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찾다[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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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마쓰시타를 만나다

요시코가 17세 때 마쓰시타를 만났다. 주말이면 학교가 있는 부산에서 집이 있는 울산으로 갔다. 일제 강점기임에도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은 사각모를 쓴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 전신) 남학생들이 많았다. 명랑하고 활발한 요시코였지만,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많지 않던 때이기도 하고 남학생들의 모습이 눈이 부시게 보여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오바상, 일본어로 아주머니를 오바상이라고 불렀거든. 오바상이 나를 툭툭 치대.”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눈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다가 한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드니까 나를 보고 있는 기라. 그래 좀 있다 내가 보나 안 보나 한 번 더 보니까 아직까지 보고 있는 기라.” 마쓰시타는 읽고 있던 책을 아예 무릎 위에 내려놓고 요시코만 보고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64년이라는 시간은 멈추었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을 친구에게서 듣는 것 같은 가벼운 흥분마저 느껴졌다. 마쓰시타는 할머니의 작은 방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것처럼 시간의 강을 건너 할머니 앞에 앉아 있었다. 뭉툭한 손으로 뒤틀린 얼굴을 살짝 가리며 웃는 모습은 17살 소녀, 요시코였다.

부산이 가까워 오자 마쓰시타는 요시코가 앉아 있는 자리를 스쳐 지나가며 메모지를 교복 치마 위로 툭 던졌다. 그녀는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메모지를 치마 위에 그대로 두었다. 부산에 도착할 때쯤 치마 위에는 메모지가 수북했다. 차마 그것을 버릴 수가 없어서 반찬을 싼 보자기 안으로 밀어 넣고 기차에서 내렸다.

마쓰시타는 요시코를 쫓아와서 반찬 보따리를 뺏다시피 가져가서 들었다. 요시코는 마지막 전차를 타야만 하숙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빠르게 걷는 그녀 옆에서 마쓰시타도 함께 걸었다. “대신동 갈라면 어떻게 가느냐 이라데” 할머니의 말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마쓰시타는 대신동이 아닌 기라. 그 학교는 대신동하고 반대편에 있는 학교라.”

많은 경험들 중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경험은 시간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시간은 우리들의 과거를 뒤죽박죽 섞어 놓기도 하고, 낯익은 얼굴들을 기억 속에서 지우기도 하고, 어느 날 낯익은 얼굴이 낯설어 보이게도 한다. 생기를 띠며 소녀 같은 미소를 짓는 할머니의 얼굴은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었다.

 

사랑을 맹세하다

마쓰시타는 말이 없는 요시코를 따라 전차를 타고 대신동까지 가서 그녀가 내리자 따라서 내렸다. “자꾸 묻더라. 이름이 뭐꼬? 주소가 어찌 되노? 어디서 사노? 주말마다 울산 가나? 울산 집은 어데고?” 처음 듣는 할머니의 웃음 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지만, 이른 새벽 풀잎 끝을 또르르 구르며 떨어지는 이슬방울 소리를 냈다.

마쓰시타는 자기가 사는 집 주소를 요시코의 손에 쥐어 주면서, 역 앞이니 울산에 오면 꼭 들려주기를 당부하며 돌아갔다. 마쓰시타가 사는 집은 경찰서와 거의 붙어 있었고, 그녀의 집은 경찰서 뒤로 조금만 가면 되는 거리에 있었지만, 애써 피해 다녔다. 마쓰시타가 순사 부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방학 때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우체국에 가는 길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쓰시타는 자전거를 타고 쫓아오며 어떻게 알았는지 “요시코 요시코”라며 그녀를 불렀다. 우체국 안에까지 막무가내로 따라 들어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뛰다시피 집으로 오는 내내 요시코의 가슴은 콩당콩당 뛰고 있었고, 마쓰시타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이름을 부르(<첫사랑 1>부분>)”며 그녀를 따라왔다.

그날 저녁에 잡지 책 안에

편지 한 통이

담으로 던져 마당에 있더라.

주워보니 그 얄미운

마쓰시타더라.

그리고 이것이

일 년 동안 지속되었다.

옛날 속담과 같이

열 번 찍어서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더니

이것이 나를 두고 하는 소리더라.

결코 만나자기에

일 년 후에 둘이가 만났더라.

<첫사랑 1>의 부분

둘의 사랑 앞에서 그가 일본인 순사 부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장애가 될 수 없었다. 17세의 요시코와 마쓰시타는 “둘은 손을 꼭 잡고/동백섬에 들어가서 동백꽃을 꺾어/내 머리에 꽂아주고/내 역시 동백꽃을 꺾어서/그대의 윗 포켓에 꼽아 주며” “변치 말자고/손을 굳게 잡고 다짐하며/(< 첫사랑 1>의 부분) 맹세”했다.

그리고 이후 요시코의 삶은 두 손을 꼭 맞잡고 한 맹세에 갇혀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결혼을 한 다른 남자가 곁에 있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64년 전의 맹세에 묶여 있었다. 할머니는 시 <눈 내리는 날>에서 마쓰시타와 함께 한 시간들을 “팔십 평생을 살아도/눈 나리는 이 날이/잊혀 지지 않고/옛 추억이 그립더라.(<눈 내리는 날>부분)”고 말한다.

사랑에 대한 맹세의 기억이 없었다면, 어쩌면 할머니의 삶은 좀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사람 목숨이 먼저이니 일단 살고 보자’고 그녀를 설득했던 청년 김철수와 결혼하여 59년을 함께 살았지만, 요시코의 영혼은 굳은 사랑을 맹세했던 마쓰시타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별한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런 마음을 이야기 내내 표현하면서도 마쓰시타라는 이름 앞에서 17세의 소녀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 <이 여자, 이숙의>의 주인공인 이숙의 역시 결혼 생활 6개월 만에 월북한 남편을 잊지 못하고 53년 동안 홀로 지낸다. 불같은 사랑을 했지만 남편은 임신한 아내를 남쪽에 두고 월북하였다. 6?25가 발발하자 남하하여 빨치산을 조직하고 남부군으로 활동하다 잡혀 사형되고, 이숙의는 홀로 딸을 낳아 기르며 남편을 그리워했다. 이숙의도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남기고자 글을 썼지만, 책이 출판되기 전에 생을 마쳤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로즈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잭과 함께 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몸을 바다에 담근 채 “넌 꼭 살아야 해. 네가 원하는 삶을 행복하게 살아야 해”하며 바다 밑으로 가라앉던 잭을 죽는 순간까지 마음에 간직한 채 삶을 이어갔다. 다른 남자를 만나 아내로 어머니로 살면서도 잭을 떠나보내지 못했던 것이다.

요시코, 이숙의 그리고 로즈는 우연히 만나 사랑했고, 그 사랑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죽음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회상이 아닐까. 살아가면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사랑의 기억은 그녀들의 삶을 때로는 기쁨으로도, 때로는 슬픔으로도 채우면서 출렁거렸던 것은 아닐까.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무르다

17세에 만나 채 3년이 되지 않는 시간의 기억들이 한 사람의 삶을 64년 동안 지배한다는 현실 앞에서 망각의 힘은 무력했다. 할머니가 마쓰시타의 생사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한 기억들이 의식의 흐름을 통해 지속되고 있었기에 현재까지 설레임과 그리움을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와 이숙의, 그리고 로즈에게 공통적인 것은 사랑의 기억이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요시코와 마쓰시타의 이별은 개인이 저항할 수 없는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때문이었다. 한 인간의 힘으로 역사의 흐름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할머니가 했던 저항은 부조리한 현실을 부정하고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며 사는 것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무사히 삶의 저편에 닿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한 가운데에서 추억을 되살림으로써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마쓰시타와의 재회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이루어질 것으로 믿으면서 할머니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었으리라.

17세의 그녀는 마쓰시타와의 우연한 만남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1년 동안 이어지는 마쓰시타의 구애를 받아들일 때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디로 굴러갈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사랑하고 사랑받았으며, 사랑만이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을 통해서 우리는 본다. 사랑은 한 사람의 삶의 축을 가로지르며 척박한 현실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교사였던 이숙의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회주의자를 사랑했지만, 남편이 남긴 딸과 함께 역사와 이념의 장벽을 넘었다. 로즈는 자기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잭의 마지막 부탁이었기 때문에 잭을 가슴에 품고 또 다른 삶을 찾았다.

그러나 할머니의 사랑은 그들과 달랐다. 마쓰시타를 다시 만난다 해도 한센 병 때문에 그 앞에 나설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자신의 손으로 남의 집에 양자로 보낸 아들의 얼굴은 한 살 젖먹이 얼굴 그대로 가슴 속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날마다 조금씩 변해 가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할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죽음마저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을 때 할머니는 스스로 자신을 가두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추억은 그러나 죽음과 같은 현실의 삶에 때때로 생기를 주었다. 마쓰시타와 함께 했던 해운대 모래사장과 동백섬은 척박한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회상의 공간이었으며, 눈 내리던 날에 함께 만들었던 눈사람은 잊혀지지 않는 순수의 지점이었다. 현실의 고통을 과거의 기억에 의해 버틸 수 있었던 것, 이것이 할머니의 삶에서 추억이 지닌 가치였다.

 

나를 찾아서 길을 떠나다

할머니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잃어버린 존재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부단히 흘러가는 속성을 지닌 자연적인 시간은 추억에 의해서 할머니만의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무르는 것은 단순한 현실부정이 아니라 과거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부정하는 그녀만의 심리적 시간은 할머니의 의식이 의지적이든 무의지적이든 한센 병이 발병하기 이전의 시간 속에 자신을 두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잘 나타난다. 이러한 욕구는 할머니의 사진이 한 장도 없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할머니가 보여 준 앨범 속에는 젊은 시절의 청년 김철수에서 영정 속에서 웃고 있는 모습 등 모두 사별한 할아버지의 모습만 있었다. 한센 병 발병 이전의 할머니는 그녀의 기억 속에 요시코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물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지만, 오히려 과거에 갇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아닐까? 할머니가 나를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이숙의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자 했던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짧았던 사랑의 기억만으로 살아왔지만, 그 기억 속에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삶의 실존성을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온전함을 회복하는 길, 이숙의에게는 자전적 소설이었지만, 할머니에게는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시를 쓰고 자신의 시를 읽으며 스스로 치유하고, 치유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찾는 데에 마쓰시타는 할머니가 건너야 할 또 다른 장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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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게이아(Hygeia)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이는 흔히 의약과 치유의 신으로 알려진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us)와는 또 다른 치유의 신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이나 약으로 환자의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신이라면, 히게이아는 환자 자신의 자연치유력을 돌봐주고 길러주는 치유의 신입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치료의학의 수호신이라면, 히게이아는 간호학과 위생학의 수호천사로 불립니다. [히게이아의 시학]은, <e시대와 철학>과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서 바로 치유의 여신 히게이아의 정신을 계승하여, 문학 특히 시를 통해 환자의 삶과 소통하고 환자의 자기 치유를 유도하는 하나의 치유인문학이자 인문의학의 성격과 내용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의 말]

