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 시범강좌[ⓔ시대와철학 알림]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 시범강좌

 

안녕하세요,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입니다.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은 분과학문으로 파편화되고 기업화된 낡은 대학의 틀을 벗어 던지고, 학문 간 통섭이라는 원리를 통하여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서로 평등하게 마주하는 새로운 대안대학의 플랫폼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2014년 새해를 맞이하여,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이 앞으로 펼쳐나갈 교육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시범강좌를 개최합니다. 이번 시범 강좌의 열쇠말은 [카오스와 비전 Chaos and Vision]입니다. 총 9강으로 이루어진 이번 시범강좌는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대안적 가능성들에 주목하였습니다. 위세를 떨쳤던 신자유주의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체제가 시작되는 이행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일어나는 나비효과를 통한 새로운 비전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의 시작을 알리는 시범강좌에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강좌 소개]

 

[3/11 후쿠시마, 끝에서 시작으로]

1/13(월) 19:00~22:00

최종덕(상지대 과학철학),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김익중(『한국탈핵』 저자, 동국대 의대 교수)

 

[인류의 위기와 대안에 대한 원효와 맑스의 대화]

1/14(화) 19:00~22:00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교수)

 

[케이팝의 흉내내기는 어떻게 문화자본이 되었나]

1/15(수) 19:00~22:00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어린왕자’에서 보편종교성을 읽다]

1/16(목) 19:00~22:00

박규현(부산동래생협)

 

[대안세계는 적녹보라 연대로부터 온다]

1/17(금) 19:00~22:00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박이은실(한신대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21세기 변혁 존재론을 위하여]

1/20(월) 19:00~22:00

김성우(한국철학사상연구회)+서영화(한국철학사상연구회)

 

[위기의 청년들에게 ‘자본’이 일용한 양식인 이유]

1/21(화) 19:00~22:00

임승수(경희대학교 강사)

 

[기억하라 1980년대 : 칠수와 만수의 시대극장]

1/22(수) 19:00~22:00

김종길(미술평론가)+한홍구(역사학자, 성공회대 교수)

 

[혼돈 속에서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

1/24(금) 19:00~22:00

대안적 지식생산자들의 파티 (홍세화, 조희연, 이명원 등)

 

 

 

일시 : 2014.1.13(월) ~ 2014.1.24(금), 저녁 7시 ~ 10시

(총 9회, 1/23(금) 및 토, 일요일 강의 없음)

장소 : 중림종합사회복지관 (충정로역 4번 출구에서 도보 3분)

수강료 : 강의 당 5,000원

신청(링크) : http://www.freeuniv.net

https://freeuniv.typeform.com/to/iQHPyI

문의 : kcunion2013@gmail.com / www.freeuniv.net / 010-4721-5757(사무국장 강정석)

 

 

 

 

 

 

주체성과 자율성[철학을다시 쓴다]-⑮

주체성과 자율성[철학을다시 쓴다]-⑮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제가 ‘자유’를 이야기하면 ‘사회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자유주의자네?’ 이렇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자유에는 결이 여럿입니다. 노예소유주의 자유 개념이 있고, 부르주아 자유 개념이 있고, 지주들의 자유 개념이 있고, 자본가의 자유 개념이 있고… 저마다 내세우는 자유들이 서로 결이 달라요. 무엇을 ‘자유민주주의’라고 그러죠? 자본주의를 자본민주주의라고 말하는 대신에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자유’가 하도 좋으니까, 저마다 자기 체제, 자기가 신봉하는 이념에 ‘민주’도 끌어다 놓고 ‘자유’도 끌어다 쓰고 그래요.

우리 헌법에 보장된 자유가 뭐죠? 신체의 자유, 사상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이런 것들이 다 들어가죠? 추상적인 것 말고 거주이전의 자유, 신체의 자유, 여행의 자유, 이런 소박한 것들을 생각해봅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는 사람은 아무 자유도 없어요. 돈이 없으면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고, 신체의 자유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헌법에 보장된 자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자유예요.

여러분들, 추석이나 설 때마다 도시에 붙들려 있는 아들딸이 ‘어머니, 미안해요.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이번에는 못 내려가요.’ 하는 이야기를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들어보셨죠? 그러고 철야하죠? 고향에 돈이 없어서 못 가는 거예요. 여행의 자유도 없고 고향 찾아 갈 자유도 없어요.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종만 있습니다.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아주 명쾌하게 갈라지죠. 이건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쓴 유명한 찰스 램이 한 이야기입니다. 흑인, 백인, 황인, 이런 인종구별 없다, ‘있는 놈’과 ‘없는 놈’, 딱 두 종류로 구별이 된다. 있는 놈은 다 있고, 없는 놈은 아무것도 없고… 오죽하면 ‘없는 놈’이라 그래요? 재산이 없으면, 돈이 없으면 ‘존재’조차 없는 거예요.

‘스탠포드 엑스페리먼트’(Stanford Experiment) 이야기를 잠깐 떠올려 보지요. 이 이야기는 책으로도 나오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으니까 따로 긴 설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아홉 명이 죄수 역할을 맡고, 열두 명이 간수 역할을 맡은 가상 감옥에서 벌어지는 실제 이야기입니다. 이 실험에 자원한 20대 젊은이 가운데 12명은 네 명씩 삼교대로 간수 역을 맡게 됩니다. 간수가 되는 사람은 죄수 역을 맡은 사람이 지닌 한 개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상식적이고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없애야 하고, 등질적인 죄수 집단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침을 받습니다. 죄수가 된 사람의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없애서 비인간화시키는 것이 간수의 임무예요. 감옥 체제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 임무이기 때문에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수록 죄수들을 비인간화시킬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정체성을 없앨 수밖에 없어요. 거기에서 죄수들에게서 심각한 시간 왜곡 현상이 나타납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 생명의 시간 가운데 자연의 시간이 우리 몸에 그대로 작동을 합니다.

 

영화 ‘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 출처: http://folksonomy.co/?keyword=15274

 

쥐들에게 실험을 해봤는데, 같은 용량의 인슐린 주사를 시간을 바꾸어서 투여하면 어느 시간대에서는 백퍼센트 죽고, 똑같은 양인데도 어느 시간에 투여하면 한 마리도 죽지 않습니다. 우리 몸 안에 저항이 커지고 줄어드는 생명의 주기들이 있는 거예요. 시계로 측정되는 인간의 시간에는 이런 게 하나도 없는데, 복종을 끌어내기 위해선 생명체가 지닌 자연의 시간, 곧 생명의 시간을 등질화시킬 필요가 있어요.

감옥에서 간수 역을 맡은 사람은 교대시간에 무조건 호루라기를 불어서 죄수 역을 맡은 사람을 일으키고 팔굽혀펴기 등 체제에 순응하고 권위에 순종하도록 온갖 종류의 벌들을 부과하는 거예요. 너희들은 이제부터 사람이 아니다, 너희들은 개성이 없다, 감옥 안에서 일률적으로 밥은 몇 분 안에 먹고 소변보는 시간은 몇 분 만에 끝내라, 이렇게 모든 것을 통제하게 된단 말이죠.

이 상황 속에서 죄수로 자원했던 선량한 중산층 대학생이(처음에는 모두 죄수로 자원하겠다고 하고 간수하기 싫다고 했던 사람들인데), 자기가 돈을 받고 계약을 해서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진짜 감옥에 갇혀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나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말하면 금방 나올 수 있는데, 못 나와요. 그리고 간수 역을 맡은 사람들은 점점 잔인해지고, 나중에는 취미 삼아서 성적인 학대까지 하게 됩니다.

이라크에서 자기들의 전리품으로 생각해서 붙잡힌 사람들 목에다 줄을 매서 끌고 다니고 성적인 모욕을 주고 그 행위를 사진으로 찍어서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슬람 세계에서 성적인 모욕이라는 것은 엄청난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목숨은 내놓을망정 그런 짓을 당하지는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바로 그런 반응이 가장 큰 약점이니까 그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려고 그 잔혹한 짓을 태연하게 저지릅니다.

그 미군들이 ‘스탠포드 실험’에서 나오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과 똑같은 사람이죠.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시스템’이, ‘매트릭스’가 작동하는 데 따라 그런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거죠. 그러니까 자유 박탈은 인간에게 비인간화, 몰개성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 박탈 가운데 가장 광범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도 등질적인 공간으로 바꾸고 시간도 등질적인 시간으로 만들어 생명의 시간 가운데 자연의 시간을 죄다 없애버리고 모두 인공의 시간으로 바꿔 전체 우주 체계, 아주 작은 소립자 단계에서부터 아주 큰 우주까지 전부 등질적인 시공간으로 바꿔서, ‘인간의 의식’ 속에서만 형성되고 합의되는 세계, 수학공식을 통해서 확정된 세계를 진짜 우주로 감쪽같이 바꿔치기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천체물리학이나 수학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이 덫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이 휜 공간이 됐든, 무한히 확산되는 공간이 됐든 날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달라지든, 달이 차고 기우는 시간이든, 지구가 해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시간이든, 사람의 의식 속에서 가공되는 시간은 잘라내는 기준에 상관없이 내용을 채우는 것들은 다 빼버립니다. 그래야 계산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화 된 세계, 이어진 연속체는 늘 무규정성이 들어가 있어서, 이게 이렇다, 저게 저렇다 딱 잘라서 수치화되지 않아 끊어낼 수가 없습니다. 측정 가능한 것, 수치화된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도시사회에서 삶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도시사회에서는 저마다의 삶을 인간끼리 통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통제하는 세계에서는 맨 밑바닥에서 맨 위까지 위계질서가 반드시 성립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맨 위에는 ‘빅브라더’가 있고 맨 아래에는 ‘노바디’(아무것도 아닌 사람)로 위계질서가 생기는데 이런 위계질서를 세우는 작업을 우리 왼쪽 뇌가 맡습니다. 분석하고 조직하는 것은 왼쪽 뇌에서 하는데, 인간 수컷들이 ‘반편이’들이거든요, 언어와 추론의 중추가 왼쪽 뇌에만 몰려있어요. 여자들은 이야기할 때 양쪽 뇌가 작동하지만 남자들은 한쪽 뇌밖에 작동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수컷들은 조직하면 주욱 늘어서고, 정치 이야기하면 정신을 못 차립니다.

어쨌거나 자율성이란 것은 생명의 시간 속에서만 싹트고 꽃 피고 열매 맺습니다. 생명의 시간은 자연계의 여러 생명체와 함께 살아갈 때 가장 도드라지게 드러나게 됩니다. 지나가다 우연히 보게 되는 강아지풀도 누가 언제 싹터라, 꽃 피워라, 열매 맺어라 이렇게 명령하고, 간섭하고, 통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연스럽게 싹트고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죽을 때는 알아서 죽고 또 땅에 묻힙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가장 경계했었던 말이 있습니다. 히브리스(hybris), ‘오만’이라는 뜻이죠. 현대 도시에서 ‘디지탈’화한 시간, 시 단위로, 분 단위로, 초 단위로 끊어낸 인간의 시간, 공간화된 시간은 인간의 오만이 극대화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하느님 흉내를 내죠? 생명체를 자기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 있다고 믿고, 사기도 치죠? 돼지 장기로 사람 장기를 대신해서 프랑켄슈타인처럼 몸 전체를 잘라내고, 잇고, 기워도 끄떡없다고 여깁니다. 돼지 장기를 사람 몸에 꿰맞추면 사람이 돼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몰라요. 물질체계에서는 상호교환이 가능하고 가역성이 성립이 되지만, 생명계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물질과학에 기초를 둔 생명공학자들은 생체조직과 물질조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생각 못합니다. 장기이식이라든지 유전자 조작이라는 것이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냐 하는 것은 여러 세대를 거쳐서 지켜봐야 합니다.

