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박물관[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13

그림자 박물관[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13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크기변환_그13

그림자들은 열린 문으로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고
마법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른 체 쿨쿨
마법나라의 젊고 힘센 왕이 되는 꿈을 꾸며
꿈의 나라로 빠져들어 갔어.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한국의 평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베를린에서 온 편지 6]

한국의 평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베를린 평화 페스티벌의 한국 포럼. [베를린에서 온 편지 6]

 

 

한상원(한철연회원/베를린 통신원)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한상원 회원이 인문학 동향이나 정치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독일 한글문화신문 <풍경>(http://www.punggyeong.de/ko)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는 베를린 평화 페스티벌(Friedensfestival Berlin)이 열렸다. 행사 마지막 날이자 일요일인 17일, 참석자들은 세 개의 서로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는 한반도와 관련된 이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오후 무대에서는 한반도 관련 쟁점들이 연속적으로 다뤄지면서, 참석자들에게 한국에서 여전히 진행중인 전쟁과 폭력의 문제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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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페어반트(Korea Verband)에서 주최하는 오후 행사는 행사장 중앙 무대에서 15시에 시작되었다. 오프닝을 알리는 “두들소리”의 사물놀이 공연이 끝난 뒤,이어“북한-남한. 마침내 분단 61년만에 평화협정 체결인가? 분단 독일의 심장부에서 열리는 좌담회 (Nordkorea-S?dkorea. EndlichFriedensvertragnach 61 Jahre der Teilung Koreas?!:Podiumsgespr?chimHerz des ehemalsgeteiltenDeutchlands)“라는제목의토론회가열렸다. 기조발제를맡은한반도와 아시아 전문가 라이너베르닝(Rainer Werning) 박사는 한반도의 불안정이 오늘날에도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것은 동아시아 전체에 걸친 위기의 일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한국 정부는 이 위기를 관리할 능력이 없으며 오히려 강경대북정책으로 인해 이 위기를 낳는 주범이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한국 내에서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데 이용되고 있을 뿐이라는 점도 독일인 청중들에게 소개했다. 이는 정전협정 체제인 한반도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냉전이 어떻게 정치적 억압으로 활용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된 것이다. 이어 발제를 맡은 임민석 교수는 한반도 위기의 주범은 미군의 주둔과 미국의 패권전략이라고 비난하면서 정전협정을 끝내고 평화협정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일 군사동맹이 동북아시아에서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이에 적극 협조하는 한국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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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가 끝난 뒤 프리랜서 기자 정옥희씨가 연단에 올라 독어와 영어로 한국의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투쟁 소식을 전했다. 연설에서 그녀는 세월호 사고의 발생 원인을 밝히고 정부의 책임을 묻는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만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 가족들의 억울함이 풀릴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그녀뿐 아니라 몇몇 한국인 참석자들이 노란 종이 배를 접어 전시하고 행사장 곳곳에서 이곳을 찾은 독일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았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여러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독일인들은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고, 유가족들이 단식투쟁을 벌인다는 소식에 놀라워했다. 한국인 참석자들이 나눠준 유인물을 읽고 서명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중국인 관광객은 세월호 사건은 알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언론에서 듣지 못해 모르고 있었다면서, 건네받은 영어 유인물을 꼼꼼히 읽고 서명을 했다. 어느 독일인 목사는 서명을 한 뒤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이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가 행사장에 도착했다. 먼저 무대 위에서는 이옥선 할머니의 발언을 듣기 전, 일본인 무용수 카즈마모토무라(KazumaMotomura)씨의 퍼포먼스가펄쳐졌다. 참석자들은 슬픈 선율 속에서 폭력의 고통을 형상화한 그의 퍼포먼스를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이어 무대에 오른 이옥선 할머니는 “여성의 미래를 위한 치욕의 극복(?berwindung der Schamf?r die Zukunft der Frauen)”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일본이 저지르는 참담한 만행들을 고발하고 여전히 위안부 징발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를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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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위에 앉은 할머니는 작고 여윈 몸이었지만 불편한 몸을 감수하며 진실을 알리고자 자신의 마지막 힘을 불사르는 모습이었다. 이제 마이크로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을만큼 몸이 쇠약해진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진실을 알리려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한국인들도, 독일인들도 그리고 우연히 이곳을 찾은 다양한 국적의 방문객들도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할머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경청했다. 특히 발언의 말미에 할머니는 본인이 위안부로서 매우 수치스러우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본인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모른다고 말을 꺼냈다. 할머니는 그러나 일본이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한 이러한 발언을 계속 할 것이며, 그래야만 두 번 다시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발언은 참석자들에게 이옥선 할머니의 용기와 강인함에 대해 각인시켰고, 참석자들은 모두 뜨거운 박수로 이러한 용기에 응답해주었다.

이날 이옥선 할머니의 행사에 참석하러 온 일본인 프리랜서 기자 타이치로카지무라(TaichiroKajimura)씨는 오늘 행사에서 큰 감동을 느꼈다며, 이옥선 할머니의 발언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나아가 이러한 활동들이 아시아에서 인권 향상을 위한 운동들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온 파티야 자사리(FatijaJasari)씨는 행사가 끝난 뒤 이옥선 할머니를 찾아와 긴 대화를 나누며 할머니를 위한 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그녀는 이옥선 할머니처럼 강인한 여성은 처음 본다며, 이러한 강인함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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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 다뤄진 한국과 관련된 세 주제들, 즉 한반도의 상시적인 전쟁위기,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들의 투쟁,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한국 사회의 과거,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가 처한 현주소를 이곳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은 언제나 정치적 권력에 의해 권력의 유지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는 언제나 북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제약하고 사회 전체를 군사적 기지로 만들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정작 300명의 학생들과 승객들이 차디찬 바다에 빠져 있을 때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부는 골든 타임 동안 손을 놓아버렸고, 그 뒤엔 아예 구조작업 자체를 민간업체에 위임했다. 그 피해 유가족들이 특별법을 제정해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애원할 때조차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것은 경찰의 폭력뿐이었다. 위안부로 징발된 성노예 피해자들이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에 항의하며 목놓아 외칠 때에도 국가는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3억 달러 무상차관이라는 싼 값에 일본에 대해 더 이상 어떤 배상도 묻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지금 아베 정권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커녕 과거사를 부정하고, 나아가 평화헌법을 개정함으로써 군국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한국 정부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국사 교과서의 검정을 통과시키고, 이 교과서를 옹호한 사람들이 주요 장관 후보자들로 지명됐다. 국민을 억압하는 국가는 존재하지만 공적 권위를 갖는 정치체로서 국가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강한 국가권력 속에서 정작 다수 대중들은 국가 없는 국민으로 살고 있는 한국의 이 역설적 상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고민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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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평화 페스티벌은 한국에 과연 진정한 평화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했다. 그리고 많은 참석자들은 긍정적인 대답을 내리지 못한 것 같다.

베를린 평화 페스티벌이란?

평화를 촉진하며, 국제 연합(UN)의 목적 그리고 각국의 평화 의무를 알리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베를린 평화 페스티벌은 올해 6회째를 맞이했다. 이번 행사는 알렉산더 광장에서 열렸으며, 나흘간 수많은 예술가들의 전시와 공연, 각국 민속축제와 전통음식 축제, 학술적 좌담회 등 많은 행사들을 통해 평화의 중요성이 전달되었다. 독일의 무기수출 반대, 그리고 1989년 동독 정권을 붕괴시킨 시민혁명,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시리아 위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이 토론회의 주제들이었다. 내년에는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여러가지 행사들이 열릴 에정이다. 1월 15일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 해방을 기념하는 행사가 개최되고, 5월 8일에는 종전 7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릴 전망이다. 내년 7월 15일부터 9월 21일까지는 베를린부터 예루살렘에 이르는 평화자전거 행진이 있을 예정이다.

법은 항상 바람직함이 될 수 있는가?(2)[대안도덕교과서]-6

법은 항상 바람직함이 될 수 있는가?(2)[대안도덕교과서]-6

 

 

김종곤(건국대학교)

 

*이 글은 삼인출판사에서 출판 될 대안도덕교과서(가제)의 일부를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3. 법과 습관 그리고 믿음

 

예를 들어 현재 도로교통법 제50조, 제67조, 제156조, 제160조에서는 안전벨트 착용과 그 처벌에 관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1990년(경향신문 1990.09.19.)에 들어서면서 안전벨트 착용은 의무화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필자의 기억을 더듬어 보더라도 대부분의 차량 운전자들은 안전벨트가 자동차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불법도 아니고 더구나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전벨트 미착용에 대해 대대적인 집중 단속이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 즉 적발시 벌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불편하고 번거롭지만 안전벨트를 착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자동차에 올라타자마자 습관적으로 운전자는 안전벨트를 착용하기 시작하였고, 운전자가 착용하지 않을 경우 동승자가 안전벨트를 착용할 것을 권고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것이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하거나 적발시 벌금을 내야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라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서는 안 할 수도 있으며 의도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예에서 안전벨트에 관련한 법을 따르는 것이 ‘습관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좋은 개념이 습관(Habit)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아비투스’(Habitus)입니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사회적인 것이 신체에 내면화되고 그것이 다시 사회화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았을 때 ‘의례적으로’ 선물을 준비합니다. 이는 어느 날 자연스럽게 생긴 마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느 때 부터인가 자신의 생일이 되면 부모나 주변사람들이 선물을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생일에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물 증여는 사회적인 관습이 내 신체에 아로새겨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동시에 자신 역시 친구의 생일에 선물을 주면서, 그 선물을 받는 친구도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즉, 자신의 신체 또한 사회적 믿음을 만드는 것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비투스는 한편으로는 의식적인 측면에서 또 한편으로는 단지 생각이 아닌 무의식적인 것으로서, 둘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안전벨트의 예로 돌아가 봅시다. 그렇다면 법 제정 이후 안전벨트를 습관처럼 착용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믿음을 자신도 받아들이고 그럼으로 해서 자신 역시 그것을 사회적 믿음으로 만들거나 강화하는데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법의 내용이 바람직하든 혹은 그 내용이 문제가 있든지 간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바람직하다고 믿으며 자신도 모르게 따르게 된다는 말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믿음’이 결정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i?ek)이라는 철학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듭니다. 한 정신병자가 있었습니다. 그 정신병자는 자신이 옥수수 알갱이라고 생각해서 닭이 자꾸 자신을 쪼아 먹을 것만 같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몇 달 동안의 치료 후 이 환자는 완치판정을 받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이 환자는 자신의 주치의를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깜짝 놀란 의사가 이 환자에게 당신은 완치되었으니 다시 나를 찾아올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자 이 환자는 자신이 옥수수 알갱이가 아닌 것을 알고 있는데, 여전히 닭이 자신을 옥수수 알갱이로 알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불안을 호소합니다. 이 이야기가 들려주는 바가 무엇일까요? 자신(정신병자)의 믿음보다 타인(닭)의 믿음이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할지라도 타인이 믿는 바를 벗어나기가 너무나도 힘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법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신체적인’ 습관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믿음을 나의 믿음 체계로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판단과 상관없이 법에서 규정하는 바를 이미 우리의 ‘양심’과 같은 것으로 우린 안에 받아들여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법을 어겼을 때에도 심리적으로 불편한 생각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아버지가 pc방에 가는 것을 금지시킨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것에는 나름의 합리적이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 학업에 영향을 준다던지 어른들의 담배연기 때문에 건강에 해로운 공간이라든지 말입니다. 하지만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것은 그 어떤 것 보다 큰 즐거움이고, 그곳에 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다른 일에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아버지의 금기 사항을 어기고 pc방에 가서 신나게 게임을 합니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동안에도 아버지에게 발각될까봐 불안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왠지 아버지를 보는 것이 껄끄럽습니다. 이 아버지를 법이라 생각해보세요. 아버지의 금기 사항을 듣고 머릿속에 기억하듯이 법은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법은 단지 ‘나’의 외부에 혹은 법전(法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 들어와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법 물신성이라는 측면에서 법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준수하고 또 그것을 위반하였을 경우 왜 불편함을 느끼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는 다음의 두 가지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첫째, ‘법=바람직함’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법은 항상 바람직함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바람직할 수도 있고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둘째, 그 어떤 법이 불합리한 ‘법’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거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법 그 자체를 신뢰하면서 신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중요한 것은 ‘법=바람직함’이라고 여기는 우리의 믿음 체계가 문제가 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거부되어야 하는 것은 ‘법은 법이니까’와 같이 법 자체를 절대적인 것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4. 안티고네의 저항과 민주주의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가 쓴 희곡 《오이디푸스왕》에서 안티고네는 종종 법 물신성에 대해 저항한 인물로 해석됩니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 두 오빠가 있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나중에 자기도 몰던 사실이지만, 자신을 버린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한 것을 알고 심한 죄책감에 스스로 눈을 찌른 후 테베를 떠납니다. 이 후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교대로 테베를 다스리기로 하지만, 에테오클레스가 먼저 약속을 어기고 폴리네이케스를 추방시켜버립니다.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로 망명해 그곳의 공주와 결혼 한 후 군대를 이끌고 테베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일대일 대결을 벌였지만 결국 둘 다 죽게 되고 말지요. 이 과정에서 크레온은 왕이 되고 에테오클레스는 선왕으로서의 예를 갖추고 성대하게 장례를 치루지만 테베의 입장에서 적인 폴리네이케스는 들판에 방치해 짐승이 뜯어먹도록 명령하였으며, 누구든지 그의 시체를 장례치루고자 한다면 사형에 처한다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그것을 어기고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 위에 흙을 뿌려 덮었고, 결국 그녀는 국왕의 명령을 어긴 죄로 크레온 왕 앞에 끌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혈육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은 크레온의 명령 보다 우선하는 신의 율법이라고 항거합니다.
 

