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한철연 교육부 독일어강좌를 시작합니다.?[ⓔ시대와철학 알림]

2015 한철연 교육부 독일어강좌를 시작합니다.?[ⓔ시대와철학 알림]

 

 

한철연 교육부에서 독일어 강좌를 안내해 드립니다.

기간은 1월 30일(금)부터 8주동안 매주 금요일에 진행됩니다.

독일어 공부에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강좌 관련 문의 사항은 pipjc11@naver.com(교육부장, 김정철)으로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강사 : 서유석
일시 : 매주 금요일 4시-7시
장소 : 한철연(서교동 태복빌딩 3층)
교재 : M. Bochenski, (번역본 <철학적 사색에의 길>), 문법책(정통종합독어, 최신독일어 중 택일 예정)
대상 : 철학과 학부/대학원생, 또는 철학과 대학원 지망자로 국한
수강료 : 무료

[신간] 철학, 문화를 읽다

철학 문화를 읽다

5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출간된 《철학, 문화를 읽다》

현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철학적 탐구를 통해

철학의 일상성에 한걸음 쉽게 다가가다!

문화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불가피한 코드가 되었다. 고대나 중세 사회에서는 문화의 자리에 ‘종교’가 들어가 있었고 근대에는 ‘예술’이 부흥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했다. 본격적으로 문화, 특히 대중문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시점은 20세기를 넘어서다. 지금 우리는 대중문화를 비롯해 문화를 수월하게 만끽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문화에서 문화로 끝나는 시대, 문화를 읽는 키워드가 꼭 필요한 시대다. 그렇다고 문화라는 단일한 코드만으로 현대인의 삶을 다 읽을 수는 없다. 문화라는 커다란 날개 아래 숨겨진 핵심 코드를 찾아서 현대를 읽는다면 제대로 현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2009년에 초판이 나온 《철학, 문화를 읽다》는 5년 만에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다. 이 가운데 몇 개의 주제들은 빠지고, 몇 개의 주제들은 새롭게 첨가되었다. 변화하는 한국 사회 문화의 상황을 가늠해볼 때 좀 더 비중 있는 몇 가지 주제들을 새롭게 첨가했다. 또한 초판에 없었던 도판과 사진들을 넣어, 더 입체적으로 문화의 현장에 접근할 수 있다. 이 책은 ‘인간’, ‘인간관계’, ‘성차별과 페미니즘’, ‘다문화’, ‘노동 ? 여가 ? 놀이’, ‘대중음악’, ‘소비와 욕망’, ‘감시와 자유’, ‘위생 ? 건강 ? 웰빙’, ‘환경’, ‘시간과 공간’, ‘가상과 현실’, ‘전통과 현대’, ‘죽음과 노년’을 주제로 삼아 총 14꼭지의 글을 한 권으로 엮었다. 이 책에서 언급된 현 대한민국의 핵심 코드 14가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전반에 깔린 문화 현상을 직시하고, 그러한 환경에 놓인 우리 스스로 주체가 되어 문화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철학문화를읽다입체

 

■ 책 소개

문화 과잉의 시대를 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피곤하고 지쳐 있다. 견딜 수 없는 우울과 무의미한 허무함이 때때로 엄습하기도 한다. 위로와 힐링이 필요한 시간이다. 지친 심신을 한 잔의 차와 음악으로, 영화 감상으로 달래 본다.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쇼핑을 하고 게임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더 이상 삶에서 의미를 찾기가 우스꽝스러운 허무의 시대에 현대인들은 문화적인 것으로 삶을 도배한다. 현대인은 넘쳐나는 문화의 과잉 영양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너도 나도 문화인임을 자부하지만 메울 수 없는 공허함은 어쩔 수가 없다. 삶에서 의미를 찾던 시대는 가고 그 자리에 문화가 독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솔직히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화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될지도 모른다. 문화를 이해하고 알려고 하지 말고 감각으로 느끼고 몸으로 만끽하면 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굳이 문화를 머리로 따지고 정신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문화를 만끽할 수만은 없다. 우리의 몸과 감각을 무지한 상태로 방관하는 것이 좋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과 감각이 지니는 ‘잠재력’에 한번 주목해본다면, 우리는 문화를 새롭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문화는 넘쳐나는데 우리는 여전히 문화에 대해 무지하고, 심지어 어떤 문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다양한 문화 현상은 있되, 문화를 읽는 성찰적 눈과 지식이 얕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문화를 즐기다가 제풀에 지쳐버리기 십상이다. 문화의 풍요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문화를 읽는 눈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골치 아픈 철학의 눈을 통해 문화를 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철학이 문화를 읽는 것, 문화를 철학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따로 철학을 처음부터 꼭 배워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철학은 조금만 더 생각하고 성찰하면 나올 수 있는 ‘깊이를 가진 눈’이다. 문화 현상을 보다가 그런데 ‘왜 그렇지?’ 하는 의문만 가져도, 이미 그 사람은 철학의 매서운 눈으로 문화 현상을 볼 줄 아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된 것이다. 이렇게 ‘깊이를 가진 눈’을 지니고 ‘생각을 가진 사람’이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덕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실천’이다. 철학은 물론 ‘이론’이지만, 또한 이 이론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염두에 둘 때 ‘깊이를 가진 눈과 생각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음악을 듣고 옷을 사고 영화를 보더라도 그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깨어 있는 주체로 감시의 눈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찰을 통한 문화 운동을 기대하다

이러한 실천적인 성찰력은 현실에서 다양한 문화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거대 문화 자본과 문화 권력에 맞서 각자 자리에서 서로 이웃과 연대해 소비자 불매 운동을 펼칠 수도, 공정 무역의 실천의 장으로 나갈 수도 있다. 억압적인 가부장제 문화와 불평등한 성 차별에 맞서 새로운 평등의 대안 문화를 꿈꿀 수도 있다. 감시 사회 속 노동의 현장에서 파열을 일으키며 자본주의 노동 문화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을 기획해볼 수도 있다. 게다가 무한 경쟁의 파시즘적 가속의 문화에 느림과 여유의 삶을 꿈꾸는 공동체를 꾸려 볼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주변에서 이러한 공동체를 꾸리는 이웃들을 만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대안 운동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풍요로운 문화를 우리의 새로운 삶의 코드에 맞게 얼마든지 다채롭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 넘쳐나는 문화는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성찰적이고 실천적인 깊이가 빠진다면, 문화는 가장 위험한 마취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철학을 통해 문화를 읽는다는 것은 이론과 지식의 측면을 증가시키기보다 철학이 갖는 성찰력을 실천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일상의 문화를 철학의 언어로 다시 읽다

문화는 궁금한데 철학은 궁금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철학을 모르고서는 문화를 아는 것이 피상적임을 깨닫게 된다.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의 한 꼭지만 읽어도 금세 터득하게 된다. 이 책은 청소년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로 쓰여졌지만, 문화를 보는 철학적 시각을 새로이 정립할 수 있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심오한 주제의 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 시대를 살아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어떠한 현상들로 점철되어 있는지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가령 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소비에 대한 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개인들은 자신의 자유가 증대되었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우리가 얼마나 더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웰빙을 부르짖으며 건강염려증이 만성화되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건강이란 무엇인지 등 삶과 개인의 곳곳에 침투해 있는 문화의 다양한 현상을 짚으며 궁극적으로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자가 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권유한다. 2014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문화와 철학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어려운 일들이 2014년에 일어났다. 우리들은 삶에 당면한 어려움과 피폐함으로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일상의 관행으로 뿌리박혔던 낡은 문화의 틀을 과감히 깨어 버리고 이제 좀 더 성찰하는 실천적 자세로 나아갈 때인 듯하다. 고통받고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나눔의 문화도 더불어 생각해볼 때다.

 

■ 내용 맛보기

다문화주의에서 소수 집단은 ‘다수 집단의 언어’ 아니면 ‘소수 집단의 언어’를 선택하는 양자택일에 놓인다. 문화적 선택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집단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든 집단이 주체가 되는 상호문화주의는 ‘다자간 열린 대화’의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양자택일로 떨어지지 않는다. 동등한 위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대화 가운데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데로 나아가기가 더 용이해진다.??97쪽

지문이나 DNA 정보는 각 개인마다 고유한 생채 정보를 담는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지문이나 DNA 정보는 개인 인증이나 국가의 범죄 정보 관리에 사용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해 지문채취와 얼굴 사진 촬영 등 생채 정보 수집을 의무화한다. 테러에 대한 효율적인 대책으로 생체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에 입국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입국과 동시에 지문날인을 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는 17세 이상 모든 국민에 대해 열손가락 지문채취를 의무화한다. 우리나라에서 17세 이상의 전 국민에 대해 지문날인을 의무화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다. 당시 김신조 등이 청와대를 기습한 1. 21사태의 여파로 남파간첩 및 불순분자 색출이라는 명목하에 17세 이상 국민에 대해 열손가락 지문채취가 의무화되었다. 현재 지문날인 제도는 애초의 범죄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한다는 목적보다 주민등록증 발급을 위한 행정 조치의 일부가 되었다. 52쪽

잠은 게으름의 상징이었고, 산업 사회는 게으름을 적대시한다. 그르니에는 수면에 플러스 기호를 붙일 것인가 아니면 마이너스 기호를 붙일 것인가 망설이지만 산업 사회는 태생적으로 잠에 마이너스 기호를 붙이는 사회다. ‘산업 사회’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생시몽(Henri de Saint-Simon)이다. ‘산업, 즉 industry’의 라틴어 어원은 ‘부지런함’을 뜻하는 ‘인두스트리아(industria)’다. 이 개념이 만들어질 당시 이 말은 비생산적인 귀족에 맞서서 산업 노동자의 자부심을 고취하고자한 투쟁적 개념이었다. 그러나 산업 사회는 노동자를 생산라인의 부속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근면과 성실’을 소리 높이기 시작했고, 노동자의 밤 시간까지 통제하기 시작했다. 58쪽

 

철학문화를읽다표지

 

■ 저자 소개

지은이: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을 기반으로 한 연구자들의 자기 성찰과 실천적 모색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1989년에 창립했다.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진보적 철학의 문제를 고민하며, 좁은 아카데미즘에 빠지지 않고 현실과 결합된 의미 있는 문제들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지역, 전공, 세대별로 흩어져 있던 구성원들이 커다란 강물을 이루듯 한데 모여 있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철학을 공부하는 석·박사 및 대학원생들과 대학 강사, 교수 등 총 300여 명의 회원이 함께 한다.

펴낸 책으로는 《철학 대사전》, 《다시 쓰는 서양근대철학사》,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철학자의 서재》, 《청춘의 고전》,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 《열여덟을 위한 철학 캠프》, 《열여덟을 위한 신화 캠프》, 《삶, 사회 그리고 과학》, 《철학의 명저 20》, 《논쟁으로 보는 한국 철학》, 《이야기 한국 철학》, 《지식의 바다에서 헤엄치기》, 《우리들의 동양철학》, 《철학, 문화를 읽다》, 《철학, 삶을 묻다》 등 다수가 있으며, 매년 네 차례에 걸쳐 학술지 《시대와 철학》을 발간하며 대중 웹진인 《ⓔ 시대와 철학》을 운영 중이다.

글쓴이(게재 순)

이철승? 조선대학교 교수

연효숙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현남숙? 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

이정은?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박민미? 대진대학교 외래교수

박영욱?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김선희? 이화여자대학교 HK연구교수

서영화 서울대학교 외래교수

강신익 부산대학교 교수

최종덕? 상지대학교 교수

서도식?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김성우 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김교빈? 호서대학교 교수

이순웅? 경희대학교 강사

 

■ 차례

군자에서 시민까지: 유가적 인간과 근대적 인간

가족에서 디지털 촌수까지: 새로운 인간관계

제2의 성에서 사이보그 선언까지: 성 차별과 페미니즘

단일 민족 신화에서 결혼이주여성까지: 다문화 사회의 한국

소외된 노동에서 잉여인간까지: 현대 사회의 노동, 여가, 놀이

통기타에서 컴퓨터 음악까지: 대중음악

편의점에서 백화점까지: 소비 사회와 욕망

지문날인부터 디지털 파놉티콘까지: 감시 사회와 개인의 자유

기생충에서 아토피까지: 위생, 건강, 그리고 웰빙

핵발전에서 먹거리까지: 환경 위기와 생태학적 자연관

증기기관차에서 KTX까지: 시간 체험과 공간 이동

단성사에서 CGV까지: 가상과 현실

경복궁에서 아셈타워까지: 전통문화와 현대

타인의 죽음에서 나의 죽음까지: 죽음과 노년의 문제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21)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21)

?
글: 이정호 (방송통신대학교 교수)

 

 

* 주제 3에서는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제8장 “Zur Philosophie, Wissenschaft und Redekunst”(Gesammelte Werke, Band VII, s. 275-421)의 내용을 수회에 걸쳐 발췌 요약하는 방식으로 소개한다.

