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25-현존과 ‘to heteron’[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25-현존과 ‘to heteron’

1)

논리학 1부 1권은 존재론은 3편으로 나누어진다. 그 가운데 1편은 1장 존재, 2장 현존, 3장 대자 존재로 이루어진다. 1편 전체는 질을 다루고 2편으로 넘어가면서 양으로 이행한다.

앞에서 서술한 1장 존재론은 생성이라는 운동을 다룬다. 이 운동은 발생과 소멸의 끊임없는 상호 이행이며, 그런 이행이 일시적으로 균형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이 곧 현존이다. 필자는 이런 존재의 운동을 헤라클레이토스가 들었던 촛불의 비유로 설명한 바 있다.

필자는 논리학과 인식론은 서로 평행을 이룬다고 본다는 것을 앞에서 설명했다. 인식의 이행은 시간상에서 일어나며, 이런 이행이 내면화(Erinnerung: 기억)되어 논리가 전개된다고 했다. 전자는 형태의 운동이며 후자는 계기의 운동이다.

정신현상학에서 인식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것은 감각적 확신이다. 논리학에서 여기에 해당하는 논리 규정을 찾자면 1편 2장에서 다루어지는 ‘현존’에 해당한다. 만일 논리학과 인식론이 평행을 이룬다는 가정을 유지한다면, 1장에서 다루는 존재의 운동은 인식론에서 어떤 인식에 해당하는 것일까를 발견할 수 없다.

그렇다면 평행이라는 가정이 무너지는 것일까? 필자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필자는 1권 존재론의 1편 1장에서 다루는 존재의 생성 운동은 존재론 전체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운동 즉 상호 이행의 운동을 서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은 2권의 1편 1장(가상)과 3권의 1편 1장(개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가상은 2권 본질의 운동 즉 반성 운동을 일반적으로 서술하며 개념은 3권 개념의 운동 즉 발전을 일반적으로 서술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각 권이 1편 1장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대체로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서술한 인식의 전개 과정과 평행을 이룬다. 이점은 앞으로 논리학 산책을 통해 논리학의 각 규정이 인식론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를 밝히면 대체로 인정될 수 있는 가정으로 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 평행을 이루는 인식론이나 논리학의 전개 과정 밑바닥에는 헤겔이 칸트로부터 받아들인 범주표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12개의 판단형식으로 이루어진 범주표가 인식론이나 논리학의 기본 설계도라고 볼 수 있다.

2)

이미 설명했지만, 존재의 운동은 이행 운동이다. 이런 이행의 운동은 존재자가 전개하는 운동 가운데 즉 본질의 반성 운동이나 개념의 발전 운동과 비교해 볼 때 가장 추상적인 운동이며, 그러기에 가장 일반적으로 즉 모든 존재자에 적용되는 운동이다. 여기서 운동은 매개 과정도 없으며 발전적 연관도 없다. 다만 하나의 규정에 다른 규정으로 직접 이행하니, 그 모습이 곧 존재가 무로, 무가 존재로 단적으로 이행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화합물이나 생명체와 같은 것도 이런 추상적인 차원에서는 즉 하나의 역학적 물체로 보는 가운데서는 마찬가지로 이런 존재의 이행 운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거꾸로 추상적 존재자에 적용되는 이런 운동을 화합물의 화학적 작용 과정이나 생명체의 생명 운동에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여기서는 더 구체적인 운동 방식이 즉 반성이나 발전과 같은 운동 방식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존재와 무의 생성 운동 즉 발생과 소멸이 일시적 균형을 이루면서, 헤겔은 현존이 출현한다고 한다. 이 주장은 앞의 1장 끝에 헤겔이 제시한 내용이며 2장 현존을 시작하면서 다시 되풀이된다.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현존은 존재와 무가 단순하게 하나로 되는 것이다. 현존은 이러한 단순성 때문에 직접적인 것의 형식을 지닌다.”(논리학, 2판, GW 21, 97)

이런 서술을 보면 마치 순수 존재나 순수 무가 있어서 그것의 상호 운동을 통해서 현존이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순수 존재나 순수 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처음 가장 직접 발견하는 것은 사실 현존이다. 현존은 그냥 독립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 속에서 나타난다.

이 현존의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주관이 설정한 개념 틀이 곧 순수 존재와 순수 무이다. 여기서 개념 틀은 순수 존재라든가 순수 무와 같이 따로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순수 존재와 순수 무의 관계 즉 생성하는 관계이다.

사유 속에서 보자면, 순수 존재와 순수 무가 통일되어 현존이 생성한다. 그러나 인식의 과정에서 본다면 최초의 인식 즉 감각적 확신에서 나타나는 현존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한 틀이 곧 순수 존재와 순수 무의 이행 운동이다.

그것은 마치 공리와 정리 사이의 관계와 같다. 사실 우리가 인식 상 먼저 발견한 것은 정리이다. 이 정리들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공리가 추출되며, 이 공리를 구성하면서 정리가 서술된다. 이 점은 후일 마르크스가 연구 과정과 서술 과정을 대비한 것과 같다. 연구 과정에서는 구체적인 현실이 먼저다. 연구를 통해 이로부터 추상적인 원리가 발견된다. 서술에서는 추상적 원리가 먼저이고 이것을 구성하면서 구체적 현실이 설명된다.

헤겔도 이 점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전체[존재와 무의 통일로서 현존]는 우리의 반성 속에서 그렇게 규정되며 아직 자기 자신에서 그렇게 정립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존 자체의 규정성이 정립된 것이라는 사실은 현존이라는 표현이 말해준다.”(논리학, 2판, GW 21, 97)

‘반성 속에서 그렇게 규정된 것’이라는 말은 현존이 존재와 무의 통일로서 규정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규정은 ‘반성 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에 주목하기 바란다. 헤겔은 이제 현존의 모습 속에서 그런 운동이 즉 존재와 무의 통일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에서’ 그렇게 ‘정립될’ 것이다.

3)

그렇다면 현존의 모습이 어떠하길래 헤겔이 이를 ‘존재와 무의 통일’로 규정하게 된 것일까? 현존이란 우리의 의식에 처음 가장 직접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정신현상학에서는 감각적 확신의 대상이다.

헤겔은 이 현존의 모습을 ‘질[Qualitae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분석철학에서는 이 질을 더 확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감각질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의식이 우리 밖의 외계와 가장 직접 부딪힐 때 나타나는 것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처음에는 이 감각질이 가장 풍요하고 가장 진리인 것으로 간주된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의 의식이 외부의 대상과 직접 부딪히는 순간, 그 순간은 인식과 대상은 합일에 이르며, 그 순간은 어떤 비교할 수 없는 순간 즉 개별적 순간이며 그런 순간순간의 전체는 대상의 가장 풍요한 모습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그러므로 인식론에서는 항상 모든 인식의 토대를 이런 감각질에서 찾으려 했다. 대표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원초적 명제 속에서 이런 감각질의 인식을 찾으려 했으며, 아도르노가 양화하고 일반화하는 계몽적 인식을 거부하면서 미메시스를 통해 얻어지는 인식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도 이런 기대가 감추어져 있었다.

4)

그러나 헤겔은 이런 현존이 지닌 질은 의식이 대상과 순간적인 부딪힘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런 부딪힘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한, 매 순간 그 질은 사라지고 새로운 다른 질이 출현한다. 소위 ‘명멸[明滅]’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현존의 모습이야말로 이런 명멸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이런 현존을 규정하면서 현존은 동시에 ‘타자 존재[Anderssein]’라고 말한다. 이 타자 존재란 현존 옆에 있는 또 하나의 현존이라는 의미라기보다 그 자신이 이미 자기와 다른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이 타자 존재를 ‘자기 자신의 타자’로 규정하기도 한다. 즉 질이 명멸하는 모습을 헤겔이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현존 자체는 본질적으로 타자 존재이며 이 타자 존재 속으로 이행한 것이다. 타자는 그와 같이 직접적이며 그의 외부에서 발견되는 것과 관계하지 않고 다만 본래적으로나 현상적으로 타자일 뿐이다. 그러나 그와 같이 하여 타자는 곧 자기 자신의 타자이다.”(논리학, 1판, GW 12, 61))

“왜냐하면, 현존은 이에 못지 않게 비현존이고 즉 비현존으로서 현존이기 때문이다.이것은 자기 자신의 무로서의 현존이므로 이와 같은 자기 자신의 무는 마찬가지로 현존이기도 하다.”(논리학, 1판, GW 12, 60)

여기서 현존과 비현존의 상호 이행이 등장하는데, 이 기초 전제가 된 것이 곧 순수 존재와 순수 무의 통일이다. 즉 현존의 명멸하는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헤겔은 존재와 무라는 두 개념 틀을 사용한다. 이 명멸하는 모습이 곧 생성 운동 즉 발생과 소멸의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런 순수 존재와 순수 무의 생성을 통해서 현존을 보자면, 현존은 양자의 통일을 존재의 측면에서 본 것 즉 “존재로서의 통일”이며 타자 존재는 양자의 통일을 무의 측면에서 본 통일 즉 “비존재로서의 통일”이다.

만일 가정해서 우리가 우리 밖의 세계에 일정한 순간에 동시에 부딪힐 수 있다면 또는 이전의 것을 기억해서 새로운 것과 함께 떠올린다면(아직 우리는 이런 단계까지도 넘어가지 않았으나), 이 경우 우리는 하나의 현존 옆에 또 하나의 현존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의 현존과 그 옆에 있는 다른 현존은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하나의 현존도 타자 존재로 이행하고, 다른 현존도 마찬가지로 자기의 타자 존재로 이행하니, 어떤 현존도 머무름이 없이 타자 존재로 변화하는 마당에 여기에 어떤 비교도 가능하지 않으니,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세계는 무차별적 세계로 표현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그러므로 양자는 어떤 것으로 규정될 뿐만 아니라 타자로서 규정된다. 따라서 양자는 동일한 것이며 양자 사이에 어떤 구별도 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자의 규정의 동일성은 다만 외적 반성 즉 양자의 비교에 속한다. 그러나 타자는 일단 정립된 것이듯이 마찬가지로 이 동일한 타자는 자기 나름대로 사실 어떤 것과 관계 속에 있으나 또한 자기 나름대로 그 어떤 것 밖에 있다.”(논리학, 2판, GW 21, 106)

5)

헤겔은 플라톤이 그려낸 ‘토 헤테론[to heteron]’은 바로 이런 ‘자기 자신의 타자’로서 현존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자기가 자신의 타자로 되는 명멸하는 세계를 (또는 좀 더 발전하면 서로 무차별적인 세계를)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데, 아이가 어머니 자궁을 나와서 처음 보게 되는 세상이 있다면 다름 아닌 이런 세상이 아닐까? 또는 악몽 속에서 어떤 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불쑥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는 모습과 닮았다고 할 수있을까?

언젠가 가을날 어느 산 정상에서 약간 기울어져 가는 햇빛에 반사된 억새꽃이 빛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뒤로 수없이 산에 가고 또 억새를 보았으나 결코 다시 그 억새꽃의 빛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 세상에 단 일회만 존재하고 곧 사라져 버린 그 모습은 심지어 기억 속에서도 남아 있지 않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판단할 수 있지만,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를 기억해 낼 수는 없다. 헤겔이 말하는 현존의 세계가 바로 그런 세계이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이런 질로 이루어진 현존의 세계를 그려내기 위해 ‘이것’이라는(또는 ‘여기’, ‘지금’과 같은) 지시 대명사를 이용한다. 그러나 이것이 지시하는 어떤 것은 그 순간 이미 자기와 다른 타자 존재가 되니(예를 들어 지금은 낮인데, 바로 밤이 되고 등), 이것으로 포착하려고 의도했던 것은 결코 포착되지 않는다. 이것은 결국 무엇이나 지시하는 것 즉 어떤 ‘일반적인 이것’에 이를 뿐이다.

같은 이야기를 헤겔은 논리학에서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라는 말로 어떤 완전히 규정된 것을 표현한다 한다. 여기서 언어 즉 지성의 작품이 다만 일반적인 것을 표현한다는 사실 즉 이는 어떤 개별적 대상을 지칭하는 이름과 다르다는 사실이 간과된다. 그러나 개별적 이름은 일반적인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 없는 것이다.”(논리학, 2판, GW 21, 105)

이강소

플라톤의 <국가> 강해(68)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68)

 

C. 철인 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3. 선분의 비유(509c-513c) – (II)

 

* 앞의 강해에서 우리는 다른 비유들과 비교하여 선분의 비유가 갖는 고유성에 주안점을 두고 그 기본 개요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선분의 비유가 보여주고 있는 인식론 내지 존재론적 위계가 제5권에서 플라톤이 피력하고 있는 앎과 믿음(의견)의 위계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음에 주목하였다. 선분의 비유에 관한 두 번째 강해는 미리 말한 것처럼 선분의 비유의 고유성과 관련하여 그 차이가 갖는 중대성과 그 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피기로 한다.

* 그것을 위해 우선 플라톤이 앎과 믿음(의견)과 관련하여 제5권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과 이곳 선분의 비유가 담고 있는 내용들을 간략히 도표로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 제5권에서(474c-480a) 플라톤은 <표1>에서 보듯이 인식의 상태를 ‘무지’agnoia와 ‘앎’gnōmē, epistēmē으로 크게 구분하고 그 무지와 앎 사이에 ‘중간적인 것’(metaxy ti)으로서 ‘믿음(의견)’doxa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때 앎은 ‘있는 것’, ‘자체적인 것’을 대상으로 갖고 있고 믿음(의견)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을 대상으로 갖고 있다. 그런데 선분의 비유에 와서는 <표2>에서 보듯이 무지의 경우가 빠지고 인식의 상태로서 두 단계 즉 ‘앎’과 ‘믿음(의견)’은 전체 4단계 즉 ‘상상’eikasia, ‘확신’pistis, ‘사고’dianoia, ‘지성적 앎’noēsis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그러면 제5권의 앎과 믿음은 선분의 비유에서 세분화된 그 4단계들과 비교하여 어떻게 서로 상응·연관 관계를 갖는 것일까? 우선 선분의 비유에서 ‘지성적 앎’noēsis과 ‘사고’dianoia가 ‘가지적 영역’noētos topos으로 묶여있음에 주목하면 언뜻 그 두 단계가 제5권의 ‘앎’epistēmē에 상응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두 단계 중 ‘사고’ 단계는 가정들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원천적으로 무가정의 원리(archē anypothetos)로서 ‘자체적인 것’ 즉 ‘있는 것’(to on)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5권의 ‘앎’이 될 수 없다. 그에 비해 ‘지성적 앎’noēsis은  아무 가정들 없이 형상들만을 사용해서 그것을 통해 형상들 자체에 이르는 앎(510b)이라는 점에서 제5권의 ‘앎’과 그대로 일치한다. 이것은 선분의 비유에서 ‘지성적 앎’과 ‘사고’ 둘 다 ‘가지적 영역’으로 묶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지성적인 앎’noēsis의 단계만이 제5권의 ‘앎’epistēmē에 상응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선분의 비유 4단계 중 오직 ‘지성적 앎’(L4)만이 제5권의 ‘앎’과 일치하는 것이고, 나머지 단계들(L1, L2, L3) 즉 ‘사고’, ‘확신’, ‘상상’의 상태들은 원천적으로 그 ‘앎’과 배타적으로 차별되는 것인 한, 모두 ‘믿음’(의견)doxa에 속하는 것이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표3> 참고) 그러나 플라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고’를 ‘지성적 앎’과 묶어 ‘가지적 영역’으로 설정하고 있고 나중 534a에 가서도 그것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성적 앎’과 ‘사고’가 원천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임에도 플라톤은 왜 선분의 비유에서 그것 둘을 함께 묶어 ‘가지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앎과 믿음과 관련한 제5권의 입장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기존 입장에 변화를 가하는 것일까 아니면 추가적인 보완을 의미하는 것일까?

