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의 철학을 위하여 [한철연 교육강좌]- ⑬

[한철연 교육강좌]- ⑬

연대의 철학을 위하여

 

강사 : 서 유 석(호원대 교수)
후기 :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부장)

 

연대(solidarit?)라는 말과 사상이 역사에 의미있게 등장한 것은 프랑스 혁명기이다. 프랑스 혁명기에 연대는 ‘자유(libert?)’, ‘평등(?galit?)’과 함께 혁명의 이념으로 제시된 ‘형제애(fraternit?)’의 유사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 개념이 정치적 의미를 지니면서 오늘날 통용되는 의미로 정착한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덕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연대에 큰 의의 부여한 까닭은 그것이 자본의 착취에 맞서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에게 연대는 투쟁 수단만이 아니었다. 연대(연대적 삶)는 동시에 미래 이상 사회의 구성 원리이기도 했다. 이상적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과 연대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68혁명을 전후하여 등장한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에서의 연대 역시 억압 구조의 타파를 이루기 위한 구성원들 사이의 정서적 결합과 상호협력을 의미했다. 사회주의 연대와 신사회운동의 연대는 양상의 차이(자본주의 타파냐 억압구조의 타파냐)는 있지만 연대 투쟁의 과정에 분명한 적이 있었고 목표(인간 해방)가 보편적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서유석 호원대 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연대의 원리는 사회보장 정책을 정당화하는 원리로도 작용한다. 현대의 사회복지정책은 빈민구제가 아니라 제도화된 상호부조의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사회적 연대의 구현으로서의 사회권 쟁취 운동은 오늘날 나날이 강조되고 있다. 물론 사회보장 정책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사회보장정책은 체제 안정을 위해 지배자의 편에서 도입되었다. 독일의 사회보장이 비스마르크에 의해 제도화된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사회보장은 인권을 확보하는 투쟁을 통해 획득되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사민주의자들의 사회권 투쟁이 대표적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제기한 ‘해방 투쟁을 위한 연대’는 현실에서는 매번 좌절되었다. 맑스도 예상치 못한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인 복지국가 정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변혁을 위한 연대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었다. 그람시는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생활이 어려울수록 체제 위기가 와야 하는데 실제는 아니었다. 국가가 국민을 달래고 적당히 동의하게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의 지배는 폭력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주민의 동의에도 일정한 기초를 두고 있다는 말이 된다. 사회 또한 노동자 대 자본가라는 단순 구도로 구조화되지 않았다. 구조가 단순하지 않으니 그것을 변화시킬 싸움도 단순하게 전개될리는 만무하다. 단순한 기동전이 아니라 끈질긴 진지전이 제시되는 이유이다. 이 과정에서 변혁 세력은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도 기동전이 통하는 시기는 아니다. 자본주의적 체제의 자정 능력이 의외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동계급 중심의 사회주의적 연대가 아닌 다양한 계층의 실제적 삶 속에서 연대를 조직하는 진지전적 작업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유효할 것이다. 주민 자치 운동의 활성화를 통한 연대적 삶의 조직은 실천적 사례가 될 수 있다.

지역 공동체의 주민자치운동은 민주주의를 일상의 삶 속에서 그리고 나와 이웃의 삶 속에서 구현하는 운동이다. 전국 단위를 중심으로 하는 대의제 정당 민주주의로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할 수 없다. 이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주민의 삶의 현장인 주거 공동체, 일터, 학교, 그리고 기초 단체의 행정 집행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어야 하고 삶의 제 분야인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이주 노동자, 교육, 먹거리, 교통, 환경 등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주민의 직접 참여에 의한 자치가 이루어져야 민주주의는 완성된다.

여기서 일본 ‘혁신 자치제’의 경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민주 세력들은 1960년 중반 이후 공산당, 사회당이 중심이 되어 환경, 생활, 복지를 지방자치의 핵심 의제로 걸며 지방 자치의 혁신을 시도한다. 이것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활 문제의 해결을 정치의 핵심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집회, 도민실 운영, 심의회 등 주민 참여형 행정이 도입되었다. 중앙정부도 지자체가 선도한 조처들을 국가 정책으로 받아들여 나가게 된다. 일본 지방 자치 연구소 스가와라 연구원은 이를 두고 당시의 전략은 “자민당이 주도하는 중앙 정부를 포위하는 구상”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등장한 주민자치운동의 사례도 진정한 연대적 삶의 구현이라는 차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산본 쓰레기 소각장 건설 반대운동은 ‘군포자치시민회’의 결성과 ‘수리산 자연학교’의 건립으로 이어져 지속적 주민자치운동으로 발전했다. 마포 성미산 지역에서는 생협운동, 공동육아운동, 대안학교운동, 친환경급식운동, 지역 차원의 대안경제운동 등의 다양한 공동체 운동이 발생하면서 개별 운동 영역간의 폐쇄성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들을 통해 주민들은 정치의 실제적 주체가 되고 정치적 영향력이 높아지고 정치적 고민의 폭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 지역 주민만의 정치가 아니라 일반적 시민의 정치까지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은 정치적 무관심, 정치적 무임승차 의식, 계급 배반 투표, 박정희 신드롬 등의 현상이다.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보편적 복지 구현이라는 진보정당의 강령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세금 인상은 반대하고 있다. 세금과 규제는 피하고 각자 노력하여 많은 수입을 벌면서 제도적 혜택은 혜택대로 누리려는 무임승차 의식, 그리고 성장의 신화를 잊지 못하는 퇴행적 향수는 보수당에게 표를 몰아준다. 이런 이율배반 심리는 정치가 국민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진보 및 개혁 세력이 실제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지역 공동체의 주민자치 운동은 시민 스스로 무임승차심리를 극복하게 하고 박정희 신드롬을 극복하도록 하는 민주주의의 최상의 학교요 교육의 장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주민자치운동은 중앙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내부 소통과 숙고, 실천과 참여를 거치면서 공공성을 획득하고 시민운동으로 발전한다. 주민자치를 포함한 사회적 연대운동이 진정한 연대의 과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열린 연대운동이 되어야 한다. 집단 이기주의적 닫힌 연대는 배제되어야 한다. 노동 운동도 공동체 운동도 이 동질 집단에 대한 충성의 경향성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스마트하게 혁명을?; 6월 항쟁과 촛불에 대한 철학적 성찰[한철연 교육강좌]- ⑫

[한철연 교육강좌]- ⑫

스마트하게 혁명을?; 6월 항쟁과 촛불에 대한 철학적 성찰

 

강사 : 박 영 균(건국대 HK교수)
후기 :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부장)

 

일반적으로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수립된 체제를 ‘87년 체제’로, 1997년 IMF 위기 이후에 형성된 사회 구성의 결과물들을 ‘97년 체제’로 일컫는다. 87년 체제의 특징은 군부 독재의 소멸과 대통령 직선제 등의 형식적 민주화의 구현이다. 97년 체제의 특징은 신자유주의의 본격적 도입이었다.

1970년대 한국 경제는 정부의 지도로 전개되었다. 대외 자본을 도입해 국내 경제를 키우는 이른바 ‘종속 파시즘 체제 전략’은 중남미나 한국이나 구조적으로 동일했다. 그러나 한국이 성공한 이유는 대외 자본을 국내 생산 체제의 건립으로 전용한 데에 있었다. 이를 통해 한국은 자립적 자본 축적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가 노동 세력 및 자본 세력 모두를 절대적으로 통제하는 파쇼 체제의 면모는 여전했다. 특히 한국 정부는 기업의 돈줄을 쥐면서 자본을 통제하는 관치 금융 체제 전략을 취함으로써 민간에 대한 우위를 굳건히 지켜나갔다. 그렇지만 정부의 지원을 통해 자본 세력은 대기업 집단으로 성장했으며, 대단위 사업장의 등장으로 인해 거대 산업 노동자 집단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 둘은 훗날 정부에 대항하는 두 가지 주요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통제력에 저항하던 중심적 세력은 대학 운동권이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1980년대에 도입된 소위 과학적 맑스주의(칼 카우츠키류의 속류적인 경제 결정론적 맑스주의)로 무장하면서도 동시에 지사적 순교자 의식을 지니면서 저항 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생은 예비 지식인이고 이른바 지식인은 노동자의 생산물을 거저먹는 이들이므로 그들의 삶을 위해 모든 생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녔던 것이다. 이렇게 저항하던 운동의 결실을 보게 된 시기가 바로 1987년 6월이었다. 당시 대학 운동 세력은 일정한 조직 역량을 바탕으로 저항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87년 항쟁은 조직적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벤야민이 말하듯이 마치 ‘메시아처럼 재림’한 폭발적 사건이었다. 항쟁의 역량이 갑작스레 증가한 이유는 사무직 노동자들로 대표되는 일반 시민의 참여에 있었다. 일반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와 서울시 한 복판을 점령하자 파쇼체제는 6?29선언으로 후퇴했다. 이후 시위 군중의 수가 감소하면서 변혁의 동력은 갑작스레 사그라들었다. 항쟁 국면은 7, 8월의 노동자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어용화된 한국노총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조직된 노동 단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거대 사업장을 필두로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형국을 취했다. 노동자 총파업의 결실로 전노협이 건설되었다.

