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자유와 평등을 꿈꾼 ‘그’를 되살리다! 4-③ [色 다른 책읽기]

이경아 (돌베개 편집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이다. 박희병 선생의 ‘이언진 3부작’(<골목길 나의 집>, <저항과 아만>, <나는 골목길 부처다>)을 만들며 든 생각이 바로 이 시다. 나는 박희병 선생의 제자이자 박희병 선생의 책을 만든 편집자다. 이언진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박희병 선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박희병 선생은 국문학계에서 유명한 필자다. 그의 글을 읽으면 천여 매의 원고가 마치 단숨에 쓰인 것처럼 느껴진다. 숨도 쉬지 않고 써내려간 듯 막힘없는 글에 감탄하고, 조사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그의 철저함에 또 한 번 감탄한다. 그는 책 한 권을 쓰면서 동시에 다음 책에 대한 구상에 들어가는 듯하다.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글을 뭐로 할까 떠오르는 듯. 땅에서 고구마를 캐내면 줄줄이 딸려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줄기차게 온 힘을 다하여 글을 쓰고 연구한다. 때론 가차 없는 비판과 반론으로 화제의 중심에 오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건 그가 출중한 국문학자라는 것이다.

이런 그가 이언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언진의 작품을 온전히 바로잡고 정확하게 번역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언진의 시집 <호동거실>은 두 가지 간본이 전하는데, 그 하나는 <송목관집>이고 또 하나는 <송목관신여고>다. 그리고 별도의 필사본이 두 가지 전하는데, 연세대본인 <송목각시고>, 고려대본인 <송목각유고>다.

모두 ?호동거실?을 수록한 이언진의 유고집이지만 각 책별로 오류가 적지 않고 배열의 착란이 없지 않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탈락되거나 오기된 시도 많았다. 박희병 선생은 이네 가지 판본을 비교하여 전체 170수의 『호동거실』 판본을 정비하고, 정확한 번역을 해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골목길 나의 집>이다. 이 책은 돌베개 출판사의 ‘우리 고전 100선’시리즈의 12권에 해당하는데, 이 시리즈가 일반 대중을 위한 교양서인지라 각 시에 대한 설명이 지극히 소략할 수밖에 없었다.

박희병 선생은 ?호동거실?의 각 시들이 무척 난해하고 또 문제적이어서 자세한 분석을 요하는데다 처음 번역된 이 작품을 이렇게만 하는 것이 작품에 대한 그리고 이언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세한 분석서를 냈는데 그것이 바로 『저항과 아만』이다. 부제가 ‘?호동거실? 평설’이다. 그리고 이 두 책을 통해 소개된 이언진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삶과 사상을 정리한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을 출간함으로써, 이언진에 대한 연구와 집필을 3부작으로 마무리하였다. 요즘 말로 하면 박희병 선생은 ‘이언진종결자’인 셈이다.

 

이언진, 역사의 그늘에서 걸어나오다

박희병 선생이 이언진(李彦?, 1740∼1766)에 관한 책들을 펴내기 전까지 이언진은 아주낯선 인물이었다. 심지어 이언진의 시집 <호동거실>은 ‘동호거실’이라고 불려왔다. 하지만 이런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학계에서도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언진은 300년 전 조선의 대문호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쓴 글로 알려졌다. 연암은 이언진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의 전기를 썼는데, ?연암집?에 수록된 ?우상전?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연암의 전(傳)은 이언진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 이유를 박희병 선생은 연암과 이언진의 ‘진리인식의 틀’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연암은 조선왕조의 틀 안에 있었던 인물이지만, 이언진은 조선왕조의 틀을 부정하고 그 바깥으로 나간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골목길 부처다>는 18세기 조선의 이단아 이언진에 대한 평전이다. 신분차별과 사상통제가 엄격하게 지켜지던 과거의 시공간을 산 이언진을 21세기의 시각으로 다시 본다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언진을 평가한 당대 문인들의 글을 살펴보고, 또 당대동아시아 삼국의 이단아들과 이언진을 비교함으로써 중세 동양의 사상사 속에서의 이언진의위치를 가늠해보고 있다.

한낱 중인 역관 신분에 20대에 요절했고 또 작품도 변변히 남긴 게 많지 않은 이언진을 이처럼 깊게 파고드는 까닭은 중세 동양의 사상사 속에서도 독특한 빛을 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중세 조선도 다양한 인물 유형이 숨 쉬는 사회였을텐데, 그간 우리 학계가 그려낸 조선 사회는 선비, 유학자, 도학자, 승려, 그리고 상놈이라는 뭉뚱그려진 집단으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양반을 위주로 하고 그리고 종교인 정도의 유형만이 사는 사회였다. 상놈―여기서 상놈은 중인 계층까지 포함한다―은 그저 숨만 쉬고 살았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무의미한 집단으로 분류되던 중인 신분에 이처럼 독특한 인물이 있었다. 연암의 전기 ?우상전?이 아니었으면 영원히 묻혀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을 인물이었기에, 우선 이언진의 전기를 쓴 연암 박지원에게 감사를 해야 될 것이다. 조선의 정신사에서 ‘이언진’은 전혀 새로운 유형의 주체이다. 이 주체는 이전의 역사 속에서는 전혀 드러낸 적이 없었으며, 장차 도래할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때문에 아주 낯설고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조선의 골목길에 살던 부처, 새로운 주체의 탄생

이언진의 신분은 중인(中人)이다. 조선의 지배질서 속에서 중인은 주체가 아니라 ‘타자’의 자리에 있었다. 중인은 전문지식을 갖추었지만 지배관계 내에서 여전히 예속적, 부용적 지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언진은 중인이면서 자신의 타자성을 투철하게 자각하고, 스스로 를 ‘주체’로 전화(轉化)해냈다. 이언진은 자신의 중인이라는 신분을 태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대부라는 주체와 대립하면서 사사건건 맞섰다. 그러므로 사대부적주체를 ‘지배적 주체’라고 한다면 이언진과 같은 주체는 ‘저항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이언진이 스스로 주체로 설 수 있었던 데에는 외적인 영향과 내적 요인 두 가지 경우를 다 살펴야 한다. 외적인 요인은 이탁오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양명학 급진좌파로 명명되는 이탁오의 사상은 뚜렷한 자아의식을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이언진이 이탁오의 주아사상(主我思想: ‘나’를 주장하는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스승 이용휴의 영향인 듯하다.

이언진이 스스로 주체로 설 수 있었던 내적 요인은 두 가지 점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이언진이 스스로를 사대부에 예속된 비천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태생적으로 비범하고 예민한 문학적 감수성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더러운 골목 지나 깨끗한 내 방에 들어와
맑은 향 피우고 수불(繡佛)을 걸면
피부병 있는 자건 몹쓸병 있는 자건
모두 다 보살 생각을 하리. (<호동거실> 제17수)
이언진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거처하는 호동까지도 주체적인 영역으로 확대한다. 이는 이언진이 스스로 ‘호동’(골목길)이라고 호를 한데서도 드러난다. 이언진은 주체를 공간화함으로써 ‘나’의 자각과 각성을 호동의 자각과 각성으로 연결지었다. 또 이언진은 드러내놓고 사대부를 조롱하기도 했다.

한 그릇 밥 먹고 배부르면 쉬고
큰길가에서 웅크리고 자는
저 거지아이 승지(承旨) 보고 불쌍타 하네
눈 내린 새벽 매일 출근한다고. (<호동거실> 제13수)

이언진의 넘쳐흐르는 주체성은 결국 스스로를 부처라고 명명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부처는 나 앞의 나
미래의 부처는 나 뒤의 나.
부처 하나 바로 지금 여기 있으니
호동 이씨가 바로 그. (<호동거실> 제158수)

이언진이 스스로 부처라고 한 것은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확신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확신은 곧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각성에서 비롯된다. ‘나’는 깨달음의 주체요, 세계의 중심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호동의 부처’라고 선언한 이 시만큼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탁오, 안도오 쇼오에키 그리고 이언진

혹자는 이언진이라는 인물이 천재문인이긴 하지만 26살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갔고, 남긴저서도 고작 시집 ?호동거실?과 그밖에 짧은 글들 몇 편(<우상잉복> 포함)뿐이라, 사상을 논하거나 동아시아의 대사상가와 비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언진이 살았던 시공간 속에서 이언진의 글을 본다면 그의 비범함은 이미 조선을 뛰어넘었다. 또한 남긴 저작이 시집 한 권이라서 그의 사상을 보여주는 산문이 없기는 하지만, 짧은 시만으로도 사상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 사상은, 대단히 함축적이고 정제된, 그리고 비유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특징을 지닌 시(詩)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진술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법구경>이나 <성경>의 ?시편?, <바가바드기타>, <숫타니파타>의 운문 부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언진의 시집만으로도 그의 사상을 충분히 논할 수 있다. 박희병 선생은 이런 이언진을 온전히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18세기라는 같은 시간을 산 동아시아의 이단자들을 내세웠다. 중국의 이단아 이탁오(李卓吾, 1527-1602)와 일본의 이단아 안도오 쇼오에키(安藤昌益, 1703-1762)가 바로 그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장이 좀 더 많이 집필되기를 희망했다. 작품 분석과 이언진 개인에 대한 분석에 비해 이 부분은 소략한 감이 없지 않았다. 나의 의견에 대해 박희병 선생은 일부 긍정하면서도 당신은 조선이라는 시공간에서 자유와 평등을 외친 이언진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되살려내는 데 초점을 둔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언진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독특한 유형의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데는 이 정도의 비교면 충분하다고 했다. 또한 다른 이단아와의 비교를 통한 본격적인 사상 비교는 사상뿐 아니라 당시 사회에 대한 분석이 부연되어야 하므로 좀 더 다른 지면이 필요하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도 멀지 않은 장래엔 한번 집필해봄직하다 싶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독자로서의 나의 욕심이다.

이언진은 조선 후기에 한중일 세 나라를 두루 경험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만큼 조선은 폐쇄적인 사회였다.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을 드나드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그런 나라였다. 역관이라는 신분은 이언진의 명을 짧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또한 세 나라를 두루 여행할 수 있었던 큰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스승 이용휴를 통해 중국의 이단아 이탁오의 좌파 양명학을 받아들였고, 일본 문인과의 대화를 통해 주자학 일변도가 아닌 왕세정(王世貞, 1526-1590)과 이반룡(李攀龍, 1514-1570)의 문학적 장점들을 두루 평가하고 긍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조선의 사상계는 송시열 이후로 주자학 유일주의였다).

