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정신과 표현 기호로서 예술-헤겔 미학 산책』(이병창 지음|먼빛으로|(2024년 8월 23일) [한철연 소식]

『정신과 표현 기호로서 예술-헤겔 미학 산책』(이병창 지음)

 

이병창 회원이 웹진 <이(e) 시대와 철학>의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코너에 연재한 <헤겔미학산책>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책 제목은 『정신과 표현 기호로서 예술-헤겔 미학 산책』(2024)입니다.

<헤겔미학산책>은 2023년 11월 6일 1회를 시작으로 2024년 5월 12일 60회까지 이어진 웹진의 대표 연재물이었습니다. 상당한 분량의 연재 글이었습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받았고 2024년 8월 23일 책으로 출간되어 이제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e) 시대와 철학> 입장에서는 매우 뜻 깊은 출간입니다. 오랫동안 헤겔 철학을 연구해 온 이병창 회원의 생동감 있으면서 명확한 전거를 제시하며 풀어가는 헤겔 미학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보시길 바랍니다.

 

♦ 책 소개

헤겔은 예술을 사랑했고 예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미학자였다. 그의 저서 『미학 강의』는 예술에 관한 일반 이론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으로 출현한 예술 형식을 구체적으로 탐구했으며, 예술 장르의 기본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 분투해 마지않았다.

헤겔은 예술이 유희나 장식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형식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 독일은 분열되고 봉건적 억압 아래 있었으니, 그는 예술을 통해 민족의 자유로운 공동 의지가 형성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헤겔은 예술의 분석에서 현대의 기호학적인 방법론과 닮은 방법론을 사용했다. 그에게서 예술은 정신을 표현하는 기호이다. 그는 표현 기호라는 개념을 예술의 역사뿐만 아니라 예술 장르의 개념에도 적용했다.

저자는 헤겔 미학의 본질을 60개에 걸친 물음을 던지면서 분석한다. 저자가 던진 물음은 예를 들어 고전이냐 근대냐, 리얼리즘이나 표현주의냐, 상징이냐 현상이냐 가상이냐 등과 같은 물음이다.

저자는 이런 물음을 통해 헤겔 미학에 관한 다양한 오해를 제거하고자 한다. 흔히 헤겔은 고전주의자로 알려졌지만, 저자에 따르면 헤겔은 근대 낭만주의 의 가상 미학에 더 관심을 가졌다. 가상은 자기 부정을 통해 정신을 표현하는 예술 작품을 말한다. 헤겔에게서 근대 예술은 사실적 경향성을 가지면서도 정신적 생동성을 표현하며, 그 핵심 기법은 색채의 마법이나 음악적 방법에서 보듯이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에 있다.

 

저자 소개

-저자 이병창
서울대학교 철학과 수학, 서울대학교 철학박사, 동아대학교 철학과 교수, 2011년 2월 명예퇴직, 현대 사상사 연구소 소장
헤겔철학과 정신분석학 및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면서 문화철학 및 영화철학을 연구한다.

-박사학위 논문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정신 개념에 대한 연구, 서울대, 2000

-주요저서
『영혼의 길을 모순에게 묻다(헤겔 정신현상학 서문 주해)』, 먼빛으로, 2010
『반가워요 베리만 감독님』, 먼빛으로, 2011
『불행한 의식을 넘어(헤겔 정신현상학 자기의식 장 주해)』, 먼빛으로, 2012
『지젝 라캉 영화』, 먼빛으로, 2013
『청년이 묻고 철학자가 답하다』, 말, 2015
『우리가 몰랐던 마르크스』 , 먼빛으로, 2018
『정신의 오디세이-자유의지의 역사』, 먼빛으로, 2021
『헤겔의 정신현상학-EBS오늘의 클래식』, EBS BOOKS, 2022
『지적 대화를 위한 교양인의 현대철학』, 팬덤북스, 2024

-번역
프리드리히 슐레겔, 『그리스 문학 연구』, 먼빛으로, 2014
프리드리히 슐ㄹ겔, 『미학 철학 종교 단편』 , 먼빛으로, 2020
마르크스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먼빛으로, 2018

 

책의 차례

들어가는 말 3
헤겔 미학 산책 1부 미의 일반 개념
1_미학이 가능한 것일까? 15
2_예술의 과거성 테제 21
3_고전이냐 근대냐? 33
4_절대정신이란 무엇인가? 43
5_예술과 종교, 철학의 등근원성 55
6_표현으로서 예술 65
7_기호와 표현 73
8_예술의 쾌활성과 목적 81

헤겔 미학 산책 2부 예술의 역사적 형식
9_예술과 시대 89
10_예술 형식 99
11_상징적 예술 형식 109
12_숭고에 관해 119
13_비유법 129
14_그리스에서 신과 인간 139
15_고전의 전형 페이디아스 149
16_고전적 예술 형식 161
17_신의 비애, 희극과 풍자 169
18_소외된 정신과 기독교 177
19_근대인과 파토스 189
20_가상과 추, 숭고 199
21_고딕 예술 213
22_중세 기사도 문학 223
22_개체적 특수성의 예술 237
24_성격 예술 247
25_모험 소설 253
26_낭만주의 해체기 예술 257
27_후마누스[Humanus]의 예술 269

헤겔 미학 산책 3부 예술 장르론
28_질료의 속성 281
29_예술가의 솜씨 291
30_모더니즘 미학의 선구 297
31_장르와 형식의 관계 307
32_이것은 건축인가 조각인가? 311
33_고대 건축과 고전 건축 321
34_고딕 건축 331
35_조각과 회화의 차이 339
36_조각의 형상화 345
37_조각의 회화화 351
38_낭만적 예술 장르가 가능한가? 359
39_색채론-괴테와 헤겔 367
40_색채의 음악, 색채의 마법 375
41_회화의 가상성 383
42_내밀성의 회화 391
43_심정의 예술로서 음악 401
44_화성과 선율 그리고 정신 411
45_수반 음악과 자립 음악 421
46_회화 음악 시문학 429
47_시와 산문의 차이 437
48_시문학의 삼각형 445
49_작가와 독자의 공동체 455
50_시문학의 장르 465
51_서사시적 슬픔 475
52_시민적 서사시냐 소설이냐? 483
53_서정시와 이비코스의 두루미 493
54_서정시와 종의 노래 503
55_연극이냐 극시이냐 513
56_극시의 구성 521
57_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과 헤겔 531
58_니체의 비극론과 헤겔 539
59_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과 헤겔 551
60_근대 극시와 헤겔 565
참고문헌 575

책 속으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이정은 지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통치자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2022)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통치자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 (2022, 저자: 이정은)

 

박종성(건국대학교 초빙교수)

 

  • ‘인민의 역량은 군주의 역량으로 인민을 이끌겠다는 인민의 결단이다!’

이정은 교수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통치자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에서 알 수 있듯이, 부제가 “통치자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이다. 이 글은 바로 그 부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통치자는 누구인가? 군주이다. 그러니까 부제를 다시 설명하면 “군주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이다. 16세기에, 군주국과 공화국에 대한 논의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국을 주장했고, 공화국을 주장한 사람은 헨리 8세 시대의 대법관 토머스 모어였다. 이와 같은 군주국과 공화국에 대한 논의는 1세기 후 필머와 로크로 이어진다.

다시 “군주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라는 문제 의식으로 돌아가자. 마키아벨리는 군주국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토를 획득하는 방법에는 타인의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와 자신의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요소로는 행운(fortuna)에 의한 경우와 역량(virtú)에 의한 경우가 있습니다.”(115쪽, 강조는 필자) 타인의 무력은 외국군이나 용병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신의 조국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무력, 곧 자국 군대를 주장한다. 그런데 자신의 무력 이외에도 “타인의 호의”가 상황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그는 이와 같은 경우를 행운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 당시 지배적이던 교황이 주던 권력 집단의 호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민의 호의’, ‘동료 시민의 호의’를 주장한다. 다시 말해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아들이 체사레이고 체사레의 조카인 로렌초의 작은 아버지가 레오 10세 교황이었다. 곧 체사레와 로렌초는 행운의 아들이었다. 마키아벨리가 행운보다는 역량을 강조하는 것은 행운의 성질 때문이다. 곧 행운의 변덕 때문이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일개 시민이 군주가 되기 위한 2가지 방법을 이야기 한다. 하나는 “전적으로 사악한 수단을 사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동료 시민의 지지를 얻는 방법”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전적으로 사악한 수단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역량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신하고, 신의가 없이 처신하고, 무자비하고, 반종교적인 것을 덕이라고 불러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권력을 잡을 수는 있어도, 영광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122쪽, 강조는 필자) 따라서 그가 주장하고 싶은 군주국은 “동료 시민의 지지를 얻는” 군주국이다. 다시 말해 그가 주장하는 군주국은 ‘시민형 군주국’이다. 그러니까 이정은 교수가 말하듯이,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군주국은 교황의 지지라는 ‘남다른’ 행운이 아니라, 오히려 ‘인민의 지지’라는 ‘일반적’ 행운에 기초한 군주국이다.(123쪽, 강조는 필자) 그렇다면 ‘인민의 지지’라는 ‘일반적’ 행운의 좀 더 구체적 내용은 무엇일까? 마키아벨리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군주가 타인을 해치지 않고 명예롭게 행동하는 것만으로는 귀족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인민은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인민의 목표가 귀족보다 더 명예롭기 때문인데, 가령 귀족은 그저 억압하려고만 드는데, 인민은 억압당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124쪽, 강조는 필자) 이제, 다시 부제로 돌아가 보자. “군주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라는 부제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인민의 ‘억압에서의 해방’이다. 인민의 ‘억압에서의 해방’은 ‘남다른’ 행운이 아니라, 오히려 ‘인민의 지지’라는 ‘일반적’ 행운이다.

정리하면, 나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는 군주국을 건설하려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안전과 평화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인민에게 평등과 자유를 누리게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인민의 호의가 없이는 군주의 통치는 가능하지 않다. 인민의 역량은 군주의 역량으로 인민을 이끌겠다는 인민의 결단이다. 이러한 군주와 인민의 상호관계를 다시금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고전을 읽는 이유일 것이다.


서평자 박종성: 건국대학교 철학과에서 막스 슈티르너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건국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고, 칼 맑스와 슈티르너 사상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 최근(2023)  슈티르너의 저작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국내에서 처음 번역하여 출간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김성우 지음, 『로크의 정부론: 권력의 기원을 찾다』(2021)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로크의 정부론: 권력의 기원을 찾다』 (2021, 저자: 김성우)

‘최고 권력자도 국민의 신탁을 받은 자에 불과하다!’

 

박종성(건국대학교 초빙교수)

 

김성우 교수의 『로크의 정부론: 권력의 기원을 찾다』에서 알 수 있듯이, 부제가 “권력의 기원을 찾다”이다. 이 글은 바로 그 부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리 말하면 ‘저항권’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 것이다. 로크에 따르면, 시민사회가 위임하고 신탁한 권력이 입법권이다. 신탁(trust)이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탁자와 수탁자가 맺은 계약을 통해 성립한다. 그렇다면 사회계약에서 신탁자는 누구일까? 신탁자는 국민이고 수탁자는 권력을 위임받은 통치자이다. 최고 권력자는 법에 의해서만 공적 인격(public person)을 부여받는다. 최고 권력자도 국민의 신탁을 받은 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권(大權)을 쥔 통치자가 국민을 해롭게 하고, 공공선에 위반하는 일을 할 경우는 독재적 권력이다. 로크는 대권과 독재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대권이란 공공선을 위해서라면 법률의 지시가 없어도, 법의 직접적인 문구에 위반하면서까지도 몇몇 사안들과 관련해서 지배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할 것을 국민이 통치자에게 허락한 것이다.”(151쪽, 강조는 필자) “독재는 정당한 권리를 넘어서는 권력의 행사이다. 어느 누구도 이것에 대해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독재는 그 권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손아귀에 있는 권력을 유용하는 것이다. 독재자는 법이 아니라 그의 의지를 규칙으로 삼는다. 그렇게 되면 그의 명령과 행동은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쪽이 아니라 자신의 여심, 복수, 탐욕 또는 다른 비정상적인 열정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향한다.”(153쪽, 강조는 필자)

그렇다면 국민의 소유(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지 못하는 권력에 대해 신탁자(국민)은 어떤 권리가 있을까? 로크는 부당하고 명백하게 불법적인 권력에 대한 저항만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오직 부당하고 불법적인 권력에만 무력으로 대항 할 수 있다. 이와 다른 경우에 대항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신과 인간에게 정당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155쪽, 강조는 필자) 이러한 조건 속에서 로크는 내부적 정부의 해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입법부나 군주 중 어느 한쪽이 신탁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입법부는 국민의 재산을 침해하려 할 때나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일부를 지배자로 내세우고자 할 때, 신탁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이때 지배자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을 자의적으로 처리하는 독재자가 된다.”(157 쪽, 강조는 필자)

요컨대 국민의 소유(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을 지키지 못하면 부당하고 불법적 권력이다. 그리고 그 권력에 대해서만 저항권을 갖는다. 로크의 질문을 다시금 들어 보자. “정부의 목적은 인류를 이롭게 하는 데 있다. 그러면 다음 중 어느 편이 인류에게 더 나은가? 국민이 독재자의 한계 없는 욕심에 노출되어 있는 쪽인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여 국민 재산을 파괴하는 독재자에게 때때로 저항하는 쪽인가?”(158-9쪽, 강조는 필자) 재판관은 누구인가? “통치자가 먼저 약속을 위반한 경우에는 통치권이 다시 사회로 돌아가며 국민은 최고 권력자로서 행동할 권리를 갖게 된다. 국민은 스스로 입법권을 계속 가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것인지, 아니면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입법권을 새로운 사람들에게 맡길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159쪽, 강조는 필자) 이와 같은 질문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결정할 것인가? 그것도 우리 스스로 말이다.


