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회원들의 철학적 책읽기

조화로운 삶-스콧 니어링[청춘의 서재]

조화로운 삶-스콧 니어링[청춘의 서재]

 

박지용(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혁명가의 삶에는 뭔가 공통점이 있다. 노예혁명가 스파르타쿠스, 프랑스 대혁명을 이끈 로베스 피에르, 파리코뮌의 극좌파 블랑키,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전사 체 게바라. 이 외에도 한참을 더 열거할 수 있는 이들 혁명가의 삶에는 혁명을 위한 열정과 저항의 파토스가 있다. 혁명가를 혁명가이게끔 하는 어떤 종류의 뜨거움이 있다. 이들 혁명가의 뜨거움이 대중의 심장을 끓어오르게 하고 진동시킨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몸이 분노로 떨려야 혁명은 일어난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살펴 본 혁명들은 저항하기 힘든, 압도적으로 거대한 체제를 적으로 삼고 있다. 폭력 혁명으로 전복된 체제는 폭력으로 반동화되며 이 과정에서 폭력의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지난한 폭력의 역사는 프랑스 대혁명의 경우 파리코뮌의 몰락까지 근 1세기의 달하는 근대사에서 집약된다.

그런데 전술한 것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가 있다. 이 혁명의 다름은 ‘그게 무슨 혁명이야’라는 반응을 낳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피를 뜨겁게 하지 않는 냉철한 사유의 혁명, 적과 마주대해 무력으로 싸우지 않는 혁명, 그럼에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혁명. 혹시 깊은 산 속에서 일으키는 자아의 혁명을 말하려는 게 아닌가라고 짐짓 의심할 수 있다. 이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는 스콧 니어링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실천에 철두철미했다는 의미에서 그의 삶은 다른 의미에서 혁명적일 수 있다. 이 혁명은 정치체제를 폭력적으로 전복하지는 않으나 체제의 전복을 다르게 실천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체제의 부도덕성에 대한 분노라는 반대급부의 소진적인 감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냉철한 사유와 삶의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작은 혁명에 관한 모범적인 사례이다. 이 혁명은 자본주의적 삶을 거부하고도 삶이 가능하다는 상상력을 현실화시킨 그의 삶 자체이다. 어찌보면 니어링의 삶과 사상은 정치적인 투쟁이나 분노의 파토스와는 거리가 멀다. 비록 그가 미국 좌파 운동에 깊숙이 관여했을지라도 그의 학문적인 성찰이나 계획에 대한 집착은 혁명적 파토스와는 다른 대조적인 모습이다.

자본주의가 수탈하는 인간의 삶과 자연의 가치를 조화시키고 복원시키기 위하여 그가 선택한 것은 자연에 기초한 삶이었다. 노동에 대한 철저한 계획과 자연에 대한 신뢰와 지식이 있다면 삶은 더욱 풍요로울 수 있다는 점을 그는 20년 동안의 전원생활을 통해 보여준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계획과 연구의 필요성은 자손대대로 농부로 살아온 이웃과의 대조에서 잘 드러난다. 이웃들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일하지만 어설픈 농부인 니어링보다도 못한 결실을 낳는다. 계획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관성대로 살아온 삶을 살게 되지만, 삶과 일을 계획하고 통제할 경우 더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된다는 교훈이 남는다. 물론 이러한 보편적인 행위 원칙들은 전원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 혁명운동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점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대도시에서의 정치 투쟁을 포기하고, 전원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한 그들의 삶이 혁명에 대한 발상의 새로움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버몬트의 전원생활에서 니어링 부부가 추구한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생활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농사를 짓고 작물을 키우는 목적은 자본축적이 아닌 단순히 먹고 사는 데 있었다. 이윤이 없는 생활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을까?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은 어찌보면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농사를 지어서 전혀 남는 것이 없는 바는 아닐테지만 남겨서 돈을 모아두고 그 돈으로 또 뭔가를 해서 또 남기고 하는 식의 사고방식은 자본주의적 삶의 태도이자 생활 습관일 따름이다. 이렇듯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또 이 감정을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치부하면서 불안을 벗어나려는 축적의 몸부림에 허덕인다.

그런데 니어링은, 마치 성경의 한 대목처럼 ‘자연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라는 배포 큰 태도를 보인다. 사실 우리 주변의 모습을 볼 때, 불안한 삶을 더욱 불안하게 느끼게 하고 또 달래주는 것이 모두 그로부터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은퇴 후의 삶? 실직 후의 삶? 미리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불안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비하고 또 축적해야 한다는 외침은 실상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을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불안한 삶에 대한 위안은 자본의 축적과 투자로만 달래질 수 있지만 그도 녹록치는 않다.

20년의 삶 동안 니어링 부부는 스스로의 자기평가 속에서 그들의 선택이 정당했다는 점과 이러한 실천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삶이 극복될 수 있음을 말한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삶의 부정성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농업공동체는 니어링의 제안에 따라 그 영향력이 커져갔다. 대안이라는 말 자체는 제한적인 가치를 갖는다. 말 그대로 대안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혁명가가 목가적 전원생활에 도취한 것일 뿐이라거나, 혁명의 의미를 부정하고 자신의 삶을 정당화시킨 혁명의 변절자라고 섣불리 재단해서는 곤란하다. 성공적으로 제시된 대안은 또 다른 대안의 가능성으로 확산될 수 있다.

자본주의는 극복 가능한 것인가? 이 질문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정작 자본주의적 삶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그러한 삶의 가능성에 대해 다수의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해 보인다. 다른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으로서, 하나의 대안적 사례로서 니어링의 삶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작은 혁명인 것이다. 실상 두려운 것이 자본주의 이후의 삶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상실감 혹은 공허감은 아닌가. 니어링은 도시를 떠나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보험과 저축이 없어도 삶은 만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체질적으로 충돌을 통한 돌파보다 우회함을 선호하는 성격들이 있다. 혁명에 대한 열정보다는 냉철한 분석과 진단을 선호하는 경향들도 각기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목표는 같으며, 그들이 공유하는 적대전선은 자본주의이다.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농촌에 가서 살아볼까라는 생각에 그치지 말고, 니어링이 전해주는 사례를 예시로 삼아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청춘들의 성공적인 연애를 위한 추천서[청춘의 서재]

청춘들의 성공적인 연애를 위한 추천서,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와 기든스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이지영(광운대 강사)

 

 

 

길거리를 거닐거나, 요즘 유행하는 커피 전문점에서 차 한잔을 마시거나 캠퍼스를 지나갈 때 서로 손을 꼭 잡고 있거나 머리를 맞대고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청춘들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에로스로서의 사랑은 분명 청춘만의 특권이다. 예컨대 우리 사회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이전까지의 사랑은 사실상 불법이다. 중고등 학생의 신분에 있는 이들의 연애는 기성 세대의 눈에는 아직도 금지의 대상이다. 암묵적인 합의이긴 하지만 연애 상대로서의 짝 만들기는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결혼 이전까지만 사회에서 환영받으며 허용된다. 10대의 사랑은 학업과 미래에 치명적으로 방해가 되는 일, 소위 싹수가 노란 아이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금지되고 기혼자의 사랑은 실제로 불법이다. 결혼 서약은 법의 이름으로 보호되며, 기혼자의 사랑은 그러한 법을 위반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랑이 막 사회로 진출한 20대가 주로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인 까닭이다. 청춘들이 사랑에 빠진 모습은 보기에 좋고, 달콤하게 느껴지지만 ‘사랑하기’가 그렇게 녹록하지 않은 일이란 사실은 한두 번만 연애를 해봐도 알게된다. 즉 사랑은 애틋하고 달콤하지만 동시에 혼란스럽고 쓰디쓴 것이다.

 

‘에로스’를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과 연애 경험담에 대해 글을 쓰게 한다. 짧은 에세이에서 이십 대 초중반 나이 대의 청춘들은 대체로 상대를 통해 정신적인 평화와 안식을 얻는 것을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으로 생각하며,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것보다는 잔잔하고 로맨틱한 사랑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상대에게 잘 해주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청춘들 또한 많다. 하지만 한 눈에 매료된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리는 것도, 상대의 마음을 얻어내는 것도 모두 어렵다. 게다가 설사 짝 만들기에 성공하더라도 사랑에 빠진 이들의 설레임과 상대에 대한 집중력은 서서히 줄어들기 마련이다. 또 운명적 만남임을 증명하는 듯했던 마음의 일치는 불일치로 변화하며 이는 상호 불신과 불만으로 이어지기 쉽다. 예전 같지 않은 태도에 연인의 마음이 변한 것 같아 섭섭하다, 또 변하지 않으면 않는 대로 편집증, 스토커 같아 답답하고 내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연애

 
파이드로스 표지

초기의 두 사람의 마음의 일치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개성의 자연스러운 일치에서 온다기 보단,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전략적(?) 양보와 희생을 바탕으로 서로에 대한 헌신에 의해 이루어진 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춘의 연애 사업이 흔히 반복되는 실패, 실연으로 점철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즉 청춘의 연애 사업은 힘들고 괴롭다.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마음이 단지 외사랑의 가슴앓이로 끝나 괴롭고, 상대의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아 힘들고, 상대의 사랑이 도에 넘치는 집착인 듯해서 두렵고, 잘 맞는 줄 알았던 서로의 생각이 달라서 문제가 된다. 생각이 이런 문제에까지 미치면 사랑이 과연 마음의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로맨틱한 일인지, 과연 아름답기는 한 일인지 의문스럽다.

 

물론, 사랑은 분명 아름다울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이란 짝을 찾고, 그러기 위해 이성 교제를 전폭적으로 허용 받은 청춘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마음의 진솔함, 진심, 헌신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물론 사랑은 무엇보다도 마음의 문제이다. 그러나 사랑은 분명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상호 작용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 사회적으로 규제되는 것이기도 하며 이러한 규제의 대상에는 사랑하는 이들의 행위와 마음의 형식 또한 포함된다. 모든 사회는 구성원들의 정신과 행위, 생활 양식을 인위적으로 규제하려고 드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각자 변화무쌍한 마음을 가진 서로 다른 개성의 소유자들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직,간접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라나고 살아가는 이상 사랑은 그냥 진실된 마음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연구와 공부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이며, 왜 우리의 사랑은 관념 안에서의 이상적 사랑의 모습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그토록 많은 갈등과 문제를 불러일으키는지, 아름다운 사랑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등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여기 아름다운 사랑과 인생을 위해 두 권의 책을 일독하기 권하며, 간단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사랑 공부의 첫 걸음으로 플라톤의 『파이드로스』 만한 것도 없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는 연애학의 고전으로 불릴만하다. 이 책의 반에 가까운 분량이 사랑하는 이의 악덕, 즉 연애의 부작용 분석으로 채워져 있다. 사랑에 빠진 이는 연인의 모든 것을 독점하고자 하며 자신을 떠나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신 외의 것에 관심을 두어 그것을 탐구하고 연마하는 것을 싫어하고, 연인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들을 만나는 것도 못 마땅해 한다. 즉 말하자면 연애는 무엇보다도 상대의 발전과 전인격적 성숙의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실컷 상대의 독립과 발전을 가로막다가 더 이상 연인에게 매력을 못 느끼게 되면 이별을 궁리하며 헤어지고 그때부터 갑자기 태도가 돌변, 그동안 자신이 상대에게 준 것들을 아까워하며 후회할 뿐더러 사람을 잘 못 본 자신의 무지를 탓하고 상대를 비난하기 일쑤이다. 이와 같이 사랑에 빠진 이들의 부덕함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을 읽다보면 이 책을 같이 읽은 대부분의 청춘들의 표정이 굳는다, 한두 번 쯤 연애를 경험 해본 이들 중 이러한 플라톤의 분석이 틀렸다고 부정할 수 있는 이들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비난하는 사랑하는 이의 부덕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인 것이다.