그렇다면 그와 견줄만한 이단적인 인물을 동아시아 삼국에서 찾아 비교해 본다면 좀 더 정확하게 이언진의 존재를 평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중국의 이단아 이탁오, 일본의 이단아 안도오 쇼오세키 두 사람의 예를 들어 이언진의 사상과 비교하고 있다. 이탁오는 명말(明末)의 저명한 사상가로 인간의 평등을 부르짖었고, 안도오 쇼오에키는 18세기 전반(前半)에 활동했는데, 철저하게 계급을 부정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이 세 명의 사상가는 저마다 치열한 사유행위를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 체제에 도전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박희병 선생이 이언진에 대해 이렇게 3부작의 집필을 통해 공을 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유사 이래의 독특한 인물 유형 발굴이라는 큰 의의를 둘 수 있겠고, 또 하나는 이를 통해 일반인과 학계 연구자들의 조선 사회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확대를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이다. 조선 사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 확대만이 다양한 연구와 저작을 내놓을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박희병 선생은 이제 이언진을 내려놓고 능호관 이인상에 전념하고 있다. 또 한 번 종결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해본다. 독자로서 그리고 선생님의 편집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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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이번부터는 <色 다른 책 읽기>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다루는 책은, 박희병 지음,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돌베개 펴냄)으로, 최은정(숭실대 중문과 강사), 이현숙(자유기고가), 이경아(돌베개 편집자)의 글을 실었습니다.

노비의 역사, 현재형이 되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황선만 (책익는 마을 전촌장)

 

내가 노비가 되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우리사회에 노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왕이 노비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그 후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자유의 세상, 정치적 민주화의 시대가 자리를 잡았다. 며칠 전 보수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박종철 열사와 6월 민주화 운동>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기념회를 열기도 하였으니 민주화 시대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당시 담당검사였던 안 대표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 은폐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자기 홍보를 위해 박종철 열사와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으니 이 시대는 개인의 존엄이 확고히 자리잡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지금 노비를 말한다는 것은 우리 전통사회 역사의 한 구석을 호랑이 담배피우는 옛 이야기 듣듯이 넘겨다보는 일에 불과하다. 잔잔한 남한강 어디쯤에서 조각배를 저으며 풍광을 구경하듯이 말이다. 내가 임상혁이 쓴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나는 노비로소이다』를 펼쳤을 때 그런 마음이었다. 이참에 못다한 역사공부나 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한가한 내 생각은 머리말에서 부터 흔들리고 말았다.

“예전에 글쓴이가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조상이 노비였던 분은 손들어 보세요.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모두 까르르 웃을 뿐, 물론 손 올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체로 연구자들은 노비의 수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일 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3분의 2까지 보는 학자도 있다고 말해줄때면 놀라는 기색이 완연합니다. 노비는 매우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일생동안 상전에게 재화와 노동을 바치는 알짜배기이지요. 이 시기 부의 척도는 거느린 노복들의 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문대가라 불렸던 집안에는 수백 명의 노비를 자손에게 분배하는 상속 문서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옵니다.”

순간 나는 ‘혹시 내 조상도 노비였을지 몰라. 그렇다면 노비해방이 안 되었다고 할 때 나는 지금 노비로 살아갈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몸서리 쳐지는 것이었다. 인신과 정신이 상전에게 구속받아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으며 온종일 상전이 시키는대로 복종해야만하는 노비의 삶, 내 귀여운 자식들도 똑같이 그런 굴레에 갖혀 일평생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노비를 거부하는 노비들

인간이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법, 전통사회 노비라 하여 어찌 자유를 갈망하지 않았으랴. 이 책의 송사에 등장하는 두 당사자는 노비인 자와 노비 아닌 자였고, 노비는 항상 그 굴레를 벗어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게 된다. 특히 시종 이야기를 끌고가는 두 주인공 이지도와 다물사리의 궤적은 우리 전통사회의 노비제에 관한 다양한 배경지식을 알려주고, 시대를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의 욕구와 갈망을 보여준다.

원래 양인인 다물사리가 노비인 윤필과 결혼하였고 인이라는 딸을 두었는데, 인이가 이유겸의 사노비인 구지와 결혼하여 6남매를 둔다. 따라서 다물사리의 딸과 자손들은 모두 이유겸 집안의 사노가 되어 상속되게 된다. 자신의 귀여운 손자 손녀들이 모두 사노비의 생을 살게되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던 다물사리는 관가의 노비담당자의 묵인하에 스스로 관노가 되어 가솔을 모두 관노로 등록시킨다. 왜냐하면 사노비 보다는 관노비의 생이 훨씬 덜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이유겸 집안에서 소를 제기하게 되고 결국 다물사리의 가족은 쓸쓸히 사노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안동시에 사당을 두고 있는 학봉 김성일이 나주 목사로 재직하던 시절(1583년8월~1586년12월)에 처리한 판결문에 실려 있다. 저자는 숭실대 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법학자로 조선의 노비재판과 관련한 사료를 찾아내 김성일의 명 판결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조선의 형사소송과 민사소송, 심급제도, 소송절차를 비롯해 최고의 법전이라 할 수 있는 <경국대전>의 소개에 이르기까지 법학자답게 전통사회의 법과 그의 적용에 대해 밝히고 있다. 그러나 법학도 비슷한 인연도 없었던 필자로서는 저자가 소개하는 노비재판의 실화들에 더욱 눈길이 가고 그들의 삶이 궁금해지곤 하였다.

 

불공정한 판결

양인으로 잘 살아가던 한 가족이 노비로 급락하는 일도 있었다. 1568년 해남의 하급 아전이었던 허관손은 자신의 처와 세 자녀를 모두 노비로 빼앗긴다. 상대는 과거에 급제하고 이조참판까지 지냈던 유희춘이었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고위 관료였던 유희춘과의 소송을 소개하며 저자는 판결결과를 이렇게 말한다.

“마침내 유희춘의 누나는 다음해 7월 허관손의 아내와 그의 세 자녀를 잡아다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소나 말을 ‘부리듯’ 말이다. 멀쩡하던 처자식이 노비로 전락했으니 허관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급 관료지만 그 시대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자유는 허락받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불현 듯 다가온 가족의 쇄락을 허관손은 어찌 감당했을까. 그러나 법학자인 저자는 이 판결에 의구심을 버리지 않는다. 다음 인용을 보자.

“양반 상민, 노비 할 것 없이 소송능력은 법적으로 제한 없이 인정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고위관리에 맞서는 소송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으로 치면, 고액을 들여 전관예우 변호사를 고용한 상대방에 맞서 나홀로 본인소송을 하는 당사자가 고단하기 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헌부, 장예원의 관리들은 수시로 미암에게 와서 심리의 진행상황을 보고하였으며, 그의 동료 관리들은 행정조직을 동원하여 24년 전의 판결을 찾아내는 등 유리한 증거를 모았다.”

자신의 조상이 사실상 노비였기에 다시 노비로 돌아간다 하여도 극도로 싫었을 터인데, 만약 양인이었다가 권력자의 소송으로 억울하게 노비가 된다면 그 울분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나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는 상상을 하니 허리가 곳추세워지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법이라는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가까운 것이 아닌가 말이다.

 

해방된 노비들, 어디로 갔을까

노비신분을 벗어나고자 하는 대표적인 노력은 고려 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만적이라는 노비가 중심이된 만적의 난이 있었고 조선 전기에는 노비 소송이 넘쳐났다. 그래서 소송처리에 지친 태종이 “사전을 혁파하였듯이 사천제도를 없애버리면 이런 폐단은 없어질 것”이라며 노비제의 혁파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비해방이 공식화된 갑오개혁 이전인 1801년 순조1년에 관에서 부리던 공노비를 해방시켰으니 우리 전통사회는 노비의 노동력에 의존해왔고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고자했던 몸부림의 역사이기도 하였다.

그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는 노예제와 농노제가 있었다면서 우리의 노비제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명천지 21세기가 되었고, 세계화와 인간존중이라는 근엄한 사유가 지배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의 독재에 저항하는 북아프리카와 아랍민중들의 항거소식이 연일 전파를 타고 있으니 이 시대 사람들은 진전된 인간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가.

노비해방이 되었다는 것은 이 땅에 신분상 천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력이 확보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은 유력한 집안의 머슴살이를 하여야 했다. 또 주인집에 얹혀살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담살이, 주인집을 드나들면서 일을 도와주는 드난살이도 있었는데 산업화 이후 사라졌다. 그럼,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영세한 농민들의 수 많은 가족들이 도시의 공장노동자로 전업한 것이다. 이것은 노비의 역사이면서 노비의 현재가 된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투표권을 갖고 나라의 대표, 마을의 대표를 뽑는다. 자유로운 세상이다. 해방된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담살이나 드난살이를 하는 사람들의 노동과 피땀이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그 에너지는 생산의 기초이자 우리 사회의 주춧돌이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렇게 잔잔할 줄 모르는가. 아직 노비해방은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신분상승으로 가는 최고의 길인 일류대 합격률은 강남 학군에서 대부분 점령한지 오래다. 아버지가 기업을 갖고 있으면 약간의 불법을 감행하더라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용인되곤 하는 당당한 상속사회이다. 아버지가 대형교회 목사이면 자식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일반화 되어가고 있는 뻔뻔한 대물림 신분사회이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노비의 후예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벌사회의 들러리, 부당한 권력과 떳떳하지 못한 재산의 사적인 세습을 도와주는 입닫은 노비들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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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여덟번째 일로서 임상혁의 <나는 노비로소이다>(너머북스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대학의 이념』칼 야스퍼스 – 등록금문제와 대학의 이념[청춘의 서재]

이원혁(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한 학생이 이야기한다. “학업을 계속하려면 학업을 포기해야 해요.” 거짓말인줄 알았다. A를 얻기 위해 A를 포기해야한다니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마치 선문답이나 동화에서 말하는 교훈 속에 있는 이야기같았다. 그런데 이런 금도끼 은도끼이야기 속에 나오는 나무꾼들이 광화문광장에 하나 둘 모여들고 있다. 등록금을 벌어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오늘도 공부대신 ‘알바’를 하는 대학생, 그들의 젊은 이성은 오늘도 열심히 돈 번다.

