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회원들의 철학적 책읽기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철학자의 서재]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철학자의 서재]

신우현(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사물놀이의 무아지경

 

이제는 오래된 이야기처럼 보인다. 70년대부터 시작해서 90년대 중반까지 대학에서는 민족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 각 대학 동아리에는 민요를 부를 수 있는 노래패가 만들어지고 풍물패가 만들어졌다. 이제 대학 축제의 메인 무대는 당연히 아이돌이지만, 그때는 달랐다. 연예인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축제가 열렸던 것이다. 본격적인 공연의 전조는 풍물패가 어김없이 차지했다. 모든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낚시질을 하는 것이지만 어깨춤이 절로 묻어나는 신명나는 한 판 놀이였다.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김덕수사물놀이ⓒJinho.Jung

김덕수사물놀이ⓒJinho.Jung

사물놀이에 대해서 좀 더 말하고 싶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이 TV를 통해 방영된 적이 있었다. TV를 통해서 보지만 그 짧은 공연은 사람들의 넋을 빼놓기 안성맞춤이다. 리듬은 변주를 거듭한다. 느리게, 빠르게, 때에 따라서는 휘몰아치는 번개처럼 청중을 압도해 버린다. 그렇게 한참을 넋을 놓고 있으면 어김없이 뒤통수를 치듯 징이 울리며 청중을 흔들어 깨운다. 현장에서 그 공연을 본다면 김덕수를 비롯한 사물놀이 공연단의 모습은 무아(無我)에 빠져 있는 듯할 것이다. 실제로 김덕수는 공연하고 있을 때 자신은 꽹과리에 몸을 빌려줄 뿐, 자신이 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악기가 자신의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은 자신은 잊고 다른 사람과 협연하면서 일종의 공명을 일으킨다. 최소한 그 연주동안 모든 성원들은 자신을 잊는다. 그러면서 타자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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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런 공연은 무대에서 펼쳐지지만 원래는 장터를 비롯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어우러지는 대동놀이였다. 대동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신분을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화합하면서 어우러진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습은 지워지고 타자와 소통하는 대동의 춤. 블랑쇼의 글을 읽고 있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런 대동놀이다.?

 

▲ (모리스 블랑쇼 지음, 이달승 옮김, 그린비 펴냄). ⓒ그린비

▲ <문학의 공간>(모리스 블랑쇼 지음, 이달승 옮김, 그린비 펴냄). ⓒ그린비

프랑스의 문학자인 모리스 블랑쇼가 사물놀이에서 시작된 대동놀이를 본다면 뭐라고 했을까? 이번에 소개할 책은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이달승 옮김, 그린비 펴냄)이다. 이 책은 무척이나 어렵다는 평판을 듣는다. 이 책 뿐 아니라 블랑쇼의 모든 책이 어렵다. 혹독하게 문장도 길고, 중요하게 다루지 않은 개념을 중심 개념에 놓고 있으니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록 그는 자신의 이해지평에서 어렵게 사태나 개념을 설명할 수밖에 없지만, 그 내용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고 정감이 간다. 만일 그가 우리의 대동놀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면 경탄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 서구에서는 무아의 경지라는 말도, 윤회에서 비롯되는 죽음에 대한 인식도 낯설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블랑쇼 역시 이런 개념 자체가 낯선 환경에서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강강술래와 같은 공동체의 놀이를 경험하고 그것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블랑쇼의 얘기가 정겹게 느껴질 것이다.

 

예술가의 고독

 

그가 <문학의 공간>에서 처음으로 제시하고 있는 개념은 고독이다. 고독감은 다른 사람과 떨어져서 홀론 존재한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 과연 혼자서 무엇을 할까? 혼자서 하는 놀이가 있어야 시간이 잘 간다. 블랑쇼는 이 부분을 잘 파악했다. 그에게 고독이란 무엇에 대한 몰입으로 나타난다. 문학가의 경우 작품에 몰입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본질적인 고독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거의 모든 예술가들은 고독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창작 활동에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몰입으로 완성된 고독을 통해 치유를 시작한다. 말하자면 고독은 더 이상 고립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열쇠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도 예술가에게는 우울함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우울함은 자신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극대화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예술가들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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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nny Rollins. ⓒWikipedia

▲ Sonny Rollins. ⓒWikipedia

이와 관련해서 꼭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1930~)라는 재즈 뮤지션이다. 소니 롤린스는 1950년대 데뷔한 미국의 유명한 재즈 색소폰 연주자이다. 그 시대는 춤을 추기 위한 재즈에서 벗어나서 갑자기 어려운 멜로디가 나오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때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별처럼 쏟아졌다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 이유는 약물 때문이다. 재즈 뮤지션들은 마약을 하고 즉흥 연주를 하면서 재즈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다가도 약물 부작용으로 소리 없이 사라져 갔다. 거의 유일하게 약물에 의존하지 않은 사람이 소니 롤린스이다. 물론 그도 젊은 시절 마약에 손을 댔지만, 보석기간 중 약물 복용 혐의로 강제로 재활원에 갇히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약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다른 뮤지션과는 달리 아직까지도 활동할 수 있게 됐다.

그의 활동 중에 독특한 이력이 있다. 1950년대 그는 이미 최고의 뮤지션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갑자기 1959년부터 3년 동안 잠적해 버린다. 새로운 동갑내기 라이벌인 오넷 콜먼(Ornette Coleman, 1930~)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잠적기간 동안 롤린스는 요가를 통해 명상하면서 밤이면 인적이 드문 뉴욕의 다리 위에서 색소폰의 매혹에 빠져 연습을 거듭했다. 아마도 그 시간은 그에게 가장 고독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혹독한 고독의 시간 속으로 빠져드는 동안 그는 아마도 세상이 자신의 존재마저 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블랑쇼는 이런 말을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의 부재의 매혹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 고독의 본질에 다가서고 있다. 시간의 부재란 순전히 부정적인 양상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 주도를 할 수 없는, 긍정 이전에 이미 긍정이 되돌아와 있는 그러한 시간이다.”(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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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쇼가 문학에 대해서 말하듯이 음악에 대해서, 혹은 소니 롤린스가 잠적한 사건을 말한다면 위와 같은 맥락에서 말했을 것이다. 롤린스가 잠적한 사건은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롤린스가 부재한 시간을 의미한다. 즉 롤린스는 색소폰의 매혹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는 시간을 보냈다. 철저한 고립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몰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망각되는 부재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의 시간과는 떨어져 있는 시간은 과거로 기억되는 시간도 아니고 현재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시간에서 한걸음 떨어진 깊이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도식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몰입된 시간은 그런 계열화된 시간과는 다르다. 물리적으로 같은 것이 반복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과는 다르게 양으로 표현할 수 없는 질적인 시간도 존재한다. 질적인 시간은 같은 시간이라도 심리적으로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1시간과 재밌는 영화를 볼 때의 1시간은 물리적으로는 같지만 심리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전자의 시간은 매우 지루하지만, 후자는 매우 빠르게 지나간다. 그런데 후자와 같은 시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을 잊고 무엇엔가 몰입해 있어야 한다. 이처럼 몰입은 시간의 부재를 경험하는 예가 된다. 마찬가지로 소니 롤린스가 몰입한 시간은 계기적으로 주어지는 시간과는 다르게 자신의 내면을 파고드는 깊이의 시간이자 나를 잃어버리는 무아의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블랑쇼가 말하는 현전을 위한 ‘자발적 죽음’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보낸 공백의 시간은 그로 하여금 다시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키게 한다. 물론 예로 든 롤린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그런 몰입을 통해서 작품을 만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술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조차, 몰입은 자신 안에 있는 새로운 나를 만드는 작업이다. 블랑쇼가 <문학의 공간>에서 말한 고독과 몰입은 시간과 연결되어 작품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임과 동시에 누구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새로운 소통의 방식을 주장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작품이 더 이상 예술가의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것이 되는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죽음 앞에서

 

이렇게 정리하면 특별히 어려울 것도,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현대 프랑스의 사상계는 블랑쇼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문학의 공간> 뿐 아니라 그의 모든 저작을 관통하고 있는 화두는 ‘바깥’이다. ‘바깥’이란 말은 상식적으로 보면 ‘안’과 대립된다. 그런데 블랑쇼가 말하는 바깥은 이런 의미와는 다르다. 그에게 바깥은 타자와 소통하는 공간이다. 흔히 소통을 한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하지만 블랑쇼에게는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불행과 고통의 연속이다. 가장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은 이 세계에서 고통과 함께 부조리함을 느끼게 해준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방법은 타자와의 소통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블랑쇼의 생애와 연결해서 살펴보자.

 

블랑쇼의 삶을 살펴보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경험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경험 중 눈에 띄는 두 가지 사건을 제시해 보자. 먼저 2차 대전 중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극적으로 생존했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화가 있다. 1944년,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나치의 퇴각이 이루어지는 시기, 블랑쇼는 자신의 집 앞에서 총살형을 당할 위기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아주 극적으로 레지스탕스가 그 일대를 선제공격하기 시작했다. 블랑쇼는 이 전투 때문에 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의 생은 덤으로 생존한다고 간주했다.

 

“당신은 이미 이 년 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이므로 앞으로 남은 수명은 모두 덤으로 사는 것입니다.”(<죽음의 선고>(고재정 옮김, 그린비 펴냄) 중에서)

 

그리고 그는 저작에서 끊임없이 ‘죽음’의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물론 이 죽음의 문제는 당시 유행했던 실존주의 철학, 혹은 현상학의 영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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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하나의 특이한 경력은 68 혁명 중 ‘학생-작가 행동위원회’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그는 잡지 <위원회>에 익명으로 글을 남기게 된다. 이미 당대의 유명한 문필가였던 그가 자신의 이름조차 버리고 평등한 위치에서, 그것도 자신의 제자밖에 되지 않는 학생들과 동등하게 ‘익명’으로 활동했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68년 5월의 행동위원회와 시위대에서는 친구는 아니지만 나이차도 이전의 명성도 무시한 채 너와 나로 말하는 동지들이 있었다.”(“Pour l’amiti?” 중에서)

 

행동위원회에서 블랑쇼는 익명을 주장했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은 익명의 동지 관계를 포기했다. 그렇지만 블랑쇼는 익명성을 마치 문학적 체험으로 느꼈다. 문학적 체험은 작가의 체험이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라 타자에게 무한하게 열리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작가는 깊은 사색의 시간을 통해서 작품을 만들지만, 그 작품은 더 이상 작가의 것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작가의 체험을 공유하는 독자의 것이고, 모든 이의 것이 된다. 이런 블랑쇼의 경험은 모든 권력을 포기하고, 주체의 익명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두 가지 경험은 그의 주요 테마인 ‘바깥’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로 작동한다. 프랑스 철학에서 ‘바깥’이라는 말은 푸코와 데리다 철학의 주요 테마가 된다. 또한 이 용어는 그대로 들뢰즈에게서 다시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낭시나 아감벤과 같은 당대 철학자에게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앞서 바깥은 소통의 공간이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 소통의 공간은 완전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고통과 좌절을 경험하는 곳이다. 오히려 완전한 바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아의 죽음을 경험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완전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테마와 만나야 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상황을 <문학의 공간>에서는 키릴로프의 사례로 분석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소설 <악령>에서 신의 죽음을 알리는 인물로 키릴로프를 등장시킨다. 키릴로프는 신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공개 자살을 선택한다. 이는 자기의식의 순수한 현전 가능성을 분명하게 밝히는 예에 해당한다. 이로부터 블랑쇼는 죽음 안에 놓여 있는 자아의 분열을 분석한다. 자신 안에 놓여 있는 타자. 이 타자는 소통을 위한 근원적 공간이 된다.

 

이 근원적 공간은 마치 문학 혹은 글쓰기의 시원을 이루는 역할을 한다. 앞서 사례로 제시했던 김덕수나 소니 롤린스의 경우처럼 물리적인 죽음이 아닌 자신의 세계로 빠지는 무아지경은 어쩌면 블랑쇼가 말하는 바깥을 가장 정확하게 지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즉 타자와의 근원적 공간은 현전을 위한 죽음이라는 내밀성으로부터 시작해서 타자의 내밀성과 만나는 지점이 바로 소통의 공간이고, 바로 예술의 공간이 된다는 의미이다.

 

 

 

 

<자기를 자기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자>[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⑤

<자기를 자기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자>[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⑤

박은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이 글은 박은미의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2013, 소울메이트 출판사>의 내용을 개제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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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에게 거짓이 되고 싶지 않다면, 우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 – 셰익스피어

이현주목사ⓒegosio.com

이현주목사ⓒegosio.com

이현주 목사의 『이아무개의 마음공부』라는 책에는 인도철학책에 있는 다음의 내용이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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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람 안에는 모두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들어있다. 그 다이아몬드에는 깎여진 면이 수천 개 있는데 면마다 때와 먼지로 덮여 있다. 그 면들을 닦아서 맑게 하고 마침내 찬란한 무지개 색깔을 비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soul)이 할 일이다. … 사람들 간의 차이란 닦여진 면의 수가 다른 것일 뿐이다. 모든 다이아몬드는 다 같고 모든 다이아몬드가 다 완벽한 것이다.”

내가 수천 개의 면으로 된 다이아몬드라고? 다이아몬드라면 빛이 나야 하는데 나의 어디에서 빛이 난다는 거지? 그러면 그 수천 개나 되는 면에 모두 먼지가 앉아서 나는 내가 다이아몬드임도 모르고 산다는 말인가?

