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신년회 : 남기호 선생님을 추모하고 기억하면서 – (1) 故 남기호 선생님 추모사 (2) 유작 『야코비와 독일 고전철학』(남기호 저, 2023) 북콘서트 영상 [월례발표회·세미나]

2024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신년회 특별행사

[남기호 선생님을 추모하고 기억하면서]

故 남기호 선생님(1970년 ~ 2023년 9월 4일, 향년 53세) 前 연세대 철학과 교수, 한철연 회원

 

지난 2024년 1월 한철연 신년회에서 거행된 故 남기호 선생님 추모행사 영상을 올립니다.

여러 회원 분들의 도움으로 남기호 선생님의 지난날을 함께 돌아보고 그의 학술을 토론할 수 있었습니다.

남기호 선생님의 학술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더 활발히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일시: 2024년 1월 11일(목) 14시
-장소: 한철연 강의실(마포구 동교로 114 태복빌딩 302호)
-내용:
1) 故 남기호 회원의 학문적 생애 소개와 추모사 / 연효숙
2) 유작 『야코비와 독일 고전철학』(남기호 저, 2023) 북콘서트 / 패널: 이병창, 이관형, 한길석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d2IngLIEvSQ?si=KUMMQNo2oRepD2q7

 

규소 시대의 혁명: 리좀의 흐름 [천 하룻밤 이야기]

규소 시대의 혁명: 리좀의 흐름

2024년 07월 22일 대서(大暑)

– 평상 위에 누워서 하늘을 보시라, 별빛이 보이시려나?

 

지금껏 여러 서양 철학사들을 읽으면서, 그 철학사들이 정당성과 진실성을 지녔다고 여겼다. 대부분 앵글로색슨계열의 철학사는 인류가 점점 더 확실한 지식을 갖춘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그들이 언어와 논리를 정초하여 기본으로 삼고, 사실들에 접근하는 태도를 유지한다고 본다. 이들의 철학사 글쓰기의 전개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등 다른 학문과의 연관 위에서 철학이 각 분과 학문을 점검·검토할 권리나 이유가 있는 것으로 서술한다. 한때 언어분석 철학은 철학의 교통정리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과연 그럴까?

나로서는 박홍규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때, 철이 없기도 하였고, 짧은 수강 기간에 들은 것들이 정리될 수 없어서, 벩송 전체를 여러 번 읽고서 나름으로 선생님의 설명을 지침으로 삼았다. 그가 말하기를, 철학은 자료들을 총괄적으로 앞에다 두어 놓고서 다루어야, 허튼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간략하게 보면, 공간과 시간을 둘 다 놓고 나아간 철학자는 플라톤이고, 공간을 놓고 나아간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이며, 시간을 놓고 나아간 철학자는 벩송이라 했다. 철학은 이 세 가지 길 외에 없다는 것이다. ‘벩송의 작품을 잘 읽으려면, 자네는 수학사를 공부해야 하네’, 수학사를 몇 권 읽고 난 뒤 면담할 때는 ‘물리학’을, 그리고 또 ‘생물학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셨다. 아마도 관련 서적들 몇 권 읽고 또다시 상의하러 갔더라면, 심리학을 읽으라고 하셨을 것이다.

스스로 잡학파라고 하듯이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각 과학사의 뒷이야기까지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인간이 그 시대에 부딪힌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무척이나 노력했고, 각 분야 방면으로 내공을 쌓았구나 하면서 감사하기도 했고, 한번 살다가 갈 세상인데 모진 고문을 받을 위기에도 처했고 멸시와 비난 속에 고통과 천대를 견디기도 했던 인물들에 감동하기도 했다. 최근래에 우리나라의 질병과 의학의 뒷이야기에 관한 글을 접하고 또 한 번 인간은 참으로 내공이 쌓인 분들에 의해 이 세상에서 그나마도 한시적으로 생명 보존과 안녕을 누리고 산다고 생각하면서, 사유의 지층이 얼마나 두껍고(기억), 알려지지 않은 구석구석들(추억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감탄한다. <이런 책도 있다는데, – 1438년(세종 20)에 원나라 『무원록(無寃錄)』을 참조하여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간행하였다. 시체 검안에 대한 책이라 한다. 비샤를 떠올렸다.>

이런 과학 이야기를 읽는 것을 철학하는 태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나로서는, 그들이 탐만치 중의 하나에 빠지거나, 또는 세 패거리(카르텔)에 포섭되어 복속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여기며, 그들을 우파라고 부를 수 있다. 당연히 패거리들에게 아부하고 포로를 자청하는 이들은 극우파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패거리 봉사자들의 철학하는 태도는 원리를 마치 신앙처럼 받들고 있다. 이에 비교해 진솔한 철학자는 적어도 19세기 중반 이후로 실재성의 지속을 탐구하며, 지층 속에서, 기억 속에서 현재에도 존속하고 있는 실재성을 탐구한다. 그리고 심층에서 표면으로.

긴 철학사들과 더불어 간략한 철학사들 여러 권을 읽어보면, 철학사를 통해 인류의 지식이 발전한 변화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발전들은 체계화와 분야의 확장일 것이고, 확장의 차원에서 여러 분과 학문의 발생과 전개는 아직도 계속된다. 체계화는 간단할 수 있으나, 확장은 좀 더 고민해야 했다. 아마도 분과들에서 분화가 독립성을 지니고, 게다가 이런 분화의 분류에서 학문의 성립에는 강도(내공)가 필요하다. 사회학, 인류학, 정치경제학 등의 성립을 보면 그러하다. [생태학과 유전자학 등은 생리학과 뇌신경학에 이어서 체계화를 정립하려 한다.]

우선 시대의 변천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철학, 중세 철학, 르네상스와 빛의 시대 철학, 그리고 근대(19세기)철학, 20세기 현대철학, 21세기 새천년 철학 등으로 구분할 때, 철학사는 발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서양 철학사의 발전을 인식과 인식 대상에 관한 것에 한정한다면, 우선 수학사를 한두 권을 읽기를 권한다. 수학사를 잘 들여다보면, 철학사의 변천 과정을 볼 수 있다. 고대에는 상식(sens commun, 5관)을 통해 원리와 기원을 탐구하였다. 그다음에 물리학 법칙의 발견으로 양식(봉상스, bons sens)의 시대를 열면서 이원론(평행론이든, 대칭론이든)의 시대를 거쳐 가다가 그래도 하나로 통일, 또는 종합을 하려 했다. 봉상스란 한 방향이란 뜻도 있는데, 원리에서 법칙으로 가는 길이든, 그리고 개별적 사실로든(합리론), 개별적 사실에서 일반화의 법칙을 추론하여 추상화의 원리로든(경험론이든), 체계가 먼저 있다는 것을 버리지 못했다. 이런 체계화의 구성(constitution), 또는 구축(construction)의 학문이 현대에도 주류라고들 한다.

수학사는 이런 과정들에 부딪히면서 자기 변신을 했다. 수와 도형에서, 분석기하학과 좌표기하학이 나올 시절에, 거듭제곱에 관한 지수의 계산이 나왔고, 그다음 미적분이 나오면서 힘과 에너지의 표현 방식을 바꾸었으며, 입자 물리학과 전자기학의 발전으로 확률론의 개연성 이론이 나왔으며, 개연성 이론의 적용에서 날씨의 자료들에 대한 계측방식의 예측 불가능에 대한 현재 상태의 서술로서 복잡계이론도 나온다. 서양에서 다른 학문은 복수를 쓰지 않는데 수학만은 복수로 쓴다(mathématiques). 기하학은 오랫동안(중세는 당연하고 근세까지도) 유클리드 기하학이 표준이었으나, 공리에 대한 선 전제에 의문을 품으면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나오고, 이와 나란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수의 단위와 언어의 단위의 일방향(봉상스)으로 논리를 전개하다가, 수의 단위든 논리의 항(용어)이든 단위의 전제가 비규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파라독스들이 등장하면서, 수학은 무한에서 다루는 방식이 복잡계보다 더 넓은 영역으로 열리게 되었다. 무한의 열림은 신의 현존을 무색하게 하였다.

수학사의 관점을 가지고 보면, 소쉬르의 언어학은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사물(실재성)에 대해, 언어(입말이 아니다)는 기표(청각기호, 기호의 대상)와 기의(사유 이미지, 대상의 의미)로 표명되는데, 이 기표와 기의는 실재성(사물들)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챈 것은, 구조주의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철학자들이 1968년쯤에서야 나왔고, 새로운 생성의 철학을 말하게 될 것이다. 낌새를 알아챈 이는 그래도 푸꼬였고, 이를 전개한 이는 들뢰즈였다.

철학사를 넘어서 학문의 발달사는, 일반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공간화된 설명방식이 무너지는 과정이며, 개별 학문의 자기 위상을 정립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우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대해 지동설로서 천문학이 르네상스에서 성립하고, 곧바로 이어서 고대의 자연학(phusis, 퓌시스)에서 갈릴레이의 물리학(physique)이 성립한다. 그다음에 연금술이라 불리는 알-화학(al chimie)에서 분자의 성질 규명해낸 화학(la chimie)으로 발전한다. 곧이어 고대의 그리스 생물학과 다른 생물학이 전개되기 시작하며, 화석을 규명하는 생물학과 인간 신체 해부학의 도움으로 의학이 발전한다. 생물학과 의학이 뇌 신경과 신경계를 규명하기 시작하면서 심리학이 발달하게 된다.

수학들과 다른 과학들(소위 자연과학들)의 발달은 19세기 말에 철학사를 바꾸어 놓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해왔던 패거리들은 언어와 논리를 우선으로 또는 토대로 시작하여, 고대로부터 단련된(?) 논리 위에 사물들(원자들, 자기장이든, 신경계든)을 설명해야 한다고 지금도 주장하는 이들이 AI를 통해서 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학문의 확장을 논리 위에 세우고자 한다.

천문학은 천문학대로 우주의 크기와 그 발생에 관한 연구가 있고, 물리학은 물리학대로 원자보다 적은 입자들, 그보다 더 내면의 깊이의 구성체(쿼크든, 기묘든, 끈이든, 초끈이든)를 설명하려 든다. 생물학은 포유류 형태의 변환들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동물들(곤충들, 연체동물, 균류)과 더불어 생명체의 변형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여, 생명체의 봉상스(한방향)의 진화를 설명하기에 이른다[이에 속하지 않는 것은 넌센스(non-sens, 농상스)인 셈이다]. 물리학이든 생물학이든 이런 설명에는 논리와 언어에서처럼, 기호 또는 상징(생볼)에 의한 규약(기준, 코드화)이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렇게 여기는 생각에는 은근슬쩍 물리학에서 기호의 개입처럼, 생물학에도 유전자의 분자배치들(TGAC)에 개입하여 해석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생각이 다른 학문에서도 제기되면서, 수학과 논리의 영역은 실재성과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즉 상징계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수학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등장과 전개에서 깨닫게 될 것이고, 논리는 선 전제 미해결의 오류로 파라독스 또는 자가당착(개구즉착)에 이른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천문학과 물리학은 실재 세계에서 운동과 지속이 공간에서 운동과 계속과 다르다고 하는 것을 안다. 원자들의 결합은 동일한 원자가 다른 어떤 원자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실재로 안정된 분자일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폭발하는 경우도 있다. 분자 덩어리는 무기물로도 있을 수 있고 유기물도 있을 수 있다. 생명의 유기적 조직화에는 무기물을 보태어 유기물을 함께 종합하고 있다. 이쯤에서야 천문학에서 우주의 구축, 물리학에서 운동과 화학에서 구조 등은 생명체에서 조직화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로운 체계화가 필요하였고, 서로 다른 이질적 요소들이 혼성(composant)하여 하나의 동일성(단위,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혼성의 동일체로서 정체성(l’identité)이, 구성과 구축에서 상징의 동일성 원리(le principe d’identité)와 용어가 같지만, 실재성과 가상성 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이런 유기체들의 조합(혼성)으로서 사회와 국가라는 조직은 물리학적 원자들의 결합이나, 유기체 분자들의 혼성과는 다른 방식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유기체들의 관계와 연관 속에서 구성된 사회체(socius)란 단위는 물체들의 단위와 달리, 과거를 기억(역사)하고 유지하면서도, 새롭게 만들려고 노력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런 유기체 중에서 인간이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를 다시 묻게 된다.

인간은 여느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산물이다. 자연으로부터 탐구가 실재성을 다루는 것이다. 패거리(국가권력, 종교권세, 지식권위)들은 선 전제로서 통일성이 먼저 있다고 여기고, 그리고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 전혀 다른 인식의 수준을 가졌다고 하며, 봉상스의 발전에서 지성(오성이든 이성이라 하든)이 어떤 생명체들과 다르다고 여겨 이기주의와 오만에 빠졌다. 이 오만의 바탕에는 종교 무오류의 오만이 패거리를 돕고, 게다가 인식에서 완전하고 통일적인 하나의 체계가 있다는 패거리들과 합친다. 세 패거리 중에서 이기주의 탐욕은 식민지 수탈과 착취를 정당화한 국가가 그 소수의 탐만치를 부추겨 탐욕의 사적 이익을 확대하며, 가족, 사회, 국가의 체계를 정당화하였다. 이기주의 탐욕에 빠진 자들이 사악한 무리임에도, 사악함을 감추기 위해 종교의 무오류와 지식의 통일성을 서로의 필요로 의해 거리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패거리들에 저항하며, 프롤레타리아 국가주의를 주장한 맑스가 모순을 보았다고 한다. 식민지 수탈에서 제국주의가 형성될 때, 레닌이 소비에트라는 새로운 조직화를 만들어냈으며, 맑스 말대로 제국주의가 공황에 빠져 자기들의 죄과를 감추기 위해 세계대전을 일으킬 때, 식민지 수탈에 항쟁하던 중국 인민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였다. 이것은 역사의 흐름이고, 헤겔이 말하는 시민의 자유에서 인민의 자유로 확장의 과정이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조직화의 방식은 자연의 풍토와 영토에 따라 달리 문화적 창달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여러 다양체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을 짓누르고, 제국주의 식민지와 다른 방식으로, 규소 문명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제국을 형성하려 하고 있다고들 한다. 이들의 패거리는 정보의 독점화로서 디지털과 그에 필요한 에너지의 장악에 열을 올리고 있고, 발표는 잘 안 하지만 생명체의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미국의 탄저균 연구소가 있다고들 한다.>

심리학이 뒤늦게 영혼과 정신에 대한 용어의 구별을 시작한 것이다. 정신론(spiritualisme)에서 정신은 원리와 공리를 지닌 의식이 먼저라고 믿고서, 인식론과 존재론에서 과거의 전승과 습관을 유지하면서, 인간이 하늘의 자식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자연에서 단세포로부터 진화한 동물로서 인간의 영혼을 주장하는 이들을 동물 취급하였다. 지금도 개돼지 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들이 신의 자식이라 신앙하고 있는 반증이다. 패거리의 정신이 하늘에서 또는 신에게서 온 것이라는, 선 전제의 허구를 아직도 주장하는 배경에는 유일 신앙자들의 신을 근거로 하고 있다. 신은 누가 만들었는데? 라는 질문에, 그들은 마치 마남 사냥하려는 듯이 덤벼든다. 기억, 그것은 생명이 만들어질 때부터 지속하고 있다. 그것을 바깥에서 설명할 수 있는 예가 바로 지층일 수 있고, 생명체들의 DNA일 수 있다. 다윈은 지질학을 이용할 줄 알았으나, 지층의 깊이 속으로 들어가 이해하는 작업에 이르지 못했으니, 시대의 한계였다. 그럼에도 기억과 지층에 대한 학문은 진화론이 창안되는 시기에 성립하기 시작한다.