박영균 건국대 HK교수/ 사진:조배준 한철연 회원

87년 항쟁 이후 변혁의 동력이 꺼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6월 항쟁 이후 형성된 형식적 민주 체제로 인해 사람들은 제도 정치권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또한 민주화 이후 형성된 자유로운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 및 향락의 욕망을 발산하도록 돋구었다.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자본은 소비자의 이러한 욕구를 시장에 연결시켰다. 사회주의 패망 이후 이 물결은 전국민의 의식을 휩쓸면서 변혁의 열망을 잠재웠다. 이 속에서 진보 세력 구성원 중 많은 이들이 이탈했으며 제도권 정치 혹은 신사회운동으로 전환했다.

1997년 이후 사회의 대결 구도는 민주 대 독재의 대결이 아니라 진보 대 보수의 대결로 구획된다. 이러한 구도에서 민주주의의 강화와 더불어 평등적 가치의 수립이 강하게 도입되었다. 6월 항쟁 이후 사람들의 의식 속에 민주적 사고가 자리잡았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자존감과 자부심을 형성시킬 수 있었다. 각자가 민주적 시민으로서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하면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촛불은 시민들의 이러한 의식 속에서 발현된 현상이다. 촛불은 단지 광우병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 과정에서 정부가 취한 굴욕적 태도가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시민들은 광장에서 자신의 상처를 문화적으로 치유했다. 최류탄과 몽둥이를 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맞서던 힘의 공간이 공연 및 토론의 문화적 공간으로 변화했다. 조직적 투쟁과 점거를 가능케 했던 87년의 지도부는 촛불 시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리는 각자의 욕망을 해방시키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그 욕망은 자본 등에 의해 조성된 수동적 욕망이 아니라 자신이 발현시킨 능동적 욕망이었다.

변혁의 가능성을 여전히 모색하던 이들은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 맞춰서 새로운 논의로 시선을 돌렸다. 최근 진보적 지식인들이 들뢰즈식 맑스주의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전에는 지배 세력에 의해 조성된 이데올로기를 분쇄하려는 시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소비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된 이후에는 진보적 지식인들도 욕망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욕망의 해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외적으로 주어지는 욕망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능동적으로 우러나오는 욕망에 주목했다. 이것은 향락적 말초적 단기적 욕망과는 다른 자기 존재를 순수하게 드러내는 존재론적 욕망이다. 존재론적 욕망은 소비 자본의 욕망과 대결하면서 대면하게 되는 자기 존재의 진정한 욕망이다. 소비자본주의는 다양한 개별적 욕망을 화폐 축적의 욕망으로 환원시킨다. 이 환원된 욕망에 저항하면서 자기 존재의 가능성을 진정으로 실현시키면서 해방감을 만끽하게 하는 욕망에 이를 때 우리는 진정한 해방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현재적 의미는 상당히 값지다. 그렇지만 그것은 개인적 노력의 부담을 지나치게 높게 부과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기 욕망을 형성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단순히 자기 개인의 자체적 존재의 욕망을 파편적으로 펼치는 형태는 피상적 인간 관계의 형성으로 귀결될 수 있다. 진정한 자기 욕망을 찾기 위한 시도가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의 것을 형성하는 폐쇄적 형태로 전개되어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욕망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획 및 조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론적 욕망의 대의적(representative) 구현을 제안해 본다. 각자의 욕망을 네트워크화하여 전체적 비전을 창출해서 욕망의 길을 일정하게 선도하는 인물, 제도, 조직을 실현시키는 과정도 존재론적 욕망을 구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새로이 요구되는 해방의 가능성은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후기

87-97-08로 이어지는 우리의 최근 역사를 정치 사회적으로 뿐 아니라 철학적 배경으로 곱씹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변화된 우리의 생활과 생각을 어느 방향으로 어떤 방법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생각들은 비슷한 사람들이 갖는 ‘다른 방식’-구조(국가)- 자율체(다양성)에 관심이 많은데, 시사하는 바가 있어서 좋았고, 과거지사 주마등처럼 지나갔던 80년대 후반 90년대를 회상케 해주는 추억의 시간이었습니다.

 

흩어진 역사적 사건을 하나의 관점으로 중심축을 꿰는 곶감의 중심 막대기(?) 역할을 한 것같다.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각는 자본을 더 대우해 주는 국가라 생각합니다. 국가를 잘 이용해서 집단의 희망을 대변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민을 위해 일하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존재론적 욕망이 생명의 힘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 믿고 있는(싶은)데, 선생님은 그것이 더 큰 고통, 지고의 삶의 경지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이견을 가지신다. 욕망의 대표적 실현, 재현을 위해 기획과 조직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아직은 공감하기 어렵다!!!

 

사이버 세계의 이상적 구축은 가능할까요? 민중이 현실에서 반응하는 양식이 비대면의 세계로 간다면 장점의 측면 뿐 아니라 단점의 측면도 하이퍼리얼화 시키지 않을지에 대한 의문을 안고 갑니다.

 

6?10, 노동법 총파엽, 촛불 집회가 가지는 관계성과 성격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한국에서의 정당의 역사성과 정당의 성격 분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실체가 모호한 춧불집회에 대해서 향후 어떤 형식의 혁명을 규정 또는 상상해 볼 수 있을까요?

 

사회가 변화하면 또 다른 변혁을 위한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판문점에 선 철학; 상처와 화해의 철학[한철연 교육강좌]- ⑪

[한철연 교육강좌]- ⑪

판문점에 선 철학; 상처와 화해의 철학

 

강사: 이병수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후기: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부장)

 

분단 이후 남북 관계의 기본 특성은 적대성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 적대는 군사 및 이념적 적대와 생활 문화적 적대로 대별된다. 생활 문화적 적대는 남북 주민들 간에 자발적으로 동의된 적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남북 구성원들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적대성이라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같은 동족임에도 남북 국민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껄끄럽고도 혐오스러운 존재로 여긴다. 적대감이 무의식 속에 내면화된 상태라면 분단은 이미 사회과학적 사태가 아니라 인문학적 고찰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우리 몸과 마음의 분단이라는 차원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병수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그렇다면 홉스봄의 ‘역사적 국가 historical state’ 개념을 활용해 분단 적대성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살펴보자. 역사적 국가란 혈연, 언어, 문화, 정치, 역사적 동일성이 구조화된 국가 상태를 의미한다. 동아시아 삼국은 천여년 이상 영토 경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각자의 역사적 국가 상태를 구성해왔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이런 상태가 붕괴되면서 한반도는 망국, 이산, 분단이라는 현실에 휘말렸다. 과거 한국인들은 한반도라는 일정 공간 내에서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던 역사적 국가를 이루고 있었는데, 현재는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적 상태는 재중 동포, 재일 동포, 재러 동포 등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엄밀히 보자면 남과 북 국민들 모두가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있다. 오랜 역사적 국가 상태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민족과 국가의 불일치 현상은 일종의 치욕감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한민족 구성원들은 분단이라는 비정상적 상태에서 벗어나 통일된 역사적 국가 상태를 희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서로를 증오하는가? 서로의 정부를 가짜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을 어머니, 국가를 아버지라 해보자.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두 아버지(두 개의 정부)를 둔 민족의 자손이 되었다. 남북은 서로를 가짜 아버지의 자식으로 치부하면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들었다. 여기에 분단 적대성의 원인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적대성의 근저에는 강력한 동질화의 욕구가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전망하는 동질화의 상태가 상이하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화해를 통한 동화는 거부하고 있다. 각자가 상대방을 자기 모습대로 동화하려드는 왜곡된 욕구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적대는 더욱 심해진다. 한국전쟁은 훼손된 민족 국가의 동질성을 회복하려던 왜곡된 몸부림이었다. 동질화의 욕망이 왜곡된 형태로 전개될수록 적대 행위는 심화되고 그것으로 인한 상처는 무의식 속에 강하게 각인된다.

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은 식민 트라우마, 이산 트라우마, 분단 트라우마라는 세 가지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현실의 불행한 대립의 역사는 이 트라우마를 이성적으로 치유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트라우마화된 적대성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화해의 형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상대방과 내가 다름을 받아들이고 상실한 민족 공동의 서사를 공유하는 것이다. 전자를 인정의 노력이라 한다면, 후자는 민족통합서사를 이룩하려는 노력이라 하겠다. 인정의 노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순히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고 여전히 못마땅하지만 대립하는 것이 손해이기 때문에 갈등 상황을 멈추고자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식에는 자신의 관점을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태도가 여전하다. 이것은 일종의 전술적 고려 속에서 나온 인정의 태도에 불과하다. 세력이 비등하므로 억지로 상대방을 인정할 뿐이다.