 
앤서니 기든스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플라톤은 이런 사랑의 모습을 뛰어 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플라톤이 정의한 사랑을 시적으로 풀이해보자면 에로스로서의 사랑이란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이다. 상대에게서 발견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곧 사랑이다. 당신이 사랑에 빠졌다면 그것은 상대에게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표면적인 것, 신체적인 것에 머물러 있으면 사랑의 부작용, 부덕함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고 그러한 사랑은 상대와 자신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고전주의자 중의 고전주의자인 플라톤의 해법은 당신이 발견한 아름다움 너머,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껴지는 그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안 변하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하란 것이다. 그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머물러 단지 그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고 소유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가 가진 비신체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러한 비신체적 아름다움을 아끼며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영혼과 영혼이 결합하게 되면 설사 둘이 헤어지게 되더라도 신체는 비록 멀어지되 서로의 영혼은 영원히 결합한 채로 남게 되리란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이들의 행태와 문제에 대한 플라톤의 분석은 매우 날카로우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깨우침을 준다. 하지만 그 해법과 결론은 범상한 우리들이 따라가기엔 매우 어려운 것 아닌가. 나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그 따듯함을 느껴보고 싶을 뿐 아니라, 그의 앞날을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 그 사람의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신체적, 정신적 욕망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사람의 발전에 헌신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름다운 사랑에 일정 정도의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단 것은 사실일 테지만 어느 한 측면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현대인들의 기본 정서와 가치관에 부적합하다. 그렇다, 강물만 멈추면 썩는 것이 아니다. 탐구 및 연구 또한 멈추면 고리타분해지고 시대에 부적합한 것이 된다. 이때 필요한 책이 기든슨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이다. 기든슨은 이 책에서 사랑이 진실한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당한 일임을 보여준다. 이 글의 첫 부분에서 말했듯이 사랑과 연애, 결혼 등등의 모든 것이 사실은 시대적인 것이자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기든슨은 소설 등에 나타나는 사랑의 행태 뿐 아니라 풍부한 사회학적 데이터들을 전거로 들면서 시대와 사회가 어떻게 우리의 사랑의 모습에 영향을 미쳐왔는가를 분석한다. 예컨대, 근대 이전까지 남녀 간의 평범한 결혼과 그 유지에 사랑의 요소는 거의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데 자유 연애 자체가 부정된 시기였을 뿐더러, 사랑보다는 생존이 더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럴 듯한가? 우리 시대에 사랑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성 혁명을 가능하게 한 과학 기술의 발전, 폭 넓은 사회적 자유의 허용,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향상 등에 힘 입은 바가 큰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적인 남녀 간의 사랑과 결합을 위한 해법에 대해 기든슨은 여성들 보다는 남성들이 더 위기일뿐더러 남자들이 더 할 일이 많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 사랑은 더 이상 제도적인 것도 아니고, 어느 일방의 희생에 의해 가능할 수도 없다. 사랑은 남녀 간의 상호적 소통을 전재로 하는 것이자, 함께 둘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자신의 개인사를 재구성하는 능력과 자신의 이야기와 정서를 표현하는 능력인데, 사회에서 요구되고 부과된 교육 방식의 차이로 인해 이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의 마음을 수용하는 과정인 것이다. 사랑이 필요한가?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은가? 청춘이여, 공부하고 노력하라! 자신을 알고, 상대를 알게 됨으로써 상대를 더욱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함께 아름다운 사랑과 생을 만들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 땅이 아니니 어찌 오래 머무를 수 있겠는가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원진호 (책익는 마을 회원 / 원진호내과 원장)

 

얼마 전 중국의 철학자 펑유란의 <펑유란 자서전>(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읽었다. 번역자 가운데 한 사람은, 이 책을 번역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동양철학에 입문하게 된 것도 이 분 때문이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고 한다. 요즘 책익는 마을에서 <노자도덕경> 공부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강의자가 이 책의 역자이기도 하여 권하기에 뜻에 따라 행동에 옮긴다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천수를 누린 중국 철학자 펑유란

펑유란은 1895년에 태어나서 1990년에 사망하였다. 96세의 천수를 누렸다. 그 분에 대한 평가는 그의 묘비명을 보면 알 수 있다.

‘삼사에서 고금의 철학을 해석하고, 육서로 신리학의 체계를 세웠다.’

삼사와 육서는 이 분의 저작물로 삼사는 <중국철학소사>, <중국철학사>, <중국철학사신편>이고, 육서는 36년에서 48년 동안의 항일전쟁시기에 쓴 정원육서를 말한다. 삼사는 철학사 학자로서 “따라서 설명하는 것(照着講)” 이었고 정원육서는 철학자로서 “이어서 설명하는 것(接着講)”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신리학은 펑유란의 사상체계를 통칭하는 것이라 한다.

펑유란은 지금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중학과정 시절에 논리학에 흥미를 갖으면서 자연스럽게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문과 특히 철학은 인기도 없고 돈도 안 되는 학문인가 보다. 베이징대학 입시원서를 받는 안내원이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한 걸 보면 말이다. 어떻든 그는 베이징대학 철학과에 1915년에 입학하고 1919년에 컬럼비아대학원으로 유학을 가 죤 듀이의 문하에서 철학을 연구한다.

 

왜 중국은 서구에 비해 근대화가 뒤쳐졌는가?

펑유란의 초창기 철학적 고민의 출발은 ‘왜 중국은 서구에 비해 근대화가 뒤쳐졌는가?’였다. 중국이 왜 서양보다 뒤쳐졌는가 하면 당시 보통의 논리는 이렇다. 우선은 중국이 서양에 비해 과학과 기술이 뒤떨어졌기 때문이고 그것은 자연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양은 자연을 관찰의 대상으로 보았고 탐구하고 극복할 과제로 여겼다. 이 과정에서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은 행복은 맘에서 구하는 것이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고 자연은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합일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자연을 극복하고 개조하는 분야가 발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의 차이가 중국이 당시에 발전하지 못한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차이가 동양과 서양의 본질적 차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서양에서도 정신문명을 중시하는 태도가 있고 동양에서도 물질문명을 중시하는 관점이 있다는 것이다. 즉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본성은 본디 같은 것이고 사상도 모두 같다고 펑유란은 보고 있다. 이 논증을 그는 그의 박사논문에 쓰고 나중에 <인생철학>이라는 책에 싣는다. 이 책에서 그는 세상의 주요 사상들을 개괄하면서 총 열 개의 유파로 나누었다. 그는 사람이 경험하는 것은 천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으로 나뉜다고 보고 어느 쪽이 좋고 나쁜가, 어느 쪽을 더 중시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따라 유파들을 나누었다. 이 분류에서 동서양 사상이 근본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옛 것과 새 것의 차이라고 본다. 서양은 산업혁명과 과학의 발전을 통해 새 것인 사회로 진화되면서 물질문명적인 문화가 주도적인 것이 되고, 중국은 헌 것에 머물면서 새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정신문명이 주도적인 체 남아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근대화가 되면 중국에도 옛 것과 다른 근대철학이 발전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중국철학사의 구분: 자학(子學) 시대와 경학(經學) 시대

근대화라는 것이 서구를 따라 가는 것이긴 하지만 똑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반봉건반제국주의 입장에서 중국의 근대화를 고민하였고, 중국 철학사를 집필하면서 옛것에서 새것을 발견하고 중국고유의 사상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유물론자가 아니라 신실재론과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유심론자였다. 이 때문에 중국공산혁명이후 많은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마오쩌둥의 깊은 신뢰를 얻는 중국의 대표적인 철학자가 되었다.

펑유란은 중국철학사를 자학(子學)시대와 경학(經學)시대로 나누었다. 춘추전국시대인 子學時代는 지존이 없이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평등하게 각 학파가 논쟁을 벌였던 시기이다. 이렇게 백가쟁명의 시대가 되었던 사회적 배경은 당시 통치를 담당했던 귀족이 쇠락하고 원래 있던 사회규범이 붕괴하고(禮崩樂壞), 사회제도가 해체된다.(天下無道) 당시 귀족을 위해 봉사했던 지식인 무리들이 원래의 자리를 잃고 민간으로 흘러든다. 이들은 귀족세력의 최하층을 이루었지만 사민(四民)의 으뜸이 된다. 그들은 지식을 생산하고 팔면서 생계를 도모하고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런 것이 발전하여 학파를 이루고 백가쟁명의 국면을 이루게 된다고 하였다. 경학시대는 유교가 지존이 되고 세상을 지배하는 규범이 되면서 경직된 사회체제를 형성했다고 한다. 그는 중국철학이 계승해야할 시대로 자학시대를 꼽았다.

 

신리학: 보편과 특수

그의 철학체계인 신리학은 보편과 특수에 대하여 논한 것이다. 그의 핵심 주장은 ‘리’(理)가 사물 속에 있다는 것, 즉 보편이 특수 속에 깃들여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설명하면 이렇다. 사물의 보편과 그 사물은 있으면서 같이 있고 없으면 같이 없는 것이다. 사물의 특수는 감각의 대상이며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사물의 보편은 사유의 대상이며 실험실 속에서 그런 보편을 추상해 낼 수 없다. 이를 개념화 하면 ‘구체적 보편’이라 한다. 구체적 보편의 내포는 ‘리’이고 외연은 ‘사물’이다. 리와 사물, 내포와 외연은 원래 함께 있다. 사람의 사유가 그것들을 분석할 때 분별되고 대립되는 것으로 드러날 뿐이다. 이것은 인식의 문제이지 존재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은 이 두 분야를 헷갈려 해서 이의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리’란 사람의 사유가 추상의 방법을 통해 사물로부터 분석해 낸 것일 뿐이고 굳이 존재의 측면에서 이야기한다면 ‘리’는 사물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리는 사물이고 사물은 곧 리라고 할 수 있다.

 

항일 전쟁시기 시난연합대학의 교편생활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파란만장한 중국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다. 그는 5.4운동을 뒤로 하고 미국 유학을 가서 1923년에 중국으로 되돌아와 허난성 중저우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다. 그는 자신이 안심입명(安心立命)할 곳을 찾아 베이징 옌징 대학으로 옮기고 28년 칭화 대학으로 옮겨 대학의 개혁에 참여 한다. 33년 휴식년에는 유럽을 여행하고 당시 공산혁명에 성공한 소련을 방문한다. 당시 중국은 항일전쟁시기에 접어들고 그는 38년부터 45년까지 피난처인 시난연합 대학에서 교편생활을 이어간다. 당시 국민당 정부 하에 있었는데 갈수록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항일전쟁과 관련하여 대학과 학생이 정부와 대립하는 일이 많아진다. 44년 12월1일에는 급기야 수류탄 피폭에 의해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펑유란은 교직을 맡고 있는 위치에서 당시 권위를 갖고 있는 교수회의를 통해 이 사태를 수습한다. 그는 강경파와 보수파의 주장을 둘 다 만족시키지 못했으나 그래도 파국을 막은 것으로 스스로 자위를 한다.