이 생각은 불교의 사유방식과도 연관된다. 불교에서는 중생이 중생인 이유는 스스로가 부처임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생이란 ‘무명에 휩싸인 부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무명만 거두어내면 되는데 그 무명을 거두어내지 못해서 스스로를 중생이라고 생각해 괴로워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먹구름 뒤에는 푸른 하늘이 있는데 사람들은 먹구름만 보고 하늘이 검다고 말하고, 거울에 때가 끼었을 뿐인데 때를 닦아낼 생각은 하지 않고 더러운 거울이라며 버리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사람마다 빛이 나는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측면에서 빛이 나고 다른 사람은 저러한 측면에서 빛이 난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 빛이 나는 측면을 보고 ‘나는 왜 저러지 못하지?’ 하는 열등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어떤 때는 다른 사람의 먼지 앉은 면을 보며 안심한다. ‘봐 저 사람도 저런 면이 있지. 나만 이상한 것은 아니야.’ 하면서 안심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들 사이의 차이란 ‘닦여진 면의 차이’라는 말이 된다. 어떤 사람은 1020개 면의 먼지가 닦여 빛이 나고, 어떤 사람은 100개 면의 먼지가 닦여 있고, 어떤 사람은 10개 면의 먼지가 닦여 있고, 어떤 사람은 한 면도 닦이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닦여진 면이 많은 사람은 빛이 많이 날 것이고, 닦여진 면이 적은 사람은 빛이 적게 날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다이아몬드라고 말해주니 기분이 좋기는 하다. 결국은 우리는 닦으면 되는 존재라는 말 아니겠는가? 이 말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한 면도 닦이지 않은 사람은 먼지만 뽀얗게 앉아 있어 빛이 전혀 나지 않기 때문에 본인도 옆 사람도 다이아몬드인 줄 모르고 살기는 하지만 기실은 우리 모두가 다이아몬드라는 말이 되니까 말이다. ‘나는 다이아몬드가 아니야.’ 하면서 괴로워하면서 사는 것보다는 ‘나는 다이아몬드일 거야.’ 하면서 자신을 닦으며 사는 쪽이 남는 장사일 것이다. 설사 다이아몬드가 아닐지라도 닦다보면 다이아몬드 비슷해질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다이아몬드임을 믿고 먼지를 열심히 닦는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그러면 그 수천개면이 다 닦인 존재가 있을까? 만약에 있다면 그 후보는 예수나 석가모니쯤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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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다이아몬드에 앉은 먼지에 신경 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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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서 먼지가 앉은 면을 보는가, 빛이 나는 면을 보는가? 타인에게서 단점을 보는가, 장점을 보는가? 우리의 마음에는 타인의 단점과 어두움에 대한 친화성이 있다. 타인의 단점을 봐야 내가 그 사람보다 못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안심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일단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단점부터 보게 된다. 인간 인식의 한계상 단점부터 보게 되지만 이 때 타인의 단점에 안심하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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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열등감을 묻어버리기 위해 타인의 단점을 자꾸 보아 버릇하면 타인과의 관계가 엉킨다. 누가 자신의 단점을 보는 데에만 유능한 옆 사람을 좋아하겠는가? 우리가 타인의 단점을 보게 되면 마음 안에 은근히 그 사람을 무시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을 무시하는 방식의 표정을 짓거나 행동을 하게 된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무시하는 기운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당연한 결과로 인간관계가 나빠지게 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나 나나 어느 만큼 못났고 어느 만큼 잘났을 뿐이다. 우리는 흔히?늘 어떤 사람의 못난 면을 보고 무시하거나 그게 아니면 잘난 면을 보고 주눅 든다. 인간에 대한 성숙한 이해란 그의 잘난 면과 못난 면을 함께 보고 통합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성숙한 인간은 자신의 잘난 면과 못난 면을 함께 보고 통합해서 이해한다. 그리하여 그러한 사람에게는 잘나고 못나고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도 나도 수천면체 다이아몬드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천개의 면을 열심히 잘 닦아내는 것뿐이다. 남의 다이아몬드에 얼마나 먼지가 앉아 있는지에 관심가지지 말자. 내가 거기에 관심 가진다고 내 다이아몬드에 빛이 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남의 빛나는 면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데 그치지 말자. 타인의 빛나는 면들을 보면서 나의 먼지 앉은 면을 닦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만도 짧은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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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질문,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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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는 어떤 다이아몬드인가? 어떤 다이아몬드이고 싶은가? 어떻게 닦아야 나는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다운 나여야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가 될 것이니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세상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나의 직업? 나의 학력? 나의 나이? 나의 성별? 무엇이 나인가? 일단 ‘나’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나의 ‘자기개념’이다. 우리는 타인이 나를 무시할 때 이 자기개념이 손상되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각자가 자기다울 때 편안함을 느낀다. 나에게 나 답지 않은 것이 강요될 때 소외감을 느낀다.

나는 나다울 때 행복을 느끼는데 도대체 어떤 때 내가 나다운 것인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보통 타인의 인정을 받을 때 충족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데 타인의 갈채를 받는 스타들은 타인의 갈채 속에서도 외로워한다. 그 외로움은 대중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이미지를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생겨난다. 내가 정말 나다울 때는 내가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 나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그 때는 그저 나일 뿐이다. 내가 정말 나다울 때는 나는 자유롭다. 내가 나다운 때에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다울 때는 나라는 존재도 잊고 시간도 잊는다. 그러나 거꾸로 나라는 존재를 잊고 시간을 잊었다고 해서 내가 나다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임이나 도박 등을 할 때 나라는 존재를 잊고 시간을 잊지만 그 때 ‘나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런 문제로 헷갈릴 경우에는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 나라는 존재도 잊고 시간의 흐름도 잊었는데 그 시간이 끝난 후 허무감이 엄습한다면 그 시간을 나는 중독현상으로 보낸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끝난 후 설명하기 어려운 충만감이 느껴진다면 그 때 나는 나다운 시간을 보낸 것이다.

게임을 했는데 게임의 운영에 나의 고유성이 반영되어 게임이 끝난 후에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 사람은 게임에서 자아실현을 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프로게이머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한 특별한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이 끝나고 나면 허무감을 이기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생활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다시 게임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게 된다. 현실에서는 성취감을 쉽게 얻을 수 없는데 게임은 중간 중간이라도 어느 정도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니까 게임에서 손을 떼기가 어려워진다. 그리하여 게임이 끝난 후 느껴지는 허무감을 잊기 위해 다시 게임에 몰두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이렇게 현실에서의 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집중현상은 중독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할 때 마음 안에서는 어떠한 불편의 신호가 울려 퍼진다. 무언가 ‘이게 아닌데’의 마음이 있다. 청소년들이 주목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할 때 말썽을 피우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부모와 사회에 알리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청소년들은 친구들과 함께 있는 군중심리에 사회가 금하는 행동을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안에는 ‘이게 아닌데’의 마음이 있다. 그래서 말썽 피운 학생들을 보면 도저히 그런 행동을 했을 것 같지 않은 착한 얼굴의 학생들이 꽤 있다.

나를 나답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어떨 때 나다워서 충족감을 느끼는지는 다양한 경험을 해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어느 때 내가 가장 편안하고 자유롭게 느끼는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 경험 속에서 이것을 평생 계속 한다고 해도 할 수 있겠는지를 물었을 때 “Yes”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그것이 나답게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래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잘 발휘하는 사람은 노래를 할 때 자유를 느끼고 시간을 잊는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만들 때 시간을 잊고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리고 그 물건을 잘 만든 자기 자신에 대해 뿌듯함을 느낀다.

나를 나답게 하는 일은 사회적 보상이 적게 주어져도(즉 보수가 적게 주어져도) 하고 싶어진다. 돈 때문에만 하는 일은 나를 나답게 하는 일이 아니다. 돈만 아니면 그 일을 하지 않고 싶다면 그 일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나답게 하는 일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 일을 평생 해도 후회가 없겠느냐?(그 일을 하면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와 ‘(생계 문제는 해결된다는 전제에서)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라고 정리할 수 있다.

청년들의 경우에는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해보면 어떤 유형의 일에 자신의 재능이 잘 펼쳐지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은 자신의 재능이 잘 펼쳐지는 영역에서 일을 신나게 잘 할 수 있다. 맥주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다양한 술손님들을 만나면서 이런 유형의 손님들에게는 이런 식의 대응을 하는 것이 좋고 저런 유형의 손님들에게는 저런 식의 대응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아 아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사람 대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다양한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어떤 때 내가 나라는 존재까지 잊을 정도로 집중하는지 어떤 때 내가 가장 생기발랄해지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이 자기를 자기답게 하는 것을 알아가는 방법이다. 나의 경우에는 강의가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되거나 글이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써질 경우에, 대체로 나의 생각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할 때 충족감을 느낀다. 그 언어가 타인에게 전달되어 의미를 낳으리라 믿어질 때, 의미를 낳을 수 있도록 전달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될 때 충족감을 느낀다. 내가 추구하는 의미는 나의 강의를 듣거나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이 보다 더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있다. 그 때 나는 내가 살아 있다고 느낀다.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때, 그 때가 내가 나로 존재하는 순간이고 나다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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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만들어가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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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나’와 관련된 철학 개념이 바로 실존이다. 실존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문제 삼을 수 있는 인간 존재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은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지? 왜 이것밖에 안되지?’ 하는 고민을 하지 못한다. 인간만이 이러한 고민을 한다. 이러한 고민은 일차적으로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고민이라는 느낌이 들겠지만 역으로 인간이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기에 꿈도 꿀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모습을 지향하는 능력 때문에 꿈도 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꿈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과 다르기를 기대하는 것’이므로 말이다.

인간이 다른 존재와 구분되는 특성은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해 반성하면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를 고뇌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만 이러한 실존적 성격이 있다. 사실 여러분들이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라는 제목에 끌려서 이 책을 펼치게 되는 것 자체도 여러분 안에 실존으로서의 특성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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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 독일의 철학자ⓒbetterworldbooks.com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 독일의 철학자ⓒbetterworldbooks.com

인간 안에는 스스로의 결단을 통해 자기의 존재를 형성해나가는 측면이 있는데 이 측면을 실존철학에서는 ‘실존으로서의 자기’로 본다. ‘실존으로서의 자기’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냥 ‘실존’이라고 하면 ‘실존’이라는 존재자가 따로 있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물론 철학자들도 굳이 ‘실존으로서의 자기’라고 표현하지 않고 그냥 간편하게 ‘실존’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이게 아닌데’의 느낌이 인간에게 있다는 말을 했다. ‘이게 아닌데’의 느낌은 내가 실존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때 받게 되는 느낌이다. 인간에게는 실존으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경향성이 있다. 실존으로서 존재할 때 나는 자아실현이 된다고 느낀다. 자아실현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바깥으로 끄집어낸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존철학자 야스퍼스의 경우에는 ‘드러남으로서의 실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내 안에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이 있고 그 가능성이 실현되는 방식은 ‘드러남’이라는 것이다. 야스퍼스는 이를 ‘존재를 일으키는 드러남’이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당신은 내향적인가, 외향적인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이 두 성향이 섞여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처음에 이 단어를 활용해 자신을 내향적이라거나 외향적이라고 규정할 때는 어땠는가? 아마도 스스로 내향적이라는 규정에 맞추어 외향적인 특성을 도외시하거나 외향적이라는 규정에 맞추어 자신 안에 있는 내향적인 특성을 무시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점점 자기 자신을 알아가게 되면서 ‘어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나? 이건 외향적 특성 아닌가? 내가 내향적인 것만은 아니네.’ 혹은 ‘이건 내향적 특성 아닌가? 내가 외향적인 것만은 아니네.’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어떤 하나의 일관된 특성이 나에게 있어서 그 특성이 일정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알 수 없는 심연으로서의 나’이고 그 ‘나’가 세상과 만나는 방식에서 내향적인 특성으로 드러나는 때도 있고 외향적인 특성으로 드러나는 때도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 ‘알 수 없는 심연으로서의 나’가 세상과 만나는 방식 자체가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내준다. 그러니까 세상과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나의 모습이 나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내향적이니 외향적이니 하는 규정 속에서 내향적 혹은 외향적인 방식으로 나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 불편해지면 더 편해지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즉 내향적으로 행동하려 했는데 그게 불편해서 외향적으로 행동하기도 하고 외향적으로 행동하려 했는데 그게 불편해져서 내향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여기서 ‘이건 아니다’라는 식으로 불편을 느끼는 것은 나의 ‘알 수 없는 심연’에서의 울림이다. 나의 마음의 결인 것이다.

나의 마음의 결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의 마음의 생김새가 어떠한지는 나도 다 알 수 없다. 세상과 만나는 방식에서 이러저러한 부딪침에서 나의 마음 생김새를 느껴갈 뿐이다. 나는 나의 마음 생김새를 느끼면서 또 행동들 속에서 나를 만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존재를 일으키는 드러남’이다. 행동으로 존재를 구성해가기 때문에 ‘존재를 일으킨다’고 표현하는 것이고, 그것이 세상과 만나는 방식에서 표현되기 때문에 ‘드러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 하나 하나가 다시 나를 구성한다. 여기서 그 행동 하나 하나를 결정하는 것에 주목한 철학자들이 바로 실존철학자들이다.

장폴 사르트르(Jean-Paul Charles Aymard Sartre, 1905~1980),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작가ⓒmirror.enha.kr

장폴 사르트르(Jean-Paul Charles Aymard Sartre, 1905~1980),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작가ⓒmirror.enha.kr

인간존재의 본질이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기 자신의 독자적 결단을 통해서 그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형성한다고 보는 데에 실존철학의 특징이 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J.P.Sartre)의 선언이나 “인간은 자유 그 자체이다.”는 야스퍼스의 선언은 실존철학의 근본입장을 잘 드러내준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것의 의미는 인간 실존은 이미 주어진 본질에 따라 그 본질을 실현하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이 어쩌니 저쩌니 해봐야 나의 실존이 가장 1차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자유 그 자체이다’는 야스퍼스의 선언은 말 그대로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존재, 스스로를 결정하는 자유의 존재라는 의미이다.

나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 주어진 환경에 의해, 사회시스템에 의해 결정된 존재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는 내가 결정하는 존재이다. 유전적 요인과 주어진 환경, 사회시스템이 유사해도 각자 각자는 다르게 행동한다. 왜 다르게 행동했는가를 물으면 그 당사자도 대답하기 어려워진다.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무의식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만 설명하기도 어렵다. 각자의 알 수 없는 심연의 고유성,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사회시스템 등의 변인이 만나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가 구성된다.

나는 구성되는 동시에 스스로를 구성한다.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사회시스템 등의 변인은 나를 구성하기는 하지만 그 구성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고 그 구성을 조직해 나가는 것은 ‘나의 알 수 없는 심연’이다. 그러니까 알 수 없는 심연의 고유성,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사회시스템 등의 변인의 복합체가 나인 것이다. 이 네 변인 사이의 역학관계가 어떠한지 까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여러 가지 학문이론으로 이 변인 사이의 역학관계를 알고자 노력할 뿐이다.

알 수 없는 심연의 고유성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학문이 실존철학이고 유전적 요인을 통해 인간을 설명하려는 학문이 생물학이고 환경적 요인과 사회시스템 등의 변인을 통해 인간을 설명하려는 학문이 각종 사회과학인 것이다. 이러한 학문을 통해 인간을 이해해도 여전히 남는 것은 ‘내가 원하는 나’로 살려면 ‘내가 원하는 나’가 되기 위한 각종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경우에는 무의식이나 유아기의 애착관계를 통해 인간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나 정신분석을 통해 지금의 내가 왜 이러한 마음 생김새를 가졌는지가 밝혀진다 해도 여전히 남는 문제는 지금의 나는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형성한 것이 유아기의 잘못된 애착관계라고 해도 내가 지금 유아기로 돌아갈 수 없는 바에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유아기의 잘못된 애착관계’에 대해 내가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그 ‘유아기의 잘못된 애착관계’를 원망하면서 남은 인생을 낭비할 것인지, 그 ‘유아기의 잘못된 애착관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해서 자신의 원하는 모습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의 결정 말이다. 더 많이 후회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후회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인가는 나의 결정에 따른 일이다.