등록금문제가 한참 이슈다. 하루 이틀된 문제도 아니지만 이번엔 뭔가 조금 달라 보인다. 철되면 돌아오는 제철음식처럼 으레 봄이 되면 하는 개나리투쟁도, 광우병 이후 오랜만에 잡은 소위 ‘껀수’도 아니다. 이번에 대학생들에게 보이는 비장함은 대학생이라는 실존에 대한 위협에서 나왔다. 대학생이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고 대학은 더 이상 이성이 아니라 돈벌이를 가르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처음으로 모두의 문제나 타인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거리에 섰다. 등록금문제는 단순히 돈의 문제를 넘어서 있다. 그 금액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학생과 예비 대학생들의 진로도 좌우한다. 높은 등록금 덕택에 학생들은 자유로운 이성보다 시장논리에 더욱 익숙하게 대학생활을 보낸다. 높은 등록금 속에서 학생들은 대학에 학문이 아닌 미래의 돈을 기대한다. 이성과 학문의 자유로운 연애에는 이제 대학에서 익숙하지 않은 낯선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대학생이 학문을 할 수 없는 사회, 대학은 취업만 할 수 있다면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되어버린 사회는 이른 바 ‘대학이 위기’인 사회다. 대학이 위기라는 말이 함축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대학과 학문의 위기에 대해 이미 수십 년 앞서 고민한 철학자가 있다. 바로 칼 야스퍼스(1883~1969)이다. 칼 야스퍼스가 활동하던 시대도 대학이 위기인 시대였다. 그는 유대인 아내와의 이혼을 거절하여 나치로 인해 대학교수직을 박탈당했다. 나치는 대학에 직접 개입하여 수백 년간 이어져온 소위 ‘대학의 이념’들에 덧칠을 하기 시작했다. 야스퍼스는 대학과 학문이 가지는 가장 큰 미덕은 보편적 앎에 대한 자유로운 탐구로 보았다. 대학의 목적은 근원적인 지적 욕구를 실현하는데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지적 욕구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며 그 앎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되는가를 발견하는데 있다. 그러나 야스퍼스 당시 대학은 나치는 물론이고 나치집권 전후에도 이미 자본에 의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유성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야스퍼스는 1945년 나치 12년간 굴복당한 대학의 이념을 다시금 바로세우고자 소책자를 발간한다. 이 책은 야스퍼스가 겪은 고통스러운 나치의 지배와 대학의 정신에 대한 그의 믿음 속에서 집필된 것으로 그 동안의 강연과 수기를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정리하여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이 바로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누고자 하는 『대학의 이념』이다. 『대학의 이념』에서 야스퍼스는 학문과 대학의 목적, 그리고 그 존립 조건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야스퍼스는 대학의 위기를 학문의 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한다. 그리고 학문의 본질에 대해 논하면서 서서히 대학의 존립의 문제를 고민한다. 그는 이 책에서 요란스럽지 않다. 대학의 이념과 그것을 침해하는 외적요소들에 대한 ‘스펙터클’한 공격을 기대한다면 이 책에선 잠시 흥분을 가라 앉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차근차근 대학의 이념에 대해 설명하지만 우리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듯하다. 이미 그가 60~70년 전에 말한 대학과 학문의 정신을 마주하면 그렇지 못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자꾸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취업 후 상환이라는 무책임한 대학등록금 대책을 무슨 은혜 베풀 듯 하는 나라님이 있는 나라에서는 대학생들은 어서 취업해야 한다. 취업이 잘되는 과로 전과도 빚쟁이에게 쫒기 듯 어서하지 않으면 돈 안 되는 학문을 4년이나 배워야한다. 대학의 역할 중 직업훈련도 분명히 한 축을 담당하지만 한 건물에서 한 기둥만을 위해 다른 기둥의 못을 뽑아버리면 건물 전체가 무너진다. 야스퍼스가 말하는 대학의 이념은 지적인 욕구에 부응하여 교수와 학생들의 공동체를 이루고 진리를 터득해 나가는 것을 바탕으로 총체적인 인격의 도야를 목적으로 한다. 그는 대학교육을 전인교육, 직업훈련, 연구 세 가지로 이루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대학의 교육을 이루는 요소지만 하나가 분리되어 그것만이 강조 될 경우 대학의 목적은 요원해진다. 야스퍼스는 대학이 학문의 미덕의 전체성이라 말한다. 대학의 이름이 university인 것처럼 대학은 하나의 우주이다. 그는 전체성과 결별한 학문과 학생의 생산에 대해 우려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문의 생명력은 전체와의 관계에 근거한다. 대학은 학문적 견해가 일생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그 기초를 갖추게 하고, 지식의 통합을 추구한다. 의사, 교사, 행정가, 판사, 목사, 건축가 등의 직업은 비록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직업을 위한 준비는 그 과정이 전인적이지 못하거나, 지각력을 계발시키지 못하거나, 안목의 지평을 넓혀주지 못하고 ‘철학적’사고를 형성해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지 못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들 것이다. 요즘 국가고시의 경우에 자주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전문지식의 부족은 직업적 실생활에서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학문적 교양의 기초가 결여된 사람으로부터는 어떠한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72~73쪽) 오래 전 글이지만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참 와닿는 말이다. 고대그리스에서도 통했던,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처럼 그저 보편성을 가진 말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문화라는 폭력에 내몰리는 대학 학문의 위기라는 점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다.

대학의 위기는 체계와 자본주의 본질의 문제이지 어느 한 현상적 문제로 귀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대학 등록금의 문제는 이러한 본질적 문제를 꿰뚫고 있다. 야스퍼스의 『대학의 이념』에서 대학이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전체성과 자율성이다. 앞서 말했듯이 대학의 목적은 인간의 지적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지적욕구는 항상 전문영역에서 실현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야스퍼스는 지적욕구의 본질은 지식의 통합과 전체성을 추구하는 것이고 대학은 바로 그 통합의 장으로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대학은 개별지식의 다양성과 그 통합을 추구하면서 university가 된다. 야스퍼스가 말하는 대학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학문에 대해 다시 정의하면서 학문을 수행하는 대학을 이야기하는데 그가 말한 학문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그 내용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며 보편타당성을 갖추는 것이다. 대학의 목적은 이러한 학문을 수행하면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대학의 이념이 갖는 전체성인데 이러한 전체성은 대학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자유로는 지위를 보장받을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에 그 자율성은 중요하다. 따라서 대학은 전체성과 자율성을 동시에 가져야한다.

그런데 요즘 일어나는 대학의 재정문제와 시장화는 이러한 대학의 전체성과 자율성을 심하게 침해하고 있는 듯하다. 자본에 의해 종속된 대학은 직접적으로 금화를 생산할 수 있는 학문만을 육성하고 그곳에 학생들이 모인다. 몇몇 학문에만 학생들이 모여들면서 대학학문이 가져야할 보편성과 전체성이 공격받는다. 이는 대학이 가진 ‘하나의 우주로서 학문의 장’이라는 자신의 역할은 물론 보편성을 추구하는 학문자체의 위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또 몇몇 집중된 인력은 항상 공급과잉을 초래하여 적정 수의 산업예비군을 항상 유지하게 한다. “자본의 학문지배 -> 학문의 전체성 상실 -> 대학 학문과 교육의 다양성 상실 -> 자본의 노동 및 대학구성원(교수, 연구자, 학생)에 대한 지배강화 -> 자본의 학문지배”라는 악순환이 바로 대학과 학문의 위기의 본질이다. 자본에 대한 노동의 지배를 학문의 전체성 상실을 통해 이루고 있으며 강력해진 자본은 더욱더 대학과 그 학문을 간섭하며 전체성과 자율성을 침해한다. 현재 한국의 대학 등록금문제는 이러한 대학의 위기 속에서 그 문제가 심화되어왔다. 야스퍼스는 대학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로부터 오히려 보호받고 지원받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국가와 사회가 이성적 결과물들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는 방안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할을 국가와 사회가 못해주고 있기 때문에 재정이 약한 대학은 무리해서 등록금을 인상하거나, 자기 자신이 바로 자본으로서 학문과 대학구성원의 적을 자임한다. 현재 한국대학의 취약한 재정구조, 특히 86%에 이르는 높은 등록금의존율은 대학에 대한 자본의 지배, 즉 대학자체의 총체적 위기를 이야기한다. 이것이 왜 지금껏 단순한 경제적 부담에서 불거졌던 대학생들의 등록금투쟁이 이제와 새삼스럽게 사회적 문제가 되고, 왜 또 ‘조국통일이나 노동해방’과 같은 거창한 거시적 담론만을 투쟁의 담론으로 삼았던 대학생운동이 선배들의 투쟁 주제에 비하면 소소하기 그지없는 ‘등록금’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당면과제로 삼은 이유이기도 하다.

야스퍼스는 대학의 이념과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 책의 목차를 유기적으로 구성했다. 그는 전체성과 보편성을 설명하는 학문의 본질을 앞서 이야기하고 이어 그 학문을 유지하는 지적 삶에 관한 문제, 그리고 대학의 조직, 마지막으로는 대학의 재정적 문제에 대해 논한다. 그는 마치 백의를 입은 선비처럼 대학의 목적을 순수한 앎의 추구라는 학문적 문제제기를 하며 글을 시작한다. 하지만 곧 현실 속의 사상가로 돌아와 국가와 사회의 역할 및 대학의 재정으로 『대학의 이념』을 마무리 짓는데 이는 대학의 위기를 단순히 ‘학문하기 어려움’으로 진단한 것이 아니라 이성과 학문의 자체의 위기에 대항해 자신이 생각한 ‘대학의 이념’을 다시금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대학은 지적양심과 욕구를 실현 할 수 있는 연구와 소크라테스식의 민주교육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이는 이상적이고 선언적일지 모르고 그것이 진정으로 가능한 것이 도대체 언제일까라는 고민은 남는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정의는 오늘날 대학이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해준다. 대한민국 초중고 모든 교육이 대학을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학자체는 자신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며, 그 혼란을 높은 등록금이란 형태로 학생들과 공유하고 있는 ‘인심 좋은’ 대학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야스퍼스의『대학의 이념』은 대학이 본래가진 초심은 물론,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대학의 모습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리라 믿는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4)

김남우 (정암학당)

[우신은 삶의 행복이 사태의 올바른 인식이 아니라, 허상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거짓과 아부와 허상 등은 모두 어리석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도취는 자기 자신을 위무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것을 해주는 경우에 이것을 ‘아부’라 합니다. 오늘날 아부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그래도 아부는 사태 자체보다는 언어에 현혹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힘을 발휘합니다. 사람들은 아부와 진실함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도저히 가까울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 못하는 짐승들을 예로 살펴보자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개처럼 착 달라붙으면서도 진실한 짐승은 또 어디 있습니까? 다람쥐처럼 알랑거리며 사람들에게 진실한 동물은 또 무엇입니까? 설마 포학한 사자들이나 야성의 호랑이들 혹은 거친 표범들이 인간 삶에 더욱 유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물론 전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아부도 있는바, 이로써 몇몇 악의적인 냉소주의자들은 상대방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 가련한 사람들을 유인합니다. 하지만 나 우신을 따르는 아부는 호의적이며 선량하여, 아부와 반대되는 직언, 혹은 호라티우스의 말처럼 우악하고 신랄하고 귀 따가운 사설보다는 훨씬 덕에 가깝다 하겠습니다.1) 이런 아부는 낙담한 영혼을 일으켜 세우며, 어둡고 우울한 사람에게 활기를 주며, 풀죽어 늘어진 몸에게 자극을 주며, 멍청하게 넋이 나간 인간을 일깨우며, 병에 지친 육신에게 고통을 덜어 주며, 감사납고 매몰찬 인사를 나긋나긋하게 녹이며, 사랑으로 인연을 맺어 주며 맺어 준 사랑을 붙잡아 둡니다. 또 어린 학생들이 책을 붙잡고 공부하도록 부추기며, 노년을 는실난실 들뜨게 하며, 송덕을 가장하여 심사 불편이 없게 군주들을 훈계하여 가르칩니다. 정리하면 아부는 누구나 스스로에게 흡족하고 기뻐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인바, 이는 행복의 한 부분 혹은 행복의 요체라 하겠습니다. ‘노새끼리 서로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것’보다 제격인 일이 있겠습니까? 아부가 존경받는 웅변술의 큰 부분을 차지하며, 의학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며 시학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주장하지 못할까 마는, 아무튼 아부는 인간 삶 전체를 달콤하게 하는 꿀이며, 살맛을 북돋는 양념입니다.