물론 사회학이 진화론과는 거의 동시대적이다. 유기체들 사이의 관계와 연관이 일으킨 것은, 수학, 물리학, 화학, 유기체론의 생물학 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집회 결사의 조직체의 활동방식은 법률적 제도에서와 다른 방식들도 많다. 고대로부터 수도원도 있었고, 불교처럼 걸승들의 집단도 있었다. 사회는 권력, 권세, 권위의 세 패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져 왔던 것이 많음에도, 사람들이 성(城, 폴리스, la cité) 안에서 조직화된 제도가 정당한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 규소의 시대(예로 손전화)는 성벽이 해체되어 남아있지도 않다 – 인간은 다양한 학문들의 연계를 통해서, 도구와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생산양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소키우스(socius 사회체, 사회권의 공동체)가 품앗이 하듯이 상부상조하면서 살아갈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패거리 문명론과는 다른 문화론을 생성하며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과학이란 이름으로 정치경제학적으로 바닥에서 상층을 전복하려는 학자가 맑스인 셈이다. 이런 시도로서 공공재의 인민화 작업이, 공공재 사적 소유의 제국에 대립되어 있다는 것이 점점 확장되어 간다는 것이 세계사의 발전이다. (57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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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삶은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이런 변화의 과정을 벩송은 고대에서 상층의 이데아론에서 시작하여, 다음으로 갈릴레이의 빗금을 타고 내려와 르네상스 이래로 표면의 이원론의 방법이 제기되었고, 그다음으로 심층으로 또는 안으로 파고들었다고 했다. 상층시대, 표면시대, 심층시대이다. 프로이트와 라깡은 이런 관점을 상층(초자아, 상징계), 표면(자아, 상상계) 심층(Id, 실재계)라는 공시태의 도식을 만들고 논리적 구조로 해석하였다. 이들과 달리 벩송은 통시태로서 탐구와 생성과정의 사실들과 상태들을 드러내려 한다. 이를 이어받은 이가 들뢰즈일 것이다.

그런데 표면의 이원론 이후 전개과정은 흥미롭다. 이원론의 좌절은 칸트의 형이상학 불가능성의 제기로 상층을 규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헤겔이 표면에서 다시 상층의 절대자로 올려놓고 절대자의 완성체를 통일체로 만들었다. 이로부터 국가주의의 한 패거리가 성립하였다. 다른 한편 상징의 상층을 허구(또 다른 이야기, 파라독사)로 간주하면서, 표면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학문의 탐구가 있으니, 생물학의 지층을 통한 고생물학이 나오며, 벩송의 기억론도 나온다. 말하자면 서양 철학사에서 상층에서 표면으로(근대화), 표면에서 심층으로(근대화의 탈피, 학문적 탈근대화) 탐구의 길을 열었다. 봉상스(한 방향)의 주장자들은 상층의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으나 상징성에 지나지 않는다. 실재성에서 보아, 심층으로부터 발생과 창발의 길은 모든 학문 분야에서 노력하고 강도(내공)를 높이는 중이다.

이러한 상층, 표면, 심층으로 구분의 용어는 들뢰즈의 것이다. 그는 구조주의가 파라노이아 현상에 메여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참주(크리스토스, 원리)가, 나아가 신이 먼저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광기에 빠져있다고 하는 것은 들뢰즈 보다 먼저 푸꼬의 이야기, 광기의 역사였다.

흥미로운 것은 들뢰즈의 표현으로 의식을 다루는 자들에 대한 평가이다. 프로이트와 라깡은 상층의 원리 또는 논리로부터 현실과 사태(사건)를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면의 이중성을 알아챈 이는 데카르트였다. 그런데 봉상스의 길은 앵글로색슨의 방법이다. 이에 비교해 넌센스(농상스)의 길을 개척한 것은, 파라독사를 눈치챈 러셀이 아니라, 파라독사를 전개한 수학자이자 작가인 루이스 캐럴이라 하며, 소설가로서 조이스를 꼽고 있다. 그리고 심층에서 농상스(넌센스)의 길을 개척한 이들로서는, 푸꼬가 찬사를 아끼지 않은 레이몽 루셀이며, 들뢰즈는 내재적 실재성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시를 쓴 말라르메와 아르또를 덧보탠다.

다시 말하면, 들뢰즈는 상층을 규준(코드)으로 하는 사고를 하는 이를 파라노이아라고 하고, 표면의 적용과 발생이라는 이중적인 측면에서 봉상스가 적용의 오류에 빠진다고 지적한 이들을 도착자(뻬르베르)라고 부르며(새 시대 알리는 시인들, 새 소식을 알린 단편소설(la nouvelle)을 쓰는 이들이 그 예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이론과 실천을 겸비하는 자들은 우글거리는 심층의 생성과 창조의 발생을 드러내는 자들로서, 이들을 스키조라고 한다.

패거리들은 규소 시대 이전에 이런 도착자들에게 겁을 주고 위협하면서 포섭하거나 포획하여 자기편에 복속시켰는데, 대혁명 이후 인민의 깨우침 이후로 역사는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도착자들이 패거리를 유머 삼으면서, 파라독사의 글들(단편소설이든 장편소설)을 쓰면서, 모른 체 딴짓하는 듯이 보인다. 패거리들이 스키조라 불리는 분열자들을 예전에서 이교 (소두)집단 또는 이단 집단처럼 마남 사냥을 하였으며, 소련과 중국 성립 이후에도 빨갱이 사냥(매카시선풍)을 하려고 덤벼든다. 그러나 분열자는 패거리들이 기표화 하거나 법제화(성문화)하는 방식과 달리, 자신들의 실재성 이야기가 인민들 사이에 입말로서 말투로서 또는 이미지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3천 년의 철기 문명에 비해 규소 문화는 백 년도 아직 안 된다.

규소 시대에서 파라노이아의 패거리들이 도착자들의 우화와 마술과 같은 이야기(반지의 제왕, 해리포터)를 장악하지 못하였고, 그래도 이미지를 장악하기 위해 만화영화와 전자게임을 통해 젊은이들을 묶어두려고 한다. 젊은이들이 리좀으로 연결과 연대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찾아내는 시대가, 마치 자유의 확장처럼, 이제도 아제도 진행 중이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쓰고 30여 년에 대혁명이 있었고, 맑스가 자본론을 쓰고 50여 년 만에 레닌이 새로운 국가체계를 만들었고 그 여파로 이차 대전을 거치면서 30여 년이 지나 마오쩌뚱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면서 세계는 거의 양분화되었고, 이런 양분화의 균열로 표면에서 리좀들의 생산이 새롭게 저항과 혁명을 이루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글을 쓴 것은 들뢰즈였다. 네트워크(WWW)가 인민들의 손안에 – 부처님 손바닥에처럼 말이다. – 들어온 것은 30여 년쯤 될 것이다.

다음 세기는 들뢰즈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 이는 푸꼬였다. 들뢰즈/가타리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쓴지 30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혁명은 도래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는 이들이 있다. 들뢰즈는, 혁명은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혁명은 내재성, 실재성의 표면화로서 용출선을 드러내는 과정 중이며, 이제 여기서도 진행 중이다.

제국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들린다고 한다. 제국주의가 무너지지 않고 변신하였듯이, 신을 제거하고 돈을 받드는 제국도 변신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패거리의 편에 끈을 잡고 그들 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며, 일제 부역자들의 망령과 탐만치에 젖은 이들과 더불어, 상징계의 끝자락을 잡고서 문자화와 판단(심판)을 남발하고 있다. 이 남발이 제국처럼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이다.

젊은이들의 실재성 발현은 그들을 유머극장쯤으로도 여기지 않고, 그들의 문장들이 파라독사로서도 재미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패거리들이 자기 언어와 문자의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안다. 단지 현재로서 탐만치 세상에서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도 안다. 김건희는 영부인이라는 상징을 통해 파라노이아로서 실행하고 있다고 새 소식에 나오는데, 그녀는 검찰의 조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검찰을 불러서 포섭하고 포로로 삼으려 했다. 이것은 탐만치에서 치(癡)자처럼 패거리들이 치졸한 제국주의 방식과 같이, 식민지지배를 하고 있다고 믿는 파라노이아와 같다.

농상스(반대방향)이면서도 놀라운 앨리스 이야기와도 같지 않은 이야기를, 패거리의 끄나풀이 언어와 문자 또 그림 이미지로 펼친다고 해도, 젊은이가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다. 돈이라는 신을 받드는 자들이 용비어천가를 부르듯이 꼬리를 흔들며 따라가는 주구(走狗)들이 있을 뿐이다. 이들을 처분하는 방식은 프랑스 대혁명의 단두대와 두 번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들처럼 총구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것도 있다. 이미 역사에서 이승만의 동상을 끌어 내렸고, 총에 맞아 최후를 맞게도 했으며, 여럿을 감옥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들의 신인 돈, 부정하게 축적한 돈(신)을 환수해야 할 것이고 더한 것도 있을 수 있다. 시민들은 촛불의 항쟁을 실천해 보았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흐르고 있다. 리좀의 흐름처럼.

규소 세기의 변화는 달리 표출되고 있나니. 벩송이 말한다. 역사에서 자유 용출은 간헐적이지만 열정적이라고.

(5:10, 57RMA) (6:19, 57RMB) (6:32, 57RMC)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알렙 출판사 《서울리뷰오브북스》 서평 공모전 ‘우주리뷰상’(7월 1일~10월 4일) 개최 안내 [한철연 소식]

한철연과 인연이 깊은 ‘알렙출판사’ [http://alephbook.kr/]가 아래와 같이 서평 공모전을 열고 있습니다.

한철연 회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첨부한 한글 파일과 웹페이지 링크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알라딘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모전 안내 글과 응모 페이지 링크, 보도자료 링크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응모 바랍니다!


서평을 통해 책과 독자를 잇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지식 공론장의 창출을 지향하는 서평 전문지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서평 공모전 ‘우주리뷰상’(7월 1일~10월 4일)을 개최합니다.

독서 문화 확산, 인문학적 지평 확대를 통해 사회적 책무를 수행해 온 아모레퍼시픽재단과
인문·사회·과학·교양 독자들의 지식 보급 창구가 되어 온 알라딘과 함께 독서 및 서평 문화의 확산,
신진 서평가 발굴, 도서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독서 및 서평 문화의 정착과 확산에 동참할 서평가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 클릭! 우주리뷰상 안내(알라딘 홈페이지) – 총 상금 1,000만 원

☞ 클릭! 우주리뷰상 보도자료 0701 (pdf 문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김예호 지음, 『대학·중용: 철학의 시대에서 정치를 배우다』(2022)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대학·중용』,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김예호 지음, EBS 오늘을 읽는 클래식

 

인현정(한철연 회원)

 

‘도는 거시기다’

책을 읽다 보면, 국어사전을 일부러 찾게 되는 일이 있다. 아니, 한국 사람이, 아니, 배운 사람이 영어 사전도 아니고 왜 국어사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정말로, 호기심으로 네이버 사전을 즐겨 찾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책의 154쪽, 저자는 「중용」의 도를 설명하기 위해 <도(道)는 거시기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책의 깨알 재미는 매 챕터 시작에 배치된 저자의 따뜻하고도 비근한 개인적 경험이라 자신 할 수 있는데) 필자는 바로 이 파격적 소제목의 문턱에서 코 찡끗 웃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영화 <황산벌>에 등장하는 계백장군의 대사를 열거하며, 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까다로우면, 바로 ‘거시기’를 떠올리라 안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맙소사. 왜 나는 이것을 생각 못 했지? 필자 역시 수업에서 ‘도’ 개념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식적 설명은 늘 다음과 같았다: 1) ‘길’ 도, 2) ‘방법 수단’으로서 도 3) ‘말하다’의 도 4) ‘진리’, ‘보편적 이치’로서 도. 문헌의 전거를 따라, 그리고 네이버 사전의 친절한 문자 용례에 따라 이 4가지를 언급했었다. 그런데, 사실 저자가 설명하고 있듯이, “도란 동양의 철학자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해답이자 진리”였다.

이상의 4가지는 어찌 보면, ‘진짜 도’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그릇일 수도 있는 것이다. ‘도’가 사람이라면, 도는 우리에게 “나한테 그 4가지 없거든~”하고 놀릴 수도 있는 셈이다. 오히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거시기’의 의미(/함의), 즉 ‘범위가 매우 넓어서 모든 사물에 적용되면서도, 모든 사물의 이치를 하나로 꿰뚫고 있는 것’이 ‘도’의 의미(/함의)에 다가가게 하는, 그러니까 겁내지 않고, 쫄지 않고, 성큼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최적의 입문 표현’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 이참에 거시기의 정체를 잡고야 말 테다’ 결심한 필자는, p → q의 범주를 q → p로 확인해 보고자 국어사전을 찾았고, 여기에서 뜻밖의 미궁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거시기’의 뜻에는 필자가 원하는 의미가 없었다.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우리말샘(opendict.korean.go.kr), 어느 곳에도 없었다.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 ‘하려는 말을 바로 말하기 거북할 때 쓴 군소리’, 이뿐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거시기’는 분명한 어떤 사물을 가리킬 때도 사용한다. 바로 말하기 곤란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숨기려고도 사용한다. 심지어 얼른 생각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가장 적합하기에 당당하게 쓰기도 한다! 그런데 어찌 이씹세기도 아닌 작금의 사전이, 현실 용례의 정직한 반영은커녕 이토록 의미를 협소하게 표현하고 있단 말인가. 아, 그래서 저자는 중용의 도는 가깝고도 멀다 강조하고 강조했던 것일까?