또 다른 인정의 노력은 타자의 인정이다. 이것은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 그리고 현재적 상태의 변화를 감수함을 의미한다. 남한만 옳고 북은 고쳐야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상대방이 보기에는 각자의 체제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자기 체제의 문제점을 상대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족통합서사의 구축은 과거의 통합된 역사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복고주의나 보수적 민족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한반도 구성원들은 식민, 이산, 분단을 겪으면서 각자 상이한 문화, 의식, 역사, 생활양식을 구성해왔다. 이런 상태에서 민족 공통의 서사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잊혀진 과거에서 결합의 흔적을 찾다가는 혈통적 민족주의를 자극할 수도 있다. 현대사에서 공유한 역사적 수난을 바탕으로 하여 남, 북, 해외동포 등의 각 구성원들이 구성한 문화적 성과물들을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남북 교류의 확대와 지속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질문1) 탈북 주민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탈북인의 절반은 자신을 북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체제적 정체성은 포기했으나 북에서 형성한 공동체, 풍습의 정체성은 고수하고 있다. 상이한 문화적 정체성을 주장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같은 민족으로서의 공통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여기서 분단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로서의 공동의 정체성을 인식해야 한다. 탈북인을 같은 동포로 보고자 하는 것은 단지 혈연적 동일성의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질문2) 체제 세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삼대 세습은 분단 구조가 낳은 독특한 체제이다. 분단 구조는 북한 혼자만이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삼대 세습 제도를 유발시키거나 그것을 지속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책임에 대해서는 남한도 자유롭지 않다. 삼대 세습은 현대적 사고에서는 비상식적 사건이다. 그러나 비상식적 사건의 극복은 비난과 조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세습 문제를 낳은 분단 구조에 대한 면밀하고도 성찰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후기

남북 문제를 민족의 문제와 국가의 문제로 대비해서 고찰해 볼 수 있는 심층 강의라고 본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민족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제기하신 민족적 트라우마 개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분단 이후 국가 정체성과 민족 정체성이 다른 한반도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국가 폭력이 개인의 폭력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이의 인정을 넘어서 타자성에 대한 이해로 남북 체제를 바라보는 화해와 상생을 위한 길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교수님의 강의에 감사드립니다.

기존의 통일에 대한 생각과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강의였습니다.

“기존 이념과 국가가 하나가 되는 통일 개념이 잘못하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소통과 교류를 중시하는 과정으로서의 통일로 통일 개념이 바뀔 필요가 있다”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민족과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 폭을 많이 넓혔습니다.

골치 아픈 현대 미술; 근대 이후의 아름다움 [한철연 교육강좌]- ⑩

[한철연 교육강좌]- ⑩

골치 아픈 현대 미술; 근대 이후의 아름다움

 

강사 :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오늘(5월 27일)은 이병창 회원(동아대 명예교수)의 강의를 통해 아방가르드 미학에 다가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현대 예술의 경향을 리얼리즘과 아방가르드로 나누면서 후자를 ‘사기, 해체, 꿈’이라는 세 키워드로 풀이해 나갔다.

 

1)사기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그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①예술은 가상을 마치 진짜 현실인 양 만드는 눈속임이다. ②예술은 장난(유희)이다. 이 말의 의미를 풀이해보기 전에 우선 청계천에 있는 이라는 조형물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클라스 올덴버그라는 스웨덴 출신의 팝아트 작가의 것이다. 아이디어는 부인이자 동료 팝아트 예술가인 코샤 반 브룽겐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 작품에 대한 평은 좋지 않다. 한국의 역사적 전통과 동떨어져 있으며, 조각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대와도 거리가 멀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병창 회원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소라를 귀에 대보면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소라와 같이 생긴 이 작품도 자연의 소리, 생명의 소리(물소리)를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인공적으로 복원된 청계천의 기만성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샘의 생명에 찬 분출력을 인공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이 작품은 청계천이라는 거대한 인공 개천을 마치 자연 하천의 복원인 양 여기는 한국 사회의 기만적 행태를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예술은 사기이되 현실의 사기(기만성)를 사기라는 형식을 가지고 드러내는 사기라 할 수 있다.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또 다른 예는 삼성이 세운 리움 미술관이다. 삼성은 서구의 세 유명 작가(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에게 의뢰하여 각각 독립적인 건물을 세우게 하고 지하를 통해 세 건물을 연결했다. 각각으로 보자면 대단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전체적 관계성을 고려해서 보면 이 건물들은 사기이고 기만이다. 건축물은 언제나 그것이 거기에 세워져야 하는 이유와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건축되어야 한다. 마리오 포타의 작품은 로마네스크 교회 양식이라는 역사적 전통과 현대성 간의 긴장 관계 속에서 그 미적 가치를 웅변한다. 그러나 리움 미술관에 들어 선 마리오 포타의 작품은 특유의 긴장 관계가 소멸된 무맥락성 속에 있다. 이것은 그저 재벌가가 자신의 재력과 왜곡된 교양을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이 작품들은 한국 재벌들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그들 혹은 한국 사회의 무비판성과 몰취미(기만성)를 폭로하는 ‘예술의 간교한 복수’를 감행하고 있다.

2) 해체

해체라는 개념은 프랑스의 작고한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대표적 개념이다. 우리는 세상을 개념틀을 가지고 본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을 볼 경우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 자체를 거부하려 한다. 이런 대상과 직면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지닌 기존 개념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반성을 통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기존 개념틀의 구조를 새로 인식하게 되고 그것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해체란 자신이 은밀히 지니고 있던 개념틀의 토대를 드러내고 그것의 한계를 폭로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존 개념 구조틀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와 대면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이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파이프 그림과 파이프가 아니라고 진술하는 문장 간의 갈등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회화 작업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적 개념틀을 재검토하는 비판적 태도를 경험하게 한다. 라우셴버그의도 해체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는 당시 유명 화가였던 데 쿠닝의 작품을 사서 그의 그림을 지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오직 지우는 작업으로 채워진 이 작품은 무언가를 그리는 것이 회화 작업이라는 통념에 도전했다.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를 남기고자 삶의 모든 양식에 집착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지워나가는 작업에서 오히려 삶의 행복과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상념할 수 있다.

3) 꿈

예술은 꿈이다. 꿈은 우리가 무의식 속에서 소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꿈을 제대로 꿔내려면 무의식 상태에 진입해야 할 것이다. 무의식은 공포스럽다. 하지만 쾌락을 주기도 한다. 인간은 흔히 불온하고 금지된 것을 꿈꾼다. 그것은 처벌의 공포를 주지만 동시에 강한 쾌감을 선사한다. 무의식의 세계에 탐닉하는 자신은 의식 세계의 자아를 벗어나 변신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의식된 자아에서 해방됨으로써 우리는 자유를 만끽한다. 지금과 다른 존재로의 변신은 지금 상태에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 보고 그것의 처지를 이해하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에게 이해 불가능한 대상 중 대표적인 것은 자연이다. 예술은 언제나 자연과의 화해라는 불가능한 꿈을 꿔왔다.
이화여대의 ECC관은 도미닉 페로의 작품이다. 이 건물은 건물이되 텅 빈 공간으로서의 인상을 준다. 어떤 공간을 채우는 형태의 건축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선사하는 건축 방식은 건축물 위에 공원이라는 자연 공간을 끌어옴으로써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 건물은 자연과 인공물이 공존하려는 꿈을 보여주기 위한 건축물로 변신했다. 이종호의 작품 박수근 미술관 또한 자연이 건물이 되고 건물이 자연으로 변신하는,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라는 예술의 꿈이 구현된 작품이다.

 

질문 1) 현대미술의 시기는?

연대 구분을 명확히 나눌 수는 없다. 대략 보자면 1920-30년대는 모더니즘, 50-60년대는 아방가르드, 70-8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라 할 수있다. 그러나 각 경향의 운동은 특정 연대에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질문 2) 한국 사회 그리고 서울이라는 공간은 사실 전통 및 맥락과 단절된 곳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리움미술관의 무맥락성도 현실을 반영한 게 아닌가?

맥락은 단절의 관계이다. 기존 전통과 경향, 사건들이 현재적 상황과 충돌을 빚고 일정한 단절의 긴장을 형성함으로써 맥락적 관계가 등장한다. 그러나 리움은 뜬금없이 불쑥 세워진 완전한 무맥락성에 있다. 전혀 다른 의도와 맥락 속에서 등장한 구현물들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아무런 긴장 관계의 형성도 없이 억지로 이어 붙인 것에 불과하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후기

철학과 예술 새로운 관점에서 둘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선과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추천해 주신 한국 내 작품들을 보고싶어집니다.

건축은 예술 작품이지만 동시에 공공 생활을 책임지는 유산이 될 수있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의 도시 계획이 앞으로 더욱 성숙하고, 건축이 미래의 유산임을 염두에 둘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예술은 느끼는 것일까? 이해하는 것일까? 문외한으로서 먼저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 필요하다. 오늘 강의는 예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강의였다.

예술가는 ‘시작과 끝’만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5년동안 감상해오던 ‘바깥 미술회’의 작품들이 그동안의 시간과는 달리 나의 심상의 영향을 받아 크게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경험을 실제 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지난해 그들이 겪었던 쓰나미의 슬픔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건희 부인 홍라희가 비싼 예술품을 대중과 함께 즐기기를 바랍니다.

해체의 현 현상을 시적으로 살피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건축 미학에 대해 잘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강의를 통해 예술에 대한 새 시각을 갖출 수 있었다.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기술이 골치 아픈 대상이듯이 공학 종사자에게 에술이란 대하기 두려운 대상이다. 이병창 선생님의 사례 제시와 설명으로 예술에 대해 두려움을 덜어내고 재미를 심는 시간이었다.

신성한 사적 소유? 사적 소유의 마법에서 깨어나기[한철연 교육강좌]- ⑨

[한철연 교육강좌]- ⑨

신성한 사적 소유? 사적 소유의 마법에서 깨어나기

 

강사 : 박종성(호원대 외래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박종성 회원(호원대 외래교수)이 강의한 이번 강의에서는 마르크스의 사적 소유론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해명하는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강의 제목에서와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적 소유에 대한 맹목적 신뢰 의식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사적 소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회 구조의 변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강의로 ‘사적 소유의 퇴마’가 성공할 수는 없다는 말일까?

