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의 <11분> [철학자의 서재]

파울로 코엘료의<11분> [철학자의 서재]

 

이한오(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성공회 신부)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장편 소설 <11분>(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펴냄)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제목과 표지 뒷면에 그려있는 매혹적인 그림 때문이었다. 남녀가 성교를 나누는 평균시간을 제목으로 단 것도 도발적이고, 아가씨의 누드도 단순히 에로틱한 것을 넘어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 했지만,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만든 요인은 소설의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장이었다.

“옛날 옛적에 마리아라는 창녀가 있었다.”

코엘료는 “옛날 옛적에”와 “창녀”를 대조했는데, “옛날 옛적에”는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줄 때 사용하는 표현인 반면, “창녀”는 나이든 자들의 용어이기 때문이란다. 작가는 이 명백한 모순을 이야기의 첫 문장으로 끌어들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 발은 동화에 한 발은 나락에 살고 있는 현실을 응시하자며 그 첫 문장의 모순을 설명한다. 동화와 나락이라! 첫 페이지의 다른 문장도 범상치 않았다.

“모든 창녀가 그렇듯 마리아도 동정녀로 태어났다”

 

“옛날 옛적에 마리아라는 창녀가 있었다.”

▲ <11분>(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우리는 성은 넘쳐도 사랑이 없는 시대에 산다. 섹스산업은 밤낮으로 돌아가고 단지 11분의 섹스를 위해 돈을 들여 약까지 먹지만 정작 사랑은 없는 시대다. 거짓과 냉소가 난무하는 관계에 사랑은 없는 법이다. 소설은 브라질 북부의 작은 지방에서 태어난 소녀 마리아의 학창시절과 짧은 직장생활, 그리고 스위스 제네바에서의 1년 동안의 창녀경험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실제 인물의 인터뷰를 기초로 하고 있는데, 소설이 끝나는 마리아의 나이는 23살이다. 겨우 스무 두세 살짜리 아가씨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소설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르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스토리텔링과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마리아의 일기가 두 축을 이룬다. 마리아의 일기에 따르면 그녀의 성장기는 “예”라고 말하고 싶을 때 “아니요”라고 말했던 것의 연속이었다. 10살 때 같은 동네에 살던 소년이 등굣길에 연필을 달라고 했을 때 망설이다 주지 못했던 것을 시작으로, 하고 싶은 것을 늘 주저했기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목받지 못하고, 남자친구와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여자가 너무 쉽게 허락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입술을 열지 못했고, 사흘이 지난 후 마리아는 자신의 여자 친구와 손을 잡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게 된다. 마리아의 성장기는 늘 이런 식이다. 타이밍을 놓치고 후회하는-.

 

소녀 마리아

사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섹스를 매개로 한 마리아의 성장사를 중심으로 보았다. 소녀 마리아, 여행을 떠나는 마리아, 창녀가 된 마리아, 그리고 그 이후의 변화 과정을 말이다. 하지만 두 번째 보았을 때 한두 가지를 더 발견했다. 그것 역시 그림처럼 본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겉표지와 속표지 다음에 나오는 다음의 기도문이다.

“죄 없이 잉태하신 동정녀 마리아여,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소서. 아멘.”

이 기도문은 가톨릭과 성공회에서 자주 드리는 기도문의 일부인데, 성모 마리아를 통해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더 잘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융성하던 시대에 지어진 기도이다. 그래서 ‘마리아께 도움을 청하오니 들어주소서!’라고 하지 않고, ‘마리아여,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대신 기도해 주소서’라고 한 것이다. 그 유명한 비틀즈의 노래 ‘렛 잇 비'(Let It Be)에 나오는 마리아도 이 모티브가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기도문이 소설 <11분>에, 그것도 창녀 마리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의 앞쪽 간지에 들어왔을 때는 의미가 달라진다. 의미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움직이고, 달리 해석되는 것이 아니던가. “죄 없이 잉태하신 동정녀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꿈 많고 순수한 브라질 소녀 마리아는 창녀로 둔갑한다.

 

파울로 코엘료

코엘료는 이런 배치의 효과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저 기도문 이외에 소설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세 가지 글과 하나의 지도를 제공한다. 첫째는 머리말 성격의 글, 둘째는 기원전 3~4세기경 나그함마디에서 출토된 이시스 찬가(“나는 최초의 여자이자 마지막 여자이니”로 시작하여 “나는 추문을 일으키는 여자이고 더없이 멋진 여자이니”로 끝나는), 세 번째는 마리아가 나중에 창녀가 되어 지내는 제네바의 지도가 있고, 끝으로 신약성서의 루가복음의 일부도 옮겨놓았다. 이 자료들을 거기 그 자리에 놓았는지 별도의 설명은 없다.

루가복음 7장 37절에서 47절까지는 예수가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식사를 하러 갔을 때, ‘죄지은 여인’이 향유를 담은 옥합을 들고 와서 예수의 발을 닦아주는 이야기이다. 이 성서 속 이야기를 툭 제시해놓고 이후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소설을 풀어 가는데, (성서를 가까이 하며 사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소설 전체가 성서 본문에 대한 하나의 해석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서도 이야기이고, 소설도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사실(팩트)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전하고자 한다. 그는 이야기와 이야기의 배치를 통해 빚어지는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자 하는데,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이 글의 끝에 가서 한 번 더 말하기로 하겠다.

나는 춘천에 산다. 내가 만난 춘천 학생들은 기회만 있으면 서울로 가려한다. 학생들이 보기에는 춘천이 너무 답답하고 일자리도 없고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브라질 북부 지방도시에서 태어난 마리아도 먼 곳을 여행하고 싶었다. 또 마리아에게 이제까지의 남자들은 늘 고통스런 기억만 남긴 채 사라졌다. 그녀는 사랑은 항상 고통만 줄 뿐이라 믿었고 바다를 건너 더 넓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었다. 연예인이 되어 돈을 많이 벌어 가난한 부모님께 집도 사드리고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남자들에게 보란 듯이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떠난 여행이 브라질의 꿈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였다. 마리아는 여행지에서 스위스인 프로듀서 로제를 만난다. 그가 연예인으로 성공시켜 주겠다는 제안에 마리아는 ‘예스’라고 응답한다. 그녀는 1주일 만에 모든 것을 결정한 뒤 그를 따라 제네바로 떠난다.

 

돈과 모험을 찾아 나선 여행

꿈에 부풀어 스위스로 도착했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냉정한 현실이었다. 1주일에 500달러를 준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비행기 값을 제해야 했다. 그녀가 할 일은 삼바댄서였다. 손님과 대화를 하면 안 되고, 사랑에 빠져 일을 그만 두면 해고당한다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그 사랑을 피하는 것은 몰라도, 막상 타의적으로 ‘사랑금지’를 당하고 나니 그녀의 몸이 거부하기 시작했다. 결국 3주 만에 아랍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보기 좋게 해고당하고,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서게 될 뻔하다가 변호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고, 그 남자는 사라지고, 다른 일을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일생일대 최대의 관문에 서게 된다. 연예인 프로듀서인 줄 알고 만난 아랍인이 호텔로 옮겨 포도주 한잔을 더 하면, 1000프랑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매춘을 제안 받은 것이다.

1000프랑이면 요즘 우리나라 돈으로 130만 원 정도 되는, 브라질에서 석 달을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고민 끝에 그녀는 그 호텔에서 그 포도주를 마시기로 한다. 막상 몸을 팔고 보니, 이상한 해방감을 느꼈다. 아름다움은 바람처럼 사라지는 법이 아닌가? 그녀는 본격적으로 창녀가 되기로 작정하고, 제네바의 텍사스촌 베른가를 찾아간다. 그렇게 마리아는 창녀가 되었고, 직업적 창녀가 된 지 일주일이 지난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영혼을 담고 있는 육체가 아니다. 나는 ‘육체’라 불리는, 눈에 보이는 부분을 가진 영혼이다. 요 며칠 동안 나는 그 영혼을 아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영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 비판하지도,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다. 그냥 날 바라보기만 했다. 오늘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사랑을 생각하지 않은지 아주 오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103쪽)

창녀도 돈을 받고 하는 노동이다. 첫째 밤 혹은 둘째 밤의 고비를 넘기면, 그것 역시 고된 일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부대껴야 하는, 다른 것과 똑같은 직업이었다. 창녀들도 직업적인 경쟁력을 갖추려고 노력했고, 시간표를 준수했고, 스트레스를 받았고, 손님이 너무 많으면 짜증을 부렸고, 일요일에는 쉬었다. 또 “창녀들은 대부분 기독교 신자였다.”(110쪽) 나는 작가가 ‘창녀들도’라고 하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창녀들은’이라는 주격조사를 사용한 것에 주목했다. 그들을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것이다. 작가는 또 마리아가 “자신의 영혼을 잃지 않기 위해 일기를 붙들고 씨름했다”(111쪽)고 적었는데, 그럼으로써 몸을 파는 창녀가 잃지 않으려는 영혼이 독자의 그것과 다를 수 있는지 계속해서 묻는다.

 

11분을 축으로 돌아가는 세상

작가는 머리말에서 “세상엔 우리를 꿈꾸게 하는 책도 있고, 또 우리에게 현실을 일깨워주는 책도 있다”며, 이 책은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임을 암시한 바 있다. 코엘료가 보기에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할 현실 중에 하나는 겨우 11분을 축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 그 11분 때문에(말도 안 되는 소리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매일 밤 아내와 사랑을 나눈다고 가정할 때) 결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의 울음을 참아내고, 늦게 귀가하게 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함께 제네바 호숫가를 거닐고 싶은 수십 수백 명의 다른 여자들을 훔쳐보고, 자신을 위해 값비싼 옷을, 그 여자들을 위해서는 더 비싼 옷을 사고, 채우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창녀를 사고, 피부 관리, 몸매관리, 체조, 포르노 등 거대한 산업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117쪽)

마리아가 제네바에서 만난 남자들은 자신이 세상과 자기 삶의 주인인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보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들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었고, 남자들의 외로움을 접하면서 자신만이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섹스 그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다리를 벌리고, 콘돔을 사용하도록 요구하고, 약간의 신음소리를 내고, 관계 후 즉시 샤워를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잠깐만요”(128쪽)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나가는 마리아를 어떤 화가가 부른 외마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마리아의 인생을 새롭게 바꾸는 전환점이 되는 소리였다.
“당신에게 빛이 있어요.”

“스케치라도 하게 해줘요.”(129쪽)

이 말은 지금까지 자주 듣던 “가슴이 정말 탱탱하군”, “허벅지가 정말 매끈해”, “아파트 한 채를 얻어줄게”하던 그런 말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모델 일을 마치고 나서, 자신의 직업이 창녀인데 그래도 빛이 계속 나는지 따지듯 묻지만, 화가는 중요한 건 창녀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여자와 상관이 있다”고 말한다. 화가는 그녀를 소유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저 하나의 존재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에겐 빛이 있어요.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다른 것들의 이름으로 소중한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존재가 가진 의지의 빛이 눈, 그 빛은 당신의 눈을 통해 드러나요”(142쪽)

화가는 그녀를 육체적 미의 대상이 아니라, 인격적 대상으로 선한 눈빛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에로스에서 필리아로의 상승이랄까. 마리아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자시에게 관심을 보이는 그 남자와 결국 ‘산티아고의 길’을 따라 호수로 흘러드는 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144쪽)

산티아고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야고보 성인이 걸었던 길로, 지금도 순례의 길로 유명하다. 나는 그들이 첫 만남에서 “산티아고의 길”을 걷는 것이 일종의 회개로 보인다. 성서에서 ‘회개’ 혹은 ‘회심’으로 번역되는 희랍어는 ‘메타노이아(metanoia)’인데, 그 뜻은 ‘방향을 돌리다’는 뜻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생길의 방향을 타락과 환락의 ’11분’이 지배하는 세상의 베른가로 향하지 않고, 영원한 사랑의 길을 암시하는 성인의 순례길로 그들은 걷기 시작한 것이다. 산티아고의 길을 걷는 동안, 마리아는 행복하다고 느꼈다. 첫날 그들이 나눈 대화를 보면 그 길의 의미가 어떤 것일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 당신을 만나러 가겠소.
– 그러지 말아요. 난 곧 브라질로 돌아갈 거예요.
– 손님으로 당신을 찾아가겠소.
– 나에겐 굴욕일 거예요.
– 당신에게 구원받기 위해 찾아가겠소.(149쪽)

물론 섹스에 권태를 느낀 화가가 다시 쾌감을 맛보고 싶은 뜻에서 ‘구원’이라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기독교(신 구교)에서는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회개를 제시한다. 회개란 시공간에 묶인 역사적 존재인 인간이 자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구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고, 시공간을 창조한 절대자에게 위임하는 것으로 사유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자, 삶의 실천방식을 자기중심에서 점점 확대하여 이웃하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의 생각을 조용히 따르고자 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화가는 마리아에게 간청한 ‘구원’은 마리아를 직업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자신”으로 만나고자 한 것이고,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재하는, 어떤 빛을 가진 인격으로 만나고자 한 것이다. 그날의 마리아의 일기는 자신에게 구원을 간청하는 남자로부터 신의 목소리로 여긴다.

나는 몇 시간 전, 한 카페에 들어갔고, 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신이 그곳에 던진 것과 같았다. 나는 나에게 다른 종류의 관심을 보여준 첫 번째 사람에게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불행의 연속인 이 세상에서 행복한 하루는 거의 기적에 가깝다.(151쪽)

그들은 이제 자기도 모르는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운명적인 만남에 이른다.

 

구원의 빛과 영원한 사랑

마리아는 그 화가가 자신이 영영 잃었다고 생각한 자긍심과 ‘빛’을 찾아 주었다고 생각했다. 마리아는 사랑이 체위에 좌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체위의 변화는 춤의 스텝처럼 자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충분히 경험했다. 그리고 가장 강한 사랑은 자신의 연약함을 내보일 수 있음을, 뿐만 아니라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성적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쾌감을 느낄 수 있으며, 서로 사랑하고 함께 있는 두 사람은 놀이와 ‘연극’을 통해 그들의 시곗바늘을 맞추어야 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단순한 만남 이상이라는 것을, 생식기의 ‘포옹’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화가 랄프와의 새로운 만남 와중에도 사디즘에 빠진 영국 신사를 만난다. 가학적인 고통을 주고 받는 그와의 만남도 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하지만 사디즘이 추구하는 고통과 노예적 굴종을 통한 정화 그리고 거기서 오는 성적 쾌감은 또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허무함을 알게 된다.

화가 랄프와의 만남의 시간은 짧았지만 강렬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대해준 유일한 사람과 만난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대화적 섹스를 시도하며 새로운 삶의 활기와 의미를 찾아가는데, 결국 그들은 생식기의 ‘포옹’을 통해 이제껏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영원한 오르가슴을 맛보게 된다. 그녀의 뜨거운 고백은 이러하다.

“나는 그와 합류했다. 그것은 11분이 아니라 영원이었다.”(337쪽)

 

루가복음 7장의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

소설 <11분>에서 본문이 시작하기 전에 옮겨놓은 루가복음의 소제목은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이다. 예수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고 줄여 옮겨보면 이런 이야기이다.