영화로 사유하기 (4) : 영화적 시점

글: 이지영(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시각예술인 영화의 가장 큰 특수성은 일단 ‘보여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어져 나오는 물음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동일한 대상이나 사태라 하더라도 ‘누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보여지는 ‘무엇’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무엇’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가시적인 ‘누가’와 ‘어떻게’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릴적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떠올려보자. 어른이 된 지금 그곳을 가면 기억 속의 그곳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어린 나의 눈에는 그토록 넓었던 운동장은 사실 아담한 크기의 운동장일 뿐이다. 운동장이라는 대상의 크기는 동일한데도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지 혹은 어른의 눈으로 보는지에 따라 다른 크기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단지 대상의 크기만이 아니라 그 의미까지도 다르게 나타난다. 만일 어른 눈에는 아담하지만, 아이에게는 거대한 어떤 장소를 영화가 보여주려고 한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아마도 아이의 눈높이 혹은 그보다 더 낮은 앵글을 선택할 것이고, 광각렌즈처럼 공간의 깊이감을 강조하는 렌즈를 사용하여 실제 장소보다 더 넓어보이게 촬영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대상이 완전히 동일한 크기와 앵글로 보이더라도 의미는 달라질 수도 있다. 영화 처음에 누군가의 시점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바다를 보여주고, 이야기가 진행된 이후에 동일한 이미지가 다시 등장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더이상 동일한 의미를 지닌 이미지는 아니다. 결국 영화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무엇’은 언제나 누군가가 특정한 방식으로 바라본 무엇이다. 따라서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미지는 누군가의 특정한 시점과 관점을 전제하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영화의 시점 문제는 지각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그렇다면 영화적 시점-지각 문제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사람들은 흔히 영화에서의 시점을 (누군가의 시점으로 귀속되는) 주관적 쇼트와 (누구의 시점으로도 귀속되지 않는) 객관적 쇼트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영화의 초반에 사건이 일어나게 될 뉴욕 도심의 빌딩숲을 보여주는 설정쇼트 (사건이 일어날 배경 장소를 먼저 보여주는 ‘소위’ 객관적인 배경 제시 쇼트) 를 생각해보자. 일단 이는 누구의 시점으로도 귀속되는 장면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쇼트를 흔히 객관적 쇼트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어지는 쇼트에서 건물의 옥상에 있는 누군가가 그 빌딩숲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면, 앞의 객관적 쇼트는 주관적 시점 쇼트로 순식간에 위상이 변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 인물이 어떤 건물을 바라보는 쇼트에 이어, 건물을 빙 둘러가며 보여주는 쇼트가 이어진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건물을 보여주는 쇼트를 앞 쇼트의 인물에게 귀속된 주관적 시점 쇼트라고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건물을 보여주는 쇼트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화면 안으로 앞 쇼트의 인물이 들어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기존의 구분법에 의하면 이 쇼트는 주관적이었다가 객관적인 쇼트로 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보여주는 자를 보여준다고 이 쇼트가 그리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술에 취해 혼자 걸어가는 남자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마치 카메라가 술취한 남자의 시점인 듯 비틀거리며 술취한 남자 본인을 보여줄 때, 이 경우는 주관적 시점 쇼트와 객관적 쇼트가 압축(contraction)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경우 1인칭과 3인칭 시점은 문법적으로도 명확히 구분되며 그 위치를 쉽사리 변경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객관적 쇼트와 주관적 쇼트의 구분을 확정짓는 것이 곤란한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만일 이런 일이 예외적인 예술영화에만 등장한다면 상황은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이런 상황은 일반적인 서사 영화는 물론 심지어 관습적인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빈번히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화적 지각의 성격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주관과 객관을 계속해서 오고간다? 이에 대해 들뢰즈는 영화적 지각을 ‘반-주관적 이미지(image mi-subjective)’라고 부른 장 미트리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카메라는 인물 속으로 완전히 동화되지도(주관적 시점), 그렇다고 인물과 완전히 구분되는 바깥에 있는 것(객관적 시점)도 아닌 영화와 함께 있는 공존재(Mitsein)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객관적으로 보이는 쇼트라 하더라도 실은 (주관적인)카메라가 그것을 보여주며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아주 주관적으로 보이는 쇼트라 하더라도 그 인물의 시점으로 온전히 종속될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성격을 일정 정도 담보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공존재로서의 반주관적 성격이 영화적 지각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영화 ‘히든’의 인트로영화적 지각의 반주관적 특성을 통해 영화의 긴장감과 주제를 아주 극명히 드러내주는 사례로 미하엘 하네케(Michael Haneke)의 <히든 Hidden>(2005)이라는 영화를 들고 싶다. 고정 카메라로 조용한 중산층 주택가 골목을 비추는 영상 위로 오프닝 타이틀이 뜬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사건도 등장하지 않고 오래도록 같은 장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 오프닝 장면을 설정쇼트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즉 누군가의 시점에 의한 장면이 아니라 그저 객관적으로 주택가 골목을 비춰주는 장면으로 말이다. 영상의 변화조차 없이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있을 때, 외화면 사운드로 남자와 여자의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때까지도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잠시 후 화면 중간에 가로줄의 노이즈가 발생한다. (컴퓨터 모니터로 다운받은 영화 파일을 보고 있던 필자로서는 ‘다운받은 파일이 잘못 되었나?’하는 의아한 시선으로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들은 다운받은 파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감시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주인공 부부에게 보냈으며, 가로줄 노이즈가 만들어진 영상 속의 골목길 풍경은 감시카메라의 시선이자 주인공 부부가 보고 있는 화면을 리와인드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객관적인 설정쇼트라고 의심없이 믿고 있던 관객들이 뒷통수를 크게 한대 얻어맞는 순간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히든>의 시점은 마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Las Meninas>에서 화가의 시선과 왕과 왕비의 시선 그리고 관람객의 시선이 그림 바깥의 한 점, 즉 그림 외부의 관람객의 공간으로 연장된 그림 내부의 소실점과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교차하는 점에서 중첩되고 교환되는 것과 유사한 구조를 형성한다.(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미쉘 푸코(Michel Foucault)의 <말과 사물> 1장을 참고하라. 내용도 길지 않으며 재미있는 분석이다.) 벨라스케스의 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 내부의 공간(가시적 공간)을 그림 바깥의 공간(비가시적 공간)으로 연장하여 그 안에서 교환되는 시선의 작용과 소실점의 의미 등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처럼, 하네케의 <히든> 역시 영화 내부의 디제시스 공간(영화의 서사로 형성된 이야기 공간)만으로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숨겨진(hidden) 의미들을 파악할 수 없다. 결국 비가시적으로 숨겨진 의미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객의 시선까지 연루시키는 영화적 시선의 교호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파악해야만 한다.

오프닝 장면 이후, 이와 유사한 장면이 또 등장한다. 이번엔 아니겠지 하는 순간 이 기대 역시 여지없이 배반당한다. 이런 식의 시선의 장난에 몇번을 속은 관객들은 이제 그냥 보여주는 ‘소위’ 객관적인 쇼트가 나와도 불안해진다. 매 장면마다 이것이 누구의 시선인지를 긴장하며 살피게 된다. 결국 조마 조마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도 관객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영화 ‘히든’의 한 장면 사실 영화의 엔딩크레딧까지 유심히 보는 관객은 매우 극소수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하네케의 이러한 장치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를테면 영화 속 디제시스 공간이 이 영화가 제시하는 전체 공간이 아니며, 엔딩크레딧과 함께 영화는 끝나도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진짜 사건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스크린을 뛰쳐나와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긴밀한 연관 속에 놓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장르 영화나 오락 영화의 경우,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영화가 끝나면 영화 속 사건이나 인물의 삶도 끝난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저 두어시간 즐거웠으면 그뿐이다.) 하네케의 <히든>은 영화와 그것을 둘러싼 현실 사이의 명확했던 경계선을 뭉개버린다. <히든>에서는 주관적 쇼트/객관적 쇼트, 가해자/피해자, 영화/현실, 상상적인 것/실제적인 것의 모든 식별가능했던 경계들을 넘나들며, 각각의 이질적인 목소리들이 서로의 차이를 무화시키지 않은 채 함께 웅성거리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매우 불편한 마음으로! 바로 이러한 사태를 들뢰즈는 자유간접화법(discours indirect libre)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들뢰즈는 이 자유간접화법이 앞서 설명했던 영화적 지각의 반주관적 성격의 대응물이라는 파졸리니(P. P. Pasolini)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히든>이라는 차갑고, 불편한 영화의 우회로를 돌아, 다시 영화적 지각의 반주관적 성격으로 되돌아왔다. 파졸리니는 언어학자 바흐찐(M. Bakhtin)의 자유간접화법에 대한 논의를 받아들여, 이것이야말로 자연적 대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영화적 지각의 반주관적 성격의 대응물이라고 주장한다. 이질적인 주체들의 차별화, 이질적 목소리들의 혼재 등으로 설명되는 자유간접화법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직접화법과 간접화법부터 살펴보자. 아마도 중학교 영어시간에 배웠으리라 짐작되는 매우 쉬운 문법이다. 예를 들어, 직접화법은 He said, “I will go to the beach tomorrow”.와 같은 방식으로 두 개의 분명히 구분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문장을 간접화법으로 바꿔보자. He said that he would go to the beach the next day.로 바뀐다. 문장부호를 없애주면서 관계대명사 that으로 연결하고, 주절과 종속절의 주어와 시제를 일치시키면, “내일 해변에 가겠다”고 외치던 생생한 목소리는 사라지고 보고자의 목소리라는 하나의 체계로 목소리들은 균질화된다. 바로 이 간접화법에서 주절을 생략하면, 자유간접화법이 된다. He would go to the beach the next day. 이 자유간접화법에서는 보고자의 뚜렷한 위치가 생략되고, 보고되는 자의 목소리가 간접화법에 비해 두드러진다. 하지만 직접화법에서 나타났던 생생한 보고되는 자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자유간접화법에서는 두 언술행위의 주체들 간의 단순한 뒤섞임이나 균등함은 존재하지 않고, 이질적이면서 상관적인 두 주체 간의 차별화만이 존재한다. 목소리들이 동질적이거나 균형을 이루는 것과는 거리가 먼 다성적인(polyphonic) 관계라 할 수 있다.

영어 문법에서 다시 영화로 되돌아오자. 이 이질적인 다성적 목소리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명확히 식별해낼 수 없는 주관적 시점/객관적 시점의 문제가 되며, 이 모든 시점과 더불어 존재하는 카메라의 시점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자유간접화법이 드러나는 방식은 다양해진다. 주관과 객관이 식별불가능하게 혼재된 영화적 지각 자체도 자유간접적이고, 카메라의 존재를 관객에게 느끼게 하는 방식 역시 자유간접적이다. 카메라의 존재를 느끼게 만드는 방식은 안토니오니(M. Antonioni)나 고다르(J. L. Godard)처럼 카메라가 인물과 서사를 따라가지 않고 마치 자신도 하나의 등장인물인양 강박적인(obsessive) 방식으로 버티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파졸리니가 많이 보여줬던 방식으로 서사의 구성에서 주절과 삽입절의 위계질서를 페기하는 방식들을 들 수도 있다. 우리는 서사에서 주절과 삽입절에 해당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이야기의 경우, 세라자데 공주가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밤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주절에 해당되고, 공주가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이 삽입절에 해당된다. 그런데 파졸리니의 영화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세라자데 공주가 아예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주절의 확고한 위치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야기되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등으로 이어지면서, 중심과 주변의 위계질서는 더이상 유지되지 않고 여러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불균등한 방식으로 혼재된다. 카메라의 움직임, 서사의 구성 뿐만 아니라, 영화의 자유간접화법은 영화와 현실의 관계로까지 확장된다. 허구와 실제의 구분이 유지되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의 형식에 대한 논의에서도 영화작가는 이제 더이상 창조자라기보다는 이 이질적인 목소리들을 배치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담지자로 역할이 변경된다. (이 새로운 이야기의 형식에 대해서는 이후 연재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므로 이번 호에서는 이쯤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결국 영화에서 시점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영화가 누구의 목소리에 중심적인 지위를 주는지를 파악해보는 일이고, 더불어 카메라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영화가 중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인물이 세계와 다른 인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살피는 것은 영화가 무엇을 중심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사유하는 것이 된다. 또한 카메라가 자신을 숨기며 말을 하는지 혹은 자신을 드러내며 말을 하는지 역시 영화가 영화속 세계에 어떤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는지를 드러내준다.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예로, 카메라가 자신의 존재를 가능한 숨기려고 노력하는 경우 영화는 마치 자신이 객관적이고 투명한 보고자처럼 시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의 경우로 브레히트가 말하는 ‘소격효과(Verfremdungseffekt)’의 영화적 버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의 영화가 주장하는 바를 거칠게 말한다면, 영화는 누군가의 시선에서 해석되고 만들어진, 절대 투명하거나 객관적이지 않은 것임을 카메라가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는 (가시적인) 영화가 (비가시적인) 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사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그것이 투명성을 주장하든 아니든간에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직접적으로 현실에 대해 발언을 해야지만 영화와 현실이 관계맺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관계없는 척한다 하더라도 영화는 현실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왜곡되었든 간에 관계를 맺고 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사유하게 해주는 것이 영화적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5

김남우(정암학당)