오빠의 시신을 수습하는 안티고네/ 출처: www.redian.org

오빠의 시신을 수습하는 안티고네/ 출처: www.redian.org


 

이 희곡에서 크레온의 명령과 포고령은 국가의 법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안티고네가 그것을 위반한다는 것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그녀가 지키고자 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녀의 말처럼 죽은 형제의 시신이 처참하게 들판에 버려져 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폴리네이케스는 에테오클레스가 배신하는 타국으로 쫒겨가야 했다는 점에서 그녀에게 있어 아픔입니다. 그렇기에 국가의 법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것에 저항하고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고 매장하는 것은 그녀 내면의 ‘바람직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우선 법이 그 국가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그것은 법 물신성이 완전히 성공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안티고네가 믿는 바람직함이 법은 항상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안티고네가 오빠의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욕망이 법은 그 자체로서 바람직하며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는 명제 혹은 그러한 믿음에 대해 저항의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민주주의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공동체 내에서 살고 있지만 그 어떤 법은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안겨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친북행위나 반국가적 활동에 대해 처벌하는 규정들을 담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이 법은 종종 정치적 목적에서 악의적으로 국가권력에 의해 폭력적으로 사용되곤 하였습니다. 물론 법 그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그것을 이용하고 판결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법을 해석하거나 적용하는 사람이 완전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문제가 되기에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바꾸면 문제는 해결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법이 있고 이를 누군가가 해석, 적용하는 한 이러한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세상 어디에 오판을 하지 않는 법이 있는가라고 또 한번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오판이나 오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 그 자체를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그 법의 지속만을 주장하는 것은 법에 대한 숭배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논쟁 중 하나를 보도록 하지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표현의 자유와 권리 등의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하나의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한 논자는 「국가보안법의 쟁점에 대한 바른 이해…」(www.konas.net)라는 글에서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논리를 편고 있습니다.

이는 헌법이 법률 체계 상 가장 상위의 법이기에 그 하위법인 국가보안법이 문제가 되면 통제를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인간이 없습니다. 그냥 남아 있는 것은 ‘헌법’이고 그것 보다 힘이 약하다고 말하는 ‘국가보안법’만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헌법에서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지 않아서 국가보안법이 남용되거나 악용된 것이 아닙니다. 헌법에 기본권을 명시하고 37조와 같은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고 할지라도 법의 집행은 욕망을 지닌 ‘인간’에 의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렇기에 위와 같은 주장은 공포스럽게 까지 느껴집니다.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살아있는 인간의 고통을 헌법 제37조 제2항이 쓰여 있는 법전의 한 페이지를 찢어서 덮어주면서 조소하는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이런 식의 주장은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헌법 전문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담고 있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4·19혁명은 과거 이승만 정권이 정부 집권을 연장할 목적으로 부정개표를 한 것이 알려지면서 정권교체를 위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정부 항쟁입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헌법이 정의(Justice)는 법이나 정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다수 민중들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는 나아가 헌법이 안티고네와 같은 저항을 인정하는 정신을 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우리 헌법의 정신을 그리고 역사를 잘 이해하고 있다면 위와 같이 철저한 법 물신성에 기초한 사고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고통을 주거나 그 고통을 방치하도록 하는 법이 그 자체로 법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어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법이 정의롭지 못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판단될 때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민주주의입니다. 그렇기에 법을 숭배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곧 민주주의로 향한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철학을 음미하는 삶 [침몰한 세월호, 침몰한 대한민국]-10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미래로 가는 길이다

 

 

박종성(호원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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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칭 죽음을 구조화하는 권력과 그 대리자

어느덧 나에게 와 닿는 바람도 여름이 떠나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그 바람은 광화문 단식농성장에 더 진하게 불고 있었다.?죄송한 가슴으로 찾은 광화문에서의 반성은 삶과 죽음,?다시 죽음과 삶에 대한 문제를 음미하게 만들었다.?그 바람 속에는 여전히 세월호의 넋들이 묻어나 있다.?바람은 그렇게 나에게 죽음을 음미하게 한다.?우리는 나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장켈레비츠에 따르면,?인간의 죽음은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으로 구분된다. ‘나’는 일인칭 죽음, ‘너’, ‘당신’은 이인칭 죽음,?나와 별 상관없는 그런 사람들의 죽음을 삼인칭 죽음이라고 하였다.?우리는 결코 일인칭 죽음을 알 수도 경험할 수 없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고 사유하며,?음미한다.?타자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다시금 묻는 것이다.?그것이 인간이다.?물론 실존주의는 나의 죽음을 강조했다.?그러나 인간은 일인칭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이것이 인간의 삶의 조건이다.?그러므로 인간은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의 죽음의 의미를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즉 레비나스가 말하는 죽음의 의미로 보면,?타자의 죽음을 통해 보다 근원적인 죽음에 도달 할 수 있는 것이다.

삼인칭 죽음으로 구조화된 정부와 매스컴의 왜곡된 태도는 우리들에게 죽음에 대한 음미를 가로막는다.?즉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매스컴의 태도나 정부의 능력은 우리들에게 삼인칭 죽음으로 인식하고 경험하도록 강요하였다.?보다 직접적인 그 죽음의 원인과 아픔에 천착하지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관조하거나 방관하고 호도하는 태도가 바로 그러한 죽음의 태도를 불러 일으켰다.?이러한 권력은 우리에게 죽음을 음미하지 못하게 한다.?이 문제는 삶에서 중요한 문제이다.?그 이유는 죽음은 상대의 존재 조건이기 때문이다.?우리에게 벌어진 이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묻고 또 물어야만 삶의 조건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이 너무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통하여 삶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권력을 움켜쥐고 죽음을 음미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그들은 경제를 살리자고 주장한다.?이번 죽음의 의미를 다시 계속하여 묻지 않고 삶을 규정하는 경제 살리기가 가능하다는 것인가??참으로 허접쓰레기같은 발상일 뿐이다.?죽음이 삶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그도 그걸 것이 그들에게 일인칭 죽음만이 죽음일 것이 때문이다.?그러나 인간은 이인칭 죽음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나아가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힘을 창조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삶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그것이 역사이고 삶이고 인간의 본래적 모습일 것이다.

 

죽음의 동반자인 존재의 의미

우리가 죽음의 문제를 이렇듯 다시 음미해야 하는 이유는 삶과 죽음은 각각 존재의 의미를 상대에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세월호 사건의 죽음은 우리에게 삶의 문제를 부각시킨다.?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바로 이러한 의미에게 그 억울한 죽음은 우리들의 삶의 동반자이다.?그래서 사람들은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이러한 모습은 광화문 광장에,?그들의 손에 든 푯말에,?행진하며 외치던 구호에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그래서 이번 죽음은 우리들의 삶의 동반자이다.?아픈 동반자일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아픈 동반자의 죽음,?그 기억은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그들의 죽음이 나의 삶에서 함께 하면서 우리들의 죽음 속에서 마지막 죽음의 삶을 마감할 때 사라질 것이다.?그러나 그 죽음은 또 다른 삶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정치권력은 이 죽음을 뿌리치고자 한다.?그럴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삶은 죽음의 동반자가 될 수 없지만 죽음은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즉 삶 속에 있는 죽음,?그러나 죽음 속에 삶이 없기에 우리는 죽음의 동반자인 것이다.

죽음의 동반자인 우리들은 자기 보존 의지를 갖기에 삶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이다.?쇼펜하우어가 말하듯 인간은?‘생존 의지’를 갖기 때문이다.?하이데거는 죽음에 대한 기분을?‘불안’이라고 보았다.?공포는 분명한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다.?이에 비해 불안은 미래 속의 가능성으로,?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것에 대한 감정이다.?인간은 이러한 불안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이러한 불안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하이데거는 보통의?‘인간’이라고 불렀다.?이러한 인간의 모습과 달리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 의미를 통해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을 실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결국 하이데거에게도 죽음의 의미를 음미하는 것은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또한 소크라테스가?‘불운한 정령’(daimon)에 사로잡혀 철학적 삶을 살아가며 주장했던 것은 무지를 자각하라는 것이었다.?그가 말하는 무지에 대한 자각은 세속적인 욕구에 충실하고 자신에 대해 무반성적 태도를 보이는 인간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즉?‘음미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철학의 핵심을 잘 드러낸다.?우리는 얼마나 현실적인 무와 명예에 쫓겨 살아가도록 강요받고 또 그렇게 행동하며 반성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무지한 인간들,?즉 죽음의 의미에 대해 무지한 인간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이것을 소크라테스는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이번 죽음의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의들 중 현실을 강조하며 경제를 살리자는 이들의 가치관은 그야말로 자신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무지한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죽음 앞에 그들이 갖는 교만과 사악함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것이다.?결국 그들에게 죽음이 의미가 없는 것은 그들에게 이번 사건의 죽음들을 음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멘토 모리(mememto mori)

수도회에서 허락한 단 하나의 말이다. ‘죽음을 기억하자’라는 말이다.?우리의 삶에서 추방시키고자 한 죽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그러하지 못한 상황이 지금이 현실이다.?자꾸만 기억에서 저버리는 삶을 강요하는 권력과 그 대리자들은 현실적 삶의 규정,?삶의 미래 또한 포기하자는 것과 다름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소크라테스가 말하듯,?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다.?죽음의 준비를 하는 과정이 철학이다.?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물어야 한다.?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이 죽음의 의미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재규정하고 설정할 수 있는지 말이다.?현실을 강조하며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는 이들은‘맹목적인 삶의 의지’(der blinde Wille zum Leben)로 가득 찬 비합리적인 인간들이다.?쇼펜하우어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를 진단하고 있다.그가 세계를 고통으로 가득 찬 것으로 보는 것은 세계가 고통의 세계이므로 고통의 치유를 요구한다는 것이다.?그냥 단순히 고통의 세계임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그렇기 때문에 쇼펜하우어의 죽음 철학은 보다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단순한 맹목적인 삶의 의지를 부정하는 것은 새로운 삶의 의지의 긍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광화문에 울려 퍼지고 우리들의 가슴 속에 내려 앉아 싹을 틔우고 있는 죽음의 의미는 실존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개별적인 삶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삶 전체,?생명 전체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우는 것이다.?단순한 삶의 의지는 세계의 부정이 아니다.?죽음의 의미를 되뇌는 삶의 의지는 이와는 다르다.?이러한 삶의 의지는 단순한 세계의 부정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생명의 긍정이다.?이것이 이 번 사건의 의미이자 우리가 회피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의 의미인 것이다.?자신의 포기가 아니라 자신을 넘어 생명이 생명력을 다 할 수 있는 그러한 의지를 보존할 수 있는 만들 수 있는 세계의 긍정이다.?지금은 그러한 안전한 세계,?생명의 의지가 실현되는 세계가 아니다.?우리는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다.?우리가 더 나은 세계를 긍정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이기심에 가득 차,?개별적 삶만을 기억하고,?교만과 사악함에 물들어 죽음의 의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지양하고자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 촉구 천만인 서명의 슬로건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약속합니다.?진실을 밝히겠다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이것을 위해 우리는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우리는 모두 다모클레서의 검 아래 있는 그러한 인간들이다.?우리는 죽음아래 살아가는 그러한 존재들이다.?살아가는 존재여!?죽음을 기억하라!

 

나는 사해(四海)에 솥단지 하나 걸어 놓고 살아도 된다 [김성리의 성심원 이야기]-5

나는 사해(四海)에 솥단지 하나 걸어 놓고 살아도 된다 ?[김성리의 성심원 이야기]-5

 

김성리(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괜찮았다.?처음에는 몸이 아프니 마음이 아프더라.?그래서 날마다 울었다.?이 병이 왔을 때에는 뭐가 뭔지 몰라서 안 울었고,?소록도에 갈 때도 언니가 있으께,?내가 있어야 불쌍한 우리 언니 돌보아 줄 수 있으께 안 울었다.?온 몸이 아프고 죽을 것처럼 열이 나고 덜덜 떨리니까 겁이 나고 그렇더라.?남들은 다리 없이 어찌 살거냐고 하고,?우리 아버지는 내 꼬라지 보고 그 길로 화병을 얻어서 돌아가실 때도 한을 품고 가셨다.

