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우리의 고향은 어디오?

우리의 고향은 어디오?

김재현의 <사랑하는 당신 미안해요> 불휘미디어, 2015

 

김재현은 <사랑하는 당신, 미안해요>라는 책을 냈다. 저자는 그의 책 마지막 페이지에 시 한 편을 그려내었다. 고향이라는 제목의 시다. 그의 시 앞 구절을 옮겨본다.(책 270쪽)

사람들이

고향을 물으면 없다고 대답했지요

고향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다시 물으면

출생지는 있지만 고향은 없다고

고향은 태어나 자란 곳

아늑하고 정겨운 추억이 있는 곳

부모와 가족, 친구들의 삶과 기억이 있는 곳

서평자 최종덕은 이 책의 저자 김재현을 1992년 독일에서 처음 만났다. 나의 기숙사 좁은 방에서 몇 날을 같이 지내면서 당시 최대의 문제였던 독일 통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독일 맥주로 시작해서, 성이 안 찼는지 시납스라는 독일 소주를 더 사다가 마시면서 말이다. 독일 통일 이야기는 자연스레 한반도 통일로 이어졌다. 그는 술도 약한 것 같았고 말주변도 없는 것 같았는데 한반도 이야기가 나오니 열변을 토했다. 당시 나는 독일에서 학위논문 막바지 준비를 했었는데, 김재현도 자신의 논문을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았다. 그 후 일 년이 지나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김재현을 서울서 만났다. 역사와 사회로 본 철학을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라는 학회에서 그를 만났다. 그 학회는 ‘한철연’이라는 짧은 이름으로 불려지던데, 그 학회의 많은 사람들이 술과 더불어 격정적인 논쟁을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 중에서 가장 조용했던 사람이 김재현으로 생각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도 겉보기와 다르게 꽤나 열정적인 모습을 비추었다.

20년 세월이 흘렀다. 그도 나도 나이 좀 들었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은 한철연 이라는 학술단체에 대한 애정이었다. 김재현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몸으로 절감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철학적 글쓰기는 우리 역사의 아픔을 저려낸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한철연의 역사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를 비추고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남들이 많이 하는 역사철학이 추상적인 관념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그의 철학은 한국의 현실을 분석하는 날카로운 시간의 칼을 벼르고 있는 그런 역사철학이었다.

김재현의 책 <사랑하는 당신, 미안해요>는 사별한 그의 아내 이연숙을 기리는 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 가운데 김재현이 이연숙을 만나게 된 청년 시절의 이야기를 보고 내 마음이 숙연해졌다. 앞에서 올린 그의 시 나머지를 마저 읽어야겠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곳이 고향이라고

당신이 떠난 지금 여기

더 이상

고향이 아니네요

당신이 없는 이 곳

더 이상

고향이 아니네요

이런 시를 쓴 김재현에게 나는 ‘한국의 많은 사람들도 출생지는 한국이나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 많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김재현이 이연숙을 만나 후, 1978년 이연숙이 자유민주선언’ 유인물 사건으로 수감되었다. 김재현은 자신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성동구치소에서의 세 번째 면회,(철창 사이로 멀리 떨어져서) 오늘은 얼굴을 약간 동안이라도 더 볼 수 있었고 직접 얘기도 했다. 졸업논문을 다 썼냐고 물어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을 뿐…. 만나 체온을 같이 나눌 수 있다면, 두 팔을 벌려 가슴에 안아 뜨거운 눈물을 마냥 흘리고 싶건만, 안타까움은 지속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고통받는 것이 낫지,,,”(책 253쪽) 이연숙의 아픔은 김재현의 아픔이었고, 김재현의 아픔은 우리 시대 모두를 대신했던 아픔이었다. 제대로 말하자면 우시 시대의 아픔을 그대로 투영되어진 청년의 삶, 바로 이연숙의 강건한 삶이었다. 김재현은 그 아픔을 이렇게 표현했다. “언어를 잃어버리는 극한 상황, 좌절을 통한 새로운 삶에의 욕구, 시대의 고통을 뼛속 깊이 느끼면서, 아니 淑(이연숙)의 고통이 머릿속에 온몸에까지 파고들어와 나도 온몸이 아프다”(책 252쪽) 그런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삶에의 욕구는 소거될 수 없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김재현에게 고향은 새로운 역사의 지평선에서 드러날 것이다. 이연숙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김재현도 삶은 이어갔다. “당시에 나는 고통스러운 생활 속에서도 니체의 글과 김수영의 시집, 시론집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책 254쪽)

나는 김재현의 책 <사랑하는 당신, 미안해요>을 읽으면서 이연숙을 잃은 그의 아픔이 그 자신의 역사철학을 통해 새로운 역사적 고향으로 전화될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한번 읽어 보실 것을 추천한다. 김재현 개인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만, 그 안에서 역사 그리고 삶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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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망각과 기억의 변증법

망각과 기억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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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개인적 고통과 기억에서 사회적 기억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창문 틈을 모포로 틀어막고,

손톱이 빠지고 손가락이 골절되도록 닫힌 문을 열기 위해 애쓰다,

마지막 순간엔 학생증을 손에 꼭 쥐고 죽어간 아이들,

그 죽음을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던 그 아픈 기억들.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시각에는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지만, 1년

동안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었던 말은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였다.