?
주제 3 :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 그리스 철학과 과학의 지성사적 기원과 의미

 

3. 연설기술(1)

연설기술(Rh?torike : Redekunst)은 소피스트 사상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철학자들을 살피기 전에 연설기술이 나타나게 된 이 현상부터 간단히 정리 고찰해보기로 하자. 우리가 무엇보다도 우선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그리스 말이 가지고 있었던 비상한 힘과 유연성이다. 그리스어는 상대에게 말하고 전해야 할 모든 것을 명확하게 하는데 매우 유용했다. 이 점은 예를 들어 헤브라이어와 분명한 대조를 보인다. 그리고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또 하나의 것은 일상생활이건 전시에서건 간에 기회 있을 때마다 연설이 가져다 준 큰 기여이다.

연설기술의 경우 우리는 고대 포이니키아(페니키아)나 카르타고, 고대 게르만 등 어느 곳에서도 그것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에 반해 호메로스의 작품은 현재 우리의 손 안에 있다. 호메로스의 신들이나 인간들의 연설은 최고의 자연적인 힘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고 게다가 그러한 연설은 폴리스가 앞서 이룩한 큰 성취에 바탕하고 있다. 사실 그리스에서는 이미 모든 사안이 토론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것을 위한 성대한 경기도 열려 말하는 일이 일의 성취와 목표 달성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었다.

그 후 폴리스에서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민회와 민중 법정이 여러 가지 주요사안을 결정하게 되면서 연설은 갑자기 체계적인 학문의 대상이 되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이 연설기술을 그리스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하고도 중심적인 요소로서 육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현대의 신문, 잡지와 달리 그리스의 말하는 행위는 특정 장소와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그 시점에만 결부되어 있어, 연설하는 사람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가장 직접적이고도 실감 있게 설득할 수 있어야했고 그 반대자 역시 제대로 된 반론을 펴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그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리스인의 경우 현재의 신문 잡지의 힘에 필적하는 것으로서 연설의 힘과 비교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약 고대의 아테네인이 연설을 듣는 대신에 단지 열심히 신문 밖에 읽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고 하면 사태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까닭에 연설기술은 의심할 나위 없이 아테네인들의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색이나 지식, 학적 탐구의 경쟁 상대가 되었다. 연설기술은 이후 이 시민들의 전체 에너지의 실로 방대한 부분을 빼앗았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적인 탐구는 그 아래에서 신음하는 처지가 되었을 정도이다. 사실 연설기술에 동원된 막대한 노고 이를테면, 수사학을 위해서 작성된 대량의 안내서의 종류만 비교해보더라도 학적 탐구의 실적은 그저 어중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철학자들도 처음부터 연설기술을 철학의 경쟁상대로 의식하고 있었다. 그 경우 가장 현명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것처럼 그들 자신 이것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생애의 상당 부분을 수사학에게 바쳐 그 최대의 탐구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실제 사변으로서의 철학은 연설기술에 대한 엄밀한 탐구를 꺼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예술과 시가의 손실은 돌이킬 수 것이었고 학적 탐구 또한 한참 뒤에 가서야 그 보충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놀랄 만한 현상을 고찰하기 위해서 우리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자료는 무엇보다도 보존되고 있는 연설 그 자체이다. 연설의 발달사적 측면에서 그 가장 중요한 증인은 『브루투스(Brutus)』와 『연설가(Orator)』를 쓴 키케로(기원전 106-43)이다. 키케로는 양질의 자료와 그 자신 그리스에서 거둔 학업을 통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수사학 내지 연설의 기술관련 지도서는 철학자 대부분이 하나 정도는 썼던 까닭에 그 수는 몇 백 권에 달하지만 이러한 기술 지도서 중 우리 손에 남아 있는 것으로 눈여겨 볼만한 것은 무엇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Rh?torike)』과 『알렉산드로스에게 주는 연설기술(Rhetorica ad Alexandrum』이고, 그 이후의 저작으로서는 람프사코스의 아낙시메네스를 들 수 있고 조금 작은 기술 지도서로서는 할리카르낫소스의 디오뉘시오스의 저작 『고대연설가론(de oratoribus antiquis)』등도 중요하다. 그 밖의 것은 발츠(Walz)와 슈펜겔(Spengel)에 의해서 출판된 『그리스 연설가들(Rhetores Graeci)』를 참조했으면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자료 전부가 다루어지고 있는 근대의 저술로는 브라스(F. Blaβ)의 『아테네의 연설(die attische Beredsamkeit)』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예술적으로 연마된 연설의 목표는, 아직 독서 습관은 없었지만 민회나 법정 일에 길들여져 무엇이든 듣고 싶어 하는 민중들로 하여금 연설 내용이 ‘그럴 듯하다'(eikos)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럴듯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은 듣는 사람들을 승복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순진할 정도로 귀가 얇은 그리스인들로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부끄러울 게 없었다. 자기가 부정하는 견해이고 또 듣는 쪽에서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고 여겨질지라도 내 몸을 구하고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이 끌어다 댔고 게다가 그 연설이 소피스트들이 가르친 그대로 상대를 매료시킬 정도의 고상함을 갖추었을 경우에는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었다. 섬세한 귀를 가지고 능숙하게 펼쳐지는 연설을 귀담아 듣는 것을 소중한 기회로 여기고 있었던 그리스인들로서는 이미 그 연설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도 『새(Ornithes)』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말은 정신에 날개를 돋게 하여 인간을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게 한다.” 이러한 말의 힘을 가장 풍부하게 우리에게 나타내 주는 것으로 안티폰(기원전 480-411)의 생애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안티폰이 망명자 신분으로 코린토스에 체재하고 있을 때 그는 위자료를 벌기 위해 노점을 열고 다음과 같이 방을 써 붙였다고 한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말로 치료해드립니다”(1447) 이윽고 사람들이 찾아오자 그는 그 사람들에게 슬픔을 치유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들의 불행을 쫓아내 주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데 말이 얼마나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지금 이 시대에 과연 말로 슬픔을 치유할 정도의 사람이 있을지는 새삼 되물어 볼 일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연설은 그리스인에게서 이미 오랜 동안 다른 여러 민족에게서 나타나는 것보다도 훨씬 중시되고 있었다. 나랏일에서나 법정에서나 사실 옛 부터 가장 큰 효과를 갖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은 늘 감탄의 대상이었다. 다시 말해 규칙과 체계를 가진 연설기술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말을 잘 하려는 어떤 대단한 의식적인 노력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개개의 사례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면서 그것과 함께 그러한 화법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러한 것을 기록해두는 것은 아직 사람들의 염두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민주주의적 재판 제도가 발달하고 이 재판 제도가 연설의 기회를 습관적으로 제공하게 됨에 따라 마침내 그 노력들에 이어서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연설 기술의 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최초로 행해진 것은 시칠리아에서였다는 것이 일치된 견해이다. 기원전 466년 시칠리아에서 참주들이 추방된 뒤 민주주의가 발흥 하여 “오랜 동안 권력에 의해서 억압되고 있었던 다수의 사법상의 요구가 크게 증대되었던 것”이다.

엠페도클레스(기원전 490?-430?)가 이 새로운 연설기술의 창시자로서 어느 정도 문제가 되는지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그러나 이즈음 이미 시칠리아 땅 쉬라쿠사이의 코락스(Korax)가 민중 연설가로서 또 법정 변론인으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가장 초기의 『연설기술 안내서』혹은 단순히 『안내서』라고 불리는 책은 이 코락스가 지은 것인데 이 책은 적어도 연설의 형식과 구분에 대한 규범, 서두를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 등에 관한 지침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와 똑같이 연설 안내서를 쓰고 있었던 제자이자 경쟁자였던 티시아스(Tisias)의 저서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럴듯함”(eikos)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시칠리아의 연설 내지 연설기술은 이 티시아스와 소피스트인 레온티노이의 고르기아스(기원전 483-376)에 의해, 기원전 427년 그 자신도 동행했던 시칠리아 사절단의 아테네 파견을 계기로 유입되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연설과 더불어 예비지식으로서 철학, 그것도 앞서 본 것처럼 진리 인식을 부정하는 부정적 성격의 철학도 함께 유입되었다. 아테네에서는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85?-414?)가 고르기아스에 앞서 연설기술의 기초는 만들어 주었던 터라 고르기아스 때부터 이미 연설기술은 소피스트들의 중심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또 고르기아스 자신 이미 연설기술의 교사로 불리고 있었다. 그는 소피스트들 모두가 그랬듯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그곳 실정에 맞추어 체계적인 연설기술을 가르쳤다. 그 때문에 연설 교사라는 게 하나의 직업으로 여겨졌다. 또 그들에게서 배우면 무엇인가 얻는 바가 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부터 연설 교사는 고액의 사례를 받을 수 있는 직업으로 떠올랐다.
 

고르기아스(Gorgias 기원전 483-376)

고르기아스(Gorgias 기원전 483-376)


 
고르기아스는 재능이 남달라 아무리 내용이 진부해도 시적인 표현과 새로운 언어로 그 내용에 맞추어 훌륭하게 재구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그가 이룬 진전은 의심할 바 없이 시의 운율을 도입하여 연설문에 균형 잡힌 구조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연설의 각 부분은 서로 대응해서 어울리는 문장들로 구성되었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말의 울림이 매우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방식은 기술된 사안을 보다 명료하게 해주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연설 각 부분들을 서로 대비하면서 생각들의 대립을 부각시키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같은 길이의 문장(isok?la), 형식상 서로 대응하는 문장(parisa), 그리고 특히 똑같은 말로 끝나는 문장(homoioteleuta), 그리고 같은 소리의 말, 서로 운율이 맞는 말(paronomasiai, par?ch?seis)을 활용하여 연설가로 하여금 한층 더 활기 있는 열변과 화려한 몸짓을 더하게 만들었다.
 
페리클레스(Perikles 기원전 495-429)

페리클레스(Perikles 기원전 495-429)


 
고르기아스 이래 아테네에서 연설의 수준이 급격하게 향상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향상은 아테네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오랜 동안 아테네의 정치가들에 의해서 기반이 잘 마련되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페르시아 전쟁 이래 그리스의 위대한 정책과 제국의 패권을 둘러싼 당시의 정치현실이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미 테미스토클레스(기원전 528-462)부터 그 자신 정치가로서뿐만 아니라 연설가로서도 위대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페리클레스(기원전 495-429)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전몰자 추도 연설’을 할 때까지만 해도 실제로는 고르기아스가 이룬 연설 기술의 수준에는 크게 못 미쳐 있었다. 물론 고대 사료들은 여러 곳에서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보여준 마술과 같은 효과(ep?dai)를 전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의 연설이 올림포스의 위대한 신 제우스처럼 천둥과도 같이 전광을 발하며 그리스 전 국토를 뒤흔들었고, 그의 입술 위에는 연설의 여신이 머물러 있었으며 그의 연설은 청중의 마음속에 가시를 남겨두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연설은 투퀴디데스(기원전 460?-400?)의 저작을 통해 그의 입으로 전해지는 것일 뿐 실제 그 자신이 쓴 것으로는 민회의 결의문 이외에 어떤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사실 플라톤도 말했듯이(『파이드로스』257d) 당시만 해도 나라에서 대단한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후세의 평판이 두려워 자신의 이야기들을 쓰거나 저술을 남기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투퀴디데스의 저작에 실린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분명 그의 정신을 반영하고는 있지만 그의 연설의 특수한 부분까지 담고 있지는 않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시적 형상을 이용하고 있었고 그 일부가 훗날 유명하게 되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그가 연설하는 모습 자체는 나중 세대인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322)가 가지고 있던 것 같은 정열적인 면모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실 페리클레스는 망토로 몸을 둘러 싸맨 채 가만히 서서 연설을 하였고 목소리도 항상 같은 높낮이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당시는 정치가는 물론 법정 변론가도 연설을 할 때 아직 단순한 말투를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고르기아스가 아테네에 도착한 이후 30년 남짓의 세월의 사이에 연설 기술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것이다.

(3. 연설기술(2) 다음에 계속)

0과 1 [철학을다시 쓴다]-30-1

0과 1?[철학을다시 쓴다]-30-1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오늘 내가 할 이야기는 apeiron이 중심입니다.

이 강의는 이 땅에서 여기 앉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몇 안 되는 사람만 귀를 기울일, 그 가운데서도 귀가 둘이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사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추상의 단계가 너무나 높아서 공기가 희박해 호흡곤란을 느낄지도 모를 그런 이야깁니다.