* 이것은 이제 선분의 비유에서 가지적 영역의 것으로 제시된 ‘사고’dianoia가 어떤 철학적 성격과 위상을 갖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요구한다. 우선 앞에서도 살폈듯이 선분의 비유의 단계들 중 ‘지성적 앎’만이 제5권의 ‘앎’과 동일하게 ‘형상적 앎’인 한, 나머지 단계들은 모두 제5권 기준으로 ‘믿음’에 속하는 것이라고 밖에 달리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이것은 글라우콘이 선분의 비유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설명을 정리하면서 ‘사고’를 ‘믿음doxa과 지성nous 사이에 있는 것’라고 말하고 소크라테스도 그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511d)과 부딪친다. ‘믿음’과 ‘믿음과 지성 사이’는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분의 비유 자체가 기본적으로 doxa를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데다가 그 세분화 단계에서 사고가 앎일 수 없다면 사고가 치울 칠 방향은 doxa쪽 밖에 없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점에서 ‘믿음’doxa이란 말이 선분의 비유 중간에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다가(중간에 나오는 그에 준한 표현 ‘to doxaston’(믿음의 대상)이란 말도(510a) 다만, 선분의 비유 상 가시계와 가지계의 관계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to doxaston과  to gnōston의 관계처럼 모사와 원본 관계라는 것을 설명하는 차원에서 나온 말이다.) 비유 마무리 단계에 가서야 그것도 글라우콘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라는 것도 눈에 띤다. 아마도 소크라테스는 선분의 비유를 마무리 하면서 제5권의 doxa와 비교하여 그 범위를 ‘사고dianoia’ 아래 단계 즉 확신pistis과 상상eikasia으로 좁혀 설정했음을 글라우콘의 입을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나중 변증술을 설명할 때 선분의 비유를 꺼내 들어  ‘지성적 앎과 사고’는 noesis로 부르고 ‘확신과 상상’은  스스로도 직접 doxa라고 말하고 있다.(534a)  어쨌거나 논쟁의 소지는 있어 보이지만  ‘믿음과 지성 사이에 있는 것’이라는 글라우콘의 말을 아래와 같이 존재론적으로 엄밀하게 분석해 보면, 플라톤이 선분의 비유에서 왜 처음에 doxa란 말을 쓰지 않다가 글라우콘의 입을 통해 그 말을 쓰게 한 후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확신과 상상에 국한하여  그 말을 쓰고 있는지 그 까닭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일정 부분 있어 보인다.

* 우선 <표1>에서 보듯 믿음은 앎(있는 것)과 무지(없는 것) 사이에서 ‘있는 것도 있지 않은 것도 아닌 것’을 대상으로 성립하는 인식 상태이다. 그리고 앎과 믿음(의견) 사이에는 엄밀히 말해 경계만 있을 뿐 어떤 존재론적 지위를 갖는 것은 없다. 글라우콘의 말에서 지성을 ‘있는 것’으로 보고 믿음을 ‘있는 것도 있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볼 경우 설사 그 둘 사이에 무언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 또한 결국은 ‘있는 것도 있지 않은 것도 아닌 것’ 즉 본질적으로 ‘믿음’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믿음(의견)이라는 당구공과 앎이라는 당구공이 닿아 있을 때 접점은 하나이고 그 당구공들 ‘사이에 있는 것’이지만 존재론적으로 그 점은 위치만 있을 뿐 독립적인 존재론적 지위는 갖고 있지 않은 것과 같다. 당구공의 비유를 들어 다시 설명하자면 추론적 사고 자체는 원천적으로 앎이라는 당구공에 속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믿음(의견)이라는 당구공에 속해 있되. 다만 믿음(의견)이라는 당구공의 중앙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앎의 방향 쪽 극단 표면에 위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사고는 비물질적 자기 동일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형상적 앎에 닿아 있지만 기하학적 사유 공간의 연장성을 포함하고 있고 그 연장성은 무규정성의 근본 특징인 한, 기본적으로는 믿음(의견)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 비물질성 뿐만 아니라 공간적 연장성까지도 탈각해야 비로소 앎의 영역에 들어간다. 그러나 어쨌거나 그것은 믿음의 영역에서 무규정성을 가장 적게 갖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형상적 앎에 가까운 것이라 할 것이다. 아무려나 존재론적 관점에서건 인식론적 관점에서건 믿음의 위상과 관련하여 논란은 여전히 불가피해 보이긴 하지만 믿음(의견)을 어떤 관점에서 어디에 위치시키건 간에 플라톤 자신 선분의 비유를 통해 가지적 영역의 범위를 형상적 앎에만 국한하지 않고 최소한 수학과 기하학 같은 전문 기술들의 영역에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할 것이다.

* 소은(素隱) 박홍규 선생은 앎과 믿음, 무지의 존재론적 위상과 관련하여 ‘있는 것도 있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서 그것의 존재론적 특성을 ‘무규정성’apeiron으로 규정한다. 무규정성은 양상적으로 ‘가능성’의 영역으로 형상(to on) 쪽 극단에 이르면 ‘자기동일성’tauton으로까지 나타날 수도 있고 반대로 무(無mē on)쪽 극단에 이르면 관계맺음의 원리로서 타자성heteron의 극치로 나타날 수도 있다. 추론적 사고 대상으로서 수학적 기하학적인 것들은 모두 사유 공간에서 공간적 연장성을 구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천적으로 무규정성apeiron을 갖는 것이되, 다만 형상 쪽을 향한 최상위 극단에서 물질적 무규정성을 탈각해 있다는 점에서 존재론적으로 자기 동일성을 보전한다. 기하학적 공간 또는 사유 공간에서 길이가 동일한 여러 삼각형들이 하나의 삼각형으로 합동하여 하나의 삼각형 자체로 인식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그것은 이데아의 자체성과는 근본적으로 구분된다는 점에서 무규정성을 갖는 믿음의 영역에 위치하지만, 이데아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으면서 이데아적인 ‘자체성’kath’ hauto에 버금가는 ‘자기 동일성’tauton을 보전함으로써 말로 할 수 있는 학문으로서 최고의 지위를 갖는 수학과 기하학의 토대가 된다. 철학의 목적은 영혼의 고양을 통해 무규정성의 본질로서 타자성에 역행하여 자기동일성에 이르고 그것을 토대로 변증술적 지성을 통해 형상적 앎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철학의 수행은 영혼의 능력에 따라 그 목적을 이룰 수도 있고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철학이 ‘지혜에 대한 사랑’이고 사랑의 완성이 늘 사랑을 지속하는 것인 한, 살아 있는 인간에게 철학의 완성은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분투’, ‘위대한 영혼에로의 자기 확장’ 그 자체라 할 것이다.

* 요컨대 제5권의 엄격한 이분법적 기준에서 보면 분명 사고는 <표3>이 보여주듯 앎과 차별되어 믿음(의견)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선분의 비유를 기준으로 보면 그것은 비록 가시적 모상을 가정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가시적 영역과도 관계있지만, 결론은 비가시적 도형 자체로 마무리하고 나아가 그것을 토대로 앎에로의 상승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가지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고를 ‘믿음과 지성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글라우콘과 사고를 가지적 영역에 포함케 하는 소크라테스가 양립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지성nous과 공통의 어원을 갖는 noēsis와 noētos란 말을 사용할 때 아무 사전 설명 없이 어떤 때는 앎과 사고 모두를 묶어 noētos<표2>나 noēsis(534a)이란 말을 쓰기도 하고 어떤 때는 noēsis를 ‘앎’epistēmē에만 한정하여 쓰기도 한다.(<표>2, 제5권) 이것은 플라톤 자신 선분의 비유에 와서 noētos와 noēsis란 표현을 의도를 갖고 다소 유연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플라톤은 앎epistēmē이 갖는 존재론적 위상은 엄격하게 유지하면서도 선분의 비유를 통해 제5권의 믿음의 영역을 세분화하여 ‘사고’의 단계를 분리해내고 나머지 단계들을 앞서 글라우콘이 말한 대로 좁은 의미의 doxa로 재정립하는 방식으로 ‘가지적 영역’noētos topos의 범위를 일정 부분 확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변증술을 통한 형상적 앎뿐만 아니라 ‘사고’ 단계의 앎 즉 수학과 기하학 등 추론을 기반으로 한 전문 기술적 앎 또한 학문적 기초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기하학적 대상들과 관련하여 이성 자체가 수행하는 역할을 살폈듯이 이성은 오름의 과정에서건 내림의 과정에서건 사고 단계와 앎의 단계 그 모두에 걸쳐 있다. 철학은 종국적으로 형상적 앎을 획득하는 것이지만 철학의 수행은 변증법적 문답 능력을 통해 오름의 과정에서건 내림의 과정에서건 말과 논리로 이루어진다. 지성에 의한 형상적 앎만이 아니라 사고에 기초한 수학과 기하학 등 전문 기술들technai의 대상 또한 그 자체로 일정 부분 의미 있는 철학적·학문적 탐구 대상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플라톤은 학술들을 변증술이 형상적 앎에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용하는 협조자이자 동조자로 표현하고 있다.(533d) 요컨대 플라톤의 선분의 비유는 현상 구제 차원에서 형상적 앎 아래 단계의 인식 상태들 즉 현상계에 대한 학적 탐문의 길을 확립하는데 크게 비중이 실려 있던 것이다. 

 

*  선분의 비유에 관한 우리의 논의는 단순히 인식론적 명백성의 순차적 단계와 특징 보다는 그 배면에 깔린 존재론적 위상 특히 사고 단계의 위상에 주안점을 두고 그것이 학적 인식의 확장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 보았다.  존재론을 끌어들여 각 단계가 갖는 인식론적 의미를 살핀 셈이다. 이제 끝으로 이상의 논의를 전체적으로 종합하면서  필자 나름의 관점에서 그 철학적 의미를 음미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제5권에서 앎과 믿음의 구분과 선분의 비유의 공통점이 있다면 둘로 나누건 넷으로 나누건 ‘지성적 앎’으로서 앎의 단계가 갖는 존재론적 위상은 변함이 없다. 즉 선분의 비유에서 앎의 존재론적 위상 변경에 대한 언급은 없다. 특히 태양의 비유와 비교하여 선분의 비유에서 좋음의 이데아에 상응하는 앎의 단계가 별도의 지위를 갖고 따로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이것은 좋음의 이데아가 다른 이데아들보다 철학적 위계상 우월한 것일지라도 최소한 존재론적으로는 모두 하나같이 자체적인 존재이자 인식론적으로도 동일한 앎의 지위를 갖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2) 이것은 결국 선분의 비유의 주요 목적이 ‘형상적 앎’을 보완하고 해명하는 것보다는 그 하위 단계로서 믿음의 단계를 보다 세부적인 단계들로 나누어 그 단계들 각각이 갖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선분의 비유는 형상적 앎에 이르기까지의 인식 과정 전체를 연속해서 상승하는 것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그 중간적인 것을 보다 세분화하여 ‘믿음’doxa의 스펙트럼이 최하 ‘상상’의 단계에서 ‘확신’을 거쳐 ‘사고’로까지 분화되면서 각기의 고유한 역할을 가지고 앎에로 상승해 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3) 특히 플라톤이 ‘사고’를 존재론적으로 앎과 분명하게 구분하면서도 가지적 영역에 포함케 하고 있다는 것은 지고의 앎으로서 형상적 앎의 위상을 이전의 입장 그대로 보전 유지함과 동시에 하위 대상으로서 수학 또는 기하학적 대상들이 갖는 존재론적, 인식론적 위상을 재정립하여 그 자신 가지적 학문 영역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기하학을 비롯한 전문 학술들 역시 변증술의 수준에까지는 미치지 못하나 형상적 자체성에 버금가는 ‘자기 동일성’tauton을 가질 수 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4) 그뿐만 아니라 플라톤은 가시적 영역도 다시 ‘상상’eikasia과 ‘확신’pistis으로 세분화하고 있는데 그것 또한 의술, 건축술, 제화술. 조타술 등 실물을 다루는 일반 기술들과 시가술, 수사술, 미술 등 모방과 꾸밈, 허구와 과장 등을 기반으로 한 기술들을 구분함과 동시에 그러한 기술들이 갖는 나름의 위상도 의미 있게 함께 재정립하려는 의도 또한 담고 있다. 이점에서 ‘상상’eikasia과 ‘확신’pistis, ‘사고’dianoia가 서로를 고리로 모상eikōn과 원본의 관계를 갖고 상승한다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있게 주목해야 한다. 특히 최하위 인식 단계로서 ‘상상’eikasia의 경우는 환상과 억측, 불분명하고 부정확한 감성의 개입 등 명확성을 기준으로 가장 낮게 평가되는 단계이다. 그에 따라 그것은 결코 학적인 보편성과 객관성을 가질 수는 없지만, 다른 한편 인간의 정신적 발달 과정에서든 일상인의 심리상태에서든 늘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상상’은 정서가 발달하기 시작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와 청소년기 단계에서는 장차 맞이할 성년기 영혼 형성에 가히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플라톤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인간 삶에서 결코 무시되거나 부정될 수 없다. 플라톤이 제3권에서 시가(詩歌)mousikē 교육을 강조한 것도, 특히 어린이와 청년기 교육 과정에서 다른 그 무엇보다 시가 교육에 상당한 정도의 비중을 할애한 것도 그 때문이다.(376e-403c) 사실 시가는 말과 언어의 형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감성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선법과 리듬에 허구와 과장까지 포함하고 있어 일부 시인들과 권력가들에게는 자신들의 욕망을 성취하는데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플라톤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러한 시인들과 그들이 지은 신화나 시가들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교육의 대상에서 배제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플라톤은 인간의 심적 상태에 시가가 차지하는 영향력의 크기가 얼마나 심대한 것인지 특히 이성적 사고가 채 발달하기 이전의 어린이나 청소년기에는 얼마나 심각할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플라톤은 전통적인 신화나 시가들을 비판하되 신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건국신화가 보여주듯이 이상 국가에 걸맞은 새로운 시가들을 만들어 그것을 어린 시절부터는 물론이고 성인 이후에도 시민이라면 누구도 배우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상상’은 선분의 비유에서 최하위의 인식단계에 속하지만, 삶에 미치는 비중과 중요성에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서 그것이 갖는 양면적 영향의 크기만큼 교육의 대상으로서도 매우 중대한 위상을 지니는 것이다. 제3권에서 시가교육의 목적과 관련하여 플라톤이 밝히고 있는 아래와 같은 언급은 그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다. “시가(詩歌) 즉 리듬과 화음은 영혼의 내면으로 가장 깊숙이 젖어 들며 우아함을 대동함으로써 영혼을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으므로 … 시가 교육을 제대로 받은 이는 훌륭하지 못한 것을 가장 민감하게 알아보고 싫어하는 대신 아름다운 것들은 칭찬하며 기뻐하며 영혼 속에 받아들여 … 나중에 이성적 논거를 접하게 되면 그 친근성 덕에 그걸 알아보고 제일 반길 것이다”(401d-402a)