 

잊는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

인간의 뇌 속에서 숙명처럼 반복되는 행위가 이처럼 중요했던 단일 사건이 또 있었을까.

이는 전대미문의 참사에 대한 기억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더없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1년이 지난 이 순간에도 각종 언론 지상과 다양한 인터넷 공간에서 사건의 원인에 대한 수많은 비판과 분석, 애도, 진상 규명의 중요성에 대한 외침 등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의 실체와 폐기 요구에서 보듯, 이 사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진상 규명과 선체 인양도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신간 『망각과 기억의 변증법』은 전국 곳곳에서 세월호 참사에 관한 사회적 망각과 사회적 기억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중견?소장 철학자들이 모여 이에 대한 고찰과 분석을 시도한다. 이는 개인적 아픔과 기억들을 넘어 참사의 교훈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과 논의의 한 과정이다.

 

■ 망각과 고통의 바다에서

국가의 ‘인양’으로

이 책은 세월호 참사가 개인의 기억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기억으로 자리잡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사회적, 집단적 기억이 갖는 본질적 가치가 사회구조의 변화와 사회 발전에 있다면, 우리 사회의 가치와 질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며, 그에 대한 대답과 합의 역시 우리 스스로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1부 민주주의, 인간 그리고 공동체

자유와 민주라는 가치가 변용, 왜곡되어온 사회 속에서 윤리적 공동체의 건설은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는다. 이데올로기의 사슬과 지배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면서도, 이데올로기를 통한 정권 유지는 아직까지도 후진적 정치 환경의 핵심으로 기능한다. 세월호 사건이 일반 국민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는 과정에도 미디어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부 망각과 고통을 넘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호 참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지나간 옛일이 되고 있고, 보수 정치권에서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낀다고 주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기억을 위한 공감과 능력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는 세월호 특별위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나 선체 인양과 진상 규명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왜곡하려는 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유가족들과 사회 구성원들이 고통을 안고 그 주변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매개로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며, 자신의 삶을 공적 담론 속에 새롭게 위치시키는 능동적 경험을 함으로써 단순한 망각과 고통을 넘어서서 과거의 사건을 새롭게 기

억할 수 있다고 필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단일한 고통의 사적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공적 차원에서 바라볼 때 고통의 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억의 새로운 양식이 된다.

-3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

3부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사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방향과 지점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살펴본다.

우리 사회 전반을 짓누르는 의식구조의 하나로, 배타적 편향성이 있고 이를 받쳐주는 편향적 유대 문화가 매우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러한 은폐와 광신을 종식시키고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공공적 앎을 확산시키는 것이요, 도덕적 직관주의와 공감의 확산이 필요하다.

한편 애도와 진실 규명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또 다시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최근 상황을 바라보는 일부 젊은 세대의 시선과 의식이다. 경쟁 교육의 틀 속에서 자라난 그들에게 능력과 실적을 최우선으로 하는 메리토크라시적 규율은 너무나 당연한 듯 보인다. 우리 주변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교육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때, 과거의 시간을 멈추고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기 위한 움직임, 더 나은 삶을 위한 민주 시민 교육의 강화가 절실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세월호 참사 속에 걷혀지지 않는 갈등과 고통의 트라우마를 더 나은 사회의 건설이라는 차원과 연결시켜 극복하기 위한 작업을 이야기한다. 이는 고통과 슬픔의 기억이 서서히 희미해져갈 많은 사람들에게 함께 묻고 대답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필자들은 이 점에서 참사의 기억을 딛고 일어섬과 동시에 외상적 기억은 자연스럽게 망각하면서 과거의 사건을 새롭게 기억할 것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사회 진보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다시 끌어올리고자 하는 인양이 또 다시 중요해짐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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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주기를 성찰하는 한철연 심포지움 및 기념 책 헌정식[한철연 소식]

[망각과 기억의 변증법],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도서출판 이파르

[망각과 기억의 변증법],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도서출판 이파르

세월호 1주기를 성찰하는 한철연 심포지움 및

기념 책 헌정식[한철연 소식]

 

강지은(편집주간)

 

지난 4월 11일 이화여대 인문관 111호에서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봄 제48회 정기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세월호 1주기를 맞는 시점에서 철학자들의 시대적 고찰에 관한 연구논문 발표가 이어졌으며 마지막으로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글을 모은 <세월호, 그 기억과 망각의 철학적 성찰>(도서출판 이파르)의 헌정식을 가졌다.

헌정식은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으로 숙연하게 시작했다. 최종덕 교수는 거리투쟁도 중요하지만 철학자로서 2만에서 2만 5천의 학생들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연구협력위원회?이현재 대외협력부장이 소속되어 활동중인?노래패 더한소리의 <미안해>라는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영상과 노래를 함께 시청하며 헌정식을 마쳤다.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철연과 함께하는 철학 세미나 4기에 초대합니다.