저한테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합니다. 장기기증 하지 않을 거냐고, 제가 착해 보이는 모양이에요. (일동 웃음.) 저는 자신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저도 저 자신을 못 믿는데 안구를 기증해서 눈을 번쩍 뜨게 만들면, 그 사람이 어느 순간 누구에게 갑자기 심한 증오심을 느끼게 될 때 칼로 푹 쑤셔 살인죄를 저지를지 어떻게 알아요?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이 꼭 그것을 고맙게 여기고, 착하게만 살라는 법 없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기증된 장기를 나쁘게 쓰려고 준비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요. 전 세계가 장기이식 시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있는 나라 있는 사람들은 없는 나라 없는 사람 눈알도 빼고 콩팥도 빼는데 혈안이 돼 있는 세상입니다. 죽을 때 기증한 장기가 꼭 성냥팔이 소녀한테 가라는 법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죽어서 장기 기증하겠다고 하면 착하단 말 들을 줄 알고 있지만, 이미 죽은 사람에게 착하다는 칭찬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안식교 사람들은 수혈과 헌혈을 안 하잖아요. 그것을 이기적인 동기와 종교적인 편견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전엔 저도 걸핏하면 수혈하고 헌혈하고 그랬지만 나중에 B형 간염을 걸려서 자꾸 간염 걸린 흔적이 복제되는 게 있어서 헌혈해도 그 피 버리게 된다고 적십자병원에서 하지 말라고 연락이 와서 그 뒤로 그만두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어떤 일을 했을 때 사회가 전부 그것이 옳다고 해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사회가 전부 그르다 하더라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정말 내가 이 일을 받아들이는데 내적인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자기 몸과 마음을 자율적으로 이용하고, 상황과 체제에 맞서서 자유로운 공간과 시간을 열어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시간을 인공의 시간으로 바꿔치기 하려는 모든 통제에 대해서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 말고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물읍시다.

삶과 생명체[철학을다시 쓴다]-⑭

삶과 생명체[철학을다시 쓴다]-⑭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미래가 없는 도시문명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대로, 그야말로 ‘되는’ 대로, ‘될 대로 되라’고 살아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떨쳐 일어서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냐입니다.

도시에서 봉기해서 혁명이 성공한 예는 역사상 한 번도 없습니다. 의회주의에 기대서 세상을 바꾸어 보려는 시도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아옌데 정권을 들 수 있는데 결국엔 미국이 뒷받침한 군부 쿠테타에 의해서 무너졌죠? 지금까지 인류 혁명의 거점은 늘 농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산과 혁명의 거점이던 농촌이 다 무너져버리고 있습니다.

제가 변산에서 십여 년 이상 농사를 짓다 보니까, 이상하게 나무가 하는 말도 알아듣게 되고, 물고기가 하는 말도 알아듣게 되고, 들에 나가서 볍씨들이 수군거리는 말도 알아듣게 됩니다. 제가 사는 변산은 소나무가 많았던 지역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변산 기후도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면서 소나무가 급속도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참나무가 자라는데, 가을이 오면 많은 도토리 알을 떨굽니다. 한 해에도 수천 알의 도토리를 땅으로 떨구는데, 제가 참나무에게 물어봤습니다. ‘우리 나라 산지가 70%인데 거기에 모두 네 씨만 뿌리내리게 하려고 그래?’ 그랬더니 아니랍니다. ‘그러면 해마다 뭐하러 그렇게 많이 떨어뜨려?’ 물었더니 자기가 죽을 때쯤 떨어뜨린 씨앗 가운데 한두 그루 건강하게 자라서 자기를 대신해 종이 유지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해요.

 

?한겨레

 

볍씨도 마찬가지죠, 한번 심을 때 두 알 세 알 심으면 스무 포기로 늘어나는데 한 포기당 백 알 넘게 달리고 해서 풍년에는 볍씨 하나가 때로는 천 단위로, 때로는 만 단위로 열매를 맺죠. 그래서 볍씨한테 ‘야 들판 전부를 니 종자로 덮으려 그래?’ 물으니 아니라 그래요. 쥐도 먹고, 새도 먹고, 당신도 먹고 씨앗으로 남긴 것으로 우리 종 유지하면 그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다에 사는 숭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수억 개의 알을 낳아서 태평양, 대서양까지 온 바다를 전부 니 새끼로 덮을 생각이냐?’ 했더니 아니라 그러죠. ‘그중에 한두 마리만 남아서 자기 종을 유지시켜 주면 그만이다’ 해요. ‘그럼 나머지는 뭐하려고 그렇게 많은 알이 필요하니?’ 물으면 자기 몸을 던져 다른 생명체를 살리고, 자기 새끼들이 그 생명체에 기대 살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알들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삼시 세끼 먹는 반찬들이 전부 다른 생명체가 밥상에 올리는 ‘생체보시’입니다.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생산력이라는 건 없어요. 그것은 ‘신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 시대의 신화죠. 씨 하나 뿌리면 수천수만 알을 얻을 수 있는 유기물의 세계에서도 무한이라는 건 없어요. 도시에서는 5%의 생산력만 늘어나도 ‘라인강의 기적’, ‘한강의 기적’ 이런 소리를 하는데 유기물은 무한축적이 안 돼요. 곡식의 씨앗을 이년만 묵혀버리면 발아율이 현저히 떨어져버려서 곡식 구실을 거의 못 합니다. 유기물이라 오래 두면 썩어버리니까 싫든 좋든 나눠야 해요.
그런데 ‘생산력의 무한한 발전’과 ‘생산물의 무한한 축적’에는 썩는다는 개념이 없어요. ‘무한축적’이 가능한 것도 무기물밖에 없는데 그것은 전부 ‘부동산’, ‘동산’으로, 화폐나 유가증권 같은 것으로 되면서 종이쪽지 하나에 수억, 수십억의 자산도 축적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어요.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자손만대를 물려줄 ‘사유재산’으로 법적인 보호를 받아요. 폭력적인 국가기구가 이 사유재산을 보호해 주죠.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이 질문을 던질 때, 도시 사람들은 답변할 길이 없어요. 도시공간에서는 사람들만 모여 사니까 ‘착취하고 살거나 착취당하면서 살지 뭐~’, ‘주인이나 노예로 살지 뭐~’ 이런 대답밖에 할 수 없어요. 전체 생명의 그물망 속에서 모든 생명체가 서로 도와 그물을 만들어가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아갈 길이 없어서 도시사람들은 덫에 갇혀 있는 거예요. 그리고 환상 속의 세계를 실제 세계라고 자기최면을 겁니다. 정신적인 유목민들이 우글거리면서 ‘가상의 초원’, ‘의식의 평원’을 질주하고 있어요. 실재하는 평원이 아니라 등질화된 의식 공간을 질주하면서 나는 지금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고 상상을 해요. 어쨌든 밥상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올라오는 것이 다른 생명체의 생명이다, 살아있는 몸을 나에게 제공하는 거니까 이것을 먹고 뭘 ‘해야 할지’ 성찰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되는’ 대로 살 수밖에 없어요. ‘하면 된다’는 능동성은 사라지고, ‘되면 한다’는 수동적인 반응만 남아요.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20)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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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호 (방송통신대학교 교수)

 

 

* 주제 3에서는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제8장 “Zur Philosophie, Wissenschaft und Redekunst”(Gesammelte Werke, Band VII, s. 275-421)의 내용을 수회에 걸쳐 발췌 요약하는 방식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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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3 :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 그리스 철학과 과학의 지성사적 기원과 의미

 

2. 신화와의 결별

다. 자연철학의 등장

그런데 그리스적 사고가 완전한 독립에 이르렀음을 선언해야할 시대가 도래하였다. 자연학과 윤리학 그리고 토론술(Dialektik)의 시기로 불리어지는 철학의 시대가 그것이다. 사실 이 시기들은 모두 하나의 지속적인 발전과정의 일환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자연학의 시대는 우주의 구조에 대한 학설과 함께 모든 저항을 이겨내고 마침내 신화의 시대와 결별하였다. 그리스인들 모두가 이 분야에 대한 지식에 굶주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 그만큼 일반적 추리력도 발전하여 그로부터 윤리학과 토론술도 나타났다. 철학의 가능성은 이렇듯 자연학에서 그 발단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만물의 근원과 성질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민족의 경우 그들의 종교에 이미 일정한 교리로 확립되어 있었지만, 마침내 그리스 사람들은 신화와 구전으로 전승된 자신들의 우주창조설화를 깨고 사물의 근원(archai)에로 육박하기에 충분한 자유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탈레스(기원전 640-550년)는 물을,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정자(apeiron)를 물질의 근원으로 주장하고 그 중앙에 대지가 구(球)로서 떠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물질의 근원으로 여겼고, 별들이 대지 위의 천정처럼 떠 있는 것이 아니라 공기 안에 있으면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의 밀레토스 학파에 이어서 이 영역에서 아주 중요하고도 현저히 뛰어난 인물이 나타났는데 그 사람이 곧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이다. 그의 저작은 고대에서조차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위대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단편들은 오늘날에서조차 실로 여러 가지 해석과 생각들을 낳는 모태이기도 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우주 만물을 생성 과정으로 파악하기 위해 영원한 새로움의 상징으로서 한 순간의 휴식조차 없는 불을 필요로 했다. 그에 의하면 모든 것은 끊임없는 유동과 영원한 개조의 한 가운데 있으며 싸움이 만물의 아버지이다. 그 귀결 안에서 그는 주기적인 반복의 세계를 불태우고 있는 영겁의 불을 상정하고 있다. 세계에 대한 위대하고 대담한 생각들 중에는 그가 최초로 말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것들 중에는 감각으로 확인하기 힘든 것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의 말에서 호메로스와 그 신들의 세계에 대한 공공연한 증오와 철학자가 폴리스에 대해 행한 것으로서는 가장 최초의 격렬한 이반을 발견한다. 그의 관심사는 매우 크고 넓어 개개의 폴리스 차원의 문제들을 넘어서 있었다. 그는 벌써 세계 시민이었던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40?-480?)

 

크세노파네스, 파르메니데스, 그리고 제논 등 엘레아학파의 사람들은 모든 것은 하나이고 그 하나가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이오니아학파에 대립한다. 그들은 범신론의 길을 걸으면서 헤라클레이토스와 같이 민족 종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신적 존재를 그 순수성 속에서 파악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오니아학파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완전하고도 자유로운 탐구와 다함없는 정진을 추구한다. 자유로운 사상은 그 자신의 필요로부터 학설로 발전하였고 또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들 모두 충분한 부 또는 간소한 생활을 바탕으로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에 완전히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러한 방식으로 이 시대에도 이미 철학자들 서로에 대한 경쟁이 지배하게 되었다.

 

파르메니데스(기원전 513-445)

 