서평자 박종성: 건국대학교 철학과에서 막스 슈티르너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건국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고, 칼 맑스와 슈티르너 사상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 최근(2023)  슈티르너의 저작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국내에서 처음 번역하여 출간했다.

자유, 철학의 역사에서 ‘뭣’을 다루는 방식들 [천 하룻밤 이야기]

자유,

– 철학의 역사에서 을 다루는 방식들.

— 2024 08 22 처서(處暑): 더위가 물러나려나.

류종렬(한철연 회원)

 

서양철학사는 인간의 지식 또는 인식의 발달사일까어쩌면 서양의 학문은 늦게서야 철이 들어 인간이 자연 속에서 무엇이며어떤 지위를 갖는지를자연의 거울에 비추어 반성하는(speculation)것이 아닐까이제 신의 이야기는 허구(우화또는 수많은 파라독사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고.

서양 사상사에서 인간이 자기의식 또는 자의식을 갖는 시기를 르네상스 이후 데카르트에 와서야 신학에서 벗어나 두 가지 실체를 주장하면서또는 주체과 객체의 관계를 설명하려는 시기에 나왔다고 한다그 자의식에서 문장과 판단에서 주어 문제이기도 하고두 실체에서 사유의 실체만큼이나 너비의 실체도 그와 상응한다고 하는 점에서주어 또는 주체가 주도권을 지니는 관념적 성격에서 나왔다고 한다그럼에도 인류라는 종이 자연에 대해 지배권을 갖는다고 여기는 시대가 되어서야 인간이 주체로서 지위를 갖는다고 한다이런 의미에서 볼때 인간은 르네상스 이후 과학 발달로 자연을 인간의 도구로서 생각하는 경향 위에서 주인의 역할로서 주체이다르네상스가 중세 종교의 시대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인간은 종교적으로 신의 부속물 또는 대리자로 생각하기도 하였다그런데 그 대리자가 신과 연관에서 벗어나종교에서 신의 피조물인 자연의 이법(la raison)을 인간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두 실체론(이원론)에 들어있다.

그런데 스피노자에게서는 신의 피조물인 자연이라기보다 자연의 자기 발생의 능동적 능력도 있음을 보았고데카르트 이후에 이분법의 주체인 사유와 마찬가지도 객체인 물체의 운동에도 능동적 성격(신체의 감정적 성격)을 부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이 주체로서 자연 속에 제국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l’illusion)하면 안된다는 것이다말하자면 자연의 자기 풀림 또는 전개(발전)이 인간에 의한 것도 인간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이 자연의 풀림과 같은 방향(봉상스)로 나가는 인간의 풀림이 상응할 수 있다는 것으로 여기는데이를 평행적이라고 보는 것은 오해이다자연의 생성과 전개인간의 파악과 추리이 둘은 평행도 대칭도 아니며 각각이 다른 계열이다이를 당시의 수학적 방식으로 설명을 뿐이다르네상스 이후 17세기 철학자들은 인간이 독자적인 인식능력을 갖고 있음을 증명하고 증거하려고 했기에 수학적 방식들을 동원하였다그 수학들은 증빙자료를 제시하기보다자료들을 체계화하고 정합성을 유지하려 했으며그 질서가 있음을 아는 인간이 주체로서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그럼에도 후대의 철학자들은 이들이 인간의 개별성이라든지인간 의식의 시간지속성을 설명하지 못했다고 본다말하자면 시대와 세기를 거치면서 인간이 동일한 역할즉 개인의 동일 정체성이 시대를 거쳐서도 동일성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를시대의 한계로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살아온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서술은 고대에도 있었다그리스에서 가이아우라노스(하늘시대크로노스(시대제우스 시대 등으로 변전의 과정이 있었다이 우화적 이야기를 고대 시대의 변화들에 관한 알레고리라고 하더라도인간 사유의 변화와 연관을 설명하는 것 같지는 않다몇몇 역사가들이 시대의 과정에서 중요한 고비들을 서술하는 연대기나 사건들의 기록들이 역사적 과정과 변화에 관한 규칙 또는 법칙을 찾기보다 사실의 기록으로 후대의 참고로 삼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양의 감()과 서양의 사변(spéculation, 비춰봄)이 등장하는 것도 시기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다양한 자료들에 대한 검토가 시대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동시에 한 평면위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비추어보는 것이지만사유의 차이를 대조(le contraste)하는 것이다대조는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틀리다는 것이 아니라경우(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른 적절한 처방 또는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그래도 13세기는 대조의 시대라 한다).

이런 사유가 르네상스 이후에우선은 두 가지 방식사유와 운동또는 영혼과 신체 인 것으로 보이지만인식적으로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대비로서종교적으로 정신과 물질로서 생각하는 경향을 또는 양식(bon sens)을 갖는다시대가 달라도 삶의 터전이 달라도 이런 이분법적 구분에서 인간이 자연에 대한 우월성과 지도성(조작성)으로 이어질 것이다그런데 이런 이항대립에서 자의식이라는 자아가 나오는 것인가인식과 형이상학의 문제로 남는다삶의 터전에서 대조란 소수의 관계와 다수의 연관들이 도덕적정치적 문제거리로 남아있다는 것을 18세기(빛들의 세기계몽기칸트 표현으로 청년기)에 와서야 인간들은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 1668-1744)는 역사의 시대구분에서 신들의 시대영웅들의 시대인간들의 시대로 나누었다고 하는데말하자면 첫째의 경우에종교의 강제적 힘 이외 다른 강제적 힘은 없었다고 한다둘째에서는 평민은 법률 밖에 있는 시대라고 하고근대에서 자연권의 관계들이 인간들 사이에 일반화된다고 한다이를 체제와 연관하여신정체귀족정체인간적 정부(가끔은 군주정체이다)라는 구별을 하였다이런 시대적 과정에 대한 통찰이 다음 시대의 철학자들에게 계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헤겔(Hegel, 1770-1831)은 역사철학 강의에서인간은 이법(이성)에 대한 깨달음에서 인간의 자유가 점점 확대된다고 보았다고대에는 황제 또는 참주의 1인의 자유의 시대였다면봉건 시대에는 귀족들이 자유를 누리고 평민을 사회적 부속물로 그리고 농노를 고대 이래로 경제적 도구 정도로 여겼다그도 놀랐던 프랑스 대혁명 이래로 시민들이 자기의 의사를 표출하고 협의하며법제적인 노력을 한다는 측면에서 시민들에게까지 자유가 확대되어 점점 자유가 인간에게 보편적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꽁트(Auguste Comte, 1798-1857)는 혁명이 질서를 혼란시키고 무정부 상태를 만든다는 이유 때문에 혁명에 대해 부정적이며사회에는 어떠한 큰 덩어리의 체제가 있고 그 내부에서 맞는 여러 제도들을 마련하는 과정으로 보았다그래서 그 제도들의 성립의 과정이 실증철학의 성립인데이러한 과정은 역사의 발전과 같은 방향을 간다고 보았다그는 학문들이 성립과 그 발전 과정들을 보면서즉 수학들이 대수학과 미적분학들로 확장되고천문학이 점성술을 넘어서 정확성을그리고 물리학이 체계와 법칙들을 세우고화학이 연금술을 넘어서는 분자들의 성격을 규명하고생물학에서 개체의 생명의 고유성이 전개되고 또한 변형이론이 나옴으로서 개인(개체)의 단위가 성립하게 되고사회 또는 국가의 체제 속에서 배제 되었던 평민의 역할이 확장되면서어쩌면 자의식의 발흥으로언론집회결사(협회정치조직)들이 이루어지면서 사회라는 문제가 제기된다고 보았다이 여섯째 등장하는 사회는 꽁트는 우선 사회 덩어리가 먼저 있다는 점에서 정태적으로 보았지만각 학문 발달의 과정만큼이 제도에서도 새로운 제도의 성립이 가능하다고 보았다그는 루소 자연권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앞 시대에 인간은 이기심을 토대로 체제가 성립한데 비해사회는 상부상조와 여러 조직체들의 협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면서지배의 이기심(l’égoïsme)과 달리 사람들 사이에 이타심(l’altruisme 꽁트가 창안한 용어이다)이 있다고 하여다음 세상은 협업과 협의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았다따라서 꽁트는 삶의 터전에서 실증성의 발전과정을 설명한다고대의 시대에 실증성이 결핍된 시대이라 젖혀두고그리고 3단계로서 신학의 시대형이상학의 시대실증의 시대라 한다실증시대의 학문은 사회학이 주축이라는 것이다.

맑스(Marx, 1818-1883)는 정치경제학을 창안하였다사회 제도와 그 체제 자체의 역사적 변화를 설명했다원시공산사회고대 노예 경제시대중세 봉건사회자본주의 사회이 사회의 자기모순에 의해 공산주의사회가 도래한다고 하였다그는 꽁트의 사회조직화와 체제에 대한 논의와 달리사회와 국가의 부의 축적과 재생산이란 측면노동상품화폐자본의 개념들을 정립하면서 생산과 소비 그리고 재생산의 과정에서 잉여와 착취를 찾아냈다이런 착취의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가치 생산의 노동을 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강조하며프롤레타리아의 자유와 해방을 주장하였다그 자본주의 사회는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생산도구를 무기로 삼고전쟁의 무기를 확장하여 대중과 인민을 겁주고 달래며잉여와 이자를 통한 착취를 이어가고 있다이런 전쟁 국가의 무너짐이 아니라 카르텔을 공고히 하는 데는 로마카톨릭의 교회조직론과 앵글로색슨의 분석논리철학과 결탁했기 때문이다.

벩송(Bergson, 1859-1941)은 역사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를 정태적으로 우주론으로 다루어서 안 되고통태적으로 우주발생론(cosmogonie)”으로 다루어야 하다고 보았다꽁트 설명이 이래로 선전제의 요청에 의해 세워진 제반 학문이 무너졌고나머지 남은 학문이 영혼(심리)학 인데이것을 기억이론으로 새롭게 정립하였다이로서 자아의 지속성을 말하게 된다과정과 강도를 높이는 노력에 의해 자아의 정립은 지속하고 있는 중이며아직 완성이니 완전이니 절대니 하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그런데 앞 시대에서는 자연의 지배를 이해한데 비해벩송은 자연의 자기생성과 자발성을즉 자연의 자기에 의한 자기 창조를 강조하였다그는 실증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사실들과 상태들에 대한 자료들은 정확성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또한 문제를 올바로 제기하면 문제는 해소된다고 보았다완전자보편자절대자라는 용어들은 선전제 미해결의 용어들로서이런 용어를 앞세워서 학문의 체계를 세우는 것은 착각에 빠진 것이며도덕과 종교의 제도를 세우는 것은 정태적 관계만을 서술하는 우화적이 된다고 보고끊임없이 노력과 강도를 높이는 개인의 영혼(프쉬케심리)의 함양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며라이프니츠 이래로 개체의 자유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보았다이런 관점에서 벩송은 서양 학문의 발달사를 상층의 이데아와 에이도스 시대에서갈릴레이의 빗금을 따라 내려와 표면에서 재현과 재생의 사실들과 상태들을 이루며이러한 표면을 성립하게 하는 것은 사물들 안에서 생성하고 생장하는 힘(충력엘랑)이 있다고 하면서생명은 내재성의 발현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표면의 일반화(개념자업)와 이에 걸 맞는 추상화로서 상징과 기호를 다룬다고 하였다.