필자는 혹시 스스로가 잘못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라 우려하여 일부러 <황산벌>을 찾아 다시 봤다. 총관객 수가 270만 명이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국어사전을 만드는 거시기들이 270만 명의 의미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살지 않고서는, 어찌 거시기의 의미를 이토록 거시기하게 만들었는지, 도저히 거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필자는 84쪽으로 돌아왔다. 그렇다. 지금 필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대학」의 가르침처럼, 탕왕이 그랫듯, 목욕통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두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거시기들을 거시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

2024.07.15


서평자 인현정: (사)한철연 연구협력위원, 세종대와 이화여대에서 (동양)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62)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62)

 

  1. 3. 철학이 비난 받는 현실(487b-497a)

2) 철학자들이 타락하게 되는 이유(489e-495b) – 1

 

[489e-493e]

* 소크라테스는 이제 뛰어난 자연적 성향φύσις을 타고 난 사람들 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못되게πονηρὸς 될 수밖에 없는 까닭과 그렇게 못되게 된 것을 철학 탓αἰτία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를 함께 설명하려 한다.(489e). 그런데 그러한 설명에 앞서 소크라테스는 앞서 언급했던 그 훌륭하고 뛰어난καλόν τε κἀγαθὸν 사람의 자연적 성향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그 성향이 잘 발현되었을 경우 그 사람의 영혼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먼저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그런 사람은 ‘배움을 사랑하는 자’φιλομαθής로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통원하여 진리ἀλήθεια를 추구하는 사람이다.(490a), 그는 ‘있는 것’τὸ ὂν을 향해 매진ἁμιλλᾶσθαι하고 그것에 적합한 영혼의 부분으로ᾧ ψυχῆς ‘각각의 있는 것 자체’αὐτο ὃ ἔστιν ἑκάστον의 본성에 접할 때까지 열정ἔρως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영혼의 그 부분을 통해 ‘참으로 있는 것’과 결합하여μιγείς 지성νοῦς과 진리ἀλήθεια를 낳는다. 그리고 그는 그 앎을 가지고γνοίη ‘진실한 삶’ἀληθῶς ζῴη을 살며 진실한 양육τρέφειν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진통ὠδίς에서 벗어난다.(490b)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마치 가무단χορός의 구성원들이 그러하듯 뛰어난 사람에게 따라 붙는 자연적 성향들로서 건전하고ὑγιής 정의로운 성품ἦθος과 절제σωφροσύνη를 비롯해 용기 ἀνδρεία, 호방함μεγαλοπρέπεια, 쉽게 배우는 능력εὐμάθεια, 기억력μνήμη 등을 언급한다.(490c) 이러한 서두적 언급은 철학자들이 타락했다고 비방διαβολή하는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철학자들의 자연적 성향들이 어떻게 왜 타락했는지를 보다 명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490d)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비로소 1) 이러한 뛰어난 자연적 성향이 어떻게 타락φθορά하고 파멸하는지διόλλυται, 2) 다중들에게 쓸모없다ἄχρηστος고 여겨졌던 소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 파멸에서 벗어나는지(490e) 그리고 끝으로 3) 철학자의 성향을 흉내 내면서 철학자들이 타락한 자리를 대신 비집고 들어온 가짜 철학자들이 자신들에 걸맞지 않게ἀνάξιος 어떠한 방식과 활동ἐπιτήδευμα으로 잘못을 저질러 철학에게 나쁜 평판δόξα을 가져다주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491a)

* 그런데 위와 같은 3가지 논제 가운데 우선 소수ὀλίγος의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뛰어난 자연적 성향이 어떻게 타락φθορά하고 파멸하는지’에 관해 논의하면서 소크라테스는 놀랍게도 앞서 언급한 뛰어난 자연적 성향들에 더해 아름다움κάλλος과 부πλοῦτος, 신체의 강함ἰσχὺς, 힘 있는 가문συγγένεια ἐρρωμένη, 그리고 이들과 유사한 모든 것들이 역설적으로 그 자연적 성향들을 못되게 만들어 영혼을 파멸시키고 철학을 멀리하게 하여 결국은 철학자들을 타락에 빠트린다고 말한다.(491b-c) 이에 아데이만토스는 보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고 소크라테스는 그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위해서는 전체적ὅλος으로 제대로ὀρθῶς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이렇게 해서 시작된 1)의 논제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식물φυτόν이든 동물ζῷον이든 모든 씨앗σπέρμα이나 새끼들의 경우 적절한 양분τροφή이나 계절ὥρα, 장소τόπος를 얻지 못했을 경우 더 힘 있는ἐρρωμενέστερον 것일수록 그만큼 더 적절한πρεπόντων 것들을 결여하게 되어 단순히 좋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최고의 자연적 성향이 그에 맞지 않는ἀλλοτριωτέρον 양육을 받으면 그저 그런φαῦλος 성향보다 더 나쁘게 되어버린다.(491d) 이와 마찬가지로 영혼도 가장 좋은 영혼이 나쁜 교육παιδαγωγία을 받았을 때 특별히 나쁘게 된다. 그러므로 큰 부정의τὰ μεγάλα ἀδικήματα와 극단적인ἄκρητος 못됨πονηρία은 활기찬νεανικός 자연적 성향이 양육에 의해 철저하게 파멸되었을 때 생기며, 반대로 약한ἀσθενής 자연적 성향은 큰 좋은 일의 원인도 되지 못하고 큰 나쁜 일의 원인도 되지 못한다.(491e) 요컨대 철학자의 자연적 성향들의 경우 적절한 배움을 만나면 성장해서 모든 덕ἀρετὴ을 이루게 되는 것이 필연적이지만, 적절하지 못한 장소에 씨가 뿌려지고 태어나서 양육되면, 신들 중에 누군가라도 도와주지 않는 한, 이번에는 완전히 그 반대가 되는 것이 필연적이다.’(492a)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자연적 성향들을 타락시키는 이유 즉 그러한 뛰어난 성향을 가진 젊은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누가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를 밝힌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달리 소크라테스가 가장 나쁜 양육 주체로 꼽는 집단은 소피스트들이 아닌 다중들ὁὶ πολλοί이다. 그는 설사 소피스트들이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고 해도 다중들에 비하면 정작 이렇다 할 게 없다고 말한다.(492a) 진정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것은 그러한 사적인ἰδιωτικός 소피스트들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μεγίστος 소피스트들 바로 다중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젊은이든 늙은이든 남자든 여자든, 그들을 가장 완전하게 교육시켜서 자신들이 원하는 종류의 사람으로 만들어낸다.(492b) 다중들은 민회ἐκκλησία나 법정δικαστήριον이나 극장θέατρον, 군대 막사στρατόπεδον, 혹은 다른 어떤 공공 대중πλῆθος 집회σύλλογος에서 큰 소리로 고함도 치고 박수도 치면서 비난과 칭찬을 극도로 일삼는데 바위와 그들이 있는 장소가 울려서 그 비난과 창찬의 소리가 두 배로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τὸ νέος는 그러한 비난과 칭찬에 휩쓸려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그 어떤 사적인 교육παιδεία ἰδιωτικὴ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동일한 것들을 아름답고καλὰ 추하다고αἰσχρὰ 주장하며, 그들이 하는 활동을 하며 그와 같은 사람이 된다.(492c) 게다가 교육자οἱ παιδευταί이자 소피스트인 다중들은 자신들의 설득에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을 행동으로 강제ἀνάγκη하여 시민권을 박탈ἀτιμία하고 벌금χρῆμα이나 사형θάνατος 등으로 징계한다κολάζουσι. 그러므로 어떤 소피스트 또는 어느 누구도 이들을 이겨낼 수 없다. 그러한 시도자체가 어리석은ἄνοια 일이다.(492d) 그리고 신적인θεῖον 성품ἦθος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들의 교육에 반대되는 교육παρὰ τὴν τούτων παιδείαν을 받아 덕ἀρετὴ과 관련해서 다른 종류의 성품이 생기는 일은 과거, 현재, 미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이 일상으로 벌어지는 정치체제πολιτεία 안에서 만약 어느 누가 신적인 성품을 갖고 있다면 그는 신의 섭리μοῖρα로 구원σώζεῖν을 받은 것이다.(49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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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e ‘못 되다’poneros : 플라톤은 이곳 문맥에서 이 말을 ‘타락phthora’, ‘철저히 파멸되다diollymi’라는 말과 함께 ‘철학적 성향의 전락 또는 붕괴’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490e 참고) 기독교 주기도문 중 ‘악에서 우리를 구하옵소서’rhysai hemas apo tou ponerou라는 구절에서 ‘악’의 원어 또한 그 말이다.

* 489e ‘훌륭하고 뛰어난kalon te kagathon’ : 플라톤이 가장 훌륭한 사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최고의 수식어. 당연히 이 말이 가리키는 사람은 철학자이다.

*489e 앞서 이야기 했던 자연적 성향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 철학자의 성향과 관련하여 앞서 484a부터 487a까지 다루었던 내용을 가리킨다. 487a에서는 그것을 기억력이 좋음, 쉽게 배움, 호방함과 정중함, 진리와 올바름, 용기와 절제 등으로 요약하고 있고, 이곳 490c에서도 건전함과 정의로움이 더해지면서 그것들 모두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 490a-d :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내세우고 있는 철학자에 대한 변론은 철학자의 타고난 성향이 아무런 장애나 방해 없이 발현될 경우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될 지에 관한 언급이다. 다시 말해 철학적 성향이 타락하지 않고 제대로 발현 되었을 때의 가장 이상적인 철학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플라톤이 철학자의 타락을 논하기 전에 이곳에서 가장 이상적인 철학자의 모습부터 먼저 제시하려는 까닭은 타락과 무관한 원래 상태부터 이야기해야 다중들이 제기하고 있는 철학자의 타락 내용이 무엇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곳에서 진정한 철학자들의 자연적 성향을 다시 거론하고 그것이 필연적으로 어떤 영혼의 상태를 갖는지를 규정(490d)하려 한다.

* 490b 영혼의 이 부분이 그와 결합하여 지성과 진리를 낳아야 : 이곳에서는 철학자가 갖는 철학적 인식의 특성이 남녀의 결합과 출산 및 양육 과정의 고통으로 비유되고 있다. 즉 철학자가 갖고 있는 영혼의 부분으로서 지성nous은 ‘있는 것’to on에 열정eros으로 다가가 그것과 결합mignumi(‘성교’의 뜻도 있다)하여 자식으로서 지성은 물론 진리를 출산하고 그 자식을 진실되게 양육할 때까지 진통ōdis을 멈추지 않는다. 산파술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철학자는 스스로 지성과 진리를 낳는 사람인 동시에 다른 사람이 지성과 진리를 낳도록 이끌고 도와주는 사람이다. 이곳에서 ‘있는 것’, ‘각각의 있는 것 자체’auto ho estin hekaston는 이데아를 가리키고 ‘각각의 많은 것들’ta polla hekasta은 그 이데아가 관여된 현상계 사물 또는 사태들이다. 이처럼 영혼과 존재의 결합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다른 대화편들(<파이드로스> 246e-247d, <향연> 210a-212a, <테아이테토스> 156a ff)에도 나타나고 특히 신플라톤주의에서 그 결합은 신비적인 특성을 갖고 그려진다. 어떤 이는 여기서 말하고 있는 진통이 상대에게 열정으로 다가 가는 데에서 부터 결합하여 낳고 양육할 때까지 전체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철학적 인식에 다가가는 것은 물론 그것을 통해 진리를 획득하고 보전하고 실천하는 과정 전체가 진통인 셈이다. 그야말로 플라톤의 관점에서 철학은 실로 그 자체로 고통을 수반하는 고도의 지적인 탐문이자 비판적 자기 반성 그리고 실천인 것이다.(J. Adam 이 부분 노트 참고)

* 490c 가무단chorus : 서로가 서로에게 부합하고 함께 어울리는 무리를 의미한다.

* 490d ‘일부는 쓸모없고 나머지 대다수는 완전히 나쁜 사람’ : 어떤 원전 역본에서는 ‘일부는 쓸모없고 다른 일부는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번역문 ‘다른 일부’에 해당하는 원문은 ‘polus(대다수)’이다. 즉 ‘다른 일부’라는 번역은 플라톤이 이 문장을 통해 나타내려고 하는 진정한 소수 철학자들과 다수의 타락한 철학자들 간의 수적 대비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역이다. 원전 역본임을 자부하려면 소소하지만 이러한 부분도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490e-491a :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무용성에 관한 논의에 이어 철학자의 타락에 관한 논의가 어떻게 구성될 것인지를 미리 밝힌다. 요컨대 우선 1) 철학자가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다룬다. 그다음 2) 그럼에도 그런 가운데 어떻게 소수의 철학자가 그 타락을 면하게 되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끝으로 3) 철학적 성향을 갖고 있지 않은 가짜 철학자들이 어떤 행태를 범하면서 철학에 대한 평판을 나쁘게 만드는지를 살핀다.

* 491b-491e : 이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요즘 사람들도 흔히들 말하듯 ‘똑똑한 놈이 나쁜 짓하면 덜 똑똑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는 것보다도 더 큰 해악을 초래한다.’, ‘도둑질도 더 똑똑하고 더 힘센 도둑이 더 큰 도둑질을 한다.’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이러한 생각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설명들은 그리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소크라테스가 열거하고 있는 철학자가 갖고 있는 자연적 성향들의 목록을 보면 진리와 정의뿐만 아니라 용기 및 절제, 호방함, 뛰어난 기억력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타고난 성향이 뛰어난 젊은이가 타락을 했다고 말할 경우 진리와 정의에 대한 의지가 줄어들었거나 없어졌을지는 몰라도 용기 및 절제, 호방함, 뛰어난 기억력 등 그가 원래 갖고 있던 자연적 성향 내지 능력이 줄어들거나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말한 타고난 철학적 성향의 타락이란 그가 열거한 수많은 자연적 성향들 중 이를테면 진리와 정의 등 ‘있는 것’을 향한 성향의 타락에 한정해야 하고 목적이나 가치와 무관한 다른 일반 기능적 능력은 제외된다고 보아야 할까? 소크라테스도 보다 활기찬 자연적 성향이 더 크고 나쁜 일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을 때(491e) 그 활기찬 자연적 성향이 이미 타락한 자에게도 활기찬 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일관성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자연적 성향들 중 어떤 것은 타락하고 어떤 것은 타락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느 곳에서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설명들 모두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는 길은 없는 것일까?

* 소크라테스가 철학적 성향들의 예를 들고 그 성향들의 타락을 설명하려 하자 아데이만토스는 보다 더 자세하게 알려 주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세하게’akribēs 말하기 보다는 ‘전체적으로’hōlos ‘제대로’ortōs 파악해야 그것이 분명하게 이해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핀 대로 사실 소크라테스의 의도는 분명해보이지만 자연적 성향들을 개별적인 성향들 차원에서 자세하게 나누어 설명할 경우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언급하고 있는 대로 자연적 성향들을 전체적으로 유기적으로 제대로 살펴보면 우리는 그의 의도와 설명이 어떻게 일관성을 갖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자연적 성향들의 타락은 개별 성향들 차원에서 각각의 성향들의 타락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자연적 성향들의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관계 속에 드러나는 그 자연적 성향들 전체의 타락 다시 말해 그러한 성향들 전체의 담지자로서 철학자 자신의 인격 내지 품성ēthos의 타락을 말한다. 이를테면 용기와 절제 등이 타락한다는 것은 성향들의 개별적인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성향들이 다른 성향들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과연 진리와 정의의 성격을 더욱 보전하고 관철하는 쪽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아닌지 그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용기와 절제, 뛰어난 기억력과 호방함, 강건한 신체 등 모든 타고난 성향들은 개별적으로 기능적 뛰어남을 갖고 있을지라도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리와 정의가 아닌 거짓과 부정의를 드러내는 것들로 작용할 경우 이미 그것은 타락한 성향들이며 게다가 그 기능적 뛰어남으로 그 작용력을 배가시킬 경우 그 성향들은 더욱 타락한 성향들이 되는 것이다. 요컨대 철학자의 타락 여부는 그가 자연적 성향으로 갖고 있는 뛰어난 성향들이 어떤 양육을 통해 어떤 총체적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 그럼에도 소크라테스가 예를 든 식물이나 동물, 씨앗의 경우는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어떤 생명체가 나쁜 환경이나 토양에서 양육될 경우 더 강한 성향을 가진 것일수록 더 오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으면 있지 그 강함 때문에 더 빨리 시들거나 죽을 것이라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를 들어 어떤 호박씨가 나쁘게 양육된다고 해도 병들고 허약한 호박은 될지언정 호박이 아닌 다른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보면 철학적 성향이 나쁜 환경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다만 철학적 성향 자체는 다만 줄어들거나 약해질 뿐이지 그 반대의 다른 성향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위와 다르게 플라톤의 의도에 부합하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식물이든 동물이든 씨앗이든 험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것일수록 애초의 특성보다 훨씬 더 거칠고 억센 특성을 갖고 있으며 게다가 환경 조건이 아주 나쁜 곳에서 살아남은 생명체일수록 그 생명체들은 건강에 좋지 않은 물질을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쁜 환경에서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 나쁜 환경에 적응하여 그 나쁜 요소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어쨌거나 플라톤이 이곳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매우 분명하다. 492a에서 결론 내리고 있듯이 철학자의 자연적 성향이 적절한 배움을 만나면 성장해서 모든 덕을 이루게 되지만 적절하지 못한 장소에 씨가 뿌려지고 태어나서 양육되면 그 성향의 뛰어남이 크면 클수록 완전히 그 반대가 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참주의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가진 아들로 태어나 참주에 의해 자신의 가장 뛰어난 후계자로 양육되었을 경우 그 아들은 유능하면 유능할수록 더욱 사악하고 못된poneros 참주, 타락한 참주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에게 이러한 사례는 민주정 치하에서 권력을 꿈꾸는 뛰어난 성향을 가진 젊은이들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젊은이들이 아무리 뛰어난 철학적 성향을 갖고 태어날 지라도 그가 태어난 곳이 민주정 치하라면 그들 중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타락을 면치 못할 것임을 통탄스러운 어조로 토로하고 있다.