그런데 어느 물질적인 원소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든, 운동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든, 다(多)의 통일체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든 또는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과 같이, 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든 아니면 데모크리토스와 같이 원자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든 간에 그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그 체계들은 모두 종교에 대한 단순한 주석이 아니고 오히려 독립된 창조물이었다. 신관에 의한 강제나 유인 없이 이루어진 이러한 자연학적 발견이나 예측은 본질적으로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사고와 개인들에 의해 수행된 최초의 연구 활동이다. 이러한 지식은 종교적 의식이나 신화의 옷을 걸칠 필요가 없었다(엠페도클레스(Empedokles)의 학설에서 보이는 증오(neikos)와 사랑(philia)과 같은 추상적 힘은 여전히 신화의 파편이라고는 해도). 물론 이오니아학파의 자연학(peri physe?s)이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그럴만한 시대적 조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식민지가 식민지로서의 걸음을 시작할 즈음에는 새로운 세계에 관한 지식이 풍부해지기 마련인 데다가 본토의 다른 땅보다 훨씬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으며 사고와 행동을 저해하는 모든 종교적 편견으로부터도 크게 벗어나 있었다. 이러한 사정은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낙사고라스(기원전 500?-428)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탈레스가 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고는 하지만 설사 그것이 사실이었다고 해도 그것이 민간 종교에의 예속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이오니아학파 사람들은 운동의 원인을 그 원소와 전혀 구별하지 않았으며 특히 아낙사고라스(Anaxagoras)는 그 ‘정신(nous)’을 여전히 물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고는 있었을 지라도 세계에 질서와 운동을 부여하는 원리로 삼을 정도로 위대한 혁신을 이룩했다. 최대한 기존의 아무런 전제도 염두에 두지 않고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Anaximadros)의 개체의 발생에 대한 설명 또한 그들이 그 다양한 추측을 행하는 데에 얼마나 독립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즉 그는 인간이 물고기로부터 서서히 진화해온 것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07?)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오니아학파 사람들의 주장이 제각기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이 학파의 독립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들의 뒤를 이어 나타나는 세 명의 밀레토스 학파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감각에 의한 지각을 신뢰하기 어려운 것으로 배척하고 있는데 그것은 보는 주체도 객체도 끊임없이 흐름 가운데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철학자를 어떠한 정치적 혹은 사회적 이유로 파멸 시키려할 경우, 통상 신에 대한 불경을 빌미로 삼곤 했는데 페리클레스의 정적들이 아낙사고라스에 대해서 제기한 소송은 그러한 중상들의 첫 번째 사례이다. 그가 호메로스의 신화를 도덕적으로, 신들의 이름을 우의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그는 태양을 한 개의 돌 또는 뜨거운 금속 덩어리로, 달을 일종의 지면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옥고를 치렀고 석방된 후에도 아테네를 떠나 람프사코스(Lampsakos ; 헬레스폰토스 동쪽 해안)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또한 자신의 책을 통해 “신들이 존재하는지 혹은 존재하지 않는지 나는 모른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아테네의 사람들에 의해서 추방되었고(기원전 411년) 그가 쓴 책들 모두가 그의 집과 뤼케이온 그리고 그것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들로부터 회수되어 몽땅 불태워졌다. 디아고라스(Diagoras) 역시 엘레우시스(Eleusis)의 비의를 누설했다는 혐의를 받고 더 심한 곤욕을 치루지 않으면 안되었다. 도망을 친 그의 목에 1달란톤의 상금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바다는 언젠가 완전히 말라버릴 것”이라고 말한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Diogenes)도 결국 도망을 가서 생명을 부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할 생각이다. 아테네의 민주정은 신들의 문제와 관련하여 희극에서는 제멋대로 다루어도 관대하게 내버려 두었지만 철학에서만은 유독 보수적이었다. 특히 기원전 432년에 디오페이테스(Diopeithes)의 제안을 받아들여 “신들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 혹은 자연현상을 해명하려고 시도하는 사람 모두를 고소해야한다”는 결의가 이루어진 이래, 자연에 대한 학적 탐구는 아테네에서 비밀리에 행해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상으로는 더 이상 철학을 억누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미 크세노파네스는 다신교적인, 또 의인적인 민간 종교에 대항하여 그 특유의 새로운 신의 개념인 하나이자 전체(hen kai pan)를 다음과 같은 말로 변호하고 있다. “사자로 하여금 만약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다면, 신들도 사자를 닮은 모습으로 그려질 것이다”. 또 데모크리토스는 민간의 신을 부정하고, 모든 사건을 필연성으로부터 도출하여 인생의 목표를 공포나 미신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평정(euthymia, euest?)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를 시조로 하는 원자론 학파는 회의론자들과 에피쿠로스가 출현하는 바탕을 마련했다. 물론 아리스토파네스가에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묘사하고 있듯이 그러한 움직임을 비웃는 일이 아테네에 만연해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철학을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모두 철학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무고자(sykophantes)들로부터 생명과 재산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오랜 전란기를 보내면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도 많이 익숙해져서 신들에 대한 불경으로 소송을 당한다 해도 예전만큼 그렇게 무서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들에 대한 불경으로부터 오는 위험을 가능한 한 회피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에피쿠로스는 신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신들의 세계 지배는 부정한다는 교묘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 철학은 민간 종교로부터 완전히 독립해나가면서(대체적으로 봐서 그렇다) 그렇다고 무신론은 아닌 일신론에 이르게 됨으로써 그 순환의 끝인 신플라톤주의에서 종교가 될 운명으로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를 향한 공격, 다시 말해 모든 그리스적 생존과 교양의 위대한 전제를 향한 공격은 전통적 신들을 향한 공격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사실 이 적대 행위는 벌써 피타고라스 때로부터 자신들의 신들에 대한 보다 큰 외경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행해졌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들에 대해 엄격한 신앙심으로 헌신하고 있었다. 실제 그들의 윤리학은 종교적 토대 위에서 성립한 것이었고, 게다가 종래의 신화들을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을 포함하고 있었다. 피타고라스는 지하세계에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했고 헤라클레이토스도 “호메로스는 아르킬로코스(Archilochos)처럼 시인들의 경시대회에서 추방당하고 채찍으로 맞아도 좋다”고 말했다. 게다가 또 신화를 거의 범신론적 개념상의 이름들로 극복하려한 크세노파네스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를 공격하는 엘레게이아(Elegeia)와 이암보스(Iambos)율(풍자에 적합한 운율)의 시를 써서 신들에 관한 그들의 언급을 비난하였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플라톤이 국가에 대한 저작에서 행한 시인들에 대한 비판이다. 후대의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이러한 그의 태도가 소크라테스가 조각을 단념한 것처럼 그 자신 비극 문학을 단념하게 된 데에서 비롯된 호메로스에 대한 질투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사색하는 사람들의 신화와의 결별은 이미 모든 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윤리학과 토론술 또한 순전히 철학을 통해서 자연학과 나란히 어깨를 같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현상으로서 소피스트 철학이 끼어들었던 것이다. 소피스트 철학은 사회 현상으로서 나중에 고찰하게 되겠지만 여기에서는 그리스적 사고와 지식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소피스트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해두기로 한다.

소피스트들은 철학자들로서는 아주 만만한 경쟁 상대였다. 따라서 철학자들의 말만 들으면 소피스트들에 대한 평가가 그리 좋지도 높지도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전해져온 선입견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소피스트들은 모두 외지로부터 아테네로 온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프로타고라스는 압데라 출신이고 고르기아스(Gorgias)는 레온티노이, 힙피아스(Hippias)는 앨리스, 프로디코스(Prodikos)는 케오스 출신이다.

 

고르기아스(기원전 483?-376)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많이 끌어 축제가 있을 때면 연설을 통해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존경도 크게 받아 고액의 사례를 받았다. 그들이 돈까지 받았는데도 대중들이 그들에게 갈채까지 보냈다는 것은 분명 철학자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라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만으로도 수긍이 갈 것이다. 즉 보통 사람들의 경우, 정말 도움이 되는 처방전이라면 공짜로 그것을 받는 것보다 사례를 지불하고 받는 것을 더 좋게 그리고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소피스트들은 아테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당시 가장 유명한 사람들, 예를 들어 페리클레스라든지 투퀴디데스(Thukydides)와 같은 사람들 또한 그들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이러한 일들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원인이 있고 그로부터 생긴 필연적 결과들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된 것이 단지 소피스트들의 윤리적 무관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자체로 선이고 그자체로 악인 것은 없다고 주장했고, 모든 것이 그 나름의 견해와 약정에 의해서(doks? kai nom?)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하는 것이며, 또 모든 일에는 찬반양론(duo logous)이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또 종교와 관련해서도 그들은 단순한 회의론을 넘어서서 바야흐로 부정론을 내세워 아테네의 사람들을 사로잡아 온갖 이상한 행위로 그들을 내몰았다. 그런데 소피스트들은 어떻게 이러한 생각들을 그토록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서 만들어 내고 유포할 수 있었을까? 사실 이러한 생각은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었고 소피스트들은 그것이 되살아날 수 있는 일정한 방식을 제공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그들에 의해서 개발된 연설기술(Redekunst)은 모든 인식이 주관적이라고 하는 학설과 일체의 것이 설득력에 달렸다는 학설과 결합되면서 더욱 고취되고 크게 육성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참된 인식은 승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철학적 문제들 전반에 대해 정통해 있었다. 특히 그들은 엘레아학파로부터 차용해온 허위 추론방법을 그들의 토론술에 적극 활용하였다. 그 기술을 익히는 것은 그들에게는 아마 정신적인 체력훈련(Gymnastik)이었을 지도 모른다. 비록 그들의 교육에는 깊이가 결여되어 있어 사람들을 ‘보다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요구에는 부응할 수 없었을 지라도, 그들은 세상사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과 기능을 가르쳤던 까닭에 대중들은 그들에 대해 대단한 사의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힙피아스는 올림피아에서 석조 인장 등 자신의 손으로 만든 온갖 종류의 치장물을 몸에 붙이고 나타나 스스로 일종의 백과사전적 만능인이라고 떠벌리고 다니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많은 실제적인 지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서적 또한 얼마 되지 않는 지적 풍토에서 대단한 지식욕에 불타고 있었던 시대적 요구에 영합했던 것이다.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굳이 만일을 빌어 이야기한다면 만일 우리가 그 시대로 돌아가 그들을 보았다면 우리는 그들이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가 이룬 것 같은 효과를 그 시대에 미쳤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주의 구조에 대한 학설(idea tou kosmou)과 천문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기하학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사용해 지도를 작성하는 방법까지 체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시인들의 작품을 해석하고 음악을 가르쳤으며 문법에도 정통해 있었다. 힙피아스는 기억술과 관련한 학문도 취급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논의영역에는 역사와 고고학, 폴리스의 종류에 대한 학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의 예비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비교정치학, 식민지학, 법률학, 가정 및 국가 행정에 관한 이론들이 두루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이든 다 물어보라”(das proballete)고 말한 고르기아스의 그 유명한 재촉이 논리학상의 조작에 관한 것에 불과하고 모든 학문 영역에 걸친 모든 질문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어쨌든 그 말은 소피스트들의 지식이 그 만큼 풍부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고, 소피스트들은 그것을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유포함으로써 그리스 사회에서 하나의 은혜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의 생활에서 필요한 요소였고 그런 점에서 그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당시 사회에서 그렇게 하찮은 취급을 받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3. 연설기술 -다음에 계속)

 

상황에 따른 인간의 의식과 행동 변화[철학을다시 쓴다]-⑬

상황에 따른 인간의 의식과 행동 변화[철학을다시 쓴다]-⑬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비판은 쉽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때려 부수는 일은 삽시간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안을 제시하는 것, 이렇게 때려 부수고 나서 여기다 무엇을 쌓아올릴 것이냐를 의논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없을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할 수 있고 누구든지 민감하게 대응을 하고 없애야 한다고 뜻을 모읍니다. 스스로 행동에 옮기지는 못해도 없애야 할 것이라는 의식은 분명히 갖습니다. 하지만 ‘있어야 할 것’인데 지금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서로 편안하게 살자, 서로 우애하면서 살자, 전쟁은 안 돼, 이런 빛 좋은 말로 때우는 것을 넘어서서 구체적인 실천과 연관 지어서 이건 없는데 우리가 빚어내야겠어, 길러내야겠어, 만들자고 뜻을 모으고 힘을 길러내는 데에는 창조적 지성의 결집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아주 애 터지고 지루하고 힘든 건설의 과정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건설은 우리가 머리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머리를 쓰는 일도 필요하지만 건설은 손과 발, 몸을 놀려서 합니다. 손발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몸이 튼튼해야 건설 사업에 동원이 되죠.

중국에 문화혁명이 있었죠? 문화혁명이 일어나고 십여 년 이상을 마오가 생존해 있었고, ‘사인방’이 전면에 나섰을 때는 세계가 온통 중국의 문화혁명에 열광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체 게바라를 읽고 다니듯이 그 당시에는 마오가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혁명지도자였습니다. 그 후로 사인방이 몰락하고, 급속도로 경제력이 떨어지게 되고, 세계열강의 대열에서 멀어지게 되면서, 또 문화혁명 기간에 피해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비판의식과 창조의식을 겸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핍박을 받으면서 치르게 된 대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엔 등소평 체제가 등장해서 급속도로 시장경제 쪽으로 경제정책을 바꿔 오늘날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죠.

1966년 천안문 성루에서 신문을 읽는 마오쩌둥 – 출처: http://blog.hani.co.kr/blog_lib/contents_view.html?BLOG_ID=spider&log_no=26193

중국에서 부정부패는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온 사람에게 직접 들은 말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그 정도로 부정부패가 심하면 나라가 거덜 났을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는 괴물경제를 유지하면서도 아직 희망이 있는 까닭은 문화혁명 시절에 농촌이나 공작소로 하방되었던 많은 청소년들이 지금 중국 공산당의 중간 간부가 되어 국정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희망입니다. 이 사람들이 문화혁명 때, 어떤 사람은 자발적으로 지원하고 어떤 사람은 강제로 끌려가서 농촌에서 몇 년, 공장에서 몇 년씩 몸으로 때운 신체적 기억이 방부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거의 모두 공산당 당원들이고,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 두터운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패가 널리 확산되지 않고도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가능한 체제가 꾸려진 것입니다. 몸으로 겪고 때우는 게 그렇게 중요합니다. 우리의 의식은 별로 믿을 게 못 됩니다.

