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상반기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신입회원 교육 프로그램 안내

안녕하세요? 한철연 교육부에서 알립니다.

한철연 교육부에서는 <2019년 상반기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신입회원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아래의 프로그램 진행 방식과 대상자 안내문을 확인하시고,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1. 일시 : 2019년 1월 12일 ~ 2월 16일 매주 토요일 오후 3:00~5:00

회차

일시 담당 주제
1

1월 12일

한철연 연구협력위

랑시에르와 평등의 정치

2

1월 19일

헤겔분과

헤겔과 낭만주의

3

1월 26일

한국현대철학분과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의 우리 철학

4

2월 09일

정치철학분과

스피노자와 정치

5 2월 16일 여성과철학분과

철학과 여성주의철학의 과제들

  1. 방식

– 한철연 연구협력위 기획 강좌 + 4개 분과 주제별 세미나 (부분 수강 불가)

–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자는 한철연 정회원 자격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부여함.

– 내부 사정에 따라 일정과 주제에는 변동이 있을 수 있음.

 

  1. 대상 : 학부 3~4학년 및 대학원생 (철학을 토대로 연구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

 

  1. 장소 :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태복빌딩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세미나실

 

  1. 수강료 : 무료

 

  1. 신청 및 문의 : kb-940@hanmail.net(교육부장 김종곤) / 02-332-4301

플라톤의 『국가』 강해 ⑯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4-5(341a~ 342e) : 소크라테스, 기술 일반의 특성을 토대로 트라쉬마코스를 비판하다.

(전 시간에 이어 계속)

 

* 전 시간 342a-b의 내용은 341d에서 “그 각각의 기술에도 그 기술이 최대한 완벽하게 되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이익이 있나요?”라는 소크라테스의 물음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을 담고 있다. 이 부분은 엄밀론에 입각하여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해 기술 자체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엄밀한 의미의 기술 자체’를 나타내는 아래와 같은 표현들 즉 ‘그 자체’αὐτὴ, ‘온전한ὅλος 것’. “틀림없는 것ὀρθὴ οὖσα, ‘아무런 훼손도 없는 것’ἀβλαβὴς, ‘순수한 것’ἀκέραιός이란 말들은 완전자로서의 형상eidos 개념을 연상시킨다. 물론 이 부분을 곧바로 형상에 대한 언급으로 연결시키기에 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시각에서 이 부분을 음미해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1권이 단순히 전기 대화편의 성격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본격적으로 형상론이 제기되는 중기 대화편의 성격을 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곳에서 언급된 기술 자체를 형상론적인 시각에서 간략하게 한 번 음미해보기로 하자.

우선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의술 그 자체’αὐτὴ ἡ ἰατρική는 현실의 기술이 아니고 오히려 현실의 기술들이 기술로서 규정되는 근거이자 본질 즉 자기 동일자로서의 기술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런 결함poneria이나 과오hamartia가 없는, 탁월성aretē이 이미 구현되어 있는 완전자이며 그에 따라 어떤 것에 의존하거나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자체적이고도kata auto 순수하며akeraios 자족적인autarkēs 존재이다. 이에 반해 다만 그것을 분유(分有)metechein하고 있는 현실의 개별 기술들은 그 분유에 근거하여 비록 그 기술로는 불리어지지만 결함을 안고 있어 늘 다른 기술에 상호 의존하면서 끝없이aperaton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다. 요컨대 그것들은 원천적으로 자체 존재로서의 규정성peras을 획득하지 못한 채 가변적 계기들 내지 측면들만 가진 무규정자apeiron로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기술임’과 ‘기술 아님’ 즉 반대적인 것tounantion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존재 쪽 극단치인 동일성tauton에서부터 무(無) 쪽 극단치인 타자성heteron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ananchē 속에 던져져 있는 것들이다. 이것은 이러한 기술들 내부에 존재 쪽 운동성과 무(無) 쪽 운동성이 생성과 소멸, 형성과 해체를 두고 무한 투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완전자로서 기술 자체는 이미 본질로서 기술 대상의 이익을 미리 살피고skepsomenes 제공하여ekporiusēs 최대한 완벽하게 해주는 성질 내지 탁월성ἀρετῆ을 구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질은 개별 기술들 내부에도 분유되어 있다. 이것은 개별 기술들 각각 내부에 자신의 탁월성을 향해 다가 갈 수 있는 능력dynamis이 가능성으로 이미 내재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문제는 개별 기술들이 그러한 내적 가능성을 어떻게 자각하고 있느냐이다. 철학이 요구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철학은 존재 쪽 운동성으로서 영혼psychē의 힘을 강화시키는 기술이자 앎이다. 요컨대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자신 안에 앎의 능력이자 견인력으로서 참된 영혼이 자리함을 깨닫고 자체존재로서의 형상eidos에 대한 앎ἐπιστήμη을 변증술dialektikē을 통해 획득하여 개인의 정의로서 그 영혼의 탁월성을 구현해내고 동시에 나라의 정의로서 타자의 영혼의 탁월성을 구현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과 나라 모두 행복eudaimonia해지는 것이다. 철학자왕은 다만 그 철학의 공부와 정치적 실천의 극단에 서 있는 하나의 본paradeigma이자 지표인 것이다.

 

[342c]

*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언급을 토대로 의술이나 마술(馬術)ἱππικὴ 등 그 어떤 기술도 기술이 아닌 그 ‘기술이 관여하는 대상에’ἐκείνῳ οὗ τέχνη ἐστίν 이익이 되는 것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트라쉬마코스는 그 말에 동의를 표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이어서 기술들은 그것들이 관여하는 대상을 ‘관리하고 지배한다’고 말하자 마뜩치는 않지만 마지못해 동의한다.

* 트라쉬마코스는 소크라테스가 ‘기술이 대상의 이익을 미리 생각하고 제공한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뭔가 미심쩍기는 했지만 소크라테스가 예시하고 있는 기술이 병을 고치는 의술 또는 안전한 항해를 담보하는 키잡이 기술이라는 점에서 일단 동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기술이 대상을 관리하고’ἄρχουσί 지배한다’κρατοῦσιν고 말하자 그제에서야 소크라테스의 기술에 대한 예시들이 통치술을 염두에 둔 것임을 직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의가 자신의 동의를 토대로 진행되어 온 이상 그 또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342d]

* 그런데 흥미롭게도 소크라테스는 별 다른 언급 없이 기술이라는 말 대신에 전문지식ἐπιστήμη(epistēmē)이란 말을 꺼내들어 ‘그 어떤 전문지식도 더 강한자의 편익을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더 약한 자이며 제 관리하는 자의 이익을 생각하며σκοπεῖ 지시한다ἐπιτάττει’고 말한다. 그러자 트라쉬마코스는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기술이 결국 통치술임을 확인하고 마침내 대항을 시도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앞에서(341c) ‘엄밀한 의미의 의사나 키잡이를 이야기하면서 기술의 대상을 ’관리한다‘, ’통솔한다‘라는 말을 이미 사용했고 그 말에 트라쉬마코스도 동의했음을 환기시킨다.

 

[342e]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키잡이와 통솔자는 자신에게 이익이 아니라 선원이자 통솔을 받는 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미리 생각하고 지시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 이에 트라쉬마코스는 또 할 수 없이 동의하고 만다. 결국 엄밀한 의미의 기술이 통치술임이 드러난 이후에 전개된 소크라테스와 트라쉬마코스의 막판 줄다리기도 이렇게 소크라테스의 의도대로 마무리된다.

* 마침내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은 논의를 토대로 트라쉬마코스 주장에 반대되는 결론을 내놓는다. 즉 ‘통치를 맡은 자는 자신이 통치자인 한 καθ᾽ ὅσον ἄρχων ἐστίν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통치를 받는 쪽 그리고 자신이 일해 주게 되는 쪽에τὸ τῷ ἀρχομένῳ καὶ ᾧ ἂν αὐτὸς δημιουργῇ, 이익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한다’는 것이다.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마치 쐐기라도 박듯이 “그(통치자)가 말하는 모든 것도, 그가 행하는 모든 것도 그 쪽(시민)을 염두에 두고서 그 쪽에 이익이 되고 적절한 것을 염두에 두고서 말하고 행하오”라는 말로 이 부분에 대한 논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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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밀한 의미의 기술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문답에 대해 몇 가지 음미해보기로 하자.

 

1) ‘통치자는 자신이 통치자인 한’καθ᾽ ὅσον ἄρχων ἐστίν 이라는 말(342e)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통치자’를 나타내기 위해서 반복해서 사용되는 표현이다.(cf. 341a) 이 말은 현실 통치자가 따라야 할 규범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직분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통치자가 통치자인 한에서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직분, 본분 이외에 다른 것을 수행할 수도 그리해서도 안 되며 만약 그 본분에서 벗어날 경우 그는 이미 통치자도 전문가도 지식인도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회적 직분들 혹은 개인의 영혼 내부에 있는 기능들 또한 자기의 고유한 직분과 기능을 온전하게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직분상의 고유성이 무너지면 그 개인은 물론 공동체도 결코 온전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다. 소크라테스의 엄밀론은 통치자를 비롯한 전문가의 직능상의 고유성을 규정함과 동시에 다양한 사회적 직분 내지 직능들의 적도(適度to metrion)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2) * 소크라테스는 기술이 하는 일들을 표현하면서 다양한 말들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만 해도 ‘미리 생각한다’σκεψομένης(342a-b, 342c, 342e) ‘제공한다’ἐκποριούσης(341d-e, 342a) ‘관리한다’ἄρχουσί(342c-d), ‘지배한다’κρατοῦσιν (342c), ‘지시한다’ἐπιτάττει(342d-e) 등 여러 가지 표현을 쓰고 있다. 이 말들은 사실 일반 기술 관련한 일에 대한 표현으로는 다소 어색한 말들이다. ‘관리한다’, ‘지배한다’, ‘지시한다’라는 말이 대상에 대한 기술의 우위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특히 ‘지배한다’와 ‘지시한다’의 원어 κρατέω와 ἐπιτάττω가 강제와 명령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 말들은 플라톤에게서 기술과 대상 간의 권력관계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자아낸다. 플라톤이 말하는 통치술은 대상인 시민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일종의 섬기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궁금증은 일반 기술에 대한 예시를 발판으로 통치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소크라테스의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임이 밝혀지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러한 표현들은 여전히 플라톤의 통치술과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 그래서였을까? 플라톤은 흥미롭게도 그와 같은 강제와 우위를 함축하는 말들과는 꽤나 다른 그 반대를 함축하는 말들 즉 ‘미리 생각한다’σκεψομένης(‘관심과 사려를 다해 살핀다’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제공한다’ἐκποριούσης, ‘그 쪽을 염두에 둔다’πρὸς ἐκεῖνο βλέπων는 말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 말들은 통치술이 대상인 시민을 지배하고 강제하는 위계상 우위의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을 위해 철저히 봉사하고 섬기는 기술임을 새삼 확인해준다. 그러나 이 또한 다른 궁금증을 자아낸다. 뭔가 앞서 사용한 표현들과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염두에 둔다’βλέπω는 표현은 타자에 대한 진지하고도 다함이 없는 관심과 걱정을 담은 시선(視線)으로서 하이데거(M. Heidegger)의 ‘돌봄과 염려’(Sorge) 개념까지 연상케 한다. 그렇다면 플라톤이 통치술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 가지고 있는 위와 같은 이중성 내지 상충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말들을 서로 상충되지 않고 서로 어울리는 말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플라톤이 말하는 통치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방법 밖에 없어 보인다. 즉 플라톤이 말하는 통치술과 관련한 관리와 지배, 지시라는 말들을 시민에 대한 섬김과 봉사, 이익을 담보하기 위한 정치적 집행 차원의 말들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그 말들을 기술의 대상으로서 시민의 이익을 위한 통치자의 적극성과 능동성을 보여주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다.

* 결국 플라톤이 말하는 통치술의 성격은 실제로 그처럼 반대적인 요소를 엮는 방식으로 비로소 우리에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플라톤의 통치술은 그저 대상을 바라만 보고 있지 않다. 플라톤에게 있어 통치술은 수차례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듯이 적극적인 관리와 지배의 기술인 동시에 대상에게 이익을 온전하게 제공하는 실행 능력이자 앎으로서 그 자체로 이미 선성(善性)τὸ ἀγαθὸν과 이타성을 본질적 속성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아무리 엄격한 의미에서의 통치 기술을 말하는 것이라 해도 과연 현실에서 부분적이나마 그러한 능력에 준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부모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부모의 행동 양태를 들여다보면 분명 그러한 능력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식들을 가진 부모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돌보며 밤낮으로 늘 자식을 염두에 두고 있고, 자식의 이익이 되는 것을 미리 살피고 생각하며 자식을 위해 늘 퍼줄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부모는 이이들을 또 단속도 하고 지시도 하고 명령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에게서 통치자와 시민의 관계는 일상에서 부모와 지식간의 관계와 매우 유사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부모는 그러한 일들을 본능에 따라 자기 자식들에게 행하지만 플라톤의 통치자는 그것을 철저히 이성에 따라 타자들 즉 시민들 모두에게 행한다는 점이다. 부모의 ‘사적인 가정(家政)’은 본능에 기반하고 있지만 플라톤의 ‘공적인 국정(國政)’은 기술 즉 전문지식과 선의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적 사유와 실천의 힘을 생물학적 본능 수준의 힘조차 능가하는 힘으로 고양코자 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발상은 근본적이고도 혁명적이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가히 이성과 도덕의 화신으로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 이런 점에서도 많은 비평가들은 플라톤의 정치이론을 그 자체로 실현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이상으로 평가하고 그의 관념성을 비판한다. 특히나 앞서와 같은 플라톤 통치술의 특성들은 플라톤의 정치이론이 동양의 봉건적 정치철학의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폄하되는 주된 이유이다. 실제로 그의 통치술은 군왕과 백성의 관계를 부모 자식 사이로 여기는 동양의 성왕론 내지 왕도정치론과도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한마디로 부성주의(paternalism)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플라톤의 통치술은 대상인 시민들을 정치적 주체가 아닌 수동적 팔로우어로 설정하고 있고 정치이념에 있어 전체주의는 물론 철저히 전문가 주의, 소수 엘리트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비판은 현대 민주주의의 이념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타당한 비판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현대 민주주의는 선한 정치에 대한 믿음 보다는 악한 통치에 대한 우려와 의심에서 출발하고 있고, 그에 따라 비록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는 해당 전문가의 역할이 존중될 지라도 유독 정치 영역에서만은 전문가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치 지도자로서 자신이 정치의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경계와 의심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나라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소수 엘리트 집단들의 독단과 아집 그리고 그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20세기의 비극적 정치 현실의 주범이자 근본 원인이었음을 고려하면 그 비판이 내포하는 플라톤 정치이론에 대한 혐오와 폄하 또한 충분히 이해가 된다.

* 그러나 플라톤의 통치자가 갖는 철두철미할 정도의 반성적 지성과 선의에 입각한 고도의 이타성과, 히틀러와 스탈린을 비롯한 20세기 독재자들의 무반성적 독단과 정치적 야욕을, 전체주의와 소수 엘리트들의 지배라는 잣대로 단순 등치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순수하게 텍스트에 기초해서 바라보면 그의 통치술은 시민들 각자의 고유한 본성과 그에 수반하는 다양한 욕망들을 현실 조건으로 전제하고 그것들의 조화와 그것을 통한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비해, 현대 자유주의 정치이론은 근대 이후 자본주의적 인간관이 유포한 인간 본성의 획일성 즉 모든 사람들의 욕망이 이기적이라는 전제를 두고 그들의 배타적 갈등을 다수의 견해를 기준으로 조정하고 타협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욕망이 화폐로 환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극히 획일적이며 물신주의적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간 욕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플라톤이 다원주의적이고 화폐라는 물신이 최고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는 현대 자유주의가 오히려 전체주의적이다. 하기는 플라톤이 전제하고 있는 인간 본성 자체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면서, 그 획일적인 이기적 본성의 효율적인 구현을 위한 수단적 욕망의 다양성만을 인정하는 입장에서는 마치 외눈박이처럼 그렇게 비판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한 점에서도 현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이야말로 근대 자본주의가 그 욕망을 증폭시키는 기재로 고착된 이래 패배주의적이고 무반성적인 현실 안주의 정치철학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플라톤의 통치기술에 대한 사유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또 다른 측면 즉 자연법의 이념과 현대 민주주의가 과제로 삼고 있는 정치적 주체들의 지성화와 정치권력의 도덕성 그리고 인간의 본성 그 자체의 개별적 고유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철학적 기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소크라테스가 논박을 마무리하며 언급한 말 즉 “그(통치자)가 말하는 모든 것도, 그가 행하는 모든 것도 그 쪽(시민)을 염두에 두고서 그 쪽에 이익이 되고 적절한 것을 염두에 두고서 말하고 행하오” καὶ πρὸς ἐκεῖνο βλέπων καὶ τὸ ἐκείνῳ συμφέρον καὶ πρέπον, καὶ λέγει ἃ λέγει καὶ ποιεῖ ἃ ποιεῖ ἅπαντα.라는 말은 트라쉬마코스는 물론 오늘날의 마키아벨리스트들의 주장까지 완전히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의 통치 모럴의 표상이자, 정치 지도자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반드시 가슴에 안고 있어야 할, 통치자의 도덕성과 언행일치를 담은 신성한 강령이 아닐 수 없다. 플라톤의 정치이론의 핵심이 다름 아닌 정치권력의 지성화에 있고 현대 민주주의 또한 그것을 핵심과제로 안고 있는 한 오히려 현대 민주주의는 플라톤을 반성의 시금석으로 새롭게 뒤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4) 342d에서 소크라테스가 대항을 시도하는 트라쉬마코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앞서 엄밀한 뜻의 의사는 ‘몸을 관리하는 자’σωμάτων ἄρχων임을 합의했다고 말을 하고 트라쉬마코스도 그에 동의하고 있는데 앞서 합의한 부분(341c)과 비교해보면 합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앞에서 합의한 내용은 엄밀한 뜻의 의사는 ‘환자들을 돌보는 자’ἢ τῶν καμνόντων θεραπευτής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말 역어로만 보면 두 말의 차이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된 ‘돌보는 자’θεραπευτής가 그리스어 원래 의미로는 지배자나 관리자와 관계된 말이 아니라 오히려 ‘신들을 섬기는 사람’, ‘궁정 신하’, ‘시중꾼’의 의미를 갖는 말로서 위계 상 앞의 말과 반대의 성격을 갖는 말임을 고려하면, 일단 합의 내용의 불일치는 차치하고서라도 왜 플라톤이 그 말을 별다른 언급 없이 같은 말로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증이 드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내용상 다른 의미를 갖는 그 말을 위계에 민감한 트라쉬마코스가 왜 같은 말로 받아들였는지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칠 수도 있는 이러한 소소한 표현들과 텍스트의 맥락들 모두 우리가 앞에서 살폈듯이 플라톤 자신 이미 시민에 대한 통치와 지배, 헌신과 섬김을 하나의 통일적 의미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5)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별 다른 설명 없이 기술을 전문지식이라는 말로 대체시키고 있다. 이것은 기술이라는 실천적 활동이 기본적으로 앎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플라톤이 왜 이 국면에서 굳이 기술 대신 그 말을 꺼내든 것인지 의문을 품어 볼 수 있다. 전문 지식의 원어 ἐπιστήμη(epistēmē)가 ‘실재에 대한 앎’, ‘참된 앎’의 뜻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폈듯이 그의 엄밀론이 형상론의 함축도 갖고 있음을 전제하면 아마도 그것은 장차 다루게 될 ‘실재에 관한 것’을 여기에서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4-6(343a~344c) : 트라쉬마코스 현실론으로 돌아와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다.

 

[343a]

* 결국 소크라테스와 트라쉬마코스가 동의한 엄밀론에 따라 논의를 진행한 결과 ‘정의에 대한 정의가 정반대로 바뀌었음’ὅτι ὁ τοῦ δικαίου λόγος εἰς τοὐναντίον περιειστήκει이 모두에게 명백하게καταφανὲς 드러난다. 그러자 트라쉬마코스는 크게 당황해하며 답변 대신 소크라테스를 마치 코를 흘리면서도 보모τίτθη의 돌봄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으로 비유하면서 그 때문에 돌보는 목동ποιμήν과 돌봄을 받는 양πρόβατον의 관계조차 모르는 사람이라 힐난한다.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보살핌과 피보살핌의 관계를 알지 못하고, 설사 알고 있다 해도 보모나 목자 같은 보살피는 자들이 대상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보살핀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말한다.

*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목동과 양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를 묻고 그에 대해 트라쉬마코스는 자신의 모든 공력을 다 쏟아 붓는 기세로 아주 길게 자기 생각을 토해 낸다. 트라쉬마코스는 애초 현실론에 입각하여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고 주장했다가 비판에 부딪치자 소크라테스와 함께 엄밀론의 입장에서 논의를 진행하다가 그것이 또 비판에 부딪치자 다시 현실론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 또한 임기응변적으로 바뀌는 그의 태도의 비일관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용적으로 이 부분(343b~344c)은 트라쉬마코스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으로서 소크라테스가 앞으로 <국가> 전체의 논의를 통해 넘어서야할 높고 거대한 악의 봉우리가 된다.

