에 따르면 호메로스 영웅들은 명예라는 결과를 얻으려고 배타적으로 경쟁하는 이기적 존재이다. (애드킨스가 명시적으로 ‘이기적 존재’라는 표현을 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때의 명예는 소유되는 물건과 같은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최근에 여러 학자들이 밝혔듯이 『일리아스』는 이런 설명에 부합하지 않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우선 호메로스 영웅들에게 명예는 소유되는 물건과 같은 것이 아님에 틀림이 없다. IX권에서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에게 빼앗았던 브리세이스를 포함해 엄청한 보상과 함께 자기 딸까지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아킬레우스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아킬레우스는 “모래나 먼지만큼 많은 선물을 준다 해도 마음 아프게 하는 모욕의 대가를 다 치르기 전에는 아가멤논은 결코 내 마음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IX.385-387) 만일 아킬레우스가 소유지향적인 존재였다면 그 많은 보상을 거부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못 이기는 척하면서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아킬레우스가 왜 거부하는가는 역설적으로 아가멤논이 선물을 제시하는 연설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다.(IX.157-161) 그는 자신의 선물 증여를 아킬레우스의 양보 및 굴복과 연관 짓고 있다. 아가멤논은 자신이 선물을 줌으로써 ‘그만큼 더 위대한 왕’이 되는 것으로 묘사한다. 아가멤논의 발언을 보면 그 또한 소유지향적 인물이 아니다.

일찍이 모스(Mauss)가 해명했듯이 호메로스 사회는 선물-경제(gift-economy)가 지배하던 사회였다.(마르셀 모스(이상률 옮김),『증여론』,2002) 달리 말하면 소유 사회가 아니라 소비 사회이다. 선물을 받는 사람은 선물을 준 사람에게 모종의 부담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선물은 소유의 측면에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선물을 교환함으로써 성립되는 사람들 간의 관계가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아가멤논의 경우는 선물을 줌으로써 왕으로서의 자기 권위를 확립하려 하고, 아킬레우스는 그것을 알기에 선물을 거부한다. 이런 점에서 호메로스 영웅들은 트라쉬마코스와 같은 존재가 결코 아니다.

명예, 그리고 영웅들 간의 경쟁

애드킨스의 다른 견해는 틀렸다 해도 영웅들이 명예를 놓고 경쟁한다는 지적만큼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웅사회의 명예란 도대체 어떤 가치로 봐야 할까? 우선 주목할 만한 건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다툼 속에서 ‘분노, 모욕’ 등의 심리적 용어가 수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아킬레우스에게는 물건을 빼앗겼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의 위신이 깎이고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자존심이 손상 받은 것에 대해 상대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이를테면 개같이 파렴치한 자!)

다른 한편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분노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뒷전에 처져 있는 자나 열심히 싸우는 자나 똑같은 몫을 받고 비겁한 자나 용감한 자나 똑같은 명예를 누리고 있소.”(IX.318-319) 이 대목을 보면 아킬레우스는 명예(tim?)를 소유 차원이 아니라 분배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 같은 분배란 공동체의 터전을 전제하지 않고는 논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의 다툼을 개인적 다툼으로 환원하지 않고 공동체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건 다음을 통해서 훨씬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아무런 명예도 없는 재류외인(在留外人)인 양 아트레우스의 아들[=아가멤논]이 아르고스인들 앞에서 내게 무례하게 대하던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화가 치민다오.”(IX.646-8)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불명예를 안은 것을 재류외인 취급을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 재류외인은 실질적으로는 공동체 밖의 존재이다. 이것은 역으로 명예가 공동체 차원에서 주어지는 것임을 시사한다. 달리 말해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음에도 그에 적합한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했음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메로스 영웅들 간의 다툼은 자기 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공동체 속에서 벌이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인 것이다!

경쟁의 파국에 대한 시인의 답변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영웅들 간의 경쟁은 배타적인 생존 경쟁과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 투쟁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한 동안 모욕감에 치를 떨며 전쟁터에 아예 안 나간다. 그 결과 희랍연합군은 연전연패하게 된다. 『일리아스』는 왜곡된 인정투쟁이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후대의 희랍에서 클레이스테네스나 알키비아데스 같은 이들은 공동체에서 자신들이 인정을 받지 못하자 조국을 배반하고 적국의 품에 안기기까지 하는데, 이런 사례들은 영웅주의적 가치가 가지는 위험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드러내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리아스』의 시인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까지 답변을 제시해놓고 있는 것 같다. 『일리아스』는 인정투쟁 맥락에서 영웅들 간의 다툼을 드러내며 그것이 분노(m?nis)를 통해 파국을 향해 치닫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이라는 계기를 통해 전장으로 돌아와 헥토르를 죽이지만, 다툼의 근원적 문제가 그로써 해결되는 것도 아니며 분노 역시 해소되지 않는다.

XXIII권은 파트로클로스의 추모경기를 다루고 있다. 그를 추모하는 전차 경주를 아킬레우스가 주도한다. 아가멤논은 뒷전으로 물러나 나타나지를 못한다. (세부적인 논란거리는 생략하고 말하자면) 이때의 경기는 배타적인 경쟁이 아니다. 일종의 페어플레이 정신에 의해 주도되는 경쟁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경쟁자들은 상대자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지만, 이것은 남의 것을 빼앗아야만 이길 수 있는 생존 경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경기는 페어플레이 규칙을 통해 일종의 정의(dik?)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 (자본화된 현대 스포츠는 이 범주 밖에 놓여 있다.) 이 모델은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적 인정 방식을 보여주는 모델이다. 1등, 2등, 3등의 순위는 나뉘지만 서로 피를 튀기며 죽이는 관계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웅들은 경기가 끝난 뒤 공동체적 우애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플라톤의 경우는 ‘경쟁’(ag?n)을 두 가지로 구별한다. 적대적 경쟁은 ‘mach?’라고 하고 경쟁자들이 공존할 수 있는 경쟁(contest)은 ‘hamilla’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사가 규칙(과 같은 제도)의 차원에서 전부 해결을 볼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이 사람을 인정하는 관계는 실질적으로는 인격적 관계에 의해 맺어질 때만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소개글에서 이야기했듯이, XXIV권에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와 화해한다. 화해의 근원은 연민(eleos)의 정서이다. 『일리아스』의 시인은 인간의 인격적 관계가 인간에게 근원적인 고통을 보듬을 때 가능하다고 본 것이 아닐까.

되새김해보는 우리의 삶

지금까지의 설명을 고려할 때 서양 고전학자들이 같은 텍스트를 보고도 어떻게 그렇게 달리 볼 수 있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사태를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가 사태를 밝히느냐 은폐하느냐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자본주의자들은 생존경쟁의 논리를 가지고 세상을 설명한다. 그런데 역으로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폐해를 지적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비슷한 진단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물론 모두 다 그렇다는 건 결코 아니다.) 한쪽은 경쟁을 무조건 좋게 보고, 한쪽은 경쟁을 무조건 나쁘게 볼 뿐이다. 그렇지만 시장주의적 경쟁 논리가 현실을 지배하는 실질적 메카니즘이라고 본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시각 차이가 없다.

그러나 앞에서 물었듯이 우리 모두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경쟁하고 있는가? 내 판단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생존에서 도태되었기에 자살했다는 식의 사회학적 설명은 영혼을 가지고 고민하는 개개인을 모욕한다. 겉으로 보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자살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따지고 보면 복잡한 동기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대개의 경우는 먹고 살 수 없어서가 아니라 더는 살아갈 영혼의 힘을 잃었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다. 세상살이에서 자기를 유지할 힘, 자존의 힘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같은 자존의 힘을 파괴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까닭은 우리네 공동체가 사람의 영혼을 모욕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양상은 시장주의적 경쟁 논리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모욕 사회이다. 국가가 시민을 모욕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서로를 너무나 쉽게 모욕하는 경향이 있다. 모욕하는 행위는 자기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부정적으로 발출된 것이다. 그만큼 자기를 지키기 어려운 삶의 조건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시장주의는 배타적인 경쟁 관계가 인간의 모든 영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맞다면 경제주의자들의 시장논리는 허구이다. 시장주의자에 따르면 교환 속에서 궁극적인 기준은 상품이란 물건이다. 그런데 상품이 교환의 기준이라면 교환을 하는 자들은 서로 타산적 관계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 타산적 갈등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해 괴로워하고 그래서 때로는 타인을 모욕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통은 인간에게는 근원적인 존재론적 고통이 아닐까. 왜냐하면 나의 영혼은 타인과 대화하고 타인과 사랑하며 또 서로 인정받기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우리는 물건이 아니다. 삶의 그 같은 실질적 차원을 보지 못하게 하고 은폐시키는 것, 그 원인 중의 원인은 시장주의 논리 아닐까.

결국 물건에 종속되는 물화(物化)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상호간의 인격적 인정이 공동체 차원으로 확대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각박한 현실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마 ‘인정’은 제도의 문제와 교차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넘는 영역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정준영(정암학당 연구원) /

시적 상상력으로 읽는『주역』[고전은 숨쉰다]

의리역학자들이 해석하는 『주역』에 대해서 세 번에 걸쳐 소개하려 합니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괘들의 내용을 구체적인 현실과 연결해서 이해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필자)

어젯밤 바람에 우물가 복사꽃 피고(昨夜風開露井桃)
미앙궁 위 둥근달은 높기만 하네(未央前殿月輪高)
평양 애첩 춤과 노래로 새로운 총애를 받고(平陽歌舞新承寵)
주렴 밖 봄기운 차갑기만 한데 면포를 하사하시는구나(廉外春寒賜錦袍)

당나라 시인 왕창령(王昌齡, 698~755)의 춘궁곡(春宮曲)이다. 이 시를 궁녀들의 마음을 노래한 궁사(宮詞)나 사랑하는 이에게 이별을 당한 여자의 원한을 노래한 규원(閨怨)으로 흔히들 해석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왕창령은 어떤 사람인가. 일찍이 진사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지만 소행이 좋지 못하다 하여 좌천되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실은 조정의 거짓과 허위에 적응하지 못하고 직언했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왕따 당한 인물로서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했다가 그에게 앙심을 품은 자사(刺史)인 여구효(閭丘曉)에게 피살당했다고 한다.

