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질병이 아니다! [썩은 뿌리 자르기]

자살은 질병인가?

자살을 질병으로 규정하고자 했던 노력은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에스퀴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자살은 정신병의 모든 특징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으며, 인간은 미쳤을 때만 자살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도 사회학?정신의학?심리학 등 소위 공공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학문들은 자살을 질병 다루듯 취급한다. 그들은 우울증?조울증?자살 관련 유전자 등, 의학과 과학의 힘을 빌려 자살이 질병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고자 노력한다.

질병이 원인인 자살은 분명히 있다. 우울증?조울증과 같은 증상은 충분히 자살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질병의 고통 때문에 자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자살이 질병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질병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먼저 자살은 전염성이 강하다. ‘베르테르 효과’라고 불리는 자살의 전염이 그것이다. 최진실씨가 죽었던 달에는 자살자가 전달에 비해 66% 증가했다.

부모가 자살을 하면 그 자손도 결국엔 자살을 한다는 속설은 자살이 유전 질환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라는 것도 자살을 질병화 하고픈 이유일지도 모른다.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자살률이 유독 높다는 것은 국가 체면과 관련된다. 지금도 수많은 종교와 윤리에서 자살에 대해 열띤 논쟁을 하지만 자살이 질병이 아닌 시대도 있었다. 그 때 자살은 종교적 구원의 문제이자 철학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이제 자살은 의학의 문제이며 과학의 문제다. 자살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만이 자살을 질병화 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

그러나 자살을 직접적인 질병이라 보기에는 무언가 논리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말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자살은 사회적 질병이다.”, “우울증 유발 유전자”, “자살의 진화생물학”, “동물도 자살을 하는가?”등 자살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얘기들이 기사화된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다. 자살을 과학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살은 그들이 과학적인 설명에 포함하고 싶었던 윤리?도덕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이다. “동물도 자살을 할까?”라는 물음에 “예”라는 대답은 자살은 인간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폽토시스(apoptosis)’라는 세포 자살 현상은 도덕과 무관한 생명현상일 뿐이다.

아직은 과학이 자살을 설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과학적으로 질병화 하는 이면에는 단 하나의 장점만이 존재한다. 자살을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인 경제적인 문제를 개인의 질병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을 조금만 바꾸면 된다. “경제적 빈곤의 문제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당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를 보세요. 그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행복한 느낌을 갖지 못한다면 당신은 우울증에 빠진 것입니다. 혹시 조상 중에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이타적 자살, 영웅 만들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질병이 아닌 자살도 있다. 뒤르켐에 의하면 이것은 ‘이타적 자살’이라고 불린다. 이타적 자살은 개인이 사회에 통합 정도가 지나치게 높을 때 발생한다고 하지만, 사회를 강력하게 통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유일하게 질병화되지 않은 자살은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추앙받으며 영웅 만들기로 이어진다.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있었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제국주의는 제국주의 체제를 위한 영웅을 필요로 했고, 식민지 국가들을 독립을 위한 영웅을 필요로 했다. 그들이 조국과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침략이든 테러든 자신을 희생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런 희생도 학문적으로는 ‘이타적인 자살’일 뿐이고, 여기서 다시금 문제가 발생한다. 좋은 자살과 나쁜 자살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기적 자살은 나쁜 것이고 이타적 자살은 좋은 것인가? 자살이라는 질병이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면 이타적 자살도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이타적 자살도 사회를 병들게 만들 수 있다. 가미가제를 생각하면 된다. 젊은이들이 비행기를 몰고 적에게 돌진하는 것은 아름다운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병폐의 한 단면일 뿐이다. 21세기에는 한국에도 영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국형 영웅 관리 모델 수립’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들은 영웅을 만들지 못하는 사회는 위대한 성취를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한다. 이제 그들의 목표는 교과서다. 교과서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인간형을 영웅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강재구 소령의 이야기도 한주호 준위의 이야기도 가슴 속에 기억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교과서가 아닌 다른 글에서 만나야만 한다. 아니면 서정주의 「오장 마쓰이 송가」와 다를 바가 없다. 그것도 아니면 백선엽 장군처럼 만주군 간도 특설대에서 친일을 하다가도 전쟁에 나가서 잘 싸우면 당신도 오성장군이 될 수 있고, 영웅이 되어 나중에는 국립묘지에 갈 수도 있다고 교과서에 실어 주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죽은 영웅보다 살아있는 영웅이 더욱더 모범이 되지 않겠는가! 독일의 시인이자 극자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말한다. “영웅이 필요 없는 나라는 행복하다.”지금 우리에게는 영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업에 종사하면서 빈곤 때문에 자살을 하지 않는, 그래서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빈곤도 질병이 아니다

그러나 빈곤층의 자살이 자꾸만 증가한다.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빈곤층의 자살을 질병으로 파악하려는 사람들은 이렇게 진단한다.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에의해 우울증에 빠진 빈곤층 중에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약물 치료를 받으며,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하고, 상담을 받고, 교육을 받으면 된다. 슬그머니 우울증이 유전 요인 때문이라는 말도 한다.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부탄”이라는 기사와 함께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정작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의 대상인 우리의 부자들은 제외된다.

그러나 우리는 OECD 국가 중 자살률만이 1위가 아니라 저임금 근로자 비중도 1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경제적인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예전에 빈곤을 사회생물학적인 견지에서 설명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들은 실패로 끝났다. 과학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도 빈곤을 질병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가난하면 질병에 걸릴 수 있다. 가난하면 질병을 치료받지 못해 죽을 수도 있다. 가난하면 질병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난 자체는 질병이 아니다. 또한 빈곤에 의한 자살도 질병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과 의학의 힘으로 자살이라는 질병의 치료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경제적 분배 정의를 실천하는 것, 저임금 근로자를 줄이는 것,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바로 이것이 빈곤에 의한 자살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이다.

과학과 의학이 해야 할 일은 자살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치료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서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은 경제적 분배 정의를 실천해서 가난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을 막는 것이지 ‘이타적 자살’을 미화해서 정치 의도에 맞는 영웅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국가가 나서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동물의 자살 사례로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 중 동물학자 제인 구달이 관찰한 ‘플루’와 ‘플린트’이야기가 있다. ‘플린트’는 어미인 ‘플루’가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주검을 지키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야생 동물의 세계에서 독립하기 전 새끼가 어미 곁에 붙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어미의 부재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미가 없는 동물은 먹이를 얻어먹을 수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빈곤층일수록 가족동반자살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진정한 경제적 분배 정의를 다시금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적당한 가난은 ‘검소하다’라는 말로 위로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끼니가 없어 비관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자살이라는 질병에 걸렸다”는 말이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만 남을 뿐이다.

강경표(중앙대학교 철학 박사수료) /

“나와 그것(I-It)”의 관계가 압도하는 사회의 끝 – 자살[썩은 뿌리 자르기]

최근에 소개된 임상심리학자 토마스 조이너의 “자살에 대한 오만과 편견”에 따르면, 자신이 누군가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과 아무데도 속해있지 않는다는 ‘소속감 부재’의 두 심리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때 자살에 대한 생각이 강해진다고 한다. 특히나 핵가족화 및 개인주의화가 강화되는 시대가 됨에 따라 물질적인 문제보다는 관계성과 정체성의 위기로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보고가 있다. 내가 ‘짐스런 존재’라는 것은 자신이 중심으로 들어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이란 의미를 강하게 내포한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보면 항상 주인공으로만 살 수는 없다. 살면서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자신이 중심이 될 수도 있고 엑스트라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외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회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는 이런 상황이 감정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붕괴시켜 극단적인 결말에 치닫게 한다는 것이다.

유태인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그의 저서 『나와 너』(I and Thou)에서 인간을 관계 속에 있는 존재로 보고, 살아가면서 맺는 관계의 형태를 크게 “나와 너”(I and Thou) vs. “나와 그것(I-It)”의 두 가지로 분류했다. 전자인 ”나와 너“는 한마디로 인격과 인격이 만나 서로 진정한 소통과 나눔을 통해 한 인격이 성장하고 성숙되도록 돕는 이상적인 관계다. 이러한 관계와 관계가 모여 한 인간의 삶을 견고하게 지탱시켜주기 때문에 삶의 위기가 와도 뿌리째 뽑히지 않고 오히려 ”비 온 뒤 땅 굳어진다“는 속담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반면 ”나와 그것”은 말 그대로 상대는 철저히 도구격이 됨으로써 그 상대 앞에 있는 “나“는 피상적이 되어버리고 만다. 내 앞에 있는 상대방은 수단이 되고, 효용가치로 스캐닝(scanning)이 되어 점수가 매겨지며, 어떤 필요에 의해 만남이 일시적으로 이뤄지는 관계기에 수명도 짧은 경향이 있다. 일명 안 보면 그만인 관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나-그것”의 관계, 다시 말해 도구적이고 외형적인 관계만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데 있다.

“나”의 실체와는 상관없는 외형적인 세상에서 사는 데 보다 익숙해져있기에 지속적으로 힘들고 우울할 때 관계 속에서 도움을 받기보다는 그렇게 도움을 청하는 것 자체를 “짐스런 존재”가 된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하고 혼자서 파괴적인 외로움을 겪다가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 “나와 그것”의 관계가 나와 나의 생명 사이의 관계까지를 지배하는 것이다. 나는 사회의 그것이고, 생명은 나의 그것이다. 사회가 짐이 되는 나를 떼어 놓듯이, 나도 짐이 되는 나의 생명을 떼어 놓게 된다.