나는 그냥 어리벙벙했다.?얼굴도 수건으로 안 덮어주고 수술하는 걸 보다가 졸도했는데,?깨어나서 보니 시원하더라.?얼매나 몸이 아프고 힘들었는지 슬프고 울고 그런 거 없었다.?너무 아픈 데가 없어지께 후련하고 가뿐하고 그랬지,?뭐.?그런데 살다보니 눈물이 날 때가 더러 있더라.?지금도 몸이 아프모 눈물이 안 나는데,?마음이 아프모 눈물이 난다.?왜 그럴꼬??소록도 생각해도 눈물이 나.?그때 생각하모 마음이 아파.?자꾸 아파.

소록도에 있을 때에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옷은 광목이었다.?틀린 거는 겨울이 되모 검은 물들인 옷을 입은 기다.?참 추웠다.?배도 고팠어.?배급을 주는데 맨날천날 모자라.?나는 어리다고 밥도 마이 안 줬어.?그래서 칡을 마이 묵었다.?칡이 억시기 많아서 물칡은 안 묵고 끊어 버리고 했다.?거기서 죽는 거는 사는 것보다 쉬워.?죽으모 제대로 장례도 안 지내주고 함부로 한께 사람 뼈가 예사로 있어.?왜 저 앞에 텔레비전에도 나오는 것 같던데,?그거 사실이다.?그때도 쇠꼬챙이로 아무 데나 땅을 부시모 뼈가 나오제.

밤에 바다를 보모 퍼런 빛이 번득여.?사람 뼈에서 나오는 인이 그리 보이는 기라.?아이가,?그냥 버리는 게 아니고 화장을 하는데,?제대로 안 돼서 그래.큰 도람통 같은 기 있는데,?죽으모 거기다가 넣고 화장하는데,?요새같이 그리 안 되지.?납골당이 있기는 있었어.?큰 뼈는 납골당에 넣고 납골당이 차모 지하실에 따로 보관했다.?그라고 자잘하게 나오는 거는 바닷가에 버리기도 했거든.?어떤 날은 뼈에 파래가 끼인 채로 해변가에 뒹굴어 다닜다.

양추자 - 시모임

바닷가에 자주 나갔지.?먹을 기 있다 아이가.?나는 소록도에 가서 반지락을 처음 보고 알았다.?우리집이 있던 거제도는 물살이 세서 반지락이 없어서 몰랐다.?파도에 껍데기만 밀리오고 했거든.?소록도에는 많았다.?그거 주워서 삶아 묵고는 했다.?그라고 파래가 많았거든.?파래를 뜯어서 그 우에다가 강냉이 가리를 솔솔 뿌리 갖고 쪄묵었다.?허허,?맛은 무신 맛.?파래강냉이 떡이지.?파래만 찌모 안되니까 쌀가리 대신 강냉이 가리를 쪼끔 뿌리서 묵는 긴데,?그기라도 실컷 묵었으모 했다.

그거를 묵고 나모 침이 질질 흘러.?몰라,?이상하대.?파래만 묵으모 속이 데리고 침이 질질 나와.?속이 마이 데린다.?처음에는 괜찮은데 자꾸 먹다 보모 데리다 못해 침이 질질 흘러내리.?산나물도 마이 뜯어서 그리해서 묵는데,산나물은 속이 고달퍼.?산에서 나는 거는 마이 묵고 자꾸 묵으모 속이 고달프고,?바다에서 나는 거는 속이 데린다.?그 이유는 몰라.?한 방에?10명씩 살았는데,?나만 그런 게 아이고 거의 다 그랬어.?그래도 묵을 기 워낙 없으니 바닷가에 가모 널린 기 파래고 옥수수 가리는 배급이 나온께 그거라도 해 묵고 허기를 달랬어.?묵고 나서 침이 흐르고 속이 데리도 그기라도 많이 묵고 싶었어.

곡식이 귀해서 그랬지 묵을 거는 그거 말고도 제법 있었제.?산에 소나무 안 있나.?소나무도 묵었다.?허허 아이다.?무신 아무 소나무를 꺾어 묵노.?니도 참 말이 안 된다.?소나무 솔잎에 새순이 안 드나.?그 새순이 올라오는 거(가지)?밑에 있는 가지를 꺾어서 껍데기를 벗기모 안에 또 껍데기가 나와.?그 껍데기를 이로 긁어서 묵으모 맛이 괜찮아.?작년에 올라온 새순 위(가지)에 또 새순이 올라 오모 올해 거는 놔두고 작년 걸 꺾어 묵었다.

소나무는 꽃도 묵고 이파리도 묵는다.?참 고마운 나무제.?송진도 묵는데 그거는 흐르고 난 뒤 사나흘 지나모 꼬들꼬들해지거든.?꼬들꼬들해진 걸 뜯어 묵는데,?꼭꼭 씹으모 껌처럼 된다.?배가 고플 때 그기라도 꼭꼭 씹고 있으모 좀 낫다.?씹으모 껌같이 되는 기 피비(삘기)다.?니도 피비는 묵어 봤고나.맞다.?거제도에 참 피비가 많다.?소나무는 묵으모 배가 부르고 그거는 묵으모 더 허기가 나.?풀도 나무도 생긴 대로 다 다른 기라.?굶어 죽으란 법은 없어서 천지에 묵을 거를 흩어 놓고 안 있나.?그기 자연이다.

16살에 다리 끊고 나무다리로 그리 그리 살았는데, 19살에 중매로 결혼했다.?옆에서 중매해줬는데, 29살 묵은 노총각이었다.?암만 노총각이라해도 내를 봐라.?좋은 마음으로 내 도와준다고 장가들었다. “어임주”?우리 영감 이름이다.?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산청이 고향이다.?산청초등학교 다닜다카더라.?소록도에서 나와 갖고 함안 정착지에서 살다가 여게(성심원)로 온 것도 다 그런 인연이제.?부부로 사십칠팔 년을 살아도 싸움 한 번 안했다.법도 없이 살 사람이다.

2007년?10월에 갔다.?내가 폴도 마이 아프고 다리도 좀 그렇고 해서 그런지 나를 마이 위해 줬다. 2007년 들어 좀 샐샐했제.?기운도 빠지고 해도 그래도 나는 그리 갈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그날 저녁에 밥을 참 맛있게 묵더라.그러고는 생전 안 하던 짓을 하는 기라.?밥을 한 그릇 더 주라는 기라.?내가 무신 밥을 또 묵을라카노 하면서도 한 그릇 더 퍼주니까 암 말도 안하고 그 밥도 깨끗이 비우더니,?고마 자다가 안 가나.?응,?자다가 그리 갔다.?평생 그리 고생하고 배도 마이 곯았는데,?그래도 가는 길은 편하게 가서……얼매나 배 곯고 살았으모 가는 길에는 배 안 고플라고 두 그릇 든든하게 묵고 갔을꼬.?가는 동안은 배 안 고팠을 기다.

19살에 결혼은 했는데, 26살에 살림 났다.?결혼은 해도 낮에만 같이 있고 어두워지모 합숙하는 방에서 잤제.?방이 없었어.?어짜다가 누가 죽어서 혼자 되는 집이 있으모 그때는 혼자 된 사람은 합숙하고 그리 빈방에 살림을 내줬거든.?결혼했다고 딴 방을 줄 형편이 안됐어.?그래서?26살까지는 낮에만 부부지.?그래도 부부가 되니까 낮에 와서 힘든 일도 도와주고 좋대.?좋더라.하하하.

그래서 아이가 안 생긴 거 아이다.?그놈들이 단종수술을 해서 아를 못 낳았다.?소록도에서는 젊은 남자가 들어오거나 어리서 와도 사내 구실할 나이가 되모 모조리 단종수술을 했거든.?강제로 했다.?단종대가 따로 있었다.?붙들어 가서는 뭐 제대로 마취도 없이 묶어 놓고 했지.?그래서 원통하고 분하다.자식도 없으니 천지간에 나 뿐이라.?명절이 제일 서럽다.?평소에는 모리고 살지.?명절이라고 주변에 그래도 자식이 찾아오고 자랑하는 거 보모 서럽고 인자 그만 살고 싶다.

임신한 여자가 들어오모 강제로 낙태시켰다. 10개월이 되어도 아를 낳게 하는 기 아이라 낙태시켰다.?병원 지하에 강제 낙태시킨 태아들을 보관하는 데가 있었다.?나는 봤다.?병에 보관되어 있는데,?머리카락이 새카만 태아도 들어 있었다.?우찌우찌해서 아를 낳아도 바로 보육시설로 보내진다.?엄마가 울고불고 해도 소용없다.?놀래기는 와 그리 놀래노??거는 그런 거 예사다.?지금이야 뭐 천국이다 어쩌다 하지만,?우리 살던 옛날 소록도는 사람 사는 데가 아이다.

언젠가 남편이 그러더라. “우리 이 몸으로 돈 많이 벌었다.?참 일 많이 했다.”?그러대.?참 열심히 살았다.?죽어라고 일만 했다.?시동생이 아를 다섯 명이나 두고 먼저 갔다.?동서는 가출했버맀고 하니까 시어머니가?‘조카도 자식이다’?하대.?그 아이들을 시어머니가 키우는데 양육비를 보탰다.?말하자모 그 아이들 다섯 다 거두고 시어머니 생활비를 대줬다.?조카가 자라서 취직했을 때는 작은 차도 한 대 뽑아줬다.?둘째 질부는 가까이서 복지사로 일한다.?조카들이 가까이 있어도 안 온다.?그 시어머니도?2008년도에?98세로 돌아가셨다.

소록도에서 나와서 함안 농장으로 왔거든.?와서 보이까 우리 시어머니가 아들도 없이 손자 다섯을 데리고 살고 있는데,?나라로부터 아무 도움도 못 받고 살고 있는 기라.?하기사 누가 나서서 아들 하나는 죽고 하나는 몹쓸 병 걸리 있고,?며느리는 집나가고 없는 촌 할멈한테 관심을 두겄노.?우리 영감이 면사무소에 참 뻔질나게 다니고 항의도 하고 애원도 하고 해서 생활보호대상자가 됐다.?우리가 보태주는 것도 한계가 있고,?그래도 그 돈이라도 나라에서 나오니까 밥은 안 굶고 손자들 공부는 시킸다.

60년 도에 소록도에서 통마늘 농사 지어서 서울에다 팔았는데,?얼추?1년에 한 천만 원씩은 되는 것 같더라.?그때는 보상 없었다.?무임금 노동이라고 들어 봤제??그런 기다.?돈 달라고 말도 못한다.?참 일 마이 했다.?불쌍한 우리 언니가?85년도에 죽었다.?그리 가엾고 또 가엾게 살다가,?나 생매장 안 시킬라고 내 배위에 엎어져서 그리 울던 큰 언니가 결국은 갔다.?언니가 죽자 우리도 소록도에서 나왔다.?그때는 우리가 나가고 싶다 하모 내보내주고 했다.?가운데 언니는 외동딸 하나 낳고 부산에서 살고 있다.?건강할 때는?1년에 한 두 번 씩 왔다 갔는데,?인자 늙고 몸이 안 좋은께 오도 못한다.

사회에 나와서 정착촌으로 갔는데 거가 함안 농장이다.?처음에는 짐승을 키웠는데,?품삯으로?50만원을 받았다.?기분 좋지.?일하고 돈을 받으니 아침부터 밤까지 참말로 열심히 했다.?죽기 살기로 일해서 우리 명의로 된 짐승도 사고 그리 했지.?니 보다시피 내 폴이 이렇다 보니 크게 힘쓰는 일은 영감이 했다.?나도 하는 데까지 힘을 보태도 다리도 나무 다리고 폴도 이리 해 갖고 뭐 그리 큰일을 했겄나.?밥하고 집안 일 하는 것도 참 힘들고 어렵더라.