 

비록 좋다고 해도 내 땅이 아니니, 어찌 오래 머무를 수 있겠는가

중국이 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그해 9월에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간다. 중국이 혁명의 혼란 속에 빠져 들자 그의 미국인 친구들은 미국에 눌러 있기를 권고한다. 그는 왕찬의 등부루에 나오는 문구 “비록 좋다고 해도 내 땅이 아니니, 어찌 오래 머무를 수 있겠는가”(雖信美而非吾土ㅁ, 夫胡可以久留.)를 인용하며 48년 중국으로 돌아온다. 펑유란은 자신은 반동중국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자신의 나라를 제대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중국 공산정권하에서 철학자로 살아가기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 그는 끊임없이 자기부정과 사상개조를 해 나간다. 이 점에 있어 자서전에는 매우 솔직한 자기 평가가 기록되어 있다. 그는 <주역>의 건괘 문언전의 “글을 지어 진실함을 세운다”(修辭立基誠.)를 인용하면서 지식인의 글쓰기 원칙을 이야기 하면서 자신이 정녕 그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 한다. 그는 73년 林彪비판운동에서 공자비판운동으로 전환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러한 행동이 진실된 대중노선에 따른 것인지 군중에 영합하기 위해서 행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한다. 그 선(線)은 진실함(誠)과 거짓(僞)에 의해 나뉠 것인데 당시 자신은 마오 주석과 당 중앙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부정하고 비판하면서 일보 전진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실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지 못한 점, 자신이 더 받들어진다는 것에 대한 기쁜 마음도 있어 이는 군중에 영합한 측면이 있었다고 진솔하게 이야기 한다.

52년 중국당국이 대학의 모든 철학과를 없애고 베이징대학만 남겨두는 조치를 취하자 베이징대학으로 옮겨 간다. 여기에서 그는 문화대혁명을 겪게 되는데 홍위병들의 지식인 탄압으로 시련을 겪는다. 책에는 이 상황이 담담히 서술되어 있지만 문화대혁명의 상황이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상당히 심한 극좌적 횡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도 살아나는 중국을 보면 참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펑유란의 학문적 자세

그의 학문적 자세는 어떠했을까? 그는 시경에 나오는 말 “주가 비록 오랜 나라이지만 그 사명은 새롭다”(周雖舊邦,其命維新.) 라는 문구를 인용하면서 오래된 나라의 정체성과 개성을 지니면서도 새로운 사명의 실현을 앞당기는 데 일조하고자 했다. 이러했기에 보수파와 진보파 둘 사이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주관대로 삶을 살아왔다고 이야기 한다.

후배 학자들에게 그는 무슨 말을 남길까? 그는 “불이 옮겨 가니 꺼질 줄을 모른다”(火傳也, 不知其盡也.) 라는 문구를 인용한다. ‘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축적한 지식은 진리의 불꽃이라 그 연료를 끊임없이 대 주어야 계속 연소되고 이어질 수 있다. 그 역할을 한 이들이 철학자요 시인, 문학가, 예술가, 학자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연료삼아 피를 토하듯이 저작물들을 남겨 왔고 또한 본인도 그렇게 하려 했다고 한다. 후대에 남기는 저작물을 쓰는 각오는 이러 해야 한다. “누에는 죽어서야 실을 더 뽑지 않고, 초는 재가 되어서야 촛농이 마른다.” 즉 누에는 생명을 바쳐 실을 토해내고 초는 목숨을 다하여 빛을 내는 것처럼 분투하며 살 것을 당부하는 듯하다.

 

위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를 성찰하기 위한 것이다.

책을 덮으며 책의 겉면에 있는 펑유란의 초상화를 들여다본다. 청말 민국 초에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내고 중국공산혁명을 보았으며 그 정권하에서 유심론 철학자로 살아왔던 그. 그의 백년의 삶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중화민족에 대한 자부심, 사람은 모두 같다는 평등의식, 여행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 학자로서의 성찰과 분투, 삶에 대한 소박함, 낙관성 그리고 솔직함을 그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 현실에 적응하는 현실주의와 타협주의가 느껴지기도 했고 그의 언행에서 중국 중심의 문화주의 냄새가 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수차례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지조 있는 지식인의 삶을 포기 하지 않았던 우리나라 이영희 선생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알아 가는 것은 내게는 매우 유익하다. 반면교사다. 그들의 삶을 통해 나 자신을 성찰하는 것, 이 책이 나에게 주는 의미이다. 가슴에 듬직한 뭔가를 얻은 느낌을 간직한 채 책을 책장에 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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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펑유란 지음, <펑유란 자서전>(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 관한 원진호(책익는 마을 회원/원진호내과원장) 님의 글입니다.

 

그게 과연 인류의 훌륭한 유물일까?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임명옥 (책익는 마을 주민)

 

런던의 대영박물관

4년 전에 나는 런던에 한 달 동안 머문 적이 있었다. 엄마와 아이와 나까지 세 여자가 짐을 꾸려 남동생 가족이 사는 런던에 갔던 것이다. 엄마는 아들이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해 하셨고, 나는 당시 5학년이었던 아이에게 이국적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고, 나 자신에게는 내가 여태까지 배우고 누려 왔던 서구 문물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런던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은 거의 다 돌아봤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대영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문화유산이었고, 그 곳에 전시된 유물은 너무나 많고도 흥미진진했다. 이집트 관에는 로제타석을 비롯한 미이라와 석상, 오천 년 전에 만들어진 그림 문자 히에로클리프가 전시되어 있었고, 앗시리아 관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만들어낸 쐐기문자와 돌로 조각한 벽화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그리스 관에는 네레이드 신전을 그대로 옮겨 놓은 아름다운 이오니아식 기둥과 살아 움직이는 듯한 대리석 조각들이 이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와 장엄함과 생동감을 뿜어 내고 있었다.

그 밖에도 그리스 로마, 이슬람, 중세 유럽, 동남아시아와 한국, 일본, 중국, 아프리카에 걸쳐 옛 시대의 유물들이 석상과 도자기, 타일과 모자이크, 벽화와 그림 등의 형태로 남아서 박물관을 견학하는 많은 이들에게 인류가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나는 이 박물관을 네 번 찾아 갔는데, 갈 때마다 이전에는 보지 못 했던 새로운 유물들이 눈에 띄어 보고 또 봐도 재미가 있고 흥미로웠다.

 

런던의 내셔널갤러리

두 번째로 좋았던 곳이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였다. 이 미술관 역시 건물 자체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웅장함과 장엄함을 띠고 있었는데, 그림의 규모는 자그마치 2,300여 점이고, 그것도 13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인류의 문화를 빛낸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다. 나는 이 미술관을 런던에 있는 동안 세 번 방문했는데,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몇 번이고 몇 시간이고 구경하다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흐 그림은 7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는 고흐의 ‘해바라기’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노란색 유화 물감이 한 잎 한 잎 해바라기 잎이 되어 액자 속에서 꿈틀거리는 붓터치가 마치 고흐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비극적인 삶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렘브란트 그림 중에서는 그의 자화상 두 점이 인상적이었다. 젊었을 때의 자신만만하고 부유했던 모습과 나이 들어서 가난해지고 인생살이에 지친 모습이 그려진 대조적인 두 그림이 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자꾸만 찾게 되는 그림이었다. 루벤스의 그림은 그리스 신화나 고대 로마 시대의 역사적인 사건, 성경에 나오는 내용들을 그린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이 나를 매혹시켰다. 거대한 그림의 크기가 주는 웅장함과 그림의 내용에서 상상되는 이야기가 생동감과 화려함에 더해져 나는 루벤스 방에서 편안한 소파에 앉아 시대를 거슬러 올라 살아 숨쉬고 있는 듯한 그의 그림을 넋을 잃고 감상하곤 했었다.

 

웨스터민스터 사원

그리고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비롯한 솔즈베리 성당과 성 폴 성당이 있다. 우리 나라의 문화 유산이 불교의 영향으로 절집이 많은 것에 비해 서양 건축 문화의 원동력은 단연코 성당이라 할 것이다.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은 웨스터민스터다. 천 년 정도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영국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치루는 장엄함과 화려함을 함께 갖춘 곳이며 뉴턴이나 세익스피어, 엘리자베스 1세와 같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의 외양을 볼 것 같으면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 양식의 첨탑이 건물 꼭대기를 균형 있게 장식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과 함께 숙연함이 느껴지게 만들고, 사원 정문에는 성인들을 돌로 새긴 부조가 가득 해서 섬세함과 미려함이 조화를 이루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내부 역시 신의 영광을 찬미하고 숭배하기 위한 아름다운 장식과 석조물들로 가득하다. 가운데는 예배를 보는 장소이고, 양 옆으로는 옛 시대 영국의 위엄과 발전을 이룬 유명인들의 관이 전시되어 있다. 전체적인 건물 분위기는 몇 백 년 전 돌의 느낌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전통이 살아 숨쉬는 듯한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나는 사실 영국인들이 만들어 놓은 빅벤이나 성당들, 박물관과 미술관을 보고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들이 부를 적나라하게 과시하는 것 같아 시샘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 고대 이집트나 앗시리아, 그리스 로마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침략자의 자기 과시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런던에서 산다면 인류가 남긴 문화유산을 마음껏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부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것 때문에라도 나는 런던이 마음에 들었고, 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는 도시였다.

 

훌륭한 문화유산은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나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을 읽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널리 소개하고 대중화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이다. 저자를 통해 나 역시 우리 문화에 대해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전 국토를 박물관이라 생각하고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삶과 서양 문물에 익숙하고 서양식 교육에 전염되어 우리 것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태도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어려서 나는 공교육을 통해 민요나 아악보다 성악이나 기악곡을 더 많이 배웠고, 단원이나 혜원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를 더 많이 접했다. 이황이나 이이의 철학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더 자세하게 배웠으며, 홍대용이나 정약용보다 뉴턴이나 다윈과 같은 과학자에 대해 더 상세하게 배웠다. 또한 초가집과 기와집은 불편해 하고 양옥이나 아파트의 편리성에 더 일찍 눈을 떴다. 서양식 합리주의와 효율성에 힘입어 우리 문화는 불편하고 고루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어 관심은 그저 서양의 역사와 문화, 서양 것에 대한 호기심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내가 배워온 서양 문화의 원류를 찾아보고 싶어 런던에 갔었고, 나의 지식과 생각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근원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의 문화유산이 한없이 부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많이 불편했다. 서양의 박물관이라는 것이 대부분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식민지 삼아 부를 축적하고, 그를 기반으로 남의 나라 유물을 약탈해 오거나 도둑질 해 온 결과물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나는 그들의 문화적 유산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 크고 화려하고 장엄하고 사치스러운 게 도적질의 결과라면,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소박하고 검박하며 질박한 문화유산이 훨씬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장엄하고 웅장하며,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 주눅 들게 만드는 서양의 건축물보다 단아하고 고상하며 자연친화적인 우리의 건축물이 훨씬 더 인간적일런지도 모르겠다.

