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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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6)

글: 이정호 교수(방송통신대)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3. 고대 그리스인의 동성애 – 소년 사랑(2)

부상을 당한 파트로클로스(수염이 난 사람)의 팔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는 아킬레우스. 여기서는 플라톤의「향연」에서 파이드로스가 지적한 것처럼 파트로클로스가 에라스테스로 그려지고 있다.(트로이아 지방에서 발굴된 도기 그림)

기묘하게도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소년사랑을 암시하는 내용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일리아스」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우정이 소년사랑으로 비쳐지는 것도 후대 작가들이 그렇게 다시 그렸기 때문이다. 호메로스 작품에 소년사랑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든다. 호메로스 시대에는 소년사랑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럴 경우 우리는 소년사랑이 호메로스 이후에 아주 폭발적으로 발달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당시의 생활상을 다 그리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표현기법의 측면에서도 두리 뭉실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그 최종적인 형태를 드러낸 것이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지방인 것을 고려한다면 소년사랑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플라톤의 「향연」(182D)을 보면 연설에 참여한 파우사니아스가 엘리스 지방과 보이오티아 지방에서는 소년사랑에 대해 너그럽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이오니아 지방에서는 그것을 추한 일로 받아들여졌다고 단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제도상으로는 스파르타가 지배하고 있었던 펠로폰네소스의 도리스 지방에서 소년사랑이 유래했다는 점이다.

아리스토게이톤과 하르모디오스의 조각상(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소장)

한편, 소년사랑으로 고양된 뜨거운 열정이 참주를 타도하는 영웅적인 기개로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사랑에 관해서(Erotikos)」라는 책을 쓴 폰토스의 헤라클레이데스(Herakleides ; 기원전 4세기의 플라톤-피타고라스학파 철학자)는 그러한 경우에 속하는 가장 유명한 사람들로서,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 가문 출신 참주 힙파르코스(Hippparchos)를 살해한 하르모디오스(Harmodios)와 아리스토게이톤(Aristogeiton)을 들고 있다.(헤로도토스「역사(Historiae)」5·55 이하를 참조). 그래서 아테네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을 기념해 조각상도 만들었고 향연이 베풀어질 때면 종종 그들의 행위가 정치적 해방을 가져다 준 영웅적 행위로 찬미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투퀴디데스 -그는 페이시스트라토스 가문의 통치에 대해 일부 호의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는 그것을 순전히 사사로운 연애사건으로만(dia er?tik?n xyntychian) 적고 있다. 아리스토게이톤은 연하의 하르모디오스의 에라스테스 즉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참주 힙파르코스가 하르모디오스를 열렬히 쫓아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리스토게이톤은 결국 그가 권세를 이용해 자기의 애인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여겨 힙파르코스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6·54)

또, 헤라클레이데스는 앞서 말한 책에서 위와 같은 영웅적인 태도의 예를 하나 더 들고 있다. 카리톤(Chariton)은 참주 팔라리스(Phalaris)가 자신이 사랑하는 소년 멜라닙포스(Melanippos)에게 가한 모욕에 분노하여 보복을 시도 한다. 그러나 보복은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게 된다. 그러나 카리톤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의연하게 연인 멜라닙포스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는다. 하지만 멜라닙포스는 카리톤을 구하려고, 자발적으로 자신이 그의 에로메노스임을 털어놓는다. 참주는 이러한 멜라닙포스의 행동에 크게 감동하여 두 사람 모두를 사면해준다. 에로스에 의해 고양된 사랑과 우정의 연대감이 얼마나 크고 견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이 밖에도 부지기수이다. 그야말로 어느 시대이건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amor vincit omnia).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의 계보를 더듬어 가면, 영웅적인 것뿐만 아니라 슬프고 애절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 「그리스 안내기(Peri?g?sis t?s Hellados)」를 쓴 파우사니아스(Pausanias)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의 입구에 세워진 에로스의 제단 비석글 하나를 전해주고 있다.(1·30·1). 아테네의 거류외인(metoikos)이었던 티마고라스(Timagoras)는 멜레스(Meles)라는 소년을 너무 사랑했지만, 티마고라스는 멜레스에게 사랑을 얻지 못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가파른 절벽 위에 서 있었을 때, 멜레스는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 절벽에 뛰어내릴 수도 있어요?”라고 물었다. 티마고라스는 그 말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멜레스는 그것에 몹시 충격을 받아 몸져 누워 있다가 얼마 후 자신도 그 절벽으로 가 몸을 던졌다.

