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 5월 철학자의 서재 live -시몬느 베이유의 ‘중력과 은총’

5월 철학자의 서재 live 안내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선생님들께

 

안녕하십니까. 한철연 학술 1부입니다. 5월 철학자의 서재 live를 공지합니다.

5월 철학자의 서재 live 가 5월 26일(금) 오후 6시 30분에 열립니다.

 

이번 5월 철학자의 서재 live에는 시몬느 베이유의 “중력과 은총”이 찾아옵니다.

진행은 김은주 선생님이 맡아 진행해 주기로 하셨습니다.

주제는 “시몬느 베이유: 중력과 은총 – 고의적 어리석음으로 사유와 삶의 일치를 원하다”입니다.

사유와 삶의 일치는 그 누구보다도 사유를 업으로 삼은 지식인의 희망사항일 것입니다.

이것이 고의적 어리석음을 통해  가능하다니, 매우 흥미로운 주제라고 할 것입니다.

국내 학계에선 아직 낯설다 할 수 있는 시몬느 베이유라는 철학자에 대해 조금이나마

접근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할 듯 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참여 기대합니다.

 

– 5월 철학자의 서재 live

 

일시 : 2017년 5월 26일(금). 오후 6시 30분

장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주제:  “시몬느 베이유: 중력과 은총 – 고의적 어리석음으로 사유와 삶의 일치를 원하다”

담당: 김은주 선생님(동덕 여대)

 

——————-이하 인터넷 서점 알라딘 책 소개.————————————–

 

특정 종교인으로서 신앙심을 고백한 글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근본적 삶의 조건에 대한 탐구와 그 극복을 위한 철학적 사유의 기록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중력이라는 필연성의 영향 아래 놓였으며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은총이란 지성과 신앙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게 해 주는 초자연의 빛이다.

지은이 시몬 베유는 저명한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이며 신비주의자이다. 고등학생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였지만
정의로운 평화를 위하여 전쟁터에서 총을 들었고, 노동자의 삶을 관념적이고 피상적으로 논하기를 거부하여 공장노동자와 농장노동자가 되어 생활하였다.

 

 

아드리안 해의 작은 베네치아 [유철의 유럽방랑기] -2

아드리안 해의 작은 베네치아

 

피란은 ‘아드리아 해의 작은 베네치아’라고 불린다. 중세시대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강한 영향을 받은 피란은 슬로베니아어 외에 이탈리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베네치아풍의 건물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 게다가 피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 조지 교회 옆 종탑은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의 종탑을 본 따 만든 것이라고 하니 그 별칭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피란에서 내 눈을 사로 잡은 건물도 그런 베네치아풍의 건물이었다. 마르티니 광장에 위치한 붉은빛 외관의 베네치안 하우스가 그렇다. 타르티니 광장에 위치한 이 3층짜리 베네치안 하우스의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건물장식들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특히, 일반적으로 정면에만 테라스가 있는 주변 건물들과는 달리 이 건물의 테라스는 달리 정면에서 왼쪽면까지 이어져 있어 독특하기도 하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독특한 외관을 지닌 이 건물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피란이 베네치아 공국에 지배 받던 시절, 한 베네치아 상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상인은 나이 어린 피란 여인에게 반하고 말았는데, 그는 그 여인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피란에 들를 때마다 그 여인에게 선물을 한 가득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남성들의 과시욕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그런 둘을 보며 피란 사람들은 무척이나 수근거렸다고 한다. 나이 많은 식민지배국의 남성이 피식민국의 어린 여성을 쫓아 다녔으니, 게다가 그녀의 선물을 매번 한가득 가져다 주니 이 좁은 동네에서 이만한 가십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분명 여인을 두고 매국노라 하는 이들부터 어린 여자가 돈만 밝힌다고 비난하는 이들, 곧 그 상인이 여자를 버릴 것이라며 떠드는 이들, 반대로 그런 여자를 쫓아다니는 남자에게는 파렴치한이라 하는 이들도 있었을 터. 둘을 바라보는 피란 주민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배신감은 무척이나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변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그녀에게 집 한 채를 지어 선물한다. 그리고 창문과 창문 사이 사자상을 설치, 그 아래 휘장에 라틴어로 이렇게 새긴다.

‘Lass a Pur Dir’

영어로는 ‘Let them talk’, 한국말로 해석하자면, ‘지꺼리게 놔둬’, ‘말하게 둬’ 혹은 ‘신경쓰지 말라’는 의미다. 그건 자신들을 두고 수근거리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자신이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받는 여인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둘이 서로 사랑한다고 주변의 불편한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그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 시대에도 비난의 대상은 여성에게만 향했을 것, 게다가 상인은 무역을 위해 주기적으로 떠나야 하니, 그녀 곁에 항상 있을 수 없을테고 말이다. 결국 마을 사람들의 수근거림은 오롯이 그녀 혼자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하는 말,

‘내사랑, 신경쓰지마오’

그리고 그녀와 자신은 비난하는 이들에게 하는 말,

‘떠들 테면 떠드시오! 하지만 사랑하는 내 여자를 괴롭히지 마시오!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지는 말란 말이오!!’

각자의 사랑이 왜곡되는 상황, 그리고 이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그녀, 그런 그녀에게 그 상인이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없을 때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집을 지어주는 것 밖에 없었지 않을까? 그런 그의 마음은 주변 건물보다 유난히 많은 창문, 큰 창문들, 그리고 두 면으로 이어진 큰 테라스, 굳이 밖을 나오지 않더라도 집에서 바다와 주변이 훤히 내다 보이는 건물 위치에서 온전히 드러난다.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이 로맨틱한 건물이 유명해진 이유는 사실 이런 사랑 이야기 때문은 아니다. 사람들이 이 건물에 방문하는 이유는 건물 1층에 위치한 세계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앞다투어 공수해 간다는 피란의 소금 가게, 피란스케 솔리네Piranske Soline가 있기 때문이다.
금처럼 귀하다는 피란의 소금, 그건 피란주민들에게 축복이자 저주였다. 소금은 피란에게 풍요로운 삶을 약속했으나, 이 때문에 주변국들로 부터의 침략과 핍박에 시달리게 하기도 했다. 소금을 차지하기 위한 제국들의 침략 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 비잔티움 제국, 신성로마제국,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 함부르크 제국에 이르기까지 한다. 피란을 감싸고 있는 모르곤 언덕의 몇 미터 남짓 밖에 남지 않은 성벽이 그 역사를 대변한다.