한철연과 함께하는 철학 세미나 4기

?– 인간을 이해하는 세 가지 시선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이하 한철연)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진보적 철학자들이 자유롭게 공존하는 모임입니다.철학을 기반으로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위한 철학 세미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개설 강좌 안내

* 한철연 교육부 세미나- 인간을 이해하는 세 가지 시선

 

기간: 5월9일~7월25일 매주 토요일3시~6시
대상: 철학과 학부 3~4학년 및 대학원생, 한철연 신진회원
(철학을 토대로 연구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

 

 

1. 류짜이푸, <인간농장>을 통해 본 인간의 맨얼굴

강사: 송종서(경희대 외래교수)

기간: 5월9일~5월 30일(4주)
교재: 류짜이푸, <인간농장>, 글항아리, 2014.

 

2. 헤겔의 역사철학과 현대
강사: 이정은(연세대 외래교수,헤겔분과 회원)
기간:? 6월 6일~6월 27일(4주)
교재:? 헤겔, <역사철학강의>, 동서문화사, 2008.

 

?3. 라캉, 욕망의 변증법
교재: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민음사, 2002.
강사:김우철(호원대 외래교수)
?기간: 7월 4일~7월 25일(4주)

 

*? 강좌 수료 이후에는 일정 절차를 통해 정회원으로 가입하여 각 분과에서 활동 할 수 있음.
*? 교육부 세미나의 경우, 전 강좌에 참여해야 함.(부분 수강 불가)
?수업 방식: 강독 및 세미나(필요한 경우 강의 방식 병행)?
?신청 방식: ?메일(pipjc11@naver.com)로 5월 7일까지 자기개서를 보내주세요.
?(자기소개서 다운로드:한철연 홈페이지(hanphil.or.kr)→공지사항)
?수 강 료:? 없음(과목당 최대 수강 인원10명, 최소 수강인원 2명, 2명 미만 시 폐강)
?문 의:? 02-332-4301, pipjc11@naver.com
?기 간: ?2015년5월 9일~7월 25일 매주 토요일 오후3시-오후6시
?장 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태복빌딩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세미나실

[신간] 한중일의 유교문화담론

김예호 신간

 

출판사 서평

동아시아 사회 전통문화의 중심축인 유교가 한중일 삼국에서 어떻게 형성 발전되어 왔고, 어떤 특징이 있으며, 유교와 유교문화를 둘러싼 담론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이러한 논의들이 현 시점에 어떤 의미를 시사하는지 전반적으로 개괄한 책

 

▣ 책의 출간 의의

이 책의 기획 의도는 한중일의 유교담론과 유교문화의 정체성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데 있다. 글의 내용은 한중일 3국의 근대전환기 즉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무력으로 충돌한 시기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 근대 전환기 이후 한중일 삼국에서 발생한 유교와 유교문화 담론을 개괄하고 있다.

이 책은 한중일 3국의 전통사회 유교문화에 대한 특징을 서술한 후, 근대 이후 각 국가의 사회·정치·경제의 흐름과 이에 대응하는 유교문화담론의 특징을 고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의 구성도 주요 유교 지식인들의 주장이나 각 시기에 유행한 유교담론의 요지를 소개해 빠른 시간 안에 근대 이래의 한중일 유교담론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두었고, 글의 성격은 중국과 일본보다 한국 분야의 유교문화담론에 더욱 엄격한 평가기준을 적용했다.

한중일 각 나라의 문화담론의 중심에는 언제나 유교가 위치한다. 이는 최근까지 중국적인 것과 중국 정체성, 일본적인 것과 일본 정체성, 한국적인 것과 한국 정체성 등 지속적으로 다루어지는 주제들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또한 각 나라의 사회정치적 상황 등과 관련한 다양한 문화담론을 통해서도 유교가 아직도 동아시아 사회에서 중요한 논거가 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의 유교도 미래 사회의 가치에 부응할 수 있게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고, 더 나아가 한국의 유교가 아시아의 도덕적, 문화적 가치를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할 수 있을 정도로 환골탈태할 필요가 있음을 저자는 역설한다.

 

▣ 한중일 삼국의 유교문화 들여다 보기

 

ㆍ 중국 더 나아가 중국 공산당에게 오늘의 ‘유교’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중국 사상계나 문화계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중국적인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중국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인데, 덩샤오핑 체제의 중국 공산당이 들어선 이후에 이 문제에 부쩍 더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국학 논의의 중심에 있는 전통 유교문화는 중국 문화 부흥론자들은 물론이고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도 현재 뿌리칠 수 없는 매력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중국 공산당의 주요 관심사는, ‘아시아적 가치’가 아닌 ‘중국적 가치’, ‘유교 민주주의’를 포함한 ‘민주주의’보다는 여전히 경제성장으로 인한 사회적 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통합방안에 있다. 이는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 이후 중국 공산당이 한편으로 개혁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학’이란 이름 하에 유교연구를 지원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 유교는 한편으로 대외적으로 화교의 자본력을 유인하기 위한 훌륭한 문화 수단이면서도 대내적으로는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을 중화주의의 민족의식 코드로 희석시키는 수단으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향후 중국인의 문화적 자존심은 중국의 경제성장에 편승해 중국을 대표하고 부흥시킬 수 있는 문화적 코드로서 유교부흥을 내세울 가능성은 농후하다.