사람들은 거짓에 속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 합니다만, 실은 거짓에 속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불행입니다. 인간 행복이 사태의 진상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엄청난 착각입니다. 행복은 허상에 달렸습니다. 인간 만사는 변화무쌍하고 황홀난측하여,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덜 오만하다 할 나의 아카데미아 학파 사람들이 옳게 판단하였던바,2) 무엇 하나 제대로 분명히 사태를 파악하기란 아예 무망한 일이며, 설혹 무언가 사태의 실마리가 보였다 한들 이는 드물지 않게 즐거운 인생에 오히려 성가실 뿐입니다. 더군다나 인간의 영혼은 진상보다는 차라리 거짓에 끌리기 쉽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요구한다 치면, 교회의 설교시간을 보기 바랍니다. 설교자가 심각한 말씀을 전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꾸벅거리며, 하품하며 싫증을 냅니다. 사제의 사설 ― 아니 설교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실수했습니다 ― 에 흔히 있는 일인바 꼬부랑할망구의 옛날이야기가 피어오르면, 사람들은 모두 눈을 번쩍 뜨고 허리를 피며 입을 벌립니다. 심지어 성인이 이야기를 술술 재미지게 풀어내거나 솔깃하게 지어 낸다면, 이에 대한 예로 여러분은 게오르기우스 혹은 크리스토포루스 혹은 바르바라 등의 성인들을 떠올릴 수 있을 터인데, 사람들은 이 성자를 베드로 혹은 바오로 혹은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경건하게 경배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것은 지금 말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이쯤 합시다.

그러니 행복에로의 접근은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가능합니까? 사태의 진실을 파악해야 한다면 이것은 대단한 수고를 지불해야 하는 일이며, 문법과 같이 하찮은 일조차도 값싼 것은 없습니다만, 거짓은 제일 쉬운 일인바 가진 허상만큼 혹은 가진 허상보다 훨씬 큰 행복에 이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금에 절여 삭힌 고기를 먹으며, 어지간한 사람도 그 역겨운 냄새를 견딜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마치 천상의 음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묻거니와 이 사람의 행복은 무엇에 달린 것입니까? 반대로 어떤 사람이 별미라 할 상어알 젓을 메스꺼워한다면, 이 사람의 행복은 무엇에 달린 것입니까? 또 만일 무지막지하게 못생긴 아내를 보면서 마치 베누스 여신과 경합을 벌일 만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있다면 이는 진실로 아름다운 아내를 가진 것과 진배없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만일 주홍과 노랑으로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그림을 쳐다보며 경탄을 금치 못하여 아펠레스 혹은 제욱시스의3)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실제 저 유명한 화가들의 위대한 그림을 비싼 돈을 치르고 구입하고도 그림 감상에서 그저 엇비슷한 정도의 쾌락을 얻는 사람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할 것입니다. 나는 나와 같은 이름을 쓰는 이를 알고 있습니다.4) 그는 새로 얻은 부인에게 선물로 인조 보석을 선물하면서, 청산유수와 같은 말솜씨를 발휘하여 그 보석이 천연의 진품 보석이며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내 묻거니와, 그런 보석으로 눈과 영혼을 충분히 배부르게 먹이고, 가짜 보석을 마치 굉장한 보물인 양 감추고 아낀다면 가짜든 진짜든 여인에게는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남편은 아내의 착각을 이용하여 비용을 아꼈으며, 많은 돈을 주고 사들인 선물로 아내를 감동시킬 때와 마찬가지로 아내를 자신에게 붙들어 두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또한 플라톤의 동굴에 묶여 있는 사람들은 온갖 다양한 사물의 그림자와 모상에 경탄을 금치 못하며, 진상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지 않으며 지금 그대로 만족한다고 할 때, 동굴로부터 탈출하여 세상 온갖 사물들의 진상을 알게 된 현자와 이들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여러분은 생각합니까? 루키아노스가 이야기한 부자 뮈킬로스가 만일 영원히 황금의 꿈을 꿀 수 있었다면, 그는 결코 다른 행복을 바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차이가 전혀 없으며,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나는 차라리 허상에 빠진 어리석은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허상을 선택한 경우가 훨씬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이 분명한 즉, 다만 그렇게 생각하고 믿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허상의 억견은 대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나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소유이든지 함께 누릴 사람들이 없다면 하나도 즐거울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설령 있다 한들 매우 소수에게만 국한되어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수백 년 동안 희랍인들을 현자로 다만 일곱 명을 헤아리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칠현인을 자세히 파고들면, 아니면 내 목숨을 내놓겠는바, 그들 가운데는 얼치기 현자가 끼어 있으며, 혹은 그들 가운데 3분의 1 정도만 현인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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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라티우스 <서간시> 1, 18, 6행

2)여기서 ‘오만한 태도’와 관련하여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21d이하 (최명관 역, 종로서적, 1981, 47쪽)을 보라. “오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저는 다음과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지자라고 여겨지고 있고 자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저는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당신은 지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알게 하려고 힘썼습니다.”

3)아펠레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궁정화가였다. 제욱시스는 기원전 425년 이전에 아테네를 찾은 화가로서 소크라테스 등과 교류하였다. 남부 이탈리아 크로톤의 헤라 신전에 헬레네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4)아마도 토머스 모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ME 133쪽 참조).

사랑의 조미료로 조화롭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 비법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박비호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사랑의 조미료’에 관한 이야기

“지금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까?”

이 말은 십 여 년 전부터 급식 조리 사원을 뽑을 때 지원자들에게 내가 던지는 유일한 질문이다. 질문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요즘 당신은 가족들과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까?” 이다.

지금부터 십 칠년 전에 학교에 납품하는 위탁 급식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걱정이 된 것은 과연 소비자들이 얼마동안이나 우리 음식에 질리지 않고 계속해서 먹어줄까 하는 것이었다.

‘일류 호텔의 주방장들이 고급재료를 엄선하여 만든 음식이라고 할지라도 계속하여 두 끼를 먹기가 힘들지만 집에서 아내나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은 비록 솜씨가 부족하고 재료가 보잘 것 없다고 하더라도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은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 먼저 그 원인을 찾고 난 후에 이 사업을 시작하면 성공할 수 있겠구나.’

이렇게 의문을 가지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나는 얼마 후에 그 해답을 어머니와 아내의 가족에 대한 ‘사랑의 결과’ 라는 형이상학적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사랑은 음식의 재료나 음식 솜씨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한 정성과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사랑을 일명 ‘사랑의 조미료’ 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행복하게 보이는 사람 그리고 사랑과 정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사원으로 채용하였고 음식 재료의 선택부터 음식을 만드는 하나하나의 과정을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고스란히 사업장에서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음식을 만들 때마다 ‘사랑의 조미료’를 흠뻑 뿌려 만든 음식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날 집안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거나 사원 상호간에 갈등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 혹은 집안에 우환이 있어서 걱정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음식 조리에서 배제하였다. 이와 같은 운영의 결과였는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십칠 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서해안에서 유일한 급식 납품업체를 운영할 수 있었다.

 

과학으로 비과학적인 문제를 증명한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

2002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1943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요코하마 시립대학 국제관계학과를 졸업한 에모토 마사루의 작품으로 모든 생물의 생명은 물론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물을 주제로 수시로 변하는 물의 사진을 통하여 물에도 의식이 있음과 특히 물이 말과 글씨, 음악 등에 따라 변화되는 것을 물 결정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특히 우리 인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물이 우리의 의식에 따라서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책이다.

1. 우주는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저자는 ‘인간은 물이다.’ 라고 정의하면서 이 말을 세계의 수수께끼를 풀어 줄 키워드라고 한다. 즉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드라마는 물이 비쳐내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바다에 물방울을 떨어뜨림으로써 사회에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물에게 말을 들려주고, 글씨를 보여주고,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물이 보여주는 신비하고 놀라운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랫동안 물과 파동에 대한 연구를 해온 저자는 눈(雪)의 결정체 하나하나가 그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부터 물의 결정을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사랑, 감사’와 같은 말이나 긍정적인 글을 보여준 물에서는 완전한 아름다운 육각형 결정이 나타났지만 ‘악마’, ‘멍청한 놈’, ‘바보’, ‘짜증나, 죽여 버릴 거야’ 등과 같이 부정적인 말에는 제멋대로 흩어져 있고 찌그러진 결정체의 모습이 나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 주세요’ 라는 온유한 말에는 꽃처럼 예쁜 육각형 결정이 나왔지만 ‘그렇게 해!’ 라는 명령조의 말에는 ‘악마’ 라고 말할 때와 같은 결정을 보였다고 한다. 물 결정 사진 가운데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결정을 보인 것이 바로 ‘사랑’과 ‘감사’라는 말에 대한 결정이다.

인간의 몸도 70퍼센트가 물임을 고려하면 우리가 서로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즉 사랑과 감사처럼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받으면 몸속 물도 건강하게, 맑고 아름답게 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사랑과 감사로 가득 채우면 사랑해야 하는 것, 감사해야만 할 멋진 일들이 저절로 찾아와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지만 원한이나 불만, 슬픔과 같은 파동을 발하면 한층 더 원한을 품어야 할 상황이나 슬픔으로 가득 찬 세계를 자신에게로 끌어 오는 결과를 낳는다고 한다. 따라서 어떤 세계를 선택하고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한다.