학교??응,?다닜다.?소록도에서 학교를 다닜다.?집에서는 국민학교?4학년까지 댕깄는데,?소록도에 중학교가 생기서 들어가서 배웠다.?영감 만나 결혼하고 나서 학교 갔지.?재밌더라.?영감도 다니지 말라는 말은 안 해.?소록도 교회 안에?1960년도에 야간 성경 고등학교가 생깄다.?그게도 댕기고 있었는데,?고마?63년도부터 학생들 보고 오마도 공사에 가라카대.?오마도 공사에 학교 학생들을 죄다 데리고 가서 일 시킨다고 학교를 보내주나,?못 가게 하는 기라.?해뜨모 학교가 아이라 오마도로 갔다.?그래서 고등학교는 저절로 없어졌지.?그 길로 공부는 끝났다.?오마도 이야기는 안 하고 싶다.?참 마이도 죽고,?흔적도 없이 갔다.?일하다가 바다에 빠져 죽고 파도에 휩쓸리 갖고 죽고 일하다가 죽고……

97년도에 여게 성심원으로 왔다.?더 이상 일도 힘들고 조카들도 얼추 크고 하니까 영감이 이리 오자고 하더라.?그래서 시어머니하고 조카들 단도리 좀 해 주고 돈?○○○원 들고 여게 와서?201동에 살림을 풀었다.?그때는 성심원이 지금하고 좀 달랐다.?응,?그렇지.?지금이 더 좋아졌지.?영감이 죽고 나서도 한참 동안 밥해묵고 있었다.?근데 폴이 이리 덜렁거리고 힘이 없은께 밥 한 끼 하는 것도 너무 힘들고 고달파.?관절 때문에 팔에 기브스도 했는데,?밥을 제대로 해 묵을 수가 있어야지.?밥 한 끼 묵는 기 어찌나 고되던지 말도 못한다.

여게 요양사에 방이 없어서 못 들어오고 있다가 작년(2013년) 10월에 들어 왔다.?아이고,?암만 낫지.?밥 주제,?청소해 주제,?목욕 시켜 주제,?이런 데는 없다.?내가 시를 하나 썼는데 한번 봐라.?직원한테 불러주고 직원이 이리 종이에 옮겨서 갖다 놨다.?여게다가 내가 곡을 붙이서 노래 해 보꾸마.

 

성심원 구름이 두둥실

멀리 멀리 퍼지네.

너는 아느냐

성심원을……

나그네 천국이라는 걸

(중략)

성심원 바람이 두리둥실

온 세계에 퍼지니

너는 아느냐……

성심원이 장애인 동산이라는 걸

-2014년?4월?4일 구술-

 

이거는?4분의?4박자로 불러야 된다.?샤프(샵, #)를 넣어서 센트(크레센도)로 불러야 한다.?알지.?샤프와 센트는 높고 강하게,?프렛은 낮게 불러야지.내가 이래봬도 성가대 경력?30년이다.?소록도에서 교회 다닐 때도 노래 부르고,?천주교 다니고 나서도 노래 불렀다 아이가.?이거는 얼마 전에 소록도 갔다 와서 지어 봤다.?혼자 지어 갖꼬 혼자 노래 부르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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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원은 우리 같은 나그네의 천국이다.?성심원이 좋다.?그런데 소록도에 가니까 예날 생각이 나고 눈물이 나대. (성심원)요양사에서 옆방 사람하고 맘이 안 맞아 속이 상해?‘나갈까’?하는 생각이 든다 한께 전에 같이 소록도에 있던 사람들이 오라고 하더라.?잘 지내던 사람들이 좀 남아 있더라.?다 안 죽고 살아 있더라.?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다 못 만나고 왔다.?그게는 방도 항상 준비돼 있다 카더라.?벽지도 새 거고 방마다 에어컨도 있고……그게서 살다가 성심원으로 가고 싶으모 가도 된다고 그라더라.

소록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병원이다.?그게는 워낙 이름이 알려져 있으니까 봉사자들이 많아서 아픈 사람들은 방마다 밥도 갖다 주고 하더라.?여게는 직원들이 밤낮으로 안 뛰어 다니나.?참 고맙고……?말로는 고마운 맘을 다 표시 못하제.?나한테는 우리 성심원 직원이 가족이다.?나는 사해에 솥단지 하나 걸어 놓고 살아도 된다.?돈 필요 없다.?나는 생활보호대상자라서 아파도 병원에서 돈 안 받는다.?이 나이 되고 보이 자식 하나 못 남긴 것,?그것만 억울하다.?나 죽고 나모 우리 영감이나 나나 누가 기억하겄노.

옛날에 우리 아부지가 그러는데,?내 사주가 남자 같았으모 사모관대를 쓸 사주인데,?여자로 태어나서 국록을 먹는다고 했단다.?큰 기와집 밑에서 전깃불 아래에서 산다고 했다는데 딱 맞다.?그 말을 모리겄나??내가 지금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묵고 사니 국록을 받아 묵는 기고,?소록도에 가니까 전깃불이 있더라.?그라고 지금 성심원,?이 큰 집이 내 집 아이가.?기와집이라는 거는 진짜 기와집이 아이고 큰 집이라는 뜻이라.?니도 참,?그리 못 알아 듣나?

울 아부지 함자는?‘양재만’,?울 엄마는?‘김순이’,?나 때문에 화병 걸린 우리 아부지는 일흔일곱에 돌아가시고 울 엄마는 이부지 뒤에 가셨다.?나는 원래1941년?3월?27일(음력)에 태어났는데,?호적에는?12월?10일로 되어 있다.?이유를 모리지,?왜 틀리게 되어 있는지.?내 밑으로 남동생이 다섯 명 있었다. 5남?4녀이다.?내 밑으로 아들이 줄줄이 나왔제.?내 이름 덕 좀 본 기라.?이런 이야기도 인자 다 부질없다.?세상이 허무하다.

요 앞에 날이 따시모 경호강에 가서 앉아 있으모 낚시하는 사람들을 제법 만난다.?고기 잡는 모습을 보모 참 사는 모양이 다 다르다.?어떤 사람은 내가 물어도 대답도 안 하고 본 척도 안하고,?어떤 사람은 대답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어떤 사람은 잡은 고기 다 가져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잡은 고기를 놓아주고 빈 바구니 들고 간다.?잡았던 고기를 놓아 주모 고기가 물에 들어가자마자 파드득 놀래서 꼬랑댕이를 흔들며 가는 기 귀엽다.?그런 사람은 고기를 낚는 게 아이고 강가에 서서 세월을 낚는 기라.

그나저나 인자 나 시모임에 안 갈란다.?왜는,?그냥 안 갈란다.?처음에는 시를 모린다 하고 안 쓰던 사람들도 인자는 다 시를 써 와서 읽고 하는데,?나는 니 보다시피 연필을 쥘 수가 있나,?글을 쓸 수 가 있나.?머리속에 기억해놔도 그마 자고 나모 다 잊어버린다.?직원들도 바쁜데 내가 생각날 때마다 어찌 자꾸 써주라고 하노.?그리하모 안 된다.?사람이 미안한 거를 알아야지.내 생각만 하고 그라모 안 된다.

니가 서운하다고??그래도 안 갈란다.?뭐 내가 안 간다고 서운하노.?다른 사람들도 안 있나.?마이 서운하다고??섭섭하다고??맘이 안 좋다고??알겄다.생각해 보꾸마.?그래도 자꾸 신경이 쓰이고 그렇다.?나만 가만 있는 것 같고……?내 다시 생각해 볼게.?니가 그리 서운다 하모 그것도 내가 잘못하는 기제.?응,?응,?알겄다.?알았다고.

 

근대적 시민의 애국주의-나는 왜 싸이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가? <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5-2

근대적 시민의 애국주의-나는 왜 싸이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가??<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5-2

 

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시대와 철학 편집위원장)

 

 

3.?서구의 추상적 보편주의적 윤리적 기획의 문제점

서구의 추상적 보편주의가 구체화된 자유주의적 윤리적 기획은 로크로부터 시작한다.?로크는 처음에는 규범 윤리학의 차원에서는 자연법에 의거한 도덕 규범의 구속력을 자연 신학적 방법으로 세우고자 했다.?그는 이 문제가 인식비판의 필요성을 함축한다고 생각해서?『인간지성론』에서 수학에 모델을 둔 증명 윤리학을 기획한다.?그러면서도 그의 윤리학의 전제는 창조자로서의 신과 신의 작품인 인간이다.5) 다시 말해서 그의 이성 윤리학도 기독교적 세계상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성 윤리학은 도덕 인식론을 기반으로 하는데 문제는 이 도덕 인식론이 그가 가상디로부터 물려받은 도덕 심리학(쾌락주의)과 갈등과 일으킨다는 데에 있다.?쾌락주의와 도덕 규범의 구속력이 비록 신의 영원한 보상과 처벌에 의해서 매개되지만 이는 처음부터 이질적인 두 요소간의 진정한 매개가 될 수 없다.?인간의 이기심(이해타산=합리성)과 수학과 같이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도덕 규범의 구속력과 준수(도덕성)는 애초 쉽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래서 그는 증명 윤리학적 기획에 합당한 체계를 형성하지 못하고6) 다시 계시 윤리학(예수는 메시아였다)에 호소한다.?그는 철저하게 기독교적 틀 안에서 이성적인 도덕 철학을 기획했지만 이성은 이기심을 조절하고 억제할 수 없었다.?한편 그는 실제 행위(prudence)나 정치 기술의 차원에서는 광신주의자들과 독단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지식의 한계를 정하면서 개연성에 기반을 둔 신념의 윤리학(처세술까지도 포함하는 넒은 의미의 윤리학)과 독사의 정치학을 주창한다.?하지만 이때의 이성은 확실한 도덕 규범이나 원칙을 알지 못하므로 이익을 계산하는 도구적 이성에 머물고 만다.

과연 이성이 수학과 같은 필연성과 보편성을 지닌 도덕 규범을 정초할 수 있는가??아니면 현대의 합리성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쾌락 계산의 수단으로 이성이 전락할 수밖에 없는가??로크는 전자의 물음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후자의 물음에 대해서는 부정한다.?하지만 로크의 자신의 생각대로 도덕 규범을 정초했는가??이에 대해서는 논자는 부정적이다.?로크는 도덕 규범과 관련해서 전형적인 합리론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그는 도덕 규범을 수학을 모델로 정초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이 기획은 두 가지 문제를 지닌다.?첫째로 도덕 규범은 수학과 그 성격이 다르다.?대체로 수학은 문화의존적이지 않지만 규범은 문화의존적이다.?따라서 수학의 윤리학에 대한 적용은 내용 없는 공허한 절차적 보편주의로 끝나고 만다.?그리고 수학의 논리적 필연성만으로는 도덕 규범의 구속력을 확보할 수 없다.?논리적 필연성과 윤리적 의무(obligation)는 서로 무관하다.?이런 이유로 로크는 기독교적인 심판하는 신을 그 의무의 원천으로 삼게 된다.?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신을 감성에 기반을 두고서는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러한 도덕의 문제는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에 속하고 만다.?이성은 이해관심(interest)과 신앙 사이에서 머뭇거릴 뿐 도덕 규범을 정초할 수 없다.

계몽주의 윤리학적 기획(이성적 윤리학 정초)이 붕괴된 지금 그 대안이라고 자유주의 윤리학자들이 제시했던 논리 실증주의의 이모티비즘이나 현대화된 칸트주의인 절차주의 윤리학도 문제가 있다.?전자는 윤리학의 이셩적인 형식을 부정하고,?후자는 도덕이란 공허한 형식에 불과하다고 본다.

 

4.?자본=네이션=국가

오늘날 세계화가 이루어지면 국민국가(네이션=스테이트)가 위기에 처하고 궁극적으로는 해체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그러나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처럼 생산 양식을 중심으로 세계사의 발전 단계를 구분하던 방식에서 벗어나,?가라타니 고진은 교환 양식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본다.?이런 관점은 도리어 근대적인 국민국가가 원래 자본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을 역설한다.?일례로 국민국가는 세계자본주의 안에서 양극화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시도한다.?마찬가지로 네이션은 공동체와 평등성을 지향한다.?스테이트는 다양한 규제나 세금에 의한 재분배와 같은 정책을 추구한다.?이런 방향으로 네이션과 스테이트 모두 자본주의적 경제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한다.?이렇듯 자본주의 경제,?네이션,?국가의 세 가지 교환 양식들이 서로 대리보충이라도 하듯이 접합되어 있다.?그는 이를?‘자본=네이션=국가’의 세계체제라고 부른다.7)

그에 의하면?『정치경제학 비판 강요』에서 마르크스가 제시한 다섯 가지 사회구성체의 분류가 여전히 유효하다.?그러나 생산양식에서가 아니라 교환양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각각의 사회구성체는 세 가지 교환양식(호수reciprocity,?약탈-재분배,?상품교환)의 접합으로 형성된다.?다만 서로 차이가 나는 것은 그 접합의 방식과 정도에 따른 것이다.?다시 말해서 지배적인 교환양식에 따라 사회구성체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씨족적 사회구성체는 호수(농업공동체 내부에서의 증여적인 상호시혜)가 지배적이다.?아시아적,?고전 고대적,?봉건적 사회구성체는 약탈-재분배(봉건국가)가 지배적이다.?자본주의적인 사회구성체는 상품교환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시민혁명(부르주아혁명)?이후 국민주권이 성립된 이후에도 절대왕정의 실체인 상비군과 관료기구가 살아남아,?여전히 약탈-재분배라는 교환양식이 근대국가의 핵심이 된다.?또한 비록 농업공동체는 상품경제에 의해 해체되지만 호수적 교환도 계급 대립과 모순을 넘어선 네이션이라는?‘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로 살아남는다.?이렇게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는 자본=네이션=국가라는 결합체(매듭)로 존재한다.8)

이와 같이 생산양식 대신에 교환양식으로 세계사를 본다는 것은 경제결정론처럼 경제를 하부구조(토대)로,?국가나 네이션을 상부구조로 보는 견해를 비판하는 것이다.?화폐나 신용의 세계도 경제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환상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국가나 네이션이 비록 경제적인 의미의 교환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의 교환에 해당한다.9) 이런 점에서 화폐에 의한 상품교환이 지배적인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는 실제로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위일체(보로메오 매듭)로 이뤄져 있다.