벩송의 꼴레쥬드 프랑스 강의들을 수강했던 에밀 브레이어((Bréhier, 18761952)는 이법과 신앙의 대립에서 근대성의 발달로 실증성이 첨가되어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립된다고 보았다순수 논리와 같은 학문개별적 학문들그리고 인간관계 사실들과 사건들에 관한 학문으로 분화되는 것으로 보았다학문의 분화와 개열들에서 자유의 방향들을 제시하려 하였다.

들뢰즈(Deleuze, 1925-1995)는 벩송의 상층 표면 심층이라는 학문과 인식의 역사적 발전의 설명을벩송의 물질과 기억의 회로 이론을 받아들이면서그리고 플라톤의 영원과 시간을 퀴니코스스토아의 영원과 시간으로 바꾸어 보았다들뢰즈는 우주 발생론적 과정을 기억의 발현으로 보아심층의 생성에서 표면의 이중성 그리고 이중성의 두 방식이 하나의 가지만을 강조하는 봉상스(좋은 감관)의 길이 있다그 길이 상층의 스콜라주의이데올로기속 좁은 이성의 현상학을 만들었다고 본다그렇다면 다른 하나의 가지는 무엇인가심층의 덩어리의 생성 방식은 추리의 일반화에 의한 표면의 현상(재현시뮬라크르)와 달리 자기 발생과 자기 개체성(특이성)을 생성하고 형성하려 한다는 것이다이 생성의 현상도 시뮬라크르인데원본에 따른 현상의 시뮬라크르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근대 이후로 봉상스의 기준에서 두 시뮬라크르는 영혼과 신체의 관계의 유비 또는 알레고리로 설명하는데 비해들뢰즈는 두 시뮬라크르가 기원과 원인이 다르다고 보았다(벩송의 두 원천처럼). 이로서 들뢰즈는 벩송의 삼단계의 지식의 전개과정과 달리 발생의 도식을 만들며 달리 말한다스토아학파와도 달리 리좀(Rhizome)이란 개념을 창안하면서리좀들의 움직임과 엮음에서 나오는 배치에 따른 새로운 지도그리기(cartographie)를 제안한다(데카르트 식의 좌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리좀은 나무처럼 고정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흐르고 또 생장하면서도 흐른다그 흐름이 이익을 따라 흐르는 것 같지만자연의 자기 생성과 자기 만들기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이 흐름이 인민의 의식이며이와 더불어 인민으로서 자아의 주체성은 생성 중이라는 의미가 된다.

들뢰즈가 디지털 시대즉 규소의 시대는 속도와 강도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그는 맥루한의 이론즉 빛이 이미지들(기호들)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빛 자체가 의미 전달체이며 생성의 흐름 덩어리라는 것을 인용하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인터넷에서 다양한 빛의 정거장의 한 항(terme)이 플랫폼(정거장)이라 한다물론 다른 항들의 플렛폼도 여럿 있을 수 있다그러나 대중적인 정거장은 수렴과 발산의 점이라기보다 떠도는 리좀과 같지 않을까플랫폼이 정확한 증거가 될 수 있는지 현재로서 알 수 없지만빛의 흐름과 에너지가 우선은 선을 따라 다녔다이제는 선 없이 전 지구를 모으기도 하고 발산하기도 하면서발산과 수렴이 앞의 순간(l’instant)과 다른 순간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21세기 초반에 인민들의 손안에 든 누리소통(SNS) 도구가어느덧 제국의 도구/무기 체계를 넘어서 무기가 되어 가고 있다누리소통이 인민들 사이의 자유 또는 소통을 통한 협의와 상부상조가 아니라자본의 세 가지 세력들(국가교회구성 학문)의 패거리에게 인민을 착취하고 수탈하는 무기가 되어 가는 듯하다윤석열 정권은 미 제국의 이런 힘을 믿고 있다. 일본의 부역자밀정 노릇을 해도 누리소통을 지배하면 대중과 인민을 개돼지 취급하면서 노리개로 삼을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이런 시대에 20퍼센트 정도의 지지를 받고도 미국의 지시를 받은 일본그 일본의 사주를 받는 밀정과 매국노가 누리소통을 지배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그게 실현이 될까이광수와 부역파들이 일본이 이렇게 빨리 망할 줄 몰랐다고 했듯이부일자들과 밀정들이 또 한번 이런 말을 한다면한번은 비극한번은 희극이 아니라역사의 발전에서 3패거리들의 박멸과 소멸을 하지 않는 한상식의 믿음을 확장한 양식의 외연확장은 소수의 이기심(탐만치)으로 전승될 것이다그래서 혁명은 당연하다혁명은 이기심이 악라는 것을 증거할 것이며이기심이 자연을 피폐하게 하고 인간도 피폐하게 하여왔다는 것을 증거하는 장면이 될 것이다.

세 패거리의 인식론이 탐만치에 빠져있다는 것이다그들의 행동에게 욕망이라 부르자 말라 그것은 탐욕이며그들에게 보편이라 부르지 말라 인민은 보편을 추구하지도 말하지도 않았다는데 그 보편이 맞다고 오만하게 떠든다부를 누리면서공공적 이익을 사적으로 횡령하는 이들에게 무슨 보편이 있는가부일자 숭일자모미자(숭미자)들의 치졸함은 그들은 그들 자신이 공부하지 않고자주와 자치를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미국의 말을 듣고 일본에게서 가져오면 된다고 한다일제 말기에 부일자 또는 밀정들이 되었던 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그러나 1446년 훈민정음 이래로 자의식 발동이 이었지만 느리게 진행되어심층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지만한자 문화 속에서 표면으로 올라올 수 없었다한글로 입말을 쓴지 79년인데 이 속도와 강도는 이전 600년의 속도보다 빠르고 강도가 높다누리소통이 79년의 흐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의 발산과 수렴이 있다이 효과가 인지 아무도 모른다단지 강도와 속도만큼이나 인민의 노력에는 내공이 쌓이고 있다.

심층의 발산 곧 자유의 분출은마치 혁명처럼간헐적이고 폭발적이다누리소통 시대에 균열이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시대의 균열로 흐름은 자연의 자기에 의한 자발성으로 솟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4:18, 57SMA) (4:41, 57SMB) (5:09, 57SMBB) (5:11, 57SMC)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플라톤과 베르그송)』(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4-본질에서 힘으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4-본질에서 힘으로

1)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등장하는 실체 개념을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실체는 자기를 통일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지속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실체는 개체를 통해서 자기를 재생산하는 가운데 지속한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진정한 실체는 개별자가 아니라 종적 본질이다. 종적 본질은 개별자를 징검다리로 해서 자기를 지속한다.

여기서 지속이란 곧 시간적 지속을 의미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는 무규정성이 들어 있고 이는 시간적으로 존재를 해체하는 힘이다. 이 해체하는 힘에 대립해서 시간적으로 자기를 지속해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곧 종적 본질이 지닌 자기를 통일하는 힘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이 시간적 지속이라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미 짐작했겠지만, 헤겔의 형이상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그의 본질[Wesen] 개념이 다름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고 그런 점에서 플라톤과는 대립한다.

서양철학사에서 플라톤주의의 역사는 길지 않다. 그것은 근대 초에 반짝 빛을 보았다. 서양철학사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지배했다. 스콜라철학이 지배한 중세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근대에도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셸링, 헤겔로 이어지는 흐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부활이었다.

그럼, 이제 헤겔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정신현상학 서문 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들여다보자.

“앞에서 표현한 대로 실체는 그 자체에서 주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모든 내용은 자기에게 고유한 방식으로 자기 내로 반성한다. 현존이 지속성을 지니면서 실체가 되면 그것은 자기 동일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정신현상학, 39쪽)

위의 구절에서 헤겔은 현존이 지속성을 지니게 되면 실체가 된다고 한다. 이런 지속성이 가능한 것은 자기 동일성 때문이다. 헤겔의 ‘자기 동일성’은 추상적 자기 동일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헤겔은 자기 동일성이 있으므로 “스스로 해소되려는 것”에 대항하여 자기를 지속할 수 있다고 했으니, 이 자기 동일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자기를 통일하는 힘’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 자기를 통일하는 힘 때문에 헤겔은 실체는 곧 주체라고 한 것이다. 실체가 곧 주체라는 주장은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핵심적인 개념인데, 위의 구절을 보면 헤겔이 얼마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2)

헤겔이 이렇게 자기를 지속하는 존재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현상학에서 지성 장에서 자기의식 장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헤겔은 플라톤주의를 비판하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할 만한 여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제 그 부분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정신현상학에서 그 과정은 상당히 장황하므로, 이 자리에서는 상세하게 그 과정을 소개하기보다, 간단하게 정리해서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지각 장에서 헤겔은 사물에 개별적 우연적으로 속한 성질과 필연적 일반적으로 속한 속성을 구별한다. 이어서 지성 장에서는 그 사물에 고유하게 속하는 본질을 찾으려 한다. 인식의 발전에서 소피스트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비판했던 이유는 바로 소피스트가 단순한 일반적 필연성과 사물의 고유한 본질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 필연성에 불과하다. 고유한 본질, 객관적 본질을 파악하는 독자적인 인식 기관 예를 들어 본질 직관 능력과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고유한 본질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일반적 필연성이 각 사물에 하나뿐이라고 한다면, 쉽게 그것이 곧 고유한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각 사물에는 여러 개의 일반적 필연성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사람에 관해서 우리는 직립 보행이라는 일반성과 의식이라는 일반성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 둘 가운데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 즉 그 고유한 본질이 될까?

이런 난점에 부딪혀 헤겔은 우선 플라톤적 사유를 소개한다. 헤겔에 따르면 플라톤은여러 가지 일반적 필연성 가운데 이데아(고유한 본질)가 될 수 있는 것을 규정하는 것은 곧 선의 이데아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선의 이데아는 세계를 최선의 세계로 만든다. 그것을 위해서 각 사물은 자신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최선을 위해 사물을 통일하는 것이 곧 이데아이다.

그런데 헤겔은 이런 플라톤적 사유에 반대한다. 만일 선의 이데아가 없다면, 여러 일반적 필연성 가운데 어느 것이 이데아인지를 전적으로 우연하게 결정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물의 고유한 본질이 우연에 맡겨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헤겔은 플라톤적 사유가 부딪힌 난점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등장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사물을 지속적으로 존립하게 하는 것이 곧 그 사물의 고유한 본질이 된다고 보았다. 그런 지속성은 사물의 통일성에서 나오는 것이니,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본질이란 곧 일반적 필연성의 상호 통일성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즉 일반적 필연성 가운데 어떤 개별적인 요소가 아니라 이런 일반적 필연성 사이의 통일적 연관이 그 사물을 지속하게 하는 본질 즉 종적 본질이 된다.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수용한다. 그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본질은 곧 일반적 필연성의 내적 통일이다. 이런 통일성 때문에 그것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된다. 그런데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단순하게 수용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미분적 차이의 개념과 연결한다.

3)

생각해 보자. 단순화를 위해 어떤 사물에 두 가지 서로 대립하는 일반적 필연성이 있다고 하자. 이 두 가지 필연성이 상호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헤겔은 그 당시 등장한 미적분학을 통해서 이 두 가지 필연성의 상호 통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 한다. 예를 들어 함수 Y=X²의 미분 함수는 dy/dx=½X이다. dx와 dy의 분수 관계는 대립적 관계를 의미하며, 이 미분 함수가 전개되면, 그 적분 함수는 X<0인 경우는 하강 곡선이며 X>0인 경우는 상승 곡선이 된다.

헤겔은 미분적 차이 개념을 일반화하여, 이를 ‘무제약적 일반자’라는 개념으로 수용한다. 여기서 무제약적 일반자(미분적 차이)가 자기를 전개하여 사물(적분 함수)에 이르는 과정을 헤겔은 이중적인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무제약적 일반자가가 자기를 펼치는 과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결과인 사물이 자기를 수축하여 무제약적 일반자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 두 과정은 매 순간 동시에 상호적으로 일어나면서 무제약자가 사물을 산출하는 운동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힘으로 불리는 것이다. 이 운동의 한 가지 계기 즉 자립적인 물질들이 펼쳐져서 제각기 존재하게 되는 운동은 힘의 표출이며 반대의 계기 즉 이 자립적인 계기들이 지양되어 사라지게 하는 운동은 표출에서 자기 내로 수축하는 힘이거나 또는 본래적인 힘이다.”(정신현상학, 85쪽)

두 힘은 서로 떨어져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두 힘은 상호작용하면서 얽혀있다. 헤겔은 이를 힘의 유희라고 설명한다. 두 힘의 얽힘에 관한 다음과 같은 헤겔의 표현을 보라.