* 492a ‘자네도 다중들처럼 소피스트들에 의해서 타락한 젊은이들이 있으며, 타락시키는 일을 이렇다 할 만하게 하는 사적인 소피스트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 이 말을 언뜻 들으면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이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있다는 다중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 젊은이들의 타락과 관련하여 소피스트들에게 돌릴 이렇다 할만한 탓이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 우리는 젊은이의 타락과 관련하여 ‘사적인idiōtikos 소피스트’ 즉 소피스트와 ‘위대한megistos 소피스트’ 즉 다중이 대비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즉 소크라테스의 그 발언은 그 둘을 대비하면서 다중들이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비해 사적인 소피스트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미미한 것인가를 강조하는 수사적 차원에서 언급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당연히 소피스트들이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다중이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소크라테스가 다중들도 소피스트라고 부르면서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정작 소피스트들에게는 ‘사적인’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사적인’의 원어 idiōtikos가 ‘아무렇게나 하는’, ‘비전문가적인’, ‘아마추어적인’이란 의미도 갖고 있음을 고려하면 소크라테스가 이 문맥에서 소피스트를 옹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얼마나 그들을 폄하하고 경멸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말하고 있듯이 ‘무엇이 좋고 나쁜지 무엇이 정의롭거나 부정의한지 알지 못하면서’ 그저 ‘다중의 기호에만 영합하여 그들로부터 보수를 받고 살아가는’(493a) 일개 지식 장사꾼에 불과하다. 그리고 소피스트의 영향력이 주로 젊은이들에게 맞추어져 있다면 다중의 영향력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종류의 사람으로 만들어낼 정도로 실로 막강하다. 요컨대 이 문맥에서 소크라테스가 문제 삼으려는 대상은 소피스트들이 아니라 다중들인 것이다.

* 492b ‘대중’plēthos : 전번 강해에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플라톤은 이곳 전후 문맥에서 ‘민중(dēmos)’과 관련하여 다중(hoi polloi, 489a, 490e, 492a, 493c, 500b)이란 말도 쓰고 있고 여기에서처럼 가끔 대중(plēthos, 492a, 494a)이나 군중(ochlos, 494a)이라는 말도 대신 쓰이고 있다. 이 표현들은 민중 일반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지만 굳이 차이를 드러내고자 한다면 민중dēmos은 넓은 의미의 people 즉 일반 대중이라는 계급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다중hoi polloi은 ‘소수의 사람들’hoi holigoi과 대비하여 말 그대로 ‘대다수의 사람들’이라는 수적 의미를 드러내는 표현이라 할 것이다. 대중plēthos 또한 원어 자체가 양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중과 거의 동의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군중ochlos은 어원상 ‘동요하다’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집단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상태의 다중 또는 대중’을 표현하는 말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politēs는 도시국가 구성원 전체 즉 시민 또는 국민을 나타내는 말이다.

* 492b ‘민회나 법정이나 극장, 군대 막사, 혹은 다른 어떤 공공 대중πλῆθος 집회’ : 이 문맥은 앞서 언급된 ‘위대한 소피스트로서 다중’이 그저 다중 일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민회나 법정, 극장과 공공 대중 집회’라는 모종의 정치 사회적 시스템이 일상적으로 확립된 이른바 ‘민주정 치하에서 살아가는 다중’임을 확인해 준다.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를 타락시키는 가장 큰 원인으로서 꼽고 있는 다중은 그냥 다중이 아니라 ‘큰 소리로 고함도 치고 박수도 치면서 비난과 칭찬을 극도로 하고, 여기에 더해서 바위와 그들이 있는 장소가 울려서 비난과 칭찬의 소리를 두 배로 만들 수 있는’ 민주정이라는 정치 체제에서 중추 집단으로서 살아가는 이른바 군중으로서 다중인 것이다. 사실 다중 또는 대중은 민주정에서 뿐만 아니라 귀족정이나 참주정 하에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서 묘사되고 있는 다중은 귀족정이나 참주정 하물며 철인왕정 치하의 다중이 아니다. 실제로 플라톤은 전 시간에도 언급했듯이 다중의 수준을 폄하하는 아데이만토스에게 대중을 그런 식으로 비난하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대중들이 배움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철학자들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어 그런 상태에서 다시 문제를 바라보면 충분히 다른 의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499e-500b) 이렇게 보면 플라톤이 철학자의 타락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은 다중 그 자체라기보다는 다중을 군중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나라의 근본 의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이른바 정치체제로서 민주정인 것이다. 위대한 소피스트들이 지배하는 이런 민주정체 하에서는 어떠한 사적인 교육도 맥을 못 출 뿐만 아니라 일부 말로 설득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시민권 박탈이나 벌금, 사형 등의 강제력을 동원하여 징계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어 아무리 뛰어난 철학적 성향을 가진 젊은이들이라 할지라도 거의 대부분 그 흐름에 휩쓸려가 타락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도 소크라테스가 493e에서 ‘대중들이 철학자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을 때 대중 역시 대중 일반에 대한 플라톤의 평가가 아니라 아테네 민주정 치하의 다중에 대한 것이라 할 것이다.

* 492e-493a의 내용은 그야말로 민주정에 대해 플라톤이 느끼는 절망이 얼마나 큰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민주정 체제 하에서는 다중에 대항하여 그들과 다른 의견을 표출할 수도 없고 설사 표출을 하더라도 결코 이길 수가 없다. 그러한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민주정 체제 하에서는 다중의 교육에 반대되는 교육을 받아 덕과 관련하여 인간으로서 다른 종류의 성품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만약 어느 누가 신적인 성품을 갖게 되었다면 그것은 가히 신의 섭리가 그를 구원한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 우리는 이러한 민주정에 대한 플라톤의 절망과 관련하여 근대 이후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를 토대로 아래와 같이 비판할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 하에서 살아가는 다중은 때론 군중심리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적 공론의 장을 통해 독립된 개인으로서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현대 민주주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물론 법 앞의 평등과 자유권을 보장하며 그것을 토대로 개인은 어떠한 국가적 폭력으로부터 제도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다중이 군중화 된다고 해서 반드시 반지성적으로 휩쓸리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촛불혁명이 그랬듯이 다중 스스로 정치적 의사를 결집하고 연대하여 그 결집된 힘을 통해 정치적 억압과 불합리성을 개혁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중이 이와 같이 집단적인 지성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현대 민주주의의 대의적 한계를 극복하는 또 다른 가능성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 플라톤이 현대 민주주의를 경험했다면 여기에서 표출될 정도의 절망감으로 민주정을 바라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의 민주정 비판은 당대 아테네 민주정 그것도 저물어 가는 혼돈기 아테네 민주정의 피폐상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당대 민주정에 대한 그의 비판은 현대 민주주의가 한편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반성적으로 뒤돌아보게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성찰을 적지 않이 담고 있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플라톤이 비판하고 있는 것은 다중 자체가 아니다. 전번 강해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플라톤은 다중 역시 철학적 교유와 소통을 통해 충분히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분명하게 믿고 있다(499e) 문제는 아테네라는 특수한 민주정 체제가 대중의 지배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대중의 의사 결정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대중 자신이 아니라 아무런 공동체적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그저 대중들의 욕망에만 부응하여 개인의 권력욕을 채우려는 선동정치가들과 그들의 선동 기술을 마치 지혜인 양 돈을 받고 가르치는 소피스트들이라는 데 있다. 그들은 비록 사적인 소피스트들이지만 그들이 정치를 지망하는 귀족 청년들과 선동정치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고 그 영향이 종국적으로 선동정치가들을 통해 다중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존재로 등극시킬 만큼 그 폐해의 크기는 가히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하다. 무엇보다 아테네 민주정은 이들의 피폐한 영향력을 통제 또는 관리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반대로 어떤 개선의 여지도 들어설 수 없을 정도로 오로지 그들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배양 장치로 전락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중의 욕망을 지배하고 그들의 분노와 쾌락을 파악하는 기술을 체계화한 후 이른바 그것을 지혜라는 이름으로 사적 소송 기술 영역에서 만이 아니라 정치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가르쳐 결과적으로 아테네 사회를 소송과 음해 정치적 선동이 난무하는, 거대하고 힘센 짐승들이 미치듯이 날뛰는 무도한 사회로 만들고 말았다.

* 오늘날 현대 민주주의는 플라톤이 그린 아테네 민주정과 비교하여 역사적 등장 배경은 물론 인구와 규모, 제도의 복잡성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차이를 갖고 있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라는 핵심 가치를 보존하려는 여러 가지 대의적 법적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테네 민주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이곳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다중의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관한 문제 즉 공론의 장으로서 언론 영역에 한정하여 그 근본 문제점을 들여다 볼 경우, 최소한 현대 민주주의와 아테네 민주정이 갖는 차이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현대 민주주의의 공론의 장 역시 여전히 아테네 소피스트와 마찬가지로 다중의 욕망과 권력에 영합한 지식인들이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고 그에 따라 정치적 의사결정 또한 비록 다수결에 따른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본 권력 등 소수의 특권적 지배 엘리트들이 생산한 담론들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지배 엘리트들의 욕망이 황금지상주의에 압도되어 있는 한, 다중들의 욕망 또한 이기적이고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는 모두가 인정하듯 거의 정글이 되다시피 했다. 게다가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아예 이러한 사회의 정글화를 마치 인류 모두가 숙명처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문명사적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 상황이 이러하니 비록 현대사회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기는 해도 최소한 현대인이 느끼는 절망감은 당대 현실에 대해 플라톤이 느끼고 있는 절망감과 비교하여 그리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아테네 민주정은 플라톤이 절망한 그 만큼 실제로 혼란을 거듭한 끝에 마케도니아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그리고 마케도니아는 역설적으로 아테네를 멸망시킨 그 제국주의를 내세워 이른바 세계화 전략을 실행한 첫 번째 제국이 되었다. 그리고 아테네 민주정과 마케도니아가 채택한 최초의 제국주의 내지 세계화 전략은 로마를 거쳐 오늘날 근대 자유주의의 등장과 함께 미국과 유럽 등 제국주의 강국들의 정치 사회적 이념으로 되살아 나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치 제국주의 아테네 민주정이 걸어왔던 길 그대로 세계는 나날이 힘센 짐승들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모해가면서 급기야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플라톤이 우려한 그대로 그것도 가히 세계적 차원에서 극우주의자들과 그들을 등에 업은 정치가들이 날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플라톤이 왜 민주정을 폄하했는지 그 생각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플라톤이 왜 민주정을 비판하고 철인왕정을 통해 정치의 지성화를 주창하게 되었는지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다음 주제>

  1. 3. 철학이 비난 받는 현실(487b-497a)

2) 철학자들이 타락하게 되는 이유(489e-495b) – 2

재미 사학자 이혜옥 선생의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글을 읽다, 2021)를 읽고 [이종철 선생의 에세에 철학]

재미 사학자 이혜옥 선생의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글을 읽다, 2021)를 하루 만에 단숨에 읽었다. 2년 전인 2022년 4월경 나는 저자가 의왕시에 위치한 한 출판사에서 출판 기념회를 할 때 우연한 기회로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가정집을 개조해 출판사로 운영하는 곳에서 자그마한 몸집의 저자가 2시간 넘게 책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질의응답을 할 때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그때 저자가 사인한 책도 선사를 받았고, 내 차로 전철역까지 모셔 드리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그 사이 무슨 바쁜 일이 그렇게 많았는지 잊고 있다가 이제야 읽은 것을 보면 책도 아마 인연이 따르는 듯싶다.

이혜옥 선생은 미국의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사서를 하다가 뒤늦게 본격적인 학위 과정 공부를 시작해서 박사 학위 논문으로 이 책을 완성했다. 저자는 1904년 <강철 군화>의 저자로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잭 런던(Jack London)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의 러-일 전쟁 종군 기자로 대한 제국에 5개월간 파견되어 쓴 신문기사와 여행기 그리고 많은 사진에 관해서 쓴 영문 논문 <History of Early-modern Korea Through the Eyes and Pen of Jack London, 1904>에 기반해 썼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 논문에서 일본의 속국이 되기 삼십여 년 전에 한국인들이 일본군의 일원으로 참여했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그 당시의 여러 신문기사와 한국, 미국, 러시아, 일본 정부의 국가 공문서에서 찾아낸 기록들에 발로 뛰어다니면서 찾아냈다. 아울러 한국인들은 러시아군에도 전투 병력 또는 정탐 군으로 참여했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이로 미루어본다면 한국인들은 6.25 전쟁에서 동족 상잔을 겪기 훨씬 전에 이미 러-일 전쟁에서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된 배경에는 조선의 몰락과 함께 만주와 러시아로 이주한 조선인들과 생존을 위해 일본의 앞잡이 노릇한 조선인들이 있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대표적으로 유대인을 상징하는 말이지만, 한인들 역시 유대인 다음으로 전 세계에 걸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매 장을 여러 버전의 아리랑으로 시작한다. 아리랑은 한인들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노래라 한인들이라면 어디에 있든 잊지 않고 부르는 노래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 번 가면 다시는 못 오는 고개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에는 어쩔 수 없이 처자를 데리고 고향 땅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가던 한인들의 애절한 한이 잘 드러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한인들의 디아스포라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19세기 중반 이후 초근 목피로 연명하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식솔들을 이끌고 만주나 그 밖의 땅으로 이주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조선이 무너지면서 정치적 이유로 조선을 떠난 것이다.