헤겔?『법철학』의 힘은 이 보로메오 매듭을 구조적으로 파악한 데 있다.?그래서 국가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내셔널리스트(민족주의자)도 자신의 논거를 헤겔에서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또한 헤겔에 근거해서 각기 서로를 비판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헤겔은 이런 매듭이 근본적으로 네이션이라는 형태를 취한 상상력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잊었다.?그래서 칸트와 마르크스와 달리 헤겔에게서는 이런 매듭이 지양될 가능성을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10) 그래서 가라타니 고진은?“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역사적 필연성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면 헤겔적인 작업에 머무는 게”되므로 이 삼위일체의 구조(보로메오 매듭)를 넘어서기 위해 다시?“마르크스의 헤겔비판으로 돌아가 볼”?필요성을 강조한다.11)

마르크스의 작업은 헤겔의『법철학』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그러나『자본론』에서 그는 자본주의 경제 전체를 밝히고 있지만,?국가나 네이션의 고찰을 결여하고 있다.?이런 이유로 마르크주의자들이 국가를 소홀히 여기거나 반대로『자본론』?이전의 국가론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12) 그러나 초기 마르크스로 되돌아갈 것 필요는 없다.?왜냐하면『자본론』에서 헤겔 비판이 진정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그런 이유로?『자본론』의 관점에서『법철학』를 재고하는 것이 긴요하다.?즉 자본만이 아니라 국가나 네이션을?‘경제적’인 구조로 파악해야 이러한 삼위일체의 고리로부터 나가는 출구가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13)

그런데『법철학』의 이러한 삼위일체에 대한 서술은 영국과 같은 선진국을 제외하면 오히려 앞으로 실현될 것에 대한 예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오늘날에도 여전히 실현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는 국가나 민족도 있다.즉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의 형성은 결코 쉽지 않다.?이 점을 이해할 때 이탈리아에서 그람시가 지도한 레닌주의적 공장 점거 투쟁이 파시스트에 의해 분쇄된 것은 파시스트가 내건 내셔널리즘의 마법 때문이다. 14) 레닌은 원래 네이션은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이 통일 시장을 필요로 한 데서 기인한 것이므로 사회주의에서는 소멸된다고 본 것이다.?그러나 동구권이나 제3세계서의 사회주의 혁명이 민족해방운동과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도리어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데는 파시즘과는 다른 의미에서 내셔널리즘에 호소했기 때문이다.?스탈린의 소련이 쉽게 국가주의로 전환되고 소련에 대해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내셔널리즘으로 대항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막연한 인터내셔널주의를 외치는 사회주의의 덫이 된 데는 마르크스주의가 이러한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위일체의 존재를 간과했기 때문이다.15)

 

5.?새로운 공동체 윤리의 실마리

유교의 가족주의 윤리는 공적인 영역의 윤리가 발달하는 것을 막고 혈연,지연,?학연에 기초한 우리의 진입금지 사회를 조장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뿐만 아니라 우리의 배타적 애국심만을 조장하여 사대주의와 졸부주의로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윤리적 에토스를 기르는 데 장애가 되었다.?그래서 한때『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화젯거리가 되었던 것이다.?우리의 모든 문제를 유교의 윤리적 기획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물론 발생학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하지만 우리의 사회의 최대의 해악인?三緣주의를 극복하고 사적인 집단 윤리의식 대신에 공공적인 윤리의식을 기르기 위해서는 특정한 집단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유교의 윤리의 부활로는 부족하다는 것은 명백하다.?그렇다고 해서 추상적 보편성 즉 자유주의적 인권에 기반을 둔 서구 근대의 자유주의적 윤리적 기획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유교와는 반대로 서구의 근대 윤리는 원자론적인 사고 방식에 기본을 두고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를 이룩하는데 실패했다.

서구의 근대적 자유주의적 인권 개념은 추상적 동일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이 추상적 동일성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수다.?수는 모든 것의 질적인 차이를 배제하는 추상화를 통해 기본 단위를 설정하고 이 추상적인 기본 단위(하나)를 기계적으로 결합하여 생겨난 것이다.?유럽의 근대 철학에서는 이 수가 개념의 모델이 된다.?다시 말해서 수를 모방할수록 그 개념은 개념다운 것이 된다.?반면에 수를 모방할 수 없는 개념 즉 추상적 동일성에 기반을 둘 수 없는 개념은 객관성을 결여하여 과학적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이러한 사정을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계몽의 변증법』에서 극적으로 제시한다. “수로 환원될 수 없는 것,?그리고 결국 하나로 될 수 없는 것은 계몽주의에서는 가상으로 인식된다.?현대 실증주의는 그것을 시의 영역으로 추방한다.?동일성은 파르메니데스로부터 러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암호이다.?신들과 특성들의 파괴가 계속 주장되고 있는 것이다.”16)

근대적 인권 개념이 전제하고 있는 사회상의 핵심은 수가 마치 추상적으로 동일적 단위(하나)를 전제하듯이 사회도 추상적으로 동일적인 단위인 개인을 전제한다.?개인에 해당하는 라틴어 인디비둠(individuum)은 원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톰(atom)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인 기본 단위를 의미한다.?단순 관념의 순열과 조합을 통해 복합 관념이 만들어지듯이 개인들이 합쳐져서 사회가 생성된다.?이 때 개인은 수의 하나와 마찬가지로 동질적인 추상적 동일성을 지닌 것으로 생각된다.?이 개인은 형식적으로 동등한 자유로고 평등한 성격을 부여받는다.?이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의 세계가 바로 로크가 말하는?‘자연상태’이다.17) ‘자연상태’는 아직 정치사회(로크는 이 정치사회 즉 국가를 시민사회와 동일시한다)를 형성하기 이전의 사회다.?자연상태’와?‘시민사회=정치사회(국가)’라는 개념들은 분명히 개인을 전통과 권위에서 해방시켜?‘자유롭고 평등하고 독립적인’?존재자로 상정한 것은 인류의 보편적 성취의 한 단계를 구성한다.?하지만 변증법적 시각에서 보면 이는 아직 추상적 단계(헤겔)이고 기만적 단계(마르크스)이다.

이러한 서구의 추상적인 인권 개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변증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양적인 사고에서는 특수애인 가족애와 학교애 그리고 지역애 더 나아가서 국가애가 보편애인 인류애에 대립할 뿐 진정한 양자의 통일을 모색할 수 없다.?이는 보편애를 강조하는 서구 근대의 자유주의적 인권 개념뿐만 아니라 특수애를 강조하는 유교의 윤리관에도 해당한다.?유교식의 사적인 윤리와 서구 자유주의식의 공적인 윤리의 진정한 통합을 위해서는 새로운 윤리적 태도가 필요하다.?이러한 윤리를 새롭게 기획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공동체를 대립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양자의 상호작용과 상호침투를 강조하는 화엄불교의?‘相卽相入’의 관계론적인 존재론이 요구된다.?즉 개인의 실체성과 공동체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연관되어 있고 각 단계의 공동체가 서로 중층구조를 이룬다고 보는 화엄의 존재론은 각 계기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재의 조건으로 삼는 상호공존을 주장할 수 있다.?이 상호공존의 관계론적 존재론으로부터 배타적인 자기 정체성과 통합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윤리적 태도를 도출할 수 있다.

새로운 윤리적 태도는 자아와 타자의 상호 존재가 서로 존재론적인 조건을 구성하므로 자아와 타자의 상호 인정을 요구하게 된다.?이 상호 인정은 상호 관용18)을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이러한 상호 인정과 상호 관용의 태도를 통해 세계시민의식을 형성해야 유교적인 배타적인 가족애와 국가애를 인류애로 전환시킬 수 있다.?그리고 상호 인정과 관용을 통해서 추상적 동일성에 기반을 서구의 권리 담론의 배타성(권리는 반드시 독점과 배제를 수반한다)을 극복할 수 있다.?이방인의 배제가 아니라 이방인(가족이 아닌 사람,동문이 아닌 사람,?타지역 사람,?외국인,?소외된 사람 등등)에 대한 사랑은 바로 권리 담론의 원자론적 존재론으로도 유교의 가족주의적 공동체적 존재론으로도 확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이방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원칙은 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종교적인 기초를 통해서도 확보될 수 없다.?왜냐하면 현대는?‘탈마법화된 사회’(베버)로서 종교의 서사가 중세처럼 정당화의 권위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도리어 화엄의 관계론적인 상즉상입의 변증법적인 존재론이 이 원칙에 대한 가치 형이상학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앞으로 우리는 이방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윤리적 태도와 이의 기초로서의 관계의 존재론을 통해서 고아 수출 일위라는 치욕적 가족중심주의와 선거 때만 횡행하는 지역몰표라는 망국적 지역감정과 학연에 의한?‘서울대 공화국’이라는 지위와 가치의 독점현상을 극복하고 세계시민의식이라는 세련된 매너와 태도를 지닌 윤리적 에토스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러한 윤리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푸코가 지적한 것처럼 전체화와 개별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서구의 정치적 합리성과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위일체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그러면서 동시에 기존의 유교적인 차별성과 서열성을 극복해야 한다.

 

-주석-

5)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로는?James Tully,?A Discourse on Property(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0), pp. 35~43을 참조.

6)?그런 이유로 로크의『인간지성론』에 나타난 증명 윤리학에 대한 논의는 규범 윤리학으로 나가지 못하고 메타 윤리학적 논의에 머물고 만다.

7)?『세계공화국으로』, 16쪽.

8)?『세계공화국으로』, 49쪽.

9)?『트랜스크리틱』, 459쪽.

10)?『세계공화국으로』, 182쪽.

11) 가타리니 고진,?『세계사의 구조』, 조영일 옮김,?도서출판?b, 2013, 19쪽.

12)?『트랜스크리틱』, 449쪽.

13)?『트랜스크리틱』, 466쪽.

14)?『트랜스크리틱』, 467쪽.

15)?『트랜스크리틱』, 468쪽.

16) ?M. Horkheimer und T. W. Adorno,?Dialektik der Aufkl?rung?(Suhrkamp, 1984), p. 24.

17)?이 자연상태에서 모든 개인은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한다(『통치론』, 4절~6절).?이 자연상태에서는 재판의 권위를 지닌 공동의 우월자(재판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사회와 구별된다(같은 책, 19절).

18) ?“윤리 주체의 확대와 관련된 덕목으로 말하자면,?단체나 조직의 윤리로의 확대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상호존중의 덕을 길러 나가야 하며,?새로운 의미의?‘관용’의 형성이 필요합니다. 18세기에는 그것은 남의 종교를 용인하는 것으로 확대되었습니다.우리는 한걸음 더 나가 타인의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에 대한 용인으로까지 그것을 확대해 가는 것이 공존의 원리로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비로 여기에서 새로운 덕으로서의?‘이방인에 대한 사랑’이 성립합니다.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인간은 무원칙이 되고,?서로 헐뜯는 정도를 낮추어 일시적으로 타협을 즐길 뿐이며,?머지않아 이해를 달리하여 서로 다투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때문에 휴머니티(인간성)에 입각한 보편적 윤리의 가능성의 근거로서,?가치의 형이상학의적 사색을 심화시켜야 합니다.”?이마미치 도모노부,?『에코에티카』,?정명환 역?(솔, 1994), 11-2쪽.

 

“나는 왜 김영오 선생의 단식을 반대하는가?”[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나는 왜 김영오 선생의 단식을 반대하는가?”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4달이 넘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책임이 있고,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오히려 딸의 죽음의 진상을 밝힐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는 유민의 아빠 김영오 선생만 37일이라는 초인적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듯하다. 그이의 얼굴, 그이의 눈빛을 바라 볼 때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길 없는 어떤 숭고함의 비극을 느낀다. 그는 법제정이 이루어지 지지 않는 한 죽음도 불사하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오늘 여야는 재협상을 통해 다시 합의안을 끌어냈다. 지난 번 합의안에 비해 특별히 주목할 사항은 1-1. 항목이다. 즉 “특별검사 후보 추천위원회 위원 중 국회에서 추천하는 4명 중 여당 2인의 경우 야당과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받아서 선정하여야 한다.”