2. 물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입구

하늘에서 내려온 빗물은 몇 십 년, 몇 백 년의 세월에 걸쳐 흙을 통하여 지하수가 된다. 저자는 스위스 취리히 공대 교수였던 조안 데이비스씨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무엇보다 물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되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은 정보를 기억하고 지구를 순환함으로써 그 정보를 전달하며 물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해독하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물의 결정에 관한 관찰이라고 한다. 특히 ‘고맙습니다’ 라는 말에 반응하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결정체와 ‘사랑과 감사’라는 말에 반응하는 장엄한 광체가 물의 생명과 혼의 모습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랑과 감사’ 라는 말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하고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말이라고 한다.

3. 의식이 모든 것을 만든다.

저자는 물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매력에 이끌려서 인간이 오염된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가의 답을 물과 연관하여 찾고 있다. 그리고 물의 결정이 생기는 이유는 모든 물질의 감정과 의식이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파동이 물에 영향을 주어 파동에 상응하는 결정구조를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글자 또한 고유한 파동이 있기 때문에 물이 거기에 반응한다고 주장한다.

생각과 의식이 파동 에너지로 전파되듯이 사랑을 느끼는 것도 혹은 서로 반목하는 것도 파동의 영향이라고 한다. 또 분노와 슬픔, 원한 같은 감정을 치유하는 데도 파동의 법칙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좋지 않은 감정과 정반대의 파동을 내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한이란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분노에는 연민을, 공포에는 용기를, 불안에는 안심을, 초조에는 안정을, 압박감에는 평상심을 가지면 된다고 한다. 이런 원리로 원한의 감정으로 병에 걸린 사람은 감사의 마음을 되찾음으로써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과 의식은 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즉 의식이 물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4. 한순간에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끝으로 저자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와 관련하여 새로운 세계관을 연구하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생화학 교수인 셀드레이크 박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번 만들어진 형태의 장은 공간적 시간적 거리를 넘어서 전파된다고 한다.

즉 형태의 장이 만들어 지면 다른 장소에도 영향을 끼치며 이것은 한 순간에 세계를 바꾸는 일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생명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장으로 살아가는데, 따라서 우리는 주위 사람이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하여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의식을 향한다는 말은 사랑으로 대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의 장을 만드는가에 따라서 고통과 상처의 장으로 만들 수도 있고, 사랑과 감사로 가득한 세계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넘치는 사랑과 감사로 세계를 감싸줄 것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멋진 형태의 장이 되어서 세계를 바꾸어 간다고 한다.

 

인간이 서로 조화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

‘사랑의 조미료’라는 말이나 ‘물이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과 음악 같은 소리는 물론 글자에도 반응한다.’는 형이상학적인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비과학적이고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종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사랑과 감사라는 말은 멀지않은 장래에 그 중요성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확실하게 증명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 역시 물 자체의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물에서 조차 아름답게 반응하는 낱말인 ‘사랑과 감사’라는 말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하며 또한 지역이나 인종, 언어 등 모든 여건을 초월하여 인간이 서로 조화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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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일곱 번째 글로서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양억관 옮김/나무심는사람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있다 – 박지원, 「不移堂記」 [연암읽기 02]

전호근(경희대)

사함은 연암 박지원의 벗이다. 본디 대나무를 좋아했던 사함은 자신의 호를 죽원옹(竹園翁), 곧 ‘대나무집 늙은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연암이 막상 가서 보니 사함의 집에는 대나무가 한 그루도 없었다. 연암은 잠시 생각에 잠겼을 터. 그러고는 느닷없이 자기 스승이었던 이양천의 이야기를 꺼낸다.

연암의 스승 이양천은 일찍이 시·서·화에 뛰어나 삼절로 불렸던 이인상과 막역한 사이였다. 본래 제갈공명을 흠모했던 이양천은 이인상에게 공명의 사당에 심어져 있는 잣나무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지난 뒤 이인상이 족자를 보내왔는데 펼쳐보니 잣나무 그림은 없고 양나라 사혜련이 지은 「설부(雪賦)」, 그러니까 눈에 관한 시만 있다. 이양천이 어찌 된 거냐고 묻자 이인상은 「설부」 안에 잣나무가 들어 있으니 잘 찾아보라고 대꾸한다. 그림을 달라고 했는데 글씨를 보내오고 잣나무를 그려달라고 했는데 눈 속에서 찾아보라니? 이양천은 의아할 밖에.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있다가 이양천은 임금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 간했다가 흑산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는 어려움을 겪는다. 유배지로 가던 중 눈이 내리더니 곧이어 금부도사가 오면 사약이 내릴지도 모른다는 전갈이 왔다. 따라갔던 사람들이 모두 벌벌 떨며 울부짖는데 이양천은 문득 멀리 눈 속에서 어릿한 나무를 발견한다. 아, 이인상이 말하던 눈 속의 잣나무가 바로 저기 있구나!

섬에 갇힌 뒤 큰 바람이 바다를 뒤흔드는 어느 날 밤, 사람들은 모두 혼비백산하여 토하고 어지러워하는데 이양천은 이렇게 노래했다.

“남쪽 바다의 산호야 꺾인들 어쩌겠는가마는 오늘 밤 임금의 처소가 추울까 걱정이라네[南海珊瑚折奈何 ?恐今宵玉樓寒].”

얼마 뒤 이인상에게서 편지가 왔다.

“근래에 그대가 지은 산호곡(珊瑚曲)을 얻어 보았더니 잘 지내고 있는 줄 알겠소. 이제 보니 그대야말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 할 만하오.”

이런 이양천이 세상을 떠난 뒤 연암은 그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이학사는 참으로 눈 속의 잣나무로다. 선비는 곤궁해진 뒤에 평소의 뜻을 살필 수 있는 법이니 어려움 속에서도 뜻을 바꾸지 아니하고 홀로 우뚝 서 있었으니 어찌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 변하지 않는 잣나무가 아니겠는가.”

이런 이야기를 사함에게 들려주고 연암은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나의 벗 ‘죽원옹’ 사함은 대나무를 사랑한다. 사함이 참으로 대나무를 아는 사람이라면 날씨가 추워진 뒤에 우리는 눈 덮인 그대의 뜰에서 대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잣나무와 대나무는 모두 선비의 변함없는 지조를 상징한다. 이양천은 붓을 쥐고 그림을 그릴 줄은 몰랐지만 당대의 화가 이인상이 보기에 그야말로 자신의 삶으로 잣나무를 제대로 그린 사람이었다. 연암 또한 자신의 벗 사함이 어려운 시절이 닥치더라도 변함없이 지조를 지켜 삶의 대나무를 그리리라는 믿음으로 보이지도 않는 눈 속의 잣나무를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누구일까? 내 인생길 (2)[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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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산속 움막으로 쫓겨 가다.

몸이 아프거나 외로울 때는 어머니가 끓여주던 미역국이 먹고 싶다. 싱싱한 생선과 생미역을 넣고 끓인 뜨거운 국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힘이 솟았다. 어머니는 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면서 안쓰러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미역국에서는 언제나 어머니의 냄새가 났다.

행복한 일상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에게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어머니이다. 할머니는 이야기 중간 중간에 어머니가 살아 계시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그 질문 뒤에는 “김선생도 아(아이)가 있제?”라는 또 다른 질문이 꼭 이어 나왔다. 할머니에게 어머니는 얼굴도 알 수 없는 아들과 함께 수많은 마음 속 옹이 중의 하나였다.

할머니가 한센병에 걸렸다는 소문은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갔고, 가끔씩 호기심으로 소문의 진위를 탐색하기 위해 오던 이웃들의 발길도 끊겼다. 할머니와 어머니 둘이서 살던 집은 세상 속의 섬이었다. 두 사람은 말을 잃어갔고, 하루 종일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할머니가 한센병에 걸렸음이 기정사실화 되자 할머니와 어머니는 살고 있던 집을 강제로 빼앗기다시피 팔고, 동네 뒷산 기슭에 있는 허물어져가는 움막 같은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곳은 밤이 되면 더 무섭고 추웠다. 짐승의 울음소리도 무서웠지만, 누군가 와서 해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깊이 잠들 수도 없었다.

19살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초여름이었지만 부둥켜 안고 잠을 잤다. 산속 움막은 계절과 관계없이 밤만 되면 서늘한 바람이 여기저기서 들어왔고, 혹시 잠이 깊이 들었을 때, 누군가 와서 딸을 해칠까봐 어머니는 깊은 잠을 자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과 태어날 아이에 대한 불안감에서 할머니는 벗어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냈다.

움막 주위 어디에도 물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지만, 한센병에 걸린 할머니가 물가에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씻을 물도 마실 물도 움막 가까이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산속에 흐르는 물줄기 가까이에 갈까봐 멀리서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사람이 많은 시간을 피해서 새벽이나 저녁 무렵에만 우물로 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용케 알고 쫓아와 두레박을 뺏고 물통을 발로 차며 우물가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는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옷고름이 찢어진 채로 빈 물통을 들고 와 통곡하는 날이 많았다.

 

이래도 부모는 병든 자식이

그렇게도 좋을까

우물에 물을 뜨러 가시면

많은 사람들에게 두레박을 빼앗기며

양철통을 발로 차이고

온갖 학대와 멸시와 천대를 받고

돌아오면 모녀간에 부둥켜안고 울어

눈도 붓고 얼굴도 부었네.

<내 인생길> 부분.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다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의 숨결이 빨라졌다 느려지기를 반복했다. “벌레도 풀의 이슬을 먹고 사는데, 나는 사람이다 하고 소리 질렀다. 나는 벌레도 아인기라.”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할머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떨어져 내리더니 코끝에 걸쳐 있는 안경알에 고였다.

할머니는 스스로를 사람도 아니고 벌레도 아닌, 아무 것도 아닌 그 무엇이라고 했다. 사람이지만 사람으로 살 수 없는 한센인은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잘못 돋아난 버섯(한하운, <나>)”과 같은 존재였다. “다만, 억겁을 두고 나누고 또 나누어도 많이 남을 벌(<나>)”받은 존재인 것이다. 오로지 남아 있는 것은 “욕이다 벌이다 문둥이(한하운, <삶>)”라는 처절한 싶은 현실뿐이었다.