산업사회를 지나 풍요와 풍족을 누리는 사회로 진입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역설적이게도 더 이상 자살뉴스는 특별한 뉴스가 아니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연이은 자살뉴스로 다시 자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겁게 달궈졌었다. 대부분의 자살자들이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신경안정제에 의존하다시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장기간 약물복용에 따른 역치현상 혹은 부작용으로 또 다른 의존을 낳아 본질적 치료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속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자살을 한 인간이 속한 관계, 그 관계의 나뭇가지들의 본류인 사회적 맥락을 간과하고, 생물학적인 관점에 치중하여 접근해 버리는 바람에 ‘약물만능주의’로 빠진 경우라 할 수 있다(물론 여기서 약물치료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복용기간이 장기화가 될 경우의 치료계획은 다각적이고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별도의 치료계획 없이 약물치료에만 의존하는 이들을 보면 결국 관계적인 맥락을 통한 완쾌가 제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 치료가 비교적 보편화되어 있는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도 심리치료는 약물과 인지행동치료 같은 여러 치료방법들이 병행되어 이뤄진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마음을 터놓는 치료과정이 쉽사리 생략되고, 사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배식 받듯이 약을 받는 경우가 빈번히 이뤄진다. 더욱 당혹스러운 문제는 이러한 방식의 치료과정이 정작 자살 시도나 자살 이후 이를 유일하게 설명하는 근거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당초 그를 자살로 몰고 간 실질적 동인(動因)과 망자에 대한 진정한 이해보다는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기계적 설명만이 그의 삶의 마침표가 되어 버린다.

마틴 부버가 『나와 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은 관계를 떠나 생각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모든 인간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세밀하게 연결되어 살아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라틴어는 ‘inter hominem esse’로 ’사람들 사이에 있음‘을 뜻한다. 반면. ‘죽다’라는 표현은 ’inter hominem esse desinere’로서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 있지 않다’라는 의미이다. 건강한 유기체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자기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그러나 병든 유기체는 그 연결고리가 단절되어 있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단절된 유기체는 결국 죽음을 뜻한다. 그 유기체에 속한 모든 것이 죽는 것이지 개중의 우월(?)한 세포나 근육질은 살고 그렇지 못한 것만 선별적으로 죽는 게 아니란 말이다. 썩은 유기체 안에서 모든 세포는 어쩌면 이미 죽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실재를 지탱해주는 일차적 자양분은 개인과 긴밀히 연결된 다양한 “나와 너”의 관계를 통해서 얻어진다. 자신을 둘러싼 관계와 상황에 대한 재해석을 건강하게 수행하는 과정을 통한 근본적인 치료가 막혀버린 자의 자살선택은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실패로만 치부하여 해석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이것은 마틴 부버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철저히 대치한다. 다시 말해, 오로지 ”나와 그것“의 관점만으로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이뤄질 수는 없다.

“내 끝 속에 내 시작이 있다” – T.S Eliot

박진영(서일리노이대 심리학과 졸업) /

학벌사회 다시보기[썩은 뿌리 자르기]

‘대학’이라 쓰고 ‘학벌’혹은 ‘낙인’이라 읽는다

한국사회에서 학벌 문제와 부동산 문제를 속 시원히 말하기 어려운 것은 집권자들과 시민 모두 자본의 이해관계를 내면화하여, 주로 그것을 자신들의 안녕을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간주하고 이용하면서도, 그 욕망구조가 까발려지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그것은 국가의 교육과 주택에 관한 역할과 정책이 그 문제들을 완화하는데 거의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문제의 현상은 신자유주의 속에서 어떻게 하든 홀로 살아남기, 자본주의가 가르쳐 준 원리를 습득해서 보다 더 경쟁적이고 탐욕적인 사람이 되기로 드러난다.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에 관한 문제가 서열화, 사교육, 학벌의 문제로, 사람이 살아가고 서로 어울리는 주택과 토지의 문제가 과도한 대출, 투기, ‘먹튀’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 말이다.

그런데 학벌이라는 사회적 자본과 부동산-불로소득이라는 경제적 자본을 통해 무엇인가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든, 그것들에 대해서 기대할 것도 잃을 것도 없으면서 ‘나도 언젠가, 혹은 나의 자식들은 언젠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든, 모두 그 문제에 연루되어 있고 그 병폐를 공고화하는 공범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가진 것이 많기에 잃어버릴 것이 불안한 자의 두려움과, 가진 것이 없기에 끊임없이 탐하고 불안한 자의 두려움은 그 근원이 같을까, 다를까. 학벌사회와 부동산사회 때문에 고통 받으면서도 그것을 여전히 작동시키는 원인을 제공하는 인민들의 욕망구조는 대학을 학벌 혹은 낙인이라 부르게 만들고, 육아와 교육과 주거와 노후복지를 모두 ‘경제문제’라고 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굴레에 갇혀 악다구니하는 한 이 지루한 논쟁과 입시지옥이라는 제자리걸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사람을 도구로 여기며 이윤만 추구하도록 강요하는 자본의 논리가 계속 강고해지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존재양식은 변함이 없는데, 혁신적인 제도 개선과 의식 개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서울대가 기초학문 연구중심의 대학원 체제로 재편되고 평준화된 국립대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대학서열화가 사라질까. 대학서열화 문제가 완화되더라도, 높은 사교육비를 감당할 만큼 부모가 경제력이 있고 비교적 똑똑하고 성실하지만, 사회의 지배원리에 대한 의심은 희박한 아이들이 모이는 ‘유사서울대’가 다시 만들어지지 않을까. 얼마나 ‘경쟁력 있는’재단이냐에 따라, 즉 얼마나 대학교와 고등학교가 기업화되느냐에 따라 더 세분화된 서열이 매겨지지 않을까. 이렇듯 학벌 문제는 한국의 뒤틀린 경제성장 속에서 ‘괴물’이 된 입시교육이라는 암 덩어리의 대표적인 증상일 뿐이다. 그래서 학벌 문제는 교육 문제이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결코 교육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대학 중심의 패러다임으로는 세부 교육정책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부모들은 한숨 쉬고 아이들은 더 피곤해질 뿐이며, 사교육산업 자본과 거기에 기생하는 스타강사만 덩달아 미친 춤판을 옮길 뿐이다. 교육 시장을 지배하는 이러한 원리가 우리를 훈육하고 규율하는 한 학벌에 의한 사회의 보수화,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과 입시교육열에 의한 개인적?가정적?국가적 ‘자해 쇼’는 계속 될 것 같다.

국가와 학벌

과연 한국사회의 강고한 기득권 세력은 땅값과 집값이 떨어지고 대학서열화가 약화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까. 서울시장은 학교의 무상급식은 퍼퓰리즘 정치일 뿐이고,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무차별적’복지이기 때문에 뭔가 두려운 것인가 보다. 그렇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격차와 차별, 불평등과 경쟁이 이 땅의 지배원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화법은 무척 단순해서 자신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말하기위해 늘 국가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가져다 쓴다. ‘그들’이 그렇게 목 놓아 외치는 국익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라는 것이 단지 그들의 지배체제와 이익구조에 대한 위협을 말하는 것임을 마치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듯이.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시절부터 학벌은 ‘국가’에 의해 형성되고 강화되어 왔다. 물론 현재의 학벌체제는 봉건시대의 엘리트를 규정지었던 족벌과 문벌의 근대적 형태이기는 하지만 일제가 이식한 제국주의와 국가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국가를 위해 헌신할 유능한 관리를 양성하고 국가권력에 종속된 엘리트에 의한 지배체제와 그것을 확대재생산할 교육체제의 마련을 위해, 그 피라미드 체제의 정점에 거의 무한대의 상징가치를 부여하는 것. 물론 이러한 원리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교육‘인적자원’부 시절에도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국가가 보증하는 학벌로서의 서울대는 오늘날 다른 대학에 비해 압도적인 수로 고등고시 합격자를 배출하는 것만 봐도 여전히 일본 제국주의를 위한 경성제국대학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가장 창의적이지는 않지만 필기시험에 가장 능한 인재들을 배출하는 최고의 학벌인 것은 틀림이 없다.

학벌투쟁은 계급쟁투인가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대학이 달라질 경향이 크고, 졸업한 대학에 따라 소득의 격차가 여전히, 아니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면 이미 현재의 ‘학벌투쟁’은 개인과 가족의 사회적 자본을 쟁취하고 계급적 수준을 결정할 중대한 사명을 띤 계급쟁투의 현장이며, 더할 나위 없이 정치적인 사안이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불공정한 게임에 참여하고 있더라도 그 게임의 룰을 벗어나는 것이 곧 그 세계에서의 회복불능을 뜻하거나, 게임의 진행방식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는 것이 곧 지독한 패배를 뜻하는 것이라면, 그냥 그 불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용인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형식적 민주화를 견인했던 386, 이제는 486이 된 ‘그들’도 대부분 그러했다. 그들은 좋은 학벌도 대기업 취업에 바로 써먹히지는 않는 요즘 같은 시대에 20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에 안도했다. 그들은 양화된 격차에 따라 차등적으로 한정된 사회적 자본을 미리 배분받아 버리고 자신의 등급을 스스로 낙인찍게 만드는 이 불합리한 게임에 대리인으로 임하며, 그들의 자녀들이 (80년대의 그들처럼) 이의제기를 하기보다는 기꺼이 그 게임의 승자가 되어주기를 원했다. 물론 이 학벌 따기 게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 게임에서 승자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 게임을 벗어나 또 다른 ‘게토’에 소속되더라도 대학졸업장을 요구하는 사회의 요구에 뒤늦게 그 게임 판에 한 발을 넣을 수밖에 없는 곳이거나 외국 대학을 준비하는 비싼 게토이다. 그런데 교육과 대학입시 문제, 나아가 취업을 위한 그 다음의 쟁투를 ‘제로섬 게임’과 ‘죄수의 딜레마’로 바라보는 이 모든 관점 자체가 우리의 지적?실천적 탈출구를 닫아버리고 있다.