모르곤 언덕을 오른다. 이스트라 반도의 마을들이 그러하듯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사이 미로처럼 뻗어 있는 골목들. 건물과 건물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지 내가 양손을 뻗으면 마주한 건물벽이 닿는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은 정겹다. 집 창문에 고개를 내밀어 앞집과 대화하는 할머니, 그 앞집과 연결된 줄에 빨래를 널고 있는 아주머니들, 사람 사는 냄새 풀풀 나는 골목이다.
그 사람냄새 나는 좁은 길을 굽이굽이 오르며, 사람 사는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모르곤 언덕 위에 있다. 언덕 아래 펼쳐지는 피란. 내 시선과 수평선이 일직선이 되는 순간, 나는 마치 선수처럼 뾰족한 피란 반도라는 커다란 배 위에서 아드리아 해를 항해하는 듯 하다. 성 조지 성당 앞의 한 연주가의 아코디언 소리는 배의 항해를 알리는 기적 소리 같다. 연신 사진을 찍어보지만 내 눈 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사진 찍길 포기하고는 잊지 않기 위해 눈을 깜뻑이며 풍경을 머리 속에 담아 보려 애쓴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거기 한 번 서 봐요.”

한 동양인이 내게 말을 건다. 굴러가는 R발음이 이건 여지 없이 북미권 발음이다. 새까맣게 탄 얼굴, 허름한 옷차림에 목에 건 손바닥 만한 초록색 손가방, 하지만 언뜻 봐도 비싸 보이는 썬글라스가 인상적이다. 나는 얼떨결에 핸드폰을 건냈다. 셀카든 아님 찍히는 것이든 그리 능숙한 내가 아니다. 어색하게 팔을 허리춤에 올렸다가, 내렸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기를 반복한다. 그러자 R발음 굴러가던 그녀가 익숙한 언어로 내게 묻는다.

“한국사람이죠? 맞아, 한국사람이야. 반가워요, 저는 카탈리나라고 해요.”

한국말을 하는 그녀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한국계 미국 이민자였다. 그녀는 지난 1년째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오랜만에 자신의 한국 고향을 방문했지만, 너무나도 변해 버린 모습에 실망을 하고 제 2의 고향을 찾아 떠나 여행 중이라고 한다.

“시골에서 소 젖 짜고, 피사리 하고, 새참 먹고 했던 그런 곳에 논밭은 어디로 갔는지 아파트가 들어차고, 카페들이 생기고 하는 것을 보니 갑자기 낯설더라구요. 그건 제 고향이 아니었어요. 실망한 마음을 안고 바로 그 길로 한국을 떠났어요. 다른 곳에서 그 고향 냄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에요.”

지금은 자신의 새로운 고향을 찾았다고 한다. 우연히 여행중 만난 친구를 따라 찾아 가게 된 우크라이나의 리비우Liviv가 그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주변을 여행하고 있다는 그녀. 낯선 곳에서 고향같은 익숙함이라니, 그건 어떤 느낌일까? 게다가 정든 고향을 상상하며 방문한 그 고향이 내 고향 같지 않다는 느낌.. 사실 나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부모님도 서울에서 자라셨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두 서울에 계셨기 때문에 명절이든 뭐든 서울 밖을 나선적이 별로 없다. 내가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서울, 내가 자란 그 동네 아파트는 여전히 거기 있고, 그 앞에 있던 버거킹과 맥도날드도 그 위치에 있다. 변한 것이라고는 맥도날드 뒤편에 스타벅스가 생겼다는 것 정도? 서울은 변해 봤자 서울이다. 그 자리 그 건물에 간판들만 바뀌는 그런 곳.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건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당선될 것 같아서 였어요. 트럼프가 대통령인 그 나라에서 살 용기가 더 이상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이제는 그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미국땅을 밟지 않을 거에요. 요새 영국은 어때요?”

나의 30대를 보내고 있는 영국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반이민 분위기를 대표하는 영국, 브렉시트 가결 이후에는 그러한 인종차별적 반이민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브렉시트 가결 전후로 해서 인종차별적 범죄가 5배나 늘었다고 하니, 실제 체감하는 건 그 이상이다.
나도 종종 인종차별을 겪는다. 인종차별을 당할 때의 그 모욕감은 사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으로서의 자괴감을 들게 만든다. 처음 이를 경험 했을 때는 집에 돌아와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둔해 졌는지, 아니면 서구사회에서 ‘자발’적 ‘쭈구리’로 살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수 많은 간접적 차별은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일쑤고, 인지한다 하더라도 ‘잘’ 참는다. 그래도 모욕적인 처사에는 가능한 한 영국 ‘젠틀맨 엔드 레이디스’에게 배운 ‘인다이렉트’한 표현과 함께 온갖 수사를 동원하여 ‘폴라이트’하게 그들의 자존심을 긁는다.

“매우 유감이군요. 당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당신들이 늘 말하듯 자랑스러운 영국인처럼 행동해야 하지 않겠어요? Be British!”

그러나 매번 이렇게 대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한번은 이런 경험이 있었다. 어두운 밤 길을 걷고 있는데, 트럭에 탄 영국인이 나를 불렀다. 그리곤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잘 들리지 않아, 다시 정중히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이, 아시아인들은 아기를 어떻게 갖아? 너희들 성기가 고만한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기나 해? 하하하하”

모욕감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이 떨렸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차에 탄 그들을 쫓아가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내가 아는 누군가처럼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며 ‘X먹어라!’하고 외칠 용기도 없었다. 그건 회피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나는 내 안의 쭈구리를 확인한다.
그렇기에 카탈리나의 용기가 부럽다. 비록 그것이 회피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생활터전에서 벗어나 그곳에 있음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녀와 나는 우연히 또 다시 유럽에서 마주치면 그 때는 소주 한 잔 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물론 그녀는 내게 자신의 제 2의 고향 리비우에 방문하라며 친히 주소를 이메일 주소와 함께 내게 건내 주었다. 내 언젠가는 가리라 다짐해 본다.