한센병에 걸린 자신으로 인하여 어머니가 겪는 고통은 할머니에게 자신의 병보다 더 견딜 수 없는 벌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들판으로(<내 인생길>)” 내달려도 마음의 고통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돌에 채이고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는 한센병의 진행을 도왔다. 병은 몸을 조금씩 잠식해왔지만, 뱃속의 아이 때문에 시중에 떠도는 약은 아무 거나 먹을 수 없었다. 한센병에 좋다고 인정된 약은 너무 비싸 사 먹을 수 없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절망이라는 마음의 병을 가지고 왔다. “차라리 이 땅위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내 인생길>)” 자신으로 인해 곤궁한 삶을 사는 어머니를 보면서 할머니의 마음은 병들어 갔다. “배는 불러오제, 끼니거리도 구하기 힘들제, 우리 어무이는 온 산을 헤매고 다니며 산나물이고 열매고 갖고 와서 나 먹이기 바쁜기라.” 할머니의 숨결이 다시 가빠졌다. 눈시울은 붉게 물들고 맞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살아 있는데, 죽은 사람처럼 먹지도 마시지도 씻지도 못하고, 사람 가까이에 갈 수도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 삶은 사는 것일까? 죽는 것일까?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딸을 옆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현재 살아 있지만, 살았다고 말할 수 없는 지난날을 말로 다 하지 못하고 깊은 한숨과 눈물과 떨림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60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할머니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과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차라리 자기가 없었더라면, 어머니는 가족이 함께 살던 큰 집에서 넉넉한 생활을 하며 편안한 여생을 보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임신만 하지 않았더라도 어머니 곁을 떠났을 것이고, 그러면 어머니가 좀더 편안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회한도 컸다.

 

느삼태 찾아 이산 저산 헤매던 어머니

무더운 8월 여름에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조금씩 나오던 젖도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아이는 언제나 배를 곯았다. 어쩌다 살갑게 지냈던 사람들이 아이 낳은 것을 알고 살짝 갖다 놓고 가는 양식이 유일한 끼니거리가 되는 날이 이어졌다. 산 아래 사람이 사는 세상은 해방이 되었다고 기쁨이 넘쳤지만, 산기슭 움막에는 적막만 있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옷을 못 입혔제. 지도 산 목숨이라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는데, 젖이 안 나오는 기라.” 할머니는 이야기를 멈추고 긴 한숨을 쉬었다. “에미는 나병에 걸렸는데, 아는 괜찮더라. 참 우습제.” 많은 사람들이 전염될까봐 외면했는데, 정작 한몸으로 있었던 아이는 건강했다. 눈으로 보면서도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찾아오지 않았다. 해방이 되자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일본으로 급히 돌아갔다는 사실도 어렵게 찾아 온 친구를 통해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한센병에 걸렸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일본으로 가기 전에 할머니를 찾았노라고 친구는 전해주었다.

어쩌면 아이를 낳은 사실도 영원히 모를 것이라고 할머니는 짐작했다. 실제로 마쓰시타가 아이의 존재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할머니는 자신과 아이가 마쓰시타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았다는 믿음을 갖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자 병은 무서운 기세로 할머니를 덮쳤다.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한 산모와 제대로 울지도 않는 갓난 아기를 두고, 어머니는 하루 종일 산을 헤매고 다녔다. 한센병에 좋다는 느삼태를 구하기 위해 산꼭대기까지 오르내렸다. “허리에는 노끈을 드리우고 약초 망태기는 어깨에 메고,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산 저산으로 헤매며(<어머니>)” 다녔다.

어머니는 오로지 느삼태를 구하기 위하여 어떤 날은 “엎어지고 넘어져” “머리 깨어 피투성이가 되”기도 하고, “까치 밭길에 천 갈래 만 갈래 찢긴 옷”을 “바람에 휘날리”며 돌아오기도 했다. 느삼태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내 한이야 내 한이야”하며 통곡했다. 어머니의 통곡 소리는 지금도 할머니의 귓가를 맴돌고 있다.

 

사모곡과 할머니의 두통

어머니가 당했던 고통의 근원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할머니는 “머리털 하나하나 뽑아서 어머니 신틀메를 삼아도, 뼈를 깎아 어머니 공덕탑을 세워도” 불효를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겼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6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할머니의 가슴에 흐르고 있다가 한 편의 시로 재현되었다.

이 불효 여식

벌레만도 못한 인생

이것 무엇 보시고

당신께서는 그 높은 사랑

사랑으로 아낌없이

쏟아 부어 주십니까.

 

팔십 평생 살며

어머니 앞에

딸자식 자랑거리가 못되어

많은 사람에게

멸시와 천대받아가며

어머니 앞에 황송할 뿐인

이것이 내 인생길입니다.

 

어머니

끝끝내 당신은

나를 두고 눈물로

황승길 가셨나요.

아,

어머니.

<어머니> 부분.

시 <어머니>를 읊고 나자 할머니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이마에 열기가 있었다. 놀라서 화장대 서랍을 열고 약을 찾았다. 서랍 안은 몇 권의 공책과 전화번호부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수많은 약봉지 속에서 두통약과 해열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약을 찾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말을 이어 갔다. 나는 돌아앉은 채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할머니의 말을 듣기만 했다.

“내가 오늘날까지 이거, 묵어 있던 거 몸 밖에 꺼내어 뭐할 낀고 싶다.”

“우리 어무이는 참 고왔다. 아버지가 좀 일찍 돌아가시고 해도, 남긴 것도 있고 논도 있고 먹고 사는 데에 넉넉했다.”

“봐라, 김선생. 약 안 먹어도 된다. 옛날 생각해서 머리 아프다.”

“어제 밤에 가만히 누워서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더라. 마이(많이) 나서 마이 울었다. 그래 머리 아프다.”

할머니 옆에 가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웃는 것뿐이었다. 할머니를 만나면 시를 읊기 전까지는 내가 많은 말을 하지만, 할머니가 시를 들려주고 그것을 받아쓰기 시작하면 해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치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인 것처럼 받아쓰는 내 자신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할머니의 두통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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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게재된 사진은 전호근 작 <벽>(2007)입니다.

# 히게이아(Hygeia)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이는 흔히 의약과 치유의 신으로 알려진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us)와는 또 다른 치유의 신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이나 약으로 환자의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신이라면, 히게이아는 환자 자신의 자연치유력을 돌봐주고 길러주는 치유의 신입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치료의학의 수호신이라면, 히게이아는 간호학과 위생학의 수호천사로 불립니다. [히게이아의 시학]은, <e시대와 철학>과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서 바로 치유의 여신 히게이아의 정신을 계승하여, 문학 특히 시를 통해 환자의 삶과 소통하고 환자의 자기 치유를 유도하는 하나의 치유인문학이자 인문의학의 성격과 내용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의 말]

세일러문의 국가[썩은 뿌리 자르기]

양정진(한국철학사상연구회)

1.‘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에 이어 복지국가 열풍이 찾아왔다. (행성X와 혜성 엘레닌을 사랑하는 음흉한 나에게는, 정의론 중에서도 왜 하필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인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뇌내망상의 세계를 만들어낼 신나는 구실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이 정의를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하기가 힘든 것 같다. 그리고 무지개의 끝에 숨겨져 있는 줄만 알았던 그 정의가, 복지국가라는 이름의 오색 빛깔 스펙트럼으로 공중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조지 레이코프 식으로 말하자면 과거 우리의 ‘엄격한 아버지’께서조차도 우리에게 복지국가를 실현시켜 주시고자 했던 것뿐이라고 그의 생물학적 딸이 주장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이제 진보는 국가에 대해 사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가 자체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장치라고 폄하하던 과거의 태도를 버리고, 공공선과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주체로서 국가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의 기획은 현실적으로 실패했으며 시장과 국가를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역사의 종말’ 론을 반복하는 경향으로도 나타난다. 내용상 딱히 새로울 것은 없는 주장일 것이다. 다만 이러한 주장들이 하필 샌델의 정의론 열풍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으로 보인다.

2.복지국가, 좋다. 더 이상 아무도 크레인에 올라갈 필요가 없고 분신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 온다면, 살갑게 돌봐 온 배추를, 소와 돼지를, 아이를 가슴에 묻지 않아도 된다면, 점심 먹을 시간 좀 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쫓겨나지 않을 수 있다면, 학생 신분이라는 게 사치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 그게 어떤 이름을 갖고 있든 대체 무슨 상관일까. 누구 말마따나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만 제대로 보장될 수 있어도, 최소한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가슴 벅찰 듯하다.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처절하게 행복한 상상들이 정의라는 관념과 연결될 때, 또 복지국가라는 이념이 정책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상황일 때, 이 상상들은 단일한 입장으로 좁혀지기가 쉽지 않다. 정의를 말하기 위해서는 ‘정의란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누구의 정의인가’,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를 물어야 하고, 정책을 입안하고 실시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의가 더 우선인가’에 대한 세부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3.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단지 ‘현존하는 긴급한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앞뒤 자르고 무조건 진보가 뭉쳐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험(CPD)’을 제거해야 한다는 냉전 시대 미국의 논리와 닮아 있다. 미국은 바로 이 논리를 확장하여 9.11 이후 애국자법을 발효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과거에는 매카시즘으로, 현재에는 이슬람교도와 이민자들을 제물로 삼는 희생제의로 나타났다. 즉, 미국은 악을 제거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제거했다.

악을 제거하겠다는 수단은 그렇게, 정의의 실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제치고 스스로 목적이 된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은 용납된다. 선과 악의 이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악의 반대가 곧 정의라는 이 단순한 논리 안에서, 악의 제거를 최우선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은 악으로 규정된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지난 몇몇 선거에서 어떤 진보 정당은 악으로 규정되기도 했고, 또 어떤 진보 정치인은 ‘정치 생명이 끊어졌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제는 누가 진보인지, 무엇이 진보인지도 헛갈릴 지경이다. 이러한 이분법을 깨지 않는 한, 민주주의도 복지국가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악만 일단 제거하고 나면 공공선과 정의가 실현되는 이상 국가가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은 혁명이 일단 성공하고 나면 이상적 사회 건설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국경 따위 가볍게 뛰어 넘는 국내외 거대 자본 및 잃어버린 십 년을 보상 받고 그들만의 천년왕국을 준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점진적으로 공공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과연 정말로 혁명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쉽고 더 빠른 방법인지 나로서는 판단이 서질 않는다. 현재 이곳의 이 누더기 같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다음 선거를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기다리고,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그냥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면서 죽든지 텅 빈 축사에서 목을 매든지 반도체 공장에서 암에 걸리든지 4대강 공사 현장에 묻혀버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건지, 혹시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 현실 감각이 마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4.어차피 둘 다 이상적이긴 매한가지다. 더구나 둘 다 ‘그 이후’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마찬가지다. 둘 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이후의 세계를 합의하고 구성해나가야만 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를 바 없다. 어떤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어떤 것은 너무 이상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최종 근거 따위는 역사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혁명론자라는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나의 현재 정치적 입장을 굳이 설명하자면 슬프지만, 무뇌형 변신박쥐라고 해야 적절하겠다.)