 

[343b]

* 트라쉬마코스는 소크라테스가 목동들이 양이나 소를 보살피는 목적이 주인이나 자신의 이익이 아닌 다른 것에 있다고 믿고 있으며, 게다가 참된 뜻에 있어 통치자들이 목자가 양을 대할 때와는 뭔가 다르게 자신의 이익이 아닌 다른 것을 위해 밤낮으로διὰ νυκτὸς καὶ ἡμέρας 생각한다고 믿고 있다고 비난한다. 양치기가 양을 보살피는 것은 실제로는 양도 주인도 아닌 자기의 이익 때문인 것처럼, 통치자도 피지배자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통치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 여기서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참된 뜻에 있어 통치자들’οἳ ὡς ἀληθῶς ἄρχουσιν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엄밀한 의미의 통치자’와 다른 ‘있는 그대로의 현실 통치자들(real rulers)’을 말한다. 그는 자신도 동의한 ‘엄밀한 의미의 통치자’를 스스로 저버리게 되자 그런 식으로 교묘하게 말을 바꾸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가 말하는 ‘참’τἀληθῆ의 기준은 그 자신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 소크라테스와 정반대이다. 그가 이어서 펼치는 긴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살피기로 한다.

 

* 참고로 342a-b 부분에 대한 박종현 역본은 지나치게 직역에 가까워 쉽게 읽히지가 않는데다가 일부는 불분명하다. 그래서 이 부분을 학당 초고를 토대로 필자가 다시 고쳐서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342a> “그럼 이건 어떤가요? 의술 자체αὐτὴ ἡ ἰατρική는 결함이 있는가ἐστιν πονηρά,요? 아니면 다른 어떤 기술이건 어떤 훌륭함ἀρετῆ을 추가로 필요로 하는 것ὅτι προσδεῖταί τινος ἀρετῆς인가요? 이를테면 눈은 시력을 필요로 하고 귀는 청력을 필요로 하며, 그런 까닭에διὰ ταῦτα 그것들에게는 그것들의 이익τὸ συμφέρον을 살펴주고 제공해줄σκεψομένης τε καὶ ἐκποριούσης 어떤 기술이 필요하듯이, 기술 자체에도 어떤 결함이 내재해있어서ἐν αὐτῇ τῇ τέχνῃ ἔνι τις πονηρία 각각의 기술에는 그것에 이익이 되는 것을 살펴줄 다른ἄλλης 기술이 필요한 것이며, 살펴주는 그 기술에는 다시 그런 종류의 다른 기술이 필요해서 이런 사태가 끝이 없게ἀπέραντον 되는 것인가요? <b> 아니면 각각의 기술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가 이익을 살피나요?ἢ αὐτὴ αὑτῇ τὸ συμφέρον σκέψεται; 그도 아니면 각각의 기술은 자신의 결함을 보충하고ἐπὶ τὴν αὑτῆς πονηρίαν 자신의 이익을 살펴줄 어떤 기술을 더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인가요?οὔτε προσδεῖται; 그 기술이 자기 자신이든 다른 기술이든οὔτε αὑτῆς οὔτε ἄλλης 말이에요. 그리고 그 이유가 기술은 어떤 것이든 결함도 없고 잘못도 없기 때문이고οὔτε γὰρ πονηρία οὔτε ἁμαρτία 또 어떤 기술도 그것이 대상으로 삼는 것 이외의 다른 것에 이익이 되는 걸 찾는 게ζητεῖν 적합하지 않기 때문οὔτε γὰρ προσήκει인가요? 그런가 하면 각각의 기술은, 그것이 엄밀하고 완전하게 그것 그대로의 것인 한에서ἕωσπερ ἂν ᾖ ἑκάστη ἀκριβὴς ὅλη ἥπερ ἐστίν, 제대로 된 것ἐστιν ὀρθὴ οὖσα,으로서 훼손이나 섞임이 없기ἀβλαβὴς καὶ ἀκέραιός 때문인가요? 엄밀한 뜻으로τῷ ἀκριβεῖ λόγῳ 그것을 살펴 보세요.σκόπει. 사태가 이런가요 안 그런가요?οὕτως ἢ ἄλλως ἔχει;”

‘너의 청춘의 장밋빛’을 위해 자기를 인정하고, 위계질서에 대해 겸손하지 않으며 ‘대수롭지 않다’고 무관심을 선언하라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너의 청춘의 장밋빛을 위해 자기를 인정하고,

위계질서에 대해 겸손하지 않으며 대수롭지 않다고 무관심을 선언하라

 

박종성(한철연 회원)

 

  1. 자기부정에서 자기인정으로, 다시 자기의지와 나다움으로 위계질서에 맞서라

 

우리는 앞서 유일자라는 존재론을 통해서, 하이데거에 앞서 유일자가 ‘염려’하는 것은 ‘고유한 자아’이라는 점을 이해하였다. 그런데 고유한 자아는 피히테가 말하는 ‘절대적 자아’가 아니다. 그리고 고유한 자아를 염려하는 것은 내가 ‘나다움’을 나에게 마련해주는 것이며, 이는 해방과 구별되는 근원적인 자유인 자기해방이며, 곧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할 전권을 주는 것이라는 전권위임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자기를 벗어난 노력과 염려는 자기폐지(Selbstauflösung)라고 하였다.(39) 자기 자신을 염려하는 않는 자는 자기폐지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감정이 일어나는가? 그의 말을 들어 보자.

 

나는 나에게[Mir] 불쾌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나이가 들고 나에게 욕지기가 나서, 나는 나에게 어떤 공포이며, 혹은 나는 나에게 결코 충분하지 않고 결코 나에게 만족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으로부터 자기폐지(Selbstauflösung) 혹은 자기비판이 일어난다.(201)

 

자기폐지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는 노예근성, 헌신(Dienst), 자기부정(Selbstverleugnung)(182)인데, 이러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자기에게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은 원래 자유로운 존재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181)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자기부정에서 자기인정으로, 자기만족으로 나아가는 것이 또한 나다움이고 자유이며, 자기해방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슈티르너는 자기폐지, 자기부정과 대립하여 자신의 의지, 자기의지를 주장한다. 그에게 자기부정의 가장 완전한 자기부정은 자신의 의지, 자기의지의 지배이다. 사유(Denken)보다 의지(Will)를 중시하는 관념론 정신의 활동적 측면에 대한 강조는 “나는 의지(의욕)한다. 고로 존재한다”(Ich wille, also bin Ich)라고 말한 셸링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노예 신분의 멍에, 통치권의 구속, 귀족들(Aristokratie)과 군주들의 속박, 욕망(Begierden)과 열정(Leidenschaften)의 지배.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지(Willens), 자기의지(Eigenwillen)의 지배 자체는 확실히 자유가 아닌 것으로서 가장 완전한 자기부정(Selbstverleugnung[self-denial])이다. 더구나 자기결정(Selbstbestimmung)에 의한, 자기 자신에 의한 자유…에 대한 갈망은 우리에게 나다움(Eigenheit)을 요구한다.(172)

 

이렇게 볼 때, 자기의지는 자기결정이며 이러한 자유는 우리에게 ‘나다움’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자기부정은 자신의 사용이 아님(Uneigennützigkeit)과 같은 의미이다(228) 이렇게 보면 자기인정은 자신의 사용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용은 자기의지이다. 여기서 우리는 슈티르너가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슈티르너 이후에 니체 또한 인간을 “이성과 육체 그리고 힘에의 의지(Der Wille zur Macht)의 총체”로 이해하고 이러한 “총체적 존재(Die Gesamtheit)에 대해서만 우리는 우리 ‘자신’(Das Selbst) 혹은 나 ‘자신’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런 존재를 니체는 ‘신체’라고 부른다.”(백승영, 『철학, 죽음을 말하다』, 164) 다시 슈티르너로 돌아와 보면, 그는 이러한 자기의지의 자유가 나다움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다움은 자기가 무엇을 할 자격, 권리, 전권을 자신에게 주는 것, 곧 ‘자기 전권위임’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자신의 자아를 부인하는(verleug) 사람만이, ‘자기부정’(Selbstverleugnung)을 연습하는 사람만이”(220) “참, 인류 등등과 같은, 모든 더 높은 본질은 우리보다 상위에(über) 있는 어떤 본질(Wesen)”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40). 슈티르너는 이러한 점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유일자의 염려를 상기하도록 한다. “네가 매 순간에 존재하듯이, 그렇게 너는 너의 창조물(Geschöpf)로 존재하고, 그리고 바로 이러한 “창조물”에서 너는 너 자신을, 곧 창조자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40) 슈티르너의 이러한 주장 이후에 니체(1844-1900)는 위버멘쉬(Übermensch)를 인간의 삶의 목적으로 제시하는데, 그 내용은 “항상 자신을 넘어서고 극복하는(über-sich-hinaus-gehen, sich-überwinden), 자기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는(sich-schaffen) 삶을 영위하는 인간이다. 따라서 결코 고정될 수 없는 존재이며, 현 상태의 유지(erhalten)가 아니라 지속적인 상승(steigen)으로서의 변화를 경험하는 존재이다.”(백승영, 『철학, 죽음을 말하다』, 165)

그런데 니체와 유사하게 슈티르너는 사람들이 참된 것을 신성한 것,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된 것을 넘어서지 않는다(über sie geht’s nicht hinaus)”(38)고 말한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하면, 유일자는 신성한 것, 곧 참된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적 자유주의’에 대해 “자유주의의 원리, 곧 인간을 넘어서지 않는(über das Prinzip des Liberalismus, den Menschen, nicht hinausgeht)”다고 비판한다(136). 그리고 그는 유일자를 표현하고 있는 “자기실현은 코뮨과 공산주의 범위를 넘어선다(hinausgreifen)”(303)고 주장한다. 자기실현은 유일자의 모습인데, 곧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자아의 자기(능력의) 실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그는 민중이 ‘민중의 존엄을 능가하는(über seine Majestät hinausragen) 사람들을 억압한다(237)고 비판하는데, 여기서 존엄을 능가하는 사람은 에고이스트이다. 또한 그는 사람들에게 “사회를 넘어서고 극복해야(über sie hinausgehen und sich erheben)”한다고 주장하고 있다(343). 또한 그는 에고이스트의 역사를 말하는데, “남아 있는 세계사에서 자신의 소유(Eigentum)를 소유한다는 것, 그것은 기독교의 역사를 넘어서는(geht übers Christliche hinaus) 것이다”(411). 말하자면 에고이스트, 곧 유일자, 나다움을 추구하는 자는 이러한 모든 추상적인 것, 자신 위에 있는 것으로 오인하는 것들을 넘어서고 능가하는 사람이다.

또한 슈티르너는 글의 첫 머리에서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하는데, 그곳에서 ‘생존투쟁’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면서 주인과 노예, 곧 승자는 주인이고 패자는 노예라고 하면서 “몽둥이가 사람을 이기거나(überwindet) 사람이 몽둥이를 제압하는가이다”(9)라고 비유적으로 말한다. 결국 그는 유일자를 통해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노예의 삶, 곧 몽둥이가 사람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의 삶, 곧 우리가 몽둥이를 극복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채찍의 권력(Macht)’에 대해 ‘우리들의 –반항(Trotz), 반항적인 용기(trotziger Mut)’를 “우리들의 부동심(不動心)(Ataraxie), 다시 말해 의연함, 대담성, 우리들의 거스르는 힘(Gegengewalt), 우세(Übermacht), 정복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면, 곧 “우리가 스스로 느껴서 깨닫는 것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전에 극복할 수 없었던(unüberwindlich)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더 보잘것없는 것으로 보인다.”(10) 또한 슈티르너는 ‘어떤 병적 욕망, 어떤 열정 등등으로 타락한 누군가’에 대해 ‘자기극복’(Selbstüberwindung)하길 원하고 있다(374). 나아가 슈티르너의 유일자의 모습은 니체의 창조적 인간의 모습과 닮아있다. 말하자면 “나는 나의 힘(Gewalt)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유일자(Einzigen)로 이해할 때, 나는 나의 힘의 소유자이다. 소유자 자신은 유일자 속에서 자신의 창조적인 무(Nichts)로 되돌아간다. 그는 자신의 창조적인 아무것도 아님(Nichts)에서 다시 태어난다.”(412) 니체의 위버멘쉬와 너무도 닮아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니체의 위버멘쉬는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너무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슈티르너의 유일자의 모습과 니체의 위버멘쉬는 너무나 닮아 있다. 아무튼 이렇듯 슈티르너는 ‘나다움’의 추구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위에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존재를 극복하고 넘어서는 것이며, 이러한 태도 중에 ‘겸손’을 통해 위계질서에 맞서고 궁극적으로 위계질서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답게 살기 위하여 겸손을 버리는 것이다.

 

  1. 위계질서에 겸손하지 말라

 

그의 ‘자아’에 대한 추적은 계속하여 ‘나다움’과 연결되어 사유된다. 그는 사회에 의해 나의 나다움(Eigenheit)을 제한하게 되는 경우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은 내가 동경하고, 숭배하고, 숭상하고, 존중하기 때문이고, 나의 단념(Resignation), 나의 자기부정(Selbstverleugnung), 나의 용기없음(Mutlosigkeit)”에 의해 만들어 진다고 주장한다(344). 단순히 단념, 자기부정, 용기없음이 아니라 모든 ‘나의’ 단념, ‘나의’ 자기부정, ‘나의’ 용기없음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강조는 필자). 이렇게 볼 때, 자기부정을 벗어나는 길은 자아의 결단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러한 ‘나다움’의 제한에는 겸손(Demut)이 존재하는 것이다. Demut는 독일어로 ‘국가, 피상적인 것’을 숭배하다(dienen)는 뜻이다.<Heinz Messinger und Der Langenscheidt-Redaktion, Langenscheidts Grosswörterbuch, Langenscheidts KG, Berlin und Mnchen, 1989, S.269, S.276.> 또한, 이 단어는 영어본에서는 humility이다. ‘humility’는 라틴어 ‘겸손’(humilitas)에서 유래한다. 이 명사는 형용사 평편한(humilis)과 관련된다. 이 단어는 겸손한, 낮은(humble)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humus로 이끌어낸 것인데, humus는 대지(earth), 땅(ground)이라는 뜻이다.< Dictionary.com Unabridged (v 1.1). Random House, Inc. 23 Sep 2008. Dictionary.com http://dictionary.reference.com/browse/humus.> 또한 라틴어 homo에서 비롯된 영어가 human이고 humble(겸손한, 천박한, 낮추다)도 같은 어원을 지고 있으므로 인간이 ‘대지에 머리를 숙여’ 인간의 ‘겸손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슈티르너는 겸손이 오히려 나다움을 위협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겸손은 또 다른 정신에 대한 복종, 위계질서(Hierarchie)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슈티르너에게 겸손(humilitas)은 추상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지칭한다. 인간(homo)는 국가, 종교, 신과 비교하여 대지(humus)이므로 천한 것, 낮은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는 마치 신을 숭배하듯이 추상적인 것을 숭배한다. 나아가 자기부정은 체념과 갈망의 냉각으로 이어진다.

 

이제 체념(Entsagung)의 습관은 너의 갈망(Verlangen)의 격정을 냉각시키고, 너의 청춘의 장밋빛은 -더없는 행복의 빈혈증 가운데서 퇴색되어간다.(67)

 

또한 그는 생각의 지배를 ‘무자비한 위계질서’(Hierarchie)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위계질서에 대한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원래 Hierarchy는 그리스어인 hierarkhia는 ‘성자의 지배’를 의미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의 조직 원칙을 이루었다. 교회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순위를 나누고, 또한 성직자는 교황을 최상위로 하여 주교, 사제, 부제의 단계가 정해져 있다. 또 세속의 국가도 중세에는 교회의 인가 아래에서만 그 통치권을 얻어, 제왕도 교황 아래의 한 단계에 속하였다. 이와 같이 교황을 정점으로 한 엄중한 상하의 단계적 조직을 하이어라키라고 한다.(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그것은 얼핏 보면 생각하지 않음이다. 그러나 생각에 지배는 내가 생각에 굴복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생각들이 자유롭다면 나는 생각들의 노예이기 때문에, 그 때 나는 생각들의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굴복의 이유는 자아의 굴복이기에 굴복에서 벗어나는 것도 ‘나’의 생각하지 않음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에 굴복하기 때문에, 생각들이 자유롭다면, 그렇다면 나는 생각들의 노예이고, 나는 생각들에 대한 어떤 강제력도 갖지 못하며 생각들에 의해 지배된다. 하지만 내가 생각을 가지려고 하고, 생각들로 꽉 차 있으려고 하지만, 동시에 나는 생각 없이 존재하려 하고, 생각의 자유 대신에 생각하지 않음으로 나를 지킨다.(388)

 

위 글을 다시 보면 생각들에 지배되는 상황, 곧 생각들의 노예인 경우는 내가 생각들에 대한 ‘강제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맑스가 노동의 소외, 강제노동을 비판한 것 또한 노동에 대한 통제가 노동자 자신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슈티르너는 그 비판의 길이 사유에 대한 것이므로 비판의 ‘결’ 또한 다른 것이다. 맑스는 노동의 소외에 대한 지양을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재편하여 극복하려고 하였다면, 슈티르너는 생각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고,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생각하지 않음은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신성모독과 연관하여 생각하면, 생각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생각의 지배에 대해 ‘아무것도 아님’을 선포하는 것이고 경멸하고 조롱하여 그것을 모독하는 것이다. 다시 아래의 글을 통해 위계질서의 의미를 이해해 보자.

 

그러나 생각과 이념의 힘, 이론과 원리(Theorien und Prinzipien)의 지배(Herrschaft), 정신의 위엄(Oberherrlichkeit), 요컨대 위계질서는 성직자들로서, 다시 말해 신학자, 철학자, 정치인, 속물, 자유주의자, 교사, 고용인, 부모, 아이, 부부, 프루동, 조르주 상드(George Sand), 블룬칠리(Bluntschli) 등등으로 있는 동안 지속된다 등등.(392-393)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위계질서는 “생각과 이념의 힘(Macht), 이론과 원리(Theorien und Prinzipien)의 지배(Herrschaft), 정신의 위엄(Oberherrlichkeit)”이다. 중요한 것은 생각과 이념의 ‘’, 이론과 원리의 ‘지배’, 정신의 ‘위엄’이 문제인 것이다. 다시 말해 생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 지배, 위엄으로 등장할 때가 문제인 것이다(강조는 필자). 곧 “위계질서는 생각의 지배(Gedankenherrschaft), 정신의 지배다! ”(79) 슈티르너와 동시대를 살면서 가혹하게 비판했던 맑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비판이란 무기는 물론 무기의 비판을 대체할 수 없고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을 통해 전복되어야 하며, 이론 또한 그것이 대중을 휘어잡을 때만 물질적 힘이 되기 때문이다.”(385) 이러한 주장은 물질적 힘(Gewalt)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면서, 이론이 대중과 결합되면 물질적 힘이 된다는 측면에서 슈티르너의 주장과 반쯤 공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맑스는 전적으로 반대할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결국, 슈티르너가 하고자 하는 주장을 ‘위계질서에 겸손하지 말라’라고 요약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겸손은 유일자인 나를 낮추고 추상적인 것들을 나보다 높게 만들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 나를 지배하게 만드는 것이고, 나에게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며, 자기결정과 자기의지의 결여로 자유, 자기해방, 자기 전권위임이라는 나다움을 차단하고 상실하게 만든다.

 

  1. 위계질서에 대수롭지 않다고 무관심을 선언하라

 

슈티르너는 위계질서와 관련하여 어린이를 예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삶에 필요한 것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저 정신들에 대해 무관심(gleichgültig)하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러한 것들에 대해 약하기 때문에, 정신들의 권력에 굴복”한다(79). 우리는 이 글에서 위계질서에 대한 태도를 읽을 수 있다. 그렇다! 무관심이다. 슈티르너는 스토아 철학의 아파테이아로 위계질서에 저항하고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의 공격에 무관심하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리고 그렇게 하여 자신들을 쇠약하게 만들지 않게 하도록 만들어서, 그 일을 무관심(Apathie)하게 성취하였다. 호라티우스는 “어떤 일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nil-admirari)는 유명한 말을 하고, 마찬가지로 그것에 의하여 다른 것들에 대한, 세계에 대한 무관심을 표명한다.(101)

 

닐 아드미라리(nil-admirari)는 호라티우스가 행복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며 <서간집>에 남긴 말이다. 무관심(Apathie:어원은 그리스어 páthos이다)은 모든 정념(情念)에서 해방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스토아 학파는 정념에 방해받지 않는 태연자약한 심경, 격정 등에 흔들리지 않는 초연한 마음의 경지를 이상으로 하였다. 슈티르너는 스토아 철학을 소환시킨다. 마치 데리다가 도래할 유령으로 맑스를 소환하듯이 말이다.

 

누구나 대상들(Objekten)과 어떤 관계를 맺는데, 정확히 말하면 누구나 그 대상들과 다른 태도를 취한다. –성경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sich gar nichts aus ihr macht) 사람에게 성경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액막이로 사용했던 사람에게 성경은 다만 가치를 가지고, 어떤 마법 수단(Zaubermittels)이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 같은 사람은 성경으로 놀이를 하고, 그에게 성경은 단지 어떤 장난감 등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376)

 

아이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대상들에 대한 태도에서 무관심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성경으로 놀이를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성경은 마법 수단도 아니고, 성경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대해 슈티르는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다. 대상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대상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sich gar nichts aus ihr macht) 사람”은 그 대상이 자신에게 가치가 없는 것이다. 니체는 위버멘쉬에 이르는 정신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낙타에서 사자를 거쳐 어린아이에 이르는 과정으로 비유된다. 낙타의 정신은 기존의 자명성에 복종하고 외경하는 정신의 상태이므로 부정할 힘의 부재이고, 사자의 정신은 기존의 자명성을 부정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을 획득한 상태이며, 어린아이의 정신은 창조력을 갖춘 정신, 곧 새로운 자명성을 창출할 가능성의 획득을 의미한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란 어린아이같은 사람이다. 곧 이 어떠한 구속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슈티르너는 우리가 보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곧 나다움을 추구하며 살기위해서는 자기부정에서 자기인정으로 삶의 태도를 전환시키고, 위계질서에 겸손하지 말아야 하며, 위계질서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아이 같은 사람이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신성한 것에 대한 헛됨을 부여하여 신성한 것이 자신을 지배하지 않고 자기의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한번 상기하자. “자신은 원래 자유로운 존재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181)

슈티르너의 말대로 ‘아이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에게 신성한 대상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아이 같은 사람이여! ‘너의 청춘의 장밋빛’을 위해 자기를 인정하고, 위계질서에 대해 겸손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고 무관심을 선언하라!