5)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말의 꾸밈과 과장을 마다않는 수사술rethorikē은 물론 실재의 모사에 대한 모사 즉 이차 모방을 주된 기술로 삼고 있는 회화를 비롯한 모방술(mimetikē)도 시가술이 갖는 양면성 차원에서 함께 비판된다. 그것 또한 앞서 말한 상상의 특징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사술은 소피스트들과 권력자들에 의해 민주정 치하에서 설득적 언사 대신 말의 꾸밈과 과장의 방식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기술로 변질되어 종국에는 아테네를 멸망으로 이끄는 큰 원인이 되었다. 대화편 제목들의 상당수에 소피스트의 이름이 내걸려 있고 내용에서 상당 부분 그들이 구사하는 수사술에 대한 냉혹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 자신 진실 왜곡과 정치적 선동의 기술로 수사술을 철저히 비판하기도 했지만, 시가에 대한 양면적 태도가 보여주듯이 설득력을 강화하는 말의 기술로서 수사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대화편 <메넥세노스>의 경우를 보면 플라톤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록 역설적인 방식으로나마 수사술을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핵심 기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플라톤의 대화편들 자체가 이미 상황 설정이나 인물 설정, 대화의 구성 전개 등에서 말의 문학적 꾸밈과 허구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의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 동굴의 비유를 비롯해 그가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은유들 또한 하나같이 모두 말로 이루어지는 문학적 시가적 표현 기법이다. 그리고 회화 내지 미술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실재에 대한 이차적인 모방을 주된 기술로 삼음에 따라 결과적으로 불분명함과 왜곡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학적 정확성과 객관성을 결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미술과 조각은 신들과 신들의 거처를 아름답게 또는 웅장하게 꾸미고 그것을 통해 아테네인들의 종교적 감성을 풍성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 또한 분명하다. 즉 미술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과 폄하는 학적 인식의 차원에서 정확성과 객관성을 기준으로 제기된 것이지 그것이 삶에서 갖는 가치까지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도 철학과 병행하여 마치 죽은 돌에서 생명을 끌어내듯이 조각을 생업으로 삼아 평생을 살았다. 선분의 비유에서 ‘상상’, ‘영상(影像)’(image)이란 표현은 오늘날에도 그렇게 받아들여 지듯이 말 그대로 ‘상상에 불과하다’는 폄하의 용어로도 쓰일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 ‘위대한 상상력(imagination)’이라는 치하의 용어로도 쓰일 수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비유 자체가 내용상 이미 위대한 철학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그럼에도 형식에서 문학적 허구임 또한 분명하다. 플라톤이 학적 정확성에 치중한 나머지 그것을 기준으로 예술의 위상을 낮게 평가했다는 말은 진실이어도 플라톤이 삶에서 예술이 갖는 가치까지 폄하하고 부정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예술과 모방mimēsis에 관한 플라톤의 논의는 제3권(392c-398b)에도 나오지만 나중 제10권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어진다.

6) 그리고 ‘확신’pistis 단계의 인식 상태와 그 대상으로서 실물 세계들 또한 ‘사고’dianoia의 모상으로 사고의 하위 단계이지만 인간 삶의 직접적이고 일상적인 현실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은 물론이고 관심사와 영향력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가장 중심에 있는 것들이 아닐 수 없다. 현실적 삶의 문제 해결 방식으로서 수많은 기술들 이를테면 의술, 건축술, 제화술. 조타술 등 일반 기술들이 포진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플라톤 또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면서 끊임없이 인용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현실의 기술들이다. ‘확신’의 대상이 ‘사고’ 대상의 모상이 된다는 것 역시 내림의 과정에서 보면 현실의 실물들이 ‘사고’를 통해 이론적으로 해명되어야 하고 해명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러한 일반 기술 모두는 기본적으로 경험적 숙달과 관련되어 있지만 일정부분 수학과 기하학에 의존해 있어 개연적이나마 기술적 앎의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플라톤이 현상 구제의 일환으로 실물을 형상의 분여물로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7) 결국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를 통해 제5권에서 ‘믿음’(의견)으로만 구분되었던 인식 상태를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현실 구제 차원에서 실질적인 현실 문제의 방책으로서 수학과 기하학의 방법은 물론 제반 기술들 나름의 학적인 위상과 성격을 최대한 뒷받침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고’ 단계를 ‘가지적 영역’에까지 확장한 것은 플라톤 철학이 형상적 앎만을 중시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인식 상태인 믿음의 영역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전통적 해석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를 통해 믿음의 영역에서 형상적 앎에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앎의 상태로 추론적 사고를 설정함으로써 전문 학술들의 학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고 나아가 추가적으로 확신과 상상도 따로 구분하여 그 차이가 갖는 고유한 의미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즉 플라톤은 태양의 비유를 통해 좋음의 이데아를 최정점으로 하는 존재 및 인식 세계의 기본 구도를 보여준 후, 선분의 비유를 통해 그러한 형상적 앎에 이르기 위해 어떠한 하위 단계의 인식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 각 단계의 인식들이 현실의 기술들과 어떻게 연관되고 학적으로 어떤 위상을 갖는지도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8) 이러한 해석의 연장선상에서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전문 기술들과 일반 기술들을 학문적 차원에서 근세 자연과학들을 비교해보자면 선분의 비유는 근세 자연과학적 인식론의 기본적인 문제의식과 주요 개념들을 이미 선구적으로 두루 포함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성적 문답과 숙고를 거듭하여 영혼이 고양된 상태에서 마침내 첫 원리를 획득하고 다시 그 원리를 토대로 가정들에게 진리성을 부여해주는 플라톤적 앎의 구도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제일원리에 이른 후 그 제일원리를 토대로 연역의 방식으로 개별 지식들의 진리성을 부여해주는 데카르트(R. Descartes)의 제일철학과 인식론적으로 거의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선분의 비유에서 ‘확신’과 ‘상상’의 단계는 근대 경험론이 그랬듯이 그 상위 단계로서 최소한의 학적 분별력인 사고dianoia 작용을 배제하고 지식의 원천을 그저 감각적 경험에만 한정했을 경우 왜 회의론에 빠질 수 밖에  없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칸트(I. Kant)의 인식론도 관점과 해석만 다를 뿐 근본 틀에서 ‘선분의 비유’의 단계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칸트는 관조(觀照)theōria의 대상인 플라톤의 형상계를 물자체라는 불가지의 세계로 상정하여 학적 인식에서 배제하는 대신 사고의 단계에서 작동하는 이성의 역할에 주목하여 이성을 주관에 내재하는 인식의 보편적 구성 원리로 삼아 감각적 경험적 지각들을 인간 나름의 보편적 지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것 역시 단계만 하향되었을 뿐 칸트 역시 현상의 구제 즉 현상계의 경험적 대상들에 대한 인식론적 기초를 마련하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칸트가 인식론에서 배제하였던 물자체의 세계를 어쩔 수 없이 실천철학의 과제로 다시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리고 이후의 철학사적 전통에서 특히 근현대 비합리주의자들에 의해 그 물자체의 세계가 오히려 철학적 탐문이 육박해 들어가야 할 참된 실재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도, 비록 관점과 용어는 달라도 말과 논리 너머의 플라톤적인 예지계가 침묵의 형식으로건 형이상학적 이념의 형식으로건 철학의 근본 문제로 결코 도외시할 수 없는 궁극의 관심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다. 서구 역사에 나타난 ‘모든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이다’(All philosophy is a series of footnotes to Plato.)라고 말한 화이트헤드(A. N. Whitehead)의 말이 결코 과장된 말로 들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9) 요컨대 플라톤 철학은 철학적 위계에서 보면 분명 이데아가 지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플라톤이 지닌 관심의 중대성 차원에서 보면 형상적 앎의 내림 과정 즉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한 구제 차원에서 말과 논리로 성립되는 전문 기술들(오늘날의 개별과학들) 또한 그에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플라톤 철학을 그저 형상이라는 추상적 관념만 좇는 비현실적 사상으로 보는 것은 플라톤 텍스트에 대한 직접적인 독해를 통해서가 아니라 대체로 후대 철학자들이 자기 철학을 내세우기 위해 아전인수적으로 가해졌던 그릇된 해석에 크게 의지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형이상학이 근본적으로 삶의 근원적 문제해결을 위한 공존과 조화, 지성과 균형의 원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문 기술들이 아무리 현실에서 필요할지라도 형상적 앎을 결여했을 경우 그것은 방향을 잃은 채 권력과 욕망에 부역하여 자신과 공동체의 삶 모두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철학이 전문 기술들이 갖는 실질적인 유용성을 무시한 채 형상적 앎을 내세워 고답적인 이론에만 머무는 경우 그것 또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독선과 아집, 폭력에 부역하여 자신과 공동체의 삶 모두를 무너뜨린다. 만약 플라톤 철학이 말과 논리를 넘어 형상적 앎에 대한 지적 직관만을 강조하고 그것에만 매달렸다면 플라톤 철학은 철학사에서 결코 철학적 사유의 모태로 평가받지 못하고 그저 신비적 깨달음을 강조하는 종교철학 또는 기독교 신학의 보완물 정도로 운위되었을지 모른다.

 

* 플라톤은 태양의 비유를 보완하는 일환으로 이상과 같이 선분의 비유를 살핀 후, 이제 제7권에 들어가 그 선분의 비유에 나타난 현실 구제의 구도와 세부 단계들을 동굴의 비유를 통해 좀 더 실천적이고도 역동적으로 그리고 더 종합적으로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다. 그에 따라 그곳에서는 좋음의 이데아도 당연히 다루어진다. <국가> 제6권은 이렇게 선분의 비유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국가> 제6권 끝

 

다음 주제 : C. 철인 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1. 동굴의 비유(514a-521b)

[서평] 강지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읽고 [철학자의 서재]

강지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읽고

 

함태원(건국대)

 

칸트 철학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고 하더라도, 칸트가 위대한 철학자이자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기야 어지럽고 머리 아픈 칸트의 철학을 하나하나 이해하는 것은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굳이 필요 없는 일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철학을 전공하는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칸트라고 한다면 고개부터 저을 정도로 칸트 철학은 난해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칸트가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일을 하고,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는 우리의 관심을 기울일만한 일이다. 이 책은 칸트의 위대한 업적의 비결을 ‘루틴’이라고 보여준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루틴을 세우고 이 루틴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칸트야 주변 시민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추는 ‘쾨니히스베르크의 시계’라 불리는 규칙적인 사람이었으니, 루틴을 지켜내는 일이야 어렵지 않을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칸트가 아침에 일어나 5분간은 침대에서 그 무엇보다 유혹적인 아침잠과 씨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또 하인이 커피를 타오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계속 커피를 달라고 보채던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은? 하지만 칸트가 자기 루틴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이런 면모 때문이기도 하다. 칸트는 자신이 아침잠에 약하고 커피를 너무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자기 루틴에 이를 포함했다. 칸트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나의 즐거움”(36쪽)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 루틴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루틴을 어디서부터 시작 해야 할까? 우선은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지도에 목적지도 표시하지 않고 항해를 나갈 수는 없으니 어디로 갈지부터 체크해야 한다. 목적지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행히도 우리는 칸트 덕에 “진리는 대상에 있지 않고, 내가 구성하는 것”(61쪽)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이다.

그럼, 루틴은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 우선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자. 작은 일이라도 무엇이든 우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큰일이든 작은 일부터 시작해 나가는 것이 자신의 루틴을 완성하고 유지해나가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상관이 없을까? 내가 좋다고만 생각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다 해도 괜찮은 걸까? 단순하게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해도 좋다고 했다면, 칸트가 이토록 이름나있는 인류의 스승은 아니었을 것이다.

칸트의 대답은 도덕법칙에 따라서 행위를 하라는 것이다. 도덕법칙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현기증이 나는 어려운 법칙을 알아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햄버거를 참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햄버거를 정말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저기 옆에서 맛있게 햄버거를 먹는 조카의 햄버거를 빼앗아 먹으면 안 된다. 경찰이 아무리 몸이 괴롭고 피곤하다고 하더라도 옆에서 벌어지는 범죄 현장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처럼 도덕법칙은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도덕법칙은 당연한 것을 지키면 될 뿐이다.

그리고 칸트는 이 도덕법칙은 자율로서 자신이 세우는 것이라 말한다. 즉, 이 법칙이 무엇인지는 오롯이 나의 자유에 달려있다. 그러나 칸트의 요점은 이 법칙을 언제나 그리고 확고하게 고수하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몸이 힘들다고, 내가 지금 몹시 허기져 있다고 범죄 현장을 외면하거나 강도 행위를 벌이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세운 그 원칙을 공고하게 유지하면 도덕법칙을 지켜나갈 수 있다. “자율적으로 행하되 그 행위가 도덕법칙인 한에서 행동하자”.(111쪽) 자유는 언제나 책임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칸트처럼 하루하루 삶의 루틴을 만들어 살아가는 일은 분명히 고되고 힘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칸트가 위대한 인류의 스승인 이유는 엄격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쓴소리를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선생님들의 말은 언제나 옳지만 듣기 싫은 소리로 되어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위대한 일은 언제나 고되고 힘든 법이다. 시작하는 25년 새해, 칸트처럼 하루하루 나의 루틴을 정해 지켜나가며 위대한 일을 이뤄내보자.


서평자 함태원: 건국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석사수료. 칸트 철학을 공부하고, 주된 관심사는 칸트의 실천철학 및 윤리형이상학이다.

[신간안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강지은 지음|북다|2025년 1월 31일) [한철연 소식]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강지은 지음)

 

강지은 한철연 회원의 신간을 소개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전방에 둔 불안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삶의 경로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 경로 조차 확실하지 않죠. 칸트 전공자인 저자는 칸트의 3대 비판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의 핵심 메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우리 현실에서 알기 쉽게 전달합니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나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각자가 얻어나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지난해 말 국가적 위기로 불안하게 시작한 을사년, 우리 앞에는 칸트의 철학이 있습니다. 

 

♦ 칸트 전공자의 서평 (그림 클릭~)

♦ 출판사 서평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오늘, 칸트가 필요한 시간

인생은 불안의 연속이다. 어제까지 평온했더라도 언제 어떤 일이 불시에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고, 일정 부분 자극제 역할도 하기에 삶에 도움이 된다고도 말한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 불안을 마주 하게 되면 마음이 어려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불안은 생각하면 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문다. 불안에 더 빠져들기 전에 칸트를 만나 보자. 불안을 잠재울 아주 간단하고 누구나 실천 가능한 방법이 그의 철학 속에 있다.

“매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불안은 줄어든다!”
불안이 사라지는 마법, 칸트의 루틴

앞서 이야기했듯 인간 생애에 불안은 필수불가결이다. 다만 중요한 건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는 것이다. 곡절 많은 인생을 살았던 칸트가 평온함을 유지하며 유유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건 자신만의 루틴이 있었고, 평생 이를 지킨 덕분이다. 뿌리가 깊고 단단한 나무는 잔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나의 하루가 바로 세워져 있으면 불안이 들어올 틈이 없고, 주변의 어떤 이야기에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내가 원하고 지킬 수 있는 하루를 설계해야 한다. 칸트는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산책하고, 글을 쓰고, 강의하는 루틴 속에 자신만의 여유와 즐거움을 담았기에 평생을 지킬 수 있었다. 매일 아침 4시 55분에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었지만 이불 속에서 5분의 여유를 즐긴 뒤 5시에 나와 꽃잎 차를 마셨고, 1일 1식을 했지만 그 한 끼만큼은 사람들을 초대해 와인을 곁들인 만찬으로 즐겼다. 각자가 가진 즐거움을 루틴에 녹이면 매일 지키는 일이 그리 어렵지만도 않다.