체제와 상황이 사람을 규정하는 힘이 너무 커서, 책상머리에서는 혁명가이기도하고, 영웅이기도 한 사람들이 현실에서 상황이나 체제의 압력에 짓눌리게 될 때 어떻게 망가지고 변하게 되는지는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득을 통해서나 토론을 통해서 사람이 변화되는 것만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 생산관계가 건강하게 바뀜에 따라서 생산력이 증가하고 그 증가한 생산력은 무한히 다양화되고, 무한히 커가는 욕망을 무한히 충족시키게 되고, 그렇게 되면 ‘쪼는 질서’(pecking order)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을 겁니다. ‘페킹 오더(peking order)’는 먹이를 적게 주면 제일 힘 센 닭이 다른 닭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다 쪼아서 쫒아버리고 혼자만 먹이를 독차지해서 마음껏 먹다가 배가 차면 물러나고, 그 다음 힘이 센 놈이 쪼고, 배가 차고, 물러나고, 힘없는 놈은 나중에 비리비리 말라 죽는 힘센 놈 중심의 위계질서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것을 ‘쪼는 질서’라고 합니다. 마르크스 레닌은 생산관계가 건강해져서 생산력이 무한히 발전하게 되면 쪼는 질서가 없어지고, 자연히 평등한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런 신화는 믿지 않죠.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서는 벌써 200년 전부터 그리고 덩달아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50년 사이에 온 세상이 도시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우선 지구라는 생태 환경 자체가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무한한 탐욕에 길들여져 있는 도시인들이 물질 에너지를 펑펑 써서, 과거 삶의 자산, 미래 자손들이 물려받아야 할 생명 자산까지 짧은 시간에 전부 탕진해버리고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후손들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물려줄 것이라곤 전쟁과 굶주림과 증오밖에 없는 상황이죠. 지구라는 한정된 행성에 생명자원이나, 물질자원이나 모두 한정되어 있는데, 이걸 펑펑 써버리면서 온 인류가 모두 무한히 증가하는 생산력에 따라서 무한히 증가하는 욕망을 무한히 충족시킬 수 있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생명에너지, 생체 에너지를 써서 사는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200년이 지나지 않은 짧은 기간에 인류의 삶의 양식이 급격히 바뀌어 이제 물질에너지에 기대지 않으면 너도나도 살길이 없는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물질 에너지는 확산에너지로, 폭발시켜서 얻는 에너지인데, 이 폭발 과정에서 80% 이상의 에너지가 낭비되고 그 낭비된 에너지는 모두 대기를 오염시키고 수질을 오염시키고 토양을 오염시키는 산업쓰레기로 바뀝니다.

생체에너지는 응집에너지입니다. 여러분들 ‘확산’(divergent)과 ‘응집’(convergent)이란 말 알고 있죠? 응집 에너지가 사용되는 데는 낭비요소가 최소화되고, 산업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에너지가 순조롭게 순환하는 쪽으로 쓰이게 되는데, 현대 도시사회는 응집 에너지, 곧 생체에너지만 써서는 살길이 없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생체에너지가 응집되어 있는 정상 상태의 유기물은 자연과 인간관계 속에서만 생산되고 분배되고 소비됩니다. 그런데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생산지가 도시내부에는 없습니다.

협동경제의 철학적 이해[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①

협동경제의 철학적 이해/1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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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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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이 사람처럼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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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더 잘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준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인구 증가, 그리고 그에 따른 사람들 사이의 경쟁과 다툼 이런 사회의 변화 때문에 정말 잘 사는 삶의 의미를 잊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원래 사람들은 혼자 사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사는 것이 훨씬 더 잘 살 수 있었던 원형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 혼자 잘 살아보겠다는 개인주의라는 삶의 위세에 눌려 남들과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은 어느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희귀한 삶의 양식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원시적인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지 현대라는 역사적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사람이 사람처럼 잘 살 수 있는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 찾아보려는 노력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처럼 살자고 굳이 떠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환경오염, 문명오염, 정치오염, 그리고 그보다 더 겁나는 개개인의 의식오염이 이미 퍼져있는 이 땅에서 과연 내가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도 실망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쓸려간 땅에도 그 다음 해에는 풀이 돋아난다. 이러한 풀의 기운을 되살려 풀죽어 가는 삶에 풀먹이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처럼 살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저절로 그러하고” 또한 남에게 기대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 그러면서도 더불어 “함께 하는” 자연(自然)을 생각하고 그러한 자연의 모습을 닮아 가려는 삶을 실천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너무 추상적인 방법이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반문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오염된 틀에 너무 쉽게 면역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처럼 살기 위하여 “억지로” 그리고 “남에 기대는” 그리고 “혼자만 살려고 하는” 모순된 삶에서 벗어나면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의 삶이란 모두가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가거나, 산업문명을 거부하여 원시생태로 돌아가자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의 삶이란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작은 희망이고 구체적인 실현가능의 삶을 추구하는 하나의 길일뿐입니다. 그래서 현실 안에서 “억지로” 그리고 “남이 시키고 남에 기대는” 모순된 삶의 벽을 하나 하나씩 깨트리고, 그래서 “함께 하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같이 걷고 함께 마련하며 어울어 숨을 쉬는 그런 작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삶의 공간은 지리적 공간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라고 하는 문화공간에 적응하는 새로운 방식의 삶의 패턴이기도 합니다.?

사실 자연의 흐름대로 저절로 살고 스스로 사는 삶, 그리고 우리의 자연과 함께 또한 남과 함께 두고두고 잘 살기 위해 필요한 실천의 지식은 아주 간단합니다. 첫째 적게 쓰면 된다. 그리고 둘째로 이왕 썼으면 그 쓴 것을 다시 쓸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이렇게 간단한 논리를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현대인의 잘못된 생각이고 잘못된 지식입니다.?

그러나 그 잘못은 한 개인 개인에게 있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해서 공학적이거나 경제학적 접근만으로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의 환경을 말하기 전에?자연을 죽어 있는 물질로만 보는 기존의 입장이 아니라 자연을 살아 있는 유기체의 하나로서 바라보는 인간의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환경은 인간학이 우선되어야 하고, 나아가 인간이 모여 잘 살 수 있기 위하여 철학의 중요한 숙제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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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소외와 소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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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강조합니다. 획일화된 전체 속에서 자기 자신을 하나의 부속품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역사와 지역을 막론하고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고도의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개인주의의 양상은 조심해서 보아야 할 점이 많습니다. 대중매체서나 길거리에서 이제는 첨예화된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공동체 의식은 점점 뉴스 감으로 되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개인의 개성을 찾는 일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러한 매체에서 말하는 개성은 편협한 개인주의와 산업화의 한 단면이고, 상업주의의 농락에 빠진 개성이며 따라서 인간의 고립을 자초하는 이기적 개인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사회 속의 인간은 이제 자기만이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위기 의식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위기 의식 때문에 타인에 대한 비인간적 공격을 일삼습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공동체가 지니는 관계의 끈을 모조리 끊어 버리고 맙니다. 관계의 끈이 없어진 나는 생존에 대한 강박감 때문에 남을 헐뜯고, 남이 안볼 때 쓰레기를 대충 버리고 마는 무임승차하는 사람이거나,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자아상실 혹은 편집광에 가까운 자만심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 나 자신을 새롭게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 자신만의 성곽 안에서 자기 자신만을 투영하는 주머니 속의 반사경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역사의 그물망 속에서 내가 속한 위치를 정확히 볼 수 있어야 비로소 객관적인 나의 모습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삶의 그물망이란 상업주의나 개인주의의 맹목적인 희생물이 될 것을 거부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그런 삶의 양식을 말하는 것이고, 그런 삶의 양식은 역사와 시대의 아픔을 같이 하는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진 : http://laborhealth.or.kr/28730

물론 이제 현대인은 기계화된 산업화 속에 매몰된 자아를 찾으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기계나 사회조직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당당히 삶의 주체자로서 행동하고 싶어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많은 현대인은 회사의 과장으로서의 나, 두 아이의 아비로서의 나, 동창회 총무로서의 나, 교회 집사로서의 나 등으로서 답변을 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내가 진정한 나인지를 되물어야 합다. 어떤 역할 속에서의 내가 아니라 나의 삶의 진정한 주체자로서의 나를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어려운 말을 써서 ‘소외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합니다.?

주체적인 나를 찾기 위하여 먼저 할 일은 내가 남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남이란 지금이라는 시점에서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도 포함합니다. 시간적으로 먼 남을 같이 생각하는 일을 우리는 역사성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타인을 생각하는 일은 환경을 생각하는 출발점입니다. 그 역사적 타인은 나의 자손과 지구 저편 사람들의 자손까지도 포함합니다. 왜 나 하나 살기도 어려운데 그렇게 멀리 있는 남까지도 생각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나도 비로소 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는 더욱 그러합니다. 현대를 보통 정보사회라고 말합니다. 정보사회가 되면서 지구 구석구석이 더욱 가까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는 분명히 과학의 산물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교통과 통신의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해 나와 남이 더욱 가까워졌습니. 이렇게 과학기술을 통해 외형적으로는 서로 가까워졌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아성을 더 높게 쌓고 불필요한 소비만을 낳게 하는 거대한 상업주의를 거들어 주고 있을 뿐입니다.?

과거에는 자기가 사는 지역만이 세계의 중심이었고 세계의 전부였습니다. 그 작은 세계 안에서 나는 세계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주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세계관을 보통 신화적 자연관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신화의 시대에서 문자의 시대로, 그리고 나아가 정보의 시대로 변화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언어로 우리의 자연을 전부 그리려고 합니다.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자연과학이 형성되었고 자연과학을 통해서 자연을 모두 그려 낼 수 있다는 사람들의 오만이 팽배해졌습니다. 그래서 인간 이성의 오만함은 인간이 그릴 수 있는 자연을 갖고 자연을 정복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 이성은 근대과학을 낳고 산업화를 이루면서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업주의 전략에 빠져 이기적 개인주의를 마치 개성의 표현인 양, 자기만 잘났다고 하는 것을 자신의 주체성인 양, 자기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고 남과 벽을 만드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입니다. 이러한 불행의 흔적이 진화되어 사람들의 의식 안에 정착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벌써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현대에 이르러 인간위기와 더불어 전지구적인 환경위기를 초래해 가고 있다는 징후가 너무나 분명합니다.?

오늘의 환경위기는 생각보다 너무 심각한 것이어서 우리가 총체적인 인간관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현재의 환경위기를 대처하는 일은 사실 눈감고 아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거창하게 인간의 소외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역사성을 팽개치고 관계의 그물망을 찢어버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사람과 자연 사이의 끈을 쓸데없이 꼬거나 끊어버리고, 개인들의 경쟁과 탐욕으로 모인 어설픈 집단에 대한 구체적인 반성과 비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즘 경제문제, 사회문제가 하도 심각하니 환경문제는 도외시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환경위기의 심각성을 보고하는 각종의 매스컴 보도에도 불구하고 나아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진짜로 바꿔져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그렇게 해왔으니까, 나도 그럴 뿐인데 뭘 야단이야’ 하는 생각이 환경문제에서 정말 심각합니다. 환경문제는 분명히 심각한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무임승차가 당연시되고 있고 더욱이 요즘은 경제 회오리에 휩쓸려 거의 실종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러한 환경위기가 아니라, 오늘의 환경위기를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진짜 위기인 것입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과 비판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환경위기의 원인이 단순한 물질적 오염이 아니라 의식 오염으로부터 야기된 것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로부터 어떻게 헤쳐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내야 합니다. 과학기술을 통한 환경 개량주의도 그 해결의 작은 방도일 수 있지만 환경위기가 인간위기의 한 단편임을 깨닫기에는 모자랍니다. 결국 궁극적인 환경위기를 극복하는 단초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찾아져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육의 문제, 사회민주화의 문제, 경제 정의의 문제 등을 올바르게 보고 그에 따른 실천의 생활관습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먼저 소비의 문제를 따져보기로 합시다.?

우리는 왜 소비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일상적인 생활의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소비는 문제일 수도 없고 문제되어서도 안 됩니다. 소비는 더 나은 문화적 창조를 위한 것으로 연결시켜야 하며 이러한 연결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에 대한 철학과 반성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습니다. 산림을 무차별하게 깎아 먹는 골프장과 한강변이나 신도시 주변의 러브호텔들, 축사오염, 염색공장의 폐기물, 과대포장, 일회용품 사용을 반대하는 실천적 운동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동시에 그러한 시설물이나 제품이 나와야 하는 모순된 사회경제구조를 반성적으로 질문하고 비판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소비 문제를 비판하면서도 문제의 이면을 보지 못하고 표피적 현상에 얽매어 있다면 결국 개발 최상주의라는 환상에 빠지는 꼴이 되고 맙니다. 예를 다시 청소년 문화로 돌려봅시다. 소위 신세대 경향은 개인주의의 한 양상일 뿐입니다. 개인주의는 자본주의의 한 부분이고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구세대가 만들어 놓은 마취제 기능이 성공적으로 나타난 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과소비 행태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자본주의의 함정에 빠진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소비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소비성향의 사회적 풍조를 반성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물질적 풍요로움의 환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모든 것이 풍족해서 소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어 소비한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 누군가라는 것은 고정된 정관사가 아니고 우리가 근대화를 거치면서 왜곡되어 나타난 총체적인 부정관사의 모습입니다.?