이 시에서 주목할 단어는 마지막 구절 ‘차갑다’는 ‘한’(寒)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 대한 원한과 더불어 춤과 노래로 왕의 총애를 받고 면포까지 하사받는 애첩에 대한 질투가 묻어 있는 서늘한 한기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궁궐 내 궁녀들의 심리만을 표현했을 뿐일까. 궁궐 내부의 최고의 남자란 누구인가. 군주다. 그를 둘러싸고 총애를 얻으려 애쓰는 여인네들은 누구를 말하는가. 신하들과 사대부들이다.

미앙궁 높이 떠 있던 달은 누구를 상징할까. 군주가 양(陽)이라면 신하는 음(陰)이 아니겠는가. 양은 해요 음은 달이다. 해가 사라진 어둠 속에 높이 떠 있는 달이란 지조 높은 신하를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궁궐 안 최고의 남자인 군주와 그를 향한 여자들인 신하들의 ‘애정 게임’에 관한 이야기이다.

점역(占易)에서 학역(學易)으로

먼저 『주역』에 나오는 한 구절을 소개한다. 몽괘(蒙卦)에 나온 말이다. “내가 어린아이의 어리석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의 어리석음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匪我求童蒙, 童蒙求我)” 정이천은 이 구절을 군주가 예의와 공경을 다해 신하를 찾아오는 모습으로 해석한다. 신하의 오만함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애첩을 거느리고 춤과 노래에 빠져 있는 어리석은 군주에게 질투와 원한에 빠져 원망할 필요도 없고 사랑을 구걸할 필요 없다. 아쉬움 없이 뒤돌아서는 것이 좋다. 왜 그런가.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함께 할 군주가 도(道)를 진정으로 즐길 수 없다면 함께 정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다. ‘애정 게임’의 첫 번째 원칙은? 사랑은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청춘 남녀들은 궁합을 보러 점(占)집에 간다. 군주와 신하 사이의 궁합은 어떠할까. 궁합(宮合)이란 별자리와 관련된다. 원래 점이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별자리와 관련되었다. 점성술(Astrology)은 천체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전제로 하며 현대 과학으로서의 천문학(Astronomy)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어에서 공통적으로 들어간 ‘애스트로우(astro)’라는 말이 바로 별과 관련된 말이다.

우리는 왜 점집을 찾아 나서는 것인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어떤 지향점을 알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어두운 밤길과 바닷길을 가본 자라면 아주 미세한 별빛일지라도 운명의 길잡이가 되기에는 족하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어두운 밤의 뱃길에 별빛은 ‘지향점으로서의 방향’이다.

『주역』도 점과 관련된 문헌이었다. 역학사(易學史)에서 역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하나는 ‘점역’ 혹은 상수역(象數易)이고, 다른 하나는 ‘학역’ 혹은 의리역(義理易)이다. 점치는 것과 관련된 상수역의 중요한 문제는 ‘우주 운행의 변화’이고, 의리역은 ‘인간과 역사의 변화’이다.

상수역이란 현대적 의미로 말하면 우주적 질서를 객관적으로 체계화하여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는 점에서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관찰과 예측은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 관심보다는 국가의 통치 방식과 관련된 문제였고, 동시에 왕권을 견제하는 작용을 했다.

하지만 『주역』의 원리가 제 아무리 신비하다고 할지라도 우주 운행의 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주역』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점술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서양의 현대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정확하고 빠른 길이다.

의리역이란 무엇인가. 한대 상수역의 번잡한 독해 방식을 일소한 사람이 바로 의리역의 효시라 칭하는 위진(魏晉) 시대의 왕필(王弼)이다. 왕필의 『주역』 해석 방식은 너무나도 유명한 “삶의 의미를 파악했다면 괘가 나타내는 상징은 잊어버려라[得意忘象].”는 말로 압축된다.

의미로 번역한 ‘의(意)’란 무엇인가. 뜻이다. 뜻에서 우러나오는 맛이 의미(意味)이며 그 의미의 지향이 의향(意向)이며 그 의미를 실현하고자 하는 숨은 전략이 의도(意圖)이며 그 의미를 실현하고자 하는 힘이 의지(意志)이다. 동아시아 문헌 가운데 역사적 경험의 누적 속에서 가장 많은 해석이 쌓여온 『주역』에서 읽어내야 할 것은 바로 그들이 겪었던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왕필은 『주역』에서 우주론적인 체계나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 혹은 재난이나 자연의 이상 현상을 통해 인간의 삶을 예측하는 방법을 구하지 않았다. 그는 괘상(卦象)이나 효상(爻象)을 하나의 구체적인 정치적 상황으로, 괘사(卦辭)나 효사(爻辭)를 괘가 상징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합한 행위를 할 것인가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읽었다. 그래서 『주역』은 현실의 사회?정치적 상황과 연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담고 있는 문헌일 뿐이다.

이런 해석 방식을 이어받은 송대 의리역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실천적 지침서(practical guides)로 독해했다. 이런 해석 방식의 대표적인 인물이 정이천(程伊川)이다. 정이천에게 점이란 결정된 숙명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의미 혹은 의리(義理)를 실현해 내려는 정치 ‘행위(action)’를 위한 지침서였다.

『주역』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왕창령의 시에 나타난 정경을 그려보자. 미앙궁을 중심으로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해는 산 아래로 넘어가고 달만이 높이 떠 어둠을 밝히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쩌면 왕창령은 소인들의 세력이 왕 주변에 몰려들어 총애를 받고 있음을 한탄하면서 변방 어딘가 주렴 안에서 술 한 잔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정경을 보면 『주역』의 명이괘(明夷卦)가 떠오른다. 지화명이(地火明夷)라고 한다.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위에 있고 불을 상징하는 이(離)괘가 아래에 놓여 결합된 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이란 태양을 의미하여 곤이란 땅을 상징한다. 태양이 땅 아래 있으니 어둠이다. 명이괘의 괘사는 간단하다. “리간정(利艱貞)” 즉, “어려움을 알아 정치적 신념을 지키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간단한 말이지만 이 말에 대한 주석은 인간의 심리와 정치적 상황에 대한 묘사로 가득하다.

정이천은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애정 게임의 첫 번째 원칙, 어리석은 남자에게 먼저 사랑을 구걸하지 말라. 그러나 그렇다고 냉소하거나 부정하지도 말라. 두 번째 원칙,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라. 그 상황의 어려움을 알아야만 정치적 신념에 대한 ‘사랑’을 지킬 수 있다. 자신의 귀중한 사랑을 지키는 일은 냉소도, 부정도, 무모한 저항도 아니다. 현실적 정황(context)과 그 정황이 이를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현실주의적 태도를 견지할 때 다른 여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사랑을 ‘수비’할 수 있고,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창조’할 수 있다.

어떻게 수비할까. 괘의 모양에 그에 대한 암시가 있다. 명이괘를 구성하는 곤괘란 부드러움(弱), 이치에 따름(順)을 상징하고 이괘란 문양(文)에 대한 밝음(明)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여유가 좋다. 까칠하고 강직한 태도는 예상치 못한 저항과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문양에 밝다는 것은 현실적인 판세의 지형도에 대해서 잘 안다는 것이다. 이미 드러난 세력의 흐름에 무모하게 거역(逆)하지 말고 순리(順)대로 따르라는 것이다. 이런 순종은 굴종이 아니며 타협도 아니고 기회주의적 태도도 아니다. 정치적 신념을 견지하되, 그런 세력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무모하게 저항할 때 가져올 수 있는 예상치 못한 결과들을 신중하게 고려하며 준비하라는 말이다.

또 “그 밝음을 어둡게 감추라(晦其明)”고 하면서 이를 실천한 인물로 기자(箕子)를 들고 있다. 기자는 “자신의 지혜를 감춘” 인물로 주왕이 폭정을 행할 때 미친 척하여 위기를 넘겨 치욕을 감내하면서도 자신을 지킨 사람으로 평가된다. 감추라고 번역한 ‘회’(晦)는 그믐밤을 의미하기도 한다. 달이 너무 높이 떠올라 밝게 빛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이천은 이 구절을 단지 자신의 안위를 지키라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다. 밝은 빛은 모든 것을 비춰 드러낸다. 물론 모든 것을 명명백백하게 따지고 물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둠이 장악한 때 과도하게 고집을 부릴 경우 각박해진다. 각박해지면 스스로도 분노와 질시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 포용력과 관용이 부족하게 되며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의심과 거부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자신의 지혜로운 밝은 빛이 오히려 반감을 일으켜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이천은 아무리 좋은 행위일지라도 그것이 가져올 정치적인 결과들에 주목하고 있다. 왕창령은 왜 죽임을 당했을까. 명이괘가 말하는 것은 ‘서늘한 한기’가 아니라, 부드러운 여유를 지니되 명확한 현실 인식을 견지한 냉정함이다.

