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릴레이 시국선언-⑦ 쥐구멍에 강제로 볕들게 하기

쥐구멍에 강제로 볕들게 하기

 

김성우(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맑스의 저작 중에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대단히 희귀하지만 주옥같은 정치 분석에 해당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60여 년간의 혼돈의 과정에서 겨우 획득한 의회공화정이 결국 4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독재체제로 붕괴되었다. 그것도 그토록 평범한 한 인물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양상을 분석하면서 맑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한다. “헤겔이 어딘가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세계사의 모든 거대한 사건과 인물은 말자하면 두 번 일어난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즉,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인민혁명당 사건은 1974년 4월 군사독재에 맞서 대학생들이 궐기하자 당시 중앙정보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명을 구속기소했으며 법원은 이 중 8명에게는 사형, 15명에게는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사형이 선고된 8명은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20여 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자체 조사결과,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당시 반국가 단체라고 발표된 인혁당은 서클 수준의 단체였으며 수사과정에서 각종 고문이 자행됐다는 점이 인정됐다. 그리고 2차 인혁당 사건의 중심이었던 ‘인혁당 재건위’는 실재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박문각) 결국 이 사건에 관해서 2007년 서울중앙지법의 재심 판결은 1975년의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여러 번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 개명된 대한민국의 2013년 무더운 한여름에 인혁당 사건이라는 비극이, 맑스의 경구처럼 다시 희극으로 일어난다. 유신독재시대의 중앙정보부가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인혁당이 다시 이석기를 필두로 한 지하혁명조직(일명 RO)으로 바뀌어 등장한다. 이 사건이 희극적인 이유는 관련 당사자가 모두 현실을 거부한다는 데 있다. 극소수가 비현실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환상을 논의하는 장면이 있다. 그들 스스로도 이를 농담이라고 변명한다. “국가안보 수호”에 전념하는 한 국가기관의 원칙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이다. 그래서 그 기관은 은밀하게 불법적인 정보조작으로 대선에 개입한다. 결국 그 국가기관은 자신의 불법 행위를 규탄하는 국민들의 잇따른 촛불 시위와 정치권에서의 조직개혁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수세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은 그 기관이 억압과 거짓을 향한 무명의 헌신에 전념한 까닭이다. 반전을 꿈꾸며 그 기관은 무명의 헌신이라는 원칙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번에는 유명(有名)의 헌신에 착수한다.

그 기관은 극소수의 비현실적인 환상이 내란음모죄에 해당한다며 수사를 선언한다. 그것도 공익을 빌미로 불법으로 녹취한 자료를 가지고서 말이다. 내란이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는 행위를 말하며 음모란 이를 위해 모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극소수의 비현실적인 환상의 담론이 이러한 폭동을 모의하는 구체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혹시 이러한 비상식적인 관점은 “국가안보 수호”를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여 자신의 불법 행위를 망각하게 하고픈 그 국가기관의 오래된 망상은 아닐까? 이와 같이 이번 수사에 대해 국민적인 의혹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그 기관이 자신의 원칙인 무명의 헌신을 저버리고 국가의 정치판을 모조리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그 기관에 햇볕이 잘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에게는 커다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이런 까닭에 국민은 역사적으로 반복된 이토록 웃기는 사건을 접하면서도 웃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함과 됨’의 차이[철학을다시 쓴다]-⑨

‘함과 됨’의 차이[철학을다시 쓴다]-⑨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함과 됨’: 운동의 난제
 

여러분들, 서양의 ‘히스토리’(history)라는 말의 어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물리학사, 철학사, 생물학사 같은 ‘역사’를 이야기하고, 서양에서는 그것을 ‘히스토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어 ‘히스토르’(histor)라는 말에서 나온 건데 히스토르라는 말은 증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실증적인 증언의 뒷받침이 없으면 신화나 상상, 환상이라고 하지 역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역사는 실증과학이라고 하는 말, 이 말을 널리 퍼뜨린 사람이 누구입니까? 실증과학의 아버지는 누굽니까? 불란서 사람인 오귀스트 콩트(August Conte)입니다. 그 사람은 물리학, 화학뿐만이 아니라 사회학, 철학까지도 실증과학으로 만들려고 애썼던 사람입니다. 근대과학의 밑바닥에는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과학이 깔려 있습니다. 물리현상이나 생물현상이나 화학현상이나 인간현상이나 전부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보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그 법칙을 설명하지 않으면 전부 헛소리로 치부하는 거지요.

“화학에서는 가장 큰 난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불.”

“그렇죠!”