“예를 들어 촉발하는 것이 일반적 매체로 정립되고 그에 반해서 촉발된 것은 수축된[ 힘으로 정립되었지만, 그러나 역시 전자[촉발하는 것]가 일반적 매체 자체가 되는 것은 오직 그에 상대되는 것이 수축된 힘이기에 가능했다. 또는 이 후자[촉발된 것]가 오히려 전자[촉발하는 것]에 대해 촉발하는 것이며 전자를 비로서 매체로 만드는 것이다. 전자[촉발하는 것, 매체]은 다만 이런 타자[수축된 힘]에 의해서만 [촉발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규정을 가지며, 타자[촉발된 것]로부터 촉발하는 것이 되도록 촉발되는 한에 있어서만 촉발하는 것일 뿐이다.”(정신현상학, 86쪽)

무제약적 일반자는 어떤 존재나 원소[Element]가 아니다. 그것은 펼쳐지는 힘과 수축하는 힘의 통일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태극과 같다고 하겠다. 헤겔은 이 통일적 힘이야말로 사물의 진정한 본질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힘이 사물에 내재하면서 사물을 내적으로 통일하면서 사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이 힘이 곧 사물을 지속하게 하는 실체가 된다.

결국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용하면서 이를 근대의 미분적 차이라는 개념으로 전환한 것이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3-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3-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1

1)

전환점은 칸트였다. 사람들은 칸트의 선험철학만 안다. 하지만 정작 칸트가 했던 중요 작업은 망각한다. 그 작업은 바로 범주를 판단 형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칸트의 위대한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범주를 처음으로 주목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는 사물이 아니라 언어를 분류하는 최고의 유다. 그는 언어를 주어에 해당하는 것과 술어에 해당하는 것들을 구분한 최초의 언어학자다. 그런데 일파만파라 하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 개념을 언급하다 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어에 해당하는 것으로 규정한 개념이다. 그 개념의 핵심은 “주어 속에 있지도 않고 동시에 주어의 술어가 되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어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라고 하였다. 여기서 실체[Substance]는 주어[Subject]와 같은 의미가 된다. 그런데 제1 실체인 개체는 이 규정에 적합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또 하나의 주어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것으로 규정한 종적 본성, 즉 제2 실체는 그 자신이 술어가 될 수 있으므로, 이 규정을 위배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잘 알지 못하니 범주론 다음에 형이상학을 쓴 것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의식에서 따져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주요 문제 중의 하나는 이 범주론에서 실체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형이상학에서 주요 문제의식은 왜 술어가 될 수 있는 종적 본성(예를 들어 사람이나 개 등)이 실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라는 개념을 주어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개념과 달리 규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대부분 논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종적 본성과 단순한 보편자(또는 이데아)를 구분해서 전자는 실체로 반면 후자는 실체가 아니라고 했다는 점에, 그런 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알고 싶은 것은 형이상학에서 실체를 어떻게 규정했는가인데,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알고 싶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김덕천의 논문에서 필자가 기대하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논문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 나타난 실체 개념의 개별성 문제― 형이상학Ζ를 중심으로 ―>(카톨릭 철학, 7호)이다. 여기서 김덕천은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서는 종적 본성이 오히려 더 근원적인 실체라고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범주론의 제1 실체와 대비를 이루는 형이상학의 제1 실체로서, 존재의 구조학‧원인론‧발생학에 있어서의, 보편학과 지식에 있어서의 근본개념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플라톤의 이데아들과는 달리 개별 실체 속에 내재한, 개별 실체와 다름이 없는, 개별 실체의 자체적(kath’hauto) 원인이 되는 주체의 구성원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가톨릭 철학, 7호, 428쪽)

즉 개별 실체의 통일성을 유지해 주는 내적인 구성원리가 곧 종적 본성이라는 것이다. 조대호 교수가 번역한 『형이상학』(나남, 2012)에 관련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어떤 것으로 이루어진 합성체는 그 전부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어서 더미와 같은 상태가 아니라 음절과 같은 상태로 있다. … 결과적으로 합성체에 대해서 살이나 음절에 대해 말한 것과 동일한 논변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곧 본성을 말한다] 요소가 아닌 어떤 것이며 바로 그것이 이것을 살이게 하고 이것을 음절이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각자의 실체이다.”(345쪽, 1041b 11-29)

조대호 교수는 주에서 이 구절에서 말한 그것을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만들어주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라고 주장한다.(『형이상학』, 346쪽 주 250) 이어서 주 251에서 그는 “있음의 첫째 원인은 특정한 질료가 종적인 규정성을 가진 어떤 개별자로 있게 만들어주는 원인을 가리킨다”(『형이상학』, 346쪽)라고 말한다. 여기서 종적 규정성을 가진 개별자라만 아리스토텔레스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원인을 말할 것이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관련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본성도 있는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즉시 하나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하나이게 만드는 원인이나 있는 것의 한 부류를 하나이게 만드는 원인이 달리 어디에도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각각은 직접적으로 있는 것이자 하나인 것일 뿐, 있는 것이나 하나를 유로 삼아 그것 안에 있지도 않고 개별적인 것들과 떨어져서 분리 가능한 것으로서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형이상학』, 367쪽, 1045b5-9)

이 두 구절에서 김덕천이 지적한 것처럼 소위 종적 본성은 개체를 하나로, 통일하는 원리로 규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종적 본성이 실체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274쪽 1029a5-10에서 실체가 기체[基體]에 대해 술어가 되지 않지만 다른 것들은 그것에 대해 술어가 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 핵심 이유는 그렇게 보면 “질료가 실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형이상학에서 제시한다. 276쪽, 1029a30을 보면, 이제 “‘분리 가능성’과 ‘이것’은 주로 실체에 속한다”고 말한다. 즉 개체를 다른 개체로부터 분리하여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곧 실체라는 것이다.

어떤 개체가 다른 것과 분리하여 개체로 존재하려면, 개체 자신은 내적인 통일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므로 분리 가능성이라는 규정은 곧 통일성, 하나라는 규정과 상통하니, 이것을 통해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체라는 규정 자체를 바꾸었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3)

종적 본성을 이처럼 개체를 통일시키는 구성원리로 이해하게 된다면, 개체가 ‘분리 가능하며’ ‘이것’이 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통일적 구성원리는 개체를 하나로 즉 단일한 개체로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체의 규정은 오래전부터 타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란 규정이 들어 있다. 그것은 개체이면서 동시에 자립적으로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범주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주어가 되는 것으로 규정한 것이 아닐까? 자립적으로 있는 것이기에 그것은 술어가 아니라 주어가 될 수 있다. 종적 본성은 개체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면서 동시에 있는 것, 자립적으로 있는 것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위에서 인용된 형이상학의 구절 가운데 두 번째 구절 즉 1045b5-9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임과 있음을 등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밑줄 그은 부분) 하나란 곧 내적인 통일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될까?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 보자. 어떤 것이 내적으로 분열된다면, 그것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분열은 다시 분열을 낳고 그 끝에 가서는 무규정적인 어떤 것 즉 무로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어떤 것을 내적으로 통일한다면, 그것은 소멸에 대립하면서 자기를 지속하는 것이 될 수 있고 이런 지속성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거꾸로 말해 어떤 것이 존재하려면 내적으로 통일하는 원리가 계속 힘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임, 내적 통일성과 존재 또는 지속성(자기 동일성)은 서로 공속하는 개념이니, 종적 본성이 개체를 내적으로 통일하는 구성원리가 된다면, 그 종적 본성은 개체를 지속적으로 또는 자기 동일적으로 존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적 본성은 개체를 실체로 만들어주는 원리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종적 본성이 개체를 실체로 만드는 원리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그것은 종적 본성 자체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이것은 범주론에서 종적 본성이 독자적 실체 즉 제2 실체라는 주장과 어긋나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에서와 달리 형이상학에서 제2 실체라는 개념을 포기하고 만 것이 아닐까? 사실 개체로서 아리스토텔레스나 이 소나 이 말이 실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되지만 사람 자체, 소 일반, 말의 본성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아무도 그런 존재를 본 적은 없다.

조대호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이라는 논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가 실체가 되지 못한다고 단정했다고 한다. 물론 조대호 교수는 보편자와 종적 본성을 구별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부정한 것은 단지 보편자가 실체가 아니라는 주장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보편자가 실체가 되지 못하는 이유로 거론한 것 모두가 종적 본성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종적 본성 역시 보편자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종적 본성이 개체를 실체로 만드는 원리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종적 본성 자체가 독자적인 실체라고 주장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보편자가 실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첫 번째 이유를 들어보자.

“왜냐하면, 보편적으로 일컬어지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실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각자의 실체는 각 대상에 고유하고 다른 것에 속하지 않지만, 보편자는 공통적이기 때문인데, 그 본성상 여럿에 속하는 것을 일컬어 보편자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것의 실체이겠는가? 모든 것의 실체이거나 아무것의 실체도 아닐 터인데 모든 것의 실체일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것 하나의 실체라면 다른 것들도 그것과 똑같을 것인데 그 까닭은 그것들의 실체가 하나이고 본성도 하나인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 역시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체에 대해 술어가 되지 않은 것이 실체라고 불리지만, 보편자는 항상 어떤 기체에 대한 술어가 된다.”(『형이상학』, 328쪽, 1038b8-11)

조대호 교수의 주장과 달리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종적 본성에 실체로서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까지 이야기에서 이 지점에 이르러 대반전이 일어난다.

4)

실체는 통일성의 원리이고 개체를 존재하게 한다고 했을 때, 이때 존재는 단순한 현존은 아니다. 그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적 변화는 존재를 무로 전락시킨다. 실체는 통일성의 원리로 분열을 막고 개체를 지속하게 만든다. 여기서 지속성은 곧 시간적인 자기 동일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엄밀하게 개체 자체가 지속하지는 못한다. 개체는 종적 본성과 더불어 많은 우연적 성질을 담지하고 있다. 이 우연성은 시시각각 변화하다. 개체가 지속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때 여기서 지속하는 것은 다름 아닌 종적 본성이다. 실체는 우연적 개체가 아니라 개체의 종적 본성 자체이다.

물체를 예로 들어보자. 물체는 고정불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소멸 중에 있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 속에서 물체의 고유한 구조는 계속 유지되니, 시간적 지속하는 것은 그 물체의 본성이다.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속적으로 존재할 때 사실 우연적 속성을 담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체성이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종적 본성이 단순히 개체로서 아리스토텔레스 당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어서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여기서 지속하는 것이 바로 종적 본성이 된다.

본성 또는 종적 본성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의미하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종적 본성은 개체를 통해서 존재할 뿐이다. 개체란 본성 또는 종적 본성이 존재하는 시간적 현존일 뿐이다. 개체를 징검다리로 해서 종적 본성은 실제로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우연적 성질을 담은 개체이지만, 지속하는 것은 개체의 종적 본성이고, 그것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본성과 보편자를 구분하는 길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보편자는 사물의 필연적 속성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사물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없다. 그러나 본성이나 종적 본성은(양자의 차이는 시간성의 차이일 뿐인데) 통일의 원리가 되면서 자기를 지속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거꾸로 수많은 보편자 가운데 이처럼 어떤 것을 지속하게 하는 힘을 지닌 것만이 비로소 본성 또는 종적 본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지속적 존재, 자기 동일성으로서 실체라는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속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필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에서 이런 실체 개념의 전거를 발견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위의 인용 구절에서 간접적으로 그런 실체 개념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시 위의 인용 구절에서 밑줄 그은 부분을 보자.

“그것이 어느 것 하나의 실체라면 다른 것들도 그것과 똑같을 것인데 그 까닭은 그것들의 실체가 하나이고 본성도 하나인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 역시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로서는 해석하기 난감한 부분인데, 그 의미를 이렇게 새겨볼 수 있지 않을까? 보편자는 a, b, c.. 등의 개체에 공통적으로 속한다. 이 보편자가 실체라면, a, b, c 등을 통해 지속한다. a, b, c 등은 우연적 차이만 지닐 뿐 서로 동일한 것이 된다. 그런데 단순히 보편자인 경우, 그것은 a, b, c 에 공통적으로 속하지만, 이것들은 서로 다른 물체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물체에 속하는 보편자가 실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흰색은 백합꽃이나 설탕, 그리고 눈에 공통적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서로 다른 물체이니, 흰색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에서 제2 실체였던 종적 본성을 형이상학에서 진정한 실체로 격상한 것이 아니었을까? 조대호 교수 자신도 비록 그 자신은 긍정하지 않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자 가운데 “범주론에서 둘째 실체로 일컬어졌던 종은 오히려 형이상학에 이르러 첫째 실체의 지위를 얻는다고 주장”(조대호,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 443쪽)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5)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을 정리해 보자. 실체는 곧 통일성의 원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 자신을 존재하게 한다. 이때 존재는 단순한 현존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것은 지속성을 지니므로 실체가 된다. 지속성을 지니지 못하는 것은 실체가 되지 못한다.