입시교육의 상처와 신화를 응시하기

자의반 타의반 진보적인 지식인이라는 교수님들도 어느 순간에 경기고와 경북고를 따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입시전쟁의 ‘승자’로서의 우월감은 그들의 도덕적 삶과 학문적 업적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리고 필자가 고교시절 경험했던 우열반과 보통반의 극심한 차별은 필자의 의식 깊은 곳에 어떤 열패감을 남겨 놓았을까. 일류 대학을 나온 부모들은 그 사회적 특혜를 잘 알기 때문에,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은 그 차별과 서러움을 알기 때문에 흔히 어느 집이나 ‘잘 키운 자녀’는 ‘좋은 대학에 들어간 자녀’가 된다. 학벌투쟁은 온갖 부당거래와 비리가 관행이 된 기업 중심의 사회체제를 혁신하는 동시에, 85%가 대학에 진학하면서도 학벌의 권능에 벌벌 떨어야 하는 우리 내면의 욕망과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문제여서 접근하기가 아주 어렵다. 가수 타블로의 학력 위조 문제를 제기했던 ‘타진요 사건’같은 해프닝을 검경?언론이 진지하게 다루고 뒤쫓을 만큼 우리에게 학벌 (혹은 누군가의 특권) 문제는, 우리 사회의 배후와 우리 내면에 깊은 생채기를 가져왔다. 저마다의 내면이 응시되고 조금씩 말과 행동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국가의 정책과 제도도, 학교와 교육도, 아이들과 우리 모두의 미래도 바뀌지 않는다.

자녀의 교육 문제를 자녀가 앞으로 살아갈 생존수단이자 혹시 모를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입시문제로 축소?환원시켜버리고 그 게임에서 충실한 플레이어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망을 먼저 성찰할 때 어린 세대들의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매만질 수 있지 않을까. 자율성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학교, 창의성이 피어나는 교실은 그 다음에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10대들의 삶을 저당잡고 그들에게 이것은 인생을 건 멋진 한 판 싸움이라고 사기 치는 건 이제 그만하자. 그들에게 하루에 한 시간만이라도 비정규직의 실상과 그들이 장차 ‘교수님’이라고 부를 대학 시간강사들의 현실에 대해 알아가고 고민하고 토론할 시간 같은 것을 주면 10년 후 세계는 어떻게 변할까. 바보야, 문제는 사람이야!

조배준(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대학서열화 폐지를 위한 물음은 우문우답(愚問愚答)인가? [썩은 뿌리 자르기]

질문놀이

나이가 들면서 혼자 망상(妄想)하는 습관이 생겼다. 망상놀이의 즐거움은 엉뚱한 질문과 대답이다. 단순한 예로, 쥐가 낙동강을 헤엄쳐 건널 수 있을까? 오리발로 헤엄쳐서? 전용보트를 만들어서? 아! 보로 건널 수 있겠구나! 이 놀이의 시작은 질문이며, 조금씩 변형시켜 계속 질문한다. 윤리적 규범을 생각하면 우문현답(愚問賢答)을 해야겠지만, ‘혼자만의 산책’이기에 ‘우문우답(愚問愚答)’으로 끝난다. 사춘기에 끝냈어야 할 놀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나의 경우 건망증뿐만 아니라, 이러한 유치함이 더 큰 문제다.

한국사회에서 학벌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잘못된 질문일까 아니면 풀 수 없는 질문일까? 만약 풀 수 있고, 사회적 의제의 중요도에 따라 순서를 정한다면 몇 번째에 해당할까? 한국사회는 학벌사회일까? 이에 대해 몇 %나 반대할까? 한국의 학벌사회가 공정하다는 주장에 대해 몇 %나 찬성할까? 만약 불공정하다면 그것을 극복할 의지를 가진 사람은 몇 % 정도일까? 만약 그 의지가 있다면 전국의 모든 대학을 없앨 수 있을까? 모두 없애지 못한다면 그 대학들을 평준화할 수 있을까? 평준화를 할 수 없다면 대학입시만이라도 없앨 수 있을까? 대학입시를 없앨 수 없다면 선발방식이 아니라 추첨방식은 안될까?

이 질문들을 보고 화가 나신 분들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분들이고, 오히려 재미있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우문우답(愚問愚答)의 동호회원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대답은 질문 속에 있고, 인간은 자신이 풀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기 마련인데, 질문의 연쇄가 현실적으로 공감을 얻어내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학벌사회에서 부모님과 나는 전우(戰友)

‘학벌사회’문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교육문제이면서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은 한국사회의 커다란 욕망거울이었고, 국가와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꿔왔다. 그리고 그 정책의 지렛대는 언제나 대학과 그 입시의 변화로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매년 반복되는 대학입시에 대한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입시전형이 다양화되면서 소위 ‘수능’에 대한 관심은 과거 ‘학력고사’에 대한 관심보다 줄었다. 그러나 과거 고사장 앞에서 엿을 붙이고 기도했던 부모님의 모습보다 각 대학 입시설명회장을 뛰어다니는 부모님의 모습이 더 강조될 뿐이다. 형태는 바뀌어도 ‘병목현상’처럼 대학입시에 집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우리의 교육현실은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오늘날 졸업생의 85%가 넘게 대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양적으로 보면 대학입시와 관련된 경쟁이 없어진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모 일간지에서 학벌사회에 관련된 대안을 모색하고자 기획보도를 마련하였다. 기사 내용 가운데 2006년 대학졸업자 월평균 소득을 소개했다. 1-5위권 대졸자 227.5만원, 6-10위권 대졸자 205.4만원, 11-30위권 대졸자 193.9만원, 그 외 4년제 대졸자 169.0만원, 전문대졸자 158.0만원. 이를 기계적 방식으로 분석하면, 대학이 등수로 매겨져 있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소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대학의 서열화와 소득의 등급이 연동할 뿐만 아니라 대학의 등급이 소득의 등급을 결정한다. (기사원문)

예시가 소득 차이만을 제시해 단편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자신의 경험이든 가공된 공포 혹은 불신의 이야기든 학력과 소득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현상이다. 물론 이것이 반례(反例)적 개인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러한 구조와 믿음 속에서 대학 서열의 정점에 오르려는 이 전쟁에서 내 부모, 나 그리고 내 자식은 쉽게 ‘전우(戰友)’가 된다.

학벌사회 속에 강화되는 불공정한 경쟁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전장(戰場)’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비판을 받는다. 보수진영의 경우 교육정책의 ‘개혁’의 외양은 기회와 선택의 다양성이다. 단순한 학력고사에 따른 단순한 서열화보다 다양한 전형을 통한 기회와 선택의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진보진영의 경우도 학력고사에 따른 서열화의 문제점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해 온 다양화가 기회와 선택의 다양성보다는 사교육을 매개로 사회적 양극화의 재생산이라는 점을 비판한다.

지난 달 30일 전국 모든 초·중·고교의 학교별 201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소위 ‘일제고사’의 결과가 공개되었다. 그 결과를 보도한 신문의 내용을 인용하면, “서울지역 초등학교에선 사립학교가, 중학교에선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가, 고등학교에선 특수목적고(외국어고·과학고·국제고)가 성적 상위 20위권을 휩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하위 20위권에는 경제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의 학교가 다수를 차지해, 지역에 따른 학력 양극화가 극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사원문)

물론 이 속에서도 ‘개천의 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작년 11월에 내놓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외고 교육 실태’보고서를 인용한 모 주간지의 보도를 보자. “외국어고 학생 가운데 가구 소득이 500만원을 넘는 비율은 49.4%지만, 일반고에서는 그 비율이 절반 이상 떨어진다(23.8%). 사교육 참여도도 달랐다. 외국어고 학생 10명 가운데 9명꼴(88.7%)로 사교육을 받지만, 일반고에서는 65.3%만이 사교육을 받았다. 월평균 사교육비도 외국어고 학생이 45만3천원으로 일반고 학생(22만원)의 두 배를 넘었다.” (기사원문)

인용문을 끌어들인 것은 현재 초·중등 교육과정이 출발점부터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육제도는 ‘학력고사’에 의한 전국적 서열화를 개혁한 것이 아니라, 기회와 선택의 다양성이란 가면을 쓴 부모들의 돈 잔치의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불공정한 정글 속에서 경쟁은 오히려 강화된다. 그 속에서 대학의 서열화뿐만 아니라 이제 특수목적고를 매개로 한 초·중등 교육기관의 서열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대학서열화의 극복 없이 학벌사회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그럼 대안은? 그 동안 많은 교육학자와 정당 및 시민단체들이 대안들을 제시해왔다. 많은 논의과정은 학벌사회의 극복이란 총론적 방향에 동의하지만, 그 실현의 구체적 정책 수단에 대해서는 다양함을 보여준다. 진보정당의 경우 ‘국공립대의 통합네트워크’내지 ‘통합단과대 체제’를 통해 최소한 국공립대부터 서열화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제시한다.(기사원문)

그러나 이러한 진보진영의 대안 제시는 현실의 벽 앞에서 항상 외면을 당한다. ‘누더기 법’같은 교육 정책의 변화는 교육 정책에 강한 불신과 공포가 자리 잡게 만들었다. 따라서 교육 정책이 어떻게 변하든 사교육을 통한 내 자식 밖에 믿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전장(戰場)’에서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된다.

따라서 학벌사회의 극복을 위한 대안 제시는 어려우며, 먼 길이다. 그러나 모든 교육과정에 대한 합의가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대학의 서열화를 폐지 내지 축소해가기 위한 계기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학벌사회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출발임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초·중등 교육과정을 정상화하더라도, 대학의 서열화가 존재하는 한 사교육에 대한 열망과 공교육 과정의 파행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학서열화에 근거한 프리미엄의 유혹과 공포를 우리가 벗어나지 않는 한 학벌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 내딛기 어렵기 때문이다.