쪽지와 함께 모르곤 언덕을 내려 오는 길, 어린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간다. 유난히 발걸음이 가벼운 것을 보아하니 분명 하교길이다. 금발의 여학생들이 내 옆을 빠르게 지나치며 들릴 듯 말듯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칭크스Chinks~”

내 옆을 지나치자 마자 깔깔대며 웃는다. 그냥 넘어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용기내어 보기로 한다. 그냥 지나치면 그들이 평생 자신들의 행동이 무엇이 잘 못된 것인지 모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용기 내어 그녀들을 불러 세웠다.

“헤이, 레이디스, 너희들 그럼 못 써! 그건 누군가를 상처 줄 수 있는 표현이야. 앞으로는 그런 표현 쓰면 안돼. 절대로!”

검지 손가락을 상하좌우로 흔들며 아이들에게 말한다. 나의 정색이 당혹스러울 법도 한데, 잠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깔깔대며 나를 앞서 간다. 그녀들이 사는 온 천지가 백인이니, 나같은 노랭이를 보면 신기하기도, 놀리고 싶기도 하겠다. 나도 그들을 양놈이라, 그리고 코쟁이라 부르지 않았던가. 단지 훗날 그녀들이 시골 골목길에서 만난 그 검은 머리 노랭이 청년의 설교를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민박집 관리인인 마르코가 추천해준 펍, Café Neptun으로 향한다. 기분 전환엔 맥주가 최고다. 아직 비수기인 탓에 가게마다 손님들은 거의 없지만 가게들마다 때마침 열린 슬로베니아의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시청하고 있는게 보인다. 사람들은 TV를 바라보며, 소리지르기 바쁘다. 어디나 축구열기는 똑 같다. 바텐더로 보이는 여인이 내게 묻는다.

“뭐 마시겠어요?”
“로컬 맥주 하나 주세요.”
“그럼 이게 최고에요!”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며 잔과 함께 내게 건낸다. 그 병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Out of China’
내가 맥주를 한참 쳐다보고 있자, 슬로베니아가 지고 있는 상황을 보며 계속 성질만 내던 옆 자리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나는 애써 웃으며 바텐더에게 말한다.

“음.. 이 맥주 정말 맛있네요. IPA죠? 근데, 미안하지만 저는 중국인이 아녜요.”
내 얘기를 들은 바텐더 큰 소리로 웃는다.
“하하하하 오해하지 말아요. 이 맥주는 이 근처 지역 맥주인데, 그 지역 이름이 아이도브슈치나Ajdovščina에요. 발음이 비슷하지 않아요?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말장난을 무척 좋아해요. 하하하 정말 오해 말아요!”

그들에게 한국과 중국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내게 그들이 모두 양놈이고, 코쟁이들이 듯 말이다. 그래 나는 지금 한국 밖에 있다. 무척이나 낯선 곳. 나와 생김새도 문화도 사고도 다른 이들과 내가 자란 곳에서 비행기로 11시간 거리에 있다. 낯익은 거라곤 하나도 없다. 모든 게 낯설다.

나의 고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도 없고, 논도 없고, 동네 바둑이도 없는 시멘트와 철근으로 쌓아 올린 서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아파트 촌. 내가 즐겨 찾던 비디오 대여점도 학교 과제물을 팔던 문방구도, 동네 슈퍼마켓도 사라져 버린 그곳. 이제는 낯익은 간판들마저 사라지고 낯선 외래어 간판들로 대체된 그곳. 공터들은 사라지고, 커다란 백화점과 주상복합 건물들로 가득 차 버린 그곳. 그런데 왜일까? 종종 겪는 차별은 더욱 그곳을 그립게 한다. 내게 이곳과 다를 바 없이 낯선 곳이 되어 버렸으며,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또다른 배제가 존재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립다.
그건 장소가 그리운 것이 아니고, 그곳에 살았던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아닐까? 비록 풍경이 변해도 낯선이들로 가득하다 하더라도 낯익은 사람이 낯설게 변했다 하더라도 혹은 그 시절 그 기억이 왜곡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살았던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절 그 기억은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낯선 땅, 이역만리에서 잠시나마 터전을 잡아 살기로 했으나, 여기에는 나의 이야기가 없다. 아니, 쓸 생각을 안했다는 것이 맞다. 그저 이곳에 온 목적이 우선되었지 결코 내 이야기를 쓰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에 있는 이들의 삶에 맞추어 그들과 이질적이지 않게 살았기에 그 동안의 이야기는 ‘그들 이야기 속 나’가 더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카탈리나가 그러했듯이 고향은 이질적인 곳이라 할지라도 의외의 곳에도 있을 수 있다. 이제야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의 마음으로 버텼던 지난 날이 헛되다. 이제 나도 이곳 낯선 땅에서 내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그들 속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 속 그들을 써 내려가 봐야겠다. 그렇다면 그들의 차별은 내 이야기가 되고, 그렇기에 그 차별에 더 용기 있게 저항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리라 다짐해 본다.

사진/글 :  이유철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uchul83)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섦 – 노래 위에 상인 [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30

노래 위에 상인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퍼석퍼석 모래 위로 나는 새는 바람이었다.

그래도 삶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구름 위에 핀 꽃을 노래하는 슬픔의 변명이 놀라워

그들은 꽃을 멀리하였다.

기억에 없는 기억을 떠올리며

악기를 연주하고 붉은 입술로 노래를 하고

익지 않은 푸른 사과는 아쉬워 바람에 춤을 춘다.

 

아직 낯선 사과에 겨울바람이 차곡차곡 쌓인다.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삶은 너무 낯설고 익지 않아 항상 거칠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은 황무지에

노랗게 피어나는 나비의 향기가 그립고

아직 익지 않은 밤, 푸르게 익어가는

한 여름 밤의 녹색 바람이 그립다.

부슬부슬 알 수 없는 비를 그리며

갓 구은 듯 한 초승달 한 마리가 반짝반짝

창밖으로 떨어지는 밤을 그리워한다.

그는 수많은 밤을 모아 곧 시장을 열 것이다.

그 추억의 밤을 누군가는 곧 사서 모을 것이다.

 

2017.4.26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작업노트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딱 경험한 만큼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직 덜 익고 푸릇한 사과처럼 모든 것이 그 크기만큼 낯설고 그 크기만큼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알지 못하기도 합니다. 푸른 사과가 낯설지 않고 익숙해지는 것은 수많은 밤을 그 안에 담기 때문입니다.