[에라스무스는 군주들과 귀족들과, 이어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을 비판한다. 그들은 주어진 본연의 과업을 남들에게 맡겨두고 자신들은 어리석은 행동만을 일삼는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연재에서는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갈 예정이다.]
우신 Stultitia이렇게 여러분은 내 생각에 어느 정도 나 우신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수사들의 부류들에 관하여, 이들이 예배에 있어서 웃지 못 할 여러 가지 것들과 고함소리를 가지고 일종의 독재 권력을 사람들 사이에서 행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바오로와 안토니오라고 믿습니다. 이제 나는 이렇게 내가 베푼 은공을 모른 체하는 배은망덕한 배우 나부랭이, 경건함을 가장하는 불경한 위선자들에 관해서는 그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군주들과 궁정 귀족들에 관해 몇 가지 언급하겠습니다. 이들은 타고난 혈통에 어울린다 싶게 탁 터놓고 솔직 담백하게 나 우신을 숭배합니다. 콩알 반쪽만큼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삶을 무엇보다 시답지 못한 것으로 기피할 것입니다. 군주의 자리에 앉는 것으로 인해 어깨에 엄청나게 커다란 짐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배신과 부친 살해를 저지르면서까지 권력을 얻으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군주의 자리란 곧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함이며, 국가의 공익 이외에는 어느 것도 생각하지 않음이며, 법률의 제정자이며 승인자로서 법률에서 손톱만치도 벗어나지 않음이며, 모든 공직자들과 행정관들이 청렴결백하게끔 이끌어 감이며, 행운별처럼 도덕적 탁월함으로 인민에게 커다란 안녕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불운의 행성처럼 심각한 불행을 가져다줄 수 있는 자로서 만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자리이며, 필부의 과오처럼 그의 잘못을 장차 아무도 모르게 깊이 숨길 수 없는 자리이며, 아주 조금이나마 정직함을 잃으면 그 결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역병을 초래하는 자리이며, 군주의 운명에 동반하는 많은 것이 그를 정의로부터 끌어내릴 것이기 때문에 설령 속임수에 의해서라도 쾌락과 방종과 아첨과 사치 등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고 더욱 염려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마지막으로 반역과 원한과 전쟁과 폭력은 말고라도 제 아무리 사소한 잘못일지라도 죗값을 치르게 하시며 행사한 권력만큼 이를 더욱 엄중히 따져 물으실 왕 중 왕에게 두려움을 가져야 할 자리가 군주의 자리입니다. 내 말하노니, 이런 것들과 이런 종류의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면, 물론 이를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하다면 말이지만, 결코 군주 된 자는 잠과 식사를 즐겁고 유쾌하게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군주들은 나 우신의 도움을 받아 모든 근심걱정을 신들에게 맡겨 두고 염려와 고민을 치워 둔 채, 영혼에 불쾌감이 들지 않도록 듣기 좋은 말만을 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이들은 열심히 사냥하고, 명마를 사육하고, 행정과 군인 요직을 판매하고, 백성들의 주머니를 털어 자신의 금고를 채울 새로운 방법을 매일매일 고안하고, 제 아무리 불공정한 일이지라도 명목을 바꾸어 공정하게 포장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군주의 본분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백성들의 마음을 제 편으로 얻기 위해 백성들에게 아첨하는데도 힘을 기울입니다. 여러분은 그려 보기 바랍니다. 법률적 지식은 전무하고,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흡사 적대자이고, 개인적인 유익만을 추구하고, 쾌락에 흠뻑 젖어 학문과 자유와 진리를 혐오하고, 국가의 안녕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오로지 모든 것을 자신의 욕망과 편리에 따라 측량하는 인간들을 말입니다. 더불어 이들이, 관련된 모든 덕목을 하나로 묶어 상징하는 황금 목걸이를 걸고 있으며, 모든 영웅적 용기에 있어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음을 뜻하는 진귀한 보석 왕관을 쓰고 있으며, 정의와 어느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공정을 상징하는 왕홀을 쥐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국가에 대한 어떤 극진한 헌신을 뜻하는 자줏빛 용포를 입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오늘날 군주들이 이런 장식물들에 비추어 자신들의 삶을 돌아본다면, 내 생각에 이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행여 익살스러운 해설자가 나타나 이런 모든 비극적 의복을 조롱하지 않을까 염려할 것입니다.

그럼 궁정 귀족들은 어떻습니까? 이들 대부분은 더할 수 없을 만큼 알랑거리며 비굴하고 어리석고 천박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이 모든 일에 있어 제일 앞서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만 한 가지 겸손을 보이며 양보하는 것이 있는바, 금붙이며 보석들이며 자줏빛 관복 등 덕과 지혜를 상징하는 장신구들로 몸을 휘감은 반면 정작 덕과 지혜의 연마 자체는 남들에게 양보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군주를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위가 주었음에, 군주에게 몇 마디 인사를 건넬 수 있음에, 군주를 부르며 ‘근엄하시고 존엄하시고 위대하신’ 등의 굉장한 호칭을 줄줄이 엮어 넣을 줄 앎에, 이런 낯간지러운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함에, 이런 아부를 멋들어지게 해냄에 즐거워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궁정 귀족 된 자들이 갖추어야 할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본다면, 여러분은 이들이 진정한 파이아케스 사람들 혹은 페넬로페의 청혼자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나보다 메아리의 여신이 더 잘 전달해 줄 것입니다. 이들은 벌건 대낮까지 잠을 자는데, 사제들을 고용하여 침대 옆에 대기시켜 놓았다가 침대에 누운 채로 재빠르게 예배를 마치고 나서 곧 조반을 먹는데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 점심 식사가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주사위 놀이, 장기 놀이, 점치기, 어릿광대, 익살꾼, 매춘부, 색정 희롱, 음담패설 등이 이어집니다. 그 사이 한두 번의 간식이 있습니다. 다시 이어 저녁 식사, 그리고 술잔치가 유피테르에게 맹세코 한 판 이상 벌어집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은 이런 삶에 물리지도 않는지 몇 시간, 며칠, 몇 달, 몇 년, 몇 백 년이고 이렇게 살아갑니다. 나 우신조차도 때로 이들이 허풍 허세를 칠 때면 역겨움을 느낄 정도인바, 귀족 여인들은 하나같이 모두 치맛자락을 남들보다 길게 늘어뜨릴수록 더욱 신적으로 보인다고 믿는가 하면, 귀족 사내들은 그들의 유피테르와 남들보다 가까운 사이로 보일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을 팔꿈치로 밀쳐 내며,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가 남들보다 무거울수록 더욱 스스로 대견해합니다. 그래 봐야 결국 돈 자랑에 힘자랑하는 것밖에 안 되는데도 말입니다.

왕정 귀족들의 모습에 열심으로 도전하는 혹은 거의 능가하는 자들로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외관을 가까이 자세히 살펴볼 것 같으면 이렇습니다. 줄무늬 장식이 있고 눈처럼 흰 것이 인상적인 복장은 한 점의 과오가 없는 삶을 의미하며, 쌍으로 모자뿔을 세우고 그 꼭지에 매듭 하나를 매어 둔 주교관은 이를 테면 구약과 신약에 대한 공히 절대적인 지식을 상징하며, 손을 두루 감싸고 있는 주교 장갑은 인간 세속 어떤 일에도 손대지 않으며 오로지 성사만을 주관하는 정결함을 나타내며, 지팡이는 그들에게 맡겨진 양 떼를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며 깨어 있음을 가리키며, 앞에 내세운 십자가는 분명코 모든 인간적 욕망을 이겨 냈음을 웅변합니다. 만약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의 복장과 기구가 갖는 이런 의미들을 음미해 보았다면, 내 말하노니, 그의 삶은 온통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은 스스로의 만족에만 매달려 매사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머지 모든 과업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혹은 거느린 수사들에게나 혹은 소위 보좌 사제들에게 맡겨 둔 상태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호칭 가운데 ‘주교’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의식하지 못하며, 주교란 수고하고 돌보고 간수하는 자임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긁어모으는 일에 관하여 그들은 ‘주교직’을 아주 정확히 수행하는바, ‘눈먼 파수를 보지’ 않습니다.

비극에서 희망을 줍는 광대, 안병대 [청춘의 서재]

연효숙 (아주대 연구교수)

 

어두운 무대 한 귀퉁이, 비탄에 잠긴 여배우가 핀 조명을 받으며 주저앉아 있다. 삶의 전부라 여겼던 연인과 이별한 뒤 반쯤 정신을 놓은 듯 보인다. 힘없이 혼잣말을 내뱉던 여배우는 점차 분노와 허탈감, 애증과 모멸감에 몸을 떨며 격앙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며 격한 대사를 토해내다 끝내 실신하는 장면이 이 연극의 절정이다. 나는 여배우로 분장한 딸의 눈에서 순간 ‘번쩍!’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배우가 먼저 울음을 터뜨리면 안 돼. 관객의 눈물을 끌어내야지.. 조바심으로 입이 마른다. 절규하며 쓰러진 여배우, 그리고 암전.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이어지고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끝내 눈물 흘리지 않은 채 슬픔과 고통의 연기를 해낸 딸이 자랑스러웠다.

 

청년 ‘햄릿’을 만나 평생의 인연 ‘셰익스피어’를 끼고 살다.

<셰익스피어 읽어주는 남자>의 저자 안병대 씨의 말처럼 ‘연극은 지독한 중독’이다. 무대 중독에 빠져 지내던 딸과 가슴 졸이며 함께 울고 웃었던 어미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 어린 십대의 딸이 혹독한 연습을 견뎌내며 수없이 오르내리던 무대, 그것은 땀과 눈물과 고행을 거쳐 새롭게 탄생하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기적 같은 체험이었다. 한바탕 꿈을 꾸듯이 나를 잊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펼치고 나면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져 내리는 무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곳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날개 없이도 날아다닐 수 있는 꿈과 상상의 세계이다. 그 무대에 서 본 이, 그 무대를 만들고 꾸민 이, 무대에서 함께 호흡해본 모든 이들은 기꺼이 이 중독에 함께 빠져든다. 셰익스피어를 읽어주며 조용한 발걸음을 이끈 저자는 어느새 훌쩍 무대 위로 뛰어올라 광대로 변신해 있었다.

이 책 프롤로그의 제목처럼 ‘독한 인연은 운명’인가 보다

안병대 씨는 ‘햄릿’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대학시절 야학활동을 하며 만난 ‘햄릿’은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손에 금방 잡히지도 않았고, 연하기도 강하기도 달기도 쓰기도 떫기도 맵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그날 이후 30년 동안 껴안고 산 셰익스피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독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햄릿’을 만나 처음 맛 본 인생의 온갖 맛과 냄새와 감촉은 청년 안병대에게 첫사랑이자 영원한 사랑으로 각인되었을지 모른다. 유한하고 변덕스런 인간과의 첫사랑이 아닌 자기 생애의 첫 궤적을 뚫고 들어온 강렬한 체험이기 때문에. 나무 주걱으로 엉덩이를 맞아가며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땀과 눈물로 익히고 올라선 소녀의 첫 무대, 나의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헌납해 버린 문고판 명작선 50권과의 만남, ‘햄릿’을 만난 저자의 떨림이 나의 추억 속에서도 파문을 일으킨다.

 

원형극장의 회전 무대 관람하듯 입체적인 내용 전개, ‘희망’의 다른 이름, 셰익스피어 비극

저자는 셰익스피어에게 고리타분한 학술적 접근으로 다가서지 않고 400년이란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연출가이자, 배우, 작가, 관객의 입장에서 친근하게 소개한다. 특히 ‘성격 비극’이라 명명한 셰익스피어의 비극 세계로 이끌면서 황홀하고 거친, 그렇지만 발을 빼고 싶지 않을 만큼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숲으로 과감히 이끈다.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못한 독자에게 저자의 이 같은 시도는 매우 참신하고 친근하다. 마치 무대 전체가 회전하는 원형 극장에 앉아 무대의 뒷면까지도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관객의 속마음을 꿰뚫는 노련한 솜씨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중세 연극에 빠져들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또 다른 이름의 희망이다’라는 프롤로그의 소제목에서 저자가 왜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몰입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총 37편의 희곡, 4편의 장시, 154편의 소네트를 남긴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작품 중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4편의 비극을 추려낸 저자는 꿈을 빌어 셰익스피어의 말을 옮긴다. “우주를 움직이는 궁극적인 힘은 완전한 선이지만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언제나 선이 이길 수는 없다” 지뢰처럼 널린 악에 의해 선도 함께 폭발하고 폐허가 된 우주는 새로운 선의 질서로 다시 세워진다는 셰익스피어의 법칙을 전하면서 저자는 선이 제물로 바쳐지는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그토록 강렬한 비극의 세계가 슬프지만 우울하지 않고 그 자체로 희망이 될 수 있어서 비극에 사로잡힌다고 덧붙인다. 나는 이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비극이 그 자체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셰익스피어는 도대체 인간을 선한 존재로 본 것인가, 악한 존재로 본 것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이끌고 저자는 다시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직접 답을 찾아보라고.

 

‘햄릿’, 중세를 걷어내고 고통스런 인간의 삶 투영하다

‘햄릿’은 표면적으로는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아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저자는 ‘당신은 누구인가?’를 묻는 존재론의 철학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세상과 역사에 대한 엄숙한 소명을 스스로 짊어진,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존재'(114쪽)였던 ‘햄릿’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무엇이 진리이고, 진실인가를 묻는 자였다. ‘햄릿’은 마치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온실 속의 화초와 같아서 세상의 악에 맞서 복수를 꿈꾸다 허망하게 쓰러지는 유약한 청춘으로 그려진다. 그는 세상도, 여자도 모두 역겨울 뿐만 아니라 복수를 꿈꾸더라도 마음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는 완벽주의자이며,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고뇌하기만 하는 우유부단한 인간이다.

그는 그대로 중세시대의 인간이며, 셰익스피어 자신이기도 하다. 16세기 중세의 화두는 ‘신’에 맞서는 ‘인간’의 성찰이 아니었는가. “마음속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말고 엉뚱한 생각일랑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지 마라. 남의 의견은 들어주되, 시비판단은 삼가야 한다”(83쪽)는 ‘플로니어스’의 대사가 운명 앞에서 촛불처럼 흔들리는 ‘햄릿’을 조롱한다. ‘햄릿’은 인간의 비극이 ‘신’과 ‘인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원형이다. 저자는 ‘햄릿’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중세의 어둠을 걷어내고 고통스런 삶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한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고통의 삶이 ‘시지프스’를 떠올리게 하는 우리의 삶 자체라고 덧붙인다.
‘죽이고 사랑하리라’ 핏빛 사랑의 파국, 천성만 남은 ‘왕’과 ‘광대’는 다를 바 없다

“앞으로는 슬픔이 사랑에 따르리라

사랑은 의심에 사로잡혀

시초는 달콤해도 끝내는 쓴맛으로 변하리라” (<비너스와 아도니스> 1136-1138행)

비너스의 구애를 뿌리치고 죽음을 맞은 아도니스가 자줏빛 아네모네로 핀 것을 보고 비너스가 한 예언이다.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모든 인간에게 이토록 잔인한 저주는 없을 것이다.