 

ㆍ 일본 고유의 정체성의 중심축으로 작용하는 ‘화혼’의식과 유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일본의 ‘화혼’의식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치로 근대 전환기 이후로도 일본이 자신만의 고유한 사회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 중심축으로 작용한다. 즉, 일본의 ‘화혼’의식은, 막부시대에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원시유교와 성리학을 일본화해 정착시키는 과정, 근대 전환기에 들어서는 탈아입구의 기치 아래 서양철학을 수용하는 과정, 메이지유신 중반 이후로는 화혼(和魂)이 양재(洋才)를 주도하는 과정, 현대에 이르러서는 일본식 자본주의를 견지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일본 사회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특히 현대 일본 사회에 이르러서는 자국의 침체된 경제위기 상황 하에서 전후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을 향수하는 극우세력의 등장과 이를 방조하는 상부의 정책 과정을 통해서도 이러한 화혼의식은 확인할 수 있다.

일본 문화의 특수성은 무엇보다도 유교를 포함한 타자를 부정하면서도 부정하는 대상을 통섭하는 가운데 그것에 대항하는 이론체계를 새롭게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즉, 일본은 유학을 수용한 이후 한국과는 달리 중국 고전의 교설을 최고의 권위로 삼는 유교에서 벗어나 일본만의 유교를 만들고 또 새로운 학문을 창출해냈다.

이와 같이 일본식 사회문화는 전통문화와 새롭게 유입되는 문화가 긍정과 부정의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중첩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되며, 이러한 중첩 과정의 중심에는 의식적 내지 무의식적으로 항상 ‘화혼(和魂)’의 가치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일본 사회를 평가하는 내부의 자체적인 기준으로 작용한다.

 

ㆍ 한국의 ‘공동체 의식’에 대한 애착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한국 사회는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보다도 더 모범적인 유교사회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유교문화는 ‘도덕과 정치의 결합’, ‘가족주의적 서열의 강조’ 등의 중국 유교문화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수용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중국 유교문화와는 달리 더욱 철저하게 성리학에 대한 교조적 입장을 견지하며 수양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중국 유교문화와는 차별성을 지닌다. 이 점에서 조선은 ‘개량된 중국형’의 유교사회 내지 동북아시아 국가 중 가장 모범적인 유교사회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경험하는 동안 황도유학의 본격적인 공세를 받는다. 즉, 일본의 지배 기간 동안 천황 내지 국가 공동체를 강조한 일본식 유교문화의 강력한 영향을 받음으로써 한국의 전통 유교문화는 고유한 자기수양의 형이상학적 색채가 완전히 탈색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위한 유교문화 정략과 메이지유신을 모방한 박정희 정권의 충효 일본(一本)의 일본식 유교문화의 선전 작업을 통해 해방 후 한국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학문적으로는 최근까지 ‘공동체’ 의식의 강화라는 미명하에 ‘대동(大同)’ 이상의 실현이 한국 유교문화의 중요한 본질이라고 논의하는 자리를 어렵지 않게 접한다. 일본 유학에 경도된 한국 유교문화의 공동체 의식에 대한 애착은 IMF 이후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자존적 문제나 자아실현의 문제보다는 한동안 한국 사회에 유행한 공동체라는 집단 곧 국가의 전체적인 부(富)만을 중시한 유교자본주의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된다.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신승철의 『욕망자본론』

신승철의 『욕망자본론』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

 

안녕하세요, 학술 1부입니다. 2015년 세 번째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이번에는 신승철 선생님의『욕망자본론- 욕망의 눈으로 마르크스 자본론 다시 읽기』를 가지고 독서 토론을 진행해 주실 계획입니다. 지난 모임에 이어 맑스의 자본론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접할 기회를 마련해 보았습니다.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2월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

발표자 : 신승철

철학자의 서재 : 신승철, 『욕망자본론』

일?? 시 : 2015년 2월 25일(수) 오후 4시 ~ 6시

(*방학 마지막 주이기도 해서 시간을 조금 앞당겨 보았습니다)

장? 소:? 태복빌딩 302호 한철연 강의실

 

아래는 신승철 선생님이 보내준 책 소개글입니다.?

“이 책은 맑스의 『자본론』에 대한 재독해를 부제로 달고 있지만, 사실은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요강』에서의 「기계에 대한 단상」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펠릭스 가타리의 욕망가치론을 접속시킨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욕망가치는 펠릭스 가타리에 의해 정동(affection)의 가치로 간략히 정의되지만, 사실은 사랑, 욕망, 정동, 돌봄, 모심, 보살핌, 섬김 등이 갖고 있는 비물질적인 가치 전반을 적시하는 개념이다. 이 책은 소수자의 욕망가치는 공동체를 풍부하게 만드는 원천이 되고, 이 속에서 싹트는 생태적 지혜는 일반지성(=집단지성)의 발전에 도움을 주고, 결국 우리 사회의 기계류의 혁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소수자와 비노동민중의 욕망가치를 긍정할 때 보다 생산적인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욕망자본론1

이 책에서는 선물을 주고받는 ‘공동체’와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 재화를 모아서 재분배하는 ‘국가’ 를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하는 폴라니, 가라타니 고진, 신이치 등의 노선을 언급한다. 이를 통해 물건에 사랑과 욕망, 정성, 인격이 담겨 있는 선물이 오고가는 증여의 경제의 전통 속에서 성장이 아닌 성숙의 경제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성장(growths)이 아닌 발전(development) 전략의 기초 역시도 공동체적 관계망이 소수자의 욕망에 의해서 풍부해지고 다양해지며 성숙되는 것에 기반한 대안적인 경제 질서라고 밝히고 있다.