 

익지 않은 열매는 많은 밤을 담을 것입니다. 푸르른 여름밤 풀냄새가 하늘에 가득하고 달빛에 반짝이는 빵 냄새가 나는 초승달과 수많은 별들과 뜨겁고 시원한 여름밤과 꽃이 피는 봄밤도 같이 담고 낙엽이 비처럼 쏟아지는 낯익은 가을밤도, 모든 것을 세상에 내던져 준 하얀 겨울밤을 차곡차곡 쌓은 사과의 낯설었던 밤은 누군가에게 달콤한 꿈이 됩니다. 상인은 수많은 밤을 팝니다. 작은 샘에 동그랗게 뜬 달을 떠서 누군가의 마음에 담는 것처럼 수많은 추억이 담긴 작은 우주를 경험하게 해주는 그 밤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삶들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보다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보다 멀리 바라보는 삶을 때로는 갈망하며 삶은 항상 그리운 날이기도 합니다. 늘 꽉 찬 듯 부족한 것이 그리움입니다.

젊은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 9

최종덕(철학)의 종횡무진 책읽기

 

오늘 아침에 집으로 선거공보 책자가 배달되어 왔다. 보고 싶지도 않아 버릴까 하다가 갑자기 젊은 사람들도 나처럼 이런 책자를 휙 버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일부러 봉투를 잘 뜯어보았다. 그것도 책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도달했으니, 이참에 “2017년 대통령 선거공보 선거책자에 관한 서평을 쓰기로 했다.

 

젊은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보고 선거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면서 실망 섞인 비난을 쉽게 내던지곤 한다. 그런 비난은 기득권의 오만이다. 정작 그렇게 말하는 기성세대는 자신의 기득권을 젊은 세대와 나눠가질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문제가 풀릴 리 없고, 세대 간 대립과 갈등만 커져갈 것이 뻔하다. 동물의 왕국에서 본 원숭이에 관한 다큐 하나를 소개한다. 원숭이 수컷 우두머리의 독재 권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암컷과 어린 새끼는 집단에서 공동으로 획득한 먹이감을 포기하곤 한다. 다큐 제작자에게는 마치 먹이에 대한 무관심으로 보였을 정도다. 수컷 대장이 먹이를 강하게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개체가 먹이를 먹으려고 시도하다가 대장에게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힘없는 새끼들은 먹이를 포기한다. 포식 욕구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다만 힘센 수컷들 힘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무관심해진 것이다. 먹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같다. 욕망마저 없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의 정치적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의 겉모습은 정치적 무관심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말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를 원한다면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을 탓하기 전에 기성세대가 독점하는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간단한 이 사실을 숨기고 젊은 세대의 무관심만을 탓한다면 여전히 세대 간 갈등은 풀리지 않는다. 반복된 이념공세나 추상적인 구호정치를 내던지고 기성세대의 허세와 자기기만을 과감하게 버릴 수만 있다면 젊은 세대의 무관심은 자동적으로 관심으로 바뀐다. 불행하게도 기성세대는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나올지 나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기성세대이기 때문이다. 현 기성세대에 닥칠 냉정한 인구학적 팩트로 미루어 기성세대는 그들만의 권력을 놓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젊은이가 세월이 흘러 기성세대가 되면 자동적으로 기초욕망을 채웠으나, 앞으로는 스스로 강한 관심과 표현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 나이가 먹어도 여전히 청년의 불리함만 늘어나게 된다. 지금도 알바하느라 바쁘지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얻어낼 수 없는 슬픈 미래라는 뜻이다. 그래서 젊은 세대는 스스로 자신들의 미래를 강하게 욕구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바로 이런 현실 때문에 이번 투표에 젊은 세대가 참여하는 세속적 의미가 생긴다.

 

 

아픈 이야기 [침몰한 세월호 침몰한 대한민국]

지벼리

출판사에서 일하는 나는 오늘 다음 날 있을 출판사 총판 회의에 필요한 자료 준비와 출시될 도서들을 정리하느라  저녁 식사도 거르고 10시 30분까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밥도 못 먹고 온 나에게 신랑은 안쓰러운지 옷도 갈아 입지 않은 내게 빨리 소파에 앉으라며 테이블에 늦은 저녁을 차렸다.
몇 번을 데웠는지 모른다는 따근한 두부찌개. 나랑 같이 먹으려고 신랑은 김치볶음밥으로 우선 먹었다고…

신랑의 전매특허 두부찌개는 늘 맛있다. 오늘은 더 맛있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더 맛있다. 목마름이 밀려와 맥주 한 캔 마시고 싶다고 했더니 내가 오기 전에 담배 사러 나갔다가 맥주도 사서 미리 냉장고에  뒀노라고.
이렇게 말하면 신랑은 집에서 살림만 하는 남자로 오해받을까? 살짝 걱정도 되지만 내 남자는 그런 거에 개의치 않는다. 무엇이든 잘~ 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고 한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사들인 텔레비전에서는 세월호에 관한 101분 기록으로 이야기를 다시 꺼내 영상으로 보여준다. 신랑과 나는 세월호  이야기에 대해  “이제 좀 그만하자.”고  말하는 사람들과  목에 핏대 세우며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남의 고통은 어찌 그리 쉽게 잊자고들 하는지 되려 묻고 싶다. “교통사고 같은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정의 내리면 쉬운 표현이라 그리 했는지 모르겠으나 참으로 개탄스럽다. 나와 신랑 사이에는 아이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자 약속한 부분도 있고… 나이도 이제 마흔 중반에 생각도 많다. 사실 아이를 키우며 살 자신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신랑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나는 아동 전문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세월호 탑승자 중에 가족이 있느냐고… 분노하는 내가 그렇게 비쳤는가 보다.

우리가 연결하면 연결 안 되는 고리가 있던가?
그렇다. 나도 내 아버지에게 들은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가족 여행으로 세월호를 탔다가 엄마, 아빠, 형 모두 잃은 요셉이는 나의 먼 친척이었다.
내가 평소 친척으로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어서 몰랐지만, 아버지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그 주에 친인척들 모임이 있었는데  당시 사고로 인해 모임을 취소했고, 그 안타까운 사연을 뉴스로만 들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주변 왈 그래서 네가 그렇구나… 세상에!
우리 다 같은 국민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을 안타까워하며 목소리 좀 냈다고…
그런 관계들이 있어서 내가 그러는 것이라고 이런 취급을 당하는 건 사건보다 더 아픈 또 하나의 사건이다.
‘세월호’에 직접 탑승했거나 탑승한 가족이 있어야만, 또 다른 어떤 관계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말인가?