축구에 대해서 많은 남자들이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특히 ‘군대스리가’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축구대표의 경기력이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포털의 토론장은 벌집이 된다. 교육문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경우 대부분 부모님이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육정책의 방향을 크게 전환할 경우 벌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학서열화 방지를 위한 고등교육제도의 변화와 그 입시제도의 근본적 변화 없이 학벌사회의 변화가 있을 수 없다면, 그 벌집을 우리는 건드릴 수밖에 없다. 현실적-정책적 어려움 속에서도 교육 자체의 목적과 규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벌집 건드리기 놀이가 고통스럽지만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놀이과정에서 질문은 100년을 내다보는 큰 물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비록 우문우답(愚問愚答)이더라도.

김광호 (서울시립대 석사과정) /

‘네 등급을 알라!’는 사회, 그러나 ‘네 자신을 알라’[썩은 뿌리 자르기]

나를 보는 나가 아닌 대상으로 알려지는 나

얼마 전 보았던 영화『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첫 장면에 John Betjeman의 자서전 『종소리에 눈을 뜨고』의 구절인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Childhood is measured out by sounds and smells and sights, before the dark hour of reason grows(유년시절은 이성의 어두운 시간이 자라기전에 소리와 냄새 그리고 시각에 의해 평가된다).” 우리는 여기서 영화의 상세한 줄거리를 얘기하기보다는 영화의 첫 장면에 나오는 “the dark hour of reason”은 무엇을 의미할까? 라는 의문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잣대로 세계와 만나고 있는가? 영화 속에서 독일 소년 브루노는 슈무엘이라는 유대인 소년을 이성이라는 잣대로 만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유대인 소년과 이성의 어두운 시간보다는 감성의 창문을 통해 만나고 있다.

아마도 영화 속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이성의 어두운 시간”이란 모든 세계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 개체의 질적 측면보다는 양적 측면만을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간주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소위 합리성이라는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이러한 시각은 결국 인류의 참혹한 사건을 만들어낸 도구적 이성으로 귀결되며 인류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양화시키려는 이성은 생텍쥐베리의『어린왕자』본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작가는 숫자로 세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어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보는 적이 없다. “그 애 목소리는 어떻지? 그 앤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수집하니?”라는 말을 그들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 앤 몇 살이니? 형제는 몇이고? 몸무게는? 아버지 수입은 얼마야?”하고 그들은 묻는다. 그제야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가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는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상상하지 못한다. 어른들에게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러면 그들은 “야 근사하겠구나!”하고 소리친다. …
…어른들은 다 그렇다. 그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을 항상 너그럽게 대해야만 한다. 하지만 인생을 이해하는 우리는 숫자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학벌사회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이 글에서 영화, 소설 이야기가 현상적으로는 다소 주제와 벗어난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와 맞물려 강력하게 사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하는 것에 대한 수량화 문제는 ‘나’를 내가 주체가 되어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과 연결된다. 나의 내면이 아니라 나를 외부의 그 무엇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이 점이 바로 학벌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를테면 주체로서 ‘자아the self를 알아듣는 나the I’가 아니라 ‘대상으로서 알려지는 나 the me’에 무게 중심을 맞추어 살아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바로 그 핵심에 있다. 학벌 사회를 조장하고 추구하는 생활양식이 공고화된 사회에서는 대상으로 알려지는 ‘나’를 더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바로 이 알려지는 대상화에

병역비리의 그림자 [썩은 뿌리 자르기]

[썩은 뿌리 자르기]

병역비리의 그림자

?

글: 윤태양 (건국대 석사수료)

* 본인은 본 글에서 ‘병역비리’의 이면을 고민하고자 했다.? 허나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너는 잘났냐는 어린 백성들의 본체없는 손가락들로부터 본인을 지키기 위해, 밝혀둔다. ?본인은 신체검사 1등급, 현역 육군병장 만기제대 예비역이다.

연예인과 정치인, 병역 비리자들을 대표해 뭇매를 맞는 그들

수 년 전 병역의무를 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에 들어올 수 없게 된 연예인이 있다. 외모와 실력을 겸비해 많은 촉망을 받았던 그이기에 어쩌면 국민들의 분노는 더 활활 타올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서도 한창 주가를 올리던 연예인 한 명이 병역비리라는 지뢰를 밟은 것 같은데, 적어도 그 지뢰는 그의 발목을 잘라먹긴 할 것 같다. 연예인이라는, 공인이라는 이름아래 그들의 병역비리문제는 호사가들의 입에만 오르내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병역비리는 사실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스무살 남짓한 대한의 남아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삼겹살과 함께 얹어지는 얘기들은 여자 아니면 군대. 군대를 가게 된 친구들은 세상이 끝나는 양 사회의 전우들의 이별주를 받으며 미꾸라지 같은 친구들에게 부러움 반 비아냥 반으로 술잔을 넘긴다. 가기 전엔 가지 않은 친구들을 그렇게 부러워하다가도 막상 갔다 오면 그네들을 비웃게 되는, 군대가 대체 무엇인가.

병역비리라는 말 자체의 비리

비리라는 말이 붙었다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병역을 피하는 일이 그 자체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정직하게 느끼게 해준다. 고리타분해보이지만 국어사전을 보면, 비리(非理)는 ‘올바른 이치나 도리에서 어그러짐’이다. 이걸 빌미로 거꾸로 되짚어보면 병역을 행하는 것은 올바른 이치나 도리에 맞는 것이다. 이른바 ‘신성한 국방의 의무’. 우리는 이미 병역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병역을 신성한 국방의 의무로 생각하도록’ 훈육당하고 있는 것 같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근대국가의 태동과 함께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로 지워진 그리고 이른바 보수주의자들의 깃발에 쓰이는 대표적인 문구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국방의 의무’라는 말 앞에 ‘신성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때, 우리가 그를 오른편에 세우곤 하는 것은 그 문구 자체가 가진 근대적이고 보수적인 측면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근대적인 것이 모두 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쁠 것이다. 보수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그를 ‘꽉 막힌 꼴통’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오히려 또 다른 보수적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나 판단’이 묶이지 않고 ‘그것 자체’를 봐야만 하지 않을까. 비록 ‘신성한’이라는 단어가 우리 앞을 가로막아 서지만 사뿐히 즈려 밟아주고 국방의 의무의 당위성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냐는 말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 썩히는 시간?

대한민국 헌법은 교육, 납세, 근로, 국방의 4가지 기본의무를 국민에게 부여하고 있다. 대한민국 병역법은 ‘대한민국 국민인 18세 이상의 남자’에 대해 제 1국민역에 편입시키고 19세에 징병검사를 받게 하며, 1급에서 7급까지 등급에 따라 병역을 지게 한다. 법에 따르면 병역의 의무는 모든 국민 – 정정하자 – 국민 중 모든 18세 이상 남자에게 지워진다. 그런데 신체검사 후 등급에 따라 구분되는 병역을 배분하는데 문제는 현역판정을 받을 수 있는 남자들이 이런저런 지혜를 짜내 현역 등급에서 벗어나는데 있다. (물론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서 남성성을 찾지 못하여 고민인 분들의 문제는 또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네들에 대해서는 병역의 의무보다도 주민번호 뒷자리의 결정문제가 더 시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른바 종교적인 혹은 비종교적인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친구들에 대해서는 요점이 다른 두 가지 판단;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판단과 양심의 자유라는 가면 뒤에 숨은 비겁한 거짓말쟁이들이라는 판단 사이에서 각각의 케이스가 구분되겠지만 어찌되었든 전자로 판단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다루는 범위 밖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2년이라는 시간을 헐값에 팔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하루 일당도 안 되는 돈을 월급으로 받아가며 평소 때는 쳐다보지도 않던 XX파이에 침을 흘려야 하는가. 사실 이 문제는 근대국가와 국민의 관계설정에 있어서 상호에 교환의 관계를 설정하면서부터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교환은 근대로 넘어서면서 국민에게 자유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국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존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는 어떤 것들에 대해, 국민에게 의무로 부과하면서 그럴 듯한 이유를 갖다 대야 할 것 같은데 어떤 것도 적절하지 않아서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이 관계는 꽤나 그럴 듯 해 보인다. 교환은 아주 익숙한 관계이고, 국가가 당신에게 딱히 해준 것이 없어 ‘보일지라도’ 당신이 적어도 그 국가 속에서 살아가며 유익을 얻었다면 당신도 국가에게 무언가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해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잠깐. 당신이 만약 ‘어, 그런가.’ 했다면 당신은 방금 무언가를 놓쳤다. 교환은 어디까지나 공통된 기준을 가지고 상호가 비슷한 정도의 가치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땅에서 농사지어 이만큼 벌었으니 요만큼은 나에게 주라.’는 말은 그나마 낫다. ‘내 땅에서 농사지었으니 이만큼은 나에게 주라.’는 말은, 더구나 ‘내 땅에서 농사지었으니 이만큼은 세금, 이만큼은 보너스로 주라.’는 말은 글쎄, ‘내 구역에서 장사하면 보호세를 내야 할 것 아니야!’라는 동네 건달패의 대사의 유려한 표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인간의 가능성을 이른바 측정불가능의 무궁함으로 둔다면, 그리고 세상의 것들이 전부 돈으로 환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손 친다면 우리의 2년은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알 수도 없다. 우리의 2년은 대한민국에서 살아오고 살아갈 값의 부가세인가. 그보다, 우리는 그 교환을 꼭 해야만 하는가.

상대적 박탈감

이른바 병역비리자들에 대한 분노의 표출에 있어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자들에게 그 분노의 권리조차 분배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는 확실히 상대적 박탈감인 듯하다. ‘나는 갔다 왔는데 너는 안 갔냐!’라는 말에는 이미 ‘가기 싫은 곳’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가기 싫은 곳이라는 말에는 또 ‘가야하는 곳’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가야하는 곳’이라는 말에는 ‘모두’라는 말이 숨어있다. 곧 제대로 말하자면, ‘모두 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18세 이상 성인 남자) 가야하는, 그렇지만 가기 싫은 그 곳에 나는 갔는데 너는 안 갔다.’가 되지 않을까. 사실 이렇게 보면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가긴 가야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위에서 말한 것, 곧 군대를 가야하냐 갈 필요 없냐의 문제는 이미 병역비리에서는 얘기가 끝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병역비리의 그림자가 언뜻 보인다. ‘저 녀석 군대 안 가려고 버둥거렸어. 나쁜 놈.’이라는 분노 뒤에 ‘군대 말이야, 꼭 가야 하는 거, 너도 알잖아.’를 숨긴 것이다.