훌륭하다고 평가 받는 인류의 문화유산이 일반 백성들의 고혈 속에서 혹은 식민지 백성들의 힘겨운 시름 속에서 탄생했다면 그게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나는 생각해 본다. 무조건 크고 높고 거대하게 짓는 건축물들이 후세 사람들의 눈요기 거리가 되기 위해 혹은 그 당시 지배 계층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고통으로 물들인다면 그건 과연 인류의 훌륭한 유물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잃어버린 보물찾기

저자가 140여 쪽을 할애해 설명한 경복궁에 대해서도 장엄함이나 웅장함보다는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의 건축물은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경복궁뿐만 아니라 순천 선암사에 대해서, 거창의 서원과 정자들에 대해서, 부여의 유물과 유적지에 대해서 산뜻한 비유적 표현과 깔끔한 문장으로 읽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식당 아주머니들,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소박한 이야기까지 담아내고 있다. 문화유산은 유형적인 것도 있겠지만, 무형적인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땀내와 유머와 노동과 놀이에서도 찾을 수 있겠다 싶은 저자의 의도가 행간에서 읽히는 것 같아 나는 사람들과 저자의 만남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경복궁을 여러 번 가 보았지만 여태껏 나는 근정전 어좌 뒤의 병풍에 일월오악도가 그려진 지도 몰랐고, 월대에 석견이 조각되어 있는 줄도 몰랐다. 영재교에 천록이 있어 메롱,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줄은 더더구나 몰랐다. 저자의 말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다음 번 경복궁에 갈 때는 좀 더 자세히 궁을 보고 보인 만큼 많이 느꼈으면 싶다.

더구나 내가 사는 고장 보령의 유적지 성주사터와 가까이에 있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절집 무량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에게 기쁨이었다. 전통 문화에 대한 어떤 분위기도 느끼지 못 하고 사는 나에게 성주사터와 무량사의 5층 석탑과 극락전은 보물찾기처럼 내가 잃어버리고 사는 나의 정체성이 생각날 때마다 들춰 보며 찾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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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유홍준 지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작과 비평 펴냄>에 관한 임명옥 책익는 마을 회원의 글입니다.

똥구멍이 항문이 되면 병이 낫는다? [청춘의 서재]

– 에펠리 하우오파의 『엉덩이에 입맞춤을』(서남희 옮김, 들녘)

윤은주(숭실대)

소통을 가로막는 낯선 글자들

언젠가 교정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을 하나 보았다. “교무처장님, 뭥미?” 난생 처음 보는 글자가 주는 당황스러움,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나중에 학생들에게 물어물어 알아보니 대충 “교무처장님 뭐하는 것입니까?”라는 뜻이었다. 나름 신세대적 사고를 한다고 우겨대는 나도 그 뜻을 알 수 없었는데, 하물며 연배가 높은 교무처장님이 저 글자의 뜻을 이해하셨을까? 질문이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알 수 있게 써야 할 것은, 더구나 글이란 상대와 소통을 하기 위해 쓰는 것인데,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쓰면 그건 글이 아니라 그저 해석할 수 없는 외계어일 뿐이다. 대화를 시도하려는 의도였다면 현수막에 그런 외계어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 “뭥미?”, 그것은 “나는 당신과 소통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거부의 의미를 담은 음절들의 나열일 뿐이다. 물론 “그런 쉬운 단어도 모르세요?”라며 학생들이 세대 차이를 들어 한 마디 거든다면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자기들의 생각을 전달하고자 한다면, 소통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닌가? 문득 뭐든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의 위대함이 떠올랐다. 우리말이 그리 대단한 글인가?

최근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한글 창제와 그 반포를 둘러싸고 세종 이도와 성리학 대표인 밀본 정기준 사이의 갈등과 쟁투를 보여주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그것이다. 신하들 앞에서 마구잡이로 상소리를 해대는 세종의 모습은 광화문 광장에서 근엄하게 우리를 보고 계신 그 분이 아닌 다른 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상소리를 하는 임금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글을 반나절 만에 깨우치고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적어 내려가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글자라고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던 평민이나 천민 계층의 사람들이 쓱쓱 한글로 자기 생각을 써내려가는 모습이란 과히 놀라움의 극치이다. 아, 언어 수학 능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위대한 조상님들이여! 요즘 아이들도 이런저런 학습지에 이야기책으로 한글을 깨치는데 꽤 긴 시간과 노력이 든다고 하는데, 그리 쉽게 익히고 사용하다니. 조상님들이 뛰어난 것일까, 우리가 어리석은 것일까, 그것도 아님 그만큼 한글이 쉬 배울 수 있게 만들어진 우수한 글자였던가?

뭐든 소리 나는 것이라면 다 적을 수 있게 너무 잘 만들어진 한글 덕에 ‘뭥미’라는 글자가 나왔을 수도 있으리라. 요즘 신세대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듣거나 보고 있으면 해괴망측한 것들도 있으나 그 모든 것들을 쉽게 적어낼 수 있는 한글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뛰어난 한글 덕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수히 많은 단어들이 새로 생겨날 것이며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갈 것이다. 다만 그 단어가 모두가 받아들일 만큼의 소통어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자리가 잡힐 때까지는 말 그대로 “뭥미?”하며 의사 불통의 시간을 한참동안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불통의 시간, 그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다. 이 글자적 혼란스러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까?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이다.

똥구멍과 항문의 차이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글자가 그저 소통의 도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기본 줄거리는 한글을 반포하려는 세종과 그것을 막으려는 성리학자들 간의 갈등이다. 성리학자들은 왜 한글 반포를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것일까? 그것은 글자가 가져다주는 권력을 피지배 계층과 나눠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글자를 독점하면 권력이 된다. 즉 글자를 알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만이 권력을 점할 수 있다. 문민의 나라, 이 땅에서 글자를 안다는 것은 힘을 가진다는 것이며,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라틴어 미사를 고집하였던 것을 기억해보자.

글자는 곧 권력이다. 그래서 글자를 누가 어떻게 알고 쓰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글자는 권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적 영역에서 글자는 권력을 독점하는 기제가 되지만 사적 영역에 들어서면 자신을 지키는 기제가 된다. 더구나 글자는 신성한 그 무엇으로 신성시하여 높이 받들면 삶의 고통을 치유하는 약이 되기도 한다. 이제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권력은 알겠는데, 약이라니?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치유의 능력을 가진 글자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무슨 소설? 바로 에펠리 하우오파의 소설 『엉덩이에 입맞춤을』이다. 아, 위대한 글자의 힘이여!

『엉덩이에 입맞춤을』은 파푸아뉴기니 출신으로 피지에서 인류학자로 살고 있는 에펠리 하우오파의 소설이다. “피지? 그곳에도 소설가가 있던가?” 하며 놀라움을 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는 이야기가 있을 터이고, 그것을 줄거리 삼아 소설 한 편 만들어지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인류학자가 쓴 소설이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다양한 문화적 관습과 생각들을 보여주는 인류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핵심은 낯선 땅의 문화적 충격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적 충격, 즉 어떤 글자를 선택하고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추앙하느냐에 따라 삶의 고통도 치유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떠오른 하나는 바로 이것이었다. “똥구멍과 항문의 차이.” 점잖지 못하게 똥구멍이라니 말을 삼가라는 고상한 누군가의 질타가 잠시 들려오긴 하지만 다들 속으로야 항문이라 하지 않고 똥구멍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세종대왕 왈,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쓰는 것, 그것이 바로 한글이다. 그러니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이다. 똥구멍과 항문.

왜 똥구멍이라고 말하면 지저분하거나 질이 낮은 것으로 생각할까? 그것은 우리가 글자에 부여하는 자격 내지 의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자기 몸이든 세상이든 쓰고 남은 것들이 배설되어 쌓이는 곳은 더럽다고 외면하려든다. 쓰레기가 모여 있는 곳, 배설물이 나오는 곳, 그곳만큼 악취가 나고 부패한 곳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몸의 찌꺼기가 마지막으로 배설되는 그곳, 똥구멍을 말하는 것 자체가 더럽고 냄새가 난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이 아프면? 그곳에서 지독한 고통이 시작되면 삶 자체가 고통 속에 묻혀 버린다. 너무 고통스럽지만 그곳이 아프다고 입 밖으로 내뱉기가 민망스럽다. 그럼에도 하루 빨리 고쳤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 오일레이 역시 그 똥구멍에 탈이 났다. 가뜩이나 섹스를 즐기는 그가 그곳이 탈이 났으니 아마도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너무 아파서 참을 수 없었던 오일레이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곳을 고치려고 애를 쓴다. 그가 사는 곳이 아직 현대 문명이 발달한 곳이 아니기에 의학 기술의 힘을 빌리기보다는 주술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많은 도토레(일명 주술사)들을 만나 다양한 민간요법을 써보기도 하고 돈을 들여 도시로 나아가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보기도 하지만 도대체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곳이 바부를 만나면서 고통도 멈추고 치유되기 시작했다. 언제? 바로 똥구멍이 아니라 “항문”이라 칭하면서 부터이다.

“똥구멍과 항문”, 모두 같은 배설 구멍을 가리키는 글자인데 무슨 차이가 있어, ‘똥구멍’하면 낫질 않고 ‘항문’하니까 낫는가? 이것이라 단언하기엔 경험적으로 확인된 바가 아니지만, “똥구멍”이 되면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쓰레기들이 배설되는 곳이 되지만, “항문”이 되면 배설을 통해 몸을 항상 청결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신체 부위로 모든 행동의 결과들이 집적되는 곳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곳은 단지 배설의 통로만이 아니라 인간 몸에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관문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늘 “똥구멍”을 외쳐 되는 오일레이의 고통을 멈추게 한 바부는 그곳을 “항문”이라 불렀다. 그래서 그곳은 이제 더러운 것이 나오는 구멍이 아니라 인간 삶에 있어서 중요한, 그래서 소중하게 여겨져야 할 부분으로 바뀐 것이다. 치료할 수 있음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글자, 그 글자를 우리가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 고통을 치유하는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의미가 세상을 바꾸다

이것은 단지 글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더럽고 악취 나는 문제에 대해 특별한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한 외면하려 든다. 또한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혹은 빈곤층이나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를 정상인 혹은 일반인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 혹은 자신과는 다른 무엇을 가진 사람들을 멀리하거나 외면하려 든다.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을 대하는 태도, 장애가 없는 사람이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한국인이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태도 등. 하지만 이들이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거나 손해를 입히려고 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하려 든다. 사탕과 꿀로 그들을 달래기도 하고, 채찍과 몽둥이로 괴롭히기도 하고, 아예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거나 도려내고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떠한 방법도 소용은 없다. 왜냐하면 많이 가진 자가 있으면 하나도 가진 게 없는 자들이 있는 것이고, 장애가 없는 사람이 있으면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부가 똥구멍을 항문이라 바꿔 부른 것처럼, 부유하건 가난하건 그냥 사람, 장애가 있건 없건 그냥 사람, 피부색 서로 달라도 그냥 사람, 그냥 사람이라 부르면 될 것이다. 글자의 의미를 바꾸고 그 의미만큼 서로를 생각하고 존중하는 것, 모두가 이 세상을 구성하는데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 여기는 것, 그것이 고통을 없애고 치료를 하는 근본적인 자세가 될 것이다.