그러므로 국가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보다 현실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은, 그리하여 시장과 국가를 자연화 하는 데까지 이르는 주장은, 그다지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입장이 더 이상적이고 어떤 입장이 더 현실적인지가 아니다.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다 그냥 이상일 뿐이다. 이상으로서 그 의미를 갖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이상을 꿈꿀 것인가이다. 즉, 문제는 정의라는 이념의 내용을 채우는 일이다. 현실적 조건에 대한 고려는 그 이상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를 논할 때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5.이상이나 이념이 현실에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 이상이 현실에 대한 규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이상을 갖는지에 따라, 현실을 얼마만큼 바꿔내야 할 것인지, 어디에서 만족하고 변화를 멈출 것인지가 결정된다. 개혁이 됐든 혁명이 됐든 변화의 최종 목적지를 설정해 주는 것이 바로 이상이다. 모두가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고 모두가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가운데 이들 사이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바로 이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가일 것이다. 목적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수단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바로 여기서 물어야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이다. 각자가 취하는 이상, 각자가 설정하는 최종 목적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래서 그 최종 목적지에서 내버려지는 것은 누구인지를 물어야 한다. 시장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자신의 이상을 자본주의 내부에 설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이상은 아무리 깜찍한 말로 포장해도 자본주의 체제 그 바깥으로 절대 나아갈 수 없다. 기껏해야 그러한 이상이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목적지에서는 단지 중산층의 삶이 얼마나 부유해졌는지, 빈곤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등을 통계적으로 제시하고 한 사람 당 한 표의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만족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목적지에서는 화폐 한 장 당 한 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사실이고 그래서 잘 은폐되어야 하는 사실일 수밖에 없다. 좋은 삶이 곧 돈을 많이 가진 삶을 의미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것만 잘 은폐된다면 달리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 해결되면 좋고 해결 안 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냥 해결될 때까지 열심히 대화해야 한다. 대화에 낄 수 없는 존재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문제를 대신 말해 주는 시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6.마이클 샌델의 공화주의적 정의론 역시 다르지 않다. 샌델이 정치를 도덕과 결합시켜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도덕은 선거에서 보다 많은 표를 획득할 수 있는 도덕이다. <왜 도덕인가>에서 샌델이 미국 국민 전체의 의지이자 미국 국민이 원하는 도덕을 드러내는 지표로서 설정하는 것은 선거의 결과인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미국의 특수한 선거제도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바로 선거에 반영되는 의지가 대체로 기득권층의 의지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샌델이 말하는 도덕은 백인 남성 기독교인으로 대변될 수 있는 어떤 사람들의 공동선이지, 미국 사람들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공동선일 수는 없다. 더구나 샌델이 묘사하고 있는 미국 내 인권 확대의 역사가 정치 엘리트 및 백인 남성들의 역사라는 점 또한 샌델의 정의가 누구를 위한 정의인지를 드러내 주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이 점은 미국의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더욱 두드러지는 듯하다. 9.11 테러 이후 누군가는 ‘예외상태’가 상례화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또 누군가는 이슬람교도와 같은 특수한 사람들이 희생양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국제적 연대보다도 공동체의 정체성 및 이웃의 정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샌델의 논의는 단순히 개인과 공동체가 맺는 긴밀한 관계에 대한 윤리라고만 읽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다. 샌델이 세계화된 자본에 맞서 공공영역을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순간에조차도, 샌델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미국 중산층의 재산과 안위이지 빈곤 계층이나 유색 인종의 행복은 아니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7.그리고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수용되는 방식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샌델의 정의론이 놓여 있는 미국의 역사적 맥락이나 사상적 맥락이 잘려나간 채로 <정의란 무엇인가>가 소비되고 있는 현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곳은, 대기업에 심각하게 프랜들리한 정부가 샌델의 책을 선전하는, 샌델 자신조차도 경악할 만한 어이없는 상황이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미국에서 출간된 2009년에 같은 하버드대 교수인 아마르티아 센의 <정의라는 아이디어>도 출간되었고 미국에서는 센의 책이 보다 더 주목을 받았지만, 그러나 2010년 우리의 서점가를 점령한 것이 센델의 책이라는 사실은 자못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그렇게 샌델 열풍을 타고 우리는 샌델이 해석해낸 공리주의와 샌델이 해석해낸 칸트와 롤스를, 샌델이 규정하는 정의와 공동선을 흡수하고 있다.

맥락이 잘려나간 샌델이 현재 활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방식은 ‘나의 주장은 곧 국민의 뜻’이라는 정치인들의 상투어구를 ‘나의 정의가 곧 보편적 정의’라는 새로운 미사여구로 바꿔놓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웃어넘길 수 있다. 두려운 것은 샌델의 논의가 ‘정의’를 공동체에 대한 ‘충직’이나 ‘애국심’과 결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안 그래도 인권에 대한 감각이나 타자에 대한 관용에조차 익숙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샌델의 개념은 공동체나 애국심을 강조하는 논리로, 국가를 신화화하는 논리로 도용되려 하고 있다. 샌델의 논의가 가질 수 있는 미덕은 잘려나가고 이 몇몇 개념들만이 자의적으로 남용될 때, 그 결과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강화, 또는 전체주의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8.때문에, 자신의 정의가 보편적 정의라고 외치며 정의의 이름으로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어떤 복지국가론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는 묻지 않고 현실에 존재하는 다수를 따르라는 말을 현실을 인정하라는 말로 바꿔치기하는 그 복지국가가, 합의를 실천하지 않고 합의를 종용하는 그 복지국가가, 과연 보편적 복지를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고 타박하는 복지국가가 민주주의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

만일 그 복지국가가 먹고사니즘을 내세우며 FTA를 밀어붙이고 삼성공화국을 연장시키는 국가라면, 새만금 간척지에 골프장을 세우는 것이 사회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국가라면, 나는 그 복지국가 절대 반대다. 머나먼 아프리카의 어린이를 돕느라 자기 자식들의 눈물은 훔쳐 주지 않는 어머니가 제대로 된 어머니 맞냐는 샌델의 논의를 착실하게 따라, 해외 파병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복지국가라면 나는 반대다.

자본에 친절한 국가와 벌거벗은 존재[썩은 뿌리 자르기]

박종성(건국대학교 강사)

우리는 자본의 운동을 원활히 진행시키고자 여러 장치들을 고안하는 국가가 벌거벗은 자들로 배제시키고 있는 존재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생존은 자본의 운동에서 야생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고용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실업자의 증대, 사회보장의 축소, 생존권의 와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경쟁의 원리로 방치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에서 드러나는 혼란을 제압하기 위해서 국가는 강권적인 태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가는 자본의 운동을 통해 부의 사유화를 지향하며 폭력의 조직화를 실현시키 나가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원리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현실에서 국가의 폭력성은 감소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다시금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현재의 국가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라는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기존의 국가관에 대한 고찰을 동반한다.

‘국가란 도대체 무엇인가?’ ‘국가’ 그 자체는 눈으로 보거나 만질 수 없는 비가시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국가가 비가시적인 존재라고해서 국가를 무시할 수는 없다. 국가라는 고유의 존재성은 “폭력과 관련된 운동”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 국민국가가 추구하는 보편성은 동일성에 근거한 배제와 맞닿아 있다. 주민 전체의 동일성에 의해 국가의 폭력이 규범화되는 국민국가 형태에서는 폭력이 독선과 광신으로 귀결될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주장들은 동일성에 근거한 배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G20회의장 무슬림 접근금지”, “동남아 마약상 같은 연예인” , “주요 20개국(G20) 회의장 반경 2㎞ 이내에 무슬림 애들 접근금지시켜야 한다. 혹시나 모를 테러를 대비해서 접근시 전원 사살해버려라.” , “외국 여자와의 국제결혼을 부추겨서 농촌에는 혼혈아들이 엄청나게 태어나고 있고, 이것은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에이즈나 성병 등의 정보가 전혀 없다. 이들은 범법자다. 체류 외국인으로서 기본적인 체류의 법을 어긴 준법정신의 기초가 심히 의심스러운 자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해 10월 한달 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인터넷 공개 블로그, 이미지, 댓글, 동영상 등을 모니터링한 결과이다. 이러한 사실 중에 모두 210건의 인종차별 사례를 수집했다고 5월 9일 밝혔다.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인권위는 법무부 장관에게 인터넷상의 인종차별적 표현을 개선하는 방안을 포함할 것을 권고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사회 의장에게는 인터넷상으로 인종차별을 하거나 이를 조장하는 표현물이 유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을 표명했다고 한다. 또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07년 민족 단일성을 강조하는 것이 서로 다른 민족 간의 이해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우리 정부에 대해 교육·문화·정보 등의 분야에서 이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고 한다.

국민국가는 탄생/혈통을 내세워 국가의 구성원을 주장한다. 이것은 사람들을 동일화(identify)하는 인종주의와 관계 맺는다. 그런데 인종주의는 생물학적인 종으로서의 혈통뿐만 아니라 도덕, 신앙, 근면함, 범죄율의 높고 낮음, 문명이나 야만의 정도 등을 포함하는 문화적인 혈통도 포함한다. 인종주의는 민족주의보다 넓은 의미이다. 민족주의는 인종주의를 통해 민족적 동일성을 확립하는데 바로 여기에 배제의 제도화가 존재한다. 국민과 외국인이라는 차이가 확인되는 것은 동일성이 구축되는 방식에 있는 것이다. 동일화의 과정은 차별화의 과정에 선행한다. 다시 말해 국민 공동체 밖에 존재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가혹한 폭력을 자행하게 된다. 국민국가에서 평등주의는 국적이나 국민성이라는 특정한 동일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결국 보편적 인권의 개념에 저항한다. 보편적 인권 개념은 국가로의 귀속없이, 특정한 동일성을 가지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낭시에르가 말하는 ‘아무개와 아무개의 평등’, 즉 ‘근원적 평등 개념’이 현실적으로 요청되어야함을 의미한다.

