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3)

Spread the love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3)

이정호(방송대)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2. 아프로디테(1)

우리는 지금까지 에로스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이제 사랑과 관련한 두 번째 위대한 신 아프로디테(Aphrodite)에 대해 살펴보자. 이 여신의 영역은 「일리아스」제5권에(428행 이하)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제우스는 분수도 모르고 지상의 전투에 간여했다가 손에 상처를 입은 귀여운 딸 아프로디테를 위로하며 이렇게 상냥하게 말을 건넨다.

내 딸아 전쟁에 관한 일은 네 소관이 아니란다. 너는

욕정 가득한(himeroenta) erga gamoio나 맡아 보아라, 전쟁에 관한

모든 일은 아레스와 아테네가 염려할 테니.

 

1.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아프로디테가 케스토스 히마스를 걸치고 있다. 폼페이 벽화 AD 1세기경. 나폴리 고고학박물관 소장

여기서 erga gamoio를 “혼사(婚事)”라고 번역할 경우 그것은 본래의 의미를 곡해하는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결혼의 신이 아니다. 보통 gamos(gamoio는 gamos의 소유격)는 ‘결혼’의 의미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전적으로 아프로디테 여신의 영역 즉 “성적 결합(die geschlechtiche Vereinigung)”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딧세이아」의 한 구절은 그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22. 444 이하). 오뒷세우스는 그 부분에서 구혼자(mn?st?r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강요한 이타케의 불한당들)들과 음란한 짓을 저지른 부정한 하녀들을 끌고 가 죽음으로 죄값을 치루게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날이 긴 칼로 한 명도 남김없이 그들을 찔러 죽여라. 구혼자들이 하자는 대로 은밀하게 몸을 섞으면서 느꼈던 ‘아프로디테’를 그들이 잊을 때까지” 여기에서 여신의 이름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단적으로 성적인 쾌락이고 그것이야말로 사실 이 여신의 고유한 관심 영역이다. 그리고 “아프로티데의 일”의 의미를 갖는 아프로디시아(aphrodisia)라는 말 역시 오직 양성간의 성적인 결합에 한정하여 쓰이는 말이다.

여신의 세력범위가 매우 명료하게 드러나는 예는 「일리아스」의 또 다른 한 장면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14. 214 이하) 헤라(Hera)는 제우스를 잠자리로 끌어들여 트로이아 성벽 아래에서 벌어지는 전투로부터 제우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으려 하지만 이 결혼의 여신은 사랑을 유혹하는 데는 별로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아프로디테에게 남성을 욕정에 빠트리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를 청하고 아프로디테는 그것을 받아들여 이른바 “아프로디테의 띠”라고 불리우는 케스토스 히마스(kestos himas)를 헤라에게 건네준다. 이러한 끈을 걸친 예로서는, 바빌로니아의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의 도시 키슈(Kish)와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Susa)에서 출토된 기원전 3000년경의 풍요의 여신의 나체상과, 폼페이의 벽화에 정부 아레스(Ares)와 함께 그려진 유명한 아프로디테의 그림이 있다. 이 끈에는 영험이 확실한 마법의 무늬가 자수(刺繡)되어 있었다(kestos라는 형용사는 그것을 가리킨다). “그 안에는 애정(philot?s)과 욕정(himeros) 그리고 아무리 사려 깊은 자일지라도 그 마음을 호리는 사랑의 밀어(oaristus)와 유혹(parphasis)이 깃들어 있었다”(14. 216-7) 헤시오도스도 아프로디테의 몫으로 정해진 명예로 처녀의 밀어(partheniou oaros), 미소(meid?ma), 속임수(exapat?), 달콤한 희열(glykeros terpsis), 애정, 상냥함(meilichios)을 들고 있다.(「신들의 계보」205)