‘죽이고 사랑하리라’는 ‘오셀로’의 소제목은 비너스의 저주보다 더 짙고 비릿한 피 냄새를 풍긴다. 사랑 자체가 인간을 짧은 행복과 긴 슬픔, 그리고 때때로 피할 수 없는 비극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믿으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걷어치운 사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 맞는 말일까? 질투와 의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목 졸라 죽인 ‘오셀로’, 한순간의 광기에 휩싸여 평생토록 사랑한 아내를 목 졸라 죽인 철학자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98~1990)가 문득 겹쳐진다.

흑인 장군이었던 ‘오셀로’의 불같은 성격이 지고지순한 백인 아내 ‘데스데모나’와의 역설적인 사랑을 비극으로 몰아갔지만, 오히려 이들의 파격적인 사랑을 등불 삼아 현대인의 얕고, 약은 사랑을 들추어보게 된다. 나이도, 신분도, 조건도 뛰어넘은 이들의 사랑은 끝내 간교한 ‘이아고’에 의해 파멸의 쓴맛을 보았지만 21세기의 사랑은 시작부터 달콤하지도, 조건을 뛰어넘지도 않기에 방해받지 않고 안전하게 이어진다. 쓴맛을 보지 않는 사랑의 씁쓸함이 더 오래 남는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파탄에 빠지는 가장 불우한 왕 ‘리어 왕’이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 사랑하는 부모에 비해 효도하는 자식이 턱없이 희소하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오죽 충성스런 신하, 효도하는 자식이 없었으면 ‘충효’라는 덕목을 유교의 첫째가는 가치로 내세웠을까하는 삐딱한 시선이 생기기도 한다. 백두난발을 하고 광풍 속을 미쳐 날뛰는 ‘리어 왕’을 보면서 죽을 때까지 오래 오래 행복하고 안락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나약한 희망을 보는 듯해 서글퍼졌다. ‘늙음’은 약한 인간을 더욱 비굴하고 나약하게 만드는데, 그것조차 인정하지 못한 ‘리어 왕’은 마음의 눈을 갖지 못하고 나이 먹은 댓가를 가혹하게 받은 셈이다.

“모든 것을 다 주고 타고난 천성만 남았으니, 왕이나 광대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195쪽)라고 조롱하는 광대의 목소리, “노인이 쓰러지면 젊은이가 일어서는 법이지”(206쪽)라고 내뱉는 에드먼드의 대사가 인생의 비정함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숨도 멎지 않은 부모의 곁에서 물려받은 재산 다툼으로 혈안이 된 자식들을 보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양의 ‘양심’과 이리의 ‘욕망’을 지닌 나약한 인간, 무사는 시대를 바꾸고 광대는 역사를 바꾼다.

어느새 ‘맥베스’를 공연하는 극장으로 우리를 인도한 저자는 셰익스피어와의 대화로 압도해나간다.

 

셰익스피어에게 묻는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셰익스피어가 답한다.

“이 땅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어쩔 수가 없답니다.”

또 묻는다.

“희망은 없습니까?”

셰익스피어가 답한다.

“양심이 있습니다.”

악마 맥베스가 웃는다. (269쪽)

 

저자는 또 맥베스에게 묻는다.

“인간은 그렇게 나약한 것인가요?”

“양심은 양처럼 온순하고 욕망은 이리처럼 사납소” (276쪽)

왕의 살해에 동참하여 함께 손에 피를 묻혔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맥베스’. “인생이란 단지 걸어가는 그림자, 무대 위에 있는 동안은 뽐내고 떠들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가련한 배우에 불과한 것”이라고 읊조린다. 인간의 생에 대한 통찰이 저절로 묻어나는 셰익스피어의 명대사가 아닌가! 셰익스피어는 무대 위에서 뽐내며 떠드는 인간의 유형을 ‘무사’와 ‘광대’ 두 유형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무사는 세상을 움직이나 광대는 무사를 움직인다. 무사는 시대를 바꾸지만 광대는 역사를 바꾼다’는 말로 에필로그를 장식한 저자, 그는 진정한 ‘광대’를 꿈꾸는 자이며, 위대한 ‘광대’였던 셰익스피어를 영원히 잊지 못하는 사람이다.

 

참담한 비극 속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는 ‘광대’

인간을 꿈의 세계로 이끄는 무대, 그 무대를 제멋대로 활보하며 주인공을 빛나게도 하고, 날카로운 유머와 조롱을 날리며 관객을 손안에서 쥐락펴락하는 ‘광대’. 세상을 무대로 삼고, 인간을 배우이자 관객으로 삼아 4백년을 죽지 않고 살아가는 광대 셰익스피어를 만나게 한 또 한 사람의 광대, 그는 저자이다. 무겁고 암울하고 참담한 비극을 소재로 한 무대를 순회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보게 한 저자의 수고로움이 광대에 버금간다.

주인공인 남자를 파멸로 몰아가는 악한 여자들을 등장시켜 페미니스트들을 열 받게 했을 법한 중세인 셰익스피어의 한계는 동시대 조선에서 횡행하던 ‘여인잔혹사’를 떠올리면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다. 오히려 중세도, 근대도, 현대도 한참 지난 21세기 한국에서, 강요된 술 접대와 성 접대로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배우의 속절없고 어이없는 이야기는 과연 몇 등급의 비극에 속하는지 셰익스피어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 여배우의 복수는 ‘햄릿’의 복수보다 더 실현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이집트의 독재자 ‘카다피’를 보면 아직도 세상은 ‘무사’의 차지인 것만 같고, 일본이 당한 참혹한 비극 앞에서는 ‘희망’을 말하는 것이 오히려 ‘희망고문’을 하는 것이 아닐까 망설여진다. 이 악물고, 두 눈 질끈 감고 버텨도 더욱 모질고 독해지기만 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장악하는 비극의 정체를 낱낱이 드러내어 기어이 ‘희망’을 끄집어내라고 말해 주는 셰익스피어가 그립다.

나에게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갖는 의미란? 6-① [色 다른 책읽기]

김택중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연구강사)

 

어린 시절의 화두 ‘진화론’

명색이 서평이니만큼 서평 대상 도서에 대한 소개로 글을 시작하는 것이 아마도 보편타당한 전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진화’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내 어린(어리석은) 시절, 화두나 다름없었던 것이 바로 이 ‘진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득불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글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려 하는 점,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미리 양해 구하고자 한다.

나름 철이 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어렸던 고등학생 시절, 그 때까지 세상살이에 무슨 심각한 불만이 없던 나에게도 마침내 ‘의문’이라는 것이 하나 생겼더랬다. 딴에는 꽤 진지한 의문이었는데, 생물 교과서를 읽다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이 실려 있음을 포착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즉, 19세기에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생물은 오직 생물을 통해서만 이어진다는 생물속생설이 확립된 뒤로 자연발생설은 폐기되었다는 설명에 이어 그 유명한 ‘밀러-유레이 실험’이 소개되더니 생명의 기원은 결국 자연발생적이라는 자가당착적인 내용이 등장했던 것이다. 앞에서는 자연발생설을 실컷 오류라고 선언해 놓고 바로 뒤에서는 다시 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니?!!

물론 지금은 이 앞뒤 맞지 않는 모순된 설명이 모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엔 도대체 이 모순을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혜성처럼 내 앞에 출현한 것이 소위 ‘창조과학’이었다. 집안이 3대를 이어 내려온 통짜배기 기독교도(신교도) 집안이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자연히 습득한 기독교 문화의 틀 안에 머물러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간 알게 모르게 신앙의 갈등을 겪었던 나로서는 과학적 증거가 기독교 신앙과 성경 기록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이 제2의 복음이나 다를 바 없었다. 요컨대 창조과학에 따르면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시도된 ‘밀러-유레이 실험’은 거짓과학일 뿐이므로 그냥 무시해버리면 되는 간단한 문제였던 것이다.

사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들도 책에서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듯이 신앙은 신앙 차원에서, 과학은 과학 차원에서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가 안 생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19세기 말 개항 이후 수입된 기독교의 주류가 하필 ‘성경 무오류성’을 끔찍이도 챙기는 미국 보수교단들의 기독교였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면 발단이었다. 이들 교단은 성경의 기록이 모두 역사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신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이므로 내용상에서도 오류가 전혀 없다는 이른바 ‘성경 문자주의’를 개인 신앙의 진실성을 판가름하는 시금석으로 삼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경의 문자적 기록에 집착했다. 그러므로 신이 세상을 창조했음을 엄숙한 어조로 선포하는 성경의 첫 장에서부터 벌써 이들은 굳이 신이라는 존재를 상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과학적 사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듯이 개항 이후 20세기에 접어든 뒤로도 한국에서 진화론 자체가 본격적인 학문적ㆍ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로 진화론은 우파적인 진보주의의 자장 안에서 장려되기까지 했으며, 서양 문명의 압도적인 우세 가운데 기독교도들에게조차 자명한 과학적 사실로서 불가피하게 수용되었다. 반면 성경 무오류성 신학에 기초한 기독교 보수교단들은 20세기 초 미국의 성경 문자주의자들, 즉 근본주의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분리주의 노선을 선택하여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킴으로써 개인 신앙을 추구하는 쪽으로 후퇴해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이 역전되어 한국의 보수주의 기독교도들이 공세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즈음이었다.

 

창조과학에서 과학으로

1980년대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일단의 한국 기독교도 과학자들이 미국 창조과학계의 대부 격인 헨리 모리스 등의 영향 아래 창조과학의 세례를 듬뿍 받고 귀국한 시기였다. 이들에 의해 성경 문자주의는 과학이라는 날개를 달고 의도치 않은 재부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간접적으로는 미국의 창조과학계를 주도한 이들 상당수의 신학적 성향이 문자주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한국의 ‘창조과학자’들이─물론 선량한 의도에서 비롯되었겠지만─전국의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간증 형식을 빌려 정력적으로 창조과학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하여 기독교도 대중은 이들의 공세적인 ‘과학적 간증’을 경청하면서 크게 안심하였고, 안심하면 할수록 거꾸로 자연과학에 대한 무지와 오해의 폭은 넓어져만 갔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과학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창조과학이 나름의 방식으로 한국의 과학계에 기여한 바가 있음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간 자명한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던 생물 진화를 한 번쯤 의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본의 아니게 창조과학측이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진화론은 창조과학자들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공식 석상에서 단 한 차례도 부정되었던 적이 없다. 어찌 보면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창조과학이라는 종교적 프리즘을 통해 비로소 재조명되었고, 또한 각성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이는 그만큼 한국 학계의 진화론에 대한 이해 수준이 피상적이었다는 얘기도 된다. 1988년 국내의 한 TV 패널토론에 출연하여 진화론측 토론자들에게 맹공을 퍼붓고 이들을 수세로 몰았던 창조과학자들의 전투적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그럼에도 어쨌든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유사과학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다음과 같은 단순한 사실로써도 쉽게 반증이 된다. 즉, 창조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독교도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도여야만 창조과학을 수용할 여지가 생긴다.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이 자청해서 창조과학을 수용하거나 나아가 창조과학자가 된 사례는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다. 단 한 명도 없다. 반면 진화학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비기독교도나 무신론자의 입장을 취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전혀 없다. 성경 문자주의를 신봉하지만 않는다면 설사 기독교도라 할지라도 무리 없이 진화학자나 진화론자가 된 사례를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생물학자 전방욱이 바로 그러한 한 예이다.

창조과학측이 공격했고 무디어진 검이나마 지금도 여전히 휘두르며 공격하고 있는 진화론은 기실 알고 보면 허버트 스펜서류의 우파적 논리, 즉 사회진화론으로 각색된 일종의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 찰스 다윈이 구상하고 제시했던 진화론의 본령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그러나 창조과학측은 현재도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사회적 해악의 진원지로 진화론을 지목하면서 찰스 다윈과 진화론을 분별없이 비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창조과학이 이처럼 사회 전면에 등장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는 내가 알기로는 미국과 한국 밖에 없다. 미국도 그러하지만, 한국에서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던 까닭은 창조과학이 대체로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회의 세에 편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에 걸쳐 한국의 보수 기독교회에는 노골적인 근본주의 경향 대신 미국의 영향을 받아 이른바 복음주의라는 한층 세련되고 완곡해진 형태의 신학 사조가 등장하였다. 미국에서 이 복음주의는 레이건 공화당 정부의 집권과 맞물리면서 전반적으로 보수화된 미국 사회의 기류를 타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복음주의가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사회를 기독교의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형태로 발화되었다. 다소 느슨한 방식으로 전개된 이 비공식적이고 범교파적이었던 개혁 운동의 지도자들은 그간 사회, 즉 세속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던 교회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적극적으로 사회를 수용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였다. 나아가 이들은 학문의 각 분야 또한 기독교의 시선으로 접근해 들어가 재해석하고자 했는데, 이 때 신앙의 과학적 정당성이라는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 우연히도 창조과학이었다. 이는 복음주의자들의 상당수가 국내 창조과학의 출발점인 ‘한국창조과학회’와 어떤 식으로든 연계되어 있었던 데에 기인한다.

