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철학, 철학의 부재(不在), 안호상 – [길 위의 우리 철학] – 6

박민철

1

한반도 분단은 ‘분단체제’라 규정될 정도의 자기재생산 매커니즘을 갖는다. 한반도 차원에서 발생하는 적대적인 상호의존 관계가 그것이다. 이러한 적대적 상호의존 관계는 ‘반공주의(반미주의)’, ‘국가주의’라는 이데올로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반복된다. 이렇듯 반공주의, 국가주의 모두는 강력한 상호 결합을 통해 결국 분단을 지속시키는 이념적 공모자들이다. 이때 우리는 이것과 관련되어 한국현대철학의 여러 인물들 중에서 안호상을 만나게 된다.

 

분단 이후 남북은 상대에 대한 배타적 우월성을 획득하려는 노력과 함께, 분단국가의 ‘국민 만들기’에 열중했다. 당시 집권세력은 1948년 말 ‘여순사건’ 이후 증폭된 해방정국의 혼란을 공산주의 사상의 배타적 극복과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이중 과제의 달성으로 돌파하고자 했다. ‘일민주의(一民主義)’는 바로 그 시기에 등장했다. 1949년은 이승만의 「일민주의란 무엇?-헤치면 죽고, 뭉치면 산다」, 「일민주의와 민족 운동」 그리고 양우정의 『일민주의의 개술』이라는 글이 출간된 해이다. 그리고 안호상의 『민족의 소리』 역시 이 해에 출간되었다.

 

[(왼쪽부터) 이승만, 양우정, 안호상]

 

1949년 「민족의 소리」에서 “우리에게 독특하고도 위대한 사상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던 안호상의 주장은, 1950년 「일민주의의 본바탕」에서는 그러한 사상적 무장이 “모든 반민족 사상을 여지없이 격파”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혈연적 동일성과 통일성에서 비롯되는 ‘일민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로 구체화되었다. 분명 안호상은 일민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였다. 그리고 그러한 만큼 안호상의 철학은 분명 국가주의 철학과 일치했다. 오늘날 학문영역 중 역사학과 정치학에서도, 심지어 그가 몸담았던 철학에서도 안호상을 국가주의 철학자로 평가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입장이 아니다. ‘서양철학수용1세대’ 혹은 ‘한국철학1세대’로 평가되는 이들 중에서 안호상만큼 극적인 자기변화를 보이고 있는 이는 찾기 힘들다. 철학의 지향점에 대한 ‘이론 대 실천’의 구도 속에서 항상 이론의 측면에서 서 있었던 인물도, 독일과 일본의 유학경험에서도 매우 극단적인 내용과 방법으로 ‘민족적인 것’에 침잠했던 인물도, 또한 역설적이게도 반공과 국가주의의 이데올로그였지만 훗날 반공법 위반을 스스로 선택한 인물도 찾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어떤 연구자는 안호상의 철학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안호상의 ‘철학함’은 ‘오늘, 우리들’에게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2

안호상(1902-1999)는 190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항일운동가인 집안 어른들의 영향을 받아 신학문을 접했으며 그 인연으로 청소년 시기 대종교에까지 입교했다. 1922년 상해로 가 당대 조선의 민족지도자들을 만나면서 영향을 받았으며 그 후 독립을 위해 보다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함을 느끼고 독일 유학을 떠났다. 1929년 독일 예나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다. 1931년 다시 일본 경도제국대학으로 건너가 연구했으며, 1933년 귀국 후 보성전문학교 교수가 되었다. 이 시기부터 안호상은 동시대의 한국철학1세대들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조선의 독립을 위한 실천철학적 관점을 강하게 표명했던 당대의 지적 분위기와 달리, 실천보단 순수한 이론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해방 후엔 이승만 정권의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했고 이후 단군사상에 기초하여 민족계몽운동에 투신하고 대종교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민족사상’의 확립이라는 목적이 곧 철학에 입문한 계기였다. 하지만 그 목적은 곧 민족사상으로서 ‘일민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정립하고 홍익인간이념을 교육이념으로 내세우는 등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까지 국가철학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를 이끌었다. 1947년 『우리의 부르짖음』, 1948년 「민족교육을 외치노라」, 1949년 「민주적 민족교육의 이념」 등에서 이미 전체로서의 ‘우리’ 그리고 우리의 존재 근거로서 ‘국가공동체의 강조’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서구 근대의 정치적 지향이 민족국가의 건설이듯, 유년시대와 독일 유학의 경험 속에서 그러한 이념적 지향을 강하게 흡수한 안호상의 철학 역시 민족과 국가의 강한 일치화로 전개된다. 특히 반공주의는 근대적 정치주체로의 자기성장 과정을 겪지 못했던 한반도에서 민족과 국가를 맹목적으로 일치시키도록 돕는 이념적 접착제였다. 「민주적 민족교육의 이념」에 등장하는 ‘빨갱이 개아들’이라는 용어는 그래서 섬뜩하다.