이렇듯이 의리학자들이 해석한 『주역』의 괘들은 음과 양의 세력들이 길항하는 권력의 장이며 ‘애정 게임’이 벌어지는 무대이다. 무대의 배경은 조야(朝野)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권력의 중심인 조정(朝廷)으로서의 조(朝)와 권력의 변방인 광야(廣野) 혹은 민간(民間)으로서의 야(野)이다. 등장인물은? 군주와 신하 그리고 광야를 떠도는 사대부들과 그들과 함께 하는 백성들이다. 관객이면서 동시에 심판은? 하늘이다.

이들이 하늘 아래 땅에서 벌이는 게임은 권력을 중심으로 한 사랑의 소용돌이며 정치 세력이 흥망성쇠(興亡盛衰)와 굴신왕래(屈伸往來)를 거듭하는 변화의 장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느끼며 그들이 가진 의향과 의도와 의지를 독해해낼 수 있다.

그림 속의 시, 시 속의 그림

『주역』은 음양이 서로 섞이고 착종된 64개의 괘(卦)와 그에 붙어 있는 설명인 괘사(卦辭)로 구성되어 있다. 64개의 괘는 인간이 처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상징하고 있고, 괘사는 괘가 상징하는 상황에 대한 진단과 치료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각 괘에는 6개의 음양의 효(爻)와 그에 대한 설명인 효사(爻辭)가 달려 있다. 효는 전체 괘에서의 특수 상황을 상징하고 효사는 전체 괘가 상징하는 일반적인 상황 속에서의 특수한 경우를 설명하고 특수한 충고를 암시한다.

괘사나 효사는 시처럼 모호하고 함축적인 상징과 말로 이루어져있다. 괘는 여섯 개의 효로 이루어져서 6획(劃)으로 구성된다. 획이란 화(畵), 즉 그림과 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6획으로 구성된 괘란 그림이고 그림에는 시(詩)가 담겨 있다. “시 속의 그림이요, 그림 속의 시이다.(詩中畵, 畵中詩)” 시를 읽는 것은 ‘언어 이면에 담긴 의미(言外之意)’를 이해하는 것이다.

괘에 담긴 상징들도 마찬가지다. 『주역』에 대한 철학적 해설서인 ?계사전(繫辭傳)?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문자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書不盡言,言不盡意.)” 그래서 “성인은 괘효의 상징을 만들어 뜻을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했다.(聖人立象以盡意.)” 시 속의 그림이고 그림 속의 시라면, 문제는? 언어 이면에 담긴 성인이 드러내고자 한 의미이다.

정이천은 『주역』을 ‘결의(決疑)’, 즉 ‘의심의 결단’으로 설명한다. 개인은 항상 어떤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를 빌린다면 ‘괘상-안-존재’이다. 시세의 흐름으로서 어떤 상황에 처한 개인은 그 속에서 불안과 욕망과 유혹과 갈등에 처해 있다. 그럴 때 『주역』이란 자신의 진실과 욕망의 갈등을 파악하고 지향해야 할 방향을 결단하도록 하는 지침서로서 ‘정신분석학적인 윤리서’이다.

또한 정이천은 ‘진퇴존망(進退存亡)의 도리’가 담긴 문헌으로 『주역』을 규정한다. 진퇴란 권력의 중심부에 대한 나아가고 물러남을 의미한다. 존망이란 무엇일까.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자는 살아남고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順天者存 逆天者亡)” 그렇다면 『주역』은 권력이 길항하는 장의 흐름 속에서 정세 판단에 근거하여 하늘의 이치에 따라 자신이 위치해야할 시공간의 좌표를 결정하고 실천적 방향을 지향하는 ‘정치적 전략서’이다. 나는 이런 의리역의 관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주역』은 ‘실천적 지침서’이지만 단지 ‘시뮬레이션 게임’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궁극적으로는 버려져야할 책이다. 모든 ‘시뮬레이션 게임’이 다 그러하듯이 가상공간에서의 연습일 뿐이며 그 곳에서의 생생한 현실감은 주어진 착각일 뿐이다.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용감한 군인일지라도 실제 전투에서는 겁쟁이가 될 수도 있다. 리얼한 현실은 다르다.

그러니, ‘시뮬레이션 게임’일랑 집어치워 버리고 어서 저 생사가 넘나드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애정 게임’에 오직 자신의 진실 하나를 견지하고 몰락하시길. 그곳에 진짜 살 떨리는 역(易)이 있으니.

심의용(서울예대 강사) /

죽음의 향연에서 꽃핀 인간의 위대함[고전은 숨쉰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고전은 숨쉰다]의 첫 번째 고전 비평으로 두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첫 번째 소개글은 영웅적 삶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는가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두 번째 소개글은 영웅들 간의 경쟁에 관한 현대 연구자들의 논쟁을 소개하면서 『일리아스』가 왜 현대에도 유효한 논쟁의 장(場)이 될 수 있는가를 제시하려 합니다.(필자)

기독교 윤리와 희랍의 윤리

서양 문명의 대표적인 윤리 체계로는 기독교 윤리와 희랍의 덕윤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윤리, 특히 예수의 윤리는 용서를 통해 인간이 행한 일의 업과(ta opheil?mata)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발견한다. (‘ta opheil?mata’는「마태복음」 6장12절(주기도문의 일부) 등에 나오는 표현으로 희랍어 원래의 의미는 ‘빚(진 것)’을 가리킨다.) 바로 그 길이 새로운 인격적 관계인 사랑이다. 그러나 인간이 행한 일의 결과를 신이 떠맡음으로써 사랑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에서 예수의 윤리는 인간 ‘자체’의 탁월성에 주목하는 윤리는 결코 아니다.

반면에 희랍의 덕윤리는 인간 자체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서 성립된다. 흔히 德으로 옮겨지는 ‘aret?’는 인간적 탁월함(excellence)이나 훌륭함(goodness)을 뜻하는데, 이 같은 인간적 탁월함을 꽃피우는 데서 아름다움(to kalon)을 발견하고 또 그런 가치를 고양하는 인생관에서 희랍 윤리가 자라났다고 할 수 있다. 느슨하게 말하자면 인간적 가치를 발견하고 고양하는 태도 속에 서양 휴머니즘의 원초적 뿌리가 있다고 하겠다.

호메로스, 희랍의 교사

호메로스의 위대함은 그의 작품이 서양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현되고 각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그가 인간의 위대함을 발견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발견은 호메로스가 후대 희랍에 미친 영향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아닌 게 아니라 고대 희랍인들은 호메로스의 작품을 암송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자랑으로 여겼으며, 플라톤의 『이온』(533d-e)에서는 호메로스를 자력(磁力)과 같은 매력을 가진 존재로까지 묘사한다.

호메로스에 대한 고대 희랍인의 평가는 단순히 매력적인 시인이었다는 데 머물지 않는다. 크세노파네스는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호메로스를 따라 배웠다.”(DK21B10)고 하고, 플라톤 또한 호메로스가 희랍을 가르쳤다고 말한다.(『국가』606e.) 그렇다면 도대체 호메로스가 희랍인들에게 가르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능한 영웅?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영웅서사시이다. 따라서 우리가 호메로스의 가르침으로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는 것은 영웅들의 영웅적 활동, 즉 승리와 성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상 우리는 영웅하면 무슨 성공신화의 대명사처럼 여기지 않는가. 이런 영웅 개념에 따르면 영웅적 존재는 어떤 난관이든 아무 어려움 없이 수월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전능한 존재이다.

그러나 『일리아스』의 영웅들이 언제나 모든 난관을 쉽게 해쳐나가며 눈부신 행적만을 보이는 건 결코 아니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권위만 내세우다 결국 수치스러운 꼴을 당하며,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당한 모욕에 화를 내다가 분을 이기지 못해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부관인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어린아이처럼 줄줄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트로이아의 영웅인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 벌이게 될 결투에 앞서 두려움에 움츠리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영웅에게서 기대하는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여기에 『일리아스』를 단순한 영웅 무훈시로만 보면 안 되는 까닭이 있다.『일리아스』에서 묘사되는 영웅들은 잘나기만 한 ‘신적인’ 영웅이 아니라 뭔가 빈 데가 있는 ‘인간적인’ 영웅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시

간결하고 압축적인 표현을 하는 호메로스식 문체를 깊게 의식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리아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시인은 곳곳에서 죽음의 전장을 묘사한다. 전사들이 흘린 피가 내를 이루고 돌이 힘줄과 뼈를 박살내며 창이 관자놀이를 관통하고 창자가 땅 위로 쏟아지는 이야기와 표현들이 텍스트를 뒤덮고 있다. (죽음이 마치 눈앞에서 일어나듯 생생하게 시각화하는 것이 호메로스의 특징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일찍이 라인하르트(Reinhardt)는 『일리아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의 시’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여기에 시인이 드러내려는 핵심이 있다. 인간은 영웅이라고 해도 신이 아니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thanatos)이다. 신의 몫이 불멸이라면, 인간의 몫(moira)은 피할 수 없는 죽음(moira)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죽음이 난무하는 전장을 “남자의 영광을 높여주는 싸움터”(XII.324)로 여긴다. 그 곳에서 적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리라. 영웅들은 죽음(의 전장)을, 전사의 탁월성이 꽃필 수 있는 터전으로 생각했던 셈이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일리아스』는 승리만 이야기하는 무훈가가 아니다. 시인은 승리만큼이나 패배에 대해, 그리고 그 패배에서 비롯되는 고통에 대해 세부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영웅 서사시이면서 어떻게 죽음과 파멸을 노래하는 시일 수 있는 것일까? (통속적인 영웅 개념으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독자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이를테면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 벌일 결투를 앞두고, 협상하는 쪽과 맞서 싸우는 쪽 중 어느 쪽을 선택할까 고민한다. 그는 후자를 선택하면서 “영광스럽게 죽는 것(olesthai euklei?s)이 더 나을 것”(XXII.110)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것은 형용모순이다. 이때의 죽음이란 패배를 뜻하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죽음이란 다름 아니라 ‘명예로운 패배’를 뜻하니 말이다. 패배가 어떻게 명예로울 수 있단 말인가?