물체의 수준에서 그 본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여기서 실체는 약화된 실체이다. 그러나 생물체에 이르면 세대를 넘어 자기를 지속하니, 더 완전한 실체가 된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2-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2-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1

1)

앞에서 헤겔 논리학이 실제 다루는 내용은 형이상학과 동일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헤겔은 처음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붙였다가는 나중에 가서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빼고, 논리학이라는 이름만 내세웠다고 했다.

그런데 보통은 논리학을 ‘logic’이라 한다. 헤겔은 ‘Wissenschaft der logic’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붙였다. 번역하기가 좀 곤란하다. 직역하자면 ‘논리학의 학문’이라고 해야 하는데, ‘학’이라는 말이 중첩되어 그저 ‘논리학’이라고 번역한다. 오해를 피하려 ‘논리의[에 관한] 학문’이라고 번역하기도 한지만, 불필요한 현학적 태도일 것이다. 앞으로 그저 ‘논리학’으로 번역하자. 문제는 왜 헤겔이 형이상학적 내용에 논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는가이다.

여기에 여러 문제가 개입한다. 특히 논리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이 문제 된다. 헤겔은 초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약 25년 전쯤에서부터 우리 속에서 철학적 사고의 방식이 겪었던 전면적인 변화나 이 시기 정신이 자의식이 자신에 관한 도달하게 된 좀 더 고차적인 입장은 아직 논리학의 형태에 거의 이렇다 할 영향을 입히지 못한 상태에 있다.”(초판 서문, 5쪽) [주1]

[주1] 앞으로 인용문은 헤겔의 논리학의 경우에는 장 절과 페이지만 표시하겠다. 원전은 G. W. F. Hegel, Wissenschaft der Logik(1832), Th. 1, Bd, 1, GW Bd. 21, Hrsg. Friedrich Hogemann & Walter Jaeschke, Felix Meiner, 1985이다. 이 책은 재판본이다. 앞으로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초판본은 1812년 발간되었고 1826년 헤겔은 초판본이 거의 소진되었다는 연락을 받고(무려 15년 걸쳐 겨우 1000부 정도가 팔렸다니!) 1829년에 들어가서야 계약이 이루어져서 재판을 위해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개정 분량이 상당히 많아서 개정 작업은 1831년에야 비로소 끝났다. 그것도 1부 1권 존재론에 그쳤다. 1부 1권 개정판은 1832년 발간되었다. 안타깝게도 헤겔은 1부 2권 본질론, 2부 개념론은 개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해 여름 헤겔은 콜레라를 피하려 시골 별장에 가서 작업했는데 개강 때문에 베를린으로 돌아오자 콜레라에 걸려 죽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임석진 교수가 번역한 판본은 초판본이다. 내가 대학원 시절 읽었던 원전은 라슨 판 재판본이다. 임석진 교수의 번역판을 받았을 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왜 임석진 교수가 재판본이 아닌 초판본을 번역했는지 지금도 의아스럽다. 재판본을 번역했으면, 읽고 인용하는 데 번역본을 참고로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재판본이 상당한 개정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 골격에서 초판본과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번역본을 읽었다고 해서 헤겔 논리학을 오해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 둔다.

 

이 글을 쓴 게 1812년이니 그 25년 전은 1787이 된다. 이 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2판에 발간되었다. 이 선험철학은 “정신이 자의식이 도달한 고차적 입장”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헤겔이 칸트의 인식론적 혁명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헤겔은 칸트의 인식론적 혁명을 단순히 인식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논리학조차도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아직 이런 변화가 실현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2)

헤겔이 논리학의 변화를 기대할 때, 이 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내려오는 일반 논리학 즉 형식논리학을 말할 것이다. 헤겔은 곧이어 이 형식논리학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헤겔은 형식논리학을 “시든 잎사귀”에 비유한다.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솟아오르기 시작한 새로운 정신[이 시대 자유의 정신을 말할 것이다]이 논리학 속에서는 아직 그 흔적을 새기지 못했다. 그러나 정신의 실체적 형식이 변화된 마당에 전시대의 교양의 형식을 보존하려 한다는 것은 전혀 헛된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형식은 이미 뿌리로부터 새로이 움트기 시작한 새로운 싹에 의해서 밀려나 버린 시든 잎사귀와 같다고 하겠다.”(초판 서문, 6쪽)

헤겔이 일반 논리학을 이처럼 조롱하는 이유는 그 논리학이 형식논리학이기 때문이다. 논리학이 형식적이라는 것은 거의 상식과 같아서, 소위 띄어쓰기에도 반영되어 있다. ‘일반 논리학’은 띄어 쓰지만 ‘형식논리학’은 붙여 쓰니 말이다.

논리학이 형식적이라는 말은 논리학은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세계로부터 경험을 통해 주어진다. 논리학적 형식은 그 자체로는 내용이 전혀 없는 순수한 것이다. 형식논리학은 하나의 형식에서 다른 형식으로 변형하는데, 표현되는 형식은 바뀌더라도, 내용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각각의 형식은 비록 다르게 보이지만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유클리드의 기하학적 순수 공간에서 도형을 이리저리 이동하더라도 그 도형이 전혀 변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형식논리학을 대신하여 헤겔이 제시하는 새로운 논리학은 “사유를 고찰하는 데서 내용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내용은 자체 내에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오로지 그런 형식을 통해서만 영적 생기를 지닌 내용이 된다.” 거꾸로 “형식 자체는 다만 어떤 내용이 그 속에서 비추어지는 가상[Schein eines Inhalts]으로 다시 말하자면 이 가상[Schein: 내용]에 외적인 것[형식]이 가상[Schein]으로 전환된다.”(2판 서문, 17쪽) [주2]

[주2] 위의 구절 가운데 뒷 문장에서 헤겔은 가상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이 문장은 함축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이해하기가 까다롭다. 여기서 ‘가상’이라는 말은 마치 거울처럼 자기를 부정하면서 자기에 대해 마주하고 있는 것 즉 본질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용 속에서 형식이 스스로 떠오르며, 형식은 자기를 내용 속에서 드러낸다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이 함께 상호작용하는 관계가 형식논리학에 대립하는 새로운 논리학의 기본 개념이 된다.

이렇게 “논리적 고찰 속으로 내용을 끌어들인다면”, 헤겔 말대로 논리학은 세계와 독립적인 사유의 법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세계가 되며 거꾸로 “논리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개념, 즉 사태가 된다.”(2판 서문, 17쪽) 그러니 헤겔 말대로 논리학은 세계의 가장 내적인 본질을 밝히는 형이상학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3)

하지만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어떻게 내용에서 형식이 탄생하고, 형식이 내용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전자는 마치 물활론처럼 들린다. 후자는 신의 창조론을 의미한다. 헤겔을 물활론자나 창조론자로 이해하면 쉽겠지만, 그렇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인간인 헤겔이 어떻게 신의 창조과정을 안다는 말인가? 또 물활론이라면 전적으로 자발성 또는 우연성에 맡겨지는 것인데, 자발성을 학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

더구나 헤겔은 이런 새로운 논리학이 칸트의 선험철학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당혹하게 된다. 알다시피 칸트는 일반 논리학에서 나온 범주를 경험을 구성하는 범주로 삼았던 것이 아닌가? 칸트 선험철학의 전제는 일반 논리학이다. 칸트는 한 번도 논리학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헤겔은 칸트의 선험철학적 정신으로부터 새로운 논리학 즉 내용을 지닌 논리학으로 전환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데도, 아직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으니, 정말로 당황스럽다. 칸트의 철학으로 칸트의 전제를 비판하는 헤겔의 태도는 우리를 아찔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헤겔이 이해하는 칸트의 비밀을 이해해야 한다. 칸트가 말하지 않은 것을 헤겔은 칸트의 뜻으로 알았으니 말이다. 칸트 비밀의 핵심에 범주라는 개념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 범주라는 말을 이해하려 거슬러 올라가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나는 범주라는 말 자체의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아서, 고대철학을 하는 분을 만나기만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론이 무엇을 다루었느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 못했다. 물론 스스로 범주론을 읽으면 되는데, 유감스럽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직접 읽을 자신이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위키피디아를 참조해 보니, 다행스럽게도 위키피디아 ‘아리스토텔레스 범주론’ 항목은 내가 희망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나의 물음은 이런 것이다. 사물이나 생물은 유와 종으로 분류된다. 그 최고의 류를 범주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범주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분류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내가 위키피디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는 10가지다. 범주를 중세에 라틴어로 ‘praedicamenta’라고 부른다고 한다. [주3]

[주3] 어원적으로 범주는 술어라는 말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주어가 될 수 있는 것 곧 실체이다. 중세 번역어에 오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은 전 프래디카멘타와 프래디카멘타로 나누어지는 데, 전자에서는 동의어와 파생어, 주어[subject]에 대해서[of] 말해지는 것과 주어 안에[in] 있는 것의 구분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에 중요한 것은 후자이다. 후자는 다시 네 가지로 구분된다. 주어에 대해 말해지지만 주어 안에 있지는 않은 것과 주어에 대해 말해지지는 않지만 주어 안에 있는 것, 주어에 대해 말할 수도 있고 주어 안에 있기도 한 것, 마지막으로 주어에 대해 말할 수도 없고 주어 안에 있지도 않은 것이다. 이 네 번째가 곧 실체라는 범주가 된다.

이상에서 언급된 것만 보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이 사물을 분류하는 범주를 다룬 것은 아니고 다름 아닌 언어를 분류하는 범주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사실은 열 가지 범주를 다루는 프래디카멘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열 가지 범주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시간, 상태, 행동, 능동, 수동이다. 이 열 가지 범주는 절대로 사물을 분류하는 최고 유로서 범주가 될 수가 없다. 이 범주는 우리의 언어의 문법적 범주이다. 판단은 주어와 술어로 나누어진다. 주어가 되는 것이 곧 실체이며, 양은 주어의 외연을 말한다. 질과 관계(형용사) 상태와 행동(동사)은 모두 술어를 문법적으로 분류한 것이다. 시간과 장소, 능동과 수동은 문법적으로 양상을 표현하는 범주가 된다.

4)

이처럼 범주가 문법적 범주라는 사실은 더 나가서 주어가 될 수 있는 실체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일 실체와 제이 실체로 나누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제일 실체는 개체다. 여기서 실체는 “주어에 대해 말해질 수 없으며, 주어 안에 있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하나를 실체를 거론한다. 그게 제이 실체라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인간이나 개와 같은 종적 본질이 된다. 이것은 주어에 대해 서술될 수 있는 술어의 일종이다. 그런데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실체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많은 문장에서 종적 본질이 주어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실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은 흔히 사용하는 문장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문장도 자주 사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처럼 종적 본질을 단순한 보편적 술어와 구분해서 실체에 포함했는데,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용주의적, 경험주의적 철학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원칙에 어긋나도 사실이 그러하면 받아들인다는 정신이다.

그러나 철학자로서는 이런 경험적 실용적 정신에 머무를 수가 없다. 왜 다른 보편적 술어와 달리 종적 본질을 드러내는 술어는 주어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헤겔 형이상학 산책 1-변명[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1-변명1

1)

내 삶에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그것은 헤겔 논리학을 이해하는 일이다. 헤겔의 논리학은 헤겔 연구자가 흔히 신의 언어라고 말하는 사변적 언어로 쓰였으니, 그 신을 믿는 신도들의 마음에 이심전심으로 전해져 왔다. 그 비밀의 영역은 일반인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내가 철학이라는 학문에 뜻을 두고 대학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 공부하고자 했던 것은 후설 현상학이었다. 현상학에 뜻을 두었던 것은 청년 시절 내 영혼을 사로잡았던 철학이 바로 실존주의이었고 실존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방법론인 현상학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대학원에 입학했던 시대가 80년대 초이었으니 누구도 시대의 요구에 등을 돌릴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이때 후배 하나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헤겔의 변증법만 제대로 안다면 세상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혁명가 레닌이 철학 노트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데, 아직 그 원전을 찾아보지 못했다. 그 말에 홀려서 헤겔의 논리학을 대하게 되었으나, 솔직히 말해 그건 범인으로선 접근이 불허된 신의 영역이었다.

그로부터 무려 50년이 지나갔다. 아직도 나는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자신하지는 못한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50년 간 헤겔을 연구했음에도 풍월은 커녕 말도 아직 더듬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세상을 들어 올리고 싶다는 야망은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언젠가는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을 이해해, 일반인들도 이 비밀의 영역에 잠시 들러 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욕망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나이가 많다.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한다. 무엇보다도 눈과 귀와 체력이 무너지고 있어, 얼마 가지 않으면, 더는 읽고 쓰는 것조차 어렵지 않을까 우려한다. 나는 그간 하던 많은 일을 이미 내려놓았다.

