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시간 속에서 [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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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다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인식함을 의미한다. 현실의 시간은 순차적으로 지나가지만, 과거의 시간은 오히려 거꾸로 돌아온다. 되돌아 온 과거의 시간과 기억은 현재의 나를 성찰하게 하고, 그 성찰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행복했던 시간과 기억이 현재의 나에게 슬픔을 주더라도 비극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할머니는 자신이 결코 과거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거를 회피하거나 부정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정기적으로 만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의 이러한 태도는 나에게 혼란을 주었다. 너무나 담담하게 전하는 과거의 이야기들에 어느 순간 의혹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엄청 난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고, 현재도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인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진실 되게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요시코와 마쓰시타와의 이야기도 사춘기 때의 상상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지어낸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왜 숙자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까?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차마 내색하지 못하고 갈등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할머니로부터 처음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김선생이가? 나가 마이 아푸다. 이번 주는 오지 마래이.” 전화선을 통해 힘없는 할머니의 소리가 들려 왔다. 뭐라도 물어볼 틈도 없이 전화는 끊겼다. 나는 급하게 할머니 집을 찾아 갔다. 마을은 여전히 고요했고, 이제 낯이 익었는지 동네 개들은 짖는 대신 꼬리를 흔들었다.

마을 가장 안쪽, 마을 입구에서 보면 지붕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게 자리 잡은 할머니의 집은 마을보다 더 고요했다. 대문도 없는 할머니의 집 마당에 들어서자 일찍 핀 코스모스 두 송이가 눈에 띄었다. 주인이 없는 방은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잘 정리된 방을 생경하게 보다가 길을 사이에 두고 있는 앞집 아주머니께 갔다.

“큰일 날 뻔 했제. 어데로 간다고 혼자 휠체어를 탔을꼬. 중심을 못 잡아서 휠체어하고 같이 요 밑으로 굴렀다 아이가. 이장이 병원 차 불러서 싣고 갔다. 그래도 김선생 헛걸음 한다고 전화하대. 참 두 사람 얄궂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 몸에 힘이 빠져서 겨우 걸음을 떼어 할머니 방 앞에 있는 작은 툇마루에 앉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

 

어둠이 내려앉는 마당에서

천천히 걸어도 마을 한 바퀴를 도는 데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 마을 내에서 이동할 때에도 할머니는 전동 휠체어를 타야 한다. 할머니의 뭉툭한 발로는 중심을 잡고 걸을 수 없다. 할머니의 발은 언제나 붕대가 감겨 있었다. 방안에서도 할머니는 서지 않는다. 엉덩이로 움직인다.

마을 입구에 있는 교회에 갈 때나, 병원에 갈 때를 제외하면 거의 방안에서 생활한다. 교회에 갈 때에도 전동 휠체어를 타야 한다. 그래도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잠시라도 서서 움직여야 할 텐데 그때 미끄러지면 어쩌나 싶어서 발바닥에 미끄럼 방지 돌기가 있는 꽃무늬 양말을 몇 켤레 사 드린 적이 있다.

내 손으로 신겨 드리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싫다고 했다. 방바닥 한 쪽에 그때 사드렸던 양말 중의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새 양말을 신고 어디로 갈려고 했던 것일까? 지난 번에 왔을 때, “조금씩 운동을 하는 게 어떨까요?”했던 내 말이 너무 방정맞았던 것일까? 그 손으로 양말을 제대로 신기나 했을까?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나는 그저 그렇게 앉아 있었다.

마당은 어둑해지고, 나는 조금씩 밀려오는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네 살 때였던가.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어머니는 골목 입구에 있던 어떤 집에 들어가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 호기심으로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골목길은 신기했다.

그때 어느 집에서 개가 짖었고, 나는 겁에 질려 소리 지르며 뛰다가 엎어졌다. 금방이라도 큰 개가 나를 덮칠 것 같은 공포에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때 한 아이가 뛰어와서 돌멩이를 던져 개를 쫓아내고 나를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무릎에 난 피를 닦아 주고 있을 때, 그 애의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오더니 나를 알아보았다.

그 애는 내 손을 꼭 잡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돌아서 우리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집에서는 이미 난리가 나 있었고, 대문 앞에 퍼질러 앉아 있던 할머니 손에 끌려 그 애는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양 손에 두 꼬마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집에 가서 고마움을 전했고, 그 애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같은 나이였지만, 그 애는 나에게 언제나 든든한 보호막이었다. 그 애와 함께 있으면 두렵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내가 전학을 가기 전까지 우리는 매일 아침에 만나서 저녁에 헤어졌다. 그리고 정확히 14년 후, 남포동 골목길에서 “리야”를 큰 소리로 반복해서 부르고 있는 그 애를 만났다.

나를 부둥켜안고 팔짝거리는 그 애와 달리 나는 뭔가 어색했다. 그 날, 그 옛날처럼 그 애의 손에 이끌려 그 애의 집으로 갔을 때, 온 식구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저녁을 먹고 우리 둘이 만났을 때의 이야기가 꽃을 피웠지만, 정작 나는 즐겁지도 않았고 유쾌하지도 않았다. 또 반갑지도 않았다.