죄다 언론이 뒤집어 쓸 죄목은 아닐 것이다. 언론도 목적이 있을 것이고, 사실 그것은 언론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목적일 것이다. 이른바 ‘영감’님들이 그 중심에 있을 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분’들의 입맛에 병역은 (그 자신은 해당되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빠져선 안 될 소스일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병역비리’라는 떡밥이 어느새 굉장히 쫄깃쫄깃한 이슈거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언제, 누가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느새 ‘병역’은 그 사람의, 특히 공인인 경우엔 더더욱, 도덕성을 판단하는 잣대로까지 그 위상을 드높이게 되어버린 것이다. 병역비리 혹은 병역비리의혹이라는 낙인은 당시의 손가락질을 한 곳으로 모으는 과녁 같다. 마치 비탈길을 구르는 눈덩이마냥 이젠 누가 굴렸는지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이 일단 걸리면 그 대상은 아마존에 던져진 고깃덩이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국민의 분노’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그 정당성문제는 이미 한 쪽 구석으로 치워진 느낌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며

예전에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을 읽으면서 끝에 책을 덮을 때마다 헛웃음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건 뭐지, 자기주장이 없어.’라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파괴자’로 생각하며 살짝 미워했기도 했다. 소크라테스의 위상을 올려다보기에도 허리가 휘는 나는 감히 그런 입장이나 위치를 자처할 수 없다. 다만 지금에 와서 보니 소크라테스가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 글에서 문제를 삼고자 한 것은 ‘병역의 당위성’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병역의 당위성에 관한 입장들 중 심정적으로 쏠리는 입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확고한 무적의 논리로 반드시 그러하다는 명쾌한 답을 스스로 도출해 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난, 부끄럽지만, 소심하게도 그에 대한 판단을 일단 유보해 둔 상태다. 하지만 뉴스에 간간히 그런 기사들을, 그리고 댓글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던 것이 있다. 돌멩이를 던질 때 던지더라도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던져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던지라고 부추기는 이 사람들은 누군지.

언젠가 영화 을 다시 보면서, 사자왕 무파사를 죽게 만든 것이 대중의 알 수 없는 공포라는 것을 보고 그 섬뜩한 표현에 몸이 떨렸던 적이 있다. 디즈니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 장면은 나를 잠깐이나마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다. 설사 같이 깔려버리게 되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누군가 잠깐이라도 멈추었다면 그런 참사는 멈출 수 있지 않았을까. 그가 무파사이든 스카이든 간에 어쨌든 그런 식으로 남는 건 참혹한 시체뿐일 테니 말이다.

 

문제는 ‘병역 비리’가 아닌데 [썩은 뿌리 자르기]

[썩은 뿌리 자르기]

문제는 ‘병역 비리’가 아닌데

글: 한길석(충북대 강사)

‘원숭이’와 ‘람보’

약간 비실하게 생긴 후배가 해준 얘기다. 유학 시절 자신을 ‘조그맣고 머리만 좋은’ 동양인으로 깔보던 미국인과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군대 얘기를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이 뺀질하게 생긴 동양인이 제대 군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미국인은 자신을 ‘노란 원숭이’에서 단숨에 ‘람보’로 ‘진화’시키더라는 것이다. 미국은 모병제고, 그 미국인은 군대란 공화국 시민의 안전과 공공의 복리를 보위하는 조직이라고 배웠을 테니 그렇게 보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한반도는 가장 유명한 분쟁지역 중 하나지 않은가. 그런 험악한 곳에서 군 생활을 했으니 ‘전사’쯤으로 보는 것도 당연하겠지.

하지만, 그 미국인이 ‘원숭이’를 ‘람보’로 바꾸는 절정신공을 전개하든 말든, 한국 남성에게 군대란 꿈에서 볼까 무서운 곳 중 하나일 뿐이다(절대 과장이 아니다. 군대 다시 가는 꿈은 악몽계 랭킹 3위권 안에 든다.) 그런데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대한민국 헌법은 권리는커녕, 이 악몽과 같은 생활을 수 년 간 감수하라고 한국 남자들에게 강제한다. ‘강제긴 하다만, 뭐…공화국 시민의 공적 복리를 위해서는 개인의 권리도 잠시 유보할 수 있는 거고, 더구나 멀쩡한 군함이 지뢴지 어뢴지에 쪼개진다는 나라라니, 내 나라 지키는 일은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대충 이래서 국방의 의무는 신성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징집제 시행 이래 줄곧 이 신성의 영역에서 자유로운 ‘자유인’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정·재·계의 전통적 기득권층이, 이제는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이 ‘자유인’의 대열에 합류하여 ‘자유인’들은 매년 불어나고 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죽여 살려를 반복하는데, 해마다 불거지는 병역 비리 논란이니 이젠 화낼 여력도 없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허술한 나라가 아닙’니까요?

그런데 이 ‘공사다망(工事多忙)’한 정권에서는 정도가 ‘초큼’ 심하다. 대통령, 역대 총리, 장관 셋, 당 대표 모두가 병역을 면제 받은 ‘자유인’들인 것이다. 당·정·청 삼관왕을 휩쓴다는 건 정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데, 산수유 액즙을 마신 것도 아닌 이 느낌을 “참, 뭐라 말할 수도 없고…표현할 방뻡이 엄네….”

국회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니, 현직 국회의원 본인의 병역 면제율은 16.2%, 그 직계 비속은 10.3%라 하고, 지방자치단체장 본인은 20%, 직계 비속은 15%라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군대 가는 건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부과된 고역이 된다.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법치(rule of law)의 원칙이라는 것은 민주적 입헌국가의 꼴을 갖춘 나라라면 어디에서나 적용되어야 하는 원리다. 그러나 법치국가 한국에서 헌법 39조와 병역법은 법치의 원칙 밖에 있다. 그러니 한국 남자들의 대부분이 징병절차가 불공정하다고 불평하고, 기회만 있다면 병역 면제를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 보겠다고 푸념하는 것은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병역 면제를 받기 위해서는 돈과 줄과 정보와 배경이 있어야 하는데, 특권층이 아닌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게 없으니 그냥 입영열차를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특권층이 독점하던 ‘혜택’에 마구잡이로 들이대기 시작하는 보통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거다. 연예인과 운동선수들로 이루어진 이들은 이빨과 어깨를 뽑고, 국적을 바꾸고, 체중을 늘리고, 정신병원에서 한 달 간 버티는 등의 고행 끝에 ‘신의 아들’이 되어 군 면제를 받아냈다. 하지만 신검 때만 짝눈이 되는 무공을 지닌 총리 말대로 “대한민국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서, 이들을 잡아내서 다시 군대로 보내고, 징집 기준을 높이고 있다.

우스운 희생제의

이들은 병역법 위반죄가 아닌 괘씸죄로 처벌된 듯싶다. 특권층에게나 은밀히 허용되던 군 면제를 감히 ‘광대 나부랭이들’이 넘봤으니 얼마나 괘씸했으랴. 더구나 면제 요령은 예비 판검사 영감들이 고시 준비 과정에서 어렵게 터득한 비법인데, 이를 따라하다니 이건 저작권 위반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허술하지 않고, 법치국가로도 믿어지니 법의 이름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예인 등은 병역 비리를 엄중히 처벌하는 티를 내는 데 딱 좋은 먹잇감이다. 걸렸을 때 뒤를 봐줄 힘이 없는데다가 이름까지 알려져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으니 전시 효과로서는 ‘왔따’다. 그래서 유명한 연예인들은 처벌받고 군대에 가지만, 안(?) 유명한 정치인들과 재벌들은 법적 공방을 벌여 합법의 검증표를 획득한다. 유명세가 없는 이들의 비리 행위는 상품성이 없으니 언론에서도 그리 깊숙하게 다루지도 않는다. 병역 비리 처벌 문제가 만만한 희생양을 통하여 사람들의 불만을 무마하는 우스운 희생 제의로 끝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정에 있다.

구호로서의 공정사회

그런데 저 희생 제의로 피해보는 이는 희생양만이 아니다. 진짜 이와 어깨가 빠지고 신체와 정신이 병역을 수행하는 데에 어려운 가난한 이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병역 비리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징집 기준은 강화된다. 그 와중에 정말 병역 면제로 보호 받아야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징집되어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깨와 치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면제였는데, 어깨와 이로 요령 피우던 놈들을 처벌하면서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이제는 이와 어깨로는 면제가 안 된단다. 희생제의와 공정사회론이 합쳐져서 불공정하게도 애꿎은 사람만 잡게 됐다. 이는 위대한 각하께서 휴가 기간 동안 ‘공정사회 단기 속성 과정’을 다닌 효과다.

병역 비리의 근절 방법은 간단하다. 병역을 기피하려는 기득권층이 요령 피우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 진정한 공정사회의 원칙이 일반화된다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도 않는다. 롤즈는 공정한 사회의 원칙에 대해 각자의 양립가능한 기본적 자유를 평등하게 인정하면서도,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최소수혜자가 최대한 이익을 보게 하고, 공정한 기회 균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정의로운 자유주의 사회가 갖춰야할 요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원칙대로 하자면 대략, 기득권층이건 서민이건 병역의 의무는 공정하게 지게 되며, 병역을 질 수 없는 최소수혜자들은 예외가 된다.

