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이현재(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사랑, 배신 그리고 자살

송지선 아나운서의 투신자살이 5월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죽음을 두고 언론이 문제네, 악성댓글이 문제네, 우울증이 문제네, 야구선수 임태훈이 문제네 등등 말들이 많았다.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였을까? 자살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결과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일기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는 사실은 송지선에게 임태훈은 함께 한 사랑에 책임질 줄 모르는 혹은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송지선은 그가 그녀를 배신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의 예의 없는 태도에 상처를 받았다.

작고한 탤런트 최진실 역시 애정 관계에서 비롯된 배신감 때문에 자살을 했다. 결혼한 지 몇 년도 되지 않아 조성민은 자신의 사랑이 식었음을 전했고 그의 사랑을 철석같이 믿었던 최진실은 절망의 나락에 빠지게 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사랑의 실패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지 않다. 경제적 파탄의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만큼이나 사랑의 실패로 인해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살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애정의 문제로 슬픔에 잠기고 오랜 시간을 절망과 한탄 속에 ‘죽은 듯’ 혹은 ‘죽지 못해’ 살아간다. 평생 동안 바람피운 아버지를 원망하고 울분을 토했던 우리 엄마에서부터 실연의 고통에 몸부림치다 결국 자리에 누워버린 내 친구까지.

이러한 사건을 두고 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누가 잘못을 했는가. 원인이 무엇인가, 뭐 이런 것이 아니다. 사건의 진실이나 원인은 경찰이나 기자들이 더 잘 파헤쳐 줄 수 있고, 누가 얼마만큼 잘못을 했는가는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 시점에서 답이 제대로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왜 이들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강행하게 되었는가이다. 사랑의 실패는 왜 죽음까지도 불사하게 만드는가? 왜 그러한 사건은 삶의 의미와 생동감을 일거에 빼앗아 가는가?

나의 경험과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대화를 반추해 볼 때 배신은 언제나 심리적 자존감의 파괴와 관련되어 있었다. 평생 바람을 피웠던 아버지를 향해 우리 엄마가 항상 했던 말은 “나를 어떻게 보고!”였고, 자신의 애인이 동거하는 여자 친구에 대해 숨겨왔음을 나중에 알게 된 한 학생은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고 괴로워했으며, 천청벽력과 같이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받은 내 친구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고 호소했다. 그렇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내 존재 전체, 나의 자존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건이다. 배신을 당한다는 것은 내 존재 자체가 거절되는 느낌이다.

사랑이 무엇이기에?

그렇다면 왜 사랑은 이렇게 존재 전체와 관련된 사건이 되는 것인가? 사랑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당사자의 존재를 뒤흔들고 삶의 의미마저 잃게 만드는가? 최근에 내가 본 한 권의 심리 에세이는 헤어짐이나 배신을 내 존재 자체가 거부되는 사건으로 보지 말 것을 권고한다. 자존심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아니 그럴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서 나는 우선 사랑이 무엇인가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사랑을 “인정(recognition)”관계로 설명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뿐 아니라 연인, 친구 간의 사랑은 모두 내가 너를 그리고 네가 나를 구체적인 욕구를 가진 존재로 배려하고 정서적인 지지를 보낸다는 의미에서 인정의 행위라는 것이다. 호네트는 사랑이라는 인정관계를 두 사람의 절대적 합일상태로만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 속에서 두 사람은 독립된 개체로 분리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절대적 공생기를 지나 상대적 공생기에 아이는 엄마를 환상 속에서 파괴한다. 그러나 아이의 파괴행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곁에 남아 아이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계속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환상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머니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고 이러한 독립된 어머니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정서적 합일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호네트는 제시카 벤자민을 인용해 사랑을 “자기주장과 타자 인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정행위로서의 사랑이 실패할 때 왜 우리는 존재 전체가 뒤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가? 그것은 바로 사랑의 실패와 더불어 우리는 사랑을 통해 획득한 자신감(Selbstvertraun)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자의 사랑을 통해 나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욕구가 배려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이와 함께 자신이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된다. 즉 우리는 구체적 타자에 의한 정서적 인정의 경험을 통하여 나의 구체적인 존재가 가치있음을 확인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타자의 정서적 인정, 즉 사랑이 철회될 때 우리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훼손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사랑의 실패는 특별한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실패는 내 자존심과 자신감을 뒤흔든다.

이러한 존재의 상실감이 더욱 절망적인 것은 사랑이 바로 구체적이고 특별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수행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심리학 에세이는 또한 이번에 사랑이 가면 아주 사랑이 안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하고 권고한다. 사랑의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에게 이런 말들은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의 실패를 통해 잃게 되는 것은 구체적인 사람과의 특수한 관계 속에서 형성한 특별한 자신감과 자손심이기 때문이다. 물론 또 다른 사랑은 올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바로 그 사람과의 사랑, 그 사람의 정서적 인정, 그 사람을 통해 형성된 나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통해 대체될 수 없다. 사랑이 끝나면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을 지우고 추억이 될 만한 물건들을 버리는 이유는 그 사람과의 사랑을 통해 형성했던 그 특별한 나를 지우기 위해서이다. 그런 나의 존재는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통해 대체될 수 없기 때문에.

이렇듯 사랑의 실패가 존재 전체를 뒤흔드는 것은 사랑이 나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구성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실패가 지독하게 절망적인 것은 그것이 대체될 수 없는 사람과 만들어낸 구체적이고 특별한 나의 존재의 의미를 한 순간에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그토록 의미를 부여했던 나 자신이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는 생각, 자존심이 한 순간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든다.

참을 수 없는 사랑의 무거움

현대 사회에서 사랑은 가볍게 수행된다. 예전과 달리 사람들은 쉽게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은 그리고 사랑의 실패는 참을 수 없이 무겁다. 사랑이 깊을수록, 이별이 극단적일수록 사람들은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것은 개인의 특수한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뒤흔든다. 이런 의미에서 호네트 역시 정서적 인정이 되지 못하는 상태가 윤리적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이다. 호네트는 아쉽게도 사랑이라는 인정형식이 구체적인 개인들 간의 특수한 관계라는 점에서 보편적인 윤리의 문제로 확장될 수 없다고 본다. 개인적인 관계는 보편적 학문의 담론이 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호네트의 생각일 뿐이 아니다. 여전히 많은 학자들은 사랑이 학적 가치를 갖지 않는 에세이나 다룰 수 있는 주제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학문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는 사랑의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생각, 나아가 감정에는 어떤 윤리적 잣대도 들이댈 수 없다는 생각이 어떤 끔직한 풍경을 만들어 냈는가? 우리는 방금 전까지도 사랑했던 사람을 내팽개치고 거리와 공론의 장으로 나와 사회를 비판하고 사회정의를 부르짖는다. 그가 혹은 그녀가 죽어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건 당사자가 겪어 내야할 개인적인 일이니까. 그래서 사회비판과 혁명에는 피의 냄새가 나는 것일까?

나는 누구일까? 내 인생길 (1)[치유시학]

?

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거울

인간에게는 부끄러움이 있고, 이 부끄러움 때문에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영원히 감추어 두어야 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라면 삶은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 자신의 실상이 자신에 의해 가려져 스스로 소외될 때 우리는 기억 속에서 위안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그 기억이 쓰라린 경험과 함께 떠오를 때 위안은 문을 닫거나 눈을 감는다. 이러한 의지와 관계없이 고통스러운 기억은 모습을 달리하여 우리의 삶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며, 마음 속 옹이를 단단하고 크게 키운다. 비록 그 옹이가 나의 고통이고 나의 삶을 잠식하는 것일지라도 그 상처를 잡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을 잡고 있어야 나의 삶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옹이는 작은 방 곳곳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초여름인데도 두꺼운 커튼이 작은 창문을 반쯤 가리고 있었고, 방안 그 어디에도 사진이 없었다. 사진이 없는 작은 방, 과거와 단절된 채 현재의 시간만 있는 그 방이 할머니의 옹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화장품과 약병이 놓인 화장대의 거울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 큰 거울 앞에서 할머니는 아마도 비켜가는 시선으로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거울 앞에서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스스로를 비켜갔던 것일까. 그런 사이 옹이는 죽음처럼 단단하게 여물었을 것이다.

한하운 시인은 시 <자화상(自畵像)>에서 “한 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한 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얼굴은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모습이다. “지나는 거리마다 쇼윈도 유리창마다/얼른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이기에 그의 자화상은 옹이처럼 굳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일상에 언뜻 언뜻 비치는 모습은 한센병 이전의 처녀 적 고운 모습 그대로였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할머니의 손은 머리카락을 뒤로 단정하게 쓸어 넘기고 있었다. 방안에 앉아 있으면서 치맛자락을 가지런하게 펼치기를 반복하고, 81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리를 펴고 있었다.

“피부가 참 고우셔요.”라는 나의 말에 할머니는 턱짓으로 화장대를 가리켰다. “저거 좀 비싸게 주고 샀다. 저번에 화장품 아지메가 와서 새로 나온 건데 좋다 카더라.” 화장대 위에는 요즘 드라마 전?후의 광고에 나오는 화장품 병이 세 개 놓여 있었다. 수줍게 웃을 때나 나의 이야기에 크게 웃을 때도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 고와서 슬펐다.

 

눈물

할머니가 19살 때 한센병은 찾아왔다. 할머니는 명랑하고 친구와 노는 걸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학교수업 중에서도 체육시간이 가장 좋았다. 여름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문득 다리의 피부가 부옇게 보였다. 처음에는 때가 끼었나 싶어 문질러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날이 갈수록 다른 사람의 눈에도 띌 만큼 부옇게 변하며 건조해져 갔다.

“땀이 안 나더라. 다른 사람들은 덥다고 땀을 닦는데 나는 땀이 안 나. 그때는 몰랐지. 한참 지나서 땀이 안 난다는 걸 알았제.” 혹시나 했지만 단순한 피부병일 거라고, 곧 괜찮아질 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초여름인데도 계속 다리가 건조해서 어머니의 동백기름을 살짝 바르기도 해 보았지만, 나아지지 않고 얼굴까지 부옇게 느껴졌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체육 시간에 할머니는 혼자 그늘을 찾아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학교 가기가 싫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 날을 즐거워하며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짧은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을 뛰며

즐거워하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고통이 많고

내 앞에는 여러 가지 시련이 닥치나

절망에 싸였다.

<내 인생길> 부분.

할머니는 자작시 <내 인생길>을 천천히 읊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중간 중간 쉬어가며, 한숨을 크게 쉬며 나지막하게 들려주었다. 한센 병 이전의 할머니는 유일하게 종아리를 드러내고 마음껏 뛸 수 있는 체육시간을 매우 좋아하고 기다렸다. 종아리를 스치는 바람의 느낌도 좋았다. 하지만 남의 눈에 쉽게 띄는 종아리는 이제 감추어야 했다.

다리의 피부색이 변하기 전부터 얼굴과 몸이 붓고 손발에 힘이 없었다. 사랑에 빠졌던 할머니는 임신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머니는 한의원에 가기를 권했지만 임신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갈 수 없었다. 할머니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감추는 것뿐이었다.