 

실제로 일민주의에서 민족주의는 반공주의와 결합해 더욱 배타적으로 변모한다. 안호상은 혈연성에 기초한 민족과 일민의 구분, 즉 동일한 혈통은 ‘일민’의 필수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 없으며, 이 충분조건은 일민주의라는 단일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고 반공정신으로 무장된 개인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총선거와 남북협상」). 즉 동일한 혈통을 갖는 같은 민족일지라도 반공의 의식이 없으면 그러한 일민에 포함될 수 없는 적대적인 타자인 것이다. 또한 안호상은 1950년 『일민주의의 본바탕』에서는 이승만을 최고 영도자로 명명했으며, 반공이라는 의지 속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이들만이 국민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안호상은 일민주의의 핵심이 동일혈통과 동일운명에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했으며, 그 강조는 결국 ‘국가’로 수렴되었다. “일민에는 일국가, 한민족에는 한국, 곧 한 백성에는 한 나라를 있게 함이 일민주의의 민족철학이요 국가철학이다.”(『일민주의의 본바탕』)

 

안호상의 철학 속에서 민족, 국가, 반공의 ‘신성한 삼위일체’가 이렇게 완성되었다. 이승만의 시선 속에서 분명 안호상은 매력적인 국가주의 이데올로그였으며, 안호상의 입장에서 이승만은 삼위일체의 현실적 대리자였다. 이 둘의 결합은 1949년 안호상이 문교부장관의 직무 아래 전국의 교원 5만 여명을 대상으로 한 사상경향의 조사를 하고 그 중 ‘불순분자’를 파면한 결과로 이어졌다. 오늘날 지난 정권과 지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는 어찌 보면 ‘애교의 수준’이랄까.

 

[일민주의 체계표 – 출처: 한국의 지식콘텐츠]

 

3

민족적 단일성에 대한 수사학적 강조 그리고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은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 오롯이 이어진다. 그리고 안호상의 여정은 이승만 정권의 초대 문교부 장관에서부터 박정희 정권의 국민교육헌장 기초위원 및 재건국민운동중앙회장에 이르기까지 독재권력 아래에서 그들과 함께 했다. 물론 여러 연구들을 살펴볼 때, 일민주의는 누구의 것이라는 규정할 수 없으며 해방과 분단의 과정 속에서 일군의 이데올로그가 공동으로 논리적으로 체계화하고 보급했던, 즉 한반도 분단의 파생적 이데올로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호상이 분명 그 일민주의의 철학적 정당화에 몰두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이승만 정권 이후 안호상은 주로 대종교의 보편성이나 단군왕검의 역사적 위상을 설파한 계몽운동가로 활동하게 된다. 상고(上古)시대와 단군사상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민족뿌리찾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이 속에서 안호상은 1964년 배달문화연구원장, 1968년 국민교육헌장 기초위원, 1974년 국사찾기협회 회장, 1992년 대종교 총전교를 역임했다. 이러한 대종교인으로서의 본격적인 활동 속에서 안호상의 철학은 국가주의 철학과 조금씩 거리감을 갖기 시작한다. 물론 안호상이 일민주의라는 국가철학을 자신이 속해 있는 단군사상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작업에 주력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대종교의 총전교로 선임된 이후 철저한 반공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단군을 크게 존숭하자 정부의 불허가 방침을 위반하고 단군릉 참관을 위한 방북을 강행할 정도로 그의 신심은 확고했다.

 

[대종교 총본사,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중앙로 3길 89 – 출처: 통일뉴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가면 여전히 우리들에게 계승되고 있는 대종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종교는 단군을 교조로 삼고 단군정신을 통해 일제에 대한 항거, 민족의 단결과 부흥 및 국권을 회복해야한다고 주장하는 한반도의 자생적 종교이다. 나철, 김교헌, 윤세복 등 대종교 지도자들을 제외하고 항일운동을 설명하긴 힘들다. 그리고 지금 그 위세는 예전보다 줄었지만, 단군과 홍익인간은 여전히 한반도의 결속을 가져오는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안호상 역시 변화했다. 그는 1985년 「무력재침은 민족의 자멸행위」라는 글에서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를 주장한다. “‘고려 연방제’도 서로 만나서 이야기해 봐야 할 것이 아닌가”라고 얘기할 정도로 전향적인 자세를 취한다. 최근 들어 안호상 철학의 의의와 한계를 세심히 살펴보자는 문제제기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국가주의 철학의 정립이라는 ‘과(過)’가 있으나 서구사상의 수용과 변용을 통해 주체적인 한국의 철학사상을 정립했던 ‘공(功)’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과연 그 공을 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체적인 한국철학사상의 정립이 향한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안호상의 철학이 오늘,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어쩌면 ‘국가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의 필요성일지도 모른다. 한국철학의 여러 인물들 중 1950년대와 60년대에 활동한 이들 중에서 국가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이들을 찾기는 힘들다. 박종홍이 그러했고, 김계숙과 최재희 역시 그러했다. 다시 질문이 주어진다. ‘오늘 우리들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기고자: 박민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헤겔철학을 중심으로 한 서양철학수용사와 관련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본 분과에서 여러 동학들과 함께 한국(근)현대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한국현대철학사, 한반도사상사 및 지성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블로그진 ‘길 위의 우리철학’은 한국현대철학을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한국현대철학분과’에서 만든다. ‘길’은 과거로부터의 역사이기도 하고, 오늘의 삶이기도 하고, 미래로 열린 희망이기도 하다. 그 위에 서서 우리는 언제나 어느 길이 더 나은 길인지, 바른 길인지 생각하고 선택한다. 그렇게 ‘길’은 지향志向이기도 하고, 그래서 철학이기도 하다. 한국현대철학분과는 앞으로 월 2회 블로그진을 통해 우리철학이 서 있었던 길, 우리철학이 만들었던 길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1. 광장에 서다 – 촛불의 승리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종언 [길 위의 우리 철학] -1 : 박영미
  2. 대통령 탄핵, 그 후 – 박은식(朴殷植)의 개혁론, 독립운동, 임시정부 [길 위의 우리 철학] – 2 : 이지
  3. 송곡의 길가에서 최시형을 만나다 [길 위의 우리 철학] –3 : 구태환
  4. 붉은 얼굴의 경계인(境界人), 신남철 [길 위의 우리 철학] – 4 : 이병태
  5. 어린이를 노래하는 방정환을 만나다[길 위의 우리 철학] – 5 : 김세리