하지만 공정사회를 경영학 책이나 주변인에게서 주워들은 이들에게 공정으로서의 정의원칙이 공정하게 적용될 리는 만무하다. 정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에서 주장된 정의원칙은 자기 이익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공정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자기 이익이 다른 이들의 이익과는 양립불가능하다면 자기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이 공정함의 한 조건인데, 자기이익의 보존을 절대 목표로 하는 이에게는 이러한 조건은 안중에도 없다. 그러니 친정부 신문마저도 공정사회론을 빈정대는 것이다. 병역 비리자의 엄중 처벌이 희생제의 촌극인 것처럼, 공정사회론 또한 그 못지않은 희극이 되었다. 웃음이 헤퍼지면 헛웃음만 나오듯이, 사회에 희극이 만연하면 공허감만 들 뿐이다.

자유주의를 부탁해

병역 비리에 대해 사람들이 민감한 이유는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데에 대한 불만에 있다. 병역 비리는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을 몸으로 직접 겪은 문제라서 더욱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분노의 정체는 병역 비리가 아니라 공정한 대우다. 병역 비리 문제만 발생하면 이를 가는 시민들은 다만 지극히 상식적인 믿음이 현실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민주적 입헌국가에서 시민들은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이들로 대우받아야 함을 상호 인정해야 하며, 사회적 약자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현실에서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자유주의적인 열망이다. 최소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자부하는 이라면, 자유주의 정당의 집권 생명을 연장하려고 한다면, 이 지극히 온건하고도 얌전한 기대를 좌절시키지 말아야 한다. 자유주의로는 성이 차지 않는 필자지만 그래도 저 정도 사회라면 숨이라도 쉴 수 있기에, 부탁한다, 제발. 자유주의라도 제대로 하나 해줘. 나도 좀 살자!!

덧붙임: 징집의 공정한 집행을 주장했다고 해서 필자가 징집 거부자를 백안시한다든가, 남북의 군사적 대치를 당연시한다고 짐작하지 마시길. 난 ‘Imagine’의 존 레논도 좋아하구요, 한반도 평화와 여러 양심적 이유들 때문에 징집을 거부할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봐요.

 

“전 공익 다녀왔습니다” – 병역비리 문제 [썩은뿌리 자르기]

[썩은뿌리 자르기]

“전 공익 다녀왔습니다”

?- 병역비리 문제 –

최성문(서울시립대학교 학부생)

 

남자들 사이에서 첫 통성명 후에 등장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군대다. “군대 어디 다녀오셨어요?” 라고 물으면 나는 “예, 전 공익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2008년 5월 말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시작해 2010년 6월에 소집해제를 했다. 이러한 이유로 말을 조심해야한다. 왜냐하면 소집해제가 아닌 제대라는 단어를 쓰면 심한 상대의 경우 적확한 단어가 아니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 달의 군사훈련 끝에 2년을 부당한 대우와 호소할 곳 없는 환경에서 일을 한다는 점에서 현역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고달팠을 현역들에게 감히 악수를 청한다.

첫 건강검진의 결과는 1급이었다. 곧 공군에 지원했으나 훈련소에서 받은 검진에서 건강이상이 의심되어 귀가조치를 당했다. 이듬해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니 4급에서 5급에 해당하는 판정이 나왔다. 왜 4급이면 4급이지 5급이 왜 나올까?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병무행정이란 것이 그 해에 군 지원자가 많으면 기준이 느슨해지고, 지원자가 적으면 엄격해지는 고무줄이다. 따라서 4급과 5급 사이는 운만 조금 따라준다면 해당 시기의 분위기를 봐서 공익근무 혹은 병역면제를 약간이나마 스스로 점칠 수 있다.

하지만 사회는 개인의 의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생애 2년을 통째로 날려버린다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내가 공익근무를 선택한 이유는 자명하다. 왜냐하면 군대에 다녀오지 않으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실격이라 간주하는 주변의 시선 앞에 나 자신은 무력했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타협을 필요로 했고 주변에서도 그 편을 권유했다. 어차피 운이 따라줘야 한다는 단서가 붙은 면제이기에 아쉬운 마음은 떨쳐버리고 공익근무를 선택했다. 대다수 현역 보다야 편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당시 했던 고민은 꽤 심각한 것이어서, 몇날 며칠을 컴퓨터 앞에서 병역관련 자료를 살펴봤는지 모른다. 법이 강제하지 못하는 범주에서는 사회가 그 역할을 대신해준 격이다. 이러한 고민과 행동은 징병제국가로서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훈련소에 입소하여 한 달 여의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고 살던 곳으로 ‘복귀’했다. 자신이 살던 곳을 숙소로, 관청을 본 업무지로 삼아 공익근무요원으로써의 병역을 시작했다. 현역 앞에서는 미안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이러한 생활도 참 힘들다. 2년을 시급 740원으로 노동해야했던 것 외에도 의무라는 미명 아래 온갖 잡일을 떠맡기던 공무원들과, 우습게도 그 안에서 연공에 따른 계급을 만들어 자신의 편의를 도모했던 같은 공익근무요원 선임들의 틈바구니에서 병역의무의 참맛을 알아갔다. 담당공무원은 공익근무요원관리의 편의를 위해 선후임 관계를 장려했다. 호소할 곳 없던 나는 으레 예비역들이 말하는, 인내를 배울 기회라 생각하며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최소한 나의 공간에서나마 내가 믿는 상식을 관철시키리라 결심했고 이내 행동으로 옮겼다. 먼저 담당공무원에게 업무배분의 부당함을 따졌다. 공무원에게만 허락된 책임 있는 업무를 공익근무요원에게 떠넘기지 말 것이며 업무선택에 있어 개인의 희망을 고려할 것과 선임과 후임의 계급관계를 장려하는 행위를 멈추라고 큰 소리로 요구했다. 돌아온 것은 욕설과 고함이었지만 오히려 호기라 여긴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며칠을 걸러 계속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하루는 선임의 호출을 받았다. 온갖 위협적인 언사와 함께 몰매가 쏟아지는데, 난 그때 본인의 위치를 자각했어야 했다. 두 사람을 때려눕히고 속은 시원했지만 그날 이후로 근 1년이 가시밭길이었기 때문이다.

저항을 크게 하면 할수록 상대는 조용히, 하지만 더욱 심하게 나를 옥죄였다. 따돌림은 기본이고 온갖 일상적인 잡무에 병역법이 허락하는 업무강도의 한계선까지 나를 몰아댔다. 너무 지쳤던 나는 결국 기약 없는 저항을 포기하고 조용히 귀순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렇다고 그들의 행패가 수그러들지는 않았으나 나의 심지는 거기까지였다. 과거 고래고래 난리치던 모습과 갑작스레 조용해진 지금의 대비가 주변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 전전긍긍하는 매일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자 선임들은 모두 제대를 하고 공무원들의 인사이동으로 내 옛 모습도 서서히 잊혀져갔다. 어느새 나는 부서에서 착실한 공익근무요원이자 가장 맏 선임으로 받아들여졌다. 처음 느꼈던 병역의무의 부당함은 잊은 채 그저 살기 편해졌다는 것에 자족하며 빠르게 제도화되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법이라던가 일 대신 요령을 배우며 소위 사회생활을 착실하게 예습했다.

1년여가 흐르고 나에게도 첫 후임이 배정되었다. 첫 인사 나누며, 이 친구를 어떻게 부려먹어야 내가 편해질까 고민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애써 그 욕심 달래며 후임과 약속을 한 가지 했다. 공무원들은 우리에게 계급을 강요하지만 우리끼리는 호형호제 하며 어려운 병역의무를 서로 편하게 마치자고. 결국 처음 목표했던 상식의 관철은, 담당공무원이라는 실체로 대변되는 병역의무와 나의 의지 사이에서 타협을 한 셈이다. 난 안타깝게도 징병제국가의 의도대로 권력 앞에서 가져야할 태도를 배워버린, 한국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이 되어버렸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공익근무요원들의 사이가 이후 동네 형과 동생처럼 편해졌다는 것이다.

소집해제 후 다시 이전의 사회생활을 영위하며, 확실히 과거와 지금의 내가 많이 달라짐을 느낀다. 의사를 전달할 때 직접 하기보다는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에둘러 표현하는 일이 잦아졌다. 일을 할 때 내용 보다는 그 겉보기나 완성도에 치중하며, 일에 들이는 노동력의 절감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아직 병역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선배라는 의무감이 들며 상대의 미래에 대해 괜한 훈수가 늘었다. 혹 상대가 나보다 권력관계로 우위를 점한다면 태도가 그렇게 유순해질 수가 없었다. 덕분에 주변으로부터 예전과 달리 인간관계를 중시하며 나이 먹은 티가 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재는 저 험난한 경쟁사회를 어떻게 헤쳐 나갈까에 대한 어린 날 고민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고민을 의지로써 극복하는 것이 아닌, 내가 고민에 녹아들어버린 셈이다.

좀비영화가 생각난다. 좀비는 살아 움직이는 시체로, 산 사람을 물어서 그 역시 좀비로 만든다. 감염성이 기하급수적이라 영화 속에서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소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소수는 고달프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좀비를 열심히 피하지만 대개 붙잡혀 좀비가 되고 만다. 다수가 가해자의 입장이 되면 도망치느라 겪을 괴로움은 없다. 오히려 여러모로 편하다. 하지만 과거 저항했던 나라는 한 인간을 떠올려본다. 나는 좀비 되기를 거부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선택권이 없는 지극히 온건해진 스스로를 대비하며 새삼 괴로워해본다.

헌법 9조의 개정과 일본의 제국주의 – 일제와 현대 [썩은 뿌리 자르기]

[썩은 뿌리 자르기]

헌법 9조의 개정과 일본의 제국주의

– 일제와 현대-

이유철 (코뮤닉스 회원)

올해로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고 100년이 지났다. 여기에 맞춰 수많은 성명서들과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일본 현 정권의 수장인 간 총리의 한일병합조약 체결 100년 ‘즈음’한 담화이다. 1995년 무라야마 전 총리가 ‘전후 50년’을 기념하여 발표한 ‘아시아 제 국가들’을 대상으로 발표한 담화 이후 15년만의 일이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여론은 과거 식민지에 대한 담화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의견이다.