불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는 간단하게 급격한 산화현상이라고 배웠지만, 산화현상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지극히 후대의 일이고, 불이란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이 화학에서 가장 큰 난제였습니다.

생물학에서 가장 큰 난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자연 발생설에 대한 논박이었습니다. 파스퇴르가 나타나서 비로소 아주 조그만 생명체도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에서만 생명체가 나온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 전에는 그냥 세균이라는 것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오귀스트 콩트(1798~1857) / 출처: blog.joins.com


 
물리학에서 가장 큰 난제이고 현재까지도 큰 난제인 것은 무엇입니까? 운동의 문제입니다. ‘한다’, ‘된다’, 이런 것이 전부 운동하고 연관된 문제입니다. 크게 봐서 운동에는 몇 가지 운동이 있습니까? 질적인 운동과 공간운동, 두 개로 크게 나눌 수 있죠? 질적인 변화와 공간에서 위치 변화, 물리학자들은 질적인 운동을 어떻게 봐요? 양적인 운동으로 환원하죠? 어찌 보면 물리학자들이 극단의 환원주의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고대원자론자들이 그랬듯이 단순한 요소를 가지고 전체 우주 삼라만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그런데 질적인 운동을 양적인 운동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가? 이 운동 문제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지금 현대 물리학자들이 빠진 궁지가 있습니다.(홉킨스도 마찬가지고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고, 저는 다 그 수렁에 빠져 있다고 봅니다.) 원자론자들은 개방된 우주를 상상했습니다. 원자들도 무한하고 우주 공간이 외연적으로도 무한하다고 해서 개방된 우주를 생각했는데 현대 물리학자들은 폐쇄된 우주를 그립니다. 아인슈타인의 통일장 이론이 일차적으로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것은 하나의 폐쇄된 우주입니다. 질서 있는 운동을 설명하려고 하니까 폐쇄된 공간이 필요한 겁니다.

“열역학 제1의 법칙이 뭡니까?”

“에너지 보존의 법칙.”

“네, 에너지 보존의 법칙입니다. 이게 철학적으로는 어떤 뜻을 지니고 있습니까?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없는 것에서 무언가 새로 생겨나지도 않고, 있는 것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거죠? 안 그렇습니까? 어떤 면에서는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철학적인 문제를 물리학적인 동어반복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 다음 열역학 제2의 법칙은 뭡니까?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건 무엇입니까? 무규정성이 늘어난다는 말이죠. 무질서해진다는 것은 무규정성이 늘어난다는 거고, 그리스 사람들 이야기를 따르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늘어난다’, ‘인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것이 늘어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 늘어난다’, 라는 거고, 그걸 물리학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어떤 말이 되겠습니까?”

“…….”

“이놈 저놈이 질적으로 구별 안 된다는 말입니다. 결국은 등질화된다는 말입니다. 고전물리학의 완성자로 알려진 뉴턴은 운동을 두 개로 나누는데 수평운동과 수직운동이 합쳐져서 무한히 튕겨나가지도 못하고, 무한히 오므라들지도 못하고, 우주에 떠 있는 것들을 둥글둥글 돌게 만든다, 이 두 개가 합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서 우주선도 돌고, 지구도 돌고, 달도 돌고, 해도 돌고, 천체도 운행된다고 이야기하죠. 참 아름다운 이론입니다.”

그런데 중력 중의 중력은 뭐라 그러죠? ‘블랙홀.’ 지금 우주 산지사방에 블랙홀이 있는데, 그 블랙홀을 전부 끌어 모으는 최종 블랙홀이 나올 겁니다. 그게 중력중의 중력이거든요. 중력중의 중력에 중심이 있어서, 흩어지려는 모든 무게 있는 것들을, 성운이라든지 개별적인 별들을 끌어 모아서 통일장을 이룬다는 것이 아이슈타인의 생각이고, 거기에서부터 현대 물리학자들이 한 치도 벗어나려고 들지 않고,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파괴 정도에 있어서 고대 원자론자인 데모크리토스 학파의 이론을 못 따라갑니다. ‘빅뱅’(Big Bang)이든지 ‘블랙홀’(Black Hole)이든 옛날부터 원자론자들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것들을 이론적인 정교함, 섬세함을 더하고 수학을 덧붙여서 새로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실제로 알고 있는 정치경제학 이론이라든지 현대 자연과학 이론, 이 모든 이론들이 물리학 이론을 중심으로 마치 성단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면 중심은 ‘환원’입니다. 소립자로 환원시키든,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환원시키든, 이 모두가 환원론들입니다. 여기저기서 환원론이 지배질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물을 던져서 그 그물에 걸리는 고기만 잡아야 하니까, 그것이 이론적으로 아름답고 깨끗하니까, 이론을 그렇게 만들어 내는데, 도시사람들은 서로 무엇이 닮아 간다 했죠? 생각이 닮아간다, 시골사람들은 손이 닮아 가는데, 도시사람들은 생각이 닮아 간다, 그런데 왜 이렇게 생각을 통일시키려고 듭니까? 왜 모두 이렇게 단순한 걸로 환원시키려고 들까요?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18)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18)