 

사진-민중의 소리

사진-민중의 소리

이 합의안에 대해 김영오 선생을 위시한 유가족들은 당장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유가족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정국은 다시 화해와 타협이 불가능한 파국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김영오 선생도 목숨을 거는 단식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야 합의안과 유가족들의 반대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이처럼 죽음을 불사하는 단식을 지지할 수도 없고 허용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예민한 정국에서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다음에 제시하는 몇 가지의 이유는 내가 충심으로 제시하는 것들이다.

 

첫째로, 선생의 뜻은 숭고하지만 생명까지 파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리자는 법을 죽음을 담보로 만들 수 없다. 선생의 결연한 입법 의지는 지금까지의 단식으로도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선생에게는 죽은 딸만이 아니라, 앞으로 잘 키워야 할 딸도 있다. 그 딸에게는 언니가 죽은 것이 깊은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아빠의 똑같은 모습을 대한다면 그것은 도저히 부모로서 보여줄 모습이 아니다. 아빠의 그런 행동은 진정성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가족이라는 큰 인륜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 개인의 목숨이 이 사회의 미래를 다 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져도 안 된다. 세상의 질서는 개인의 진정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단식은 도저히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 없는 약자가 자신의 의사와 의지를 표현하는 마지막 수단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을 불사하고 생명을 내 던지는 수단이 된다면 더 큰 인륜을 파괴할 수 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안에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인륜적 질서가 있다. 이 인륜적 질서가 파괴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겠는가? 개인의 진정성은 새로운 독단일 수 있고, 광기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특별법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특별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입법이 되어도 그 법에 따라 누가 어떤 의지를 갖고 조사를 하느냐가 있고, 조사의 결과를 가지고 법원에서 다툴 때도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지 모른다. 또 그 판단의 결과를 가지고 실행에 옮길 때도 수많은 방해와 공작이 있을 것이다. 싸움은 특별법 하나로 단판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는가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첫 단추 하나에 모든 것을, 특히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걸 수는 없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은 앞으로도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장소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 때마다 성숙한 국민의 비판 정신으로 장애물을 관철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특별법이 만능열쇠인 양 여기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지나치게 법을 물신화하고 신격화하는 것이다. 이제는 정파 간에 타협을 해야 할 때이다.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두 번째 합의안이 나왔다. 정치는 타협이고, 법은 그 타협의 산물이다. 이미 협상에 들어갈 때부터 성역 없는 수사권이 아닌 특검추천권을 쟁점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당 2인의 경우 야당과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받아서 선정하여야 한다”는 합의안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이 정도의 문제로 목숨을 건 단식을 계속할 수는 없다.

 

셋째, 법은 도덕이나 종교가 아니다. 도덕과 종교는 모든 악을 버리고 절대 선을 취하는 근본주의를 선택할 수 있지만, 법은 정치 세력 간에 타협할 수밖에 없고 차선책일 수밖에 없다. 국가는 이런 법에 의해서 움직이는 체제이다. 아무리 숭고한 뜻을 가졌다 하더라도 한 개인의 목숨을 담보로 그런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특별법이 유가족들의 뜻에 못 미친다고 하면,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의지와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그것은 유가족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야권의 정치적 역량의 한계이고, 세력이 불리한 탓이다. 그것은 입으로만 비판을 외칠 뿐 실질적인 변화의 역량 구체에는 관심 없는 이 땅의 양심 세력들의 한계 탓이다. 이런 부족한 역량과 불리한 세를 가지고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겠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독단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민주주의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법은 그 시대를 사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지의 산물이다. 특별법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의지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은 도덕이나 종교처럼 최선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의 입법을 원하면서 죽음을 불사하는 순교의 정신을 보인다면, 그것은 이 나라를 도덕 국가, 신정 국가로 되돌리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이다. 순결한 도덕과 종교의 정신이 잠시 우리 정신을 위안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법을 제치고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최종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좋든 싫든 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그 법은 정치 세력들 간에 타협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길래 어떤 철학자는 그 시대의 법은 그 시대의 국민의 정신의 수준을 대변한다고 말한 것이다.

 

여야 간의 합의안에 유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민단체와 새정련 내부에서도 다시 반발이 크다고 한다. 유족들의 반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더는 유가족들을 세월호 정국의 최전선으로 내밀어서는 안 된다. 그이의 끝없는 단식을 볼모로 현 정세에서 이룰 수 없는 조건을 더는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죽음을 불사한 단식을 영웅시하면 안 된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나쁜 것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새정련 내부에서 타협안을 거부하는 의원들의 비겁함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당신들의 무능함으로 현실 정치의 주도권도 내주고, 세월호 정국도 지지부진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풀어야 할 것을 풀지 못한 탓으로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볼모로 잡힌 것이 아닌가? 당신들이 진정으로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전에 의원직 총사퇴를 하라. 그 길만이 실종된 정치를 되살리고, 벼랑 끝에 선 유가족들을 살리는 것이다. 이제는 도덕과 종교가 아니라 정치가 나서야 할 때이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단식을 반대하는 이유는 한 가지로 모아진다. 이 세계 안에, 그리고 이 세계 밖에서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생명을 내 던지는 순간, 이 사회는 더 위험한 나락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부디 이제 그만 단식을 중단해주길 바란다. 선생의 숭고한 뜻을 가지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니체 : 초인의 삶, 범인의 삶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도봉도서관 나이듦의 철학> 6

니체 : 초인의 삶, 범인의 삶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도봉도서관 나이듦의 철학> 6

연효숙(연세대)

 

 

1. 니체는 누구인가?

1) 니체, 망치를 든 해체의 철학자

망치를 든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니체를 떠올릴 때 우리에게 가장 강하게 각인되는 말이다. 망치를 든 철학자는 망치를 갖고 무엇을 부수어 버리려고 했을까? 소크라테스 이래 면면히 내려 온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 권위의 위엄으로 무장된 전통 도덕, 구원을 약속한 기독교의 교리 등이 니체가 무너뜨리려고 했던 것일 것이다. 이러한 니체의 이미지는 굉장히 파격적이고 과격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권위와 위엄의 허황된 그림자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니체는 앞서 간 선구자요 해방자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전통 철학의 중심적인 가치와 권위에 도전하고 해체하려고 했던 니체는 서양 근대까지의 전통 철학의 문을 닫고, 새로운 현대를 열고자 했던 개척자이다.

니체는 1844년 프로이센 제국(지금의 독일)의 뢰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루터파 목사였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망하여, 그는 어머니, 누이 동생, 할머니 등 여성들에 둘러 싸여 성장했다. 나움부르크에서 김나지움을 다닌 후, 1858년 프로테스탄트 학교인 슐포르타에서 고전학, 종교, 독일 문학 등의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이 때의 교육이 그의 그리스 이해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1864년 본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으나 오래다니지 못하고, 고전학과 문헌학에 뛰어난 라이프치히 대학의 리츨 교수 아래로 들어가 학업을 진행하였다. 라이프치히에 머물면서 니체는 우연히 헌책방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책을 발견하고 큰 충격과 영향을 받게 되었다. 또한 니체는 이 기간 동안에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인 바그너의 음악에도 심취하였으며, 이로 인해 바그너와의 끈질긴 인연이 생겨나게 되었다.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 문학학 교수 자리가 비었을 때, 니체는 리츨 교수의 강력한 추천으로 박사학위를 가지지 않은 채, 26세에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어 및 고전 문학 원외 교수로 위촉되었고, 1년 후 27세에 바젤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이후 라이프치히 대학은 그간 니체가 쓴 몇몇의 뛰어난 논문 등의 학문적 업적을 고려하여 박사학위 취득 시험도 부과하지 않고 박사학위를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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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질병과 치유의 철학자

바젤 대학에 재직하면서 니체가 펴낸 최초의 저서인 [비극의 탄생(음악의 정신으로부터 의)](1871년)에서부터 그의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사상을 엿볼 수 있다. 1878년부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저술하기 시작한 니체는 1879년 무렵 건강이 악화되고 대학의 임무에 염증을 느끼게 되어, 34세의 나이에 대학을 사직했다. 그 이후 니체는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의 휴양지 등을 방랑하면서 건강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니체는 이 방랑 기간에도 여러가지 질병으로 시달렸으며, 지독히 외롭고도 고독한 생활 속에서 병마에 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 와중에도 니체는 쉬지 않고 여러 책을 서술하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명저들이 거의 이 기간에 나오게 되었다. 이 책들이 [아침놀],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피안], [도덕의 계보] 등이다.

1888년, 여러가지 질병으로 계속 시달림을 받아 오던 니체는 잠시 건강을 회복하게 되자?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속도로 여러 권의 책을 연이어 써 냈다.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니체 대 바그너], [이 사람을 보라] 등의 명저들이 이 기간에 쓰여진 책이다. 니체는 1년 후인 1889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의 거리에서 발작을 일으켰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 오는 마차의 말을 붙들고 니체가 탄식을 했다는 유명한 장면이 바로 이 순간이다. 그는 바젤의 정신 병원에 보내졌고, 1900년 56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어머니와 누이 동생인 엘리자베스의 간호를 받았으며 11년간 거의 회복 불가능한 정신 착란 증세를 보였다.

니체의 생애 중 그가 시달린 병마와 관련하여 그를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흥미로운 책이 있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였던 자크 로제는 [니체 신드롬]에서 니체가 평생에 걸쳐 앓아 왔던 병력들을 추적하고 있다. 니체는 지독한 근시였으며 늘상 편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유럽의 여러 휴양지들을 돌면서 글을 썼던 니체에게 편두통은 그의 작업을 여지없이 중단시킨 불청객이었다. 게다가 니체는 여러가지 만성적 정신 장애에 시달려, 조울증, 뇌연화증으로 고통을 받아 왔다고 한다. 그 고통 속에서도 수많은 책들을 써 낸 니체의 자신의 병을 초극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의 힘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2.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1) 니체 사상의 형성 가운데 [차라투스트라]가 차지하는 위치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이는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1889)에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년), (이하 [차라투스트라]로 약칭)의 저서에 부친 부제이다. 이 책은 그만큼 니체에게 의미가 있는 책이면서도 또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 책이기도 하다.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쓰여진 두 권의 책, [아침놀](1881), [즐거운 학문](1882)을 같이 참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두 책을 읽어 보면 [차라투스트라]가 어떻게 쓰여졌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예언서인가? 잠언인가? 철학책인가? 우리는 니체! 하면 [차라투스트라] 이 책을 쉽게 떠올릴 만큼 이 책과 니체는 밀착되어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여느 철학서와는 다르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뉘어져 있고 이 각각에 20개 정도의 독립된 이야기가 있고, 앞에 10개 단락으로 된 긴 머리말이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주제가 망라되어 있으며, 전혀 논리적이거나 체계적인 철학책과도 거리가 있다.

2) [차라투스트라]의 탄생 배경

[차라투스트라]가 쓰여지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이 내용은 [이 사람을 보라]에서 니체 스스로가 밝힌 내용이다. “이제 나는 차라투스트라의 내력을 이야기하겠다. 이 책의 근본 사상인 영원회귀 사유라는 그 도달될 수 있는 긍정 형식은 – 1881년 8월의 것이다 : 그것은 ‘인간과 시간의 6천 피트 저편’이라고 서명된 채 종이 한 장에 휘갈겨졌다.” 니체는 실바프라나 호수의 숲을 걷고 있었는데, 그 근처에 피라미드 모습으로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 옆에 니체는 멈춰 섰으며,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마치 번개에 맞은 듯이 이 책은 번뜩이는 영감을 받으며 탄생하게 된 것이다.

또 니체는 이렇게 썼다. “그 때의 오전 오후의 두 산책길에서 [차라투스트라] 1부 전체가 떠올랐다. 특히 차라투스트라 자신이 하나의 유형으로서 떠올랐다 : 정확히는 그가 나를 엄습했다…..” 이 얼마나 극적인가? 니체를 엄습한 차라투스트라, 왜 차라투스트라는 니체를 찾아 왔을까.

이 책의 등장 인물이자 주인공은 물론 단연 차라투스트라이다. 그는 10년간 산 속에서 명상을 마치고 새로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으로 내려 온다. 이는 마치 예수가 서른 살에 고향을 떠나 갈릴리 호수로 구도자의 길을 떠난 후 40일 간의 명상을 거친 후 다시 돌아 오는 장면과 겹치는 면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형식적인 유사성은 중요하지 않다. 차라투스트라가 니체를 왜 찾아 왔는지, 그는 누구인지, 우리에게 무엇을 설파하려고 왔는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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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왜 신의 죽음이 선고된 것일까?