그러나 진보진영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여전히 해결되고 있지 않은 위안부문제, 독도문제, 역사교과서문제 등을 거론하며 100년 전이나 현재나 일본의 제국주의적 경향은 변화하지 않았으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 부터의 사과’를 뛰어넘는 담화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경험한 대부분의 아시아 나라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한일병합 100년이 지난 현재 일본의 제국주의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반세기만의 정권교체와 헌법 9조의 개정 가능성

지난해 일본에서는 반세기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중의원 선거에서 일본 민주당이 압도적인 차이로 지난 54년간 정권을 유지해온 일본 자민당을 물리친 것이다. 당시 선거의 화제는 일본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따른 병폐였으나 국내와 다르게 주변국들은 對아시아 외교를 선언한 민주당의 이후 행보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았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 사임한 하토야마 전 총리의 영부인이 한류 광팬이라는 것부터 시작하여 민주당 실세인 오자와 전 간사장의 한국에 대한 애착 등을 근거로 내세우며 과거사 해결을 비롯해 한일관계 개선 등에 대한 핑크빛 전망을 그렸다. 물론, “정권교체 당시 제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참배를 하지 않겠다”, “과거 식민지는 잘못된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하며 과거 자민당과는 어쩌면 180도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이들에게 건 기대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과거사에 대한 청산과 對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경향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경향을 인식하는데 있어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은 헌법 9조, 일명 ‘평화헌법’이다. 일본 헌법 9조는 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의 ‘전력보유(군대) 금지’와 ‘국가 교전권 불인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즉 이는 제국주의 일본을 전망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이며, 이 조항에 대한 개정은 또다시 일본이 제국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이다.

따라서 완전한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일본을 만들기 위한 일본 국내 보수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개정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이는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과거 자민당 아베 전 총리에 의해 명문개헌이 제기되면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지만 민주당의 반발로 무산되고 만다. 이러한 외면적 과정이 주변국들을 안도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상황을 살펴보면 일본 민주당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것일 뿐이다. 그 이유는 첫째, 민주당이 개헌수속법에 대한 자민당과의 협의를 비토한 것은 헌법 9조 수호를 위한 ‘9조회’의 활동이 커지면서 여론의 움직임을 반영한 결과이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당시 오자와 민주당 대표가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과의 대결노선을 취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 민주당의 행보를 살펴볼 때, 개헌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2005년까지 일본 민주당의 기본적인 입장은 명문개헌에 긍정적이었다. 특히 주목해 볼만한 점은 2003년 당시 민주당 대표이자 현 일본 총리인 간 나오토가 작성한 메니페스토와 현 민주당 간사장인 오카다 카쓰야가 작성한 2005년 민주당 메니페스토이다. 당시 민주당 메니페스토는 ‘헌법창조’라는 표현으로 개헌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었다.

2007년 오자와 전 간사장의 취임으로 민주당의 자민당 대결노선이 취해지지만 의원 개개인으로 살펴볼 경우에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개헌입장은 변함이 없다. 예를 들어 개헌파 의원 모임인 ‘신헌법제정 의원동맹’에서는 아베 개헌 좌절 후 새롭게 민주당 내 개헌파를 임원으로 영입하는데, 2008년 3월 의원동맹총회에서 다름 아닌 당시 민주당 간사장이었던 하토야마 유키오와 현 칸 정권의 외무대신인 마에하라 세이지가 그들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일본 민주당도 언제든지 개헌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최근 사민당과의 연립이 깨지면서 국민여론이라는 장애물만 해결되면 개헌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는 복고적 형태의 제국주의 일본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개편과 일본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은 일본 헌법 9조 개정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 진출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일본은 제국주의적 경향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지난 2007년 미국에서는 對아시아 정책에 관한 흥미로운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일명 아미티지-나이 보고서가 그것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싱크탱크인 CSIS에서 나온 이 보고서는 전?현직 미의회 의원들도 다수 참여한 영향력 있는 보고서로, 미국 대외정책의 전망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 보고서의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Pan-Asia(중국-러시아)에 대항한 Ocean-Asia(미국-일본-호주)의 강고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협조체제 구축에 있어 핵심이 미일관계 구축이다. 따라서 이 보고서에서는 미국이 세계전략을 세우는데 있어 일본의 확대된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 헌법 9조의 개정과 나아가 일본의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 진출의 필요성에 대해 제언하고 있다.

이 보고서 작성의 주된 역할을 한 학자 중 한 명인 미국의 대표적 친일파 인사인 조셉 나이가 현재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대외정책 고문을 맡고 있다는 점은 이 보고서가 현재에도 매우 유효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한 미국이기에 2009년 일본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보인 태도변화는 충격적이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테러대책특차법연장 반대와 미일지위협정 재검토, 오키나와 기지이전을 내세운 일본 민주당에게 미국은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자신의 착각-이라크 전쟁 반대로 미국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오바마도 이해해 줄 것이라는-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자신이 떠안아야만 했다. 미국의 동북아 안보정책에 있어 핵심기지인 오키나와 기지 문제 등에 대한 일본의 요구들은 미국 군사개편의 핵심사항이며 당장 필요한 문제였기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의 압력으로 하토야마는 오키나와 현 외 기지이전을 포기했을 뿐더러, 5년간 아프가니스탄에 50억 달러, 2년간 파키스탄에 10억 달러 지원에 관한 정책마저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는 사퇴했다. 재계의 압력에도 꿋꿋하게 복지정책 추진을 주장했던 하토야마였지만 미국의 압력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 부분은 미국의 압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과정들은 일본 스스로의 제국주의적 야망과는 별도로 미국의 압력 하에 군사대국화 정책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군사적, 경제적 패권을 쥐고 세계를 뒤흔들었던 미국은 중국이라는 새로운 패권국의 등장과 세계금융공황을 계기로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바야흐로 포스트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는 일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풍부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미국과 경쟁하는 패권국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동아시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일본을 비롯해 한국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의 제국주의와 그 전망

일본의 제국주의적 경향성은 외면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이에 대한 오해를 확대시켰다. 헌법 9조를 둘러싼 개헌에 대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자민당 주도의 보수주의적 보통국가론(명문개헌론)이든 민주당 주도의 자유주의적인 보통국가론(해석개헌론)이든 대외적인 군사활동을 목적으로 하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의 헌법 9조 개헌을 둘러싼 제국주의적 경향성에 제동이 걸린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반발에 있다. 그리고 9조회를 중심으로 한 호헌운동이 그 중심에 있다.

2004년 6월 자위대의 이라크파병과 명문개헌론이 대두되면서 이에 위기감을 느낀 9인의 제언으로 만들어진 9조회는 매년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2009년 현재 그 수가 8000명에 육박하게 되었다.

9조회의 특징을 살펴보면 구성원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과거 전쟁세대인 50~70대가 중심이며, 개인 멤버십형태인 이 조직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진보부터 보수까지 아우르며 헌법 9조 개정 반대라는 단 한 가지 원칙에 동의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광범위성은 결국 2004년 당시 개헌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찬성 65%였던 여론을 2008년에 이르러서는 뒤엎고 만다. 당시 집권당도, 현재 집권당도 개헌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들 9조회 구성원들 중 일부 좌파들은 9조+25조(생존권) 운동으로 이를 확장시키면서 반신자유주의 운동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평화헌법 개정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야욕이 다시금 표면화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정치 안보지형적 요인, 정치세력의 폐쇄성, 미국의 압력 등은 그러한 요인들이다.

일본 정치세력의 입장에서 개헌 및 군사대국화라는 과제는 사회양극화의 급격한 확대에 따라 나타나고 있는 일본 내 국민들의 계층, 계급간의 위화감을 잠재우고 이들을 하나로 묶어 내면서 동시에 이들을 보수정치의 집표기계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제이다.

또한 중국의 패권국 부상과 북한의 핵개발, 러시아의 자원 패권주의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한편으로 독자적인 패권유지가 어려워진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서도 이들 이슈는 계속해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요인들을 극복하거나 견제하기 위해서는 ‘전쟁’이라는 공통적인 경험(두려움)에 기반한 각국 시민사회 간의 교류 및 협력체제 구축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일본의 제국주의적 경향은 일국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패권국들 간의 제국주의적 경쟁을 지양하고 억제해 나가기 위한 동북아 시민사회들 간의 가칭 ‘동북아 평화를 위한 시민사회 6자회담’은 하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힘의 논리가 전부인 국제사회에서 피해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국민들이 스스로 전쟁에 대한 공포를 공유하고 평화를 지켜나가기 위한 협력 및 교류는 이기적 행위자의 폭주를 막기 위한 유일한 기제일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와 현재 – 일제와 현대 [썩은 뿌리 자르기]

[썩은 뿌리 자르기]

일본제국주의와 현재

– 일제와 현대 –

글: 이순웅(숭실대 강사)

공(功)과 과(過)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

민주당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당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면서 거명하는 사람 중에는 박순천(1898~1983)도 있다. 거명되는 사람 중 유일하게 여성이다. 5선 국회의원, 민주당 총재를 지낸 바 있는 한국 여성 정치인 1호.

지난 광복절 직후인 8월 16일, 부산 기장군의회는 박순천의 생가 복원을 위한 추경 예산 편성을 논란 끝에 찬성 4표, 반대 2표, 기권 1표로 승인했다. 논란이 된 주요 이유는 그의 친일 행적 때문이다. 대부분의 민족주의자들이 그랬듯이 식민지 시절 초기에는 박순천도 3.1만세 운동에 가담한 적이 있지만, 1940년 12월 25일 이광수가 발기인 대표였던 황도학회의 발기인이 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친일 활동에 들어간다. 황도학회는 ‘내선일체의 완성’을 목표로 황도 사상을 교육, 선전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다.