고녀 시절에 할머니는 남자를 만났고, 그리고 고녀 졸업반일 때 임신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일본 순사 부장의 아들이었기에 드러내놓고 말할 처지도 못되었지만, 처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은 너무 부끄러워 감추어야 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지내는 위태로운 시간들이었지만 학교에 가는 것은 즐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발의 감각이 무뎌지고 눈썹이 눈에 띠게 빠졌다. 세수를 하고 얼굴의 물기를 닦은 후 수건에 묻어있는 눈썹을 떼어내면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졸업이 다가오자 모두 사진을 찍는다고 들떠 있었지만, 할머니는 불러오는 배로 인하여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방안에만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심한 백내장과 오랜 기간의 한센병 투병으로 동공의 색깔은 검은 색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눈물은 맑고 투명했다.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쓸어내리던 손, 오랜 시간을 홀로 눈물 닦았을 그 손은 뭉툭했다.

무너질 가슴이 남아 있었던가. 할머니는 안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손을 빼내어 치마 밑으로 감추었다. 할머니의 마음속 뜰은 텅 비어 있었다. 출입문 유리 너머로 보이는 마당에는 여름 햇살만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잡아주고자 하는 손마저 거부한 채 할머니의 눈물은 또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할머니의 감정이 살아있었음을 말한다. 60여 년 동안 누구에게도 열어서 보여주지 않았던 자기만의 뜰을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할머니의 외로움은 많은 사람들이 얽히고 설켜서 살아가는 곳이 세상인데, 그 곳에서 홀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불안에서 온 것이다.

우리는 ‘홀로 선 사람끼리 만나 둘(서정윤, <홀로서기>)’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가슴을 치며 울 수조차 없었던 할머니가 기대어 살아 갈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할머니는 임신을 하고, 또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한센병에 걸렸던 것이다.

 

슬픔

외롭다는 것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이 비어있음을 말한다. 김소월은 <산유화>에서 청산에 홀로 피어 있는 꽃의 외로움을 노래했다. 청산과 꽃 사이에는 저만치 거리가 있듯이 사람이 있는 세상과 할머니 사이에는 텅 빈 공간이 놓여 있어서 건너갈 수가 없었다.

몸의 이상과 불러오는 배를 누군가 알아볼까봐 방안에 숨어 지낼 때, 할머니에게 친구들은 가장 큰 위안이었다. 친구들은 거의 매일 찾아와 그날의 일들을 말해 주었고, 할머니와 마쓰시타 사이의 전령 역할을 해 주었다. 그때쯤 동네에는 할머니가 한센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친구들은 그 소문에 개의치 않았고, 할머니도 애써 부정했다.

소문은 점점 더 거세져서 언제나 학교를 마치면 할머니에게 와서 한 이불 밑에 같이 발을 넣고 어깨를 맞대며 웃고 장난치던 친구들이 하나 둘 찾아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온 친구는 방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밖에서 다시는 올 수 없다고 했다. 여기 온 걸 알면 부모님으로부터 크게 혼날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자기를 떠나갔던 친구들에 대하여 담담하게 말했다. “온 동네에 소문이 파다했제. 그래도 친구들은 살짝 나와서 나하고 이불 밑에서 다리를 포개기도 하고, 아들이가 딸이가 농담도 했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보고 니는 연애도 하고 좋겄다고 부러워했제. 갸들도 어쩔 수 없었는 기라.”

하지만 그 당시의 할머니는 친구나 동네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앞의 현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는 자신의 예감대로 한센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슬픔이 끝없이 밀려 왔다. 그 슬픔의 눈물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코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 이렇게 땅 위에는

모래알같이 많은 인간이 살고 있지만

내게는 나병이라는 걸 내립니까.

하나님도 원망하고 싶고

내 자신도 미워

차라리 이 땅 위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내 인생길> 부분.

할머니는 자신을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니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게 더 좋을 뻔’한 존재로 생각한다. 이러한 자기 존재의 부정은 자기의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게 한다. 뜻밖에 찾아 온 나병은 할머니의 삶을 죽음과 같은 어둠 속에 놓이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었기 때문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육체적인 질병에 의해 마음은 병들어도 삶은 지속된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절망에 빠지게도 하지만, 또 한편 자신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희망도 품게 한다. 이 때문에 눈물 속에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할머니는 나를 만났을 때, 자신이 살아 있음을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세상의 온갖 재앙과 슬픔이 쏟아져 나왔고,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희망이다. 인간은 불행 가운데서도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희망 때문에 더 절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희망이 있어서 고통을 견디기도 한다. 할머니에게 임신과 한센병은 더 할 수 없는 불행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자기만의 옹이를 진주로 키워내고 있었다.

??????????????

# 히게이아(Hygeia)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이는 흔히 의약과 치유의 신으로 알려진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us)와는 또 다른 치유의 신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이나 약으로 환자의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신이라면, 히게이아는 환자 자신의 자연치유력을 돌봐주고 길러주는 치유의 신입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치료의학의 수호신이라면, 히게이아는 간호학과 위생학의 수호천사로 불립니다. [히게이아의 시학]은, <e시대와 철학>과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서 바로 치유의 여신 히게이아의 정신을 계승하여, 문학 특히 시를 통해 환자의 삶과 소통하고 환자의 자기 치유를 유도하는 하나의 치유인문학이자 인문의학의 성격과 내용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의 말]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4)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4)

이정호(방송통신대 교수)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2. 아프로디테(2)

아프로디테의 힘이 erga gamoio 즉 성적인 결합과 관련한 일에서 분명하고도 위력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호메로스 찬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는 아프로디테를 찬양하는 노래가 2편 실려 있는데, 그 중 긴 쪽은 가장 오래된 작품군에 속하는 것으로서 일찍이 기원전 7세기 이오니아 지방에서 불렸다.

아무려나 제우스는 제멋대로 사랑의 불길을 일으키는 아프로디테에게 진절머리가 나 버렸다. 그래서 제우스는 감당하기 힘든 그러한 사랑의 불길을 아프로디테 스스로도 한번 겪어 보도록 그 자신, 이 여신이 하는 일에 손을 댄다. 제우스는 우선 이다(Ida)산에서 소를 방목하고 있는 안키세스(Anchises)에 대해 격렬한 연정을 품도록 그녀의 마음속에 사랑을 이식했다. 그래서 파포스에 있었던 아프로디테는 우아한 여신들로 하여금 자신을 목욕시키고 향유를 발라 아름답게 몸치장하게 한 후, 스스로 이다산으로 달려가 안키세스를 뇌쇄시켜 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아이네이아스를 낳는다. 그런데 아프로디테의 이다산행은 동물의 발정과 관련한 중요한 모티브와 묶여져 있다. 그녀가 이다산을 향해갈 때 늑대와 사자, 곰, 표범 등 산속에 있는 온갖 짐승들이 여신을 수행했는데, 여신은 그것을 아주 기뻐하여 그 짐승들에게 생식에의 충동을 불러 일으켰고 짐승들은 크게 발정하여 모두들 그늘 깊은 곳에 들어가 교미를 했다. 이런 연고로 아프로디테는 이다산의 대모신으로서 모든 동물들의 강대한 여주인(potnia t?r?n)이 된 것이다.

이 여신의 위세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뻗어 있는지는 아이스퀼로스의 작품 「탄원하는 여인들(Hiketides)」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아직 아르카익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그것을 토대로 성장한 시인이었던 만큼 그의 증언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가 3부작으로 계획한 작품 중 첫 편(나머지 두 편은 소실)에 해당하는 그 작품은 아이귑토스(Aigyptos)의 아들들의 난폭한 구혼을 피해 달아나는 다나오스(Danaos)의 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작중에서 시인은 여인들이 도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극의 전반부에서는 그 주된 이유가 구혼자들에 대한 딸들의 혐오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아예 결혼 자체를 피하려는 것이 그 이유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상은 위대한 생명력으로서의 아프로디테에 관한 사람들의 의견이 두 개로 나누어지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나오스의 딸들이 아르고스에 도착하자 시녀들이 마을 입구에서 그녀들을 맞이하고 다나오스는 다음과 같이 탄식하듯 퀴프리스(Kypris 아프로디테의 다른 이름)의 힘을 언급하고 있다.

 

과일도 다 익은 것은 자신을 지키기가 결코 쉽지 않다.

짐승들과 사람들이 건드리니까. 왜 안 그렇겠니?

즙이 많은 과일을 먹어 보라고 온갖 길짐승들과

날짐승들을 퀴프리스가 초청하여, 과일들이

그대로 남아 있지 못하도록 식욕을 돋우니 말이다.

(997-1002)

 

아이귑토스 구혼자들을 피해 도망가는 다나오스의 딸들(Danaiden, Jan Frans Deboever 작)

다나오스의 딸들은 강제로 결혼하게 되는 것을 변함없이 거부하고 있지만, 처녀신인 아르테미스에게 비호를 청하는 아래의 탄원 속에는 분명 결혼 자체에 대한 혐오가 포함되어 있다.

 

정결하신 아르테미스여, 굽어 살피소서

이 일행을 가련히 여기시어 퀴테레이아(Kythereia 아프로디테의 별칭)가

우리를 결혼침상에 들도록 강요하지 않게 해 주소서

차라리 이 고통이 죽음으로 끝나기를

(1030-33)

그러자 시녀들의 제2의 코러스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이것에 대답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퀴프리스를 생각하는 것이

즐거워요. 그녀는 헤라와 권세가 같고

제우스에 가장 가까워요. 변덕스런

여신이지만 그녀는 진지한 의식에 의해

경배를 받고 있어요. 동경,

무슨 요구를 하든 거절할 수 없는 설득이

사랑스런 어머니인 그녀와 함께 하지요.

아프로디테는 화합에게도, 사랑의 신들의

속삭임에도 역할을 주었지요

(1034-1042 이상 천병희 역 참고)

 

아프로디테가 건넨 마법의 띠를 두르고 제우스를 유혹하는 헤라 (작가 미상)

다나오스의 탄식과 달리 시녀들의 코러스는 반대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시녀들의 코러스는 남자와의 성적 결합을 여인의 궁극적 성취로 이끄는 아프로디테의 위세를 재현하는 것으로 결혼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아프로디테를 무시하는 휘브리스(Hybris)임을 일러준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스퀼로스가 3부작을 어떻게 끝맺음할 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3부작의 나머지 두 작품인「아이귑토스의 아들들」과 「다나오스의 딸들」은 전해지고 있지 않아 그 내용을 자세히는 알 수는 없지만, 일부 남아있는 몇 가지 단편들을 보면 최소한 그 결말의 윤곽정도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즉, 두 번째 작품인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에서는 딸들을 지키는 아르고스인과 그들을 추적하는 아이귑토스의 아들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 다나오스의 딸들은 그들과 마지못해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신혼 첫날밤 딸들은 다나오스의 명령에 따라 가증스러운 남편들을 살해하고 만다. 그러나 결혼에서 벗어나려는 그들의 행로가 이것으로 막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작품인 「다나오스의 딸들」에 이르면 이후 다나오스의 딸들은 모두 살인의 죄로 재판에 회부되는데 이 때 아프로디테가 나타나 그녀들을 도와주어 그녀들은 살인죄에서 벗어나지만, 그 후 그녀들은 결국 아프로디테에 의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결혼으로 다시 이끌리고 만다. 물론 남편을 죽인 다나오스의 딸들이 저승에 가서 독에 물을 채우는 벌을 받는다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결국 그녀들의 새로운 결혼이 이 3부작의 결말이라고 한다면 여전히 이 작품에서도 딸들의 하나같은 탄원에 아랑곳함이 없이 아프로디테의 위세가 전혀 흔들림 없이 완벽하게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이스퀼로스의 다른 작품 「결박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desmotes)」를 보면(865) 다나오스의 딸 중 휘페르메스트라(Hypermestra)만은 다른 딸과 달리 다나오스의 명령을 거역하여 남편을 살해하지 않은 죄로 별도의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때에도 사랑(himeros)을 위해 살해를 거부한 휘페르메스트라를 적극 비호하는 과정에서 아프로디테의 위세가 드러난다. 현재 남아 있는 단편(fr. 44 N)을 보고 있노라면 아마도 아프로디테 여신은 휘페르메스트라의 행동을 하늘과 대지의 결합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우주적 사랑(Eros)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아프로디테는 그 자리에서 휘페르메스트라를 비호하며 만물을 정복하는 사랑의 힘을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신성한 하늘은 대지와 가까이 사랑하기를 갈망하여

결혼의 서약을 맺고 대지를 취할 수 있었다.