다만 그 아이들은 우리의 아이들이고 우리의 미래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꼭 했어야 하는 일들이 지금은 미련으로 남았을 그 꿈 많은 아이들을… 우리는 그 찬란한 미래를 무참히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사고였다’라고 말한다. 진실은 어디에도 없고 변명만이 소란하다. 비겁한 변명들을 듣고 있노라면 화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다.

맛있게 먹던 밥을 짧게 마무리한다. 맥주를 벌컥벌컥! 목이 메어와 숨쉬기가 곤란하다. 목 아픔을 참고 있는데… 난데없이 눈물 줄기가 참아지질 않는다. 그 부모들의 속은 어찌할꼬. 그 영상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미처 공개하지 못했던 어느 부분은 정말이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 자기들은 빠져나가겠지?”, “지난번에도 그랬었잖아”, “아~ 이러다가 혹시 죽는 거 아니겠죠?”,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 남겨야지. 엄마, 아빠 사랑해요.”, “커튼이 이 만큼 들렸다는 건 그만큼 기울었단 말이겠죠.”, “물이 들어와요.”, “아~~~ 안돼! 정말 화가 나서 욕을 하고 싶은데 이 영상 어른들이 볼 거라 욕은 못하겠고… 아… 나는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대로 죽을까 봐 걱정돼요. 아~~~.”

아프다.
많이 아프다.
그 영상 속 우리 아이들이 혹시나 했던 말들은 그리 되어 버렸다.

핸드폰 영상으로 담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록했을 우리 아이들의 희망을…
우리는 끊어 버렸다.

선장과 선원들은 상황실 신호도 끊고,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은 채 ‘패닉 상태였다’라고 말하며 살고자 허둥지둥 세월호 밖으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그 모습은 참으로 초라했고, 비겁했다.
또 그들을 구한 해경들은 선장인지, 선원인지 몰랐다고 했다.

선장답지 못했고, 선원답지 못했고, 해경답지 못했고, 어른답지 못했고, 인간답지 못했다.

상황실은 각각 보고만 잘 하고 있으라고…
해경들은 그 모습들을 보고도 퇴선 명령은 없다.
관저에서는 ‘세월호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간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시니 사진으로 찍어 빨리 보고 하라고…
보고 싶어 하신다고…
민간 민박 선원들이 보다 못해 뛰어들자 해경은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을 한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1분 1초를 불안해하며 말을 이어가는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사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어느 것이 생명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인가?
아이들의 목소리는 다급한데…
상황실 보고하는 목소리는 여유가 있고 웃음도 있고…
참으로 비통하다.

아이들은 밀려오는 공포 속에서도  다른 객실에 있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걱정한다.
부모님께 보내는 메시지에는 곧 구하러 온다고 했으니 염려 말라고 안심시킨다.
선장이나 선원들이 아무런 지시 사항도 내리지 않고 그저 선내 방송으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라고  반복 방송을 하고 있다.  스피커에서 되풀이 되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듣는 아이들은 위급한 상황임을 직감하고 그 지시에 따른다. 보통 다른 날이었더라면 어른들이 하는 말에 의문을 가졌을 법 한데… 이 날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맞다 생각해서 아마 그들 전부가 그렇게 행동한 것 같다. ‘내가 움직이면 배가 더 기울어져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라고 생각한 아이들이  선내 방송의 지시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그대로 따른게 아닐까 싶다. 어찌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아이들은 스스로 구명조끼를 나눠 입고 못 입은 친구들을 챙기며 불안한 감정들을 서로 다독인다.

그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웃음을 보이던 아이들은 그 상황이 그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아마 그리도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도 혹자는 ‘애들이 철이 없어서 그런다’라고 한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것은 그것과 다르다.
그냥 비판을 위한 비판인 것이다.
내 자식을 그렇게 수장시킨 부모들도 그리 말할까? 철이 없다고?
그 부모들을 대신해서 마구마구 싸워주고 싶다.

길게 끌어 봐야 국민들 세금만 더 늘어난다고 말하는 그들은 끝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다시 시작이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그 누구도 억울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상태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어린이 책!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순간순간 고민이다.
내 모든 힘을 다 동원해서…
인성이 바로 서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꼭! 그래야만 한다.
내가 나에게 내리는 주문이다.

다시 봄이 찾아왔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모든 사람들과 그 가족들, 그들을 도왔던 민간 잠수부와 민간 선박 선원들에게 이제 봄은 없다.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들이 맞는 봄이 새롭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p.s  서로 나누고, 도우며… 함께 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픈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시평) 판결문의 정치와 세월호의 정치 [더 맑스]

판결문의 정치와 세월호의 정치

 

김종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경. 박근혜의 탄핵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숨죽이면서 이정미 재판관이 읽어 내려가는 판결문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법률용어와 법률적 논리로 인해 결론을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의 ‘그러나’가 반복되면서 손에 땀이 흐르고, 조급한 마음이 들어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는 혼잣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피청구인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라는 간결한 문장이 읽혀지는 그 순간에야, 박수와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통신을 통해 기쁨의 순간을 나눴다.

 

그랬다. 기뻤다. 스스로에게, 또 추운 겨울날 광장을 함께 메웠던 사람들에게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축하한다고 인사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다. 이 날 만큼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지인들과 함께 축배를 드는 것이 투쟁의 승리를 자축하는 성스러운 의식처럼 보였다.