고독 [피켓2030]

고독

 

201778일 촬영

MODEL 이나연

PHOTO 신영빈

 

 

 

#1. 체념

나연 : 생의 마지막 순간, 끝내 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다움을 눈에 담으며 떠날 것인가 아니면 절망과 혐오 속에서 눈감을 것인가. 지금의 나로서는 어떠한 것도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것을 떠올리며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영빈 ;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 모습 나조차 불안해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 임재범 <비상> 中

 

 


#2. 이면

나연 : 사람들은 나를 보며 태어났을 때부터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하는 자들의 무지한 착각일 뿐이다. 나는 여태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영빈 :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면 비로소 집중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평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지나치던 흔해빠진 모습도, 빛이 비춰지고 그림자가 드리우자 그 이면을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3. 이면

나연 : 쓰레기 더미 옆에 있더라도 나는 악취를 맡을 수 없다. 내가 풍기는 고약한 냄새에 나의 코는 이미 마비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영빈 : 스스로 빛나길 원한다면 화려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와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의 낮은 곳에서 나의 이면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면

나연 : 너를 경멸하는 듯한 나의 시선도 결국 나를 향하는 것이었다.

 

영빈 : 그의 눈을 봐. 눈은 내면의 창이래. 눈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아.

 


 

 

#5. 이면

나연 : 사라지는 연기를 보며 나는 언제쯤 이곳에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없어질 수 있을지 생각한다. 죽기 전에도 내가 이곳을 떠나면 슬퍼할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우습다.

 

영빈 : 가면을 벗어던지는 순간, 어떤 시선으로부터도 억압되지 않는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그의 이면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6. 고독

나연 : 나는 그들에 의해 그리고 나에 의해 가공된 조화의 삶을 살았을 뿐이었다. 내게는 쾌락도, 변화도, 쇠퇴도 허락되지 않았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날 끼워맞춘 틀 속에서 말라 비틀어 죽는 것.

 

영빈 : 온통 ‘나’에게만 집중하던 생활이 서서히 주변으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할 때. 사소한 것들마저 기억에 담고 싶을 만큼 만족스럽거나, 사소한 것들만큼 부질없이 느껴지는 삶에 한탄하거나.

[안내] 영화 <길> 공동체 상영 9월30일 토 3시

 

안녕하십니까? 한철연 학술 1부 입니다. 

9월에 한철연 공동체 영화 상영을 안내합니다.

한국 사회의 주요 적폐 중 하나가 사학 재단의 각종 비민주적 행태, 비리 문제입니다. 

우리 한철연 공동체 회원 다수가 대학 교육에 몸담고 있는 만큼 사학 재단 문제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이슈라 할 것입니다. 

이에 사학 민주화 투쟁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길>>을 상영하고자 합니다.

<<길>>은 오랜 세월 사학 재단의 횡포로 몸살을 알아온 상지대 40년 사학 민주화 투쟁사를 다룬 다큐입니다. 

한국 사학 재단이 안고 있는 각종 문제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7월 지병으로 별세하신 故박종필 감독과 함께 이 영화를 만든 박주환 조감독과의 토론의 자리가 이어집니다. 

회원 여러분과 가족, 친구를 초대합니다. 

 

– 한국 철학 사상 연구회 2017년 9월 월례회 공지 

일시 : 9월 30일(토), 오후 3시

장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의실 

내용: <<상지대 사학 민주화 투쟁 40년의 기록 – 길>> 상영 및 관람 후 박주환 조감독과의 토론

비용: 회원, 비회원 모두 3000원

(잘 아시다시피 한철연은 순수 학술 단체로 재정상 문제로 전액을 후원하지 못함을 양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아래 언론 보도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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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사학민주화 투쟁 40년의 기록-길>>

비대위-`다큐인’ 제작 나서 
내달 서울 이대역서 시사회

【원주】원주 상지대 사학분쟁 민주화 운동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된다.

상지대비상대책위원회는 다큐멘터리 제작집단 `다큐인’과 상지대 사학분쟁과 관련한 다큐 영화 `상지대 사학민주화 투쟁 40년의 기록-길’을 제작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다큐 영화 길은 40년간 상지대 사학분쟁에 대한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이야기를 상지대 구성원들의 인터뷰와 재연, 기록영상 등으로 그린다.

2002년 `장애인 이동권 투쟁 보고서-버스를 타자’를 연출했던 박종필씨가 프로듀서로 참가했고 뉴스타파 시사다큐멘터리 `목격자들’을 연출한 남태제씨가 연출을 맡았다.

텀블벅(Tumblbug) 인터넷 소셜 펀딩업체에서 3,000만원 후원을 목표로 한 달 동안 후원자를 모집했으며 지난 14일 최종 마감 결과 104% 초과 달성해 337명이 총 3,144만7,900원을 후원했다. 

영화는 내부시사를 통해 다음 달 12일 서울 이화여대역 앞 필름포럼 1관, 15일 오후 7시30분 원주영상미디어센터 모두극장에서 각각 시사회를 할 예정이다.