설사 생물학이 맞고 사회과학이 맞고 정신분석학이 맞다 해도 얼마만큼이나 맞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이 학문들을 신뢰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이 학문들의 결론으로 인해 결정당해서 우울해지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이 학문들이 실제로 상당히 타당하다고 해도 나는 ‘그러한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 존재’로 살 때보다 ‘내가 결정하는 나’로 살 때 더 행복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분명하지 않은가? 나는 내가 만들어가는 존재로 살 때 행복하므로 열심히 나 자신을 ‘내가 원하는 나’로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나’로 살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질문,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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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네그리 외 <탈정치의 정치학>[철학자의 서재]

안토니오 네그리 외 <탈정치의 정치학>[철학자의 서재]

김범수(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2008년 촛불의 진짜 ‘배후’!

 

자율의 이중성

 

5공화국 시절 중고등학생들에게 ‘자율’이라는 말은 환영과 동시에 엄청난 부담감을 안겨주었다. 전두환 정권의 포퓰리즘은 프로스포츠, 국풍사업뿐 아니라 학생들의 두발 자율화, 교복 자율화를 들고 나왔다. 그 당시 학생들은 그 자율화를 반겼다. 교복은 학생들을 억압해왔던 ‘상징’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 ‘상징’이 무너지는 것은 학생의 인권 신장이라는 막연한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자율화는 학교의 권위, 교사의 권위 앞에서 다른 방식으로 코드화되어 학생들을 억압했다. 아무리 두발 자율화라고 하지만 머리 긴 것은 용납이 안 된다. 그리고 여지없이 ‘바리깡’을 들고 교실을 감시하는 교사. 결국 자율은 또 다른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을 주입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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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3일 시청앞 광장 촛불 집회ⓒWikipedia

이런 자율의 이중성은 학생들의 두발이나 교복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자율주의’라는 말은 아마도 2008년 촛불집회 때문에 널리 보급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해 5월, 6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였다. 그리고 그 현상은 아직도 우리 사회 변혁을 진단하는 변곡점으로 파악된다. 촛불문화제의 모습은 여느 시위 문화와도 달랐다. 행사를 주도하는 단체도 없고, 모인 주체도 특정한 하나의 집단으로 말할 수도 없는 형태였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줌마, 넥타이를 매고 나온 회사원, 교복 차림으로 나온 고등학생들, 심지어 질서와 안전 지킴이를 자처하고 군복을 입고 나온 예비군까지. 그들은 다양한 정보를 공유했고, 수준 높은 지식으로 소통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다중지성’ 혹은 ‘집단지성’이라 칭했다. 그리고 그 집단지성은 즐겁게 놀면서 싸우고, 자율적으로 움직였다.

제발 해산하자는 말을 듣지 않은 채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과 횡단보도 놀이를 하며 거리를 활보했던 사람들. 이러한 자율은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분화되었다. 쌍용자동차, 기륭전자의 싸움에 화답했고, 밀양 송전탑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저지 등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매체인 팟캐스트를 통해서 소수자들의 목소리, 사회 정의의 목소리를 담았다.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특이한 개체들로 모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집단의 자율은 제도적 폭력 앞에 다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공권력이라는 구실로 물리적인 폭력이 행사되었다면, 지금은 재편된 제도를 이용한 경제적인, 혹은 정신적인 폭력이 자율을 억압하고 있다.

 

다중지성과 자율의 이론적 모델?

 

탈정치의정치학

▲ <탈정치의 정치학 : 비판과 전복을 넘어 주체성의 구성으로>(안토니오 네그리 외 지음, 워너 본펠드 엮음, 김의연 옮김, 갈무리 펴냄) ⓒ갈무리

여기서 자율주의는 안토니오 네그리가 행했던 ‘아우토노미아(autonom?a)’를 번역한 말이다. 시기적으로 보자면 1968년 이후 70년대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 운동 과정에서 등장하는 일련의 운동, 특히 네그리가 이론적 중심이 된 모델이 바로 아우토노미아(자율)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도 촛불집회 때문에 아우토노미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이 내용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이미 90년대부터였다. 주로 조정환, 윤수종 등이 적극적으로 번역하고 소개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안토니오 네그리 등이 쓰고 김의연이 번역한 <탈정치의 정치학>(갈무리 펴냄)인데, 그 내용은 아우토노미아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론가들의 논쟁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여러 이론적 상황들을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 명의 저자가 쓴 책이라면 일정한 흐름이 있는데, 불행하게도 이 책에서는 그런 흐름을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의 매력에 빠지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책에 접근하기 위한 기본적인 문제 상황과 이론적 배경을 간략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990년대 이른바 ‘한국의 좌파’는 공황상태에 빠져야 했다.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이 몰락하고, 독립 국가들이 탄생하는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폐해를 말하기 위해 그 반대편에 있었던 집단이 필요했으니 그 집단이 사라진 것은 매우 큰 충격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자본주의 체제의 절대적 승리라는 주장에 넋을 놓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분명 자본주의는 구조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자본주의도 완전체가 아니라 투석 치료를 받아야하는 신부전증 환자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르크스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서구의 마르크스주의의 스펙트럼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재조명하게 되고, 국내 소개하게 되었다.

 

먼저 마르크스의 <자본> 분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류가 있었다. 그래서 알튀세르를 비롯한 프랑스 사회철학자들의 이론이 도입되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아예 마르크스주의와 결별을 선언한 그룹도 탄생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계열이 그것이었다. 물론 이런 부류 외에 전통적으로 존재해왔던 스탈린주의를 배격한 마르크스-레닌주의나 레닌조차 배제한 마르크스주의 등의 관점들이 존재한다. 이런 스펙트럼에서 자율주의는 어느 편에 속해 있을까?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

 

이 책을 엮은 본펠드는 자율주의를 ‘이단적 마르크스주의’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 의미는 ‘정통’에 대한 지위를 거부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여러 명이고, 그래서 이 저자들 모두가 이런 입장이라고 단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스스로 이단적 마르크스주의라는 멍에를 쓴 이 모든 글에서 공통적인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 위기를 인정하지만, 포스트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이론을 ‘마르크스를 통해서’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재확인시켜주는 부분이 이 책의 3장 ‘맑시언의 범주들, 자본의 위기,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적 주체성 구성’이다. 이런 공통적인 흐름은 이 ‘이단’이 단순히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마르크스를 넘어서 마르크스로 향한다는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여전히 자본 안에서, 그리고 자본에 대항하면서 자본을 넘어서는 노동의 역량을 긍정한다. 그리고 이것이 마르크스의 중심적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율주의의 이론적 배경을 좀 더 알아두어야 한다. 이 책의 매력에 빠지기 힘든 것은 바로 배경 지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다. 먼저 노동의 역량에 대한 부분을 보충 설명해 보자.??

 

Baruch Spinoza(1632~1677)ⓒWikipedia

Baruch Spinoza(1632~1677)ⓒWikipedia

스피노자 철학에서 핵심 개념 중 하나로 ‘코나투스(conatus)’가 있다. 이 말은 ‘생을 지속시키려는 힘’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철학사에서 오랫동안 이단으로 취급받던 인물이다. 그런데 프랑스를 중심으로 스피노자를 재해석하기 시작한다. 그중 스피노자의 ‘역량(potentia)’이나 ‘정동(affect)’ 따위의 개념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중요 개념이 된다. 네그리를 비롯한 자율주의 사상가들도 이런 해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물론 네그리가 프랑스 사상가는 아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정치적 박해 때문에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했고, 여기서 가타리, 알튀세르를 비롯한 여러 철학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특히 네그리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개념을 특정한 개체에 한정시키지 않고 집단에 활용했다. 그래서 집단적 코나투스에 해당하는 ‘다중의 역량’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는 명목상의 권력을 비판하고, 모든 권위에 대한 부정과 저항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자본의 권력과 부도덕한 권력에 대항하여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주체성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 집단의 힘은 강할 수는 있지만, 결코 사회 변혁이라는 구도로 배치된다는 보장은 없다. 여기에는 반드시 독특한 주체 개념이 상정되어야 한다.

 

네그리는 <전복의 정치학>(최창석·김낙근 옮김, 인간사랑 펴냄)에서 주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적이면서도 프롤레타리아적이고 다양하면서도 평등에 대한 집단적 요구를 하며 정치적 타협을 하면서도 생존과 투쟁을 위한 윤리적 결단을 추구하는 주체.”

 

비록 포스트모던한 사상가들이라고 하는 인물들 중 일부는 주체에 대해서 개체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있거나 주체 중심의 사고를 거부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변화의 중심을 이끌어갈 수 있는 주체는 필요하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이성주의의 그림자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개념이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제국의 논리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고유한 역량을 탈정치의 윤리적 성격으로 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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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체들은 노동의 조건 자체가 변화되는 상황과 함께 연구된다. 자율주의에서는 이러한 변화와 연관해 ‘비물질적 노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말은 스피노자의 정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감정 노동’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업을 비롯해서 정신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노동이 증가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과거에 이런 노동은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지 않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새로운 생산 패러다임을 갖게 만들었으며, 이런 패러다임은 생산의 탈중심화, 탈장소화를 가능케 했다.

 

이런 노동의 양식은 자본의 운동 방식을 재탐색하게 한다. 이 책에서는 1장 ‘태초에 절규가 있었다’와 8장 ‘자본이 운동한다’에서 자본 권력이 아니라 불복종적인 노동의 역량을 다루고 있다. 또한 7장 ‘발전과 재생산’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소통과 접속의 확장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서 자율 공간의 창출에 공헌하는 주체성에 대한 논의를 분석한다.

 

형용모순처럼 보이는 탈정치의 정치

 

일상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탈정치인 것으로 각인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중립적인 태도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율주의에서의 탈정치란 이렇게 정치에 무관심한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인간을 규정하는 말 중에서 ‘사회적 동물’이라는 정의가 있다. 원래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말을 번역한 것인데, 정확한 번역이 아니라고 비판받고 있다. 적절한 번역 용어는 ‘정치적 동물’이다. 이 말은 인간이 고대 도시 국가인 폴리스에 거주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혹은 경제적인 것)을 엄밀하게 구별하게 된다. 공적인 것이란 폴리스 전체와 관련된 일이고, 사적인 것이란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적인 것으로 한정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즉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이 서로 구별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경제 체제인데 어떻게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제외하고 공적인 것을 말할 수 있을까?

 

자율주의에서 탈정치는 엄밀하게 보자면 공통적인 것의 복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공통적인 것에는 사적 소유 관계와 신자유주의적 전략들에 대립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자본은 자신의 소유 관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국가라는 허울을 쓰고 있고, 이 국가들은 다시 자본의 논리에 맞춰 제국주의적 성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먹고사는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의 모든 성원들에게 공통적인 것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탈정치는 역설적으로 매우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런 고민을 10장 ‘정치적 공간의 위기’와 13장 ‘공적 공간의 재전유’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자율주의의 문제의식과 추이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이 책엔 우리 현실과 비교해서 사색의 깊이를 더할 내용이 많다. 자율에는 반드시 통제가 뒤따라왔다. 그런 의미에서 자율이 통제 사회 안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기 위해서, 집단들의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가치의 전유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고민을 통해서 현재 우리 사회에 놓여 있는 통제 사회의 징후를 차단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을 깊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자율주의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지 않다. 이 책을 재미있게?읽기 위해서는 조정환이 쓴 <아우또노미아>(갈무리 펴냄)나 윤수종의 <안토니오 네그리>(살림 펴냄)와 같은 책을 미리 읽어보길 권한다.

 

 

 

 

<나르시시스적 공상으로부터 깨어나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④-2

<나르시시스적 공상으로부터 깨어나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④-2

박은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이 글은 박은미의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2013, 소울메이트 출판사>의 내용을 개제한 것임을 밝힙니다.

 

잘못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말고 반성하자

 

?‘틀리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를 잘 검토해보면 그것 자체가 교만임을 알 수 있다. 자기 자신이 틀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틀렸다는 것 자체에 대해 그리도 분노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 잘못을 계속해서 반복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수용하려다보면 그 잘못을 끊어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이 잘못을 했을 때 피해야 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가 있다. 하나는 그 잘못으로 인해 너무 화가 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너무 느슨하게 ‘그럴 수도 있지 뭐’로 용인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화를 내면 다시 그런 일을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는 하지만 너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다른 사람의 실수에도 상당히 경직된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게 어떤 실수에도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해.’ 하면서 용인해버리면 반성이 안 되어 다시 동일한 잘못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양 극단의 태도 사이에서 적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화내지 않으면서 잘못의 내용만을 깊이 의식해야 한다. 잘못을 했을 때 그것이 잘못임을 깊이 의식하고 다시 이 잘못을 하지 않으려면 어떠한 점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한 후 다시 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 좋다. 자책이나 후회를 하지 말고 반성을 하자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떤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문제와 어떻게 적절하게 관계설정을 할 것인가이다. 문제없는 사람은 없으니 나는 나의 문제와 함께 잘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려 들지 않게 되고 대신에 완전하거나 자족감을 주는 이미지에 자신을 투사하려고 애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게 되기 때문이다.

완전하거나 자족감을 주는 이미지에 자신을 투사하려고 애쓴다는 것은 완전하거나 자족감을 주는 이미지를 자신의 마음 안에 심어놓고는 자신이 그 이미지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자꾸만 확인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잘났다’는 전제에 매여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보지 않기 위해 타인의 열등한 부분을 찾아내고 타인을 아래로 쳐다보는 태도를 취하며 안심하려 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슬픈 시도이다. 누구와 비교해보아도 다른 사람에게는 나보다 잘난 부분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약점은 언제나 발견되게 마련이라 이는 영원히 성공할 수 없는 시도이다. 이러한 시도는 스스로를 소외시킨다. 이는 결국 자신의 진짜의 모습을 볼 용기가 없어서 자꾸만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으면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게 된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으면 자신이 잘났음을 확인해야만 안심하는 심리구조를 가지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나르시시르적 공상에 매인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스스로를 열등하게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자신의 진실에 접근할 자신이 없는 사람이 나르시시스적 공상에 지나치게 빠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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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ho and Narcissus-John William Waterhouse

John William Waterhouseⓒko.wikipedia.org

자신의 단점을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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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의 단점을 무시하지 않는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함께 볼 용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단점을 볼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에게 나르시시스적 허상을 자꾸만 덧씌우려 하지 않는다.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수용해 장점은 유지하고 단점은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그러한 단점을 가진 자기를 혐오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단점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단점을 보지 않으려 너무나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고 자기가 원하는 자기상을 유지하기 위해 정신적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하게 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단점을 볼 용기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단점과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싫어한다. 오히려 자신의 단점과 잘 화해하는 사람을 멋있다고 느낀다. 누군가가 단점을 가지고 놀림거리로 삼아도 “그래! 나 그런 단점 있어! 그게 뭐 어때서?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의 당당한 태도를 취하면 그 사람을 멋있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쪽에서는 별 말 없이 던진 말인데도 그 말에 열등감을 느끼고 피해의식을 가진 반응을 보이게 되면 그런 사람을 대하는 것이 불편해지고 힘들어진다. 자신의 단점을 당당하게 수용하는 사람은 멋있게 느끼게 되지만 자신의 단점에 주눅들어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사람이 오히려 더 우스워보이게 된다.