민족/혈통에서 동일성에 의한 배제의 원리는 비단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국가의 관계에서 국가는 자본에 친절한 국가의 성격으로 확장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는 이러한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다시 말해 국가는 자본의 운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벌거벗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본의 흐름을 보장하는 전제가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6월 12일로 158일째 농성을 진행 중인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투쟁이 바로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동일성에 의한 배제의 논리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가 안에 살면서 국가에 속하지 않고 배제된 존재들은 공동체의 외부로 밀려나게 되었다. 12일 오후 4시 40분경 빈민촌인 포이동266번지(개포동1266번지)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7시간 만에 불은 진화되었고 96가구 중 74가구가 전소했다. 이곳은 1981년 정부가 도시 빈민을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강제이주시키면서 형성된 빈민촌이라고 한다. 불법점유자가 된 주민들은 주민등록까지 말살당했고 지난 2009년 강남구청은 주민등록을 인정하고 현 주소지를 인정했다고 한다. 유성기업지회(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의 ‘주간연속2교대제 및 월급제 쟁취’를 위하여주간조가 2시간 부분파업을 하였다. 13일 현재 회사는 27일째 ‘공격적 직장폐쇄’를 했다. 파업 후 7일만에 경찰병력이 투입해 전부 연행했고, 노동조합의 지회장과 쟁의부장이 구속된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와 자본주의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사회복지와 생존권을 방치하는 국가의 형태는 자본의 축적을 쉽게 하기 위하여 자본 운동의 주도성을 강조한다. 결국 자본주의 실현의 모델은 고용 보호,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는 국가 형태, 즉 작게 보이는 국가는 자본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를 가혹한 폭력으로 제거해 나간다. 따라서 작게 보이는 국가는 가장 억압적인 국가일 수 있는 것이다. 소위 세계화라는 현실에서 국가의 쇠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의 세계적인 운동 속에서 국가는 복지정책을 포기하는 모델로 전화되고 있다. 이러한 모델은 우리의 현실과도 그대로 일치하는 현상이다. 국가라는 단일성, 동일성 속에 들어오지 않는 불법체류자들의 삶 또한 동일성의 배제 논리가 적용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국가가 공공부문에서 퇴각하는 것을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탈출로 파악하여 국가의 힘이 약해지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구보씨 여전히 소통을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 생각 12]

문성원(부산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구보씨가 이런 말을 처음 들은 건 대학교 때였다. 항상 재기가 넘치던 한 선배로부터였다.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어느 쪽에 속할까를 짚어보기 마련이다. 모든 걸 둘로 나누어본다는 건, 얼핏 생각하기에도 단순하고 마땅찮은 특성이다. 양분법이나 흑백논리처럼 좋지 못한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나는 둘로 나누어 보는 쪽이 아니란 말이야’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즉시 함정에 걸려들고 만다. 나는 둘로 나누는 보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사람을 양분하여 보는 사고방식을 전제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사실 이건 배중률(排中律)이라는 논리적 법칙을 활용한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A이거나 A가 아닌 것이지 이도저도 아닌 그 중간은 없다는 게 배중률이다. 이 A의 자리에는 어떤 것이 들어가도 괜찮다. 예컨대 모든 사람은 쥐를 닮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진다고 해 보자. 이것 역시 참인 진술이 되지 않는가.

물론, 쥐를 닮은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 있는 한에서 그렇다. 또 모든 사람이 쥐를 닮은 사람은 아닌 한에서 그렇다. 사람은 모든 걸 세 가지로 나누어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세 가지로 나누어 보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 있고 또 모든 사람이 다 사물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보지 않는다면, 그 진술은 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종류가 있다는 말에는 그런 단서가 없어도 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이미 사람을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으로서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의 예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짓말쟁이 역설의 반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누가 말한다면 그런 말은 자기 배반적이 된다. 말한 사람도 사람이고 그래서 거짓말쟁이에 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상에는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의 예가 됨으로써 적어도 반쯤은 자기 말을 확증하는 셈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사물을 둘로 나누어 본다면 이 말은 거짓이 된다. 그런 경우엔 세상에는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한 종류의 사람만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럴 리야 있겠는가?

사실, 이 말은 이 말을 듣는 사람이 자신은 양분법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나머지 한 종류의 사례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런 다음, 자신이 양분법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 자체가 양분법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서 듣는 사람에게 머쓱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게 이 말의 전략이고 재미다. 배중률을 빠져나가기 어려운 것처럼, 이 말이 숨겨 놓은 함정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실제로 우리는 둘로 나누어 보는 사고에 익숙하다. 일단 세상은 나와 내가 아닌 것으로 나눠져 있지 않은가. 게다가 내가 아닌 것도 내게 좋은 것과 내게 나쁜 것, 내게 유리할 것과 내게 불리한 것으로 나눠진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흐리멍덩한 것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도 집중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 그렇지,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면 도리 없이 내게 좋은 것과 나쁜 것 가운데 한쪽에 속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사는 내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 두 가지로 나눠지기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게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어 보는 사고방식은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이런 물음에 대해 바로 나쁜 것이라고 대답하면 또 다시 함정에 걸려든다. 그런 대답 자체가 이미 모든 걸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어보는 ‘나쁜’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분법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경우도 있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모든 걸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양분하여 보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적응의 산물이다. 자연적 삶 속에서는 어떤 것이 나에게 위험한 것인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재빨리 판단하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다. 새로 나타난 놈이 먹이인지 천적인지 친구인지 적인지를 분간하지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순식간에 당해서 거꾸러지기 십상이다.

세상에 어디 나쁘기만 한 것이 있겠는가. 또 어디 좋기만 한 것이 있겠는가.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이 있고, 나쁜 면이 있으면 좋은 면도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여유 있는 상황에서나 부릴 수 있는 사치다. 야생의 삶에서는 빠른 판단과 빠른 대처가 생존을 좌우한다. 인류는 그 진화적 됨됨이가 형성되는 긴 시간을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야생이 아닌 문명 세계다. 여기서는 원초적인 이분법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오랜 기간에 걸쳐 마련된 우리의 성향은 쉽게 지워지거나 통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자. 한 번 내게 피해를 준 사람은 보통 미워하거나 피하게 된다. 아, 그때는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었고, 실은 저 사람에게도 괜찮은 면이 많아.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한번 구겨진 감정과 마음은 쉽게 펴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마음은 당사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그 사람과 닮거나 유사한 특징을 지닌 사람들에게까지 연장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건, 어떤 면에선 유용한 반응 양태다. 솥뚜껑을 자라로 오인한 건 우스운 꼴일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그게 솥뚜껑이 아니라 자라였다면 어찌 하겠는가. 일단 경계하고 주의해서 열 번 오인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못해 한 번 물리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단, 이건 솥뚜껑처럼 숨어 있는 자라가 그렇게 드물지 않은 환경에서의 얘기다.

자라를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둥그런 물건만 봐도 깜짝깜짝 놀란다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이런 증상이 심할 경우엔 교정이나 치료가 필요하다. 심각한 충격이나 피해를 당한 사람은 그런 일이 마음에 남긴 상흔을, 이른바 트라우마를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아픈 기억과 관련된 즉각적인 반응이 이유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가 놓인 상황과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직접적인 마음의 움직임이나 감정을 조절하려고 애쓴다. 감정적으로는 아직 개운치 않은 상대에게도 짐짓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고 심정의 쏠림에 휘둘리지 않고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평가하려고 자세를 다잡는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거의 본능적인 양분법을 극복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도 우리는 양분법이 지배하는 현상을 쉽게 목도하곤 한다. 인터넷만 열어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사안에는 대개 호오(好惡)의 입장이 선명한 댓글들이 달린다. 소위 악플들에는 노골적인 혐오나 증오의 감정들이 드러나고, 내편과 상대편이 전쟁터에서처럼 갈린다.

이것은 진화의 과정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잔재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일찍이 초기 포유류에서 물려받은 변연계(邊緣系)의 감정 회로를 신피질(新皮質)의 이성적 계산이 통제하지 못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서용선, TV토론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구보씨는 어제 TV에서 본 토론을 생각해 본다. 으레 그렇듯 그 토론에도 말 잘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최고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고 대부분이 대학 교수다. 대뇌 전두엽의 잘 발달된 신피질을 훌륭히 활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의견이 선명하게 갈린다. 그래서 세상에는 다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상하게 양분법을 사용하는 사람과 투박하게 양분법을 사용하는 사람. 도대체 왜일까?

“구보야,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물어볼 만한 걸 물어보는 사람과 물어볼 만하지 않은 걸 물어보는 사람. 너 같은 철학자가 어디에 속하는지는 안 물어봐도 잘 알겠지?”

드디어 Y가 이죽거린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다. 손톱으로 할퀴는 여자와 말로 할퀴는 여자. 아니, 한 종류가 더 있다. 손톱으로도 할퀴고 말로도 할퀴는 여자. Y는 자신이 어느 편에 속하는지 알고 있을까?

“하지만 Y야, 그런 걸 궁금해 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야. 또 철학자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난 나름대로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는데, 마치 쓸데없는 걸 물어본다는 식으로 그렇게 무시하려 들면 곤란하다구.”

“엥, 진지하게 묻는 거라구? 설마… 나도 교수나 언론인 같은 지식인들을 많이 만나 봐서 알지만, 그네들이라고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건 전혀 아니거든. 문제는 자연이냐 문명이냐가 아니라, 또 감정이냐 이성이냐가 아니라, 이해관계라구. 그건 맑스 이래 상식이잖아. 네 얘길 듣고 있다 보면 이렇게 뻔한 사실이 사라지고 지엽적이거나 부수적인 게 중요한 문제처럼 등장해. 그게 바로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수법 아냐? 구보 너처럼 스스로는 미처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알량한 논리나 지식이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치장해야 너네들의 존립 기반이 마련되지 않겠어? 하지만 봐.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쉽게 말을 바꾸고 논리를 뒤집어 가며 자신의 이익을 쫓아갔는지를. 그러니까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거야. 이해관계를 쫓는 보통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척 하면서 역시 이해관계를 쫓는 지식인 나부랭이들.”

“어, Y야, 너 오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왜, 무슨 일 있었으면 좋겠어?”

“네 말 하는 폼새가 좀 이상하잖아. 지식인 나부랭이라니…”

“그럼, 아니야?”

“Y야,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대화하자는 게 아니라 싸우자는 거라구. 감정이 실려 있는 말이잖아. 그래가지구는 소통이 안 돼. 기껏해야 자기만족적인 화풀이인 거지. 거기서 어떤 생산적인 결과가 나오겠어?”

“에그, 또 소통이야? 구보야, 너야말로 참 이상하다. 소통을 내세우는 게 무슨 만병통친 줄 아니? 고상하게 웃는 낯으로 얘기해도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많고, 침묵하거나 화내는 게 소통의 효과적인 방편일 때도 있어. 그러니까 구보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소통이 있는 거야. 소통을 떠들지만 진짜 소통엔 관심이 없는, 무지하거나 교활한 가짜 소통과, 소통이라는 정해진 틀에 매이지 않고 감정이나 생각을 나누는 진짜 소통. 고상한 가짜와 투박한 진짜. 구보야, 너는 어느 쪽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