예수가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먹게 되었다. 마침 그 동네에 살던 행실이 나쁜 여자가 그 소식을 듣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예수 뒤에 와서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 맞추며 향유를 부었다. 그랬더니 예수를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속으로 “저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에 손을 대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며 얼마나 행실이 나쁜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하고 중얼거렸다. 그 때에 예수가 시몬에게 묻기를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을 진 사람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이 두 사람이 다 빚을 갚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돈놀이꾼은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느냐?” 그러자 시몬은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겠지요”하자, 예수는 옳은 생각이라면서, 계속 말하기를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아주었다. 너는 내 얼굴에도 입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 맞추고 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다.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루가복음 7장 37절에서 47절 요약, 공동번역 대본)

예수가 역사적으로 생존했던 유대사회는 먼지가 많은 땅이었다. 그래서 손님이 오면 발을 씻을 물을 대접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주인이 발을 닦아주는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그 바리사이인은 물을 내놓지도 않았다. 바리사이인은 스스로 ‘구별된 자’라는 의식을 갖고 종교적 율법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요즘으로 치면 주일을 잘 지키고 교회에서 장로의 직분을 갖고 있는 그런 사람들일까? 아마 열심히 신앙생활은 하지만 그 종교의 본질인 사랑에는 이르지 못한 사람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러니 예수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비판의 눈을 감추지 않는다. 이에 비해 행실이 나쁜 처녀(아마 창녀일 것이다)는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어주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셈이다. 보기에 따라 에로틱한 상황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예수를 구원자로 여기며 하느님의 아들로 믿는 전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두려움 없는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는 그녀에게 선포한다.

“네 죄는 용서받았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루가 7장 30절)

화가도, 마리아도, 그녀의 배위에 올라와 ’11분’ 남짓 애를 썼던 수많은 남자들 모두에게 필요한 한마디가 아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11분>은 일종의 종교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더욱 보편적인 주제는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이다. 인간은 어떤 의미로든 결국 사랑으로 구원하고, 사랑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협동경제의 철학적 이해[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①

협동경제의 철학적 이해/1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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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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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이 사람처럼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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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더 잘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준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인구 증가, 그리고 그에 따른 사람들 사이의 경쟁과 다툼 이런 사회의 변화 때문에 정말 잘 사는 삶의 의미를 잊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원래 사람들은 혼자 사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사는 것이 훨씬 더 잘 살 수 있었던 원형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 혼자 잘 살아보겠다는 개인주의라는 삶의 위세에 눌려 남들과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은 어느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희귀한 삶의 양식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원시적인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지 현대라는 역사적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사람이 사람처럼 잘 살 수 있는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 찾아보려는 노력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처럼 살자고 굳이 떠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환경오염, 문명오염, 정치오염, 그리고 그보다 더 겁나는 개개인의 의식오염이 이미 퍼져있는 이 땅에서 과연 내가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도 실망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쓸려간 땅에도 그 다음 해에는 풀이 돋아난다. 이러한 풀의 기운을 되살려 풀죽어 가는 삶에 풀먹이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처럼 살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저절로 그러하고” 또한 남에게 기대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 그러면서도 더불어 “함께 하는” 자연(自然)을 생각하고 그러한 자연의 모습을 닮아 가려는 삶을 실천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너무 추상적인 방법이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반문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오염된 틀에 너무 쉽게 면역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처럼 살기 위하여 “억지로” 그리고 “남에 기대는” 그리고 “혼자만 살려고 하는” 모순된 삶에서 벗어나면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의 삶이란 모두가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가거나, 산업문명을 거부하여 원시생태로 돌아가자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의 삶이란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작은 희망이고 구체적인 실현가능의 삶을 추구하는 하나의 길일뿐입니다. 그래서 현실 안에서 “억지로” 그리고 “남이 시키고 남에 기대는” 모순된 삶의 벽을 하나 하나씩 깨트리고, 그래서 “함께 하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같이 걷고 함께 마련하며 어울어 숨을 쉬는 그런 작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삶의 공간은 지리적 공간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라고 하는 문화공간에 적응하는 새로운 방식의 삶의 패턴이기도 합니다.?

사실 자연의 흐름대로 저절로 살고 스스로 사는 삶, 그리고 우리의 자연과 함께 또한 남과 함께 두고두고 잘 살기 위해 필요한 실천의 지식은 아주 간단합니다. 첫째 적게 쓰면 된다. 그리고 둘째로 이왕 썼으면 그 쓴 것을 다시 쓸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이렇게 간단한 논리를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현대인의 잘못된 생각이고 잘못된 지식입니다.?

그러나 그 잘못은 한 개인 개인에게 있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해서 공학적이거나 경제학적 접근만으로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의 환경을 말하기 전에?자연을 죽어 있는 물질로만 보는 기존의 입장이 아니라 자연을 살아 있는 유기체의 하나로서 바라보는 인간의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환경은 인간학이 우선되어야 하고, 나아가 인간이 모여 잘 살 수 있기 위하여 철학의 중요한 숙제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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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소외와 소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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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강조합니다. 획일화된 전체 속에서 자기 자신을 하나의 부속품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역사와 지역을 막론하고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고도의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개인주의의 양상은 조심해서 보아야 할 점이 많습니다. 대중매체서나 길거리에서 이제는 첨예화된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공동체 의식은 점점 뉴스 감으로 되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개인의 개성을 찾는 일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러한 매체에서 말하는 개성은 편협한 개인주의와 산업화의 한 단면이고, 상업주의의 농락에 빠진 개성이며 따라서 인간의 고립을 자초하는 이기적 개인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사회 속의 인간은 이제 자기만이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위기 의식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위기 의식 때문에 타인에 대한 비인간적 공격을 일삼습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공동체가 지니는 관계의 끈을 모조리 끊어 버리고 맙니다. 관계의 끈이 없어진 나는 생존에 대한 강박감 때문에 남을 헐뜯고, 남이 안볼 때 쓰레기를 대충 버리고 마는 무임승차하는 사람이거나,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자아상실 혹은 편집광에 가까운 자만심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 나 자신을 새롭게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 자신만의 성곽 안에서 자기 자신만을 투영하는 주머니 속의 반사경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역사의 그물망 속에서 내가 속한 위치를 정확히 볼 수 있어야 비로소 객관적인 나의 모습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삶의 그물망이란 상업주의나 개인주의의 맹목적인 희생물이 될 것을 거부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그런 삶의 양식을 말하는 것이고, 그런 삶의 양식은 역사와 시대의 아픔을 같이 하는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진 : http://laborhealth.or.kr/28730

물론 이제 현대인은 기계화된 산업화 속에 매몰된 자아를 찾으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기계나 사회조직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당당히 삶의 주체자로서 행동하고 싶어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많은 현대인은 회사의 과장으로서의 나, 두 아이의 아비로서의 나, 동창회 총무로서의 나, 교회 집사로서의 나 등으로서 답변을 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내가 진정한 나인지를 되물어야 합다. 어떤 역할 속에서의 내가 아니라 나의 삶의 진정한 주체자로서의 나를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어려운 말을 써서 ‘소외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합니다.?

주체적인 나를 찾기 위하여 먼저 할 일은 내가 남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남이란 지금이라는 시점에서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도 포함합니다. 시간적으로 먼 남을 같이 생각하는 일을 우리는 역사성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타인을 생각하는 일은 환경을 생각하는 출발점입니다. 그 역사적 타인은 나의 자손과 지구 저편 사람들의 자손까지도 포함합니다. 왜 나 하나 살기도 어려운데 그렇게 멀리 있는 남까지도 생각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나도 비로소 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는 더욱 그러합니다. 현대를 보통 정보사회라고 말합니다. 정보사회가 되면서 지구 구석구석이 더욱 가까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는 분명히 과학의 산물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교통과 통신의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해 나와 남이 더욱 가까워졌습니. 이렇게 과학기술을 통해 외형적으로는 서로 가까워졌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아성을 더 높게 쌓고 불필요한 소비만을 낳게 하는 거대한 상업주의를 거들어 주고 있을 뿐입니다.?

과거에는 자기가 사는 지역만이 세계의 중심이었고 세계의 전부였습니다. 그 작은 세계 안에서 나는 세계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주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세계관을 보통 신화적 자연관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신화의 시대에서 문자의 시대로, 그리고 나아가 정보의 시대로 변화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언어로 우리의 자연을 전부 그리려고 합니다.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자연과학이 형성되었고 자연과학을 통해서 자연을 모두 그려 낼 수 있다는 사람들의 오만이 팽배해졌습니다. 그래서 인간 이성의 오만함은 인간이 그릴 수 있는 자연을 갖고 자연을 정복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 이성은 근대과학을 낳고 산업화를 이루면서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업주의 전략에 빠져 이기적 개인주의를 마치 개성의 표현인 양, 자기만 잘났다고 하는 것을 자신의 주체성인 양, 자기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고 남과 벽을 만드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입니다. 이러한 불행의 흔적이 진화되어 사람들의 의식 안에 정착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벌써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현대에 이르러 인간위기와 더불어 전지구적인 환경위기를 초래해 가고 있다는 징후가 너무나 분명합니다.?

오늘의 환경위기는 생각보다 너무 심각한 것이어서 우리가 총체적인 인간관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현재의 환경위기를 대처하는 일은 사실 눈감고 아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거창하게 인간의 소외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역사성을 팽개치고 관계의 그물망을 찢어버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사람과 자연 사이의 끈을 쓸데없이 꼬거나 끊어버리고, 개인들의 경쟁과 탐욕으로 모인 어설픈 집단에 대한 구체적인 반성과 비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즘 경제문제, 사회문제가 하도 심각하니 환경문제는 도외시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환경위기의 심각성을 보고하는 각종의 매스컴 보도에도 불구하고 나아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진짜로 바꿔져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그렇게 해왔으니까, 나도 그럴 뿐인데 뭘 야단이야’ 하는 생각이 환경문제에서 정말 심각합니다. 환경문제는 분명히 심각한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무임승차가 당연시되고 있고 더욱이 요즘은 경제 회오리에 휩쓸려 거의 실종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러한 환경위기가 아니라, 오늘의 환경위기를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진짜 위기인 것입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과 비판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환경위기의 원인이 단순한 물질적 오염이 아니라 의식 오염으로부터 야기된 것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로부터 어떻게 헤쳐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내야 합니다. 과학기술을 통한 환경 개량주의도 그 해결의 작은 방도일 수 있지만 환경위기가 인간위기의 한 단편임을 깨닫기에는 모자랍니다. 결국 궁극적인 환경위기를 극복하는 단초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찾아져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육의 문제, 사회민주화의 문제, 경제 정의의 문제 등을 올바르게 보고 그에 따른 실천의 생활관습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먼저 소비의 문제를 따져보기로 합시다.?

우리는 왜 소비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일상적인 생활의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소비는 문제일 수도 없고 문제되어서도 안 됩니다. 소비는 더 나은 문화적 창조를 위한 것으로 연결시켜야 하며 이러한 연결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에 대한 철학과 반성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습니다. 산림을 무차별하게 깎아 먹는 골프장과 한강변이나 신도시 주변의 러브호텔들, 축사오염, 염색공장의 폐기물, 과대포장, 일회용품 사용을 반대하는 실천적 운동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동시에 그러한 시설물이나 제품이 나와야 하는 모순된 사회경제구조를 반성적으로 질문하고 비판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소비 문제를 비판하면서도 문제의 이면을 보지 못하고 표피적 현상에 얽매어 있다면 결국 개발 최상주의라는 환상에 빠지는 꼴이 되고 맙니다. 예를 다시 청소년 문화로 돌려봅시다. 소위 신세대 경향은 개인주의의 한 양상일 뿐입니다. 개인주의는 자본주의의 한 부분이고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구세대가 만들어 놓은 마취제 기능이 성공적으로 나타난 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과소비 행태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자본주의의 함정에 빠진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소비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소비성향의 사회적 풍조를 반성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물질적 풍요로움의 환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모든 것이 풍족해서 소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어 소비한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 누군가라는 것은 고정된 정관사가 아니고 우리가 근대화를 거치면서 왜곡되어 나타난 총체적인 부정관사의 모습입니다.?

소비 문제와 관련하여 에너지 생산과 절약에 관한 이야기를 마저 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부존자원 에너지를 계속 늘려가자고 주장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존자원을 영원히 그리고 무한정 늘려 갈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구호를 계속 외치는 일은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물질적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도일 뿐입니다. 에너지 생산의 한계는 세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물질적인 욕구이며 둘째는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생산된 에너지이며 셋째는 그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야기된 물질의 오염과 의식의 오염이 그것입니다. 의식의 오염은 새로운 물질적 욕구를 낳게 되며 다시 끝없는 악순환을 반복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소 건립에 대하여 오로지 앞의 둘째 문제만을 말하면서 절대로 안전하다느니 발전소 건립의 충분한 경제성이 있다느니 하는 말만을 하는 개발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발전소 건립 이후 야기되는 셋째 문제가 중요합니다. 순전하게 경제적 이유만을 따진다해도, 핵발전에서 생기는 저준위, 고준위 폐기물을 처리해야만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미래의 처리비용을 계산한다면 핵발전의 경제적 타당성은 전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이미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핵발전 시설계획을 전면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핵발전소 역시 콘크리트 구조물이기 때문에 구조물 수명이 있게 마련입니다. 핵발전소는 수명이 다한 후에 아파트처럼 재건축할 수도 없고 폐기해야 하는데, 이 때 건축 폐자재인 콘크리트 조각 하나하나 모두가 영구히 보존해야할 방사능 누출오염 폐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핵폐기물 처리에 드는 경제적 비용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경제적 이유를 떠나서 원자력 발전소 건립으로 더 많은 물질적인 혜택이 예상되지만 그것은 초과된 소비이며, 그 소비를 향유하기 위하여 더 많은 사회범죄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도덕과 윤리의 파괴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은 단지 우려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의식의 오염은 핵 쓰레기 문제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에너지를 갖고 또 얼마나 많은 ‘문명의 잔해’를 만들어 낼 것인지 생각해 보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정말 알 수 없습니다. 많은 개발주의자들은 지구의 미래를 장밋빛 유토피아로 생각하고 싶겠지만 지금 같은 소비형태와 문화양상으로 비추어 볼 때 결코 낙관적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국가부도의 위기에 이어서 계속되는 경제 불황의 근본 원인은 위기를 낳은 사회적 요인에 대하여 근원적인 치료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미래를 낙관하는 일은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총체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오늘의 경제위기를 단순히 경제 정책이나 단순이론으로만 풀려는 것은 진정한 문제해결의 방식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의 경제난국을 푸는 궁극적인 문제 해결은 경제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경제단위인 주체인 소비자의 맹목적인 소비 행태들을 스스로 반성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러한 소비의 맹목성을 부채질한 기업의 소비 유도논리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문제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의식의 오염을 정화시키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만연되어 있는 의식오염을 정화하기 전에는 결코 정상적인 경제 정착이 어렵다는 것은 너무 뻔한 일입니다.?