 

오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왔다.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의 마지막 노랫말이 떠오른다.

 

“어느 것도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Nothing really matters to me)

 

다시 슈티르너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All things are nothing to me.’

모든 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Ich hab’ mein’ Sach’ auf Nichts gestellt).

플라톤의 『국가』 강해 ⑮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4-4(340c~341a) : 트라쉬마코스, 통치자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다.

 

[340c]

* 폴레마르코스와 클레이토폰의 설전을 지켜보던 소크라테스는 강자의 이익이란 말을 클레이토폰처럼 이해하건 그냥 원래대로 이해하건, 그 둘은 ‘아무 것도 다를 게 없다οὐδέν διαφέρει’고 말한다. 그런 연 후 트라쉬마코스에게도 ‘강자의 이익’이란 말이 ‘강자가 자신에게 이익이라고 생각된 것’ τὸ τοῦ κρείττονος συμφέρον δοκοῦν εἶναι τῷ κρείττονι을 뜻하는 것인지를 묻는다.

* 아마도 트라쉬마코스는 클레이토폰의 제안을 듣고 속으로 “실수로 법을 잘못 제정했을 경우 법을 다시 고치면 되는데 웬 호들갑인가. 결국 다 강자의 이익이기는 마찬가지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최상급의 부정의한 자는 실수를 능히 바로잡을 수 있는 자임이 제2권에서 트라쉬마코스를 대변하는 글라우콘의 입을 통해서도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361a-b) 게다가 클레이토폰의 제안은 자기주장과 달리 ‘통치자에게 이익으로 생각된다는 것이지 꼭 이익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먼저 ‘그 둘은 아무 것도 다를 게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미 트라쉬마코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속내를 들켜버린 트라쉬마코스로서는 이제 그러한 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트라쉬마코스는 자신의 주장이 클레이토폰의 말처럼 ‘이익으로 생각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묻는 소크라테스에게 펄쩍 뛰며 ‘천만에요ἥκιστά, 실수를 저지른 사람을 제가 더 강한 자로 부를 것으로 생각하시나요?’라고 반문한다.

*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들이 어떤 점에서는 실수도 저지른다고 동의했을 때(339c) 그런 뜻으로 말한 걸로 생각했다”고 트라쉬마코스의 달라진 태도를 지적한다. 이 말 또한 트라쉬마코스의 심기를 건드린다.

 

[340d]

* 트라쉬마코스는 이 말에 더욱 자존심이 상해 소크라테스를 곡해자(궤변가)συκοφάντης라고 힐난하고, 이제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는 기세로 자신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엄밀한 의미의 통치자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소크라테스에게 확신이라도 심어주려는 듯이 길게 펼쳐 내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그를 자신이 원하는 논박의 장으로 더욱 한 발짝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 사실 트라쉬마코스는 앞서 폴레마르코스가 자기가 생각한 친구와 진짜 친구를 구별하지 않은 채 느슨하게 친구를 정의했다가 소크라테스에게 논박을 당하는 경우를 지켜보았다. 그랬던 터라 트라쉬마코스는 이제 폴레마르코스와 비슷한 처지에 몰리자, 금방 태도를 바꾸어 자기가 먼저 자신이 말한 통치자를 엄밀한 의미의 통치자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로서도 잘못된 정의관을 제대로 검토하려면 엄밀함이 수반되는 기술의 측면에서 논증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통치자를 들고 나온 트라쉬마코스를 굳이 막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려나 이러한 장면들 하나하나가 다큐멘터리가 아닌 플라톤의 창작물임을 고려하면 논박의 국면을 자신의 계획에 따라 긴장감 있고도 주도면밀하게 이끌어가는 플라톤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 여기서 곡해자의 원어는 συκοφάντης(sykophantēs)이다. sykophantēs는 원래 소송 관련 용어로서 상대방의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꾸며 소송을 거는 무고자(誣告者)를 나타내는 말이다. 어원적으로는 ‘무화과 열매(sykon)를 보이게 하는(phainō)자’라는 말이다. 무화과나무는 나뭇잎이 커서 흔들릴 때나 열매가 보인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 말은 부유층을 비롯한 소송 상대자를 협박하여 숨긴 재산을 뜯어내려는 무고자의 뜻도 갖게 되었다. 트라쉬마코스 같은 소피스트들이 무고자들과 결탁하여 그들의 무고행위를 돕거나 앞장섰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트라쉬마코스는 자신이 늘 일상으로 무고를 일삼다가 정작 수세에 몰리다보니 소크라테스의 정당한 지적도 무고로 여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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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무고자들의 횡포와 그것이 미친 아테네 말기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해서는 부르크하르트(J, Burckhardt)의 <그리스 문화사>(Grichische Kuturgeschichte, Darmstadt 1956) Vol. 1, s.225-233 참고. <e시대와 철학>, [시철북&아카데미], ‘그리스 문화 대탐험’ 제14강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서 그 일부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 부르크하르트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 중후반 아테네가 정치사회적으로 혼란과 분열에 처하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지자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무고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나라 또한 그들을 구제하기 힘들고 민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하층민들도 그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이에 따라 당시 아테네에는 아예 무고를 전문적으로 일삼는 직업도 생겨났고 반대로 돈 받고 무고를 막아주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이런 다툼과 소송이 많아질수록 소피스트들로선 나쁠 것이 없었다. 무고자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소송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소송 당사자들에게 은밀히 접근하여 금품을 대가로 상호협상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피스트들의 수요는 더욱 늘어났다. 그리고 정치가들 또한 민회의 지지를 얻어야 했으므로 수수방관하거나 거꾸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무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러한 무고자들의 횡포를 재제할 장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무고자가 자기가 고소한 소송에서 적어도 배심원의 5분의 1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했을 경우 벌금을 물게 했지만 그 정도의 배심원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설사 벌금을 물게 되었을 경우에도 그대로 버티기 일 수였다. 뤼시아스의 시대에 연체된 미납액이 1만 드라크마나 되었던 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배심원으로서 출석하고, 민회에도 얼굴을 내밀면서 여전히 모든 종류의 나랏일과 관련한 소송에 관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어떤 사람이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에는 끊임없이 이런 무고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노예를 1000명이나 갖고 있었던 니키아스도 일생동안 무고자를 두려워해 늘 공포에 떨고 있었다. 무고자에 시달리던 크리톤도 무고자를 막아 줄 사람을 돈으로 끌어들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충고를 받아들여 힘센 무뢰한을 고용하여 무고를 면했다고 한다.(<소크라테스 회상(Memor.)> II, 9, 1) 민주정을 뒤엎고 권력을 잡은 30인 참주들은 다수의 무고자들을 잡아 사형에 처했지만 그러나 무고자들은 민주정이 회복된 후에 다시 또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이를테면 테오크리네스(Theokrines)는 친 형제의 살해자들로부터 금품을 받고 소송을 철회하고 있다.(데모스테네스의 <테오크라테스 논박>(in Theocrin.)] p. 1331) 이처럼 죄가 없는 사람들에 대한 위협, 선동정치가들과 무고자들간의 거래와 타협 같은 악취 가득한 행태들은 공공 생활의 구석구석에까지 침투해 들어가 상당수의 양식 있는 시민들로 하여금 공공 생활로부터 남몰래 혹은 공공연하게 등을 돌리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최선의 안전책이었지만 그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추첨으로 어떤 직무에 선임된 사람이 최종 합격을 위한 심사(dokimasia)를 받아야할 경우 무고자는 즉시 그 개인의 운명에 개입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이권이 생기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무엇인가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일평생 그런 짓을 하며 삶을 영위했다. 그래서 이 무고자 집단은 끊임없이 사람들 곁에 서서 사람들로 하여금 무고에 대해 어떻게든 ‘입을 다물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착실한 사람들은 무고를 당하면 어떻게든 힘을 다해 소송에 휘말리지 않으려 했고, 무고자들 또한 소송까지는 끌고 가고 싶지 않아 했다. 왜냐하면 막상 소송에 말려 들어갔을 경우 소송 경비에서 기소인의 몫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적절히 사전에 타협을 해 소송을 중도에 취하하게 했을 경우에는 별도의 금품을 뜯어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령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신을 모독하였다는 협의로 고소를 당했는데 이것 또한 아마 그를 협박하여 돈을 뜯어낼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를 떠나 칼키스(에우보이아)로 피해 마케도니아의 보호를 받았는데 이 일과 관련하여 그는 안티파트로스(Antipatros)에게 보낸 편지에다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알키노오스(Alkinoos)의 정원과 같이 무화과가 우거진 마을에 머물고 싶지는 않다.”(무화과(sykon)는 무고자(sykophantēs)의 어원이 된 말로서 여기서는 무고자들을 비유한 말이다) (부르크하르트 <그리스 문화사> 1권 p.225-233. e시대와 철학, 그리스 문화 대탐험 14 참고)

* 그런데 아테네는 이런 종류의 무고자들을 조력자로 이용하여 정적을 제거하거나 제국의 이념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여 아테네에서는 어떠한 범죄이든 간에 일단은 국가에 대한 위협, 국가의 안보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의심되기 일 수였다. 그에 따라 군사독재 시절 우리나라의 경우 혹은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횡행하던 때처럼 소송의 성격이 정치적인 것으로 급변하는 경향이 자주 있었다. 게다가 아테네인들에게 제국은 거의 종교로까지 받들어졌던 터라 형벌 또한 가장 신성한 것을 훼손한 대가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테네의 형벌이 비정상적으로 엄중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벌금형과 시민권 박탈과 함께 형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던 사형이 전혀 중대하지도 않은 범죄에 대해서마저 국사범이라는 이유로 집행되는 일도 생겨났다. 게다가 소송 과정에서 피고발인에 대한 잔인한 고문이 아테네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었다.(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포키온(phokion) 35) 이러한 고문행위는 노예를 고문하던 주인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자 그 유사물이었으나 사실 그것은 페리클레스 이래 아테네가 견지하고 있었던 패권주의 이념과 그것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민중들 그리고 민중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던 선동적 정치가들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즉 투퀴디데스가 일찍이 지적했듯이 아테네는 대외적으로는 명실공한 폭압적 참주의 나라였고 대내적으로는 사리사욕과 권력욕에 눈이 먼 선동정치가들과 그들을 지지한 민중들의 나라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아테네 민회는 일단 자국의 국가주의적 이익과 관련된 사안의 경우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면 오늘날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자연법적 이념과 상관없이 그 어떤 것이든 어떤 수단이든 다 승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 결국 아테네는 전성기 시절에는 속국들의 공물로 특권을 누리는 제국이었고, 기원전 4세기에 들어오면서 부터는 무고자들이 횡행하고 권력자들과 민중들 모두 각자도생에 여념이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랜 동안 혼란과 내분으로 점철된 이른바 자유방임의 나라였다. 이런 이유로 아테네 민주정은 플라톤의 비판 이래 중우(衆愚) 정치로 폄하되기도 했고, 아테네 민중 역시 피착취 기층 민중이 아닌, 속국들의 민중들에 대한 착취자이자 자국의 노예들에 기생한 소수의 완전 시민들이었다는 점에서 사이비 민주정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아테네 민주정은 고대 국가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랜 동안 아테네의 중심적인 정치체제로 확고한 자리를 구축해오면서, 민중의 정치의식은 물론 개인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키고 각성케 하여, 전성기 아테네의 문화적 성취와 역동성의 기반이 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록 아테네 민중들이 오늘날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피착취 민중이자 국제주의적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도 아니고 노예들과 거류외인들을 포함하는 아테네인들 대다수도 아니었지만(이것은 아테네뿐만 아니라 고대 국가 모두에 해당된다), 동서양의 역사를 막론하고 민중이 그것도 거의 1세기에 걸쳐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해온 경우는 아테네 민주정이 유일무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룩한 문화적 성취 또한 인류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유산이 되었다는 점에서, 아테네 민주정은 그 자체로 오늘날 민주주의 이념의 고전적 전거이자 반성적 지표로서 여전히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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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쉬마코스는 소크라테스를 곡해자라고 힐난한 후, 자기가 말하는 통치자가 왜 실수하지 않는 통치자인지 설명하기 위해 의사ἰατρός. 계산 전문가λογιστής, 문법가γραμματιστής 등의 예를 끌어들인다.

 

[340e]

* 그는 어떠한 종류의 전문가도 엄밀한 뜻에 따라κατὰ τὸν ἀκριβῆ λόγον 말한다면 그가 전문가인 한에서는 결코 실수ἁμαρτία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게다가 실수를 하는 사람은 그의 지식이 모자라 실수를 하는 것이므로 그는 전문가가 아니다. 이처럼 그 어떤 통치자도 그가 통치자인 때에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트라쉬마코스는 자기가 앞서 통치자가 실수를 한다고 대답했던 것은 사람들이 보통 그런 말을 하는 그런 차원에서 한 것이라는 양해도 빼놓지 않고 덧붙인다.

 

4-5(341a~ 342e) : 소크라테스, 기술 일반의 특성을 토대로 트라쉬마코스를 비판하다.

 

[341a]

* 그러나 자기가 생각하는 통치자는 가장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앞에서 말한 대로 그가 통치자인 한에 있어서는καθ᾽ ὅσον ἄρχων ἐστίν 결코 실수하지 않는 자로서 자신을 위해 최선의 것을 제정하고 피지배자는 법 준수 의무에 따라 그것을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강자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강자의 이익을 이행하는 것’δίκαιον, τὸ τοῦ κρείττονος ποιεῖν συμφέρον이다.

*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엄밀한 의미의 통치자는 그 자신이 태도를 바꿈에 따라 나오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추궁에 트라쉬마코스가 내몰려 답을 한 것이라는 점에서 소크라테스 논박이 낳은 하나의 성과로서 내용적으로도 엄밀한 통치자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가 말한 내용에 대해 따로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트라쉬마코스가 소크라테스에게 곡해자(무고자)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만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무고 행위는 소크라테스가 가장 혐오하는 소피스트들이나 일삼는 일인데 그 짓을 자신이 했다고 트라쉬마코스가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을 두고 둘 사이에서 짧지만 날선 공방이 오간다. 두 사람이 구사하는 말들을 살펴보면 이들의 대화가 단순히 말의 곡해 차원의 것이 아니라 무고 행위라는 소송 차원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계획적으로ἐξ ἐπιβουλῆς 곱새기기 위해서 질문한 것으로 생각하시오.’라는 말은 무고자들이 무고할 때 철저히 사전 계획을 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고,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빤히 알고 있다εὖ οἶδα’ 라든지 ‘논의에 의해서 꺾을 수도 없다οὔτε βιάσασθαι τῷ λόγῳ δύναιο’는 말 또한 소송 관련 말투로서 무고가 트라쉬마코스 자신에게 얼마나 익숙한 일인지를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결코 자신을 꺾을 수 없다(승소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341b]

*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결코 자신은 곡해 따위는 하지 않으며 트라쉬마코스 당신이나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통치자의 의미를 확정하라고 요구한다. 이에 트라쉬마코스도 곱새겨보려면 곱새겨보라는 듯 자신 있는 말투로 자기가 말하는 통치자 역시 ‘가장 엄밀한 뜻으로 통치자τὸν τῷ ἀκριβεστάτῳ λόγῳ ἄρχοντα ὄντα.’인 자라고 답을 확언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자신은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서 소크라테스에게 논박을 당했던 폴레마르코스의 전철은 결코 밟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341c]

* 이러한 확언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사자의 수염을 깎는’ 정도로 ὥστε ξυρεῖν ἐπιχειρεῖν λέοντα 실성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또한 트라시마코스를 사자에 비유해 그의 자신감을 부추겨 새로운 논박의 장을 펼쳐 그의 주장을 제대로 검토하려는 소크라테스의 의도가 깔린 말이리라. ‘사자의 수염을 깎는 정도로’ὥστε ξυρεῖν ἐπιχειρεῖν λέοντα라는 말은 무모한 행동을 일컫는 그리스의 속담이다.

* 그리하여 이제 트라쉬마코스의 정의관에 대한 엄밀론에 입각한 새로운 검토가 시작된다.

검토를 위해 소크라테스는 첫 질문으로 트라쉬마코스가 전문가로서 예를 든 의사를 소재로 삼아 의사가 돈별이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환자를 돌보는 사람인지를 묻고 이어서 키잡이(선장κυβερνήτης)가 선원들의 통솔자인지 선원인지를 묻는다.

* 단도직입적으로 둘 사이의 주제인 통치자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의사나 키잡이 등 구체적인 관련 사례를 먼저 예시하는 방식은 소크라테스의 검토 방식에서 자주 눈에 띄는 방식이다. 특히 의술과 키잡이 기술은 통치 기술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기술이다.

[341d]

* 트라쉬마코스가 각각에 대한 환자를 돌보는 사람, 선원들의 통솔자라고 답을 하자,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불리는 까닭이 다름 아니라 의사와 선장 각각의 기술τέχνη에 있음을 밝히고 그 기술이란 의술의 경우 환자에게, 키잡이 기술의 경우 선원에게 ‘각각 이익이 되는 것을 찾아내고 제공하기 위한 것’ἐπὶ τῷ τὸ συμφέρον ἑκάστῳ ζητεῖν τε καὶ ἐκπορίζειν;임을 밝힌다. 그런 연후 ‘각각의 기술에도 그것이 최대한으로 완벽하게 되는 것 이외에 다른 이익이 되는 게 있는가요?’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ἑκάστῃ τῶν τεχνῶν ἔστιν τι συμφέρον ἄλλο ἢ ὅτι μάλιστα τελέαν εἶναι;

 

[341e]

* 여기서 ‘기술이란 기술의 대상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찾아내고 제공하기 위한 것 아니겠소?’라는 첫 번 째 물음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각각의 기술에도 그것이 최대한으로 완벽하게 되는 것 이외에 다른 이익이 되는 게 있는가요?’라는 두 번 째 물음은 무엇을 묻는지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 트라쉬마코스도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물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이해를 못하여 ‘무슨 뜻으로 그걸 물으시죠?’πῶς τοῦτο ἐρωτᾷς;라고 되묻는다. 그러면 ‘각각의 기술에도 그것이 최대한 완벽하게 되는 것이 이익’이란 무슨 말일까? 일단 이 말에서 ‘그것이’ 가리키는 것이 기술의 대상인지 기술인지 헷갈릴 수 있지만 원문은 그것이 기술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니까 그 말은 ‘각각의 기술에’ ‘도’까지 붙어 ‘각각의 기술에도’καὶ ἑκάστῃ τῶν τεχνῶν”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기술의 대상이 최대한 완벽하게 되는 것이 그 대상의 이익이듯이 각각의 기술도 최대한 완벽하게 되는 것이 그 기술의 이익’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선 소크라테스는 기술의 대상이 갖는 이익의 경우를 몸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즉 몸은 결함이 있기 때문에 몸의 존속을 위해 그 부족을 채우는 것이 이익이고 기술은 그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다고 말한다. 즉 몸은 기술 즉 의술에 의해 최대한 완벽하게 되는 것이 이익‘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 기술 즉 의술은 무엇에 의해 최대한 완벽하게 되어 그 기술의 이익이 되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뜻밖의 말을 마주한다.

 

[342a]

* 소크라테스의 말은 모두 질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논의의 편의상 그 말을 그의 의도에 따라 긍정문으로 풀어 설명해보자. 우선 소크라테스는 의술(기술)은 몸과 달리 그 의술 자체로αὐτὴ ἡ ἰατρική 결함πονηρά이 없으며 그래서 어떤 기술이건 훌륭한 상태ἀρετῆ를 결핍하고 있지 않다고 말을 한다. 우선 이 말부터 의문이 들 수 있다. 우리가 일상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모든 기술에는 부족한 점이 있고 그에 따라 그 기술 스스로의 결핍을 보완하여 기술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것이 그 기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기술은 트라쉬마코스와 엄밀한 의미의 통치자만을 가지고 논의하기로 한 그 연장선상에서 제시되고 있는 ‘기술 그 자체’로서 엄밀한 의미의 기술이다.

342b에서도 기술을 엄밀한 뜻으로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있고 342c에서는 이에 따라 ‘의술 그 자체’를 그냥 ‘의술’로 표현하고 있음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기술 즉 엄밀한 의미의 기술은 자기 기능에 결핍이 없으므로 결핍을 미리 생각할σκεψομένης 필요도 없고 제공해 줄ἐκποριούσης 도움도 없다. 만약 현실의 기술처럼 결핍이 있다면 그러한 기술은 그 기술의 이익을 살펴 줄 다른 기술이 필요하고 그 기술은 또 다른 기술을 필요로 하면서 그런 사태가 끝없이ἀπέραντος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기술들은 그 자체 뭔가로 한정될 수 없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기술이 아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기술은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지 스스로 미리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엄밀한 의미의 기술은 그 자체 아무런 결함πονηρία도 과오ἁμαρτία도 없고 온전하고ὅλος 틀림없고ὀρθός 훼손도 없고ἀβλαβὴς 순수한ἀκέραιός 것이기 때문이다.