인간이란 존재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확대해나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나르시시트들의 경우는 그럴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진실된 자기를 만나지 못하고 거짓된 자기상에 매달린다. 그래서 타인이 자신의 문제를 지적하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힘들어하게 된다.

열등감에 시달린다는 것은 내가 우월해야 하는데 우월하지 못해서 화가 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람이 잘 하는 부분과 내가 잘 하는 부분은 달라. 그 사람이 잘 하지만 내가 못하는 부분도 있고 그 사람이 못하지만 내가 잘 하는 부분도 있는 거야. 내가 잘 하는 부분이 없다면 지금부터 발전시키면 돼! 걱정한다고 해서 내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니까 걱정하는 데에 시간을 쓸 필요는 없어.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는 거야. 완벽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야.’의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만약에 자신이 나르시시스적 공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 문장들을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하루 한 번씩(혹은 자신감이 떨어질 때마다) 거울을 보며 자기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현대는 우리에게 나르시시스적 공상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소중한 나를 위해 물건을 소비하라고 속삭인다. 성공이 전부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성공은 소수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한 실패자로 낙인 찍혀 살아간다. 무한경쟁의 사회에 살아가면서 우리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사회적 인정을 받기는 어렵다. 그래서 원하는 만큼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우리는 사회적 인정을 받는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그 나르시시스적 공상을 충족시키기도 한다.

사생팬이니 이모팬이니 하는 것은 모두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현실의 자기는 너무나 초라하지만 내 대신 내가 받고 싶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주는 그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기 힘들다. 그 스타와의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대리만족이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이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누구나 어느 측면에서는 못났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잘난 면을 잘 발전시켰을 뿐이다. 그 사람에게 못난 면이 전혀 없다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나에게도 못난 면이 있을 수 있고 타인에게도 못난 면이 있을 수 있다. 존경하고 싶은 사람의 결여에 너무 마음 다칠 필요도 없고 나 자신의 못난 면에 너무 절망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다 어느 만큼은 못났고 어느 만큼은 잘난 것일 뿐이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을 열등하다고 평가해야만 나 자신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인과 나의 각각의 유일무이한 존재 가치를 인정해주면 남과 나를 동시에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남과 나는 다르기 때문에 타인의 독특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나의 독특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의 독특성과 타인의 독특성을 그 자체로 존중해주면서 나 자신은 물론 다른 이들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래서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러면 옆 사람들이 나의 미소를 되받아 주어 행복해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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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철학자의 서재]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철학자의 서재]

?오상현(숭실대학교 강사)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나는 스댕 요강과 1986년을 기억한다”

 

우연한 기회에 <사당동 더하기 25>(조은 지음, 또하나의문화 펴냄)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나타내듯, 사회학자인 저자가 바라본 25년 가난의 기록들을 그림을 그리듯 잘 표현했습니다. 서평을 쓸 생각에 책을 읽다가 계획을 바꿨습니다. 사당동 사람들은 저자의 연구 대상이기 이전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한 기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서평은 서평이 아닙니다. 그저 어린 시절의 지독한 가난을 기억하는 한 젊은이의 고백입니다.

 

“엄마랑 아빠는 진짜 힘들게 살았다. 너희 두 남매만 집에 남겨두고 일하러 갈 적엔 마음이 정말 …….” 사당동 시절을 떠올리던 엄마는 눈물부터 흘린다. 이제는 아줌마보다 할머니에 가까워진 이 여인의 눈물 앞에 나는 말을 잃고 말았다. 애당초 인터뷰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사당동’은 한숨과 눈물의 다른 이름일 테니까.

 

사당동 더하기 요강

 

▲ (조은 지음, 또하나의문화 펴냄). ⓒ또하나의문화

▲ <사당동 더하기 25>(조은 지음, 또하나의문화 펴냄). ⓒ또하나의문화

부모님은 내가 네댓 먹었을 때 서울로 상경했다. 첫 번째 도박이었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살던 시골에서 위로 형과 누이를 셋이나 두었고, 아래로 동생 둘을 두었던 아빠. 여기에 엄마와 자식 둘까지 거두어 먹이려면 농사일만으로는 답이 안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서울행, 원래 잃을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 중대한 선택을 쉽게 하는 법이다. 그런 선택이란 사실 강요되는 것이니까.

사당동을 생각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첫 번째 물건은 ‘요강’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요강을 ‘방에 두고 오줌을 누는 그릇’이라고 정의하는데, 실제로는 똥도 눈다. 멀쩡한 화장실을 놔두고 왜 요강을 방에 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소리다. 요강을 방에 두고 쓰는 것은 화장실이 없어서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라는 사실. 우리 집은, 아니 우리 방은 (어차피 단칸방이었으니까) 반지하로 주인집을 떠받치고 있었는데 화장실은 그 주인집 마당에 있었다. ‘쾅’하고 대문 여닫는 소리가 주인집을 거슬리게 할까봐 해질녘이면 요강이 등장했다. 마치 해가 지면 나타나는 달과 같았던 은빛 스댕의 요강.

 

‘아이들을 방 안에 둔 채 문을 잠가 두고 일 나가는 경우도 흔했다.'(132쪽) 정말 그랬다. 맞벌이가 아니면 버티는 것조차 까마득하게 먼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시던 엄마가 잘 놀고 있으라고 손을 흔들며 문을 닫으면, 이내 ‘철컥’하고 자물통 잠기는 소리가 났다. 밤이 되어 다시 그 자물통 소리가 날 때까지, 잠긴 방 안에 남겨진 (둘의 나이를 합쳐도 겨우 열 살 남짓이던) 남매가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일은 단 두 가지다. 아직 중천에 이르지도 않은 해가 어서 빨리 서녘으로 지기만을 바라는 일, 그리고 남겨진 밥상을 비우고 텅 빈 요강을 채우는 일이었다. 넘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당동 더하기 산동네

 

아빠는 사당동 대부분의 아저씨들처럼 ‘노가다’를 다녔다. 내게는 ‘목수’라는 전문직에 종사했었다고 포장했지만 사실 건설 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였던 셈이다. 여러분이 한 번은 가 보았을 ‘예술의 전당’이나 ‘동작대교’를 짓는 일에 참여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서울 사람들은 이처럼 사당동 아저씨들의 덕을 한번쯤은 본 셈이다. 나중에는 둔촌동에 있는 시장에서 경비 일을 했다. 경비라는 직업도 사당동 아저씨들이 많이 하는 일이었다. 어쨌든, 아버지의 망치질은 여전히 경이로운 수준이라 환갑이 넘은 지금도 망치질은 손수 한다. 나는 장성한 아들이지만 나서지 않는다. 핀잔 섞인 눈총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작은 효라고 믿기 때문이다.

 

“일터 옮기는 일은 이들의 자의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자의처럼 보일 뿐 타의일 때가 더 많다. 이들의 직장은 거의 영세 업체들이어서 수시로 주인이 바뀌거나 부도가 나서 문을 닫는다. 또한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직장이기 때문에 월급이 조금이라도 많거나 노동 조건이 좋은 곳이 나오면 주저 없이 옮긴다.”(153~154쪽)

 

▲ 이 책의 토대가 된 사당동의 한 가정에 대한 긴 관찰을 영상으로 풀어낸 다큐멘터리 (조은, 박경태 감독)의 한 장면. 철거촌의 현장. ⓒhttp://indiespace.kr

▲ 이 책의 토대가 된 사당동의 한 가정에 대한 긴 관찰을 영상으로 풀어낸 다큐멘터리 <사당동 더하기 22>(조은, 박경태 감독)의 한 장면. 철거촌의 현장. ⓒhttp://indiespace.kr

엄마는 사당동 대부분의 아줌마들처럼 다양한 일을 했다. 남성시장 어귀에서 양말 장사도 했었고, 겨울이면 산동네를 돌아다니며 찹쌀떡이나 메밀묵을 팔았다. 당시 엄마의 나이는 20대 후반이다. “찹쌀떡~ 메밀묵~”을 외치며 산동네의 인적 드문 밤길을 홀로 다녔을 엄마다. 떡과 묵이 잔뜩 담긴 나무통의 무게보다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삶의 무게가 더 했을 그때, 그녀를 지탱해준 것은 나와 동생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이후 엄마는 가발공장엘 나가 미싱사로 일했다. 남성시장에서 아빠랑 같이 포장마차도 했었단다.

 

동작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돼서야 우리 남매는 감금에서 해방되었다.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었기에 알아서 문도 잠그고 학교에도 갈 수 있었다. 당시 사당동의 인구밀도는 상상을 초월해서 2부제 수업은 기본이었다. 오후반 수업을 받을 때, 한번은 집에서 놀다가 학교 갈 시간을 놓쳤다. 1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내 울다가 어떤 삼촌이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사실 지각을 한 것인데 사정을 들은 담임선생님이 없던 일로 해주었다. 그 덕에 나는 초중고 12년 동안 결석은 물론이거니와 지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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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 더하기 교통사고

 

’86 아시안 게임’이 한창이던 그 때, 사당동의 하늘에도 색색의 애드벌룬이 둥둥 떠 있었다. (<사당동 더하기 25>의 저자가 연구를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때다.) 바람에 날리는 그 풍선을 따라가다 나는 생애 최악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리뼈가 종아리를 뚫고 삐져나온 상황이었다고 들었다. 사고를 낸 아저씨는 이미 의식을 잃은 나를 안고 가까운 병원으로 뛰었다. 사당동 아이들은 늘 이런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시유지에 아무렇게나 지은 집들이나 축대는 언제 무너질지 아슬아슬했고, 구불구불 좁은 길에는 사각지대가 많아서 차 사고도 빈번했다.

 

가해자 아저씨는 적어도 양심적인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두 군데 병원에서 ‘다리를 절단해야만 한다’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애써 나를 세 번째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 세 번째 병원이 고석주 정형외과다. (자리는 옮겼지만 지금도 이수역 근처에 있다.) 당시 원장선생님은 다른 곳과 달리 일단 수술을 해보겠다고 했단다. 만약 실패를 한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7살 아이의 다리를 어떻게 쉽게 자르겠냐며. 휴대폰도 없던 시절, 길가에 뿌려진 아들의 핏자국을 따라 정신없이 당도한 병원에서 부모님의 하늘은 무너졌을 것이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20년 뒤에 나는 42.195킬로미터 마라톤 풀코스를 5시간 15분 만에 완주했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던 모양이다. 석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내게 아빠는 컬러텔레비전을 선물했다. 그렇게라도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었으리라. 생애 첫 텔레비전을 나는 보물처럼 아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우리 살림에 텔레비전이란, 상상도 못할 물건이었다. 그 신통방통한 텔레비전을 통해 ’86 아시안 게임’을 실컷 볼 수 있었는데, 내가 교통사고 당시를 정확하게 1986년으로 기억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텔레비전은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 집에 있었다.

 

100일을 넘기고서야 나는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큰 사고를 당하고 석 달 열흘 만에 나오는 것은 무리였을 테지만,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시골에 살던 아주 어린 시절, 나는 감기로 오랫동안 앓았던 경험이 있다. 피를 토할 정도였으니 감기보다 더 심한 병이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그저 나는 감기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병원비가 모자라 엄마는 하나뿐인 결혼 패물이던 금가락지를 내다 팔았다고 한다. 더 이상 내다팔 물건이 없는 가난한 자들에게 병원은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을 되팔 수는 없었을 테니까.

 

사당동을 떠나다.

 

철거를 앞두고 부모님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대부분의 사당동 사람들이 같은 고민에 놓였다. 또 다른 사당동으로 옮기거나 근처 위성도시로 떠나야 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또 철거를 당할 바에야 근처 지방으로 옮기는 게 나을 듯 했다. ‘안양, 시흥 등 서울 근처 위성도시로 빠져나간 경우도 상당했다.'(147쪽) 우리는 안양을 선택했다. 두 번째 도박이었다. 모은 돈을 모두 털어 철물점을 차렸지만 장사가 잘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비록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만 했지만 아빠에겐 ‘내 사업’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작은 방 하나가 딸린 가게로 이사했다. 역시 단칸방이었고 화장실도 밖에 있었지만 적어도 주인집의 눈치를 보지 않고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이 시절을 행복으로 기억한다. 안양 호계동으로 이사한 뒤로는 늘 가게(집)엔 아빠와 엄마가 있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었고,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할 수 있었다. 가난은 마치 그림자처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어서, 그 뒤로도 엄마는 꽤 오랫동안 하나뿐인 그 방에서 이런 저런 부업을 했다. 미싱을 돌려 가발을 만들기도 했고, 어떤 때는 전자부품을 끼우는 일도 했다. 전자부품 끼우는 일은 나도 참 열심히 했었는데, 파란색 플라스틱 가루가 많이 날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일을 하고나면 꼭 그 고약한 가루들이 밥 위로 올라와서 밥을 먹다가도 몇 번씩은 집어내야 했다. 귀찮아서 그냥 씹어 넘긴 일도 많았지만.

 

4학년이 되던 첫 날, 그러니까 1990년 3월 2일에 호계동으로 이사했는데, 그해 2학기에 나는 부반장으로 당선되었다. 부반장이 되고 얼마 뒤가 내 생일이었는데 나는 무턱대고 우리 반 아이들을 죄다 초대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까지. 네 식구 편히 눕기도 어려웠던 단칸방에 그 많은 아이들과 선생님을 초대할 발상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없는 살림에 무슨 음식으로 생일상을 차리겠는가? 1990년 그 해 생일에 30명이 넘는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왔다. 물론 천사 같았던 담임 홍금숙 선생님도 오셨다. 그날 엄마와 아빠는 열 마리가 넘는 통닭 값을 대야 했지만 나는 그날 받은 생일 선물(주로 노트나 연필)을 중학교 다닐 때까지 썼다.