강원 일보- 김설영기자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오시는 길 : 2호선 합정역 2번출구, 도보10여분, 태복빌딩 3층

생활미신으로서 창조과학 [최종덕의 책과 리뷰] -17

최종덕(철학)의 종횡무진 책읽기
 

– 필자의 홈페이지(http://eyeofphilosophy.net)

 

생활미신으로서 창조과학

 

오늘의 서평 책 : 스티븐 로(윤경미 옮김),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 와이즈베리, 2011

                          Stephen Law, Believing Bullshit: How Not to Get Sucked into an Intellectual Black Hole, 2011

 

 

 

신비한 듯, 미지의 것에 대한 믿음을 빙자하여 어이없는 확신감을 갖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과 상식을 부정하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 관습적으로 믿어 왔던 것만을 믿을 뿐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습관에 의존하여 오도되고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 믿음을 우리는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확증편향의 자기함정을 형성한 사람들은 자기가 믿어 왔던 내용과 다른 사실과 지식 모두를 부정하거나 일부러 무력화시킨다.

 

온갖 고정관념과 타성들, 나아가 은폐와 음모에 빠지는 오도된 믿음들의 사례를 모아서 <확증편향>의 의미를 확실하게 보여준 책이 있었다. 이미 몇 년 전에 번역되어 나온 책이지만 온갖 비리와 몰상식이 횡행하는 오늘의 한국 현실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지금 다시 소개하게 되었다. 이 책은 영국의 대중철학 잡지 <Think>의 편집장인 스티븐 로가 쓰고 윤경미가 옮긴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이다. 이 책의 저자는 사실과 지식을 무력화시키는 확증편향의 함정을 ‘지식의 블랙홀’이라고 불렀다. 한국사회에서 확증편향을 행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소위 지식인이나 과학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 이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확증편향이다. 이들의 확증편향은 개인의 심리적 성향만으로 그치지 않고, 은폐와 기만 그리고 자가발전의 권위의식을 통해서 자기권력 형성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병증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그들의 은폐된 편향성을 거의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요즘 한국사회를 배회하는 수많은 확증편향 중에 단연 으뜸가는 것은 “창조과학”의 횡행이다. 이 책의 한 부분에서 창조과학의 배경이 되는 믿음체계로서 <젊은 지구 창조론>의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다. 젊은 지구창조론은 지구를 포함한 우주의 역사를 6,000년에서 7,000년 정도로 단정한다. 현대과학의 검증된 사실 가운데 하나로서 140억 년의 우주 나이와 47억년의 지구 나이는 단적으로 무시된다. 구약성서에 나온 대로 6천년의 지구 나이와 창세기에 쓰여진 6일 창조론에 기반한 교리의 믿음체계를 창조신앙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나 서평을 쓰는 필자는 이러한 기독교의 창조신앙에 대해 시비를 따지지 않으며 그럴 필요를 갖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창조신앙은 종교의 굳건한 믿음체계이고, 거꾸로 그런 믿음 체계를 통해 종교가 형성되었고 신앙이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신앙체계를 과학적 지식으로 둔갑시키려는 미신적 조작이다. 믿음을 지식으로 둔갑시키는 조작은 일종의 미신이며 주술이다. 불행히도 미신을 지식처럼 조작하는 주술전략이 한국 사회에 이미 크게 유포되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창조과학”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수많은 화석 증거들, 지구 지표면 전체에서 드러나는 지각판과 지질 단층의 증거들, 퇴적물의 증거들, 암석층의 분석증거들을 단 칼에 거부하고 비난하며, 새로운 억지 주장들을 내놓는다. 창조과학은 성서 문자로만 나타난 종교적 상황으로서 ‘대홍수 사건’(a religious appearance)을 마치 역사적 사실 같은 ‘대홍수 이론’(the flood theory)으로 만듬으로써,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며, 거짓 사실을 조직적으로 유포한다.(책 115쪽) 창조과학은 창조신앙과 다르게 이미 신앙의 체계에서 벗어나 지식과 과학의 영역까지를 지배하려 든다.

 

과학은 교리체계의 구성인 노아의 방주처럼 ‘대홍수 사건’의 종교를 거부할 필요가 없다. 노아의 방주는 신앙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노아의 방주에 태운 동물들 중에서 북극의 북극곰과 호주 대륙의 주머니쥐가 어떻게 같이 배를 탈 수 있었는지, 지구 90만종의 곤충을 어떻게 모았고 어떻게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태웠는지, 지구의 거대한 산맥들을 꽉 채울 정도로 엄청난 홍수량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그런 이야기 모두에 대하여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책 118쪽)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과학적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종교적 믿음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창조신앙을 과학으로 위장시키려는 창조과학자들은 거의 모든 과학적 증거와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고 변형시키거나 조작하려고 심혈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 정보국이라는 웹사이트에서는 공룡의 생명종의 역사까지 조작하거나 생물학의 기본인 암수 양성번식까지도 왜곡시킴으로써 건강한 기독교인까지 혼란에 빠트린다.(책 119쪽) “창조과학”이 과학적 사실을 끝까지 부정하고 거부하는 이유는 의외로 종교 밖에서 찾아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창조과학을 믿는 일부 창조 주술가들은 창조과학을 ‘도덕적 십자군 운동’으로 믿는다고 표현한다. 중세가 아닌 현대과학의 시대에서조차 창조과학은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를 부정하면서 동시에 진화생물학을 거부하고 소수자 평등주의마저 강하게 공격한다. 현대생명과학에서 진화론을 부정하면 창조신앙은 유전자공학에서부터 항생제 의약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생명공학기술에서 당장 손 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사람들에게 먹혀들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 억지논리, 편향된 믿음, 거짓에 대한 동참, 위약효과(placebo effect), 물신주의, 그럴듯함에 대한 기대감, 남들 따라 무조건 믿게 하는 집단동조의식, 기만에 대하여 기꺼이 세뇌당하고 싶어하는 감성유혹이 우리 행동성향 안에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티비에 등장하는 마술사는 그런 인간의 허점을 역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믿음의 권력자는 그런 허점을 통해 사람들을 현혹시켜 자신들만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한다. 특히 창조과학은 거창하고 그럴듯한 과학용어를 사용하여 믿음의 대상을 지식의 체계로 바꾼다.