경제적 이유로 조선 땅을 떠난 최초의 기록에 따르면 임란 전에도 있었다. 그 당시에도 가난과 학정에 시달리던 한인들이 월경하다가 목숨을 잃은 기록들이 있다. 하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1860-70년대에 극동 러시아와 만주로 대거 이주했던 주원인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반-상 차별의 봉건적 신분관계와 억압적인 관료주의, 과도한 세제-백골징포-의 문제에 있었다. 조선이 후기로 내려올수록 민란이 잦았던 것도 삼정문란에 따른 과도한 세금 포탈 때문이었다. 죽어서 백골이 된 사람이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는 태중의 아기에까지 세금을 매겨서 수탈하니 가뜩이나 어려운 소작인들이 생존을 이어가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런 사정을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의 이야기에 잘 나와 있다.

 

“남편이 병들어 죽은 지 이미 3년이 되었는데도 대정을 하지 못하여 아직도 배골의 신포를 바치고 있는데 지난해 일곱 살 난 아이가 세초에 들어갔고 등에 있는 네 살 난 아이도 올해 세초에 들었습니다. 종리 기필코 보존하고 있으려 했던 것은 남편의 외로운 무덤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감당할 수 있는 형세가 없어졌습니다.”(71-72쪽)

 

사농공상에 기반한 조선은 그야말로 힘없는 백성들을 마른 걸레 짜듯 수탈하면서 유지되던 국가였다. 오늘날 북한 사회를 보면 조선의 옛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이처럼 극한 상황에 처한 백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야반도주해서 국경을 넘었다. 이들이 못나고 게을러서 가난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 한인들은 체격상 일본인보다 뛰어났고, 이들이 이주한 만주나 러시아에서 한인들은 근면한 노력과 현지인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농사기술’로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국에 있었을 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부유하고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조선이라는 국가에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그런 나라를 떠나왔지만, 한인 디아스포라들은 현지에 동화되지 않고 한인들의 언어와 풍습을 유지하면서 살았다.

대원군이 조선을 개혁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특히 그가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경복궁을 중창하는 일에 막대한 인력과 세금을 쏟아붓고, 국제 정세의 변화를 외면한 채 쇄국정책을 폄으로써 조선을 더욱 고립 정체시키고, 세도 정치를 막기 위해 간택한 왕비 윤 씨와 정치적 갈등을 빚으면서 조선은 마지막 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반면 일본은 1854년에 미국과 굴욕적인 통상 조약을 맺은 이래 1868년 메이지 유신의 개혁 정책에 따라 빠른 속도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근대화의 발길을 재촉했다. 일본은 1876년 조선과 강제적으로 강화도 조약을 맺고,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조선 땅에서 청일 전쟁에 승리를 한다. 이후 일본의 정한론자들은 노골적으로 조선의 왕실을 장악해서 서서히 조선의 군대를 해산하고 조선의 외교와 재정을 장악하면서 식민지화를 강행한다. 1905년의 을사조약과 1910년의 강제 합병은 예정된 수순에 불과했다.

한인들의 2차 디아스포라는 이렇게 조선이 정치적으로 무력해지면서 나타났다. 이때의 디아스포라는 1860-70년대의 경제적 이유로 이주한 것과 달리 양반 출신의 식자층과 조선의 독립운동을 모색한 개혁 측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이들은 독립운동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만주에 수많은 학교들을 세워 인재들을 양성했다. 이들은 만주와 러시아 그리고 몽골 등을 중심으로 활동 기반을 만들었다. 이들은 전 세대의 디아스포라가 현지의 토착화에 관심을 갖는 것과 달리 언제든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을 갖고 조선의 언어와 풍습 그리고 문화 등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는 조선의 독립을 위한 방편으로 사회주의를 끌어들인 이동휘, 단지회를 결성해서 조선의 무장 투쟁을 부추겨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그리고 애국심을 심어주는 교육에 주력한 북간도의 이상설과 신민회 등 여러 갈래들이 있었다.

이혜옥 선생은 1937년에 있었던 고려인의 강제 이주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스탈린이 다민족 디아스포라인들을 ‘반역자’로 의심했고, 외국인들은 거의 병적으로 불신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스탈린은 “비 러시아 민족을 대상으로 대숙청과 강제 이주를 시행했는데, 이런 방법으로 적의 세력을 소탕하고, 소비에트 사회를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전쟁에 대비하려는 심산이었다. 그 정책의 첫 번째가 엄청난 수의 고려인들을 극동 러시아로부터 남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랄해와 발카쉬 호수 지역으로 이주시킨 것”(300쪽)이다. 화장실도 숙식 시설도 없는 열차 여행길은 30일 내지 45일이 걸렸는데, 이 긴 여행 과정에서 고려인들은 질병과 부상으로 무려 16.3 퍼센트가 사망했다. 나머지 60퍼센트도 다음 해 봄에 또 다른 미지의 고향으로 실려갔다. 수십 년 전에 가난과 차별 대우를 못 이겨 국경을 넘어갔던 불쌍한 조선의 농민들이 또다시 알지도 못하는 멀고 먼 고장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대규모로 이루어진 다국적 한인 디아스포라는 그야말로 애환과 고통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그럼에도 한인 디아스포라는 중국계 역사가 매들린 슈가 말한 것처럼 ‘모국을 향해 지속하는 충성심으로 단합’해서, 어디에 살고 있던 언젠가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 환향을 믿고 그날을 위해 살고자 했다(313쪽). 이러한 전통은 끊이지 않고 미래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디아스포라가 조선이라는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발생한 것을 미루어본다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국가의 책임과 역할은 지대하다. 오늘날 전 세계를 강타하는 한류의 바람도 대한민국의 국력 신장과 한인들의 열정과 재능 그리고 애국심 등에 힘입은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 이혜옥 선생의 방대한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선생은 뒤늦게 시작한 학술 연구지만 이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 “당시의 신문 기사와 서양인들의 조선 여행기, 일본과 미국의 내쇼날 아카이브, 러시아와 한국의 일차 자료뿐만 아니라, 미국 내 도서관에 소장된 수많은 기록과 출판물을 추적하여 발췌한 역사적 사실들을 서술한 것”(8쪽)이다. 선생의 이러한 노고는 책 뒤편에 실린 방대한 참고문헌(Bibliography) 목록으로 확인된다. 이것들만으로도 이 책의 연구사적 가치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저 책상에 앉아서 문헌들만 뒤적거리면서 쓴 것이 아니라 발로 뛰어다니면서 문헌들을 찾고, 오랜 도서관 사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사료들을 정리하고 해석한 노고의 산물이다. 이런 연구는 민족 사학이니 식민 사학이니 하면서 추상적인 개념만을 둘러싸고 갑론을박하는 한국의 역사학계가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에세이 철학 서론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에세이 철학 서론

 

이 땅에서 흔히 하는 철학 활동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남의 철학을 소개하고 해설하고 해석하는 것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양철학의 경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근대의 데카르트를 거쳐 영국의 경험론이나 독일의 관념론, 그리고 20세기 들어 후설이나 하이데거, 프랑스의 구조주의나 해체주의 계열들을 포함해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들을 학습하기도 쉽지 않은데 어찌 독자적으로 해석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이런 철학들을 연구하면서 자기 이야기나 철학을 이야기하기는 더 어렵다. 마찬가지로 동양철학의 경우도 공맹과 노장사상, 전국시대의 법가로부터 시작해서 송나라의 주희를 비롯한 신유학자들을 연구하는 것도 벅찬데 어떻게 자기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정은 한국의 사상과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경험하고 있다. 원효와 의상의 불교 철학으로부터 고려의 의천과 지눌, 그리고 조선의 뛰어난 유학자인 퇴계와 율곡의 철학, 또 다산과 같은 실학자의 사상들을 평생 연구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나의 철학과 사상을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철학이야말로 가장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학문인데 이렇게 허구한 날 고래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의 철학만 한다면 내가 하는 철학을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오늘날 이 땅에서 철학을 하는 연구자들이 부닥치는 공통된 딜레마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철학을 오로지 이론으로 학습을 하려 하고, 철학 공부를 특정한 철학자들을 연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문제의식을 갖고 스스로 세운 문제들을 탐구하면서 철학을 하지 않다 보니 그들 거의 대부분 다른 철학자들이나 사상에 의존해서만 철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찍이 임마누엘 칸트도 자기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면서 “요즘 학생들이 철학은 많이 알고 있지만 자기 스스로 철학을 하지는 못한다(nicht philosophieren)”고 지적한 말을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철학을 연구하고 해석하기만 할 뿐 자기 스스로 철학적 사유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G.W.F 헤겔은 “철학은 사유 속에 포착한 그 시대”라고 갈파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저기서 말하는 사유와 시대에 과연 나의 사유가 있고, 우리의 시대가 있을까? 영국의 경험론은 17-8세기의 영국의 시대를 포착한 것이고, 독일 관념론은 18-9세기의 독일의 현실을 반성하면서 나온 철학이다. 20세기 후반의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는 이차 세계 대전 후 공고해진 자본주의 질서와 냉전, 그리고 6.8 혁명에 대한 반성에서 싹튼 철학이다. 이에 반해 식민지와 전쟁, 유신 독재와 근대화 그리고 민주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기를 산 한국의 어떤 철학자들도 자신들의 시대와 현실을 제대로 반성한 적도 없고, 또 그것을 자신의 언어와 사유로 표현한 적도 없다. 그저 열심히 독일 철학과 프랑스 철학을 이야기하고, 영국 철학과 미국 철학을 이야기할 뿐이다. 서양철학을 예로 들었지만, 사정은 동양철학이나 한국 철학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시대와 우리 삶을 반성하지 못하고 개념적으로 포착하지도 못하다 보니 과연 한국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공허한 물음만 던질 뿐이다. 에세이 철학은 이런 딜레마적 상황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에세이 철학 이란 무엇인가? 나는 아주 단순화시켜 이 물음에 대해 답변해 보고자 한다. 내가 말하는 에세이 철학 은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우리의 삶과 현실을 우리의 생각과 언어로 기술한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런 답변에 대해 누가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철학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물어보자. 과연 한국의 철학자들이 하는 일상적인 철학 속에 지금 여기의 우리 시대와 삶이 들어있는가? 한국의 철학자들이 하는 철학은 엄밀히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언어를 걸러서 나온 것인가? 왜 한국의 철학자들은 자기가 하는 철학에서 끊임없이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가? 과연 지금 시대 이 땅에 한국 철학이라 할만한 것이 있는가? 이런 원론적인 물음은 이제는 너무나 흔해서 진부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철학 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서 에세이 철학의 정체성과 관련해 분명히 정리해 둘 부분이 있다. 하나는 수필도 에세이 철학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무엇보다 나의 에세이 철학 은 기존의 에세이 철학과 다르고 철학적 에세이와도 다르다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과거 60-70년 대 안병욱, 김형석, 김태길이 장안의 지가를 높인 에세이 책들이 있었다. 이들은 맛깔스러운 문장으로 신변잡기를 대상으로 에세이를 썼다. 이 세 사람 모두 대학의 현직 철학 교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의 에세이를 철학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철학교수가 썼다 하더라도 신변잡기에 관한 에세이를 철학에 포함 시킨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음으로 철학적 에세이를 표방하는 글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에세이 글은 대부분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고민들, 이를테면 갈등과 고통 슬픔과 기쁨 등을 대상으로 정서적인 공감이나 역지사지 등의 에세이를 쓴 글이다. 이런 에세이는 철학보다는 심리학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대현 선생과 나눈 이야기를 잠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일전에 정대현 선생님이 개인 카톡으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수필 철학’과 ‘ 에세이 철학 ‘의 두 용어는 일상 언어철학의 정체성의 문맥에서 대립이나 경쟁을 발생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 에세이 철학 ‘ 은 ‘논문 철학’과도 경쟁적일 필요가 없이, 그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호성과 개방성이 보다 일상 언어적이 아닐까요? ‘수필 철학’도 마찬가지로 ‘에세이 철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일상 언어의 글은 철학적이다]라는 지향을 보다 선명하게 함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적은 피천득 선생 같은 ‘반 철학론’입니다. 선생은 [수필은 난삽한 개념으로 무장할 필요가 없다]라는 단순한 명제로 해도 될 말을 구태여 ‘반 철학론’으로 깃발을 잘 못 드신 것입니다. 당신이 만난 철학자들을 어떻게 생각하셨을지를 묻게 하는 대목입니다. 시중의 많은 두 필 반들이 (저의 누이들을 통해 들은 바로는) <피천득 수필론>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이 상황이 대세가 되기 전에, 더 악화되기 전에, 올바른 길로 안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상 언어의 아름다움과 힘이 왜곡되지 않도록 선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1. 먼저 피천득 선생의 번 철학론을 비판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제시하는 “글은 철학이다”라는 명제의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선생님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글은 철학이다”라는 명제는 너무나 외연이 넓어 모호하다는 생각입니다. 주역의 계사 전도 글은 생각보다 정확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선생님 말씀처럼 “글은 반성적이고, 비판적이며, 대안적 해석을 제안한다”라고 해도 모든 글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이 글들에는 다양한 편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철학에도 그런 편차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철학의 외연을 확장해 놓으면 어떤 실익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모든 것을 ‘철학’의 테두리 안으로 포괄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폭력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존재들은 각기 그 기능과 역할 존재 방식에 따라 다르게 지칭되듯, 언어로 표현하는 다양한 활동들도 대상 영역에 따라 달리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수필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시와 소설, 시나리오 등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뭉텅 걸려서 ‘철학’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지요. 오히려 각기 고유한 존재 방식과 표현 방식에 따라 영역과 기능의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다르게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차이를 끌어들이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저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이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논리로 이용되는 것에는 문제가 있고, 또 모더니즘과의 차이를 절대화한다면 그것 자체가 모더니즘적 사고에 갇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뉴턴의 역학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요. 각자의 대상 영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모든 수필은 철학이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모든 철학은 수필이다.”라는 명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수필은 철학적”이고, 또 “어떤 철학은 수필이다”라는 할 수 있지만요.

2. 김형석 선생이나 김태길 선생 그리고 안병욱 선생 등의 수필 철학을 제가 말하는 ‘에세이 철학’과 구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에세이 철학’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에세이’와 ‘철학’을 붙여서 ‘에세이 철학’이라고 하고, 그것을 철학 에세이나 기존의 에세이 철학 혹은 수필 철학과 의도적으로 차별 짓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분들의 철학을 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유의 에세이 혹은 수필 철학의 역할이 지녔던 시대적 의의는 인정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과거 철학과 사무 조교를 할 때 김형석 선생의 에세이집을 읽고서 너무나 감동을 받아 철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하는 학생들을 여럿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그분들이 정서적으로 독자들에게 공감과 영향을 준 바가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부류의 철학의 역할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에세이나 수필의 일차적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의미화’라고 생각합니다. 널리 암송되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저 그렇게 존재하던 것, 나와 무관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던 것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 존재의 의미가 살아나는 경험이지요. 수필은 이런 ‘의미화’에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하고, 그 점에서 앞서 말한 세분들의 수필이 그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수필에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분들의 수필 철학은 그것을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론과 사상’의 차원에까지 끌어올리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보편성의 차원을 무시한다면 철학은 비트겐슈타인도 비판했던 ‘사적 언어’의 수준을 벗어나 기 힘들지 않을까요? 물론 선생님은 앞 서의 글에서 이론의 기반이 일상 언어이고 일상 언어가 이론을 규정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지만, 그것이 반드시 일방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양자의 관계는 프로이트 식으로 표현하면 중층적이고, 차이와 다양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사실 제가 그분들의 수필 철학과 차별하고자 하는 보다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철학의 고유한 역할과 기능을 ‘의미화'(signification)와 이론 외에도 ‘비판'(critic)에 있다고 봅니다. 선생님은 피천득 선생의 반철학론을 비판하시면서 수필을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다 보니 사회와 역사를 담지 못한 채 기껏해야 ‘솔직함’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앞서 말한 세분들의 수필 철학에서도 사회와 역사가 들어오지 못하고, 기존 이론이나 사상에 대한 냉정한 비판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기껏해야 포괄적 수준에서 이야기는 해도 이론적 형태로 정형화되기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양철학의 역사는 칼만 들지 않았지’ 언어로 이루어진 ‘살부(殺父)의 역사’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런 치열한 논쟁을 통해 자신들만의 고유한 철학사를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철학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쓰는 ‘「에세이 철학」’의 기본 정신은 “우리 사회와 우리 삶, 그리고 시대에 관한 우리 생각을 우리 언어로 표현하자!”는 데 있습니다. 저는 결코 배타적인 쇼비니스트도 아니고, 막무가내식 회의주의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의 기준에서 본다면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철학적 활동은 자기 언어, 자기 생각, 자기 시대가 없이 남의 생각과 남의 언어, 남의 시대에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철학들과 부단히 싸우고 있고, 우리 언어를 우리 삶 속에서 찾으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판’은 철학의 다른 어떤 속성보다 제가 중요하는 요소입니다.”