또 하나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는 아킬레우스에게서 볼 수 있다. IX권(410-416)에서 그는 자신이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 죽는 길과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중 전자의 길, 즉 죽는 길을 택할 경우 자신의 명성(kleos)이 불멸할(aphthiton) 것이라고 말한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명성이 죽음을 통해 실현되는 양 말하고 있다. ‘불멸의 명성’이 죽음이란 소멸을 통해 달성된단 말인가? (그렇다!)

아름다운 죽음

역설적으로 보이는 영웅들의 태도를 이해하려면 그들이 죽음 자체를 삶의 조건 내지 일부로 보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전사답게 싸우다 쓰러져 죽는 것, 이것을 이상으로 삼은 데 영웅들의 진면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관은 실패(패배)를 두려워하기보다 죽음이라는 리스크(risk)를 무릅쓰고 자신의 온 존재를 던지려는 태도 속에서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단순한 운명론자도 아니며 수동적인 존재들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20세기 대부분의 서양고전학자들은 호메로스 영웅들에게 의지의 자율성과 자기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행위자(agent)의 자격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보는데, 이는 잘못이다!) 이렇게 볼 때 영웅들이 ‘행동하는 능동적 존재’(men of action)였다는 바우라(Bowra)의 통찰은 몇 십 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생생한 울림을 가진다. (바우라(이창대 옮김),『그리스 문화예술의 이해』,철학과 현실사,2006. 참고. 원저는 The Greek Experience라는 제목으로 1957년에 출간되었다.)

영웅들이 죽을 줄 알면서 죽음의 길을 택하는 건, 죽음이란 운명의 몫에 굴하지 않고 인간의 모든 능동성을 펼쳐 보이려는 태도 속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에 희랍 영웅주의의 일차적 본질이 있다. 영웅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건 그들이 죽음을 삶의 일부로 내면화했다는 것을 시사하며, 죽음 자체보다는 어떻게 죽느냐가 더 문제였음을 시사한다.

죽음을 내면화한 그들에게 ‘어떻게 죽느냐’는 것은 일종의 삶의 방식을 뜻했다. ‘비겁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는 ‘용감하게’ 싸우다 죽는 것, 그 속에서 탁월성을 꽃피우는 것 그것이 그들의 이상이었다. (이것은 행위의 의미를 성공이나 실패라는 결과의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행위자 연관적으로 보았음을 암시한다. ‘용감한 방식의(용감하게)’ 행위는 행위자와 연관될 때만 유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용기’와 ‘비겁’은 행위자와 연관 짓지 않고는 ‘실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자긍심’과 ‘품위’(aid?s)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 점에 영웅들의 위대함이 있다. 후대의 아리스토텔레스는 겉으로 보면 형용모순으로 보이는 이런 인생관을 압축적으로 멋지게 묘사한다. ‘아름다운 죽음’(kalos thanatos)이라고!(『니코마코스 윤리학』,1115a34.)

고통을 보듬는 연민

전통적으로 『일리아스』의 XXIV권, 그리고 XXIII권까지도 전체 플롯의 구도에서 벗어난 부분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 XXII권에서 헥토르가 아킬레우스한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전투 장면은 끝나기 때문이다. 시인은 무슨 할 말이 남은 것일까?

『일리아스』는 죽음의 시일지언정 단순한 전쟁시는 결코 아니다. 구성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균형감을 잃지 않는 시인은 XXIII권에서 파트로클로스를 추모하는 아카이아인들의 모습을 그리며, XXIV권에서는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와 만나 탄원하는 장면과, 헥토르의 죽음으로 비탄에 잠긴 트로이아인들의 장례식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두 권 모두 산 자들이 먼저 간 이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장면으로 되어 있다. 이런 받아들임이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가 만나는 장면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건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운다는 데 있다. 프리아모스는 먼저 간 헥토르를 생각하며 울고,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아버지와) 파트로클로스를 생각하며 통곡한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자기 자식(헥토르)의 시신을 내달라는 프리아모스의 탄원을 받아들인다. 아킬레우스가 탄원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자기처럼 프리아모스가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데 대한 공감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 울음이 공감을 자아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민(eleos)의 정서이다.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죽음 앞에서 굴하지 않는 당당함을 보이는 한편, 죽음을 끼고 사는 같은 인간들에게 연민의 마음을 가진다. 이 같은 연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존재론적 통찰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일리아스』는 인간의 보편적인 고통을 내면화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고 이 측면에서 비극적이다. 후대의 플라톤은 호메로스를 비극시인으로 부르고 있는데 ‘어떤 점에서’ 이는 적절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후대 희랍에 미친 영향

우리는 앞에서 호메로스가 희랍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이 맞는다면 호메로스를 모르고서는 고대 희랍을 다 알았다고 할 수가 없으리라. 왜 그런가? 지면상 몇 가지 간단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도록 하자.

우선 고전기 비극이 흔히 옛날의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극은 일반적으로 행위자가 수행하는 행위의 ‘의도’와 행위가 끝나고 난 뒤 일어난 ‘결과’ 사이의 단절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이 비극의 hamartia 문제이다!) 비극이 호메로스보다 더 강하게 밀어붙인다는 차이는 있지만 애초에 이런 문제를 제기한 건 호메로스이다.

호메로스는 인간의 삶에서 행위의 의도와 결과의 결속이 깨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런 위험이 죽음과 같은 운명(moira)이란 삶의 조건에 의해 어쩔 수 없는 필연으로 놓여 있음을 통찰한다. 인간 앞에 어쩔 수 없는 필연의 운명이 놓여 있다는 것을 응시하고, 그 운명의 조건을 어떤 식으로 내면화할 것이냐는 문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필연이 결정론적 필연인 건 아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일리아스』는 인간적 삶의 비극성을 노래하는 시라고 할 수 있고, 이렇게 본다면 비극은 다분히 호메로스의 유산을 업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호메로스의 유산이 이것으로 끝나는 건 결코 아니다. 고전기의 위대한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 한 대목을 보도록 하자.
“그들[아테네 사람들]은 맞서 싸우고 감내하는 것이 굴복해서 살아남는 것에 앞서는 일이라고 생각해 수치스런 비난은 기피하고 해야 할 일은 온몸으로 감내해 냈습니다. 그리고 찰나와 같은 운명의 호기를 통해 공포가 아닌 영광의 절정에서 자신을 해방시켰던 것입니다.”(투퀴디데스,『펠로폰네소스 전쟁』,42.4.(이정호 옮김,『메넥세노스』부록,139 쪽.))

페리클레스는 영웅적 가치관을 아테네 폴리스에 적용하고 있다. 호메로스에게 영웅이 개인이었다면, 페리클레스에게 영웅은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니라 ‘폴리스 자체’이다. 이런 점에서 희랍 고전기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호메로스적 영웅주의의 전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는 친숙한(?) 소크라테스에서도 호메로스 전통의 일단을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28c-d에서 소크라테스는, 아킬레우스가 “죽음과 위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 반면, 못난 사람으로서 사는 것을 (…) 훨씬 더 두려워”한 것으로 묘사하면서 죽음에 맞서는 자신의 선택을 아킬레우스에 빗댄다. 호메로스의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의 경우도 죽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죽느냐는 문제를 어떻게 사느냐는 문제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죽음에 굴하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면모 역시 호메로스가 남긴 유산의 일부로 보는 것도 지나친 해석만은 아닐 것이다.

정준영(정암학당 연구원) /

가라리 네히어라-물체, 그리고 우리 신체

서양철학사를 들여다보면, 철학 용어의 쓰임새가 시대별로 다른 관점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 중 실재성의 개념이 단연 으뜸일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상층의 대상 즉 이데아를 실재성으로 보았던 시절은 고ㆍ중세 시대일 것이고, 심층의 실재성으로서 기억과 무의식을 실재성이라 주장하는 것은 생물학과 심리학의 도래한 시대이다. 그리고 데카르트 이래로 근대의 실재성은 이원론이라 불리는 두 개의 실체, 영혼과 신체의 관심 속에서도 있다. 그에 따르면 두 개의 실체를 사변적으로 한계에까지 연장해 보면 정신과 물체라는 개념으로 양극화가 된다.

우리는 ‘가라리 네히어라’를 쓰면서 정신과 영혼, 물체와 신체 사이에 개념상 차이가 있음을 은연중에 강조해왔다. 다시 말하면 영혼과 신체의 문제는 표면의 문제로서 상층과 심층과는 다른 차원이라 할 수 있다. 상층에서는 정신의 대상인 이데아를, 심층에서는 이데아를 전혀 포함하지 않은 물질을 양극으로 하는 논리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가정하였다. 이제 양극의 중간에 위상적으로 위치시킬 수 있는 영혼과 신체 관계에서, 영혼은 정신과 별개일 것이고 물체는 물질로부터 나왔기에 인식의 다른 대상이라는 가정과 더불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물체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신체가 물체와 다르다는 것을 예시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아주 가끔 신체는 물체와 다르다는 생각을 잊고 산다. 특히 사람들은 슈퍼맨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순간적으로 이동한다거나 빛과 같은 속도로 지구를 도는 영화를 보면서 즐기며 가끔은 그 현상들이 실재할 수 있기나 한 것처럼 좋아한다. 꼬마들은 그것을 실재로 해보고자 보자기로 망토를 걸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고 한다.