이 세상에는 끊어진 것, 또는 그렇다고 여기는 것, 이어진 것, 또는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끊어진 것, 또는 끊어내는 것, 이것과 저것을 갈라놓는 것, 겉이, 갓이, 끝이 있는 것을 ‘peras’라고 부릅니다. 이 ‘페라스’가 없으면 이것저것을 가를 수 없고, 죄다 이어져 있으면, 아무것도 ‘이것’, 또는 ‘저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냥 혼돈이죠. 가르지 않으면 살길이 없는 게 목숨 지닌 것에 주어진 숙명이라고 해야겠지요. 갈라야죠. 금 긋고 나누어야죠. 바이러스, 박테리아 수준에서도 살아남으려면 가려야죠. 나누어야죠.

살길과 죽을 길, 갈림길, 그게 모두 사람 비슷한 것들이 맞닥뜨린 ‘한계’죠. 너도나도 ‘한계’는 아는 척해요. 잣대를 대고, 금을 그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아페이론’은, 그어도 그어도 속에 남는 이건 무어죠?

이게 오늘 내 강의 주제예요.

졸라 힘들고, 뭐가 뭔지 모를 말들이 횡설수설 겹칠 텐데, 그래도 듣고 싶나요?

먼저 ‘페라스’ 문제를 인간의 수준에서 어떻게 해결했는지 잠깐 살펴봅시다. 하나로 수렴하죠. 1의 문제, ‘-者’라고도 하고 ‘하나님’이라고도 하는 이 문제를 아주 깔끔하게 처리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지요. 기독교의 ‘하나님’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이에요. 플라톤은 정지와 운동의 원인을 나누었어요.(Parmenides의 수준에서는 엉켜 있었어요.) 플라톤은 idea의 세계와 Demiurgos의 역할을 나누어 보아요. Demiurgos는 우주를 창조하지만, idea의 세계는 우주 밖에 독립된 실체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 안에 idea들을 끌어들입니다. ‘순수형상’이라는 Eidos는 1입니다. 1은 스스로는 정지해 있으면서 운동의 원인으로 작용하지요.(kinoun akineton).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신입니다. ‘하나’님입니다. 교부철학은 Plotinus를 거쳐서 변형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신학의 근거로 삼아요. 1에서 0에 이르는 과정은 두 가닥의 끈으로 꼬여 있어요. 요즘 사람들은 이것을 ‘2중나사’라고 하나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끌어올리는 과정만 보아요. 0은 ‘순수질료’라고 규정하지요. 0은 1에 끌려 상향운동을 해요. 물론 0도 1과 마찬가지로 ‘부동의 동자’(kinoun akineton)이에요. 나중에 헤겔이 reine Sein과 reine Nichts는 같은 거다. 그걸로 운동 설명 못 한다. 사유의 틀에서 벗어난다. Sein을 ‘있음’으로, Nichts를 ‘없음’으로 보지 말고, Sein을 ‘임’이고 Nichts를 ‘아님’의 측면에서 보자. 그러면 ‘긍정’, ‘부정’, ‘부정의 부정’이라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운동을 설명해 낼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해요. 이게 헤겔 <대논리학>의 핵심이에요. 현상계의 운동을 사유의 전개과정에 맞추려고 해요. 개념(Begiff)의 자기 전개라고 하면서요. Marx는 이거 아니라고, 물질이 의식을 결정한다고 헤겔의 철학을 뒤집지만, ‘형이상학’ 때려치우라고 하지만 헤겔 아류이고, 속류 헤겔론자로 볼 수 있어요. 0과 1의 문제에 관심 없어요. 막스에게는 ‘형이상학’보다 훨씬 더 중요한 현실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서양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지만, 막스도 ‘인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플로티누스가 중요한 건 ‘질료’에서 ‘형상’으로, 그리하여 마침내는 ‘순수질료’에서 ‘순수형상’으로 향하는 ‘상승운동’의 가닥만 본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위로 치켜 뜬 눈길을 아래로 돌리게 한 거예요.

‘유출설’이라고 하나요? <Eneades>에서 플로티누스는 “자, 봐라. 저기 눈부신 햇살로 빛나는 1이라는 해가 있다. 광명이 있다. 그런데 그 햇살을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는 0이라는 어둠이 저 밑에 도사리고 있다. 1이 위로 위로 끌어올리면서 ‘페라스’를 증가시킨다면 0은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면서 그 ‘페라스’들을 뭉개서 ‘아페이론’을 증가시킨다. 1에서 nous로, nous에서 psyche로, psyche에서 또 무엇으로 내려가는 과정은 어둠에 이르는 길이다. 그야말로 ‘태양은 빛을 잃어’ 빛이 없는, 나중에 1의, ‘하나님’의 권능이 깡그리 사라져 버리고 마는 ‘흑암’이 저 맨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다.” 이렇게 말해요. 이렇게 되면 운동은 ‘이중나선’, ‘새끼꼬기’, (그걸 요즘 물리학자들은 ‘초끈’(string)이라고 하나요?) ‘상승운동’과 ‘하강운동’이라는 두 가닥 끈이 상호작용해서 각 단위, 1에서 0에 이르는, 또 0에서 1에 이르는 각각의 단계에서 1과 0의 작용이 어떻게 ‘평형’을 이루는지, 그리고, 그 ‘평형’ 상태를 ‘공간’화하는지, ‘정지’로 보는지, ‘운동의 이중성’이라고 볼 수 있는 ‘국면’들이 드러나요. Bergson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공간이론을 비판하는 데는 까닭이 있어요. 흐르는 물을 물방울로 해체시킨다고 해서 어느 순간 그 물이 멈추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라. ‘지속’(dure′e)과 ‘계기’(succession)는 다르다. ‘계기’는 시계 문자판에 고정시킨 시간이고, 공간화된 시간이고, 사람의 의식이 인위적으로 금을 그어놓은 ‘페라스’일 뿐이다. ‘지속’은 순간순간 ‘아페 이론’을 그 안에 안고 있는 ‘페라스’를 뛰어넘는 ‘도약’이다. Zenon이 아무리 ‘날으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 ‘한 시간은 반시간이고, 두 시간’이다, 바보 같은 짓 걷어치우고 Parmenides로 돌아가자고 해도, 그렇게 해서는 ‘현상계’를 구제할 수 없다고 해서 플라톤이 나섰는데, 플라톤이, idea와 Demiurgos의 역할을 갈라놓았는데, 그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는 Demiurgos를 1로 놓고, 모든 운동을 그 정지 모델로 공간화했다, 그거 문제 있다. 나 베르그송은 그거 뛰어넘겠다. ‘생명’이라는 게 운동인데, 그 운동 멈추면 죽는데, 우주 전체가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운동해야 하는데, 살아남으려는 이 몸부림을 ‘뛰어넘기’로 보자. 그게 ‘삶의 도약’(e′lan vital)이고, 그게 궁극으로는 ‘사랑의 도약’(e′lan d′amour)다. 뭐 이딴 이야기해요. ‘엘랑 비딸’까지는 그럴싸해요. 그러나 ‘엘랑 다무르’라니. 이거 다 ‘생명’이신 ‘하나님’, 1로 가자는 거예요. 물론 베르그송은 2원론자이기 때문에 ‘질료’의 측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휠레(hyle)를 무시하지 않아요. 늘 두 개를 나란히 놓아요. <물질과 기억>, <생각과 움직임>, 이처럼 1과 0을 나란히 놓아요. 0의 해체 기능 잘 알고 있어요. 아마 베르그송 철학의 밑바닥에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상상력이 깔려 있을지 몰라요. 근현대 물리학자들의 의식의 밑바닥에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루크레티우스의 <자연의 본성에 대해서>에서 종합되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와 공간, 단일한 우주의 이론이 눌러 붙어 있는 것처럼이요.

그러나 베르그송은 ‘생기론자’이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희망과 낙관을 버리지 않아요.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만큼 낙관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는 해요. 그러나 공통점이 있어요. ‘페라스’와 ‘아페이론’ 이론을 다루는 데에서 1과 0의 문제를 파고드는 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나 베르그송이나 모두 ‘인간의 의식’을 벗어나지 못해요.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생각이 이 사람들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그래서, 박홍규 선생님한테서 들은 말인데, 한때 교황청에서 베르그송 철학으로 신학이론을 바꿔치기하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바탕으로 한 신학이론은 근대 물리학의 성과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진화론을 기독교 신학체계 속으로 끌어들일 수도 없다고 고심했던 적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테이야르 샤르뎅 같은 신부도 <인간현상>이라는 책에서 베르그송 이론으로 신학을 재구성하려고 들지 않았나요?

참, 군소리가 길어졌네요. 그런데 이거 다 박홍규 선생님의 ‘형이상학 강의’에서 나왔던 말들이에요. ‘아페이론’ 이론을 다루는 데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 하나는 ‘우연’과 ‘필연’, 거기에서 파생되는 ‘자유의지’ 문제예요. 현상계를 운동 중심으로 파악하려면, 그리고 그 운동의 원인이 우주 밖에, 정지된 그 무엇에 있지 않고, 우주 안에 있다고 하려면, ‘우연’의 문제 회피할 수 없어요. 루크레티우스가 궁여지책으로 무한공간과 무한수의 원자를 놓고 ‘수직하강운동’(이거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뒤집으면 ‘수직상승운동’으로 보아도 돼요.)으로만은 해결할 수 없는 원자들의 결합을 설명하기 위해서 끌어들인 게 원자의 ‘경사운동’(klinamen)인데, 이거 ‘느닷없는 때’ ‘느닷없는 곳’에서 ‘우연히’ 일어난다고 하는 거예요.

정말 느닷없는 이야기예요. 이 ‘우연’과 ‘필연’의 문제는 베르그송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해요. ‘도약’, 이거 우연이에요. ‘자유의지’라는 말로 분칠되어 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이유밖에 다른 근거가 없어요. 물론 베르그송도 ‘자유의지’의 측면에서 우연과 필연 논쟁에 끼어들기는 해요. 그런데 그게 큰 설득력이 없어요. 감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나 ‘형이상학적’ 근거는 부실해요. 박홍규 선생님의 고민도 거기에서 출발했다고 봐요. 끙끙대고 있는데 자끄모노(Jaque Mono) 책이 박 선생님 눈에 띄어요.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이지요. 저는 안 읽었어요. 모노 이론 잘 몰라요. 그렇지만 그 책 안에서 박 선생님은 형이상학에서 골머리를 앓던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내셨을지 몰라요.

 

 

통일과 도덕(1)[대안도덕교과서]-11

통일과 도덕(1)[대안도덕교과서]-11

 

 

이원혁(건국대학교)

 

*이 글은 삼인출판사에서 출판 될 대안도덕교과서(가제)의 일부를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1. 서로 너무나 다른 남과 북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작은 상황극을 한번 살펴보는건 어떨까요? 한 책상을 쓰는 두 초등학생이 티격태격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보면서 생각해봅시다.

선생님 ? 지훈아 너랑 민서는 짝꿍인데 왜 그리 다투니?

지훈 – “제 짝꿍 민서는 저랑 너무 달라요. 도무지 한국인이라는 것 말고는 닮은 점이 없어요. 짝꿍끼리는 친하게 지내야한다고해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친하게 지내려하지만 저 고집불통은 참견 말라며 오히려 역정을 내네요. 이 답답한 친구랑 한 책상에 묶여 있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사실 이 친구의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에요. 제가 이래봬도 공부를 쫌 하거든요. 그래서 제 공부 방법을 가르쳐주려하는데.. 세상에 그게 기분이 나쁘데요. 같은 책상을 쓰니 안 볼 수도 없고 그 친구랑 어떻게 지내야할까요?”

민서 – “지훈이는 이상한 친구에요. 말로는 친하게 지내자고하면서 항상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들거든요. 저는 저만의 공부방식이 있어요. 누가 뭐래도 이게 가장 저에게 맞는 것 같아요. 비록 지금은 성적이 좋지 않지만 곧 좋아지리라 믿어요. 저는 이 방식을 바꿀 마음이 없어요. 그런데 지훈이는 제 방식이 틀렸다고 비아냥거려요. 그리고 어색하기만한 자기 방식을 보여주며 우쭐되곤 해요. 그리고 제 짝꿍이지만 다른 친구들이랑 더 어울리곤하는데 가끔 제 험담을 하는 것 같아 속상해요. 그래서 한 소리를 했더니 적반하장으로 되레 제게 뭐라고 하네요.

선생님 ? “그런데 너희 둘은 저번에 반 아이들에게는 둘이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며? 둘이서 서로 조금 양보하면 안 될까? 둘이 쉽게 화해하기 힘든 이유가 있니?”