글: 이정호 (방송통신대학교 교수)

 
* 주제 3에서는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제8장 “Zur Philosophie, Wissenschaft und Redekunst”(Gesammelte Werke, Band VII, s. 275-421)의 내용을 수회에 걸쳐 발췌 요약하는 방식으로 소개한다.
 

주제 3 :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 그리스 철학과 과학의 지성사적 기원과 의미

 

2. 신화와의 결별

가. 현인들의 등장

철학의 시초로 여겨지는 이오니아학파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잠언들이 지혜의 옷이었다. 이른바 7현인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이 잠언들을 만들어 낸 사람들 중 가장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직 신화와 결별 하지는 않았지만 신화에 비의존적인 사유 세계를 들고 나왔다. 이들 일곱 명의 이름들은 늘 하나같지는 않았다. 언제나 거론되었던 사람은 탈레스(Thales), 핏타코스(Pittakos), 비아스(Bias) 그리고 솔론(Solon)이고, 나머지 3사람으로는 코린도스의 클레오불로스(Kleobulos), 스파르타 사람 케일론(Keilon), 페레퀴데스(Pherekydes), 아나카르시스(Anacharsis), 에피메니데스(Epimenides) 등이 각기 다른 조합으로 함께 거론되었다. 이 현인들에 참주가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후대의 견해 때문에 그리스의 솔로몬이라고 일컬어지는 코린토스의 페리안드로스(Periandros) 대신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라코니아(혹은 크레테) 출신 뮈손(Mys?n)이 거론되기도 하였다. 플루타르코스는 ‘현인(sophos)’이라는 호칭이 대부분 정치영역에서의 탁월한 능력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고 탈레스만이 그러한 실제적인 요구를 넘어선 인물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탈레스는 현인인 동시에 이오니아 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왔고 헤로도토스의 책에서는(『역사』 제1권 74-75) 일식(日蝕)을 산정해내거나 할뤼스(Halys) 강의 흐름을 바꾸는 등 다방면으로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이러한 현인들 모두를 아직은 얼마간 신화적이고 일정한 유형적 특색을 가진 인물들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연대 상 태어난 해가 백년 이상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모두 델포이 혹은 코린토스에서 열리는 페리안드로스의 향연 모임에 함께 자리하게 한 들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이들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특별한 신화적 표현이 바다 속으로부터 주워 올려진 “황금 솥” 이야기에서 발견된다. 델포이의 신탁에 의하면, 이 솥은 가장 영리한 사람(신을 경애하는 마음이 가장 열렬한 사람이 아니라)에게 하사되었던 까닭에 소유권이 우선 탈레스(혹은 비아스)로부터 시작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차례차례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누구도 이것을 영구적으로 소유할 수 없었고 그래서 마침내 이 솥은 델포이 혹은 이스메네스강의 아폴론에게 헌납되었다.

탈레스 (기원전 624-526년)

델포이 신전의 벽에는 이들 일곱 명의 현인들의 잠언들이 황금 문자로 각각 적혀있었다. 이것이 언제, 어떻게 또 누구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들에게 이러한 잠언들 중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그것들 중에는 잠언뿐만이 아니라 잠언풍의 경구( Apophthegmen) 및 일화도 들어 있다. 대부분은 윤리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그 중 아주 짧으면서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들이 가장 비중 있게 여겨졌다. 또 담긴 내용들이 항상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그곳에는 “다수(die Mehrzahl)는 나쁘다”라는 말도 있다.

잠언투의 말이 어느 모로나 예전부터 있어왔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은 이미 헤시오도스의 『일과 나날』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다른 한편 스파르타 사람들 역시 스파르타식 간결한 표현으로 잠언투로 말하는 형색을 계속 유지해오고 있었다. 이 점에서는 그리스인들과 오리엔트 사람들 모두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오리엔트 사람들의 경우는, 인도는 예외이긴 하지만, 격언적인 것(즉,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것) 이상으로, 그것도 비유적 이야기의 단계 이상으로 나가지는 못했고 어떤 윤리학도 전체적으로 이러한 것들과 관계를 끊는 일이 없었다.