세상을 세세하게 나누는 글자들을 바꿔보자. 존중하고 이해하는 글자들로, 그렇게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면 오일레이가 고통에서 벗어나듯 우리도 세상의 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화씨 451을 읽고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장윤성 (책익는 마을 주민)

 

1. 읽혀서는 절대 안 되는 책

몇 차례 쏟아지는 폭우에 결코 고개 숙이지 아니하고

제 마음 굽히지 않았더니 외꽃이 더욱 노랗다.

절대로 무릎 끓지 아니하고

제 뜻을 꺾지 아니 하였더니 능소화가 더욱 붉다.

저 꽃의 이유를 찬찬히 읽는데 가슴이 불시에 뛴다.

피가 갑작스럽게 끓는다.

단 며칠 세상에 목숨 내밀더라도

활짝 피는 것들이 生은 무기보다 더 위험하다고 한 줄도 읽지 못하게

자물쇠 단단하게 채워 놓거나

불을 지르면 지를수록 오히려 더 불온해지고 싶은 법이라네.

저 금지된 서적 같은 꽃에 물 들은 나도

짙은 빛을 내뱉으며 누군가에게 한달음에 읽혀지고 싶은 것이다.

–불온서적 (김종제님의 시)–

20 여 년 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선배 손에 이끌려 ‘금서’라는 책들을 읽으며 토론했다. 그 때 심장을 철커덕 거리며 읽었던 책은 해방 전후사의 인식, 철학에세이, 맑시즘, 고리끼의 어머니라는 책들이었다. 1980년 광주항쟁도 광주사태로 배워왔던 내가 그 책들을 읽으며 큰 충격에 빠졌다. 그 책들은 군부 독재의 반공 교육에 길들여진 무지한 나를 변화시켰다. 군부독재가 끝나면서 금서와 금지가요들이 해금되었고 우리의 사상은 더 이상 정부에 의해 통제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몇 년 전 국방부가 군인들에게 유해하다며 불온서적을 정했다는 기사를 보면 그렇지 못하다. 얼마 전에도 온 국민을 분노로 연대하게 만든 ‘도가니’의 원작 소설가를 경찰이 조사해야 한다는 한나라당 인권위의 얼빠진 소리도 들려왔다. 그들의 사상은 어떠하기에 국민의 사상을 검열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내가 그들의 사상을 검열하고 싶다. 이 사회도 나도 아직까지 1980년대 이 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 위정자들은 책을 두려워한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비판적 사고를 지니게 된다. 책은 사람의 생각을 바꿔 행동을 바꾸게 하며 현재를 바꿔 나가면서 미래까지 바꾼다. 그 사실을 위정자들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화씨 451’ 속의 위정자들도 책을 두려워한다. 책이 주는 거대한 힘을 알기 때문이다. 그 위정자들은 통치에 위험한 책을 없애기 위해 독서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책들을 불태운다. ‘유색인들은 <꼬마 검둥이 삼보>를 싫어하지. 태워버려. 백인들은 <톰아저씨의 오두막>을 싫어하고. 그것도 태워버려. 누군가가 담배와 폐암과의 관련에 대한 책을 썼다면? 담배 장사꾼들 분통이 터지겠지. 그럼 태워버려.’

지금 우리 위정자들은 어떤 책들을 불태우고 싶어 할까? 그 위험한 책들이 타기 시작하는 온도가 바로 화씨 451도 이다. 책을 태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 Fireman 이다. 그러나 소방수가 아니라 방화수이다. 주인공 가이 몬테그도 방화수이다. 그는 클라리셰라는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하는 일에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방화수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법의 수호자라며 자부심을 가졌다. 클라리세는 비정상인 소녀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녀는 텔레비전 수업, 멋대로 정리한 교과서를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역사 수업, 운동 시간 등을 수업하는 학교에 대해 비판 한다. 그런 수업을 하는 교실을 감옥이라고 말한다. 클라리세의 말에 따르면 지금 우리 아들은 감옥에서 공부하고 있다. 딱한 내 아들이다. 클라리셰는 사람들이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아니에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자동차며 옷들이며 수영장 얘기 밖에 안 해요…..그저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깔깔거리기 일쑤죠. 멋있고 즐겁지만 그것뿐이죠.”

클라리셰의 말처럼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말초적일뿐 더 이상의 지성은 없다. 몬테그의 아내 밀드레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녀는 하루 종일 벽면 TV 앞에 앉아 일방적인 TV 방송만을 탐닉한다. 그녀가 이웃집의 부인들과 나누는 대화는 오로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드라마 얘기뿐이다. 그녀가 소망하는 것이라곤 그저 네 벽 전체를 헐어 내고 텔레비전으로 바꾸는 것이다. 어디선가 많이 보아 온 풍경이다. 텔레비전이 거실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우리 집, 커피를 마시며 어제 시청한 드라마로 열띠게 이야기하는 내 모습들이 겹쳐진다. 그래서 밀드레드나 이웃집 부인들을 차마 비웃지 못하겠다.

 

3. 책들을 읽으면……

클라리셰를 만나면서 몬테그는 책들을 태우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자신이 그토록 보람 있다고 생각해 온 일에 회의를 느낀다. 책 속에 어떤 것들이 있기에 모든 것을 버려가며 책을 지키고 책을 읽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 소녀가 사라진 후 몬테그는 자신들이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데도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는 그 진실은 책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 하루에 두 시간 씩만 이 책들을 읽으면, 어쩌면 …….”

이라고 절규한다. 몬테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변화 시켜 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 자신이 숨겨둔 책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그 곳은 책을 필사적으로 지키며 살아가는 반사회적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책을 읽고 책을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반사회적 범죄인들이다. 픽션이라는 소설 속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80년대 금서를 읽었던 나도 반사회적 범죄인이었다. 몬테그가 사는 사회의 위정자들이 정말 두려워 한 것은 독서를 통해 국민들이 비판적 사고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그런 사고를 지니게 되면 국민들을 멋대로 통치하기 어렵고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몬테규의 절규처럼 책들을 읽으면 ‘앎’을 갖게 되고 ‘깨달음’을 얻게 되어 불의에 저항하게 만든다. 그래서 방화서장 비티의 말대로 책을 소유하는 게 범죄가 아니라 읽는 게 문제인 것이다. 나는 책을 소유하고 있는지 아니면 읽고 있는 지 되돌아본다.

 

4. 책이 사라지고 있다?

출판사 시장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단다. 우리 아들만 보아도 그럴 것 같다. 고등학교에 입학 후 아들내미가 읽는 책이라곤 교과서와 문제집, 참고서가 전부이다. 책갈피를 넘겨가며 읽는 아들의 모습이 낯설어서 걱정이다. 이렇게 독서를 하는 경우는 국어 수행평가로 독서 감상문을 쓸 때를 제외하곤 거의 없다. 독서를 하라고 말하면 시간이 없다는 변명만 돌아온다. 토요일에도 밤에 귀가하는 아들을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건지 책 읽을 마음이 없는 건지 헷갈린다. 그러나 TV 앞에 앉아 낄낄거리는 걸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책 읽기는 괴로우나 TV 시청은 즐겁다는 아들놈을 보며 고민한다. 아들과 비슷한 아이들이 많다면 ‘책이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기우이다. 부디 우리 아들들이 TV가 주는 감각적 유희에서 빠져나와 책 읽기가 주는 이성적 사고에 빠져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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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래이 브래드버리 지음, <화씨 451>(박상준 옮김, 황금가지 펴냄>에 관한 장윤성 책익는 마을 주민의 글입니다.

난민과 국민 사이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사유와 성찰 [청춘의 서재]

박민철(건국대학교 강사)

개인적으로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재일조선인 3세와 몇 일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재일조선인을 나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사는 ‘같은 민족의 동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 끝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렸을 적에 일본인 학생들과 많이 싸웠겠네요?” 서경식의 책을 통해 이 질문이 무지했음을, 아니 참으로 무례했음을 깨달았다.

“옛날에 탄광의 갱부들은 갱내 일산화탄소 농도를 알기 위해서 카나리아 새장을 들고 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사람보다 먼저 고통을 느끼고 죽음으로써 위험을 알린다. 식민지배의 역사 때문에 일본 사회에 태어난 재일조선인은 말하자면 ‘탄광의 카나리아’와도 같다.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역사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비유컨대 나의 저술은 질식해가는 카나리아의 비명과도 같은 것이다.” -서문에서-

서경식의 『난민과 국민 사이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사유와 성찰-』은 그의 소개를 빌리자면 재일조선인론, 일본의 역사인식문제, 국가와 민족론 등에 대한, 한국인들이 읽었으면 싶은 평론 형식의 글을 모은 책이다. 서경식은 1951년 일본 쿄토시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라온, 자신의 규정대로 하면 ‘재일조선인 2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입장을 카나리아에 비유하며 재일조선인의 체험적 고통과 일본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경고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경고는 공격적이거나 선동적이지 않다. 오히려 타자에 대한 동정과 공감, 성실한 내부 성찰과 자기비판을 뿌리로 삼아 진지하고 담담한 언어로 표현한다. 그래서 따뜻하다. 그리고 한편으로 카나리아의 비명처럼 애절하다. 그의 글에서 느껴진 깊은 아픔과 좌절에 비하면 당시의 내 질문은 진정 무례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그 중 두 편의 짤막한 글을 소개하면서,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재일조선인인 그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 ‘난민으로서의 재일조선인’

이 책에서는 ‘재일조선인’이 경험한 민족적 차별, 생생한 억압과 핍박, 처참한 아픔 등이 ‘이야기’되고 있다. 담담하게 고백하듯 서술된 서경식의 글은, 말과 글로는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읽는 이로 하여금 가지게 만든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재일조선인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과 더불어, 그들의 아픔을 잊고 있었다는 반성을 생겨나게 만든다. 어쩌면 그도 동일하게 재일조선인의 아픔을 철저하게 겪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조선에서는 19세기 말의 침략과 식민지배의 역사, 이어서 남북의 분단과 대립, 그리고 냉전의 와중에 디아스포라가 생겨났고 식민지배의 직접적 산물로서 재일조선인이 ‘반난민’의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서경식은 재일조선인을 ‘일제 식민지배의 역사적 결과로 구종주국인 일본에 거주하게 된 조선인과 그 자손’이라 규정한다. 하지만 뒤이어 그는 이 단순한 몇 마디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재일조선인의 규정을 개인적인 가족사를 통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일본의 패망 후 외국인등록령(조선인을 외국인으로 간주)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조선인의 일본국적 상실) 등과 함께 ‘조선’의 국적을 가지게 된 재일조선인의 국적취득 과정이 있었다. 당시 스스로를 국민으로서 귀속시킬 국가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들은 ‘조선’이라는 민족적 태생을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귀속될 수 있는 국가, 즉 조선이 존재하지 않았던 재일조선인은 곧 ‘국가로부터 쫓겨난 경험이 있고 여전히 국가로부터 내몰릴 위협에 시달리는’ 난민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난민으로서 재일조선인’들은 취업과 같은 사회 여러 부문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 여러 설문조사를 통해 재일조선인의 일반적인 경향은 모국, 조국에 대한에 대한 애착이 희박해지고 일본 사회에 대한 애착이 널리 공유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경식은 피차별자가 피차별의 체험을 표명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피차별자에게는 자기방어로 차별의 기억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반문한다. 나아가 누구나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 입에 맞는 음식, 친근한 벗에 대한 애착이 있기에 과연 이와 같은 것들이 ‘정말로’ 일본에 대한 애착일 수 있는지 묻는다.