지훈 – “민서는 입이 너무 험해요. 조금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먹을 불끈 쥐고 욕설을 해요. 이렇게 말을 너무 함부로 하니 다가가기가 어려워요. 사실은 저희가 예전에는 매우 친했어요. 그런데 크게 한번 다툰 뒤로 사이가 너무 멀어졌어요. 얼마나 심하게 다퉜냐하면 주먹다짐을 할 정도였어요. 그때 민서가 저를 먼저 때려서 크게 다퉜어요. 왜 싸웠냐고요? 민서가 저를 먼저 때렸다니깐요? 어떻게 짝꿍을 먼저 때릴 수가 있죠? 사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민서랑은 놀고 싶지 않아요.

민서 – “제가 먼저 때렸다구요? 그게 중요한가요? 그 싸움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요. 사정이 있으면 먼저 때릴 수도 있죠. 지훈이는 지금도 항상 그런 식이에요. 전후 사정보다 제 행동의 겉모습만 보고 뭐라고 해요. 그리고 제가 뭐만 하려고 하면 ‘공부도 못하면서 그런 것도 하려고해? 공부나 해’라고 핀잔을 줘요. 치.. 공부를 못하면 다른 건 하면 안 되나요?

선생님 – “지훈이는 민서의 행동을 존중해 주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민서는 지훈이의 조언이나 다른 친구들의 공부 방법을 참고해보는 건 어떨까?”

지훈 ? “민서가 공부를 너무 못하니깐 하는 소리에요. 물론 공부 말고 다른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학생에게 제일 중요한건 공부 아니겠어요? 아무리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야지 않겠어요?

제 말대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민서는 절대 말을 안 들어요. 민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지도 않고,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도 않아요. 이래서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어요. 매일 꽁하게 있기만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화만 내니 도대체 쟤를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

민서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전 제방식이 옳다고 생각해요. 지훈이는 너무 자기마음대로에요. 자기랑 같은 방식이 아니라고 절 너무 이상한 아이취급해요. 사실 전 지훈이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해요. 이건 비밀인데 저번에 지훈이가 복도에서 주운 동전을 가지는 거 봤어요. 그런 아이의 방식을 제가 어떻게 믿겠어요? 전 사실 지훈이가 저를 자기랑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까봐 걱정이에요. 그래서 지훈이의 겉으로 보이는 호의를 믿지를 못하겠어요. 왜냐면 저는 저만의 방식을 잃고 싶지 않거든요.”

남북의 상황을 티격태격하는 두 아이의 상황으로 엮어서 만들어봤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위 대화에서 지훈이과 민서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러한 생황에서 과연 통일은 가능할까요? 두 아이는 서로 화해하고 싶어 하는 것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받아있습니다. 그리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하는만큼 자신의 방법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히 차있습니다.

이 에피소드와 남북관계에는 비록 같을 순 없지만 비슷한 문제점이 있죠. 남과 북은 항상 통일과 화해를 이야기하지만 서로에 대한 불신과 상처가 이 화해를 가로막고 더 나아가 서로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어떻게 하면 서로의 상처를 딛고 서로를 웃으며 마주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위해서는 서로가 가진 상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먼저 살펴봐야할 것입니다.

 

2. 분단의 상처와 그 발단

 

남과 북은 분단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아마 ‘분단을 극복하자’, 또는 ‘통일을 하자’라고 주장하는 큰 이유는 이러한 상처들을 극복하자는 것일 겁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인명, 재산적 피해, 이산가족, 남북간의 긴장관계 그리고 이로 인한 여러 부차적 효과들은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분명 이러한 상처는 쉽게 치유되기 힘든 병으로 남과 북 모두의 몸과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단으로 인한 상처에 대해 조금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하게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피해로만 분단의 상처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사진출처: ehistory.go.kr

사진출처: ehistory.go.kr


 
분단이 된지 벌써 60년을 넘어 7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우리는 분단 그 당시의 상황과는 많이 다른 모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후 복구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완료되어 전쟁의 상흔은 박물관과 오래된 기록 속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산가족들도 오랜 세월 속에 그 수가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분단당시와 전쟁을 직접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분단의 상처가 쉽게 와 닿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분단은 일상에서는 완전히 잊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왠지 분단이라는 상황은 께름칙한 무언가를 계속 남기기도 합니다. 휴전선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재래식 무기의 대치장소입니다. 그러나 혹자는 안보불감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겠지만, 70여년에 가까운 그 대치 자체보다 그 이상으로 우리의 마음에는 분단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께름칙한 무언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나라를 ‘뭔가 부족한 나라, 뭔가 불안정한 나라’로 생각하게 합니다. 기존의 윤리교과서를 비롯하여 많은 책들은 분단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이며, 통일은 우리나라를 완성하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설명이 부족해왔던 것 같습니다. 냉전시대 남한에서는 ‘민족의 원수 빨갱이 김일성’을 무찌르기 위해서, 북한에서는 ‘미제의 앞잡이 남조선 괴뢰도당’을 몰아내기위해서 분단과 통일을 설명해왔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분단으로 인해 가로막힌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과거나 현재나 이러한 인식들은 분단의 상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적어보입니다. 다만 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이 순간을 단순히 벗어나기 위해 다급하게 통일을 이야기하고, 남과 북은 서로를 자신의 잣대로 평가해왔습니다. 따라서 분단을 해소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더욱 고착화시키는 모양새를 띠었습니다. 위에 소개되었던 민서와 지훈이의 다툼에서 우리는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그 상황 자체에 대한 파악을 하지 않으려는, 또 그럼으로써 왜 상대가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두 아이의 안타까움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아이의 화해를 위해서는 왜 두 아이가 다투는지 그리고 그 상처가 무엇인지 살펴봐야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서로 다른 그 둘이 어떻게 공존하고 화해하고 그리고 하나가 되는지 보는 것이 좋은 순서가 될 것입니다.

혹시 ‘트라우마’라는 말을 아시나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심각한 기계적 충격이나 사고 그리고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기타 사고를 겪은 후에 발생하는 스트레스 장애’를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트라우마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그리고 한 세대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보통의 트라우마가 어떤 사고의 당사자의 개인적 체험에 그친다면 여러 세대에 걸쳐 집단에 나타나는 트라우마는 그 당사자와 관계하고 있는 집단 내부로 옮아가는 독특한 점이 있죠. 이러한 트라우마를 조금 어려운 말로 ‘역사적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설명이 조금 어려워졌는데, 조금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트라우마는 개인의 안전이나 살려고하는 에너지가 손상되었을 때 나타납니다. 즉 우리가 밥을 먹고, 사랑을 하고 신체를 지켜가는 활동이 외부의 강제로 인해 손상되거나 박탈되었을 때 트라우마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트라우마’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공유하는 집단이 그들의 공통된 욕망과 욕구가 좌절되거나 억압되면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위의 말에 따르면, 과거와 현재 우리나라사람들 사이에 공통된 욕망이 있었고 그 것이 좌절되어 큰 상처를 남겼다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구한말 조선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바람 앞에 등불이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유학의 전통은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었고, 서양의 위력은 세삼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과학기술은 부러움을 넘어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동도서기(東道西器) 즉, 동양의 전통을 유지하고 서양의 기술만을 받아드리려 했으나, 이는 서양의 접시에 미역국을 담으려하는 것처럼 서로 결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근대민족국가와 자본주의라는 형식에서 만들어진 기술을 전근대의 사회와 국가에서 담아내기는 힘든 것이었죠.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서양과 같은 근대적 민족국가건설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래서 신민회도 만들고 독립문도 세우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갑오개혁과 동학혁명을 진행하기도 했죠.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이러한 노력은 일제에 의한 한반도의 식민지화로 좌절되었습니다.

흔히 서양의 민족국가를 ‘상상된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봉건시대에 흩어져있던 여러 사람들을 묶고,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계급적 대립 극복하기 위해 민족이 요청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해 소위 ‘세계화’가 진행되고 새로운 가치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기존의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보호장치이자 안식처로서 민족은 요청되어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의 국가는 그러한 안식처이나 상호 호혜적 집단으로서 민족이 빠진 국가였습니다. 서양의 다른 나라들은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공동체의 공통된 욕망을 충족하고자 했습니다. 비록 그런 욕망이 제국주의 등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째든 그들은 집단의 욕망을 다른 사람들 앞에 내보였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는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제가 강점한 국가는 민족을 억압하는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그 국가는 공동체가 욕망하는 국가가 아니라 공동체의 욕망을 위해 제거되어야하는 국가였습니다. 숱한 탄압에도 우리네 선조들이 꿋꿋이 독립운동을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지요. 일제 강점기는 바로 아버지로서 국가가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도둑처럼 찾아온 광복’은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서로가 자신이 아버지라 주장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렸습니다. 남과 북은 서로가 과거에 좌절된 근대적 민족국가의 이상이 바로 자신이라며 대립을 하였고 다른 상대를 일제와 마찬가지로 민족국가 건국을 방해하는 적으로 삼고 타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전쟁이 일어났으며 전쟁은 지금과 같은 분단을 만들어 결국은 누구도 아버지가 될 수 없는 결손가정, 아니 결손국가를 만들었습니다. 100여 년 전부터 고대해온 민족국가의 성립이라는 집단적 욕구의 좌절은 남북 모두에게 큰 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 상대에 대해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자신은 그 책임을 면제 받으려 해왔습니다. 그리고 분단과 전쟁에 대한 모든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김으로서 상대방을 대화와 타협의 상대가 아닌 용납할 수 없는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남과 북은 구한말부터 내려오던 민족국가의 이상이 실패한 ‘원죄의식’을 서로에 대한 폭력으로 전환시켜왔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도 누군가 나서 어떻게든 가정을 이끌어야겠지요.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결손국가가 되어버린 남과 북은 완성된 민족국가가 아닌 결손국가가 되어버린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김으로서 남과 북 각자의 내부를 통합하여 국가의 정당성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남과 북은 각자를 지금은 조금 부족하지만 곧 완전해질 이상적 국가에 자신의 모습에 대입하고 상대를 방해꾼 혹은 이해할 수 없는 나쁜 편으로 정해버렸습니다. 남북의 적대감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형성되고 강화되어 왔습니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그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 발생한 사건에 의해 한 집단 속에서 옮아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트라우마는 요즘 일어나는 사건과 과거의 분단 또는 전쟁이 결합하면서 그 상처가 불쑥불쑥 표면으로 들어납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미사일발사 실험은 과거 한국전쟁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여 그 옛날 한국전쟁의 공포를 마치 오늘의 공포처럼 되살려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트라우마는 지나간 상처의 흉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 됩니다. 과거에 집단적으로 좌절된 이상과 그 실패의 정점을 찍은 전쟁은 후대의 세대에도 상처로 유전되어 집단적 허전함과 불안감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과거에 할아버지가 본 자라는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 그리고 아들의 마음속에 자리하여 실제 자라와 크게 상관없고 겉모양만 닮은 솥뚜껑만 봐도 과거의 긴장이 되살아나는 신기한 유전병이 생겨난 것입니다. 즉, 분단의 상처는 우리가 평소에 뚜렷하게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세대를 넘어 전해져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은 이러한 서로간의 상처에 대한 문제에 대한 이해, 즉 서로의 상처가 닮았다는 점 그리고 그 상처가 오래되었다는 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서 비로소 그 논의의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책읽기-마이클 J. 로젠펠드의 『자립기』에 대한 단상

마이클 J. 로젠펠드의 『자립기』에 대한 단상

 

 

엄진희?(다중지성정원회원)

 

우리에게 개인의 자율성이나 자립, 독립 이라는 언어들은 무엇일까. 저 이름들은 언젠가는 부르주아적 가치라고 배제되었고 언젠가는 우리가 따라야할 가장 세련된 가치라고 부추겨졌다. 개인화된 시대, 이어폰이 등장하면서 친구와 소통하기 보다는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자라왔던 우리 세대에게 저 말은 사실 따지고 보면 낯설지도 않다. 하지만 저 말에 함축된 ‘자유’라는 게 억압 속에서의 자유, 규칙 속에서의 자유라면 우리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자유’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김연아가 빙판 위에서 가장 자유로운 때는 그녀가 빙판의 모든 규칙을 가장 잘 준수 할 때에야 비로소 실현되는 것 아닐까.