환경문제는 총체적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사회구조적 이해 없이 개인의 환경구호만을 강조하면 지하철과 공원과 길거리는 깨끗해질지라도 기업의 일회용 포장지와 화학적 제품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도쿄의 길거리는 정말로 깨끗하지만 1인당 일회용품 사용량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쓰레기 분류가 잘 되기는 하지만 사회의식이 결여됐다면, 지금의 검측기로 측정이 어려운 다이옥신은 소각로 굴뚝에서 더 많이 나올 것이며, 원자력 에너지가 청정에너지라는 정부의 홍보가 승리하여 여기저기 핵발전소가 들어설 것입니다. 그리고 님비현상을 단순한 지역이기주의라고 계속 몰아붙이면서 행정편의주의로 가거나 기업가의 손을 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폐기물 이동금지협약은 유명무실해져서 국가간 기술이전과 경제원조라는 명목 아래 힘의 논리와 경제논리가 우선한 특정폐기물의 보이지 않는 이동이 더할 수 있습니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 세계는 미국 중심의 시장구조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FTA 체제 국제경제의 흐름은 시장경제기준을 몇몇 힘 있는 선진국에 맞출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논리와 전체논리 사이의 괴리는 경쟁과 이기주의, 약육강식과 물질만능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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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19)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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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호 (방송통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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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3에서는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제8장 “Zur Philosophie, Wissenschaft und Redekunst”(Gesammelte Werke, Band VII, s. 275-421)의 내용을 수회에 걸쳐 발췌 요약하는 방식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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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3 :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 그리스 철학과 과학의 지성사적 기원과 의미

 

2. 신화와의 결별

나. 피타고라스와 영혼불멸 신앙

보다 엄밀함을 요구하는 시대가 다가오자 그에 대적하는 신화의 필사적인 저항이 이루어졌는데 그러한 몸부림이 가장 집약적으로 잘 나타나 있는 인물이 바로 저 위대한 피타고라스(Pythagoras)이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이미 윤회전생을 통해 아에탈리다스, 에우포르보스, 헤르모티모스, 퓌로스 등 네 사람의 삶을 살았고, 서로 다른 지역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쨌건 역사적 인물로서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70년경 사모스에서 태어난 것이 분명하고 성년이 된 후 기원전 530년경 이탈리아의 크로톤(Kroton)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가르침을 펴다가 혁명이 일어나 그의 신도들이 처절하게 추방되기 3년 전인 기원전 497년에 사망했다. 그가 이집트를 다녀왔다는 것은 틀림없이 믿을 만한 사실이다. 제26왕조 치하였던 당시 이집트에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 나우크라티스(Naukratis)가 있었기 때문에 여행이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왕래정도가 아니라 가장 진정한 이집트인, 즉 신관과 관계를 맺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번거로움이 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과 교유하면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헤로도토스(II, 81)도 전하고 있듯이 이른바 오르페우스(Orpheus)교와 박코스(Bakchos)교의 신도들이란 사실 이집트인들과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이었으며 그럴 정도로 피타고라스적 본질과 이집트적 본질은 아주 닮아 있었고 오르페우스교의 행사와 피타고라스학파의 행사 또한 서로 혼동될 만큼 비슷했다. 한편, 피타고라스가 바빌론에 갔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인도와는 어떤 식으로건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영혼 윤회설(metempsychos)에는 오히려 이집트적인 것보다는 인도적인 색채가 보다 강하게 배어있다.

피타고라스(기원전 582-497)

그런데 피타고라스가 그리스인에게 전해준 것으로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영혼 윤회설 내부의 금욕사상과 결합된 그의 새로운 종교와 윤리학이다. 그는 철학자이기보다는 오히려 종교 개혁가였고 생존의 고뇌가 이전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던 시대에 살고 있었으며, 이 지상에서의 삶이란 전생에서 범한 죄과에 대한 속죄의 과정으로서 감내해야 할?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속죄 상태가 끝난 후에는, 테오그니스(Theognis)가 생각하듯 침묵의 돌이 되어 무덤 가운데에 눕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정화의 순서를 밟은 다음, 내세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다시 윤회전생(輪回轉生)한다고 생각했다. 신비로 가득 찬 의식을 통해 정화되고 전 생애에 걸쳐 신성한 의식을 추호의 소홀함이 없이 수행해낸 경건한 사람만이 종국에 가서 영원한 생성과 소멸의 쇠사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이러한 희망을 기치로 내세워 그 교단을 이끌어 간 것이다. 그 역시 오르페우스 교도와 마찬가지로 육체는 영혼의 묘지 혹은 감옥이며 고귀한 영혼은 천상 세계에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피타고라스가, 영혼이 여러 육체를 거치는 지상에서의 편력을 모두 끝낸 후에는 그 보답으로서 지상적 존재를 마감하는 것이 허락된다고 가르쳤거나, 마지막으로 그 영혼은 신격의 하나로 영입되었을 것(어쨌든 이것은 플라톤의 희망이었고, 앞서 엠페도클레스도 이러한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이라고 가르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영혼불멸과 일치하는 것은 후자 쪽의 생각이지만, 영혼이 “벌로서” 육체에 갇혀 있다는 생각은 논리적으로, 영혼이 보다 크고 잦은 비참함에 빠지지 않으려면 신이 영혼을 구제해 줄 때까지 육체 안에서 잘 참고 견뎌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타고라스학파가 교인들에게 자살을 금하고 “노령의 죽음”을 맞이하도록 엄하게 가르쳤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의 마음속에 과거가 어떻게 비쳐졌는지 또 그 경우 어떠한 것이 친근성을 가지고 그에게 전생과 관련한 신호를 보낸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전생에서 4번이나 생존했다고 하는 그의 기억에 관한 전승들은 하나같이 동물들 안에 인간의 영혼이 있다는 것을 너무도 사실인 것처럼 그리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오래 동안 다우니아의 숫곰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와 친근했던 한필의 황소는 아주 나이가 많아질 때까지 타렌툼의 어느 신전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는 등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피타고라스가 영혼 윤회설을 고대인들이 믿고 있었던 것처럼 오르페우스 교도로부터 배웠는지 아니면 반대로 오르페우스 교도 쪽이 피타고라스로부터 그 교설을 배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아마 영혼 윤회의 사상은 어디에선가 도래하여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확실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딱히 이 사상을 거부하려는 사람도 없었던 듯하다. 어쨌든 불사의 신앙이 새롭게 요구되거나 그곳에로의 비약이 필요할 경우, 그리스인은 즉시 피타고라스를 상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 중에서 피타고라스학파와 별도로, 영혼이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 등으로 윤회전생을 거듭하는 것을 그야말로 영혼이 받는 벌이라고 명확하게 가르친 사람은 아그리겐툼(시칠리아)의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기원전 444년경)였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지고 있다. “나는 이미 소녀였으며 또 소년이었고, 새끼양이며 새이었고 바다 속 물고기였다.”

수학의 나라. 특히 기하학의 나라인 이집트로부터 피타고라스는 가장 중요한 이득으로서 수학적 지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의 학문의 과학적 일면은 여기에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의 가르침은 “수학과 음악 연구의 발단을 포함하고 있었고 이 연구가 후에 피타고라스 철학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수학적, 음악적인 우주의 구성에 도달 할 수 있었으며 또 오르페우스교의 교설과 달리 기괴한 신학에 미혹되는 일도 없었던 것이다.” (E. Rohde) 물론 그리스인이 생각했던 수의 이론이 매우 광범위한 문제영역을 가지고 있고 그 이론들 중 얼마만큼이 피타고라스와 연관되어 있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도 증언하고 있듯이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같은 사람들보다 이전 시대에 이미 피타고라스가 수학을 자기 학설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피타고라스는 아주 의도적으로 수의 영역에 다양한 다른 것들을 한꺼번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에게 수라는 것은 여러 가지 힘의 비유이며, 수의 비례나 비율 또한 여러가지 사상의 비유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도 그는 1과 다, 짝수와 홀수, 신성한 수 10과의 관계 속에서 신성한 4개의 수(1+2+3+4=10) 등과 같은 것들에 각각 사상을 결부시켜 청강자들을 갑자기 숭고함에로(ins Erhabene) 끌어 들였을 것이다. 또 이 학설에는 도덕적인 면과 함께 미학적인 면도 있었다. 즉 원은 가장 아름다운 평면이며, 구는 가장 아름다운 물체라는 설명함으로써 대지에 구의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견해는 대지가 타원형 또는 원반으로 여기고 있었던 당시로서는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소리는 여러 가지 수 또는 그 역이라고도 설명함으로써 이미 수를 음악의 기초로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물질적 원소들을 특정의 기하학적 도형들과 결부시키고 있었다. 윤리적, 지적, 물질적 세계를 이와 같이 수의 형태로 설명하는 것은 당대의 모든 그리스적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경향은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기하학과 산술은 이후 그리스의 모든 지식을 해명하는 손잡이(labai)가 되었다.

라파엘의부분화 – 음악이론을 기술하는 피타고라스

하지만 이상의 것들은 모두 이 세계 전체를 학문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기초에 불과했다. 다름 아니라 피타고라스의 학설에서 처음으로 지구가 우주 체계의 중심으로부터 배제되었다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불후의 명성을 가져다 준 획기적인 주장이라 할 것이다. 처음에는 대지성(對地星, Gegenerde, 태양계 행성을 열 개로 하기 위해 지구의 뒤에 있다고 상정한 행성)이라든지 중심불(천체가 그 둘레를 수학적 법칙에 따라 회전하는 우주의 중심)이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긴 해도 그들은 결국 지구가 그 중심축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피타고라스 학설에 돌려야 할 영예가 또 있다. 그들은 처음으로 심리학적 구분법을 사용하여 인간의 영혼을 인지력, 정열, 이성의 세 가지로 나누어 이 중 인지력과 정열은 동물도 가지고 있지만 이성은 인간만이 소유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편, 이 학설이 단순한 철학이었다면 여성은 거론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피타고라스학파의 활동에 관한 전승에서 우리는 여러 명의 여성 피타고라스 교도들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의 아내 테아노(Theano)와 그의 딸 다모(Damo) 등 일단의 여성들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최고 수준의 학문적 문제에 활발한 관심과 능력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려나 양성의 평등을 가장 고귀한 의미에서 최초로 확립해 낸 것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혼 윤회의 학설이었다. 피타고라스는 여성을 남성과 더불어 영혼 윤회과정에서 태어나는 동격의 사람으로 여겼고 윤회에 의해 태어날 다음 세대 사람들의 어머니로서 존경하고 있었다.

피타고라스의 인품은 신화적 전승 통해서 추측하건대 매우 엄숙하고 아폴론적이었음에 틀림없다. 훌륭한 용모에 흰 의복을 걸치고 그는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언행에서는 온화하고 친근한 정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했지만 이내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모여 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하나의 마을 전체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가르침은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졌다. 그의 학생들은 처음 5년간 스승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이것은 아마 일종의 예비 과정의 경우 수준 높은 제자들이 그를 대신하여 가르쳤던 것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제자들 사이에서 스승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무슨 일이든 “스승께서 그렇게 말씀하였다“는 말로 언표된 이상 그 이상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기록의 형태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떤 교설을 전할 때마다 ”내가 호흡하고 있는 공기에 맹세코, 내가 마시는 물에 맹세코, 내가 말하는 일에 논박을 더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신도들에게 침묵과 명상과 내면의 집중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뛰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려고 했다. 그의 학설은 함부로 공개되어서는 안 될 비밀이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종교적 비의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영혼의 윤회와 피타고라스적인 윤리는 공공연하게 가르쳐지고 있었다. 물론 일부 과학적 지식들은 비밀스럽게 전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피타고라스가 그러한 지식들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그러한 지식들을 신중하게 극히 서서히 전수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학설이 와전되거나 왜곡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학파는 매우 독특하게도 가르침을 전수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상징적이거나 장중한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피타고라스는 이러한 학설을 주창하면서 신들에 대한 믿음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단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종교가 그를 만족시킨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종교로는 우주의 비밀을 밝힐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들 또한 무엇보다도 호메로스의에서 그려지듯 여러 가지 불성실한 상태로부터 결코 벗어나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에게 남아 있던 것은 혐오라고 하는 항의 밖에 없었다. 그는 지하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하나로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이름을 들었다. 하지만 그가 신들을 얼마나 깊이 숭배하고 공경했음은 신께 바치는 기도에 대한 그의 훌륭한 태도만 보더라도 잘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달라고 기도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는 선물의 선택을 철저히 신들에게 맡겼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영혼 윤회설 때문에 크로톤과 메타폰티온(Metapontion)에서 종래의 장중하고 화려한 사망자 숭배나 이것과 결부된 대량의 무속 및 유령 관련 미신들과 충돌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와 같은 상황에 직면해서 고도의 정화적인 기능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그리스 본토의 상당수의 제사들보다 훨씬 은밀한 성격의 제사방식을 가져와 그것을 수행했다. 영혼 윤회설은 이미 복잡한 학설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비의적 제사방식까지 함께 들여온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윤회설과 결합된 새롭고도 고상한 윤리가 어떠한 내용의 것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일 것이다. 이 교설은 옛 부터 육식을 피하고 채식주의를 받들어 왔는데 그렇게 한 이유들 중 하나는 이전에 인간이었던 영혼이 동물의 모습으로 동물의 생활을 감내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렇듯 기원전 4세기의 피타고라스학파에서는 절제와 관련한 수많은 규범들과 관습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한 준수여부가 사후에 더 좋은 것을 요구할 권리까지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별한 의복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수행한 금욕은 오르페우스 교도의 그것보다 훨씬 밝고, 투명한 것이었다. 그것은 부패한 양심을 용서받기 위한 금욕이 아니고, 청정한 사람들이 청정한 삶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한 금욕이었던 것이다. 그 유일한 목적은 단지 한층 더 고상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적 생활의 진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약속은 성실하게 지키되 서약은 가능한 한 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거짓 서약이 창궐했던 당시로서는 이것은 실로 이채롭다할만한 특색이다.

라파엘로,

피타고라스가 지방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면 그가 가르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라 치유하기 위해 왔다고 하는 소문이 퍼졌다.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인 도시에서는 부와 사치가 지나쳐 이른바 명문가 사람들은 전쟁이나 군대, 경기와 관련한 일 즉 넓은 의미에서 승부를 위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피타고라스는 그들이 추구하는 승부욕과 명예욕은 결국 그들 자신을 예속 상태에 빠트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부와 승부를 쫓는 삶을 경멸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은 이 비범한 스승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자신들의 소유물을 하나로 모아 숭고하고도 엄숙한, 종교적 기운으로 가득 찬 공동체를 꾸려 재산을 공유하며 생활하였다. 한편 그는 정치적 개혁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피타고라스 사후 아주 후대의 세속적 피타고라스 교도들이 행한 실제적인 정치적 활동 때문에 생긴 견해일 뿐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아니다. 또 다른 피타고라스 교도들은 오르페우스 교도들과 손을 잡아 고행을 앞세운 미신적인 단체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가장 믿을 만한 증인으로서 플라톤은 최소한 실천철학과 관련해서는 피타고라스를 사생활 영역에서 독특한 형태의 종교 의식을 창시한 사람 정도로 말하고 있을 뿐, 솔론과 카론다스와 같은 정치가 내지 입법가들과는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

대체로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극히 중요한 몇 개의 사안과 관련하여 다른 그리스인들과는 애초부터 다른 집단으로 여겨졌다. 그리스의 폴리스에서는 매우 독특하게도 스승이 그것을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치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의 삶은 모두 이 폴리스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는 사모스로부터 와서 이 폴리스의 이러한 정치적 제도와 행태를 접하고는 줄곧 이의를 제기했다. 그가 크로톤에서 메타폰티온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또 그의 말년의 짧은 전성기 이후 그리고 그가 죽은 지 몇 년 후 그의 신봉자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가혹한 박해를 받아 급기야 그들 대부분이 추방을 당하거나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 사정 또한 아마도 수학과 관련한 그의 방정하고도 엄격한 태도와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피타고라스학파가 고대 그리스에서 종교적이고 윤리적이며 과학적이기도 한 가장 초기의 완전하고도 자유로운 단체였다는 사실은 이 학파가 누려야할 영원한 명예일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친밀하게 서로 결속된 하나의 공동체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오니아학파나 엘레아학파와 다르다. 실제로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우정과 연대감으로 서로를 헌신적으로 도왔고 학파에 속한 사람들이 사망했을 경우 그 사람이 개인적인 안면이 있건 없건 장지가 멀건 가깝건 간에 상관없이 문상을 가 장례를 도왔다고도 전해진다. 이 학파의 영향이 스승이 사망한 이후 2세기 이상 유지되었다는 점도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피타고라스가 이러한 영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 자신의 삶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종교적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2. 신화와의 결별. 다. 자연철학의 등장. 다음에 계속 )

의식노동[노동이야기]-⑩

의식노동[노동이야기]-⑩

이 재 원(한철연 회원)

 

 

1. 만추(晩秋)

브레히트는 묻는다. 신화로 가득 찬 ‘아름답고 견고한 저 테베의 상들은 누가 지었는가?’ 사람들은 대답할 것이다. ‘테베의 왕들이 지었겠지.’