 

[342b]

*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말은 앞서(341d) 그 자신이 한 말 즉 ‘그 각각의 기술에도 그 기술이 최대한 완벽하게 되는 것이 이익’이라는 말과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이미 기술은 결함이 없는 것 즉 이미 완벽하게 되어 있는 것이고 그래서 따로 살피고 제공할 이익도 없는 것인데 어떻게 최대한 완벽하게 되는 것이 그 기술의 이익이라는 것일까? 이 의문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기술에 관한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해소된다. 즉 소크라테스는 ‘그 어떤 기술에도 결함이나 과오란 전혀 없어서 기술로서는 그 기술이 관여하는 대상 이외의 다른 것에 이익τὸ συμφέρον이 되는 것을 찾는 것ζητεῖν은 합당치προσήκει 않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기술 그 자신은 이미 완벽하므로 자신이 아닌 그 기술이 관여하는 대상의 이익을 찾아 그 대상에게 제공하는 것이야 말로 그 기술이 최대한 완벽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342c]

*그러므로 의술의 경우 엄밀한 의미의 의술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걸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며 마술(馬術) 또한 말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생각하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은 완벽하여 필요로 하는 것이 없으므로 그 기술이 관여하는 대상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크라테스는 기술들은 그것들이 관계하는 대상을 ‘관리하고 지배한다’ἄρχουσί καὶ κρατοῦσιν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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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가 펼치는 기술에 관한 주장에서 그가 말하는 기술의 완벽성은 그 기술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기술인 한에 있어서 다시 말해 그 기술이 구비하고 있는 자신의 고유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한에서 갖는 그 기술의 완벽성이다. 즉 완벽성이 그 기술이 그 기술로 불리어지는 조건인 것이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기술이란 말 대신 기술자라는 말을 가지고 생각해보기로 하자. 이를테면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당 분야 기술자를 불렀는데 그가 만약 일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당신 기술자 맞아?’라고 비난하곤 한다. 그 기술에 무능함 내지 결함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이미 기술자가 아닌 것이다.

* 그런데 기술의 완벽성을 위와 같은 기술의 조건과 정의 차원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과 연관시켜 생각할 수도 있다. 일상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리 엄밀한 의미로 기술을 정의한다 해도 그 기술 자체는 보다 발전된 다른 형태의 기술로 발전할 여지가 있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구멍을 뚫는 기술에서 나무를 뚫는 것보다는 쇠를 뚫는 기술이 더 발전된 기술이고 계산 기술에서도 주판 기술보다는 전자계산 기술이 더 발전된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들은 같은 기술이 아니라 이미 다른 기술이다. 왜냐하면 그 기술이 구비하고 있는 기능 자체가 다를 뿐만 아니라 발전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기술 내부의 속성이 아니라 기술 외부에서 그 기술에 대한 기술 사용자의 관심과 평가를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자계산기가 주판보다 계산이 빨라도 그것은 이미 다른 기술이고, 설사 같은 기술이라 해도 전기가 없는 곳에서는 주판에 뒤지는 것이고 또 아무리 전동 드라이버 기술이 좋더라도 수동 드라이버를 쓰는 것이 보다 섬세한 작업을 위해 더 좋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플라톤이 말하는 엄밀한 의미의 기술의 완벽성은 기술의 조건이나 정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그 기술이 갖고 있는 고유 기능과 관련한 자체 기능상의 완벽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나무를 뚫는 기술(기술자)도, 쇠를 뚫는 기술(기술자)도 모두 각기 그 용도에 딱 맞는 일이 있고 그런 일에 있어서는 그 각각의 기술은 그 자체로 타 기술과 비교하여 부족함이 없는 최선을 제공하는 기술(기술자)인 것이다. 즉 모든 기술은 서로 다르고 기술의 우열이 있다면 같은 기술 내에서 이루어질 뿐, 다른 기술과의 관계에서 비교 우위는 그 자체로 성립하지 않는다. 기술은 각각 다른 기술과 구별되는 고유의 탁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술 사용자는 기술 각각의 고유성이 갖는 경계 내지 ‘한계’에 대한 앎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이에 대해 플라톤은 제2권에서 트라쉬마코스를 대변하는 글라우콘의 입을 통해 전문가는 자기 기술 수준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판별하는 능력이 있어 가능한 것들만 붙들고 불가능한 것은 내버려 두는 식으로 기술의 완벽성을 기한다고 말하고 있다. (360e-361a) 요컨대 엄밀한 의미에서의 기술자는 기술이 갖는 고유성 내지 내적 규정성(한계peras)을 아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자이다. 이런 점에서도 기술은 지식인 것이다. 이에 따라 이 기술 관련 논의는 곧바로 기술과 전문 지식 또는 기술자와 지식인의 가장 바람직한 쓰임새 내지 행위 기준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후에 어떤 대상에 대해 행위와 기능이 갖추어야 할 고유한 적합성의 의미를 갖는 적도(適度to metrion) 개념과도 연계되고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정의론과 관련하여 고유한 직분, 몫과도 연계되면서 소크라테스 사상의 주요특징 가운데 하나로 나타나게 된다.

* 그런데 왜 플라톤은 기술을 논의함에 있어 현실의 기술이 아닌 이러한 엄밀한 의미에서의 기술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일까? 이상의 논의만 보더라도 플라톤이 정의의 문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외도 없이 얼마나 엄격하게 다루려고 하는지가 실감나게 전해진다. 그야말로 숨이 막힐 정도로 그는 엄격주의와 완벽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당대의 혼란스런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동떨어진 잠꼬대 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러한 엄밀론의 배경에는 당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인식을 넘어서는 아테네 현실에 대한 플라톤 자신의 치열하고도 냉철한 비판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오히려 플라톤이 살던 당대의 시대 상황이 그것도 일부 시기가 아니라 거의 그의 전 생애동안 그야말로 극도의 혼란기였다는 사실은 그가 왜 이토록 엄격하게 흔들리지 않는 도덕과 정의의 기준을 세우려 했는지를 충분하게 웅변해 준다. 물론 격동기라고 해서 다 플라톤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그 혼란을 극복하려하기보다는 그 혼란을 시대의 자연스런 변화 또는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정당화하거나 그것에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상례이고 또 어떤 사악한 일부의 사람들은 그 혼란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플라톤은 결코 그러한 삶의 태도를 받아들일 수도 타협할 수도 없었다. 어떤 부조리 어떤 혼란 어떤 독단도 나라와 개인을 파멸로 이끄는 것인 한, 모두 이성의 빛 아래 낱낱이 폭로되어야 하고 최소한 정의와 이성이 우주와 자연, 나라와 개인의 본성을 관통하는 지고의 원리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참혹한 현실과 현존하는 시대의 모순과 무지에 맞서 목숨 바쳐 싸워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정의에 대한 사색과 논증은 정의를 처절하게 갈망하는 자에게 그 갈망하는 만큼 더욱 치열하고 엄격하게 수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정의에 관한 논증을 검토함에 있어 왜 우리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편에 서서 생각해야 하는지는 그가 내세우는 철학 정신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할 것이다. 설사 우리가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그것은 그들 입장의 강건함과 실천력을 보전하기 위한 대안 구축의 동기이자 발판으로서만 유효할 뿐이다. 입장의 순수함은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

* 이와 같은 기술 자체의 고유성에 관한 논의는 오늘날 기술의 가치중립성을 둘러싼 논란과도 연관이 있다. 오늘날 기술의 가치중립성을 강조하는 입장은 기술은 그야말로 기술이 가지고 있는 기능 차원에서 그 기술의 가치를 이야기해야지 그 이외의 가치판단을 개입시켜 그 기술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입장은 이곳에서 기술의 이익이란 기술 자신이 아닌 대상을 최대한 완벽하게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입장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술은 고대의 기술과 달리 기술개발에 엄청난 자본이 투여되므로 기술자체는 비록 자본과 무관하다 할지라도 그 기술의 쓰임새, 목적은 기술 대상의 이익이 아닌 자본 투자자의 이익에 큰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기술의 고유성과 가치는 자본 투자자들에 의해 창출되고 그들의 가치판단에 따라 기술의 완벽성이 평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기술의 가치중립성을 주장하는 것은 이미 주장하는 사람의 동기에 관계 없이 자본 투자자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 또한 플라톤의 기술에 관한 입장은 기술과 욕망에 관한 철학적 문제와도 관련된다. 플라톤에 의하면 기술은 그 기술의 대상이 갖는 결핍 혹은 문제를 해결하여 최선의 상태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결핍과 문제가 기술의 기원이다. 그러나 결핍과 문제는 원래부터 주어져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의 관계 하에서 주어진다. 오늘날 수많은 결핍이 숙명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에는 그것은 인간에게 결핍이거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욕망이 숙명을 넘어서는 순간 결핍이 생겨나고 기술이 발생한다. 이 말은 기술의 발전이 거듭될수록 그만큼 욕망 또한 다양해지고 증대하며 그만큼 수많은 결핍이 생산되고 증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 말은 결핍과 문제의 해소가 행복이고 결핍과 문제의 발생이 기술의 기원인 한에서는 기술의 발전이 곧 인간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된다. 다만 문제는 인간의 욕망은 숙명 안에 가두어지지 않고 늘 그것을 넘어서려한다는 점이다. 특히나 기술 경쟁을 통한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그 속도와 깊이, 크기와 종류에 비례해서 기하급수적으로 그 욕망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게다가 그 기술력을 자본이 뒷받침하는 한, 기술력의 배분 또한 자본의 크기에 비례하여 불공정하게 되고 양극화된다. 한도와 척도에 관한 플라톤의 논의는 이러한 무한 욕망, 무한 기술 경쟁의 시대인 현대사회의 정황과는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이고 낭만적이기 그지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이 주도하는 기술관은 이미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철학은 역사를 통해 인간의 무한 탐욕이 그 크기와 깊이를 더해갈수록 그것의 크기와 깊이 이상으로 그 모순을 혁파해내기 위한 비판을 끊임없이 수행해왔고 가히 시대착오로 불릴 만큼의 치열한 철학적 상상력과 도전 정신을 통해 그 극복의 근본 방향을 제시해왔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날만큼 과학기술과 욕망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 요구되는 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런 측면에서도 기술이 지향해야할 이익에 대한 성찰 즉 앎이자 도덕으로서의 기술에 대한 플라톤의 통찰은 오히려 과학 기술과 욕망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출발점이자 목표가 될 수 있다. 요컨대 과학 기술을 추동하는 욕망 이상으로 끊임없이 삶의 문제를 숙명이 아닌 비판과 지적 도전의 과제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인간의 철학적 욕망이 있는 한, 인류에게는 늘 새로운 미래가 열리게 될 것이다. ‘철학은 시대의 혼이자 시대 모순에 대한 반역’인 것이다.

*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이곳에서 펼치는 엄밀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정 부분 플라톤의 형상론적 시사를 포함하고 있다. 바로 뒤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기술을 전문적 지식ἐπιστήμη과 등치시키고 있는 것도 그러한 심증에 더욱 다가가게 만든다. 이 ἐπιστήμη(epistēmē)라는 말은 참된 실재로서 이데아에 대한 앎을 나타낼 때도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다시 논하기로 하자.

낸시 초도로우(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7. <모성의 재생산>, 낸시 초도로우(上)

 

김상애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부모parents’는 아버지와 어머니로 구성된다. 아버지는 아이의 남성 부모parent를, 어머니는 여성 부모parent를 의미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잉태와 출산의 과정 이후에도 다르게 지속된다. 다시 말해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단어는 단지 부모의 성별을 지시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특정한 역할까지 규정한다는 것이다. 특히 “누군가가 어머니이다 라고 말할 때는 누군가가 아버지이다 라고 말할 때와는 다른 어떤 의미가 덧붙여진다.” 낸시 초도로우(1944. 1. 20 – )<모성의 재생산>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왜 어머니는 여성인가?, 부모노릇의 모든 활동들을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이 왜 남성이 아닌가?”

낸시 초도로우 뿐 아니라, 많은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여성의 ‘돌봄’을 페미니즘의 중요한 문제로 다루었다. 돌봄의 역할이 주로 여성에게 할당되며, 돌봄은 여성화된 활동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여러 여성주의 윤리학자들은 자기 입법적인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도덕 주체를 가정하는 비관계적인 도덕 모델을 비판하고, ‘여성적’ 활동으로 간주되어 가치절하된 돌봄에 적절한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도덕적 패러다임을 전환시키고자 했다. 돌봄을 포함한 여성의 재생산 노동을 ‘노동’으로 규정하고, 이를 자본주의의 착취적 본성과 연결지어 분석하고자 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노력도 적지 않다. 초도로우는 이들과는 다르게, 어쩌면 조금 도전적인 관점으로 돌봄, 특히 어머니가 아이와의 관계에서 수행하는 돌봄에 접근한다. ”어머니 노릇”이 젠더를 재생산하는 핵심적인 장치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돌봄에 높은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거나 임금을 지급하는 등의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여성-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는 한 불평등한 젠더관계는 유지될 것이다.

 

  • ‘어머니’와 ‘어머니노릇’


어머니mother라는 단어는 어머니라 불리는 사람의 젠더, 섹슈얼리티, 가족구성, 가족 내 역할을 내포한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어머니라면, 대개 이성애자 여성이고, 아이가 있을 것이며, 아이에게 어머니로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다양한 수준에서 “여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고 질문하는 이론이라면, 이 문제의식에 어머니가 빠질 수 없다.

초도로우는 젠더재생산의 핵심이 ‘어머니’라는 명사가 아닌 동사로서 ‘어머니노릇’이라고 보았다. 어머니를 어머니로 만들며, 여자아이를 잠재적으로 어머니와 같은 여성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어머니노릇’이라는 것이다. <모성의 재생산>의 원제인 <reproduction of mothering>에서 ‘mothering’이 바로 이 ‘어머니노릇’이다. 초도로우가 문제삼는 ‘어머니노릇’은 특히 어린 아이가 자신이 독립된 인간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완전히 수동적인 상태일 때 어머니가 아이에게 제공하는 돌봄이다. 어머니노릇의 구체적인 활동은 아이와 접촉하며 애착을 형성하는 것에서부터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아이의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까지 다양하다. 초도로우는 이러한 어머니노릇으로 인해 여성의 삶, 여성에 대한 이데올로기, 남성성, 젠더 불평등, 그리고 특수한 형태의 노동 권력들이 재생산된다고 보았다.

 

  • 이론적 배경 – 정신분석학과 대상관계이론


초도로우는 “어린 아이가 생의 초기에 경험한 어머니와의 관계가 젠더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신분석학과 대상관계이론을 이론적 배경으로 삼는다.

정신분석학을 처음으로 이론화한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 5. 6 – 1939. 9. 23)는 인간의 정신과 행동이 전적으로 의식적이지 않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의 정신적 삶은 의식적 사유뿐만 아니라, 무의식적 정신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의 행동은 언제나 목적과 동기를 의식적으로 파악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의식적 사고를 ‘말하기’ 그리고, 무의식적 정신을 ‘꿈’과 연결짓는 것처럼, 정신분석학 안에서 의식은 사회적 활동으로, 무의식은 의식화, 언어화할 수 없는 개인적 정서로 이해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생물학적 유기체에 다름 아닌 상태, 즉 사회화된 의식적 주체가 되기 이전의 어린아이가 ‘가족’이라는 최초의 사회에서 성적 욕망의 억압을 경험하면서, 자기 자신을 부모라는 대상에 동일시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화된 의식적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을 상세히 다룬다. 이 때 사회화/의식화 과정의 가장 중요한 목적과 결과는 젠더화된 주체를 생산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정상적’ 사회화 과정을 거친 아이는 이성애적 섹슈얼리티를 지향하는 남성적 남아가 되거나 여성적 여아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 발달은 유아의 타고난 성기적 본능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초도로우는 프로이트가 인간 무의식의 영역을 발견하고, 인간의 정신발달이 가족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밝혀낸 공헌을 인정한다. 또한 인간의 섹슈얼리티가 생애 초기에 조직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도 어느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초도로우는 인간의 타고난 충동들이 자연적으로 행동과 발달을 결정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간의 타고난 충동들은 오히려 관계를 획득하고 보유하는 과정에서 조작되고 변형된다는 대상관계이론을 따른다.

대상관계이론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서 발전된 정신분석학의 방법론이다. 대상관계이론의 핵심은 초기 어린 아이의 관계적 경험이 심리적 성장과 성격 형성에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대상관계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는 자신이 다른 인간과 맺는 관계성이 매우 중요하게 작동한다. 물론 프로이트 또한 정신적 삶의 모든 요소는 관계적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고 언급한 바 있지만, 대상관계이론은 프로이트가 본능이라 가정하는 것도 양식화되고 구성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초도로우는 “부모노릇을 통해 전달된 사회구조, 특히 젠더구조가 어린 아이의 내면에서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서 승인되고 변형되며, 아이의 정서적 삶을 발달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대상관계이론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간 대상관계이론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젠더에 따른 대상관계적 경험들의 차이와 이로 인한 심리발달의 차이에 주목한다.

 

  • 어머니와 딸을 중심으로 정신분석학을 다시 쓰다

 

정신분석학의 주인공은 사실상 아들과 아버지이다. 다시 말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주인공이 ‘오이디푸스’라는 그리스 비극의 남성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정신분석학은 어린 아이였던 남자아이가 사회적 주체로서 남자어른이 되는 과정을 기술한다. 아이의 발달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설명에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상징하는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아이가 극복하고 버려야할 ‘의존성’으로 간주된다.

앞서 말했듯, 사회적 주체가 되는 과정은 젠더화된 주체가 되는 과정이며, 이는 자신과 같은 젠더인 부모와 동일시하고, 젠더가 반대인 부모에 대한 사랑에서 확장된 이성애를 발달시키는 과정이다. 프로이트는 이 과정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과정에 진입하기 이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섹슈얼리티와 젠더정체성이 특정되지 않은 상태이며 모두 어머니와 애착을 형성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과정을 거치면서 남자아이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만, 여자아이는 어머니를 미워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한다. 이 과정에서 페니스는 매우 중요한 매개물이다. 남자아이의 경우, 어머니와 형성하고 있는 애착관계에 아버지라는 인물이 중요하게 개입한다. 아버지의 등장으로 남자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지속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페니스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고, 점차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 이 권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면에 여자 아이는 자신이 페니스를 결여하고 있다는 열등감을 갖는다. 그리고 자신을 이러한 상태로 낳아준 어머니를 미워하고, 그리하여 여자아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바꾼다.

