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잉여가치율[자본론강독]-18

제9장 잉여가치율[자본론강독]-18

정리 : 신준하

제1절 노동력의 착취도

최초 ; C=c+v, 500원=410원[c]+90원[v]
생산과정을 거치면서 ;
C=410원[c]+90원[v]+90원[s], C=C’ 500원에서 590원으로 됨.
* C와 C’의 차이는 s, 즉 90원의 잉여가치

◯ 생산요소가치 = 투하자본 가치
생산물가치가 생산요소가치 보다 크기 때문에,
생산물가치의 생산요소가치 초과분 = 투하자본의 증식분 = 잉여가치 : 동어반복

◯ 가치 생산에 투하된 불변자본이라 말할 경우, 그것은 언제나 생산 중에 실제로 소비된 생산수단의 가치만을 의미한다.(생산 중에 마모된 생산수단의 가치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불변자본의 일부만 생산물로 이전되는 경우와 전체가 이전되는 경우 모두 잉여가치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ex1)불변자본 일부만 생산물로 이전되는 경우

c=마멸된 기계가치 54원+원료가치 312원+보조재료 가치 44원
v=90원, 생산요소가치=500원

* 생산물 가치=590원, 따라서 잉여가치=90원
ex2)불변자본 전체가 생산물로 이전되는 경우

c=기계가치 1,054원+원료가치 312원+보조재료 가치 44원
v=90원, 생산요소가치=1,500원

* 생산물 가치=1,590원, 따라서 잉여가치=90원

◯ C=c+v → C’=(c+v)+s → C=C’
생산과정 속에서 실제로 창조된 새로운 가치[가치생산물]는 생산물의 가치와 다르다. 가치생산물은 590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90원[v]+90원[s]=180원이다.

c=0이라 가정할 필요가 있다.(잉여가치율을 계산해내기 위해서) → 가변량만을 계산하겠다.
ⅰ) 왜냐하면, 불변량과 가변량을 결합시키는 경우, 그 결과의 변동은 불변량을 제외 하더 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

ⅱ) 가변자본 부분은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
C’=410원 불변자본+90원 가변자본+90원 잉여가치
여기서 가변자본 90원은 주어진 양(불변량)이므로, 즉, [90원은 임금액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변량을 취급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 90원은 죽은 노동 대신 살아있는 노동이, 정지된 양 대신 유동하는 양이, 불변량 대신 가변량이 등장한다. (즉,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는 원동력이고, 새로운 가치 (영여가치)를 생산한다).

(임금액이 90원으로 고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90원의 가변자본”, 또는 “일정한 자기증식하는 가치”라는 표현이 모순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이유는 이 표현이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하는 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노동력의 교환은 등가교환법칙에 위배되지 않으나, 노동은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에 노동력을 상품으로 교환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모순이다.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모순이다.

s/v : 1)가변자본의 가치증식 비율, 2)잉여가치율

필요노동시간 : 1노동일 중 노동력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부분필요노동 : 필요노동시간 중에 수행되는 노동

잉여노동시간 : 노동일 중 필요노동의 한계를 넘어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시간

잉여노동 : 잉여노동시간 중에 수행되는 노동

 

s/v = 필요노동/잉여노동,  잉여가치율은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착취도의 정확한 표현
cf) 이윤율 = s잉여가치/c불변자본+ v 가변자본

* 잉여가치율 계산방법 요약

c=0으로 본다

잉여가치량이 주어져 있다면, 새로 창조된 가치-잉여가치 = 가변자본
가변자본량이 주어져 있다면, 새로 창조된 가치-가변자본 = 잉여가치

제2절 생산물의 가치를 생산물의 비례 배분적 부분들로 표시

◯ 12노동시간 동안 30원의 가치를 가지는 20파운드의 면사를 생산
가치 구분 : 면사 가치30원=24원[c]+30원[v]+3원[s]
무게 구분 : 면사 20파운드=13파운드[면화]+2파운드[방추]+2파운드[v]+2파운드[s]
노동시간 구분 : 8시간[면화]+1시간36분[방추]+1시간12분[v]+1시간12분[s]

→16파운드의 면사(13파운드[면화]+2파운드[방추]) 및 9시간36분(8시간[면화]+1시간36분[방추])에는 노동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 처럼 보이고, 뒷부분은 노동자가 공중에서 면사를 뽑아낸 것처럼 보인다.
→이 방식은 옳은 것이나, 매우 조잡한 사고방식을 야기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