가로 놓인 하늘에서 큰 비가 쏟아져,

대지는 만물을 잉태하여 인간들을 위해

양이 먹는 풀과 데메테르가 지배하는 풍부한 곡물을 낳는다.

또 과일나무 열매들도 구름과 비가 인연을 맺어

영근 것들. 그 모든 것들 가운데 나 파라이티아(paraitia)가 있다

(단편 44 N)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아프로디테가 자신을 paraitia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paratia는 ‘원인이되 한 쪽을 맡고 있는 원인’이라는 의미이다. 그녀에게 결코 ‘전적으로 독자적인 원인’을 의미하는 panaitia라는 이름이 붙여질 수는 없다. 그 말은 제우스에게 사용될 수 있는 말이고(「아가멤논」1486행), 굳이 사랑과 관련한 경우라면 에로스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이것은 아프로디테의 위세가 비록 드높긴 해도 전적으로 주도적일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아프로디테는 위대한 생성을 이끄는 에로스의 공동 참가자로서 그녀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성적 결합을 통해 쾌락과 희열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들의 “신성한 결혼”(hieros gamos)에 담겨 있는 아프로디테적 의미를 간단히 음미해보기로 하자. 하늘과 대지의 신성한 결혼은 오랜 역사에 걸쳐 널리 알려진 신화이다. 에우리피데스가 그 없어진 비극 「크뤼십포스(Chrysippos)」에서 성스러운 결혼의 관념을 채택할 때, 그것은 꽤 독단적이긴 하지만 교훈적으로 들린다.

 

위대한 힘을 가진 대지(Gaia)와 제우스의 하늘(Ait?r)

하늘은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

대지는 부슬부슬 방울져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아들여 가사적인 것들을 낳는다,

목장의 풀들과 여러 종의 짐승들을.

(단편839N)

 

이러한 “신성한 결혼”의 관념은 로마의 시인 웨르길리우스(Vergilius)의 「농경시(Georgica)」에서도 보여진다.

 

그 때,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은 열매를 맺게 하는 비와 함께

기쁨을 가득 채운 아내인 대지의 품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커다란 하늘은 광대한 대지의 몸과 결합하여 모든 생물을 낳아 길렀다.

이후 길이 없을 정도로 초목이 번성하고, 새들의 노랫소리 울려 퍼져

번식기에는 소 떼가 짝 짖기에 여념이 없고

밭에서는 곡식이 영근다.

(2.325-31)

 

또 아이헨도르프(Eichendorff)의 시에서도 신성한 결혼에 대한 태고적 신앙의 시적 여운이 가득 담겨 있다.

 

마치 하늘이 대지에

살짝 입맞춤을 하듯이

대지 또한 꽃그늘 옅은 햇살 속에서

마냥 하늘을 꿈꾸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호메로스의 시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이오니아풍으로 쓰여져 있다. 그의 시 가운데 지금까지 언급해온 종류의 관념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비록 “신성한 결혼”은 아닐지라도 가장 위대한 신들이 나눈 사랑의 한 때를 그린 장면이 몇 개 남아 있다. 헤라가 아프로디테에게 부탁하여 마법의 띠(kestos himas)를 받은 후, 헤라가 벌이고 있는 「일리아스」제14권의 장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곳에서 헤라는 자신의 계략대로 침대에 누워 제우스의 팔에 안겨 있는데, 그 때 대지와 하늘이 두 위대한 신의 성적 결합에 참가하여 마치 그들의 신성한 결혼을 보여 주는듯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자 그들 밑에서 신성한 대지가 이슬을 머금은 클로버며

크로커스며 히야신스 같은 싱그러운 새 풀들을 두껍고 부드럽게

돋아나게 하니 이것이 그들을 땅 위로 높이 들어 올려주었다

그 속에 그들이 누워 아름다운 황금 구름을 두르니

그 구름에서 반짝이는 이슬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347-51. 천병희 역 참고)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크로노스 ( Palazzo vecchio ? Florence 소장 )

시인은 하늘과 대지의 결합이라고 하는 오래된 관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신들의 목가적인 사랑의 한 때를 위와 같이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아프로디테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주 생성에 관한 신화를 잠간 언급했는데 그 때 가이아(Gaia, 대지)와 우라노스(Ouranos, 하늘)의 결합은 우주 생성 이래 최초의 ‘신성한 결혼’답게 그에 상응하는 극렬한 성적 결합의 면모를 보여준다. 우라노스는 에로스의 힘을 얻어 너무도 열렬하게 가이아 온 몸을 한 치도 남김없이 꼭 맞게 덮치듯 끌어안고 있어서, 가이아는 우라노스에 가려 햇살 한 가닥조차 접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 또한 지상에 나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채 모두 가이아 속에 묻혀 지내야했다. 그래서 누군가 그들을 떼어내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피조물이 성장할 수 있도록 빛과 공간을 되돌려 주는 것이 필요했다. 결국 가이아는 숨 막힐 듯한 괴로움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스스로 회색의 쇳물을 내서 그것으로 갈고리형 둥근 낫(harp?)을 만들어 자식인 크로노스(Kronos 시간)로 하여금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절단하게 만든다. 이로써 하늘과 땅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이른바 최초의 세상이 열린다. 그러나 크로노스는 아버지를 위해한 자신에게 미칠 후환이 두려워 자식들을 모두 삼켜버렸고 그 바람에 빛과 공간은 다시 열렸으나 아직 신들의 삶의 터전과 세상의 질서는 생겨날 수 가 없었다. 그러자 마침내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가 어머니 레아의 도움을 받아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형제들을 구해 비로소 올림포스 신들의 세계, 최초의 질서를 창조해낸다.

그런데 대지가 하늘에서 풀려나고 올륌포스 주신들에 의해 최초의 세상, 최초의 질서가 확립되어 가는 그 시간, 잘려진 우라노스의 생식기는 바다를 떠돌다가 퀴프로스섬에 이르러 그 불사의 살점에서 거품이 생기면서 아프로디테를 탄생시킨다. 우라노스의 거세를 통해 열린 세상에 아프로디테가 우라노스의 분신이자 자식으로 태어나 마치 복수라도 하듯이 그 이후에 태어난 신들의 자손 모두에게 떨쳐버릴 수 없는 관능의 씨앗을 심어 놓는 순간이다. 인간의 관능적 사랑이 갖는 희열과 멍에, 생식과 파멸의 뿌리 깊은 이중성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그리스인의 사랑 중 “소년사랑”을 주제로 다음에 계속)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3)

번역자 : 김남우 (정암학당)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공로임을 입증하고 난 이후 우신은 철학자들의 예상되는 반론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학문은 인류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기왕의 여러 학문들 가운데 여러 사람들로부터 가장 환영받는 학문은 인류의 본성에 제일 가까운 것인 바, 어리석음에 제일 가까운 것들이다.]

이쯤 되면 철학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어리석음을 부여잡고 깨닫지 못하고 잘못 알고 속으며 무지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입니다. 철학자들이 왜 이것을 불행이라고 부르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양육되고 그렇게 가르쳐졌으니, 이것은 모두의 공통된 처지입니다. 새처럼 날지 못하기 때문에, 여타 가축들처럼 네 발로 걷지 못하기 때문에, 황소처럼 뿔로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가 불행다고 말한다면 모를까, 인류에게 주어진 본성을 불행하다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식의 논리라면 아름답긴 하지만 문법을 모르며 과자를 즐길 수 없기 때문에 말은 불행하다, 씨름에 도움이 못되기 때문에 황소는 불행하다 할 것입니다. 말의 입장에서 문법을 모른다고 해서 전혀 불행할 것이 없는 것처럼, 인간의 입장에서 어리석음은 하등 불행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천품인 까닭입니다.

그런데도 입씨름에 달통한 그들은 주작부언, 인간에게는 특별히 학문적 능력이 주어졌으며, 이에 힘입어 자연이 부여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쟁취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연이 모기는 물론이려니와 들풀과 들꽃을 만들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렸건만 유독 인간을 만들 차례에는 졸다 실수하여 결국 인간에게 학문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그들은 마치 이를 사태의 진상인 양 설레발칩니다. 하지만 학문은 인류에게 분노한 신 테우트에 의해 만들어져 결국 인간들에게 끔찍한 파멸을 초래하였을 뿐 행복에 기여한 바가 없는 물건이며,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어떤 현명한 왕이 솜씨 있게도 글자의 발명에 반대하였던 것처럼, 행복을 위해 발명되었다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학문은 인간 삶을 좀먹으며 기어 다니는 여러 병폐들 가운데 하나인데, 인간에게 모든 해악을 초래한 못된 정령들이 또한 학문을 창출하였는바, 못된 정령을 가리키는 희랍어 ‘다이몬’은 ‘현자’를 의미합니다. 어떤 학문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만 자연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시절, 그 소박했던 때를 황금시대라 하겠습니다. 당시 모두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의사소통 말고는 언어로 달리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던 때에 도대체 문법학이 왜 필요했겠습니까? 서로 의견을 달리하여 다툴 일이 없던 때에 도대체 논리학은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누구도 타인과 협상을 벌일 문제가 없던 때에 수사학은 무슨 아랑곳이며, 진정 부도덕이 존재하고야 이를 다스릴 선량한 법률이 생겨나는 법이거늘 하물며 법학은 있었겠습니까? 당시 사람들은 경건하였기로 불경한 호기심에 이끌려 자연의 비밀을, 천문의 조화와 운동과 영향을, 사물의 숨겨진 원리를 찾아낼 엄두도 내지 않았으며, 필멸의 인간이 주제에 걸맞지 않게 현명해지려고 하는 것은 저주받을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늘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묻는 탐구의 광기가 아직 마음속에 자리 잡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황금시대의 순수함이 사라져 감에 따라 내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못된 정령들이 학문을 만들어 냈으나, 처음에는 학문 분야는 많지 않았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를 배웠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뷜로니아 사람들의 점성술과 희랍 사람들의 백해무익한 경박함이 이를 600여개로 늘려 인생이 짊어진 십자가의 형벌만을 보태어 놓았습니다. 실제 문법 하나만으로도 인간에게 끊임없이 가해지는 형극의 고통은 충분하고도 넘치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이런 학문들 가운데 그래도 가능한 한 대중적 상식에 접근한 것일수록, 그러니까 어리석음에 가까운 것일수록 더욱 큰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하여 신학자들은 밥벌이가 없어 굶주리며, 과학자들은 추위에 떨며, 천문학자들은 남우세를 받으며, 논리학자들은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 오로지 의사만이 만군 (萬軍)의 가치를 누립니다.1) 더욱이 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무식하고 무모하며 경솔할수록 명성이 높으며, 훈장을 단 고관대작들조차 그에게 큼직한 명예를 수여합니다. 오늘날 어중이떠중이 아무나 펼쳐 보이는 의학이란 수사학과 다를 바 없는 아첨술의 작은 분과에 지나지 않습니다.2)