일반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핵가족 모델에서 아버지는 가정 외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어머니는 가정 내에서 주된 역할을 담당한다. 프로이트가 저술하던 당대에는 이같은 젠더분업이 더 뚜렷했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어째서 대체로 가정 외부인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던 아버지가 어린아이의 심리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가정하는 것일까? 그리고 페니스의 결정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남자아이의 심리발달모델을 여자아이에게 대칭적으로 적용하려는 무리한 시도로, 프로이트는 여자아이의 젠더정체성 발달을 비약적이고 단순하게 마무리한다. 이와 같은 비판과 더불어 초도로우는 어린아이의 심리발달과정을 어머니와 딸을 중심으로 다시 쓰면서, 정신분석학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한 오이디푸스기 이전 과정, 즉 전오이디푸스기를 재이론화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下)편에서 계속-

플라톤의 『국가』 강해 ⑭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4-1(336b~338b) : 트라쉬마코스의 저돌적 등장과 소크라테스의 당부(전 시간에 이어 계속)

 

* 전 시간 언급했듯이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는 주장은 트라쉬마코스 개인의 주장만은 아니다. 투퀴디데스가 남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몇 장면은 그러한 정의관이 당대 아테네 권력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넓게 펴져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표적인 두 가지 장면만 간략히 살펴보자. 우선 기원전 418년 레스보스의 뮈틸레네인들이 아테네에 반기를 들었다가 진압된 후 뮈틸레네의 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장면이다.(3권 35-50) 아테네인들은 반란이 진압된 후 민회를 열어 뮈틸레네가 속국도 아님에도 아테네에 반기를 든 것에 격분하여 뮈틸레네의 성인 남자를 모두 죽이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삼기로 결의한다. 그러나 이튿날 상당수의 아테네인들이 어제의 결의가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재심을 요구하자, 즉시 민회가 다시 열려 찬반을 둘러싸고 클레온과 디오도토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이때 클레온은 재심이 요구된 것에 대해 ‘민주주의가 남들(속국들)에 대한 지배를 불능상태로 빠트린다’δημοκρατίαν ὅτι ἀδύνατόν ἐστιν ἑτέρων ἄρχειν는 평소의 소신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토로하고, 재심은 시간 낭비이며 아테네인들이 아테네가 속국들을 지배하는 참주정체τυραννίς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린다.(37) 그런 연후 그는 아테네가 제국일 수 있는 근거는 아테네가 가지고 있는 속국들에 대한 힘ἰσχύς의 우위임περιγίγνομαι을 역설하고(37,38) 만약 아테네인들이 뮈틸레네를 지배하기를 바라다면 설사 부당하다하더라도οὐ προσῆκον 아테네인들의 이익σύμφορόν을 위해 그들을 응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야 말로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당성 여부는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클레온은 아테네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국을 포기하는 것ἢ παύεσθαι τῆς ἀρχῆς이고 그저 위험이 없는 곳에서 착한 사람 노릇이나 하는 것ἐκ τοῦ ἀκινδύνου ἀνδραγαθίζεσθα이라고 말한다.(40-4) 그리고 클레온에 반론을 펴고 있는 디오도토스 조차 반대의 근본 이유가 정의 여부가 아닌 아테네의 이익ὠφελίαν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역시 ‘근거 없는 추측에 분개하는 것은 명백히 이익이 되는 조언을 도시가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고 언급하면서(43)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불의한 짓을 했는지가 아니라οὐ περὶ τῆς ἐκείνων ἀδικίας 우리가 어떻게 맞서야 좋은지를 따져야 하며’(44-1) 그러므로 이 자리는 ‘무엇이 정의인지를 따지려 그들에게 소송을 거는 자리가 아니라οὐ δικαζόμεθα πρὸς αὐτούς, ὥστε τῶν δικαίων δεῖν 어떻게 해야 그들이 우리에게 유익해질 수 있는지를περὶ αὐτῶν, ὅπως χρησίμως ἕξουσιν 심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44-4) 게다가 그는 적국 뮈틸레네 역시 ‘정의보다는 힘을 더 중시하기로 작정한’ἰσχὺν ἀξιώσαντες τοῦ δικαίου προθεῖναι 나라라고 진단하고 있다.(39-3) 즉 클레온이나 디오도토스 모두 정의 여부에 상관없이 어떤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보다 부합한 것인지를 두고 논쟁하고 있고, 반란 당사국인 뮈틸레네 역시 이익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특히 클레온과 디오도토스는 공히 그 힘과 이익의 실체가 다름 아닌 속국들이 바치는 공물πρόσοδος 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공물이야 말로 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39-8, 46-3 ) 다행히 민회에서 디오도토스의 주장이 약간의 차이로 받아 들여져 뮈틸레네인들은 학살을 모면하지만 이 장면은 이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관심사가 정의가 아닌 이익과 그 이익을 위한 힘ἰσχύς에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두 번째 장면은 기원전 416년 아테네군이 멜로스를 포위한 후 진압에 앞서 아테네 사절단οἱ Ἀθηναῖοι과 멜로스 의원들οἱ τῶν Μηλίων ξύνεδροι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5권 84-116) 두 번 째 장면은 같은 아테네인들끼리의 논쟁이 아니라 그야말로 생사의 문제를 두고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벌어진 대화라는 점에서 우리의 주제와 관련하여 더욱 주목을 끈다. 멜로스인들은 라케다이몬 사람들이었지만 아테네의 위세가 두려워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가입을 하지 않고 중립을 지켜왔다. 그러나 아테네가 약탈을 반복하는 데다 스파르타의 기항(寄港)까지 막을 수 없어 아테네와 반목하게 되었고 급기야 아테네의 공격을 받아 섬이 전면 포위 상태에 이르자 아테네 사절단과 협상을 위해 마주한 것이다. 아테네 사절단은 멜로스 의원들에게 협상이 아닌 통첩을 하는 자리인 만큼 이후의 처분과 관련해서만 대화를 나눌 것을 제안하고 멜로스 의원들은 마지못해 그에 동의한다. 그러자 아테네 사절단은 대놓고 ‘정의δίκαια란 사람들 사이에서 힘이 대등할ἴσος 때나 통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강자οἱ προύχοντες는 할 수 있는 것을 관철하고, 약자οἱ ἀσθενεῖς는 그것에 순응해야한다’고 주장한다.(89) 이에 멜로스 의원들은 ‘당신들이 정의τὸ δίκαιον를 도외시하고 이익τὸ ξυμφέρον에 관해서 말을 한다 해도’ 보편적인 선의 원칙τὸ κοινὸν ἀγαθόν을 지키는 것이 아테네인들에게도 이득이 될 것ὠφεληθῆναι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고 정의로운 처우τὰ εἰκότα καὶ δίκαια를 받아야 하며 다소 타당성이 결여된 소명에 의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원칙이 아테네에게도 이익이 될 것임을 재차 천명한다.(90) 게다가 아테네도 이런 상황을 맞이할 수 있고 그 때는 지금 아테네의 처분이 본보기παράδειγμα 가 될 수 있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테네 사절단은 제국이 종말을 고한다고 해도 나중에 일어날 일 때문에 의기소침하지 않으며, 설사 지배당한다고 하더라도 정말 두려운 것은 스파르타처럼 같은 지배자들에 의해 정복당하는 것νικηθεῖσιν이 아니라 오히려 속국들의 반란에 의해 지배자들이 제압당하는 것이라고 말한 후, 멜로스가 강대국으로부터 무서운 재앙을 면하려면 항복할 것을 요구한다.(91-93) 그러자 멜로스 의원들은 아테네에 호의적인 중립국가로 남게 해달라고 청하면서 정의는 말하지 말고 아테네의 이익을 위해서만 말을 하라는 것은 결국 아테네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음을 재차 하소연한다.(98) 이에 아테네 사절단은 ‘여러분은 대등한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므로 체면ἀνδραγαθία이나 치욕αἰσχύνη 따위는 상관 말고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것σωτηρία인가만 신경을 쓰라’고 충고한다.(101) 그러나 멜로스 의원들은 ‘우리가 항복하면 우리의 희망ἐλπὶς은 사라지지만 우리가 행동하는 동안에는 우리가 바로 설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다’, ‘우리가 불의에 대항해 정의의 편에 서 있는 만큼’, ‘신들께서 우리에게도 아테네 못지않은 행운을 내려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에 덧붙여 스파르타도 자신들을 도와 줄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친다.(102-104) 그러자 아테네 사절단은 ‘지배할 수 있는 곳에서는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φύσεως ἀναγκαίη’이라고 응수하고(105) 스파르타가 전혀 희망이 되지 않을 것임을 일러 준다. 그런 연 후 멜로스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협상하자고 해 놓고 이렇게 길게 논의하면서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에 놀라움을 표하면서 멜로스의 존망이 단 한 번의 결정에 달려 있음을 명심하라고 최후 통첩한다.(111) 그럼에도 멜로스인들은 처음의 입장을 다시 밝히고, 아테네 사절단은 멜로스인들의 스파르타에 대한 기대와 신들의 호의, 희망 모두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들 자신들은 더욱 깊은 추락에 내몰릴 것임을 마지막으로 경고하고 회의장을 떠난다. 이후 멜로스는 총력을 다 해 아테네에 맞서 저항을 하지만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아테네는 멜로스를 점령한 후 시민 남자들 모두를 학살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아 버린다. 아테네의 이러한 잔학한 행위는 곧바로 속국들과 주변국들에게 알려지면서 충격과 공포를 넘어 아테네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기원전 404년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패배하자 테베가 앞장서서 아테네 시민 전체를 죽일 것을 요구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아테네는 멜로스인들이 말했듯이 자기들이 행한 본보기대로 이제 자신들 모두가 죽음에 처해질 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기아 속에서 기나긴 전쟁의 끝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투퀴디데스가 전하고 있는 위와 같은 장면은 정의보다는 이익이 늘 앞서고 트라쉬마코스의 말 그대로 정의 자체가 강자의 이익임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뮈틸레네는 학살을 면했고 멜로스는 대학살을 피해가지 못했지만 이렇게까지 패전 상대국 주민들을 모두 학살하겠다는 결정이나 처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전에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서로 전쟁하는 일도 많았지만 같은 그리스인으로서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전쟁 중일지라도 그 정도로 동족을 학살하는 일까지는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점차 주변 이웃 나라들을 속국으로 삼으려는 패권적 경향이 심화되면서 나타난 일들이다. 특히 스파르타가 그에 크게 반발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 이후에는 그러한 크고 작은 처사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에 따라 복수가 악순환 되면서 권력자들의 선동은 물론 그것을 부추기는 지식인들도 늘어나고 민중들 역시 그에 휩쓸려 들어갔다. 5세기 말에 이르면 이제 그리스 사회는 더 이상 전통적인 민족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보전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플라톤은 <국가>를 통해 아테네는 물론 그리스 사회 전체가 위기에 처한 원인과 배경을 다시 짚어 보면서 그 극복의 길을 탐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예상하고 이미 알고 있듯이 플라톤은 그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테네가 제국화 되면서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패권주의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은 당대의 그러한 패권주의적 가치관을 대변하는 것으로서 이제 이곳에서 플라톤이 넘어서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 간의 무도한 패권주의적 질서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당대 소피스트들이 그러했듯이 사상적으로 그것을 뒷받침하는 마키아벨리스트들 또한 오늘날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338d]

* 소크라테스의 추궁에 트라쉬마코스는 곧바로 여러 정치체제의 경우를 끌어들여 그곳에서 정치권력을 가진 자ἀρχὴ 즉 ‘통치자’οἱ ἄρχοντες가 자기가 말하는 강자임을 밝힌다.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려는 ‘더 강한 자’의 의미가 정치적 지배관계에서 더 큰 권력을 가진 정치적 강자임이 드러난 셈이다. 이후 ‘더 강한 자’에 대비되는 ‘더 약한 자’ἧττων가 언급되고 있고(339e) 그러한 사람이 곧 ‘다스림을 받는 자(피지배자)’οἱ ἀρχομένοι로 언급되고 있는 것(339d) 또한 그것을 재확인해 준다.

* 정치체제가 이곳에서는 참주정τυραννὶς, 귀족정ἀριστοκρατια 민주정δημοκρατία 단 3형태만 언급되고 그에 따라 참주와 귀족과 민중이 강자로 예시되고 있다. 이 세 가지 구분은 핀다로스가 내세우는 분류법이라고는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정치체제는 그 세 가지 이외에 최선자정, 명예정, 과두정, 금권정 등 다양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더 강한 자’를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지배 형태보다는 권력의 담지주체에 따른 정치체제들을 예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더 강한’은 권력투쟁 과정에서 이들 강자들 사이의 비교 우위도 포함하고 있다할 것이다. ‘철학자 왕정’은 아직 트라쉬마코스가 모르고 있을 뿐더러 설사 알고 있다 해도 플라톤이 주장하는 철학자 왕정의 통치자는 그들과 비교될 수 없다. 철학자왕은 이미 원천적으로 자기의 이익이 아니라 오직 통치 대상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338e]

* 이 부분에서 정치적 강자는 법률νόμοι의 제정을 통해 자기 이익συμφέρον을 실현한다. 이 점은 일단 트라쉬마코스 역시 법치주의(legalism)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교묘하게도 일단 그 강자의 범위가 참주뿐만 아니라 과두정 치하의 소수 권력자 그리고 민주정 치하의 민중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민주정은 말 그대로 시민의 이익을 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정치 또한 주권자인 민중의 이익을 관철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한 민주정의 예시는 정부의 권력은 주권자의 권력이라는 일반적인 상식과도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 주권(sovereignty)은 국가의 의사 결정에 있어 최종적인 결정권을 말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경우 주권은 국민 모두에게 있고 그 주권자들에 의해 선출된 권력은 그들을 지지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반대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해 행사된다. 그러나 트라쉬마코스에게 주권은 특정인 또는 특정 계급에 국한되어 있다. 권력이 봉사하는 것은 지배자가 참주건 귀족이건 민중이건 기본적으로 그들 자신의 이익일 뿐이다. 게다가 트라쉬마코스가 말하고 있는 민주정은 오늘날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한 국민의 지배로서 민주정이 아니라 귀족과 구분되는 계급 개념으로서 기층 민중demos의 지배로서의 민주정demokratia이다. 그리고 실제로 트라쉬마코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420년 전후의 아테네 민주정은 이른바 포퓰리즘의 극치로서 민중 독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비교할 수도 없다. 아테네 민중의 배후에는 기층 민중에 대한 사랑이 아닌 사리사욕과 정권욕에 눈이 먼 선동정치가들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 정부가 행하는 일체의 행위는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원칙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들 모두에게 법률 준수의 의무를 부과한다. 그러나 트라쉬마코스가 내세우는 법치주의와 법의 준수 의무는 설사 그것이 강자에게까지 적용된다 할지라도 어떤 경우든 강자들의 이익을 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준수가 요구되는 법률 자체를 강자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률 제정권까지 그 들 임의대로 법률로 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트라쉬마코스가 제시한 정체 가운데 그 어떤 것이든 그곳에서 제정된 법률은 하나같이 강자인 지배자의 이익에만 봉사하고 피지배자 내지 나머지 계층의 이익과는 무관하다.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은 시민 공동의 이익이 아닌 정치권력과 법 제정권을 가진 강한 지배자들만의 파당적 이익만을 관철하기 위한 파괴적이고 반정의적인 반도덕주의적 입장에 불과한 것이다.

* 트라쉬마코스가 내세우는 법치주의는 이러한 점에서 형식적 법치주의에 불과하다. 물론 형식적 법치주의는 합법성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통해 얼마나 많은 독재자들이 형식적 법치주의가 표방하는 형식적 합법성만을 내세워 이른바 법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불의와 악행을 저질러왔고 또 그것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했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형식적 법치주의는 반드시 실질적 법치주의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질적 법치주의는 모든 법은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국민들 모두의 자유와 권리, 평등과 정의를 보장할 수 있어야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므로 만약 정해진 법률이 시행과정에서 그런 원칙을 저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그것은 법률로서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므로 그 즉시 개정되어야 하고 개정되기 전이라도 그 법률에 대한 저항은 존중되어야 하며 처벌은 억제되어야 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이러한 실질적 법치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이 곧 기본법(lex fundamentalis)의 정신 즉 헌법 정신이다. 모든 법률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와 권리, 평등과 정의 원칙에 과연 일치하는지에 대한 비판과 검증에 늘 열려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트라쉬마코스의 법치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법치주의와 거리가 멀다. 법치주의와 법 앞의 평등은 가치의 공평한 배분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법치는 정치체제와 상관없이 강자의 편파적 가치 독점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그 자체로 법적 안정성을 가질 수조차 없다. 오늘날 법치주의는 법을 제정 절차의 민주적 평등성과 공정성을 토대로 시민 각자의 욕망을 반영한다는 위에서 그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이고 그 정당성을 바탕으로 법적 안정성이 확보되고 나아가 그에 기초하여 시민 모두에게 법률의 준수가 의무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요컨대 트라쉬마코스의 법치주의는 겉으로만 법의 지배를 내세울 뿐 실제로는 사람 즉 강자의 지배인 것이다.

* 그런데 어차피 정치가 모두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는 없는 것인 한, 트라쉬마코스가 예시한 정치체제 중 민주정체는 다수의 이익을 정의로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신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 여겨질 수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대원칙이 다수결의 원칙이고 공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과도 상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분명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민주정은 국민 모두의 이익을 목표로 하되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다수의 이익을 택하는 정치체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원천적으로 특정 계급에 의한 특정 계급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정치체제이다.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민중은 다만 강자의 예들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게다가 그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력에 의한 가장 최대의 특권적 이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익을 누리는 자가 소수이면 소수일수록 그들에게 더욱 유리한 정의관이다. 이것은 트라쉬마코스의 정의관이 궁극적으로 참주의 정의관임을 보여준다. 결국 민주정의 예시는 겉으로는 당대 아테네의 민중 독재를 지지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참주 지향적인 자신의 속내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일종의 기만인 것이다.

* 아무려나 플라톤에게 시민 모두가 아닌 일부의 이익이나 행복을 목표로 하는 정치체제는 이미 그 자체로 정의로운 정치체제가 아니다. 정의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담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테네 당대의 민주정은 물론이고 현실적으로 최대 다수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현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의로운 정치체제가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플라톤의 정의로운 국가는 현실의 부정의를 완벽하게 제어하고 정의의 이념을 완전하게 관철하는 말 그대로 이상적인 국가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국가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갖는 중대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이상 자체가 현실의 곤고함을 돌파해내는 원천이듯이 플라톤의 이상 국가 또한 부정의를 타파하고 정의로운 현실 국가를 견인해내는 동력이자 희망의 원천이다. 부정의가 마치 부정의의 이념이라도 존재하듯 가히 끝을 모를 정도로 그 극을 달리고 있는 모멸의 현실에서 정의의 이상마저 회의의 눈으로 지레 유보되거나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폄하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부정의를 압도하고도 남을 만한 정의와 선에 대한 확신과 열정으로 빛나는 정의의 푯대와 이념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구축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그 자신 말하고 있듯 하늘에 바쳐진 본(paradeigma)으로서 현실에서 정의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지표인 동시에 끊임없이 현실을 성찰하고 실천과 투쟁을 독려하기 위한 바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플라톤이 시종일관 이상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플라톤은 말년에 <국가>의 이념을 바탕으로 <법률>에서 방대하고도 주도면밀하게 최선의 현실국가를 제시하고 있다. <법률>의 완성은 <국가>가 갖는 흔들리지 않는 지향과 이념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당대의 무도하고 비참하기 그지없었던 아테네 현실의 한 가운데에서 정의로운 삶과 모두의 행복을 치열하게 열망했던 플라톤의 모습은 ‘지옥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성불(成佛)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연상케 한다. 플라톤은 오늘도 이상을 향한 불굴의 정신과 현실에 대한 냉철하고도 치열한 성찰을 그 간절함에 실어 우리에게 ‘불의에 결코 타협하지 말 것’,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을 호소하고 응원하고 이끌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이 던져질 수 있다. 앞에서 살폈듯이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강자는 법률에 구속되지 않는 법률을 넘어서있는 무소불위의 강자들인데 왜 굳이 법률을 표방하여 자신들이 이익을 실현하려는 것일까? <고르기아스>의 칼리클레스는 피지배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오로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 즉 약육강식이 자연의 법칙이자 정의이며 행복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힘을 추구할 것을 가르친다. 그에 비해 이곳에서의 트라쉬마코스의 강자는 법치주의도 표방하면서 최소한 피지배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즉 평판에 대해서도 신경을 쓴다. 이런 점만 보면 칼리클레스가 훨씬 노골적으로 부정의하고 아주 뻔뻔할 정도로 사악하고 강경하다. 그러나 플라톤에 의하면 최상급의 부정의한 자는 칼리클레스가 말하는 강자가 아니라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강자이다. 점차 밝혀지겠지만 최상급의 부정의한 자는 최대의 부정을 저질러 자신들의 최대의 이익을 최대로 관철함과 동시에, 피지배자들로부터도 가장 정의로운 자라는 평판까지도 얻는 자이기 때문이다. 칼리클레스가 말하는 강자는 최대한의 이익은 얻어도 평판까지 얻을 수는 없다. 먹히는 약자가 강자를 선망은 할지라도 존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리클레스의 강자는 권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위태롭고 불안하다. 권력을 최소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법치의 형식을 빌려 겉으로나마 통치가 정당화되어야 한다. 모든 독재자가 실제로는 폭압을 저지르면서도 늘 법률을 앞에 내세우는 까닭도 그곳에 있다. 피지배자들로부터 정의롭다는 평판을 얻으려면 어떻게든 법률에 의거하여 통치를 해야 하고 자신도 그 법을 잘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철저히 자기의 이익을 위해 법률을 제정하되 그 법률이 마치 피지배자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처럼 비쳐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시행 과정이나 결과도 정말 그렇게 보이게끔 해야 한다. 이 어려운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통치자야 말로 최상급의 부정의한 자 즉 최고의 강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컨대 최상급의 강자는 피지배자들을 완전하게 기만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능력이 크면 클수록 이러한 법치를 통해 관철할 수 있는 이익 또한 크고 그 평판 또한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과 권력의 극단에 서 있는 자가 바로 참주이다. 그래서 뛰어난 참주일수록 권력을 이용하여 뛰어난 지식인들을 밑에 거느린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자에 빌붙어 명성과 부를 원하는 지식인일수록 그 자신 철저히 자기의 가치관을 참주의 가치관에 일치 시키려고 발버둥을 친다. 소피스트 트라쉬마코스가 왜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지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강자가 궁극적으로 왜 참주일 수밖에 없는지도 이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 아직도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 말은 법치주의를 뒷받침하는 고전적인 금언으로 떠받들어져 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플라톤의 대화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 말은 한 일본학자가 <크리톤>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태도를 자기 식으로 곡해하여 만들어 낸 말이다. 그리스 말에서는 이미 법nomoi이란 용어에 ‘악한kakos’이란 수식어 자체가 붙여질 수 없다. 당대의 법이 필요에 따라 자주 개폐될 수 있는 실정법이 아니라 오랜 세월 형성된 관습법적인 경향이 강한 만큼 일단 법으로 확립되고 오랜 기간 수용된 것인 한, 그것은 그 자체로 악한 것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그 말을 소크라테스가 했다하더라도 그 법의 피해자인 소크라테스가 법치를 강조하는 것과 그 법을 집행하는 지배자가 법치를 강조하는 것은 그 취지와 내용 모두의 측면에서 전혀 차원도 성격도 다르다. 플라톤에게 법치는 기본이지만 법치를 가장하여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권력자들에게 법치는 이미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 만큼 법치는 실질적 법치에 의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법치 못지않게 그러한 법을 만들고 운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촛불혁명 이전의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은 촛불 혁명 이후의 헌법과 법률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사회 정의와 그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크게 신장되었다. 촛불 혁명 이후의 시민들은 이미 그 이전의 시민들이 아닌 것이다. 그 힘으로 이제 법률도 개선하고 정치하는 사람들도 바꾸어야 한다.