어르신을 따라서 한적한 시골에서 며칠을 보냈다. 새벽달에게 농담하다(고 쓰고는 애인 생겨 달라고 떼쓰다고 읽는다). 아침 물안개를 즐기고 알을 품는 논병아리를 구경하며 보냈다. 한적한 곳에서는 노래도 불렀다. 고추잠자리 가성이 안 올라가서 며칠 연습했다.

매 끼니를 얼마나 잘 먹었는지, 죄책감까지 들 정도였다. 죄책감의 근거는 만나로 연명하던 광야인 즉 누가 한 수저 더 먹으면 다른 사람은 굶는 떠돌이 히브리인들의 삶에서 그들 지도자들의 ‘먹기를 탐하는 자, 목에 칼을 댈지라’는 경고이다. 어르신의 냉엄한 눈초리인즉 호된 꾸지람을 듣다 보니 나를 괴롭히는 귀신들이 도망갔다-상처들이 치유되는 깊은 시간이었다.

그 지방의 명찰을 구경 갔다. 절은 새로 개축했다. 숙련공들의 솜씨가 잘 드러나는, 목재들의 이음은 틈새 하나 없었고 3포 양식의 화려한 건축물이었다. 20년 전 절 짓는 비용은 평당 천만 원이었다. 단청 공사를 하고 있었다. 단청공들은 작업 조건에 따라서 때로는 누워서, 때로는 앉거나 서서 작업하고 있었다. 20년 전 단청 공사 가격은 300만원이었다. 지금의 비용은 추정도 못하겠다.

절 뒤켠에 단아한 황토방이 있었다. 만추의 주변 경관과 참으로 잘 어울렸다. 누구라도 그 곳에서 머물러 살고 싶도록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스님은 이것을 ‘내가’지었다고 했다. 공장에서 목재를 깎아다가 현장에서 짜 맞춤하는 공법이라면 평당 약 3백만 원, 목수와 인부들이 직접 작업한다면 건축 비용을 추정할 수 없다.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 1956)

 

자본주의의 꽃을 금욕의 상징인 절에서 본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부처님께 절 공양하는 것이 많은 신도와 스님들의 소원이라는 것을 들었다. 새로 지어도 고풍스러운 매력을 지니는 전통 건축양식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테베의 성을 지은 것은 왕들이 아니듯이, 절을 공양하는 것은 헌금한 사람이나 스님들이 아니다. 오막살이를 보면 그 속에 사는 가난한 가족들을 생각하듯이, 신축 절을 보면 온 몸이 아픈채 노동하여 가족을 부양하는 목수들과 퇴역쟁이들을 생각한다.

스님과 차 마시는 자리에 동석할 수 없었다. 돈 냄새가 진동해서라면 내가 너무 애큐트(acqute)한가? 주지스님은 야생의 버려진 사슴을 주워다 기른다 했다. 사람 손을 타고 큰 사슴은 사람들을 잘 따랐다. 나는 또다시 스님의 자기 신비화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야생 사슴이 길거리에 내버려져 있을 턱이 없기 때문이다. 스님 자신이 추측의 단초를 주었다. 근처 사슴 농장에서 이 아이(사슴) 시집보내, 새끼 한 배를 내었다고 했다.

오래 전 일이다. 집에서 키우던 염소가 새끼를 낳고 죽었다. 어린 것들을 가족들이 우유 먹여 키웠다. 얘들이 사람을 얼마나 잘 따르는지, 배고프면 마루앞에 와서 매애-하고 울었다. 귀엽다며 욕심 많은 사람이 한 마리를 가져갔다. 다른 한 마리는 성장하자, 집 어딘가에 묶어놓았다. 사람이 다가가면 개가 주인에게 애교 부리듯이 커다란 뿔을 조심스럽게 들이밀거나, 두 발로 서서 펄쩍펄쩍 뛰었다.

‘일부작 일부식(一不作 一不食)’을 실천하는 스님이 계셨다. 그가 정치력이 넓어져, ‘절(국립공원) 입장료 받지 말자‘는 운동을 했다. ’중이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부처님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일해서 먹고 살라‘고 일갈했다. 이 운동 발전하면 절에서 헌금 받지 말자라는 주장으로 번질지도 모를 참이다. 그는 종단에서 쫓겨났다. 그 후 진보파 스님이 종권을 잡자 승첩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몇 십 억 헌금 뒤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을 본다. 누구는 극락 가기 위해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타인을 자기 도구로 삼는다. 이는 기독교, 천주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 건축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2. 노동자의 자기방어 기제들-원인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 누군가는 내가 이슬만 먹고 사는 사람으로, 돈 필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소히 돈 들어갈 데가 많다. 서사 작업도 해야 하고 독서도 하고 술도 마시려면 돈 들어간다. 남는 돈은 친구 발전을 위해 쓰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띄엄 뛰엄 일해도 워낙 사람이 없다보니 용역회사에만 가면 일감이 있었다. 윤 씨, J를 포함해 여럿이서 기존 현장에서 바라시 작업을 했다. 공정표에 바라시는 콘크리트 타설 후 15일 지난 후 해야 한다. 그러나 이곳 현장은 어제 콘 타설했다. 조심스럽게 해체작업 한다 해도 양생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콘크리트는 잘 굳지 않을 것이다.

바라시는 우선 갓다(카터, 쇠로 된 절단기)를 이용해 형틀 짜면서 여기 저기 묶은 반생이를 끊는다. 이 작업은 쉽지 않다. 큰 갓다로 하면 무거워 팔이 아프다. 작은 갓다로 하면 힘이 들어 팔이 아프다. 끊고 또 끊어내다 보면 다 끊겠지, 하는 생각으로 작업해 나갔다. 그 다음인 즉 하리(보)의 형틀과 상판(슬래브)을 이어주기 위한 목재를 털어낸다. 하리 패널들을 연결해 주는 핀을 제거한다. 만약 핀을 재거한 다음 헌치를 털면 갑자기 폼들이 밑으로 쏟아지게 된다. 작업 순서를 뒤바꾸면 위험하다. 삿보도(지주 동바리)들을 가로 세로로 이어주는 후리도메 철봉들을 제가한다. 동바리는 정확히 15일 후에나 제거하게 된다.

하리통 바라시 작업 후에 다른 사람들이 자재를 정리하는 동안, 김 팔뚝이(나의 팔뚝 두 배를 가졌기 때문에 김 씨에게 붙여진 별명)와 손을 맞춰 벽체 해체 작업을 했다. 그는 젊고 공손했으며 바라시 전문으로, 유능하기 짝이 없어, 저녁에는 애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한다고 했다. 우선 벽체의 다대(거푸집을 똑바로 세우기 위한 철봉)를 제거한다. 한 사람은 철봉을 잡고, 다른 사람은 철봉을 고정시킨 반생이나 후크, 즉 철봉을 폼에 고정시킨 재료를 제거한다. 다대(세로)철봉을 폼에서 분리시켜 정리한 다음, 같은 방식으로 요꼬(가로) 철봉을 제거한다. 벽체 폼 핀을 제거한 후, 한 사람은 폼을 잡아주고 다른 사람은 빠루(바라시 대)로 단단하게 벽체에 붙은 폼을 떼어내 정리한다.
해체란 것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재료들을 내리는 것이라서 중력은 가중된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작업하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하다 다치는 사람은 무능하다. 두 달 전 공정 때, 언어장애인 Y가 다쳤다. 무식하나 힘 좋고 시키는 대로 막일하는 그를 사장(오야지)으로 호칭했다. Y가 오른 손 엄지손가락 큰 뼈 금이 가고 작은 뼈 골절 후 몇 개월이 지났다. 그의 엄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산재를 청하기 위해 관리자들에게 서류에 사인을 부탁했다. Y에게 돌아온 대답은 ‘반장 해임’이었다. 산재 난 현장은 보험료가 올라가고 하청에서 불이익 받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 덕분에 유리한 것은, 즉 산업자원부뿐이다.

화병이 났다. 노동하면서 일 때문이 아니라 공손하지 못하거나 교양 없는 사람들의 말 때문이다. 노동자로서 원색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각양의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는 데에는 비용이 든다.
레미콘 공장 신축 현장이다. 평택항에서 일했던 팀이 옮겨왔다. 팀장이 작업을 지시하며 나와 J를 향해 말했다. “이씨, 타이 빼먹지 말고 다 꽂아. 저번 (평택항) 옹벽 핀 네 개 안 꼽았어.” 내가 물었다. “옹벽 터졌나요?” 터지지는 않았단다.

J가 나에게 말했다. “거봐요. 내가 핀 잘 꽂으라 했죠?”

순간, 처녀들이 시집가기 위해 안방 가는 그날까지 ‘승질’ 더럽다는 소리 듣지 않기 위해 상대 남자에 대한 불만에도 주둥이 꾹 다물고 있듯 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아, 씨발 너도 함께 핀 꼽았잖아” 하고 내 쏘고 말았다.

사정은 이렇다. 나와 J가 작업한 구간을 바라시하던 정씨가 폼과 폼을 연결하는 핀이 빠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행히 바대(폼 외부를 가로, 세로로 연결시키는 철봉)가 핀 빠진 곳에 붙어있어서 콘크리트가 터지지는 않았다. 출 퇴근길은 지루하다. 정씨는 심심파적으로, 재미있게, 핀 빠트린 노동자들을 조롱했다. “개쌔끼들이 손이 얼었나봐”, 이런 식으루다가.

J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나를 방패막이로 쓴 것은 천하고 비겁하다. 노동자들이 자기방어기제를 쓰는 이유는 한 가지 이유이다. 팀에서 찍히면 일하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팀을 떠나, 다시 외톨이로 이 현장 저 현장 떠돌아 일을 다니기로 했다. 야비한 인간들과 어울려봐야 득이 될 턱이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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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하는 사람들의 책임 한도

평택 항 작업 현장 앞 도로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입 곡물을 운반하는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 현장은 수입 곡물 터미널 신축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이 건물이 무었을 하든 관심 없다. 일해서 품값을 받아 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기 공장에서 일해도 되는가? 원자력 발전소 신축 일 해도 되는가? 지엠오 곡물 수입 건축물을 지어도 되는가?

무기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기 때문에 무죄인가? 박그녀는 외국에 있었으므로 진보당 해산 청구 국무회의에 전자 싸인을 했으므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것인가? 내가 원자력을 짓는 것이 아니라, 높은 사람들이 시켜서 일했을 뿐이지, 원자력 주변에 많이 태어나는 지진아들에 대한 책임이나, 반감기 수억 년의 방사능 폐허에 대한 무한 책임져야 하는 후손에 대한 책임은 없는가?

일하는 사람들의 책임한도에 대해서 물을라 치면 노동자의 가치라는 문제와 떼어놓을 수 없다. 노동하는 나는 단순히 생산력의 도구인가, 아니면 나는 생각하고 계획할 수 있는 존재로서 노동하는가의 여부이다. 전자라면 자본에 착취당해도 싸다. 후자라면 범죄와도 같은 노동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오신 손님이 앞에서의 여행에 함께 했다. 그는 국내에서 회자되는 지엠오 식품이니, 광우병 쇠고기니 하는 논의들에 대해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일상 그것들을 아무 문제없이 먹기 때문이다.

지엠오 식품이나 쇠고기가 미국과 한국의 잣대가 다르다는 설명을 하기란 요령부득이었다. 미국에서는 지엠오 식품이 없다. 이것을 허가 안하기 때문이다. 유독 국내에만 건너오는 것이 지엠오 농산물이다. 쇠고기 역시 미국에서 유통되는 것은 월령이 낮다. 송아지가 성우가 되면 바로 시장으로 간다. 우리 식탁에는 월령에 상관 없는 고기가 올라온다. 그러나 자국 시장에는 송아지에서 갓 성우가 된 고기를 유통시킨다 . 그러니 그 나라 사람들은 동양 어느 나라에서 벌어지는 촛불 시위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엠오 농산물은 광우병과 같이 위험하거나 더 위험성이 크다. 자신들을 ‘자연의’라고 칭하는 사람들인 즉, 야마기시 학원의 영향을 받아 인체에 자연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이들이 어떤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엠오 농산물은 우선 인체의 약한 부분인 관절, 물렁뼈를 친다. 2년간 지엠오 밀을 먹인 쥐에게서 종양이 솟아났다(한겨레 21). 종래의 실험용 쥐 검사는 6개월이었다. 그렇다면, 지엠오 곡물을 먹고 큰 축산물들은? 그러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지엠오 농산물로 만든 식용유, 밀가루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건강은?

미국 손님은 미국이 사람과 동물에게 그토록 해로운 물건을 다른 나라에 파는 부정의한 나라가 아니라고 믿는 듯 했다. 그러니 지엠오 논쟁이니,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이해시킬 수 없는 부분은, 보수주의자 손님이 미국 공무원의 자국 이익을 위한 행위, 도덕적 불감증 문제였다. 미국의 어느 판사는 한 미간 쇠소기 비밀협상이 끝난 새벽에 일어나 스위스 은행에 동결되어있던 이명박 회사 자금 해제 서류에 싸인을 했다(한겨레21).
?

?4. 데모크라시-국민의 독재

미국 손님으로부터 자신이 가꾸는 정원 손질에 대해 들었다. 정원에 여러 가지 나무들을 심었다. 그 곳에서 풀이 자라면 야단난다. 이웃에서 곧바로 신고가 들어간다. 그러면 벌금을 내야 한다. 따라서 보름에 한 번 꼴로 풀을 베어주거나 잔디밭의 잡초를 제거해야 한단다.(황금광 시대),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부정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의 민주주의란 부러울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국민의 독재란다. 공동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지,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란다. 수많은 이민족들이 함께 사는 곳이라서 질서 유지를 위해서라도 민주 독재가 더욱 철저하단다.

노동 현장에서는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노동이란 꿈도 못 꾼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일을 지시하는 사람들의 강제가 휠씬 많다.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요, 명령은 관리자들이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딱 잘라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라는 이분법이 작용한다.

곡물하치장 공사이후 유치원 신축 공사장을 갔다. 직영 목수 8명이 있었고, H인력에서 가끔 보는 이들 3명과 함께 갔다. 오야지가 일하는 우리들 주변에 지켜 서서 사사건건 일을 지시했다. 수시로 일의 방식을 바꿔 지시하기도 했다. 하루가 무척 길었다. 오야지의 말이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하루가 무척 길었다. 오야지의 말이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날은 J도 함께 갔다.

누군가가가 말했다.

“저 오야지와 함께 일하기는 힘들겠어.”

압권은 함께 일하러 간 X노인의 궁시렁이었다. 오야지가 안 듣는 곳에만 가면 노인이 한 마디씩 했다.

“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네가 해라 이자식아.” “너는 기본이 틀려먹었다 이자식아. 아침 밥도 안 멕이고 (쉴)참에 라면 주는걸 보고 알겠다.” “가만 있으면 알아서 할 터인데 아주 나쁜 놈이구먼.” “이제 퇴근한다 이눔아, 나는 너와 일 안할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노인이 말했다.