현대에 와서 통합된 세계자본주의가 외부를 소멸시킴으로써, 소수자, 공동체, 욕망 등의 내부의 구성요소에서 외부성을 찾고 이행의 원동력으로 삼는 실질적 포섭의 단계에 진입하였으며, 이 국면에서 자본의 사회화와 사회의 자본화(=자본의 욕망화와 욕망의 자본화)라는 경향이 전면화되기 시작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자본이 공동체의 집단지성이나 생태적 지혜, 공유자산에 대해 탐을 내고 그 속에서 질적인 착취를 추구하는 ‘코드의 잉여가치’와 공동체가 관계망 속에서 사랑과 욕망의 흐름이 갖는 시너지를 통해서 사회적 자본, 협동조합, 대안섹터를 형성하는 ‘흐름의 잉여가치’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 책은 사회적 경제, 발전전략, 기본소득 등의 담론 등을 통해서 색다른 욕망화된 자본의 움직임을 전략적으로 지도그리기하려 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 이후 일정 :

* 4월 일정: 정기 학술대회 관계로 월례발표회는 다음 달로 순연

* 5월 일정: 5월 21일(목), 강도은(재야철학자), 주제 미정

* 6월 일정: 6월 11일(목), 송종서의 번역서 『인간 농장』

3월 월례발표회를 이월 말로 불가피하게 날짜를 위와 같이 조정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이후에 다루었으면 하는 책이나 주제가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yhseo2001@hanmail.net

학술 1부 드림

 

2015 한철연 교육부 독일어강좌를 시작합니다.?[ⓔ시대와철학 알림]

2015 한철연 교육부 독일어강좌를 시작합니다.?[ⓔ시대와철학 알림]

 

 

한철연 교육부에서 독일어 강좌를 안내해 드립니다.

기간은 1월 30일(금)부터 8주동안 매주 금요일에 진행됩니다.

독일어 공부에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강좌 관련 문의 사항은 pipjc11@naver.com(교육부장, 김정철)으로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강사 : 서유석
일시 : 매주 금요일 4시-7시
장소 : 한철연(서교동 태복빌딩 3층)
교재 : M. Bochenski, (번역본 <철학적 사색에의 길>), 문법책(정통종합독어, 최신독일어 중 택일 예정)
대상 : 철학과 학부/대학원생, 또는 철학과 대학원 지망자로 국한
수강료 : 무료

[신간] 철학, 문화를 읽다

철학 문화를 읽다

5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출간된 《철학, 문화를 읽다》

현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철학적 탐구를 통해

철학의 일상성에 한걸음 쉽게 다가가다!

문화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불가피한 코드가 되었다. 고대나 중세 사회에서는 문화의 자리에 ‘종교’가 들어가 있었고 근대에는 ‘예술’이 부흥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했다. 본격적으로 문화, 특히 대중문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시점은 20세기를 넘어서다. 지금 우리는 대중문화를 비롯해 문화를 수월하게 만끽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문화에서 문화로 끝나는 시대, 문화를 읽는 키워드가 꼭 필요한 시대다. 그렇다고 문화라는 단일한 코드만으로 현대인의 삶을 다 읽을 수는 없다. 문화라는 커다란 날개 아래 숨겨진 핵심 코드를 찾아서 현대를 읽는다면 제대로 현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2009년에 초판이 나온 《철학, 문화를 읽다》는 5년 만에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다. 이 가운데 몇 개의 주제들은 빠지고, 몇 개의 주제들은 새롭게 첨가되었다. 변화하는 한국 사회 문화의 상황을 가늠해볼 때 좀 더 비중 있는 몇 가지 주제들을 새롭게 첨가했다. 또한 초판에 없었던 도판과 사진들을 넣어, 더 입체적으로 문화의 현장에 접근할 수 있다. 이 책은 ‘인간’, ‘인간관계’, ‘성차별과 페미니즘’, ‘다문화’, ‘노동 ? 여가 ? 놀이’, ‘대중음악’, ‘소비와 욕망’, ‘감시와 자유’, ‘위생 ? 건강 ? 웰빙’, ‘환경’, ‘시간과 공간’, ‘가상과 현실’, ‘전통과 현대’, ‘죽음과 노년’을 주제로 삼아 총 14꼭지의 글을 한 권으로 엮었다. 이 책에서 언급된 현 대한민국의 핵심 코드 14가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전반에 깔린 문화 현상을 직시하고, 그러한 환경에 놓인 우리 스스로 주체가 되어 문화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철학문화를읽다입체

 