 

 

그런데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을 즈음, 복기되는 내용이 있었다. 판결문을 들으면서 의아했고, 실망했고, 가슴 아팠고, 화났던 내용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이 난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말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여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그런데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요컨대, 재난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첫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위법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고 둘째, 박근혜의 대응이 성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더라도 ‘성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법리적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세월호 참사는 대통령 탄핵을 물을 수 있는 사안에 해당하지 않는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문을 포함해 판결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대통령으로서 박근혜에게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여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가 세월호 참사 당시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우리는 누구도 대통령이 재난상황 발생 시 현장으로 달려가 장비를 착용하고 직접 구조 활동을 하는 직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박근혜에게 따져 묻는 내용 역시 ‘왜 당신은 바로 팽목항으로 달려가 해경과 잠수부를 비롯한 인력들과 함께 구조 활동을 하지 않았냐?’가 아니다. 우리가 묻는 것은 대통령은 행정부의 최고권한자로서 국가 재난상황 발생 시 구난과 구조를 위해 국가의 재원이 원활하게 동원될 수 있도록 지휘감독을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상식적’이면서도 ‘법률적’인 의무에 대해서이다. 그것은 판결 전문(2016헌나1 대통령 박근혜 탄핵)에서도 인용하고 있듯이 우리 헌법 제10조와 판례(헌재 2008. 12. 26. 2008헌마419등 참조)가 확인하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 의무를 다했는지 안했는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사항에 따라 실제로 이정미 재판관은 “피청구인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합니다.”라고 앞서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점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는지 그 행적을 따라가면서 검토하는 것이다. 박근혜가 성실하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뭐라도’ 했는지를 묻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판결문 낭독에는 이러한 검토 내용은 없었다. 전문의 < 피청구인의 대응> 부분을 보더라도 대통령 측 주장만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열거하고 있을 뿐 그 주장이 신빙성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기술되어 있지 않다.

 

아주 기초적인 논리적 판단조차 수행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는 의심이 든다. 더구나 전문에는 전원 구조 오보가 정정된 2014년 4월 16일 오전 11시 50분 경 국가안보실은 “구조가 순조롭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학생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방송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오후 5시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할 때까지 ‘대통령’으로서 박근혜가 어떠한 지휘감독을 했는지를 이들의 주장과 대조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 조차도 기술되어 있지 않다. 논리가 실종되어 있다.

 

재판관 김이수와 이진성의 보충의견(소수의견)을 보면 세월호 관련 내용이 파면사유에서 누락된 것이 더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다면서 이정미 재판관이 읽었던 종합결론과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를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이 가해지거나 가해질 가능성이 있는 국가 위기 상황에 해당함이 명백”하다고 보면서 그와 동시에 “피청구인은 상황을 신속히 인식하고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국민의 생명, 신체를 보호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부담하게” 됨을 인정하고 있다. 즉, 헌법 제66조 제2항 및 제3항, 제69조(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 헌법 제34조 제6항(국가의 재해 예방과 국민보호), 국가공무원법 제56조(모든 공무원은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판단은 어떻게 나왔는가? 이들(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은 박근혜 측의 주장에 대해 “위기상황의 인식”, “피청구인의 대처”로 항목을 나누어 살피고 있다. 간략하게 핵심 판단 내용만 전하자면 당일 박근혜가 집무실에 출근하였으면 오전에 이미 상황을 심각성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오보 때문에 대응이 늦었다는 박근혜 측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당일 박근혜의 지시라 해봤자 원론적이었으며 대부분의 지시 내용은 사실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명백한 성실의무 위반이자 작위의무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들 보충의견은 ①(전제)성실한 직책 수행의무 위반=탄핵사유 → ②(사실관계)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성실/작위 의무 위반이라는 논리를 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①, ②에 따라 탄핵사유로서의 부합성에 대한 판단, 즉 최종 결론은 ③‘탄핵사유가 된다.’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의 결론은 너무나도 엉뚱하게도 “이 사유만으로는 파면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출처 : 프레시안 ⓒ사진공동취재단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55672)

 

 

도대체 이러한 판결문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종합판결도 보충의견도 처음부터 세월호 참사는 파면 사유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것처럼 논리 없음과 모순을 감행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날 박근혜의 탄핵사유 중 가장 핵심이 ‘기업의 자율성 침해’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에 대한 사안은 파면사유에 해당할 만큼 (판결문에서 반복하고 있는) “중대한” 사안이 아닌 반면 기업의 자율성 침해는 파면사유에 해당하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이라는 것이다. ‘성실’이라는 용어를 추상적이고 상대적이라고 말했던 판결문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보다 기업의 돈벌이가 더 ‘중대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1990년 헌법재판소는 사유재산과 시장경제원리를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식화하였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판결문이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를 만들어내면서까지, ‘중대한’이라는 말을 이용하여 부정하였던 것은 바로 시민들의 ‘정치’였다는 것이다. 광장의 시민들은 국민의 생명권 보장을 위한 대통령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국가를 요구하였지만 판결문은 그것이 한낱 분노에 찬 ‘소리’에 지나지 않으며 책임을 묻기 위한 ‘말’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판결문은 안정적인 시장경제질서의 회복이 너희가 아우성치는 생명보다 더 중대하다고 보면서 이제 그만 광장을 떠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판결문은 우리의 시간을 광장의 촛불이 등장하기 이전으로 돌려놓고 있다. 대통령의 자리에 박근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들여놓는 것 외에 달라진 것이 없는 그 시간으로 말이다. 그래서 랑시에르가 『불화』에서 한 말은 이 상황에서 너무나도 적합해 보인다. “헌법은 변혁의 열망을 지속적으로 수용하는 한에서 헌법으로 기능하는 것이고, 국민의 열망을 배제하고 기성질서를 고착화하는 한에서는 치안법이다.(자크 랑시에르 지음/진태원 옮김, 불화, 도서출판 길, 2015, 51쪽 이하.) 판결문은 헌법을 치안법으로 대체하고 있다.

 

 

광장을 통해 나온 변혁의 열망이 ‘판결문의 정치’ 속에서 용해되어 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세월호 참사 관련 내용을 판결문 전면에 배치한 의도가 ‘대통령 파면’이라는 고기를 던져주면 시민들은 자신들의 논리 없음과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기뻐하면서 그 고기를 즐길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재판관 안창호는 보충의견에서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장 24절)’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지만 이 구절을 다시 판결문에 돌리고 싶다. 판결문은 이 구절에 따르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이 판결문에 불복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불복’이 보수단체가 말하듯 박근혜의 탄핵자체를 부정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이 불복은 ‘자본주의 시장질서가 그 무엇보다 중대하다’는 점을 인정하며 ‘분노도 열정도 없이(sine ira et studio)’ 살아가라는 판결문의 ‘말씀’에 따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우리는 또 죽게 내버려두거나 죽게 만드는 세상에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던져놓게 되기 때문이다. 1072일 만에 물위로 인양된 세월호와 마주할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판결문의 정치’에 맞서 국가폭력과 자본, 제왕적인 권력정치에 맞서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말하는 ‘세월호의 정치’를 맞세우고 싶다. 그러한 정치가 승리가 하였을 때에만 오로지 축배를 들고 싶다.