남은 힘을 기울여, 나의 아마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작업을 시작하고자 한다. 원래 이 일을 계획하기로는 몇 년 전이다. 같은 헤겔 학도였던 김우철 선생과 헤겔 논리학 본질론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고, 함께 책을 읽는 일이 끝나면, 이 일을 시작하고자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생은 코로나로 희생되고 말았으니, 풍선에 바람 빠지듯이 선생의 죽음과 더불어 그 의욕도 사라졌다. 그간 매달렸던 헤겔 미학에 대한 해설이 끝나자, 논리학의 해설에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되살아났으니, 이게 내가 지닌 운명인지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50년간 이책 저책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결과 헤겔의 논리학을 나름대로 약간은 이해하는 바가 생겼으니, 이거라도 남겨 놓으면 후대에 청포를 입고 오는 사람이 있어 딛고 설 계단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여 이제 헤겔의 논리학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 없이 늘어놓으려 한다. 먼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변명부터 올린다.

2)

실제 내용은 헤겔 논리학에 관한 설명이지만, 거창하게도 형이상학 산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헤겔이 대학에 처음 강사가 되었던 게 1801년이었다. 그해 겨울 학기에 헤겔이 개설한 강좌의 제목이 ‘논리학과 형이상학’이었다. 오늘날 생각하면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무관할 것처럼 보인다. 형이상학은 세계의 근원적 본질을 다루는 학문이지만, 논리학은 인간의 사유의 일반 원리를 다룬다.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사유는 서로 대립하는 데 왜 논리학이 형이상학과 연관되는 것일까?

논리적으로 사유하기만 한다면, 세계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일까? 논리에 맞지 않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런데 논리학을 공부해 본 사람은 안다. 나는 철학과 입학해서 처음 논리학을 배웠는데, 거의 기계적인 작업이었다. 차라리 나중에 배운 기호 논리학의 경우 수학적 추론의 흥미라고 끌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2000년간 내려왔다는 논리학은 정말 따분한 작업이었다.

논리학은 타당한 사유와 부당한 사유를 구분하고 자주 사람들이 빠져드는 부당한 오류 추리를 막을 수 있다는 실용적 목표가 있기는 했으나, 그런 실용적 목적이 철학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왜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법을 모르는 사람이 말을 더 조리 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논리학을 모르더라도 더 논리정연하게 사유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런 사람이 세계의 본래 모습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철학 하는 사람의 글을 보면 문장이 비논리적인 경우가 더 많다. 철학을 하다 보면 자연히 비논리적 문장을 쓰게 되는 것은 철학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철학처럼 비논리적인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위대한 철학자 헤겔이나 하이데거의 문장을 읽어보라. 하다못해 논리 철학의 대가인 콰인의 논문을 읽어보아도 논리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를 내보이면서 이게 둘로 보이는 사람이 철학자라고 자주 우스개처럼 말해진다.

그런데 헤겔은 논리학과 형이상학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보았던 게 틀림없다. 그러기에 강의 제목을 ‘논리학과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도대체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3)

헤겔은 다음 학기인 1802년 여름학기 강의 예고에서 ‘논리학과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의 저서를 발간하겠다고 했다.  그는 1804/5 강의 수고 ‘논리학,  형ㅇ이상학, 자연철학’을 남긴다. 아마도 정서한 것을 보니, 이게 발간 원고로 보인다. 어떻든 발간되지는 않았다.  이 수고는 헤겔 서고판, 전집7권에 실려 있다. 그 제목만 보면, 훗날의 논리학과 자연철학의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많은 부분이 누락되어 아직은 사상이 형성 중이라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1805년에 헤겔은 그 대신 철학 체계 전체를 건드리는 저서를 발간할 계획을 세웠고 그 서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 서문이 아주 길어졌고 철학 체계에 관한 저서는 포기되면서 그것이 1807년 발간된 정신현상학이 되었다.

1807년 헤겔은 예나를 떠나 밤베르크로 이주해 밤베르크 신문을 편집했다. 1807년 밤베르크 신문에 실린 정신현상학 광고를 보면, 헤겔은 곧이어 논리학과 자연철학, 정신철학을 포괄하는 철학 체계를 발간하겠다고 했으나, 이 계획은 계속 미루어진다.

헤겔은 1808년 11월 밤베르크 신문사를 떠나 뉘른베르크 김나지움 교사가 되었다. 이 시기 헤겔은 니트함머의 권고를 받아서 김나지움에서 강의를 위한 논리학 교재를 계획했다. 헤겔은 니트함머의 권고에 대답하면서 시간을 주면 먼저 자기의 논리학을 완성한 다음에 교재를 만들겠다고 했다.

김나지움에서 철학 강의를 위해 교재(수고)가 작성되었는데, 그 가운데 한 부분이 논리학에 관한 것이다. 다행히 이 논리학은 국내 위성복 교수가 번역해 ‘김나지움 논리학 입문’(용의 숲, 2008)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했다. 그 제목만 보면 나중에 등장하는 논리학과 기본적 구조가 동일한 것을 알 수 있으니(객관 논리 존재론과 본질론, 주관 논리 개념론), 이 시기에 이미 어느 정도 헤겔의 논리학의 골격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그가 논리학을 위한 작업을 그치지 않았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1811년 니트함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 해(1812년) 부활절까지는 논리학이 발간될 것이라는 희망을 적어놓았다. 실제 1812년 부활절에 발간된 것은 겨우 논리학 1부 1권 존재론에 그쳤다. 존재론과 함께 보낸 본질론은 출판사 사정으로 그해 년 말에 가서야 발간되었으나, 개념론은 헤겔이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이전하는 1816년에 가야 발간되었다. 5년이나 뒤늦게냐 2부가 발간되었다는 사실로 보면, 헤겔이 좀 서두른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1811년 헤겔은 결혼했고, 그의 혼외 자식인 루드비히를 부양하기 위해 프로만에게 양육비를 보냈어애 했고, 김나지움을 벗어나 대학으로 나가고 싶기도 했는데, 그 모든 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저서였고, 그 저서는 당시 학계의 분위기 상 논리학이나 형이상학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가 쓸데 없는 고민을 한 것 같다.

4)

흥미로운 것은 헤겔이 1812년 초판 논리학을 발간했을 때, 이제 더는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은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논리학이 더는 형이상학이 아니라는 뜻인가? 1812-16년 사이 발간된 그의 논리학 초판 서문이나 서론을 읽어보면, 기존의 형이상학이 사라졌다는 한탄은 있지만 그렇다고 논리학이 형이상학이라는 주장은 명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논리학은 이제 학문과 관련해서 제시된다. 즉 논리학은 다른 구체적 학문 즉 자연철학이나 정신철학과 구별되는 일반적인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형이상학 역시 존재로서 존재 즉 일반적 존재를 다루는 학문이므로, 헤겔의 논리학이 기존의 형이상학인 것은 틀림없다고 보겠다.

논리학이 발간된 후 그가 스스로 쓴 출간 광고문에는 논리학이 새로운 형이상학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

“철학에 일찍이 너무 성급하게 추방된 신비를 진정하게 해명된 형이상학을 통해 다시 부여하고”

헤겔의 논리학 1부 존재론과 본질론을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면,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존재와 본질을 다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은 명백히 형이상학적인 책이다.  이런 1부 객관 논리학에는 기존의 논리학과 관련된 어떤 부분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2부인 주관 논리학의 경우는 그 첫째 장에서 개념과 판단, 추론을 다루므로, 굳이 말한다면 논리학이라 해도 되겠지만, 존재와 본질을 다루는 객관 논리학을 논리학이라 부른 것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명백히 형이상학 책에 대해 논리학이라는  말로 부르니, 공자가 알면 정명론을 부정했다고 화를 내지 않을까?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것을 통한으로 간직한 홍길동이 생각난다. 형이상학을 형이상학이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아니면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렇다고 나로서는 헤겔이 형이상학이라는 말 대신 논리학이라는 말을 선택한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된다. 헤겔로서는 형이상학이나 존재론보다 논리학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 점을 앞으로 말하려 하나, 일반인이 이해하기로는 내용상 논리학보다는 오히려 형이상학이라는 말로 규정하는 것이 더 쉽게 다가갈 것 같다. 그래서 논리학이라는 말 대신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는 것을 밝히느라 글이 좀 길어진 것 같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63)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63)

 

  1. 3. 철학이 비난 받는 현실(487b-497a)

2) 철학자들이 타락하게 되는 이유(489e-495b) – 2

 

[493a-495b]

* 다중οἱ πολλοί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철학자의 성향을 타락시키는 또 다른 집단으로서 소크라테스는 다중 스스로 기술의 경쟁자로 여기는 소피스트들을 꼽는다. ‘개인 보수획득술자  각각’ἕκαστος τῶν μισθαρνούντων ἰδιωτῶν으로서 소피스트들은 다중들이 모였을 때 형성되는 다중들의 신념δόγμα을 ‘지혜’σοφία라고 부른다.(493a) 이건 마치 누군가가 ‘거대하고 힘 센 짐승’θρέμματος μεγάλου καὶ ἰσχυροῦ을 기르면서 그 짐승의 분노ὀργή 와 욕구ἐπιθυμί는 물론 그들이 언제 그리고 무엇 때문에 거칠게 굴고 유순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제각각의 소리를 내고 어떤 소리를 듣고 온순해지고 사나워지는지 오랜 시간 함께 보내며 그 모든 것을 알아내 기술τέχνη로 체계화하여συστησάμενος 그것을 지혜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493b) 그들은 이런 신념들과 욕구 중 어떤 것이 진정으로 아름답거나 추한지, 좋거나 나쁜지, 또 정의롭거나 부정의한지 등은 알지도 못한 채 이 모든 것들을 거대한 짐승ζῷον의 믿음δόξα에 따라 이름을 붙여 그 짐승이 기뻐하는χαίροι 것은 ‘좋은 것’이라고 부르고 그 짐승이 기분 나빠하는ἄχθοιτο 것은 ‘나쁜 것’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그들은 그것들에 대해 다른 어떤 설명도 할 수 없으면서, 불가피한 것τἀναγκαῖα을 정의롭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부르며 그 불가피한 것이 좋은 것과 실제로 얼마나 다른지는 아예 본 적조차 없는 그야말로 이상한ἄτοπος 교육자παιδευτής이다.(493c) 요컨대 그림γραφικῇ의 영역에서든 시가μουσικῇ의 영역에서든 정치πολιτικῇ의 영역에서든, 이처럼 다중의 분노ὀργή와 쾌락ἡδονή을 파악하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소피스트와 다를 게 없다. 만약 누군가가 다중과 어울리며 자신의 시나 다른 어떤 제작물이나 나라에 대한 봉사를 선보이면서 불가피한 ‘한도를 넘어서’πέρα 그들에게 맹종할 경우, 그것은 소위 ‘디오메데스의 필연’으로 그들 자신의 행태를 합리화하는 것과 같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것들이 진정 좋고 아름다운 것인지에 대해 설명을 제공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καταγέλαστος 만한 설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493d)

*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지혜는 이러한 소피스트들이나 다중들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 철학자들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아닌 ‘아름다움 자체’αὐτὸ τὸ καλὸν, 또 ‘많은 각각의 것들’ τὰ πολλὰ ἕκαστα이 아닌 ‘각각의 것 자체’αὐτό τι ἕκαστον가 있다고 생각한다.(494a) 대중들πλῆθος이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들이 철학자가 되는 일은 불가능ἀδύνατος하다.(493e)

* 이러한 상황에서 철학적 성향에 어떤 구원σωτηρία이 있다면 모를까 어떤 젊은이가 그 활동에 머무르면서 완성단계τέλος에까지 이르기는 절대 쉽지 않다. 그 젊은이가  ‘쉽게 배우는 능력’, ‘기억력’, ‘용기’, ‘호방함’ 등의 성향을 갖고 태어나, 어려서부터 모든 사람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그의 친지들과 시민들οἱ πολῖται,πολίτης은 그의 미래의 능력을 예견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고 미리 아부도 떨고 추켜세우며 마냥 굽신거릴 것이다.  그러기에 그 젊은이는 그리스인들Ἕλλην의 일들과 이방인들βαρβάροἱ의 일들을 모두 다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형용할 수 없는 희망ἐλπίς으로 가득 차게 되어 결국 지성 νοῦς이 결여된 헛된 자부심σχηματισμός과 허세φρόνημα, 교만에 빠지게 된다. 특히 그가 큰 나라 시민으로 부유하고πλούσιος 혈통도 좋고γενναῖος  잘 생긴데다가εὐειδὴς 체격도 좋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494a-c) 그래서 그에게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진실τἀληθῆ을 알려주면서 ”진정 지성을 갖추려면 지성에 노예 노릇을 하지δουλεύσαντι 않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주어도 그가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의 자연적 성향 때문에 그 이야기를 좀 알아듣고 마음을 돌려서 철학에 이끌릴 경우(494d) 그의 쓸모χρεία와 동료관계ἑταιρία를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자들이 온갖 수단을 다해 그를 말릴 것이고 다른 한편 그를 설득하려는 사람을 사적으로 음모를 꾸며ἐπιβουλεύοντας 공적으로 재판정ἀγών에 세울 것이다.(494e) 이렇듯 철학적 성향의 부분들 자체도, 나쁜 양육을 받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활동을 멀리하게 되는 원인이 되며, 소위 좋다고 하는 것들, 즉 부와 그런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일수록 더욱 더 타락하게 될 수밖에 없다.