한국의 보수 기독교회가 내부적으로 진화론 대신 창조과학을 별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서 기독교도들 상당수가 결과적으로 자연과학적 상식에 무지한 무리가 되어 갔다면, 그 사이 한국의 진화학계는 서구 학계의 논의들을 흡수하면서 차분히 내실을 다져 나갈 수 있었다. 이 책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는 사실상 그러한 내실화의 한 열매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진화 담론을 주도해 왔던 서구의 학자들이 아닌 한국의 각 분야 학자들이 찰스 다윈과 진화론을 소화해낸 상태에서, 그간 리처드 도킨스 같은 전투적 진화론자들의 논리를 지나칠 정도로 편식해 온 한국의 독자 대중에게 ‘변화(다양성)’와 ‘우연(무목적성)’을 핵심으로 한 진화론의 과학적ㆍ사상적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라면 미덕일 것이다. 다만 대담 형식의 책이므로 진화론이나 주변 학문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하기엔 다소 미흡하다는 태생적 약점을 안고 있다.

 

생명에 대한 존중

나는 애초 창조론에 대한 변증을 목적으로 진화론에 다가선 위인이다. 그러나 기독교라는 종교의 굴레를 벗어난 지금, 창조론은 아스라한 과거의 추억과도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사실 성경에 근거한 부동의 진리를 앞세워 과학적 방법론으로는 완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자연의 일부 메커니즘을 초자연적 존재, 곧 신에 의탁하여 그때그때 해소하려는 입장이 과연 과학의 영역에 속할 수 있는지 나로선 의문이다. 그러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수사학적 차원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와 그닥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전지전능한 성경의 창조주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비유하는 나의 이러한 발언이 창조과학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특정 종교의 경전 내용을 전제로 한 과학’이 더 괴이하고 우스꽝스럽기조차 하다. 이는 ‘창조과학’이 ‘지적 설계’로 옷을 바꿔 입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들도 지적하고 있듯이 과학적 설명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계속 변한다. 변하지 않고 정체돼 있으면 그건 이미 과학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정설에 기초하여 계속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과학 활동이 아니라 포교 활동에 해당한다. 창조론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진화론은 변해 왔고, 지금도 논쟁을 거듭하면서 계속 변하고 있다. 이렇듯 진화의 메커니즘을 풀기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 류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과학의 ‘자연주의’적 접근 방식은 지극히 정당하다.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동양철학자 김시천이 적절히 언급했듯이 자연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으로 보는 그러한 자연스러운 자연주의 말이다.

끝으로, 주제넘은 짓 같지만 의학과 생물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진화의 메커니즘이든 창조의 과학화든 그 해명에 몰두하고 있는 분들께 바라는 것 한 가지 조심스레 언급하고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내 경험상 진화론자든 창조론자든 생명 현상을 환원주의적 시각으로 보는 분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개인적인 편견인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공학 분야를 전공하신 분들에게서 이러한 경향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진화론의 입장에 선 분들은 부지불식간 유물론에 기초하여 사람의 몸을 기계로, 창조론의 입장에 선 분들은 부지불식간 영육 이원론에 기초하여 사람의 몸을 썩어 없어질 것으로…. 그러나 내가 보기에 생명 현상이란 그렇게 쉽게 단정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생명 현상에 경이를 표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자체로서 가지는 놀라운 생명력과 인내력 때문이다. 자신의 탐구 대상에 대한 존중은 학자라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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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여섯 번째 책은, 최종덕 교수가 역사학자 임지현, 생물학자 전방욱, 의철학자 강신익, 동양철학자 김시천과 대담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휴머니스트 펴냄)으로 김택중(인제대 의대 연구강사), 강경표(중앙대철학과 대학원 박사수료), 백준수(인천석남초등학교 교사)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진화론, ‘좌우’의 두 날개로 날다 6-② [色 다른 책읽기]

강경표 (중앙대 철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진화론에도 색깔이 있고 좌우가 있다!

과학에도 색깔이 있다. 정치판에서나 등장하는 좌파와 우파라는 단어가 과학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고, 아니면 과학계도 좌파, 우파를 따진다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학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색깔이 없을 수는 없다. 과학이 항상 중립적이라면 그야말로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못하다. 특히 진화론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거의 독학으로 진화생물학을 공부해 왔다. 철학을 전공하고 있기에 대학원에서 진화생물학 공부와 관련된 도움을 받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무작정 책 읽기부터 시작했다. 국내?외 여러 서적들을 읽으며 내가 알게 된 사실은 국내의 진화생물학논의가 상당히 우(右) 편향적이라는 점이다. 한쪽으로 쏠린 저울의 균형을 위해서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진화생물학 논의도 있어야만 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야 말로 이 사회가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라는 책에 ‘진보적 혹은 좌파적 진화론 인문서(人文書)’ 라는 별칭으로 불러보고자 한다. 물론 이런 식의 별칭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진화생물학에는 좌우라는 두 가지 입장이 분명 존재한다. 특히 한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입장 차이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어쩌면 진화생물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많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 정치적 논의가 포함된 진화생물학을 구분하는 일은 지금까지는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중의 관심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진화생물학 관련 서적들의 인기 속에 짭짤한 수익과 명성을 즐거워하며 진화생물학이 상당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화생물학의 좌우 논쟁은 70년대 E. O. 윌슨의 <사회생물학>이라는 책에서 비롯된다. 그는 이 책에서 생물학은 유전학이나 분자생물학 같은 생물학에서 분화되어 발전한 학문 영역을 아우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분석하는 사회과학도 생물학으로 통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는 개체란 유전자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파격적인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한편 그 당시 미국에는 진보적인 사회 분위기의 영향으로 생물학계에도 이념적으로 좌파를 선언하는 학자들이 여럿 배출되었다. R. 레빈스, R. 르원틴, S. J. 굴드가 대표적인데 레빈스와 르원틴은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기존의 지배체제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고, 다윈의 진화론과도 모순된다고 비판하면서 ‘변증법적 생물학’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들 중 가장 잘 알려진 학자인 굴드는 생물학계의 ‘칼 세이건’이라고도 불리는데, 대중적 글쓰기에 능했던 그는 여러 종의 대중과학서를 통해 사회생물학이 지닌 정치적 위험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진화생물학을 서구로부터 수입하고 연구하면서도 그것이 가진 정치적 위험성을 알리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는 못했다. ‘제 얼굴에 침 뱉기’라도 되는 듯 흉이 될 만한 것들을 숨기고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치장을 그만두고 반성의 첫걸음으로 좌우의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때다. 그러기위해서는 우리의 좌파 진화생물학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작은 논쟁의 불씨를 당기다

내가 보기에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은 이러한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난 국내의 첫 저술이다. 물론 지금까지 색깔 있는 번역서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국내 학자가 펴낸 책으로서는 최초라고 본다. 5인의 특색 있는 학자들이 3년의 세월을 보내며 완성한 이 책은 분명 진화생물학 좌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최종덕, 임지현, 전방욱, 강신익, 김시천이 대담한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에 대한 첫 반응도 역시 이러한 색깔이 주목되어 나왔다. 2010년 8월 23일 출간 직후 나온 장대익 교수의 비판적 서평이 그것이다.

장대익 교수는 “진화론 제자백가… 다윈의 선택은?”(프레시안 2010. 8. 27)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좌파 진화생물학 진영에 대한 포문을 연다. 이 글에서 장대익 교수는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이라는 꼬리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진화론 논쟁이 이념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너무 많이 봐 와서 그런지 이젠 좀 그런 비판에 무덤덤해지는 것 같아요”라는 말로 이 책이 가진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고 한다.

물론 장대익 교수의 비판적 서평에는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가 가진 문제점들 또한 비교적 잘 지적되어 있다. 일일이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만 책이 완성되기까지 3년 동안 감수가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스러운 정도의 오기와 근거가 불명확해 보이는 수치들 그리고 논리적 비약이 있는 사실 관계들은 이 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퇴색시키는 정도는 아니다. 또한 지적한 내용들은 내가 보기에 모두 수정이 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장대익 교수의 서평을 보면서 기대했던 것은 최종덕, 강신익 두 학자와의 열띤 논쟁이었다. 나만의 기대인지는 몰라도 이 기회를 통해 우로 치우친 진화생물학이 이와 다른 입장의 진화생물학이라는 무게 추에 의해 균형 잡힌 진화생물학으로 한국 사회에 뿌리내렸으면 하는 희망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후학으로서 선배 학자들의 멋진 토론을 보았으면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기대하는 그런 논쟁은 없었다. 하지만 논쟁의 불씨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라는 책을 통해 생길 수 있었다는 의미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작지 않은 성과라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또 다른 좌파를 위하여

좌파 진화생물학이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 진영과 불편한 대화를 시작할 쯤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나왔다. 문제는 마르크스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러한 문제는 이 책의 구성이 야기한 문제일 수도 있다. 실상 최종덕 교수는 과학철학자이고 임지현 교수는 역사학자이며, 전방욱 교수는 생물학자, 강신익 교수는 의철학자, 김시천 선생은 동양철학자이다. 대담집이라는 특성과 함께 5인의 각기 다른 학자들이 자신의 학문과 결부된 진화론을 이야기하다보니 그 구성이 다채롭기는 하지만 범위가 너무 넓어진 것에서 발생하는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책의 첫 부분에서 임지현 교수와 최종덕 교수의 대화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라는 시대 상황으로부터 진화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임지현 교수의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빅토리아 시대 이야기는 필자 본인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에서 언급된 마르크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또 다른 이들이게는 불편한 점이 있었나보다. 유범현 선생은 “진화론, 변화의 과학이 세상을 말하다”(레프트21 40호 2010. 9. 11)라는 장문의 서평을 통해 “이 책의 대담자들이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진화론 이해를 왜곡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 것은 분명 이러한 맥락의 반응이다.

대학 때 잠시 접해본 마르크스의 몇몇 서적들로, 나로서는 감히 말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좌파=마르크시즘’이라는 절대 공식이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또는 한국의 좌파들에게 마르크스가 상당히 신성시되는 상황에서 두 대담자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가 한국의 좌파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 ‘좌파적 진화생물학 인문서(人文書)’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내 입장에서, 좌파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게다가 마르크스를 잘 알지 못하는 내게 임지현 교수의 논의들은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게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면서도 의심스런 눈초리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유범현 선생의 서평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임지현 교수가 유범현 선생의 서평에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새로운 시도가 주는 즐거움

내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실 최종덕 교수와 강신익 교수가 ‘생태주의적 진화론’을 논한 부분과, 김시천 선생과 동아시아 전통 담론과 진화론적 사유가 함께 논의되는 부분이었다.

진화생물학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도브잔스키는 “진화를 빼고 나면 생물학은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 내가 진화생물학을 처음 접하던 시절 이 말이 주는 의미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생물학에서 진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큰 것인지 그 당시에는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강신익 교수의 의철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와, 아직은 조금 거칠게 보이는 ‘생태주의적 진화론’이라는 개념은 도브잔스키의 말 만큼이나 묘한 매력이 있다. 사실 나는 ‘생태주의적’ 이라는 수식어가 이미 진화생물학에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극적으로 수식어를 붙임으로해서 진화의 지평이 좀 더 명확하고 균형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생태’ 라는 말을 통해 개체의 진화생물학이 아닌 전체의 진화생물학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파격적인 부분은 단연 동양철학자 김시천 선생과의 대담 부분이다. 과학이나 서양학문을 전공한 다른 대담자들과 달리, 과학자도 아니고 서양 학문을 연구한 학자도 아닌 김시천 선생의 대담을 보며, 나는 인문학자의 길을 다시금 생각한다. 학문의 기준이 동양과 서양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구조로 양분된 사회에서 김시천 선생의 시도가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교육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그런 생각을 바꾼 터였다. 내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어느 날 한국철학사에 관한 저술을 읽다가 목차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없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한국철학사에는 한국의 현대철학이 없었다. 실학에서 끝나버린 한국철학사, 그 때 내가 느꼈던 공허함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서양의 현대 철학자가 지껄이는 뜻 모를 소리를 부러워하며 책을 읽어대고, 지껄여봤지만 정작 내가 속한 사회의 현대철학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현실을 마주한 순간 내 생각은 바뀌었다. 내가 김시천 선생의 대담을 유심히 보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동양철학에 대한 파격적인 재해석과 당당함, 진화론과의 조우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나가려는 의지, 이것이 내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를 통해 본 김시천이다.

 

진화론, 이제 좌우의 두 날개로 날 수 있었으면!