 

당시 친구들을 적어도 내가 단칸방에 산다는 이유로 놀리지는 않았었다. 생일 초대에 응해준 친구들 중에는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와 잘 어울렸다. 찻길 하나만 건너면 논밭이 펼쳐졌기에 개구리도 잡고 흙장난도 많이 했다. 이후 그곳은 수도권 신도시를 대표하는 ‘평촌’이 되었고, 나는 그곳에 새로 들어선 범계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가난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뒤에 ‘부끄럽진 않아도 내세울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라고 고쳐 생각하게 되었다. 으리으리한 68평대의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서 생일파티를 하고 나오면서였다. 단칸방으로 돌아온 그날 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 <사당동 더하기 22>의 한 장면. ⓒmovie.naver.com

▲ <사당동 더하기 22>의 한 장면. ⓒmovie.naver.com

 

다시 사당동으로

 

이듬해, 철물점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은 부모님은 의왕시 변두리에 21평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물론 융자를 많이 끼고 샀으며 오래도록 갚아야 했다. 어쨌든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처음으로 단칸방을 벗어났다. 그러나 여유도 잠시,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자본은 밑바닥 경제까지 잠식해나갔다. 철물점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형마트에 밀려 점차 손님이 줄었고 대신 부모님의 한숨이 늘어갔다. 내가 안양시청에서 공익근무요원을 하던 때, 우리는 충남 공주로 내려와 떡방앗간을 시작했다. 세 번째 도박이었다. 또 다시 제로에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다시 또 10년이 넘게 흘렀고, 떡방앗간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목수였던 아빠의 빈틈없는 철저함과 악착같이 살아서 얻은 엄마의 넉넉한 마음이 근원이었다. 공주로 내려올 당시, 집안이 어려워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던 탓에 우리의 첫 ‘내 집’은 그대로 남았다. 나는 지금 부모님의 눈물과 피땀으로 얻은 그 집에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가난의 냄새는 무어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그 냄새는 어쩌면 찌든 때처럼 그들 삶 깊숙이 박혀 있어 좀처럼 씻어 내기 힘들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303쪽)

 

그렇다. 가난이란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굴레다. 지금 우리 가족이 이만큼이나 살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세 번의 도박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빠가 (비록 오른쪽 집게손가락 한 마디를 잃었지만) 건설현장에서 크게 다치지 않아서이고, 엄마가 (비록 미싱일 덕에 지금은 양쪽 눈이 성치 못하지만) 집을 나갔다거나 일수놀이에 돈을 떼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며, 우리 남매가 (비록 교통사고의 흉터를 훈장으로 남겼지만) 죽거나 큰 병에 걸리지 않아서이다. 억세게 운이 좋은 경우이기에 예외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예외는 예외일 뿐.

 

어떻게 우리 사회의 빈곤을 끊을 수 있을까?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되고 게으른 사람은 가난해 진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거짓이라는 것쯤은 이제 부연이 필요 없는 명제가 되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양극화는 가속화되고 있으며, 생활고를 이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웃들은 늘어만 간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공자 이래로 2500년 동안 우리는 늘 분배보다는 성장을 꿈꾸었고, 그래서 늘 부족하다고 여겼으며,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흙에 묻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게 (분배)되지 못함을 걱정하며,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치 않을 것을 걱정한다.’고 들었다. 고르게 (분배)되면 가난함이 없어지고, 조화를 이루면 부족함이 없어지고, 편안하게 되면 (마음을) 기울일 일이 없어지는 법이다.”(孔子曰, … 丘也聞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논어>, ‘계씨’)

 

나는 내일도 모교 강의를 하러 가기 위해 사당동을 지날 것이다. 인연은 인연인가보다. 지독한 가난의 냄새도, 은빛 스댕 요강의 기억도 이제는 가물거리는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이웃의 가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때마침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거짓말로 현혹하는 사람들을 걸러낼 시간이다.

 

 

<나르시시스적 공상으로부터 깨어나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④-1

<나르시시스적 공상으로부터 깨어나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④-1

박은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이 글은 박은미의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2013, 소울메이트 출판사>의 내용을 개제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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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로 메이(1909~1994), 미국의 실존주의 상담사ⓒLearnHub.com

롤로 메이(1909~1994), 미국의 실존주의 상담사ⓒLearnHub.com

마음속 깊이 진실로 자기를 아끼는 사람은 겸손하게 행동하는 데 반해 마음속에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자만심이라는 위안을 필요로 한다. – 롤로 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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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기를 원한다. 자신이 하루 학교를 가지 않으면 친구들이 모두 전화를 해대며 나를 걱정해주기를 바란다. 자신이 하루 회사를 가지 않으면 그 다음날 출근했을 때 사람들이 모두 내가 없어서 일을 처리할 수 없었다면서 내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하루 학교를 안 갔을 때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이라도 전화를 해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루 회사에 결근했을 때 업무내용 확인차 전화 한 번 오고 다음 날 출근했을 때 멀쩡히 어떻게 어떻게 처리했노라고 전달해주는 것으로 끝이다. ‘나여야 한다.’고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세상은 ‘너가 아니어도 별 상관은 없어.’의 태도이다.

나는 세상의 일부다. 그런데 세상의 일부인 나는 세상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곤 한다. 이는 나의 생각의 폭을 넘어서는 세상이 나의 생각의 폭 안에 들어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세상은 늘 나의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게 되어 있다. 나같은 사람이 수십억 명 모여서 만들어내는 곳이기에 세상은 늘 나의 생각을 벗어난다.

그래도 옳고 그름이라는 게 있지 않냐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인간다움을 저해하는 모든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다움이 어떠한 것이냐에 대한 합의는 어렵다. 여기서 상대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 옳고 그름도 따지고 보면 내 입장에서의 옳고 그름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다움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원칙은 유지하면서 그 방법론과 관련해서 너무 자기 방식을 고집하려다 보면 세상을 나의 폭에서 제한하려는 우를 범하게 될 가능성이 높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상은 나의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많고 많은 변인들이 복합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곳이기 때문에 내 눈에 옳은 것이 진짜 옳다는 보장도 없고 내 눈에 옳지 않은 것이 진짜 그르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내 수준에서 인간다움의 가치를 높이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생각한 방식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에 지나치게 스트레스 받고 세상에 대한 원한을 가지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좋은 일이 아니다. 내가 세상의 현실의 복잡한 변인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즉 나의 생각의 폭이 좁기 때문에 세상이 내 생각대로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나의 좁은 생각의 폭 안에 세상이 들어온다면 그 세상은 나만 자유롭고 다른 모든 사람의 자유는 억압되는 곳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이 내 생각대로 되어야 한다는 전제는 사실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가지게 되는 전제이다. 그런데 인간 누구나 가지게 되는 전제이기도 하다. 세상을 원망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려면 이 전제로부터 놓여 나야 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 전제로부터 얼마나 빨리 졸업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길 바란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싶어 하는 셈이다. 그래서 라이프니츠는 이 세상을 ‘가능한 최선의 세계’라고 한 것 같다.

생각해보라. 모두의 자유를 존중하려면 이러한 모습의 세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에 조물주가 계시다면 그 조물주는 이 피조물들의 자유를 지나치다싶게 인정해주는 조물주이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의 자유의지까지 인정해주니 말이다. 원칙적으로 누군가의 자유의지가 다른 누군가의 자유의지를 제한할 수 없게 만들어놓지 않았는가 말이다. 물론 세상을 사는 인간들이 이러저러한 사회제도로 누군가의 자유의지는 쉽게 실현되도록, 누군가의 자유의지는 쉽게 실현되지 않도록 구조화해놓기는 했지만 말이다.

여하간 분명한 것은 나는 세상의 일부고 세상과 나를 비교해볼 때 극히 미미한 변인일 뿐인 나의 마음에 맞게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내 맘 같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스스로에게 되뇌자. ‘세상은 나보다 큰데 어떻게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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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사고’에 빠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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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었으면 좋겠고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귀하게 여겼으면 좋겠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누구나 가지는 실현될 수 없는 희망이다. 나는 이를 ‘100% 사고’라고 부른다.

우리는 100%를 바란다. 한 명이라도 나를 싫어하는 것 같으면 얼마나 괴로워지는가를 생각해보라.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세상 모든 사람은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다. 심리학에서 비합리적 전제라고 정리해놓은 것 중에 특히 중요한 것에는 다음 4가지가 있다.

1. 인간은 모든 사람에게서 항상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

2. 인간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유능하고 성취적이어야 한다.

3. 어떤 사람은 악하고 나쁘며 야비하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비난과 저주와준엄한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4. 일이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은 끔찍스러운 파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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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cissus, Caravaggio(1573~1610)

Narcissus, Caravaggio(1573~1610)

내가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그런데 분명히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으면 굉장히 신경이 쓰인다. 이런 내용을 강의하러 다니는 나 자신도 전체적으로 상당히 좋은 강의평가에 한두 명이 약간만 안 좋은 소리를 해도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 우리의 마음 생김새가 그러한 모양이다.

물론 선천적으로 이러한 100% 사고에 잘 시달리지 않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100% 사고에 매이지 않는 사람보다는 매이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사실 이 100% 사고는 스트레스의 원천이다. 이 100% 사고만 하지 않아도 많은 심리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80%에 만족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80%에 만족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는 잘 비판해내지 못하면서도 타인에 대해서는 잘 비판해낸다. 그런데 그 나의 비판력으로 타인을 보면 타인에게서는 약점을 엄청 많이 찾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나는 내가 원하는 부분을 채워주지 못하는 타인을 보며 실망하게 된다. 자칫하면 우리는 80점인 사람을 -20점으로 대하게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나의 마음에 안 드는 점에 주목하다보면 나의 장점은 모두 잊고 마치 내가 단점만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80%에 만족하자는 생각은 사실 사람들이 말하는 ‘팔자’라는 것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을 통해서 할 수 있었다. 팔자(八字)라는 것은 나의 생년월일시에 오행, 즉 화수목금토의 다섯 종류의 글자가 모두 8개 정해지는 것을 말한다. 연월일시 4가지의 갑자에 해당하는 오행이 무엇이냐에 따라 나의 팔자가 확인된다. 그런데 이 오행의 다섯 글자가 골고루 들어가는 것이 좋은데 칸이 8개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8개의 글자밖에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다섯 글자를 골고루 2개씩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팔자를 산출하는 방식에서도 인간에게는 아쉬운 부분,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팔자 산출 방식을 보며 ‘인간에게는 100%가 불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는 학문상의 객관적인 근거는 없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생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은 타인에게는 100%를 요구하면서도 자신에게서는 약점을 보지 못하기 쉬운 존재라는 엄연한 사실 때문이다. 인식의 편향성에 따라 자신은 100%가 아니면서도 타인에게 100%를 요구하게 되면 인간관계에서는 갈등만 커질 수밖에 없다. 서로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라며 상대방의 단점에만 골몰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야스퍼스(Jaspers)의 말대로 타인이 신이나 성자 같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요구는 모든 관계를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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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괴롭히는 완벽에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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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의 허상은 늘 우리를 괴롭힌다. 만약 스스로에게 어떠한 부족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는 혹시나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끝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잘못된 전제가 우리를 고통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이다.

언젠가 집근처 골목을 지나면서 수도 없이 틀리는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되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틀리는 부분이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다. 더 세월이 지나니 이제는 몇 개의 음만 빼고는 틀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드디어 전혀 음이 틀리지 않는 연주를 기대해볼 수 있게 되었는데 결국 나는 완벽한 연주를 듣지 못했다. 하도 연습하는 것을 듣다 보니 나도 같이 연습하는 심정이 되었고 완벽하게 연주되는 것을 꼭 한 번 들어보고 싶었지만 연주하는 사람이 꼭 한두 음에서 틀리곤 했다. 한 두 음만 틀리지 않으면 되는데 틀리고 말 때에는 듣는 내가 다 안타까운 심정이 되곤 했다.

ⓒhttp://anngabriel.egloos.com/

ⓒhttp://anngabriel.egloos.com/

그 엄청난 연습량을 목격하며 도대체 피아니스트들은 평생 동안 완벽한 연주를 얼마나 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피아니스트들이 곡을 연습할 때 틀리지 않고 연주하는 경우보다는 틀리면서 연주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틀릴 때마다 틀린다고 괴로워한다면 그 사람은 제대로 연주 연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연습과정에서 수많이 틀려봐야 연주회에서 틀리지 않고 연주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설사 당일에 틀리지 않고 연주를 해도 연주한 당사자는 음은 틀리지 않았지만 어느 부분에서 연주기법 상의 실수가 있었다면서 또 괴로워하겠지만 말이다. 삶이 이렇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도 어딘가에서는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와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의 확률게임은 0.0001 vs 99.9999의 게임인 것이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수도 없이 시도하고 결과를 마음에 안 들어하고, 그러면서도 계속 시도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자기가 원하던 것과 조금 비슷한 결과를 얻게 되면 어느 정도 기뻐하고, 그러면서도 또 아쉬워하고…. 완벽한 연주 한 번을 하기 위해서 연주자는 수없이 틀린 연주를 하며 그 틀린 음들을 견뎌야 한다. 틀린다는 사실 자체를 견뎌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완전히 틀리지 않게 연주하기 전에는 연주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그것은 실질적으로 연주를 아예 하지 않겠다는 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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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③-2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③-2

박은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이 글은 박은미의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2013, 소울메이트 출판사>의 내용을 개제한 것임을 밝힙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잘 설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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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anyone’의 한 명에 불과한 존재로 여겨지는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며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된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야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단 비교를 시작하면 우리는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인간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나 나보다 나은 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런 면에서 나보다 뛰어나고, 저 사람은 저런 면에서 나보다 뛰어나다. 항상 내게 없는 능력이 다른 사람에게 있기 마련인 것이다.

이런 식의 비교 속에서 자꾸만 자신에게 절망하게 되면 화가 나게 되고 그러다보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미워지고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를 느끼게 된다. 자신에 대한 실망은 자신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학대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도 학대하는 방식으로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이 자기 주변 사람들은 공격하지 않겠는가? 알코올 중독이 되어버린 가장은 자신에 대한 실망이 지나쳐서 중독자가 된 것이고 중독자가 되어 다시 또 가족들에게 인정을 못 받게 되니까 가족들을 폭력으로 학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사회구성원들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한 사회구성원의 행복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제 순위는 13위인데 행복체감순위가 97위라는 것은 우리가 경제적 요인외의 다른 측면에서 사회구성원의 행복도를 상당히 저해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순위를 매기는 경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가시적인 성과는 단기적으로 나타나지만 이 과정에서 바로 행복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꾸미기_유럽2013.01 192비교는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 이렇게 비교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확인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현대인들은 자신의 고유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쓸 데 없이 타인과 비교하면서 열등감에 빠진다. 그러나 A에게는 A의 장점이 있고, B에게는 B의 장점이 있으며, 나에게는 나의 장점이 있는 법이다. 즉 우리 모두 각자의 장점의 내용은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비교를 부정확하게 하면서 각자의 장점을 제대로 인식해내지 못해 불행에 빠져버리곤 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우리는 타인의 장점과 나의 장점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장점과 나의 단점을 비교하고서는 열등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즉 ‘그 사람에게는 이런 장점이 있고 나에게는 이런 장점이 있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그걸 잘 하는데 나는 왜 그걸 못하지?’의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그 사람의 장점과 나의 장점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사람의 장점과 나의 단점을 비교하니 일이 더 커진다.