* 소크라테스는 이와 같이 최고의 활동에 적합한 최선의 성향을 지닌 소수의 사람이 어떻게 몰락ὄλεθρος하고 파멸διαφθορά하는지 다시 말해 철학자가 현실에서 어떻게 타락하게 되는지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그러한 타락한 소수의 사람이 우수한 자질의 크기만큼 나라들에게나 개인들에게나 가장 큰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임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495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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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3a-e : 이곳에서는 철학자들이 말하는 지혜와 정의 그리고 소피스트들과 그들에게서 배운 다중들이 말하는 지혜(sophia)가 어떻게 서로 다른지가 극명하게 서술되어 있다. 소피스트들에게 지혜는 한 마디로 상황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대중의 욕구를  알아내서 체계화한 것이고 그들의 정의와 아름다움은, 대중들이  ‘불가피한 것’(tanankaia)’(493c)으로 여기는 것(대중들의 믿음(doxa)이나 신념(dogma) 혹은 물질적 필요, J. Adam 해당 부분 노트 참고)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 즉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마치 디오메데스가 자신을 해치려는 오딧세우스에게 행한 불가피한 대응 같은 것인 양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혜와 정의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는 그저 비웃음을 살만한 설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가르침에 따라 대중이 이러한 믿음과 신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다시 말해 아테네의 민주정 아래에 있는 이상, 대중은 결코 철학자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철학자들의 지혜와 정의, 아름다움은 대중들이 아름답거나 정의롭다고 믿고 있는 ‘많은 각각의 것들’이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 ‘정의 그 자체’이다.

* 494c-495b : 철학자들이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까닭은 정말 철학자가 그래서가 아니다.  그것은 배의 비유에서 살폈듯이,  다만 피폐한 아테네의 정치체제 즉 아테네 민주정 그 자체가  소수의 진정한 철학자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그렇게 여겨질 뿐이다.  물론  그 밖에 다수의 철학자들이 타락하여 철학에 대한 나쁜 평판을 초래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 역시 근본적으로는 소피스트들과 다중이 지배하는 아테네 민주정의 제도적, 교육적 환경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특히나 그러한 피폐한 환경 하에서 타락한 철학자 또는 젊은이들은 오히려 그 자질들의 우수함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해악보다 훨씬 더 큰 해악을 저질러 철학과 철학자에 대한 평판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495b)

*  플라톤은 이곳에서 철학적 자질에 더해 부유함과 혈통, 훌륭한 외모와 체격까지 젊은이가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자라나면서 어떻게 헛된 자부심과 허세에 빠지게 되는지 그래서 나라와 개인에 얼마나 큰 해악을 저지르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그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그들을 어떻게든 다시 철학적으로 돌려세우는 노력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플라톤이 이곳에서 뛰어난 철학적 성향을 갖추었지만 끝내 타락한 젊은이로 묘사하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알키비아데스(Alkibiades)라는 데에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거의 이견이 없다. 실제로 알키비아데스(기원전 450-404)는 페리클레스를 후견인으로 둘 정도로 명문 가문 출신으로서  철학적 자질도 출중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테네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뛰어난 외모와 체격을 갖춘 젊은이였다. 그는 18세 전후 포테다이아 전투에 출전했다가 소크라테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 스스로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자처하며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철학자가 되기에는 그의 정치적 야망이 너무 컸다. 그래서 알키비아데스는 정계에 뛰어든 이후 뛰어난 능력으로 일찍부터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알키비아데스는 자신의 실책으로 권력에서 밀려났음에도 적대국이었던 스파르타로까지 망명하는 등 살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았고 그 망명지에서 다시 아테네 정계에 복귀하기 위해  고도의 술책을 동반한 정치적 기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발군의 능력도 자신을 영원히 정계에서 퇴출시키려는 사람들의 시도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는 결국 평생 정치적 풍운아로 살다가 기원전 404년 자객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일생을 마쳤다. 플라톤의 대화편 <알키비아데스>, <향연>에는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대화가 실려 있는데 내용은 기본적으로 철학보다는 정치적 야망에 젖어 있던 알키비아데스의 주장과 그 주장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그를 철학에로 이끌고 가려는 소크라테스의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그의 이름이 붙은 대화편이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관심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알키비아데스 I> 104a-b,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VI 16 1—3,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알키비아데스’ 1. 4, 4. 1 등 참고)

* 아무려나 나라를 몰락과 파멸로 이끄는 직접적인 원인에는 알키비아데스 같은 뛰어난 자질을 갖춘 젊은이가 타락하여 그 범상치 않은 뛰어남으로 오히려 나라를 더 큰 곤경으로 끌고 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라를 몰락과 파멸에 이끄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장차 훌륭한 정치가로 자라날 젊은이들의 철학적 자질들을 원천적으로 타락하게 만드는 민주정이라는 정치체제 그 자체에 있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곳에서 시종일관 나라의 몰락과 파멸에 이끄는 가장 크고 직접적인 원인으로서 다름 아닌 아테네 민주정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플라톤은 정치체제로서 아테네 민주정이 그대로 존속하는 한, 최고의 활동에 가장 최선의 성향의 몰락과 파멸은 불 보듯 뻔하며 그에 따라 종국적으로 나라가 몰락하고 파멸하는 것 또한 필연적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 그러나 다행히 그러한 민주정일지라도 철학자 모두를 완전하게 파괴할 수는 없다. 그러한 피폐한 정치체제에서도 비록 소수이지만 처음부터 신의 섭리moira와 구원sōzein에 따라(492e) 철학적 성향을 끝까지 보전하며 그것이 일러주는 지혜에 따라 살아가는 진정한 철학자들이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플라톤에게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증명해주는 불멸의 증표이다. 요컨대 민주정과 참주정을 비롯한 현실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혁파하여 진정한 정치가로서 철학자들을 온전히 길러내고, 그들을 통치자로 내세우는 것 즉 철학자 왕정을 건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플라톤이 이상국가론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이자 과제였던 것이다.

* 아무려나 이곳 논의의 목표는 그러한 철학자 왕정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기 이전에, 왜 철학자들이 타락하여 나라를 파괴하는 나쁜 악당이 되는지 그 이유를 먼저 밝혀 철학과 철학자를 세상의 평판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이다. 그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철학적 자질들을 타락시켜 나라를 근본적으로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이 철학자 개인이 아닌 제도로서 민주정 그 자체임을 밝히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철학과 철학자들에게 나쁜 평판을 가져다주는 배경에는 제도로서 민주정과 그 치하에서 타락한 철학자들만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타락한 철학자들의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자신이 마치 진정한 철학자인 양 자처하는 이른바 가짜 철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제 철학자의 성향을 흉내 내지만 결코 철학자가 될 수 없는 가짜 철학자들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려 한다. 그런 연 후 철학이 비난 받은 현실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진정한 철학자들이 왜 소수가 되어 현실을 도피할 수 없게 되었는지도 함께 논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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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철학이 당하는 수치와 철학자의 현실 도피(495c – 497a)

 

[495c]

* 소크라테스는 이제 황량하고ἐρῆμος 불완전한ἀτελής 상태로 친족이 없는 고아ὀρφανός처럼 내버려진 철학이 그 밖의 또 어떤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었는지를 언급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철학에 전혀 걸맞지 않은 인간 나부랭이ἀνθρώπιον들이 멋진 명칭들과 외관으로 가득 차 있는 그 철학의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마치 감옥εἱργμός에서 탈옥해서 신전τό ἱερόν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처럼, 기뻐하면서 자신들의 기술 내지 수공 작업βαναυσία에서 탈출해ἀποδιδράσκοντες 철학으로 뛰어들었기ἐκπηδῶσιν 때문이다. 그것은 대머리φαλακρός에 작달막한 대장장이χαλκεύς가 돈을 벌어서 결박에서 풀려나자마자 목욕재계하고 신랑처럼 꾸미고서는 주인 딸이 가난하고 홀로 되었다고 그와 결혼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생각διανόημα과 믿음δόξα에서 진실로 궤변σόφισμα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적합한 것들, 즉 적자γέννα가 아닌, 진정한 현명함φρόνησις은 결여한 서자νόθος를 낳을 것이다.(495c-496a)

* 이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철학에 걸맞고 그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결국 테아게스Θεάγες 등 일부의 경우를 포함해 정말 극소수만이 남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소크라테스 자신의 경우도 ‘영적인 신호’τὸ δαιμόνιον σημεῖον가 있었기 때문임을 밝힌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들은 자신의 소유물이 얼마나 즐겁고 축복된 것인지를 맛본 한편 대중의 광기μανία를 또 충분히 목도한 까닭에 나라의 일들과 관련해서 어떠한 건전한ὑγιής 행동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그들은 마치 짐승들 사이에 떨어진 것처럼 혼자 모든 야만ἄγριος 족속에 맞서기에 충분하지도 않아, 부정의에 가담하지도 않지만 ‘정의를 위한 싸움’σύμμαχος ἐπὶ τὴν τῷ δικαίῳ에 원군으로 함께 참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나라나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자기 자신이나 다른 이들에게 아무런 득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겨울철χειμών에 바람에 실려 오는 흙비를 피해 벽 아래 서 있듯이, 잠자코 자기 일만 하게 될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그런 사람은 불법ἀνομία과 불경한ἀνόσιος 일들로부터 정결함καθαρός과 정의를 유지한 상태로 이 땅에서의 삶을 살다가 삶을 떠날ἀπαλλαγήν 때 아름다운 희망ἐλπίς을 가지고 평안하고ἴλαος 너그러운εὐμενής 상태로 떠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496a-e)

* 이에 대해 아데이만토스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극소수의 사람들이 아주 작은 것τὰ ἐλάχιστα을 성취하고 떠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런 사람이 최대의 것τὰ μέγιστα을 성취하고 떠나는 것도 아니라고 언급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그에게 맞는προσηκούσης 정치체제를 만났다면 그 자신도 더 성장하고αὐξήσεται 사적인ἴδιος 것들과 함께 공적인κοινός 것들도 구해냈을 텐데 σώσει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49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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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5c-e : 철학이 비난받는 또 다른 이유는 텅 빈 철학의 자리에 이른바 가짜 철학자들이 비집고 들어와 ‘자신들의 기술 내지 수공작업으로 몸이 망가진 것처럼 영혼도 그렇게 깨지고 부서진 상태로’(495e) 자신의 자연적 성향에 맞지도 않는 철학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플라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가짜 철학자가 과연 누구인지가 주석가들 사이에서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우선은 소크라테스가 가짜 철학자를 ‘대머리에 작달막한 대장장이로서 돈을 벌어서 결박에서 풀려나 목욕재계하고 신랑처럼 꾸미고서는 주인 딸이 가난하고 홀로 되었다고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는 자’라고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 그가 말하는 가짜 철학자란 수공업 가문 출신으로서 부를 축적한 후 철학자 행세를 하려는 자일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어서 그 가짜 철학자를 ‘생각과 믿음에서 진실로 궤변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적합한 것들, 즉 적자가 아닌, 진정한 현명함은 결여한 서자를 낳는 자’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점을 추가로 고려하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가짜 철학자에는 소피스트 또는 그들을 추종하며 교양인 행세를 하는 일군의 젊은이들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프로타고라스> 318e 참고)

*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플라톤이 가짜 철학자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대표적인 인물로 이소크라테스(Isōkratēs 기원전 436-338)를 꼽고 있다. 왜냐하면 이소크라테스는 아울로스를 만들어 큰돈을 번 구리 세공업 가문 출신으로 그 부를 토대로 정치적 신분 상승을 위해 고르기아스 등으로부터 수사학 교육을 받은 후 위대한 수사학자이자 소피스트로서 평판을 누렸지만 정작  스스로는 ‘철학자’(philosophos)로 불리기를 바랐던(<안티도시스> 271 ff.)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소크라테스는 당대 유명 교양인이자 지식인으로서 수사학 학교를 세워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크게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말년에 강대국으로 부상한 마케도니아와의 화친을 통해 몰락해가는 아테네를 구하려 온갖 힘을 쏟았던 영향력 있는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플라톤은 <파이드로스>(279a-b)에서 소크라테스가 행한 그에 대한 아주 짧은 평가를 제외하면 그 어디에서도 이소크라테스를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그를 철저히 도외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아예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렇지만 당대 아테네 사람들은 물론 현대의 주석가들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가짜 철학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를 소환하여 가혹할 정도의 비판을 쏟아붓고 있다.