 

창조과학은 자신의 사회적 병증을 자기합리화 시키고 있다. 자기합리화의 이유는 단순히 창조신앙으로 계몽하려는 순수 종교적 의지를 넘어서 있다. 창조과학을 표방하는 소위 지식인들은 겉으로는 창조신앙을 말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들의 지식권력을 지향한다. 여기서 지식권력이란 그들 개인의 확증편향을 집단의 확증편향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집단지식의 주도자로 되려는 데 있다. 창조과학과 같은 종류의 확증편향이 집단맹신주의로 되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창조과학 지식인 대부분이 한반도의 역사왜곡과 비리정치를 그럴듯하게 합리화시키려는 자기기만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이해로 그칠 일이 아니라, 우리는 이런 창조과학 류의 주술적 문맹을 경계해야 한다. 일부 창조과학자는 아주 손쉽게 혹은 기꺼이 일베 동조자에서 일베 지도자로 변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란 중인 박성진 교수 곧 물러갈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박성진 개인만이 아니라 잠재적 박성진이라는 한국의 반과학적 미신사회를 퇴거시켜야 한다. 그러면 데이타 조작하는 부정행위, 제자에게 갑질하기, 연구비만 따먹으려는 프로젝트 등의 연구부정행위는 자동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 나아가 실험실 연구는 열심히 하지만 일상에서는 중심잃은 비과학적 사고를 하는 무중력 상태의 ‘진공관 과학자’도 따라서 줄어들 것이다.

 

“난 그냥 알아”, “아니면 말구”, “내가 해봐서 다 아는데”, “니들은 여전히 낭만적이군”, “밀어붙이면 다되지 않겠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는데 웬 시비야”, “참고 기다리면 유토피아가 올거야”, “불신지옥”, “빨갱이들”의 단어들이 횡행하는 한국사회에서 “생활주술”과 “생활미신”이 판치고 있다. 창조과학이나 빨갱이론 등의 권력형 믿음들, 무임승차와 낙수효과 등의 공허한 믿음들, 환상과 가공이 실제를 지배하는 유토피아의 믿음들은 사실의 인식론과 자연의 과학을 주술과 미신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부터 주술을 떨쳐내야 하고, 위장된 미신을 과학과 구별해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이 책,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은 강하게 말하고 있다. 읽어볼 만하다.

 

 

 

 

섦 – 4분의 3 청춘 [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37

4분의 3 청춘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작은 집은

그렇게 문이 열린다.

 

끊어지지 않는 고통은

연민을 끊임없이 찾아

감정과 감정의

선과 선의

사이와 사이에

공간을 가르고

점점 점을 찍고

면을 채우고

색을 칠한다.

 

복잡한 선과 선은

내면을 관통하여

지루하게 수식을 만들고

부유하는 날개를 끊고

뚫리는 절벽에는

바람이 날리기도 한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남기기도 하고

하얀 얼굴을 내미는

작은 빛은 굵게, 진하게, 흐리게

드넓은 언덕과 언덕을 만들고

 

흩날리는 먹구름에

선을 깡충 뛰어넘어

하늘의 그려진

가시밭길 뒤늦은 청춘이

아슬아슬 걸린다.

 

낮으로 가는 밤길을 찾아

밤으로 가는 낮 길을 찾아

 

겨울의 문턱이 없는

작은 집은

그렇게 문이 닫힌다.

 

그렇게 시간의 흔적이

하나하나 새겨지고 있다.

 

2017. 8. 28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수사(修辭)[퍼농유]

6. 수사(修辭)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말했던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 언어론적 전회를 일군 천재적 철학자였다. 언어론적 전회란 의식이나 언어 자체의 의미를 묻기보다는 오히려 언어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기능으로 작용하는지를 묻는 언어 게임에 관한 문제이다.

 

 

그럴 때 언어란 사물의 지칭이나 지칭 대상 너머에 있는 실체의 표상이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 누가 어떻게 사용하고 교환하고 수용하는 수단이며 매개이다. 게임의 도구이다. 흔히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 혹은 화행 이론(話行理論, speech-act theory)이라는 것이다. 우린 그런 의미에서 언어의 세계 속에 살고 있으며 언어를 수단으로 행위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철학은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의 지성이 걸려 있는 마법에 대항하는 전투이다.