이처럼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는 비록 중첩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에로스가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침투된 갈망이라면, 아프로디테는 그 갈망의 한 구현으로서 욕정에 불타는 erga gamoio 즉 ‘성적 결합’을 의미한다. 에로스는 플라톤의 「향연(symposion)」에서처럼 정신적인 것에로의 상승을 이끄는 힘으로 승화되기도 하지만, 아프로디테를 사랑의 정신화와 연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곧 살펴보겠지만 이 두 개의 신격이 가리키는 영역은 상당부분 실질적으로 중첩이 되어 나타난다. 아프로디테 역시 활동하는 영역으로 보자면 따로 제한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2. 아프로디테(비너스)의 탄생, 퀴프로스섬에 닿은 아프로디테. 보티첼리 1485년,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 소장

많은 신들이 그렇듯이 아프로디테도 처음부터 그리스의 신은 아니었다. 그녀는 소아시아 남쪽 퀴프로스섬의 신으로서 퀴프리스(Kypris)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고,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그녀는 퀴프리스 신앙의 중심지였던 파포스(Paphos)에서 우상으로서 숭배되고 있었고 원추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역사(Historiae)」2·12) 이와 비슷한 예는 페니키아의 화폐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 화폐에 원추형의 모습으로 새겨진 뷔블로스의 아스타르테(Astarte)신 역시 고대 셈족의 풍요와 생식의 여신이었다. 이것 또한 아프로디테가 오리엔트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여겨지는 주된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물론 그리스 원주민들이 대모신(Große Mutter)으로 섬기던 여신들 중 한 명이 아프로디테의 원형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그것 또한 아프로디테의 숭배에 오리엔트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의 주요 신들이 여명기 지중해를 둘러싼 여러 지역의 문화들이 융합해서 생긴 결과라는 사실에 충분히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아무튼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는 개념상 서로 매우 가깝고 중첩되는 부분도 많아서 양자는 차츰 밀접하게 관계를 갖게 되었다. 호메로스는 아프로디테를 제우스와 디오네(Dione)의 딸로 그리고 있지만 헤시오도스는 「신들의 계보」에서 그녀의 탄생을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거세하는 왕위 계승 신화와 연결 짓고 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분리라는 측면에서 그와 유사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힛타이트 신화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신들의 계보」에서 아프로디테는 크로노스에 의해 낫으로 잘려진 우라노스의 생식기가 오랫동안 바다를 떠다니다 불사의 살점 때문에 생긴 거품으로부터 태어났다고 그려지고 있다. 헤시오도스는 이 부분에서 아프로디테가 남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를 들어 아프로티테를 ‘남근을 좋아하는 신'(philommedea)이라고도 불렀다. 탄생 후 아프로디테는 퀴프로스섬에 닿아 아리따운 여신의 모습으로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그녀가 땅에 발을 딛자마자 모든 것들의 생식욕구를 지배하는 여신답게 여신의 날씬한 발밑에는 사방으로 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그녀가 태어나서부터 신들의 종족에게 갈 때까지 그녀와 동행하고 있는 신들이 곧 에로스와 애욕의 신 히메로스(Himeros)이다. (「신들의 계보」187-202).

에로스와 아프로디테는 제사에서도 종종 일체화되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북쪽에서 기원전 5세기 때의 신전이 발굴되었는데 신전에 새겨진 증언에 의하면 이 신전은 그들 두 신에게 바쳐진 것이다. 에로스와 아프로디테의 동행은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프리즈(Ostfries)에 조각된 신들의 모임에서도 나타난다. 그곳에서는 발랄한 아름다움에 빛나는 알몸 소년의 모습을 한 에로스가 아프로디테의 무릎위에 앉아 있다.