두 번째 자리는 법률가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만, 어찌 보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도 남습니다. 법률가라는 직업은, 철학자들이 대개 동의하여 조롱하는 것처럼, 이런 말을 내 입에 올리긴 싫지만, 멍청한 당나귀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당나귀들의 처결에 따라 크고 작은 문제들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그들의 재산이 점차 자라납니다. 그사이 신과 관련된 온갖 문서들을 샅샅이 파고들어 꼼꼼히 읽어보는 신학자는 콩을 쪼개 먹으며 벼룩과 이를 상대로 생사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음과의 친연성이 큰 학문일수록 그만큼 만고에 복되고 복되다고 하니, 따라서 일체 학문과의 거래를 끊고 다만 자연이 이끄는 대로 따르는 사람들은 그 가운데 제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자연은 인간이 주제넘게 범하지 않는 한, 오로지 스스로 완전합니다. 자연은 인공을 기피하며, 따라서 일체 학문적 위해를 입지 않은 것은 그만큼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묻거니와, 여러분은 학문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자연 이외의 누구도 따르지 않는 동물들이 나머지 다른 동물들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신체적으로 모든 감각들이 전혀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꿀벌은 누구보다 행복하고 놀라운 삶을 살지 않습니까? 어떤 건축가가 있어 이들이 만들어 놓은 것과 유사한 건물을 세울 수 있으며, 어떤 철학자가 있어 이들이 이룩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습니까? 반대로 말은 인간적 정서에 가까이 서 있으며 인간들의 공동생활에 익숙해짐으로 해서 인간들이 겪는 재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종종 창피를 당하는바, 경주에 참여해서는 ‘늘어진 배를 질질 끌고’ 전투에 참여해서는 승리를 찾아 헤매다 크게 상처를 입고 쓰러져 말 탄 사람과 함께 ‘입으로 대지를 깨물게’ 됩니다.3) 늑대이빨을 한 재갈, 가시 돋은 박차, 감옥과 같은 마구간, 가죽채찍, 작대기, 고삐, 마부 등, 말이 사나운 인간들을 흉내 내어 무참히 적들에게 복수하려다가 스스로 뒤집어 쓴 굴종의 비극을 내가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무엇보다 바람직한 삶은 파리와 새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이들은 인간이 놓은 덫에 걸리지 않는 동안이나마 짧은 삶을 살면서도 오로지 자연에 따라 살아갑니다. 새장에 갇혀 인간의 언어와 소리를 배운 새가 타고난 빛나는 목소리를 잃게 되는 것은 놀라울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자연이 창조한 것은 학문적 가공이 꾸며놓은 것보다는 모든 측면에서 행복합니다.

————————————————————-

1)호메로스 <일리아스> 제 11권 514행과 플라톤, <향연> 214b에 인용되어 있다.

2)플라톤 <고르기아스> 463a이하에서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을 아첨술과 함께 거짓된 학문으로 여겼다.

3)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 11권 418행 이하. 베르길리우스는 전투에서 쓰러져 죽는 것을 ‘대지를 이빨로 / 입으로 깨물다’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호메로스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반가워요, 베리만 감독님』[책소개]

* 이병창선생님(MEGA 공동대표, ‘e 시대와 철학’ 자문위원)의 책『반가워요, 베리만 감독님』이 나왔습니다. 한 명의 영화감독과 그 영화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통찰하는 독특한 ‘철학적 영화비평’입니다. 그래서인지 베리만의 영화 속에서 헤겔, 들뢰즈, 라캉, 프로이트를 넘나들거나 현대 영화사조를 되짚기도 하고, 아울러 욕망, 소통, 자유, 영혼, 신 등의 주제를 성찰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반가운 마음에 일단 출판사의 책소개글로 소식을 먼저 전하고 추후에 좀 더 진지한 서평과 논의를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잉마르 베리만은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 감독이다. 그는 칸느 영화제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하여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감독이다. 그는 우디 알렌이나 박찬욱 감독 등 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가 만든 영화들 「제7의 봉인」, 「산딸기」,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겨울 빛」, 「침묵」, 「화니와 알렉산더」는 한국에서도 영화 마니아들이라면 누구나 손꼽는 걸작들이다.

독자들은 그 동안 베리만의 영화들을 쉽게 접근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의 영화의 이야기가 거의 수수께끼 같고, 연극적인 대사들로 가득하며,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기보다는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베리만의 영화 가운데서 대표적인 영화 15편을 골라서, 독자들에게 그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보여준다. 저자는 이런 재구성 속에서 연극적인 대사들을 풀이하고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의 속살을 채우고, 이미지의 암시적인 의미를 밝혀 준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소원하게 느껴졌던 베리만의 영화들을 독자들이 반갑게 맞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베리만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성격을 라캉의 욕망 개념을 끌어들여 분석한다. 저자는 다양한 주인공들을 욕망의 평면 위에 배치하면서 그들이 가진 성격적인 차이를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저자는 이를 통해 그 동안 베리만의 영화에서 감추어져 왔던 인물들의 성격적인 갈등의 원인과 양상을 밝혀 낸다. 저자는 주인공들의 성격적인 갈등 속에서 현실과 환상, 권력과 욕망의 대립을 찾아 낸다.

베리만의 영화는 주인공들 사이의 성격적인 갈등의 정점을 그려낸다. 그것은 마치 묵시록에 나오는 신이 침묵하는 순간과 같다. 이 순간에서 절망은 영원히 계속될 듯하다. 그러므로 베리만의 영화는 침울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는 신이 침묵하는 그 순간에 이미 신이 도래해 있듯이 베리만의 영화 역시 어둠 속에서 이미 밝아 오는 겨울빛과 같은 희망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고 본다.

<목차>

여는 글
1 「여름 간주곡」예술과 삶
2 「모니카의 여름」체념과 저항
3 「톱밥과 반짝이」모욕당하는 예술가
4 「제7의 봉인」신의 침묵
5 「산딸기」허무주의와 모성
6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거미신
7 「겨울빛」영적인 교감
8 「침묵」소통의 가능성
9 「페르조나」영화의 자기반영성
10 「늑대의 시간」깨어진 거울
11 「수치」폭력성의 근원
12 「애착」환상의 힘
13 「외침과 속삭임」죽음을 넘어서
14 「가을과 소나타」억눌린 고통
15 「화니와 알렉산더」조화의 우주
닫는 글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 사랑을 깨닫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최안나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책읽기 모임에서

우리 동네 책 읽기 모임에서 지난 4월은 『책 읽어주는 남자』를 선정했다.

2년 전 영화로 관람했을 적에는 남자 주인공이 별 매력이 없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여주인공인 케이트 원슬렛은 무척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 된다. 함께 책읽기 모임을 하는 지인들도 매우 재미있어서 책장이 쉽게 잘 넘어갔다고 했다. 특히 독일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 그리 듯 묘사해서 실제로 보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고 했다. 나도 영화와는 달리소설 속에서는 깊은 감동을 찾았다.

 

그들의 뜨거운 사랑이야기

글을 읽을 줄 모르는 36살 여자와 15살 소년의 뜨거운 사랑이야기이다. 우리들의 시각에서 봤을 땐 이런 추잡한 불륜이 없다. 36살 여자와 15살밖에 되지 않은 미성년과의 사랑은 동양의 연애관이 아니라 개방적인 서양의 연애관이라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그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했던 건 인간에 대한 연민이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열다섯 살 가을날 처음 그녀, 한나를 만난다. 소년과 한나는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면서 신비로우나 감성이 예민한 그녀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진다. 36살 여자와 15살 소년은 그녀의 아파트에서 사랑을 나눈다. 사랑을 나눈 후 소년은 여자에게 책을 읽어주는 걸로 늘 그들의 사랑의 의식을 마무리 했다. 한창 서로에게 충실 했을 때 어느 날 불현듯 한나는 떠나버린다. 어떤 이유로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15살에 남자가 된 소년은 그녀를 찾기 위해 애를 쓴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까닭을 알기 위해 소년은 혼자 남겨진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그녀를 다시 본 건 몇 년 후 소년이 대학생이 되어 수업 참관으로 간 재판장에서이다. 그녀는 나치의 앞잡이로 유대인들이 불에 타 죽는 현장에서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책임자로서 그 모든 죄를 그녀 혼자 뒤집어쓰게 되어 20여 년 간 감옥에 갇히게 된다. 다른 여자들이 그녀를 책임자로 몰면서 자신들의 죄를 면죄 받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어이없게도 글을 쓰기는커녕 전혀 읽지도 못하는 여자가 책임자가 된 것이다. 재판장은 그녀의 자필 서명을 원했지만 그녀는 서명을 거부 하며 모두 본인의 소행으로 마무리 한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원래 한나는 전철의 차장이었다. 자신이 기관사로 승진이 되는 것을 알고 도망을 친다. 기관사는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승진이 되면 자신의 문맹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소년까지 자신의 문맹을 알아버릴까 두려워 변명도 없이 연인의 곁을 떠난 것이다. 이처럼 문맹은 그녀의 치부였다. 청년이 된 소년은 감옥에 있는 한나를 한 번도 찾아 가지 않는다. 그의 결혼 생활도 불행하여 이혼으로 마감한다. 그 남자의 마음엔 그녀가 내려 놓을 수 없는 짐처럼, 마치지 못한 숙제처럼 아물지 못한 상처가 되어 그리움으로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야 완성되는 사랑?

감방에 있는 여자를 위해 남자는 책을 낭독해 테이프로 보내준다. 책들을 수 백 번 반복해서 들으면서 여자는 문맹을 이긴다. 그리고 감방에서 모든 죄수들의 상담사 역할까지 해낸다. 한나는 죄수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비와 존경을 받으면서 생활했다. 그런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다. 그것도 석방되기 전날에. 그녀의 죽음은 남자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다. 그녀가 남긴 유품은 15살 소년의 졸업사진, 그리고 약간의 돈이 전부였다. 그녀는 그것을 희생자들에게 보내주길 원했지만 문맹퇴치에 보태진다.

단 한 장의 소년 사진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 왔던 그녀가 형기를 마치고 석방되는 전 날에 죽음으로 남자에게 고백했다. 난 계속 ‘왜 죽었을까? 왜 죽어야만 했을까? 죽어야만 사랑이 완성되는가?’ 라며 고민했다. 그랬다! 죽어야만 한나의 사랑은 완성된다.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은 그녀가 죽어야만 완성이 되는 것이다.

만일 한나가 살아남아 이제는 남자가 된 소년을 만나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면 15살 시절처럼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함을 한나는 알고 있었다. 이 책의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 판사는 독자로 하여금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상상하게 만들었기에 위대하다. 또한 작가는 유럽의 여러 가지 많은 문제를 책에서 다루고 있지만 하나도 해결하지 않는다. 모두 독자의 몫으로 남게 했다.