 

 

 

오늘부터 맑스분과블로그진을 시작합니다! [더 맑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맑스분과블로그진을 시작합니다.
블로그진의 타이틀은 ‘더 맑스’ 인데요. 영어 정관사(The) 의미를 살려 잊혀진 듯한 그 맑스를 되살릴 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More) 오늘의 현실에서 재현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었습니다.
더 맑스 블로그진은 한철연 맑스분과원들이 돌아가면서 글을 올릴텐데요. 일종의 two track으로 운영됩니다.
우선, 분과원들의 ‘시평’ 이 올라가고, 또 지금 분과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 ‘공산당선언 번역’과 관련된 짚어볼 이야기, 후일담 등도 올릴 예정입니다.

 

e-시철 독자 여러분, The 맑스, More 맑스!  앞으로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크로아티아 여행기 [유철의 유럽방랑기] -1

앞으로 영국에서 유학 중인 이유철씨가 유럽에서의 여행과 유학생활에 관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을 올릴 예정입니다. 웹진 게재에 흔쾌히 허락해 주신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은 앞으로 유럽 곳곳의 사진과 더불어 사람 사는 이야기가 활력있게 펼쳐지는 지면을 마주하실 있을 겁니다.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이스트라 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풀라Pula는 그동안 내가 거쳐 온 ‘마을’에 비하면 ‘도시’에 가깝다. 엄청난 크기 아우구스투스 성전과 풀라 아레나는 과거 찬란했던 풀라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러나 모든 개발도상국들이 그러하듯 풀라 아레나 넘어 보이는 수 많은 크레인들과 현대식 항구는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군데 군데 위치한 클럽들은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 보다 그 동안 지나쳐 온 조용한 테라스를 가진 카페를 그립게 만든다. 거짓말 아님…ㅎ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그렇게 지나쳐 온 ‘마을’들을 그리워 하며 걷는데, 저 멀리 교회 앞 작은 광장에서 꼬마들이 공을 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날씨가 꽤나 덥지만, 아이들은 열심히다.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가만있기 어렵다. 나는 말도 없이 자연스레(?) 아이들 공간에 침범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 하는 모습이었지만, 이내 웬 낯선 동양인의 공을 뺏기 위해 하나 둘씩 좇아 온다.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몇 분이나 뛰었을라나? 땀이 비오듯 하고,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날씨가 25도나 되지만 자외선 알러지가 있는 나는 옷을 벗지 못한다. 지쳐 길바닥에 누워버린 나를 보고 아이들이 웃는다.

“아저씨 저기 그늘에 누우세요”

꽤 유창한 영어로 내게 말하는 이 꼬마는 시몬이다. 2달 여전에 수도 자그레브에서 이사 온 시몬은 이 동네 똘똘이로 통한다.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고 한다. 주변 친구들이 쉬지 않고 자랑한다.

“어, 아저씨도 영어하네? 있잖아요, 시몬은 우리 학교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구요, 그리고, 그리고.. 뭐였더라? 맞아, 수학도 엄청 잘해요!”

여기에서 가장 덩치가 큰 마테오는 마치 자기 일인양 자랑하듯 목소리에 힘을 주며 내게 말했다. 쑥스러운 듯 구석에 한 여학생이 크로아티아어로 시몬에게 말한다. 그러자 시몬은

“아, 이 친구는 사라인데요, 영어를 잘 못해요. 그래서 뭐라고 하는지 묻는거에요.”

그러자 마테오는 사라에게 다시 크로아티아어로 무슨 이야기를 하더니 곧장 도망친다. 얼굴이 빨개진 사라는 곧장 마테오를 쏘아보더니 그를 뒤쫓는다. 놀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러자 여기에서 가장 키가 작은 디노는 내게

“그게 아니구요, 사라가 요즘 사랑에 빠졌는데요, 방금 마테오가 자신의 이름이 사라가 좋아하는 남자애 이름이랑 같다고 이야기 한 거에요”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상기된 얼굴의 사라를 바라봤다. 그냥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마테오도 사라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새하얀 피부에 아드리아 해처럼 맑고 파란 눈을 가진 사라는 전형적인 크로아티아 여인이다. 그녀는 운동을 좋아하는 듯 보였고, 잠시 같이 뛰어 보니 실제 웬만한 남학생들보다 축구를 잘하는 듯 했다. 그런 사라는 친구들 사이에서 여자사람친구를 가장한 모두가 흠모하는 인기녀인 듯 했다.

마테오와 사라를 보고 있노라면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무척이나 부끄럼 많았던 나, 내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같은 아파트에 살았었다. 나는 7층, 그녀는 11층이었다. 그녀와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거나,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탈 때면 어찌나 떨리던지.. 숨을 못 쉴지경이었다. 그렇게 몰래 몰래 그녀를 흠모하던 중 내 마음을 전한건 내가 아닌 제 3자였다. 그녀도 나도 방문 학습지을 했었는데,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걸 알아차린 방문교사는 오작교가 되어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을 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도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입이 귀에 걸린 나를 보고선 방문학습지 선생님이 어찌나 웃던지. 그 때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 마음이 내가 사라와 마테오를 바라보며 드는 그런 마음이었을까? 그냥 마냥 이쁘기만 하다. 그리고 덩치만 큰 마테오가 아주 소심하게, 그리고 수줍게 사라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에 내 마음이 설렌다.

“근데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관광객이에요? 아시아인인데 영어를 어떻게 해요?”

그녀는 엘리다. 그녀는 키가 작고, 하지만 다부진 체격을 지닌 아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아시아인과 대화하는게 처음이라고 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관광객 상대로 장사하지 않는 이상 그들 인생에 대화해본 아시아인은 내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들의 눈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박사 공부를 하는 학생이고 영국에 있다고 하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그리고는 뒤에 있던 마르코를 불렀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뭐라 이야기 하더니 갑작스레 내 앞에서 시퍼렇게 멍든 무릎과 넘어져 생긴 상처로 보이는 발뒷굼치를 내게 보였다.