다만, 부끄러웠다. 같은 나이의 친구에게 보호를 받아야했던 나약했던 유년의 그 기억이 부끄러웠다. 바보같이 다 아는 동네의 길도 모르고, 나보다 훨씬 작은 개에게 놀라 겁쟁이처럼 엎어져서 일어설 줄도 모른 채 울기만 했던 내 유년의 시간을 누군가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고, 현재의 내 모습을 신기해하는 그 분들이 좋게 다가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마당에 내려앉는 어둠을 보면서, 왜 할머니가 숙자와 연관된 기억을 말하려 하지 않는지, 요시코에만 머물러 있으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기억이 있다. 내가 어린 시절의 단짝과 함께 했던 시간이 부끄러워 감추고 싶듯이 할머니에게는 숙자가 감추고 싶은 기억인 것이다.

마주 보고 앉아서 함께 숙자의 시간으로 돌아가기에는 할머니와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기억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할머니와 내가 나란히 앉아 함께 바라볼 수 없는 강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요시코와 마쓰시타의 이야기만이 할머니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인 게다.

 

할머니를 다시 보다

할머니가 처음 구술한 시가 생각났다.

 

고요한 이 밤

풀에 벌레들

아름다운 멜로디로

내 심장을 울리네.

 

현해탄의 사랑이여

옛 추억의 첫사랑

– 내 전부를 바친 임이여

그리워 그리워서

하염없는 눈물에

내 옷깃이 젖었네.

 

소리쳐 통곡할 때

초승달도 울고 있네.

 

이 밤도 뒹구르며

몸부림칠 때

눈물이 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네.

<여름밤 > 전문

 

마쓰시타는 할머니의 ‘전부를 바친 임’이다. 평생을 홀로 그리워하던 사람이고, 그 그리움 때문에 죄스러움을 떨칠 수 없었다. 고요한 밤이 되면 풀벌레 소리에도 생각나고, 초승달만 보아도 보고 싶어서 눈물 흐르게 하는 사람이 마쓰시타이다. 그에 대한 그리움은 마쓰시타를 만난 19살부터 80세를 넘기는 현재까지 할머니의 영혼을 기억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부림 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에게 왜 ‘숙자는 말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할머니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 곳곳에서 기쁨보다 슬픔을 먼저 느끼며 살고 있다. 나는 할머니의 슬픔을 나의 관점에서 보고자 했던 것이다.

다시 할머니의 방문을 열어 보았다. 여러 번 본 방인데도 다르게 느껴졌다. 낡고 오래된 가구가 지키고 있는 방은 정갈했다. 새삼스럽게 할머니가 자기 주변을 매우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엌에도 처음으로 들어갔다. 역시 깔끔하고 허투르게 놓인 그릇 하나 없었다. 보일러실 겸 세탁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사용하는 사람 없이 오랫동안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하다못해 벗어 던져 놓은 옷가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 드린 양말만 한 구석에 없는 듯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옷차림도 유난히 정갈했다. 여름에도 그 작은 방에서는 시골 방에서 흔히 나는 냄새조차 없었다. 그것들이 할머니가 품위를 지키고 자존심을 잃지 않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나의 어리석음이여!

지금까지 할머니는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으나, 나는 텅 빈 공간에서 할머니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할머니가 다쳤다는 말에 예상하지 못했던 나의 반응들, 온 몸으로 느꼈던 허탈함과 정신적인 공허감은 지금껏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할머니와의 이별 예감을 몸으로 느낀 것이다.

할머니는 이제 자신의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고, 이별의 시간을 위하여 주변을 정리하는 것일 게다. 풀벌레의 울음을 아름다운 멜로디라고 말하면서도, 그 아름다운 멜로디에서 심장을 울리는 슬픔을 느끼는 할머니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마쓰시타가 옛 ‘추억의 첫사랑’임을 알면서 시를 통해 현재의 시간 속에 나타내는 것도 정리의 하나일 것이다.

인간은 과거 시간 속의 자신과 현재의 자기를 비교할 수 있다. 숙자와 현재의 할머니를 비교할 때 숙자는 행복과 슬픔의 경계선에 있는 인물이다. 한센 병이 찾아 온 이후 어머니와 잠시 함께 했던 시간 외의 그 많은 시간을 할머니는 홀로 현실을 버텨냈다. 남편이 옆에 있었지만, 내밀한 속내를 털어 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할머니의 정신은 언제나 갇혀 있었다.

천형이라는 표현 외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병을 평생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 몸과 마음의 상처를 혼자 다스려야 하는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할머니의 세상 바깥에서 오빠와 언니들이 애타게 찾았던 동생은 숙자였다. 현재의 할머니는 아니었던 것이다. 회상만으로도 따뜻하고 포근해야 할 기억이 현실과 연결되지 못할 때 그 기억은 슬픔이 된다.

내가 어린 시절 친구와의 기억을 누구와 공유하고 싶지 않듯이 할머니에게는 숙자가 공유하고 싶지 않은 기억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숙자에 대한 호기심을 내 마음 속에서 지워야 하지 않을까. 숙자를 의식하지 않아야 할머니의 마음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할머니도 삶의 짐을 조금은 가볍게 내 앞에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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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게이아(Hygeia)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이는 흔히 의약과 치유의 신으로 알려진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us)와는 또 다른 치유의 신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이나 약으로 환자의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신이라면, 히게이아는 환자 자신의 자연치유력을 돌봐주고 길러주는 치유의 신입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치료의학의 수호신이라면, 히게이아는 간호학과 위생학의 수호천사로 불립니다. [히게이아의 시학]은, <e시대와 철학>과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서 바로 치유의 여신 히게이아의 정신을 계승하여, 문학 특히 시를 통해 환자의 삶과 소통하고 환자의 자기 치유를 유도하는 하나의 치유인문학이자 인문의학의 성격과 내용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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