“못주머니 차고 함께 일하는 오야지하곤 일 할 만 하지만, 못주머니 안 차고 지시만 하는 사람과는 일하기 힘들다. 함께 일하는 사람은 품값도 더 쳐준다. 목수 힘든 거 알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X노인이 사회성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오야지와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X노인의 생각에는 일하는 사람들의 자존심이 반영되어있다. 오야지는 자기는 일 시키는 사람, 정신노동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목수 편에서는 노동 자체가 무의식적이 아니라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다.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작업한다. 따라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가 불필요하다.

기왕에 원자력 발전소 이야기가 나왔다. 몇 년 전에 완공된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4개 는 아직 가동을 못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부품 비리와도 관계있는 모양이다. 원자력 안전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인터뷰한 내용을 보았다(노컷 뉴스). ‘발전소를 당장 세울 만큼의 문제될 부분은 없다… 심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산업통상부 장관은 전수조사결과 지금까지 ‘심각한 문제는 없다고 들었다’고 했다. 누구인지 정확치 않으나, 어느 인터뷰이는 비리 품목의 부품들은 ‘외국에서도 사용한다‘고 말하더란다.

통속적 인간인 나는 스즈키 인트루더를 탔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돈을 만지자 맨 처음 이것을 샀다. 국산 오토바이의 성능에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다가, 지축을 울리는 그 소리와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애인 같은 모습에 반해서 샀다. 우연히 오토바이에서 국산 600CC용 부품을 발견했다. 정품이 아닌 비품을 사용한 오토바이는 생명의 문제와 연관 있다. 크게 손해 보고 원 주인에게 되팔았다. 개인 생명 달린 오토바이와 원자력사고를 비교할 수 있으랴만, 내 경험에서 할 수 있는 유비는 이것 뿐이다.

부정으로 검사를 통과한 원자력 부품에 대해 ‘별 문제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윤리불감증 정도를 넘어서 범죄가 확실한, 국정원과 군 사이버 사령부(기무사)의 선거 개입까지도 무조건 편드는 사람들이 이정권의 수혜자나 언제든지 신분 상승 기회가 있다고 믿는 엘리트들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에 놀랬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메말라 빠진 한 마디밖에 할 수 없다. 방송과 언론이 국민 의식을 장악하고 오랜 반공 교육을 통해 주입받은 것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무엇인가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혁신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민주주의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 투쟁의 시기가 지났다면 다시 올 투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일 게다.

읽어주신 분들게 감사 드린다…….

 

 

여성의 관점에서 차이의 경제와 대안도시를 생각한다[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②

여성의 관점에서 차이의 경제와 대안도시를 생각한다/13강-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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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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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그래함에 따르면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거래, 임금이 지불되는 노동, 잉여노동을 자본가가 취하는 자본주의적 기업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제한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규정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우리의 일상에서 수행되는 경제활동 중 하나일 뿐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본주의를 이렇게 제한적으로 규정하게 되면 우리는 자본주의 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순수 자본주의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상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대안적 시장이나 비시장적 거래가 존재하며, 대안적 지급이나 미지급으로 노동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대안적 기업이나 비자본주의적 기업 등과 같은 비자본주의적 기업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자본주의적 경제형식 아래 두 칸에 나열된 다양하고 풍부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보라. 깁슨-그래함에 의하면 시장거래가 아닌 윤리적 공정 거래나 협동조합 방식의 교환, 개인적 선물이나 국가적 배분과 같은 비-시장적 유통은 비자본주의적 경제이다. 화폐교환이나 임노동과 관계없는 품앗이나 자원봉사 혹은 대안적 지불 형태도 자본주의 경제를 벗어난 경제적 활동이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이나 공동체 사업 그리고 자영업 역시 생산된 잉여가치의 분배에 있어서 자본주의와는 다른 원칙을 갖는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 기업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적이라기보다 봉건적, 노예적, 독립적 혹은 공동체적 원리에 따라 작동하며 이 원리는 또한 성, 인종, 제도 여타의 규범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이지 않다고 해서 경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경제형식들일 뿐이다,

깁슨-그래함의 모델에 따라 앞서 제시한 조씨와 같은 여성의 활동을 분석해 보면 그녀가 다층적인 차원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삶은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들로 점철되어 있다. 봉건적 가족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녀의 가사노동, 친인척 돌보기는 비지불 노동이지만 사용가치를 생산한다. 그녀는 봉건적 가족 관계 내에서만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공동체적 관계 안에서 학교에 봉사활동을 하며, 아이 돌봐준 이웃의 아이들에게 과외지도를 한다. 이러한 봉사활동, 품앗이, 호혜적 노동은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다. 그녀는 사적인 관계 내에서 순수 비자본주의적인 경제활동만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가 일주일에 네 번 정도 하는 프랑스어 과외지도는 화폐를 통해 매개되는 임금노동이라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노동이 순수 자본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지하시장에서 노동하며 자영업자로서 자신의 잉여노동을 자신에게 배분한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에도 연루되어 있다.

이로써 분명해 지는 것은 조씨가 경제와 분리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 활동은 한 가지 혹은 두 가지의 본질적 경제체제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제형식들과 다층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녀는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풀어야할 문제는 그녀가 수행하는 경제적 활동이 어떻게 대안적 잠재성을 갖는가이다. 만약 우리가 기존의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를 강력한 경제형식으로, 비자본주의를 나약한 경제형식으로 간주한다면, 조씨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은 언젠가 자본주의에 의해 침투되고 식민화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깁슨-그래함은 어떤 전략에 따라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의 긍정적 가능성을 주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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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제적 차이의 담론과 중층결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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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그래함이 사용하는 전략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녀들은 비자본주의뿐 아니라 자본주의마저도 복수화함으로써 본질로서의 자본주의가 가졌던 막강한 힘을 탈각시킨다. 이것이 바로 본질주의에서 경제적 차이로의 전회이다. 다른 한 편으로 그녀들은 이러한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바탕으로 중층결정론을 주장한다. 다양한 경제 형식들 중 어떤 하나가 본질로 설정될 수 없으므로 이제 경제는 다양한 형식들이 상호교차하는 가운데 중층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의 전략부터 살펴보자. 앞서 설명했듯이 깁슨-그래함은 기존의 이론과 달리 우리 사회가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으며 이것은 전체 경제형식의 50%이상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이미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양식이라고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그러나 깁슨-그래함은 이에서 머물지 않는다. 깁슨-그래함은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재소환하는 것을 넘어서 자본주의마저도 복수화시킨다. 그녀들은 여성주의적 관점을 한 발 더 밀고나가 여성 정체성이 다양하다면 남성 정체성 역시 다양하게 이해될 때 대칭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이 있다면 자본주의적 경제 형식 역시 다양하다고 주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깁슨-그래함은 자본주의 역시 하나의 통일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논증한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형태학으로 파악될 수 있는 통일된 형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들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가 전형적으로 자본주의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금융부문도 전적으로 자본주의적이지 않다. 가령 개인투자관리사와 같은 자영업자는 자신의 잉여노동을 스스로 전유한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인 특성과 절합되어 있고, 자유로운 사업대출 분야의 성장은 많은 비자본주의적 기업 특히 자영업 활동의 신장에 기여했다. 그녀들에 따르면 주어진 정의를 매끈하게 따르는 그런 순수한 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은 생각보다 적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말해왔던 것처럼 매끈하거나 통일적이지 않다.

이렇게 자본주의마저 복수화하는 전략은 깁슨-그래함의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급진화시킨다. 이제 그녀들의 정치 경제학 내에서 모든 요소들을 관통하거나 지배하는 통일된 단일자로서의 본질은 없다. 알튀세르의 말처럼 모든 사건은 그 순간에 존재하는 모든 조건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지 하나의 본질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깁슨-그래함의 두 번째 전략이다. 이 전략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본질로서의 위상을 잃게 됨에 따라 그 강력한 힘도 잃게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괴물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경제형식 중 하나일 뿐이다. 이로써 경제 영역은 다양한 경제 형식들이 절합하고 혼종되는 장소가 되며, 여기서 다양한 차이들의 성격과 방향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중심은 없다. 새로운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강력하거나 통일적인 영웅 혹은 최후의 승리자가 아니다. 경제적 차이의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과의 절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 온 하나의 경제형식일 뿐이다.

반대로 비자본주의는 더 이상 무력한 경제형식이 아니다. 깁슨-그래함에 따르면 비자본주의는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에 널리 퍼져 있으며 고유의 힘을 통해 자본주의를 변형시키고 탈구시키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은 정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력한 혹은 낡은 경제가 아니다. 오히려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은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세계에서조차 자본주의적 경제형식 이상으로 존재해 왔으며, 유령처럼 늘 자본주의의 주변을 맴도는, 결코 제거되지 않는 힘들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기존의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에 대해 겁을 먹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늘 우리 곁에 있었던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그 힘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껏 말해왔던 방식의” 자본주의에 종말을 고하는 여성주의적 정치경제학의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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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의 대안적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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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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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그래함의 차이의 경제학 속에서 조씨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은 사소하지 않다. 그녀의 가부장적, 공동체적 경제활동은 자본주의적 경제에 의해 먹혀들어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 앞에 떨지 않아도 된다. 자본주의는 이제 괴물이 아니라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과 절합되는 하나의 경제요소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깁슨-그래함의 청사진은 객관주의자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곤 하였다. 정치경제학이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강력한 자본주의는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 객관주의자들은 담론을 달리한다고 해서 객관적 세계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반론에 대해 깁슨-그래함은 두 가지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한 편으로는 그녀들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의 사례들을 발굴하고자 하였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러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확장시키려는 실천을 통해 담론이 세계를 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가령 깁슨-그래함은 호주 탄광촌의 광부 부인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들이 어떻게 가부장적 착취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의 논리에 대항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사례에 따르면 탄광회사는 광부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조건으로 불규칙적인 교대근무의 조건을 제시했는데 광부의 부인들은 그러한 조건이 가내의 착취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이유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 가내의 생산적 노동자로서 광부의 부인들은 자신의 봉건적 착취에 대항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힘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적 논리의 확대에도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깁슨-그래함은 잉여의 공동 분배를 지향하는 협동조합 활동이나 상호 호혜적 노동이 만들어 내는 공동체 경제의 형성에도 주목하면서 이러한 경제형식들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깁슨-그래함이 제시하는 사례들이 발견될 수 있는가? 오래 동안 우리는 사회의 전체 영역에 자본주의가 침투하고 있다는 각본에 매달려 왔다. 많은 비판이론들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보여주는 데 열중해왔다. 그러나 비판이 강하게 고조될수록 자본주의는 괴물과도 같은 형상을 드러냈으며 그 괴물은 어떤 저항에 의해서도 극복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침범되고 강간될 수밖에 없는 나약한 것으로만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제 관점을 바꾸어 깁슨-그래함의 언어 속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을 다시 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우리 역시 여성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 가진 잠재력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해 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던 사건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가족들의 밥상을 위해 신자유주의적 논리의 확산에 저항했다. 그들의 저항은 가족 내에서의 그녀의 생산적 경제활동에 기반하여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품앗이의 사례들도 주목할 만하다. 과천에서 만들어진 지역 공동체에서 수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품앗이 활동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녀들은 한 시간 단위로 자신의 노동을 책정하고 서로의 노동을 교환한다. 내 아이를 한 시간 맡기는 대신 머리 염색을 한 시간 해주거나 과외지도를 한 시간 해 주는 식이다. 여기서 노동의 가치는 자본주의적 시장의 가치체계에 따르지 않는다. 모든 노동은 공평하며 돈이 없어도 일상의 많은 생활이 가능하다.

이렇듯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채택하게 되면 여성의 경제활동은 나약하거나 사소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대안으로 나타난다. 앞서 제시했던 조씨의 경제활동은 봉건적 혹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무력한 부정적 활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잉태하는 공동체적 활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자본주의를 경제의 유일하고도 막강한 형식으로 보면서 여성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폄하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받아들이고 이와 함께 비자본주의적 경제의 실천을 의식적으로 감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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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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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12> 들뢰즈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들뢰즈

 

강사 :김범수(숭실대 외래교수)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80년대 마르크스 수용에서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의 변화와 현대 철학

마르크스의 『자본』은 혁명의 시대였던 80년대 중반에 한국에 들어온다. 당시 대학생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었고 그 실천을 모색했었다. 그런데 동구권의 몰락이 시작된 89년 이후 90년대 초반에 이런 분위기는 깨진다. 동구권의 몰락은 당시 사회주의적 기조의 지식인은 물론 지성사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르크스를 대체할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그 대안이 처음에 하버마스와 푸코, 알튀세르 등이었다. 이어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일어났고 현재는 프랑스 철학이 현대철학을 대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90년대 알튀세르와 푸코가 등장하면서부터 사람들은 혼란스러워졌다. 이른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데, 과거 이데올로기와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모습을 보여준다. 학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불지만 한국 사회현상은 이걸 못 쫓아갔다. 그래서 한국의 학자들은 첨단 현대철학의 본령이라 부르는 프랑스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포스토모더니즘이라는 말은 프랑스에서는 1930~40년대에 사용된 말이었다. 당시 한국은 서양의 첨단 학문을 미국을 통해서 들여오다 보니 미국에서 쓰는 말 그대로를 들여왔던 거다.

▲ gilles deleuze

그럼 우리의 이상적인 모습을 담은 이른바 미래학자는 누가 있을까? 찾아봐도 없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는 지금도 헤어 나오지 못한다.

2000년대 들어와서 라캉 이후에 학계 전반에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유행하게 된다. 우리의 지성사에서 우리는 프랑스 철학자들을 보면서 도대체 주체가 누군가라는 것을 따지곤 한다. 이 주체는 독일적 관점에서는 선험적 자아로서의 주체로 볼 수도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사회변혁의 주체이다. 프랑스에서도 따지는 부분이 이거다. 그런데 들뢰즈는 주체가 없다. 그럼 우리는 들뢰즈를 어떻게 봐야할까?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의 마지막 강좌 열두 번째 시간에는 들뢰즈의 철학을 만났다. 특히 이번 강의에서는 니체와 관련된 들뢰즈를 보기로 했다.
 
들뢰즈의 철학사

들뢰즈는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했다. 당시는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기였는데 어린 들뢰즈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던 그의 형이 포로수용소로 가는 길에 불행하게도 총살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그의 삶의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총살 사건이 있던 곳에서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수리철학자들이 있었는데, 카바이예스와 로트망과 같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의 와중에 그는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나중에 소르본느에서 철학을 공부한다. 이 역시 매우 특이한 이력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거의 유일하게 고등사범학교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1948년에는 철학 교수자격시험 아그레가시옹을 통과하게 된다. 이후 들뢰즈는 1956년도에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에 관한 논문을 쓴다. 그리고 60년대 중반까지 철학사를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한다.

들뢰즈의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던 철학자는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스피노자(Spinoza, 1632~1677),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을 들 수 있다. 들뢰즈가 보기에는 이 세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고 이 공통점이 들뢰즈 사상의 핵심이 된다. 여기서 김범수 교수는 들뢰즈의 철학에 기반한 철학사의 구분은 1930년대와 그 대척점에서 1960년대 이후의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고 한다.