■ 책 소개

문화 과잉의 시대를 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피곤하고 지쳐 있다. 견딜 수 없는 우울과 무의미한 허무함이 때때로 엄습하기도 한다. 위로와 힐링이 필요한 시간이다. 지친 심신을 한 잔의 차와 음악으로, 영화 감상으로 달래 본다.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쇼핑을 하고 게임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더 이상 삶에서 의미를 찾기가 우스꽝스러운 허무의 시대에 현대인들은 문화적인 것으로 삶을 도배한다. 현대인은 넘쳐나는 문화의 과잉 영양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너도 나도 문화인임을 자부하지만 메울 수 없는 공허함은 어쩔 수가 없다. 삶에서 의미를 찾던 시대는 가고 그 자리에 문화가 독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솔직히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화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될지도 모른다. 문화를 이해하고 알려고 하지 말고 감각으로 느끼고 몸으로 만끽하면 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굳이 문화를 머리로 따지고 정신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문화를 만끽할 수만은 없다. 우리의 몸과 감각을 무지한 상태로 방관하는 것이 좋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과 감각이 지니는 ‘잠재력’에 한번 주목해본다면, 우리는 문화를 새롭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문화는 넘쳐나는데 우리는 여전히 문화에 대해 무지하고, 심지어 어떤 문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다양한 문화 현상은 있되, 문화를 읽는 성찰적 눈과 지식이 얕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문화를 즐기다가 제풀에 지쳐버리기 십상이다. 문화의 풍요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문화를 읽는 눈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골치 아픈 철학의 눈을 통해 문화를 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철학이 문화를 읽는 것, 문화를 철학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따로 철학을 처음부터 꼭 배워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철학은 조금만 더 생각하고 성찰하면 나올 수 있는 ‘깊이를 가진 눈’이다. 문화 현상을 보다가 그런데 ‘왜 그렇지?’ 하는 의문만 가져도, 이미 그 사람은 철학의 매서운 눈으로 문화 현상을 볼 줄 아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된 것이다. 이렇게 ‘깊이를 가진 눈’을 지니고 ‘생각을 가진 사람’이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덕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실천’이다. 철학은 물론 ‘이론’이지만, 또한 이 이론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염두에 둘 때 ‘깊이를 가진 눈과 생각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음악을 듣고 옷을 사고 영화를 보더라도 그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깨어 있는 주체로 감시의 눈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찰을 통한 문화 운동을 기대하다

이러한 실천적인 성찰력은 현실에서 다양한 문화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거대 문화 자본과 문화 권력에 맞서 각자 자리에서 서로 이웃과 연대해 소비자 불매 운동을 펼칠 수도, 공정 무역의 실천의 장으로 나갈 수도 있다. 억압적인 가부장제 문화와 불평등한 성 차별에 맞서 새로운 평등의 대안 문화를 꿈꿀 수도 있다. 감시 사회 속 노동의 현장에서 파열을 일으키며 자본주의 노동 문화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을 기획해볼 수도 있다. 게다가 무한 경쟁의 파시즘적 가속의 문화에 느림과 여유의 삶을 꿈꾸는 공동체를 꾸려 볼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주변에서 이러한 공동체를 꾸리는 이웃들을 만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대안 운동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풍요로운 문화를 우리의 새로운 삶의 코드에 맞게 얼마든지 다채롭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 넘쳐나는 문화는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성찰적이고 실천적인 깊이가 빠진다면, 문화는 가장 위험한 마취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철학을 통해 문화를 읽는다는 것은 이론과 지식의 측면을 증가시키기보다 철학이 갖는 성찰력을 실천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일상의 문화를 철학의 언어로 다시 읽다

문화는 궁금한데 철학은 궁금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철학을 모르고서는 문화를 아는 것이 피상적임을 깨닫게 된다.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의 한 꼭지만 읽어도 금세 터득하게 된다. 이 책은 청소년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로 쓰여졌지만, 문화를 보는 철학적 시각을 새로이 정립할 수 있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심오한 주제의 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 시대를 살아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어떠한 현상들로 점철되어 있는지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가령 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소비에 대한 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개인들은 자신의 자유가 증대되었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우리가 얼마나 더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웰빙을 부르짖으며 건강염려증이 만성화되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건강이란 무엇인지 등 삶과 개인의 곳곳에 침투해 있는 문화의 다양한 현상을 짚으며 궁극적으로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자가 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권유한다. 2014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문화와 철학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어려운 일들이 2014년에 일어났다. 우리들은 삶에 당면한 어려움과 피폐함으로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일상의 관행으로 뿌리박혔던 낡은 문화의 틀을 과감히 깨어 버리고 이제 좀 더 성찰하는 실천적 자세로 나아갈 때인 듯하다. 고통받고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나눔의 문화도 더불어 생각해볼 때다.