 

Ⅲ. 다음으로 「에세이 철학」의 뿌리 혹은 정신과 관련해 몇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비판’(critic)은 「에세이 철학」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이 ‘비판’의 의미를 칸트 이후의 독일 관념론에서 찾지 않고 8세기 당나라 선(禪)의 정신에서 찾고 있다. 물론 「에세이 철학」은 우리가 사는 현재의 일상을 중요시하고 불교는 마음 심(心) 자를 중요시한다거나, 「에세이철학」은 철저히 문자에 기반한 철학을 전개하는 반면 선은 불립문자나 교외별전처럼 이 문자를 넘어서려 하기 때문에 양자의 친화성에 대해 쉽게 수긍하기 어려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主 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낸다)는 금강경의 한 구절처럼 이 마음 심이 무심의 단계에 이르는 것은 일상이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일상에서 밥 짓고 물깆는 일 자체를 불법의 연장으로 간주한다. 그만큼 일상은 선에서도 중요하다. 선이나 「에세이 철학」이나 똑같이 이 일상 바깥의 초월적인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

당나라의 선불교는 잘 알다시피 스님들이 염불하는 법당이 아니라 모두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죽은 경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언어에서 불법을 찾는 중국 불교의 새로운 정신이다. 일자 무식인 6조 혜능은 홍인 선사의 금강경 강론을 듣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는다. 이러한 깨달음에는 번거로운 절차도 없고, 온갖 언어 수식도 필요 없다. 오로지 행주좌와 일심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 홀연히 얻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부닥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자 하는 창조적 정신만이 중요하다. 임제 선사가 말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살 불사조(殺佛殺祖)의 정신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가 칼을 든 사무라이의 정신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에세이 철학」’은 일상을 철학화하고 철학을 일상화할 때 그 어떤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 전통적인 철학의 주제들, 동과 서, 옛날과 지금의 수많은 철학자들에 올라타거나 그들의 사상을 빌려 오지 않는다. ‘「에세이 철학」’은 ‘지금 이 순간'(hic et nunc)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일상에서 부닥치는 모든 대상들과 경험들을 철학적 텍스트로 삼아 그것을 비판하고 성찰하면서 철학적 통찰의 깊이를 드러내준다. 때문에 ‘「에세이 철학」’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선의 정신처럼 모든 권위와 우상의 파괴를 시도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한 4대 우상, 즉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언어의 우상’ 외에도 ‘권력과 국가의 우상’ 등 일체의 권위와 우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에세이 철학」은 모든 가치를 부정한 니체의 ‘망치의 철학’을 구현하고자 할 뿐 실체화되고 화석화된 이론에 집착하지 않는다. ‘「에세이 철학」’은 저 너머의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추상개념들의 몰 주체성도 비판한다.

물론 문자에 기초한 「에세이 철학」과 참선과 문자 너머의 세계를 추구하는 선의 내용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선은 부처의 생전에 가섭의 염화시중의 미소가 시사하는 것처럼 참다운 진리는 언어를 넘어서 있고, 언어를 통해 전수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강하다. 불립문자(不立文字)나 교외별전(敎外別傳) 같은 말은 언어를 넘어서려는 선의 정신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때문에 한국불교에서는 화두(話頭)를 참구(參究) 하는 간화선(看話禪)이 일찍부터 전통을 이루고 있다. 동양의 학문은 순수 이론(theoria)만 추구하는 서양의 학문과 달리 실천적인 자각과 깨달음을 중시하고 그것을 위한 방편으로 수행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화두 참구를 깨달음의 중요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선도 동양의 일반적 전통과 궤를 같이 하는 셈이다. 알음알이로 얻는 이론은 원숭이가 흉내를 내는 것처럼 주변을 맴돌 뿐 그 핵심과 본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선의 주장이다. 지극한 깨달음은 이 언어와 이론을 넘어서 진정 마음 심(心)에서 전율을 느끼듯 대오각성한다는 의미다. 사실 서양철학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이처럼 강렬한 정신적 체험(體驗)을 쉽게 이해할 수 없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칸트가 말한 물자체(Ding an sich)의 세계나 청년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 논고』에서 말한 “나의 세계의 한계는 나의 언어의 한계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라는 의미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칸트나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언어를 초월한 세계는 무어라고 할 수 없는 X의 세계에 다름없다. 이 세계는 언어로 기술할 수 없는 세계이고, 칸트의 이율배반(Antinomie) 이론에서 보듯, 그것을 언어적으로 기술하려 할 경우 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인 모순율이 깨질 수밖에 없다. 비트겐슈타인의 세계는 말할 수 없는 침묵의 대상이지 그것이 적극적으로 무엇인지 기술할 수가 없다. 노자(老子)가 『도덕경』 첫머리에서 적었듯, 도를 도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이런 의미의 세계나 도는 긍정적 기술의 대상이 아니라 부정적 의미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화두를 참 구한다는 선은 언어가 끊어진 이 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깨달음이란 면에서 다른 철학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불립문자를 추구하는 선은 언어의 끝, 문자의 종언을 주장하는 데 반해, ‘「에세이 철학」’은 모든 것을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에세이 철학」’을 굳이 선으로 표현한다면 ‘문자 썬’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선불교의 정신을 21세기에 새롭게 각색하고 변형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문자는 어떤 경우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문자를 버린다면 문자가 부재하는 그 세계는 이 세계가 아니고 이 세계와 무관한 세계이다. 이 세계를 초월한 깨달음이 소수에게 가능할지 몰라도, 그것은 이 세계의 다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깨달음의 궁극 목적(상구보리)은 이 세상과 나누기 위함이고(하화중생),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함(마르크스)이다. 이러한 정신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깨달은 이, 모든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밖으로 나가 빛을 본 계몽된 인간은 동굴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의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동굴 속으로 귀환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 철학」’은 선의 문자화, 선의 일상화를 통해 지금 여기에서 깨달음을 구하고 진리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가장 현실적인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때의 현실은 헤겔이 말한 것처럼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의 의미에서 이성에 의해 걸러진 현실에 가깝다.

 

Ⅳ. 마지막으로 「에세이 철학」에는 진입 장벽이 없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에세이 철학」은 누구누구의 철학처럼 특화되거나 어떠어떠한 철학처럼 독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 철학」은 누구나 쓸 수가 있다. 한 마디로 「에세이 철학」을 쓰는 데는 특별한 조건이나 요건이 없다는 것이다. 「에세이 철학」은 기본적으로 삶과 시대에 대한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의 이론이나 철학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언어로 쉽게 표현하는 데 있다. 어떤 전문화된 철학을 하는 데는 그에 따른 형식이나 조건이 있다. 예를 들어 칸트 전공자는 칸트 철학의 문제들을 정리하고 그에 따른 원전을 분석적으로 이해를 하고, 관련 연구나 논문들을 숙지해야 하고, 자신이 쓰는 논문이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단순히 기존의 해석들을 정리만 할 경우 그것은 학술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전문 칸트 연구자로서의 기본적인 요건이 필요하다. 이런 요건들을 갖춘 후에 비로소 그는 칸트에 관한 논문을 쓸 수가 있다. 하지만 「에세이 철학」의 경우는 이런 형태의 진입장벽이 없다. 때문에 「에세이 철학」은 누구나 쓸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언어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면 된다. 하지만 누구든지라고 했을 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세이 철학」은 특정한 철학자의 사상이나 특정한 철학적 주제에 관한 전문적 지식은 요구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요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남의 사상을 올라타지 않으려면 자기 사상의 깊이와 통찰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 철학」은 글쓰기에서 요구되는 기본 요건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적어도 「에세이 철학」을 쓰는 데는 다음의 몇 가지가 필요할 수 있다. 첫째는 글이 중언부언하지 않는 명확성(Clearity)이고, 둘째는 글이 피상적이지 않아야 하는 깊이(Depth)이고, 세 번째는 글이 남의 생각이 아닌 자신의 생각과 언어라는 점에서 독창성(Originality)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은 시류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글쓴이의 독립성(Independence)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본적 요건들이 갖추어질 때 그 글을 다른 글과 분명하게 차별 지을 수 있으며, 읽는 이들의 생각을 일깨워 줄 수 있다. 이런 정도의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글을 누구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쓸 수 있으려면, 속된 말로 내공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결코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에세이 철학」은 누구든지 쓸 수 있지만, 또한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세이 철학」은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에세이 철학」의 지향점은 지금 여기(hic et nunc)이고, 나의 생각과 나의 언어이다. 그러므로 누구든 「에세이 철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세계를 반성하고, 자신의 생각을 일깨우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에세이 철학」의 이러한 정신은 누구든 공유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에세이 철학」은 철학 운동이 자 문화운동이고 글쓰기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규성 철학 연구회 2024년 4월 제11차 정기세미나 “이규성의 함석헌 연구” 2024.04.12. (발표:이병창) 영상 [월례발표회·세미나]

이규성 철학(사상) 연구회 11차 연구모임 영상

2024년 4월 연구모임은 이병창 선생님의 발표로 진행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 시절 이규성 선생과 함께 이대 뒤편 봉선사 인근에서 들었던 함석헌 선생의 강의를 지금에 다시 이규성 선생 철학 연구모임 자리에서 되새기게 되니 사상의 흐름은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이병창)

-주제: 이규성의 함석헌 연구
-발표자: 이병창(한철연 회원)
-일시: 2024년 4월 12일 금요일 오후 4시
-장소: 서울시 서대문구 서소문로 45 SK 리쳄블 1305호
-줌(zoom) 572 077 4954 (비번1111)

♦발표문 탑재 ☞ 이규성 선생의 함석헌 사상의 연구가 갖는 의미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KJASJfrrTqg

‘혁명의 충동을 연습하기 – 왕의 망상(?)과 나의 슬럼프’ : 김성민과 김성우가 쓴 책 『증상을 즐겨라! 슬럼프를 환영하라!』에 대한 서평 [최종덕의 책과 리뷰]

‘혁명의 충동을 연습하기! – 왕의 망상(?)과 나의 슬럼프’ :

김성민과 김성우가 쓴 책 『증상을 즐겨라! 슬럼프를 환영하라!』에 대한 서평

 

서평자 : 최종덕(독립학자, philonatu.com)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새기고 등장했을 때부터 ‘아, 이 사람은 라캉 정신분석학의 대상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그의 주변 사람들에 주술과 미신에 취한 사람들이 많다는 데 있다. 정치인을 포함한 다수의 권력자가 점집을 찾는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신과 권력을 혼재시킨 개인적 망상들이 그들 사이에서 묵시적 합의로 변질되면서 거대한 집단적 주술 상징계로 정착된 것이 한국 권력사회의 특징이다. 이제는 그들 각각이 믿고 있는 미신을 실행할 수 있는 실질 권력을 누가 더 많이 가지느냐의 암투일 뿐이다. 왕의 망상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주술적 집단 상징계로부터 보호받은 셈이다. 그리고 왕의 망상이 강할수록 뭇사람들의 상상은 갈가리 찢기어진다.

‘망상’과 ‘상상’은 개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정신·심리적 표상이지만 현실에서는 처절한 차별을 낳는다. 왕의 망상이 지배하는 집단 상징계를 벗어나서 개인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을까? 전통이나 종교 등의 집단상징을 탈출하여 개인의 상상력을 펼치고 싶은 것은 젊은이의 당연한 권리이며 당당한 욕망이다. 불행히도 이런 욕망은 거대 조직의 칼날에 베이고 찔리면서 무참히 부서지고 만다. 그렇다면 개인의 상상계가 집단의 상징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래서 많은 젊은이는 화가 나고 저항도 하지만 풀이 죽고 우울해지면서 슬럼프에 빠진다.

그런 슬럼프에 기죽지 않는 아주 신나는 대안이 최근 출간된 책 한 권에서 묘사되고 있다. 철학자 김성민과 김성우가 같이 쓴 책 『증상을 즐겨라! 슬럼프를 환영하라!』 라는 제목의 책이다. 슬럼프를 단죄하고 거부할 수 있다는 각종 묘수를 적은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런 묘수 자체가 주변 권력이 만들어 준 허망한 처세술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이 책의 매력은 말로만 달콤한 처세술이 아닌 삶의 프레임 자체를 섭동시키는 정신적 북돋음을 준다는 데 있다.

책의 저자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해석하는 문화비평가이자 탁월한 현대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지젝의 철학을 우리 한국인 정서에 맞춰 아주 흥미롭게 풀이한다.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하여 시민강좌를 했던 지젝이 구축한 해체와 주체의 연결망을 엄숙한 사유 대신에 삐딱한 시선으로 현실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이 책은 말한다. 저자는 앞서 말한 망상과 상상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그 두 현실이 서로 얽혀 있음을 말하는데, 하나는 권력자의 주술 망상이 일상인의 생활 상상을 파괴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상상계가 거대 사회의 상징계 안에 갇혀 회돌이 되는 현실다운 현실을 말한다. 그 의미를 아주 간단히 묘사해 보자.

일상을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거나 아니면 나를 평가하는 주변 환경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슬럼프란 주위 평가가 나를 압도하면서 짓눌려진 나의 신경증적 생활의 증상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우리는 슬럼프로부터 탈출하기를 추구하지만, 불행히도 그 방법을 모르고 있다.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슬럼프로 돌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역설적이게도 나에 대한 죄의식까지 추가로 붙여 다니고 있다.