박종성 호원대 외래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분명히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를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소유 자체를 없애자거나 조야한 수준의 공유제를 만들자는 말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의 사적 소유철폐론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근대 이성에 대한 성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근대 이성은 모든 것을 계량화시키는 이성으로서의 특성을 지녔다. 근대의 계량적 이성은 모든 것을 양적 기준으로만 평가하고 이를 통해 그것을 제어하고자 했다. 아도르노의 도구적 이성 비판은 바로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만물의 계량화는 각 개별 존재자의 질적 특성을 무시하고 양적 기준 하나로 추상화(균일화, 동일화)시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동일화 원리가 화폐라는 양적 기준을 통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화폐를 얼마나 소유했고, 소유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따라 인격을 평가하고 서로를 견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화폐를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는 서로를 수단으로 대우하면서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다. 사적 소유 관계는 이러한 소외 관계를 일반화시킨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 관계의 앙상블을 만드려면 사적 소유 관계의 철폐가 가장 좋은 길이 된다.

사실 사적 소유 철폐론은 마르크스만 주장한 것은 아니다. 플라톤, 토마스 모어 등도 공유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공유제는 조야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플라톤의 공유제는 모든 것(아내와 자식마저도)을 말 그대로 함께 소유하면서 사회를 유지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이 체제는 만인에 의해 사적소유로서 소유될 수 없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한다. 가령 재능과 같은 것을 폭력적 방식으로 도외시하려고 한다. 물리적, 현시적 소유만이 생과 생활의 유일한 목적으로 간주되는 것이다.”(MEW, 1, 534) “이 여성공유사상이 이 완전히 조야하고 반이성적인 공산주의의 노골적인 비밀…..이 공산주의는 인간의 개성(Pers?nlichkeit)을 도처에서 부정”(같은 책, 같은 쪽)한다. 사실 마르크스가 바라보는 공산주의는 개인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본질력을 표현하는 표현주의적 경향이 짙게 베어있다. 그의 사적 소유 철폐론도 모든 개인적 소유의 철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개인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적극적으로 소유하도록 장려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개인은 (타인과의) 공동 관계에서 비로소 그의 자질을 다방면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공동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격적 자유가 가능해진다.”(『독일이데올로기』 74쪽 / 128-9쪽)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적 소유는 소외된 노동의 결과물이다. 자본가가 소유하고 있는 기계나 공장과 같은 생산 수단 및 그 밖의 소유물들은 원래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생산물들이 착취되어 자본가의 소유가 된다. 따라서 자본가의 사적 소유물은 노동자의 소외된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는 이러한 관계가 심화되어 사적 소유 관계가 노동 소외를 더욱 심화시킨다. 생산 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노동자를 고용한다. 노동자는 임금을 통해 화폐 및 생산물의 사적 소유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이내 좌절된다. 임금 노동 관계에서 노동자가 만든 것은 노동한 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임노동 계약 관계에서는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은 자기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임노동 관계 밖의 노동자는 자기가 만든 노동 생산물에서 자아실현의 기쁨을 맛본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임노동 계약 관계에 묶인 노동자는 자아 실현의 기쁨은 커녕 노동 생산물의 상실로 인해 좌절감을 느낀다. 오히려 자신의 생산물에 의해 제어되는 이율배반을 경험한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노동 소외라고 규정했다. 노동자의 좌절과 예속 상태는 결과적으로 생산물의 제어력을 자본가에게만 인정하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제에서 비롯한다. 이렇게 맺어진 사적 소유 관계는 결국 인간 관계 전체를 왜곡시킨다. 그런면에서 볼 때 “사적 소유의 지양은 모든 인간적 감각들과 속성들의 완전한 해방이다. […] 이러한 감각과 속성들은 인간적으로 되고 […] 대상은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대상 즉 인간으로부터 기인하여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전화된다. […] 대상적 현실이 인간의 본질적 능력(die menschlichen Wesenskr?te)의 현실이 됨으로써 따라서 자신의 고유한 본질적 능력의 현실이 됨으로써 […] 모든 대상들은 자기 자신의 대상화 즉 인간의 개성(Individualit?)을 확인하고 실현하는 대상이 된다.”(?M 540-1쪽) 여기서 우리는 지양(Aufhebung)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제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존의 생산적인 성과를 받아 안으면서 새로운 창조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사적 소유 폐지론은 사적 소유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적 소유와 분업이 철폐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전면적으로 발휘할 수 있으므로 총체적인 개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 “개인은 (타인과의) 공동 관계에서 비로소 그의 자질을 전면적으로 도야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공동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격적[개인적] 자유(pers?liche Freiheit)가 가능해진다. […] 현실적 공동체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의 연합 속에서 그리고 그러한 연합을 통해서 자신들의 자유를 획득한다.”(『독일이데올로기』74쪽 / 129쪽)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으로서 공동체 속에서 개인들은 ‘인격적[개인적] 자유’도 획득하게 된다. 계급 사회에서 물질적 조건들은 개인들에게 외적인 것, 우연적인 것으로 주어져 왔는데, 인격적[개인적] 자유란 “일정한 조건들 내에서 방해받지 않고 우연성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독일이데올로기』 75쪽 / 130쪽)를 가리킨다. 지금까지 계급 사회에서 인격적 자유는 물질적 조건을 마음대로 향유할 수 있었던 지배 계급의 성원들에게만 주어졌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이 폐지되므로 개인들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물질적 수단이나 조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이러한 인격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처럼 공산주의 사회에서 개인들이 누리는 인격적 자유는, 물질적인 강제력에 포섭된 계급 사회에서 개인들이 누리던 자유보다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9강 후기

제가 알고 있던 마르크스보다 좀 더 말랑말랑한 마르크스를 만난 강의였습니다. 얼마나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나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자존주의 체제 하에서 착취가 공공연히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서 사적 소유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강사님의 거침없는 날 것으로서의 표현 방식이 신선하고 매우 공감적이었다. 강사님 짱!!

 

자본주의를 있게 하고, 심화시키는 사적 소유에 대해 철학적인 면과 함께 구체적인 현실을 살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맑스에 대해 우리의 언어, 현실의 언어로 이해하기 쉽도록 강의한 박종성 선생께 감사합니다.

 

‘16-14-12-10-8’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 단축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숫자의 나열이다. ‘사회적 관계의 총화’로서의 인간의 본질을 실현 해나가는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 것. 나 또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맑스가 추구한 인간은 전인적 인간, 미학적 인간

 

힘든 몸 이끌고 강의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강의 내용 재밌고 유익했습니다.

 

 

여성주의적 근본주의를 넘어서 [한철연 교육강좌]-⑧

[한철연 교육강좌]-⑧

여성주의적 근본주의를 넘어서

 

강사 : 강지은(건국대 외래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5월 20일에는 강지은 회원(건국대 외래교수)의 여성주의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강의는 성차별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수성을 보여주는 사례에서 시작되었다. 세계경제포럼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 평등 순위는 135개 국가 중 107위였다. 이 기관이 지니고 있는 평가 기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일단 한국 사회가 그다지 성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점은 대략 짐작할 만한 자료라 여겨진다.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이 강하게 요청되는 현실적 단면이다.

 

강지은 건국대 외래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페미니즘은 성 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는 투쟁이다. 페미니즘의 목적은 어떤 특정 집단 여성들이나 특정 인종 및 계급의 여성들에게 이익을 주는 데 있지 않다. 또한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특권을 줄 것을 주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의 삶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페미니즘은 서구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여성 권리에 대한 옹호’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역사적으로 페미니즘은 하나의 고정된 의미나 실체를 가진 것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갈래의 이념적 토대와 관점을 견지하는 사상, 이론, 행동주의로 구성된 묶음이다. 페미니즘은 통상 다음의 세 가지를 의미한다. ①여성은 체계적으로 억압당해왔으며, ②젠더 관계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비롯되거나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며, ③불평등한 젠더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실천.

여성주의 이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답한다. ①여성은 어떤 방식으로 종속되어 왔는가? ②우리는 어떻게 특정 사건을 개별적 불운이 아니라 성(sex)에 기반한 사회적 억압의 한 부분으로서 이해할 것인가? ③우리는 어떻게 억압적 상황에 대해 명확히 이해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④여성은 어떤 방식으로 종속에 저항할 수 있는가? ⑤여성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⑥삶의 어떤 영역에 초점을 맞추어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할 것인가? ⑦여성의 종속은 인종, 민족, 국적, 계급, 섹슈얼리티에 근거한 억압들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가? 등등.