또한 사람들은, 가끔 인간의 신체가 늘여져서 매우 가늘게 되었다가 다시 원래 덩어리로 돌아 올 수 있다면, 아마도 미세한 빈틈이 있는 만리장성과 같은 벽의 미세한 빈틈을 통과한 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이보다 더하여 전자 매체 속에서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그리고 상호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에서나 상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은 물체가 입자 또는 전자처럼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미세한 것이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정해 보는 것이다.

그 물체가 신체와 다르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다르게 느끼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물체와 신체는 구성체이며 어떤 물질적인 재료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이 양자가 단지 분해와 조합에서 차이가 난다고 하기에는 아직도 해명해야 될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구성방식 즉 조직화에서만 차이가 날까? 이처럼 풀어 가는 것과 다른 방식도 있다.

즉 물체와 신체에 작동하는 양태와 내용이 왜 차이를 갖는가에 관심을 기울이자. 이런 관심은 신체가 영혼에 비하여 덜 중요시되었던 시기를 지나, 19세기 말 이래 생명의 진화에서 생명체들에 대한 관심, 그리고 20세기 후반 이래로 환경과 생태계와 더불어 살아야 할 몸이라는 점에서 몸(신체)의 잘 지냄(bien-?tre, well-being)에 대한 관심이 몸철학, 즉 신체에 대한 관심으로 전개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물체 개념 규정들로부터 시작하여, 신체의 양태와 내용에 대해 보기로 하자.

물체도 신체도 프랑스어에서는 꼬르(coprs)라고 하며, 구별 할 경우에, 하나는 그냥 물체(un corps)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신체(notre corps)라고 쓴다. 독일어에서는 신체(Leib)와 물체(K?rper)를 구별하여 쓴다. 이렇게 구별하는 것도 근대 철학에서 물리학적으로 물체가 중요시되었기 때문이다. 물리학적 규정으로서 ‘물체’는 자아를 포함하는 ‘우리 신체’의 규정과 같지 않음에도, 소위 몸과 맘, 영혼과 신체라는 과제는 정신과 물질이라는 유비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몸과 맘이 물질과 정신이라는 것과 유비적으로 연관이 있을까 하는 물음은 일단 젖혀 두기로 하자.

그럼에도 한 가지 차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신의 일부로서 영혼이라는 관점들이 있는데, – 내가보기에 – 고대에서부터 누스(Νου?)와 로고스(λογο?)의 차이가 있었고, 또한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플라톤의 예지계와 지성계를 구별을 본 따서 정신(Νου?)과 영혼(ψυχ?, ?me)을 차원 상으로 구별하였다. 이들에게 신체는 철학적으로 문제거리가 아니었다. 왜 그럴까?

고대사에서 신체는 물체와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신체에는 무엇인가 내재해 있다. 이집트의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는 신체의 무덤이지만, 한 인간의 죽음과 그 영혼을 숭배하고, 영혼이 신체와 더불어 이 세상에 다시 올 것을 기원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신체의 죽음이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은 호메로스 이전 시대에도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신체 일부의 파손으로부터 죽음이라 여기는 것은 아킬레스의 죽음이 그 예일 수 있다. 즉 가장 중요한 부분의 손실 또는 기능 정지도 죽음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서 에스키모 사회에서도, 물개 사냥을 하지 못할 정도로 힘없는 늙은 에스키모인을 죽음이라 칭한다고 한다. 신체 기능의 정지에 대한 개념에서 죽음을 보았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신체에는 물체와 달리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에 의해 전승되는 바에 의하면, 소마(σ?μα, 신체)를 세마(σ?μα, 무덤)라 여기는 것은 영혼(psych?)이 갇혀있는 무덤을 신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 한다. 신체 속에는 다른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소크라테스에 이어서 플라톤으로 이어진다.

소크라테스는 현실 생활에서 문제거리가 있으면 다이몬에게 묻는다고 한다. 아테네인들은 그 다이몬을 자신들이 신탁하여 물어보는 신들이 아니라 하여 불경건하다는 이유에서, 소크라테스를 두 가지 죄목(다른 하나는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중에 하나로서 고발하였고,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언도 받고 독배를 마시고 철학적 순교를 했다. 다이몬이 신체에 고유하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으리라는 점에서 그는 소마-세마의 도식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들 한다. 즉 플라톤의 『국가』편에서 전하는 설화, 에르(Er)라는 자를 통하여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영혼은 다른 곳에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다른 곳이 저 세상의 세계라 말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를 이어 받은 플라톤은 영혼은 육체와 달리 분리되어 다른 곳으로 간다는 이집트 이래로 오랫동안 인류에게 전승되어 온 관념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혼의 불멸을 표현하고자 한, 또 관념의 실재성을 믿었던 플라톤주의에서, 신체는 철학적 문제거리가 아니었다. 이러한 사유 방식은 크리스트교 성립과정에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학설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삼신 개념(trinit?)의 성립을 일자와 누스와 영혼의 세 양상의 전개 방식으로 본다면, 일자로서의 절대자로부터, 누스로서 초월적 정신과 그의 일부로서 영혼들로 넘쳐나는 과정을 거쳐서, 그 마지막 차원에서 물체 또는 물질이 생겨난다. 그 신체와 물체는 다른 세 가지 실재성들과 별개로서 잘못을 범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관점이 중세 1500년 동안에, 성직자는 백성에게 신체를 비실재성이라 가르치고, 현실의 부정에서 영혼의 상승을 설교하여, 백성에게 예속과 굴종을 강요했다. 현실에서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성직자들이 인민을 현혹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마찬가지이다.

신체가 새롭게 정립된 것은 물체의 실체를 주장하는 르네상스 시기의 과학의 발달 이후이다. 세계는 물체들이라는 실체에 의해 구축되어 있고, 그 세계는 어쩌면 창조주의 현실적 개입이 없이도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물체는 정신이나 영혼과 달리 만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우리 신체’는 다른 ‘물체’들과 달리, 자기 재량권이 있으며, 어떤 통일성을 지니는 독특한 단위이다.

우리는 여기서 스토아 학파의 영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토아학파에 의하면, 정신도 영혼도 물체(corpus, 코르푸스)라고 칭하며, 인간의 신체와 물체도 코르푸스라 하며, 게다가 모임과 사회라는 정치체(corps politique)라고 하듯이 코르푸스라는 개념을 적용한다. 스토아 학파에게 있어서는 개념적 단위를 형성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코르푸스인 셈이다. 그럼에도 각 코르푸스는 ‘물질적 형성물’들의 다른 여러 양상인 셈이다. 이점에서 유물론이라 한다.

이 사상의 역사적 전개 과정은 불연속적이고 단속적이기에 무엇이라 설명하기 곤란하나, 관념의 세계인 정신의 형성물(관념)도 물질적 형성의 한 측면으로 간주했다고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단어[corpus, corps]의 영향이 있다고 보아, 따라서 근대 물리학은 고ㆍ중세의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 물질적 물체에 실체성을 부여하였고, 그것을 정신과 별개로 과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혁명적 발상은 새로운 세기를 열었다. 이로부터 데카르트는 우리 신체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우리 신체와 영혼은 속성을 달리하더라도 같은 ‘관념’으로서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발상 속에 데모크리토스 이래로 원자론적 관점이 새롭게 의미를 가진 것으로 여기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원자론적 관점은 우주[현존하는 모든 존재들 일체라는 의미에서]가 빈 것과 원자들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물체들이란 원자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 중에서 영혼도 다른 물체들과 마찬가지로 원자들로 되어 있으며 다른 것보다 훨씬 빠르게 운동하는 물체일 뿐이다. 이와 달리 데카르트와 그 후학들은 에피큐로스 학파의 물체와 “부피있는 실체”(substance ?tendue) 사이에 차이를 보았다. 후자는 독립적인 실체이며 관념이다.

영혼과 우리 신체를 구별하였던 데카르트는 한편으로 “사유실체”라는 영혼이 물질과 다른 질적인 것임을 강조하였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부피실체”가 영혼과 별개라는 점에서 “물체”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길을 열었다고들 한다. 이로부터 물질적 실체를 따로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근대 물리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데카르트는 “우리 신체”와 우리 영혼 사이의 특수한 통일성을 보았고, 이 둘의 통일적 관계를 신체 속에서 즉 송과선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고 나서 데카르트는 1643년에 엘리자베스에 보낸 편지에서도 말했듯이, 신체의 느낌이 사유의 방식이 아니라 “감관에 의해 매우 분명하게 인식된다”고 주장했다.

이제, 물리학적 질량(la masse)을 가진 물체(un corps)와 살아있는 생명의 덩어리(la masse)인 우리신체(notre corps) 사이의 차이를 깨닫게 되면서, 영혼과 신체의 관계를 제기한 문제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 출발이 영혼은 신체와 분리되어 있다는 고대의 가설에서부터 출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인 히포크라테스(Hippocrate, 기원전 466-377)가 신체의 질병에는 심리적인 측면도 있다고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고대에서도 있었다. 근대에 와서 이 영혼은 이제 신체와 연관 없이 생각할 수 없는 단위가 되었다. 이런 발상은 영혼이 저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과 연관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이 통일된 단위를 물질의 생성과 연관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였고, 프랑스 18세기 유물론자들의 주제가 되게 하였고, 또 한 세기 지난 이후에는 심층(深層 profond)과 연관 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논의하게 될 것이다.