 

내가 몰랐던 하나의 사실

우리에게 사랑은 난해한 숙제이다. 비록 난해할 지라도 사랑을 못해 본다면 딱하다. 나는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 사랑이 행복인지 모른 채 사는 일이 많았다. 마치 익숙한 공기처럼. 오래전 나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를 본 이후부터 폭풍 같은 사랑을 갈구했다. 열애에 대한 책임은 없으나 그 추억이 남는 그런 사랑 말이다. 그래서 메릴 스트립이 평생 추억을 꺼내며 그리워하는 것을 부러워했다. 철없는 소녀다운 상상을 하면서. 이런 내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편의 사랑도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난 요즘 들어 예쁘다는 말을 듣는다. 자라면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소리였다. 늘 막내 동생이랑 작은 언니만 듣던 말을 내가 듣는다. 그럴 때면 내 이야기가 아닌 듯해서 겸연쩍은 마음이 들어 숨고 싶어진다. 그러면 옆에 친구도 한마디 거든다.

“너, 예뻐졌어.”

마흔을 넘기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들을 마흔 훌쩍 넘긴 지금에서야 듣게 된 것은 순전히 남편의 사랑 덕이다. 자상하게 사랑한다고 표현하지도 않고, 늘 경상도식으로 퉁명스럽게 대해서 외롭게도 하지만 남편만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 준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 부부는 젊었을 때 피 터지게 싸웠다.

바깥일에 가정일 까지 나만 혼자서 늘 분주하다고 투덜거리기만 했다. 남편은 직장생활만 충실했지 이런 잡다한 일들에 신경을 쓰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일하는 사이사이에 시장 봐서 식사 준비해야 했으며 하루 종일 아이들도 신경 써야 했다. 어떤 날은 빨래해서 널고 개어놓을 시간이 없어서 소파에 던져 놓고 다시 빨래를 널었다. 그러다가 외출했다 집에 들어서는 나에게 남편이 커피 한 잔을 부탁하면

“내가 없을 때는 어떻게 참았어? 집에 오자마자 너무 하는 거 아냐?”

큰소리로 짜증을 내며 결국 커피 한 잔 타주지 않았다. 늘 종종거리면서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 내가 더 많이 일한다는 억울한 생각이 들어 남편의 깊은 사랑은 깨닫지 못했다. 다만 아이들에게나 남편에게나 나만 열심히 일한다는 생색을 내며 살았다.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남편에게서 물 흐르듯 한 세월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무뚝뚝한 남편은 이젠 작아졌고 약해졌으며 언제부턴가 내 모습을 살피기까지 한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날 밤 식탁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남편이 울기도 했다. 서글퍼서가 아니라 행복해서란다. 남편의 그 모습이 서글퍼 나도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시내에 있는 빌딩 중에서 안 들어 가본 빌딩이 없다고 말했다.

“나, 참 열심히 살았어.”

그런 말도 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으며 ‘우리가 그동안 남편 등골 빼먹으며 살았구나. 그런데도 이 이는 행복하다네.’ 라는 생각이 들어 그 동안 남편에게 서운 했거나 억울했던 감정이 사라졌다. 이것이 남편이 나를 사랑 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나는 눈치 보면서 살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게 해주었으며 나 잘났다 당당하게 소리치면서 살도록 해 준 사람이다. 남편의 사랑은 햇살처럼 따뜻하고 오래오래 내 곁에서 비춰주고 있다.

이런 사랑을 두고 나는 그동안 폭풍 같은 사랑만 아름답다며 그런 사랑에만 감동했다. 내가 남편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일만 남았는데 수학공식처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입에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난 남편에게 한나처럼 죽음으로 사랑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살아가면서 하나씩 말해주면 되는데 쉽지가 않다. ‘감. 사. 해. 요.’ 그 한마디면 되는 것을 하지 못한다. 죽음보다 쉬운 것을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람에게 거절당하길 싫어한다. 약속도 전화도 늘 누군가 내게 먼저 해 주길 원했다. 거절을 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스스로 상처를 깊이 받는다. 그래도 용기를 내야겠다. 난 죽음으로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더 아름답습니다.

???????????????????????????????????????????

*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여섯째 글로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김재혁 옮김/이레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60년의 닫힌 문을 열다[치유시학]

?

김성리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
할머니의 집

집시들의 춤은 한 줄기 바람처럼 가볍고 노래는 오월의 햇살처럼 경쾌하다. 그들의 삶은 자유롭다.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마을에 들어서면서 먼저 마주친 것은 숨듯이 창 너머로 나를 훔쳐보는 눈길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몸을 숙이는 여인의 모습에서 집시가 떠 오른 것은 어떤 연유일까.

차에서 내려 기억을 더듬어 마을 입구일 것이라고 생각한 지점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마을은 보이지 않고 교회 십자가만 나무 가지 끝에서 겨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애기똥풀 꽃이 가득한 길가를 돌아서 걸어 들어가자 비로소 교회가 모습을 드러내고, 내리막길을 따라 집들이 보였다.

할머니의 집은 마을의 끝이다. 경사진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다시 비스듬히 들어가면 유난히 키가 큰 노란 누드베키아 꽃들이 대문을 대신하여 서 있다. 담도 없고, 시골집에는 으레 있는 개 한 마리도 없는 작은 마당에 적막만이 감돈다. 문을 두드리자 두꺼운 안경 너머로 반가움이 먼저 나온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내 발걸음 수만큼 할머니는 뒤로 물러난다. 내가 가까이 다가앉자 역시 내가 다가간 만큼 뒤로 물러나 앉는다. 물 한 그릇을 청하자 “오늘은 별로 안 덥다.”라는 말로 물을 대신한다. 커다란 거울이 달린 화장대가 방 가운데에 놓여 있고, 화장대 위에는 몇 개의 약병과 함께 화장품들이 놓여 있다.

“어머니, 제 이름은 김성리예요. 부모님께서 여자는 영리해야 한다고 바탕 성에 영리할 리를 이름으로 주셨죠. 모두들 리야라고 불러요.” “거 좋은 이름이네. 뭐하는 사람이라고 했노?” “시를 공부합니다.” “시 공부하는 사람이 나는 뭐할라꼬 찾노.” 순간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하고 이야기 하려고 왔죠.” “어무이가 있나?” “네, 고향에서 큰 오빠 내외와 계세요.” “나도 딸이 하나 있다. 아니다. 둘이다.”

 

여성의 삶에서 어머니의 자리는 특별하다. 세상의 어머니는 모성이라는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할머니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다. 나이, 아이들, 남편,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을 묻고 또 물었다. 7월의 날씨는 더웠고, 나의 몸은 땀으로 끈적거렸다. 할머니는 엉덩이로 몸을 움직여 손바닥으로 그릇을 받쳐 물을 가져다주었다. 물을 마시고 말없이 부엌으로 나가서 그 그릇에 다시 물을 부어 할머니께 드렸다.

 

침묵의 대화

말은 입을 통하여 나오고 귀로 듣는다. 때로는 묻지 않아도 알고 대답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마음으로 하는 말은 마음으로 듣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께 한하운 시인의 시 <전라도길 – 소록도 가는 길>을 들려주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할머니는 세 번을 반복해서 들으며 뭉툭한 손으로 방바닥만 문질렀다. “누고?” 나는 한하운 시인의 삶을 이야기처럼 전해주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그 사람과 나는 함께 존재의 가치를 지닌다. 할머니는 한하운 시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노라고 했다. 시를 한 번 읽어보고 싶었노라고 했다. 그리고 덧 붙였다. “살았나? 죽었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방안을 가득 채우는 사이, 할머니와 한하운 시인의 시는 침묵의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은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저 너머의 어딘가를 보고 있고, 나는 기다렸다. “이 사람은 왜 시를 썼을꼬?” 할머니의 말은 짧고 명료했으며, 간간이 이어졌다. “이 사람도 할 말이 많았겄제?” “처음에는 참 이상한기라.” “꼭 내 끼 아인 것 같고 넘 것 같다가도 내 낀가 싶고”

할머니는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라는 한하운 시인의 말에 “한참 일하다 보몬 칭칭 감고 있는 광목에 흙은 묻고, 집에 와서 풀어 보몬, 참 그런 기라”라며 응답했다. “내가 좀 그랬제. 우리 영감은 안 그랬다.” 소금을 먹어보기 전에는 소금의 짠 맛과 바다의 짠 맛을 구별할 수 없다. 담담하게 하는 할머니의 말을 옆에서 담담하게 들었다.

 

동무가 된다는 것

백 가지를 안다고 해도 한 가지를 모를 때가 있다. 그 한 가지가 사람의 마음이라면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경상도 지역에서 흔히 하는 말이지만,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 중의 하나가 ‘문디’이다. 서정주는 자신의 시에서 이 ‘문디’는 밝은 낮에는 나올 수 없어 ‘달 뜨면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우는 해와 하늘 빛이 서러운’ 존재로 묘사했다.

끝없는 황톳길에서 낯선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문둥이라면 친구가 된다. 그런데, 만약 마음을 털어놓고자 하는 상대가 문둥이가 아니라면 어찌할까. 나는 ‘문디’가 아니므로, 할머니 자체가 될 수 없으므로, 내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할머니의 삶을 보여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머니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나도 쓸 수 있겄나?” “김선생은 많이 배웠제?” 할머니는 일제 말기에 여고를 다녔다. 주말이 되면 부산진역에서 기차를 타고 울산 집에 가는데, 어머니가 대문 앞까지 나와 있었다. 다시 학교가 있는 부산으로 떠날 올 때에는 보따리 가득 밑반찬이 들어 있었고, 어머니는 그 보따리를 들고 기차 안까지 들어와 자리를 잡아 주었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마치 강물이 산등성이에서 바다까지 갈 때 햇빛이 함께 가는 것(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처럼 그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함께 하며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할머니의 마음을 보았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혼자 속으로 조용히 우는 것(<갈대>)”이라는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할머니는 60여 년 동안 혼자 말하고 혼자 들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아무도 들어 줄 수 없었던 이야기는 오랜 시간 동안 할머니의 내면에 상처를 주고, 그 상처는 더 큰 상처를 주며 할머니의 삶을 기억 저 너머에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TV 프로그램 중 이산가족을 찾는 것은 언제나 본다고 했다. 오빠와 언니가 있었지만, 할머니의 한센병 발병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헤어졌기 때문에 다시 만난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이다.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남과 다른 몸은 타인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시선은 무차별적으로 그들만의 방법으로 나의 몸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본에 살던 오빠가 오랫동안 수소문하여 할머니를 찾았을 때 오빠는 분노했다. 동생이 한센인이었기 때문에 국가도 사회도 심지어 고향의 지인들까지 동생을 버렸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할머니의 현실에 오빠는 절망하며 이 땅을 떠나자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떠날 수 없었다. 떠나기에는 상처가 너무 컸다.

어디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한센인 집단촌에서 쫓겨나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며 전전하다가 낙동강 하구둑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그 곳에서도 쫓겨나 용호동에 정착했다. 그것도 잠시 다시 신암을 거쳐 배를 타고 을숙도로 갔다. 을숙도로 가는 동안에도 인근 주민들은 삽과 곡괭이를 들고 나와 감시했다. 을숙도는 세상과 단절된 섬과 같았지만 차라리 그 곳의 생활이 편하고 행복했다.

사라호 태풍이 오자 한센인들은 집채처럼 덮쳐 오는 물기둥을 피해서 죽을 힘을 다 해 을숙도에서 탈출했다. 그들은 동네로 들어오지 못하고 인근 초등학교에 강제 수용됐지만, 그 난리 속에서도 주민들의 위협은 살벌하고 집요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밤에 그들은 청소차에 실려 지금의 마을에 내던져졌다.