마이클 J. 로젠펠드는 1960년대 이후 젊은 세대들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특히 그들의 부모로부터. 대학을 빌미로 해서든 젊은이들은 그가 태어난 고장에서 이제 멀리 떨어져서 부모의 간섭없이 마을 공동체의, 이웃의 간섭없이 자유로워졌고 따라서 비전통적 결합 방식, 즉 이인종 결혼이나 동성애 간의 결합을 특별한 제약 없이 실현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젊은이들의 이러한 위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이제 더 이상 가족 통치 제도 안에서 부모나 국가가 더 이상은 손쓸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젊은이들이 부모로부터 독립과 자유를 선언하고 ‘자립기’를 가지는 잠정적인 시기(자립기는 젊은이들이 부모를 떠나 대학도 가고 여행도 떠나며 직업을 찾는 성인 초기의 시기를 말한다)에 간섭 없는 자유를 만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근대가 유동하는, 액체 근대라는 특성이 있을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라는 책에서 ‘안정적이고 견고한 고체와 달리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질을 가진 액체 개념에 기초하여, 우리가 어떻게 무겁고 고체적이고 예측/통제가 가능한 근대에서 가볍고 액체적이고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근대로 이동해왔는지 탐구’한다. 그는 ‘근대가 일체의 공간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전지구적 자본이 세계 각국의 값싼 노동력을 찾아 이동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그는 개인 삶의 의미가 온통 개인의 어깨에만 걸리게 된 것과 그러한 고립 분산된 개인의 자아실현이, 자유롭고 가볍게 이동하는 전지구적 자본의 힘 앞에서 가능한 일인지’를 되묻는다.

우리는 대학에 간다면서 고향을 떠나고 어학연수, 유학 등을 빌미로, 직장 때문에 등등, 이런저런 이유들로 공동체를 떠나 부유한다. 이제 더 이상 부모의, 공동체의, 간섭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뒤르켐은 개인과 사회의 결합력이 약할 때의 자살에 대해서도 분석한 바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급증하는 젊은이들의 자살 현상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최근에 함께 공부했던 시립대 박사과정 선생님 한분이 자살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는 모두가 적잖이 놀라고 당황스러워 했다. 그는 평소에 쾌활해 보이고 농담도 잘하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왜? 박사과정 논문 심사중이었던 그가? 우리는 그저 추측할 뿐이다. 논문의 스트레스와 얼마전 시간 강사 자리에서 해고도 당했고 심적 고통이 컸을 것이다. 정도만,,말이다.

모든 자살은 타살이며 사회적 죽음이라면 이 문제에서 우리는 도저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로에서 성공하지 못해서, 실패해서, 비관하다가 자살을 하는데(성적 비관 청소년부터, 파산한 아버지의 죽음에 이르기 까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성공, 잘나간다는 것, 지위 등등에 공모한 것도 우리 자신이다. 이런 우리 자신은 정말 진정으로 자유로운가? 성공이라는 사회적 잣대 안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면서? 진정한 자유, 자립, 독립은 그렇다면 어디에 있을까. 간섭받지 않는 곳에 있을까. 간섭 받지 않고 이인종 결합이나 동성 간 결합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온전한 의미에서의 자립일까. 여전히 제도적 승인을 받기를 주장하면서? 제도적 억압을 자발적으로 요청하면서 말이다. 다른 길은 없을까. 가령. 너희 이성애자들의 결합처럼 우리를 인정해 줘, 라는 논리 말고(결국 이성애적 폭력이 했던 일-자신들의 결합을 ‘정상화’하고자 했던-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한).

오히려 바틀비처럼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음으로서 기존의 질서, 제도 자체를 좀먹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가 말하면 할수록, 저항하면 할수록 기존의 제도와 권위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망만 넘쳐난다면 말이다.

마이클 J. 로젠펠드의 <자립기>는 분명 유의미한 저작이다. 기존의 사회학이 가족의 변화, 라는 측면은 제대로 주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젊은이들이 부모로부터 떨어져 지내면서 비교적 비전통적 결합 방식을 선호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되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이제, 동성애의 문제는 더 이상 소수의 문제일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기존의 제도나 체제에 그토록 편입하길 원하는 이상, 우리의 상징계는 크게 달라질 수 없지 않을까 싶은 게 내 생각이다.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쩌면 목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써 상징적 질서를 내파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스러운 생성의 흐름으로 동성애 문제나 이인종 결합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 메시아적 순간은 항상 그렇게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진정한 자립이란 법적 승인이 없이도(대타자 없이도) 공동체의 최소한의 규칙과 질서 안에서, 나아가 윤리적 차원에서 스스로,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면서 유지해 나갈 때 획득되는 건 아닐까.

The Age of Independence_3D(500)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도봉도서관 청춘과 함께하는 인문학> 2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도봉도서관 청춘과 함께하는 인문학> 2

 

이재유(건국대)

 

1. 자본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DSC09824-1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회이다. 그러면 그 <이익>은 누구의 이익인가? 그 이익은 보통 일하는 사람들의 이익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라는 명칭이 보여 주듯이 자본(가)의 이익이다. 그러면 자본은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화폐나 자본은 얼핏 보아 일반적으로 돈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화폐와 자본은 특성이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화폐는 위에서 보았다시피 상품교환(유통)에서 신적인 역할을 하지만 단순한 유통수단일 뿐이다. 이 화폐로는 은행의 이자, 고리대금, 부통산 투기 이익, 주식배당, 재산의 재테크 등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개념이 바로 자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은 자기 증식(번식)하는 가치, 즉 잉여가치를 낳는 가치이다. 그러나 화폐는 자기 증식하지 못하는 가치이다. 예를 들어 은행에 돈을 10.000원 예금하여 100원의 이자를 낳았다고 하자. 100원의 이자가 어떻게 나왔을까? 10,000원이 은행 안에서 5,000원과 결혼하여 100원짜리 아이를 낳은 것일까? 유통수단으로서의 돈 그 자체인 화폐는 이렇게 자기 증식하지 못한다. 자기 증식하는 특성을 가진 자본은 인간의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이 유통과정에서 출현하여 이 상품이 생산과정에 투입되었을 때 생겨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노동자가 한 자본가와 다음과 같이 계약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고 해 보자. 즉 이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일해서 10원짜리 벽돌 20개를 만들면 하루 임금 100원을 받는다고 해 보자.

이재유 표

그러면 임금으로 받는 노동시간은 4시간인데, 이 4시간을 ‘필요노동시간’이라고 하고 임금으로 받지 못하는 4시간을 ‘잉여노동시간’이라고 하며, 이 4시간을 정치경제학적인 용어로 ‘착취’라고 한다. 이 잉여노동시간을 ‘잉여가치’라고 하고, 이 잉여가치가 바로 자본이 되는 것이다. 즉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 100원을 투자하여 10원짜리 벽돌20개인 200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즉 100원=200원이 되는 셈이다. 잉여가치의 100원 부분은 사회적으로 주식 배당, 은행이자, 고리대금, 주식투자, 부동산투기 이익, 지대 등으로 배분된다.

그런데 자본은 이러한 과정의 지속적 반복을 통해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서 잉여가치 부분을 더 많이 늘리고자 한다. 즉 8시간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10시간을 시키고, 4시간을 필요노동시간으로 6시간을 잉여노동시간으로 하여 최대한의 잉여가치를 뽑아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루는 24시간일 뿐이다. 무한정 일하는 시간을 늘릴 수는 없다. 또한 너무나 많은 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은 일하는 시간을 법률에 의거하여 일정 정도로, 즉 하루 10시간, 8시간으로 줄이도록 했다.

그러면 어떻게 잉여가치 부분을 늘려갈 수 있을까? 그것은 이제 필요노동시간 부분을 상대적으로 줄여 나가는 것이다. 즉 노동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8시간 동안 20개의 벽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30개의 벽돌을 만들어 내게 하거나, 3사람이 하던 일을 두 사람이 하도록 하거나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로 대체하거나 등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구조조정과 똑같은 모습이다. 이것을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 이 잉여가치의 생산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획기적으로 불러왔다. 그러니까 과학기술의 발전은 필요노동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잉여노동시간을 최대로 늘리려는 노력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잉여노동시간을 최대로 늘리려는 것은 바로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제한적인 생산만이 문제가 되는 상품의 가치의 경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2. 자본주의 경제의 양면성.

이러한 자본의 이익을 최대한 늘리면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은,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중적인 측면을 가지게 된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과학기술이 발전하게 됨에 따라 이전에는 인간의 노동을 통해 이루어졌던 일들이 기계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시기에는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가 거의 필요 없는 농장과 공장 및 사무실이 등장하게 될 것이며, 아주 정교화된 지식 분야에서만 소수의 엘리트 노동자만이 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죽어라 일하기를 강요당하는 산업사회의 노예노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됨에 따라서, 인간이 노동할 수 있는 노동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며, 이는 전반적으로 노동자의 일자리 수가 엄청나게 줄어듦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노동자가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임금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을지가 불분명해짐으로써 생계가 아주 불안정해지고, 이는 곧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이는 현재에도 필요할 때만 노동자를 쓰는“노동 유연화 정책”, “구조조정 정책”과 맞닿아 있다.

 

3. 분배, 교환의 기준 1-리프킨(노동시간)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제레미 리프킨은 경제적 측면에서의 이러한 모순을 경제에만 맡겨 두어서는 더 많은 고통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측면에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하나는 실업에 따른 범죄 계층의 증가에 대응한 경찰력의 증가와 감옥의 증설이고, 다른 하나는 제3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이 두 가지 중에서 두 번째를 위하여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는 제3부문의 영역은 사회?문화적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공식적, 비공식적인 비영리적 활동을 포함하는 영역이며, 이 영역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적 유대와 사회적 질서를 창출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영역은 경제적 이익(자본의 이익)을 창출하는 시장의 영역과 대립되는 모든 비영리적 자치 활동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활동 영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 자산으로서 이 활동 또는 이 활동의 결과물, 그리고 정부의 재원이 이 이 영역에서 어떻게 분배, 교환되고 소통될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기준으로 분배, 교환되고 소통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들에는 시간은행(time bank), 타임 달러(time dollar) 등의 제도가 있다.

이 제도의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다. 어떤 특정인이 자진해서 자신의 전문적인 활동(노동)을 한 시간 제공하면, 한 시간 달러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이 보상은, 여러 전문적인 활동들이 서로 질적으로 아주 다를지라도, 한 시간 달러로서 동등하게 이루어진다. 즉 각 활동(노동) 시간은 기여한 바의 특징과 종류에 관계 없이 동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고 있는 이 제도 운영 방식은 사실상 본질적으로 시장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위의 자본의 생성(시장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과정에서 보았듯이, 질적으로 서로 다른 노동 생산물이 교환되는 기준 역시도 1시간, 2시간 등으로 표현되는 자연 시간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시장 영역과 대립되는 제3부문 영역 사이의 교환, 분배 소통 방식의 기본적인 구조는 동일하기 때문에 이 두 영역 사이의 차이점이 사라진다. 이는 곧 위에서 말한 부정적인 측면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깊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많아질 수 있음을 뜻하게 된다.

이 제도는 19C에? J.그레이, P.J.프루동, R.오언 등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주장되었던 노동화폐 제도와 유사하다. 노동화폐는 금을 화폐로 사용하지 않고 노동시간을 화폐단위로 하여 노동자 자신들의 노동과 노동생산물이 국립중앙은행을 매개로 교환되는 제도이다. 즉 몇 시간 노동을 했는가 하는 증명서로서의 노동화폐를 국립중앙은행이 발행하고, 이 노동화폐를 다시 중앙은행에 가서 자기가 필요한 물건으로 교환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오언에 의해 실행에 옮겨져 1832년 노동화폐로 노동생산물을 교환하는 국민평형노동교환소가 설립되었지만 3년을 못 넘기고 실패로 끝났다.

DSC09823-1

 

4. 분배, 교환의 기준 2-맑스(각자의 필요)

이렇게 노동시간을 기초로 분배, 교환되는 방식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기본 구조이다. 그런데 이 구조에서는 내가 1시간을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1시간의 보상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노동시간은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은 과학기술의 발달 정도, 숙련 정도, 교육을 받은 정도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이 중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을 받은 정도인데, 왜냐하면 과학기술에 어느 정도 정통하고 있으며, 숙련되었는가를 객관적으로(수치상)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교육을 받은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교육을 비롯해 더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며, 이는 곧 사교육비의 엄청난 증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리프킨이 말하고 있는 시간은행 같은 경우는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시간은행에서의 시간 역시도 결국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으로 환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교수의 노동 1시간과 블루칼라 노동자의 노동 1시간이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어 노동자의 생계가 엄청 위협받음과 동시에 부익부빈익빈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이 존재한다. 이 다른 방식은 다름 아니라 맑스가 말하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즉 각자의 욕구에 따라 분배, 교환, 소통되는 방식이다. 이 방식 속에서는 그 누구도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방식을 대단히 현실과 동떨어진, 유토피아적이고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이미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의 방식에 움터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연인, 동아리 등등의 관계에서 말이다.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이익이나 손해 등을 따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각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이 방식은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 방식을 어떻게 의식적으로 사회 전체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실현가능함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 보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가면 서로가 서로에게 먹을 것과 담요, 음료수 등을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주고받는다. 서로에게 격려와 희망, 연대의 벅참을 주고받는다.