“아저씨, 얘 농구하다 다쳤어요. 괜찮아 보여요?”

아마도 이친구들에게 영어 닥터가 의사로 이해 되었나 보다. 내가 다시 설명하자, 이제는 내가 정치인 지망생이 되어 있는 듯 싶었다. 아니라고 설명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이지 않았다. 내 영어실력이 문제일까? 여튼 나는 이야기를 돌렸다. 그들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너희들은 커서 뭐 하고 싶어? 꿈이 뭐니?”

아이들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저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싶어요. 그리고 영국도 가보고 싶어요! 영국에서 공부해 보고 싶어요”
“저는.. 슈케르 같은 축구선수가 될거에요! 돈도 많이 벌고, 세계를 여행할 수도 있고.. 부모님이랑 넓은 집에서 살고싶어요!”
“저는 학교 선생님이요! 우리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저는.. 배를 탈거에요! 바다가 좋아요.”
“저는 아저씨처럼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탐험가가 될거에요. 영국 가보고 싶어요! 영국은 어때요? 좋아요?”
“마르코, 아저씨는 그냥 여행객이야. 탐험가가 아니란 말이야. 그리고 여행은 탐험가가 아니어도 할 수 있어. 탐험가는 북극같은 곳을 가는 거란 말이야.”
“그런가? 하여튼 나는 탐험가 할래!”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티격태격하며 떠듬떠듬한 영어로 내게 말한다. 그들의 꿈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의사가 되고 싶은 시몬은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게 싫고 게다가 아픈 동생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한다. 의사가 되면 동생도 고치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도 없기 때문에 의사가 되고싶다고 했다. 작은키 다부진 체격의 엘리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 그저 넓은 집에서 가족이 화목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집안이 그다지 화목하지 않은 디노는 학교 선생님이 부모님 같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도 선생님이 되어 자신같은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다고 했고, 아버지가 어부인 마르코는 아버지랑 배타러 나가는 게 좋다고 한다. 덩치가 산만한 마테오는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해외에는 어떻게 사는지, 뭐가 있는지가 궁금해서 탐험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각자의 사연, 각자의 꿈. 하나같이 그들은 하고 싶은게 많다. 조금만 더 물어보면, 또 다른 미래, 자신의 꿈을 그린다. 하고 싶은게 너무나도 많고, 세상이 궁금하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내게 묻는다.

“한국은 어디에 있어요?” “중국하고 달라요?” “한국은 영어 써요? 아니면 중국말?” “영국은 좋아요? 옥스포드 가보셨어요?”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그것을 상상하면 마냥 즐겁고, 장미빛인 이 꼬마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 없이 때묻은 나를 발견한다. 하고 싶은 것 보다 할 수 있는 것, 되고 싶은 것 보다 될 수 있는 것, 나의 미래와 꿈을 상상하면 눈 앞이 캄캄해 질 수밖에 없는 현실. 그들의 행복한 미소와 상상이 나에겐 그리 많지 않다.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크로아티아에 오기 전, 나는 슬로베니아 서부를 크게 한 바퀴 돌며 여행 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인 대학생 한 명을 만났다. 언론을 전공하는 대학교 2학년 학생이자, 휴학생인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요리를 그만두기 작정하고 그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긴 여행길에 올랐다고 한다. 지방대를 다니는 자신에게 부모님이 바라는 그리고 부모님이 걸어온 그 ‘평범’한 길은 사실 어렵다며, 그리고 자신은 요리가 너무 좋지만 인정받기 어려울 것 이라며, 그래서 이를 잊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 방도를 찾기 위해 두 달간의 여행을 떠나 왔다고 했다.

그와 같은 도미토리에서 묵게된 나는 율리안 알프스에서 셀수 없이 많은 별이 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밤새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단어들을 주고 받았지만, 그는 내게 조언을 구하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조언하지 못했다. 어쩌면 정해진 삶을 수용하느냐 마느냐만 남았다는 것을 둘 다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조선 땅에서의 삶은 만족하는 삶이라기 보다 생존해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밤새 마신 술과 오랜 여독에 실신한 듯 잠들어 있는 그에게 편지 한 통 남기는 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위로의 전부 였다.

‘…. 00군, 아직 젊어요. 하고 싶은 것 한 번 해봐요. 응원 할게요. 좋은 여행되길…..’

새빨간 거짓말. 물론 응원한다. 그리고 그가 하고싶은 것을 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선택이 무엇이 될지 나도, 그도 알고 있다. 게다가 하고 싶은게 뭔지도 모르는 내가,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는지도 모르는 내가 그에게 하고 싶은 것 하라는 조언이 가당키나 한가? 오히려 그건 아마도 내게 하는 말일지 모르겠다.
요즘에는 도통 책이 읽히지 않는다. 게다가 글쓰기를 할 때면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그건 아마도 물리적인 문제만은 아닐터, 최근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면역성 질환들을 경험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제 원형탈모까지 생겼으니.. 이제 내게서 이유를 찾아야만 한다. 다시 내게 묻는다.

‘유철아, 공부하는게 즐겁니? 왜 공부를 그토록 하려고 하니?’

나이라는 것은 내게 이런 질문을 묻게할 만큼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내 안에서 찾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헛된 나이가 되지 않을까? 이 여행에서 찾고 싶은 것, 내가 욕망하는 것을 찾아야지.

우물쭈물 하던 사라가 내게 말한다.
“저는 운동하는게 좋아요. 남들 보다 잘 하는게 많지 않은데 운동은 남들 보다 잘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뛸 때 가장 행복해요.”

사라가 대답하자, 마테오가 옆에서 외친다.
“마테오랑 결혼할거 아니야?”

그렇게 마테오는 다시 또 이곳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사라는 놀리는 것이 마냥 싫지 않은 듯 천천히 그를 쫓는다. 그리고 다시 각자 내 옆에 앉는다. 그들이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어떻게 기억할지도 모르겠으나, 이 시간 나는 그들과의 기억이 행복하다. 그리고 짧지만 잊혀질 것 같지도 않다. 나를 뒤돌아 보게 한 그들의 꿈들과 그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는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사진/글 :  이유철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uchul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