당신이 슬럼프에 빠진 이유는 당신 개인에게 있지 않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개인이 속한 집단의 현실은 구성원에게 인정욕구를 비롯한 갖가지 욕망을 실현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렇다면 개인의 슬럼프를 제거하기 위하여 환상을 떨구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겠으나 그런 생각조차도 환상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것을 이 책은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집단의 현실이라는 것은 서평자의 표현일 뿐이고, 이 책의 저자는 집단이라는 말 대신에 지젝의 표현 그대로 “큰 타자”big others라는 용어를 쓴다. 욕망을 갖는 개인들을 “작은 타자”라고 한다면 개인들의 전체 사회를 “큰 타자”라고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큰 타자라는 전체 사회의 환상을 비판하지만 동시에 그런 환상을 제거할 수 없는 지젝의 존재론적 고민을 뼈아프게 통감한다. 예를 들어 충성심이나 민족주의 같은 관념의 이데올로기로부터 강남이나 학벌 혹은 소비와 부동산 같은 물질의 계급주의가 그런 큰 타자에 부수된 환상이고, 그 환상이 현실이라고 한다.

큰 타자 안에서는 욕망의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현실을 벗어나기 위하여 현실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 전도시켜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마찬가지로 슬럼프를 벗어나려면 슬럼프에서 무작정 튀어나오려고 갖은 애를 쓰기보다 슬럼프를 응대하는 시차의 시선을parallax 뒤집어엎어서 세상 보는 각도를 삐딱하게 보라고look awry 말한다. 그런 삐딱함의 시선이란 지젝의 의미를 좆아서 욕망의 굴레로부터 “충동의 혁명”을 가져오는 실질적인 계기라고 한다. 집단 환상의 마력이 강력하므로 시차를 갖고 삐딱하게 보기도 쉽지 않을 진데, 혁명의 충동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 작은 혁명들을 연습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개인 슬럼프의 통증을 겁내 하지 않게 되며 전체 권력의 마취와 도취에서 깨어날 수 있다고 이 책은 강력하게 말한다.

책의 저자는 상징계와 상상계 사이의 관계를 아주 진지하게 다루면서 우리들 현존하는 삶의 통증을 치유하는 구체적 존재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그 목록 안에는 꿈과 욕망, 슬럼프와 히스테리, 강박증과 도착증, 충동과 혁명 등의 심적 현상과 증상 등이 적혀있다. 이 책은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분석에서 그치지 않고 지젝의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서 약을 사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아주 친절한 철학적 레시피이다. 레시피의 첫 페이지는 ‘큰 타자’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버리는 연습에서부터 시작된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더더욱 기분 좋은 일은 이 책에 전개된 의미 해석과 정신 분석이 여러 편 감성의 시를 읽는 느낌으로 써졌다는 점이다. 분노와 좌절이 증폭된 요즘 시대에 소소하지만, 전환적인 기운을 나에게 심어준 책이다. <끝>

현 상황들 : 인민의 최종 결정권 분출 [천 하룻밤 이야기]

현 상황들: 인민의 최종 결정권 분출

– 2024년, 6월 21일 하지(夏至), 의성 마늘이 장터에 나오고,

-하지 지나 사나흘 전에는 장마가 시작하더라‥…

 

류종렬(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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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사건들에 대한 상상을 정치경제학에서는 정세를 다룬다고 얘기한다. 누군가 현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고 문제 거리를 내놓는다면, 현 정세는 과거와 연관해서 어떤 관점들로 토론 할 수 있겠지만, 다음에 정세가 어떤 국면으로 전개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미래는 비결정이다. ‘다음에’ 또는 ‘나중에’는 예로부터 점쟁이의 전유물이었고, 좀 더 잘 맞춘다고 하는 선지자들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나로서는 그들의 이야기는 사후 약방문(지나온 이야기), 결과를 원인에 돌려놓은 사고로 여긴다(남사고 이야기). 말하자면 결과를 원인으로 전도시켜, 과거를 미래의 이야기인 것처럼 맞추어 해석하고 설교하는 그들을 존경하거나, 또는 현자로 떠받드는 것이라 본다. 점쟁이든 선지자이든, 그 당시 그다음 이야기와 연결을 보았을 때, 맞는 이야기보다 틀린 이야기가 더 많았지만, 맞는 이야기만 전승되어 그것만 모아도, 그들의 긴 생애에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하늘만큼이나 많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유튜브식 순서대로 남겼다면, 얼마나 앞과 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했을지, 지자들은 잘 안다.

‘나중에’란, 일상에서 지나가는 이야기로 해보면, 한 대 처맞은 이가 때린 녀석에게 ‘다음에’ 보자고 한다. 서로 달리 가면서 힘센 녀석은 ‘나중에 보자는 놈치고, 무서운 놈 못 봤다’고 한다. 이 경우에 때린 놈이 발 뻗고 잔다. 선지자가 말한 ‘다음에’가 언제인지 어디서인지, 그리고 그다음의 행동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가 없다. 세상을 뜨고 나서 다시 돌아온 어떠한 이도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독약), 예수(십자가), 로베스삐에르(단두대) 등은 정세에 맞지 않아 죽임을 당했다고들 한다. 나로서는 이들이 스토아적으로 죽음, 즉 스스로 의지적으로 세상을 떴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다음에, ‘나중에’라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두고 스토아학파는 기만(사기)이라고 했고, 에피쿠로스학파는 미신이라고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근세인은 인간이 신의 자식이 아닌 자연의 자식이라 하고, ‘다음에’ ‘나중에’를 공상 또는 망상으로 여겼고, 벩송은 그런 논리와 용어 자체가 ‘착각’이라 했으며, 들뢰즈는 넌센스(무의미)와 같은 파라독사라고 여겼다. 그럼에도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은 상징으로서 상상과 공상의 세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이 시인이라고 한다. 다른 이로써 말라르메는 주사위 놀이로 보았다.

그 이야기들 속에는 고통과 비참에서 젖어 있는 백성들에게, 인간의 삶의 가느다란 희망을 불어넣고자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삶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마도 프랑마송이든, 가톨릭 공동체든, 프랑스 공산주의자든 각각의 몫이었다. 그래도 이 시인들은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세상을 상상을 넘어서 공상하고, 가끔은 아무도 모를 망상에 젖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 ‘나중에’ 또는 ‘미래’, ‘장차’를 강조하는 이들은 신앙자들이다. 신앙자는 사실적이고 자연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 판도라 상자 속에서 또는 천국을 꿈꾸며 상자 바깥을 상상하고 있는 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바깥과 같은, 죽은 후의 미래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을 넘어선 신앙을 누가 심었는가? 점쟁이, 예언자, 선지자? 그들이 아닐 것이고, 벩송이 말하듯 용어를 언어로 만들고 그 언어가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의 것이라는 것이다. 천국이란 용어가 있으면 천국이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죽음 후에, 즉 상식으로 설명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기(기만), 미신이라 했을 때, 이런 것이 사기도 아니고 미신도 아니라고 하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잘 생각해보라고 하는 이들이 현자들이다. 싯달다가 잘 설법했다: 무소의 뿔을 설법하면서 탐만치에 벗어나라고. 그런데 서구 역사는 그렇지 않다. 이런 현자들을 마남(魔男) 사냥하듯이 없애버린 자들이 종교에서뿐만 아니라 참주의 권력 속에서도 쭉 있었다. 걸리적거리고 거추장스럽다고 말이다. 그건 배제가 아니라 제거였다. 이들은 일찍이 패거리(카르텔)가 무엇을 행해야, 패거리의 사적 이익이 전유되는 지를 안다. 설화와 신화에서 영웅의 전쟁 설화를 보라. 영웅, 참주, 황제, 권력자, 등의 지시체로서 하나인데, 나라마다 기표는 무수히 많을 수 있고, 거기에 기의야 얼마나 많은 파라독사를 붙일 수 있겠는가. 무기/도구의 권력이 성립하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한 권력은 하루아침에 성립한 것이 아니다. 영웅설화 이래로, 그리고 로마로 향하여 또는 하나로 향하여(uni-vers)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그 보편(le unversel)이 지배한다고 여기고, 권력에 붙어서 권세를 누리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이 예수에다가 크리스토스를 덧붙인 것이다. 나중에, 죽은 후에 이야기한다. 염라대왕의 이야기도 크리스토스처럼 이야기이다. 미래는 아무도, 어느 귀신도 모른다. 권력과 권세의 결탁자들 또는 패거리는 서양 중세시기에, 영웅설화에서 상대들 죽여 없애듯이, 비판과 새로운 생각을 하는 자들을 마남 사냥으로 세상에서 사라지게 했다. 굴복하는 자들은 투명인간처럼 배제된 삶을 살게 하였으니, 노예와 농노, 천민과 백정이 되어야 했다. 권력과 권세의 패거리 결탁이 지식인들의 과학에 대해 대항하기에는 어려웠던 시기가 왔다. 르네상스였다. 권력과 권세는 반역과 반동으로 변신의 과정을 걷는데, 지식을 가진 지지들을 포섭할 필요가 있었다. 저항하는 이들은 마남 사냥으로 죽이고, 그래도 타협하는 이는 살려둔다. 브루노와 갈릴레이의 삶이 다르다.

권력에서는 무기(/도구)가, 백성에게 중요한 도구(/무기)이다. 이 철기시대의 초기에 무기보다 도구로 백성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생산력이 발달하기도 하여 세상을 변하게 했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로 도구들의 연결 방식은 복잡한 도구를 만들었다. 기계들의 생산은, 노예 생산의 이익보다 엄청난 잉여를 생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성 또는 민중의 머릿수(인구)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을 위로하는 척하면서 대가리 수를 늘리고, 잉여 생산을 가로채는 동안에는 문자로나마 ‘백성이 하늘’이라고 했다. 게다가 백성 없이 왕(권력)도 종교(권세)도 없다는 것도 패거리들은 알았다. 그 인민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는데도, 생산도구의 변형과 생산력의 발달에서 백성 또는 민중을 그 기계에 묶어두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기계의 노예, 종속이라고 이런 노동자는 자연의 노예와는 엄청 다르다. 맑스가 일곱 살짜리를 탄광에서 석탄을 쪼개는 망치 작업을 시키는데, 얼마나 분노했던가.

도구/무기의 발달과 생산 관계는 기계와 조립의 기술 더욱 세밀하게 엮어서 다루는 데 있어도 지식인이 필요하다. 과학적이란 이름으로 기술과 기계체계가 원리와 법칙에 종속된다고 여겼다. 기계의 조립처럼, 사회제도 체제도 마찬가지로, 원리와 법칙에 종속하는 체계와 제도를 필요로 했다. 그 제도에서 두 패거리에서 셋째 패거리가 가담하여 국가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에 권세를 누리고자 하는 종교인들은 국가주의와 패거리를 만들면서, 교육을 담당하여 과학과 기술을 담당하는 지자들을 포획하였다. – 지자는 포로가 아니었는데, 세월에서 자본의 힘이 강해질수록, 그 속에서 포로가 되었다. – 지자들은 원리와 원칙에 맞추어서 과학을 전개하고, 더욱 복잡한 기계들로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전개한다. 무너져가는 권력과 권세는 지자의 권위와 결탁하여 세 패거리들이 만드는 것이 제국주의였다.

이때까지 말로는 백성이 주인이고 민중이 기본 심급이라고 하지만, 백성이든 민중의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며, 명령 복종의 대상이다. 주인이고 기본이고는 하는 말투는 세 패거리에게는 빈 말투일 뿐이었다. 맑스는 그렇지 않고 인민이 주인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1848년 공산당선언을 하면서 시대가 달라졌다고 선언했다. 이에 패거리의 느슨한 결탁이 견고한 결탁으로 바뀌는 것이 제국주의로 변형이었다. 이 제국주의는 국가 안에서 착취가 아니라 다른 식민지에서 약탈을 통하여 권력, 권세, 권위를, 통일된 방식으로, 강화하는 것이었다. 제국주의에서 세 패거리의 담합과정에서 각각의 다른 요소의 결합이 쉽지 않아서, 통일성을 만들어보겠다고, 두 번의 큰 세계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고서 세 패거리는 지금까지 원리나 법칙을 잠정적으로 신과 같은 절대적 통일성의 논리(용어)로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앎과 동시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상징이자 통일체를 세우기로 했다. 맑스의 용어로 과학적인 대상을, 자본, 즉 돈(달러, 달러는 기표의 일종이다)을 상위에 올려놓았다. 신도 황제도 진리도 아닌, 돈이 세계의 지배 원리가 되었다(브레튼 우즈). 전쟁이 끝나고 권력, 권세, 권위는 서로를 위하여 동의하고 협력하려 했다.

그런데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철기시대가 전성기를 넘어가면서, 규소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동시에 생물학에서 새로운 생명체 단위(DNA)라는 용어를 끌어들였다. 그럼에도 패거리들은 규소든 디엔에이든 지식체계에 복속된다고 주장하고, 21세기에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가고 있는 방식이 AI와 빅데이터 등이다. 그런데 모순을 타파하자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맑스-레닌의 생각과 달리, 통일성도 추상성(자본)도 없다는 저항자, 용출자가 등장했다. 현재로서는 저항자들은 포획되거나 배제되어 핍박받거나, 예외적 존재로서 투명인간처럼 취급받는다. 이 저항자들은 인민‘속에서’ 흐른다. 인민을 위하여, 의한, 의란 제국주의 시대의 결과물이다. 세 패거리와 달리 ‘자연권’에서부터 나온 인민들의 저항, 그리고 그 봉기는 20세기 후반에서부터 진행 중이다. 금본위 달러가 아니라, 무기가 뒷배를 봐주는 기표의 달러가 지배하고 있다. 이에 인민은 리좀처럼 흐르면서 여전히 생성과 연대로서 확장하며, 간헐적으로 저항과 봉기를 분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현 정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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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지만, 자연과 지구도 변하고 있고, “그 속에서” 인간들의 삶의 과정도 변하는 중이다. 절대 권력을 누리던 영웅의 시대는 정복을 통한 약탈의 부를 획득하는 시기였다. 그리고 권력이, 시대적 과정을 정리하는 종교의 권세와 결탁하여, 가끔은 약탈과 민중의 수탈을 병행했다. 이들은 하늘과 땅 사이의 연관이 불합리를 수학(기하학)과 논리(산술학)의 결합을 통해 하나의 통일성이 있다는 것으로 만들었다. 현대에 와서 보면 상징과 표시를 추상적으로 체계를 세운 논리적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구시대의 민중은 하늘의 360도를 재고 있을 수도 없고, 식량과 가축의 수를 산술적으로만 세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이 결과를 측정하는 권력은 그렇게 성립했을 것이다. 수학과 언어는 일찍이 결탁하였고 샤만과 같은 참주(황제)의 시대를 이어갔을 것이다

수학과 논리의 적용이 하늘과 땅에 거의 맞아 들어가고,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은 거의 없었겠지만, 혹시라도 제기자가 있으면 제거하거나 상부에 포획하여 편입시키는 것은 간단했을 것이다. 강압과 폭력으로 편입하지 못하는 사건이 브루노를 산채로 태워 죽이는 짓이었다. 우주와 물질계는 권력의 강압에 의해 또는 종교의 권세에 의해 결정되지도 않고, 게다가 봄 다음 여름이듯이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이법은 따로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천문학과 물리학이 권력과 권세에 벗어났다. 아직도 두 패거리는 지식분자인 지자들을 포획하여 편입시키려 노력했고, 자연체계와 물질체계가 원리에 복속되기나 하는 듯이, 이런 지자들은 패거리에 끌어들이려 했다. 뉴턴과 다윈은 아직도 자신들이 발견한 자연의 이법이 권세와 권위보다 상위에 있는 신과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고, 아이슈타인까지도 이 패거리와 같이 통일성이 먼저 있다고 생각하여, 겉보기와 달리 패거리와 따로 있는 것 같지만 복속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삶과 과정들을 보면 그렇다.