페미니즘의 사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① 자유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개인의 권리 개념을 발전시킨 18, 19세기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근거하여 설명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전략은 자유, 평등, 정의라는 자유주의적 가치에 근거하여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법적,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는 데에 있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남녀 동수 공천을 강제하는 법을 제정한 것도 이러한 사조에 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②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사회 구조가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임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여성의 종속은 사유재산제의 도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제, 계급사회, 여성 억압은 필연적 관계를 갖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편의 역할은 임노동을 위해 가정일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된다. 아내는 임노동 체제의 지속을 위해 가사에 종사하도록 강제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사노동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이유는 가사노동의 위상이 대량 생산적 임노동 체제를 보조하는 것으로 배치된다는 데에 있다. 시장과 가사노동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기혼 여성은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임금의 유동적 노동력을 제공하는 산업예비군이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여성문제를 확장시킨 데에 이바지 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에 의한 여성 억압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남성 문화에 의한 여성 억압의 문제를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③ 급진주의 페미니즘

1960년대 후반에 생겨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성에 의한 여성 억압, 즉 가부장적 억압이 모든 형태의 사회적 억압 중 가장 근본적이라고 보며 여성들의 공통된 경험에 주목한다. 급진주의의 주장은 첫째 여성은 역사적으로 최초의 피지배 집단이며, 둘째 여성 억압은 사실상 모든 형태의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 현상이고, 마지막으로 여성 억압은 근절하기 가장 어려운 억압 형태로 계급 사회 철폐와 같은 변화만으로는 제거할 수 없는 아주 뿌리 깊은 것이다. 이들은 공적인 영역에서의 기회 평등을 추구하는 제도 개혁의 방식만으로는 여성 억압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가부장제 문화를 전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④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중요 요인인 문화적 제도들(가족, 섹슈얼리티 등)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둠으로써 마르크스 페미니즘과 급진적 페미니즘의 통찰을 결합시킨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생산 양식의 변화만으로 여성 해방을 이룰 수는 없다고 본다. 여성 해방은 경제적 예속에서의 해방과 더불어 정신적 혁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거나 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지난 2월 나꼼수의 비키니 파동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나꼼수를 지지하는 한 여성이 비키니 차림으로 가슴에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이라고 쓴 사진을 미권스(정봉주와 미래권력들) 게시판에 보냈다. 나꼼수 멤버들은 ‘가슴응원사진 대박, 코피를 조심하라’고 쓴 정봉주 접견서를 인터넷에 올렸고 나꼼수에서 비키니녀의 사진을 보고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하는 발언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꼼수가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느냐 아니냐가 논란이 되었다. 나꼼수는 인간을 성적대상화하는 것과 동지의식은 같이 갈 수 있다고 해명했다. 과연 그럴까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강사는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조정희 씨의 자료를 예로 들며 김어준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열내는 페미니스트는 이제 필요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성성을 더 드러내는 ‘쿨한 엠브라’가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정희 씨는 남성 마초에 대응하는 여성 엠브라는 성적인 여성성을 충분히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여성이 대세라고 하였다.

그러나 강사는 우리 웹진 <이 시대와 철학> 2월 15일에 실린 황주영 씨의 ‘(나)꼼수’에 속지 말고 닥치고 페미니즘‘은 김어준 씨의 의견이나 조정희 씨의 견해가 갖는 허점을 날카롭게 찔렀음을 보여주었다. 아래는 황주영 씨의 기사를 간략하게 정리한 글이다.

다행히도(?!) 나꼼수 멤버들은 (이번에 배운 건지 정말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지간한 진보적 남성 지식인에 비해서는 약간 더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방송에서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의 판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 가해자의 의도의 유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여성이 이런 이슈에 민감할 권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 자기들은 배운 남자라고 항변했다. (이 정도 기본 지식을 가지고 칭찬받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배운 여자들은 배운 남자들만큼 못 믿을 사람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특히 ‘진보적인’ 혹은 ‘비판적인’ 배운 남자들은 더 그렇다. 대학에서, 진보적 운동 단체들에서, 운동권 학생회에서 중심적인 활동을 했던 수많은 남성들과 교수들이 자신의 여성 ‘동지들’을 성폭력 피해자로 만들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걸 김어준씨가 모르진 않겠지.

삼국카페는 공동성명서에서 여성을 치어리더로 삼는 남성중심의 ‘반쪽 진보’인 ‘나꼼수’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믿음, 동지의식을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런 심정으로 오래 몸담았던 진보적 집단에 등을 돌렸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여성운동을 시작했던가! 나꼼수 멤버들이 다른 남성들에 비해 1그램 정도 낫다거나,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변한 게 없다거나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사실 이번 일에 대한 (나꼼수 멤버를 포함한) 남성들의 반응은 너무 빤하기 때문에 새삼 놀랄 것도 없다. 페미니스트들이 봐야 할 것은 저 삼국카페 회원들이 낸 공동성명서이며, 그들과 페미니스트 이론 사이의 격차, 그들과 비키니 응원 여성 및 그녀를 모방하며 나꼼수를 지지하는 여성들 사이의 격차, 그리고 이 후자의 여성들과 페미니스트 사이의 격차다.

김어준씨의 말대로 피해자 프레임의 페미니즘은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성은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 내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여러 방식으로 수정보완하려는 노력들도 있어왔다. (이런 걸 언급하지 않은 걸 보니, 아마 김어준씨는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에 관심을 끊었나보다.) 문제는 그 파급력이다. 현재 페미니즘이 20대 여성들에게 매력이 없는 건 이전 세대들과 지금 20대의 삶이 크게 다른 데 비해 페미니즘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즘은 더 이상 20대 여성들의 삶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큰 변화나 도약이 없는 것은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여성들의 삶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아를 실현하는 데 있어 그 누구보다 많은 독려를 받으며 자란 젊은 여성들은 소위 알파걸이라고 불리고 엄친딸을 지향하며 산다. 이들은 제2의 수퍼우먼이지만 선배들이나 엄마처럼 지독하게 혹은 청승맞게 애쓰지 않는다. 여성성을 한껏 뽐내면서도 학업이나 일에서 좋은 성과를 내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다. 싸워야 할 상대는 남성이 아니다. 이들은 싸우지 않는다. 애교로 의존하는 척 하면서 구워삶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다른 세대에 속하는 여성들은 물론이고 현재 20대의 많은 여성들도 여전히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저런 특별법이 마련되었어도 여성들은 여전히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아직도 임노동과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과 관련된 현장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이라면 피해자 프레임의 페미니즘이 아직도 절실할 것이다. 이건 김어준씨가 스포츠 중계하듯이 ‘피해자 프레임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와 줘야 되는데 안 나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김어준씨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정치적 표현의 수단으로 도구화하기로 결정한 그 여성을 골빈 년으로 만드는 폭력”을 경계한다. 그리고 이 폭력이 피해자 프레임 페미니즘의 콜래트롤 데미지(부수적 피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어준씨가 간과한 또 하나의 부수적 결과가 있다. 그게 바로 비키니 응원 여성이나 코미디언 곽현화, MBC 이보경 기자와 같은 여성들이다. 이들은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걸 원하는 여성이야 없겠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피해의식도 없는 아주 당당한 여성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거칠고 민감한 페미니스트와도 거리를 두고 싶고, 고통스러워하고 청승맞은 피해자와도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도구화’하고 어떤 여성들의 ‘피해의식’을 비꼬는 패러디물을 만들고, 나꼼수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비키니 응원에 참여한다. 이들은 개인이다. 이들은 여성 집단에 대해서 아무 고려도 하지 않는다. 이 여성들은 한편으로는 이른바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적 존재로 자신을 등장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해서는 대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성적 존재로 노출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 자기가 처해있는 성적 입장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않는다. 이는 기존의 페미니즘이 피해자 프레임과 더불어 속박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자아를 실현하면서 살라는 일종의 강령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 포섭되고, 남성중심적 권력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과이다. 게다가 이는 부수적인 게 아니라 결정적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의 몸이 ‘도구화’ 되는 것도 스스로 ‘도구화’ 하는 것도 모두 거부하고,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피해의식’에서 출발해 그것을 정치적 활동의 역량으로 확대하면서, 하이힐 신고 아스팔트를 걸으며 가카 퇴진을 외치고, 시위대에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플래시 몹을 선보이는 등 ‘발랄한’ 시위 방식을 보여주었다. ‘대의’를 위해서 어떤 취약 계층을 배제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성들이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사유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 프레임을 넘어선 이야기들을 제시하는 페미니즘 이론과 여전히 피해자 프레임을 필요로 하는 여성운동 및 여성의 현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느 쪽과도 관계되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들과 그와 동시대를 살면서도 페미니스트 의식을 지니고 있는 여성들 사이에 어떤 공통성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차피 나꼼수를 이길 순 없다. 우리에겐 그만한 명성도 권력도 미디어도 없다. 게다가 그런 ‘팬덤’도 없다. 나꼼수의 지지자들은 이미 동지도 지지자도 아니다. 그들은 마치 아이돌의 팬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들 믿고 배신하지 말자’며 팬심을 다지듯이, 다 필요 없고 김총수가 알아서 잘 판단할 것이고 그 판단에 맡기고 우리는 한 길만 가자고 서로를 도닥이는 분위기다. 이렇든 천군만마를 가진 나꼼수는 꼴페라고 만날 욕만 들어먹는 여성들에게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사과한다면 잘해야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정도겠지만, 이런 소릴 할 캐릭터들이 아니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민감할 권리는 있어도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을 권리는 없다며, 조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논점을 ‘표현의 자유’ 문제로 돌리면서 회피해 가는 이런 담론에 또 휘둘릴 필요 없다. 그러는 대신 담론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 사과를 받아내는 일이나 대의가 뭐냐, 여성문제는 사소한 일이냐 하는 케케묵은 논쟁은 그만두자. 이런 쟁점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어떤 쟁점을 다루든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선에서, 여성들이 서로를 마주보게 하고 대화하게 하고 협상하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8강 후기

여성과 남성은 분명히 다른 존재이고 여성은 역사적으로도 소수이자 약자의 모습을 가져왔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여성이 신체적 측성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육아, 가사노동이 페미니즘에 관한 인식으로 변화, 남성들의 공감과 사회적 인식을 이끌어내길 바랍니다.

 

여성의 권리가 상당히 발전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는 소수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고 정당한 권리 확보를 위한 유익한 강좌였다.