물론 소년사랑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양태들 속에는 부드러운 울림도 있다. 우선 기원전 5세기경에 앗티카 지방에서는 디오뉘소스 축제의 행렬에서 미소년들에게 바쳐질 상아로 된 하프가 되고 싶다고 하는 어떤 한 남자의 노래가 향연자리에서 많이 불려 졌다고 한다. 물론 이 노래의 둘째 절에서는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여인이 몸에 걸치는 순금의 액세서리가 되고 싶다는 내용도 이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팔라틴 선집(Athologia Phalatina)」에는 플라톤의 시 몇 편이 들어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거의 위작임이 분명하고, 다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3, 29-32)가 아리스팁포스(Aristippos)의 저작에서 인용하고 있는 8편의 시는 진위여부를 두고 문헌학자들의 관심거리가 되어 왔다. 그 가운데에는 플라톤이 친구 디온(Dion)을 추억하며 “아, 나의 마음을 사랑으로 미치게 만든(ekm?nas) 디온이여”라고 노래한 구절이 들어 있다. 물론 플라톤이 동성애를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디온의 관계를 억측할 필요는 없겠지만 당시 유명 인물들을 비방하기로 이름 난 아리스팁포스(철학자 아리스팁포스는 아니다)로서는 아마 우리의 생각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인용한 시들 가운데에는 노골적으로 에로틱한 내용을 담은 6편이 포함되어 있고 그곳에는 소크라테스 주변 사람들의 이름도 눈에 띤다. 이 시들은 많은 논쟁 끝에 문헌학적인 측면에서 발터 루드비히(Walther Ludwig)의 주장이 제기된 이후 위작 쪽으로 기울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연구 결과 때문에 그 시들을 읽는 기쁨까지 손상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시에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상냥함과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다

 

별을 쳐다보는 너야말로 나의 별

아, 넓은 밤하늘이라도

되고 싶구나. 그 수많은 눈으로

너를 볼 수 있을 테니까.

 

앞에서 말한 「팔라틴 선집」에 실린 이른바 플라톤의 시들에도 비록 여인을 향해 경박하게 쓰인 것이긴 하지만 위와 비슷한 구도를 담은 시가 실려 있다.(5·83과 84)

 

아, 산들바람이라도 되었으면.

그대가 햇살을 받으며 걸을 때

그대는 바람이 되어 날리는 나를

부드럽게 가슴에 맞아 줄 테니까

아, 진홍색 장미라도 되었으면.

그대의 손이 나를 꺾어

그대의 눈 같은 젖가슴에

소중한 보석처럼 끼어 놓을 테니까

 

또, 장난스런 사랑을 노래하는 「아나크레온풍 시선집(Anacreonteen)」 가운데에는 사랑하는 여인이 끊임없이 자기에게 눈길을 주도록 그녀의 거울이 되고 싶다고 노래하는 한 남자의 시도 실려 있다.(22·5).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도기 그림)

지금까지 우리는 소년사랑에 대해 소년사랑이 드러내는 다양한 양태들 중에서 다소 대비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수많은 양태를 가진 소년사랑들 각각에 대해 도덕적 가치를 논한다거나 어디까지가 육체적인 탐닉이고 어디까지가 정신적인 사랑인지를 구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군사 공동체 내에서 소년사랑이 가지고 있는 헌신과 교육의 측면은 그 구별 자체를 더욱 애매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에서 크레타섬은 소년사랑의 풍속의 발상지로서의 명성을 엘리스 지방과 분담하고 있었는데 스트라본(Strabon)은 다음과 같은 기묘한 크레타의 풍습을 전하고 있다(「지리지(Geographica)」10·483). 사랑하는 사람, 즉 에라스테스는 주변 사람들의 승인을 얻어 젊은 소년 에로메노스를 유괴한 다음 서로 2개월간의 집단생활을 보낸 후, 소년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갑옷 한 벌을 주었다는 것이다. 소년 사랑이 주로 군사교육의 수단이었음을 명시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스파르타와는 달리 크레타의 소년사랑에 관해서는 별 증거가 없어 추측에 불과한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풍속의 기원이 군사·전쟁 지향의 사회에서 있었던 것임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한때 크레타 섬에서 동성애가 인구과잉 억제책으로 법제화된 적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정치학」2·1272a).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들 끼리 긴밀하게 묶여진 이른바 “테바이의 신성 부대”(hieros Lochos t?n Th?b?n)는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이 점을 증언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무장한 한 쌍의 테바이 신성부대 병사

 