소비 문제와 관련하여 에너지 생산과 절약에 관한 이야기를 마저 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부존자원 에너지를 계속 늘려가자고 주장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존자원을 영원히 그리고 무한정 늘려 갈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구호를 계속 외치는 일은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물질적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도일 뿐입니다. 에너지 생산의 한계는 세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물질적인 욕구이며 둘째는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생산된 에너지이며 셋째는 그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야기된 물질의 오염과 의식의 오염이 그것입니다. 의식의 오염은 새로운 물질적 욕구를 낳게 되며 다시 끝없는 악순환을 반복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소 건립에 대하여 오로지 앞의 둘째 문제만을 말하면서 절대로 안전하다느니 발전소 건립의 충분한 경제성이 있다느니 하는 말만을 하는 개발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발전소 건립 이후 야기되는 셋째 문제가 중요합니다. 순전하게 경제적 이유만을 따진다해도, 핵발전에서 생기는 저준위, 고준위 폐기물을 처리해야만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미래의 처리비용을 계산한다면 핵발전의 경제적 타당성은 전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이미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핵발전 시설계획을 전면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핵발전소 역시 콘크리트 구조물이기 때문에 구조물 수명이 있게 마련입니다. 핵발전소는 수명이 다한 후에 아파트처럼 재건축할 수도 없고 폐기해야 하는데, 이 때 건축 폐자재인 콘크리트 조각 하나하나 모두가 영구히 보존해야할 방사능 누출오염 폐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핵폐기물 처리에 드는 경제적 비용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경제적 이유를 떠나서 원자력 발전소 건립으로 더 많은 물질적인 혜택이 예상되지만 그것은 초과된 소비이며, 그 소비를 향유하기 위하여 더 많은 사회범죄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도덕과 윤리의 파괴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은 단지 우려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의식의 오염은 핵 쓰레기 문제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에너지를 갖고 또 얼마나 많은 ‘문명의 잔해’를 만들어 낼 것인지 생각해 보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정말 알 수 없습니다. 많은 개발주의자들은 지구의 미래를 장밋빛 유토피아로 생각하고 싶겠지만 지금 같은 소비형태와 문화양상으로 비추어 볼 때 결코 낙관적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국가부도의 위기에 이어서 계속되는 경제 불황의 근본 원인은 위기를 낳은 사회적 요인에 대하여 근원적인 치료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미래를 낙관하는 일은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총체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오늘의 경제위기를 단순히 경제 정책이나 단순이론으로만 풀려는 것은 진정한 문제해결의 방식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의 경제난국을 푸는 궁극적인 문제 해결은 경제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경제단위인 주체인 소비자의 맹목적인 소비 행태들을 스스로 반성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러한 소비의 맹목성을 부채질한 기업의 소비 유도논리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문제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의식의 오염을 정화시키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만연되어 있는 의식오염을 정화하기 전에는 결코 정상적인 경제 정착이 어렵다는 것은 너무 뻔한 일입니다.?

환경문제는 총체적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사회구조적 이해 없이 개인의 환경구호만을 강조하면 지하철과 공원과 길거리는 깨끗해질지라도 기업의 일회용 포장지와 화학적 제품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도쿄의 길거리는 정말로 깨끗하지만 1인당 일회용품 사용량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쓰레기 분류가 잘 되기는 하지만 사회의식이 결여됐다면, 지금의 검측기로 측정이 어려운 다이옥신은 소각로 굴뚝에서 더 많이 나올 것이며, 원자력 에너지가 청정에너지라는 정부의 홍보가 승리하여 여기저기 핵발전소가 들어설 것입니다. 그리고 님비현상을 단순한 지역이기주의라고 계속 몰아붙이면서 행정편의주의로 가거나 기업가의 손을 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폐기물 이동금지협약은 유명무실해져서 국가간 기술이전과 경제원조라는 명목 아래 힘의 논리와 경제논리가 우선한 특정폐기물의 보이지 않는 이동이 더할 수 있습니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 세계는 미국 중심의 시장구조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FTA 체제 국제경제의 흐름은 시장경제기준을 몇몇 힘 있는 선진국에 맞출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논리와 전체논리 사이의 괴리는 경쟁과 이기주의, 약육강식과 물질만능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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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19)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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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호 (방송통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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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3에서는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제8장 “Zur Philosophie, Wissenschaft und Redekunst”(Gesammelte Werke, Band VII, s. 275-421)의 내용을 수회에 걸쳐 발췌 요약하는 방식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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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3 :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 그리스 철학과 과학의 지성사적 기원과 의미

 

2. 신화와의 결별

나. 피타고라스와 영혼불멸 신앙

보다 엄밀함을 요구하는 시대가 다가오자 그에 대적하는 신화의 필사적인 저항이 이루어졌는데 그러한 몸부림이 가장 집약적으로 잘 나타나 있는 인물이 바로 저 위대한 피타고라스(Pythagoras)이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이미 윤회전생을 통해 아에탈리다스, 에우포르보스, 헤르모티모스, 퓌로스 등 네 사람의 삶을 살았고, 서로 다른 지역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쨌건 역사적 인물로서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70년경 사모스에서 태어난 것이 분명하고 성년이 된 후 기원전 530년경 이탈리아의 크로톤(Kroton)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가르침을 펴다가 혁명이 일어나 그의 신도들이 처절하게 추방되기 3년 전인 기원전 497년에 사망했다. 그가 이집트를 다녀왔다는 것은 틀림없이 믿을 만한 사실이다. 제26왕조 치하였던 당시 이집트에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 나우크라티스(Naukratis)가 있었기 때문에 여행이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왕래정도가 아니라 가장 진정한 이집트인, 즉 신관과 관계를 맺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번거로움이 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과 교유하면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헤로도토스(II, 81)도 전하고 있듯이 이른바 오르페우스(Orpheus)교와 박코스(Bakchos)교의 신도들이란 사실 이집트인들과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이었으며 그럴 정도로 피타고라스적 본질과 이집트적 본질은 아주 닮아 있었고 오르페우스교의 행사와 피타고라스학파의 행사 또한 서로 혼동될 만큼 비슷했다. 한편, 피타고라스가 바빌론에 갔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인도와는 어떤 식으로건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영혼 윤회설(metempsychos)에는 오히려 이집트적인 것보다는 인도적인 색채가 보다 강하게 배어있다.

피타고라스(기원전 582-497)

그런데 피타고라스가 그리스인에게 전해준 것으로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영혼 윤회설 내부의 금욕사상과 결합된 그의 새로운 종교와 윤리학이다. 그는 철학자이기보다는 오히려 종교 개혁가였고 생존의 고뇌가 이전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던 시대에 살고 있었으며, 이 지상에서의 삶이란 전생에서 범한 죄과에 대한 속죄의 과정으로서 감내해야 할?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속죄 상태가 끝난 후에는, 테오그니스(Theognis)가 생각하듯 침묵의 돌이 되어 무덤 가운데에 눕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정화의 순서를 밟은 다음, 내세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다시 윤회전생(輪回轉生)한다고 생각했다. 신비로 가득 찬 의식을 통해 정화되고 전 생애에 걸쳐 신성한 의식을 추호의 소홀함이 없이 수행해낸 경건한 사람만이 종국에 가서 영원한 생성과 소멸의 쇠사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이러한 희망을 기치로 내세워 그 교단을 이끌어 간 것이다. 그 역시 오르페우스 교도와 마찬가지로 육체는 영혼의 묘지 혹은 감옥이며 고귀한 영혼은 천상 세계에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피타고라스가, 영혼이 여러 육체를 거치는 지상에서의 편력을 모두 끝낸 후에는 그 보답으로서 지상적 존재를 마감하는 것이 허락된다고 가르쳤거나, 마지막으로 그 영혼은 신격의 하나로 영입되었을 것(어쨌든 이것은 플라톤의 희망이었고, 앞서 엠페도클레스도 이러한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이라고 가르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영혼불멸과 일치하는 것은 후자 쪽의 생각이지만, 영혼이 “벌로서” 육체에 갇혀 있다는 생각은 논리적으로, 영혼이 보다 크고 잦은 비참함에 빠지지 않으려면 신이 영혼을 구제해 줄 때까지 육체 안에서 잘 참고 견뎌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타고라스학파가 교인들에게 자살을 금하고 “노령의 죽음”을 맞이하도록 엄하게 가르쳤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의 마음속에 과거가 어떻게 비쳐졌는지 또 그 경우 어떠한 것이 친근성을 가지고 그에게 전생과 관련한 신호를 보낸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전생에서 4번이나 생존했다고 하는 그의 기억에 관한 전승들은 하나같이 동물들 안에 인간의 영혼이 있다는 것을 너무도 사실인 것처럼 그리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오래 동안 다우니아의 숫곰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와 친근했던 한필의 황소는 아주 나이가 많아질 때까지 타렌툼의 어느 신전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는 등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피타고라스가 영혼 윤회설을 고대인들이 믿고 있었던 것처럼 오르페우스 교도로부터 배웠는지 아니면 반대로 오르페우스 교도 쪽이 피타고라스로부터 그 교설을 배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아마 영혼 윤회의 사상은 어디에선가 도래하여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확실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딱히 이 사상을 거부하려는 사람도 없었던 듯하다. 어쨌든 불사의 신앙이 새롭게 요구되거나 그곳에로의 비약이 필요할 경우, 그리스인은 즉시 피타고라스를 상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 중에서 피타고라스학파와 별도로, 영혼이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 등으로 윤회전생을 거듭하는 것을 그야말로 영혼이 받는 벌이라고 명확하게 가르친 사람은 아그리겐툼(시칠리아)의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기원전 444년경)였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지고 있다. “나는 이미 소녀였으며 또 소년이었고, 새끼양이며 새이었고 바다 속 물고기였다.”

수학의 나라. 특히 기하학의 나라인 이집트로부터 피타고라스는 가장 중요한 이득으로서 수학적 지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의 학문의 과학적 일면은 여기에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의 가르침은 “수학과 음악 연구의 발단을 포함하고 있었고 이 연구가 후에 피타고라스 철학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수학적, 음악적인 우주의 구성에 도달 할 수 있었으며 또 오르페우스교의 교설과 달리 기괴한 신학에 미혹되는 일도 없었던 것이다.” (E. Rohde) 물론 그리스인이 생각했던 수의 이론이 매우 광범위한 문제영역을 가지고 있고 그 이론들 중 얼마만큼이 피타고라스와 연관되어 있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도 증언하고 있듯이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같은 사람들보다 이전 시대에 이미 피타고라스가 수학을 자기 학설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피타고라스는 아주 의도적으로 수의 영역에 다양한 다른 것들을 한꺼번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에게 수라는 것은 여러 가지 힘의 비유이며, 수의 비례나 비율 또한 여러가지 사상의 비유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도 그는 1과 다, 짝수와 홀수, 신성한 수 10과의 관계 속에서 신성한 4개의 수(1+2+3+4=10) 등과 같은 것들에 각각 사상을 결부시켜 청강자들을 갑자기 숭고함에로(ins Erhabene) 끌어 들였을 것이다. 또 이 학설에는 도덕적인 면과 함께 미학적인 면도 있었다. 즉 원은 가장 아름다운 평면이며, 구는 가장 아름다운 물체라는 설명함으로써 대지에 구의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견해는 대지가 타원형 또는 원반으로 여기고 있었던 당시로서는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소리는 여러 가지 수 또는 그 역이라고도 설명함으로써 이미 수를 음악의 기초로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물질적 원소들을 특정의 기하학적 도형들과 결부시키고 있었다. 윤리적, 지적, 물질적 세계를 이와 같이 수의 형태로 설명하는 것은 당대의 모든 그리스적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경향은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기하학과 산술은 이후 그리스의 모든 지식을 해명하는 손잡이(labai)가 되었다.