내가 다윈을 만난 것은 10여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경 윤리를 전공하고 싶어 석사과정을 시작했지만 본의 아니게 ‘칸트 철학’을 전공하면서 혼자서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진화생물학 공부를 시작했다. 순수한 인문학도인 내가 거의 독학으로 해 온 공부이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닫게 된 것은 ‘장님이 코끼리 잘못 더듬으면 밟혀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석사를 마칠 무렵 공부에 대한 심한 회의가 들었다. 그 와중에 학교 공부와는 거의 별로도 읽기 시작한 몇 권의 책들 중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이라는 책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진화생물학 내부의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거리를 두게 된 것이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현재도 나는 진화생물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주된 관심사는 진화론적 윤리학을 수립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공생, 협력 같은 공진화와 그 메커니즘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한 가지 고백하고 싶은 것은, 나의 공부과정에서 중요했던 그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 라는 책의 번역자가 전방욱 교수라는 사실을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를 읽고나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외에도 전방욱 교수가 번역한 여러 책들을 읽으며 공부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창피하다고 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당시 전방욱 교수의 번역서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공부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최종덕 교수를 굴드의 추종자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내가 최종덕 교수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하이젠베르크의 저서를 통해서였다. 석사논문의 주제를 칸트의 공간 개념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리학에서 말하는 공간 개념에 관한 책들을 보게 되었고, 그 중 하이젠베르크의 얇은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의 번역자가 바로 최종덕 교수였다. 실제로 최종덕 교수는 물리학을 공부한 후 독일에서 양자역학에 관한 철학적 연구로 학위를 취득한 학자이기도 하다. 석사 이후 굴드의 책을 포함한 진화생물학 책들을 읽으며 공부를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최종덕 교수가 독일 유학시절부터 진화론을 연구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최종덕 교수는 자의든 타의든 한국 땅에서는 ‘좌파적’ 입장의 진화생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간에 내가 보기에 최종덕 교수는 최소한 자신이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의 깨끗하지 못했던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이라는 과거를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몇 안 되는 지식인이다. 또한 진화생물학의 논의가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좌파 진화생물학의 무게 추의 역할을 이 땅에서 해 주고 있다는게 나의 소견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는 과학저술이면서 인문학 저술이다. 또한 대담자의 전공이 다양한 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 견해와 통찰이 녹이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무척 어려운 책이다. 또한 아직까지는 좋은 서평보다는 비판적 서평이 앞서는 글이기도 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책이지만 진화생물학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불씨가 되어, 우리 학계와 사회에서 진화론의 넓은 담론 영역에서 좌우의 균형이 잡힌 학문적 논의가 살아날 수 있는 계기의 역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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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여섯 번째 책은, 최종덕 교수가 역사학자 임지현, 생물학자 전방욱, 의철학자 강신익, 동양철학자 김시천과 대담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휴머니스트 펴냄)으로 김택중(인제대 의대 연구강사), 강경표(중앙대철학과 대학원 박사수료), 백준수(인천석남초등학교 교사)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희망을 먹는 인민과 ‘탐(貪)’이라는 자본 [시대와 철학]

희망을 먹는 인민과 ‘탐(貪)’이라는 자본 [시대와 철학]

 

박종성(한철연 대외협력부장)

 

-한진중공업, 그 야누스의 얼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촉구 및 경찰 강경진압 규탄 농성 중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 최종덕장맛비가 다시 시작되었고 그 빗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던 여름밤, 화면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언과 오버랩 되어 피겨 여왕의 눈물 어린 얼굴이 비춘다. 환호와 기쁨의 눈물이다. 그러나 전자 신문 다른 한쪽에는 숨죽이며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자본의 탐욕과 싸우는 이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다. 절망과 분노의 눈물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건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노동자들에 머물지 않는다. 기륭전자, KTX, 이랜드,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아산공장 등의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사태는 우리에게 이중의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그 하나는 맑스,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마지막 구절이다. 다른 하나는 이 슬로건이 “만국의 자본이여 자유로울 지어다”로 버전업되어 들려온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난 3년간 수주실적이 없어 정리해고라는 명분 쌓기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한진중공업은 결국 경영난을 이유로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였다. 올해 초 700여 명이었던 노동자는 6월 말 100여 명으로 줄었다. 나아가 한진중공업은 노조 파업 철회 직후 아시아 선사로부터 컨테이너선 4척(총 2억5000만 달러), 방위사업청으로부터 해군의 해상작전 지원 및 물자보급용 군수지원정 2척을 수주했다고 6일 밝혔다. 자본이라는 야누스의 얼굴은 이렇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이것이 수주실적이 전무하다고 말하면서 정리해고의 명분을 만들고 실행한 한진중공업의 얼굴이다.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 발표 다음날 174억 원 주식 배당금을 챙겼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 수빅조선소이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은 2008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으로부터 수빅조선소 선소 건설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수요 받았다. 수빅조선소는 한중 해외 계열화사 7개중 하나이다. 허민영 박사에 따르면 수빅조선소는 한진중공업이 3년간 수주 실적이 없던 시기에 18척을 소화했고 2011-2012년에도 35척이 인도될 예정이라고 한다. 수빅조선소의 임금 수준은 국내의 10%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했다는 한진중공업의 주장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왜냐하면 위에서 보듯 수빅조선소로의 수주 집중이라면 그것은 경영전략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정리해고의 요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정리해고의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의 악화는 한중의 지분 1%를 가지고 있는 조회장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에게는 삶의 공포 그 자체이다.

이렇듯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 신자유주의, 즉 자본의 지구화는 인간의 생명을 벌거벗은 존재로 전락시키고 그 생명 아닌 생명의 피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자본의 지구화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노동의 유연화는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을 위한 정리해고의 유연화이고 이는 결국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귀결되고 만다. 한진중공업이 다시 수주물량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리해고로 부족한 노동자를 불안정 노동자로 채울 것도 불 보듯 자명할 것이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의 유장현 교육선전부장에 따르면 수주 물량을 제대로 생산하려면 3000~4000명 정도가 필요한데, 현재 영도조선소에는 정규직 비해고자 620명과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700~800명만 일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자본은 자신의 안정된 잉여가치 운동을 위해 불안정 노동자라는 생명의 불꽃을 희미하게 만든다. 타워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크레인에서 쓰는 마지막 글’에 따르면, “임금은 다른 조선소의 60-70%밖에 안 된다. 반면에 영업 이익은 타 조선소 평균의 3배이다.” 이렇듯 자본의 무한한 소유의 집착은 인간의 관계를 사물의 관계로 전화하며 임대주의적 관계로 전락시킨다.

-자본에 의한 삶의 분열, 주권의 상실

 

인간의 삶이 사물의 관계로 전락되면 될수록, 자본이 인간의 생명을 처리하는 방식은 야만의 상태를 지향할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간의 사물화에는 윤리와 인륜의 자리는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관계를 사물로 전락시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통제와 처분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보다 자본의 활동을 비호하는 법원의 판결은 생명에 대한 죽음과 공포의 폭력이다. 예를 들어 해고 노동자들의 삶은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 신청이 기각되어 노조원의 사원아파트 퇴거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받아들여지면서 삶의 희망을 급속하게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파업 참가자들의 동료에 대한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그 수는 줄었다. 아이들과 가정 때문에 파업에서 이탈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은 해고자와 비해고자, 파업 참여자와 비참여자로 분열된다. 이렇듯 분열의 정책은 동료, 이웃, 아이들의 친구마저 갈라놓는다.

자본에 의해 분열된(?) 이들의 가족 또한 서로 마주치는 것에 대해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자본에 의한 분열과 그로 인한 인륜성의 상실이 자본의 탐욕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죄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배적 허구가 자본의 정치이다. 자본은 언제나 자본이라는 가치만을 최선의 것으로 간주하고 그 밖의 다른 가치는 배제하는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이다. 이는 결국 자본의 가치를 증식하고자 하는 나르시시즘의 문화를 강요한다. 그리고 이 문화에 인간의 욕망을 빠뜨리고자 한다. 자본의 나르시시즘은 인간의 의미와 삶의 지평을 상실하고 도덕적 차원의 질적인 하락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 속에서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는 희석되고 만다. 따라서 자본의 권력 획득의 증가만큼 인간은 상호간의 교류와 협동, 그리고 타자와의 공동체적 공감이라는 삶의 목표를 상실하고 정치로부터 소외되어간다.

나아가 국가의 모습은 어떠한가! 일찍이 홉스는 근대국가의 절대적 폭력성을 『리바이어던』에서 정당화했다. 그는 ‘공화(republic)’, ‘공적 부(commonwealth)’ 등으로 국가의 폭력을 정당화했다. 그런데 오늘날 정권은 ‘국가경쟁력’,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 속에서 21세기 한국의 ‘리바이어던’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의 홉스적 광기를 보는 듯하다. 홉스는 보상과 처벌을 리바이어던의 수족과 관절을 움직이는 신경과 힘줄과 같은 것으로 비유했다. 국가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온갖 법적이고 물리적인 처벌로 자신의 존립을 운동시켜 나간다. 홉스가 말하는 리바이어던은 절대적 주권자이기 때문에 이 주권자에 대한 어떤 항의도 허용되지 않는다. 오직 인민 복종의 의무만이 허용될 뿐이다. 집단행위 금지 규정과 성실의 의무, ‘복종’의 의무 등. 따라서 ‘주권’의 원천이었던 개인들은 오히려 그 권력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소위 ‘국민(subject)’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통제권력 안에서의 개인들일 뿐이다. 이 때 국민은 리바이어던이라는 절대적 주권자에게 복종을 전제로 안전을 보장 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 리바이어던은 모든 국민의 복종을 요구하면서 홉스조차 인정한 최소한의 인간의 생명 보호와 안전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우리네 삶의 현실이다.

-일상화된 죽음의 정치를 넘어 공감의 정치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집단 심리에 상담을 하고 있는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쌍용차 가족들의 고통은 죽음의 기운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상담결과에 따르면, 해고자 아내는 “내내 울다가 어느 순간 보니까 옷장에서 넥타이를 꺼내서 묶고 안방 쓰레기통을 뒤집어서 그 위에 올라가 (내가) 목을 매고 있더라”거나 어떤 해고자는 “술 먹고 몸에 휘발유를 부은 적이” 있다고 한다. 정혜신에 따르면 상담을 하면서 쌍용차 가족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을 유형을 8가지로 분류하였는데, 그 중에 “죽음이 가까지 있다.”, “끝없이 무기력하다”, “내가 무능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등이 있다.

‘절망’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뜻은 절망하면 죽는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절망’이라는 병이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그가 절망이라는 병을 치유하는 방식은 ‘단독자’로 ‘하느님 앞에’ 홀로 설 수 있는 자각이다. 이를 통해 신앙에 대한 확고한 결단이 한다면 이 절망이란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절망에 대한 실존철학자의 방식이 유일한 치유의 방식이거나 모든 것을 열수 있는 열쇠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해고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는 절망의 치유는 그들의 상처에 공감하는 것이다. 라캉의 말로 하면, 아마도 타인의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일 것이다. 또한 하이데거가 말하듯 죽음에 대한 불안은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거울은 애덤 스미스적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믹스를 넘어선 인간의 거울일 것이다. 잠재적이건 현실적이건 간에 죽음에 대한 불안은 이렇듯 자신을 넘어 타인에 대한 걱정을 만들어 낸다. 한진중공업 농성장에 남아있는 한 비해고 노동자는 파업을 이탈하는 것에 대해 “이해한다. 다만 다음엔 우리 차례라는 걸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가난한 계급으로의 전락, 그 속에서 언제든지 우리 모두가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삶의 공감(sympathy)이다.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형성은 이 점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자본의 정치가 아닌 인간의 정치, 보다 정확히 인민의 정치일 것이다.

인간을 ‘호모 이코노믹스’로만 규정하여 인간의 다양한 가치 지향성을 단일한 것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단일한 세포로 구성된 재벌에게는 자본의 가치를 추구할 뿐이다. 이들에게는 인간의 정치는 부재하다. 어찌 그들에게 유적이고 공동의 인간을 사유하며 반성하는 것을 기대하겠는가. 맑스가 말하듯이 자본가가 악인 이유는 그들이 자본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후천적 인간배제 재벌 사회에는 희망이라는 단어는 흔적조차 없다. 코나투스(conatus)는 인간이 생명을 보존하고 지속하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인간의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 이를 위해 김진숙 지도위원은 자신을 외롭고 단절된 공간인 85호 크레인에 자기를 구속하였다. 이는 샤르트르가 말하듯 자신 스스로 선택한 쪽으로 자기를 구속하는 것, 곧 자유이다. 자기를 구속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은 다시금 그들의 삶에 대해 보다 더 공감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반성의 시간기도 하다.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삶이었다는…

-여전히 모순은 노동과 자본이다

 

몇 달 전 감자를 먹기 위해 도려낸 감자 조각을 베란다에 심었더니 얼마 뒤 감자 싹이 나오고, 꽃이 피었다. 혹시나 하여 살며시 흙을 뒤집었더니 콩알보다 조금 큰 감자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이렇듯 조각난 감자에서 작은 또 다른 감자로 생성되는 것처럼, 자본에 의해 도려낸 해고 노동자들, 정치적 · 생산적 활동에서 배제된 이들은 자기 창조(autopoiesis)적인 ‘가능성의 존재’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능성의 존재는 현재의 자신을 뛰어넘고자 하는 힘인 에로스와 이익이 없어도 희생하는 아가페의 결합일 것이다.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죄의식을 만들어내는 자본의 책략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사회적 부의 축적을 가로막는 죄인으로 만든다. 이렇듯 노동자를 고대 유태에서 속죄일에 많은 사람의 죄를 씌워서 황야로 내쫒던 ‘속죄양’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작동방식이다. 이는 노동과 자본의 내부적 적대의 관계를 노동자 내부로 해소하는 방식이다. 지젝이 말하는 누빔점이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 자본이라는 적대적 모순의 관계를 노동자 내부로 해소하고자 하는 책략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는 자본의 탐욕에 대해 투쟁하는 이들, 즉 타자라는 존재의 긍정이다. 그런데 자본과 노동은 각각 모순의 유지와 폐지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자본과 임금노동은 서로 상대방을 전제하고 부정한다. 이렇듯 양 극단을 서로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부정하는 것만이 ‘모순’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과 노동이라는 양 극단의 존재에 부분적인 조건이 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면 정규직 노동자라는 존재는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 자체가 없다면 ‘정규직 노동자’라는 존재는 그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의 관계가 갈등의 관계에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순의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해고 노동자와 비해고 노동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순의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은 나와는 다른 타자와의 만남을 통한 생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문제는 타자의 자리에 화폐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때 화폐의 기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타자들의 계열이라는 가상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직 현실적으로 가능한 타자와의 만남은 화폐를 욕망하는 것이다. 화폐에 대한 욕망은 구체적인 타자와의 만남이 아니다. 단지 화폐와의 만남, 화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은 그 화폐가 변환되어 욕망 가능한 것을 욕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구체적인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신체는 화폐를 욕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체는 구체적인 것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교환가치를 먹고 배부르지는 않다.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화폐라는 공허한 타자와의 만남만이 존재한다. 생성은 물질과의 만남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것은 더 이상 공허한 타자와의 만남을 중지하고 살과 피로 이루어진 실질적인 만남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화폐라는 공허한 타자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종식은 비단 인식의 단절 혹은 전환을 통하여 그 근원적 비판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본주의라는 구조 속에서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사물화 된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의 전복은 화폐가 아닌 인간과의 만남을 통해 자본이라는 일자의 원리를 파괴하는 다수의 현실적 부정의 힘을 통해서 가능하다. 인간의 실존은 다른 실존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실존을 만들어 낸다. 불안정 노동자라는 양태는 자본과 국가라는 다른 양태와의 관계 속에서만 실존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네 역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키아벨리의 교훈처럼 역사는 정치의 열쇠인 것이다. 여전히 모순은 노동과 자본이다.