 

누군가 여성 해방이 인간 해방의 마지막 단계라는 말을 했다.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인간 사회에서 여성 해방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문지에기도 하다.

 

여성은 소수자이다. 소수자인 여성이 중심에 서서 문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남성은 더 교육 받아야 한다.

 

여성의 성이 착취당해 온 인류의 역사를 볼 때, 여성이든 남성이든 의식 속에 각인된 성 청체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성만이 또 남성만이 피해자나 가해자라는 입장보다 우리의 의식에 고착화된 이성애주의에 대한 비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복지제도의 철학적 정당화: 가난뱅이만 얻어먹기? [한철연 교육강좌]-⑦

[한철연 교육강좌]-⑦

복지제도의 철학적 정당화: 가난뱅이만 얻어먹기?

 

강사 : 곽노완(서울시립대 HK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분과장)

 

 

일곱 번째 한철연 강좌는 열기가 뜨거웠다. 이번 강의에서 곽노완 회원(서울시립대 HK교수)은 단순한 복지제도의 시행이 아니라 기본소득제도의 실천이 한국 사회에서 적절한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곽노완 서울시립대 HK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기본소득제도는 1986년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BIEN 비엥)의 창립을 통해 확산되었다. 2010년 한국에도 비엥의 지부가 설립되었다. 이 단체 창립 구성원은 대부분 철학과 경제학을 연구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지구가 모은 인류의 것’이라고 주장한 토마스 페인, 칼 맑스, 존 스튜어트 밀, 버틀란드 러셀 등의 정신을 잇고 있다. 기본소득 이론의 현대적 대표자는 벨기에 출신의 필리페 판 파레이스이다. 그는 이 제도가 착취를 없애고 정의를 실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제도라고 주장한다. 네덜란드 출신의 학자 판 돈젤라는 이에 반대한다. 그는 기본소득제가 부의 생산자인 노동자의 정당한 몫을 게으름뱅이들에게 아무 댓가 없이 가져가도록 방조하는 제도라고 평한다. 그래서 돈젤라는 일하는 자들에게만 기본소득제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임금 노동만이 생산적이라는 전통적인 노동물신주의 속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현대에는 비사회적 노동과 비생산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유익한 노동 활동의 영역이 부각된다. 이들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소득을 보장해줘야 한다.

생산적 노동은 사적 자원만을 이용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 공유 자원(자연, 역사적 유산, 사회 성원들의 역량, 전통 등)을 배제하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로마시의 생산 성과 중 대부분은 역사 유산이라는 공유 자원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그 수익은 이 공유 자원의 임자인 국민들에게 잘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기본소득제가 알맞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제도에 대한 논의가 부각된 계기는 무상급식 문제였다. 무상급식은 현물로 주어지는 부분적인 기본 소득이라는 면에서 기본소득제와 연관된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는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적절하다. 그래서 현물보다는 현금 지급이 낫다. 또한 무상급식 등의 복지제도는 일정한 자격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면에서 의도하지 않은 차별, 자괴감 등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는 무조건적으로 제공되는 보편적 복지제도이다.

기본소득제의 실천에서 걸림돌로 작용하는 문제는 재원 마련에 관한 것이다. 세금을 많이 거두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란의 경우 대부분의 재원을 석유 판매금으로 마련했다. 천연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마땅한 재원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로소득액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돌리는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고도 자본주의 사회일수록 불로소득 비율(구미 60%, 한국 70%)이 높다. 한국의 경우 부정의한 불로소득액이 막대하다. 만약 이러한 불로소득의 일정부분을 기본소득제의 재원으로 돌린다면 재원 확보에 대한 염려는 적어질 수 있다. 기존 좌파는 불로 소득이라는 요소를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면서 노동 소득을 기초로 분배하자는 견해를 고수했다. 그러나 이것은 고도자본주의 현실에 눈감고 있는 이론이다. 차라리 불로 소득의 존재와 기능을 바로보고 그것의 지배권을 특정 계급이 독점하도록 허용하기 보다는 기본소득제를 통해 국민이 공유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연기금 재원 300조는 현재 불로소득원이다. 이것을 가지고 순환출자를 통해 국내 재벌 기업의 소유권을 지배할 수 있다. 국민이 중심 기업의 주인이 되므로 국민들은 기업의 수익 창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열심히 일하게 된다. 배당 이익을 기본소득제의 형식으로 돌려받는 일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화폐 주조 차익을 기본소득제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매년 발행하는 화폐 액수를 약 100조원으로 잡는다면, 화폐 주조를 위한 생산비는 약 5조원 정도가 될 것이다. 나머지 95조는 시중 은행에 저리로 대여되면서 이른바 ‘산업을 키우고’, ‘기업을 살리며’, ‘물가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손쉽게 대부된 대부분의 돈은 오너들의 비자금과 사적 재산으로 흡수되고 일부만이 노동에 대한 댓가로 지급된다. 만일 화폐 주조 차익의 일정 부분을 기본소득제를 통해 국민에게 유통시키면 재원 부담을 낮출 수 있으며, 국민경제의 내실화에도 기여한다. 불필요한 토건 예산을 줄이거나 공기업의 이익분을 국민에게 배당하는 방법 등도 제안될 수 있다.

 

 

7강 후기

 

‘복지제도의 철학적 정당화’를 공유했다. 사회적 안전망-복지 제도의 추상성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복지 제도 개념으로 ‘기본소득’은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의 균등함을 이룰 수 있는 기초다. ‘노동이 부의 원천은 아니다.’ 노동물신주의를 넘어서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사회적 의식’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과제다.

 

우리 사회에 복지 담론이 이슈화되면서 기본 소득에 대한 정당성과 착취에 대하여 논의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보장보다는 출발선 상에서부터의 기회 균등을 통한 노동시장의 안정성 구축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노동시장 안정성상에서의 기본소득 보장의 대안사회를 바라본다.

 

기본소득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를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평소 생소한 개념이었던 기본소득이라는 것의 현실 가능성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혼까지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는 현재 젊은이들의 구직난과 고용 불안을 완화하게 해주는 하나의 돌파구로서 작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 걱정되는 부분은 전체 1%의 재벌들의 노동 의지에 대한 부분이다. 그러나 단지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고 싶다는 욕망이 아닌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불로소득을 향한 통찰은 꼭 필요하고 여론으로 확산시켜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기본소득 5만원으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강의를 듣고보니 기본소득을 실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착취 개념의 확장에 대한 논의가 인상 깊었습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알 수 있는 강의였던 것 같습니다.

 

복지를 도덕적, 윤리적 문제로만 생각해 왔는데 이번 기회에 좀 더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개념이란 걸 알게 되었음

 

경제와 철학이라는 두 동떨어져보이는 분야 간에서 새롭게 생겨난 경제철학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관심이 생깁니다. 텍스트를 더 읽어보고 싶은 영역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이 많은 철학 분야인 것 같습니다.

 

경제+철학은 저에게는 어려웠던 강의였습니다. 가깝기는 하나 너무 먼. 기본 개념조차 정립되지 못한 듯하여, 이번 강의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간지 쩌는’ 푸코; 자기의 테크놀로지와 정치적 실천[한철연 교육강좌]-⑥

[한철연 교육강좌]-⑥

‘간지 쩌는’ 푸코; 자기의 테크놀로지와 정치적 실천

 

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분과장)

 

 

화창한 봄날 햇살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강좌는 쉼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강좌는 김성우 회원의 푸코 강의였다. 20세기의 가장 통찰력있는 철학자 중 하나인 푸코의 철학을 소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흔적을 감추는 데에 능란한 ‘여우’를 별명으로 삼고 있는 푸코는 이해하기가 여간 수월찮은 철학자이다.

푸코의 철학이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는 서양 철학의 기나긴 역사와의 대결 속에서 그의 철학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푸코는 체계적 거대 서사를 거부한다. 서양 철학에서 거대적 체계를 제시한 대표자는 역시 헤겔이다. 그런 면에서 푸코의 철학은 헤겔 철학과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고상한 정신의 역사를 철학적으로 전개한 헤겔 역사 철학에 대항해서 정신의 어두운 역사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헤겔의 역사 철학이 이성 승리의 역사였다면, 푸코의 역사 철학은 승리한 이성의 건너편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던 정신의 이면을 드러낸 계보학이었다.

김성우 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은 근대 철학이 구축한 주체 철학의 주체 중심주의에 반발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전개했다. 푸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그는 스웨덴 도서관 등에서 접한 고문서를 가지고 자기의 철학을 펼쳐갔다. 사람들이 간과했던 부속적 행정 서류, 보고서, 일기 등으로 이루어진 고문서를 통해 그는 근대 역사의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합리적이지 않은 근대인들의 모습을 폭로함으로써 그가 노린 효과는 계몽적 이성에 대한 성찰이었다.