시인들이 뮈케나이의 여러 가지 호사스런 궁정 생활의 특색을 도입하여 올륌포스 신들을 시가로 그려냈을 때, 아프로디테 역시 확고한 지위를 갖는 신으로 그려졌다. 이 여신을 포함해서 올륌포스신들은 인간들처럼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면모도 풍기면서 제멋대로 행동하곤 하지만 그 신들 모두는 자주 상궤를 넘어서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항상 위대하다. 아프로디테는 이다(Ida)산상에서 벌어진 미모경연(Sch?nheitswettstreit)에서 파리스(Paris)가 자신에게 황금 사과를 건네 준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그 보답으로 파리스에게 헬레네(Hel?ne)를 안겨 주고 그 후로도 줄곧 파리스를 돌봐 주고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제3권에서는 연적사이인 메넬라오스(Menelaos)와 파리스의 결투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만약 아프로디테가 수세에 몰린 파리스를 노골적으로 가로채 짙은 안개로 감싸 향기로 가득 찬 그의 방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면, 그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로디테의 호의는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양모를 빗질 하는 노파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마치 중매쟁이처럼 향기로운 옷자락을 흔들며 헬레네를 파리스와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하도록 유혹한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에 담겨진 이 장면은 고뇌에 찬 한 여인의 정신적 깊이를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다. 헬레네는 이미 자신이 남편 메넬라오스와 조국에 저지른 잘못을 알고 그것을 오랫동안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유혹하는 노파가 다름 아닌 아프로디테인 것을 알아차리자 이내 정부인 파리스의 잠자리로 이끌고 가려는 그녀의 제의를 야멸차게 거절한다.

3.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비너스와 마르스) 보티첼리 1483, 런던국립미술관 소장

“아프로디테님! 당신이나 그를 위하여 애태우며 지켜주세요. 그러시면 언젠가는 그가 당신을 아내나 노예로 삼을 날이 올 거에요. 아무튼 나는 그리 가서 그의 시중을 들지 않겠어요. 그랬다간 모든 트로이아 여인들이 나를 욕할 거에요. 그렇잖아도 나는 마음이 한없이 괴로워요” 그러자 아프로디테는 크게 격분하여 그녀를 거칠게 몰아 부친다. “나를 자극하지 마라, 무모한 여인이여! 내가 성내는 날에는 너를 버릴 것이며, 지금 내가 너를 격렬하게 사랑하고 있는 그 만큼 너를 미워하게 될 것이고, 너는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 양쪽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일리아스」408-417) 올륌포스신들의 전횡은 요컨대 협박(Drohung)에 있다. 이 무서운 협박에 헬레네는 이내 겁을 먹고 어쩔 수 없이 하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트로이아 여인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여신의 뒤를 따라 파리스에게 간다. 이 장면에서 만큼 협박이 극적이고도 효과적으로 표현된 예는 그리스 문학 전체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음울하고 무서운 장면 뒤에는 그로테스크하게 펼쳐지는 또 하나의 상황을 보며 환호하는 이오니아 정신이 가득 넘쳐난다. 방안에서는 아프로디테의 의도대로 파리스와 헬레네가 호사로운 침대에 누워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고, 밖에서는 메넬라오스가 불구대천의 적인 파리스의 빈 투구만을 손에 쥔 채, 파리스를 찾기 위해 야수처럼 무리들 사이를 미친 듯이 뛰어 다니고 있는 것이다.

「오뒷세이아」 제4권에는 텔레마코스(Telemachos)가 아버지 오뒷세우스를 찾아 가는 길에 스파르타 궁정에 들렀다가 다시 메넬라오스에게 돌아와 그의 아내이자 정숙한 주부로서 살아가고 있는 헬레네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흥미롭게도 그리스 서사시의 등장인물들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것을 언제라도 신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헬레네도 그 장면에서 트로이아에 몰래 잠입한 오뒷세우스를 자기가 숨겨주고 뒷바라지까지 했노라고 변명조 섞인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뒷세우스 그분이 트로이아 사람들을 죽이자….나는 마음이 흐뭇했어요. 내 마음은 벌써 오래전에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돌아서 있었고, 아프로디테님이 그 때 나에게 불어넣은 미혹(at?), 그러니까 내 딸과 우리 부부의 침실과 그리고 지혜로나 외모로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내 남편을 버리고, 사랑하는 조국을 뒤로 한 채 저 땅으로 달려가면서 가졌던 그 미혹들을 지금은 후회하고 있거든요”(260-264). 이에 메넬라오스는 언제 헬레네가 파리스와 놀아났던가 싶은 말투로 “부인, 그대가 한 말은 모두 도리에 맞는(kata moiran) 말이오”라고 말하면서 흐뭇해하고 있다.