철학에 대한 정의로서 가장 공감하는 말이다. 철학은 미혹된 마법에 대항하고 깨어나도록 만드는 전투이다. 그 수단은 언어다. 그러나 마법에 걸리게 된 것도 언어 때문이 아닐까. 언어가 우리의 세계이고 한계라면 우리는 마법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난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마법에서 깨어나게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마법에서 깨어난 현실은 무엇일까. 마법에서 깨어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마법에서 깨어났다면 어쩌면 다시 마법을 걸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서 말이다. 삶은 마법적인 환상은 아니지만 환상도 필요로 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럴 때 철학이란 더불어 정치란 마법으로서 꿈을 심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꿈을 깨면서 동시에 꿈을 주는 것이다. 꿈을 깨면 현실이지만 꿈을 꾸면 현실이 바뀌기도 한다. 꿈을 꾸지 않을 때 우리의 현실은 메마른 사막이 된다. 말이란, 곧 언어란 나의 세계이다. 우리는 말을 나누며 언어의 세계 속에 사는 동물이다.

 

 

어떤 정치인은 이렇게 말했다.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이 한다. 이 말은 형식 논리로 본다면 모순을 담고 있다. 그것이 진리이고 옳은 말이라면 싸가지 없이 들리지 않아야 한다. 옳은 말은 옳게 들려야 한다. 근데 왜 싸가지 없게 들리는 것일까.

말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미묘한 어투와 뉘앙스와 타이밍도 문제였겠지만 상대는 누구이며 그 상대에게 어떤 언어와 어떤 방식으로 말할 것이며 상대는 어떻게 수용할까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修辭)에 관한 문제다. 마법에 관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주역 건괘(乾卦)의 구삼(九三)효 「문언전(文言傳)」에는 이런 말이 있다.

군자는 덕을 증진하고 업적을 만든다. 진실과 신뢰가 덕을 증진시키는 근원이고 말을 닦아 진정성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업적을 만드는 근원이다.(君子, 進德修業, 忠信, 所以進德也, 修辭立其誠, 所以居業也.)”

‘수사’란 말은 ‘말을 닦아 진정성을 세우는 것’이라고 번역한 ‘수사입기성(修辭立其誠)’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수사’란 자신의 진정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필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사회정치적 영역에서 자신의 능력과 진정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영향력과 효용적 결과를 만든다.

수사적 기술이란 내면적 진정성을 드러내어 신뢰와 영향력을 형성할 뿐 아니라 효용적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을 말한다. 남송 시대 주자(朱子)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비록 진실과 신뢰의 마음이 있다고 해도 말을 닦아 그 진정성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정치적인 입지를 가질 수 없다.”(雖有忠信之心, 然非修辭立誠則無以居之.)

진리는 권력을 필요로 한다. 진리는 수사를 요구한다. 사회 활동가였던 제이슨 델 간디오(Jason Del Gandio)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책에서 혁명을 꿈꾸고 사회 변혁을 원하는 급진주의자들에게 수사를 공부도록 권하고 있다.

그는 수사를 노동으로 규정한다. 물질세계의 변혁을 위해서 노동이 필요하듯이 비물질적인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서도 노동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수사란 변혁을 위한 노동이다.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말하자면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의 지성이 걸려 있는 마법에 대항하는 전투”이기도 하며 동시에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서 세상에 마법을 거는 기술적 노동이기도 하다. 마법을 통해 세상은 새롭게 창조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인내와 전략이 필요한 섬세한 노동이다. 현실을 고려하고 오랜 시간의 누적적 과정을 거쳐서 젓갈을 곰삭히는 듯한 절제의 노력이 필요한 노동이다. 수사적 노동은 그래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전제한다.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듯이, 제이슨 델 간디오는 이렇게 선언한다. “만국의 수사가여, 단결하라!”

 

청춘이 뭐길래 [피켓2030]

이나연(건국대 철학과)

 

편집자님께 청춘의 입장에서 글을 써주면 좋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청춘, 청춘이라. 도대체 청춘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묻는 글들은 하나같이 사전에 써져있는 정의를 말하고 가기에 나도 그래보겠다. 청춘의 뜻은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란다. 아, 좋다. 날마다 봄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따사로운 노란 빛의 햇살과 사방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예쁜 물감으로 칠해놓은 듯한 꽃들의 인사. 청춘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은 사전적 정의에서 청춘에 해당하는 10대와 20대인 우리들의 삶도 그렇게 밝고 푸를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나는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우리들이 청춘이라며, 청춘은 무엇이든지 도전할 수 있고 그렇기에 아름다운 것이라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들먹인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쓰러져도, 다쳐도, 고통스러워도 청춘이니 다시 일어나라고 종용한다. 이제 그런 말을 듣는 것조차 지겹다. 지겨워서 그냥 귀를 막고 퍼질러 누워있고 싶다. 그런 말을 듣느라고 내 뇌 용량을 쓰느니 시끄러운 락을 들으며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드는 게 낫다. 어른들의 착각과 달리 나는 10대 후반과 20대의 나이가 어떻게 보면 가장 지칠 수 있는 때가 아닌가 싶다. 만일 푸른색이 우리 나이 대를 대변한다면 피어나는 새싹과 같아서 푸른 것이 아닌 여기저기 멍이 들어 푸른 것 때문은 아닐까.