라파엘의부분화 – 음악이론을 기술하는 피타고라스

하지만 이상의 것들은 모두 이 세계 전체를 학문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기초에 불과했다. 다름 아니라 피타고라스의 학설에서 처음으로 지구가 우주 체계의 중심으로부터 배제되었다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불후의 명성을 가져다 준 획기적인 주장이라 할 것이다. 처음에는 대지성(對地星, Gegenerde, 태양계 행성을 열 개로 하기 위해 지구의 뒤에 있다고 상정한 행성)이라든지 중심불(천체가 그 둘레를 수학적 법칙에 따라 회전하는 우주의 중심)이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긴 해도 그들은 결국 지구가 그 중심축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피타고라스 학설에 돌려야 할 영예가 또 있다. 그들은 처음으로 심리학적 구분법을 사용하여 인간의 영혼을 인지력, 정열, 이성의 세 가지로 나누어 이 중 인지력과 정열은 동물도 가지고 있지만 이성은 인간만이 소유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편, 이 학설이 단순한 철학이었다면 여성은 거론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피타고라스학파의 활동에 관한 전승에서 우리는 여러 명의 여성 피타고라스 교도들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의 아내 테아노(Theano)와 그의 딸 다모(Damo) 등 일단의 여성들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최고 수준의 학문적 문제에 활발한 관심과 능력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려나 양성의 평등을 가장 고귀한 의미에서 최초로 확립해 낸 것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혼 윤회의 학설이었다. 피타고라스는 여성을 남성과 더불어 영혼 윤회과정에서 태어나는 동격의 사람으로 여겼고 윤회에 의해 태어날 다음 세대 사람들의 어머니로서 존경하고 있었다.

피타고라스의 인품은 신화적 전승 통해서 추측하건대 매우 엄숙하고 아폴론적이었음에 틀림없다. 훌륭한 용모에 흰 의복을 걸치고 그는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언행에서는 온화하고 친근한 정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했지만 이내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모여 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하나의 마을 전체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가르침은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졌다. 그의 학생들은 처음 5년간 스승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이것은 아마 일종의 예비 과정의 경우 수준 높은 제자들이 그를 대신하여 가르쳤던 것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제자들 사이에서 스승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무슨 일이든 “스승께서 그렇게 말씀하였다“는 말로 언표된 이상 그 이상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기록의 형태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떤 교설을 전할 때마다 ”내가 호흡하고 있는 공기에 맹세코, 내가 마시는 물에 맹세코, 내가 말하는 일에 논박을 더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신도들에게 침묵과 명상과 내면의 집중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뛰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려고 했다. 그의 학설은 함부로 공개되어서는 안 될 비밀이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종교적 비의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영혼의 윤회와 피타고라스적인 윤리는 공공연하게 가르쳐지고 있었다. 물론 일부 과학적 지식들은 비밀스럽게 전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피타고라스가 그러한 지식들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그러한 지식들을 신중하게 극히 서서히 전수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학설이 와전되거나 왜곡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학파는 매우 독특하게도 가르침을 전수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상징적이거나 장중한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피타고라스는 이러한 학설을 주창하면서 신들에 대한 믿음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단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종교가 그를 만족시킨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종교로는 우주의 비밀을 밝힐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들 또한 무엇보다도 호메로스의에서 그려지듯 여러 가지 불성실한 상태로부터 결코 벗어나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에게 남아 있던 것은 혐오라고 하는 항의 밖에 없었다. 그는 지하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하나로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이름을 들었다. 하지만 그가 신들을 얼마나 깊이 숭배하고 공경했음은 신께 바치는 기도에 대한 그의 훌륭한 태도만 보더라도 잘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달라고 기도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는 선물의 선택을 철저히 신들에게 맡겼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영혼 윤회설 때문에 크로톤과 메타폰티온(Metapontion)에서 종래의 장중하고 화려한 사망자 숭배나 이것과 결부된 대량의 무속 및 유령 관련 미신들과 충돌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와 같은 상황에 직면해서 고도의 정화적인 기능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그리스 본토의 상당수의 제사들보다 훨씬 은밀한 성격의 제사방식을 가져와 그것을 수행했다. 영혼 윤회설은 이미 복잡한 학설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비의적 제사방식까지 함께 들여온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윤회설과 결합된 새롭고도 고상한 윤리가 어떠한 내용의 것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일 것이다. 이 교설은 옛 부터 육식을 피하고 채식주의를 받들어 왔는데 그렇게 한 이유들 중 하나는 이전에 인간이었던 영혼이 동물의 모습으로 동물의 생활을 감내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렇듯 기원전 4세기의 피타고라스학파에서는 절제와 관련한 수많은 규범들과 관습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한 준수여부가 사후에 더 좋은 것을 요구할 권리까지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별한 의복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수행한 금욕은 오르페우스 교도의 그것보다 훨씬 밝고, 투명한 것이었다. 그것은 부패한 양심을 용서받기 위한 금욕이 아니고, 청정한 사람들이 청정한 삶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한 금욕이었던 것이다. 그 유일한 목적은 단지 한층 더 고상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적 생활의 진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약속은 성실하게 지키되 서약은 가능한 한 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거짓 서약이 창궐했던 당시로서는 이것은 실로 이채롭다할만한 특색이다.

라파엘로,

피타고라스가 지방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면 그가 가르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라 치유하기 위해 왔다고 하는 소문이 퍼졌다.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인 도시에서는 부와 사치가 지나쳐 이른바 명문가 사람들은 전쟁이나 군대, 경기와 관련한 일 즉 넓은 의미에서 승부를 위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피타고라스는 그들이 추구하는 승부욕과 명예욕은 결국 그들 자신을 예속 상태에 빠트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부와 승부를 쫓는 삶을 경멸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은 이 비범한 스승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자신들의 소유물을 하나로 모아 숭고하고도 엄숙한, 종교적 기운으로 가득 찬 공동체를 꾸려 재산을 공유하며 생활하였다. 한편 그는 정치적 개혁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피타고라스 사후 아주 후대의 세속적 피타고라스 교도들이 행한 실제적인 정치적 활동 때문에 생긴 견해일 뿐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아니다. 또 다른 피타고라스 교도들은 오르페우스 교도들과 손을 잡아 고행을 앞세운 미신적인 단체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가장 믿을 만한 증인으로서 플라톤은 최소한 실천철학과 관련해서는 피타고라스를 사생활 영역에서 독특한 형태의 종교 의식을 창시한 사람 정도로 말하고 있을 뿐, 솔론과 카론다스와 같은 정치가 내지 입법가들과는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

대체로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극히 중요한 몇 개의 사안과 관련하여 다른 그리스인들과는 애초부터 다른 집단으로 여겨졌다. 그리스의 폴리스에서는 매우 독특하게도 스승이 그것을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치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의 삶은 모두 이 폴리스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는 사모스로부터 와서 이 폴리스의 이러한 정치적 제도와 행태를 접하고는 줄곧 이의를 제기했다. 그가 크로톤에서 메타폰티온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또 그의 말년의 짧은 전성기 이후 그리고 그가 죽은 지 몇 년 후 그의 신봉자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가혹한 박해를 받아 급기야 그들 대부분이 추방을 당하거나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 사정 또한 아마도 수학과 관련한 그의 방정하고도 엄격한 태도와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피타고라스학파가 고대 그리스에서 종교적이고 윤리적이며 과학적이기도 한 가장 초기의 완전하고도 자유로운 단체였다는 사실은 이 학파가 누려야할 영원한 명예일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친밀하게 서로 결속된 하나의 공동체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오니아학파나 엘레아학파와 다르다. 실제로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우정과 연대감으로 서로를 헌신적으로 도왔고 학파에 속한 사람들이 사망했을 경우 그 사람이 개인적인 안면이 있건 없건 장지가 멀건 가깝건 간에 상관없이 문상을 가 장례를 도왔다고도 전해진다. 이 학파의 영향이 스승이 사망한 이후 2세기 이상 유지되었다는 점도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피타고라스가 이러한 영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 자신의 삶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종교적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2. 신화와의 결별. 다. 자연철학의 등장. 다음에 계속 )

여성의 관점에서 차이의 경제와 대안도시를 생각한다[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②

여성의 관점에서 차이의 경제와 대안도시를 생각한다/13강-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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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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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그래함에 따르면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거래, 임금이 지불되는 노동, 잉여노동을 자본가가 취하는 자본주의적 기업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제한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규정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우리의 일상에서 수행되는 경제활동 중 하나일 뿐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본주의를 이렇게 제한적으로 규정하게 되면 우리는 자본주의 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순수 자본주의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상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대안적 시장이나 비시장적 거래가 존재하며, 대안적 지급이나 미지급으로 노동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대안적 기업이나 비자본주의적 기업 등과 같은 비자본주의적 기업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자본주의적 경제형식 아래 두 칸에 나열된 다양하고 풍부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보라. 깁슨-그래함에 의하면 시장거래가 아닌 윤리적 공정 거래나 협동조합 방식의 교환, 개인적 선물이나 국가적 배분과 같은 비-시장적 유통은 비자본주의적 경제이다. 화폐교환이나 임노동과 관계없는 품앗이나 자원봉사 혹은 대안적 지불 형태도 자본주의 경제를 벗어난 경제적 활동이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이나 공동체 사업 그리고 자영업 역시 생산된 잉여가치의 분배에 있어서 자본주의와는 다른 원칙을 갖는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 기업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적이라기보다 봉건적, 노예적, 독립적 혹은 공동체적 원리에 따라 작동하며 이 원리는 또한 성, 인종, 제도 여타의 규범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이지 않다고 해서 경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경제형식들일 뿐이다,

깁슨-그래함의 모델에 따라 앞서 제시한 조씨와 같은 여성의 활동을 분석해 보면 그녀가 다층적인 차원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삶은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들로 점철되어 있다. 봉건적 가족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녀의 가사노동, 친인척 돌보기는 비지불 노동이지만 사용가치를 생산한다. 그녀는 봉건적 가족 관계 내에서만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공동체적 관계 안에서 학교에 봉사활동을 하며, 아이 돌봐준 이웃의 아이들에게 과외지도를 한다. 이러한 봉사활동, 품앗이, 호혜적 노동은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다. 그녀는 사적인 관계 내에서 순수 비자본주의적인 경제활동만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가 일주일에 네 번 정도 하는 프랑스어 과외지도는 화폐를 통해 매개되는 임금노동이라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노동이 순수 자본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지하시장에서 노동하며 자영업자로서 자신의 잉여노동을 자신에게 배분한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에도 연루되어 있다.

이로써 분명해 지는 것은 조씨가 경제와 분리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 활동은 한 가지 혹은 두 가지의 본질적 경제체제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제형식들과 다층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녀는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풀어야할 문제는 그녀가 수행하는 경제적 활동이 어떻게 대안적 잠재성을 갖는가이다. 만약 우리가 기존의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를 강력한 경제형식으로, 비자본주의를 나약한 경제형식으로 간주한다면, 조씨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은 언젠가 자본주의에 의해 침투되고 식민화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깁슨-그래함은 어떤 전략에 따라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의 긍정적 가능성을 주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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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제적 차이의 담론과 중층결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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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그래함이 사용하는 전략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녀들은 비자본주의뿐 아니라 자본주의마저도 복수화함으로써 본질로서의 자본주의가 가졌던 막강한 힘을 탈각시킨다. 이것이 바로 본질주의에서 경제적 차이로의 전회이다. 다른 한 편으로 그녀들은 이러한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바탕으로 중층결정론을 주장한다. 다양한 경제 형식들 중 어떤 하나가 본질로 설정될 수 없으므로 이제 경제는 다양한 형식들이 상호교차하는 가운데 중층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의 전략부터 살펴보자. 앞서 설명했듯이 깁슨-그래함은 기존의 이론과 달리 우리 사회가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으며 이것은 전체 경제형식의 50%이상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이미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양식이라고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그러나 깁슨-그래함은 이에서 머물지 않는다. 깁슨-그래함은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재소환하는 것을 넘어서 자본주의마저도 복수화시킨다. 그녀들은 여성주의적 관점을 한 발 더 밀고나가 여성 정체성이 다양하다면 남성 정체성 역시 다양하게 이해될 때 대칭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이 있다면 자본주의적 경제 형식 역시 다양하다고 주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깁슨-그래함은 자본주의 역시 하나의 통일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논증한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형태학으로 파악될 수 있는 통일된 형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들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가 전형적으로 자본주의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금융부문도 전적으로 자본주의적이지 않다. 가령 개인투자관리사와 같은 자영업자는 자신의 잉여노동을 스스로 전유한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인 특성과 절합되어 있고, 자유로운 사업대출 분야의 성장은 많은 비자본주의적 기업 특히 자영업 활동의 신장에 기여했다. 그녀들에 따르면 주어진 정의를 매끈하게 따르는 그런 순수한 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은 생각보다 적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말해왔던 것처럼 매끈하거나 통일적이지 않다.