기원전 371년 레욱트라에서 스파르타가 마케도니아에게 운명적인 패배를 당했을 때도, 펠로피다스(Pelopidas)가 인솔하는 이 “신성 부대”가 전투의 최전선에 서 있었고, 338년 그리스가 존망을 걸고 싸운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도 그들은 마지막 한 명까지 사력을 다해 싸웠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전투가 끝난 다음에 마케도니아 왕 필립포스 2세가 전장을 시찰하면서 신성부대 150쌍의 병사 300명 모두가 서로 꼭 안고 죽어 있는 것을 보고 감격해 하는 장면을 전하고 있다. (「펠로피다스」183) 마케도니아왕은 그들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과 소년들임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을 했다거나 혹은 당했다고 잘못 추측하는 자들은 반드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플루타르코스는 이들에 대한 보고를 통해 테바이 신성부대의 순결성을 부각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생존 중에도 아무런 수치스러운 일 없이 순결한 사랑만을 나누었을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플루타르코스 이외의 고대의 저작가들이 보이오티아 지방에 도착해서 전하고 있는 다른 증언들을 보면 그들의 관계에서도 여전히 관능적 쾌락이 넘실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 동성애 부대에 붙여진 “신성한(hieros)”이라는 형용사는 그 자체로 소년사랑이 가지고 있는 애매하고도 복잡한 특성을 보여주는 매우 함축적인 표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사이에 어떠한 성적인 색조도 발견되고 있지 않지만, 후대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관계를 육체적 사랑까지 수반하는 연인 사이로 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랑 역시 신성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이스퀼로스가 쓴 「뮈르미돈 사람(Myrmidones)」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열렬한 에라스테스로 등장한다. 플라톤의 「향연」(180A)에서 파이드로스는 아이스퀼로스가 그들의 진짜 관계 (즉, 파트로클로스가 에라스테스, 아킬레우스가 소년 에로메노스)를 뒤바꾸어 놓았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아이스퀼로스는 그 작품 가운데 한 장면에서 아킬레우스가 쓰러진 파트로클로스를 끌어안고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한탄하는 모습을 아래와 같이 그리고 잇다.(135 f. N. 228 f. M.)

 

그대는 허벅지의 맑고 깨끗한 성역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구나.

수천 번 입맞춤을 했거늘 아무런 은혜도 모르는 너.

 

또,

여기서 함께 숙영한 것이랑

나와 하나가 된 그 경건한 허벅지를

 

보다시피 아이스퀼로스는 호메로스와 달리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사랑을 아주 농밀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아이스퀼로스는 흥미롭게도 그 농밀한 사랑을 표현하는 문맥에서 마치 훗날 신성부대에 붙여질 수식어를 미리 준비라도 해주듯이 매우 종교적인 성격이 강한 어휘를 끌어 들이고 있다. 이를테면 우선 첫 번째 인용 단편에서는 허벅지를 설명하는 sebas hagnon이 눈에 띤다. sebas는 외경의 대상을 가리키지만, 이 명사는 자주 종교적인 영역에서 hieros와 함께 바야흐로 “외경스러움”, “신성함“으로 번역되는 말이다. ”순수한, 맑고 깨끗한, 성스러운“을 의미하는 hagnon이라는 형용사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동시대의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힙폴뤼토스(Hippolytos)」(1003)에서도 그런 용례가 나온다. 그곳에서 힙폴뤼토스는 더럽혀지지 않은 자신의 몸(demas)을 사랑(관능적 쾌락)으로부터 벗어난 hagnon한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또, 둘째 단편에서도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허벅지와 하나된 것(homilia)을 경건하다(eusebes)고 표현하고 있다. 이때 eusebes라는 말의 의미는 sebas라는 명사와 친족 관계에 있는 말로서 신성한 것에 대한 외경심을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면 아이스퀼로스(기원전 525?-456)나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4-406)는 왜 육체적 관계를 동반하는 동성 사이의 사랑을 표현하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 해답을 바로 그들의 뒷시대를 살았던 플라톤(기원전 428-348)에게서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향연」을 읽다보면 초반에는 소년 사랑을 중심으로 에로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이내 에로스가 성적 열망을 넘어서 마치 사다리를 타고 오르듯 점차 진리를 추구하는 고양된 정신으로 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스퀼로스는 당대의 소년 사랑을 노래하면서 이미 소년사랑 속에 들어 있는 그러한 정신적 요소를 강조하려고 한 것일까 아니면 한편으로 그것을 훨씬 넘어선 플라톤적인 에로스에로의 승화를 꿈꾸었던 것일까? 아무려나 우리는 이렇게 해서 이제 플라톤의 에로스론,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에 다가서게 된다.

(다음에 “4. 플라톤의 에로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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