현대 사회는 이성이 발굴한 진리를 통해 구축된 합리적 체계라고 여겨지고 있다. 과학은 이러한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과학은 진리로 가는 유일한 길로 간주된다. 과학 아닌 것은 단순히 감정의 산물이거나 상상력의 판타지에 불과하다. 비과학이라는 딱지는 적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과학은 현대인에게 구원의 문이 되었다. 이러한 과학주의 분위기 속에서 철학도 과학을 닮고 싶어 한다. 유럽의 형식주의와 구조주의는 모두 과학적 객관성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구조는 사건과 사물들의 현상적 변화를 일어나게 하는 심층적 장이다. 이런 구조는 역사의 영향에서 거리를 두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것인 듯이 간주된다. 그러나 구조는 역사의 차원을 무시하기에 선험적이고도 불변적인 감옥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푸코는 구조의 역사적 변화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현대 사회의 지식 담론을 형성하게 한 원천을 고고학적 연구 방법을 통해 드러낸다. 그에게 담론이란 어떤 지식인들이 그것을 발언하도록 만든 축적된 지식의 지층들이다. 이 지식의 지층 구조를 드러내고 발굴하는 작업이 ‘지식의 고고학’이다. 이런 시도들을 함으로써 푸코는 구조주의적 언어로 구조주의를 넘어선다. 후기구조주의자로서의 푸코의 모습이다. 그런데 푸코가 구조주의적 언어를 사용한 것은 주관주의적인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그의 고고학이란 이러한 과학적 객관성의 문턱을 넘지 못한 지식들에 관한 학문들을 탐구하기 위한 방법론에 붙인 이름이다.

‘지식의 고고학’ 제2기는 이 지식의 지층들을 가능케 한 근원 인자에 대한 탐구였다. 그는 이 근원 인자를 ‘권력’으로 보았다. 이것이 계보학의 시기이다. 특정 지식 지층을 진리의 반열로 올린 것은 ‘권력’이었다. 물론 그것은 정치 권력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탐구는 『성의 역사』 1권에서 다루어졌다.

이후 그는 근대 주체와는 다른 주체들에 대한 탐구를 전개한다. 그리스적 주체에 대한 연구는 이런 맥락에서 진행된다. 주체에 대한 탐구는 근대적 사회 이후의 모습을 전망하기 위한 대안적 이론의 제시를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푸코의 윤리학이다. 만약 내가 어떤 주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주체의 모습이 뭔지 먼저 탐색해봐야 한다. 이 윤리적 주체의 역사가 『성의 역사』 2권과 3권이다. 푸코의 후기 작업은 어떤 주체가 올바른 주체이며, 앞으로의 세계에서 어떤 주체를 지향해 봐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였다고 짐작된다. 그러나 푸코는 그것을 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는 그 윤곽을 인터뷰, 강연, 단편 등을 근거로 하여 대략 그려볼 수는 있다. ‘자기의 테크놀로지’는 이 새로운 주체로 도달하기 위한 주체 수양에 관한 탐구였다. 푸코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를 지향했다.

그가 근대적 주체로부터 벗어날 것을 권유했다고 해서 그의 철학이 근대성 자체를 제거하는 방식의 극복을 주장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 그는 근대성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이를 ‘견디며 치유(Verw?ndung)’하고자 했다. 이 실천적인 비판을 통해서 “구체적 자유의 공간”을 넓히려 했던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적절한 저항은 자신이 처한 구체적 삶의 영역을 버리며 떠나는 식의 지사적 열정에 휩싸인 싸움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의 영역 속에 있으면서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와중에 그것을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자신도 변화시키는 싸움이 적절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오늘날 지식인의 역할이 규칙을 설립하거나 해결책을 제안하거나 혹은 이런저런 예언을 하는 데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인은 권력이 특정한 상황(내가 보기엔, 비판받아야 마땅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데 도움을 줄 뿐입니다.” 푸코는 자신의 역할을 “문제들을 효과적이고 현실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성, 광기, 범죄 등은 복잡한 문제여서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그 문제들을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풀뿌리 수준에서 해결하기 위해 발언과 정치적 상상의 권리를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강좌 후기

푸코 철학의 가치.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푸코 철학 어렵다. 서양 철학 어렵다.
계보학: 자기 자신의 분야에서 자기 분야의 역사를 쓸 필요가 있다.
장자의 언어가 푸코의 언어일 수도 있다 과학의 언어이면서도 시의 언어일 수 있다.

철학자가 문학하는 작가에 대해 강의할 때 ‘단독성’을 강조했던 것이 떠오른다. 현대의 지식인이 자신 또한 지배당하고 도구화 되고 있는 지배 체제 혹은 시대의 담론 체계에서 스스로의 ‘단독성’(구체성)을 확보하려면 어떤 투쟁을 구체화해야 하는가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사소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되고 지나치는 개인의 경험과 사유가 각각 힘을 지니고 그것들이 생동하는 질서 속에서 진리 탐구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푸코’와 그의 저작들을 용기 있게 만나야겠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헤엄칠 때 서로의 존재를 잊고 자유로워진다고 한 장자의 통찰에 다시 한 번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우리도 우리의 철학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요가하는 노장; 폼 나는 생태적 삶을 넘어서[한철연 교육강좌]-⑤

[한철연 교육강좌]-⑤

요가하는 노장; 폼 나는 생태적 삶을 넘어서

 

강사 : 송종서 (전 민족의학연구원 상임연구원)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분과장)

 

 

 

4월 22일 태복빌딩 2층에서 송종서 회원의 강의가 있었다. 이번 강의는 동양 철학적 관점에서 생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강의는 부드럽고도 진중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생태 문제가 적극적으로 제기된 시기는 1990년대 부터이다. 환경 위기가 우리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죽음의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생태적 각성이 시작됐다. 북반구 선진국 주민들은 오늘날의 풍요를 지속하면서 동시에 생태적 부담을 증가시키지 않으려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그러한 삶에 대한 욕구가 퍼져 나가고 있다. 그러나 저 ‘지속 가능한’ 생태적 삶이라는 꿈은 오늘날의 생태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죽음의 시간’을 잠시 늦출 뿐이다. 진정한 생태학은 죽음에 직면한 자들의 처절한 성찰을 요구한다. 처절한 성찰의 와중에 목격하게 되는 진실은 우리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되리라는 희망적 전망을 선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절망적 현실에 대한 직시를 명령한다. 그래서 진정한 생태학은 희망의 학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노자의 철학을 자연과 합일하여 소요유를 즐기는 반문명적 우주론에 기초하고 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오히려 노자 철학은 철저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입각해서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고도의 철학적 처세술’에 가깝다. 이러한 사고가 전개된 이유는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적 변화에 대한 배경적 이해가 필요하다.

송종서 전 민족의학연구원 상임연구원/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춘추시대의 제후국들이 패업의 야망을 품을 수 있게 된 계기에는 생산성의 발전이라는 경제적 배경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는 춘추시대가 이미 기술을 가지고 자연을 이용하는 시대에 돌입했으며, 당대인들에게는 그것이 놀라운 성취로 간주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전국시대에는 자연 지배에 대한 의식이 강화되어 만물 현상의 원인을 추구하는(求其故) 작업이 활발했다. 이 작업을 주도한 학파는 묵가였다. 묵가는 전국시대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학파였는데, 그 구성원들은 장인과 기술 노동자 집단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기구를 만들기 위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연에 대한 이론과 그러한 이론의 방법론으로서의 논리학을 발전시켰다. 묵가에서는 인간이 자연에게서 해방되고, 노동자 등이 지배자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기술임을 강조했다. 장자의 도가와 맹자의 유가 등은 이러한 묵가의 견해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자신의 이론을 성립시켰다.

학파들 간의 논쟁을 통해 이론을 성숙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나라에 설치된 ‘직하학궁(稷下學宮)’의 역할이 컸다. 이것은 국가가 세운 일종의 학술원이었다. 이곳에서 당대의 학파들이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파악하고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게 된다. 순자는 좨주(祭酒)를 세 번 역임하면서 이 기관을 대표한 당대 최고의 학자 중 하나였다. 순자의 학문은 당대의 학문적 성과를 종합하면서 자신의 이론적 체계를 세웠다는 점에서 잡가적 특성을 지닌다. 그래서 그의 이론에는 도가의 영향이 보인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인간을 윤리적 관점에서만 이해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선하다’든가 ‘인간이 만물의 중심’이라는 관점을 거부한다. 당대의 윤리학은 ‘자연은 신비로운 존재이며 이 신비로운 자연에 대해 인간 스스로가 행실을 삼가야 하고 그 속에서 윤리가 등장한다’는 이해 방식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순자는 이러한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자연 지배의 군주로 보지도 않고, 자연을 지존의 위치로 격상시키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인간과 자연에 일정한 거리두기를 취하면서 이해하려 했다. 한 편으로는 도가적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묵가적이기도 한, 그러면서 인간의 윤리적 삶을 고찰했다는 면에서 유가적이기도 한 이같은 면모가 그를 당대 학문의 종합자로 파악하게 만든다.