-탐(貪)

 

공자의 가르침 중에 ‘탐’(貪) 이라는 상상속의 동물이 있다. 머리는 용, 뒷부분은 원숭이 꼬리, 전신은 긴 털로 덮여 있는 기린의 가죽, 발굽은 소의 형상인 괴상한 동물이다. 흙, 광물, 산, 바다 할 것 없이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탐’은 이 시대의 자본과 권력의 형상과 너무나 닮았다. 4대강을 난도질하여 먹어치우고 그것도 모자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명, “밤에 잠 좀 자자”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희망을 먹어치우고 그 아가리로 희망의 연대에 물대포와 최루액을 토해낸다. 어디 그뿐인가 교사와 공무원 1900여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먹어치운다. 권리 표현과 결사의 자유 그리고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집어 삼킨다. 그러나 여전히 ‘비정규직 없는 공장만들기 희망버스’ 저 멀리 필리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희망버스, 1, 2차 희망의 버스가 존재했고 3차 존재할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창조물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탐’, 이는 마치 산노동의 착취를 통해 만족할 줄 모르는 잉여가치 창출의 욕망을 내재하고 있는 ‘자본’과 같다. 마치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처럼 운동하는 자본이라는 욕망이 이와 같지 않은가! 맑스는 자본을 영원한 것으로 보는 형이상학을 부정한다. 즉 그는 자본 또한 “불멸의 죽음”(mors immortalis)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것이 맑스의 변증법의 핵심적 기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의 형상을 닮은 인격은 인간의 죽음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잉여가치의 파티를 욕망한다. 이러한 욕망의 흐름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자기보존’(conatus)을 최우선의 가치로 실현해야만 ‘국가’는 그 존재 자체가 무기력해 보일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자본의 욕망 흐름과 이 흐름을 위해 노동력을 한편으로는 포획하고 재배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방치하고 배제하는 국가를 긍정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에게 희망은 부정의 힘이다. 이 부정의 힘은 희망을 먹고 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밥이고 생명이다. 공자가 말하는 탐, 그 추악하고 탐욕적인 ‘탐’은 결국에는 태양까지 먹어버린 후에 어둠을 남기고 자기 자신 까지 먹어 치워, 결국 무(無)가 된다고 한다. 결국 공자는 탐이라는 동물을 통해 이 천박한 자본의 시대에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하다.

“자본이여, 인민의 희망을 탐하지 마시오, 인민이여, 희망이란 욕망을 탐하시오”

 

마지막으로 김진숙 위원의 글에서 다음의 구절이 가슴에 맺힌다. “84호를 움직이면 85호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특공대가 투입된다면 여기서 혼자 163일을 매달려 있던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건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제발 그의 말처럼 “선택의 문제”가 아니길 바란다.

오늘 따라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의 가사가 가슴 속을 떠나질 않는다.

“ ……그 해 이후 내게 봄은 오래 오지 않고 긴 긴 어둠 속에서 나 깊이 잠들었고 가끔씩 꿈으로 그 정류장을 배회하고 너의 체온 그 냄새까지 모두 기억하고 다시 올 봄의 화사한 첫차를 기다리며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마 첫차는 마음보다 일찍 오니 어둠 걷혀 개는 새벽 길모퉁이를 돌아 내가 다시 그 정류장으로 나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

 

 

아니! 이런 만남이 있을 줄이야 6-③ [色 다른 책읽기]

백준수 (인천석남초등학교 교사)

 

인문학은 어떻게 진화론과 만나는가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교훈을 담고 있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한다. 좋은 영화로 평가받는 영화 중 제목으로 세인들의 이목을 끈 영화도 많다. 영화 제목이 참신하거나, 충격적이거나. 필자가 보기에는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피도 눈물도 없이>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같은 영화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피도 눈물도 없이>는 제목에서 풍기는 영화 이미지가 강렬하게 느껴지고, <마더>라는 영화는 제목을 <엄마>로 하지 않고 영어로 정한 것이 감독의 의도가 있음을 관객들은 쉽게 눈치 챈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자가 책을 선택하는 방법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책 제목을 통해 지은이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여 책을 선택하는 독자도 많이 있다. 최종덕 교수가 네 학자와 대담하여 펴낸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휴머니스트)가 그러한 경우라고 여겨진다. 책 제목만 보고도 책을 펴낸 의도와 내용이 명확하게 다가온다. 특히 “진화론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라는 부제는 독자들의 시선 끌기에 더 효과적이다.

최종덕 선생은 진화론을 논의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진화론을 논의한 이유는 현대 생물학을 배우려는 게 아니라 그 사유구조의 인문학적 접근법을 찾는 데 있을 거예요. 우리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에서 어떻게 진화론을 수용할 수 있을지의 문제가 바로 궁극적인 방향이겠죠” (399쪽)

한국의 인문학을 대표할 만한 학자들이 진화론의 과학적 이해와 인문사회학적 의미를 비교 분석하여 밝히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동양철학도 진화론과 만날 수 있다니!

특히 동양 철학을 전공한 김시천 선생의 관점에서 진화론을 비교한 부분은 매우 이채롭다. 서양 과학을 동양철학 입장에서, 그것도 과학 관점이 아닌 철학의 입장에서 이야기한 점이그러하다. 다만, 진화론적 사유와 동양철학적 사유의 유사성을 찾으려는 것은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 알의 작은 씨앗 속에 싹이 트고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되는 생명의 잠재성이 담겨 있듯이, 인간 성선의 바탕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씨앗이 적당한 습기와 햇빛을 받지 못하면 온전한 나무가 될 수 없듯이 사람도 성선을 완성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321쪽)

“고대 중국인의 사유 속에는 논리적 진리체계보다는 모든 사람이 경험적으로 공유하는 공통의 은유 체계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통해서 고대 중국적 사유를 복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하죠. 그런 점에서 생물학적 사유구조와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322쪽)

동양철학 사유의 독창성이 자연현상에 은유하여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고 하여, 동양철학과 진화론의 유사성으로 표현하려는 것은 좀 더 깊이 있는 고민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진화론, ‘겸손의 과학’을 가르치다

인간의 궁극적인 욕망은 유한한 생명의 시간 동안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왜 인간이 병에 걸리게 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은 매우 타당하다. 진화의학은 질병과 건강이 서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존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주장은 자연의 질서에 근거한 주장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자연을 정복하려 하거나, 종속시키려 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인간에게 돌아오는 재난의 부메랑이 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강신익 선생이 주장하는 과학에 붙여야 할 수식어가 겸손함이어야 한다는 것은 의미 있다. 진화의학을 ‘겸손의 의학’이라고 한다면, 과학을 통해 이뤄낸 성과로 인간 스스로 오만함에 빠지는 것을 미리 방지할 수 있으리라.

“진화의 관점이 미래의 생명을 살리는 일과 직결된다는 것은 생각이 중요하죠. 다만, 진화의 방향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한 과학의 증세라고 봐요. 진화는 이상적인 상태를 향해서 가는 게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의 연속일 뿐이니까요.”(204쪽)

강신익 선생의 촌철살인 같은 말에 6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 사태가 다시금 떠오른다. 그때 우리 사회는 감식안이 전혀 없었다. 사이비 학자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혹세무민을 자행하고 있었다. 진화의 관점을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면 이것이야 말로 인문학적 사유방식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보는 창이 된다고 본다.

 

과학이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전방욱 선생은 황우석 사태는 과학이 사회적 가치를 왜곡한 전형적 사례라고 갈파한다. 유전자를 통해서 진화라든가 인간의 본성, 사회 현상을 해석하려는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인 것이다. 이러한 사고체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된다면 인간 에 대한 존중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지금보다도 더 극단적 자본주의가 팽배해진다면 과학윤리에 기반을 둔 생명존중 사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사회적 가치를 훼손한 자들에게 물어볼 일이다.

진보의 사전적 의미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전방욱 선생은 진화론과 진보의 개념은 다르다고 말한다. 다윈의

한신대 등록금 투쟁, 그 미완의 싸움 [썩은 뿌리 자르기]

이현기(한신대 등록금 투쟁위원회)

2011년 상반기 대학가의 가장 큰 이슈는 “등록금” 이었다. 이 대학생들의 등록금에 대한 외침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있어왔던 등록금투쟁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고,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모순을 향한 싸움이었다. “반값 등록금” 구호를 외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각종 미디어를 타고 전국으로 퍼지면서, 등록금 문제는 대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 사회의 문제로 인식될 수 있었다. 우리 한신대학교(이하 한신대)의 2011 등록금투쟁도 이러한 과정 안에서 큰 역할을 했다.

올해 한신대 안에서 등록금 투쟁이 시작된 시점은 “2011 등록금투쟁위원회(이하 등투위)” 가 출범한 3월 말이다. 다른 학교들이 등록금 투쟁을 끝낼 시점인 3월 말에 투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총학생회(이하 총학)의 부재였다. 한신대에서는 2010년 말 총학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4월까지 유지하던 상황이었다. 3.4%라는 높은 등록금 인상률을 잠정 고지한 상황에서 총학의 부재는 등록금 투쟁의 주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학내 현실에서 일반학우들이 모여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한 조직의 필요성을 논의했고 그렇게 한신대 안에서는 등투위가 출범하게 되었다. 이후 총학이 선출되었지만 이들은 등록금 투쟁에 집중하지 않았고, 모든 투쟁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해 학내 투쟁에서 등투위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등투위는 투쟁의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한 교양대회”를 개최했다. 등록금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학생들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교양대회에 참석한 이들은 인문대, 사회과학대의 특정 몇 개 학과 학생들뿐이었다. 그리고 이어 진행된 집회나 선전전에도 그 학생들만 참여했다. 결국 등록금 투쟁이 몇 개 학과에게만 전가된 분위기였고,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등투위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몇 개 학과씩 연합해 선전전과 집회를 로테이션으로 진행하고, 이 과정을 “전체학생총회”로 연결시키는 전략을 수립하여 진행하였다. 각 학과 학생회들은 책임감 있게 등록금 투쟁에 결합했고 이러한 노력들은 4월 14일 제 1차 전체학생총회 성사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전체학생총회에서 한신대 학생들은 등록금 투쟁을 결의했고, 기획처장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확인된 학교의 무책임함에 대해 분노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분노지점이 있었는데, 총학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였다. 총학은 회의 내내 학생들의 요구에 반하는 진행을 했고, 등록금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에 찬 발언들을 ‘시간이 없다.’ 등의 이유로 제지하려했다. 그리고 정상적인 의결을 통해 확정된 본관 진입을 거부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투위와 개별 과 학생회의 의지로 본관에 진입하였고, 학생들의 의지를 학교당국에 다시 한 번 확인시킬 수 있었다.