 

 

요새는 예전과 달리 초중고라는 정규교육이 필수가 되었다. 이렇게 필수가 되고 나니, 그걸 원치 않는 이들이, 맞지 않는 이들이 이를 거부할 힘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억압적인 학교의 시스템을 인지하는 이들도 ‘제대로’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받는 차별을 떠올리며 두려워한다. 주입식 교육에 흥미가 없는 이들도 그것이 무서워 학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여유롭게 사교육을 받을 여건이 되지 않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공부를 해야 한다. 이처럼 원치 않는 체제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면 어디에 있든 지옥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마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1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란다. 그것도 9년째 말이다. 2015년 자살한 청소년은 모두 708명, 암으로 사망한 경우보다 2.5배 많다고 한다. 사회는 우리가 그런 가시밭길을 지나가고 있는 걸 알면서도 그 길만이 옳다고 하며, 그렇기에 싫어도 버텨야 한다며 그곳에 우리를 밀어 넣고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10대가 발에 피를 흘리며 걸어가고 있다. 그래도 공부해놓으면 쓸 데가 있다는, 꿈을 이루려면 일단 대학은 가야한다는 협박을 들으며 말이다. 그래서 멍 하나가 들었다.

 

 

자, 학교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기 전 이제 수능을 볼 차례이다. 제정신으로 살아남기 힘든 이곳에서 자살하지 않은 약 60만 명의 10대가 수능을 치른다. 그 60만 명은 시험 한 번으로 내 인생이 결정될 것이란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시험장에 들어간다. 그런데 아뿔싸, 시험을 망쳐버렸다. 그래도 돈 있는 10대는 사정이 낫다. 부모님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재수학원에 들어가면 된다. 돈 없는 10대에게는 선택권도 없다. 재수는 사치다. 나온 점수에 맞춰 그나마 나은 대학 중에 ‘골라’ 가야 한다. 그러나 이때 그들의 선택은 결코 선택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대학을 가더라도 집안에 돈이 없으면 하고 싶은 공부도 못한다. 비싼 등록금을 내주는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나보다는 집안을 위한 학과와 학교를 택한다. 즉, 그들은 취업이 잘 되는 과 혹은 빨리 졸업해서 사회에 나갈 수 있는 전문대를 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와중에 등록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한다. 사장 비위 맞추랴 손님 비위 맞추랴, 하루하루 스스로에게 말 걸 시간조차 없이 흘러간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타인에게 맞추는 삶을 살 때, 우리는 또 아플 수밖에 없다. 갈 곳 없는 원망만이 내 머릿속을 떠돌다가 결국 나에게 도착한다. ‘나는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난 거지. 왜 우리 부모님은 돈이 없지. 아니야. 이렇게 대학까지 보내주셨는데 내가 이런 생각하면 안 되지. 내가 참 못났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결국 개인이 자기혐오를 하게끔 만든다. 이때 멍 하나가 더 늘어났다.

 

 

여차저차 이제 대학을 졸업했다. 약 1000만원에서 3000만원이 넘는 빚을 떠안고 우리는 사회로 나왔다. 그 빚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의 능력과 재능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도 없었는데 회사들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에 대해 써내라고 한다. 그때서야 우리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본다. ‘내가 지금까지 뭐했지. 별로 한 게 없다. 아니, 한 것은 많지만 그게 회사가 좋아할 것인지는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억지로 지원서 작성을 끝낸다. 지원 동기는 당연히 돈을 벌어 빚을 갚기 위해서인데 잘 알지도 못하는 회사를 찬양하는 내용을 써야 한다. 다 쓰고 보니 내가 써내려간 자기소개서인데도 내 이야기 같지가 않다. 그래도 그나마 날 뽑을 것 같은 회사에 일단 지원서를 넣어본다. 결과는 불합격이다. 남들만큼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돌아오는 결과는 불합격뿐이다. 있지도 않았던 자존감이 이제는 마이너스가 되어버린다. 친구들이 싫은 소리를 하며 직장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조차 버겁다. 누구는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데 배부른 소리하는 것처럼만 느껴진다. 이젠 그런 친구들도 싫고 은근히 눈치를 주는 부모님도 싫고 가끔 볼 때마다 잔소리를 하는 친척들도 다 싫다. 무엇보다도 모든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내가 제일 싫다. 또 그렇게 멍이 든다.

이게 바로 어른들이 말하는 청춘의 실제 삶이다. 세상에 이리저리 치여 멍으로 얼룩져서 푸른 삶이다. 청춘이 쓰는 글이란 이런 것이다. 더 이상 청춘에게 환상을 갖지 말라. 당신들이 볼 땐, 밟히고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청춘이니 이런 대접을 받아도 괜찮은가? 아니, 절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이렇게 아파서는 안 된다. 그리고 청춘이라고 해서 이런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청춘이니 괜찮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하는 사회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개인의 역량 부족 따위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라면 어쩔 수 없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사회를 바꾸자고 말하지 못하겠다면 아무 말 말고 가만히 있기만 해라. 그럼 반이라도 가니깐.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힘들다고 외치는 청춘들의 목소리를 죽이려 하지 말라. 청춘들에게 ‘그래도’ 살아야지, 라고 하는 것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최소한 ‘살 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청춘이란 단어는 그저 사전 속에만 존재하는 죽어있는 단어에 불과할 것이다.

 

 

순치[퍼농유]

5. 순치(馴致)

 

길들임이란 좋은 것이기도 하며 또 사악한 것이기도 하다. 어느 것이나 반면은 있다. 어린왕자가 여우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을 때 여우가 말하려는 것은 사랑이었다. 그것은 사이가 좋아진다는 것이고 익숙해진다는 것이며 떨어져 지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길들여지기를 원한다. 날 길들여줘. 날 사랑해줘. 나에게 익숙한 사람이 되어줘. 그것이 편하고 안정된 것이다. 길들임을 좀 어려운 말로 하면 순치(馴致)이다. 이 말은 <주역> 곤(坤)괘 초효 「상전」에 나온다.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르니, 음(陰)이 처음 응결한 것이다. 그 도(道)를 따라 점차적으로 이르러서(순치) 단단한 얼음이 된 것이다.”(象曰, 履霜堅冰, 陰始凝也, 馴致其道, 至堅冰也.)