최근의 학설에 의하면 『노자』는 진(秦)나라 말기에 서술된 책이라 한다. 이 시대의 정신은 생존이었다. 서민(소인)에게는 자기 보존이 문제였으며, 주류 계급(군자)에게는 세력 유지가 관심사였다. 『노자』는 이 실용적 시대정신에 호응해 안정적 생존을 가능케 하는 방도를 제시해 준 철학적 체세술이었다. 『노자』 철학에서 생존이란 자연의 전개 법칙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을 인식하고 활용하려는 모든 의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노자 철학의 생태주의는 우주론적 각성에서라기보다는 생존의 요구에 충실하려는 인간적 욕구에서 발생한 것이 된다. 왕필에 의해 해석된 『노자』는 우주론적 관점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백서본(帛書本) 『노자』는 벌어진 상황에 가장 적절하게 처신함으로써 자기 보존을 연장하는 처세술로 해석된다. 이러한 이유로 『노자』가 제왕학, 즉 정치술의 경전으로 활용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황로학은 이렇게 설명된다. 정리해보면 노자류의 도가는 고급 처세술에서 시작해서 왕필에 이르러 생태학적 우주론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천하를 일통하고 그것을 안정적으로 소유하기 위해서 처신해야 할 방략을 제시하는 가운데 가장 통 큰 처세의 이론으로서 도가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연구 성과를 수용하게 되면 장자가 노자를 시대적으로 앞서게 된다. 내용상으로 파악해 봐도 노자의 정신과 장자의 정신은 다르다. 장자는 무정부주의적 정신을 강조하면서 개념화와 문명화에 대한 부정을 제시한다. 노자는 제왕학적 경향성을 지니면서 세상의 변화와 흐름에 적응해 갈 것을 권유한다. 이렇게 볼 때 노장사상을 하나로 합친다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장자와 노자 사이의 질적 상이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기술 지배 시대에 대한 장자의 근본주의적 비판은 『장자』 「천지」, 「대종사」 등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맹자도 기술 지배적 풍조에 비판적이었지만 장자만큼 급진적이지는 않았다. 그는 묵자와 장자를 변증적으로 지양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는 『맹자』의 「고자」 상편에서 이 길을 우 임금의 치수에서 찾아내 ‘行其所無事’로 정식화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생장하는 싹의 힘을 믿고 그 힘에 기대는 동시에 천지의 도움이 잘 이루어지도록 인간의 노동력을 투여하지 않는 계기, 즉 無事의 계기가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종자를 심고, 잡초를 뽑으며, 물을 대고, 퇴비를 주며, 보리를 거둬들이는 인위적 行의 계기가 필요하다. 이 무사와 행의 두 계기가 적절히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맹자는 이 생태적 농사의 원칙을 인성 수양의 원칙으로 삼았다. 『맹자』의 「공손추」 상편의 어리석은 송나라 농부의 이야기는 이런 관점에서 해석된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강의 후기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환경 파괴적 삶을 살아오던 차에 동양의 도가사상을 통해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생태적 삶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도가를 바라보던 시선과는 다른 시선을 접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그런데 장자의 철학은 회의주의적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었나?

멋진 강의였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께 불교 철학 강의를 한 번 추가로 부탁 드리고 싶네요.

여러 사상의 연관성 이야기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맹자 사상 중에 농업철학이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배워서 좋았습니다. 이준모 선생님을 알게 된 것도 큰 기쁨입니다.

생태적 삶을 넘기는커녕 생태적으로 살기도 어렵지 않을까?

삶에 대한 정의를 ‘생태적’이라 한다는 논제 자체가 비생태적일 수 있다는 것을 오늘 강의를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동양의 고전들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안산의 공맹; 친친(親親)의 역설을 통한 이방인과의 소통, 이해, 그리고 연대[한철연 교육강좌]-④

[한철연 교육강좌]-④

안산의 공맹; 친친(親親)의 역설을 통한 이방인과의 소통, 이해, 그리고 연대

 

강사 : 김세서리아(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
후기 :한길석(한철연 교육분과장)

 

 

지난 4월 15일 한철연의 네 번째 교육부 강좌가 김세서리아 회원의 강의와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강의는 제 3강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었다. 기획자의 의도는 상호문화적 상황에 대해 서양과 동양의 윤리학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는 다문화 가정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문화 간 혼인에서 태어난 아이는 매년 4천명에 달하고, 2010년에는 내국인과 외국인 결혼이 10.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1991년에서 2005년 사이에 한국 여성과 외국 남성 간의 결혼이 3배 증가한데 비해,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의 결혼 건수는 50배 증가했다는 데에 있다. 후자의 경우 한국 남성의 결혼 이유는 순종적이고 부모를 잘 모실 것 같은 여성이어서였다고 한다. 이는 문화 간 결혼이 상호문화적 이해와 인정에 의거하기 보다는 종족 보존과 가부장적 가정의 유지라는 유교적 윤리 의식에서 기인함을 반영한다. 전통 유교적 가족 관계에서 혼인은 생물학적 번식과 남녀 분업을 통한 생활 자료의 생산이라는 세속적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풀이된다. 또한 유가에서는 자손 생산을 통해 개별 생명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무한한 삶을 추구했다. 영혼 불멸이라는 초월적 관념 장치가 결여되었던 유가 철학에서 이러한 사고는 세속적 형태의 초월성 추구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개체의 존재는 개인에게 온전히 속하는 것이 될 수 없다. 나의 실존적 의미는 조상 및 후손과의 연관 관계 속에서만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친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윤리적 태도로 이어진다.

김세서리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유교적 윤리 의식은 친친(親親)의 원리에 의거하고 있다. 자신과 친한 이들에게 보다 친밀한 대우를 권고하는 이 의식은 육친을 우선시하는 윤리적 행위를 낳았다. 이는 사회적 정의와 가족적 우애가 갈등을 빚을 때 후자를 우선하게 만드는 일을 초래한다. 양을 훔친 아비를 고발한 아들을 윤리적이지 않다고 책망했던 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정직’이라는 의미에 대한 해석차를 고려해야 한다. 공자와 섭공의 논박을 살펴보자. 섭공에게 정직이란 ‘사실을 객관적으로 고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자에게는 ‘제 마음에 진실하게 임하는 것’을 뜻한다. 객관적 참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지 않는 한 정직의 의미가 온전히 발휘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친친(親親)의 원리가 사회 윤리보다는 가족 윤리에 기울어 사회적 정의의 확산을 가로막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친친(親親)의 원리는 혈연에 의해 친밀하게 이어진 관계에 대해서는 동화를, 그렇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는 배척과 분리로 이어지게 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친족 내의 이질성을 제거하고 남성 가장의 문화를 중심으로 혈연적 동화를 추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친(親親)의 원리가 반드시 가족 이기주의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강조하는 바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윤리적 행위가 진실하다는 점에 있다. 유가 윤리는 ‘인(仁)’의 구현을 강조한다. ‘인(仁)’이란 ‘충서(忠恕)’, 즉 온 마음을 가운데에 모아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같게 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이는 추기급인(推己及人)과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의미한다. 『논어』 「옹야」 편에서는 인(仁)을 ’내가 서고자 하는 곳에 남을 세우고,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 남을 도달케 한다‘는 것으로 풀이해준다. 타인과의 낯선 관계에서 이런 마음이 자주 나타날 리는 없다. 충서(忠恕)의 마음이 가장 잘 우러나오는 관계는 가족 관계에서일 것이다. 가족 관계 속에서 이런 마음을 익숙하게 체화하여 온 공동체로 넓히게 하는 것이 유가적 윤리관의 본래 의도라고 짐작된다.

현대 사회의 가족은 이미 유교적 사회의 그것과는 상이하고도 다양한 형태로 조형되고 있다. 혈연을 중심 고리로 묶이지 않은 가족도 등장하고 있으며, 이질적 문화와 종교 및 가치관을 그대로 지키고자 하는 가족 구성원들도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친친(親親)의 원리도 이에 걸맞게 해석되어야 한다. 과거에 그것은 육친과 혈연적 관계에 방점을 두고 적용되었다면, 현재에 그것은 ‘인(仁)’의 본래 정신을 구현하는 형태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타인의 마음을 섣불리 평가하지 않고 내 마음과 같이 생각해보려고 노력함으로써 이해와 화해를 도모하는 ‘인(仁’)의 정신은 문화 간 갈등 상황에 봉착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일정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4강 후기

한국 사회의 다문화 현상을 친친의 확장 개념을 통해 재해석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상호문화주의에 대한 강의를 연속으로 듣게 되었다. 주제가 최근 한국 현실에 부합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직접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주제였다. 앞으로 상황이 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비단 이주자 문제 뿐 아니라 현재 동료들과도 상호 이해, 차이의 공감 등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도록 개념을 좀 더 확장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번 주의 강의와 이번 주 강의를 들으며 상호문화주의, 차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 같다. 일방적인 동화 또는 이해로 포용하는 것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또다른 것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은 주제였지만, 앞으로 내 생활에 차지하는 면이 클 수 있는 주제에 대해 한번씩 생각해 볼 수 있는 듯 하다.

이번 강의의 주제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구체적 문제를 다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두 번의 다문화 관련 강의에서는 직접 경험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고 대부분 피상적 문제만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혹시 앞으로의 강의에서도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가능하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미리 일주일 전에 문제 제기를 해주시면 더욱 고맙겠다.

다문화주의를 고민하게 된 그 배경에 대해 궁금합니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고민은 전세계적 이슈로 봐야 하지만 먼저 이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금융 제국주의의 문제를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 하에 논의되는 이 모든 문제들이 실제로는 경제 제국주의와 아주 밀접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경제의 획일화가 문화 획일화를 가져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친친의 유의미성에 대한 부분이 이민자, 외국인, 다문화를 수용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지 않아 아쉽다. 유교의 친친의 확장은 결국 나로부터 혈연, 지연, 학연 순으로 나아가는데 그 한계와 부정적 측면이 더 많을 듯 하다.

친친의 편파성과 그것의 도덕적 유의미성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부자 증세가 확실히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친친의 원리에 입각한 나라가 있을까?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미 다문화적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의 인식은 이방인과의 소통과 연대 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 친친의 원리를 극복하기 위한 열린 마음을 가지자.

‘우리’의 범위를 확장하자. ‘다름’은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같음’을 공감하고 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