이렇게 자본주의마저 복수화하는 전략은 깁슨-그래함의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급진화시킨다. 이제 그녀들의 정치 경제학 내에서 모든 요소들을 관통하거나 지배하는 통일된 단일자로서의 본질은 없다. 알튀세르의 말처럼 모든 사건은 그 순간에 존재하는 모든 조건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지 하나의 본질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깁슨-그래함의 두 번째 전략이다. 이 전략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본질로서의 위상을 잃게 됨에 따라 그 강력한 힘도 잃게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괴물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경제형식 중 하나일 뿐이다. 이로써 경제 영역은 다양한 경제 형식들이 절합하고 혼종되는 장소가 되며, 여기서 다양한 차이들의 성격과 방향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중심은 없다. 새로운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강력하거나 통일적인 영웅 혹은 최후의 승리자가 아니다. 경제적 차이의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과의 절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 온 하나의 경제형식일 뿐이다.

반대로 비자본주의는 더 이상 무력한 경제형식이 아니다. 깁슨-그래함에 따르면 비자본주의는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에 널리 퍼져 있으며 고유의 힘을 통해 자본주의를 변형시키고 탈구시키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은 정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력한 혹은 낡은 경제가 아니다. 오히려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은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세계에서조차 자본주의적 경제형식 이상으로 존재해 왔으며, 유령처럼 늘 자본주의의 주변을 맴도는, 결코 제거되지 않는 힘들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기존의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에 대해 겁을 먹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늘 우리 곁에 있었던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그 힘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껏 말해왔던 방식의” 자본주의에 종말을 고하는 여성주의적 정치경제학의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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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의 대안적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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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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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그래함의 차이의 경제학 속에서 조씨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은 사소하지 않다. 그녀의 가부장적, 공동체적 경제활동은 자본주의적 경제에 의해 먹혀들어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 앞에 떨지 않아도 된다. 자본주의는 이제 괴물이 아니라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과 절합되는 하나의 경제요소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깁슨-그래함의 청사진은 객관주의자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곤 하였다. 정치경제학이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강력한 자본주의는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 객관주의자들은 담론을 달리한다고 해서 객관적 세계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반론에 대해 깁슨-그래함은 두 가지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한 편으로는 그녀들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의 사례들을 발굴하고자 하였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러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확장시키려는 실천을 통해 담론이 세계를 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가령 깁슨-그래함은 호주 탄광촌의 광부 부인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들이 어떻게 가부장적 착취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의 논리에 대항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사례에 따르면 탄광회사는 광부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조건으로 불규칙적인 교대근무의 조건을 제시했는데 광부의 부인들은 그러한 조건이 가내의 착취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이유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 가내의 생산적 노동자로서 광부의 부인들은 자신의 봉건적 착취에 대항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힘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적 논리의 확대에도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깁슨-그래함은 잉여의 공동 분배를 지향하는 협동조합 활동이나 상호 호혜적 노동이 만들어 내는 공동체 경제의 형성에도 주목하면서 이러한 경제형식들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깁슨-그래함이 제시하는 사례들이 발견될 수 있는가? 오래 동안 우리는 사회의 전체 영역에 자본주의가 침투하고 있다는 각본에 매달려 왔다. 많은 비판이론들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보여주는 데 열중해왔다. 그러나 비판이 강하게 고조될수록 자본주의는 괴물과도 같은 형상을 드러냈으며 그 괴물은 어떤 저항에 의해서도 극복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침범되고 강간될 수밖에 없는 나약한 것으로만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제 관점을 바꾸어 깁슨-그래함의 언어 속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을 다시 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우리 역시 여성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 가진 잠재력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해 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던 사건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가족들의 밥상을 위해 신자유주의적 논리의 확산에 저항했다. 그들의 저항은 가족 내에서의 그녀의 생산적 경제활동에 기반하여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품앗이의 사례들도 주목할 만하다. 과천에서 만들어진 지역 공동체에서 수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품앗이 활동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녀들은 한 시간 단위로 자신의 노동을 책정하고 서로의 노동을 교환한다. 내 아이를 한 시간 맡기는 대신 머리 염색을 한 시간 해주거나 과외지도를 한 시간 해 주는 식이다. 여기서 노동의 가치는 자본주의적 시장의 가치체계에 따르지 않는다. 모든 노동은 공평하며 돈이 없어도 일상의 많은 생활이 가능하다.

이렇듯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채택하게 되면 여성의 경제활동은 나약하거나 사소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대안으로 나타난다. 앞서 제시했던 조씨의 경제활동은 봉건적 혹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무력한 부정적 활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잉태하는 공동체적 활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자본주의를 경제의 유일하고도 막강한 형식으로 보면서 여성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폄하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받아들이고 이와 함께 비자본주의적 경제의 실천을 의식적으로 감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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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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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동 양태와 습관[철학을다시 쓴다]-⑫

인간의 행동 양태와 습관[철학을다시 쓴다]-⑫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보통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묻지 않죠? 상황이 바뀔 때, 또는 긴급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때,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고 현재까지 대응해왔던 방식으로 미래의 사태에 대비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농촌의 한 마을 공동체가 우주 전체가 돼서, 거기서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 죽어 뒷산에 묻히는, 시간이 지혜의 함수가 되는 삶 속에서는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슬기롭게 살아오면서 가뭄도 겪고 큰물도 겪고 관혼상제 등 여러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서 어떤 일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를 아는 어른들이 살길을 일러주고, 구태여 젊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묻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시간이 지혜의 함수가 되는 농경공동체에서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경험 확장이 지혜의 함수가 되는 유목사회에서도 떼 지어 다니면서 목축을 하거나 부족한 목축지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게 될 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강인한 사람이 앞장서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에 여기서도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곳은 도시사회인데, 특히 개개인이 자기 삶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부딪힌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나옵니다.

도시사회라 하더라도 상황과 체제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독재에 의해 강제된 상황이든 민주적인 합의에 의해서 서로 용인하는 그런 상황에서든 그 상황이 안정되어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나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강당 안을 걷는데, 이 강당 바닥은 평탄하기 때문에 왼팔과 오른팔의 움직이는 각도가 어떤지, 보폭이 어떤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평탄한 길에서 제 동작은 자동화됩니다. 보폭과 팔이 움직이는 각도가 가장 편하고 효율적인 상태로 조정이 됩니다. 우리 신체 동작의 자동화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걸을 때 머리로 어깨 각과 왼팔의 움직이는 각을 몇 도로 하지? 왼손은 이런데 오른손은 몇 도로 하지? 이렇게 계속해서 거기에 집착하면, 강박관념 때문에 우리 두뇌는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기 쉽습니다. 때문에 동작을 자동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깜깜한 밤길을 걷는다든지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산에 오르게 될 때는 보폭 하나하나, 손동작 하나하나에 일일이 신경을 쓰게 됩니다. ‘주의’(attention)가 이렇게 집중되는데, 이렇게 새로운 사태에 직면해 있을 때만, 우리 몸동작을 어떻게 해야 이 새로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숙고를 하게 되고, 그 때문에 그때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자기 내면에서 솟아오르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의식은 잠들고, 자동화 상태에서 우리의 신체 동작은 기계화됩니다. 외적인 강제가 엄청나게 심해서 도무지 다른 길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될 때나, 그런 체제에 있을 때도 우리 의식은 짓눌리고 동작은 최소한으로 바뀌면서 자동화가 됩니다. 이 때 자동화되는 의식의 반응과 행동이 가장 무섭습니다. 비극적인 상황이죠. 동작에서 자동화는 개인의 행동에서 습관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삶에 길들여진다는 말이죠. 상황이나 체제가 완고하게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때, 사고라든지 우리의 행동양태가 그것에 길들어서 습관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집단화된 습관은 ‘관습’으로 고착됩니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있죠. 모든 것이 외부적인 요인으로 해결이 될 때도 거기에 젖어서 길들여지고 우리의 습관이 거기서 형성됩니다. 사회적으로 더 큰 범위에서 보면 관습이 형성되죠. 그리고 그 관습은 윤리나 도덕으로 나타납니다. 법의 형태로도 나타나죠. 그런데 법은 강제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관습이나 윤리 도덕보다도 가변성이 더 큽니다. 잘못된 체제에서 우리가 그 체제를 뒷받침하는 도덕률을 익히고 윤리적인 규범을 내면화하는 것이 가장 큰 비극적 상황입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 드렸죠?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고, 있을 것이 없고, 없을 것이 있는 세상이 나쁜 세상이다. 우리가 없을 것이 있는 세상, 그러니까 억압, 불평등, 증오, 전쟁, 이기심, 탐욕들이 만연된 세상에서 ‘세상은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니까, 여기에 적응해서 내 살 길을 찾자.’ 이렇게 길들여지고 그 상황이나 체제에서 자기 자신을 순응시켜 행동을 굳혀가서 행동 패턴이라든지 사유방식을 특권화시키고 그것이 한 사회 전체를 지배해 증오와 이기심, 탐욕이 들끓는 사회의 모든 제도와 체제를 받아들이게 될 때, 희망이 없는 거죠? 나쁜 세상에 물든다는 것은 우리의 비판적인 성찰을 마비시킨다는 점에서 대단히 절망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없을 것, 없어야 할 것, 있을 것, 있어야 할 것은 현재의 시제가 아니라 미래의 시제로 표현됩니다. 있는 것을 있다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참말’이고 정직한 증언이지만, 미래의 삶과 연결되는, ‘당위’라고 하는 것, ‘윤리 규범’,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의 삶에 대한 전망이 바로 서지 않으면 족쇄나 올가미가 되기 십상입니다. 과거의 굳어진 가치관을 기초로 해 그 과거와 현실이 바뀌지 않고 미래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판단 아래에서 없을 것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마비된 의식이 우리의 행동을 마비시키고, 없어야 할 것이 가득 찬 이 세상에 주저앉히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우리 행동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어떤 식으로 길들여지는가, 그것이 장기적으로 어떤 습관을 형성하게 되고 한 사회에서 관습으로 굳어지는가에 대해서 깊이 성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농경사회에서 어른들이 자연과 관계 속에서 경험을 얻고 그것을 내면화해서 하나의 관습으로, 윤리관이나 가치관, 도덕률로 굳히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유목사회에서도 그 위험은 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도시사회는 어떻게 보면 흡혈귀들이 대낮에도 설치는 ‘식인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델리카트슨>이라는 영화 본 적 있습니까? 식량을 돈으로 쓰고, 사람고기를 먹죠.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을 뿐이지 모든 도시사회는 ‘식인사회’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사회입니다. 여기에 대한 아무런 근본적인 성찰이 없이 자기가 처한 상황과, 어떤 체제 속에 사느냐에 따라서 자기 정체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지요? 그러죠? 일종의 변형, 변환(Metamorphosis)인데 자동화나, 습관, 윤리, 도덕의 형성 과정을 잘 꿰뚫어보려면 고도의 비판의식과 창조적인 지성이 필요합니다. 비판의식이 왜 필요하냐면, 없어야 할 것이 있을 때, ‘이건 없어야 할 것인데, 없애야 하는데’ 하는 처방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판의식은 행동으로 나타날 때는 파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거나 기존 도덕률, 기존 가치관을 거부하기도 하고, 현실적인 파괴 활동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출처: rororo.net

9.11테러가 일어난 게 언제였죠? 군산복합체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 건물, 미국 국방성 건물을 테러리스트들이 공격했죠. 세계에서 제일 센 나라가 어디지요? 제가 우리 학생들한테 물어봤더니 미국이 제일 세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쳐요. 그래서 제가 ‘이 바보들아, 미국이 왜 젤 세냐? 아프가니스탄이 제일 세지’라고 말한 뒤에 아프가니스탄이 제일 센 이유를 말했죠. 세계에서 가장 국민소득이 낮은데다가 어찌나 외교 역량이 부족한지 파키스탄 하나와만 국교를 맺고 있고, 미국이 무서워서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국교를 단절한 나라인 아프가니스탄에, 군사가 오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미국이 혼자 쳐들어가기 무서워서 예순 여섯 나라를 줄 세워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아프가니스탄은 그 전에 강력한 소련군이 와서 탈레반을 소탕하려고 쑥대밭을 만들었는데도 버텨냈어요. 그렇다고 외교 역량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어서, 한때 미국 돈 받아 소련하고 맞장 떠서 살아남았죠. 그런데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미국을 비롯한 힘센 연합군들이 곤경에 빠져 있지요? 그러니 아프가니스탄이 최고로 센 나라 아닙니까?