그제서야 의학-생물학의 관점에서도 그 다음에 생물학적 관점에서도 신체 그 자체의 자기 자치성과 완결성이라는 ‘이념’(id?e)을 창안하기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자치성에 이어 재량권을 생명체의 고유한 속성으로 인식하여 생명을 다루듯이, 우리 신체 속에 있는 영혼도 자유롭다는 고유성을 지닌 것으로 다루는 방식이 도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시대가 고ㆍ중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기였기에, 영혼의 상위로서 “정신”은 순수사유로서 물체와 관계없는 기호와 상징으로서 인식세계를 열어갔던 것이다. 초월적 에고(Ego)에 대한 인간 중심적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신의 인식세계를 삶과 관련 있는 영혼과 따로 떼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히 수학적 공리들과 공준들에 관하여 지식의 전개와 확장에서 정신은 영혼과 별개라는 관점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정신은 물체 또는 신체와의 연관보다는 다른 세계에서 통일성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겼고, 지금도 수학은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우리는 이 정신의 통일성을 가라리 중에서 상층 가라리의 통일성이라 부른다.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데카르트의 시대를 지나면서 영혼은 정신의 일부분으로서가 아니라 신체와 더불어 신체 속에서 문제거리로 제기된다는 점이었다. 이 신체는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인격성의 일부로 제기된다. 우리가 보기에, 루소에서는 이기심(l’amour-propre)과 이타심(l’amour de soi)에 대한 구별에서도 이타심은 자연적 배려로서 자기보존의 근거로 하고, 게다가 사회 속에서 타인 없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타인과 관계 속에서 그의 자기보존은 신체를 포함하는 자연주의적 태도이다.

그런데 철학사에서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가 처음으로 『자연권 이론』(1796)에서 자기신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또한 프랑스 철학자 데스뛰 드 트라시(Antoine Louis Destutt de Tracy, 1754-1836)도 자기 신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의식의 발전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생산의 변화에서 인간의 자유를 실현하려는 입장에서, 신체를 통한 노동이 자아의 완성과 자기 인정을 실현할 것이라 보는 견해도 나오게 된다. 이 견해는 현실적으로 사회적 환경에서 중요하게 된 계급의식과 맞물려 신체의 노동을 인간성의 본질로 간주했다. 다른 한편으로, 몸에 밴 습관과 기억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신체가 중요하게 다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 두 측면을 현실이라는 표면의 이중화(d?doublement)라 본다. 왜냐하면 사회적 자아로서 신체의 노동과 특이성의 자아로서 신체의 기억은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기억을 통한 신체의 현실화는 신체의 한 양태로서 구체적 노동 과정에서 실현된다.

기억에 관한 한, 모든 생명체는 각각 생명의 기원으로부터 자기의 과거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신체의 현상적 통일성 이상의 것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는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는 이런 신체를 선천적 이념이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통일성을 탐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신체는 살(chair)로 되어 있고, 감각적 통일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현실 세계 속에서 구현될 지향적 총체성이다.

“우리 신체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체가 세계에 거주한다(habiter). 신체의 진실한 현존은 객관적인 어떤 존재의 현존이 아니라, 나 자신의 신체, 즉 내가 존재하는 신체이며,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 즉 세계에서 나의 존재를 특징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는 불가분 총체성 즉 구현되어야 할 지향점으로서 총체성(totalit?)이다” 라고 한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 ‘신체의 움직임’은 인격을 내포하는 품성(conduite)과 행실(comportement)이라는 점에서 삶의 질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 몸의 운동은 반복하면서도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 중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몸의 운동은 새로운 반복자이다. 이 반복하는 시뮬라크르의 이해는 삶의 질이라는 점에서 과학적이나 합리적이 아니라 도덕적일 수밖에 없다. 물체를 다루는 것이 과학적 지식과 방법의 한계 속에 정합 또는 합리(rationnel)에 의존하는 반면에, 우리 신체에서는 품행들 사이에 연민과 공감을 지니고 있으며 이성(raisonnable)적이기를 바란다.

이 두 가지 점을 구별한다면 전자에는 세계에 대한 인식론이며, 후자는 세상의 삶에 대한 도덕론이다. 물체가 실험적이고 동일한 반복을 가능하게 한다면, 우리 신체는 일회적 경험이며, 끊임없이 덧붙여진 새로운 반복이다. 우리 신체에 대한 기원과 본성에 대한 이해와 성찰은 진화론이 발달하면서 또한 심리 내적 의식을 밖으로 끌어내면서 20세기에 들어와서 더욱 뚜렷해졌다. 우리 신체는 각각의 개별성을 표출하는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욕망 하는 방식에 따라 기호작용, 함축성, 의미 등에서 거의 무한한 다양체를 이룬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 신체는 특이성으로서 다양체이다.

게다가 생명으로서 몸의 상태의 지속과 수명이 길어지는 시대에서 신체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도 상당히 달라졌다. 신체의 역량, 즉 스포츠 같은 인간 한계 체험에서 신체는 더 이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등장하였다. 신체의 역량이란 놀이(jeu)일뿐만 아니라 신체의 자기 소질의 개발이다. 게다가 신체의 건강과 감성에 따른 미적 취향 등에서 신체의 주체는 노동을 통한 인격의 완성이라는 측면과 다른 측면이 신체에게 요구되고 있다. 또한 좋은 영양만으로 신체에 좋다고 여길 수 없는 건강, 그리고 자연환경 및 생태계와 신체 조화에 대한 시각은 잘 산다(well-being)에 새로운 시각을 열었다.

신체는 이제 영혼의 거처일 뿐만 아니라, 그를 넘어서 세상과 함께 세상 속에서 거주하는 주체이다. 전체와 떨어질 수 없는 전체 속에서 부분이다. 세상살이에서 신체는 영혼의 안녕과 지속에서 중요한 위상을 점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신체의 불가양도성은, 물체의 불가침투성을 넘어서, 고유성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신체의 자유가 인정될 때 진정으로 자유가 실현될 것이다.

영혼이 신체와 별개라는 생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은 영혼의 자유를 인간의 자유로 착각하는 경우이다. 이 착각은 여전히 인간이 구성한 사회 속에서 신체는 부분일 수밖에 없고, 물체처럼 신체가 분해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 기반을 둔다. 자아를 신체와 분리하는 생각은 합리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아무래도 이성적이지 못한 것 같다.

플라톤(Platon)과 같은 철학자도 신체를 “영혼의 폭력”이라고 하면서 신체를 금욕적으로 다루고자 했지만, 그래도 『필레보스』편에서 “신체 없는 영혼도 구원이 되지 않듯이, 영혼 없는 신체도 구원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스피노자(Spinoza) 같은 이는 이 분리를 착각이라 주장하면서 자연의 권능을 지닌 신체 속에서 권능(puissance)을 발현하기를 권하였다. 니체(Nietzsche) 같은 이는 성직자들이 말하는 정신의 신체에 대한 억압에 벗어나기를 권하면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속에서 “너의 지혜가 최상일 때보다 더 많은 것이 너의 신체 속에 있다”고 했다. 생물학적으로도 우리가 신체를 통하여 발현되는 품행은 현실에서 발현되지 않은 것에 비해 거의 하찮은 부분들이라 한다.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신체 속에, 특히 세포 속에 유전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유전자 정보의 지도를 그리면서, 신체의 비밀스런 작동에 대해 기계론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 지도에 그려진 유전자 계열의 거의 1/10정도만이 현실의 사회체(socius) 속에서 개체로서 발현되고 그 나머지는 발현되지 않으면서도 왜 그 긴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직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신체를 통하여 각각의 인격을 표출하고 있고, 그 인격들이 65억 인구 각각에게 고유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점에서 신체의 “양도불가능성”을 주장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인격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신체의 존중을 먼저 강조한다. 인간의 사회적 소외에 앞서, 신체의 고유성과 자기보존을 주장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체만으로 인격의 고유성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물체의 해명이 수억 광년의 먼 우주에서 미세 소립자의 해명에까지 폭을 확장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신체, 또는 생명체에 대한 해명은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이 해명이 있어야 사회체도 해명된다고 하는 것은 현실의 삶을 미래로 미루는 것이다. 이렇게 미루는 것은 미래의 소망으로 현실을 개혁하지 않고 습관 속에서 굴종으로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해명이 언제 될 값이라도, 현실의 공동체에서 신체의 “양도 불가능성”의 토대 위에서 각 인격의 고유성에 대한 존중을 지금 여기서부터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류종렬(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

가라리 네히어라-‘관념’이란?

관념(l’idee ?δ?α), 플라톤의 이데아(Idea), 생각(영 idea)

삽화에서 보듯이 머리 위에 반짝이는 별이,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는 것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즉 이 아이디어는 생각이다. 관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나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몇 가지 이야기를 먼저 하자.

내가 20살쯤이었을 때 관념이란 용어가 철학의 모든 것인 줄 알았다. 어려운 용어는 모두 다 관념이고 그 자체를 알아야 한다고들 하였다. 마치 누군가 ‘부처’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부처’라는 관념은 선사의 선문답처럼 홀려서 들렸듯이. 그때 이해하지 못한 그 관념은 그 자체로 있는 것이었다. 부처, 도(道), 신, 그리고 이데아도 그 자체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탐구하여 밝게 아는 것이 철학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나는 그 자체 있다는 것으로 답하기에는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이 있다고 느꼈다. 그 자체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자체에 대해 무엇인가 아직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당시 나는 산에 다니며 놀았다. 암벽 등반을 잘 하는 산 선배 중의 한 분이 밤에 텐트 속에서 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 산도 내가 다니는 산(개별)이 아니라, 그 산은 곧 신(관념)과 같은 것이었다.

‘산은 없다. 거기에 사람이 오르기에 있다’ 또는 ‘바위는 마음이다. 마음에 겁이 없으면 잘 오르다가, 아차 마가 끼면 온갖 잡사가 떠올라 한 손톱만한 잡을 것도 보이지 않아 오르지 못한다’ 지금 생각하면 ‘산은 없다’거나 ‘바위는 마음이다’는 어쩌면 영국 근대 철학자 버클리의 경지일지 모른다.