7현인들에 병행해서 그들과는 다른 계열의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들과 동시대에 살면서 그들과 접촉했던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기인(奇人)들(die wunderlichen Heiligen)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으나 그들을 하나의 명칭으로 거론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스인들은 아주 특별할 정도의 뛰어난 사유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특히 다음과 같은 제약 또한 가지고 있었다. 즉 그리스의 민족종교가 형이상학적으로 견실하지 못하고 게다가 부정합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 민족 종교는 우주 만물에 대한 설명으로서도 불충분한데다가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분명하게 설명하는데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아무런 윤리적 규정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이 종교에서는 일부 오리엔트 민족 종교에서 압도적으로 나타난 것과 같은 신관에 의한 조직적인 변혁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브라만교의 조직, 조로아스터, 모세 등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종교들이 거쳐 온 변혁의 과정이 이 종교에서도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러한 까닭에 천성적으로 사유능력을 타고 난 이 기인 내지 괴짜들이 자기들의 민족 종교에 대해서 일시적으로 제기 했었던 특별한 이념조차도 여전히 종교적인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표현에 있어서도 비유적이고 신화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조차 모든 사태를 나타냄에 있어 (더 이상 비할 데가 없었던) 신화적인 표현법을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이와 같이 자력으로 자기들의 생각을 신화화해가면서, 다른 한편에서 이미 활동을 시작한 철학과 더불어 그 경쟁자로서 이윽고 아폴론적인 사람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금욕에 의해, 마음의 망아적 상태에 의해, 격정으로 들끓고 있는 그리스 전 국토에 속죄의 위로를 주는 정화 의식에 의해, 기적에 의해, 그리고 영혼 윤회라는 교설을 내세워 이상한 빛을 주위사람들에게 비추어가면서 교세를 넓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그 후 전승에 의해서 다채로운 모습으로 만들어 졌고 공상의 인물이 되어, 그들 자신이 다시 신화적이 되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육체를 떠날 수 있는 사람들로 알려졌다는 점이다.

페레퀴데스(기원전 580-520)

이런 사람들의 한 명으로서 누구보다도 먼저 크레테 출신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를 들 수 있다. 그의 생존연대는 참주 퀼론(kylon)의 피살로 인해 쇠퇴한 아테나이를 그가 정화시켰다(기원전 612년 또는 596년)는 전승에 의해서 확실하게 알려져 있다. 어쨌든 그는 속죄의 신관이고 예언자로서 우주생성론을 썼고 또 그 자신의 주장에 의하면 수차례 윤회전생 했다고 한다. 모든 사태를 유형적으로 파악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의 특징을 한 명의 인물 위에 겹쳐 쌓으려고 하는 그리스인들의 강한 의지는 벌써 이 에피메니데스를 마침내 그리스적 감각이나 사고로부터 생긴 자신들의 공상과 대체로 일치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다음으로 아바리스(Abaris)를 들 수 있는데, 이 사람은 휘페르보로스(Hyperboros) 즉 아폴론신을 숭배하는 민족이 사는 전설상의 나라에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기원전 600년 이후) 실제로 생존하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정화(淨化) 신탁이나 예언을 행하면서 그리스 본토 전역을 돌아다녔던 사람이다. 후대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아폴론신에게서 받은 한 개의 화살에 몸을 싣고 공중으로까지 날아다녔다고 한다. 아바리스와는 반대로, 프로콘네소스 출신 아리스테아스(Aristeas)는 북쪽지방으로 가서 그곳에서 휘페르보로스를 찾아다녔다고 알려진 사람인데,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그는 아리마스포이(Arimaspoi) 사람 이야기를 쓴 서사시의 작자이고 포이보스(Phoibos : ‘빛나는’의 의미로 주로 아폴론을 가리키는 수식어)에 의해 접신 상태가 되어 아리마스포이 사람의 이웃인 잇세도네스(Issedones) 사람들의 나라로 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면 언제라도 자신의 육체를 분리시켰다. 메타폰티온(Metapontion: 타렌툼 해안에 위치한 도시)에서 그가 아폴론신의 수행자로서 까마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역시 영혼 윤회의 일단이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 이 영혼 윤회 사상을 그리스 본토에서 처음 가르친 사람은 페레퀴데스였다. 그는 퓌타고라스의 스승으로 페니키아의 신비의 책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역시 특히 지금 전해지고 있는 그의 책(『신들의 탄생』)이 실증하고 있듯이, 사물의 본성에 대한 그의 관념과 예측(Ahnung)을 여전히 신화적 형식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는 점술가이자 천문학자로서 생활하고 있었다.