그가 던진 질문, ‘난민으로서의 재일조선인’과 ‘일본 사회에 대한 애착’은 어쩌면 전자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후자는 우리가 편하게 믿고 싶었던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재일조선인’은 단순히 ‘민단계 재일조선인’과 ‘총련계 재일조선인’이라는 남과 북의 구분선에서만 존재했던 것 같다. 아니 ‘우리’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특히 ‘나’에게는 그러했다.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규정에 따라 ‘재일조선인’을 ‘남한 쪽의 민단계’와 ‘북한 쪽의 총련계’로 구분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형식적 구분이 얼마나 우둔했으며 무례한 것이었던지를 서경식은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배를 통해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본식민’이라 분류된 재일조선인을, 패망 후 일본은 재차 외국인으로 분류했다.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주었던 억압과 고통을 ‘외국인’이라는 규정과 함께 부정해버렸다. 이것에 대해선 굳이 더 얘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 역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을 단순히 남과 북으로 분류했으며, 그것과 함께 재일조선인의 아픔을 의식적으로 잊고자 했다는 것이다. 재일조선인이 생생하게 경험한 일제 식민지의 고통과 일본에서의 억압과 차별을 국가라는 형식적이고 단순한 틀 속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일본이 재일조선인의 차별과 고통을 ‘외국인’이라는 규정으로 부정했다면, 우리 역시 ‘남한’과 ‘북한’이라는 구분 속에서 부정해버렸다. 설령 의식적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러했다. 그 결과, 우리에게 재일조선인의 아픔은 단순히 탄광노동자, 징집병, 위안부 등과 같은 특수화된 이미지로밖에 남아있지 않다. 현실의 아픔은 없어지고 고통의 이미지만 남았다.

현재 재일조선인은 연평균 5,500여명에 이르는 귀화로 꾸준히 그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 그리고 남북의 분단과 대립이라는 역사적 과정과 함께 생겨난 재일조선인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들은 단순한 ‘국가’라는 범주로 구분할 수 없는 생생한 역사적 존재이다. 특히나 역사 속에서 그들은 국가로부터 쫓겨난 경험이 있고, 여전히 국가가 보장하는 책임과 권리에서 차별과 외면을 당할 위협이 있는 존재인 셈이다. 재일조선인은 ‘난민으로서 재일조선인’이다.

그렇다면 ‘난민으로서 재일조선인’이 돌아갈 조국은 어떤 곳일까? ‘국민화’라는 구분 속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았던 이들에게 돌아갈 ‘국가’를 다시금 묻는 다는 것이 어쩌면 가당치않은 질문이라고 할지라도, 무례를 무릅쓰고 묻고 싶은 질문이다. 서경식은 “‘조국’이란 어떤 영역, 토지, 혈통, 혹은 고유의 문화나 전통이라기보다 오히려 모든 정치적 조건들 아래서 선택되는, 미래를 향한 태도의 결정”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즉 조선반도라는 토지, 혈통, 문화, 전통과 분리된 존재인 재일조선인에게 ‘조국’은, 과거 고통의 역사가 되풀이 되어선 안 되는 곳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조국은 ‘한국’, ‘북한’, ‘일본’, ‘기타’와 같이 현재적인 의미에서 어떤 국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미래 지향적인 조국의 모습으로 규정된다. 이건 어쩌면 재일조선인이 필연적으로 도착할 수밖에 없었던 조국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우리는 재일조선인의 조국을 어떻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었을까? 혹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들 마음대로 조국을 그들에게 부여하지 않았던가? 재일조선인들에게 국가라는 범주적 도식 속에서 조국을 부여하고, 어떤 억압적인 족쇄를 생각없이 채웠던 것은 아닐까? 잔인하게 반성하자면 ‘국민화’라는 또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말이다.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현재 존재하고 있는 국가로의 범주화된 도식으로 내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으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 ‘어머니를 모욕하지 말라’

제 1부 어느 편에 나오는 송신도 할머니는 1993년 일본에 거주하는 前 위안부로서는 처음으로 도쿄 지방법원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송신도 할머니와 저자의 어머니는 동향同鄕에다가 동갑이라는 공통성을 갖는다. 또한 식민지배의 억압과 핍박 그리고 전후 일본에서의 민족차별과 성차별을 공통적으로 경험했다. 서경식은 송신도 할머니를 통해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고통을 가슴 시리게 보여준다. 활자를 뛰어넘어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으로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저자에게 송신도 할머니는 또 다른 어머니이다.

이 부분의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는 눈물이 비쳐 나온다. 한편으론 그들이 겪었을 참혹한 고통에 대한 동정과 공감, 다른 한편으론 그동안 위안부의 존재를 머리로만 알고 넘어갔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죄스러움 때문이다. 그녀들이 당한 행위에 대한 저자의 분노, 회한, 슬픔, 미안함 등은 그의 글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그녀들의 고통과 아픔을 비슷하게 경험한 재일조선인이기에, 서경식의 글은 그녀들의 감정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루 70여명을 상대해야만 했던 열 여섯의 송신도 할머니에게 가해진 처참한 폭력과, 일본인 가정의 허드렛일을 맡아 하면서 여덟 살의 저자의 어머니에게 가해진 민족적 차별과 억압에 대한 서경식의 글은 단순히 ‘가슴아프다’라는 단편적 동정심을 넘어서게 해준다. 처참한 고통은 커다란 보편성,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보편적 동질감을 부여해준다. 같은 핏줄이어서, 같은 문화라서, 같은 언어를 씀으로서 갖는 동질감이 아니다. 아마도 극심한 고통에 대한 반발로서, 즉 고통받았던 이들에 대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될 보편적 연대감과 같은 말일 것이다. 같은 민족이란 “고통과 고뇌를 공유하면서 그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지향함으로써 서로 연대하는 집단”을 의미한다는 서경식의 말은 따라서, 송신도 할머니는 이 글을 쓰는 지금 나의 또 다른 어머니임을 자각하게 해준다.

우리가 쉽게 사용한 재일조선인이란 말을 일본인들은 가장 차별적으로 사용해왔다. 모욕당하고, 버림받고, 얼굴을 가리고 피해갈 만큼 외면당해왔던 사람들을 ‘재일조선인’이란 공식적 명칭 속에서 은폐시켜버렸다. 아니 고통과 고뇌를 공유하기는커녕, 불편한 진실처럼 그리고 남의 일인 양 쉽사리 외면해왔다. 비단 일본의 우경화를 여기서 다시금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 역시 가장 차별적인 그 단어를 ‘같은 동포’라는 무감각적 언어와 등치시켰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그들로서 박제화시켜버렸다. 어쩌면 우리들은 차별적 언어를 사용한 그들의 논리에 나도 모르게 포섭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앞서 얘기한 “어렸을 적에 일본인 학생들과 많이 싸웠겠네요?”라는 질문은 정말 무례한 질문이었다. 특히 나 스스로에게 절대적으로 그러했다.

“어머니를 향해 던져진 돌멩이를 이 몸으로 받으면서 ‘공식적 역사’가 묵살하고 은폐해온 어머니들의 역사를 위해, 어머니들과 함께 또 어머니들을 대신해, 자식인 내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자식인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카나리아의 비명을 질러야 한다. 이 책 3부의 제목처럼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려는 의지’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리고 동시에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려는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하다. 서경식의 이 책은 나에게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과학, 그 불완전한 확실성 8-② [色 다른 책읽기]

손산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강사)

 

사례 1.

사건 번호: 04cv2688.

키츠밀러 대 도버 교육청(Kitzmiller vs Dover Area School District)

담당 법원 및 판사: 펜실베니아 중부 지방 법원, 존스(John E. Jones III) 판사

사건 개요:

2004년 11월 19일, 도버 교육청(피고)은 고등학교 과정 ‘생물’ 교과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보도 자료를 배포하고, 이를 이듬해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한다. 간략하게 추려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윈의 이론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며, 따라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때마다 그 진위를 판단해야 한다. 다윈의 이론은 사실(fact)이 아니다. 다윈의 이론에 있는 틈새들은 그에 합당한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었기에 존재한다. 이론은 광범위한 관찰들을 통합하는, 잘-다듬어진(well-tested) 설명으로 정의된다. 지적 설계론은 다윈의 견해와는 다르게 생명의 기원을 설명한다. …… 학생들은 어떠한 이론이던지 간에 열린 마음으로 대할 것이 권장된다.’ 따라서, 도버 교육청은 2005년부터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다윈의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을 동등한 지위에서 가르치도록 결정한다. 도버 교육청의 이러한 결정에 반발하여 키츠밀러를 위시한 학부모들(원고)은 교육청의 결정은 미국 수정 헌법 1조(미연방은 국교를 수립할 수 없다) 및 14조(법률에 따른 평등한 보호)를 위배하고 있기에, 그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를 제기한다.

판결 및 그 이유: 존스 판사는 139쪽에 이르는 판결문을 통해, ‘지적 설계론’을 교과 과정에 넣은 교육청의 행위는 레몬 대 쿠르츠만(Lemon vs Kurtzman 403 U.S. 602 (1971)) 판결이 제시한 일련의 기준 (레몬 테스트라 알려져 있다: 정부의 행위는 세속적인secular 입법 목적을 가져야 하며, 종교를 장려하거나 방해하지 않아야 하며, 종교와 ‘과도하게 얽혀있지’ 않아야 한다)을 통과하지 못했기에 미국 수정 헌법 1조 및 14조를 위배하고 있다고 판시한다.

사례 2.

1975년 어느 가을, 183명의 과학자들(18명의 노벨상 수상자 포함)이 바트 복(Bart Bok 천문학자), 로렌스 제롬(Lawrence Jerome 과학 작가), 그리고 폴 쿠르츠(Paul Kurtz 철학자)가 작성한 성명서에 서명을 한다. 이 성명서를 통해 이들은 ‘점증하는 점성학(astrology)의 영향력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점성학은 ‘신비적 세계관’의 산물로, 별들의 힘이 우리에게 미치기에는 ‘우리와 별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고’, 그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기에,’ 별들이 ‘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중 상당수는 사례 1과 2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과학’에 대한 생각을 아마도 재확인하지 않았나 한다. ‘그래,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은 이런 거야!’ 하는 안도감과 함께. 러셀의 종교와 과학을 읽고 난 사람들의 감상도 아마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선명하게 대비시켜 배열된 종교와 과학 사이의 ‘투쟁사’는 깔끔한 그의 문장처럼 아주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우리는 그렇게 ‘계몽’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사례 1과 2를 이용해, 러셀이 주장하는 종교와 과학 사이의 ‘투쟁’을 조금 더 깊숙이 파고 들어보자.

 

과학이란 무엇인가?