 

[339a]

* ‘그러므로 바르게 추론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디에서나 정의는 동일한 것으로 즉 강자의 이익으로 귀결합니다’ὥστε συμβαίνει τῷ ὀρθῶς λογιζομένῳ πανταχοῦ εἶναι τὸ αὐτὸ δίκαιον, τὸ τοῦ κρείττονος συμφέρον. 이 부분은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말의 뜻을 분명히 해달라는 소크라테스의 요구에 대한 트라쉬마코스의 결론적 답변이다. 이 말에 비추어 보면 앞서 살폈듯이 우리가 제기했던 물음 즉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강자가 곧 정치적 지배자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어느 정도 해소된다.

*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강자가 정치적 강자라면 트라쉬마코스 같은 소피스트들은 정치적 강자가 아니므로 그의 주장은 자신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가 말하는 강자를 그냥 일반적인 의미에서 ‘힘이 더 강한 자’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더 강한 자’를 정치적 지배관계로 국한하지 않고 약육강식 일반의 차원으로 넓게 이해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일단 여기에서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강자의 직접적인 의미는 정치 권력자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소피스트들 자신 비록 정치적 강자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이익이 모두 정치적 강자에게서 나오는 것인 한, 실제적으로 그러한 정의관은 그들의 이익을 위한 정의관이기도 하다. 우선 권력자들이 가장 많은 이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들의 목표는 권력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에 기생하여 그들로부터 이익을 얻는 권력의 부역자였던 것이다.

*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의 설명을 듣고서 이제야 말뜻을 알았다고 답을 하고 이제부터 ‘당신이 한 말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 알아보도록 하겠다’고 말을 한다.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에 대해 논박을 시작하겠다는 선언이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 또한 ‘이익이 정의’라는데 동의하고 있음을 확인한 후, 트라쉬마코스가 덧붙인 ‘강자의’라는 말에 관심을 표명한다.

 

4-3(339b~340b) ; 소크라테스 통치자가 실수를 할 경우를 들어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을 비판하자 폴레마르코스와 클레이토폰이 잠깐 끼어든다.

 

[339b]

* 그러자 트라쉬마코스는 그 ‘강자의’라는 말이 ‘어쩌면 사소한 덧붙임이겠습니다만’σμικρά γε ἴσως, ἔφη, προσθήκη이라고 답을 한다. 그런 트라쉬마코스의 이 대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박종현 역본은 위의 역문이 나타내듯이 트라쉬마코스 자신이 그것을 사소한 덧붙임이라고 말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불변화사 γε(ge)를 앞서 의 소크라테스 언급에 대한 모종의 첨언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또 추정의 의미를 갖는 ἴσως(isōs)가 함께 쓰여 졌음을 고려한다면 그 말은 ’당신의 말인즉슨 아마 사소한 덧붙임이라는 것이겠지만‘으로 옮기는 것이 맞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내용적으로 보더라도 덧붙이는 말 ’강자의‘라는 말은 트라쉬마코스 자신의 답이 갖는 차별성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말로서 그 자신에게 결코 사소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수의 역자(Grube, Shorey)는 그 ’사소함‘을 트라쉬마코스가 지레 짐작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으로 보고 ’아마도 내 생각에 당신(소크라테스)은 그것을 사소하다고 생각하겠지만‘으로 번역하고 있다. 즉 그것이 사소하다고 여기는 주체가 트라쉬마코스가 아니라 소크라테스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해야 그 말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도 자연스럽게 풀린다.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의 말을 듣고 ’아직 그게 중대한μεγάλη 첨가인지 분명하지 않다‘라고 대답하고 있는데 이는 ’당신이 내가 그 말을 사소하다고 여긴다고 생각하고, 당신 자신은 반대로 중대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소한 것인지 중대한 것인지의 여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정의가 이익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정의가 누구만의 이익 특히 정치권력을 가진 강자나 지배자 그들만의 이익이라는 데는 동의할 수 없으며 검토가 필요한 내용이라고 말한다. 이미 앞서도 살폈듯이 폴레마르코스가 말하는 친소관계이건 트라쉬마코스가 주장하는 권력관계이건 간에 자신을 기준으로 정의와 이익의 관계를 논하는 방식은 결코 정의에 대한 바른 접근이 될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처음 말한 대로 정의는 그 자체로 공동체와 시민 모두에게 최선의 이익을 제공하는 기술이자 방편이기 때문이다.

*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것πείθεσθαι τοῖς ἄρχουσινι 역시 정의이다’ 소크라테스의 이 말에서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단순히 사람에 대한 복종이라면 그것이 과연 정의인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이어서 ‘통치자들이 제정하는 것ἃ ἂν θῶνται을 이행하는 것이 정의’(339c), ‘통치자들이 지시하는 것ἃ ἂν προστάττωσιν을 이행하는 것이 정의’(339d)라는 표현이 이미 합의된 것으로 나오는 것을 고려하면 여기서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와 동일한 의미일 것이다.

 

[339c]

*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의 그 공동체 파괴적이고 반도덕주의적인 주장을 논박하기 위해 일단 트라쉬마코스가 단적인 사례로 든 통치자로서의 강자의 이익, 즉 ‘정의는 통치자의 이익이다’라는 주장을 하나하나 검토하기 시작한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인 검토에 앞서 피통치자가 통치자ἄρχων에게 복종하는 것이 정의이므로 통치자가 정한 법률은 피통치자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을 상호 확인한 후 느닷없이 트라쉬마코스에게 통치자는 어떤 점에서 실수ἁμαρτεῖν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묻는다. 소크라테스는 폴레마르코스 때도 그랬듯이 예외적인 경우를 염두에 둔 사전 검토의 성격을 갖는 질문이다. 이에 트라쉬마코스는 ‘통치자가 어떤 점에서 실수를 할 수도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πάντως που οἷοί τι καὶ ἁμαρτεῖν고 답을 한다. 그러자 곧바로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들이 법률을 제정할 때 실수로 잘못하여 자기 이익이 못되는 것을 제정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피통치자로선 그것을 반드시 이행해야 정의이므로 결국 그 경우에는 정의는 통치자의 이익이라는 트라쉬마코스의 애초 주장과 반대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말을 한다.

 

[339d]

* 그 말을 듣고 트라쉬마코스는 무슨 말을 하느냐고 소크라테스에게 따지듯 묻는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지적이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앞서 트라쉬마코스와 합의된 내용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일러 준다.

 

[339e]

* 트라쉬마코스가 합의 사실을 인정하자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이 갖는 모순점을 일목요연하게 펼쳐 보인다.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을 모두 인정할 경우 정의는 통치자의 이익과 정반대되는 결과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되므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는 그의 주장은 결국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는 ‘더 없이 지혜로운 트라쉬마코스여!’ὦ σοφώτατε Θρασύμαχε라고 불러가며 이러한 지적을 펼쳐 보이는데 이 또한 트라쉬마코스의 심기를 건드려 대화를 지속하게끔 만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340a]

* 소크라테스의 지적이 끝나자 그 동안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폴레마르코스가 대화에 끼어들어 ‘아주 명명백백하다σαφέστατά’고 소크라테스의 생각에 전적으로 수긍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자 못마땅하듯 클레이토폰이 폴레마르코스에게 소크라테스를 위해 증언을 하려는 것이라면 몰라도 가만히 있으라는 투로 핀잔을 주고 이후 이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설전이 오간다.

* 그런데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박은 폴레마르코스와의 문답과정에서 ‘친구가 아닌 사람을 실수하여 친구로 잘못 판단하는 경우’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폴레마르코스의 주장을 논박했던 방식과 거의 동일하다. 소크라테스와 폴레마르코스의 대화를 곁에서 줄곧 지켜보고 있었던 트라쉬마코스가 과연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흥분을 잘 하는 트라쉬마코스가 소크라테스의 논박을 듣고 바로 대꾸도 하지 않고, 대화에 끼어든 폴레마르코스와 클레이토폰에 대해서도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는 것을 보면 자기도 역시 폴레마르코스와 같은 상황에 처했음을 알아차리고 잠시 어떻게 대응을 할지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폴레마르코스가 불쑥 대화에 끼어든 것도 그 역시 이미 동일한 방식으로 소크라테스로부터 논박을 당한 적이 있었기에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340b]

* 폴레마르코스가 트라쉬마코스의 주장 자체가 증거인데 왜 증인까지 필요하냐고 되묻자 클레이토폰은 트라쉬마코스가 ‘통치자들한테서 받은 것들은 이행하는 것이 정의’라고만 했지 ‘다스림을 받는 자들에게 나쁜 것을 지시하더라도 따라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폴레마르코스에게 핀잔을 준다. 클레이토폰의 말대로 트라쉬마코스가 그러한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겉으로 표현된 말만을 가지고 트집을 잡거나 논박을 피해가려는 소피스트들의 전형적인 술법이다. 이에 대해 폴레마르코스는 앞서 트라쉬마코스가 말한 내용들을 종합하여 그러한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추론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340b]

* 그러자 클레이토폰은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을 두둔하려는 의도에서 ‘트라쉬마코스가 ‘강자의 이익’이라고 말한 것은 ‘강자가 자기에게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ὃ ἡγοῖτο’을 두고 말한 것이라고 말을 하고, 그에 대해 폴레마르코스는 앞서 클레이토폰의 핀잔을 되돌려 주기라도 하듯 ‘트라쉬마코스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대꾸한다.

* 사실 클레이토폰의 이 말 즉 ‘자기에게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ὃ ἡγοῖτο’이란 말은 트라쉬마코스 주장의 근본 취지를 되살릴 수 있고 나아가 소크라테스의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출구도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는 주장을 클레이토폰이 말한 대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지 꼭 이익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경우,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비판을 피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라쉬마코스도 이미 통치자 또한 실수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 누구는 트라쉬마코스가 이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해져 자기주장의 근본취지를 지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여겨 바로 호응하고 나설 것이라 예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후의 소크라테스와 트라쉬마코스 간의 대화는 클레이토폰과 우리가 혹시 그러리라고 예상하고 있는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마사 누스바움(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6. <혐오와 수치심>, 마사 누스바움(下)

 

유민석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 숨기고만 싶은 치부

 

인간은 누구나 취약하고 부족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걸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이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은 불완전한 사람이라는걸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봐 꼭꼭 숨기고 덕지덕지 봉합한다. 잡힐까 두려워 머리만 풀숲에 쳐박는 꿩처럼 그렇게 위장하고 은폐한다.

혹시라도 남들 앞에 자신의 이런 치부가 발각되거나 드러나기라도 하게 된다면, 많은 경우엔 강렬한 수치심이 동반되게 마련이다. 이런 수치심은 자존감을 무너뜨리리게 되고 온전한 인격을 형성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개인의 정체성과 인간 관계를 비롯한 삶의 전반에 위협을 초래하게 된다.

이처럼 수치심은 우리를 압도하면서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1947.5.6~)은 저서 『인간성으로부터 숨기: 혐오, 수치심, 그리고 법Hiding from Humanity: Disgust, Shame and the Law』(국역: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 조계원 옮김, 민음사, 1995)에서 이러한 파괴적인 감정인 수치심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본 글에서는 먼저 수치심에 대한 누스바움의 설명을 살펴보고, 그리고는 수치심이 법과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수치심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 편안한 자궁, 비극적인 출생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었을 때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인 수치심은 개별 인간의 삶의 발달과정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형성된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수치심은 전지전능함과 완전함, 그리고 편안함을 바라는 유년기의 욕구 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다. 유아는 점차 성장하면서 자신의 유한성, 부분성, 거듭된 무력감을 깨닫게 되는데, 이 때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과 동시에 과도한 욕심과 기대가 두드러지는 존재라는 깨달음 안에 있는 일정한 긴장을 해소하는 일시적인 방법이 수치심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유아기에서부터 형성되는 수치심을 ‘원초적 수치심’이라고 일컫는다. 이 원초적 수치심은 불가피하면서도 다소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그만큼 위험하며 삶의 어느 단계에서는 극복되어야 할 감정이다. 그런데 어떤 외적인 계기로 인해 원초적 수치심을 제어하거나 극복하지 못하고 강화된 채로 존속된다면, 자신과 타인에게 매우 위험한 감정이 된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유아는 태아 상태에서 자궁 속에 있을 때는 불필요한 자극이 없고 자동적으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편안함과 완벽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출생의 순간부터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엄마의 편안한 자궁과 달리, 세상은 유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온갖 고통스러운 자극과 매정함으로 가득차 있고, 돌봄 제공자는 항상 원할 때 자동으로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이런 풍경은 다양한 고전들 속에 그려지고 있다. 이를테면 출생을 거센 파도에 난파되어 낯선 땅위에 표류한 선원에 비유하는 루크레티우스의 시라던지, 노동할 필요도 없고 강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며 날씨는 따뜻하고 대지는 풍요로운 곡식들로 넘쳐나는 황금시대를 이야기하는 헤시오도스의 신화라던지, 인간이 둥근 모습을 하고 있고 힘이 엄청났으며 신과 겉이 강했다가 제우스의 저주를 받아서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 이야기는, 완벽한 세상인 자궁 안에 있다가 출생과 동시에 비극적인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유아의 모습을 은유한다.

유아는 예전처럼 세상이 완벽하게 자기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따라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전지전능하지 않고 결핍되고 부족한 인간이라는 깨닫게 되면서 원초적 수치심을 갖게 된다. 따라서 원초적 수치심은 완전한 자아 이상을 바라는 나르시시즘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들키기 않고 감추기 위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어버리고자 하는 방어적인 감정이다. 이런 원초적 수치심은 유아기 이후에도 잠복되어 있게 되며, 이제 부끄럽다고 여겨지는 특성들, 즉 부족하거나 결핍되거나 완벽하지 못하거나 의존적이라는 특성들은 수치스러운 것들이 되어 억압의 대상이 되고 파괴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 수치심을 옹호하는 사람들

 

그런데 수치심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짓을 저질러 놓고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가 무질서해지소 타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수치심은 좋은 감정이며, 심지어 사회가 법을 통해서 수치심을 주는 형벌을 권장할 필요마저도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공동체주의 사상가 아미타이 에치오니(Amitai Etzioni, 1929. 1. 4 ~)나 법학자 댄 케이헌(Dan Kahan)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케이헌은 노상방뇨를 한 사람에게 직접 길바닥을 솔로 북북 문지르게 한 처벌을 옹호하며, 성매매를 한 사람의 신상을 신문에 공개해야 하고 심지어 음주운전자거나 범죄자임을 알리는 표시를 자동차에 부착해야 하며 얼굴에 낙인찍는 형벌을 복원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이러한 수치심을 주는 처벌들은 범죄에 대한 강력한 억제 효과와 처벌 효과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미혼모, 약물중독자, 범죄자 같은 일탈적인 사람들에 대한 이런식의 수치심 주기는 사회 질서와 도덕적 가치 구현에 매우 유용하기 때문에 권장되어야 할 좋은 수치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누스바움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이유를 근거로 수치심 처벌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첫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모욕을 주기 때문에 인간 존엄성을 해친다. 둘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국가의 사법적인 절차가 아니라 인민재판이 된다. 셋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잘못된 대상을 처벌하거나 처벌의 정도를 명확히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 넷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억제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대상을 소외시킴으로써 더 범죄로 몰아넣는 역효과를 지닌다. 다섯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시민들을 사회적 통제 아래에 둔다.

 

  • 낙인찍히는 존재들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회적 수치심 처벌은 주로 역사적으로 억압당해온 집단에 부과되어왔다. 예컨대 옆에 있기만 해도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낙인찍히거나 수치심을 부여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특성들을 상기시키는 사람들은 낙인과 배제의 대상이 되곤 한다. 주로 사회적으로 비정상적이라고 간주되는 존재들, 예컨대 여성이나 동성애자, 범죄자 등이 그런 낙인과 수치심주기의 대상이 되어온 것이다.

누스바움은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과 같은 스티그마나 여성의 치마에 대한 역사등의 고찰을 통해서, 불완전하고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집단들에게 수치심을 주어왔다고 들려준다. 예컨대 여성의 신체는 남성에게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에 성차별적인 사회는 여성들의 패션과 치마 길이를 통제해 왔으며, 범죄나 동성애자는 그 자체로 수치스러운 존재들이지만 겉으로는 그들의 그런 특성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표지를 얼굴에 문신으로 새겨넣음으로써 누구나 인식하게끔 자행되어왔다.

앞에서 원초적 수치심을 다룰 때 이야기됐던 것처럼, 주로 장애인이나 여성, 동성애자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비정상적이거나 약하고 불완전하다고, 즉 수치스러운 특성을 지녔다고 간주됨으로써, 원초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대상이 되어 투사되는 것이다. 그런 낙인을 부여함으로써 그들과 다른 나는 정상적이며 완벽하다고 위안을 삼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야한 옷을 입다니 천해보인다”, “니가 짧게 입고 돌아다니니 그런 일을 당하지”같은 ‘피해자 비난하기’victim blaming나 ‘창녀 수치심주기’slut shaming를 생각해보자. 여성의 몸을 드러내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경박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나이든 여성이 예쁘게 꾸미는 것도 수치스럽고 주책맞은 일로 취급하기도 한다. 반면 남성들의 경우엔 감정을 드러내거나 눈물을 보이거나 약해보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것, 여성스러운 것이므로 수치스러운 것이기에 억누르라는 문화 속에서 성장한다.

누스바움은 이렇게 감정이나 친밀성을 억누르면서 수치스럽게 여기는 이런 사회에서는 남성들이 솔직한 감정의 표현과 타인과의 감정 교류나 공감과 연민의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당연히 여성적인 것에 대한 비하의 맥락 안에 놓여 있기에 ‘여성혐오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여성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욕망, 여성이 자신의 통제 밖에 놓여 있는 독립적인 개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통제되지 않는 여성을 향해 분노와 적대를 표출하는 것이다.

 

  • 좋은 수치심도 있을까?

 

이처럼 수치심은 신뢰할 수 없고 매우 위험한 감정이며, 특히 그것이 사회적으로 억압당해온 집단에게 부여될 경우엔 더더욱 위험한 낙인이나 예속으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 그런데 좋은 수치심도 있을까? 누스바움에 따르면 도덕적인 분개나 도덕적 반성에서 기인하는 수치심이나, 아니면 성취한 목표에 대한 열망의 독려 차원에서의 수치심의 경우엔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차별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수치심에 비해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이러한 수치심을 ‘건설적 수치심’ 또는 ‘생산적 수치심’으로 일컫는다. 예컨대 작가이자 활동가인 바버라 에렌라이히(Barbara Ehrenreich, 1941. 8. 26~)가 자신의 저서에서 이야기한, 노동자들이 극심한 빈곤과 주거 및 고용 불안, 열악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에 무관심한 탐욕스러운 미국 사회를 향해 수치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변한 것과 같은 수치심이 그런 종류의 건설적인 수치심일 수 있다.

누스바움은 이러한 수치심은 누군가를 낙인찍지 않기 때문에 괜찮은 수치심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런 도덕적 반성을 일깨우는 건설적 수치심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첫째,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규범에 호소해야 하며, 둘째, 나르시시즘(완벽한 자아 이상에 대한 사랑)적인 요소가 없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수치심은 자칫하면 비정상에 대한 낙인과 배제로 기능하기가 쉽기 때문에, 이런 수치심의 경우에도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 수치심과 혐오가 없는 사회

 

수치심을 주지 않는 사회를 만드려면 어찌해야 할까? 누스바움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취약한 비정상성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 1922. 6. 11~1982. 11. 19)의 사회학적인 논의를 끌어들여 인종, 장애, 계급, 지역, 학벌, 외모, 성별, 성적지향 등에서 모두 완벽한 ‘정상적인’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또한 타인의 보살핌을 필요로하고 서로 상호의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무엇보다도 나이가 들면 누구나 노인이 되고 장애인이 되며,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물론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며, 자신의 이런 취약성과 불완전성을 숨기려하고, 이를 환기시키는 사람이나 집단에게는 수치심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낙인을 찍고 모욕을 준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인간의 취약함과 인간다움을 인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호해주는 사회다. 이 점에서 그녀는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과 상호의존성, 그리고 다양한 다원성을 인정하는 존 롤즈(John Rawls, 1921. 2. 21~2002. 11. 24)식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옹호한다. 롤즈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는 공공복리 같은 목적을 이유로 수단화 되어서는 안되며, 우리는 서로 타인의 종교, 세계관, 생활방식과 같은 ‘포괄적 교설’(comprehensive doctrin)을 존중해줘야 한다.

누군가는 동성결혼이 도덕적이나 종교적으로 옳지 않으며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거나, 여성의 자유로운 옷차림이나 성적인 표현이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수치스럽고 정숙하지 못한 일이라고 통제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 그런 포괄적 교설은 개인이 가질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회의 법과 제도의 기초가 되어서는 안된다. 특정한 누군가의 세계관이나 종교가 정치나 법의 영역에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롤즈는 그런 모욕과 수치심은 자유주의가 보장하고자 하는 시민의 존엄성과 배치된다고 보았으며, 이를 중요한 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자존감의 사회적 기반’(social base of self-respect)가 정의로운 사회가 신경써야할 가장 중요한 기본적 사회재(primary social goods)라고 이야기했다.

롤즈의 이런 자유주의는 누스바움의 수치심에 대한 주장과 공명한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타인을 그렇게 통제하고 싶어하는 그런 도덕관이나 세계관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열등함을 참지 못하는 원초적 수치심이 잘못된 사회적 편견에서 강화된 경우일 수 있다. 누스바움은 이처럼 법이나 제도에 수치심이 들어와서는 안되며, 그럴 경우 낙인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스바움의 말처럼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존재이며, 타인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차이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상호존중과 존엄성을 구축하는 자유주의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다시 말해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 1939. 3. 22~)의 주장처럼 모욕을 주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수치심과 혐오로부터 보호받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지 않을까.