1) “신은 죽었다”의 의미는?

우리가 니체에게서 또 하나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신은 죽었다!” 이 말의 출처 역시 [차라투스트라]에 있다. 왜 신은 죽었으며, 이 신은 누구인가? 왜 ‘신은 죽었다’라고 선포하는 것일까? 이 신은 분명 서양인들이 우상으로 떠받들고 있는 기독교의 신이기도 하고, 서구 형이상학의 진리의 이름을 지닌 표상이기도 하다. 이 신은 이제 니체가 살았던 근대 말, 서양 문명의 위기에 더 이상 의미의 지표가 되지 못한다. 아니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해서도 니체는 이러한 낡은 가치의 표상의 중심에 있는 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우리의 창조 의지를 꺾는 신을 일종의 억측으로 생각하고 신이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해서도 죽어야 함을 말한다. “신은 일종의 억측이다. 나는 이 억측이 너희의 창조 의지를 뛰어 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차라투스트라], 행복한 섬에서, 140쪽)

“신은 올곧은 것 모두를 왜곡하고, 서 있는 것 모두를 비틀거리게 만드는 일종의 이념이다. 무슨 이야기냐고?…. 유일자, 완전자, 부동자, 충족자 그리고 불멸자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 모두를 나는 악이라고 부르며 인간 적대적이라고 부른다.”([차라투스트라], 행복한 섬에서, 141-142쪽)

2) 영원회귀의 사상

[차라투스트라] 이 책의 핵심 사상은 그가 자신의 저서 [이 사람을 보라]에서 밝혔듯이, ‘영원회귀의 사상’이다.? 이 영원회귀란 무엇을 뜻하는가? 간단히 말하면 삶은 계속 반복해서 살아져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 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네가 다시 찾아 올 것이다.”([이 사람을 보라], 341)

폴란드계 프랑스인으로 화가이자 미술사가인 클로소프스키는 니체의 영원회귀와 관련한 매우 독창적이고도 희귀한 해석을 담은 [니체와 악순환]을 썼다. 클로소프스키는 왜 제목에 ‘악순환’을 넣은 것일까? 클로소프스키는 니체의 영원회귀에서의 반복은 똑같은 반복이 아니라, 항상 다른 것을 가져 오는 순환이라는 맥락에서 ‘악순환’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 현대인의 삶은 흔히 다람쥐쳇바퀴 도는 삶이라 비유되고 그날이 그날인 시큰둥한 날들의 연속이라면, 니체는 우리에게 이러한 낡은 삶을 버리고 매일 달라지는 새로운 반복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하고 있다.

 

4. 위버멘쉬(초인)1)란 누구인가?

1) 정신의 세가지 변신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제1부에서 ‘세 변화에 대하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정신의 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련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가를”([차라투스트라], 세 변화에 대하여, 38쪽) 여기서 정신의 세 변신, 즉 낙타, 사자, 어린아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낙타는 스스로가 삶을 견뎌야 할 고통으로 생각하고, ‘삶은 고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착하면서도 인내심이 많은 동물이다. “짐깨나 지는 정신(낙타)은 더없이 무거운 짐 모두를 짊어진다.” 그러나 이 낙타로 정신은 만족할 수 없다. 정신은 다른 변신을 꾀한다. 정신은 사자로 변한다. 사자가 된다는 것은 정신이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이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이 사자는 자신이 섬겨온 주인을 찾아 나서며, 마지막 신에게 대적하려 하여, 신의 한 형태인 용과 일전을 벌인다. 마땅히 해야 함을 할 줄 알고, 창조된 모든 가치를 아는 사자,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를 강탈하는 사자가 모르는 것,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사자는 어린 아이의 순진 무구와 망각을 알지 못한다.

“어린 아이는 순진 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공경이다. 그렇다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차라투스트라], 세 변화에 대하여, 40쪽)

그래서 이제 차라투스트라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나 너희에게 정신의 세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노라.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가를.”(41쪽) 이렇게 정신의 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초인이 되기 위해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2) 새로운 가치의 창조자

왜 신이 죽었다고 차라투스트라는 외쳤는가? 이는 낡은 형이상학적 가치와 도덕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자가 차라투스트라이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선하다는 자와 정의롭다는 자들을 조심하라! 그런 자들은 자기 자신의 덕을 창안해 내는 사람들을 즐겨 십자가에 못박아 처단한다. 홀로 있는 자들을 저들은 증오한다.”([차라투스트라], 창조하는 자의 길에 대하여, 105쪽) 이러한 위선자들이 지닌 덕에 대해 차라투스트라는 경멸을 보내고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것을 외친다. “고독한 자여, 너는 사랑하는 자의 길을 가고 있다. 너는 너 자신을 사랑하며, 그 때문에 너 자신을 경멸한다.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그 같은 경멸을. 사랑하는 자는 창조하려 한다. 경멸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경멸할 까닭이 없었던 자가 어찌 사랑을 알겠는가! …. 형제여, 눈물로 간청하노니 너의 고독 속으로 물러서라. 나는 자기 자신을 뛰어 넘어 창조하려 하며, 그 때문에 파멸의 길을 가는 자를 사랑한다.(106-107쪽)

니체는 우리의 창조 의지를 억누르는 신이 일종의 억측임을 강조하고, 신에 앞서 위버멘쉬를 창조해 낼 것을 말한다. “너희가 세계라고 불러온 것, 그것도 너희에 의해 먼저 창조되어야 한다. 너희의 이성, 너희의 이미지, 너희의 의지, 너희의 사랑이 세계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정, 너희의 행복을 위해, 깨친 자들이여!”([차라투스트라], 행복한 섬에서, 141쪽)

왜 니체를 망치를 든 철학자로 부르는가? 기존 가치, 우상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이 우상 파괴를 서슴치 않는 사람이 바로 니체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의 불과 같은 창조 의지는 언제나 새롭게 나를 사람들에게로 내몬다. 망치를 돌로 내모는 것이다. 아 너희, 사람들이여. 돌 속에 하나의 형상이, 내 머리 속에 있는 많은 형상 가운데 으뜸가는 형상이 잠자고 있구나! 아, 그 형상이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하고 보기 흉한 돌 속에 갇혀 잠이나 자야 하다니! 이제 나의 망치는 저 형상을 가두어두고 있는 감옥을 잔인하게 때려 부순다. 돌에서 파편이 흩날리고 있다. 무슨 상관인가”([차라투스트라], 행복한 섬에서, 143쪽)

3) 삶을 사랑하는 자

차라투스트라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역설한다. [차라투스트라]에서 나타나는 생명과 삶을 소중히 하는 태도는 이 책의 준비격이기도 한 [즐거운 학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생의 한가운데서 – 아니다! 삶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나는 삶이 더 참되고, 더 열망할 가치가 있고, 더 비밀로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위대한 해방자가 내게 찾아온 그날 이후로! ….”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는 삶을 아름답게 재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니체는 삶에 대한 사랑을 ‘운명애’(amor fati)라고 불렀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운명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 창조에는 고통이 따른다. “창조하는 자가 있기 위해서는 고통이 있어야 하며, 많은 변신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창조하는 자들이여. 너희들의 삶에는 쓰디쓴 죽음이 허다하게 있어야 한다.”([차라투스트라], 행복한 섬에서, 142쪽) 창조하는 삶을 위해 고통을 겪는 자. 우리는 이러한 위버멘쉬가 될 수 있을까? 또 우리 시대는 위버멘쉬를 진정 필요로 하는가? 혹은 나는 위버멘쉬가 되고자 하는가? 위버멘쉬가 될 이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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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초인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1) 건강한 삶, 병든 삶

건강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건강에 유독 집착이 심한 현대인들에게 니체가 들려 주는 건강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니체는 건강([즐거운 학문], 5부 마지막 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위대한 건강-우리 새로운 자, 이름없는 자, 이해하기 어려운 자, 아직 증명되지 않은 미래의 조산아인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목적을 위해 하나의 새로운 수단을 필요로 한다. 말하자면 새로운 건강을, 이전의 어떤 건강보다도 더 강하고 더 능란하고 더 질기며 더 대담하고 더 유쾌한 건강을 필요로 한다.” 무슨 뜻일까? 건강은 니체가 늘 소중히 생각하는 생명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 건강을 니체는 위대한 건강으로 말하고 있다. 위대한 건강이란, 건강을 막연히 지니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 지속적으로 획득하고 계속 획득해야만 하는 것으로 니체는 힘주어 말하고 있다.

위대한 건강이란 ‘영원회귀의 삶’과 연관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 왜 그런 것일까? 보통 사람들은 니체가 말한 것처럼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죽어 사라지노라, 한순간에 나 무로 돌아가리라. 영혼이란 것도 신체와 마찬가지로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니.’ 그대는 이렇게 말하리라, ‘그러나 나를 얽어 매고 있는 원인의 매듭은 다시 돌아오리라. 돌아와 다시 나를 창조하리라! 나 자신이 영원한 회귀의 여러 원인에 속해 있으니. … 나는 더없이 큰 것에서나 더없이 작은 것에서나 같은, 그리고 동일한 생명으로 영원히 돌아 오는 것이다. 또다시 만물의 영원한 회귀를 가르치기 위해서 말이다.:([차라투스트라],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 366쪽)

니체가 말하는 건강은 어떤 하나의 기준에 매어 있는 건강함의 표준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건강 상태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개의 건강을 찾는 것,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위대한 건강’이다. 영원회귀라는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 건강을 찾는다는 것은 ‘인간적인 것’으로 규정된 하나의 정체성으로부터 떠나서, 그 ‘떠남’을 통해 새로운 건강의 신체를 얻는 것을 말한다.

2) 정신보다 신체의 본성을 아는 삶

우리의 삶 속에서는 알게 모르게 신체를 천시하고 정신의 우월성을 믿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얘기가 전적으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신체를 경멸하고 정신력을 믿는 것은 정신과 신체의 본성을 잘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혹은 정신/신체의 이분법적 사유의 극단적인 폐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반성적으로 나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양 사상의 오랜 전통 속에서 볼 때,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델포이의 신전의 경구인 ‘너자신을 알라’에서 따 온 로고스의 강조, 즉 이성의 힘을 실어 주는 전통은 그 이래로 굉장히 불균형적인 전통을 형성해 왔다고 비판한다. 즉 이성의 각성을 통해 신체의 힘과 생명력은 망각되고 억압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신체는 이성에 의해 통제받아야 하는 무력한 근육 덩어리란 말인가. 우리는 신체를 너무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게 나 나의 말을 하련다. …. ‘나는 신체이자 영혼이다’라는 어린이의 말을 전한다” 니체가 보기에 사람들은 어린이보다도 더 신체와 영혼의 본성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깨어난 자, 깨달은 자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 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것도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차라투스트라],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51쪽)라고 말한다. 이러한 니체의 신체와 영혼의 본성에 대한 언급은 소크라테스 이래 서양 사상의 정신과 영혼, 이성 우위의 오래된 전통을 획기적으로 뒤집는 말이다. 우리는 신체가 정신에 마치 딸려 있는 부속물인 것처럼 생각해 왔던 것인데, 니체가 보기에 이것은 전적으로 틀린 말이다. 오히려, “신체가 커다란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이고 전쟁이자 평화, 가축 떼이자 목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해 차라투스트라가 던진 말을 들어 보면 분명히 이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이여, 너희는 너희가 저지르는 어리석음과 너희가 하는 경멸에서조차 이렇듯 너희의 자기를 모시고 있는 것이다. 내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들의 자기, 그가 스스로 죽기를 원하여 생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차라투스트라],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53쪽). 그렇다. 신체를 경멸하는 자는 신체에 생명의 힘이 있다는 것을, 신체의 일부분이 작은 이성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자신의 생명을 몰락시키는 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몰락시킴으로서, 이성과 정신의 우위를 고집하는 자는 더이상 자신의 이성을 뛰어 넘어 새로운 창조를 할 수가 없고, 위버멘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3) 위버멘쉬의 삶이란?

그렇다면 위버멘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며, 어떻게 해야 위버멘쉬가 될 것인가. 니체는 앞에서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고, 이 사자는 어린아이가 된다. 그렇다. 니체에게는 어린아이의 삶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가치를 보았다. 이제 더 이상 얽매이는 규범적 삶이 얼마나 무상한가를 우리는 본다. 유희를 즐길 줄 알고 규범에 목매지 않는 삶은 마치 주사위 놀이를 하는 어린아이를 연상시킨다. 삶에는 어떤 규약과 도덕이 있는 필연성이 없다고 니체는 역설한다.