국외로 보면? 쿠바, 베네주엘라, 볼리비아 등이 민중무역협정(PTA)(미국을 축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해서 만든 협정)이라는 것을 체결하였다. 자유무역협정은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이것은 화폐의 양으로 나타난다)에 따라 분배, 교환,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민중무역협정은 각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자의 양에 따라 분배, 교환, 소통하는 방식이다. 쿠바는 베네주엘라로부터 석유를, 볼리비아로부터 천연가스와 콩을, 베네주엘레는 쿠바로부터 의사를 비롯한 선진 의료제도를, 볼리비아로부터는 천연가스와 콩, 밀을, 볼리비아는 쿠바로부터 의사를 비롯한 선진 의료제도를, 베네주엘라로부터는 석유 등을 필요한 만큼 서로 주고받는다.

우리가 노동하는 것은 각자가 필요한 것을 얻고 충족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것이 바로 노동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에로스와 삶 ? 『베니스의 죽음』과 『파이드로스』 <도봉도서관 청춘과 함께하는 인문학> 1

에로스와 삶 ? 『베니스의 죽음』과 『파이드로스』 <도봉도서관 청춘과 함께하는 인문학> 1

 

이지영(한국철학사상연구회)

 

 

1. 토마스 만 ? 『베니스의 죽음』

토마스 만 : 토마스 만(Mann, Thomas 1875-1955)

– 뤼벡의 시민 계급 출신.

– 북부 독일의? 자유 시민 특유의 냉정, 명석, 자제의 정신 태도를 견지. 또한 일면 남미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민감한 감수성, 공상력, 음악성, 그리고 상처받기 쉬운 신경을 물려받았다고 평가받음.

– 그는 작품 속에서 인간과 인생에 대한 단면이 아니라 세계와 인생을 깊이 있게 제시. 토마스 만의 작품은 이중적 의미 제시와 문장의 난해함으로 대중성을 얻는 것에는 실패. <<베니스에서의 죽음>>, <<마의 산>>, << 요제프와 그의 형제들>>, << 파우스트 박사>> 등의 주요 작품을 남김.

1) <<베니스의 죽음>> 내용 – 주인공 아셴바하는 시인으로 명성과 지위를 얻은, 도덕가의 풍모가 돋보이는 예술가였으나. 베니스에서 절대미를 가진 소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과정에서 사랑과 미와 관계에 대한 통찰을 얻을 뿐더러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명성이 거짓된 광대짓, 허위였다는 것을 깨닫게?된다. 절대미, 절대적인 에로스의 경험은 언어로 잡아낼 수 없는 것, 그는 베니스에 만연한 콜레라에 전염되어 사랑하는 소년의 모습을 두 눈 속에 담은 채 사망한다.

….구스타프 아셴바하는 거의?탈진 상태에서 일하는 모든?사람들, 과중한 부담에?허덕이는?사람들, 이미 녹초가 되어버린 사람들, 아직은 그래도 꼿꼿이 자신을 지탱해 가고 있는 사람들, 신체도 허약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한 중에도 초인적인 의지와 현명한 자기 관리로 적어도 얼마 동안이나마?영향력을 발휘한 그 모든 업적주의 도덕가들의 시인이었다. 그런 도덕가들은 많았으며, 그들이 이 시대의 영웅들이었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하셴바하의 작품 속에서 그들 자신을 재발견했고, 자기 자신들이 그 속에서 인정받고, 고양되고 예찬되는 것을 알았으며 그에게 감사했고,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민음사 판,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 베니스의 죽음? p 430

2) <<베니스의 죽음>>을 지배하는 죽음의 이미지 :

소설 전반부: 산책에 나선 아센바하 죽음의 신을 닮은 남자를 만남

소설 후반부: 죽음의 전염병으로 가득찬 베니스

3) 죽음과 에로스의 만남 : 에로스, 즉 신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흔히 서구에서 죽음과 연결되어 왔다. 에로스는 유한자인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극복하는 한 방식, 혹은 생은 언제나 죽음을 그 조건으로 하여 가능함을 역설

ex ) 바타이유(사상) – <<에로티즘>>, 슈베르트(음악), 에곤 쉴레, 클림트(그림) – 소녀와 죽음, 사신과 에로스

 

BB_DiV

 

2. 플라톤 (BC 427~BC 347)

–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 : 화이트 헤드

– 아테네 최고 정치 명문가 출신 : 아버지 아리스톤은 아테네 왕가의 후예, 어머니는 정치가 솔론의 후손

– 20살에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만나 철학에 심취. 28살에 되던 기원전 399년 아테네 시민

500명으로 구성된 직접 민주제적 법정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모욕했다며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 이후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중우衆愚 정치로 판단.

– 이후 인생 행로를 바뀌어 정치가가 아닌 철학자의 삶을 선택.

플라톤의 에로스론 ? 『파이드로스』

– 상대에게서 발견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곧 사랑이다. 당신이 사랑에 빠졌다면 그것은 상대에게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 그것이 단순히 표면적인 것, 신체적인 것에 머물러 있으면 사랑의 부작용, 몰이성과 부덕함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고 그러한 사랑은 상대와 자신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고전주의자 중의 고전주의자인 플라톤의 해법은 당신이 발견한 아름다움 너머,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껴지는 그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안 변하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이성을 통해’ 발견하란 것. 그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머물러 단지 그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고 소유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가 가진 비신체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러한 비신체적 아름다움을 아끼며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영혼과 영혼이 결합하게 되면 설사 둘이 헤어지게 되더라도 신체는 비록 멀어지되 서로의 영혼은 영원히 결합한 채로 남게 되리라 말한다.

– 플라톤은 에로스적 사랑이 육체에 대한 사랑에 머무르면 안된다고 역설한다. 육체를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본질을 정신으로 포착해, 두 사람의 결합이 신체의 결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정신적 성숙을 돕는 정신의 합일, 정신의 승리로 승화되도록 이끌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 『향연』에서 플라톤은 다른 등장 인물들의 입을 빌려 에로스에 대한 다양한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주지만, 결국 에로스를 생산의 힘, 생산의 원동력으로 표현한다. 남녀의 사랑이 자식 생산으로 귀결되듯, 정신에 대한 사랑은 정신의 자식을 낳는다. 플라톤의 사랑관은 이처럼 플라톤답게 육체적 매력, 육체의 홀림을 뛰어 넘어 정신의 고결함에 이르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 이유는 파이드로스여,?잘 명심해라, 아름다움만이 사랑스러운 동시에 눈에 보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은 느낄 수 있는 자의 길이란다, 어린 파이드로스여, 예술가가 정신에 이르는 길이란다, 그렇지만 귀여운 애야, 이제 너는, 정신적인?것으로 가기 위해 감각적인 것을 통과하는 길을 걸어온 사람이 언젠가는 지혜와 진정한 품위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너는 이것이 오히려(결정은 네게 맞기마) 위험스럽고도 쾌적한 길, 즉 필연적으로 잘못에 이르게 하고 마는 정말 잘못된 길, 죄악의 길이라고 생각하느냐??…우리 시인들은 에로스가 옆에 와서 안내자로 나서주지 않으면 아름다움의 길을?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야…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열정이 곧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켜 주는 것이며 우리의 동경은 반드시 사랑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야…우리의 명성과 영예로운 지위는 일종의 익살극이고, 우리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지극히 우스꽝스러운 것이며, 예술로 국민과 젊은이들을 교육시키겠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며 금지해야할 계획이야…그 까닭은 말이지, 파이드로스, 인식이란?것이 결코 품위도 엄격함도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건 뭔가를 알면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뿐 정신적인 태도나 형식을 지닌 것이 아니란다…새로운 엄격성과 제 2의 자유와 형식을 존중한다는 말이지. 그러나 파이드로스, 형식과 자유는 도취와 탐욕으로 치닫게 되고…?????<같은 책, p 525>

 

3. 『베니스의 죽음』과 에로스의 이중성

– 예술, 삶의 길

– 파멸, 죽음 : 사랑의 도취 속에 죽다

 

 

있을 것은 없고 없을 것만 있는 개 같은 세상 [철학을다시 쓴다]-29-3

있을 것은 없고 없을 것만 있는 개 같은 세상 [철학을다시 쓴다]-29-3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자, 이제 다시 제가 앞서 그렸던 그림으로 돌아갑시다. 이야기가 너무 곁가지를 많이 쳐서 그 그림이 어떤 것이었는지 잊어버렸다고요? 그렇다면 다시 그리지요. 힘든 일은 아니니까요.

 

윤구병29-2

 

제 고조부모인 파르메니데스 옹과 제논 마님에 따르면 이 그림에서 ①만 있고 ②부터 ⑥까지는 없습니다. 할아버지 플라톤 옹에 따르면 ①과 ②의 속살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저 세상〔이데아(idea)의 세계와 직관의 세계〕에 있고 ②의 겉껍데기와 ⑤까지만 현상계에 있습니다. 제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는 ①은 없다고 본 듯합니다. 제 아버지가 신으로 모셨던 분은 ①이 아니라 ②라고 저는 믿는데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제 아버지는 신을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남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서도 다른 한쪽으로는 신은 ‘생각의 생각〔noesis noeseos〕’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좀 묘하지요? 제 생각으로는 생각〔noesis〕은 움직임입니다. 생각이 멈추면 그걸 어떻게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생각이 다른 쪽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생각은 멈추게 되고, 그건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제 아버지가 하나이신 ‘하나님(신)’을 생각과 같은 것이라고 여긴 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생각이 하나를 찾는 것은 생각이 하나에서 나왔기 때문이고, 또 생각과 하나는 마침내 하나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생각 속에는 생각함과 생각됨이 더불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은 하나이자 여럿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고조할아버지 파르메니데스 옹으로부터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내려온 존재론의 전통을 저 나름으로 졸가리를 찾으면 아마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이신 있는 것이 생각을 낳고, 생각이 삶을 낳고, 삶이 자연을 낳고, 자연이 질료를 낳았습니다. 파르메니데스 옹 말씀 그대로 하나이신 있는 것은 가득 차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하나에서 나왔고, 그 때문에 늘 하나를 지향하지만, 생각 속에는 빠진 것이 있습니다. 제 아버지가 신을 ‘생각의 생각’이라고 규정하셨을 때 앞생각〔noesis〕과 뒷생각〔noeseos〕은 같은 것이겠습니까, 다른 것이겠습니까? 저더러 말하라 하면 저는 다른 것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그러면 앞생각과 뒷생각 사이에는 틈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대체 이 틈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입니까? 틈은 빈 데를 뜻합니다. 무엇인가 빠져 있을 때 빈틈이 생깁니다. 틈이 있으면 하나로 있던 것이 둘로 갈라집니다. 하나를 둘로 가르는 이 틈은 무엇 때문에 생겨날까요? 무엇이 빠져서 둘 사이가 갈라질까요? 빠진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아무튼 ‘빠진 것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아요? 그런데 누구한테 들었더니 ‘빠진 것이 있다.’는 말은 ‘없는 것이 있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하데요.(누구한테 듣기는 누구한테 들어? 윤모가 《있음과 없음》이라는 글에서 자기네 조상들이 쓰던 말이 그렇다고 했지!) 자, 앞생각과 뒷생각이 갈라지자 어느 틈에 없는 것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까? 없는 것이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는 있는 것이 모습을 감추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가 빠지는 자리이지요. 생각이 하나로부터 갈라서는 자리 말입니다. 그러나 생각이 하나를 찾지 못하면 생각은 길을 잃지요. 감각을 징검다리로 삼는 보통 사람의 생각에서부터 고도로 추상화한 사유에 이르기까지, 언어학자가 찾는 음소〔phoneme〕나 형태소〔morpheme〕에서 생물학자가 찾는 생명의 단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각이 하나를 찾기에 그처럼이나 애를 쓰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를 찾지 못하면 생각은 생각이기를 그치지요. 하나를 잃은 생각은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지니까요. 무엇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의 상태를 가리켜 우리는 의식 불명이라 이르지 않던가요? 하나를 찾아 빠진 것을 메워야 생각이 제 구실을 합니다. 제가 생각을 ‘하나이자 여럿인 것’이라고 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이자 여럿인 생각은 있는 것에서 흘러나오지만 있는 것 바로 그것은 아닙니다. 생각에는 빠진 것, 다시 말해서 없는 것이 섞여 있다는 말이지요. ‘없는 것이 없게’ 만들려는 플라톤 할아버지의 노력이 있는 것들의 모두인 여러 하나들의 세계, 곧 이데아의 세계를 만들어 냈지만, 이데아 세계의 여러 하나들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파르메니데스의 오직 하나, 곧 ‘하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깨끗한 생각도, 이것과 저것을 먼저 놓고 그것을 같거나 다른 것으로 파악하는 추론의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생각은 하나를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과 저것이 함께 있는 세상, 곧 둘이 있는 곳에는 공간이 있게 마련이고, 공간이 있는 곳에는, 비록 그 공간이 순수한 사유 공간이라 할지라도 하나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하나는 직관의 대상이지 추론하는 사유의 대상이 아닙니다. 제 할아버지 플라톤 옹이 이데아의 세계는 직관의 대상이라고 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지요. 그러니까 생각에는 직관도 있고 추론도 있습니다. 직관은 하나를 지향하는 생각이고 추론은 여럿과 관계를 맺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하나 밖에 다른 어떤 것이 있다는 말인데, 하나는 곧 있는 것이니 있는 것과 다른 어떤 것이란 없는 것밖에 더 있겠어요? 저는 없는 것을 그렇게나 꺼리고 두려워했던 우리 고조할아버지 파르메니데스 옹으로부터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 옹에까지 이어져 내려온 이른바 ‘그리스 사유의 전통’을 깨지 않으면 존재론의 일관된 체계를 세우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있는 것과 생각은 하나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하나로 있다.’고 우기는 고조할아버지의 고집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 물론 우리의 생각은 늘 하나를 지향하지요. 일관된 생각이란 하나를 지향하는 생각을 가리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생각이 둘로 흩어지면 종잡을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생각은 움직이는 것이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있는 것과 하나가 되려고 해도 하나 쪽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지요. 당신은 아예 없는 것, 다시 말해 허무를 생각할 수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으면 아예 없는 것은 말 그대로 없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없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규정할 수 없는 것〔apeiron〕’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염두에 두고 있는 ‘순수 질료’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 그 반문에 대해서 대답하지요. 그렇습니다. 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그 순수 질료니, 무규정적인 것이니 하는 것의 뿌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철학은 뿌리를 찾는 학문이고, 까닭을 캐는 학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을 지닌 철학이 제대로 서려면 존재론의 바탕이 단단히 다져져야 합니다. 우리가 나날의 삶에서, 또 그 삶을 반영하는 감각이나 사유 속에서 없는 것을 몰아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없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삶과 생각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추운데 난로에 온기가 없습니다. 있는 것 하나밖에 없으면 생각도 없습니다. 구체적인 생활에서나 감각에서나 생각에서나 어디에서나 드러나는 이 없음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비어 있음이라고요? 결핍이라고요? 이미 있었던 것의 사라짐이라고요? 늘 있는 것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것이지 홀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고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천하장사라 해도 이 세상에는 감각의 세계와 사유의 세계로부터 이 없음을 몰아 낼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얼버무리지 말고 솔직히 인정합시다.