내가 모자라는 부분에 신경을 쓰다보면 그 부분에서 잘하는 남이 더욱더 눈에 띄게 마련이다. 잘나고 싶고 잘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남이 잘 하는 게 눈에 잘 보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를 하게 될 때는 자신이 그 사람의 장점과 나의 단점을 비교하는 식으로 잘못된 비교를 하지는 않는지, 그 사람이 가지지 않은 장점을 내가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를 제대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잘못된 비교 속에서 열등감에 시달리는 고통을 줄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열등감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가 어디에 열등감을 느끼는가 하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정보이다. 어차피 열등한 면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으니 나는 나의 열등한 면을 열심히 바꿔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미 생긴 열등감이라면 그 열등감을 분석해서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고 자신을 계발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것이 열등감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이다. 열등감을 느끼느라 고통스러웠는데 그 고통을 통해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면 정말 손해 보는 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아들러 역시 열등감을 ‘창조성의 원천’으로 보았다.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 단점이 있어서 큰 일이다.’라고 생각하면 문제는 아주 복잡해진다. 나에게는 나의 성향이 있고 그 성향이 나쁘게 발휘되는 때는 있을 수밖에 없다. 성향이라는 것이 좋게만 발휘되고 나쁘게 발휘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날씨가 변하지 않고 늘 똑같기를 바라는 것처럼 허황되다. 우선 나의 성향은 성향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나는 ~~한 사람이다.’라는 선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성향이 좋은 방향으로 발휘되도록 발현방식을 조절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단점이 있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과도한 비약을 해서는 곤란하다. 누구에게나 성향이라는 것은 있고 그 성향이 나쁘게 발휘될 때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젤름 그륀(Anselm Grun) 신부

안젤름 그륀(Anselm Grun) 신부

안젤름 그륀(Anselm Gr?n) 신부의 말대로 자신의 가치를 느낀다는 것은 모든 종류의 약점과 한계 속에서도 자기만의 고유한 가치를 의식함을 의미한다. 그는 『자기 자신 잘 대하기』라는, 우리에게 위로를 많이 주는 책에서 “나는 나에게, 내 실수와 약함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과 공감한다. 나는 그것들에게로 향한다. 그것들은 있어도 된다. 사랑하는 이의 눈길 아래에서 그것들은 변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의 약점이 ‘있어도 된다’는 것은 중요하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나에게는 이러한 약점이, 타인에게는 저러한 약점이 있을 뿐이다. 약점의 종류가 다를 뿐 약점 자체가 없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만 크게 보고서는 타인들이 모두 자신의 약점만 쳐다보며 비난할 것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타인들은 그렇게까지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나의 약점에 당당한 태도를 취하면 타인도 나의 약점을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내가 나의 약점에 신경 쓰면 오히려 그 태도가 타인의 공격성을 자극해 계속 공격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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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치는 내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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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를 듣는 대부분의 사람은 위안을 얻는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니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사실 근거가 없는 얘기이다.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또 철학은 삶의 범위를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유의미하게 언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철학적으로 따져 묻는 것은 별로 적합한 일이 아니기는 하다. 철학은 따져들 수 없는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다루어서도 안될 것이다.

17살의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은 선한 존재자의 작품일 수 없다!”고 일기장에 썼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깨달음을 전제로 해서 이 고통의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철학적으로 고민했다. 살다보면 조물주의 악취미에 대해 절망하는 때가 있다. 왜 존재하게 해서 이 고생을 하며 살게 만드느냐는 원망이 솟구칠 때이다. 사실 ‘세상의 이 모든 것이 왜 존재하는가?’, ‘왜 무(無)가 아니고 유(有)인가?’는 철학의 제1질문이다. 이 역시 답을 유의미하게 낼 수 없는 문제이지만 인간이면 묻게 되는 질문이다. 삶의 이유 자체에 대해서는 철학이 주는 답이 없다. 물론 철학자들은 답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이러저러한 이유를 찾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이유가 아니기 때문에 나의 삶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쇼펜하우어의 경우에는 20대 초반에 삶은 불쾌한 것이라고 결론짓고 ‘불쾌한 인생에 대해 사색하며 지내기로’ 결정한다. 수많은 철학자들의 철학을 접하다보면 그들의 철학 자체가 이유 없이 시작된 인생을 자기 나름대로 유의미하게 살다 가려고 노력한 흔적임을 느끼게 된다. 각자의 성향에 따라 체계적이고 정밀한 철학을 구축하기도 하고 문학적이고 울림이 있는 내용의 철학을 구축하기도 하지만 설명되지 않는 인생을 자기 나름대로 설명해내려는 그 노력이 가상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여하간 분명한 것은 자기 삶의 이유는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 인생의 색깔은 자기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 빈민운동에 헌신한 아베 피에르(Abbe Pierre)신부님

평생 빈민운동에 헌신한 아베 피에르(Abbe Pierre)신부님

아베 피에르 신부님은 인간의 삶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허락된 짧은 순간이라고 하는데 인생에 대해 이보다 더 맞는 답은 없는 것 같다.(지금 나는 논리적 설명없이 비약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비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사랑할 줄 아는 존재로 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논리를 펴는 편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 자체에게서 사랑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나오지는 않는다.

사랑은 자기중심적 논리를 극복하는 것이다. 물론 에로스에 입각한 남녀 간의 사랑의 경우 일정 기간 스스로 이 자기중심적 논리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 중에 한 명이라도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소홀한 것 같이 느끼게 되면 그 사랑이 아주 쉽게 파괴되어버리고 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사랑에도 계산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라는 말은 내가 손해를 보았다는 비명이다. 이 역시 사랑이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래서 주고도 잊어버리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인간은 준 것과 받은 것 중 준 것을 훨씬 더 잘 기억하는 편파성의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는 능력과 노력이 요구된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능력과 노력, 그리고 상대방의 고유성을 수용해주고 인정해주는 능력과 노력, 즉 전체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력과 인내력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관계가 부부관계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남녀간의 사랑이기 때문에 주고 받는 대차대조표를 많이 신경쓰게 되고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는 데도 상당한 노력이 든다. 또 부모 자식처럼 본능적으로 연결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많은 노력이 든다.

인간은 누구나 손해에 민감하다. 그런데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는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상대방이 나 때문에 손해본 부분은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내가 상대방 때문에 손해본 부분은 너무나 잘 의식하고 기억하는 인간의 인식구조상 사랑을 지속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1등 신랑감, 1등 신부감을 거론하는 데 부모의 유산까지도 감안하는 시대에,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느끼지조차 못하겠다는 시대에 자신이 손해 입는 것을 뻔히 목도하면서 상대방을 참아주는 일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혼률이 높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 대학생들을 보면 4명 중 한 명은 부모님이 이혼을 하신 상태에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한다. 이혼한 부모님을 원망하지 말라고 말이다. 내가 결혼생활을 15년 넘게 해보니 이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이다. 이혼이 자연스럽다. 자신이 잘 하고 상대방이 못한 것만 기억하고 상대방이 잘 한 것과 내가 잘못한 것은 의식하기 어려운 인간의 인식구조상 이혼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오히려 결혼이 참으로 부자연스럽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상대방의 생활습관과 가정환경 그리고 상대방 부모님의 비합리성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의 어두움 등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내하며 결혼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말한다. 이혼한 부모님을 원망하지 말고 결혼을 유지하고 계신 부모님을 존경하라고 말이다.

꾸미기_DSCN0699인간이 정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인간을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사랑임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노래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그런데 기실 사랑받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랑을 주는 것이다. 당신은 주변 사람중에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아마도 당신을 가장 사랑해준 사람일 것이다. 설사 당신이 괴롭힐지라도 당신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당신조차 당신의 가치를 의심할 때에도 당신을 믿어주는 사람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람을 두고 ‘가치가 있네 없네’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누가 감히 인간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겠는가? 나의 존재가치는 나만 결정할 수 있다. 내가 가치 있게 살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매일 필요가 없다. 사회가 인간의 가치를 등급화해서 그렇지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만든 돈에 다시 인간이 노예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현상 속에서 인간은 타인을 인간으로 대우하기보다는 나에게 얼마만큼의 화폐를 제공해줄 수 있는 존재인가를 계산해서 ‘가치 있는 존재/가치 없는 존재’로 나누어 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의심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얼마나 소비할 수 있는가’로 스스로의 가치를 가늠하는 체제에서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나의 가치를 내가 믿고 내가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가치 없는 존재란 없다. 존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 존재하고 있는 나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나의 가치에 대한 판단을 타자에게 맡겨버려서는 안 된다. 나의 가치는 내가 나 스스로를 믿고 나를 만들어나가는 데서 생기고 유지되는 것이므로 내가 만들어가기 나름이다. 나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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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후미코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철학자의 서재]

가네코 후미코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철학자의 서재]

박종성(호원대학교 외래교수)

 

짧은 삶과 옥중수고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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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가네코 후미코 지음, 정애영 옮김, 이학사 펴냄)ⓒ이학사

이 책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정애영 옮김, 이학사 펴냄)는 가네코 후미코가 옥중에서 쓴 글이다. 그러니까 옥중수고인 셈이다. 가네코 후미코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이들이 생소하게 느낄 것이다. 아나키스트 박열의 동지이자 부인이었다고 한다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박열의 부인이자 동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그녀의 삶에 공감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으로서 혹은 부모로서 살아가는 사람들, 또는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녀가 옥중수기를 쓴 목적이기도 하다. 그녀는 23살이라는 짧은 생을 감옥에서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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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그녀의 연보를 보면, 그녀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불행했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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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1903년 1월 25일에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호적상으로는 1903년생이나 실제 나이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그가 6살 무렵 아버지와 이모가 정을 통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아버지가 끝내 이모와 집을 나가자 어머니는 대장장이와 동거를 하였고, 대장장이와 헤어지고 난 뒤엔 항구의 노역꾼과 동거를 한다. 다음해 노역꾼인 고바야시의 고향으로 이주하여 고바야시의 형수의 친정집 오두막에 살기 시작하였고 그 다음 해인 1911년 고바야시와 헤어지고 외갓집으로 이사한다. 어머니는 후미코를 친정에 두고 잡화점을 하는 후루야 쇼헤이와 결혼한다. 그녀는 그때까지 무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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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에 그녀는 외할아버지의 5녀로 입적하여 친할머니가 사는 조선 충청북도 청주군(현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의 고모집으로 가서 살게 된다. 1915~1917년 부강공립심상소학교, 고등소학교를 졸업한 뒤, 1919년 조선의 독립운동에 감동하였고 7년에 걸친 식모살이를 벗어나 야마나시의 외갓집으로 돌아온다. 그 다음해에 도쿄에 사는 작은 외할아버지의 집으로 옮겼고, 신문 보급소에서 생활하며 신문을 팔면서 영어 학교와 겐슈학관에 다녔다. 또 그해 연말까지는 도쿄 유시마의 신하나 초에 셋방을 얻어 살면서 가루비누를 팔았고 사탕가게 주인집에서 식모살이를 하였다. 그동안은 학교를 그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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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경이 조선인을 해치고 있다.

일본 군경이 조선인을 해치고 있다.

1921년 사회주의자 호리 기요토시의 집에서 일하며 기숙하였으나 호리의 생활방식에 염증을 느꼈고, 결국 작은 외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일을 도우며 학교를 다녔다. 그때 사회주의자들을 알게 되고 사상을 접한다. 1923년 간토대지진이 일어나고 이것이 조선인 때문이라는 유언비어가 돈 것을 계기로 조선인이 6000~8000명이 학살된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대학살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하여 ‘불령선인의 비밀 결사 사건’을 발표한다. 이 대중 조직에 박열과 후미코가 있었다.

1925년 후미코는 예심판사가 요구한 전향을 거부한다. 대심원으로 넘어가면 사형을 선고받는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926년 후미코는 박열과 결혼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하고 그 해 7월 23일, 그녀의 나이 23세에 형무소에서 목매달아 죽는다.?

다른 옥중수고와는 달리 이 저작은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자신의 삶을 모두 지워버리고자 쓴 것이다. 후미코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전 생활의 폭로이며 말살입니다. 저주받은 나 자신의 생활의 마지막 기록이며 이 세상을 하직하는 유품입니다. 아무 재산도 없는 나의 유일한 선물로 이를 택하(宅下, 수형자자 소지품이나 영치물 등을 친족에게 인도하는 것)합니다.” (7쪽)?

 

또한 그녀는 이 옥중수고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로서는 누구보다도 이 세상의 부모들이 이것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아니, 부모들뿐만 아니라 사회를 좋게 하고자 하는 교육가, 정치가, 사회사상가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읽어주면 좋겠다.” (18쪽)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읽기를 그녀는 바랐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의 부모이거나 사회를 좋게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모든 이들이 자신의 수기를 읽기 바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수기를 읽으면서 그녀가 자주 간절히 목 놓아 외치는 단어에서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유’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과 그 이후에 사회주의 사상가들, 아나키스트들과 교류하면서 더욱더 자유에 대한 갈증이 확장되고 깊어짐을 느낀다.

그렇다면 그녀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지, 삶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희망했는지, 처참한 삶은 그녀로 하여금 어떤 이념을 자극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녀의 글 속에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고 자신의 삶 전체를 음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노예의 삶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후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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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옥중수기는 참으로 슬펐다. 이런 사건도 있었다. 후미코는 친할머니 집에 살면서 식모로 일을 했다. 나물을 삶다가 솥을 깨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할머니는 그 솥 값 1엔 20전을 내라고 하였다. 할머니 집에 와서 식모로 일하면서 딱 한 번 10전을 받은 적 밖에 없던 후미코는 그 돈을 낼 수 없었고, 그리하여 그 솥 값은 일본을 떠나올 때 전별금으로 받은 12,3엔의 돈에서 변상하였다. 할머니 젓가락이 부러진 날은 “정초부터 웬일이냐. 후미, 넌 내가 죽어버리기를 비는 모양이구나. 좋아 단단히 기억하고 있으마.”(101쪽)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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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들이 생기면 후미코는 늘 아침에 밥도 먹지 못하고 겨울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벌을 받았다. 그 상황을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겨울 아침의 추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저녁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추위와 피곤으로 얼굴은 나무판처럼 딱딱해지고, 다리는 막대기같이 굳어지고 저렸다. 꼬집어도 감각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배는 고파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103쪽) 그는 이러한 벌을 받은 뒤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이라도 사죄를 해야 했고, 할머니와 고모의 위엄을 위해 ‘앞으로는 절대로 안 그러겠습니다’라고 맹세해야 했다고 회상한다.

 

그에게 이러한 경험은 끝이 없었다. 그의 나이 12살 정도였다. 그는 이러한 체험 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라. 자기 행동을 남에게 맹세케 하지 말라. 그것은 아이로 하여금 책임감을 빼앗은 일이다. 비겁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에도 행동에도 겉과 속이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누구라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남에게 약속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행위를 감시인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자신의 행위의 주체는 완전히 자기 자신이어야 함을 자각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사람은 누구도 속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진실로 떳떳하고?자율적인 책임감?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104쪽)

 

그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자율적 삶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징벌을 두려워하게 되면서 접시 하나를 깨도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이러한 자율적 인간에 대한 그리움은 그녀를 언제나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늘 불안했고 겁에 질려 있고 차분하지 못했다고 한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녀는 이 수기를 부모들이 읽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렇다. 위의 후미코의 말은 부모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아이를 자율적인 주체로 성장하게 만드는 일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인간이 아닌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책임지는 그러한 인간, 행위의 주체가 되는 인간, 그리하여 어떤 이들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진실로 떳떳한 자율적인 책임감을 지닌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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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기_유럽2013.01 396그녀의 또 다른 경험도 소개해 볼 필요가 있다. 외할머니와 고모의 집에서 식모로 착취당하며 모든 아이들이 하는 생활을 금지당한 후미코는 어른이 되어 길가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거기서 아이들의 엄마가 달려와 기모노가 더러워지니 놀이를 하지 말하고 야단치는 장면을 본다. 아이는 놀이에 빠져 그만두려 하지 않으려 했고, 엄마는 울부짖는 아이를 억지로 잡아끌고 갔다. 그것을 보고 후미코는 마음 속으로 외친다.