김범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1930년대는 문화적인 충격과 과도기의 상황을 가진 시대였다. 이 시대에 프랑스 철학계에서는 어떤 일이 생겼는가? 프랑스 철학계는 1930년대부터 60년까지 ‘3H’의 시대로 요약된다. ‘3H’란 헤겔(Hegel), 후설(Husserl), 하이데거(Heidegger)를 말한다. 이 시기는 나치가 집권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왜 헤겔인가? 프랑스 내에서 이때까지 헤겔 번역이 안 되었다. 20년대와 30년대는 헤겔 번역본이 없었다. 프랑스는 1930년대까지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번역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존철학과 함께 헤겔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행사되었던 시기이다. 이때 코제브(Alexandre Kojeve, 1902~1968)의 강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제브는 헤겔을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중심으로 소개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게 했다.”

반면 60년대에는 실존주의 현상학과 대립되는 방향으로 니체와 노골적으로 변형된 마르크스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60년대 이후는 프랑스에서는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을 새롭게 해석하는 견해가 형성되면서 구조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대표적인 학자는 라캉과 알튀세르 등이 있다. 그리고 ‘3H’의 대척점에 있는 철학자로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를 들 수 있다.

들뢰즈에 영향을 준 철학자들 :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30~60년대 : 헤겔, 후설, 하이데거 ↔ 60년대 이후 : 미를로-퐁티, 사르트르

들뢰즈에 영향을 준 철학자 :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들뢰즈는 스스로 베르그송주의자임을 밝힌다.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초월성 비판이다. 아울러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이 세 사람은 초월성에 대해 비판하는데, 초월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고 ‘이념(이데아)’을 넘어선 것이다. 이들은 도덕적 ‘선(善)’의 개념을 넘어서고 비판했다.

서양철학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확실한 무엇인가를 찾다 보니까 결국 신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의 자기전개’를 얘기했는데 절대정신은 결국 신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선한 개념을 더 붙여서 ‘세계정신’, ‘신의 정신’이 발현된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바로 헤겔 철학의 일면이다. 여기에 대해 비판한 사람이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이다.

니체는 대놓고 ‘비극의 가치’에 대해서 얘기한다. 기존의 가치의 기원을 따져서 ‘가치를 전복’시킨다. 그리고 신을 죽여 버린다.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실체개념’이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실체’는 바탕과 기저에 깔려있는 것으로 이것이 근대에 와서는 ‘자존적인 존재’로 바뀐다. 다른 것에 원인 받지 않고 존재한다는 개념을 두고 보면 인간은 자존적 존재는 아니다. 그럼 자존적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자체일 것이고 실체는 곧 ‘자연자체’이다. 이 실체는 중세 철학에서는 신이었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신적 자연’이라는 말을 한다. 스피노자가 말한 자연에는 초월적인 신이 개입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스피노자는 네덜란드 유태인 공동체에서 퇴출된다.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를 얘기한다. 생명 자체는 가지고 있는 어떤 목적도 없다는 것인데, 이 얘기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을 붕괴시킬 수 있는 요소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에서 헤겔, 후설, 하이데거는 ‘이성’으로 문제의 해결을 도모한다.

그 해결의 종착점은 ‘초월성’이고, 곧 ‘신’이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광인들을 격리시켰고. 제도권으로 폭력을 통해 감금시켰음을 폭로했다. 이것이 이성의 폭력이었고 광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의 시각이다. 이것은 바깥으로부터의 사유이다. 이 바깥으로부터의 사유를 하는 사람들을 포스트구조주의자라고 얘기한다.

김범수 교수는 이렇게 보면 프랑스 철학의 계보는 엄밀히 얘기하면 30년대부터의 이성적 전통의 부류와 반대편에 있는 부류가 섞여있는 셈이라고 한다. 실제로 프랑스 철학은 강단철학과 대중철학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대중철학에는 들뢰즈와 푸코가 자리하고 존재론과 이성적 탐구를 하는 강단철학은 헤겔, 후설, 하이데거가 포함된다고 한다. 이어서 김범수 교수는 “하버마스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하이데거, 아도르노, 푸코, 데리다와 같은 학자들을 니체를 계승한 탈근대 철학자들로 규정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규정은 프랑스 철학의 진영에서 보자면 반가운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헤겔과 반(反)헤겔의 규정으로 나누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김범수 교수

베르그송주의와 들뢰즈

데꽁브((Vincent Descombes, 1943년 출생)의 경우 현대철학의 과제를 헤겔 비판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는 하이데거노선에 따르면서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 등으로 연결되는 노선과 후기구조주의 노선으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분류에 따르면 들뢰즈는 후자의 노선에 서 있는 학자이다. 이 시기 들뢰즈는 「구조주의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통해 구조주의를 특징을 밝히면서 자신과의 차이를 정리했다.

들뢰즈는 68혁명 목도 후 국가박사가 되는데 이후 가타리(Felix Guattari, 1930~1992)를 만난다. 들뢰즈는 가타리와 조우하여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공저로 『반-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이 있다. 이후 들뢰즈는 혼자서 몇 권의 책을 출간한다. 문학과 예술에 관한 책이 주류를 이루는데, 마지막 글은 「내재성 : 하나의 생명」이라는 짧은 논문인데, 이 논문은 자신의 존재론을 정리하는 아주 중요한 글이다. 여기서 들뢰즈는 자신의 지적 스승은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임을 밝히고 그 중에서도 베르그송주의를 드러낸다. 들뢰즈는 이 글을 끝으로 1995년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투신한다.

베르그송은 수학에 천재성이 있었지만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과학사에서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실증주의는 ‘양화(量化, 이성)’를 통해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물리적 양화로 설명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베르그송은 시간이라는 것도 양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자연과학에 대한 비판에는 생물학을 이용했다.

그런데 들뢰즈는 구조주의자이기는 하지만 라캉의 노선과 다른 구조주의자로서, 들뢰즈는 변화율을 다루는 미분방정식을 통해 베르그송과는 다른 수학에서 나온 개념을 도입한다. 이를테면 ‘특이점’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특이점’은 다른 것과 교환될 수 없는 독특한 점이다. 김범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예를 들면 야구를 소재로 한 3D 애니메이션 영화의 모션 캡쳐 촬영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타자의 운동을 모션 캡쳐 한다고 할 때 이 때 센서들은 타자의 방망이나 팔과 다리 등 운동성이 보이는 곳에 부착될 것이다. 이곳에 부착된 센서들은 배우의 머리에 붙여져 있는 센서와 서로 교환될 수 없는 특이한 성격을 가진다. ‘특이점’은 이런 비유와 같다. 들뢰즈는 이것을 가지고 ‘역동적인 생성의 체계’를 설명하려 했다.”

베르그송의 원뿔 도식과 들뢰즈 경우에의 변용

베르그송은 유명한 ‘원뿔 도식’을 통해 ‘지속’을 눈덩이에 비유했다. 우리의 기억은 몸속에 계속 복합적으로 쌓여간다는 것이다. 기억의 만들어짐과 이것이 어떻게 현재화 되었는지를 말한 것이 『물질과 기억』이다. 그런데 김범수 교수는 베르그송의 그림은 반만 그린 그림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들뢰즈의 철학에서 본다면 마치 거울에 비추어져 있는 원뿔의 모습과 같이 변형시킬 수 있다고 한다.

위 그림을 보면, 과거의 시간대 부분이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가 될 것이다. 들뢰즈는 ‘이념(Id?e)’을 무의식의 세계에 가져다 놓는다. 들뢰즈가 여기서 말하는 이념은 무의식 세계에서 말하는 ‘욕구’들을 말하고 이것은 끊임없이 문제를 발생시키는 존재이다.

들뢰즈는 후기에 가면 이념이라는 말 대신에 ‘욕망’이라는 말을 직접 쓴다. 이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인간은 ‘욕망하는 기계’가 된다. 이 욕망하는 기계가 제도를 깨부수는 것이 ‘탈영토화’이다. 탈영토화는 정해져 있는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 탈영토화는 한 번의 ‘역량’으로 만들어진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구조적으로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나누었다. 이 때 충동대로 움직이려는 것은 이드이고 초자아는 나를 억압하는 기제이다. 초자아의 억압이 사회적으로 나타나면 법_제도가 된다. 사회문화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반영하지만 법과 시회적인 제도는 초자아가 양심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

이런 제도적인 가치가 있으면 사회적인 금기가 강해진다. 그런데 이 금기는 깨부수어야 할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는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이것을 관통해서 나오는 인간형이 ‘스키조(Schizo)’라는 인간형이다. 일종의 정신 분열자라고 할까. 여기서 말하는 정신 분열자는 임상에서 말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bermensch)’이 이것이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같은 인간이다.

김범수 교수는 니체의 초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기존의 인식이 너무 잘못되어 있다고 한다. “니체의 초인이 단순히 인간을 넘어서는 뭔가가 아니다. 초인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평범한 인간과 같다. 변화를 통해 늘 ‘생성’하려고 했던 존재가 바로 초인이다. 슈퍼맨이 아니다. 스키조도 방향 없이 제도적인 억압을 뚫고 지나려는 사람들이다.”

위의 그림에서 생성되는 원리는 ‘반복’이다. 그런데 우측 원뿔(상에 비친 부분)에서도 반복이 일어난다. 이 경우는 ‘동일성에 의한 반복’이고 좌측 원뿔인 과거는 영역은 ‘차이나는 것들에 의한 반복’이다. 그리고 ‘강도’라는 것은 터지려고 꿈틀거리는 것을 말한다. ‘강도’라는 말은 그 자체로 힘이 들어가 있다. 이 힘들이 응축되어 늘 터져 나오려고 한다. 그리고 현재를 상징하는 가운데의 꼭지점과 비대칭으로 이루어져 늘 ‘생성’되려고 한다. 강도의 차이는 고도차로 인한 기압의 차로 인해 공기가 순환되는 구조에 있을 때 강도의 차이다. 이것은 빅뱅이라는 비유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이념’과 ‘차이’가 밖으로 터져나오려하면 ‘생성’이 되고, 분명 사회적으로 억압하는 기제들이 있는데 그것은 ‘초월성’이 된다. 사회적인 것은 또한 인간의 무의식적인 것을 반영하는 것이 된다.

위의 그림은 들뢰즈가 설명하려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김범수 교수는 리처드 도킨스가 유전자는 생존기계라고 말했다는 것을 거론하면서 들뢰즈의 철학에 의거한다면 유전자를 생존기계라고 표현한 것은 탁월한 용어 선택이었다고 한다. 들뢰즈는 ‘초월성의 체계’, ‘재현체계’, ‘표상체계’를 싫어한다. 특히 들뢰즈는 인간에 대해 ‘유기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기계’라는 말을 쓴다. 이는 가타리도 마찬가지다. 가타리는 인간을 ‘욕망하는 기계’라고 표현했다.

들뢰즈가 말하는 이념(Id?e)의 의미와 몇 가지 용어들

프랑스어 ‘Id?e’에서 대문자 ‘I’를 쓰는 것은 서양철학의 이데아를 의미한다.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을 칸트의 철학체계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그대로 대문자를 쓴다. 대신 그 내용과 용어는 완전히 뒤집어서 쓴다.

‘이념(Id?e)’의 구성요소는 ‘강도’와 ‘미분’이다. 강도는 고도차, 위도차, 압력차처럼 힘으로 가득한 것들이고 이것을 설명해주는 역동적인 수학체계로서 미분이 있다. 미분에는 ‘차이를 담고 있는 요소’란 의미가 있다. 또 ‘생물학적 분화의 요소’가 포함되고, ‘나의 창조적 행위’도 포함된다.

이 강도와 미분은 힘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가만있지 못하고 터져 나오려는 상태에 있다. 개체인 인간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것은 ‘억압’ 때문이다. 그 행동은 일종의 ‘반복 강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거의 무의식 영역이 현재로 터져 나오려고 하는 것을 존재론적으로 말하면 ‘반복’이라고 한다. 반복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과거의 ‘경험과 습관에 의한 반복’이 있고(옷 입은 반복), ‘새로 생겨난 반복’의 경우가 있다.(헐벗은 반복) ‘옷 입은 반복’이란 풍성하다는 의미이고 ‘헐벗은 반복’은 빈약하다는 의미인데 이 때 한 개체가 가지는 ‘욕망’은 ‘자발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비자발적인 면’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를 만들어가는 또 다른 형태로서의 ‘개체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들뢰즈의 후기저작으로 가면 ‘강도는 잔존’하지만 ‘미분과 이념’에 대한 얘기는 빠진다. 빠진 그 자리를 들뢰즈는 ‘욕망하는 기계’라는 말로 대신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가타리의 개념이다. 이것을 뚫고 나가는 힘을 ‘스키조’라고 하고 들뢰즈는 지구 전체를 ‘알’로 표현한다. ‘생명이 분화’되기 때문이다. 생명은 ‘분화’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는 지구를 ‘기관 없는 신체’에 비유하기도 한다. 들뢰즈는 이런 새로운 개념들이 만들어지면서, 이를 일컬어 ‘새로운 사유의 인지’라고 했다. 또 그것이 구성되는 속성에 대해서는 ‘내재성의 평면’이라고 했다. 우리 ‘경험세계의 응축성’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반대의 지점에는 ‘표상체계’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재현’과 같고 이것은 ‘억압하는 것’이다. 정해져 있는 ‘체계’가 있고 그 체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표상’이다. 어떤 목적이 정해져 있고 그 ‘합목적성’에 의해 맞춰서 형성되는 것, 즉 ‘주체’에 대해서 들뢰즈는 비판하는데 여기서 ‘주체’는 ‘초월’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것은 ‘이념(Id?e)’의 정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점선의 영역 미래는 ‘영원회귀’라고 할 수 있다. 영원회귀는 예전에는 자연의 주기에 맞추는 ‘동일성의 반복’이라고 보았지만 들뢰즈는 세계에는 같은 것이 없고 생성만이 이루어지고 ‘생성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개념으로 썼다. 영원히 돌아오는 것은 ‘생성’이다. 동일한 내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영원회귀’를 ‘원형의 반복’이라고 보는 관점은 들뢰즈가 보던 관점 이전의 것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사태에 의해 80년에 죽은 누군가와 90년대 죽은 누군가는 원형의 반복이다. 이것은 종교적 제례의 의식이나 역사적 사건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반복하는 대상이 ‘동일’하다.

그림의 꼭지점 부분 현재는 습관적인 체계에서 과거를 끄집어낸다. 그런데 ‘비자발적으로 나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 되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성’이다. 미래를 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젊었을 때 여행을 간다고 가정해보자. 자유롭다. 자유로운 이유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게 된다. 미래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재성의 존재론

김범수 교수는 들뢰즈의 서양철학의 탄생과 그 처음의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토스(mythos)에서 로고스(logos)로. 이 말은 서양철학의 탄생과 발전을 압축적으로 담은 문구이다. 다시 말해 서양철학은 ‘확실성’을 추구했고, 이것은 철학의 출발이다. 존재를 연구하는 기본 전제는 변화나 생성이 아니라 ‘정지’였다. 이것임과 저것임이 동시에 주장되는 것은 존재의 규정으로 말할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추방을 선택하지 않고 독배를 선택했던 이유는 결국 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이것과 저것이 공존하는 세계가 아닌 확실성으로, 존재로 충만한 저 세계에 대한 동경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죽음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통에서 ‘불변’은 ‘선한 가치’를 담고 있다. 서구 지식인들의 의식에는 불변과 선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봤고, 이를 추구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세상은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로 가득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이것이 들뢰즈 철학의 문제의식이다. 기존 철학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는 가장 확실한 것이었다. 가장 잘 규정 할 수 있는 것. 불변의 것, 정지해 있는 것이 가장 선한 것이고 확실한 것이라고 믿었다. 서양철학은 가장 실체적이라는 정지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도덕적 의미에서 선(善)이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이 ‘선의 기원’을 따져보자는 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내재성의 원리’이다. 이것은 니체의 계보학에서 왔다. ‘가치의 기원’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들뢰즈는 내재성의 철학에서 첫 번째로 얘기하는 것이 ‘사유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이다. 어떤 장소에 몇 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식’의 영역이다. 이것은 사유가 아니다. ‘사유’는 충격이 오고, 하나의 사건이 만들어지고, 무언가 생성이 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변화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대해 생각해 내는 창조적 과정이 사유’이다. 기존의 관습체계가 아니란 말이다. 만약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지를 기반으로 말한다면 실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할 수 없다. 그 사유체계는 들뢰즈에게 있어서 일종의 나쁜 것이다. 이것을 니체는 ‘독단적 사유의 이미지’라고 했다. 사유는 사건의 조건과 환경을 따져서 해야 한다. 이것이 푸코가 말한 ‘바깥으로의 사유’이고 들뢰즈는 바깥으로 나가 사유의 전제조건을 봤던 것이다. 들뢰즈는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 또는 확실성의 확보를 모두 제거하고 이것 없이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우리의 경험으로 응축된 새로운 사유를 하고 적극적 생성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들뢰즈의 ‘내재성’이다.