‘태초에 있는 것 밖에 없는 것도 있었다.’ ‘없는 것은 하나인 있는 것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나의 힘이 넘쳐흘러 없는 것을 밀어 내고 둘레에 생각의 고리를 만들었는데 이 생각의 고리는 하나와 맞닿아 있어서 늘 하나를 지향한다. 이 하나이자 여럿인 생각의 고리에서 최초로 운동 가능성이 나타났다.’ ‘생각의 고리 둘레를 생명의 고리가 둘러쌌는데 생명의 세계에서 처음으로 둘이 뚜렷이 갈라졌다. 하나의 힘이 지배하는 우주 생명은 생각의 고리에 닿아 있어 하나로 남았으나, 밖에 있는 자연의 고리에 잇대어 있는 생명은 없는 것이 사이에 들어 여럿으로 나누어졌다.’ ‘생명의 고리 바깥에 자연의 고리가 둘렸는데, 이 고리에서 하나인 있는 것과 하나가 아닌 없는 것이 팽팽하게 힘으로 맞섰다. 여기에서 비로소 동물과 식물과 땅같이 감각으로 지각되는 크기를 가진 몸뚱이를 지닌 것들이 나타났다. 이 자연도 생명의 고리에 가까운 ‘만드는 자연’과 밖에 있는 질료의 고리에 가까운 ‘만들어진 자연’으로 갈라졌다. 하나인 있는 것의 힘이 미치는 테두리는 여기까지다.’ ‘자연의 고리 밖에는 있는 것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질료의 영역이 있는데 이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없는 것이 없으면 낱낱으로 구별되는 여러 하나도 생겨나지 못한다. 고유 명사로 부르는 낱낱의 저마다 다른 것은 이 없는 것의 힘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있는 것뿐만 아니라 없는 것까지도 받아들이자고 한 생각의 큰 테두리는 이런 것입니다.”

제가 이렇듯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간단히 줄이고 플로티노스의 이론을 저 나름으로 해석하여 장황하게 늘어놓는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모자 속에 감추어 놓고 끝까지 보여 주려 들지 않았던 것의 실체가 플로티노스의 이론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당사자들은 인정하려 들지 않을지 모르지만 제 생각에 플로티노스는 서양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위대한 신학자와 철학자들에게 숨은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플로티노스의 제자인 포르피리오스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도 토마스 아퀴나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스피노자도 헤겔도 베르그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이 부정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감추려고 애썼던 없는 것이 플로티노스에 의해서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니, 이제부터 그 동안 우리가 뒤로 미루어 놓았던 과제, 곧 ‘없는 것이(은)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모순율을 뒷받침하는 가장 기본 되는 판단 형식이 될 수 있는지 따져 봅시다. 보통 모순율을 대표하는 문장은 ‘ㄱ은 ㄱ 아닌 것이 아니다(A is not non-A).’로 표현됩니다. 그러니까 없는 것이 ㄱ이라면 있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닌 것이라는 점에서 ㄱ 아닌 것이고, 따라서 ‘없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ㄱ은 ㄱ 아닌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 형식에 일치합니다. 모순율을 뒷받침하는 존재론 차원의 문장으로 왜 ‘있는 것이(은) 없는 것이 아니다.’를 들지 않고 하필이면 ‘없는 것이(은) 있는 것이 아니다.’를 들었느냐고 묻는 분에게는 있는 것은 하나이고, 하나로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를 맺지 않으므로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추론의 공간 속에 자리잡을 수도 없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다시 모순율로 되돌아가서, 만일에 ‘없는 것이(은)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판단 형식이 어떤 경우에도 참임이 증명될 수 있다면 모순율은 자명한 논리학의 공리로서 자리를 굳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위야 어떻든 없는 것은 분명히 우리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이고, 이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없는 것이라는 말로(글자로) 지금 우리 눈앞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없는 것이라는 말을 버젓이 들으면서(글자를 눈앞에 보고 있으면서) 그것을 있지 않다고 우길 수 있겠습니까? 어떤 판단 형식이 공리 행세를 하려면 그 판단 형식에 실오라기만 한 의심의 여지도 없어야 합니다. ‘없는 것이(은)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은 ‘없는 것이(은) 있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나란히 놓고 판단할 때 한층 더 강화됩니다. 만일에 이 두 문장을 놓고 볼 때 그 가운데 어느 하나는 분명히 참인데 다른 하나는 거짓임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면 사태는 더 심각해집니다. 모순율이 깨지면서 동시에 배중률도 공리의 구실을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 사태는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 논리학이 설 자리를 잃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 논리학이 무너지면 파르메니데스가 주춧돌을 놓고 플라톤이 그 위에 기둥을 세운 그리스 존재론의 전통이 한꺼번에 와르르 주저앉을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아빠가 아빠다워야만 자식이 자식다운 법(2)[대안도덕교과서]-10

아빠가 아빠다워야만 자식이 자식다운 법(2)[대안도덕교과서]-10

 

 

오상현(숭실대학교)

 

*이 글은 삼인출판사에서 출판 될 대안도덕교과서(가제)의 일부를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평생 공부만 하라고?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의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열심히 배우고 시도 때도 없이 익히면 즐거운가요? 만약 공부 자체가 너무너무 즐겁다면, 그래서 초중고 12년을 한 20년쯤으로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가까운 병원에 가서 상담받기를 권합니다. 솔직히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게 재미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 사상에서는 혼자 있을 때에도 삼가는 마음으로 자기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라고 합니다.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 말은 천하를 평화롭게 하기 전에 반드시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나라를 다스리기 전에 반드시 가정을 다스려야 하며, 가정을 다스리기 전에 스스로 엄격한 수양을 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천하를 다스리는 일도 결국은 자기 수양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볼게요. 대통령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가정합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제는 누구나 그 잘못을 탓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의미에 비추어 해석한다면, 국가적 문제, 즉 대통령의 잘못을 탓하려고 한다면 그 전에 자신의 가정을 잘 다스려야만 하고, 그 전에 자기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시무시하죠. 공자의 제자 중에 증삼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얼음판 위를 걷듯이 전전긍긍하면서 살아왔는데 이제야 비로소 (엄격한 자기 수양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구나!” 유가의 자기수양의 엄격성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벗어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유가의 자기 공부는 이렇게 무겁고 어려기만 한 일이었을까요?

공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얘들아, 집에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밖에서는 누구에게나 공손해야 한다. 삼가는 마음으로 뱉은 말은 꼭 지키고, 편 가르지 말고 사랑하여라. 또한 어진 사람과 가까지 지내도록 하여라. 이렇게 행하고도 혹여 남는 힘이 있다면, 비로소 그때 공부하여라.” 『논어』 「학이」

공자가 남긴 공부에 관한 말 중에서 위의 대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문에서는 공부를 학문(學文)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 그럼 우리는 언제 학문을 해야 할까요? 공자는 말했습니다. ‘힘이 남을 때’라고. 우리가 흔히 쓰는 여력(餘力)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습니다. ‘여력’이란 ‘남은 힘’을 의미합니다. ‘여력이 없다’는 말은 ‘남은 힘이 없다’는 말이니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공자가 ‘남은 힘’으로 공부를 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공자가 생각한 공부는 책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에서는 부모님과 마주하고 밖에서는 친구나 어른들, 혹은 선생님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늘 누군가와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의 의미처럼 혼자 살 수만은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지요. 공자가 볼 때, 공부는 바로 그렇게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쉽게 말해 도덕 시험 점수 100점 맞는 사람과 훌륭한 인격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묵묵히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단순한 문제의 해답 속에 공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이제 눈치를 채셨나요? 유가에서 말하는 공부라는 것은 사실 책을 읽고 암기하고 문제 푸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어 단어를 많이 외고 수학 공식을 많이 아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아닙니다. 공자는 말합니다. 착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실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혹시 그렇게 하고도 남는 힘이 있다면 그때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린 것이니까요. ‘지행합일(知行合一)’, 즉 ‘아는 것과 행동은 일치해야 한다’는 진리가 동서양 모든 철학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공부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공부 왜 하세요?” 새 학기 강의가 시작되면 첫 시간에 제가 꼭 학생들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그러면 대체로 ‘수업을 듣기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저는 또 묻습니다. “수업을 왜 잘 들으려고 하나요?” 그러면 대체로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라고 답하더군요. 그러면 저는 또 묻습니다. “학점은 왜 잘 받아야 하죠?” 자 이제 눈치를 채셨나요? 제가 왜 이렇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을까요?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하다보면 결국 왜 사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삶의 물음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변이 한결같이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점입니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월급이 많아지고, 월급이 많아야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하고 그럴 수 있다는 거죠. 그래야만 비로소 ‘행복’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행복’이라는 근원적 목표로 거슬러가는 길은 각자 조금씩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것은 반드시 궁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위한 행동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행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부모님의 행복을 위한 것? 혹은 선생님을 위한 것? 아닙니다. 모두 틀렸습니다. 결국 그 행복을 누리는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공자는 그래서 나를 위해서 공부하라고 말했습니다.

공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공부한다는 자들은 자신을 위해서 했다. (하지만) 요즘 공부한다는 자들은 남에게 보이려고만 하는구나.” 『논어』 「헌문」

월드 스타가 된 싸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전세계를 열광시킨 가수 싸이는 남들 다 하는 대학 입학 준비, 취업을 위한 스팩 쌓기 등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매일 음악만을 생각했습니다. 그저 음악에만 충(忠)했습니다. 그러니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무명일 때에도 좌절하지 않고 음악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공자의 말을 빌리면 싸이는 전적으로 자기를 위해 공부한 셈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진짜 자기를 위해서, 그래서 진짜 자기가 하고 싶어서 공부하고 있나요? 혹시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기대 때문에 억지로 하지는 않나요?