제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삼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어디에 썼는데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 세계 삼차대전은 진행 중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죠? 일차 세계대전과 이차 세계대전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식민지를 뺏으려고 싸운 전쟁이라는 고정관념이 그대로 우리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에 삼차대전도 국가들 사이에서 땅뺏기로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WTO 체제도 세계대전의 한 형태인데, 이제는 완성된 금융독점자본에게 국경은 의미가 없습니다. 미국은 아직까지 오사마 빈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돌리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제삼차대전의 형태는 내란입니다. 저는 전쟁이 내란 형태로 전개되는 것이 인류를 위해서 큰 다행이라고 봅니다. 왜 그러냐면 옛날처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편갈라서 싸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럼 인류를 몇 천 번 몰살시키고도 남을 만한 핵무기가 가동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 안에서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핵무기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됩니다. 적과 아군이 뒤섞여 있으니까 자기나라 안에서 핵무기를 터뜨릴 수는 없죠. 그래서 이제 비로소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가 국가라는 단위를 중심에 놓고 ‘애국심’을 내세워 서로 결탁해 다른 나라의 자기 형제들에게 총을 겨누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다고 보면 됩니다. 세계 이차대전이 벌어지게 될 때 사해동포주의를 부르짖고 국제 연대를 주장했던 사람들이 결국엔 ‘애국심’에 불타서 동료들의 가슴에다 총을 겨누었죠. 이제는 적어도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국내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자기를 노예화시키고 착취해야 살 수 있는 계급이 누구고 자기가 연대해야 할 계급이 누구냐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선을 넓혀갈 수 있습니다.

그 모범을 9.11테러가 보여줬는데 이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맞장뜨자고 하는데, 그건 뻔하죠. 석유욕심 때문에 그러는 거죠. 제가 이런 말을 하면 곧 잡혀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제3장 화폐 또는 상품 유통[자본론강독]-10

제3장 화폐 또는 상품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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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참석 : 김선이, 김성심, 나태영, 옥철, 신재경

정리 : 옥철

제2절 유통수단(p.133~158)

화폐, 즉 금은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공통적인 가치 척도로서의 기능을 가지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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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상품의 변태

어떤 한 상품의 형태변환 또는 변태는 언제나 두 종류의 상품[즉, 보통상품과 화폐 상품]의 교환에서 이루어진다(상품의 유통). 이러한 교환과정은 상품을 상품과 화폐라는 두 개의 요소로 분화시키는데, 이 두 개의 요소는 상품에 내재하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대립을 표현하는 외적 대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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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립에서 사용가치로서의 상품들이 교환가치로서의 화폐와 대립한다. 다른 한편, 이 대립의 어느 쪽도 상품이며 따라서 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체다. 상품의 교환과정은 대립적이면서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두 개의 변태-상품의 화폐로의 전환과, 화페로부터 상품으로의 재전환-에 의해 수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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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태의 두 계기는 직포자의 상이한 거래 행위[즉, 상품을 화폐와 교환하는 판매와 화폐를 상품과 교환하는 구매]임과 동시에 두 행위의 통일[구매를 위한 판매]이다. 상품의 교환과정은 다음과 같은 형태변환을 하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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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C) -화폐(M) – 상품(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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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는 자기의 상품을 금과 바꾸며 구매자는 자기의 금을 상품과 바꾼다. 상품은 무엇과 교환되는가? 그 자신의 가치가 취하는 일반적 모습과 교환된다. 그리고 금은 무엇과 교환되는가? 그 자신의 사용가치의 하나의 특수한 모습과 교환된다. 어째서 금은 아마포에 대해 화폐로 대립하는가? 2원이라는 아마포의 가격, 즉 아마포의 화폐 명칭이 벌서 화폐로서의 금에 대한 아마포의 관계를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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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 그 본래의 상품형태를 벗어버리는 것은 상품의 판매에 의해 완수된다. 다시 말해, 그 상품의 사용가치가 [그 상품의 가격에 오직 상상적으로만 표현되어 있는] 금을 현실적으로 자기 측에 끌어오는 그 순간에 완수된다. 그러므로 상품 가격의 실현[즉, 상품의 단순한 관념적인 가치형태의 실현]은 동시에 역으로 화폐의 단순한 관념적인 사용가치의 실현이며 상품의 화폐로의 전환은 동시에 화폐의 상품으로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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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나의 과정은 이면적(二面的)인 과정으로서, 상품 소유자의 측에서는 판매이고 반대의 극이 화폐소유자의 측에서는 구매이다. 바꾸어 말해 판매는 구매이며, C-M은 동시에 M-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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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상품의 변태계열이 그리는 순환은 다른 상품들의 여러 순환과 뗄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다. 이러한 과정 전체가 상품유통을 구성한다. 상품유통은 형태에서뿐 아니라 본질에서도 직접적 생산물교환과는 구별된다. 상품유통에서 우리들은 한편으로는 상품교환이 어떻게 직접적인 생산물교환의 개인적 및 지방적 한계를 타파하고 인간노동의 물질대사를 발전시키는가를 보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교환이 어떻게 완전히 당사자들의 통제밖에 있는 자연발생적인 사회적 연결망을 발전시키는가를 보게 된다.(J.S.밀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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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과정은 직접적 생산물교환과 같이 사용가치의 장소나 소유자를 바꾸는 것에 의해 소멸하지 않는다. 화폐는 한 상품의 변태계열로부터 마지막으로 탈락한다고 하더라도 소멸하지는 않는다. 화폐는 언제나 상품들이 비워준 장소에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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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와 구매는 대극적으로 대립 하고 있는 두 인물, 즉 상품소유자와 화폐소유자 사이의 교환관계로서는 하나의 동일한 행위이다. 그러나 판매와 구매는 동일한 인물의 행동으로서는 대극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행위다. 그러므로 판매와 구매의 동일성은 만약 상품이 유통이라는 연금술사의 증류기 속에 투입된 뒤 화폐의 모습으로 다시 빠져나오지 않는다면 [즉, 상품소유자에 의해 판매되지 못하며 따라서 화폐소유자에 의해 구매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상품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동일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즉, 만약 이 과정(C-M)이 완성된다면 그 상품은 더 이상의 변태를 중단하고 장단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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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은 물물교환에 존재하는 [자기 생산물의 양도와 타인 생산물의 취득 사이의] 직접적 동일성을 판매와 구매라는 대립적 행위로 분열시킴으로써 물물교환의 시간적, 장소적, 개인적 한계를 타파한다. 서로 독립적이고 대립적인 과정들이 하나의 내적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또한 그 과정들의 내적 통일이 외적 대립을 통해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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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과정은 서로 보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두 과정의 외적 독립화가 일정한 점에 도달하면 그 내적 통일은 공황이라는 형태를 통해 폭력적으로 관철된다. 상품에는 다음과 같은 대립과 모순이 내재한다. 사용가치와 가치의 대립, 사적 노동이 동시에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모순, 특수한 구체적 노동이 동시에 추상적 일반적 노동으로서만 계산된다는 모순, 물건의 인격화와 인격의 물건화 사이의 대립, 상품에 내재하는 이러한 대립과 모순이 한 상품의 변태의 대립적인 국면들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의 운동형태를 전개한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들은 공황의 가능성을, 그러나 오직 가능성만을 암시하고 있다.(고전파 경제학자인 세이는 “공급이 수요를 창조한다.”고 하면서 공황의 불가능성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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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화폐의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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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유통이 화폐에 직접 부여하는 운동형태는 화폐가 출발점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져간다는 것. 화폐가 어떤 상품소유자의 수중으로부터 다른 상품소유자의 수중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화폐의 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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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운동의 일면성과 연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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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운동의 일면성이란 “화폐는 구매수단으로서 언제나 구매자 측에 있다.”를 의미하고 화폐의 연속성이란 상품이 “유통과정에서 탈락되어 소비로 들어”가는 것과는 달리 “화폐는 유통수단으로서는 언제나 유통분야에 머물러 있고 언제나 그 속에서 돌아다니고”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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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유통에 필요한 화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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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연속성으로 말미암아 “유통영역이 얼마만큼의 화폐를 흡수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상품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은 “이미 상품들의 가격총액에 의하여 규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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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화폐는 상품들의 가격총액으로 이미 관념상 표현되어 있는 금 총액을 현실적으로 나타내는데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두 개의 총액이 동일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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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가격총액이 필요한 화폐량이 된다. 그러나 이는 모든 상품이 “동시에 상이한 장소에서 판매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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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밀, 아마포, 성경책, 위스키가 “동시에 상이한 장소에서 판매된다.”고 할 때 모든 상품가격이 2원이라고 가정한다면 필요한 화폐량은 8원이 된다. 그러나 “순차적으로” 상품을 유통시키게 될 경우는 2원이면 된다. 이는 2원이 4회 유통된 것으로 이 “유통횟수에 의하여 화폐총량은 상품의 가격총액과 화폐의 유통속도에 의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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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수량설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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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수량설이란 “상품가격은 유통수단의 양에 의하여 규정되며 유통수단의 양은 또한 한 나라에 존재하는 귀금속의 양에 의하여 규정된다고 생각하는 환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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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수량설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상품은 가격을 가지지 않고 유통과정에 들어가며 또 화폐는 가격을 가지지 않고 유통과정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잡다한 상품집단의 일정한 부분이 귀금속 더미의 일정한 부부노가 교환된다.” 이를 맑스가 “엉터리 가설”이라고 한 것은 상품의 가격은 화폐로 표현되는데 화폐의 가격은 상품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순환론에 빠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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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수단의 양의 변동은…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척도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기인하는 것이다.” “화폐가 가치척도로서 기능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그것이 가격을 결정하기 위하여 사용될 때에는 화폐의 가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즉, “금(또는 은, 요컨대 화폐 재료)이 일정한 가치를 가지는 상품으로 유통영역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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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7세기 유럽의 상품가격 폭등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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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수량설은 상품가격의 폭등은 당시 라틴아메리카에서 다량의 금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라 설명하면서 “유통수단의 양이 가격을 규정한다는 견해”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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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맑스는 이러한 주장의 “소박성”을 비판한다. “이 세가지 요인, 즉 가격의 운동, 유통상품의 양, 그리고 끝으로 화폐의 유통속도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다른 비율로 변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현되어야 할 가격총액과 따라서 이것에 의하여 제약되는 유통수단의 양도 역시 이 세 개 요인의 수많은 조합의 결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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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폭등에 대한 맑스의 설명은 먼저 귀금속 광산의 대량 발견으로 귀금속 생산의 사회적 노동가치가 떨어져 상품가격이 상대적으로 올랐다는 것이고 둘째로 “화폐조각은 말하자면 다른 화폐조각을 위하여 연대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으로 “유통분야는 오직 금의 일정한 양만을 흡수할 수 있을 뿐”으로 유통 횟수가 증가하거나 유통량이 늘어나면 “다른 화폐조각은 유통부문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즉, 귀금속의 유입량이 그대로 유통량을 증가시키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상품가격 상승의 원인은 귀금속 가치의 하락이지 귀금속의 증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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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주화, 가격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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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주화형태는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으로부터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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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과정에서 주화의 옷을 입은 금은 마모의 과정을 거쳐 “명목적 무게와 실질적 무게가 점차 서로 분리되는 과정이 시작된다.” 이러한 마모는 “소규모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된다. 결국은 “주화기능은 사실상 그것들의 중량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된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물건, 예컨대 지폐가 금을 대신하여 주화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지폐는 아무런 가치를 갖지 않고 단지 가치의 상징으로만 기능한다. “지폐는 금 또는 화폐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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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의 과잉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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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의 발행은 실제로 유통되었을 금량(또는 은량)을 지폐가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범위로 제한되어야 한다.” “지폐가 자기의 한도(곧, 실제로 유통하였을 같은 명칭의 금주화의 량)을 초과한다면 지폐의 신용이 일반적으로 손상될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지폐는 상품유통의 내재적 법칙에 의하여 규정되는 금량만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즉, 지폐가 적정수준보다 2배로 늘어난다면 이전에 1원의 가격표시는 동일한 가치가 2원의 가격으로 표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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