 

“왜 그렇게 무리는 하는 거죠? 당신은 대체 아이가 귀한가요, 기모노가 귀한가요? 아이는 기모노를 위해 있는 게 아니랍니다. 아이를 위해 기모노가 있는 거죠. 그렇게 때 타는 게 무서우면 좋지 않은 허름한 기모노를 입혀놓으면 되잖아요.

어른은 자신의 체면이나 안락을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어른은, 특히 어머니는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지키고 아이의 재능을 키워주는 게 일입니다. 아이의?자유(강조는 필자)를 빼앗고 아이의 인격을 빼앗는 것은 엄청난 죄악입니다. 아이를 자유롭게 놓아두세요. 자유의 천지에서 뛰어노는 건 자연이 아이에게 준 유일한 특권입니다. 그래야만 아이는 무럭무럭 인간다운 인간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128쪽)

 

그가 바라는 인간의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였다. 그리고 자유는 아이들의 유일한 특권인 것이다. 아이들은 자유를 먹고 자라나는 존재다. 따라서 그녀에게 자유의 억압은 가장 큰 죄악이었다. 이것은 아나키즘의 핵심적 주장과 같다. 물론 아나키즘이 자유방임을 허하는 논리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의 자유, 그야말로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는 오히려 인간이 자본으로부터 착취당하는 자유를 옹호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이러한 자유와는 구분하여 그의 철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녀는 스스로의 비참한 삶을 통하여 인간이 착취 받고 이웃이 고통 받는 것을 슬퍼하였고, 그것으로부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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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결코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가 얼마나 아이들의 자유를 질식시키고 있는지 다시금 반성해야 한다. 후미코는 할머니와 고모에 의한 고통과 위엄에 질식당한 자신의 모습 속에서 절절히 자유를 외치고 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찾고자 했다. 타인의 노예가 아닌 자기 자신의 삶 말이다. 이러한 그의 말은 우리에게 공명한다. 그것은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보편성에 억압된 자아가 아니라 개별적인 자아에의 희구, 자율적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처절한 삶의 반성과 실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옥중수고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것은 그의 문체다. 그는 화려하거나 추상적인 언어로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지 않는다. 옮긴이가 인용한 쓰루미 슌스케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수기는 번역서에 떼어낸 추상어로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고 15년의 전쟁을 겪고도 별로 변하지 않았던 오늘의 일본 지식인들의 허를 찌른다.”(365쪽) 이 구절 또한 우리들에게 반성의 계기를 만든다. 우리는 추상적인 말을 통해서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는가? 비단 지식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물과 사태를 이해하기 쉽게 하는 것은 중요한 글쓰기의 자세일 것이다.

 

이제 최초의 질문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즉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녀는 수기를 마치며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였다. “나 스스로 이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단지 나의 반생의 역사를 여기에 펼쳐놓았으니 다행인 것이다. 마음 있는 독자는 이 기록으로 충분히 알아주리라. 나는 그것을 믿는다.”(353쪽) 그녀가 답을 하지 않은 이 질문에 대한 몫은 우리에게 남는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무엇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그녀의 삶을 둘러싼 시대였으며, 그녀의 삶을 둘러싼 가족이었고 교사였고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였다. 즉 그녀의 삶의 총체적 연관 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더욱이 그것을 만든 것은 바로 일본 제국주의이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러일전쟁으로 인해 일본이 제국주의로 전화하던 시기였다.

더욱이 다이쇼데모크라시로 명명되는 ‘안으로는 입헌주의 밖으로는 제국주의’를 표방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3.1운동에 감동한 그녀는 삶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었다. 이렇듯 그녀의 처절하고 짧은 인생, 불꽃처럼 살다간 삶, 지지리 운도 없는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받아 안고 무엇에 공감하고 무엇에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그것은 이 슬픈 옥중수기의 저류에 흐르는 그의 희망이고 행복한 인간의 지향점이다. 그것은 자율적인 인간을 꿈꾼, 가족에 버림받고 가족에 착취당하며 놓고 싶지 않던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던 처절한 몸부림이자 온전히 자신의 삶을 찾고자 했던 23년의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삶이다. 그녀는 예언처럼 다음과 같이 말하며 수기를 마친다.

 

“머지않아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완전히 지워질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상은 현상으로서는 멸해도 영원의 실재 중에는 존속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그녀는 현상으로는 죽었지만 사상의 기억, 삶의 치열함과 그녀의 삶 자체는 결코 죽지 않았다. 우리는 이것을 그녀의 옥중수기를 읽으며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아를 찾아가는 그 고단하고 치열한 삶, 그것은 우리가 그녀의 삶 속에서 보다 따듯한 가슴으로 받아 안아야 할 영원의 실재가 아닌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자유’다. 어린 시절 자살을 시도하다가 그녀는 ‘내 안에 살아 있는 생명’, ‘생명의 의욕(意慾)’을 느끼고(150쪽), 이후에 그녀는 자신의 진실한 목적은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나 자신의 생명을 고양’시키는 일이었다고 서술한다.(221쪽)

그녀는 자신이 동정의 마음을 갖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쓴다. “나는 돈 있는 사람에게 혹사당하고, 가혹한 대우를 받고, 괴롭힘에 짓눌리며, 자유를 빼앗기고, 착취당하고, 지배받아왔다.”(304) 인간에 대한 공감을 자신의 비참한 삶 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인간이 인간의 삶을 공감한다는 것은 중요한 덕목이다. 그것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자신을 통해 타자를 보고, 타자를 통해 자신을 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타자에 대한 공감은 다시 또 다른 이들의 삶을 공감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베르그송과 헤겔을 알게 되었다. 또 무엇보다 자신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로 슈티르너, 알티바세프, 니체를 들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실제로 그즈음 나는 그것(꼭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희망에 불탔던 나는 고학을 하여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아왔다. 하지만 나는 지금 확실히 알았다. 지금 세상에서는 고학 같은 것을 해서 훌륭한 인간이 될 턱이 없다는 것을. 아니 그뿐이 아니다. 소위 훌륭한 인간만큼 하찮은 것도 없다는 것을. 남들이 훌륭하다고 하는 일에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나는 남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진정한 만족과?자유를 얻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아닌가. 나는 나 자신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타인의 노예로 살아왔다. 너무나 많은 남자의 장난감이었다. 나는 나 자신의 삶을 살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나 자신의 일을 말이다. 그러나 그 나 자신의 일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알고 싶다. 알아서 그것을 실행하고 싶다.”(334-335쪽)

 

그녀는 삶의 목적이 자신의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며 타인의 노예로 살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그녀는 사회주의 사상가, 혹은 아나키스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어린 시절부터 희망하고자 했던 자유의 추구를 더욱 확고하게 삶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진정한 자신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우리들은 아이들을 부모의 욕망을 관철하는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고민과 결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하고는 있는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찾고 희망하고 실천하고 있는 그러한 인간을 그녀는 추구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삶의 추구는 타자에 의한 욕망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며 살면서 마치 그 욕망이 자신의 욕망이듯이 간주하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타인의 노예가 아닌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것, 그것은 더 많은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처럼 자문한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녀는 이 물음에 자신은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금 다음과 같이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혹은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이러한 물음의 중요성은 나의 행동 당신들의 행동과 말이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삶은 관계성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상호영향을 강하게 미치고 있는 존재이다. 이것을 가슴 깊게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과 타인의 자유를 확장하는 데 모든 힘을 쏟으며 살아갔던 후미코의 삶 속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자문해야 한다. 정말로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③-1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③-1

박은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이 글은 박은미의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2013, 소울메이트 출판사>의 내용을 개제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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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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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오스트리아 의사 및 정신분석학자로 개인 심리학을 세웠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오스트리아 의사 및 정신분석학자로 개인 심리학을 세웠다.

지금 발현되고 있지 않은 자신의 능력과 특성에 대한 잠재력을 마음껏 펼침으로써 우리는 궁극적으로 열등감을 우리의 창조성을 깨우는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나 자신을 이기고 더 괜찮은 나로 발전시키는 데 써야 할 것이다. – 아들러?

?현대인들은 남들과 다르기를 욕망하면서도 남들에게 뒤떨어질까봐 불안해한다. 광고는 “나는 달라요.” 하면서 남들과 달라보일 수 있는 물건을 구매하라고 부추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물건을 같이 구매해서 남들과 같아진다. 남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하면 불안해하며 남들과 같은 물건을 가지려 하면서도 남들과는 달리 돋보이고 싶어 한다.

프랑스 철학자 르페브르(Lef?vre)는 『현대세계의 일상성』이라는 책에서 ‘일상성’이란 현대인들이 지겨워하면서도 놓치면 불안해하고 전전긍긍해하는 이상한 것이라고 했다. 일상성으로 인한 극도의 권태와 피로 속에서도 일상성에서 벗어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일상성은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벗어날까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복잡한 감정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남들에게 뒤떨어지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남들과 똑같이 도매금으로 취급되는 것도 싫다. 이러한 현대인들의 심리를 르페브르는 잘 지적하고 있는 것 같다. 르페브르는 일상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는 덧없음을 사랑하고 탐욕적이며 생산적이고 역동적이라고 진단한다. 유행과 같은 덧없음을 사랑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해 늘 탐욕적이고, 이렇게 새로운 것을 갈구하니 역동적으로 생산해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인들은 현실에서는 자꾸 새로운 것을 찾으면서도 마음으로는 지속적인 것, 영원한 것을 갈구하게 된다. 핸드폰이 새로 나올 때마다 바꾸고 싶어지는 자신을 보면서 옆 사람이 나에게 진력낼까봐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나를 영원히 사랑해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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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가 구매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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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소비 패턴을 보면 그 물건이 꼭 필요해서 사는 것만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현대인들은 기분 전환을 위해 쇼핑을 가는 경우가 많다.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것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패턴을 두고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인들은 기호가치를 얻기 위해 소비한다고 했다. 쉽게 말해 물건을 사용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물건을 소유함으로써?얻게 되는 어떤 상징성 때문에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꾸미기_2007_1~3저렴한 큐빅을 구매하지 않고 비싼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는 데에는 기호가치가 개입된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에는 ‘쉽게 살 수 없는 것’이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큐빅과 다이아몬드를 한 눈에 구분해내지 못하고 “그거 큐빅이야, 다이아몬드야?”라고 물으면서도 몇 백 배의 돈을 지불하고 다이아몬드를 구입하는 데에는 상징성이 개입된다. 이는 짝퉁과 명품을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명품가방을 들고 다니며 자부심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백화점에 가지고 가서 진품인지 짝퉁인지를 가려야 할 정도로 맨 눈으로는 진품과 짝퉁을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굳이 몇 십 배, 몇 백 배의 가격을 지불하면서까지 명품을 구입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명품에는 ‘아무나 들 수 없음’, ‘함부로 살 수 없음’이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엄청난 가격 차이를 감수하고서도 (그리고 명품과 짝퉁의 차이를 스스로 판별하지 못하면서도) 아주 높은 가격을 지불하면서까지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래서 명품 마케팅의 비법은 가격을 올리는 것이라고도 한다. 가격을 올려야 더 잘 팔린다는 것은 비싸기 때문에 쉽게 구매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 가지고 싶어진다는 구매심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원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명품의 상징성이다. 보드리야르가 현대인들은 상품의 구입과 사용을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며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위세를 나타낸다고 했는데, 명품구매는 이러한 소비 특성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례이다. 만약에 모두가 명품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지면 어제까지 그렇게도 명품을 원하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명품에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남들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바로 명품의 매력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명품을 사는 행위에서 ‘남들이 사고 싶어하지만 함부로 살 수 없음의 상징성을 구매하는 것이고 결국은 ‘남들과의 차이’를 구매하는 것이다.

이는 부도 회사의 상품을 대하는 현대인들의 태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제까지 비싼 가격에 팔렸던 제품이 부도난 오늘 갑자기 덤핑 처리된다. 어제의 그 물건과 오늘의 그 물건이 다르지 않지만 품질도 변하지 않았고 기능도 디자인도 변하지 않았지만 어제의 가격과 오늘의 가격은 다르다. 이제 그 물건이 싸게 처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은 옛날과 같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없는 것이다. (물론 AS를 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가격 차이가 AS를 받을 수 없다는 단점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나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가격은 물건의 고유한 가치에 의해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상황에 의해 매겨지는 것이다.

싸게 팔릴 것이라는 예측이 값을 싸게 책정하도록 하고 비싸게 팔릴 것이라는 예측이 비싼 가격을 책정하게 한다. 보드리야르는 현대의 소비자들은 상품의 상대적인 사회적 위세 및 가치를 결정하는 의미작용의 질서에 지배받고 있다고 보았다. 부도 회사의 제품은 품질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이 가치결정의 의미작용의 질서에서 평가절하되는 제품이기에 선택될 가능성이 낮고 선택될 가능성이 낮기에 가격을 싸게 책정하는 것이다. 이 의미작용의 질서에서는 ‘쉽게 살 수 없음’, ‘남들이 부러워함’ 등의 요인이 높은 층위에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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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에 손상을 입은 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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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제품을 한 번 사서 오래 쓰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그 물건이 소비되어야 시장체계가 역동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구매해야 시장이 성장하고 경제에 활력이 생긴다. 이러한 메커니즘 때문에 100만 화소 디지털카메라의 생산력을 확보하고도 5만 화소 디지털 카메라부터 팔기 시작하는 식의 기업의 행태가 일반화된다. 제품의 회전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물건에 대한 사람들의 인내력은 그만큼 떨어져간다. 불편함을 참으면서까지 기존의 제품을 쓰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기능이 있는 훨씬 더 편리한 제품이 늘 우리의 구매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모든 것이 빨리 변하는 시대, 그래서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이 없어진 시대에 나도 누군가를 인간으로 존중하기가 어렵고 나의 옆 사람도 나를 인간으로 존중하기가 어려워졌다. 사물이 주는 불편이 빨리 제거해버려야 하는 것으로 되어버린 시대에 사람이 주는 불편을 견뎌야 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옆 사람이 주는 불편을 견디지 않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옆 사람이 나를 불편해하게 될까봐 두려워하게 된다. 사물과의 관계든, 사람과의 관계든 모든 관계가 인스턴트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자꾸만 불안해진다.