대학생들도 대부분 마찬가지라는 것이 더 안타깝습니다. 초중고 학창시절 내내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다고 떠들어대지만 정작 대학에 입학해도 남들 다 하는 토익 준비나 학점에 목을 매기 일쑤입니다. 정작 자기가 선택한 학과가 적성에 맞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땀에 절어 있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땀냄새를 없애는 방법으로 향수를 택했다고 합시다. 몇 시간은 버틸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그 고약한 땀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또 다시 향수를 뿌리는 게 합리적일까요? 아니면 깨끗하게 샤워를 하는 것이 나을까요? 문제의 해결책은 근원적인 원인을 제가하는 데에 있지 드러나 증상만을 다른 것으로 뒤엎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정리할게요. 공부는 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 100점 맞는 놈이 더 나쁜 짓을 많이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좋은 머리로 나쁜 짓을 더 많이, 완벽하게 해낼지 모르지요. 공부 잘 한다고 꼭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적은 좀 떨어져도 정말 인간적인 녀석들이 성공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사회라는 틀 속에서 누군가와 마주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짜 공부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엄마나 아빠가 바라는 꿈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보다 자기가 정말 좋아서 공부하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더 성공에 가깝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사 지내는 형식에 정답이 있다고?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평소에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온갖 음식을 정성껏 장만하고 조상님들께 차례를 올립니다. 또 종교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1년에 몇 번씩은 조상님들을 위해 제사를 지냅니다. 그렇게 되면 차례상 혹은 제사상을 두고 간혹 어른들끼리 의견 충돌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를테면 생선과 고기 위치, 혹은 흰 과일과 붉은 과일 등의 음식 위치를 바꿔야 한다는 상차림에 대한 논란에서부터, 술을 올리고 밥을 올려야 한다든가 밥그릇 뚜껑을 언제 닫아야 하느냐는 제사순서에 대한 논란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게다가 시간(봄인지 가을인지)과 공간(전라도인지 경상도인지)에 따라 제사음식 자체도 다르고 순서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헌데 재미있는 것은 다들 제사지내는 법이 따로 있다고들 합니다. 이렇게 죄다 다른데도 정답이 있다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릴 때 저희 집은 일 년에 대여섯 번 정도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사에만 올리는 음식이 있게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서 젯상에는 올리지만 평소에는 거의 먹지 않는 음식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혹시 경상북도 안동지역의 ‘헛제삿밥’을 아시냐요? 제사에 쓰이는 나물들을 간장에 비비고, 고등어나 고래고기 같은 제사 음식을 곁들여 먹는 것으로 이제는 안동지역의 대표 음식이 되었습니다. 이 음식은 본래 제사를 지낸 뒤에 만들어 먹던 음식인데 그 맛이 좋아서 제사랑 상관없이 먹게 된 음식입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이처럼 제사를 지내면 남은 음식들이 늘 문젯거리가 됩니다. 평소에 잘 먹지 않던 음식들을 젯상에 올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중에 내가 제사를 지내게 되면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올리겠다고요. 할아버지는 사이다를 엄청 좋아하셨습니다. 특히 별이 일곱 개가 있는 회사의 사이다만 드셨습니다. 할머니는 간장 게장을 좋아하셨는데 나중에는 이가 없으셔서 아예 잘게 부셔놓은 게에 양념을 버무려 게장을 담그시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한 제상에 사이다나 간장게장을 올리면 나쁜 행동이고 예의에도 어긋날까요?

원래 상상력은 끝도 없기 때문에 먼 훗날도 생각해봤습니다. 내 후손들이 나를 위해 제사를 지낸다면 어떤 음식이 좋을까 하고요. ‘오징어젓갈, 미역줄기볶음, 쇠고기무국, 홍어삼합’ 정도면 참 좋겠습니다. 제사가 끝나자마자 제사에 모인 사람들이 둘러앉아 바로바로 먹어치울 수도 있으니까 음식 남을 걱정도 없지요. 여러분들은 훗날의 자신의 제사상에 어떤 음식이 올라오길 바라나요? 돼지갈비나 초밥, 까르보나라 스파게티가 떠오르진 않나요? 우리의 이런 즐거운 상상에 대해 공자는 뭐라고 답할까요?

임방이라는 제자가 예의의 근본에 대하여 여쭈었다. 공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질문이구나. 예의라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보다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또한) 장례를 치를 때에는 (절차를 잘 알아서) 쉽게 (잘) 치르는 것보다 차라리 (진정으로) 슬퍼해야 한다. 『논어』 「팔일」

실제로 동양철학의 역사 속에서 유가는 너무 형식에 얽매인 집단이고 장례식이나 제사를 지낼 때에 너무 사치스럽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논어 안에 등장하는 공자의 말을 들으면 과한 비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적어도 공자 자신은 겉으로 보여지는 형식적인 측면에 힘을 쏟기 보다는 내면의 진실성에 더 귀를 기울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해봅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 그와 같을 것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게 ‘차 조심해라’, ‘밥 굶지 말고 다녀라’라고 잔소리하던 그런 엄마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셨다니. 말로 하기 어려운 슬픔에 잠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만약 개신교를 종교로 가진 이모와 불교를 종교로 가진 삼촌이 서로 자기의 종교식으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다툰다면 저는 아마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진 유족들이 장례법을 가지고 다투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고인께서 생전에 믿던 종교의 예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장례는 세상을 떠나신 분을 위한 마지막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제가 온전히 그분을 위해 슬퍼하고, 또한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러 와주신 분들에게 그분을 대신에 인사를 드리는 것이겠지요.

‘홍동백서(紅東白西)’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이 말을 ‘제사상을 차릴 때, 신위를 기준으로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사과처럼 붉은 과일은 동쪽에, 배처럼 흰 과일은 서쪽에 놓으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홍동백서’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라고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서울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바다에 침몰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을 온통 슬픔에 빠지게 했던 안타깝고 절망적인 사건이고 두 번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특히 이 배에는 수학여행을 위해 승선했던 10대의 학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건 이후 처음 맞이하는 추석명절, 유가족들은 희생된 아이들을 위한 정성스런 차례상을 준비했습니다. 피자와 치킨, 콜라와 과자로 차려진 차례상이지만 그 누구도 불경스럽고 예의에 어긋났다고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누구보다 그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부모들은 희생된 아이들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음식을 제사상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들의 진솔한 태도에 감히 누가 제사상의 예의범절을 운운할 수 있겠습니까?

정리하겠습니다. 제사는 유가에서 행했던 중요한 의식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그 행위보다 중요한 것이 진솔한 마음가짐입니다. 앞서 세상을 떠난 그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번지르르한 상차림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그러니 장례나 제사에 관한 절차로 싸우는 것도 모두 부질없는 일입니다. 도리어 자신들의 수준 낮음을 부끄럽게 드러내는 다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직 곁에 계실 때에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미리 말해두는 것입니다. 불행은 불현듯 다가오고 후회는 끝없는 고통으로 남게 됩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게 나쁘다고?

 

유가의 고지식한 선비를 떠올려 봅시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시대, 가난한 농촌마을에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한 채가 있습니다. 쌀독은 비어있는데다 곧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은 일상적인 배고픔에 시달리고 아내는 삯바느질을 하고 있습니다. 알바를 하는 셈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이 집의 가장이란 양반은 집 안에 들어앉아 글을 읽고 있습니다. 벌써 10년 째,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다못한 아내가 선비에게 한마디를 던집니다. 애들 굶어죽는 꼴 보기 전에 나가서 돈을 좀 벌어오라고요. 기다렸다는 듯 선비가 소리칩니다. 어디 양반 체면에 장사꾼들처럼 이익에 눈이 멀어 돈을 벌어서야 쓰겠느냐고요.

공자가 만약 이 광경을 지쳐본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자기 자식들 굶기면서까지 책을 읽는 것도 모자라 물질적 이익 자체를 거부하는 이 선비를 보고 말입니다. 공자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공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부유하고 귀한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옳지 못한 방법을 통해서 얻어서는 안 된다. 가난하고 천한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피하는 것이 아니라면 안 된다. 『논어』 「리인」

공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거친 밥을 먹고 물만 마시며 팔베개를 하고 누워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에 있단다.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고 귀한 자리에 오른다면 내겐 뜬 구름과 같을 것이니라.” 『논어』 「옹야」

가만히 보니 공자는 이익 자체를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이익 앞에 마주했을 때에 그것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받게 되는 정당한 급여는 옳은 것이지만 주식투자나 부동산 투기로 얻은 부귀는 옳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주식투자가 뭐가 문제냐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주식 역시 누군가 돈을 잃어줘야 내가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제로섬 게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 사회의 이익 전체는 일정하기 때문에 한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적어고 공자가 생각한 부귀는 다른 사람의 손해를 통해 얻어지는 이익과는 거리가 있었을 뿐이지 부귀함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닌 셈입니다.

또 다른 곳에서 공자는 정치가 무엇이냐는 제자의 질문에 먼저 굶는 백성들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국방력에 힘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라는 공자의 입장을 보면, 그가 물질적인 측면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나아가 공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성장과 분배의 분제, 즉 경제성장을 우선으로 놓을 것인지 아니면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우선하는 지에 대해 꽤 의미 있는 말도 했습니다.

나는 ‘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자라면, 적다고 걱정하지 않고 골고루 분배되는지를 걱정하며,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지 않은지를 걱정한다.’고 들었다. 골고루 분배되면 가난함이 없고, 서로 어우러지면 적음이 없고, 편안하게 하면 편중됨이 없어진단다. 『논어』 「계씨」

부유함과 가난함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세계 최고의 부자인 만수르의 입장에서는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일 뿐입니다. 반대로 세 끼 따뜻한 밥을 먹는 것에 별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몸에 장애가 있어 생활이 매우 불편하거나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가정의 사람과 비교해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절대적인 부자와 절대적인 가난뱅이가 없다면 결국 부유함과 가난함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앞서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자가 힘써야 할 부분이 바로 ‘분배’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누구는 일한 만큼 대가를 가져가지 못하는데 누구는 노력에 비해 어마어마한 대가를 가져가는 사회라면, 아무리 그 사회가 성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억울한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억울함을 없애야 하는 자가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공자를 공산주의자라고 욕할 수는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물론 공자는 물질적 이익 자체로부터 태연해지기를 바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부귀를 쫓는다고 누구나 부귀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공자는 그것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처해진 상황에 만족하고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의 의미를 찾으라고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안회는 참으로 훌륭하구나. 다른 사람들은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가난한 마을에 사는 것을 (창피하다고)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가난 속에서도 얻어지는 작은) 즐거움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으니 참으로 훌륭하구나” 『논어』 「옹야」

정리하겠습니다. 공자도 사람인지라 부유하고 귀함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익을 얻기 위해 누군가 반드시 손해를 봐야만 한다면 옳지 않다고 여긴 것뿐입니다. 그러니 식구들 굶겨가며 자기 공부만 하고 있는 선비를 공자는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하는 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물질적 이익 앞에 올바름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세상은 살짝만 비겁하면 손쉽게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습니다. 어디서든 새치기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바로 그것이겠지요. 그래서 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임무가 중요합니다. 누구나 열심히 일한 만큼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나아가 누구나 자기 능력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공자가 생각한 국가의 임무가 아닐까요?

 

이것 하나만 기억하고 살자.

 

어떤 철학자의 삶의 방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공자처럼 똑같은 질문에도 묻는 사람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서 각기 다른 답변을 내놓던 인물에 대해서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철학자의 좌우명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공자의 제자 중에도 이런 의문을 지녔던 제자가 있었습니다. 공자의 좌우명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궁금했던 것이지요. 바로 그 제자가 자공입니다. 어느 날 자공은 공자에게 돌직구 질문을 날립니다.

자공이 여쭈었습니다. “한 마디의 말 중에 평생토록 실천하면서 간직해야 하는 것이 있을까요?” 공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아마도) 서(恕)라라는 것일 게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않는 것이다.” 『논어』 「위령공」

우리가 흔히 공자의 철학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仁)이 아니라 서(恕)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인(仁)은 논어에 100번도 넘게 나오지만 서(恕)는 단 2번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비추어 봐도 좀 이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이야말로 공자가 후세에 전하려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恕)는 ‘같다’는 의미의 여(如)자와 ‘마음’을 뜻하는 심(心)으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앞서 역지사지의 마음, 즉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공자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늘 이 마음, 즉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마음’만 간직하고 살아도 다투고 싸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딱 이 하나의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억울한 공자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우리가 흔히 유가에 대해 지니고 있었던 오해들이 상당부분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恕)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그동안 한국사회의 문제점이 유가적 전통에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공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이 모든 문제가 결국은 공자 때문이라는 식의 유치한 결론은 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쟤는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하지 말고 저 아이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 애는 왜 저렇게 게임만 하고 공부는 뒷전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하지 말고 실제로 아이디를 만들어 그 게임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왜 우리 엄마는 저렇게 잔소리만 하는 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하기 전에 엄마의 입장에서 내세울 것이 결국 자식인 ‘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세상의 수많은 갈등은 대부분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합니다. 동네 할아버지가 지적한 것처럼 아는 것보다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면, 우리 이제 행동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