나의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어릴 때, 방학이라 고향에 가면 온갖 이야기를 듣는다. 그 중에 이 주제와 관련하여 생각나는 것이 있다. 누군가 ‘중공군 백만이 백두산에서 오줌을 누면 우리 반도가 떠내려 간다’거나, ‘중국의 인구 5억이 함께 발을 구르면 지구가 흔들거린다’거나, ‘소련의 모스크바 광장에 비둘기가 없다. 평화가 없으니깐’ 등이다.

앞의 두 물음은 고등학교 시절에 물리학을 배우면서 구체적으로 계산을 해보았고,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와 받침점을 계산을 하면서, 그런 지렛대는 실재상으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수학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위 두 이야기가 뻥(농담)이구나 했었다.

셋째 이야기는 여행도 못하는 시절에 누구도 가본 적이 없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을 검증해 볼 수 없지만, 막연하게 생물학적으로 비둘기는 키우면 되는데, 소련은 평화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둘기조차 살 수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지어낸 넌센스 또는 유머일 것 같았다.

철학을 공부한답시고 의문이 가시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부처를 믿었고 또한 미륵보살이 모든 사람을 밝은 세상에 살게 하기 위해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어디엔가 있다고 믿으셨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도 미륵이야 불교의 설화중의 하나라고 치부하면 되었는데, 세상은 그런 분이 여럿인 모양이다. 내가 ‘세상을 구원하는’ 또는 ‘저 세상에 있는’ 주제자에 대해 관심을 갖은 것은 이야기 속에서였다. 어느 때인가, 저 세상에 사는 이든, 주제자이든, 그런 어떤 누군가가 있기는 있는가?

그래도 극락에는 부처와 보살들이, 천당에는 크리스트와 천사들이, 중국에는 옥황상제와 그 부류들이, 우리 이야기 속에는 환인과 환웅 그리고 나무꾼과 선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떤 누군가가 있다고들 한다. 믿는 양식에 따라 각각은 착하게 살아서 각각이 바라는 그곳에 가고, 착하지 못한 사람은 죄 값을 치르는 곳에 간다고들 한다.

이상한 것은 그 명칭들 중의 하나가 주제를 하면 다른 명칭은 배제되거나 소외되고, 나아가 그 명칭에 신앙을 건 자들은 다른 것에 대해 비하하고 심지어는 악으로 간주한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것을 웃기기 위한 농담의 일부라고 하면, 각각의 신앙자는 농담이라고 하는 자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자기와 다른 자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하는 자들이 미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뿌리칠 수 없다.

신앙자가 자기를 제외한 사람에 대해 갖는 반대 또는 적대 의식이 무엇인가? 그 바탕에는 하나의 존재에 대한 그것 외에는 모순이라는 논리적 생각을 먼저 하는 경우이거나, 또는 그가 사는 문화에 젖어서 다른 문화에 대한 적대의식이 자신의 이기심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닐까?

자! 생각해보자. 그 곳도, 그 명칭들(환인, 부처, 크리스트, 상제)도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l’id?al)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왜 상징의 이상이 존재가 되고 가치에 개입하는 하는 것일까? 철학을 배우면서 다시 생각하기를, 관념(l’id?e)이라는 용어가 그 기원에 자리하고, 또 그 용어에 어떤 성질 또는 속성을 부여하고, 나아가 그 기능과 역량을 개입시킨 것은 아닐까?

생각에는 이상도 있고 관념도 있고, 그리고 일상적으로 대화를 위해 일반적 사물을 지칭하며 소통하는 개념들도 있고, 자신도 이해 할 수 없어서 어떻게든 이름을 붙여서 만든 것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이렇게 가라리 네히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본다. 이 중층에는 상징으로 이상, 논리적으로 관념, 경험 일반의 개념, 잘 알 수 없지만 이름을 붙인 이념(유명, 이름 붙이기)이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관념과 이념을 따로 구별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 답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제 그 이야기, 즉 담론을 시작해보자.

관념은 어원적으로 플라톤의 이데아(idea ?δ?α)이다. 이 이데아는 1. 형식, 2. (사물을) 봄(lat. species), 3. 종류, 본성. 4. 에이도스(eidos ε?δο?), 분류, 종류, 류(類) 등으로 쓰였다고 한다. 나는 이데아라는 용어가 피타고라스의 수,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라는 사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간단히 말하면 원리상 수(數)에서 하나(un)는 수들 중에서 일자(l’un)가 아니다. 하나는 모든 것에 기입되지만, 일자(l’un)처럼 자기 스스로 따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존재(Etre)는 모든 사물에 부가 또는 바탕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는 물체 없이 따로 현존(l’existence)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와 존재가 ‘있다’고 할 때, ‘있다’는 ‘없다’고 말할 수 없기에 쓰인 논리적 용어정도, 한계의 용어라고 생각한다. 이 이상의 논의는 전문적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여기서 그치고, 우리의 주제 “관념”으로 가보자.

“이데아”를 설정한 플라톤의 이 용어가 “관념”으로 번역된다. 이데아는 영원하고 불변하며, 지적 본질 또는 지적 형식을 나타낸다. 그리고 감각적 사실들은 이 이데아에 참여한다(분유한다)고 한다. 이 “이데아의 세계”는 지상의 세계, 또는 물질적 세계에 대립된다. 또한 이데아 세계는 진실한 세계이며, 지상의 세계는 가상의 세계 또는 현상의 세계라고 한다. 게다가 플라톤은 이 다수의 관념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설정하고, 이 관념들이 현세상의 모범이라 한다. 그리고 이 관념들의 최고의 관념은 선의 관념이라 한다.

플라톤의 이런 생각(id?e)은 아름다움(미 美)을 판단하면서,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판단하는데 있어서, 인간들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판단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논쟁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아름다움의 관념은 인간의 인식과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즉 미의 관념은 인간과 별개로 존재한다. 마치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처럼. 그럼에도 인간의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점에서 어떤 이는 담론은 당시의 시대와 관계있다고 하고, 플라톤이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와 싸움을 위해 이러한 주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플라톤은 소피스트의 상대주의 세계를 전복하기 위하여 진실한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선언한 것이라 한다.

나는 이 전복이 현실적 개념의 기준을 삼기 위한 노력이지만, 심층에서 우러나는 새로운 개념의 생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여긴다. 아름다움의 관념은 기준이 아니라 어쩌면 상징으로서 이상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환희의 외적 표현일 뿐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말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아름다움을 인간과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은 이름(유명 有名)일 뿐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나중에 말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이란 이름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것 만을 여기서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플라톤의 이데아가 별개적 존재라는 것을 반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 당대 그리고 중세 이르기까지의 문화 속에서 이상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반박하기에는 인간의 삶의 터전이 너무나 열악했다. 단지 있을 수 있다면 거지처럼 살았던 퀴니코스 학파의 사람들이 있었거나 걸승처럼 떠도는 수도자가 있었을 것이다. 열악한 사회조건에서 터전을 부정하고 미래의 저세상에 희망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던 인민은 현실의 고통과 가난을 부정하고 미래의 삶의 지표로서의 이상을 수용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퀴니코스 학파는 내세와 죽음을 미끼로 담론을 전개하는 것을 사기라고 보았다. 내일의 희망, 미래의 신앙은 현실을 부정하고 개혁하려는 힘일 수도 있지만, 현실의 열악한 조건을 수용하고 묵묵히 살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아편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르네상스라는 시기 이전에 유명론자들은 관념세계에 대한 비판과 함께 현실세계에도 미래세계와 같은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유명론자들은 관념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 소리(flatus vocis)일 뿐이라는 이유에서 현실의 사실에 부합하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과학은 물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는 관점을 제시한다. 갈릴레오는 천상의 운동이 지상의 운동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보았다.

바로 이 시기에 데카르트는 진실한 관념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면서도, 그 독립적 존재에 물체의 관념을 포함시키고 있다. 또 그는 사유와 부피라는 관념들이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다고 하였다. 이런 관점 속에 두 개의 실체의 존재를 주장한 것은 관념의 전복은 아닐지라도 철학사의 전환이었다.

데카르트는 타고난 관념(l’id?e inn?e)이 “명석 판명”한 것으로 여겼다. 이 관념은 영국 경험론자들의 견해처럼 만들어지는 개념도 아니고, 칸트처럼 절대적 공간과 시간 속에서 선천적으로 구성된 개념도 아니며 선험적 변증론에서 성립하는 이상적 이념도 아니다. 경험론자들은 대부분 이데아와 같은 신 관념은 이름일 뿐이라고 여긴 데 비하여, 데카르트는 수학적 명증성의 확신으로 창조자로서 신은 아니지만 절대적 관념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근대 철학은 플라톤 이래로 중세에 이르기까지 절대적 별개 존재로서 관념의 본성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났다. 그 대신에 관념이 어떻게 생겨나느냐에 관심을 가졌다. 데카르트는 이에 대해 세 가지 관념들을 구별했다. (소위 선천적이라고 표현하는) 타고난(inn?es) 관념들, 밖에서 오는 부수적(adeventices 우연적) 관념들, 내가 자의적으로 만드는 인위적(factices) 관념들이다. 표현이 즉 관념이지만, 플라톤의 표현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현대적 번역으로 개념들이다. 물론 데카르트는 타고난 개념(관념)이 신의 절대적 관념에 의해 우리 정신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다.

이와 달리 경험론자들은, 특히 홉스 같은 이는 타고난 관념이 없다고 보았다. 초월적이고 절대적 신앙을 벗어난 경험론자들은 물질적 세계의 일반성에 주목한다. 개념의 형성은 상식(공통감각)을 통해서 경험 속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형성이란 인상을 통해 우리의 정신 속에 각인되어 반복의 결과로서 일반성, 즉 개념이 된다.