 

■ 내용 맛보기

다문화주의에서 소수 집단은 ‘다수 집단의 언어’ 아니면 ‘소수 집단의 언어’를 선택하는 양자택일에 놓인다. 문화적 선택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집단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든 집단이 주체가 되는 상호문화주의는 ‘다자간 열린 대화’의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양자택일로 떨어지지 않는다. 동등한 위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대화 가운데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데로 나아가기가 더 용이해진다.??97쪽

지문이나 DNA 정보는 각 개인마다 고유한 생채 정보를 담는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지문이나 DNA 정보는 개인 인증이나 국가의 범죄 정보 관리에 사용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해 지문채취와 얼굴 사진 촬영 등 생채 정보 수집을 의무화한다. 테러에 대한 효율적인 대책으로 생체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에 입국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입국과 동시에 지문날인을 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는 17세 이상 모든 국민에 대해 열손가락 지문채취를 의무화한다. 우리나라에서 17세 이상의 전 국민에 대해 지문날인을 의무화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다. 당시 김신조 등이 청와대를 기습한 1. 21사태의 여파로 남파간첩 및 불순분자 색출이라는 명목하에 17세 이상 국민에 대해 열손가락 지문채취가 의무화되었다. 현재 지문날인 제도는 애초의 범죄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한다는 목적보다 주민등록증 발급을 위한 행정 조치의 일부가 되었다. 52쪽

잠은 게으름의 상징이었고, 산업 사회는 게으름을 적대시한다. 그르니에는 수면에 플러스 기호를 붙일 것인가 아니면 마이너스 기호를 붙일 것인가 망설이지만 산업 사회는 태생적으로 잠에 마이너스 기호를 붙이는 사회다. ‘산업 사회’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생시몽(Henri de Saint-Simon)이다. ‘산업, 즉 industry’의 라틴어 어원은 ‘부지런함’을 뜻하는 ‘인두스트리아(industria)’다. 이 개념이 만들어질 당시 이 말은 비생산적인 귀족에 맞서서 산업 노동자의 자부심을 고취하고자한 투쟁적 개념이었다. 그러나 산업 사회는 노동자를 생산라인의 부속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근면과 성실’을 소리 높이기 시작했고, 노동자의 밤 시간까지 통제하기 시작했다. 58쪽

 

철학문화를읽다표지

 

■ 저자 소개

지은이: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을 기반으로 한 연구자들의 자기 성찰과 실천적 모색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1989년에 창립했다.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진보적 철학의 문제를 고민하며, 좁은 아카데미즘에 빠지지 않고 현실과 결합된 의미 있는 문제들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지역, 전공, 세대별로 흩어져 있던 구성원들이 커다란 강물을 이루듯 한데 모여 있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철학을 공부하는 석·박사 및 대학원생들과 대학 강사, 교수 등 총 300여 명의 회원이 함께 한다.

펴낸 책으로는 《철학 대사전》, 《다시 쓰는 서양근대철학사》,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철학자의 서재》, 《청춘의 고전》,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 《열여덟을 위한 철학 캠프》, 《열여덟을 위한 신화 캠프》, 《삶, 사회 그리고 과학》, 《철학의 명저 20》, 《논쟁으로 보는 한국 철학》, 《이야기 한국 철학》, 《지식의 바다에서 헤엄치기》, 《우리들의 동양철학》, 《철학, 문화를 읽다》, 《철학, 삶을 묻다》 등 다수가 있으며, 매년 네 차례에 걸쳐 학술지 《시대와 철학》을 발간하며 대중 웹진인 《ⓔ 시대와 철학》을 운영 중이다.

글쓴이(게재 순)

이철승? 조선대학교 교수

연효숙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현남숙? 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

이정은?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박민미? 대진대학교 외래교수

박영욱?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김선희? 이화여자대학교 HK연구교수

서영화 서울대학교 외래교수

강신익 부산대학교 교수

최종덕? 상지대학교 교수

서도식?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김성우 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김교빈? 호서대학교 교수

이순웅? 경희대학교 강사

 

■ 차례

군자에서 시민까지: 유가적 인간과 근대적 인간

가족에서 디지털 촌수까지: 새로운 인간관계

제2의 성에서 사이보그 선언까지: 성 차별과 페미니즘

단일 민족 신화에서 결혼이주여성까지: 다문화 사회의 한국

소외된 노동에서 잉여인간까지: 현대 사회의 노동, 여가, 놀이

통기타에서 컴퓨터 음악까지: 대중음악

편의점에서 백화점까지: 소비 사회와 욕망

지문날인부터 디지털 파놉티콘까지: 감시 사회와 개인의 자유

기생충에서 아토피까지: 위생, 건강, 그리고 웰빙

핵발전에서 먹거리까지: 환경 위기와 생태학적 자연관

증기기관차에서 KTX까지: 시간 체험과 공간 이동

단성사에서 CGV까지: 가상과 현실

경복궁에서 아셈타워까지: 전통문화와 현대

타인의 죽음에서 나의 죽음까지: 죽음과 노년의 문제

 

 

책읽기-마이클 J. 로젠펠드의 『자립기』에 대한 단상

마이클 J. 로젠펠드의 『자립기』에 대한 단상

 

 

엄진희?(다중지성정원회원)

 

우리에게 개인의 자율성이나 자립, 독립 이라는 언어들은 무엇일까. 저 이름들은 언젠가는 부르주아적 가치라고 배제되었고 언젠가는 우리가 따라야할 가장 세련된 가치라고 부추겨졌다. 개인화된 시대, 이어폰이 등장하면서 친구와 소통하기 보다는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자라왔던 우리 세대에게 저 말은 사실 따지고 보면 낯설지도 않다. 하지만 저 말에 함축된 ‘자유’라는 게 억압 속에서의 자유, 규칙 속에서의 자유라면 우리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자유’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김연아가 빙판 위에서 가장 자유로운 때는 그녀가 빙판의 모든 규칙을 가장 잘 준수 할 때에야 비로소 실현되는 것 아닐까.