“알고, 행동하고, 추구하라!”
칸트의 3대 비판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대중적으로 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알아야 한다. 칸트는 이것은 좋아하고, 또 저것은 좋아하지 않는 그 자체가 나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어렵기로 유명한 칸트의 3대 비판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 함의하고 있는 핵심 메시지, 즉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를 2~4부에 걸쳐 다루며 이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 나간다. 장별로 오늘날에 꼭 필요한 칸트의 문장들을 발췌해 서두에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칸트 철학을 우리의 일상 속 예시들과 함께 쉽게 풀었다. 나를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자유롭게 행하되 반드시 도덕의 틀 안에서 하며, 더 높은 의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라는 칸트의 메시지는 타인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종하며, 물질적 아름다움에 현혹되는 시대에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다양성은 존중돼야 하고, 많은 사람이 이익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지켜야 기본은 분명 있다.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 안에서 개인도 행복할 수 있다.

자신만의 길을 간 앙리 루소의 그림과
칸트의 아포리즘

표지와 본문에 사용한 그림은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의 그림이다. 서양미술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감수성을 보여 준 그의 그림은 칸트가 추구했던 흔들리지 않는 ‘나’와 어딘가 닮았다. 중간중간 삽입된 그의 그림들이 칸트의 아포리즘을 담은 책 속 문장들과 어우러져 더욱 와 닿는다. 필사하며 마음에 새기기에도 좋은 이 칸트의 아포리즘과 함께 인생의 방향 계획하고 또 실천해 보자.

 

♦ 책 목차

들어가는 말

1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1. 루틴은 불안을 잠재운다
2. 루틴에 행복을 담아라
3. 일상을 혁명적으로 전환하라

2부 어떻게 나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4. 나를 이성적으로 바라보라
5. 내 방식대로 인생을 설계하라
6. 계획을 세웠다면 일단 실천하라
7. 경험 그 이상을 상상하라
8. 겉으로 보이는 게 결국 나란 걸 기억하라

3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9. 도덕 법칙에 따라 행동하라
10. 용서보다 정의를 수호하라
11. 쾌락을 통제하라
12.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하라
13. 도덕이 곧 행복이 되도록 노력하라

4부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14. 아름다움을 내 안에서 찾아라
15. 사심을 버려라
16. 더 높은 숭고함으로 향하라
17. 마음을 공유하라
18. 타인을 사랑하라

나가는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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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출판사 북다 홈피(facebook)

 


저자 강지은: 건국대학교에서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과 의사소통의 가능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칸트 철학을 기반으로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도 연구 중이다. 서울시립대학교, 건국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등에서 20여 년간 철학, 윤리, 토론, 글쓰기 강의를 해 왔고, 현재 건국대학교에서 강의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철학자의 서재》(공저), 《다시 쓰는 서양 근대 철학사》(공저), 《B급 철학》(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 있다.

[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11회|4. 선택과 탐색 (3)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11회

  1. 선택과 탐색 (3)

 

“나요, 이형이요.

놀랬죠?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편지일 테니까. 그렇소, 나 역시 사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쓰고자 한 편지가 아니라 다소 얼떨떨하오. 그러나 왠지 당신에게 이 편지를 꼭 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소. 어제부터 몸살이 나서 그런지 오한이 나고 온통 몸이 쓰시오. 아무도 돌봐줄 사람 없는 외로운 산사에서 몸이 아프다는 것은 정말이지 육체적인 고통 이상으로 정신적인 고통이기도 하오. 그래서 어제는 낮잠을 무려 네 시간이나 잤소. 어제는 많은 꿈이 유달리 선명하게 기억되었소. 그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당신이 나를 힐책할 때의 고통이란…그 꿈 내용은 대강 이렇소. X-mas를 전후로 해서 모두들 즐겁게 놀 때 내가 당신 또래들 모임에 나타났소. 처음 박모 군을 보고 그리고 송모 군도 보았소. 그러나 당신이 그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불현듯 자리를 피한 것이오.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오. 그러나 황급히 돌아서 나오는 나에게 당신이 수도 없는 욕을 해대는 것이오. 왜 여기까지 와서 자기도 만나지 않고 돌아가느냐, 비겁하다 등 당신 특유의 감정이 고양되었을 때 내뱉는 말은 너무도 모욕적이어서 참기 어려웠소.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고통스러운 육체와 더불어 뇌리에 선명히 박히는 당신의 기억이 무엇인가 이 편지를 쓰도록 한 것이오. 그리고 당신과 나 사이에 분명 정리할 것이 있다면 정리해야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오.”

 

편지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흔히들 꿈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하오. 꿈속에서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현실 가운데에서 그러하기 때문이오. 언제부터인가 내가 당신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자 당신은 나를 기피하기 시작했소. 처음 당신을 만나는 순간부터 당신은 나에게 천사처럼 귀여운 우상이 되었소. 그러기를 무려 반년, 내가 당신에게 쏟았던 지순 지고한 정열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아름다운 것이었소. 당신도 나를 무척이나 따랐고 또한 그렇게 행동했소. 그러나 이렇게 꿈속에서 부유하는 사랑은 우리의 생각처럼 그리 오래가지 못했소. 지난 해 여름, 나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가득 채워지던 때에 당신은 나의 감정을 공감하기는커녕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나에게 비쳤소. 당신은 가벼이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허망함이란, 자유가 차단되었을 때의 괴로움보다 더한 하늘이 무너지던 허탈함이었소. 그 뒤 뭐라고 할까. 당신이란 여자에게는 더 이상 깊이 빠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은 것이오. 당신이란 여자, 참으로 무서운 여자요. 남자의 혼을 송두리째 앗아 가버리는 악녀요.”

“당신을 향한 불타는 사모의 정이 차츰 식어 들자 당신의 모습도 달라지더군요. 아름답고 귀여운 작은 천사이던 예전의 당신은 이제 점차로 하나의 평범한 여자로 비치기 시작한 것이요. 아, 인간의 눈의 간사함이란 정말 모를 것이오. 한 얼굴이 지닌 두 가지 모습이 이처럼 천양지차로 변하다니, 우리는 항시 사물의 외관에서 비롯되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가련한 미물인가 보오. 그러나 슬퍼하지는 않소. 오히려 다행스러운 것인지도 모르오. 당신이 언젠가 말하지 않았소? 당신에 대한 나의 기대가 깨질까 당신도 두렵다고. 비록 기대가 깨어지는 순간은 두렵고 고통을 수반할지라도 그러한 고통은 서로를 위해서도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라고 생각하오. 너무 잔인한 말 이른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동안 미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소. 또한 이것을 아는 게 두려워서 더욱더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모를 일이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 비로소 맑은 정신을 지니고 당신을 직시했을 때, 당신의 모습은 이전의 천사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여자였소. 이제는 좀더 정돈된 마음가짐으로 당신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더욱이 예전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애정을 품을 수 있었소. 당신은 언제나 내 마음의 태양이오. 해산의 난고를 겪고 난 후의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당신을 내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이 들었소.”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은 상당히 순수하고 순진했다. 여자 경험이 거의 없었던 나에게 처음 청년회 친교 모임에서 다가온 그녀의 인상은 아주 강렬했다. 그날 촛불만 켠 상태라 내 표정을 들키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녀를 볼 때면 나의 마음은 한없이 설레고 기뻤다. 그런데 경찰서 유치장에 와서 그녀가 남의 일처럼 떠들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녀와 나 사이를 높은 절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 다른 이들에게 대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혹시 착각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이성적으로 그녀를 판단하고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편지는 바로 이런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큐피드의 화살은 한 개로는 부족한가 보오. 당신을 향한 나의 화살로는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크게 밑도오. 당신이 나를 피하기 시작한 것을 느끼기 시작했소. 그것이 나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듯한 아픔을 안겨줄 때마다 나는 나에게 잘못을 되돌리면서 애써 태연해지려고 했소. 당신에 대한 나의 정념도 순화시켜 절제하고 당신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려고 했소. 올해도 거진 반년을 넘어섰지만 특히나 올해는 당신에게 연락하는 회수도 크게 자제했소. 당신도 아마 괴이하게 생각했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확신을 가지고 행동한 것이오. 당신에게 보다 많은 선택의 기회를 부여할지라도, 당신은 반드시 내게 돌아올 지혜로운 여자라고 나는 믿었던 것이오. 그러나 언젠가 당신이 내게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말했던 것처럼 당신은 점점 더 내게서 멀어져만 가고 있었소. 전혀 기대와는 어긋나게 당신은 무분별할 정도로 당신의 사랑만 갈구하고, 목마른 사슴처럼 사랑의 샘만 찾아 헤메이고 있는 듯하오. 정말 안타깝소. 당신이 어찌 나를 버릴 수 있소. 나는 당신에게 나의 순수한 혼을 바쳤소. 당신도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소. 언젠가 당신도 내가 한 것처럼 나에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10회|4. 선택과 탐색 (2)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10회

4. 선택과 탐색 (2)

 

1981년 여름 나는 모종의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앞으로의 진로도 확정해야 하고, 현재 하고 있는 공부도 확실히 해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지지부진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여름 방학을 이용해 한 달 정도 외가 근처에 있는 암자에 가 있기로 했다. 그 당시 나의 관심사였던 책들을 한 보따리 들고 가 그냥 산속에서 책에만 파묻히고 싶었다. 외가가 있는 전라북도에 위치한 Y읍 까지의 동행은 친구 이은성 군이 해주었다. 그는 젊은 시절 내내 내 곁을 지켜주었다. 나중에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갔을 때는 자신의 신형 소나타를 끌고서 무려 4박 5일 동안 동해안으로 함께 다니기도 했다. 절에서 공부하는 비용은 당시 모 신문사의 주필을 맡고 있던 최 모 집사가 대 주었다. 그는 나의 결심을 말하자 선뜻 10만 원 짜리 수표 한 장을 내주었다.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갚으라고 했다. 워낙 술을 좋아하던 그는 비교적 많지 않은 나이에 간암으로 죽었다. 빚을 갚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두고두고 부담을 느꼈다.

 

Y읍에 위치한 외가에 도착해서 먼저 큰 외숙부댁과 작은 외숙부댁에 들러 인사를 드렸다. 양가 외숙댁에는 내 또래의 사촌 둘이 있어서 그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Y읍은 비교적 조용한 동네였다. 근처에 Y 초등학교도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숲이 울창하고 아름답게 조성된 초등학교를 본 적이 없었다. 암자에 있을 때는 가끔씩 그 초등학교를 산책하면서 머리를 식히곤 했다. 암자는 외가의 뒤편 산에 위치해 있었다. 나이 든 스님이 운영을 하고 있었고, 젊은 보살이 여러 가지 수발을 했다. 한여름의 산속은 나무들이 울창해서 한낮에도 서늘했다. 조용히 공부를 하기에는 딱 좋았다. 암자에는 나 말고도 고시 공부한다는 젊은 친구가 한 명 있었고, 떠돌이 중도 한 명 있었다. 아침에 식사할 때 흰죽 같은 수프가 먼저 나왔는데 다들 맛있게 그걸 먹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수행하는 데 잡념이 들지 않도록 하는 정력 감퇴제가 들어 있다고 해서 그 이후로는 먹지 않았다.

 

의탁할 데가 없는 나이 많은 중들은 절에서도 반기지 않는 것 같았다. 암자에 함께 기숙하던 나이 많은 스님은 식사할 때 반은 눈칫밥을 먹었다.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서 그런 일을 보아도 나는 의식적으로 외면했다. 그런데 하루는 이 스님이 어디 가서 술을 걸쭉하게 먹고 오더니 그동안 받았던 설움을 큰 소리로 푸는 것이다. 소리도 꽥꽥 지르고 발에 걸리는 물건들도 막 차고 그랬다. 그러더니 걸망을 메고 가면서 하는 말이 걸작이다. ‘내가 땡중인가비…’ 암자에 있는데 하루는 아주머니 두 분이 오더니 사주팔자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까 부엌에서 일하던 보살 아주머니가 앞치마에 물 묻은 손을 털고 나왔다. 보살은 생년월일과 난 시(時) 등을 묻고서 사주팔자를 보는 책자를 뒤적이면서 아주머니들의 사주를 봐주었다. 그 앞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희한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한 인간의 사주팔자 보는 게 너무 쉽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 인간의 운명이 그렇게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루는 소나기가 종일 내렸다. 밤중에도 그치지 않았다. 억지로 쓰러져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내 가슴 위로 무언가 지나다니는 느낌에 잠을 깼다. 큰 쥐 한 마리가 내 배 위에 올라와 있다가 내가 깨는 바람에 놀라서 달아난 것이다. 쥐는 내가 워낙 싫어하는 동물이다. 그 쥐가 다시 나타날까 봐 그날 밤 꼬박 새울 수밖에 없었다. 불빛 하나 없는 산중에는 소나기가 주룩주룩 내리고, 시커먼 쥐가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는 두려운 상황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글을 썼다. 내가 사랑하고 싶었지만 더는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여인에게 장문의 편지를 쓴 것이다. 그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연상시키는 이 편지는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철학에 대한 나의 아주 원초적인 생각을 담고 있었다.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의식의 발현: 역사는 때에 맞게(카이로스) 변역(變易)한다 – 수괴 체포와 식민지 연관에서 자각 [천 하룻밤 이야기]

의식의 발현: 역사는 때에 맞게(카이로스) 변역(變易)한다.

– 수괴 체포와 식민지 연관에서 자각.