아프로디테는 그녀 자신이 결코 결혼의 신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오뒷세이아」의 제8권에서 음유시인 데모도코스(Demodokos)가 노래하고 있는 것은 이 여신의 부정한 행동이다. 그녀는 헤파이스토스(Hephaistos)와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인 헤파이스토스는 쇠를 다루는 기술에서는 따를 자가 없는 대가이지만 신체적으로는 절름발이 장애자였다. 그런데 그가 집을 떠나 있던 어느 날 당당한 체구의 전쟁의 신 아레스가 아프로디테를 찾아와 갖은 선물을 주며 그녀를 유혹하고 마침내 잠자리를 같이 한다. 헬리오스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헤파이스토스는 화가 나서 침대 기둥 주위와 위로 도망칠 수 없는 올가미를 거미줄처럼 둘러쳐 놓았고 결국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몰래 잠자리를 같이 하려다 그 올가미에 걸려든다. 이 소식을 들은 헤파이스토스는 노여움으로 가득하여 집으로 돌아와 그 가소로운 광경을 보라고 신들을 모두 불러 모은다. 그러자 부끄러워 집에 남은 여신들을 빼고 많은 신들이 그곳에 몰려와 그 광경을 보고서는 모두 웃음을 금치 못한다. 이 기묘한 장면을 읽어가면서 어떤 독자들은 어떻게 하면 신들의 노래에서 그 추잡함을 거두어 내고 읽을 것인가를 고민할지도 모르지만 이어지는 신들의 대화를 듣고 나면 고민 자체가 금새 무색해진다. 우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아폴론(Apollon)은 남동생인 헤르메스(Hermes)에게 너는 이와 같이 강력한 사슬에 묶여 꼼짝 못한다 하더라도 침대위에서 황금의 아프로디테와 함께 자고 싶으냐고 묻는다. 그러자 헤르메스는 지체 없이 “그랬으면 오죽 좋겠소!”라고 말하면서 “설사 이 보다 3배 이상의 많은 사슬들이 나를 감고있다 해도 그리고 신들과 모든 여신들이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나는 황금의 아프로디테 옆에 눕고 싶소이다”라고 대답한다. (266-342). 그러자 많은 신들이 다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나 그러한 광경 앞에서 유독 포세이돈만은 웃지 않고 헤파이스토스에게 아레스가 신들 앞에서 합당한 벌금을 낼 것이고 자기가 그것을 보증할테니 아레스를 풀어주도록 간청한다. 결국 헤파이스토스는 포세이돈의 간청을 받아 들여 그들을 풀어주고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군말 없이 반대방향으로 헤어져 자기들이 살던 곳, 즉 아레스는 트라키아로, 아프로디테는 그녀의 성역인 퀴프로스섬 파포스로 돌아간다. 퀴프로스섬의 우아의 여신들인 카리테스(Charites)들은 돌아온 아프로디테를 정성껏 목욕 시키고 영생하는 신들의 살갗을 뒤덮고 있는 불멸의 기름(elaion)을 발라주고 휘황찬란하고 사랑스런 옷을 입힌다. 이와 같이 데모도코스의 노래는 신들의 속내는 물론 관능의 신 아프로디테 여신 또한 그 황홀한 광채를 털끝만큼이라도 손상하지 않은 채 온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다시금 드러내면서 끝이 난다.

신화 속에 나타난 신들과 인간들의 이러한 모습들 모두 고대인들의 삶의 반영으로서 신화가 표상하고 있는 뿌리 깊은 인간 본성의 중층적 층위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 아프로티데(2) 다음에 계속)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