러셀은 과학을 ‘관찰과 그것에 기반을 둔 추론을 통해 우선은 세계에 관한 특정한 사실을, 그 다음은 그런 사실들을 상호 연결해주고 (운이 좋으면) 미래의 현상들까지 예측 가능하게 해주는 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9쪽).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과학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의 정의가 사례 1과 2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사례 1에서 등장하는 ‘지적 설계론’은 우리가 ‘관찰할 수 없는 순간 (생명의 기원)’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에,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지적 설계론을 과학으로부터 추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의 대상을 ‘관찰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한정할 수 있는가? 사례 2의 경우는 ‘별들’과 ‘인간들’을 그 관찰의 대상으로 삼기에 일단 과학의 테두리 안에 들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점성학은 별들과 인간을 이어주는 ‘경험적 법칙’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며, 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한다. 때에 따라 점성학자의 예측은 성공하기도 하지만 ‘운이 없어’ 실패하기도 한다. 앞의 성명서에서 언급된 점성학의 ‘신비적 기원’ 또한 문제시 되지 않는다. 만일 그 기원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연금술에 기원을 둔 화학 또한 그 과학의 지위를 박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점성학을 과학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나아가 ‘관찰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과학자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예를 들어 이론 물리학자들), 우리는 그들에게 교황이 호킹(S. Hawking)에게 했던, ‘빅뱅 이후의 우주의 진화를 연구하는 것은 괜찮지만, 빅뱅 그 자체 및 그 넘어는 연구하지 말라’는 충고를 되풀이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러셀을 따라, ‘정확한 실험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철학적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98쪽)라고 선언해야 하는 것일까?

 

세속의 탄생: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사례 1로 되돌아가 보자.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재판의 결과보다도, 미국의 입법가들이 그리고 존스 판사가 의식했건 의식하지 못했던 간에 사용하고 있는 ‘세속적이어야’ 한다는 문장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속적’이라는 표현은 ‘성스럽다(holy)’라는 표현과 대비되어 사용된다. 하지만 이 낱말들의 어원이 ‘전체로 완전함‘을 뜻하는 15세기 독일말 heil과 ’나이 먹음‘을 뜻하는 라틴말 saeculum에서 왔다는 것을 기억해낸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 낼 수 있다.

우리 기억 속의 인간들은 그들이 이 땅에서 보낸 시간의 양 만큼 그들을 둘러 싼 세상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했다. 종교 또한 이러한 인간의 열망 속에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으며, 그리고 성장한다. 역사 속에서 ‘종교’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이 땅에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믿음의 체계’로 자신을 발전시켜 나아왔다. 종교의 ‘영성 체험,’ 또한 ‘약물’을 사용하던 ‘세계 종교(world religion)’에서 약물 사용이 필요 없는 종교로 통합 발전해 왔다. 이러한 발전 과정의 연장선 위에서 우리는 ’종교의 세계 이해‘를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는 (레위기 11장, 신명기 14장) 구분은 메리 더글라스(M. Douglas)의 지적처럼 ’완전한 것을 따라서 성스러운 것을 추구하던‘ 고대 유대인들이 ‘그들의 생물 구분법’의 경계선상에 있는 동물들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더글라스는 고대 유대인들이 비늘 없는 물고기를 ‘완전한’ 물고기로, 날지 못하는 새를 ‘완전한’ 새로 볼 수 없었을 것이라 지적하며, 만일 중동에 펭귄이 살고 있었으면 틀림없이 펭귄 또한 부정한 짐승의 목록에 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러한 종교의 이해가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종교에서, ‘완전한’ 그들의 신관(神觀)과 ‘공존하는 그들의 세계 이해’를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는 성스러운 것으로부터 나이를 먹는, 따라서 변화하는, 덕분에 ‘세속적인’ 우리의 세계 이해를 구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과학: 경험 속의 완전함의 추구에서 불완전한 확실성의 추구로

‘실체substance는 통사론에서 나온 개념이며, 통사론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구조를 결정한 원시 종족들의 다소 무의식적인 형이상학에서 나왔다. 문장은 주어와 술어로 나뉘는데, 어떤 단어들은 주어 혹은 술어로서 존재하는 반면, 오직 주어로만 (매우 엄밀한 의미에서는 아니라 할지라도) 존재하는 단어들도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이런 단어들 – 고유 명사가 가장 좋은 예인데 – 이 ’실체‘를 의미한다. 동일한 개념을 표현하는 일상적인 단어는 ’물체thing’ – 인간에게 적용될 때는 ‘인격체person’ – 이다. 실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은 어떤 물체나 인격체가 의미하는 바에 정확성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일 뿐이다’ (102쪽). 이제 우리는, 다소 두서없이 등장한 러셀의 이러한 지적을 그의 ‘종교와 과학’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갈등의 예들과 ‘함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종교와 과학 사이의 갈등을 ‘경험 속의 완전함의 추구 (성과 속의 일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성으로부터 속을 분리해 냄으로써 갈등의 해소 또한 간단하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간단함이 인간 지식의 역사라고, ‘불완전한 확실성’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세속적인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 무리 있는 표현은 아닐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사실 오류라는 영원한 희극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103쪽)라는 러셀의 표현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언:

참고로 미국 수정 헌법 1조 (국교 수립의 금지)와 관련된 판례들 중, 멕레안 판례(McLean vs Arkansas Board of Education 1982)가 처음으로 ‘과학’에 대한 전문가 증언을 ‘비’ 과학자인 마이클 루스(Michael Ruse)로 부터 구했다 (그는 과학 철학자이다). 점성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 사이에서 과학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 미국 ‘초능력 협회’ 또한 미국 과학 진흥 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협회는 황우석 사건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SCIENCE’라는 학술지를 펴내고 있다)의 준회원 기구로 아직까지(2011년 현재) 남아 있다.

참고 문헌

메리 더글라스 (1997 [1966]) 순수와 위험. 유제분, 이훈상 옮김. 서울: 현대미학사.

버트런드 러셀 (2011 [1935]). 종교와 과학. 김 이선 옮김. 파주: 동녘.

Bok, Bart J., Jerome, Lawrence E., and Kurtz, Paul (1975). “Objections to Astrology”. The Humanist. (September) 4-6. available at http://psychicinvestigator.com/demo/AstroSkc2.htm

Tammy Kitzmiller, et al vs Dover Area School District (400 F. Supp. 2d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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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여덟 번째 책은 버트란드 러셀의 <종교와 과학>(김이선 옮김, 동녘 펴냄)으로, 이한오(성공회 신부), 손산(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강사), 오상현(상지대 강사)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종교가 종교답고 과학이 과학다운 세상을 그리며 8-③ [色 다른 책읽기]

오상현 (상지대 강사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우리 집 종교의 역사는 좀 화려한 편이다. 아버지는 결혼 전에 한동안 남묘호랑게교(SGI)에 심취하셨고, 어머니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흔치 않은 종교인이셨단다. 그런 두 분이 만나 결혼을 하셨고 그리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종교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를 얻으셨다. 얼마 전까지도 이모 한 분의 종교는 대순진리교였고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작은아버지의 가족들은 원불교도시다. 다양한 종교인을 친인척으로 두었던 과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포부도 당당했던 철학과 신입생 시절에 내 관심은 온통 ‘종교철학’에 있었다.

 

종교와 과학, 그 진부한(?) 이야기

아직도 서점에 가보면 ‘종교와 과학’에 관한 신간들이 종종 눈에 띈다. 대개 종교와 과학을 대립적 구도로 나누고,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 승리를 안겨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대부분이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진화론’ 연구도 상당히 ‘진화’했다. 이에 응전하기 위해 종교도 ‘창조론’에서 ‘지적 설계론’ 등의 대항마를 만들어 전쟁을 치렀지만 대부분의 승리는 과학의 몫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과학적 성향은 신중하고 잠정적이고 점진적이다. 자기가 획득한 최고의 지식조차도 전적으로 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이론은 머지않아 수정되어야 하며, 이 필연적인 수정 과정에는 연구와 토론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219p.)

‘종교’와 ‘과학’은 사실 서구 사회를 이룬 두 가지 핵심 축이라 할 수 있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적이고 초월적인 기독교 사상을 말하고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에 기원을 둔 인간 중심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를 일컫는다. 러셀도 이런 관점에 동의하고 있다. <종교와 과학>에서 그는 ‘종교’를 기독교에 한정하고 있으며 ‘과학’을 합리적 토론과 자유로운 연구를 통해 언제든 수정 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요컨대, 종교와 헤브라이즘, 과학과 헬레니즘은 치환이 가능한 것이다.

길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중국인과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일본인이 대화의 두 주인공이다. 만약 이들이 특정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하고 있노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쉽게 믿기 어려울 것이다. 의미 있는 논쟁이 오고가기 위해서는 먼저 말이 통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과학의 논쟁이 진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삶은 늘 ‘판단’의 연속이다. “지난 주 ‘나는 가수다’의 1위는 박정현이야.”라는 식의 판단은 ‘다시 보기’를 통해 참이냐 거짓이냐를 가려낼 수 있는 것으로 우리는 이것을 ‘사실판단’이라고 한다. 반면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예쁜 여배우는 송혜교야.”라는 판단은 그야말로 자기 주관적 호불호(好不好)에 의해 내려지는 판단으로 우리는 이것을 ‘가치판단’이라고 한다.

‘가치’의 문제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 전적으로 지식의 영역 밖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해, 이것 혹은 저것에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감정에 상관없이 언제나 참인 어떤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04p.)

러셀의 주장대로 ‘가치’의 영역은 과학이 추구하는 ‘사실’의 영역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앞서 종교와 과학의 논쟁을 진부하다고 혹평한 까닭은 두 주장이 실은 전혀 다른 영역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하려 애쓰는 모습이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수도 없으면서 합의점을 찾으려는 우격다짐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논쟁이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주장을 말이나 글로 펼치면서 다투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논쟁의 당사자는 상대의 합리적 이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래야만 ‘논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논쟁’은 합리적이어야 하며 러셀의 표현처럼 ‘과학적 성향’이 필요한 영역이다. 종교가 늘 과학과의 논쟁에서 지는 까닭은 싸움의 규칙 자체가 과학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로 무장한 근대 이후의 사람들에게 ‘가치판단’의 문제를 설득하려는 시도는 애초부터 무모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러셀이 이 책을 쓴 진짜 이유

서양 근대의 합리주의는 데카르트에서 비롯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명제로 유명한 그는 『방법서설』에서 “학문에서 어떤 확고부동한 것을 이룩하려고 한다면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견해를 벗어나 아주 기초부터 새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껏 믿어왔던 경험적 사실들을 모두 부정하고 명석하고 판명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라는 것이다.

과학적인 방법을 제외하고는 진리에 도달하는 어떤 다른 방법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감정의 영역에서 종교의 근원을 이루는 경험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험은 잘못된 믿음과 결함하여 선뿐만 아니라 많은 악을 낳았다. 그런 결함에서 풀려난다면, 바라건대 오직 선만이 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166p)

러셀은 종교와 과학의 논쟁이 단지 무의미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그가 데카르트의 전통 위에 서 있는 인물이었고 그로 인하여 <종교와 과학>의 대부분에서 과학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는 하지만 종교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만 종교가 잘못된 믿음과 결합하여 만들어낸 많은 악에 대한 우려가 있었을 뿐.