자유의 길을 찾아 혁명의 길을 간 행동가, 이회영 [길 위의 우리 철학] – 20

 

진보성

 

노블리스 오블리주와 이회영의 삶

우리 근현대사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가장 잘 실천한 인물을 찾아본다면 아마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이 아닐까 생각한다. TV프로그램이나 언론에서 ‘육형제의 독립운동’이라는 주제로 자주 다루어졌는데, 바로 이회영 집안 형제들 얘기이다.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불리며 대대로 귀족의 삶을 살았던 경주이씨 상위 1%의 사람들이 600억 넘는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쾌척하고, 온 가족이 압록강을 넘어 망명하면서 고난의 삶에 스스로 앞장 선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를 두고 임진왜란 때 국난극복에 크게 공헌했던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불변의 진리 덕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고귀한 귀족의식이라던가 진짜 보수라는 칭사(稱辭)로 이회영과 그 형제들의 삶을 단평(短評)한다면 그 진정성이 외려 애처로워질 것 같다. 이회영의 삶은 가문의 명예나 유림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후대의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고 귀족적 영웅으로 박제된 자신을 원한 것도 아니었을 테니, 한 사람의 진정성을 몰라주면 그 사람의 지난 삶은 애처로워지고 만다.

‘우당 이회영 길’ 입구 안내 표지판, 사진출처 : 필자

그의 삶을 온전히 보기 위해 일단 그 삶의 자취를 찾아보는 길을 나섰다. 서울 종로에 자하문 터널 가는 길에는 우당기념관이 있어 그가 살아온 자취를 전방위로 확인할 기회를 제공한다. 여러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었지만 한 인물을 느끼기 위해서는 유적지로 발걸음이 옮겨지기 마련이다. 이회영은 서울 저동(苧洞), 지금의 중구 명동1가에서 태어났다. 이회영이 태어난 곳은 인터넷 지도검색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다. 명동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국 YWCA연합회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왼편으로 난 골목이 이회영의 옛 집터로 들어가는 입구다. 이 골목 입구에는 ‘우당 이회영의 길’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있다. 중구청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주년을 맞아, 2017년 9월 20일에 명예 도로로 ‘우당 이회영 길’을 지정하였다.”고 쓰여 있다. 건물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건물 바로 옆 작은 쉼터로 조성된 화단에 그와 여섯 형제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표석과 이회영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회영 가문은 이 자리를 중심으로 명동 일대 대부분의 땅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육형제 중 둘째인 이석영은 아버지 이유승의 사촌형이자 영의정을 지냈던 이유원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는데, 당시 이유원은 양주에서 서울에 이르는 방대한 대토지의 소유자였다. 이 때 물려받은 재산이 이회영 형제의 막대한 재력이 되었고 결국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등 독립운동의 초석을 세우는데 쓰이게 되었으니 쓰임만큼은 타인을 위해, 핍박받는 이웃의 생명과 자유를 위한 공유물로 쓰인 셈이다.

좌 : 이회영 집터 표석과 흉상 – 서울시 중구 명동1가, 우 : 쌍회정 터 – 서울시 중구 퇴계로6길 36(일신교회) *쌍회정은 아래 글 참조. 사진출처 : 필자

이런 의식이 나오려면 이른바 혁명적 성향과 맹렬한 과감성이 필요하다. 육형제 중 넷째였던 이회영은 어린 시절 이런 성향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회영의 제자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이관직은 이회영이 소년 시절부터 혁명적 소질이 풍부해서 일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자기 집안의 종들을 자유민으로 풀어주는가 하면, 밖에서는 남의 집 종들에게도 말을 높였다는 일화가 그렇다. 이런 당돌함의 배경에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의 자유만큼 타인의 자유도 존중하고 공감하는 인간적 정감의 매력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이후 보이는 신분제도에 대한 반대는 여기서 출발했다. 익숙한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그래서인지 그의 학문 성향도 옛 경전을 공부하기 보다는 새로운 서구 지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이런 성향은 청년 시절 양명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던 배경으로 보인다. 성리학이 계급적 질서의 옹호차원에서 이해되며 현실을 타개할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는 학문으로 인식될 때 양명학의 지행합일적 주체의식은 자기 안의 양지(良知)를 현실을 자각하고 개혁할 수 있는 중심핵으로 삼는다. 학술을 통한 능동적이고 자신감 있는 자기의 탄생이다. 이회영에게 양명학은 곧 자기 행동의 준거였다. 박은식 같은 인물이 참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양명학을 자기 학문의 중심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파격적 삶의 행보 : ‘시대의 모순에 반역하다’

이회영은 일찌감치 과거에 급제한 아우 이시영과 달리 관직에 나가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엄중한 시기에 관직은 중요하지 않았다. 부패한 관계(官界)에 대해서는 혐오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나중에는 아예 출사를 거부했다. 그의 이런 출처관(出處觀)은 『논어』에 ‘천하에 도(道)가 있으면 나타나 벼슬하고, 도(道)가 없으면 숨어야 한다’,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는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道)가 없을 때는 부귀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의식과 일치한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옛 것을 거울삼아 현실을 인식하고 자기 행위를 통제하는 실천의 폭을 확장한다. 위정척사론자들이 봉건적 사회문화의 자장 위에서 익숙한 것을 ‘지키거나’, 아니면 ‘숨거나’·‘부끄러워’하는데 그쳤지만 이회영은 시대의 변화에 맞게 처신하여 그의 다섯 사촌 형제들을 삭발하여 신식 학교에 보내거나 그가 20세 전후 되던 시기에는 과부가 된 여동생을 전격적으로 재가시켰다. 봉건적 사회 잔재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었다.

이회영의 행보에서 상동교회(감리회)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재 상동교회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 30(남창동 1-1)에 있지만 당시 상동교회는 지금 자리 건너편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자리에 있었다. 상동교회는 상·천민이 중심이었던 교회였는데 이회영은 1904년 서울 상동청년학원 학감이 되어 청년교육에 힘쓴다. 그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유나 계기에 대한 단서는 명확히 보이지 않고, 몇몇 설이 있으나 소개할 만한 사료적 근거는 희박하다. 추측컨대 신채호의 1910년 논설이지만 「이십세기 신국민」(『대한매일신보』)에서 “20세기 신국민적 종교의 가치” 운운하며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인 견해를 밝힌 사례도 있는 만큼 국민의 정신을 일깨울 종교적 구심점으로 그 기능성을 인정받기도 했고 마침 신학문에 관심이 많던 이회영이 반일운동에 앞장섰던 많은 우국지사들과 회합이 가능한 장소로 여겼기에 자연스레 귀의한 것으로 사료된다.

좌 : 예전 상동교회 자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 서울 중구 남대문로 39(남대문로3가 110) 한국은행, 우 : 현재 상동교회.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0(남창동 1-1), 사진출처 : 필자

이회영이 양명학을 공부하며 관심을 두었던 지행합일의 실천적 주체의식은 성경에서 말하는 만인 평등이나 자유에 대해 강조한 내용들과도 충분히 잘 어울리게 해석되는 시대 배경 또한 존재한다. 이 역시 그를 공명시켰을 수 있다. 여기서 이회영은 상민출신 전덕기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친교를 맺는다. 이 둘은 함께 헤이그 특사 파견에 관여하거나 1907년 4월 상동교회 지하실에서 이동녕·양기탁 등과 함께 비밀리에 신민회를 조직하는 비밀 결사 활동을 이어간다. 이런 활동의 장소가 교회였다는 점,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명망 있는 사대부 집안에서 기독교에 귀의했다는 것 자체가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일이었다.

좌 : 현재 상동교회 입구 벽면 부조, 우 : 현재 상동교회 역사 전시관. 정면 좌측 큰 초화상화가 전덕기 목사, 우측 옆에 스크랜턴 선교사, 맨 우측 아래 이회영 선생 초상이 보인다. 사진출처 : 필자

 

한국 아나키즘의 선구

이회영은 유자명처럼 사회주의 이론을 미리 학습하거나, 신채호처럼 언론계에 투신하여 신사조를 받아들인 후 지속적인 집필 과정에서 학문을 연마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회영은 당시 독립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에 주도면밀했고 무엇보다 실천과 행동을 중시한 인물로서 스스로 학술문헌을 남기거나 자기 철학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지 않았다. 전면에 나서거나 어떠한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던 성향도 저술에 신경 쓰지 않은데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점은 그래서 이회영의 철학사상을 확언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철학사상의 중심이 양명학에서 기독교 사상으로, 망명 후에는 아나키즘이 그에게 영향을 주었고 실천의 동력으로 삼았던 학문이라는 사실이다.

이회영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아나키즘의 선구로 불린다. 물론 당시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은 서구에 바탕을 둔 아나키즘의 전개와는 다르게 아나키즘을 이해했다. 이는 당시 억압적 국가로서 강도의 위치에 있던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의 한국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은 아나키즘의 무정부주의적 정신과는 다르게 모두 민족과 민중, 그리고 국가의 독립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목표를 아울러 공유하고 있었다. 아나키스트라는 이름에 민족주의자의 성격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회영 역시 그랬다. 이러한 특징은 이을규의 『시야 김종진전』에서 단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의식적으로 무정부주의자가 되었거나, 무정부주의로 전환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한국의 독립에 대한 자신의 사고와 방책이 사상적 견지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장과 상통할 뿐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이러한 면은 신채호가 1929년 공판에서 자신이 무정부주의에 기운 것은 책에서 얻은 이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 요구”에 의했다는 주장과 유사하다.

이와 관련하여 이회영은 1918년 고종의 망명을 계획했던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일부 사람들이 보황파(保皇派)나 복벽주의자라고 비판하자 신분제도 등 봉건적 제도에 반대했던 자신의 과거 사례를 거론하면서도 동시에 운동의 목적이 독립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어서, 사심 없는 공정한 민족적 양심을 지닌 이 독립운동이 무정부주의라고 한다면 “한국의 독립운동은 무정부주의 운동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스스로가 이념에 포섭되었다고 평가하기 보다는 자발적 이해의 장에서 아나키즘과 만났음을 강조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 아나키즘의 기원은 앞서 말한 민족과 연계된 바탕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민족적 상실의 탈환과 인간의 궁극적 자유를 향한 민중적 의지가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한편 이회영은 김종진과의 대담에서 조소앙과 만남 시 공산주의의 민중에 대한 정치적 지배성을 우려했던 것처럼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독립된 한국에서도 무정부주의적 자유평등의 원칙은 그대로 지켜져야 할 것을 강조한다. 또 상호부조론을 인정하면서 국가를 초월하는 자유협동체의 인류적 이상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이러한 이회영의 아나키즘에 대한 생각은 북경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910년 망명 이후 북경 시절 이회영의 거처는 상해와 만주에서 온 독립운동가들이 한번 씩 거쳐 가지 않았다면 이상할 정도로 망명가들이 자주 들렸던 곳이었다.

좌 : 우당 이회영 초상, 우 : 우당기념관 –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10길 17(신교동 6-22) 유니온빌, 사진출처 : 필자

 

종속적 삶이 아닌 자유로운 삶을 위해

1914년 5월 30일 하와이 교포신문 『국민보』에 이회영은 자신의 공화주의적 이상을 피력하는 내용으로 「한국은 어떠한 인물을 요구하는」라는 논설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는 “대영웅이 대국민 같지 못함”은 역사적 격언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영웅이 건설한 나라는 길이 가지 못하지만 국민이 합동하여 세운 국가는 운명이 장구하다”고 힘주어 얘기한다. 현실의 모순을 타개하는 힘은 몇몇 거대한 영웅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민이 평등함을 인식하는 각각의 개인들이 곧 영웅이며 자각된 그들이야 말로 자유로운 민중으로서 연합을 이루어 독립과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회영 자신이 치열하게 사상적 고민을 전개했던 아나키즘은 사실 그 이전부터 자기 안에서 배태되는 일정한 낌새가 있었다. 그는 민중의 자유와 평등한 세상을 바라던 이상을 파괴하는 강도들에게는 무력투쟁으로 대응했다. 정치적 조직의 구성에 반대하여 임시정부와 인연을 맺지 않았던 이회영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의열단형성에 실질적인 산파 역할을 했으며 항일구국연맹과 비밀 결사체 흑색공포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내가 남에게 지배 받고 싶지 않으니, 나도 남을 지배하지 않음’이라는 이회영의 원칙은 이성적으로 당연히 사람다운 사람의 길을 간 것이었고 아나키스트가 실천하며 살아가는 길이었다. 일상세계에서 자기 원칙을 지키며 살아간 인물이 통속적 세상에서 희귀한 영웅의 면모로 비춰지는 것은 그리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자취 중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쌍회정을 찾아봤다. 쌍회정은 이회영의 10대조인 이항복의 집 앞에 있던 정자다. 현재 남산자락 서울 중구 퇴계로6길 36에 있는 일신교회 자리에 정자가 있었음을 알리는 작은 명판만이 남아있는데, 이마저 도로 시설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맨 위 사진 참조) 후에 이석영 소유가 된 이 곳에서 이회영은 동생 이시영은 물론 이상설·여준·이동녕 등 동지들과 신·구 학문을 공부하고 의기 넘치는 토론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회영의 사상적 계보는 성리학에 대한 비판을 이어 자기 공부의 중심을 양명학적 지행합일에 두었고, 반일운동의 기점에서 기독교적 만민평등과 이상적 자유의 추구, 그리고 민족운동의 연장선에서 민중의 자유연합체를 구상하는 아나키즘으로 그 실천적 면모를 발전시키고 있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지행합일의 정신을 가장 중시 했던 이회영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민족을 위해, 민중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했다. 여기에는 반드시 그의 관념적 사고가 바탕 되었겠지만 그것을 알 수 있는 이회영의 직접적인 문장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와 족적에는 반드시 그 철학과 사상의 흔적이 남고 그 지점을 이으면 하나의 철학사상의 지도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실천적 행동가의 삶을 학술의 영역에서 정리한다는 발상이 온전치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지도를 통해 종속적인 삶이 아닌 주체적 인간으로서 온몸을 던져 살다간 한 인물의 궤적을 파악해서 시대정신의 전범으로 삼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다.

한편 지금도 이회영의 삶은 우리에게 온전히 다가와 있는 것 같지 않다. 수많은 수식어와 찬사가 따르지만 독립운동가와 우국지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삶의 정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목도한다. 지금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세상의 문제를 돌아보는데 도움이 되는 그의 선각적 교훈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까. 그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미래지향적 발상은 지금도 그 가치와 의미가 충분히 통한다. 그러나 그의 길을 따라가 본다는 것은 무리수이며 낭만적 상상에 그친다는 자조가 있다. 이 자조는 이 땅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이 시대의 자화상일 뿐이다. 우리 스스로가 그린 자화상을 두고 옛 이회영과는 형편이 다르니 그것은 지금 갈 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회영의 진정성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생생한 출처(出處)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 삶을 우리가 온전하게 안을 수 있다. 그의 지난 삶이 지금 시대에 외롭고 애처롭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급선무다.

 

기고자: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동양철학을 전공했고 남명 조식으로 박사논문을 썼다. 한철연 분과모임에서 한국의 근현대철학을 함께 공부한 이후 전통철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다.


블로그진 ‘길 위의 우리철학’은 한국현대철학을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한국현대철학분과’에서 만든다. ‘길’은 과거로부터의 역사이기도 하고, 오늘의 삶이기도 하고, 미래로 열린 희망이기도 하다. 그 위에 서서 우리는 언제나 어느 길이 더 나은 길인지, 바른 길인지 생각하고 선택한다. 그렇게 ‘길’은 지향志向이기도 하고, 그래서 철학이기도 하다. 한국현대철학분과는 앞으로 월 2회 블로그진을 통해 우리철학이 서 있었던 길, 우리철학이 만들었던 길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1. 광장에 서다 – 촛불의 승리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종언 [길 위의 우리 철학] -1 : 박영미
  2. 대통령 탄핵, 그 후 – 박은식(朴殷植)의 개혁론, 독립운동, 임시정부 [길 위의 우리 철학] -2 : 이지
  3. 송곡의 길가에서 최시형을 만나다 [길 위의 우리 철학] -3 : 구태환
  4. 붉은 얼굴의 경계인(境界人), 신남철 [길 위의 우리 철학] – 4 : 이병태
  5. 어린이를 노래하는 방정환을 만나다[길 위의 우리 철학] – 5 : 김세리
  6. 국가의 철학, 철학의 부재(不在), 안호상 [길 위의 우리 철학] – 6 : 박민철
  7. 정치의 중심에서 주변을 배회한 타고난 근대인 몽양(夢陽) 여운형 [길 위의 우리 철학] – 7 : 유현상
  8. 우리, 나라, 사랑 – 윤치호와 관련한 애국에 대한 단상 [길 위의 우리 철학] – 8 : 배기호
  9. 서일- 잊혀진 어느 무장투쟁 사상가의 초상 [길 위의 우리 철학] – 9 : 김정철
  10. 현상윤, 최초의 근대적 체제의 조선사상사를 짓다 [길 위의 우리 철학] – 10 : 윤태양
  11. 구도와 구세의 길, 운명적 불화 – 한용운 [길 위의 우리 철학] – 11 : 송인재
  12. 태백산에서 최후를 맞은 서양철학 1세대, 박치우 [길 위의 우리 철학] – 12 : 조배준
  13. 시대정신을 찾는 여정의 첫 발걸음: 신채호와 서울 [길 위의 우리 철학] – 13 : 진보성
  14. 큰 이룸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간 삶의 철학자, 도산 안창호 [길 위의 우리 철학] – 14 : 배기호
  15. 밑바닥에서 진리를 찾은 이- 장일순 [길 위의 우리 철학] – 15 : 구태환
  16. 서재필과 개화운동, 계몽을 통해 근대를 꿈꾸다 [길 위의 우리 철학] – 16 : 박영미
  17. 이항로의 위정척사, 당신들만의 진리 [길 위의 우리 철학] – 17 : 구태환
  18. 한국 현대 철학의 주목받지 못한 변방, 함석헌 [길 위의 우리 철학] – 18 : 유현상
  19. 유림의 정신으로 독립의 길을 걷다, 심산 김창숙 [길 위의 우리 철학] – 19 : 김세리

모든 자유는 근본적으로-자기해방(Selbstbefreiung)이다.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모든 자유는 근본적으로자기해방(Selbstbefreiung)이다.

 

박종성(한철연 회원)

 

  1. 자기해방과 해방(Emanzipation)을 구별하라

 

우리는 앞서 슈티르너가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변주하여 “네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어라”라는 주장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그가 내세우는 ‘유일자’, 곧 ‘나다움’의 철학을 의미하고 다시 ‘자유’의 문제와 연결되면서 자유가 ‘자기해방’임을 드러낸다. 못다 들은 그의 말을 들어보자. “모든 자유는 근본적으로-자기해방(Selbstbefreiung)”이다.(184) 이 말은 우선, “내가 나다움(Eigenheit)을 나에게 마련해 주는 만큼 내가 그만큼만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184) 좀 더 ‘자기해방’에 대해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는 슈티르너가 자기해방을 해방(Emanzipation)과 구별하는 지점을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기해방과 구별되는 것은 해방, 자유롭게 방면함(Freisprechung), 자유롭게 놓아줌(Freilassung)이다. 슈티르너는 이러한 구별 속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놓아줌’을 갈망하고 외친다.”고 비판한다.(184) 이렇듯 그에게 자기해방과는 다른 의미인 해방은 ‘자유롭게 방면함’, ‘자유롭게 놓아줌’과 같은 의미이다. 그는 ‘성년임을 선고하다’(für »mündig erklären)는 것을 ‘해방하다’(emanzipieren)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185) 그런데 동사 ‘에만치파레’(emancipare)는 라틴어에서 우선 타동사로 사용되었고, 또한 체들러가 번역하듯이 ‘팔다’(verkaufen), ‘양도하다’(veräußern)의 뜻이었는데, 특히 경작지를 팔거나 양도하는 것을 일컬었다. 이 동사와 명사형이 서유럽 민족 언어로, 14세기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17세기에는 영국 그리고 그 후 독일로 유입된 이후에 재귀적인 사용이 대두됐는데, 이는 성년이 됨/성숙하게 됨(Mündigwerdung)이 지니는 관습적인 의미에서 출발하여 궁극적으로는 이전의 법률 용어에서 배제되었던 자기 전권위임(Selbster-mächtigung)을 지시하게 되었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해방 9, 22쪽.) 우리는 아래의 글을 읽고 난 후에 슈티르너가 ‘자기해방’을 ‘자기 전권위임’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아래의 글을 음미해 보자.

 

자유롭게 놓아준 사람(Freigegebene)은 바로 어떤 해방된 자, 어떤 (노예에서 해방된: 옮긴이) 자유인(libertinus), 사슬의 조각을 질질 끌고 다니는 어떤 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그는 사자의 탈을 쓴 당나귀(der Esel in der Löwenhaut)처럼 자유의 겉모습 속에 있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185)

 

  1. 자기해방은 자기 전권위임’(Selbster-mächtigung)이다.