이런 귀납적 방식은 흄의 인과성의 원리에 대한 회의로 과학적 지식의 확실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즉 과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에 의한 판단들은 개연적 인식으로서 보편성을 추구하는 지식의 확실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귀결에 이르렀다. 이는 칸트로 하여금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 이르게 한다. 칸트에게서 개념은 미리 주어진 2선험적 형식과 12개의 오성의 범주를 가지고 인간이 구축하는 것이다. 이 전환은 데카르트에서 전환이라기보다 플라톤의 관념의 형성에 대한 전환이었다.

플라톤은 관념을 인간이 외재적으로 원래 있는 것으로 믿음으로써 그에 대해 열망하는 (소크라테스적 사랑 필로스의, 심리학적 욕망의) 대상으로 보았다면, 칸트는 관념을 인간이 선천적 능력과 선험적 구성력을 통해 포획하는 것으로 보았다. 공간의 개념을 예로 들면, 플라톤에서는 공간은 ‘하나’와 ‘존재’처럼 부정할 수 없이 실재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비하여, 칸트는 공간이 선천적으로 절대적 형식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여겼다.

데카르트에게 관념(개념)은 형식적이 아니고 실재적이지만, 그 실재성으로서 공간 또는 부피를 이해하는 데에는 생물학적 일반성의 관념이 도래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베르그송은 이에 대해 설명하면서 서양 철학사가 데카르트 이후 400여 년을 인간의 이기심(틀뢰즈 용어로 포획성)으로 인하여 실재성을 상실하는 길로 나갔다고 하면서 한탄한다. 그는 이 버려진 미지의 세계로 길을 돌려놓고 심층으로 탐구해 들어갔다. 그래서 2500년 이래 플라톤주의자들의 전도된 심리학을 바로 세운 것이 베르그송 자신이었다고 한다. 이를 이어 들뢰즈는 그의 철학을 “개념의 생성”이라 부르면서, 생성의 철학은 플라톤주의의 전복이라 했다.]

어쨌거나 인간 지성에 대한 관점이 관념의 원리 또는 본성에서 관념의 형성 또는 생성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칸트에 이르러 관념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의 올바른 사용을 구축하게 된다. 칸트에서는 플라톤주의자의 관념은 이상에 속하며, 개념과 판단을 통해 과학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철학이다. 이에 비해 들뢰즈 철학은 이상을 상징으로 바꾸고 상징은 의미가 여러 가지라고 한다.

나는 이쯤에서 “가라리 네히어라”에 비추어 정리하고자 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이상으로서 관념이며 상층이라는 한 ‘가라리’며, 데카르트에서 두 실체는 표면의 이중성이다. 즉 표면의 이 중성으로 두 ‘가라리’다. 경험론자들은 표면의 겉면을 공격하면서도 상층으로 공략하러 올라가다가 자기 회의에 빠졌으며, 칸트는 표면의 겉면을 인정하기 위해 표면의 속면으로서 선험적 형식과 범주를 내세웠지만, 이 두 가지를 다시 표면의 겉면으로 올리고, 속면의 생성에 대해 (생물학과 심리학의 도래를 보지 못하고 죽었기에) 무지했기에, 다시 말하면 물자체를 수동성의 영역의 일부로서만 보고 나머지는 버려버렸기 때문에, 심층으로 들어가는 “진정한 전회” 또는 “2400년 철학사를 전복”하지 못했다. 이 심층이 나머지 ‘가라리’이다. 자, 인간 의식에서 심층으로 들어간다는 것, 보다 정확하게 심층에서 솟아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때가 되었다.

칸트의 개념 구축은 매우 중요하다. 오죽 했으면 들뢰즈가 자신의 생성의 철학이 칸트 위에 서 있다고 했겠는가? 칸트가 죽은 시기(1804) 이후 즉 19세기 이래로 세상은 이전 시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다 방면에서 빠른 속도로 달라졌다. 프랑스는 이미 대혁명을 겪었다. 모든 인간이 자유, 평등, 박애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물질 문명이 인간의 의식을 변하게 했다. 왜냐하면 사물들을 다루면서 인간에게 이롭게, 유용하게, 실용적으로 만들 수 있는 철학적 학설이 이 세상의 변화에 걸맞게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또한 인간은 스스로 개념을 구축하였듯이, 인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터전을 열 가능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신의 존재에 의탁하지 않고, 심지어는 신과 같은 창조자로서 세계에 대해 창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르네상스 시대와 엄청난 차이로서 새로운 생산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미래를 당겨서 현실에서 풍요와 안녕을 통한 평등의 터전을 곧 구가하면서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증기기관과 모터의 발달이 생산력을 높였지만 생산물에 대한 노동자의 소외는 더욱 심화되고, 빈부의 격차는 어느 시대보다 인민의 삶을 열악하게 만들었다. 인민에 의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관념을 논하는 자들이 아니라, 경제적 기반에 대한 정치학을 말했던 맑스였다. 맑스는 새로운 개념의 구축이 변증법적 역사 속에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언젠가 다가올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칸트가 뉴턴 물리학의 인식적 토대를 주기 위해 개념을 구축한 것에 비해, 새로운 관점으로 개념의 생성을 보여준 것은 프랑스의 유물론자 전통에 선 의학생물학자들 중의 한명인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였다. 그는 역사가 어떤 주제자에 있어서가 아니라 자연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이 생명 생성의 터전을 이념(l’id?e)이라 불렀다. (이것은 어쩌면 자유의식의 상층으로 향하는 과정을 이념이라고 불렀던 헤겔과 대척점에 있다)

심층에서 생성되는 원리를 이념이라 부르게 되면, 소박한 유물론자는 그것을 생기론이라 한다. 이 의학생물학의 유물론은 물자체(심층)로부터 유익한 것만을 물체로 구축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물자체(자연 자체)가 생명을 생성하고 자기 단위 속에서 자치적이고 자기 조절적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 생명이 중동의 전설에 따라 삼천리에서 나온 설화의 영감이 창조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생성되었다고 하면 생명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질 수 없는가? 그는 원리로서 이념을 세우고 생명체 속에 이념이 있다고 주장한다.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이 이를 이어받아 주장하듯이 생명체의 이념은 오랜 생성과정에서 생성한 실재적 일반관념(표면이 상상 또는 개념)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일반관념을 들뢰즈는 개념의 생성이라 부른다. 그런데 서양 철학사적으로 영국의 경험론자들이 관념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일반 관념(개념)을 형성하였지만 그 체계의 단일성(통일성)에 부딪혀 상층의 관념을 인정했던 것과 달리, 이 의학생물학은 지금까지 오랜 과정에서 변화하는 힘에 의해 새로운 물체가 형성되고 이 형성된 신체(생명체)가 지니는, 또는 타고난 일반 관념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일반 관념(생성된 개념) 중에 데카르트의 부피(l’?tendue)도 이에 속한다. 이것은 경험적으로 실재하는 개념이며 태어나면서 갖는 개념이다. 이것은 베르그송 용어로 생명체 속에 등록된 것이다. 이 개념은 칸트가 말하는 포획하는 개념으로서 신체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생체 속에 오랫동안, 심지어는 생명의 역사 모두를 등록한 일반 개념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회상(r?miniscence)과 달리, 베르그송이 기억(la m?moire pure 순수기억)이라 부르는 이념이다. 베르그송은 관념의 동일성과 다른 의미에서 이 이념에도 동일성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인격성이라 부르고, 심층자아에서 표면자아에 이르기까지 실재성의 현전을 지속(la dur?e)이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동일성은 기학학적 동일성(l’identit?)과 같은 단어이지만, 지속을 정체성(l’identit?, 생명정체성)이라 부를 수 있으며, 이념이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 이 이념은 상징으로서 상층의 동일자에 대한 이데아와 전혀 다른 대척점에 있다.

물체의 형성에 대해 개념 형성을 소박한 유물론이라 하면, 생체의 생성에 관한 것을 실질적 유물론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의 실재론은 형상적 형이상학이라 한다면, 데카르트의 이원론이란 표현은 표면의 이중성의 실재성에 대한 형이상학이라 할 수 있고, 르네상스 이래로 400여년을 지난 후 회복한 실재성, 즉 전도된 실재성을 바로 세운 베르그송의 실재론은 질료의 형이상학이라 할 수 있다.

들뢰즈는 전복의 철학을 제시하면서, 생명 기억의 움직임 또는 이 능동성이자 잠세성을 노마드라 불렀다. 그에게 있어 표면 위의 겉면에 재현하는 칸트 식의 구축개념의 형성은 도구주의의 포획의 일부일 뿐이다. 표면 위에 말달리듯 선을 긋는 것을 노마드라고 부르는 것은 들뢰즈에 대한 곡해이다. 들뢰즈의 노마드란 의식의 흐름, 기억의 능동적 종합, 생명의 자기 발현이 심층에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표면의 약한 균열을 뚫고 나오는 연기(jouer)이다. 연기의 일반적 또는 공통적 감각을 상식이라 부르고, 그 상식의 일반화를 개념이라 부른다면, 플라톤주의 철학을 이용한 플라톤주의의 전복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재성은 의식의 흐름이며, 기억의 총체이며, 그 총체의 발현에서 자유가 있다. 철학은 오랜 과정 속에서 인격성의 자유 실현에 대해 기대해 왔었다. 그 기대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표면 위에 선긋기하는 철학 즉 규범의 철학은 정태적 철학에 불과하다. 인격성의 운동전개에 따른 동태적 철학의 도래는 이미 있어왔다. 그 실행이 남아있을 뿐이다.

류종렬(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