러셀은 초기에는 수학이나 논리학, 과학 등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이와 관련한 많은 책들을 집필했다. 또한 철학사가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는 <서양철학사>를 남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윤리학이나 정치?사회?교육 등의 분야에도 전문서적을 펴냈으며 급기야 1950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셀이 오늘날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것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거나 학문에 대한 욕심과 노력이 남달랐음에 있지 않다. 그의 삶이 던지는 묵직한 메아리는 그가 단지 배우고 익히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실천으로 옮기려한 지식인이었다는 것에 있다.

<종교와 과학>이 의미 있는 까닭은 러셀이 단순히 종교와 과학의 다툼을 나열하고 과학의 승리를 언명하고자 함에 목적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와 과학>에는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고뇌가 담겨있다. 핵무장을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던 평화주의자였고 옳지 못한 국가권력에 맞서 ‘불복종운동’을 주장하기도 했던 그의 실천적 행위는 그 내면에 자리했던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필연적이고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다.

오늘날의 위협은 정부로부터의 위협이다. 혼돈과 무질서라는 현대적 위험 요소 때문에, 오늘날 정부는 이전에는 교회의 권위에 부여됐던 신성불가침의 특성을 이어받았다. 그러므로 낡은 형태의 박해가 사라졌다는 것에 만족하며 자축하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박해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자를 비롯하여 과학적 지식을 가치 있게 여기는 모든 이들의 명백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223p.)

새로운 진리는 종종 불편하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이 그렇다. 그러나 새로운 진리야말로 잔인함과 편협함으로 얼룩진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총명하면서도 방종한 우리 인류가 이루어낸 가장 중요한 성과물이다. (224p.)

러셀은 ‘신성불가침의 특성을 이어받은 새 권력들’을 ‘신흥종교’라고 불렀다. 러셀이 비유한 ‘신흥종교’는 오늘날 ‘국가 권력’이나 ‘자본 권력’ 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러셀은 이런 ‘신흥종교’가 자행하는 수많은 악행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합리적 이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자기계발서가 넘쳐나고 있는 요즘 누군가 말했다. “누가 이 좋은 말들을 몰라서 이러냐? 실천하기 어려워서 그러지.”라고. ‘앎’이 진정한 ‘앎’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 간단하면서도 울림이 강한 진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현자(賢者)들에 의해 회자되었다. 그러나 실천은 늘 어려운 법?!

 

반성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

공자님 말씀을 들어보자.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政)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답하길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논어』, 「안연」)

위에서 공자가 강조한 것은 ‘자기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각자 자기의 역할에 충실할 때에 비로소 정치가 바르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이른바 공자의 ‘정명(正名)’이다. 나는 종교와 과학의 미래도 ‘정명하는 것’에 그 운명이 달려 있다고 본다.

예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그것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종교를 이유로 자행된 전쟁들과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면 당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잘못된 ‘이웃사랑’을 펼쳤던 그들을 칭찬하실 수 있을까? ‘종교’란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안식을 주며 권력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잊지 않고 따스한 온정을 베푸는 사회의 정화장치가 아니던가?

과학은 인간의 수고를 덜기 위해 발전해왔다. 그것도 선택받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 준 것도 과학의 힘이고, 짧은 시간에 멀리 데려다주는 것도 과학의 힘이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도 과학의 힘이고 방사능물질 오염도 또한 과학의 힘이다. 오늘날 과학은 이처럼 인간을 위하던 초심을 잃고 자본이나 권력의 노예로 전락하기도 했다.

종교가 신성하고 고귀한 겉옷을 벗고 낮은 데에 임하는 것, 다툼이 있는 곳에 사랑을 전하고 아픔이 있는 곳에 위로를 건네는 것, 그것이 종교다운 것이며 종교가 지향해야 하는 길이다. 과학도 이제 권력과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나 ‘돈 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선택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인류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종교건 과학이건 무턱대고 믿는다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까닭이 ‘사유함’에 있다면 자기가 믿는 바―그것이 종교건 과학이건―가 혹 저지를지도 모르는 잘못을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종교가 종교답고 과학이 과학다운 세상은 아직도 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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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여덟 번째 책은 버트란드 러셀의 <종교와 과학>(김이선 옮김, 동녘 펴냄)으로, 이한오(성공회 신부), 손산(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강사), 오상현(상지대 강사)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청춘의 서재]

김 범 수(한국철학사상 연구회 회원)

 

며칠 전 머리를 하러 갔다. 동네 미용실이란 원래 아줌마들의 수다 공간이다. 나는 남자인 관계로 그 수다에 끼지 않는다. 단지 구경만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 미용실을 갈 때면 사람이 없는 시간에 주로 간다. 그런데 이날은 이미 손님으로 두 명의 아줌마가 있었다.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구석에 앉아 있었다. 무려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책을 보는 척하면서 귀는 아줌마들 수다에 향해 있었다. 그렇지만 별로 유익한 정보는 없었다. 드라마 얘기. 학원 선생님 얘기. 아이 잘 키우기 위한 수다도 있었지만 드라마에서 잘 생긴 사람 얘기는 왜 저렇게 하는지… 수다를 듣느니 차라리 여성 잡지를 보는 것이 나을 것도 같았지만, 뭐 자리가 자리인지라 여성 잡지 보기도 민망한 상태였다. 그저 가지고 다니는 책의 책장만 넘기고 있었다. 아줌마들이 가고 내 차례가 되자 미용사는 나 역시 수다의 대열에 합류시키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수다에 끼고 싶지가 않았다. 가오가 안서지 않는가? 아저씨가 아줌마 수다에 동참하다니… 눈치를 살피던 미용사는 친근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책 많이 읽으시는 것 같은데 가실 때 제가 읽을 수 있는 책 좀 추천해 주세요.”

에고. 또 골치 아프게 됐군. 책 추천을 안 하자니 그렇고 하자니 그렇고. 참 거시기한 상황이다. 내가 아는 책은 어려운 책인데 그런 책을 추천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안 하면 매우 불친절한 사람처럼 보이고. 그 여자는 분명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교 언어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형식적인 얘기를 넘어서 진정성마저 느껴지는 그 한 마디가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슨 책을 추천해야 하지? ‘차라리 영화를 추천하라고 하지. 왜 하필 책이야?’ 속으로 뇌까렸다.

영화 <방가방가>가 생각이 낫다. 왜일까? 그리고 조금 오래 된 영화지만 <바리케이트>라는 영화도. 두 영화 모두 외국인 노동자가 출현한다. 그 외에 공통점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선명하게 차이점이 부각된다. 이런 저러한 생각을 하다가 정작 미용사의 요구에는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 여자랑 수다를 떨어줘야 예의일 것 같다는 생각만 했다. 그렇지만 책 얘기는 싫었다. 이럴 때 화제 전환이 최고다. ‘밥 먹었어요?’

아! 그런데 여기에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여기서는 화제 전환도 되지 않는다. 그냥 노골적으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젊은이가 젊은이에게 책을 소개한다. 괜히 낯간지러운 짓하는 것 같다. 그래서 두 편의 영화와도 관련되면서 불쑥 떠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요즘은 할 수 없지만 하릴없을 때 흔히 하는 놀이가 있다. 먼저 tv 앞에 앉는다. 리모컨으로 tv를 켠다.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린다. 한 바퀴, 두 바퀴. 이렇게 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어느 날인가 여느 때와 같이 TV를 켰다. 채널 돌리기 놀이를 하다가 채널을 고정한 곳은 다큐멘터리.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일상을 소개하고 있다. 최소한의 가릴 곳도 제대로 가리지 않은 그들의 일상이 재밌게 다가왔다. 늘어진 여성의 가슴도 여과 없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아니 공중파에서 여성의 가슴이 노출되어도 되는 거야?’ 만일 저 모습이 서양 여성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난리 났을 법도 하다. 여성에 대한 시각만 그럴까?

몇 해 전부터 한국계 외국인, 정확하게 보자면 서양인의 피와 섞은 남자 배우들이 인기가 좋다. 다니엘 헤니, 데니스 오, 줄리엔 강 등. 키도 크고 잘 생겼다. 여성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충분하다. 이들이 혹시 적당히 벗고 나와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드라마에서 이들의 샤워 신이라도 있다면, 완전 계 탄 날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왜 원주민은 안 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백인과 유색인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우리의 심층 속에 자리잡고 있다. 너무도 당연하게 느끼는 것을 보니.

이런 얘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 있다.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그것이다. 이 책은 흔히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의 책이라고 한다. 말이 어렵다. 탈식민지주의라고 말해야 할까? 그런데 이 말도 어렵다. 우리가 식민지가 아니기에 무슨 해괴한 소리인지.

먼저 프란츠 파농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프란츠 파농은 서인도 제도의 한 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이후 알제리로 이동해서 여기서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면서 알제리 독립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파농은 알제리가 독립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알다시피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 통치를 받아왔다. 전세계에서 프랑스만큼 자유를 추구하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프랑스의 지식인들도 알제리의 독립에 대해서는 반대하거나 침묵했다.

파농의 입장에서 보자면 알제리 독립에 침묵하던 프랑스 지식인들의 모습이 싫었을 것도 같다. 그렇지만 정작 그가 더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흑인들의 사고방식이다. 일종의 식민주의 심리학이 팽배해 있었던 때문이다. 피부색과 관련한 열등 콤플렉스가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너무도 심각해서 하나의 신화가 된 상황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현상을 분석하고 내면화하는 것이리라.

언젠가 빈민운동은 빈민과 싸워야 하고, 여성운동은 여성과 싸워야 한다는 말을 들을 적이 있다. 빈민이 갖고 있는 패배의식, 도저히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좌절감. 이런 의식으로 팽배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도 사치에 불과할지 모른다. 가난이란 경쟁 자본주의에서 어쩔 수 없는 장식일지도 모른다. 그 의식을 꺾지 못하면 어떤 노력도 허망할 수밖에 없다. 파농도 식민지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일차적인 상대는 프랑스가 아니라 검은 피부의 인간들이었을 것이다. 흑인도 열등감에서 벗어나서 백인들(프랑스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고 싶어도 뼛속까지 침투해 있는 콤플렉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파농이 느꼈던 이런 감정은 한류 열풍의 중심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 한류의 열풍으로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것과 상관없다.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콤플렉스를 치유할 수 있는 자긍심이 있다고 해도 소용 없다. 의식 깊숙한 곳에는 상상과 실재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콤플렉스가 있다. 경제적 잣대로 사람마저도 나누는, 그래서 백인에 대한 호감을 넘어서 성적 지향성마저도 편중되는 현상. 외모에 대한 기준마저도 서구로 변해버린 세상.

영화에서도 비슷한 감정이 느껴진다.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인과 동등한 위치에 놓일 수 없다. 심지어는 다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취업이 늘면서 정작 내국인의 취업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의 범죄 사실을 통해서 그들을 추방시켜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노동력이 아니라 자본을 갈취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투자라는 미명 하에 국내 자본을 잠식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왜 같은 피해를 입히는데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좋아하는 것인가?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읽으면 우리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콤플렉스, 어렵게 말하면 옥시덴탈리즘의 가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의 문제를 우리 의식의 문제로 확대해서 읽어본다면 상상 속에서 날조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