이후 박순천은 조선임전보국단 산하 부인대 지도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조선임전보국단은 1941년 10월 결성된 최대의 친일 민간단체로서, 부인대에는 김활란(이화여대 총장), 고황경(서울여대 총장), 박마리아(자유당 시절 2인자인 이기붕의 부인), 박인덕(인덕대 설립자), 배상명(상명대 설립자), 송금선(덕성여대 총장), 유각경(한국 YWCA 창립), 이숙종(성신여대 설립자), 임숙재(숙명여대 총장), 임영신(중앙대 설립자), 황신덕(추계예대 설립자) 등이 망라돼 있었다.

1943년 3월, 경성가정의숙(지금의 서울 중앙여고)의 교장 황신덕과 부교장 박순천은 전교생을 불러놓고, 학교를 살리기 위해 한 명이라도 근로 정신대에 지원해달라고 호소한다. 그 결과 당시 2학년(18세)이던 김금진 학생이 지원에 나섰다. 김금진은 일본에서 총알을 만드는 군수공장으로 끌려가 해방이 될 때까지 고초를 겪었다. 2년여 동안 생리를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졌지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1983년 박순천이 사망했을 때는 서울 화곡동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문상도 가지 않았다. 해방 뒤에 찾아보기는커녕 사과 한마디 하지 않은 박순천을 스승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박순천의 생가 복원 사업에 관해 기장군 관계자는 “향토 인물이자 독립운동가인 박 여사의 생가가 방치돼서는 안 된다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고…..” “박 여사의 ‘과’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공’이 훨씬 많은 만큼 사업 추진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1)

‘공’이 훨씬 많다니? 도대체 무엇이 ‘공’이고 무엇이 ‘과’란 말인가. 박순천의 경우 이른바 ‘공과’라는 것이 서로 비교 대상이나 될 수 있는가. 설사 공과를 비교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과가 더 크다. 교육자로, 정치가로 행세하려면 친일 행적을 감추고 만세 운동에 가담했던 것을 부풀렸을 터이니 사기꾼임에 틀림이 없고, 제자를 사지에 몰아넣고도 사과 한마디 없었으니 철면피에 후안무치한 인간 아닌가.

박순천의 더 큰 과는 과를 공으로 포장하여 감추면 과가 과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기장군 관계자는 박순천의 사기행각에 놀아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박순천식 ‘과’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기장군 관계자뿐이겠는가. 당의 정통성을 박순천 같은 사람에게서 찾는 민주당 역시 무엇이 공이고 과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바람직한 역사의식을 갖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공과를 진정으로 따지는 일은 끝까지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나 해당한다. 예를 들어 독립운동상의 ‘공’이 있으나 전술상 또는 방법상의 실수가 있었다면 그런 것이 ‘과’이다. 공과라는 것은 같은 일을 계속한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지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변절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식민지 역사를 겪은 우리에게는 끝까지 독립운동을 한 사람에게만 과보다 많은 공이 있다.

야당다운 야당이 없는 나라 – 여전히 살아있는 일본제국주의의 잔재

제1야당이라고 하는 민주당은 왜 친일 인사에 관해 냉정하게 평가하지 못할까? 많은 굴절이 있지만 자신의 뿌리가 한민당에 있기 때문인데, 한민당은 일제 시대의 지주세력이 중심이 돼서 만든 당이다. 민주당의 흐름(한민당→민국당→민주당)은 이승만의 자유당뿐만 아니라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노태우의 민정당에 대한 대항 세력 역할을 일정부분 해왔다. 그러나 한민당은 그 뿌리가 일지주세력인 만큼 친일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집권 정당과 권력 투쟁은 할 수 있어도 그 권력의 원천이 정당성, 정통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남한에서는 야당다운 야당의 뿌리가 싹부터 잘렸다. 건국준비위원회를 꾸리면서 임시정부를 준비했던 여운형의 암살, 미군정에게 권력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조국의 분단을 끝까지 막으려 했던 김구의 암살, 이승만에 의해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던 조봉암의 죽음 등은 정통성 없는 지배 권력과 정통성 없는 야당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친일 세력을 대거 기용했던 이승만이 좌파 운동 경력이 있는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한 데에는 그에게 토지 개혁을 맡겨 민심을 달래고 얻는 한편, 한민당의 물적 기반을 흔들어놓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조봉암은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개혁과는 달리, 지주에게 억울한 희생을 시키지 않고 농민에게는 염가로 분배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민당 세력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 조봉암이 6개월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나는 데에는 한민당의 집요한 공격이 한몫을 했다.

이후 조봉암은 진보당을 결성하고 대통령 선거에서 민국당의 이시영 후보보다 20만 표를 더 얻는 등 선전(善戰)했으나 이승만의 최대 정적으로 부상하는 바람에 곧 간첩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다.2) 진보적 개혁주의자, 한국판 사회민주주의자의 최후이다.

이후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으로 이어지는 ‘근본도 없는 정치꾼들’의 집권 정당은 한민당에 뿌리를 둔 이른바 민주당의 견제를 받으면서 권력을 행사했다. 김영삼의 3당 합당이 가능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친일의 뿌리, 계급적 기반으로 볼 때 서로가 서로에게 그다지 적대적인 세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3당 합당(민자당)은 신자유주의의 길을 가기 위한 보수 세력들 간의 야합이었으며, 김대중의 평민당은 민자당에 대한 전라도적 안티테제에 가까운 정당이었다.

김대중으로부터 정치적 ‘적자(嫡子)’임을 인정받음으로써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노무현 역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스스로도 말했듯이 한미 FTA 협상 테이블에 나섰을 때 개혁은 이미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역시 대연정을 말함으로써 본인이 김영삼의 정치적 ‘적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면 핏대를 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독도 주변 해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했던 때가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김대중 정부의 태도는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 달라”고 말한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역대 정부 간의 차이에만 주목하고 닮은 모습은 보지 않으려 하면 사실이 사실대로 보이지 않는다.

야당이라면 모름지기 현재 정권을 잡지 않고 있다는 뜻뿐만 아니라 여당과는 질적으로 다른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야당 민주당은 진보의 외피를 쓴 거대 보수 야당일 뿐이며 지금의 여당과는 권력을 나누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일종의 정치적 동반자이다.

둘 다 나쁜 놈이라는 양비론 넘어서기 – 더 나쁜 놈과 덜 나쁜 놈

한때 민주인사로 행세했던 김동길 교수는 전두환 정권 시절에 이른바 양비론을 펼쳐 젊은이들의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를 취해 결국에는 전 정권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좋은 놈’과 ‘나쁜 놈’이 분명해 보였던 시절, 그의 태도는 양비론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문제는 ‘둘 다 나쁜 놈인데 한 쪽이 더 나쁜 놈일 경우 덜 나쁜 놈이 좋은 놈 행세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서유럽이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경우 나치스트나 파시스트, 일본의 군국주의자는 ‘나쁜 놈’으로 그려진다. 물론 그들과 싸우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세력은 좋은 놈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 ‘좋은 놈들’은 ‘나쁜 놈들’을 나쁘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이 나쁜 놈들이라는 점을 감추고 있다. 그들 역시 식민지를 한 뼘이라도 더 가지려고 했던 제국주의 세력일 뿐이라는 점을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자체가 감옥과 같은 사회일 경우, 감옥을 만들어놓고 감옥 밖의 사회는 감옥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얼마 전 고은 선생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가 또 다시 상을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8년째의 고배라고 한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던 사르트르를 생각하면 그다지 섭섭해 할 일도 아니다. ‘알제리도 프랑스다’라는 식으로 식민지 알제리의 독립 문제에 무심했던 카뮈는 노벨상을 받은 반면에 알제리 독립을 지지했던 사르트르는 그 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고은 선생의 행보로 봐서 사르트르와 같은 태도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다음과 같은 통계는 왜 고은 선생이 상을 받기 어려운지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1901년부터 2009년까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사람의 국적을 보면 프랑스 14회, 미국 11회, 영국 9회, 독일 7회, 스웨덴 7회, 이탈리아 6회, 스페인 5회, 소련 4회, 노르웨이 3회, 덴마크 3회, 일본 2회 순이다.3)

11개 국가가 104분의 71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는 모두 식민지 건설의 역사, 정복·점령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식민지였거나 타국으로부터 정복을 당했던 국가는 아일랜드 4회, 폴란드 3회, 칠레 2회 순이다. 노벨상은 식민지 경험이 있는 약소국에게 가끔씩 떡을 하나씩 던져줌으로써 이 상이 제국주의자들의 잔치라는 것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본과 권력은 걸인, 노숙인, 실업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필요로 한다. 그들에게 일정한 복지 혜택을 줌으로써 선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는 그들이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의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당선 가능성’이라는 이유로 보수 야당에게 표를 던지거나 노벨상을 염원할 때, 세상이 죄의식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강자, 자신의 모습을 이전보다 훨씬 더 세련되게 감추는 강자의 이해관계에 맞춰 움직인다는 것을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양비론적 의미에서의 둘 다 나쁜 놈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애초부터 둘 다 나쁜 놈이었다는 관점으로 되돌아가 더 나쁜 놈과 덜 나쁜 놈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사실을 사실대로 볼 수 있는 출발점이고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있는 일본제국주의를 극복하는 길이다.

*주석

1) 이상의 내용은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제자를 사지로 보낸 자”, 『작은책』 2010년 10월호(제184호), 도서출판 작은책, 118~121쪽에서 발췌했음.

2)아직까지도 조봉암의 묘비에는 비문이 없다. 가족들은 그가 간첩 혐의를 벗을 때까지 비문을 새기지 않겠다고 했다.

3) http://preview.britannica.co.kr/spotlights/nobel/npw/npwp/win_lit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