박은미의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철학자의 서재]

박은미의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철학자의 서재]

 

현남숙 (가톨릭대 초빙교수)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상처받은 삶, 철학으로 치유하기

삶은 원래 상처를 포함하지만 그 상처는 고통을 느끼는 감수성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외적으로 삶은 풍요로워지고 개인의 권리도 그 어느 시기보다 커졌지만 내실은 어떠한가? 신자유주의의 경쟁과 시장원리는 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내면을 그 어느 때보다 동요시킨다.

경쟁에서 도태하면 가차 없이 모욕을 주는 이 낯선 문화에서 힐링 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다. 하지만 자신과의 근본적 대면 없이는 근본적 치유도 불가능하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힐링은 일시적 효과에 그치고 만다.

자신과의 근본적 대면은 철학, 특히 실존철학의 근본 주제였다.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 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박은미 지음, 소울메이트 펴냄)은 각종 힐링 산업의 시대에 철학의 정공법으로 자기치유의 방법을 제시한다. 실존철학을 전공하고 철학 카운슬링을 연구한 저자가 철학 상담의 목적과 방법을 염두에 두고 이 에세이를 썼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에피소드들을 저자 자신의 경험과 철학으로 풀어낸다. 공감할만한 이야기들과 함께 왜 우리는 ‘진짜 나’로 살지 못하는지, 그것이 어떤 고통을 주는지, ‘진짜 나’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해 준다.

박은미,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 소울메이트, 2013


 

누구에게나 삶은 억울한 것

책의 소제목 중에 “누구에게나 인생은 억울하다”는 대목이 있다. 한겨울에 꽁꽁 언 음식물 수거함을 뒤지는 고양이에게도, 등록금을 위해 시험기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에게도, 불철주야 고생했지만 어느 날 조기퇴직당한 직장인에게도, 삶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기초적인 분배부터 인정욕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억울함을 느낄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억울하다. 이랬으면 좋겠는데 저렇고, 저랬으면 좋겠는데 이렇다. (…)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힘들다. 어느 정도는 되어주었으면 좋겠는데 항상 기대치에 못 미친다. 그 ‘어느 정도’가 사실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내 인생은 그 정도도 되어주지 않는다.” (32쪽)

저자는 세상에 문제없이 사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인간은 자신이 겪는 일 중에서 가장 덜 좋은 일을 불행으로 규정하는 성향이 있으므로 누구라도 불행을 느낀다는 것이다. 욕망의 상대성 때문에 행/불행을 느끼는 것은 공평하다는 저자의 통찰에 수긍이 간다.

저자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에 던져졌지만 그럼에도 내 의지로 나를, 세상을 변화시키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각자가 처한 한계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좀 더 행복한 삶을 살려면 있는 힘을 다해 그 상황을 수용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태클 없는 인생은 없다. 누구나 태클 없는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 이것이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비합리적 전제다. 남들은 다 겪는 태클을 나만은 겪지 않기를 바라다니! 그러나 태클 자체가 없는 인생은 없다. 우리에게는 그 태클을 어떤 방식으로 대결해내서 나의 삶을 진짜 나의 삶으로, 정말 내가 주인이 되는 진짜 나의 삶으로 살 것인가의 문제만 남는다.” (228쪽)

태클을 끌어안고 나아가라는 저자의 이 말은 니체의 운명애를 연상시킨다. 저자 자신도 니체를 인용하면서 자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인간을 강한 인간으로 보고, 그 운명을 자신의 발전의 기회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핑계는 가장 쉬운 해결책이므로, 운명에 대면하여 초월이나 포기가 아닌 변화를 유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 삶의 방향키를 남의 손이 아닌 내 손에 두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나’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

하지만 운명을 회피하지 않고 그 안에서 변화를 꾀해 보려 해도, 왜 우리는 ‘진짜 나’로 사는 것에 자주 실패하는가? 왜 우리는 살던 대로 사는 것에 익숙하여 자신의 경향성도 세상의 문제들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가? 저자는 이처럼 우리를 고통에 머물게 하는 삶의 차원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는데, 그 중 자신의 편향적 시선과 세상의 일률적 시선에 대한 통찰에 대해 알아보자.

편향적 시각이란 사태를 특정한 각도에서만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만사를 자신에게 익숙한 한 가지 각도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를 편향적으로 인식하면 심리적, 지성적 노력이 덜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편향적 시각은 궁극적으로 자기를 왜곡할뿐더러 자신과 연관된 타인과의 관계도 왜곡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자기의 문제는 모자람으로 보면서 타인의 문제는 나쁨으로 보는 우를 범하고는 한다. 하지만 거꾸로 자신의 문제는 나쁨의 문제로 보면서 반성하고, 타인의 문제는 모자람의 문제로 보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노력하지 않으면 타인을 악의적으로 해석하기 쉽다. 누군가를 호의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많은 심리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170쪽)

또한 일률적 시선이란 세계를 세상 사람들이 정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부, 성공, 권력 등이 좋은 것의 지표가 된다. 부, 성공, 권력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부과한 기준에 맹목적으로 나를 맞추려 하면, 자신을 왜곡할뿐더러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도 병들게 한다고 본다.

“우리가 공허에 시달리는 이유인 즉, 남들의 기준이나 사회적 기준을 받아들이고 그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애쓰게 되는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가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면 타인의 시선에 매이지 않을 수 있는데, 자신이 충분히 자신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인정을 획득하는 데 지나치게 종속되는 것이다. 내가 나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하면서 살면, 즉 자아실현을 하면 타인이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264쪽)

저자의 말처럼 ‘진짜 나’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내 안에도, 밖에도 있다. 우리 자신이 만든 편향적 시선이든, 세상이 만들어놓은 고정된 시선이든, 그런 것들에 매달려 있으면 자기다운 삶을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따라서 이것들을 넘어서서 ‘진짜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진짜 나’로 사는가의 판별기준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 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 던진다, 지금 내겐 확신만 있을 뿐”

한 뮤지컬의 삽입곡을 들으면서 그런 순간을 살고 있는지 질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진짜 나’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진짜 나’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또한 그 상황에서의 내가 ‘진짜 나’인지 어떻게 확신한다는 말인가?

저자는 ‘진짜 나’는 어떤 고정된 자아는 아니라 과정적인 것이라고 간주한다. ‘진짜 나’는 그때그때 나 자신으로 살려는 노력 속에서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진짜 나’로 존재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시한다.

“이것이 진짜 나다운 일인가, 지금 나의 삶이 진짜 삶인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일 죽어도 이 일을 하고 싶은가? 내일 죽어도 오늘처럼 살고 싶은가? 입니다.” (332쪽)

자신이 죽을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 왜 자기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가? 저자는 하이데거를 따라 시간의 유한성이라는 한계상황을 자기다움을 가장 잘 성찰하게 하는 존재론적 조건으로 간주한다. 지금이 삶의 마지막 순간이어도 그러하겠는가라는 실존의 물음은 삶의 방향을 ‘진짜 나’로 향하도록 바꾸어준다는 것이다. 즉, ‘진짜 나’로 사는 것을 미루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진짜 나’로 살기로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나’로 살기로 작정했다고 해서 온전히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리 ‘진짜 나’로 살아가려 해도 가까운 사람이 이해해 주지 않거나, 그 반대 상황이면 이러한 과정을 지속하기 힘들지 않은가? 가족이나 연인이 그런 삶을 반대해도 ‘진짜 나’를 쫒아 살아갈 수 있을까? 또한 가족이나 연인의 ‘진짜 나’에는 무심하면서 나만 그렇게 살아도 될까?

저자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진짜 나’로 살려면 나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존재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와 네가 서로 ‘진짜 나’의 너, ‘진짜 너’의 나가 되도록 그러한 삶을 인정하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본다. 저자는 야스퍼스의 철학에 근거해 일방적 ‘희생’이나 자신의 편향성에 치우친 ‘투쟁’이 아닌 두 주체간의 ‘사랑하면서의 투쟁’을 역설한다.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꿰뚫어보기 때문에 사랑의 과정은 우리 각자를 ‘진짜 나’가 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그래서 충분히 네가 아닌데 너와 소통하는 내가 충분히 나일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사랑하면서의 투쟁 속에서 동시적으로만 나와 네가 함께 실존이 될 수 있다.” (315~316쪽)

실제로 부부나 연인이 서로 자신의 삶을 인정해 달라고 하면 갈등이 생기고 다투게 될 것이다. 나를 포기하고 너를 사랑하면 ‘진짜 나’를 희생하게 되고, 너를 포기해서라도 나를 사랑하겠다고 하면 ‘진짜 너’를 희생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런 관계는 적어도 관계의 측면에서는 행복한 삶이 되지 못한다. ‘진짜 나’로 살기위해서는 타자도 그러한 본래적 삶을 사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진짜 나’로 사는 것은 유아론을 넘어 사회적 차원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내 마음의 주인으로 살기

누구에게나 자기 마음 하나 챙기기 어려운 날이 있다. 오늘 하루의 삶이 나답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거나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내일 아침이 기대되지 않을 때가 있다. 자기 마음 하나 가누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살겠냐고들 하지만, 당사자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방치하면 자신을 상처내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저자는 “나는 나를 들고 다녔구나”라는 황지우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나를 들고 다니지 말고 놓아주라고 말한다. 나 자신의 편향적 인식이나 세상의 인식에 맞추어진 ‘가짜 나’는 놓아주고, ‘진짜 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와의 화해 속에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행복한 삶을 살려면 자신의 마음을 가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해지려면 자기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것은 한 번에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마음을 가누는 법을 배우는 것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야 할 과제라 말한다.

마음에 관한 연구나 산업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가 보다. 하지만 내 마음 하나 챙기자고 열 일 제치고 템플스테이로, 상담소로 달려가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서로 ‘철학 카운슬링’을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적절한 상황에서 읽는 책은 가뭄의 단비처럼 마음을 평화롭고 쾌청하게 해 준다. 손에 가까이 두고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들춰보면 좋을 책이다.

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김 상태가 쓴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보고 듣고 생각하기]

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김 상태가 쓴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나태영(한철연 회원)

 

 

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한국고대사는 말 그대로 한국고대사를 다루는 학문이다. 하지만 한국고대사를 다루는 사람은 현대인이다.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현대인들이 한국고대사를 주로 다룬다. 이 책 글쓴이 김상태는 그래서 지금 한국고대사를 다루는 한국 사학자들 연구 방법을 냉혹하게 평가한다.?

김상태,, 책보세, 2012


김상태는 실명 비판을 한다.?

김상태는 강준만, 김갑수처럼 실명 비판 한다. 실명 비판 한다는 것은 나를 던지는 것이다. 용기가 없으면 실명 비판할 수 없다. 실명으로 칭찬하기는 쉽지만 실명으로 비판하기는 어렵다. 잘못하면 비판받은 사람한테서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왕따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상태는 훌륭하다.?

강준만, 김갑수, 김상태가 실명 비판하는 까닭은 공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 이다. 우리 역사에서 90점 받아야 할 사람이 40점 받는 경우가 많다. 신채호 선생이 그렇다. 20점 받아야 할 사람이 90점 받는 경우가 많다. 안창호가 그렇다.?

김상태는 대고조선을 주장하는 학자 신채호, 리지린, 윤내현, 복기대, 이덕일, 이희진, 성삼제가 90점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고조선을 주장하는 이완용 양아들 이병도, 이병도 제자 이기백, 노태돈, 송호정, 오강원, 김정배, 이기동, 박노자가 마이너스 90점 받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박노자는 한국고대사 이야기 그만하면 좋겠다. 한국고대사 글 계속 쓰면 진보적인 글 쓰고 받은 점수 다 까먹는다. 진심으로 박노자한테 부탁한다.?

그래도 이병도는 죽기 전에 정신 차렸다. 최태영 선생 덕에 정신 차렸다. 정신 차리고 대고조선을 주장하는 책을 최태영 선생과 함께 썼다. 그런데도 이병도 제자들은 아직도 얼이 빠져 있다. 너무 게으르다. 솔직하게 자신들 실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력 있는 사람들을 무시한다. 그들은 문헌사학을 포기했다. 오히려 문헌사학 대가 윤내현을 비난한다.?

저들은 고조선 관련 자료가 적다고만 한탄한다. 하지만 고조선 관련 자료는 많다. 윤내현은 저들이 게으름 피울 때 다음과 같은 책에 흩어져 있는 고조선 관련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을 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꽤어야 보배다윤내현은 서말이 안 되는 구슬을 꽤어 걸작품을 만들었다. 신채호 선생, 리지린한테 배우고 두 분을 뛰어넘는 일을 해냈다. 그런데도 저들은 윤내현이 이룬 것을 시기하고 질투만 한다. 윤내현을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매장하려고 한다. 나는 저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진정 학자인가??

한국사료:삼국사,삼국사기, 제왕운기, 고려사, 제왕운기, 고려사, 응제시주, 세종실록』〈지리지, 동국통감, 성호사설, 동국통감등등 ?… .중국사료: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통전, 만주원류고(서평자 주: 청나라 정사, 신채호 선생이 인정하는 책, 책 나온 지 300년 만에 공무원이 번역), 요사, 대명일통지, 관자, 산해경, 수경주, 여씨춘추, 염철론, 전국책, 실원등등 ?… .(171)?


이기백은 비겁했다.?

이기백은 한국사 신론 에서 자신이 식민사관 없애려고 애썼다고 말한다. 거짓이다. 이기백이 한국사가 식민사관 벗어나게 한 것 별로 없다. 한국사 시민강좌편집장 이기백은 한국사 시민강좌서영수, 이기동이 잘못을 지질러도 침묵했다. 이완용 양아들 이병도 제자답다. 이기백은 똑똑한 인간이다. 일본이 저지른 식민사관 한계를 알 것이다. 그런데도 못난 스승 이론을 고치려고 애쓰지 않았다.?

이기백은 한국사 시민강좌2집의 편집인이면서도 서영수의 거짓과 이기동의 빨갱이 때려잡기를 교정하거나 만류하지 않고 그대로 용인했다. 아니 편집인으로서 그들을 옹호하고 조장했다는 쪽이 더 맞아 보인다. 이기백 자신이 이미 윤내현 때려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316)고상한 선비차림으로 행세해 온 이기백에 대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317)?