 

이제 슈티르너에게 자유롭게 놓아준 사람은 해방된 자이고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이렇듯 자유롭게 놓아준 사람은 사자의 탈을 쓴 당나귀처럼 약자의 허세, 꾸민 기세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해방보다는 자기해방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만약 내가 힘이 있는(mächtig) 존재일 뿐이라면, 나는 이미 자연히 무엇을 할 권력을 주는(ermächtigt) 존재이고 결코 다른 전권위임(Ermächtigung) 혹은 자격 부여도 필요치 않다.”(230)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ermächtigen’< (무엇의[무엇을 할]) 권력[자격·전권]을 주다>라는 단어를 소유와 연결시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의 소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나의 안에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네! 나는 어떤 소유에 대한 정당한 권리가 있는가? 내가 나에게 –무엇을 할 권력을 주는(ermächtige) 모든 것에 있다. 내가 나에 소유를 취함으로써, 혹은 나에게 소유자의 힘(Macht)을 주고, 전권(Vollmacht)을 주며, 전권위임(Ermächtigung)을 줌으로써 나는 소유의-권리를 나에게 준다.(284)

이렇게 보면, 그에게 자기해방이라는 것은 ‘자기 전권위임’(Selbster-mächtigung: 물론 슈티르너가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진 않는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자기해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 이유는 “대상성(Gegenständlichkeit)의 힘으로부터 해방시키지(befreite) 않기 때문”이다.(94) 그리고 표상의 신성함에 대한 존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현대적인 시대는 단지 실존하는 객체, 현실적인 권력자(Gewalthaber) 등등을 표상된 것(vorgestellte)으로 변화시켰는데(verwandelte), 다시 말해 그 이전에 관념(Begriffe) 속에서 오래된 존경을 상실하지 않았을 뿐만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된 존경이 강하게 증가했다.(94)

 

그는 표상을 도덕성과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덕(Sitte)과의 결별을 선언하지만, ‘도덕성’(Sittlichkeit)이라는 표상(Vorstellung)과 결별을 선언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96) 예를 들어 ‘가족’이 어떤 신성한(heilig) 관념이기 때문에, 개인들은 신성한 관념을 결코 모욕해서는(beleidigen) 안 된다는 것이다.(95) 나아가 “이러한 가족은 어떤 생각, 관념으로 내면화되고 지각할 수 없게 된 가족은 이제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는데, 바로 그 신성한 것의 전제정치(Despotie)은 열 배나 더 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신성한 것의 전제정치는 내 양심 안에서 떠들기 때문이다.”(96)

 

 

  1. 신성한 관념이라는 전제정치를 깨부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Nichts)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정치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은 다시금 유일자의 존재론인 ‘창조적 무’이다. “가령 표상된 가족이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Nichts)으로 될 때, 이러한 폭정은 부서진다.(96) 이러한 폭정을 부수는 것이 다름 아닌 유일자의 나다움을 찾는 것이고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며 자기해방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자유라는 말의 의미이다. 그가 말하는 ‘자아’가 다음과 같음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는 공허함(Leerheit)의 의미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das Nichts)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적인 아무것도 아님(das schöpferiche Nichts), 곧 아무것도 아님에서 나 자신은 창조자로써 모든 것을 창조한다.(5)

 

‘Nichts’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non ens)이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무(Nichts)의 지위는 슈티르너 철학의 존재론의 핵심을 잘 드러내고 있는 “창조적인 아무것도 아님”을 정립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매순간마다 자신을 그때그때 최초로 정립하거나 창조하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 것이다.”(167) 이는 활동적인 자아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자아의 활동성은 유적 본질의 부정으로 나아가고 창조적 무를 긍정하게 만드는 계기(monent)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존재론은 부정의 활동을 통하여 끊임없이 창조적인 자아로 회귀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고정된 자아는 존재할 수 없고, 오히려 끊임없는 부정의 활동으로 자아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Göttliche’, 곧 신적(神的)인 것이라는 말, 다시 말해 ‘거룩한 것’이라는 말은 크고도 성스러워 함부로 했다가는 큰일이 나는 어떤 대상을 수식할 때 쓰는 말이다.(빌헬름 바이셰델, 안인희 옮김, 『철학의 에스프레소』, 프라하, 2012, 30쪽.) 이것에 대해 슈티르너는 비판을 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일자, 나다움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그보다 더 높은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슈티르너는 모든 거룩한 것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그에게 권리, 국가, 사회, 인간, 인간적인 것, 하물며 가족, 이념, 소명 등을 거룩하게 하는 모든 것은 비판의 대상일 뿐이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거룩한 것에 대한 비판이고 거룩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대한 경멸이다.

이러한 거룩한 것, 신성한 것은 일반적인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에게 ‘일반적인 것’(allgemeine) 또한 비판의 대상이고 무관심의 대상이다. 일반적이란 말은 하나의 집합에 속하는 모든 대상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특수, 단일과 대조적인 말이다. 일반적(general)은 유, 기원을 뜻하는 geus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그가 유적존재를 비판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일자는 이러한 일반적인 것에 무관심하며, 오로지 다음과 같은 점을 고수한다.

 

  1. 염려하라, “나에게 있어서 나 이상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에게 있어서 이상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Mir geht nichts über Mich!)(5)

 

위 구절과 유사한 말이 그의 저작에서 몇 번 더 언급된다. 그는 출판물을 예로 들어 소유 문제와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출판물은 나에게 있어서 이미 나 이상의 것은 아무 것도 없는(Mir nichts mehr über Mich geht) 순간부터 나의 소유이다.”(316) 이와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인류, 이념: 옮긴이)은 나에게 있어서 내 위에 있는 것이다.”(es geht Mir über Mich.”(341) “내 아래에 있는 모든 참들은 내게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내 위에 있는 어떤 참, 곧 내가 나를 참에 맞추었어야만 하는 참을 나는 알지 못한다. 나에게 어떤 참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 이상인 것은 아무것도 없기(über Mich geht nichts) 때문이다! 나의 본질(Wesen)조차, 내 위에(über Mich)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본질조차 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정확히 말해서 이 ‘양동이에 있는 물방울’, 이 ‘중요하지 않은 인간’이 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399)

그런데 “참, 인류 등등과 같은, 모든 더 높은 본질은 우리보다 상위에(über) 있는 어떤 본질(Wesen)이다.”(40)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일자가 염려해야 할 것은 나의 자아, 유일성, 나다움이다. “너의 고유한 자아(Dein eigentliches Ich)를 위해 염려하는(sorgest) 것이 필요하다.”(31) 염려한다(sorgen), 염려(Sorge) 단어는 슈티르너가 자주 쓰는 단어인데, 특히 유일자를 개념화 하는 중요한 단어라고 본다. 유일자는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염려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나다움’,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신성한 것에 대한 탈신성화의 선포가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자기해방, 곧 자유를 염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일자를 주장했던 슈티르너가 죽은 뒤 한참 뒤에 하이데거는 ‘염려’를 자신의 존재론적 명칭으로 사용한다.

심려(Sorge, 염려, 마음씀)는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말이다. 하이데거에게 현존재의 존재를 특히 심려(Sorge)라고 이름 짓는다. 이는 순전히 존재론적-실존론적 명칭이다. 심려는 그야말로 세계-내-존재를 전체로서 특징짓는 존재론적-실존론적 명칭이다.(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그렇다면 ‘창조적 아무것도 아님’이라는 존재론에서 유일자가 ‘염려’하는 것은 바로 ‘고유한 자아’이다. 결국 슈티르너의 존재론은 고유한 자아, 나다움, 자기해방, 나아가 자기 전권위임을 염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미 확인했듯이 이것이 자유이다. 그런데 “자기를 벗어난 노력과 염려(Sorgen)는 자기폐지(Selbstauflösung)”이다.(39) 다음호의 글의 주제가 정해졌다. 자신을 염려하지 않는 자는 자기폐지이다. 그의 책에서 끝으로 말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나의 힘(Gewalt)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유일자(Einzigen)로 이해할 때, 나는 나의 힘의 소유자이다. 소유자 자신은 유일자 속에서 자신의 창조적인 무(Nichts)로 되돌아간다. 그는 자신의 창조적인 아무것도 아님(Nichts)에서 다시 태어난다. 신이든, 인간이든지 간에 나보다 더 위에 있는 모든 더 높은 존재(Wesen)는 나의 유일성(Einzigkeit)에 대한 느낌을 약화시키고 내가 나의 유일성을 의식할 때(der Sonne dieses Bewusstseins)에만 빛이 바랜다. 만약 내가 나 자신 위에 나의 관심사인 유일자를 세운다면, 그때에 나의 관심사는 무상함(Vergänglichen) 위에, 곧 자기 자신을 소비하는, 그 자신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창조자 위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도 좋다.

나는 나의 관심사를 무(Nichts) 위에 세웠다.

스페인 내전과 자유에의 욕망(下) [톡,톡,씨네톡]

이 글은 2018년 5월 9일 이대 철학과 영화제에서 상영한 <토지와 자유>를 보고, 20분 정도 스페인 혁명의 사상적 의의에 대해 발표하고, ‘예스터데이’ 뒤풀이 자리에서 간략하게 토론한 글을 수정한 것이다.

 

스페인 내전과 자유에의 욕망()

 

이규성(한철연 회원,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2. 무정부주의와 가장 현실적인 욕망

 

무정부주의는 원래 민중의 협동심과 공감능력을 믿는 성선설을 선호한다. 특히 개체의 자발성과 활력을 강조하며, 생명에 대한 외경심도 존중한다. 자발성을 누르는 모든 권력을 비난한다는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초월적 지배자나 권력 혹은 제일 원리를 의미하는 아르케(arche)를 부정한다는 反권력주의(Anarchism)를 의미했다. 이에 비해 레닌주의는 민중의 혁명성을 찬양하면서도, 자발성의 한계를 강조하고, 합리적 조직능력과 지도력을 갖춘 주체적 의식성을 강조한다. 무정부주의자는 이를 퇴행적 부패의 원인으로 규정했다. 《토지와 자유》에 나오는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자와의 갈등에는 두 이념 간의 사상적 차이가 연관되어 있다. 한국의 독립운동사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무정부주의자들과도 교류한 한국 민족 해방군 일 천명{지도자는 대한독립군 총재인 大倧敎 宗師 서일(徐一, 1881~1921)}이 이르쿠츠크에서 공산주의 군대에 포위되어 무장해제를 강요받아 교전 끝에 반절이상 사상자가 발생하고, 후퇴하는 중 만주 군벌 친일 마적 떼의 습격으로 거의 괴멸되자 자결한다.(자유시 사변).

 

스페인 내전은 1934년 선거에 의해 민주 세력이 집권하자 프랑코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군부 가 독일과 이태리의 군사 지원에 힘입어 일으킨 쿠데타로 시작한 내란이다. 우익 세력은 군부와 왕당파 및 스페인 가톨릭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모두 독일의 국가 사회주의(나치즘), 이태리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에 친화적. 이에 비해 민주 공화파(스페인 인민전선)는 개혁 자유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코민테른 산하의 공산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등으로 구성. 타국의 급진주의 행동가들도 혁명 운동에 참여하여 국제여단을 구성. 사회주의자인 헤밍웨이도 기자이자 전투원으로 참전. 스페인 내전은 거의 모든 현대적 이념들이 각축하는 가운데,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혁명운동. 그것은 국제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으며, 2차세계대전의 전초전이 되었다.

 

“스페인 사회혁명의 중심에는 세계의 다른 어느 곳보다도 스페인에서 꽃피었던 신념의 추종자들, 곧 무정부주의자들이 있었다. 자유주의적 공산주의, 혹은 국가 없는 공산주의를 믿는 무정부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경찰, 왕실, 돈, 세금, 정당, 가톨릭교회, 사유재산을 사라져야 할 것으로 보았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상호부조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간본능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고 믿었고, 이러한 본능을 자유롭게 펼침으로써 공동체와 작업장을 민중이 직접 운영하면 된다고 믿었다.”1)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궁극적으로는 근대국가 폐지라는 무정부주의 이상을 채택하지만, 과도기로 설정된 당 중심의 국가체제를 인정한다. 혁명 초기에 레닌은 국유화를 통해 토지를 재분배하고, 시장경제를 용인하며, 주요 산업을 국유화했다.(이를 자본주의적 길이라고 명명). 모든 평의회(소비에트)는 당 정치 위원회에 종속되어야 했다. 후에 국가 주도로 집단농장화를 강제 시행하여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사회주의 목표를 이탈한다. 이에 따라 스탈린 체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의 당이 지배하고, 과도하게 정치화된 국가체제는 ‘전체주의적 관료주의’(트로츠키)를 닮게 되어, 급진주의 사상가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무정부적 혁명 이념이 물물교환을 인정할 정도로 순진하여, 복잡한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현실화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왜곡된 관료주의적 사회주의 이념을 수정할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스페인을 달군 뜨거운 혁명의 시대가 이처럼 큰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알기란 어렵지 않다. 부를 공유하고, 공장도 노동자들이 소유하며, 토지의 주인 또한 농민이고, 비록 아직은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방식일지라도 예전에 비해서는 한층 직접적이 된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요컨대 이상주의자들이 1세기 넘게 꿈꿔온 세계가 펼쳐진 시대였기 때문이다.”2) 소규모 연합체들의 연합체를 국가로 생각하는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는 1910년대 이회영, 신채호, 유자명, 백정기 등 한국 독립 운동가들이 광복 이후 건국 방략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것은 억압과 착취가 현존하고, 정치적 공포가 남아있는 한, 현실에서 완전히 주어질 수 없는 것일지라도 백일몽처럼 나타나 실천적 사상을 이끌어 갈 것이다. 헤밍웨이의 ‘노인’은 ‘바다’의 푸른 정신을 가지고 반동세력(상어)이 뜯어 먹어 가시만 남은 청새치(이념)를 잡아 가지고 돌아와 강건한 실천을 상징하는 사자의 꿈을 꾼다. 현실적 실패는 있어도 이상을 향한 의지는 패배를 모른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노인과 바다》의 메시지는 《토지와 자유》의 메시지와 유사하다. 《전쟁과 평화》에서의 톨스토이가 민중을 지나치게 이상화하여 역사의 주체라고 주장한 것도 초월적 지배 권력이 민중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진실에 대한 욕망을 자극한다. 진실에 충실하고자 하는 욕망은 조직 권력에 대한 충실과 분리된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https://t1.daumcdn.net/cfile/151C254B4DB580F433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악의 세력에 저항하는 산하대지[山川]의 생명을 바탕 삼은 심성은 자유주의도 레닌의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민중적 생명 공생주의를 지향한다. 친일파에게 빼앗긴 토지를 되찾아 무상으로 재분배하는 서희를 통해 땅은 재물이 아니라 상생을 위한 일시적 공유물이라는 동학사상이 재천명된다. 생명의 사회적 실현[氣化]은 평등한 자유를 실현하는 생명주의 윤리이자 불교적 연민을 현세에서 구현하는 심미적 진실이었다. 恨의 정서는 악행으로 왜곡될 수도 있지만, 부정당한 인생을 다시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진실을 품은 긍정의 정서이다. 이 또한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의 생명 사상과도 상통한다. 유토피아를 향해 진격하는 세르반테스의 행동주의 정신인 돈키호테도 대지 품에서 공생하던 황금시대를 꿈꾸고, 그것을 부분적이나마 실현하는 제자 산초 판사를 남기고 죽는다. 스페인의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산초 판사들이라 할 수 있다.

 

장발장의 고난과 사업을 통해 자본주의의 윤리적 책무를 강조하는 빅톨 유고는 레미제라블의 1장에서 라이프니츠와 같은 카발라적 생명철학으로 ‘지렁이와 소크라테스의 동일성’을 설파하고, 민주 공화파의 정치해방과 사회적 연대성을 옹호한다. 초인의 초월성[차이성]만을 본 니체와 하이데거는 다수성과 평등한 동일성의 진리를 대중적 가축 떼의 사상으로 폄하한다. 이에 비해 동학의 초인은 민중의 고통과 같아지는 내재적 동일성을 실현한다. 즉 생명에 대한 내적 자각과 세속성의 분별을 극복한 내외(자아와 세계)의 통일성에서 진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데카르트와 같은 인위적으로 고립시킨 자아의 자명성에 근거한 철학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한다>는 민중적 지성을 발전시킬 필요성이 나온다. 스페인 내전기의 공화파의 자유를 향한 욕망은 부조리한 현실에 사는 모든 사람의 ‘희망’(스페인 내전을 다룬 앙드레 말로 소설의 제목)이다.

 

1905년 러시아 2월 혁명 전의 짜르 체제에서 사회모순에 대한 저항을 유대인에 전가하는 상황에서 무고하게 살인자로 몰린 야콥 복(Yakov Bog)의 재판과 저항을 그린 소설 《수리공The Fixer》(국내 번역: 김재현 옮김, 〈키에프의 신화〉, 한신문화사, 1987. 광주항쟁 직전에 영화가 방영된 적이 있음)은 스피노자 철학을 밤 세워 읽고 자신의 수난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적 변화를 경험한다. 정치적인 것을 자신과 관계없는 특정 인간에 한정하던 이전의 비정치적 관점이 아무도 정치적인 것과 분리될 수 없다는 인간 조건을 인식하게 된다. “모두가 유대인이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존재로 변화하여, 저항의 길을 가는 자유의 꿈을 꾸게 된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인간관의 전신인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는 신체적 욕망이 공포와 슬픔이라는 수동성에서 기쁨이라는 능동적 구조로 변화되고, 아울러 이성을 통해 타인과의 유익한 관계를 확산해 가는 관계의 사상을 인식함으로써 자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을 설파한다. 공포와 슬픔은 폭정과 이를 축복하는 종교의 산물이라는 것이 그리스 유물론을 시로 표현한 루크레티우스(Lucretius, BC, 96~55)의 《De rerum natura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우주는 생명의 여신 비너스의 령으로 충만한 생명계임을 주장, 원자들은 그 안에서 존립)의 기본 주장이며, 이 명랑성의 회복은 스피노자와 마르크스의 인성론의 목표였다. 야곱 복은 감옥 속에서 자신의 내적 변화의 귀결을 간수장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의 목적은 타인을 위해 자유를 창조하는 것이다(The purpose of freedom is to create it for others).”(《The Fixer》, Penquins Book, p. 286. / 〈키에프의 신화〉, 304쪽). 이제 철학은 자유에의 욕망을 도덕적 양심의 근원적 실재로 보는 관점을 우리의 역사적 교훈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맹자는 거지도 발로 차면서 발을 주면 받지 않는다 했다. 이 부정의 의지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인간 현실일 것이다.

 

【참고】 로베스피에르는 개인들의 정치적 자유의 이념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적 사회관계에서 농민과 노동자는 엄연히 노예상태로 존속했다. 사회주의는 이 상황을 극복하려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로베스피에르는 당시의 경제적 사회관계가 민주주의의 대의에 심각한 장애가 되며, 평민이 상공업자의 지배에 만족하거나 그것을 요구하는 한, 프랑스 혁명은 군사독재의 희생물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가 부르주아 세력에 의해 단두대로 사라진 다음, 귀족과 대 부르주아가 지배력을 회복하게 되면서, 로베스피에르의 예언은 들어맞게 된다. 그의 사후 이를 깨달은 사람들이 생기는데 바쿠닌과 같은 무정부주의자, 푸리에와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의 노동영역에서의 사회적 관계가 갖는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자들의 사회 이상(사회주의)을 <경제해방> 혹은 <사회해방>으로, 진보적 자유주의자가 말하는 개인의 정치적 권리를 <정치해방>으로 하는 두 해방의 이념을 제시했다. 민주주의는 이 두 가지 민주화를 목표로 갖는다. 전자는 기존 사회주의의 장점을 발전시키고, 후자는 기존의 부르주아 자유주의가 성취한 민주주의 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자신들의 이념을 사회적 민주주의, 인민 민주주의, 구체적 민주주의로 불렀다. 레닌도 그것을 사회 민주주의로 불렀다. 러시아 혁명 이후 민주주의를 진부한 부르주아 사상으로 몰고, 사회주의와 대립시키는 왜곡이 일어나 양자는 분리되게 되었고, 사회 민주주의는 유럽의 점진적 사회당의 이념을 의미하는 것으로 좁혀지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 퍼진 레닌주의는 경제해방과 정치해방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론과 당 조직론을 더 한다. 그러나 이 레닌주의 체제는 파리코뮌의 자유정신을 계승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근대국가인 억압적 기계 장치로 보일 수 있었다. 스탈린 체제에 대한 트로츠키의 비판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마르크스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빌미가 되었다. 중국혁명사에서도 공산당의 창시자인 진독수(陳獨秀)의 민주주의 요구는 우경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혀 오늘의 시진핑 체제에 이르기까지도 복권되지 않고 있다.

 

스페인 내전에서는 무정부주의 전통이 강한 카탈로니아 지역과 그 수도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무정부주의와 러시아와 연결되어 조직화되어 있는 공산주의자와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말은 무정부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공통된 것이지만, 레닌주의는 당 권력의 군사적인 수직적 합리성에 대한 신앙 때문에 물리적 혁명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지만, 국가 권력형 범죄를 양산했다. 레닌의 사상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강고한 관료주의 국가 범죄 때문에 정신적으로 패배한 이념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코뮌은 인민공사(人民公社)로 불렸는데, 위로부터의 조직화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나 실패로 끝나고, 진정한 민주적 사회주의를 요구하는 민간 급진주의가 문화혁명 기간에도 나타났다. 모택동과 보수적 당권파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민간 급진주의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자본주의적 요소를 시회주의에 이르는 과도적 단계로 활용한다는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을 따르는 현 중국 체제는 유교부흥 운동과 결합되어 관료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심각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역시 정치민주화를 넘어서는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의지는 자유에의 욕망을 가진 개인들의 연합을 통해 자유를 실현하고자 한다.

 

1) Adam Hochschild, 이순호 옮김,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갈라파고스, 2016, 80쪽.

2) 위의 책, 3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