권력, 권세, 권위가 식민지 정책과 제국주의에 포획된 것만큼이나, 이 패거리들은 포섭되지 않는 부류들을, 지자들과 상층 철학자들을 통해서 단죄하고자 했다. 절대공간을 넘어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은하계를 넘어서는 천문학이, 열역학과 원자 내부 물리학이, 화학에서 원자들의 결합방식이, 생물학의 발생 기원이, 심리학에서 본능과 습관을 다루는 현자들이 세 패거리에 저항하고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를 누르는 방식은 세 패거리의 방식으로 되지 않아서, 제국주의(l’empirisme) 구성보다 상위의 ‘제국(l’empire)’을 구축하고, 그 상징과 표시로서 달러는 금과도 상관없는 상징기호로(구조주의 표현으로 기표로) 대체했다. 그 대체물이 꼭 자본이어야 하는지를 문제 삼는 것이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이다. 통일성과 그 위의 상징계가, 실재계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제기되고 있었다.

그래도 자본 제국이 최상위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달러라기보다, 무기이다. 무기는 무기/도구시대, 즉 철기시대의 마지막이다. 1953년 시작한 규소시대가, 철기 3천 년에 비해, 아직 백 년도 안 되었지만, 그럼에도 철기시대의 에너지가 재래식 광물이거나, 발달된 원자와 수소인 것에 비교하여, 이 규소의 시대는 태양이 에너지라는 것이다. 겨우 70년 밖에 안 되었지만,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와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거나, 또는 분출하고 있다. 미래는 알 수 없다. 70여 년의 속도로 보아, 그리고 유인원, 현생인, 구석기, 신석기 등등으로 전개되었던 속도에 비하면, 규소의 시대는 어마어마한 속도라서, 미래가 더욱 비결정이다. 제국이 패거리들이 더이상 예언, 점쟁이가 아니라, 사기꾼을 넘어서 약장수 야바위꾼이 될 판이다. 이 판을 유지해 주는 것이 투기로서 주식시장이다.

미래는 규정할 수 없다. 그런데 윤석열 집단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을 이어가는 방식을 답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 방식과 과정에서 보아, 그에 앞선 인간들과 같은 궤도를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미래를 알 수 없으면서도, 그들과 같이 가고 있으면서, 앞에 나열한 그들처럼 미래를 포장하여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이 세상을 기만했듯이 그도 이 나라를 기만하고 있지 않은가? 뭐, 석유가 나온다고?

촛불시위에 놀라 등장한 것에 반응으로, 5년 동안 꿍꿍이 수작으로, 정치권에서는 내각제 개헌이란 소리가 들렸다. 인민의 동의 없이 또는 기본심급의 움직임과 흐름의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패거리(카르텔)들이 윤석열을 앞세워 예속 권력을 구축했다. 이 패거리들의 과거와 연결에는 1894년 동학을 무너뜨리고, 1919년 백성들이 시위에 놀라,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쪽이었다. 이와 다른 한쪽은 만주로 갔다. 이 두 방향이, 우리 입말로 소통할 수 있는 79년 동안에 양 진영처럼 보인다. 만주와 일본. 중국은 1919년 5.4운동 이래로 일본에서 배우는 것에 벗어나 서구를 직접 배웠다. 우리는 일제 침탈로 그럴 기회가 놓쳤다. 우선 일본에게, 그리고 전후에 미국에게 배움을 청했다.

서양의 패거리 문화에 포획되고 포로가 되었다. 남한은 어쩌다가 제국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브루노처럼 제거하는 과정을 거쳤던가? 보도연맹, 조봉암, 인민혁명당, 민주청년연합, 남민전 등으로 계속되었다. 마남 사냥에 겁먹은 경북은 결과를 원인으로 세우려는 박정희를 내세우려 하고 있고, 일본과 미국을 따르는 패거리들은 단절의 역사를 만들면서 이승만의 망상까지도 불러오려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제국,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 등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고, 그리고 “천하루 밤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미국을 배우자고? 미국은 유럽계의 패거리에 속하는 소수자가 상층을 차지하고, 나머지를 하부로 삼는 방식으로 이원화 되어 있고, 전쟁 이후에 로마 황제 이상으로 옥상옥의 체계를 구축했다. 그 속에서 인민의 자주성과 자연의 자발성은 패거리의 속성상 배제된다. 일본과 같이 가자고? 일본은 입말과 말투, 문자로 정립에서 이원화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다고 한다. 그 속에서 패거리가 승리를 구축한 것이 일본의 내각제이다.

왜 미국도 일본도 아닌가? 남쪽에서 입말의 문자화가 87년 이후로 치면, 겨우 40년이 채 안 되지만, 팔천만이 공유하는 입말의 씀씀이는 79년이나 된다. 게다가 문화적으로 우리는 천년의 불교, 오백 년의 유학의 전통이 있고, 다른 한편 1446년 이래로 내재적으로 이어온 입말 있다. 이제 겨우 입말의 세대가 되어 인민이 계속하여 이끌어 갈 것이다. 그 입말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위계로서 이분화 된 내각제는 안 될 것이라 했다.

입말의 문자화가 얼마 되지 않더라도, 서구의 저항과 혁명이 기나긴 종교와 근대과학에서 자연의 빛을 느끼는 “권능”에서 유지하고 있듯이, 우리에서는 권능이 있어서, 패거리 방식으로 일본 제국주의, 미국의 제국이라는 단절된 계급방식으로 체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집단이 만주파가 아니라 섬나라파라는 것은 공공연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내각제 물 건너갔다고 하면서도, 윤석열을 조기 퇴각시키면서 내각제로 갈려는 거대 양당의 말투가 있었다. 인민의 최종심급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상부 패거리들이 계속적으로 정치를 하려 한다. 79년 동안에 인민은 자기 소통을 상부와 달리 이루어왔고, 거대한 촛불의 경험을 느끼고 산다. 인민이 헌법 제안권과 세 패거리에 굴종하는 자와 사적이익을 취한 자들을 소환하는 소환권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권은 제도 속에서이고, 입말과 말투에서 인민이 주인이며 최종심급으로서 자연권을 이루어야 할 때이다. 내각제가 아니라, 인민의 자연권에 대한 윤석열 집단에 대한 저항과 항거가 민주당 안에서 일어날 것 같다. 정당에서는 당원이 중심이 되고, 나라에서는 인민이 주인이란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사회권과 더불어 자연권이 소통될 때, 이때 생물학과 심리학이 내재성의 철학의 본류라는 것도 잘 소통될 것이다. 수학과 언어논리는 패거리의 담합 도구(Organ)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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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들 패거리는 원리와 법칙이 보편이듯이, 이 보편성이 사람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아직도 세 패거리가 자신들이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으며, 저항이 올라오면 가끔은 ‘백성이 하늘이다’라고 매체들을 통해 떠들거나, 성동격서의 방식으로 문제를 흐리게 하여 넘어간다. 백성은 잘 잊는다고 한다. 백성은, 생명체로서 살 듯이, 기억을 지니고 있어서 잊지 않고 있다. 우리는 긴 역사를 기억하고 있고, 생명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패거리들은 인민에게서 배척되거나 밀려난다면, 자신들의 부정 축적과 갈취의 삶이 더이상 없다고 생각한다. 주식시장을 만들지 않았으면, 어떻게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통해 수억을 벌겠는가? 이런 집단들은 개미의 피를 빨아서 번다는 것도 잘 안다. 제국의 시대에 돈을 번다는 것은 무기/도구와 다른 지배방식임을 그들은 잘 안다. 그 집단은 패거리에게서 배웠고, 패거리들에게 마름의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세 패거리가 이미 제국주의 이래로 돈을 통하여 돈을 통일과 절대의 상위에 두면서, 이제 까지 상위였던 신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게다가 세 패거리 중에는, 생물학과 기상학 등의 자연에 비추어보아, 지자의 권위가 통일성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 우리 땅의 국가 권력을 세 패거리 수준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매우 많다. 이들은 패거리가 아니라 패거리의 똘마니이다. 이들의 공통성은 1894년 이래로, 과학에 대한 경외와 1905년 일본이 러시아함대를 이겼다는 사실에 배울 것도 일본이고, 일본을 따르면 해결된다고 한다. 이 자들이 130여 년 전부터 지금도 믿고 따르고 있다. 토착 왜구 또는 부일자들이 있다. 이들은 제국의 세 패거리에 속하지도 못한다. 국가 권력도 없었고, 오랜 전통을 버렸으니 종교와 도덕의 권세도 없고, 단지 조선의 무지렁이가 아닌, 일본과 독일을 통해 19세기 철기의 마지막 지식을 받아서 합류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합류에 국가를 일본에 넘겨주는 것과 같은 줄 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미제의 마름인 일제의 똘마니로서 세 패거리로 합류하고 싶었지만, 일본 제국이 용납했겠는가? 어째거나 그래도 일본 제국주의의 권력에 아부하여야지. 그 추종하는 지식분자들의 세력은 이승만과 박정희에 이어 일본의 합류가 아니라 봉사(service, 하녀라는 뜻도 있다)로 나섰다. – 당연하게도 이런 지자들은 독일을 이어받은 일본의 지식과 영국과 독일(앵글로 색슨)의 체계에 관한 책들을 읽고, 매체를 통해 선전한다. 잘 들어 보시라, 극우 매체에 인용된 인물과 책은 앵글로 색슨의 책이 아닌 것이 있는가?

일제 강점기에 일부 지식인들은 일본이 제국주의로 유럽의 절대 국가처럼 오래 간다고 생각했는데, 1945년에 미국 제국주의에 패배했지. 이 일본을 통해 배운 어설픈 지식인의 권위는 폭상 망했지. 그래서 미국의 과학으로 갈아탔지. 미국 제국주의는 세 패거리가 모습을 분명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시기였다. 따라갈 수 없었다. 반도의 전쟁은 기회를 주었지. 그리고 미국을 숭배하며 따랐지. 숭미주의자들은 미국에 복속하고자 원했다. 그런데 웬걸 미국은 남한에 관심이 아니라 중국 대륙이라. 이 계륵 같은 남한을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인민은 잘 구슬리어지지 않고, 게다가 입말 방식이 서로 사맛디 않아서 말투의 상위로서 영어를 심는 데 실패했다. 미국은 자국보다 긴 역사를 지닌 한국 인민이 반미를 하기도 한다. 그 반미의 입말을 미국이 모른다. 아마도 촛불시위 같은 것을 보고서야, 총독 같은 주한 미국대사가 놀랐을 것이다. 미국이 반도 남쪽을 직접 식민 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다. 복속을 시키려면,

그래도 반도 내부에 일본에 복속하는 부일자들이 남아있으니, 미국은 정복자로서 중국을 향한다는 명목으로(1592년에도 일본이 중국을 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 했듯이) 무력(군대)으로 반도 남쪽을 차지하고, 저항하는 민중이 사는 것에 관해서는 경제적 방책으로 일본에게 넘기는 전술을 쓰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보수정당과 극우 정당이 내각제를 상상했던 것에 한몫했을 것이다. 이들의 말투가 얼마나 앵글로 색슨인지를 보라. 미국과 일본의 하부로서, 이에 협조자는 박정희에서부터, 이명박, 박근혜를 이어오다가 노골적으로 윤석열 집단이, 언론과 지식이 이미 포획되고 포로가 되었기에, 하부로 들어가자고 실행에 옮기고 있을 뿐이다. 중국과 싸워야 하는 미국이, 군대를 남겨둘 자리로서 남한을 지배하면서, 일본에게 남한의 경제를 넘기려는 것이다. 라인을 일본에 넘겨주고, SK의 지분을 일본에 넘기고서, 그리고 마치 시혜를 베풀 듯이, 남한이 먹고 살 수 없는 경제 구조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럴 경우가 내각제로 가는 징표이다. 그럼에도 어떤 이가 내각제를 물 건너갔다고 하는데, 이는 인민을 현혹하는 수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윤석열 집단뿐만 아니라 이들 이전에도 남한의 권력, 그리고 권세도, 권위도 제국주의 또는 제국의 전략에 협력하는 길이 살길이라고들 했었다. 묻지마 투표는 이에 기인한다. 이는 1905년 이후 나라 팔아먹은 5적들도 당시에 그렇게 생각하고 넘겨주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들 5적 연관자들을 해방 후에 처벌하고, 중요한 것은 재산을 몰수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번에도 윤석열 집단이 1910년 그 이상의 작업을 법률적으로 하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결제의 권리인 최종심급은 인민에게 있다. 아직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민이 제헌입법권과 소환권을 쟁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내각제라는 말은 들어간다. 교육과 제도에서도 인민은 기본심급이자 최종심급이다. 이 최종심급으로 세 패거리에 아부하고 마름을 자청하는 이들을 엄벌하고, 부정 재산을 몰수해야 할 것이다.

다시, 내각제를 입에 올리는 정치인들을 매국노와 손잡는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총선이 있기 전에 떠돌던, 내각제 개헌의 이야기가 또다시 돈다. 윤석열을 명예롭게 퇴각시키는 방법도 말한다. 인민의 최종심급을 받아야 할 자들을, 위임받은 국회의원들에 처분을 맡기는 것에서, 해방 후 부일자들에게 속았듯이, 제국의 마름들에게 속는 것이다. 이들이 일본세력에 부역하는 자들이라고 여기는 것이 인민만이 아닐 것이다. 인민의 저항, 봉기, 혁명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현재 시점에서도 일본의 종속과 예속을 넘어서, 나라를 넘겨주려는 자들이 있다고들 한다. 그 세력들은 세 패거리가 역사의 주류라고 망상한다. 백성, 민중, 인민은 스스로 깨어있는 시민으로 자각하고, 입말과 말투, 규소의 시대의 이미지와 문자로서, 새로운 생성과 창조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75년의 세월이 세계사에서 매우 짧지만, 우리나라만큼이나 역동적이고 속도와 강도(내공)를 가진 나라가 없다. 현재의 노력으로 보아, 그리고 내년으로 가는 과정에서 더 빠른 속도의 더 깊은 강도의 역동성이 분출할 것이다. 그 분출이 시대를 바꿀 것이다.

내각제라는 용어를 말을 입에 올리는 자들을 조심하라, 그가 이완용처럼 시대의 타협자이며, 적군의 세작이다. 그들이 끌어들여 인용하는 앵글로 색슨의 책들과 학자들의 말투와 용어를 들을 때 조심하라. 마치 철학사에서 ‘누스’라는 용어를 말할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을 조심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인민의 기본심급과 최종심금, 적어도 사회권과 자연권의 전개를 분출하는 자들과 같은 발걸음을 걷기를 노력하자. 75년의 입말과 말투의 기간이 짧지만, 그 속도와 강도는 규소시대 만큼이나 기하급수 이상으로 상승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당신의 노력과 내공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소요, 반역, 폭동이라는 용어를 쓰는 자들이 나라를 왜놈과 제국에 넘겨주는 자들이다. 저항, 봉기, 항거는 인민의 미덕이다. 한 인간의 삶은 기나긴 생명의 역사에서 보아 찰나이다. 45억 년 역사에서 눈 깜짝할 사이. 그 찰나를 노력과 내공으로!

(57AMB)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