여기서 순치는 서리가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얼음이 되는 과정을 말한다. 많은 유학자들은 순치라는 용어를 자연적 원리와 순서에 따라서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사용해 왔다. 배움이던 사람과의 관계이던 다스림이던 모든 영역은 순치해야만 했다.

송대 성리학자인 정이천은 그래서 “도로써 순치해야지 강압적인 폭력으로 해서는 안 된다.”(蓋以道馴致, 不以暴爲之也.)는 말을 한다. 순치란 자연적 원리와 순서에 따라서 길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배움도 사랑도 정치도 강압적인 폭력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와 순서에 따라 점차적으로 길들이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질 때 의미를 얻는다. 이 자연의 원리와 순서를 무시하고 고원한 이상을 꿈꾼다는 것은 자기기만적 폭력이다.

 

 

그러나 순치의 어원적 의미는 좀 섬뜩하다. 순(馴)이란 길들이는 것이지만 정확히 말을 길들인다는 의미이다.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에는 “말은 먼저 길들인 뒤에 양마(良馬)를 따진다.”(馬先馴而後求良)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잘 달리는 야생마일지라도 좋은 말일 수 없다. 먼저 잘 길들인 뒤에 순치시킨 뒤에 좋은 말이 된다. 양마(良馬)이다.

그렇다면 사람도 길들인 뒤에야 양순(良順)하고 선량(善良)한 사람이 된다. 양순하고 선량한 사람은 자연적인 자질과 품성이 아니라 길들여진 뒤에 따질 수 있는 인위적 결과일 뿐이다. 순치되고 길들여질 때 선량하고 양순한 사람이 된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쇠로 만든 우리’(Iron Cages)이라는 비유를 들면서 관료제의 문제점을 분석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은 사회가 약속하는 미래에 대한 보상과 희망 때문에 고정된 제도 속에 스스로를 속박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관료제의 문제다. 순치되는 것이다. 근대 이후 자본과 국가는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순치시키지 않는다. 생리(生理)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길들이는 것이다. 길들여진 우리는 관료제 사회를 편안하고 안정되게 생각한다. 결국 길들여진 사람들은 스스로 순치되기를 원한다. 날 사랑해줘! 제발! 익숙하고 편안하고 안정되게 말들어줘! <장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연못에 사는 꿩은 열 걸음 만에 한 입 쪼아 먹으며, 백 걸음 만에 한 모금 마시지만 우리에 갇혀 길들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살테지만 새의 본성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澤雉十步一啄, 百步一食, 不蘄畜乎樊中. 神雖王, 不善也.)

우리는 ‘우리’에 갇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구시대를 마감하는 이때 구태의연한 관료제 우리에서 벗어나야할 때이다. 이제 우리에서 벗어나 야생의 자신을 찾아야 할 터이다. 순치되지 않은 야생마의 근성을 회복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sallymann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우리’를 원하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함께 우리가 되고 싶다. 야생의 근성을 잃지 않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우리를 세워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를 길들여줄 사랑을 원한다. 사랑은 우리이기도 하다.

섦 – 유랑 [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36

유랑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가느다란 선위에 걸린

마음을 따라

공간과 공간 사이를 유랑한다.

소금 사막에도 있고

산토리니에도 있고

노르웨이 숲에도 있고

흐릿한 구름사이로

파란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파랑색도 있고

회색도 있고

내 사랑도 있었다.

잃어버린 토끼도 있고

잊어버린 강아지도 있고

잊어버린 작은 강아지풀도 있고

잃어버린 청개구리도 있고

언제나 있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있는 것이 많다.

 

그렇게 보송보송

작은 기억이 조각조각

아슬아슬 걸려 있다.

 

2016.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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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노트

 

털이 보송보송한 벌레가 아니지만 벌레 같은 현상을 보며 어렸을 때 추억이 생각납니다. 자연은 모두 내 것이었고 나의 세상이었습니다. 한때는 그랬습니다. 길을 쉼 없이 갈길 가는 털북숭이 벌레를 들여다보며 깔깔 웃고, 군집을 이룬 까만 개미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들을 보며 즐거워하며 작고 작은이들의 신기한 우주를 만나 행복을 느꼈습니다. 넓은 들판에 파란 하늘, 흐린 하늘, 바람, 나무, 벼, 수많은 풀벌레들, 작고 귀여운 청개구리들, 산토끼, 강아지, 빨간 고추잠자리, 푸릇한 작은 잎들, 밤, 살구, 모과, 감나무가 있는 그 시간의 조각을 추억하면서 내게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많음을 잊고 살고, 추억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 안에는 많은 것들이 살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있었음을 문득 깨닫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은 더 크고 넓게 자랐습니다. 나의 삶은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만 같은 큰 꿈도 생겼습니다. 그곳에는 산토리니도 있고 그곳에는 노르웨이도 있고 그곳에는 큰 호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공간에 현재의 공간에 머물러 있는 그들을 불러 행복한 조각조각들의 향기를 맡고 보고 만져보고 들어보는 유랑을 떠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