– 2025. 01. 20. 대한(大寒): 소한 추위에 밀린 대한

지난 달 동지 이후에, 그 다음 한 달 후 절후인 대한에 이르기까지, 일부 사람들은 쿠데타와 계엄의 이야기가 점점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와 같다고들 한다. 그리고 역사적 전개과정을 마치 연극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드라마든 연극이든 현상의 변화를 들여다보면, 내밀한 특성들과 그 사유의 뿌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도 한다. 윤석열이 등장인물이면, 이 각본과 대사는 누가 작성하였고, 연출자는 누구일까?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드라마 같은 이야기 있다고 한다. 드라마라기보다 긴 과정에서 크게 보아, 우리의 역사나 서구의 역사에서 비슷한 상사구조 같은 것이 있다. 서유럽도 기원전 역사의 문헌이 자체적으로 없고 외부에 있으며, 우리나라도 김부식의 짤라버린 역사서에서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취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원후의 역사에서 천년의 불교시대, 500년 유교시대가 있듯이, 서유럽에서도 1,500여 년의 크리스트교시대, 다음으로 오성의 합리화시대 300년이 있다. 유럽이 실증의 시대로 진행하면서 구시대의 두 가지, 종교시대와 형이상학시대를 벗어나려고 하였고, 그 이후로 상부는 유럽을 벗어나 부의 획득을 위해 전지구적으로, 칼과 방패로 무장한 로마의 식민지 개척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총과 대포의 무력으로 전지구적 식민지를 확장하였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영정조 시대에 몰락한 남인들이 실학이란 이름으로 실증학문에 관심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실증주의가 발현했지만, 서구의 식민지 확장이 중국과 일본을 압박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밀려왔을 때, 우리나라는 로마의 식민지경영보다 훨씬 더 강압적인 제국주의 식민지약탈의 먹잇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이 미국에게 배운 것을 대행해서, 일제 식민지와 광복이후 미국 제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이때부터 미국은 일본을 주구(走狗)로서 소두목으로 앞세워 소련과 중국에 대립하게 하였고, 그 와중에 우리나라는 제국주의와 제국의 세력들이, 이승만, 박정희, 전투환, 이명박을 관리하더니, 이들 모습을 통합 모습으로 21세기에 윤석열의 쿠데타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철학사에서 기원 후에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몰락하고, 로마 제국이 지중해 주변뿐만 아니라, 유럽의 서부(프랑스와 스페인), 북아프리카(카르타고, 알렉산드리아 포함), 중동지역(현 터어키,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이라크 등)을 깊숙이 장악하였다. 식민지 정책에서 그리스 식민지 개척과 로마의 식민지 지배가 다르다. 그리스 식민지 정책은 그리스인들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그 지역의 상부로 정착하면서 그리스 반도의 여러 도시국가들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배경에서 플라톤의 이데아(이상)의 공유로서 다자의 평등과 자유를 누릴려고 했다. 그런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중앙집권 시기에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몰락으로 알렉산드리아 도시가 지중해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에 참여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이 통치하면서, 이 장군이 파라오를 대신하면서, 통치를 위한 세 부류의 학자들을 궁정에 불러들여, 통치의 난제들에 대해 해답을 찾고자 하였다. 이 시기에 학문의 3계보는 소크라테스 좌파라 불릴만한 퀴니코스와 스토아가 한 축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학파에서 로도스 섬으로 떠난 학자들과 달리 아테네에 남은 소요학파 학자들 중에서,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과학에서 해결책을 내려 했던 이들이 당대에 성행했던 의학의 히포크라테스학파와 함께, 민생의 삶을 해결하는 한 축을 형성했다. 그리고 나일강의 전통에서 측량술을 기하학으로, 천체의 운동에서 책력의 만들었던 오랜 이집트 신관들이 수학적 전통을 유지했던 것이 또 다른 한 축이 있다. 이 세 부류의 통합적 결실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성립이라 한다. 제국의 체제를 확립하면서 정책의 실현에서 이 세 부류들은 상부로서 인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다. 이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권력 앞에서, 제도와 인간의 관계와 달리 자연과 인간이라든지, 신(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그래도 여전히 탐구하는 노력은 있어왔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못했다. 그런데 프톨레마이오스장군이 세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왕조가, 공화정의 로마에서 제국의 로마로 바뀌는 시절에, 지중해와 중동의 패권을 로마에게 넘겨주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마의 식민지 정책은 달랐다. 그리스 식민지처럼 새로운 도시 개척이 아니라, 이미 성립된 도시들이 로마에 복속(예속)하지 않으면, 무참히 말살하였다. 로마는 공화정 시절에도 카르타고라는 도시 자체를 몰살시켰듯이, 로마의 제국은 저항하는 나라들을, 특히 이스라엘을 저항자들을 완전히 몰살시키려했다. 이스라엘의 디아스포라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로마의 정복을 통한 식민지 확보는, 정치경제학에서 말하듯이, 개척에서 생산력의 증가에 의한 이익의 확대와 달리, 식민지 지배의 생산양식에서 생산에 참여 없이도 잉여의 착취를 하였다. 이런 정복을 통한 잉여착취는 앵글로색슨 철학에 깊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전지구적 교역하기 시작한 1,600년 전후에 네덜란드 상인은 세계 지역들과 상호호혜 무역을 하려고 한데 비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1588년) 영국이 해상권을 지배하면서 식민지 정책은 개척이 아니라 착취와 약탈이었다. 이런 약탈 경제에 의한 부의 확충을 아담 스미스가 눈치 채고, 국가의 부는 상업을 통한 자유경제체제라고 보았다. 물론 아담 스미스의 중요한 업적은 단일체제 내에서도 노동의 분업의 과정을 통한 잉여이익의 창출을 밝힌 점이다. 그럼에도 그의 경제학은 국가 또는 공동체의 총생산의 노동과 분배보다, 국가 경제에서 교환을 통한 이익의 증대를 보았다. 중상주의에 자유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개척과 착취를 정당화하였고, 께네의 중농주의와 맑스의 정치경제학이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으나, 총과 대포의 식민지 확장은 세계사를 영국이 주류인 것으로 되었다.

유럽이 중심이 되어 20세기에 두 번의 식민지 세계전쟁을 거치면서, 부의 축적을 이룬 미국이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전쟁을 통해 성립했듯이, 미국이라는 제국은 세계 곳곳에서 쿠데타와 전쟁을 일으키며 잉여의 착취라는 체제를 유지하였다. 제국은 한 세기 동안에 차례로 일어난 자본과 금융의 위기를 전쟁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였으나, 소비에트와 중국이라는 대립적 국가들의 성립과 더불어 제3세계는 자주와 자립의 길을 찾기 시작하였다. 세계는 철기문화에서 규소문화 시대로 변화하면서 인도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들이 자기 위상을 만들면서 세계는 다원화되어 가고 있다.

철학과 학문의 발달은 인간이 즐겁고 평화롭게 살려고 하는 노력의 결실들이다. 이런 노력들은 학문이전에 있어왔다. 그런데 로마의 제국은 달랐다. 악랄한 착취에서 식민지 인민의 삶은 비참하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철학사에서는 인간의 고통과 고뇌를 이야기하면서 이를 해소하는 노력과 학설을 제시한다고 보았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리스 식민지에서 지성의 노력은 인간의 기초적 어려움에 대한 해소로서, 자연학과 도덕론, 나아가 정치학이나 국가체제를 설명하려 하였다. 그런데 로마는 제국화 되면서, 그리고 식민지 총독으로 나가서 식민지의 수탈의 재산과 명성(?)으로 로마로 돌아와 황제에 오르는 방식이 생겨나면서, 식민지 착취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식민지에서도 이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황제제 속에서도 식민지 수탈에서 일어나는 반란과 항쟁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은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이는 20세기가 지난 후, 마치 미국이 전쟁을 통해 세계를 다스리는 경찰을 자임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로마가 무너지고(476년), 동로마가 오스만 투르그에 의해 멸망(1453년)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방식이 유지했던 것은 황제와 유일신앙의 지도자(주교들)의 담합에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로마의 교황은 다르다고 할 것이지만, 서유럽은 제국은 없고, 군소 왕국들의 분화, 즉 봉건시대였다.

국가권력에 종교권세가 결합한 것은 둘 사이에 이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야합 또는 카르텔이 드러난 것은, 고대 이래로 권력과 권세가 한 사람(황제, 참주)에 있어서, 둘 사이의 갈등관계 또는 이질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이질 관계의 봉합이라 부를 수 있는 상부가 성립하기에는 철학적 배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겉보기에는 철학학파들 사이의 진리 논쟁 또는 각 학파들 사이에 학문적 위상 정립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말하자면 분화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학문의 분화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처음 있었던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학문 또는 철학의 분화는 자연을 다루는 이오니아학파와, 존재를 사유하는 엘레아학파 사이에 있었다. 이 다음에는 소크라테스의 후계자들에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 퀴니코스를 이은 스토아의 대립에서 갈래가 일어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와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에피쿠르소의 정원학파도 나왔다. 이런 분화가 이루진 것은 천문과 기상학에 대한 설명과 이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해가 상식에 준하였기에, 이미 기원전에도 몇몇 학자들이 지구의 둘레 지구의 자연을 설명했다고 하더라도, 프톨레마이오스왕조 말기에는 시각적 관찰의 학문은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 이론에 동조하였고, 게다가 권력과 권세는 이런 정태적 지식에게 권위를 부여했다.

권력과 권세와 맞물려 지식의 권의의 문제는 알렉산드리아의 말기에 학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학파들에 별 주목하지 않고, 신플라톤주의, 아리스토레스학문의 복원, 셈계의 유일신앙의 성립으로 나누고 있다.

알렉산드리아학파를 대부분 철학사는 신플라톤주의라고 말하지만, 이오니아 이래로 우주발생론과 우주론 사이에서 체계적 학설을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이에 대표자는 플로티노스(204-270)이다. 그는 스토아학파의 우주 영혼이라는 생성하고 변화하는 체계를 받아들여 플라톤주의 다시 세우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관을 통한 상식이 이 우주발생론을 지탱해 주지 못했을 것이고, 새로이 제기된 유일신앙자들과 부딪히면서, 세계영혼의 신학이 크리스트교의 반박으로 이방종교(이교도)로 몰렸다. 그 몰락은 크리스트교인의 사주를 받은 군중이 여성 수학자이며 신플라톤주의자로 인정했던 히파티아(370-415)를 대로에서 갈갈이 찢어 죽였고, 529년에 아테네의 학당들이 폐쇄되면서 중세의 암흑기로 그늘 속에서 면면히 이어갔다.

알렉산드리아학파와 대등하게 발전한 것은 로도스 섬에서 소아시아 연안의 카리아 지방에 아프로디지아스라는 도시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의 계승자들이 어어진다. 그 대표자는 알렉산드로스아프로디지에우스(150경-250경)이다. 소요학파의 특징처럼 논리학을 기본으로 사물들과 대상들을 경험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유효했다. 이들의 논리학의 최고류 용어는 개념적으로 절대자 또는 신과 대등하게 위치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었고, 그리고 사물의 대상이든 사유의 대상이든 정태적인 현상에서부터 변화를 설명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도 흥미있게 받아들였다. 이들의 학설이 유일신앙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크리스트의 신학이 정립되지 못한 시기에, 알렉산드리아학파와 논쟁과 대립에서, 플라톤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성립하듯이, 새로운 신학 특히 신의 절대성과 완전성을 확립하는데 필수적이었다. 그럼에도 유대-크리스트교 쪽에서 신학과 유대 전통의 역사를 개입시켜, 예수를 드라마의 인물로 만들고자 하였다.

예수-크리스트의 전통은 유대-메시아(크리스트) 전통과 다르다. 전자는 이방종교에 물들었다가 삶에서 비참을 벗어나는 방식에서 그리스철학보다 비유로 설명된 스토아-크리스트교의 설교에 매력을 느꼈다. 이는 유대-크리스트(메시아) 전통처럼 태초의 신(야훼, 유일신이든)에서 보다, 하늘에서 울려오는 신의 말씀 또는 로고스가 진리이다. 그리고 아가페(무상보시)가 세상의 비참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 예수-크리스트가 구원과 부활에 의한 삼신론이 성립하기 전에(324년), 자연의 이법과 학문의 이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위계처럼, 절대적인 부동의 원리와 그 원리의 경험적 연결을 찾으려 했다. 이런 전승에는 오리게네스(185경-253경)가 있다. 신플라톤주의에서 자연과 더불어 이법의 해결에서 진리보다, 또한 숙명의 해결할 수 없는 불안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운명의 논리 전개에서 저세상의 안녕을 통해 삶의 안정과 구원을 찾으려 했다. 이방종교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저세상의 문제 해결을 예수의 속죄에서 찾는다는 알레고리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비슷한 시기였다. 플라톤주의자라 불리는(그런데 알렉산드리아 학파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의 개념이 들어있는데) 플로티노스(204-270)의 우주발생론적 설명, 아리스토텔레스학파에 속하는 알렉산드로스 아프로디지에우스(150경-250경)의 논리적이고 정태적 세계구축, 그리고 신을 통한 완성된 세계와 구원을 주장하는 오리게네스(185경-253경) 등이 담론을 전개하였다. 이들 중에서 로마 제국 속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점점 더 제국과 같은 체계를 형성하는 쪽은 셋째 예수-크리스트교 쪽이었다. 물론 이런 체계의 완성에는 아우구스티누스(354-430) 때 와서였다.

학문적으로 플라톤주의자들과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나름의 체계와 대상을 다루는 방식을 갖추고 있었다. 한마디로 전자는 다자의 공존을 말하고자 하고, 후자는 종과 류 위에 하나의 최고류를 설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자의 단위의 하나(un)이거나 류와 종에서 각각의 단위로서 하나(un)는, 입말로서 표현하는데 같은 하나이다. 그럼에도 전자에서는 유일한 선의 이데아로서 일자(l’Un)를, 후자에서 완전자이며 절대자로서 일자(l’Un)를 말하는데, 용어로서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예수-크리스트의 체계에서도 일자를 수용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둘을 알레고리로서 통합된 방식으로 유대-크리스트교를 만들면서, 유일신의 일자(l’Un)를 설명한다. 이로서 신학의 일자는 최고선이자 불멸자와 같다.

그런데 이방종교에서 이데아의 일자는 미래에 만들어야 할 세상이지, 과거에 만들어진 천국과 같은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유대-크리스트교의 일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일율과 모순율 수용하면서, 과거의 일자인 신을 알레고리의 첫 근거로 세웠다. 하나의 신이 있고, 다른 신을 믿는 것을 배격하여, 하나의 신으로 돌아가는 배중률(A 아닌 것이 아니고 A이다)을 받아들인다. 나 이외의 신들이 아닌 신이 진리의 신이라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조의 멸망과 로마 제국에 성립에서 신학의 알레고리는 황제제에 맞는 배중률이었다. 예수-크리스트를 공동체 신앙(믿음, 독사)의 대상 밀어내고, 신학이론으로서 유대-크리스트교에서 세계사 변천의 진리로서 신앙(파라독사)을 구사하여 중세 천년을 이어온다. 이 배중율에 따라 교리(파라독사)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온갖 나쁜 짓의 신호탄이 히파티아의 광장에서 공개적 살해였다, 마남사냥은 이를 이어받은 한 방식이었고, 중남미의 식민지에서도, 우리나라에서 한경직에서부터 전광훈에 이르기까지 배중율에 의한, 자기 이외에 다른 신앙을 악이라는 진리의식의 세뇌는, 권력과 결탁하여 많은 백성을 살해해왔다.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세계사에서 황제제(참주제)에 반대의 첫 시도자는 소크라테스라고 한다. 다이몬들을 믿는 그는 민주제도의 성립을 바랐다. 그럼에도 고발 내용 중의 하나로서 전래의 신앙을 믿지 않는다고 하여 사약을 받았다. 하나의 신이든 여러 신이든 신으로부터 믿음에서, 어느 하나가 독사이면 다른 신을 말하는 것이 파라독사이듯이, 거꾸로 유대-크리스트 신앙은 파라독사들 중의 하나이다.

학문은 이를 벗어나기 위해 자연의 이법과 그 실증의 사실들을 탐구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고대와 중세는 실증적으로 연구가 거의 불가능했다. 르네상스이래로 망원경이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들었고, 이어서 현미경은 눈에 보이지 않은 대상들을 말할 수 없다고 했던 시대를 넘어서 맨눈에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세계가 점점 넓어져 갔다. 사물의 변화라기보다 사물을 실증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의 변화가 인간의 의식(영혼)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증기기관과 원동기(모터)의 발달은 생산양식을 바꾸어 놓았고 편리와 안녕은 상부만이 아니라 대중에까지 퍼져 나갔다. 그럼에 소유는 소수의 것이었다. 생산양식의 변화는 또 다시 인민의 사유를 변혁하였다.