* 495e ‘대머리에 작달막한 대장장이’ : 이소크라테스가 대머리에 작달막하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그는 여늬 젊은이들 처럼 수사학을 배운 후 정계 진출을 꿈꾸었으나 목소리가 작고 소심한데다 가세까지 기울어  소장을 작성해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마침내 뛰어난 수사학적 지식으로 큰  돈을 벌어 규모에서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버금가는 수사학 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그는  아테네인들로 부터는 수업료를 받지 않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비싸게 받는 방식으로 말년에는 부친을 넘어설 정도로 큰 부를 이루었다고도 전해진다. (J. Adam. 해당 노트, 김봉철 <이소크라테스> 신서원 2004 참고)

*이소크라테스에 대한 플라톤의 평가는 이후 서양 철학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서양 지성사에서 수사학자 이소크라테스라는 기록은 쉽게 접할 수 있어도 철학사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보기란 거의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20세기 접어들어 플라톤에 의해 다만 궤변을 일삼던 자들로 폄하되었던 소피스트들이 당대 철학사적 전환을 이끈 사상가들로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에 발맞추어, 특히 근대 통일 국가를 열망하던 독일 사상계에서 이소크라테스의 범그리스주의가 크게 주목을 받은 이래, 이소크라테스는 오늘날 당대 시대현실에 부합하는 실용적이고 경험적인 세계관을 내세운 선구적인 철학자로 새롭게 재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우주적 질서와 조화 원리에 입각하여 서로 다른 폴리스들의 평화 공존을 추구했던 플라톤에게 아테네 제국주의와 이소크라테스가 지지했던 강대국 마케도니아 중심의 범그리스주의는 다(多)의 공존으로 표징되는 전통 그리스 사회를 붕괴시키는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아테네 제국주의와 범그리스주의는 알렉산더를 통해 헬레니즘적 팽창주의로 이어져 고대 사회의 붕괴를 거쳐 군사적 사상적 세계주의와 기독교의 세계동포주의와 결합하여 종래에는 거대 로마제국을 탄생시켰고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오늘날 근대 제국주의와 세계주의의 역사적 사상적 모태가 되었다.

* 496a 소수의 철학자가 남게 되는 경우 :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경우들로 1) 고귀하고 훌륭하게 자라난 사람이 망명하여 자신의 성향에 따라 방해 없이 철학에 머물게 되는 경우 2) 위대한 혼을 가진 자자 작은 나라에 태어나서 국사를 깔보고 철학에 머무는 경우 3) 아주 소수의 훌륭한 성향을 가진 자가 다른 분야의 기술을 경시한 나머지 철학에 머무는 경우 4) 테아게스처럼 병치레로 정치하기가 힘들어 하는 수 없이 철학을 하는 경우 5) 소크라테스처럼 영적인 신호를 접한 경우를 들고 있다. 주석가들은 1)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시라쿠사에서 탈출해 아테네로 망명한 플라톤의 친구 디온(Dion)을, 2)의 경우는 비록 에페소스가 작은 나라는 아니지만, 그곳에서 왕족의 지위를 포기하고 철학의 길을 택한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를, 3)의 경우는 여기서처럼 신적인 은혜로 타락의 유혹을 이겨내고 철학에 머문 소크라테스의 제자 파이돈(Phaidon) 과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을(플라톤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4)의 경우는 테아게스같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철학에 머문 사람들을, 5)의 경우는 소크라테스를 들고 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경우는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전 어떤 때에도 이런 일이 없었다는 점에서 오직 그에게만 해당하는 유일무이한 경우이다. (J. Adam. 해당 노트 참고)

*496 b-c ‘영적인 신호’ to daimonion sēmeion : daimonion은 형용사형으로서 정관사 ‘to’가 앞에 붙어 추상명사가 되면서 ‘신성’(Divinity)과 ‘신력’(divine Power)의 의미를 지닌다. 소크라테스는 이것을 신에게서 오는 특별한 신호로 여기고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학자들마다 해석이 다르다. 다만 <소크라테스의 변명> 31c-d에서 소크라테스가 그것에 대해 한 말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가히 신적인 수준의 냉철한 철학적 자기 반성력을 지칭하는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내겐 이것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어요, 어떤 목소리가 생겨나는데, 생길 때마다 늘 내가 하려는 일을 못 하게 말리긴 해도 하라고 부추기는 적은 한 번도 없지요. 내가 정치적인 활동들을 하는 것에 반대한 게 바로 이것인데, 내가 보기에 그 반대는 정말 훌륭한 것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와 관련하여 수호신으로서 daimōn이란 말이 제10권 617e에 나오고 <파이드로스> 242b-c에는 자기 행동에 대한 제제로서 ‘익숙한 신호’(to eiōthos sēmeion)란 말이 나온다.

* 496c ‘나라의 일들과 관련해서 어떠한 건전한ὑγιής 행동도 하지 않는다.’ : 앞서 492e-493a에서 우리는 다중의 광기가 지배하는 민주정에 대한 플라톤 자신의 절망감이 얼마나 크고 근본적인 것인지를 살폈다. 여기에서도 그러한 절망감은 그대로 이어져 민주정 체제에서 철학자들이 나라를 위해 어떠한 건전한 행동도 할 수 없음이 처절하게 토로되고 있다. 철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다만 겨울철에 바람에 실려 오는 흙비를 피해 벽 아래 서 있듯이 잠자코 자신의 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법과 불경한 일들로부터 정결함과 정의를 유지한 상태로 살다가 아름다운 희망을 가지고 평안하고 너그러운 상태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만족한 삶이라는 것이다.(496c-e)

* 이곳에서 나타나는 민주정체에 대한 플라톤의 절망과 무력감, 현실 도피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플라톤 철학이 갖는 실천적 성격에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실망감마저 안겨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강해 62에서도 자세히 살폈듯이 이러한 논의들은 모두 ‘철학하는 사람들이 권좌에 오르거나 권력자들이 철학을 하기 전에는 인류에게 재앙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혁명적 결론을 보다 절실하게 이끌어 내기 위한 방편적 논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시 말해 플라톤이 궁극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이상국가론은 기존의 정치체제에 대한 기대와 점진적 개선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구축하려는 점진적 개혁이론이 아니다. 플라톤은 이미 아테네 현실에서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현실 국가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청사진으로 평생의 숙고를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살폈던 것과 같은 정치적 지성의 극치로서 가히 이상에 가까운 철학자 통치체제를 구상하고 이어지는 논의를 통해 그 철학자 왕의 출현을 담보하기 위한 실천적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려고 했던 것이다.(이와 관련한 논의는 ‘강해 62’를 다시 참조할 것)

* 플라톤의 이러한 의도는 이어지는 아데이만토스와의 대화에서도 일정 부분 드러나 있다. 소크라테스는 소수의 철학자들이 자신의 신적인 성품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할 수밖에 없는 삶의 양태에 대해 어찌 보면 다소 자조적인 어투로 토로하고 있다. 아데이만토스 역시 소크라테스의 언급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아데이만토스는 안타까움과 연민의 마음으로 그 소수의 사람이 행하는 일들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고 소크라테스를 위로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의 말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 반대의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소수의 철학자들이 최대의 것을 성취하고 떠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힌다. 이것은 앞서 행한 소크라테스의 언급이 소수 철학자들의 소극적인 행동 방책에 대한 변명의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장차 소수 철학자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적극적인 행동 방책과 목표가 무엇인지를 보다 절실한 방식으로 드러내기 위한 극적 장치이자 일종의 아이러니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가 내심 의도하고 있는 것은 소수의 철학자들의 신념 유지를 위한 소극적인 삶의 방식을 자조 섞인 마음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걸맞은 철학자 왕 정치체제를 혁명적으로 새롭게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내적 성장은 물론 공적으로 정의로운 나라를 구축하는 것임을 보다 절실하게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철학자의 삶이 과연 이렇게 끝나야 할 것인가라는 플라톤 자신의 절규인 것이다. 진정 그들이 수행해야  마땅한 일은 따로 있다. 철학자의 목표는 현실 도피를 통한 유유자적한 삶이 아니라 진상에 대한 지적 인식과 실천을 통해 현실을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에서 플라톤의 목표는 그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다.

* 이로써 소크라테스는 철학이 비방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  비방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언급을 모두 마무리하고 태세를 전환하여 철학자 왕정의 실현 가능성을 논의 주제로 다시 꺼내 든다. – 끝 –

 

<다음 주제>

  1. 4. 철학자 왕정의 실현 가능성(497a – 502c)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조배준 지음,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근대 자본주의 정신은 무엇인가』(2023)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근대 자본주의 정신은 무엇인가』를 읽고

 

강건영(한철연 회원, 건국대)

 

조배준 선생님의 책은 베버가 전개하는 치밀한 논리를 충실하게 추적하면서도, 독자들이 쉽게 범할 수 있는 오독을 피해갈 수 있게 해주는 친절한 입문서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문학 고전들이 으레 그러하듯, 베버의 책 역시 ‘개신교의 종교적 윤리가 자본주의를 형성하는 문화적 배경이 되었다’는 단순한 요약으로만 잘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피상적인 이해는 베버의 주장을 대단히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본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러한 명제는 그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기독교 문명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서구 중심적 사고방식인 것처럼 보이거나, 종교적 요인을 자본주의의 필연적 전제로 삼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근대)자본주의’, ‘정신’과 같이 베버가 사용하는 개념의 엄밀한 정의, 논리 전개의 독특성과 방법론상의 특징을 밝히며 이러한 이해가 대단히 피상적임을 드러낸다.

베버에게 자본주의는 재화교환, 가치측정, 이윤추구, 상호계약과 같은 경제활동을 포괄하는, 어느 시대나 장소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베버의 연구대상은 17세기 이후 서유럽에서 전개되는 역사적인 ‘근대 자본주의’로 한정된다. 자유로운 재화의 교환이 가능한 시장, 복잡하고 전문적인 회계의 발달,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노동과 작업장 등 ‘(경제적) 합리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적 토대의 기원을 개신교 교리의 형성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베버의 진정한 논지인 것이다.

루터교의 ‘직업 소명’ 윤리와 칼뱅주의의 ‘예정설’을 계승한 청교도는 체계화된 노동을 통해 부를 추구하며 근검절약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 과정에서 직업적 성취를 신에게 부여받은 소명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종교 의존적인 사고방식을 지녔던 청교도들이 활약한 무대는 역설적으로 ‘세속의 공동체’일 수밖에 없었다. ‘세속적 금욕주의’와 ‘직업 윤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생활양식인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전통적 경제관계와 경제윤리를 밀어내고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형성하는 초기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점에서 베버의 분석은 서유럽의 근대 자본주의의 초기적 형성이 갖는 특수한 성격을 종교적 윤리가 경제의 심급과 맺는 독특한 관계성 속에서 해석하고자 한 정교한 이론적 논의였다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근대 자본주의의 성립과정에서는 필수적이었던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오늘날 거의 망각되었다. 베버 역시 자신이 살았던 20세기 초의 자본주의 정신이 이미 과거의 그것으로부터 대단히 멀어졌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지점에서 저자는 베버가 제시하는 문제를 현재화하며, 베버의 논의를 통해 독자들이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한 색다른 이해, 현재에 대한 진단,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베버의 논의는 근대자본주의적 에토스의 형성이 어떻게 전통적 경제관계와 경제윤리를 극복하고 사회 전체를 합리화, 체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는지에 대한 분석이지만, ‘경제적 에토스’분석의 방법론은 오늘날에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경제적 토대의 문제가 주체와 행위자의 문제에 맞닿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베버의 시대와 대단히 다른 원리로 경제적 행위자들의 에토스가 작동한다면, 그것에 대한 분석이 결국 ‘어떤 형태의 자본주의를 추구해야 하는가’ 내지는 ‘자본주의가 아닌 어떤 대안적 사회를 추구해야 하는가’와 같은 층위의 문제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평자 강건영: 건국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재학, 사회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