윤내현한테 몹쓸 짓한 이형구

‘1981년 필자가 귀국한 후 단국대학교 사학과 모 강사가 필자의 석사논문(45)을 빌려간 다음 이를 윤내현에게 전달하였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반환되지 않았다. 윤내현의 글(<기자신고>, 1983)에는 필자의 석사논문과 일치하는 견해도 있으나 어디에도 전거가 보이지 않는다.’(486, 이형구)결국 이형구의 석사논문의 결론은 기자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만주와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이론으로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 이론의 방계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이것은 기자가 만주와 한반도에 온 적이 없다는 윤내현의 <기자신고>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형구는 지금까지도 이 이론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견해가 윤내현과 일치했다는 말인가?그럼에도 이형구가 저런 주장을 떠들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인용한 자료 가운데 일부와 그에 대한 해석의 일부가 같다고 우기는 것이다.’(488)


이이화는 한국고대사 공부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이이화는 기초적인 내용도 모른다. 성실성도 부족하다. 성삼제가 쓴 고조선 사라진 역사만 봤어도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다. 사마천은 사기란 책에서 사기 쳤다. 고조선 한나라 전쟁에서 고조선이 이겼는데도 한나라가 이겼다고 사기를 쳤다.?

한나라는 조선을 침략하여 승리하고 나서 한사군을 세웠기 때문에 굳이 왕검성을 버리고 요동에 낙랑군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이이화, 이야기 한국사1, 266(이 책 93쪽에서 다시 인용)고조선과 한과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데 한의 장군들이 작전 실패의 책임 등을 물어 연이어 처형당하고 있는 것이다.‘위산의 군대는 황제 직할의 정예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위산은 패수를 건너보지도 못하고 회군한다. 그러자 한 무제는 위산도 처형한다.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한 위산에 이어 한무제는 제남 태수 공손수를 파병한다. 고조선을 침공하라고 추가 파병된 공손수는 도리어 아군 장수인 누선장군을 체포한다. 보고를 받은 한 무제는 제나 태수 공손수도 처형한다.‘(고조선 사라진 역사, 성삼제, 121)?

독자 여러분한테 묻는다. 당신들이 한 무제이다. 한나라가 고조선한테 이겼다면 당신들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장군들 목을 치겠는가??독자 여러분은 이 책에서 이 부분만 읽어도 이 책 산 보람을 느낄 것이다.?


소고조선의 뼈대와 삼국사기불신론

송호정은 자신의 주저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36쪽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 형성 과정을 중심 주제로 설정한 것은 고조선이 국가 형성과 동시에 곧바로 멸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송호정이나 주류 고대사학계가 자신들의 입장을 이런 식으로 명확하게 밝히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 이 문장도 상세히 읽어보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찾아내기 어려운, 구석에 숨어 있는 문장이다.’?절반은 실수이고 절반은 이 책의 원본인 자기 박사논문의 지도교수가 노태돈이기 때문으로 보인다.’(189)? ?

어쨌든 고조선이 국가 형성과 동시에 망해버렸다는 것은 과거 고조선이란 조그만 부락이 위만조선이 등장하는 서기전 2세기 무렵에야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 수준으로 발전했다가 곧바로 한나라에 망해버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기전 2400년경에 건국되어 반만년 민족사를 이루어왔다는 고조선의 역사는 틀렸다는 얘기다. 이것은 소고조선론의 핵심 논리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하나만 덧붙이면’ ‘바로 한사군 이야기다.’?

‘1. 고조선은 서기전 2세기 무렵 국가가 되었다가 곧바로 망해버린 나라다. 최소한 서기전 1500년 이전부터 국가를 이루었던 중국의 은()나라나 그 뒤를 이은 주나라 및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들에 비추면 고조선은 그 기간 동안 줄곧 후진적인 부락 집단에 불과했다.?

2. 그 작은 나라를 한나라가 정복하여 한사군을 설치했고 이 가운데 낙랑군은 고조선 지역에 오래 남아 400년간 지속되며 이후 한반도 국가와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한사군 이야기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인데 이것도 꼭 기억해두어야 한다.?

주류 고대사학계가 가진 모든 이론적 논증구조의 핵심은 한사군이다. 이것은 일제시대 일본인 관변사학자들이 만든 전통으로서 그 일본 식민사학과 이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의 철의 법칙이다.?

이들은 고대사 어느 시대를 말하든 일단 한사군, 특히 낙랑군의 위치와 그 낙랑군이 존재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 한사군의 위치를 기준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옥저 등의 위치를 비정하고 한사군이 존재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옥저등의 시기를 배정한다. 고조선이 미개한 부락집단으로 전락한 이유도 근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나아가 이들의 위치를 기준으로 만리장성의 위치를 설정하고 심지어 이들의 위치와 연대를 기준으로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기록까지 마음대로 뜯어 고친다.’?

둘째, 만일 한사군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다는 이론이 무너지면 일단 고구려사를 연구한 송호정의 사부 노태돈의 평생 업적부터 휴지 조각이 된다. 한사군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다고 보는 노태돈은 고구려 성립 시기부터 그 위치, 영역, 군사적, 정치적 활동 전체를 한반도 내부에 있는 한사군과의 관계를 통해 배치하고 정리하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일이 이쯤 되면 한반도 내부의 한사군을 전제로 한 기존의 신라사, 백제사, 가야사, 전체도 모두 무너진다. 다시 말해 이병도, 이기백, 김정배, 노태돈, 송호정으로 이어지는 해방 이후 70년간의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의 고대사 이론 전체가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들이 윤내현 등장 이전에는 별로 신경도 안 쓰던 고조선사에 목숨 걸고 달려드는 실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디 이론만 무너지겠는가. 이론이 무너진 순간 그들의 수십 년간 나태와 권위주의와 학문적 무능력과 매국적 식민사학도 다 드러나게 된다. 국사 교과서에 이들의 수십 년 학문 내용의 오류와 본질이 기록되고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이 이 기록을 배운다고 생각해 보라. 이렇게 되면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 전체는 밤잠을 못 이룰 것이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윤내현을 왕따시키며 심지어 역사학자로 역사 문헌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 고대사를 왜곡하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92)?

인간의 행동 양태와 습관[철학을다시 쓴다]-⑫

인간의 행동 양태와 습관[철학을다시 쓴다]-⑫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보통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묻지 않죠? 상황이 바뀔 때, 또는 긴급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때,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고 현재까지 대응해왔던 방식으로 미래의 사태에 대비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농촌의 한 마을 공동체가 우주 전체가 돼서, 거기서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 죽어 뒷산에 묻히는, 시간이 지혜의 함수가 되는 삶 속에서는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슬기롭게 살아오면서 가뭄도 겪고 큰물도 겪고 관혼상제 등 여러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서 어떤 일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를 아는 어른들이 살길을 일러주고, 구태여 젊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묻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시간이 지혜의 함수가 되는 농경공동체에서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경험 확장이 지혜의 함수가 되는 유목사회에서도 떼 지어 다니면서 목축을 하거나 부족한 목축지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게 될 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강인한 사람이 앞장서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에 여기서도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곳은 도시사회인데, 특히 개개인이 자기 삶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부딪힌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나옵니다.

도시사회라 하더라도 상황과 체제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독재에 의해 강제된 상황이든 민주적인 합의에 의해서 서로 용인하는 그런 상황에서든 그 상황이 안정되어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나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강당 안을 걷는데, 이 강당 바닥은 평탄하기 때문에 왼팔과 오른팔의 움직이는 각도가 어떤지, 보폭이 어떤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평탄한 길에서 제 동작은 자동화됩니다. 보폭과 팔이 움직이는 각도가 가장 편하고 효율적인 상태로 조정이 됩니다. 우리 신체 동작의 자동화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걸을 때 머리로 어깨 각과 왼팔의 움직이는 각을 몇 도로 하지? 왼손은 이런데 오른손은 몇 도로 하지? 이렇게 계속해서 거기에 집착하면, 강박관념 때문에 우리 두뇌는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기 쉽습니다. 때문에 동작을 자동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깜깜한 밤길을 걷는다든지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산에 오르게 될 때는 보폭 하나하나, 손동작 하나하나에 일일이 신경을 쓰게 됩니다. ‘주의’(attention)가 이렇게 집중되는데, 이렇게 새로운 사태에 직면해 있을 때만, 우리 몸동작을 어떻게 해야 이 새로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숙고를 하게 되고, 그 때문에 그때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자기 내면에서 솟아오르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의식은 잠들고, 자동화 상태에서 우리의 신체 동작은 기계화됩니다. 외적인 강제가 엄청나게 심해서 도무지 다른 길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될 때나, 그런 체제에 있을 때도 우리 의식은 짓눌리고 동작은 최소한으로 바뀌면서 자동화가 됩니다. 이 때 자동화되는 의식의 반응과 행동이 가장 무섭습니다. 비극적인 상황이죠. 동작에서 자동화는 개인의 행동에서 습관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삶에 길들여진다는 말이죠. 상황이나 체제가 완고하게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때, 사고라든지 우리의 행동양태가 그것에 길들어서 습관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집단화된 습관은 ‘관습’으로 고착됩니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있죠. 모든 것이 외부적인 요인으로 해결이 될 때도 거기에 젖어서 길들여지고 우리의 습관이 거기서 형성됩니다. 사회적으로 더 큰 범위에서 보면 관습이 형성되죠. 그리고 그 관습은 윤리나 도덕으로 나타납니다. 법의 형태로도 나타나죠. 그런데 법은 강제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관습이나 윤리 도덕보다도 가변성이 더 큽니다. 잘못된 체제에서 우리가 그 체제를 뒷받침하는 도덕률을 익히고 윤리적인 규범을 내면화하는 것이 가장 큰 비극적 상황입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 드렸죠?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고, 있을 것이 없고, 없을 것이 있는 세상이 나쁜 세상이다. 우리가 없을 것이 있는 세상, 그러니까 억압, 불평등, 증오, 전쟁, 이기심, 탐욕들이 만연된 세상에서 ‘세상은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니까, 여기에 적응해서 내 살 길을 찾자.’ 이렇게 길들여지고 그 상황이나 체제에서 자기 자신을 순응시켜 행동을 굳혀가서 행동 패턴이라든지 사유방식을 특권화시키고 그것이 한 사회 전체를 지배해 증오와 이기심, 탐욕이 들끓는 사회의 모든 제도와 체제를 받아들이게 될 때, 희망이 없는 거죠? 나쁜 세상에 물든다는 것은 우리의 비판적인 성찰을 마비시킨다는 점에서 대단히 절망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없을 것, 없어야 할 것, 있을 것, 있어야 할 것은 현재의 시제가 아니라 미래의 시제로 표현됩니다. 있는 것을 있다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참말’이고 정직한 증언이지만, 미래의 삶과 연결되는, ‘당위’라고 하는 것, ‘윤리 규범’,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의 삶에 대한 전망이 바로 서지 않으면 족쇄나 올가미가 되기 십상입니다. 과거의 굳어진 가치관을 기초로 해 그 과거와 현실이 바뀌지 않고 미래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판단 아래에서 없을 것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마비된 의식이 우리의 행동을 마비시키고, 없어야 할 것이 가득 찬 이 세상에 주저앉히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우리 행동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어떤 식으로 길들여지는가, 그것이 장기적으로 어떤 습관을 형성하게 되고 한 사회에서 관습으로 굳어지는가에 대해서 깊이 성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농경사회에서 어른들이 자연과 관계 속에서 경험을 얻고 그것을 내면화해서 하나의 관습으로, 윤리관이나 가치관, 도덕률로 굳히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유목사회에서도 그 위험은 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도시사회는 어떻게 보면 흡혈귀들이 대낮에도 설치는 ‘식인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델리카트슨>이라는 영화 본 적 있습니까? 식량을 돈으로 쓰고, 사람고기를 먹죠.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을 뿐이지 모든 도시사회는 ‘식인사회’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사회입니다. 여기에 대한 아무런 근본적인 성찰이 없이 자기가 처한 상황과, 어떤 체제 속에 사느냐에 따라서 자기 정체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지요? 그러죠? 일종의 변형, 변환(Metamorphosis)인데 자동화나, 습관, 윤리, 도덕의 형성 과정을 잘 꿰뚫어보려면 고도의 비판의식과 창조적인 지성이 필요합니다. 비판의식이 왜 필요하냐면, 없어야 할 것이 있을 때, ‘이건 없어야 할 것인데, 없애야 하는데’ 하는 처방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판의식은 행동으로 나타날 때는 파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거나 기존 도덕률, 기존 가치관을 거부하기도 하고, 현실적인 파괴 활동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출처: rororo.net

9.11테러가 일어난 게 언제였죠? 군산복합체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 건물, 미국 국방성 건물을 테러리스트들이 공격했죠. 세계에서 제일 센 나라가 어디지요? 제가 우리 학생들한테 물어봤더니 미국이 제일 세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쳐요. 그래서 제가 ‘이 바보들아, 미국이 왜 젤 세냐? 아프가니스탄이 제일 세지’라고 말한 뒤에 아프가니스탄이 제일 센 이유를 말했죠. 세계에서 가장 국민소득이 낮은데다가 어찌나 외교 역량이 부족한지 파키스탄 하나와만 국교를 맺고 있고, 미국이 무서워서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국교를 단절한 나라인 아프가니스탄에, 군사가 오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미국이 혼자 쳐들어가기 무서워서 예순 여섯 나라를 줄 세워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아프가니스탄은 그 전에 강력한 소련군이 와서 탈레반을 소탕하려고 쑥대밭을 만들었는데도 버텨냈어요. 그렇다고 외교 역량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어서, 한때 미국 돈 받아 소련하고 맞장 떠서 살아남았죠. 그런데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미국을 비롯한 힘센 연합군들이 곤경에 빠져 있지요? 그러니 아프가니스탄이 최고로 센 나라 아닙니까?

제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삼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어디에 썼는데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 세계 삼차대전은 진행 중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죠? 일차 세계대전과 이차 세계대전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식민지를 뺏으려고 싸운 전쟁이라는 고정관념이 그대로 우리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에 삼차대전도 국가들 사이에서 땅뺏기로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WTO 체제도 세계대전의 한 형태인데, 이제는 완성된 금융독점자본에게 국경은 의미가 없습니다. 미국은 아직까지 오사마 빈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돌리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제삼차대전의 형태는 내란입니다. 저는 전쟁이 내란 형태로 전개되는 것이 인류를 위해서 큰 다행이라고 봅니다. 왜 그러냐면 옛날처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편갈라서 싸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럼 인류를 몇 천 번 몰살시키고도 남을 만한 핵무기가 가동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 안에서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핵무기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됩니다. 적과 아군이 뒤섞여 있으니까 자기나라 안에서 핵무기를 터뜨릴 수는 없죠. 그래서 이제 비로소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가 국가라는 단위를 중심에 놓고 ‘애국심’을 내세워 서로 결탁해 다른 나라의 자기 형제들에게 총을 겨누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다고 보면 됩니다. 세계 이차대전이 벌어지게 될 때 사해동포주의를 부르짖고 국제 연대를 주장했던 사람들이 결국엔 ‘애국심’에 불타서 동료들의 가슴에다 총을 겨누었죠. 이제는 적어도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국내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자기를 노예화시키고 착취해야 살 수 있는 계급이 누구고 자기가 연대해야 할 계급이 누구냐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선을 넓혀갈 수 있습니다.

그 모범을 9.11테러가 보여줬는데 이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맞장뜨자고 하는데, 그건 뻔하죠. 석유욕심 때문에 그러는 거죠. 제가 이런 말을 하면 곧 잡혀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림자 박물관[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⑤

그림자 박물관[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⑤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신기해 하는 나루에게 할아버지는 그림자를 팔면
가장 빛나고 힘쎈 왕이 되게 해준다고 했어.
그리고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모두 줄 수 있다고 했어.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