20세기 중반에 DNA와 디지털의 발견과 발명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었고, 21세기의 인민들의 누리소통은 의식의 민중화를 넘어서 다양체의 길을 열었다. 알레고리에 의한 유대-크리스트교, 미국 제국, 동일율의 논리체계, 이 3자의 야합의 이데올로기는 거의 종말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이제 이 3자의 야합으로 최고 존재로서 일자가 돈(자본)이라 한다.

세뇌되고 전승된 권세, 권력, 지식이 2천5백 년 전부터 아니 4천 년 전부터이라지만, 인류는 수백만 년 전부터 노력하며 내공을 키워왔다. 자연의 이법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의 탐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규소의 시대에 와서야 다자의 공존과 같은 다양체의 문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일제에 부딪혀 우금치를 넘지 못했던 시절의 아픔을 날려버리며, 우리 젊은 여성들이 농민과 남태령을 넘었으며, 12.3에는 여남, 소노, 천귀없이 함께 여의도에서 불의에 항거하였고, 추운 밤 눈 내리는 도로위에서 눈사람이 될 정도에서도 새로운 공화국의 밝힐 빛을 발하였다. 내란 수괴 윤석열은 어제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제7공화국이 밝아 오리라. 한 가지만 바란다면 다음 선거부터 다양체의 바탕이 될 결선투표제를 실행하기 바란다. 배중률에 빠져 내편 찍지 않았기에 통일성(l’unite, l’un)이 안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다자의 공존에서, 결선투표로 가면서 당연히 연대와 계약이 이루어 질 것이다. 루소의 자연권 사상에서 자기의 권리를 양도하지 않은 합의 계약이 민주제의 기본이라 했다.

세상은 45억 년 전부터도 변역(變易)하고 있다. 벩송이 “저항에 대한 저항”이 열린 도덕사회, 역동적 종교를 만든다고 했다. 극우의 기획과 저항(반동)에 대하여, 이 시대 인민의 저항, 즉 리베르떼르(libertaire)와 휴마니떼르(humanitaire)의 저항의 역사는 지속되었고 이어가고 있다.

(4:25, 58LLI) (5:28, 58LLJ) (5:41, 58LLJJ)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9회|4. 선택과 탐색 (1)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아홉 번째 글

  1. 선택과 탐색 (1)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고 경험한 지난 한 달은 여러모로 나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유신이 무너진 후 고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결심은 그냥 물 건너 가버렸다. 5.17 이후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자마자 법대 고시원도 폐쇄되었다. 덕분에 법학이나 고시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벗어 버렸다. 고시를 하겠다고 하고서 기숙사에 입소했는데, 사회 분위기가 바뀐 탓에 내 마음도 완전히 바뀐 것이다. 2학기에 등록할 때는 법대 과목이 아니라 문과대의 사회학과나 영문과 그리고 사학과에서 과목을 선택했다. 보다 현실적이고 자유로운 학문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이런 과목들이 훨씬 흥미로웠고, 시험을 봐도 성적이 훨씬 잘 나왔다. 사실 나의 경제 상황을 고려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취직해야 하는 데 나는 그런 것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나키스트의 방랑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 마음을 주었던 여성과의 만남도 예전 같지 않았다. 대신 유치장에서 사귄 몇몇 사람들과는 따로 세미나를 계속했다. 이 세미나는 단순히 공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종의 데모를 시도하기 위한 학습으로 시작했다. 정치 상황은 여전히 살벌했다.

세미나를 하던 멤버 중의 한 명은 S 대 사회학과 4학년이었고, 다른 한 명은 같은 대학의 체육학과 4학년이었다. 졸업 학기를 앞두고 데모하겠다고 하는 것은 보통 결심이 서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는 이미 경험도 있고 해서 다시 시위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여성 한 명도 참석했는데, 그녀는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참석하기 보다는 가끔씩 참석해서 함께 술을 마시곤 했다. 세미나는 각자 집을 돌아가면서 했지만 주로 우리 집과 사회학과 신모 군의 집에서 했다. 그 당시 우리는 주로 정세 분석과 향후 정국의 방향에 관한 이론서들을 많이 다루었다. 『전환 시대의 논리』를 쓴 리영희 교수의 책들과 한국 경제를 다룬 최호진 교수의 책, 한국 근대사에 관한 김용섭 교수의 책을 주로 읽었다. 사회 이론에 관해서는 미국의 진보적인 사회학자인 C. Wright Mills의 『사회학적 상상력』과 『파워 엘리트』를 집중적으로 읽었다. 당시 우리들의 지적 관심은 상당해서 그 당시 막 소개가 되기 시작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Critical Theory)과 헤겔을 전반적으로 소개한 H.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Reason and Revolution) 원서를 열심히 탐독했다. 사회 이론서들은 비교적 이해하기 쉬웠지만 처음 접한 헤겔 철학을 소개한 『이성과 혁명』은 개론서 임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특히 법(Recht)을 Right로 번역해 놓았는데, 왜 이런 개념이 법철학을 다루면서 반복적으로 나오는지 알 수 없어서 애를 먹었다. 아마도 이때 부딪힌 어려움이 나중에 헤겔 철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책들이 법대생인 나에게는 생소한 편이었지만 사회학도인 신모 군이 과 내에서 도는 독서 목록과 동향들을 많이 소개해주었다. 체육학과 생인 복기호 군은 추상적인 이론보다는 현실 운동에 보다 관심을 많이 보였다. 그는 실제로 대림동 야학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고 시위 현장은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는 편이었다. 우리들은 서로 간에 관심사와 편차는 있어도 거의 1년 이상을 꾸준히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향후 진로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세미나가 끝나면 술을 많이 마신 편이었다. 그 당시는 정말로 술과 담배를 억수로 많이 마시면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회와 대학가의 현실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형, 오늘 인문대 쪽에 삐라가 뿌려졌어요. 시위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복기호군의 말이다. S대생들하고 세미나를 하는 덕분에 S대 동향을 많이 듣는 편이다.

“Y대도 마찬가지야. 요즘은 검색도 더 심해진 것 같아.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요즘 학생들의 분위기는 과거보다 훨씬 격렬해진 것 같아. 아마도 광주의 경험이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아.”

“그렇지요. 광주사태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겁니다. 이제는 광주 이전과 광주 이후로 운동사가 나뉘어 질 거에요.” 신모군이 예리하게 당시 정세를 분석한다.

“독재자들은 늘 국민과 국가를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 유지일 뿐이지요. 그들을 권좌에서 쫒아내지 않는 한 국민도 없고 국가도 없을 겁니다.” 라고 말을 하면서 복모군이 오른손을 살짝 들고 ‘투쟁, 투쟁!’을 외치는 흉내를 낸다.

“일단 혁명의 견인차는 젊은 엘리트 혁명가들이 되어야 할 겁니다. 과거의 모든 혁명 운동사를 통해서 볼 때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대학가의 운동을 좀 더 조직화하고 체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우리가 이런 세미나를 하는 이유도 그 일을 선도적으로 하기 위해서이지요.” 신모 군이 세미나의 목적이 시위 주도에 있음을 다시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렇게 소수 엘리트 중심으로 나가다 보면 일반 대중으로부터 고립될 위험도 크다고 뵵니다. 엘리트주의는 철저히 경계할 필요가 있어요. 대중 속에서 대중과 함께 하지 않는 운동은 결코 결정적 시기를 앞 당길 수 없어요.” 늘 체험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복모 군의 말이다.

 

엘리트와 대중의 관계는 우리들에게 늘 고민할 거리를 안겨주었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몸담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 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67)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67)

 

C. 철인 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3.선분의 비유(509c-513c) – (I)

 

[509c-513c]

* 소크라테스가 좋음의 이데아가 갖는 특별한 지위에 대해 설명하자 글라우콘은 신령스러운 넘어섬이라고 놀라워 한 후 그것이 갖고 있는 태양과의 유사성과 관련하여 조금도 빠짐없이 설명해달라고 요구한다.(509c)

* 이에 소크라테스는 남겨 놓은 이야기가 많고 또 많은 것을 빠뜨리게 될 테지만 그래도 최대한 이야기하겠다고 말한 후 다시 한 번 가지적인νοητός 영역τόπος과 가시적인ὁρατός 영역을 구분한 후 그 두 영역에 있는 두 가지 부류γένος들을 크기가 다른 ‘두 부분으로 나뉜’δίχα τετμημένην 선분γραμμή에 비유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하기 시작한다.(509d)

1) 크기가 다른ἄνισα 두 부분τμῆμα으로 나뉜 선분을 다시 동일한 비율로 ‘가시적인 종류의 부분’τό τοῦ ὁρωμένου γένος과  ‘가지적인 종류의 부분’τὸ τοῦ νοουμένου γένος으로 나눈다.

2) 이것들을 서로 간의 상대적인 명확성σαφήνεια과 불명확성ἀσαφείᾳ의 관점에서 보면 가시적인 종류의 한 부분은 모상εἰκών들이다.(509e) 이 모상들은 그림자σκιά들, ‘물에 비친 영상들’τὰ ἐν τοῖς ὕδασι φαντάσματα, 밝고 조밀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진 것들에 비친 영상들 그런 모든 것들이다. 가시적인 종류의 다른 한 부분은 이 모상들이 닮아있는 원본들, 즉 우리 주위의 동물들 τά περὶ ἡμᾶς ζῷς과 모든 식물들 τὸ φυτευτὸν, 그리고 인공물τὸ σκευαστὸν의 종류 전체이다.(510a)

3) ‘진리와 진리 아님’ἀληθείᾳ τε καὶ μή의 관점에서 보면 위와 같은 가시적인 부분은 믿음(의견)의 대상τὸ δοξαστὸν이 앎의 대상τὸ γνωστόν과 맺고 있는 관계와 마찬가지로, 닮은 것τὸ ὁμοιωθὲν이 그것이 닮아있는 원본τὸ ᾧ ὡμοιώθη과 맺게 되도록 나뉘었다.(510a)

4) 그리고 가지적인 것의 부분의 경우, 한쪽은 앞에서 모방되었던μιμηθεῖσιν 것들을 모상εἰκών으로 사용하면서 영혼이 가정ὑπόθεσις으로부터 출발해서 첫 원리ἀρχή가 아니라 결론τελευτή을 향해 진행하며 탐구ζητεῖν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다른 쪽은 가정으로부터 출발해서 ‘가정이 놓이지 않은 첫 원리’(무가정의 원리)를 향해 나아가며 저쪽에서 사용한 모상들 없이 형상εἶδος들 자체αὐτός만을 사용해서 그것들을 통해 탐구μέθοδος를 해나가는 부분이다.(510b)

* 소크라테스가 가지적인 것의 부분들을 ‘가정’이란 말을 끌어들여 설명하자 글라우콘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1) 기하학γεωμετρία이나 계산술λογισμός이나 그러한 것들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홀수τό περιττὸν와 짝수τὸ ἄρτιον, 도형들τὰ σχήματα과 세 종류εἶδος의 각γωνία 그리고 그것들과 유사한 다른 어떤 것들을 가정으로 놓고서는 마치 이런 것들을 아는εἰδότες 사람들인 양, 그에 대한 어떤 설명λόγος도 제시할 필요가 없는 것, 모두에게 분명한 것으로 여긴다.(510c)

2) 그리고 이것들로부터 시작해서 나머지 것들을 검토해가면서 일관성이 유지되는 방식으로ὁμολογουμένως 그들이 애초에 고찰하고자 했던 것에까지 도달한다.(510d)

3) 기하학자, 계산술 그러한 것들을 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ὁρωμένος 도형εἶδος들을 사용하며 이것들에 대해 논의를 하지만, 그들이 사고하는διανοούμενοι 대상은 이것들이 아니라 ‘이것들이 닮아있는 그 원본들’οἷς ταῦτα ἔοικε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는 사각형τετράγωνος이나 대각선διάμετρος이 아니라 ‘사각형 자체’나 ‘대각선 자체’αὐτῆς를 ‘염두에 두고’ποιοῦνται 논의를 하는 것이다.(510d-e)

4)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그린 바로 그것들을(그것들의 경우 그것들의 그림자σκιά나 물ὕδωρ에 비친 모상εἰκών들도 있다) 이번에는 모상으로 사용하는데(510e) 그렇게 하는 까닭은 사고διανοίᾳ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ἰδεῖν 저것들 자체αὐτὰ ἐκεῖνα(사각형 자체나 대각선 자체)를 보기 위해서이다.(510e)

5) 이것들은 가지적인 부류에 속하는 것이지만 이것의 탐구ζήτησις에서 영혼은 가정을 사용하도록 강제되고ἀναγκαζομένην 가정들보다 더 위로 넘어갈ἀνωτέρω ἐκβαίνειν 능력이 없어서 ‘첫 원리’ἀρχή로 나아가지는 못한다.(511a) 그리고 그 아래의 것들에 의해 모방되며 그 아래의 것들에 비해서는 분명한ἐναργής 것이라고 판단되고δεδοξασμένοις 존중받는τετιμημένοις 것들, 바로 그것들을 그들은 모상εἰκών으로 사용한다. 이런 것들이 기하학γεωμετρία이나 그와 유사한ἀδελφή 전문기술들τέχναι에서 일어나는 일이다.(511a)

* 소크라테스는 가지적인 부류에서 기하학이나 계산술과 같이 가정을 사용하는 경우를 위와 같이 언급한 후에 가지적인 것의 다른 한쪽 부분으로 가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경우를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1) 이러한 경우란 이성 자체αὐτὸς ὁ λόγος가 ‘변증술적 대화(문답)의 능력을 통해’τῇ τοῦ διαλέγεσθαι δυνάμει 파악하는 경우로서 여기에서 이성은 가정들을 ‘첫 원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가정들로 삼아 그 가정들을 가정이 놓이지 않은ἀνυποθέτου(무가정의) 것, 즉 ‘모든 것의 첫 원리’τοῦ παντὸς ἀρχὴ에 이를 때까지 거기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ὁρμή이자 디딤 발판ἐπίβασις 같은 것으로 삼는다.(511b) 그리고 그렇게 첫 원리를 파악하고 나면 이성은 다시 거꾸로 첫 원리에 근거를 둔 것들에 의존하면서 결론까지 그런 식으로 내려간다.καταβαίνῃ.(511b)

2) 이러한 파악 방식은 감각될 수 있는 것αἰσθητῷ은 어떤 것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형상들 자체를 사용해서 형상들을 통해 형상들로 나아가 형상들로 끝을 맺는 방식이다.εἴδεσιν αὐτοῖς δι᾽ αὐτῶν εἰς αὐτά, καὶ τελευτᾷ εἰς εἴδη”(511b)

* 소크라테스의 이와 같은 설명에 글라우콘은 엄청난συχνός 일ἔργον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다고 말한 후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자기 나름으로 정리한다.