 

소통의 언어

내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고통은 어떤 경우에도 나의 것으로 수용되지 않는다. 할머니의 삶을 떠나지 않고 있는 고통 중의 하나는 소외감과 절망이었다. 한센인들과는 같은 공간에서 숨조차 쉴 수 없다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집착은 나와 다른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혼자 잘 살겠다는 아집은 나에게 고통을 주지만, 너와 함께 살 수 없다는 아집은 타인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

표현은 소통의 방법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통을 가로 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몸이 병들어 일그러지는 것은 육체가 무너지는 것일 뿐 한 사람이 일그러져 내려앉는 것은 아니다.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 다른 개개인의 감정들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러나 겉만 볼 뿐 속은 보지 않는 마음에서는 감정들이 교차될 수 없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이러한 소통 부재에서 오는 상실감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할머니는 화장대 위에 놓인 공과금 고지서와는 다른 이름을 말해주었다.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는 “매독 같은(<공간의 시 6>)” 현실의 벽 앞에서 느끼는 상실감을 시인 엄국현은 “이름을 바꾸었으면 한다. 나는 바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공간의 시 6>)”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름을 바꿈으로써 자유로운 바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시인의 희망처럼 할머니도 이름을 바꿈으로써 영혼을 구속하는 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 모를 일이다.

마을 입구에서 마주쳤던 여인의 흔들리던 눈빛이 먼 옛날의 할머니 눈빛은 아니었을까. 그 여인의 눈길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는 바람 같은 집시 여인의 희망을 보았던 게다. 희망은 현실을 추상화처럼 변형시키지만, 그 현실이 자신을 소진시키지는 않는다. 희망이 있으면 언제나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81세의 할머니가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또 다른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할머니만의 언어이며 희망일 것이다.

스스로 믿고 희망하는 행위 자체는 하나의 체험일 수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조각상 토르소를 보며 “너를 바라보지 않는 곳이란 한 군데도 없으니까.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아폴로 고대 토르소>)”라며 토르소의 삶에 희망을 불어 넣는다. 집시들이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듯이 할머니는 60년 간 닫혀 있던 문을 조금씩 열고 있었다.

—————————————–

# 본문에 게재된 사진은 순서대로 전호근 作 (2004년) 작품으로 작가의 허가를 받아 올린 것임을 밝힙니다.[편집자]

# 히게이아(Hygeia)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이는 흔히 의약과 치유의 신으로 알려진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us)와는 또 다른 치유의 신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이나 약으로 환자의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신이라면, 히게이아는 환자 자신의 자연치유력을 돌봐주고 길러주는 치유의 신입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치료의학의 수호신이라면, 히게이아는 간호학과 위생학의 수호천사로 불립니다. [히게이아의 시학]은, <e시대와 철학>과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서 바로 치유의 여신 히게이아의 정신을 계승하여, 문학 특히 시를 통해 환자의 삶과 소통하고 환자의 자기 치유를 유도하는 하나의 치유인문학이자 인문의학의 성격과 내용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의 말]

 

 

자거라투스트라, 오바마 빈 라덴을 만나다.[자거라투스투라 시장에 가다]

이병창(MEGA공동대표, e 시대와 철학 자문위원)

오바마 빈 라덴씨, 왜 그렇게 구석에 쭈그려 있지요? 한 나라 대통령이 말입니다.

당신 누구요? 난 오사마가 아니요, 오바마요.

아, 죄송해요. 난 짜라투스투라가 아니라 자거라투스트라요. 니체의 사생아. 들어 본 적이 있을 거요.

아니 금시초문이요.

그럼 멀지 않아 듣게 되겠지요. 주한 미국 대사관에 물어보시오. 대학교수치고 안식년을 미국으로 가지 않은 교수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나, 자거라투스트라요. 한국교수들이 왜 안식년을 미국에서 보내는 것인지,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오?

그야, 미국이 당신네 한국 교수들의 교수자격증의 고향이니, 안식하기에 딱 맞기 때문이 아니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은 ‘맹모삼천지교’ 때문이요. 말이 어렵지는 않겠지요? 이 나라에서는 영어 실력이 출세의 지름길이고, 부모된 자로 자식을 미국에 데리고 가는 것은 다 그런 맹모삼천지교 때문이요.

그럼 당신은 반미주의자라서 부모의 도리조차 포기한 거요?

무슨 말씀이요. 우리 친구 중에 미국에는 갔지만 라스베가스에 가지 않았다는 친구가 하나 있소. 그는 거기서 잭팟이 터지면, 교수가 도박했다고 신문에 날까 봐 가지 않았다고 해요. 나도 마찬가지요. 미국에 갔다가, 내가 유명해지면, 나보고 미국 갔다 왔기 때문에 유명해졌다 할 거 아니요? 그래서 미국에 안가는 거요.

한국 말에 ‘기우’라는 말이 있다 하더니, 꼭 당신보고 하는 말이군요. 당신이 유명해질까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런 기우에 해당되는 거요. 근데 왜 날 찾아 왔소. 내가 철학이나 하도록 한가한 줄 아시오?

하기는 당신이 바쁜 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당신이 하도 심해서 내 찾아왔소. 내가 투표권도 없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열렬하게 당신을 밀었던 것을 아시오? 그때 예비선거 시작하자말자, 힐러리 클린턴하고 당신이 TV토론에 나왔더군요. 힐러리의 요리 빼고 저리 빼는 약삭빠른 워싱톤식 정치 감각에 비해 당신은 우직하고 시원시원했어요. 이라크에서 철군하겠다는 단 한마디 명확한 약속 때문에 난 당신이 당선되기를 학수고대했소.

아, 그래요. 반갑소. 이번에 또 선거가 있는데, 한 번 더 부탁해요.

하지만 이번에는 절망했소. 어떻게 한 나라 대통령이 의자 구석에 마치 물에 빠진 쥐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다는 말이요?

아니, 내가 말하지 않았소? 이번 기습 작전을 지휘하는 장군에게 자리를 양보한 거요. 그것은 나의 실용주의 정신을 보여준다고, 신문에도 다 설명되었는데, 그것도 모르요?

그런데 나한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그것은 마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처럼 보입디다. 기습작전을 하고 혹 문제가 있으면 내가 한 것이 아니다 하고 발뺌 하려 했던 거 아니요? 한 발은 이쪽에 넣고 다른 발은 밖으로 빼는 자세가 바로 당신의 자세 같아요. 당신이 그런 것은 다 옛날의 아픈 기억 때문이 아니요?

무슨 기억을 말하는 거요?

그 옛날 이란 혁명이 일어났을 때 이란 학생들이 미 대사관을 점령했지요. 그때 카터는 기습작전을 폈는데, 실패로 돌아갔어요. 사람들은 카터가 재선을 하지 못하고 끝내 단임으로 마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기습작전의 실패 때문이라 해요. 그 기억 때문에 이번에 기습작전 하면서도 당신은 안절부절 못하고 그래서 엉거주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거 아니요? 만일 실패하면 내가 한 게 아니라고 발뺌하려 했던 거지요.

자거라투스트라 씨? 내 말을 기억해요? 미국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 내가 빈 라덴을 제거한 후, 위대한 우리 국민들에게 한 바로 그 말, 말이요. 이거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오바마 빈 라덴 씨, 미 대통령 각하, 정말 그 말은 위협적이었어요. 전 세계 반미주의자들의 가슴을 벌벌 떨게 했어요. 미국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저항하지 않은 오사마 빈 라덴을 살해한 거요? 그래서 그의 시신을 아무도 모르는 바다에 수장해 버린 거요? 이 끔찍한 야만은 오사마 빈 라덴의 끔찍한 테러와 뭐 다를 바 있소? 마땅히 그를 데려와 재판을 한 이후 처형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은 당신네들이 체포해 재판하고 사형하지 않았소? 그게 정의의 나라 미국의 이미지에 맞는 게 아니요?

자거라투스트라 씨, 당신은 한국에서 백만 권 팔렸다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았단 말이요? 거기 보면 다 나오는데, 내가 또 설명해야 한단 말이요?

그 책은 나도 읽었소. 거기 보면 인류에게는 민주적인 합의를 넘어서는 어떤 공동적인 도덕이 있다는 거 아니요. 그런 도덕 속에 인권이 들어간다고 당신네들이 말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그런 인권에는 재판받을 권리도 포함되는 것이요. 당신네들은 봉건주의 시대에나 통하던 복수의 권리를 수행한 거지요.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오사마를 재판하는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아요? 우선 오사마는 재판정을 자신의 테러리즘을 선전하는 장소로 삼을 거란 말이요. 히틀러가 뮌헨 폭동이 실패로 돌아가 체포된 이후 재판정에서 벌렸던 선전을 생각해 보시오. 정의로운 재판정을 불의의 선전장이 되도록 하는 것은 옳은 일이요? 자거라투스트라씨, 당신이라면 이런 끔찍한 부정의를 허용할 수 있겠소?

오마바 씨, 이슬람이 그렇게 무서워요? 아니면 이슬람을 탄압했던 당신네들이 스스로 무서운 거요? 오사마 빈 라덴이 재판정에 서면 그게 다 폭로될까 보아 그런 것 아니요? 당신들이 정의롭다면 재판의 결과 오히려 전 세계에 당신네들의 대의가 들어날 것 아니요? 그건 그렇다하고, 철학적으로 보아서 그것은 결과를 고려하는 논법이 아니요? 당신이 존중하는 마이클 샐던은 공동의 권리는 천부적인 것이어서, 결과와 무관하게 정의라 했어요. 그래서 그는 공동체주의자가 된 거요.

아니, 자거라투스트라 씨 책을 좀 열심히 읽어보세요. 거기 칸트를 논하면서 샐던이 뭐라 했나요? 이런 논의를 하지 않아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법칙이 있다 합시다. 내 친구가 강도를 피해 내 집으로 도망 왔어요. 그런데 강도가 찾아와서, 내 친구가 숨었는가 묻습니다. 그때 칸트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해요? 결과를 위해 거짓말할 수는 없소. 샐던은 이때 소위 회피 전술을 쓰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즉 내 친구가 집에 숨은 것은 아니라고 말이요. 집에 오기는 했지만 숨은 거는 아니라는 거지요. 물론 집에 왔다는 말은 빼고 뒤의 말만 하는 거지요. 그러면 결과의 위험도 피하고, 법칙도 지킬 수 있다고 했지요. 그러면서 샐던은 바로 이 회피 전술이 클린턴이 르윈스키 청문회에서 써먹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오바마 씨, 그래서 당신은 이번에 회피 전술을 사용한 거구 만요. 재판의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재판이 성립되지 않도록, 남몰래 살해해 버린 거군요. 그리고는 살해한 것은 아니고 다만 총을 발사했다고 하면서 오사마 빈 라덴의 마지막 장면을 공개하지 않는군요.

나는 다시 강조하겠소. NCND요. 그게 나의 스승 마이클 샐던이 나에게 가르쳐준 비법이요.

오바마 씨, 굳이 당신들한테 철학이 왜 필요한지 궁금해요. 아니 거꾸로 우리 같은 철학자가 이 세상에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당신네들의 기만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한 거요?

아니, 자거라투스트라 씨, 그게 내 물을 물음이요. 우리가 그냥 살게 놓아두면 안 돼요? 왜 당신네들 철학자들이 당신네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에 굳이 개입해서 우리로 하여금 궤변을 하도록 강제하는 거요?