전체학생총회 이후 등투위는 기존의 선전전 집회 방식과는 다르게 등록금심의위원회에 적극 참여함과 동시에 선전물 제작 및 부착, 외부 단체 연대 조직 등에 집중했다. 이유는 중간고사 기간과 특별활동주간(수업 외 활동 주간) 등 2주간 등록금투쟁 활동을 현실적으로 펼칠 수 없는 기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2주간 동안 학내 등록금투쟁 분위기는 점점 사라져갔다. 학생들은 이미 등록금을 모두 납부한 상태였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등록금 투쟁의 전망을 비관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등투위에는 이 상황을 타개할 카드가 필요했다. 단식, 본관점거 등의 방안들이 나왔지만, 모든 방안들이 학생들과 함께하는 투쟁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에는 투쟁 자체가 고립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고민 속에서 등장한 전략이 “동맹휴업”이었다. 동맹휴업의 경우 학생 대중들이 함께 참여 할 수 있는 투쟁이고, 동맹휴업을 만들어가는 투표 등 과정에서 학생들의 등록금에 대한 의사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동맹휴업을 등록금 투쟁 전략으로 제시했지만 추진 과정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총학생회운영위원회에 최초 제안했지만 ‘전체투표가 성사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반대표가 더 많이 나오면 학생들이 패배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 총학의 반대로 시일이 촉박함에도 불구하고 결정은 전체학생대표자회의로 미루어 졌다. 이 회의에서 다행히 동맹휴업을 지지하는 학생대표자들의 노력으로 동맹휴업을 위한 전체투표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가결되었다. 가결된 이후 등투위는 강의실을 돌며 동맹휴업 총투표 지지를 호소했고, 캠퍼스에 동맹휴업과 총투표에 대한 선전물을 내걸었다. 이 시기 서울대, 이화여대 등의 지지와 외부 진보사회단체들의 지지가 큰 보탬이 되었다.

이러한 노력과 연대들은 학우들의 높은 투표율로 나타났다. 축제기간과 겹쳐 성사가 불투명했고, 적극적인 투표 독려를 하지 못한 점이 있었지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투표에 참여한 것이었다. 사흘간 전체학생 5303명 중 54.7%인 2903명이 투표에 참여하며 총학 투표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여주었고, 이 중 82.9%가 찬성하며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한 동맹휴업은 전국 최초로 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총학의 문제점은 나타났는데, 동맹휴업에 관한 선전물은 단 하나도 부착하지 않은 점과 5303명 전체학우들의 전체투표 투표용지를 3000장 밖에 뽑지 않는 등의 안일한 대처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총학생회의 불성실함과 책임회피는 이후 등투위와의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힘들게 진행된 6월 6일 동맹휴업 당일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해 수업을 거부하고 학내 광장으로 모이기로 했지만 많은 학생들이 수업에 들어갔고, 또 많은 학생들은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모인 것은 300명 정도의 학생들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이 300명가량 되는 학생들이 몇 시간 동안 기다렸고, 수업을 끝내고 나온 학생들과 결합하면서 제 2차 전체학생총회가 성사되었다는 것이다. 전체학생총회에서 학생들은 등록금 인하 투쟁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하지만 총회 막바지에 실천투쟁을 논의함에 있어 총학생회가 의도적으로 등투위의 전략을 방해하면서 이날 동맹휴업은 등투위와 총학의 감정싸움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현재 한신대 학교당국은 등록금 3.4% 인상에서 1.9% 인상으로 확정했다. 인상분에서 1.5% 내려간 수치이다. 만족스럽지 않지만 이것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투쟁한 학생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다. 등투위와 총학의 갈등 등 과정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학생대표 기구인 총학이 부재함에도 일반학우들이 투쟁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한신대의 투쟁은 높이 평가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학교가 3.4% 인상분에서 1.5% 깎은 부분은 학생들의 장학기금과 교직원 임금이었다. 학생들의 재단전입금과 적립금 문제 해결로 등록금 인하를 이루고자 했던 요구를 무시한 것이다. 우리는 몇 만원 돌려받는 것을 원해 구걸했던 것이 아니다. 불합리한 것들을 바로잡으려고 투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신대학교의 등록금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등록금문제 해결방안이 교육재정 돌려막기? [썩은 뿌리 자르기]

이원혁(건국대 대학원)

사그라진 줄 알았던 등록금 촛불이 7월 9일, 열흘만에 다시 켜졌다. 이번 학생들의 문제제기는 많은 이슈들 사이에서도 쉽게 묻히지 않고 있다. 그만큼 그들은 절박하고 또 그만큼 정치권에서도 민감해진 ‘장사거리’다. 핫이슈는 정치권에서만 잘 팔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나름의 처방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중 얼핏 들으면 옳은 소리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딘가 불편한 진단과 처방책이 있다. 대학이 너무 많아 나랏돈이 허튼곳에 쓰이니 대학구조조정을 통해 정부지원금을 절약하고 그 돈으로 소위 잘 나가는 학교들에 등록금 지원을 하자는 제안이 진보, 보수 진영을 넘나들면서 무릇 사람들의 귀를 쫑긋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진단에서는 등록금문제의 원인을 ‘과잉된 대학교육’때문으로 보는데 여기의 숨은 전제는 교육의 시장화를 부추길 뿐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예전부터 아니 처음부터 대학은 소위 잘난 곳이었다. 동양에서 최고 학문기관인 대학은 대중적 교육기관이 아니었다. 다산 정약용은 “대학공의”에서 본래 대학은 왕의 아들들이나 삼공의 맏아들이 지도자교육을 받던 곳으로 보편적 앎이 아닌 엘리트 교육의 장으로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서양에서도 대학은 지적귀족의 사교장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대학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성장했다.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고등교육이 오래 전부터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은 개천에서 유일하게 용이 나올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누구나 대학을 꿈꿨고 대학은 점차 선택에서 필수가 되어갔다. 여기에 폐단도 많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능력여하와 상관없이 정상적인 직장과 수입을 가지기가 힘들어졌다. 따라서 혹자는 대학의 문제를 학벌사회의 병폐로 보고 대학과잉을 문제 삼는다. 굳이 대학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대학으로 보내는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가 해결되면 소수의 수요자만 대학에 가고 등록금문제와 같은 대학의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 말을 당장 누구한테 할 것인가? 이미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대중적 교육기관으로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엘리트만의 전당으로서 대학은 한국에서는 이미 누구나 넘볼 수 있는 대중적 지적교류의 장이다. 누구나 최고등교육을 받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 최고등교육이 시장성, 효율성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문제다. 다시 말해 공장노동자가 될 사람이 대학을 다니는 것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대학교육이 취업훈련으로만 대체되는 것이 문제다. 대학교육의 과잉을 말하는 사람의 상상력은 오후에 퇴근한 노동자가 저녁에 대학에서 세익스피어를 읽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사회에는 적정수를 유지해야하는 것이 있는 반면 사회에 흘러 넘쳐도 과하지 않는 것이 있다. 교육의 질을 위해서 대중교육의 자리를 제한하는 발상은 그 교육의 질이 어디를 또 누구를 향하는 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7월 5일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첫 회의를 했다. 이들은 거세지는 반값 등록금 요구에 부응하여 정부가 내놓은 방책이다. 위원회는 교과부 장관의 자문기구로 출범·운영하지만 `사립대학 구조개선의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면 법적 심의기구가 된다. 이들은 부실 사립대 퇴출과 국공립대 통폐합 등을 주요 주제로 활동하게 된다. 홍승용위원장은 ‘지방대학, 소규모대학 죽이기는 아니다.’라고 단언하지만 사실 위원회의 칼날은 모두 이들을 향해있다. 학생 충원율과 등록금에 대한 재정의존도, 취업률을 기준으로 부실대학과 그를 바탕으로 퇴출대학의 명단을 만든다고 한다. 물론 재학생 수를 조작하고 재단비리가 많은 학교는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한다. 위원회는 이러한 문제학교를 조정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 위원회의 출범배경이이다. 국가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빗발치는 등록금인하 요구를 받아들이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나온 ‘교육재정 돌려막기’의 일환이 이 위원회의 숨겨진 미션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집에 돈이 없다고 말하실 때와는 달리, 이번 정권이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 나라님이 세도가들 세금 깎아주고 살아있는 강물을 세금으로 메우고 이 때문에 재정이 바닥나 등록금인하 요구에 대응하지 못 하는 현실은 정상적인 ‘돈 없는 집안’이 아니다. 실제로 2008년 2725억이었던 시도교육청의 지방채는 2009년 2조1316억으로 훌쩍 늘어났다.(2009교육과학기술부자료 권영길의원실분석) 그러지 않아도 감세와 4대강공사 등으로 전입금을 줄어 적자인 교육재정에 반값등록금은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애당초 무리였다. 위원회의 목적이 ‘돈 아끼기’로 정해진 이상 부실대학 구조조정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진행될 여지가 있다. 위원회의 부실대학 판단기준 중 하나는 등록금의존율인데 우리나라 대학의 평균 등록금 의존율은 80%에 다달 한다. 서울의 주요 사립대는 70%정도인데, 주요 사회적 기부금을 국립대와 서울의 주요 사립대들이 싹쓸이하는 현실과 일본의 대학등록금의존율이 13%, 영국이 26%(등록금의존율 자료-한국일보 2011.6.16 사회면 4면3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도토리 키 재기다. 물론 등록금의존율이 극단적인 몇몇 학교도 있지만 이들 학교만을 정리한다해서 실질적인 등록금인하가 가능한 금액이 산출되지는 않는다. 전체의 문제를 일부의 문제로 만드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한다. 대학 줄 세우기와 이로 인해 만들어진 순위대로, 어쩌면 할당된 수대로 대학을 처분한다면 그 학교를 배움의 터로 삼고 있는 학생들을 다시 한 번 좌절하게 만든다. 대학을 줄여나가며 대학교육을 제한함으로써 등록금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다. 위원회의 칼날은 살생부에 의한 꼬리 자르기가 아닌 대학 전반에 대한 손질이 되어야한다. 등록금의존율 80%인 학교가 문제라고 해서 70%, 60%인 학교가 정상이거나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등록금의존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학교를 퇴출시킴으로써 다른 학교의 변화를 유도한다지만 지방대, 소규모대학과 소위 서울명문대 간의 간극이 유지되는 한 그러한 변화는 요원하다.

등록금문제는 보편적 복지의 관점에서 해결되어야한다. 더 이상 한국에서 대학은 선택적 엘리트교육이 아니다. 대학입학자의 비율이 고교 졸업생의 80%에 이르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대학이 많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대학의 문제를 소수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소수의 영역에 감히 침범한 대중을 나무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20대의 다수에게 대학은 일상이다. 그 일상이 등록금과 생활비에 눌려있다. 일상의 문제를 특수한 문제로 치부하니 현실적인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보편적 복지는 그 혜택의 제한이 없다. 누구나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려야 하는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 보편적 복지다. 국민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그것이 국민의 행복추구권에 건전하게 부합한다면 이는 당연히 보편적 복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요구는 건전하게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자하는 청년들의 자연스런 요구이다. 하지만 대학구조조정을 통해 등록금문제를 해결 하고자는 것 300만이 넘는 대학생의 문제를 보편복지가 아닌 시혜적 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는 대학을 엘리트만의 비밀장소로 남겨 두려하는 것이거나 교육을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맡겨두겠다는 의미로 읽혀 질 수밖에 없다.

등록금문제가 학생들에게 단순하게 금전의 문제를 넘어서는 이유는 이 문제가 학생들로 하여금 대학이성과 진리보다는 시장논리에 훨씬 더 친숙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등록금 속에서 학생들은 대학에 학문이 아닌 미래의 돈을 기대한다. 취업 후 상환이라는 무책임한 대학등록금 대책 덕택에 대학생들은 취업에 서두를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학생들은 소수의 취업이 잘되는 과로 모이고 그러한 몇몇 과는 항상 과잉으로 전문인력을 배출한다. 학생들이 규격화된 욕망 속에서 서로 경쟁하다보니 당연히 취업은 쉽지 않아지고 자본은 노동과 교육을 모두 지배하는데 용이해졌다. 교육의 시장화는 만성적 청년실업과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절대 우위를 유지하게 한다. 그런데 정부가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통해 진행하는 구조조정은 이러한 시장화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 취업률과 대학등록금의존율을 통한 대학구조조정은 사실상 학벌사회에서 대학 줄세우기의 공식화의 다름이 아니다. 대학등록금의존율은 낮을수록 좋다. 하지만 소위 잘나가는 학교들의 오너가 대기업이 경우가 많고 명문대가 정부 주관사업이나 사회적 기부금을 과점하는 것은 지방, 하위대학들이 못나서만은 아니다. 대학에 대한 구조조정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대학과 학생은 대학에서 직접 금화를 찍어내는 학문에만 치중하게 될 것이며 이는 대학의 시장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뿐이다.

좀 더 솔직해지자. 한국사회에서 대학의 위상은 이제 존귀한 지성의 장도, 취업의 지름길도 아니다. 둘 다 실패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 대학은 종합적 교양인을 양성하며 그 속에서 젊은 청춘들이 꿈을 가꾸는 곳이다. 더 이상 신성한 곳도 아니며 금화를 건네는 곳도 아니다. 대중적 지성의 교류의 장으로서 사회 전체의 교양을 함양시키는 보편적 교육기관이다. 물론 이곳에서 미래의 금화를 가꾸고 준비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생 누구도 자신의 대학생활을 취업준비로 가득 채우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대학에서 기대하는 낭만과 추억은 사회가 기대하는 사회전체의 교양과 연계된다. 학생들의 등록금인하요구는 대학교육의 사회성, 보편성을 요구하는 것이지 이의 선택적 제한이 아니다. 대학의 등록금문제는 사회전체의 지적성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