마이클 J. 로젠펠드는 1960년대 이후 젊은 세대들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특히 그들의 부모로부터. 대학을 빌미로 해서든 젊은이들은 그가 태어난 고장에서 이제 멀리 떨어져서 부모의 간섭없이 마을 공동체의, 이웃의 간섭없이 자유로워졌고 따라서 비전통적 결합 방식, 즉 이인종 결혼이나 동성애 간의 결합을 특별한 제약 없이 실현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젊은이들의 이러한 위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이제 더 이상 가족 통치 제도 안에서 부모나 국가가 더 이상은 손쓸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젊은이들이 부모로부터 독립과 자유를 선언하고 ‘자립기’를 가지는 잠정적인 시기(자립기는 젊은이들이 부모를 떠나 대학도 가고 여행도 떠나며 직업을 찾는 성인 초기의 시기를 말한다)에 간섭 없는 자유를 만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근대가 유동하는, 액체 근대라는 특성이 있을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라는 책에서 ‘안정적이고 견고한 고체와 달리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질을 가진 액체 개념에 기초하여, 우리가 어떻게 무겁고 고체적이고 예측/통제가 가능한 근대에서 가볍고 액체적이고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근대로 이동해왔는지 탐구’한다. 그는 ‘근대가 일체의 공간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전지구적 자본이 세계 각국의 값싼 노동력을 찾아 이동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그는 개인 삶의 의미가 온통 개인의 어깨에만 걸리게 된 것과 그러한 고립 분산된 개인의 자아실현이, 자유롭고 가볍게 이동하는 전지구적 자본의 힘 앞에서 가능한 일인지’를 되묻는다.

우리는 대학에 간다면서 고향을 떠나고 어학연수, 유학 등을 빌미로, 직장 때문에 등등, 이런저런 이유들로 공동체를 떠나 부유한다. 이제 더 이상 부모의, 공동체의, 간섭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뒤르켐은 개인과 사회의 결합력이 약할 때의 자살에 대해서도 분석한 바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급증하는 젊은이들의 자살 현상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최근에 함께 공부했던 시립대 박사과정 선생님 한분이 자살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는 모두가 적잖이 놀라고 당황스러워 했다. 그는 평소에 쾌활해 보이고 농담도 잘하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왜? 박사과정 논문 심사중이었던 그가? 우리는 그저 추측할 뿐이다. 논문의 스트레스와 얼마전 시간 강사 자리에서 해고도 당했고 심적 고통이 컸을 것이다. 정도만,,말이다.

모든 자살은 타살이며 사회적 죽음이라면 이 문제에서 우리는 도저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로에서 성공하지 못해서, 실패해서, 비관하다가 자살을 하는데(성적 비관 청소년부터, 파산한 아버지의 죽음에 이르기 까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성공, 잘나간다는 것, 지위 등등에 공모한 것도 우리 자신이다. 이런 우리 자신은 정말 진정으로 자유로운가? 성공이라는 사회적 잣대 안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면서? 진정한 자유, 자립, 독립은 그렇다면 어디에 있을까. 간섭받지 않는 곳에 있을까. 간섭 받지 않고 이인종 결합이나 동성 간 결합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온전한 의미에서의 자립일까. 여전히 제도적 승인을 받기를 주장하면서? 제도적 억압을 자발적으로 요청하면서 말이다. 다른 길은 없을까. 가령. 너희 이성애자들의 결합처럼 우리를 인정해 줘, 라는 논리 말고(결국 이성애적 폭력이 했던 일-자신들의 결합을 ‘정상화’하고자 했던-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한).

오히려 바틀비처럼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음으로서 기존의 질서, 제도 자체를 좀먹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가 말하면 할수록, 저항하면 할수록 기존의 제도와 권위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망만 넘쳐난다면 말이다.

마이클 J. 로젠펠드의 <자립기>는 분명 유의미한 저작이다. 기존의 사회학이 가족의 변화, 라는 측면은 제대로 주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젊은이들이 부모로부터 떨어져 지내면서 비교적 비전통적 결합 방식을 선호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되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이제, 동성애의 문제는 더 이상 소수의 문제일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기존의 제도나 체제에 그토록 편입하길 원하는 이상, 우리의 상징계는 크게 달라질 수 없지 않을까 싶은 게 내 생각이다.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쩌면 목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써 상징적 질서를 내파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스러운 생성의 흐름으로 동성애 문제나 이인종 결합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 메시아적 순간은 항상 그렇게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진정한 자립이란 법적 승인이 없이도(대타자 없이도) 공동체의 최소한의 규칙과 질서 안에서, 나아가 윤리적 차원에서 스스로,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면서 유지해 나갈 때 획득되는 건 아닐까.

The Age of Independence_3D(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