이제 차라투스트라는 선언한다. “신은 죽었노라”고. 그리고 또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항해 이렇게 말한다.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사람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차라투스트라], 16-17쪽) 나는 사람인 나를 극복하고, 나를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이 새롭게 창조된 자가 위버멘쉬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하길, “보라, 나는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위버멘쉬가 이 대지의 뜻이다. 너희 의지로 하여금 말하도록 하라. 위버멘쉬가 대지의 뜻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다. 새로운 생명이기도 한 대지의 뜻에 충실할 때 위버멘쉬가 된다.

이 위버멘쉬의 이미지는 다양하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예언에 힘입어 위버멘쉬를 번갯불로, 광기로, 구름에서 떨어지는 무거운 물방울로, 자유로운 정신과 심장을 가진 자로 그린다. 이 위버멘쉬는 특정한 누구도 아니고, 아무도 아닌 사람이기도 하다. 즉 누구도 위버멘쉬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초월자를 의미하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나도 위버멘쉬가 될 수 있을까? 초인의 삶과 범인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

 

-주석-

1) 최근 들어 니체 전공자들은 초인(超人)을 독일어 ‘위버멘쉬(?bermensch)’로 그대로 쓰고 있다. 위버멘쉬를 초인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을 따른 것인데, 위버멘쉬를 초인으로 번역할 경우, 초인은 ‘인간을 초월한다, 넘어선다’라는 의미를 갖기 쉬워 오해의 소지가 있어 위버멘쉬로 그대로 번역한다고 한다.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침몰한 세월호, 침몰한 대한민국]-9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

 

김재현(경남대 철학과 교수)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계절의 변화에 따른 더위와 추위, 장마와 태풍 등 자연이 주는 시련을 겪어야 하고 우리 인간들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힘든 상황과 고통을 겪고, 견뎌내면서 살아나간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

 

사진-강지은

사진-강지은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며 꽃을 피우는 식물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시련을 겪으며 성장해 간다. 고통과 시련은 삶에서 되도록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치는 우리의 삶은 어쩔 수 없이 고통과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자식, 가족,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엄청난 슬픔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을, 앞으로도 가슴 아픈 삶을 살아가야 할 유가족들에게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기성세대로서, 희생된 수많은 학생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사고 중에 보여줬던 무책임하고 무력했던 선장 및 선원들, 해양경찰청 등 관련 기관과 정부의 한심한 대처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깊은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그런데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어처구니없는 희생과 쓰라린 경험, 고통, 분노의 표출을 통해 조금씩 발전해 왔으며,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한국 사회도 돈보다 생명가치를 중시하는 인간적인 사회로 발전해 나가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수많은 젊은이들의 억울한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며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인간들은 한편으로 과거의 고통스런 경험이나 사건들을 기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쓰라린 기억을 망각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다. 왜냐하면 고통스런 기억 자체가 우리 삶을 힘들고 지치게 하며 또한 우울하게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과거의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고,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쓰라린 경험들을 항상 오래도록 기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상처를 잊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으며, ‘현재(the present)’를 ‘선물(the present)’로 받아들여 하루하루 활기차고 충실하게 사는 것이 생활의 ‘지혜’이며 ‘행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건들과 경험들도 있다. 특히 사회적, 역사적으로 함께 겪은 고통에 대해서, 그리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사건들이 바로 그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결코 망각되어서는 안 될 사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개인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렇다면 기억과 망각의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 국가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개인의 삶, 가족의 삶은 사회적 환경에 의해 지배받으므로 사회적 조건이나 구조가 문제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어떤 성격의 국가인가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소외받고 힘없는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다반사로 하며,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국가)가 지배하는 사회에 사는 개인들은 돈과 권력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인정과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또한 전쟁 중인 사회에서, 빈부격차가 심해 사회적 갈등이 심각한 사회에서, 대형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불안전한 사회에서 개인들이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가?

사회적 조건이나 사회구조가 우리 개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므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타자의 고통받는 모습에 대해 공감하면서, 자신도 그러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자각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적 현실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참여를 통해 우리 자신이 보다 인간적이 되고 성숙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자각만으로는 힘겹고 부족하므로 여러 개인들이 함께 노력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전문)

 

개인들의 자각과 실천이 담쟁이 같은 연대와 네트워크로 모아질 때 거대한 벽도 조금씩 허물거나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인들과 조직들의 사회적 연대를 토대로 사회와 국가는 보다 민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 등을 통해 사회적 정의를 세워야 하며, 원칙을 존중하고 생명을 중시하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사회시스템 차원에서의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의 확립이 필요하다.

 

 

법은 항상 바람직함이 될 수 있는가?(1)[대안도덕교과서]-5

법은 항상 바람직함이 될 수 있는가?(1)[대안도덕교과서]-5

 

 

김종곤(건국대학교)

 

*이 글은 삼인출판사에서 출판 될 대안도덕교과서(가제)의 일부를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1. 법과 바람직함

 
키케로(Marcus Tulliut Cicero)는 “사회가 있는 곳에 법이 있다”(Ubi societas ibi ius)고 했습니다. 인간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거기에는 어떠한 규범적 질서가 있기 마련이라는 의미입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쓴 「토템과 터부」라는 책을 보면 그가 미개인이라 부르는 사람들 조차 금기(禁忌)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 벌을 주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키케로의 말은 오늘날뿐만 아니라 원시부족 사회에까지 적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규범적 질서가 있다는 것은 그것을 지탱해주는 힘으로서 ‘바람직함’이라는 것이 늘 따라 다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규범을 우리의 질서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아 그 질서를 정당화합니다. 이렇듯 질서와 바람직함은 하나의 몸처럼 결합되어 있으면서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들을 규제합니다.

키케로(BC106~BC42)

키케로(BC106~BC42)

‘규제’는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행위와 금지된 행위를 구분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 말을 행위에만 해당하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이라는 도덕적 ‘기준’에 대한 우리의 생각(관념)역시 규제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어떤 것은 바람직하고 또 어떤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바도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떠올려보고 나름의 답변을 준비해보세요. ‘왜 우리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는가?’ 어떤 대답을 하였는지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보다 환경미화와 위생을 위해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훨씬 낫고, 또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대답 보다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즉, 불법(不法)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물론 전자의 대답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후자, 즉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대답이 나름 타당하게 보이는 다른 대답보다 많은 경우에 있어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어떤 행위에 대한 이유를 물었을 때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다시 말해 법이 그렇게 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의존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마마보이 혹은 파파보이를 연상케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놀림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에 따라 행동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다시 말해 주체성을 상실하였다는 점에서 그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왜 바람직한가? 혹은 왜 바람직하지 않은가?’라는 물음에 그 답변을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혹은 ‘규정하지 않고 있다’로 대답하는 것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말씀이 있으면 그것을 무조건 따른다는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즉, 주체적인 판단을 결여하고 단지 믿는 것을 따르는 것과 같은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법을 항상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믿으며’ 그렇기에 법은 바람직함을 판단함에 있어 최고의 기준이 된다는 말이 됩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이를 ‘법 물신’이라 한다. 물신(物神, Fetish)이라는 말은 포르투칼어로 ‘가짜의’ 혹은 ‘허위의’, ‘인위의’라는 의미인 feiti?o로부터 파생된 단어입니다. 1700년대 대항해시대에 아프리카 등을 방문한 포르투칼인들이 그곳의 원주민들이 어떤 사물을 숭배하는 풍습을 보고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기에 미개한 것으로 폄하시켜 이렇게 전한 것 입니다. 어쨌든 물신을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과 같은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면, 예컨대 마을 입구의 큰 은행나무가 그 마을 혹은 종족을 수호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그것을 신성시하는 것을 떠올리면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반적으로 나무는 생명이 있을지언정 정신은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 나무에 기도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마치 그것이 어떤 정신이 있는 것, 혹은 영적인 힘이 있는 것으로 믿는 미신처럼 보일 것입니다. 따라서 물신은 그 어떤 것이 신(神)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으로서 원래 그것이 가진 속성들을 뒤집고 전도시키는 힘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 물신’은 이와 같이 법을 어떤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그 자체를 숭배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법이 인간보다 우선시 되고 물신화될 때 그것은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문제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주제로 다루는 SF영화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이러한 영화에서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휴먼노이드 처럼 인간과 흡사하거나 구분이 안 되는 외모와 유연한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는 로봇이 등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로봇은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게 영위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은 로봇이 존재하는 목적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봇이 아무리 인간보다 신체적·연산능력이 뛰어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하며 인간 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몰아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인간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이는 인간과 로봇의 자리가 바뀐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자신이 있어야 할 창조주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이 만든 피조물인 로봇이 인간의 세계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외’입니다.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봅시다. 법은 로봇과 같이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산물입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 혹은 국가 간에 접촉하고 교류를 하면서 대다수 때로는 일부가 규범화 시켜야겠다고 필요성을 느낀 다음 나왔다는 의미에서 그러합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 법의 내용을 언제든지 변화시킬 수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폐기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명령하는 바데로 움직이는 것은 로봇이 오히려 인간에게 명령을 하고 인간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되는 ‘소외’의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SF영화에서는 로봇에 대한 공포, 즉 소외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늘 인간들은 로봇에 맞서 싸웁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법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때로는 국회에서 어떤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려고 할 때 그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주 편안하게 법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그것이 인간 세계의 외부에서 떨어진 것처럼 그리고 절대적인 진리인 것처럼, 다시 말해 항상 옳은 것인 마냥 우리의 몸과 정신을 지배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법 그 자체가 정당한지 아닌지는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은 이 논의가 법 그 자체가 폐기되어야 한다거나 모든 법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상 법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은 ‘왜 우리는 이처럼 법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을까?’, 나아가 ‘왜 우리는 우리의 삶과 맞지 않거나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법에 대해 저항하려고 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으로 출발합니다. 그냥 가볍게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준법(遵法)정신을 강조하는 의식적인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문제로 돌리기에는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러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단지 의식이라는 생각의 차원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2. 법과 이데올로기

 
몇몇의 맑스주의 법철학자들은 법을 지배층이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이데올로기(Ideology)적 지배 수단’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맑스(Karl Marx)의 입장과는 사실상 다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생각을 왜곡시켰는지 아닌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법을 의식적 차원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가져가는 것이 위에서 우리가 제기한 물음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는가를 검토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법을 절대적인 바람직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의식의 문제인가를 따져보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선 맑스가 말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그것을 맑스주의 법철학자들은 어떻게 법과 연과지어 그것을 의식적 차원에서 다루어버렸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에서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 한다”고 말합니다. 즉, 어떠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하는 물질적이고 정치적인 조건이 그 사람의 의식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고 또 의미가 있다고 할지라도 복지정책은 대체적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기에 자신은 그 혜택에서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빈곤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보입니다.

하지만 같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상반돼 보이는 말을 합니다. “한 시대의 의식은 지배계급의 의식이다.” 이렇게 되면 어떠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의식은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그의 사회적 조건보다는 그 사회에서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의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됩니다. 이는 얼핏 보면 두 말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저소득층은 대다수 사회적으로 약자인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들이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맑스에게 있어 이 둘은 모순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강자가 지닌 의식의 힘이 사회적 위치에 의해 형성된 의식보다 더 강해서 장악력을 가진다면 결국 그것을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앞선 예를 통해 말하자면, 저소득층은 자신이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함으로 인해 삶의 어려움을 겪는 것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이 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강하게 비판하기 보다는 개인의 문제나 가족의 문제로 돌려버립니다. 사회적 강자에게는 그 사회의 구조가 별 문제될 바가 없기에 가난한 것은 곧 개인의 노력부족이나 게으름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놓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자와 같이 사회에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소수의 사회적 강자의 의식을 마치 자신의 의식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의식은 ‘가짜 의식’ 혹은 ‘허위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맑스에게 있어서 한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는 곧 ‘허구’이며 ‘환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몇몇 맑스주의 법철학자들은 법을 한 사회의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진 강자들이 그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법은 바람직함이라는 허위적인 의식을 가지게 만든 것으로 이해합니다. 간단히 말해 법은 항상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머릿속에 주입시켰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이는 ‘법은 누군가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국가기구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기에 결단력 있게 거부하면 그만이야!’라고 선언하면, 다시 말해 의식적으로 거부하면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규제하는 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즉, 생각만 고쳐먹으면 법 물신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합니까? 아니 그럴 수 있습니까? 다음과 같이 말해봅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한 것은 국가가 국민들의 위생적인 삶의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 해서 그 의무를 다하고 이를 통해 국민에게 어떠한 의무를 지움으로 해서 국가의 존속을 유지하려는 계획이야! 그러니까 나는 자유롭게 내가 쓰레기를 버리고 싶을 때 아무 곳에서나 버릴거야’ 어떻습니까? 이는 용기나 자신감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의식적으로 법이 바람직함과 상관이 없는 것이므로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거나 행동할 때 무엇인가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이 우리를 괴롭힌다면 법물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법을 의식적으로 부정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의식의 차원을 넘어선 영역에서, 다시 말해 마음 한 구석은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함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법은 단지 우리의 생각 차원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