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노동자와 21세기 노동자” – 노동과 노동자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⑤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2018. 8. 20. 서교동 한철연 강의실

 

제5강. “근대 노동자와 21세기 노동자” – 노동과 노동자

 

강연 : 박종성(건국대 초빙교수)

후기 : 김상애(한철연 회원)

 

우리의 삶에 있어서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끝없는 굴레일까요? 아니면 자기실현을 위한 주체적 행위일까요? 박종성 교수의 이번 강의를 들으며 역사적으로 노동과 노동자가 어떻게 정의되고, 가치 평가되어 왔는지 살펴보고, 특히 맑스(Karl Marx, 1818~1883)의 사상을 바탕으로 ‘노동자로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창세기에 노동은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로 얻게 된 징벌로 적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도 육체적 활동인 노동은 노예계급의 것이라며 저급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노동은 철학적 맥락에서 언제나 부정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노동은 신의 명령으로서 그 의미가 변화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사유재산 개념의 등장으로, 모든 권리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 그 가치가 격상됩니다.

 

그 이후 등장한 칼 맑스는 ‘노동’과 ‘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상가인데요, 맑스는 노동을 인간의 실존조건으로 봅니다. 즉 노동은 인간의 존재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맑스는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이토록 중요한 노동과 이를 수행하는 노동자를 착취와 소외로 내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맑스에 따르면 노동활동은 노동자의 노동력, 노동대상, 노동수단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노동대상과 노동수단을 합쳐 ‘생산수단’이라고 부릅니다. 이를테면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물건은 노동대상이며, 그 물건을 만들기 위한 기계 등은 노동수단입니다. 이 생산수단과의 관계가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을 가릅니다. 말하자면, 생산수단을 가진 자가 자본가이고, 생산수단 없이 자신의 노동력만을 가진 자가 노동자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이루는 기본 세포는 ‘상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노동력 역시 상품으로 봅니다. 맑스는 노동자가 노동력을 판매할 때 이중적 자유가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한편으로 노동자에게는 자신이 가진 노동력을 팔 것인지를 결정할 자유가 있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노동자는 자유로운 것이지요.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는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는 이 이유로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합니다.

 

여기에서 노동자의 착취구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자본의 가치증식입니다. 다시 말해 1만큼의 자본을 가지고 1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자본가의 입장에서 이를 가능케 하려면 제 값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노동력을 구매하면 됩니다.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지요.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이 임금이 부당해도 자본가를 위해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자본주의 원리와 노동자의 이중적 자유 때문에 노동자와 자본가는 형식적으로는 대등한 계약 관계라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이기에, 필연적으로 적대관계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스스로를 자본가의 적대자로 생각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게으름’을 나쁜 덕목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로 생각하게끔 만들어 노동자 자신의 욕망을 왜곡하고 자본에 복무하도록 만듭니다.

 

물론 맑스는 혁명을 통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계급을 없애자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에서 이와 같은 혁명이 단번에 이루어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착취구조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혁명의 낙관도 기대할 수 없는 우리는, 노동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오늘 강의를 맡은 박종성 교수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먹고는 살되, 내가 신나는[나에게 재미와 의미가 있는] 일을 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