1) 전문기술이 고찰하는 부분보다 ‘변증술적 대화를 할 줄 아는 앎’τὸ ὑπὸ τῆς τοῦ διαλέγεσθαι ἐπιστήμης이 고찰하는θεωρούμενον ‘있는 것’το ὄντος과 ‘가지적인 것’το νοητος의 부분이 ‘더 명확한 것’σαφέστερον이라고 규정διορίζειν할 수 있다.(511c)

2) 전문기술들에서는 가정들이 첫 원리들이며, 자신들이 구경하는 것들을 감각이 아니라 사고를 통해서 구경하도록θεᾶσθαι 강제되지만, 첫 원리를 향해 올라가지ἀνελθόντες 않고 가정들로부터 그것들을 살펴보기σκοπεῖν 때문에 이들이 그것들에 관해 지성νοῦς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511c-d)

3) 기하학자나 그런 사람들의 상태는 지성이 아니라 사고διάνοια라고 부르는 것 같다. 사고dianoia는 믿음δόξα과 지성의 중간μεταξύ에 있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511d)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이 자신의 설명을 아주 충분히 잘 받아들였다고 평가한 후, 위에서 설명한 네 부분τμῆμα에 상응해서 아래와 같이 네 가지 영혼의 상태παθήματα가 생긴다고 말한다. 요컨대 맨 윗부분에 ‘지성적 앎’νόησις이 두 번째 부분에 사고διάνοια가, 세 번째 부분에는 확신πίστις이, 마지막 부분에 짐작εἰκασία이 할당된다. 이것들이 대상으로 하는 것들은 그것들이 진리 ἀληθεία에 참여하는μετέχει 만큼 명확성σαφήνεια에 참여하며 그것들은 그 비율에 따라ἀνὰ λόγον 배열을 이룬다.(511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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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9d-e ‘크기가 다른 두 부분으로 … 동일한 비율로 나누게: ‘크기가 다른(anisa)’으로 읽어야 하는지 ‘크기가 같은(an isa)’으로 읽어야 하는지 논란이 있지만 대부분 경우 ‘크기가 다른’으로 읽는다. 이에 따라 구분된 선분을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L1          L2          L3               L4

l——–l—————l—————l————————-l

 

L1과 L2 = 가시적인 종류의 것

L1 = 모상들(그림자, 영상) L2 = 실물들(식물, 동물, 인공물)

L3와 L4 = 가지적인 종류의 것

L3 = 가정들(수, 도형, 각)을 놓고 가는 것, L4 = 무가정적인 것, 첫 원리, 형상들-

명확성과 불명확성에 따른 각 선의 길이 비율

L1 : L2 = L3 : L4 = L1+L2 : L3+L4

* 각 선의 비율은 명확성에 있어 가시적인 것에 대한 가지적인 것의 우위와

각 영역 내에서 L1에 대한 L2의 우위, L3에 대한 L4의 우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L1보다는 L2가, L2보다는 L3가, L3보다는 L4가 명확성에서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실제 크기를 보면 L2와 L3가 같다.

* 각선들의 길이가 명확성에 비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L2와 L3가 같다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선분의 비유에서 그 같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과 표를 통해 드러내려는 플라톤의 기본 의도를 고려하면 도표 상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같은 길이로 나타날지를 플라톤 자신 미처 몰랐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다음 강해에서 살피겠지만 명백성과 관련한 인식론적 관점에서는 차이가 분명하지만 존재론적 관점에서 보면 L2와 L3가 근본적으로 믿음의 지위에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도 L1도 존재론적으로는 같은 믿음의 지위에 있음에도 길이는 그 보다 짧다는 것과 부딪친다.

* 플라톤이 위에서 말하고 있는 선분의 비유의 내용을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믿음’은 그리스어 doxa의 역어이다. 그런데 이번 강해에서는 ‘믿음’이라는 역어가 선분의 비유에 나오는 ‘확신pistis’이란 역어와 혼동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믿음’에 ‘의견’이란 말을 병기했다. 플라톤에게 pistis는 doxa에 포함된 것이되 신뢰성에서 상상보다는 높은 사고보다는 낮은 수준의 생각과 견해를 말한다.

* L3의 대상이 홀수, 짝수, 도형들, 각으로 예시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L3의 대상을 ‘수학적인 것들’ta mathēmatika로 부르고 있다.(<형이상학> A.987b15) 플라톤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기하학이나 이와 유사한 학술들’(511b) 즉 수학, 평면 기하학, 입체기하학, 천문학, 화성학이 다루는 대상들로 표현하고 있다.

* ‘사고’dianoia는 사전적 의미에서 뭔가를 목적으로 하는 지적인 궁리이되 논리적 추론이나 설명을 기반으로 하는 개념적 사고를 말한다. 선분의 비유에서 그 말은 기하학 등 전문 학술들의 인식 단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 511b ‘변증술적 대화(문답)의 능력’dialegesthai dynamis : 이 표현은 나중 변증술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곳(531c-535a)에서도 언급되고(533a) <필레보스> 57e에서도 나오는 표현이다. 이것은 ‘있는 것들'(ta onta) 가운데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을 구경(thea)하도록 이끄는 영혼의 힘’(532c)으로 그 상승의 극치에서 마침내 형상 즉  ‘있는 것'(to on)을 본다(idein).  dialegesthai의 일차적 의미는 ‘대화(문답)'(454a 등)이지만 이곳에서 ‘변증술적 문답’으로 옮긴 것은 그 문답과 문답의 극치에서 변증술의 완성으로서 지성적 앎(noēin, epistēmē) 내지 관조(theōria)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511b ‘내려간다.’katabainē’ : 이성이 첫 원리를 파악한 후 다시 거꾸로 사고 단계로 내려갈 때 사용되고 있는 동사 ‘내려간다.’katabainō는 동굴의 비유에서 이데아를 본 사람이 다시 동굴로 내려갈 때도(516e) 쓰이고 <국가> 첫 구절 ‘어제 나는 아리스톤의 아들 글라우콘과 함께 페이라이에우스로 내려갔다’(327a)에도 나온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본문 첫 강해 때도 언급했듯이 <국가> 첫 구절에 모종의 상징성을 부여하여 그 말과 연계지어 그 말들이 ‘현상의 구제’를 함축하는 말로 다소 과도하게 의미 부여하기도 한다.

* 511c에서는 ‘본다’를 의미하는 동사가 두 군데 나온다. 하나는 ‘변증술적 문답을 할 줄 아는 앎이 고찰하는 있는’이란 구절에서 ‘고찰하는’으로 번역된 ‘theōroumenon’(원형 theōreō)이고, 또 하나는 ‘전문기술들에서는 사고를 통해서 구경하도록 강제되지만’이란 구절에서 ‘구경하도록’으로 번역된 ‘theasthai’(원형 theaomai)이다. 둘 다 기본적으로 ‘본다’(look at, see)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전자는 의미상 speculate, consider 등 지적 사유와 고찰의 뜻을 포함하고 있고, 후자는 오늘날 극장theatre의 어원 theatron에서 thea가 의미하듯 ‘관망’view as spectators의 의미가 크다. 플라톤은 여기서 앎과 사고 단계의 차이에 준해 그 표현들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476a에서 ‘앎을 좋아하는 철학자들’과 대비하여 ‘전문 기술을 좋아하는 사람들’philotechnos을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philotheamōn로 일컫고 있는데 이 때 theamōn도 theaomai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theaomai를 ‘구경하다’로 번역한 것도 그 때문이다. 플라톤은 일상어의 이러한 미묘한 차이까지 의식하면서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사소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플라톤철학 연구자라면 텍스트상의 이러한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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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분의 비유와 동굴의 비유는 ‘좋음의 이데아와 태양과의 유사성만은 빠짐없이 다시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글라우콘의 요구(509c)에 따라 제시된 비유들이다. 즉 우리가 지금 다루게 될 선분의 비유와 이어지는 동굴의 비유는 모두 태양의 비유와의 유사성에 착안하여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의 일환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선분의 비유는 태양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전체 구도상 가시적인 영역과 가지적인 영역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시작되고 마지막 동굴의 비유 또한 동굴과 바깥세계, 어둠 속 횃불과 대낮의 대비 형식으로 내용상 비슷한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그 두 영역 모두 다시 각기 마치 명백성의 단계를 보여주듯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어 학자들은 그 모든 비유가 아래와 같이 대체로 비슷하게 전체적으로 4단계로 구분되어 있다고 여긴다.

* 좋음의 이데아는 <국가>는 물론 플라톤 철학 전체를 이해하는데 중대한 관건이 되는 핵심 주제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국가>에서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는 직접적인 전거는 위의 세 가지 비유들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그 세 비유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세 비유 간의 상호 관계 특히 각 비유가 포함하고 있는 단계별 영역 간 유사성과 상응 관계를 구체적으로 비교 분석하고 그것을 통해 플라톤이 말하고자 하는 근본 의도가 무엇인지 나아가 그것들이 전체 플라톤 철학과 관련하여 어떤 철학적 함축을 지닌 것인지를 오랫동안 탐문해왔다.(우리나라에서도 주요 해석가들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이러한 상응 관계를 자세하게 비교 분석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강성훈, 「플라톤의 『국가』에서 선분의 비유와 동굴 비유」, 『철학 사상』 V.27,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8) 그러나 그 세 비유의 영역별 단계별 유사성과 상응 관계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 세 비유가 포함하고 있는 영역들이 과연 철학적으로 음미할 만한 정도의 유비적인 상응 관계를 지니는지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유사성에 기초한 그 상응 관계에 대한 연구들이 오히려 좋음의 이데아와 관련하여 플라톤이 각 비유를 통해 다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고유 의도를 간과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되어 왔다. 어쨌거나 플라톤이 세 가지 비유를 든 것은 한 가지 비유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 세 비유의 영역별 단계별 유사성과 상응 관계에 대해서는 나중 동굴의 비유까지 살핀 후 종합적으로 살펴보겠지만 그것 못지않게 세 비유를 통해 플라톤이 말하고자 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 비유 간 차별성과 고유성을 살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선 앞서 살핀 태양의 비유와 선분의 비유만 비교해 보아도 눈에 띄는 구조적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 두 비유는 비록 구조상 동일하게 가시적 영역과 가지적 영역이라는 공통의 구분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게 두 영역을 구분하는 이유와 배경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태양이 비유에서 가시적인 영역은 가지적인 영역의 인식론적 하위 단계가 아니라 가시적인 영역의 태양으로부터 가지적인 영역의 좋음의 이데아를 유비적으로 추론하기 위해 별도로 상정된 상호 등치적인 영역이다. 다시 말해 전체로는 네 부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각 영역별로 분리된 상태에서 동일하게 두 부분 즉 형상의 세계와 믿음의 세계로 구분된다. 그리고 논의 내용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태양이 빛을 비추는 대낮의 실물과 눈 그리고 그에 상응하여 좋음의 이데아가 진리와 실재를 비추는 이데아와 영혼에 집중되어 있다. 즉 형상 쪽에 집중되어 있다. 이에 비해 선분의 비유에서 가시적인 영역과 가지적인 영역은 유비관계를 갖는 등치적인 영역이 아니라 인식론적인 위계가 있는 상하 관계를 갖는 비등치적 영역이다. 게다가 두 영역은 위계상 상하 단계로 갖고 있으면서 서로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지성적 앎의 단계뿐만 아니라 그 하위 단계까지 고르게 다루어지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사고’dianoia 단계가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태양의 비유는 두 영역 간의 유비적 비유를 통해 기본적으로 좋음의 이데아의 근본 특성과 위상을 드러내려는데 기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선분의 비유는 그 좋음의 이데아가 속해 있는 지성적 앎의 단계뿐만 아니라 그 하위의 인식론적 단계들까지 자세하게 다루는 방식으로 오히려 하위의 인식 단계들 특히 추론적 사고가 인식의 방법에서 어떻게 형상적 앎과 관계를 지니면서 그 형상적 앎에로 상승하는지를 보여주는데 기본 목적이 있어 보인다.

* 선분의 비유에서 이러한 상승의 측면을 들여다보자면, 가시적 영역의 영상과 실물의 관계는 서로 ‘모상과 원본의 관계’를 가지면서 다시 또 그 실물들은 윗 단계인 가지적인 영역의 ‘사고’의 모상이 된다. 즉 ‘사고’는 영상의 원본인 실물들을 다시 모상들로 이용하여 ‘삼각형 자체’, ‘대각선 자체’를 인식한 후 다시 또 그것을 발판으로 형상에로 다가간다. 즉 각각 단계는 상호 위계 관계를 가지면서 종국적으로 이데아 즉 형상들이 있는 지성적 앎의 단계로 이어진다. 요컨대 가시적 영역과 가지적 영역은 진리를 향한 연속적인 상승의 과정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니까 삼각형과 대각선을 기준으로 보면 ‘물에 비친 그림자’ 수준(영상eikasia 단계)에서 ‘실제 그려진 삼각형과 대각선’으로 상승하고(확신pistis 단계) 이것들은 사고에 의해 모상들로 이용되면서 ‘삼각형 자체와 대각선 자체’로 상승한다.(사고dianoia) 그리고 마지막으로 변증술적 문답의 능력을 통해 형상적 앎(지성적 앎noēsis)에 이른다. 선분의 비유가 포함하고 있는 이러한 위계적 단계들과 그 단계들이 갖는 인식 방법상의 상승은 나중 동굴의 비유에서 바깥세계를 향해 올라가는 도정anodos의 단계들과 상응되면서 그 철학적 의미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제기되었다.(이와 관련한 논의는 나중 동굴의 비유에서 다룬다)

* 선분의 비유에서 ‘상상’이 ‘확신’의 ‘모상’이 되고 다시 ‘확신’이 ‘사고’의 ‘모상’이 되고 그 ‘사고’를 토대로 마지막에 ‘지성적 앎’에 이르는 이러한 상승의 과정은 결국 최상의 인식 상태로서 ‘지성적 앎’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긴 하지만 뒤집어 보면 최하의 인식 상태로서 ‘상상’eikasia조차도 인식의 출발점에서 그 상승의 디딤돌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상상은 그 자체로 실물의 그림자로 감정에 치우치거나 정확성에서 낮은 상태의 인식을 의미하지만 무조건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인간에게 늘 상존하는 상태이고 특히 어린이 단계에서는 영혼의 구성에 가히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도 하다. 플라톤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일찌감치 시가(mousikē) 교육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플라톤은 제3권에서 이미 어린 아이들의 감정적인 인식 상태를 부정하긴 커녕 오히려 그 상태에 합당한 방식에 따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경우 나중에 이성을 받아들이는 데 더 좋은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401b-403c) 선분의 비유에서 상상의 단계는 다만 정확성의 기준에서 낮은 단계에 있다는 것이지 삶의 모든 국면에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강해에서 다시 다룬다.