그럼 오사마 빈 라덴을 수장한 것도 샐던 책에 나오는 거요? 사람들이 무덤에 묻힐 권리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권리로 보았소. 말하자면 인권인 셈이요. 궁금하면 『정신현상학』에서 ?인륜의 정신? 장을 보시오. 거기서 헤겔은 안티고네 비극을 다루면서 안티고네가 한 말을 새기고 있어요. 비록 조국에 대항한 역적이지만, 나의 오빠이고, 그래서 묻힐 권리가 있다고 하는 말, 말이요.

물론 우리 미국이 그런 기본적인 권리를 부정한 것은 아니요. 다만 바다에 묻었을 뿐이요. 그리고 그 바다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러니 인간으로서 묻힐 권리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 않아요? 자거라투스트라 씨 우리 미국인들이 그렇게 허술한 사람은 아니요.

맞아요. 그런데 당신네들은 오사마의 무덤을 세우면 그게 성지가 될까 보아 수장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시체도 무덤도 찾을 수 없으니 말이요. 하지만 그건 생각해 보았어요. 바다에 수장하면 그 모든 바다가 성지가 된다는 것, 말이요? 전 세계의 바다가 얼마나 넓고 얼마나 많아요. 전 세계의 바닷물이 모두 오사마 빈 라덴의 피가 되고, 전 세계의 모든 소금이 오사마 빈 라덴의 살이 되는데. 그것도 당신네들이 결과를 고려한 거요?

자거라투스트라 씨 다시 말하건대, 미국은 할 수 없는 것이 없어요. 만일 그러면 미국은 전 세계 바다를 말려서 육지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그렇게 흥분하지 마세요. 오바마 씨, 내가 좋은 제안을 하리다. 오사마 빈 라덴을 주검을 건져서 지금이라도 남극에 묻으세요. 설혹 남극이 성지로 되더라도, 오사마 빈 라덴 추종자들이 설마 남극까지 가겠소?

자거라투스트라 씨 재선이 되면 봅시다. 나도 재선까지는 어쩔 수 없어요. 현실이 그런 거요.

알겠소. 오바마 씨, 당신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바라요. 난 당신이 카터처럼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써먹고 버리는 카드가 되기를 바라지 않아요. 그리고 재선이 되면 좀 분명하게 합시다. 먼저 그 천 년 먹은 여우 힐러리 클린턴을 해임하시오. 그는 여성주의의 이미지를 해치는 결정적인 본보기요.

 

 

 

 

 

[월례 발표회 참관기] 김성우 선생의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으로서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에 대하여

?[2011년 4월 월례발표회]

 

논문 제목: 논문 제목: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으로서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
발표자: 발표자: 김성우

 

철학은 선택 가능한가?

후기: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1.

항상 마음속으로 묻는 물음이 있다. 그것은 철학도 선택이 가능한가(preferable) 하는 문제이다. 예술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런 선택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은 리얼리즘 소설을 좋아하지만 나는 그런 소설이 싫어, 나는 카프카 유의 소설을 즐겨 읽지.”라고 말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의 경우 “리얼리즘 소설은 무언가 잘못 되었어, 소설이라면 카프카처럼 써야 마땅하지”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 서로 다른 태도를 가진 사람들끼리 소설을 둘러싸고 얼굴을 붉힌 채 논쟁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서로의 태도를 존중하는 것으로 끝맺는 것이 상식적인 태도일 것이다.

그런데 과학의 경우는 이런 선택가능성은 인정받지 못한다. 아무도 “나는 뉴턴의 물리학을 받아들이지만, 당신이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을 받아들이더라도 상관하지는 않겠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이론들을 지닌 과학자들은 격렬한 논쟁을 거치더라도 끝내 결정적인 판단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조차 그들은 서로 돌아서서 상대방을 비판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선택가능성을 둘러싼 두 가지 입장 가운데 철학은 어디에 속하는가? 철학은 이런 점에서 예술에 가까운가 아니면 과학에 가까운가?

2.

필자가 이렇게 철학의 선택가능성의 문제를 이 자리에서 언급한 것은 이 글의 의도와는 매우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본래 4월 30일 한철연 발표회에서 발표된 김성우 선생의 논문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으로서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의를 소개하는데 목표가 있다. 그런데 발표 이후 전개된 논쟁에서 필자에게 떠오른 가장 강력한 물음이 바로 앞에서 제기한 그런 물음이었다.

여기에 연유를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발표자의 주장을 들어보자. 발표자는 이 논문에서 매우 대담한 가설을 내세웠다. 알다시피 푸코의 사유는 단계적으로 변천(또는 발전)되어 왔다. 초기 그의 사유는 고고학의 입장이다. 고고학은 다양한 담론들의 배후에 인식의 개념틀(episteme)이 존재한다는 구조주의적 가정에 기초한다. 이런 가정에 따라서 작성한 대표적인 글이 바로 『말과 사물』이다. 중기에(1970년대 초반) 푸코는 담론을 발생시키는 인과적인 힘을 발견하려 했다. 이런 시도를 그는 니체의 용어를 빌려와서 계보학이라고 명명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곧 『감시와 처벌』이다. 말년에 이르러(대개 1980년대) 푸코는 자기 배려의 윤리학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 결과 그는 『성의 역사』와 같은 대작을 작성했지만 자기의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생을 마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논자인 김성우 선생은 푸코의 사유는 ‘역사-비판 존재론’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본다. 김성우 선생은 이런 ‘역사-비판 존재론’ 개념을 푸코가 말년에 작성한 글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규명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 시대 다양한 담론들의 전제가 되는 에피스테메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발생했는가를 추적하는 계보학의 개념을 재구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푸코의 에피스테메가 존재라는 개념에 대응하며, 그의 계보학이 역사-비판이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성우 선생은 이런 계보학, 다시 말해 ‘역사-비판 존재론’이 푸코의 전반적인 사유를 묶어 낼 수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푸코의 계보학은 말할 것도 없이, 고고학도 이런 ‘역사-비판 존재론’의 한 단면이며, 윤리학적 입장도 이 개념의 한 표현으로 본다.

김성우 선생이 ‘역사-비판 존재론’ 이란 개념을 끌어내어서 푸코의 사유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시도는 정말 새로운 시도였다고 보겠다. 푸코에 관심을 가져서 푸코와 관련된 이런 저런 글들을 읽어 본 적이 많던 필자조차도 이런 ‘역사-비판 존재론’이라는 개념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 참신함이 필자를 상당히 흥분시켰을 정도였다.

3.

그런데 김성우 선생이 계보학을 그저 계보학이라 하지 않고, ‘역사-비판 존재론’이라고 다시 명명한 이유는 영향 사를 밝히려는 데 있다. 그는 이런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이라는 개념을 하이데거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규정한다(또는 하이데거를 통해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하이데거의 영향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필자가 자꾸만 대답을 회피하려는 김성우 선생의 발목을 붙잡고 캐물어서 겨우 알아낸 바에 의하면(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아직 이 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체로 하이데거의 존재라는 개념이 푸코의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에 대응하며, 하이데거에서 존재의 개시(開示:eroeffenung)가 푸코에서 계보학적인 역사의 개념과 상응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대응시켜 놓고 보니, 푸코의 계보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 사이에 유사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푸코의 에피스테메 사이의 상응에는 일리가 있다. 둘 다 사물 또는 존재자를 가시적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존재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존재의 개시가 계보학적인 것일까? 푸코의 계보학은 우연적인 사건들이 얽혀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과 유사한데, 하이데거에서 존재의 개시는 상당히 운명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과 운명은 통하는 바가 있다. 우연의 이면이 운명이라 본다면, 푸코와 하이데거의 주장은 서로 동전의 이면처럼 연관된다고도 하겠다. 사실 푸코의 계보학도 읽어보면 무언가 운명적인 것을 전제로 한 듯 보이며, 하이데거의 운명적인 존재의 개시도 그 출발점은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본다면, 하이데거의 개시 개념과 푸코의 계보학 개념은 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의 영향의 문제는 매우 신중해야 하며, 잘못하면 푸코의 계보학에 대한 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성우 선생이 하이데거의 영향을 주장한다면, 이런 논점을 잡아서 양자의 유사성과 차이에 관해 더욱 천착해 들어갔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김성우 선생의 논문에 나타나는 것처럼 비록 이런 영향 관계를 천착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연구 성과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 점은 아쉬운 측면이지만 앞으로 연구의 성과를 기대할만한 지점이라 하겠다.

4.

그런데 김성우 선생은 하이데거의 영향을 과장하면서, 푸코의 사상에서 구조주의적인 특징을 지워버리려 시도한다는 데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일반적으로 푸코는 후기 구조주의자라 알려져 왔다. 후기 구조주의는 전기 구조주의와는 다른 특징을 지닌다. 전기 구조주의는 구조를 일원적(unitary)인 것이며 불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전기 구조주의는 사물의 화용(parole)적 측면을 개인의 실천에 속하는 우연적인 측면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후기 구조주의는 전기 구조주의에서 간과한 화용적인 측면에 더 주목하며 이런 화용적인 측면도 구조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파악한다. 또한 후기 구조주의는 사물의 구조는 가변적인 것이며, 다양체적(multiple)인 것이라 본다.

푸코가 출현할 당시 60년대 프랑스의 지성계는 구조주의가 지배할 시대였다. 구조주의는 그 이전 50년대 실존주의의 사상적인 지배력을 무너뜨리고 등장했다. 그래서 구조주의가 비판의 논적으로 삼았던 대상이 바로 실존주의였다. 그런데 푸코는 성장기에 분명 실존주의 세례를 받고 자랐다. 따라서 그런 실존주의적인 사유가 그에게 상당히 침윤되어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푸코가 대학시절 당시 지배적인 구조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푸코는 구조주의에 서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 후기구조주의로 넘어간 것이 아닐까?

따라서 푸코가 후기 구조주의로 넘어가는 데 실존주의의 영향이 있었다면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김성우 선생처럼 푸코의 구조주의적인 사유를 부정하고, 하이데거의 영향을 극대화한다면 이는 너무 과도한 주장이 아닐까? 왜냐하면 푸코 역시 그의 시대를 지배했던 구조주의의 힘을 쉽게 벗어나기 어려웠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논쟁은 푸코에게 미친 하이데거의 영향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데 집중되었다. 영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런 하이데거의 영향의 정도를 판정하는 결정적인 관건은 역시 하이데거의 존재 개시라는 개념과 푸코의 계보학이라는 개념 사이의 연관성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것은 개시성의 운명론적인 성격과 계보학의 우연론적인 성격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문제라 하겠다.

5.

그런데 논의를 비틀어 필자를 씁쓸하게 했던 것은 바로 푸코의 계보학이 비판하는 역사 개념이 곧 헤겔의 역사 개념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푸코의 계보학이 우연론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그것에 대립되는 운명론적인 역사 개념을 헤겔에서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헤겔의 역사 개념이 운명론적일까? 오히려 하이데거의 개시 개념이 더욱 운명론적이 아닐까? 그런데 푸코는 하이데거와 가깝다고 하고 반면 헤겔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면 이것은 무언가 착종된 생각이 아닐까?

이것은 철학적인 판단의 문제이다. 앞으로 더욱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것은 이런 생각이었다.