인생 전체를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채워야 하는 현대인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묻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가’를 묻는다.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조차 찾지 못한 채 방황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인생의 가장 기초적인 물음조차 사치로 여기며 취업에 필요한 지식으로만 자신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니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어떤 물건을 사고 싶은가는 알지만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알지 못한다.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해 느끼게 되는 막막한 공허감과 고독감을 이기려고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물건을 산다. 공허감과 고독감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찾고 소비를 하지만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고 있음을 각자는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자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노력은 별 소용이 없다. 마음 저 밑바닥에서는 그런 노력을 통해서 채울 수 없는 공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꾸미기_성연현대인들은 공허감과 고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무감각하고 느낌이 없는 상태에 처하기도 한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무감각하거나 느낌이 없는 상태는 마음속에 있는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 방어하는 상태이다. 불안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불안을 느끼는 센서 자체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소외된 채 살면서도 소외되어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의 상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불안하고 고독하고 공허하기는 한데 어떻게 하면 그 불안과 고독과 공허를 극복할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공허감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제3자가 방향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자기가 홀로 있지 않다는 위안이라도 얻고자 한다. 인간이 공허하고 불안해지면 혼자 있기가 두려워 다른 사람과 더불어 있기를 바라게 된다. 그래서 텅빈 마음을 다른 사람이나 물건으로 채우고 싶어 하는 것이 현대인의 전반적인 특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 자존감과 힐링이 주요 화두가 되는 것같다. 서점에 가보면 대중서의 대부분은 자존감이나 힐링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는 역으로 현대인들이 그만큼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 힐링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말해준다. ‘무한경쟁’이라는, 듣기만 해도 숨차는 단어가 난무하는 시대이니 그 무한경쟁에서 1등을 할 수 없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자존감에 손상을 입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지금의 사회에서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일 뿐이다. 내가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 일자리가 모자라지 사람이 모자라지 않는 시대에 나에게 “너 아니면 안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우리는 너무도 그립다.

그런데 텅빈 공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또 다른 공허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기대거나 친밀감을 느끼려 해도 그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공허한 각자 각자는 자신의 텅빈 내면 때문에 타인의 텅빈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돌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면에 공허를 안고 있는 사람은 사랑으로 그 공허를 채우고 싶어 한다. 그렇게 자신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사랑을 갈구하기는 하지만 타인의 공허를 채우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랑받으려만 하지 사랑하려 노력하지는 않기 때문에 사랑에 실패한다. 서로가 사랑을 달라고만 하지 사랑을 주지는 않기 때문에 서로 서로 사랑받지 못한다는 쓰라린 마음으로 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악순환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친구가 되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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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악처 크산티페>[철학자의 서재]

<소크라테스와 악처 크산티페>[철학자의 서재]

박지용(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예수님, 석가님, 공자님, 그리고 소크라테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철학자들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철학자들의 목록을 작성한다면 단연 1순위 후보에 오를 인물은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는 생존 당시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 플라톤의 저작에서 주요 논객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연역 삼단논법에서도 소크라테스의 이름이 남아 있다. 이런 배경에서 오늘날까지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철학자 하면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하면 철학자를 연상한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대변하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로서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겼다.

 

(프리드리히 로렌츠 지음, 박철규 옮김, 도원미디어 펴냄). ⓒ도원미디어

<소크라테스와 악처 크산티페>(프리드리히 로렌츠 지음, 박철규 옮김, 도원미디어 펴냄). ⓒ도원미디어

?그런데 역사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그 이름에 걸맞게 그토록 빛나게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를테면 플라톤 하면 이데아, 헤겔 하면 변증법, 마르크스 하면 역사유물론, 칸트 하면 비판철학, 대강 이런 굵직굵직한 주제어들이 철학자들의 이름과 결부되어 왜 그 철학자가 유명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빛나는 이름과 함께 알려진 것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과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 정도다. 이 두 가지 명언도 소크라테스 본인이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는 의혹이 있다. 우선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전부터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남겨진 낙서(?)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을 통해서 확인된 바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니 그리 큰 반론의 여지는 없다. 설령 소크라테스가 그 말을 했다 치더라도 그 말의 유래는 소크라테스가 아닌 것이다.

 

또 혹자들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도 정확하게 소크라테스의 주장으로 볼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의혹의 대강은 이렇다. 시민들로 하여금 무조건적인 준법정신을 강제하려는 의도를 가진 이데올로그들이 소크라테스의 명성을 빌려 시민들의 비판정신과 저항적 실천을 약화시키고 독재자의 논리를 강화시킬 목적으로 그 말을 날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소크라테스를 비판하거나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을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한 구실로 삼은 모종의 정치세력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명성은 소크라테스가 주장했다고 알려진 명제들과의 관계에서 보자면 허구에 기초한 것이 되어버린다. 쉽게 말하자면, ‘어?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 안 했대? 그렇다면 왜 소크라테스가 유명한 거지?’라는 황당한 상황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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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소크라테스에게 남는 건 무엇인가? 예수와 석가는 인류 구원이라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맡으셨고, 공자도 유교라는 유사종교의 신격화된 숭배 대상인 점을 감안해 볼 때, 소크라테스가 성인의 반열에 속하기에는 뭔가 임팩트가 떨어져 보인다. 인류 전체를 통틀어 네 명의 성인을 선발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소크라테스에 대한 평가는 과장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불거질 수 있다. 예수의 위대함을 부정할 경우에는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겠지만, 소크라테스를 4대 성인의 반열에서 격하시키자는 목소리는 그리 충격적인 문제제기는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둘러싼 두 가지 상반된 시선

 

역사적인 실존 인물인 소크라테스를 조망하기 위한 기본 자료는 재판에 대한 기록이다. 그 기록은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배심원들의 법적인 판결을 통해 사형을 받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각각 그 기록을 남겼고 이 기록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역사적 인물로 승화되게 된다. 이 재판과 소크라테스에 대한 사형 선고는 이후 역사적인 사건으로 비화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다. 즉 무지한 대중이 죄 없는 뛰어난 현자 소크라테스를 죽게 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 사건을 기화로 민주주의의 적대자가 되고 이상국가론, 철인정치를 펼치게 된다.

또 하나의 관점은 소크라테스에 대한 법적 심판을 플라톤의 기록에만 의존하지 않고 당시 역사적인 배경, 정황, 사건들을 통해서 민주주의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방식이며, 소크라테스가 일방적으로 희생당한 것은 아니라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당대의 정치적인 역관계 속에서 소크라테스를 조망하는 것이므로 다양한 맥락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충분한 혐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법적 판결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 후자의 관점들은 주로 현대에 들어서 제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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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 중 어느 관점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양자택일적으로 대립된 관점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전자의 관점에서는 소크라테스를 사형시킨 민주정치의 오류가 지적되고, 또 후자의 관점에서는 피할 수 있었던 사형을 의도적으로 피하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잘못이 지적된다. 여기서 드러나는 대립적 관점은 ‘역사적인 실존 인물 소크라테스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한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문제시될 수 있는 철학적인 현실비판의 의미와 관련하여 소크라테스의 법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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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단순히 생각해보기만 해도, 그 자체로는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는 현실적인 논리들이 있다. 유대인을 학살할 때 사람들은 그 현실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분단 이후 반공 집회에 동원되는 사람들도 그것을 당연하다고 믿었다. 이처럼 현실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사회의 야만성을 당연한 현실로 인정할 것을 강요하고, 또 철학과 철학자로 하여금 하나의 당파를 강요하는 논리는 언제나 현실 논리에 기초해서 작용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철학의 보편성은 민주정치냐 과두정치냐의 양자택일적 상황 자체를 거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철학은 잘못된 현실 자체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법정은 철학적인 사유의 합법적인 권리 주장의 법정으로 볼 수 있다.

계몽주의 시대에 칸트는 ‘이성의 법정’에서 인간의 이성은 여러 현실적인 사안들을 검토하여 현실에 대해 어떤 주장을 펼칠 수 있고, 그러한 권리는 당연히 현실적으로도 보장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칸트는 당시 금기시되었던 종교적인 주제마저도 철학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이성의 공적 사용 권리를 과감하게 주장하였지만, 너그러운 계몽군주마저도 그러한 주장은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금지시켰다. 철학은 권력의 검열 앞에서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철학적인 사유에서는 금기와 경계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철학이 짊어진 사회적인 역할이다.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는 문제에 대해 계속 문제제기하고 공개적으로 간섭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러한 자신을 일컬어 쇠파리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무뎌진 의식을 일깨우는 존재라는 뜻이다.?

잘못된 대립구도에서 강요된 선택의 문제를 지적하려면 그 대립구도 자체가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아도르노가 ‘잘못된 사회에서 올바른 삶이란 없다’고 지적한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철학은 잘못된 선택을 강요받는 삶을 조장하는 사회를 비판해야 한다. 민주냐 독재냐의 양자택일적 상황이 갖는 위험성을 잘 알고 있던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삶의 방식은 철학적인 물음을 끝없이 던지는 것이었다. 당시 아테네가 좀 더 여유로운 상황이었더라면 소크라테스를 애써 법정에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며, 소크라테스를 희생시켜 아테네의 몰락에 대한 책임을 물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비판의식이 마비된 극단화된 사회에서 철학적인 물음 제기는 위험한 행위로 오인될 수 있다는 내적 두려움을 극복할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처럼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생각함에 있어서 아테네 민주주의자들의 잘못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음흉한 의도를 경계해야 함과 동시에,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철학적인 문제로 다룰 경우에는, 그러한 잘못이 인간적인 삶의 가치와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소로서 여전히 잔존해 있다는 현실 비판이 결부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사생활 속으로, 악처 크산티페

 

대학 시절 나는 학과에서 새로운 소크라테스 해석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것은 작고하신 권창은 교수의 강의였다. 그분은 소크라테스의 논쟁자들이었던 소피스트들의 민주주의적 가치에 주목하셨고, 소크라테스-플라톤 연계로 이어지는 보편실재론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피력하셨다. 당대의 정치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민주정치와 철학의 현실적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가 왜 죽었어야만 했는가라는 의문은 내 생각 속에서 말끔하게 정리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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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죽음은 그의 철학적인 기행과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소크라테스의 기행은 그 개인의 기행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학문의 고유한 것이고 본래적인 기행이었다. 그가 보인 기이한 행동의 목록은 대략 다음과 같다. 자기 일이 아님에도 시시콜콜 참견을 하고, 대화 상대자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여 기분을 상하게 하고, 홀로 생각할 때는 너무 골똘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정신이 나간 것으로 알고,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데몬이라는 분열된 자아와 대화를 나누는 그런 행동 방식이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자기 내면에서 명령하는 데몬이 법정에서 단호히 나서라고 말했다고 변론인들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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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전날 밤, 아마도 소크라테스는 삶과 죽음을 결정지을 법정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를 골똘히 생각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영혼(데몬)은 소크라테스에게 죽으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 상황은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할 수 있으면, 잔을 물러달라’고 호소했다가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하고 자신에게 부과된 운명적인 짐을 진 예수의 고뇌와도 비견된다. 이 비교 자체는 매우 위험한 것인데, 인간 소크라테스를 성자 예수와 동급에서 비교하는 데에서가 아니라 유다와 바리새인들의 역할이 아니토스와 민주주의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기 자신과의 대화 행위이다. 그것도 대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죽음 일반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적인 죽음, 죽은 자신과 나눈 대화의 경지는 그야말로 철학적이다. 그 철학적인 깊이는 한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자기사유의 정점이 아니겠는가. 사유는 일종의 자기분열 행위이며, 이 분열은 때에 따라서 다중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철학자들은 분열증이라는 직업병을 겪지 않는데, 대화하는 의식이 집에서 나갔다가 항상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영혼인 데몬과의 대화에서 죽은 소크라테스에서 삶을 얻게 된 것이다. 육체적인 삶을 이끄는 소크라테스의 영혼은 이제 그 삶을 버리고 영혼 속에서 안주하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철학적인 삶이자 철학적인 죽음의 아이콘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은 자신의 영혼에 대한 철학적인 자기 구제인 것이다.

socrates지금까지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을 평가함에 있어서 조명되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인물이 그의 아내 크산티페가 아닐까 한다. 철학자는 저작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선대 철학자들도 저작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구전된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낮 시간 아고라에서 나눈 수많은 대화들로 전승된다. 하루 종일 철학 토론을 한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식이 철학적 텍스트라 할 수 있다면 그의 아내 크산티페도 소크라테스 철학의 한 부분이어야 한다. 모두가 떠나 캄캄해진 아고라의 밤, 소크라테스는 유일한 대화 상대자 크산티페가 있는 집으로 가야 했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크산티페가 묘사된 유일한 곳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날을 서술한 <파이돈>이다. 독배를 마셔야 할 시간이 되어 소크라테스가 크산티페와 소크라테스의 어린 아들을 집으로 먼저 보냈다는 기록이 있을 따름이다.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라는 무능하고 비현실적인 철학자와 어떻게 평생을 살 수 있었을까?

법정에서도 밝혀졌듯이, 소크라테스의 철학 토론 수업은 전체 무료강좌였다. 당시 소크라테스가 누렸을 유명세를 생각한다면 요즘 대치동 스타강사 정도는 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유독 소크라테스는 무료강좌 원칙을 정했다. 다른 소피스트들은 소규모 사설학당을 차려 많은 수업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라는 저작에서는 재산가 크리티아스가 자기 자식들을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프로타고라스를 가정교사로 초빙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장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경제적인 위기 상태였지만, 소크라테스는 돈벌이를 하지 않아 크산티페가 겪었을 생활고는 불을 보듯 뻔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남루한 옷을 입고 심지어 신발도 없이 맨발로 다녔다고 한다. 일생 연봉 무일푼인 그가 그래도 70세까지도 짱짱한 건강을 유지했다는 건 철학적인 사유가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그의 주된 사유 대상은 절제, 용기와 같은 도덕적인 덕목들이었다.

고대 아테네라고 해서 가정생활을 꾸리는 재테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크세노폰이 남긴 소크라테스의 대화록 <경영론>에서 소크라테스는 구체적이고 상세할 뿐만 아니라 최선의 재산축적 방법을 가르친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집안 살림에는 나 몰라라 했으니 크산티페는 얼마나 화가 났을까? 그러니 크산티페를 대놓고 악처라고 폄하하는 것은 공정치 못한 처사인 것이다.

소설 <소크라테스와 악처 크산티페>는 역사적인 배경 묘사에서, 소크라테스의 철학 사상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빈약한 감이 들게 하지만 아내 크산티페의 관점에서 비친 소크라테스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보인다. 소설이므로 저자는 상당 부분 문학적인 상상력으로 묘사하고 있음에도, 현실감 있는 언어로 소크라테스의 부부관계를 잘 전달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크산티페의 최초의 구타를 소크라테스가 도덕적인 덕목으로 이겨냈다는 점이다. 경제적인 능력과 활동을 희생한 대가로 소크라테스는 상습적인 구타를 얻게 되어 고통을 즐기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크산티페는 평생을 불평하고 소크라테스를 개조시키려 노력했지만, 결국 그의 철학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용서하게 된다. 철학의 지속을 위해서는 아내의 용서를 구해야 하고 때때로 폭력을 감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