* ‘도형’(510b)의 그리스 원어는 ‘형상’의 뜻도 가지고 있는 eidos이다. 그런데 형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eidos는 일상적 용례 그대로 기하학자들이 가정으로 놓고 들어가는 ‘눈에 보이는 그려진 도형들’(510d)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의 eidos는 형상과 구별하여 도형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510d-e를 보면 ‘삼각형 자체’와 ‘대각선 자체’라는 언급이 나오는데 그것들은 도형이되 최소한 눈에 보이지 않는 도형이라는 점에서 마지막 지성적 앎의 단계에서 성립하는 ‘자체적 존재’로서 형상으로서 삼각형 자체, 대각선 자체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실 기하학자들이 기하학적인 지식을 구성하거나 설명할 때 눈에 보이는 도형들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실제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일단 눈에 보이는 도형은 아니다. 이를테면 수학 교사나 기하학자들이 칠판에 도형들을 그리며 설명을 할 때 그들 모두는 칠판에 그려진 그림들을 바라보지만 정작 머릿속으로는 그 그림들 배후에 있는 삼각형 자체, 대각선 자체를 떠올리며 그 설명을 이해한다. 요컨대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삼각형 자체, 대각선 자체는 기하학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그와 같은 도형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기하학자들이 도형들을 그릴 때 염두에 두고 있는 도형들은 형상으로서 삼각형 자체, 대각선 자체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추론적 사고 단계에서 성립하는 삼각형 자체와 대각선 자체는 비록 눈에 보이는 도형은 아니지만 일단 머릿속 사유 공간 이른바 유클리드 기하학적 공간에서 연장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장성은 이차원·삼차원 공간이 갖는 본질적 특성이다. 그러나 형상들이 있는 세계는 그러한 연장성조차 탈각해 있다. 즉 형상계는 관계맺음의 조건으로서 연장성이 성립하지 않는, 말 그대로 형상이 형상 자체로서 존재하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추상적 사고 단계에서 언급되는 삼각형 자체, 대각선 자체는 형상적 자체 존재로서 삼각형 또는 대각선일 수는 없는 것이다.

*요컨대 기하학자들은 사고 단계에서 어쨌거나 유클리드 공간 속 연장성을 갖는 도형들을 이용하여 기하학적인 앎에 이르고 그것을 토대로 결론을 내린다. 이를테면 기하학자들이 피타고라스의 정리(직각 삼각형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변 각각의 제곱의 합과 같다)를 증명할 때 도형들을 이용하여 마침내 그 정리가 공리임을 증명해내는 것과 같다. ‘두 원의 접점은 하나이다’,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는 두 점을 잇는 직선이다’ ,‘평행하는 두 선은 만나지 않는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 등 이른바 기하학적 공리나 정리들도 모두 기하학자들에 의해 선과 도형과 각들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증명되거나 자명한 것들로 받아들여진 것이고 또 그것들로부터 다른 수많은 기하학적인 결론들이 도출될 수 있다.   ‘결론teleutē을 향해 진행한다’(510b)는 말도 그러한 사고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때 기하학자들이나 계산술 또는 그러한 것들을 하는 사람들 모두,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수와 도형들 각(角) 같은 것들을 처음부터 존재하는 당연한 조건들로 받아들이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그 수와 도형들 각이 왜 그것으로 그렇게 있는지 그 각각의 내적 본성은 무엇인지는 묻지 않고 당연히 그것으로 그렇게 있다고 받아들이고 그들의 학술을 진행한다. 플라톤이 이곳에서 말하고 있는 ‘가정’hypothesis이란 이처럼 그러한 학자들이 학술을 수행하면서 당연히 그렇게 그것으로 있다고 받아들인 것 즉 ‘당연한 것으로 놓고 들어가는 것들’을 말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가정들은 바로 그처럼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오늘날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가설’과 차이가 있다. 이른바 과학에서 말하는 가설은 ‘둘 이상의 변인들 간의 관계에 관한 일종의 추측 즉, 둘 이상의 변인 또는 현상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검증되지 않은 명제’로서 추후 검증할 수 있도록 기술된 문제에 대한 잠정적인 응답’이다. 그러나 이곳 사고 단계에서 언급되는 가정들은 잠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당연히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들이다. 다만 플라톤이 말하는 가정이나 오늘날 과학에서 말하는 가정 모두 스스로 진리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인식상 모종의 결핍을 공통으로 안고 있다. 사고 단계의 가정들은 최소한의 학적 지위를 보전하기위해 자체적인 존재로서 형상적 앎의 뒷받침을 필요로 하고, 자연과학의 가설들 역시 사실들과 정합성을 보전할  때까지만 진리성을 보전할 뿐 본질적으로 개연성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근대 자연과학은 개연성 너머 자체적 진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사고 단계의 전문 학술들이 근대 자연과학에 해당한다면 플라톤은 이미 자연과학적 진리가 왜 확률적이자 개연적일 수 밖에 없는지를 궤뚫어 보고 있는 셈이다. 

* ‘사고’ 단계를 구성하는 학술들 즉 ‘기하학이나 계산술이나 그러한 것들’은 이와 같이 가정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들을 사용하여 추론을 통해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그 결론들은 이성에 의한 변증술적인 대화(문답) 능력을 통해 첫 원리로 향하는 발판이 되고 종국적으로 일정 단계에 이르면 지성을 통해 형상들에 대한 앎과 그 총체로서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앎에 이른다.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기하학이나 계산술이나 그러한 것들’을 ‘기하학이나 그와 유사한 전문기술들technai’로 바꾸어 부르는데(511b) 플라톤은 이러한 학술들을 나중 변증술을 설명하는 단계에 가서 변증술의 획득을 위한 예비교과목(521c-531c)에 속하는 학술들로 구체화한다. 수학, 평면 기하학, 입체 기하학, 천문학 및 화성학 등이 그것이다. 이곳 사고 단계에서 가정들 즉 당연한 조건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수와 도형들의 본성과 존재론적 위상, 그에 따른 수학의 학적 위상 등에 대한 논의는 추후 예비교과목과 변증술을 다루면서 보다 자세하게 살피기로 한다.

* 플라톤은 이제 가지적 영역에서 기하학이나 계산술과 같이 가정을 사용하는 경우를 위와 같이 언급한 후에 가지적인 것의 다른 한쪽 부분 즉 가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지성적 앎oēsis에 대해 언급한다.(511b-c) 플라톤은 그것을 ‘이성 자체’auos ho logos가 변증술적 대화의 능력을 통해 파악하는 것으로 언급한다. 즉 이성은 가정들을 ‘첫 원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가정들로 삼아 그 가정들을 ‘무가정적인 것’, 즉 ‘모든 것의 첫 원리’에 이르기까지의 출발점이자 디딤 발판 같은 것으로 삼는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플라톤 자신 이 단계에서 첫 원리에 이르는 역할의 주체를 ‘이성’logos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logos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설명 또는 추론을 의미하는데 플라톤은 마지막 단계의 앎의 상태를 언급하면서 그 이성이란 표현과 지성적 앎noēsis이라는 표현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지성적 앎이 종국적으로 이성이 아니라 지성nous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명 이성과 지성은 다르다. 그럼에도 플라톤이 이곳에서 이성과 지성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은 추론적 사고에서부터 지성적 앎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연속적인데다가 그 과정 대부분을 기본적으로 이성이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532a에서 ‘이성은 좋은 것 자체를 행해 출발하고 그것을 파악하기 전까지 물러서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이성은 가지적 영역 전체에 걸쳐 변증법적 문답의 능력을 통해 가정들을 출발점이자 발판으로 삼아 끊임없이 지성적 앎에로의 상승을 견인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 게다가 이성은 ‘첫 원리를 파악하고 나면 다시 거꾸로 첫 원리에 근거를 둔 것들에 의존하면서 그런 식으로 다시 결론 쪽으로 내려간다.katabainē’(511c) 이 말은 기하학자가 지성을 통해 형상을 포착한 후 올라온 방식 그대로 재정립된 사고 단계로 내려갔을 때 그의 사고 과정에서 이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성은 변증술적 대화(문답) 능력을 통해 첫 원리에로의 오름도 담보하지만, 그 첫 원리를 깨달은 후 다시 내려오는 과정에서 전문 학술들의 가정들의 학적 근거를 부여하여 그것을 통해 내리는 결론들에도 전문 학술로서 최소한의 학문적 지위를 갖게 해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성은 감각적인 것은 일체 이용하지 않고 형상들 자체만을 사용해서 형상들에 기초해서 결론을 내린다.(511b-c) 이 결론은 사고 단계에서 가정들을 가지고 내리는 결론과 근본적으로 다른 결론이다. 가정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사고는 오름 과정의 극치에서 지성nous을 통해 형상들에서 연원하는 존재 및 인식 근거를 제공받아 내림의 과정에서 형상에 의존하되 말로 할 수 있는 학적인 앎의 기초를 비로소 갖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지성적 앎 없이 사고 단계에서 가정들만을 토대로 다다르는 결론은 설사 연역적 정합성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연역이 의존하는 상위 명제의 진리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학적인 보편성과 객관성을 가질 수 없지만, 그 모태가 되는 첫 원리에 대한 앎을 통해 가정들의 존재 및 인식 근거가 확보될 경우, 그것들을 통해 다시 재정립된 사고 내지 기하학을 비롯한 전문 학술들은 말과 논리로 성립하는 이론적 학문으로서 비로소 기초적인 학적 보편성과 객관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성적 앎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나중 그러한 지성적 앎을 획득하는 변증술(531c-535a)을 다루면서 보다 자세하게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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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쯤에서 우리는 플라톤에게 심각하게 되물어 보아야 할 의문이 있다. 그것은 플라톤이 지금 선분의 비유에서 언급하고 있는 위와 같은 인식론적 위계가 조금 앞서 제5권에서 존재론에 기초해서 플라톤이 상당히 공력을 들여 피력하고 있는 앎과 믿음(의견)과 관련한 원칙적인 위계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제5권에서는 앎epistēmē과 믿음(의견)doxa이 원천적으로 구분되면서 앎의 형상성이 배타적으로 강조되고 있고 믿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가지적인 영역에 속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선분에 비유에 와서 플라톤은, 앎의 단계는 제5권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그것과 원천적으로 구분되었던 하위 인식 단계에 모종의 단계 즉 ‘사고’dianoia라는 단계를 두어 그것까지도 가지적 영역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도대체 플라톤은 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히 상당 분량의 존재론적 논의를 토대로 그토록 강조해온 앎과 믿음(의견)의 원천적 차별성을 접어 둔 채 선분의 비유를 통해 앎의 단계에 미치지 못하는 단계까지 설정하여 그것을 가지적 영역의 범위에 포함토록 하는 것일까? 그것은 제5권에서 피력한 그 자신의 앎에 관한 근본 입장에 수정을 가하는 것일까 아님 추가적인 보완일까? 추가적인 보완이라면 그것을 통해 플라톤이 의도하고자 했던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전체 플라톤 철학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다음 강해에서 그에 관한 이러한 물음들에 필자 나름의 답을 제시하면서 선분의 비유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 끝 –

 

다음 주제 : C. 철인 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1. 선분의 비유(509c-513c) – (II)

[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8회|3. 광주항쟁 (5)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여덟 번째 글

3. 광주항쟁(5)

 

  어느 정도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 갈 때 내가 다니던 교회의 장로님이 위로차 방문했다. 장로님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고 사식을 넣어 주었다. K 교회에서 자주 어울리던 상수는 수시로 유치장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그는 이렇게 큰 거사를 하면서 자기한테 안 알린 것에 대해 무척 섭섭해했다. 하지만 의대 본과에 다니던 그를 무조건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니던 교회의 미정이가 위문을 왔다. 그녀는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혼자 깔깔거리기도 했다. 위문 온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녀의 평소 스타일이 그런 면이 많기는 해도 나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에 섭섭한 느낌도 들었다. 나는 그날 시위한 이래 처음으로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차단되었다고 생각했다. 철창 밖의 사람들과 내가 이질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설령 이곳을 나간다 해도 다시 또 들어올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지 다시 반복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래도 비교적 적응을 잘하는 체질이라 나는 유치장 분위기에 금방 젖어 들었다. 우리는 정치범이라고 해서 일반 잡범들이 대우도 해주고 자리도 좋은 곳으로 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명색이 법대생이라고 해서 형사소송법과 법전을 옆에 펼쳐 놓고 일반 잡범들의 법률 상담도 해줬다. 소매치기로 들어온 어떤 여성은 생리 중에 그런 도벽이 생긴다는 현실을 호소해서 대신 이유서를 써준 적이 있다. 잡범들 가운데서도 소매치기들은 여간해서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일단 하는 말들 대부분은 거짓말인 경우들이 많다. 오히려 솔직하고 단순한 잡범은 주먹을 쓰는 건달들이다. 이런 건달도 노는 구역이 어디냐에 따라서 행태가 다 틀린다. 중부서 관할의 남대문에서 노는 건달들은 비교적 순진하고 단순한 반면, 타워 호텔을 무대로 노는 건달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은근히 뻐기는 경우들이 있었다. 당시 명동 신상사파의 중간 보스쯤 되는 건달이 있었는데 그의 입담이 아주 걸쭉했다. 외모로 볼 때는 일반인하고 거의 차이가 없는데 목소리가 우렁우렁하고 말도 유창하게 잘했다. 그는 특히 음담패설을 잘했는데 한밤중에 그가 한 창 음담패설을 할 때는 내근하는 형사들까지 와서 열심히 듣곤 했다. 당시 연청의 핵심 멤버 중의 한 사람이 있었는데 외모로 볼 때는 호랑이처럼 생겼지만 마음 씀씀이는 여우 같은 면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법률 상담할 때 그가 뒤에서 자문해주곤 했다. 나중에 유치장을 나가면 그의 사업장으로 한번 찾아오라고 해서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은근히 외면하는 것 같아서 발길을 끊었다. 그는 나중에 정치적으로 크게 성공하기도 했지만 그때의 경험 때문에 별로 신뢰감이 가지 않았다.

  유치장 안에서 비교적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은 비슷한 또래의 학생 운동권 사람들이다. D 대의 운동권 인사가 여럿 들어왔는데 그들과 향후 정국 동향이나 앞으로의 진로 등과 관련해 토론을 많이 했다. 그중의 한 사람인 우성과는 나중에 바깥으로 나가서도 만남이 이어져서 세미나도 함께 하곤 했다. 기억나는 한 분은 민중 불교를 하던 승려였다. 그는 평소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떠들고 토론해도 일체 관여하지 않고 면벽 참선만 했다. 결혼을 앞둔 상태라 신부 될 사람이 자주 유치장을 찾았다. 신부는 아주 옛된 여군 장교라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끌었다. 당시 김대중의 연설을 녹음해서 판매하다가 들어온 음반 제조업자인 모 씨는 바깥에 나가서 우리와 자주 어울렸다. 사람 좋은 그는 우리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을 알고 술도 많이 사줬고, 그가 제작한 클래식 테이프 모음집을 우리에게 줘서 한때 그것들을 팔아 용돈으로 쓰기도 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왜 사람들이 교도소를 학교라 생각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물론 우리가 있었던 곳은 교도소가 아니라 경찰서 유치장에 불과했지만 그곳에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사람 경험을 많이 한 편이다. 내가 처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무더운 날씨에 사람들이 많다 보니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국방부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가 시위를 한 것이 6월 27일인데 한 달쯤 돼서 갑자기 친구와 나를 불렀다. 따라서 올라가 보니 서약서를 제출하라고 하면서 석방이라고 했다. 다시는 그런 엉뚱한 짓을 하지 말라고 서약서를 쓰라고 했다. 비상계엄으로 삼엄한 상황에서 데모를 했지만 우리는 무사히 풀려났다. 우리와 관련된 모든 조사 기록들은 다 폐기 처분했다고 한다. 처음 거사했을 때 방사형으로 배후를 캐던 형사들이 아무 것도 나오지 않으니까 허탈해하면서 돈키호테 같은 놈들이라고 말했었다. 이번에는 그동안 조사했던 기록들을 하나 하나 씩 지워가면서 석방한 것이다. 함께 거사한 친구의 아버지가 백방으로 손을 보안사 과장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숨통이 콱콱 막히던 유치장을 나오니까 밖은 햇볕으로 눈이 부시고 더위가 한창인 7월 말이었다.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 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