헤겔에 대한 철학적인 비판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분석철학 등은 항상 헤겔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태도는 마르크스주의와 분석철학처럼 모더니즘 계열의 철학과는 전혀 다른 철학적인 태도를 지닌 포스트모더니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구하는 철학도들이 헤겔을 비판하는 경우, 필자에게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우선 그들의 헤겔 철학에 대한 이해는 구조주의자 알뛰쎄가 마르크스를 해석하면서 도입했던 헤겔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헤겔은 목적론자이면서 일원론자로 간주된다. 그게 바로 헤겔의 발전 개념이라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헤겔에 대한 필자의 이해를 상세하게 논증하고 싶지 않으며 또 그런 자리도 아닐 것이다. 다만 필자는 사람들이 알뛰쎄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그것이 헤겔의 진짜 모습이라고 간주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 자신이 헤겔을 읽고 이해하면서 비판했다면 그것 또한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려낸 모습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그것은 문제 있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한 가지 필자는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왜 사람들은 자기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항상 타자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시작하는 것일까? 철학도 선택가능하다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항상 타자를 비판하면서 시작하려는 철학자의 태도에는 철학이 과학처럼 진리성의 기준을 갖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모더니즘 철학자들이라면 그들은 철학의 진리성을 믿으므로, 이런 논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 철학자들 그래서 상대주의적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철학자들이 철학에서만은 유독 진리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역설적이 아닐까?

소위 회의주의의 역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회의주의가 자기 자신을 회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자들이 타자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면 이런 회의주의의 역설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권위는 ‘아래에서부터 위로’다.[썩은 뿌리 자르기]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대진대 강사)

“옛사람들은 백성과 더불어 여러 사람이 함께 즐겼습니다. 이 때문에 능히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백성이 그와 더불어 함께 망하고자 한다면 비록 화려한 관저와 아름다운 연못과 관상용 동물들이 넘쳐난들 어찌 홀로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맹자(孟子)』「양혜왕장구 상(梁惠王章句 上)」)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맹자가 군주인 양혜왕을 찾아가 한 얘기다. 맹자는 양혜왕이 자신의 화려한 동산을 둘러보며 자랑스러워하자 고대 주나라 문왕(文王)의 예를 들어서 임금의 권위는 화려하고 웅장한 부차적인 것들에 의해 확립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소통하고 백성과 함께 하는 바탕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위정자들의 정치행위와 권위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기를 경계한 것이 요점이다.

이 대화의 내용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알려 전해지고는 있지만 과거나 현재의 인간이 사고하는 틀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인식의 방법과 대상은 무한히 변화하지만 그 인식하는 개체의 사고형태는 지극히 구태의연하다. 특히 역대 정치인들에 있어서는 더욱 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은 권위적 인간을 거부하면서도 또 그러한 권위주의를 일상화하는 지도 모른다. 일종의 자포자기의 심정이랄까?

권위와 권력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부딪히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념어는 아마 ‘권위(權威, authority)’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부류의 권위들을 만난다. 정치경제를 비롯한 일상의 사회생활이라는 하위분류에서부터 상위분류로서 문화적 심리구조 같은 관념화된 영역에까지 말이다. 따라서 권위라는 개념을 오로지 한 방향으로 해석하기는 불가하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 여러 다른 뉘앙스로 쓰이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문?학술의 영역이나 미시적인 사회의 기능적이고 세세한 부분에 관여하는 전문영역에 있어서 권위는 순작용을 한다. 권위가 한 사안을 관통하는 일련의 과정에 개입하여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는데 일조하는 대표모델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사회구성원들의 승인을 받아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부분 정치, 행정 같은 국가와 관련한 권력의 형태에 있어서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권위=권력(power)으로 인식한다.

사회학자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서의 권위와 불평등』에서 권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권위라는 말은, 명령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신념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발적 복종이 있음을 뜻한다. 만약 이 도덕적 요소가 없다면, 권위는 강제와 기만이 되고 말 것이다.” 고금(古今)을 통틀어 어떤 조직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그 구조적형태는 반드시 계급과 계층을 구분하게 되는데, 상층계급의 존립근거는 국가를 유지할 만한 도덕성이 충분하다는 피지배 하층계급의 승인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 때 발생하는 권위는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발생하여 위로 부여된 권위이다. 권력의 발생은 아래, 즉 민중으로부터 시작한다. 과거 중국 사회주의의 대중노선도 이와 같은 맥락이고 이런 슬로건은 『서경(書經)』에 “하늘이 보는 것은 우리 백성들을 통해서 보고, 하늘이 듣는 것은 우리 백성들을 통해서 듣는다.”(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는 문구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지금 위정자들이 하고 있는 정치적 권위에 대한 기본 인식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집권 말기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적 태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능력을 떠나 도덕성의 문제이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전과사실은 각설하더라도 각 정부 요처의 기관장들이 청문회에서 보여준 위장전입, 투기, 탈세, 병역기피는 이제 기본이 됐다. 강남의 부자교회 장로출신 최고 지도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신이 용인하고 도와준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그 이후 속속 드러나는 전시행정과 심지어 충청권 과학벨트와 관련하여 라디오 방송에서 “그 공약은 내가 지난 대선 때 충청권의 표를 얻기 위해 했던 공약으로, 지금 공약대로 이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라고 발언했다. 자신의 대선 공약이 단순히 선거승리를 위한 옵션이라고 인정한 것인데 여기까지 오면 정말 할 말이 없다. 한마디로 권위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이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도 문다. 권위를 상실했지만 오히려 남북한 위기상황을 통해 껍데기만 남은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한다. 경제위기를 들먹이고 전쟁위협을 등장시키는 것은 대중의 공포심리를 이용한 공포정치의 한 단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이 정권 초반부터 항상 강조했던 법과 규범의 준수를 통한 사회질서 확립은 상실한 권위를 스스로 강제하고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권위주의적 발상이며 특히 국민에 대한 강요는 대중에 대한 국가 폭력과 마찬가지다.

‘아래에서부터 위로(自下而上)’

2011년 현재 대한민국 정권의 정치적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고 권위 아닌 권위가 계속 강요되는 뻔뻔한 현실에서 민중이 위정자의 권위에 대한 동의를 바탕으로 권력을 보장해주었다는 논설은 다시금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런 논설을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이 「원목(原牧)」에서 밝힌 바 있다. “목민자(牧民者)가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목민자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이것은 다산의 문제제기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백성이 과연 목민자를 위하여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목민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옛날에야 백성이 있었을 뿐 무슨 목민자가 있었던가. 백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한 사람이 이웃과 다투다가 해결을 보지 못한 것을 공언(公言)을 잘하는 장자(長者)가 있었으므로 그에게 가서야 해결을 보고 사린(四隣)이 모두 감복한 나머지 그를 추대하여 높이 모시고는 이름을 이정(里正)이라 하였고, 또 여러 마을 백성들이 자기 마을에서 해결 못한 다툼거리를 가지고 준수하고 식견이 많은 장자를 찾아가 그에게서 해결을 보고는 여러 마을이 모두 감복한 나머지 그를 추대하여 높이 모시고서 이름을 당정(黨正)이라 하였으며, 또 여러 고을 백성들이 자기 고을에서 해결 못한 다툼거리를 가지고 어질고 덕이 있는 장자를 찾아가 그에게서 해결을 보고는 여러 고을이 모두 감복하여 그를 이름하여 주장(州長)이라 하였고, 또 여러 주(州)의 장(長)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어른으로 모시고는 그를 이름하여 국군(國君)이라 하였으며, 또 여러 나라의 군(君)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어른으로 모시고는 그 이름을 방백(方伯)이라 하였고, 또 사방(四方)의 백(伯)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그를 우두머리로 삼고는 이름하여 황왕(皇王)이라 하였으니, 따지자면 황왕의 근본은 이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백성을 위하여 목민자가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 지금의 수령(守令)이 옛날로 치면 제후들인데 …… 거만하게 제 스스로 높은 체하고 태연히 제 혼자 좋아서 자신이 목민자임을 잊어버리고 있다 …… 그리하여 ‘백성이 목민자를 위하여 존재하고 있다.’란 말이 나오게 되었지만 그것이 어디 이치에 닿기나 하는가? 목민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또 「탕론(湯論)」에서는 『맹자』를 인용하여 문제제기하고 자답한다. “탕왕(湯王)이 걸(桀)을 추방한 것이 옳은 일인가. 신하가 임금을 친 것이 옳은 일인가. 이것은 옛 도(道)를 답습한 것이요 탕 임금이 처음으로 열어놓은 일은 아니다.” “그를 끌어내린 것도 대중(大衆)이고 올려놓고 존대한 것도 대중이다.” “한(漢) 나라 이후로는 천자가 제후를 세웠고 제후가 현장을 세웠고 현장이 이장을 세웠고 이장이 인장을 세웠기 때문에 감히 공손하지 않은 짓을 하면 ‘역(逆)’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른바 역이란 무엇인가. 옛날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추대하였으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추대한 것은 순(順)이고, 지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세웠으니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세운 것은 역이다.”

「원목」과 「탕론」은 아래에서 위로의 ‘자하이상(自下而上)’의 정치학 원론이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다산이 비판한 것은 민중이 통제받고 제약받는 모순적인 현실은 고증하자면 잘못된 것이며 ‘자하이상(自下而上)’의 체제는 회복해야할 대상이다. 다시 말해서 군주와 같은 통치자의 존재는 아래에서 위로 추대된 존재로서 민중을 위한 필요성의 가치에 한정되어 있던 것이지, 결코 그 위치나 지위가 자신을 위한 전권(全權)행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내용이 다산이 제시한 주권재민적(主權在民的) 정치이념의 근거이다.

쓰르라미는 봄?가을을 모른다.

다산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잘못 규정되고 강요된 ‘가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가짜 세상에서 사실상 국민의 동의를 상실하여 빈껍데기 권위를 가지고 강제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가짜가 국가권력의 정점에 있으니 암울하기 이를 데 없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정부에서 권위를 내세우는 진짜 이유는 집권 세력의 이익에 있다. 신문기사에서는 2011년에 무역수지 20억불 흑자가 예상된다고 떠들어대지만 지금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는 뚜렷하게 상승하고 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은 가계저축률이 높은 일본에 비해 엄청나게 떨어진다. 5월 9일자 뉴스에서는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2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신용대출 금리는 인상되고 대출금리 감면 혜택도 없어져 이명박 정권이 확실히 규정한 이른바 ‘서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은 물론이고 중산층의 도미노몰락도 예견되며 결국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탕론」의 마지막에서 다산은 『장자(莊子)』의 구문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莊子曰 ??不知春秋) 여름만 살고 가는 쓰르라미가 봄과 가을이 있다는 것은 알 턱이 없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풍경이 온 세상 전부인 줄 착각한다. 지금 가짜 권위를 차고 있는 자들이 그렇다. 변화는 없고 권력은 끝나지 않을 줄 안다. 그러면서 세상을 망치고 있다. 그런데 다산이 이 말을 마지막에 둔 것은 단지 위정자만 염두에 둔 비판이 아니다. 당시 전제군주제의 속류 지식인들이 식견이 고루하여 고금의 변화를 알지 못함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지금을 살고 있는 지식인들은 과연 나 자신이 가짜가 아닌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특히 대학교수의 경우 대학사회에서 알량한 보직교수의 유혹이나 개인의 대외적 명예, 금전적 이익 때문에 학문연구나 학생지도를 태만히 하면서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대학문화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대학의 문화는 한 나라의 문화를 규정해 왔고 기반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 대학의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바로 교수들이다. 평생직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교수사회는 투명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며 가깝게는 대학재단 이사회, 넓게는 문화 보수세력의 첨병이기도 하다. 지식계층이라는 사회적 권위를 누리면서 사회에 대해 외면하거나 무책임한 낙관론만 내뱉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여름 한철을 온 세상으로 아는 쓰르라미는 아닌지 자문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