앞서 우리가 살핀 사람들 각각은 분명 극히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에 더해서 그야말로 아폴론적이지 않고 오히려 디오뉘소스적인 종파 혹은 당파가 처음으로 출현하기에 이르는데 그들이 곧 오르페우스(Orpheus) 교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 오르페우스 교도는 아마도 이미, 앞서 이야기한 사람들로부터 당연히 예상될 수 있는 어떤 상념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잘 이용했다고 생각된다. 또 그들은 처음부터 오르페우스와 결부되었다고 거짓으로 꾸민 문헌을 내세워 정화를 통한 행복을 보증하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우주생성론을 주장하였으며 금욕과 채식주의를 실천하였고 행복에 이르는 저 세상에서의 생활을 언급하면서 영혼 윤회의 가르침을 설파하였다. 육식을 금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도 아마 이 영혼 윤회 사상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오르페우스 교도들이 그리스적 삶에 속죄(Buβe)라는 개념을 끌어 들여, 현세의 생활이란 무덤에서의 생활과 서로 닮았다(to s?ma s?ma. 육체는 묘지이다)고 여기면서 이 땅에서 반복되는 탄생의 연쇄(kyklos genese?s)로부터 벗어나는 삶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진정한 삶은 그들에게 있어서 육체성(Leiblichkeit)을 넘어서 있는 저 피안에서 드디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오르페우스 교도의 조직은 새롭고도 특별한 종교로서 나타나 그 교세를 넓히려고 노력했지만 그러나 그 특수한 내용이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전파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2. 신화와의 결별. 다음에 계속)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릴레이 시국선언⑥-잔적(殘賊)의 도당은 전복된다

잔적(殘賊)의 도당은 전복된다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감사가 끝났다. 결과는 뻔했다. 누구는 할 말을 당당하게 했지만 한 톨의 거짓 없이 사실을 실토해야 할 사람은 장막 뒤에 숨어, 있던 일은 없다하고 없던 일은 있다했다. 영혼 없는 공복(公僕)이라고 했던가. 영혼 없는 공복은 사복(私僕)이다. 이들은 이제 충성스런 사복을 자임하며 자신들의 과오를 한 여름 이슈로 마감하려 한다. 하지만 아직 추억의 사건이 되기에는 이르다. 누가 그만두라고 했나?

국정원 심판에 대한 국민들의 의지는 아직 불탄다. 시내거리에 촛불을 든 시민들, 언론?지식인들, 각 처의 운동가들, 정치관계자들까지 모두 지난 대선의 진실을 폭로하고 이를 통해 상식을 벗어난 행정수반과 정치권의 행태를 리셋시켜 그들이 초심으로 귀환함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정치공작들과 교묘한 장난질에 실로 감탄(?)을 표할 일이 많아질 것은 예상되는 바이다.

그런데 그 장난질이 도를 넘었다. 고인을 관에서 끄집어내 시정에서 조리돌리듯 하는 것도 모자라 검증이라는 이유로 남북 국가정상의 회담내용까지 공개해버리고 이제는 유신정권에서 자행되었던 내란음모죄까지 부활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 내부의 혼란을 조장하고 국가를 전복의 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국정원의 행태다. 국정원이 자행한 결과로 발생한 조직 내부의 불안과 위기를 민주주의와 사회의 진보를 지향하는 시민, 인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맹자는 “인(仁)을 헤치는 것을 잔(殘)이라 하고 의(義)를 헤치는 것을 적(賊)이라 일컫는다.”고 했다. 지금 국정원은 국민들 사이의 믿음과 신뢰를 잃어버리게 했으니 인을 헤쳤고, 헌법을 유린하며 자행한 불법을 스스로 묵과하고 또 다른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으니 의를 헤쳤다. 인의를 뭉개버린 무리는 ‘시정잡배’일뿐이며 전복의 대상이다. 또한 그 사태를 관망만 하고 있는 박 대통령은 맹자의 말대로라면 필요 없는 지도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생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고 헌법질서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것은 국정원과 청와대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조속히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정확한 수사와 진실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주의의 주체는 국민이고 시민이다. 민주주의에서 개혁의 대상이 개혁을 요구하는 주체를 역으로 공격한다면 맹자가 말한 잔적(殘賊)을 헛갈려 아는 것이다. 잔적은 민생을 돌보지 않고 국민을 기만하며 국론분열을 조장하는 교활한 권력에게 붙이는 말이다. 잔학하고 교활한 권력은 개혁의 대상에서 곧 전복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릴레이 시국선언⑤-‘민주주의’라는 유령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민주주의’라는 유령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조은평(건국대 비정규직 교수 노동자)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이 유령에 맞서 집권세력들은 ‘종북’과 ‘안보’라는 낡아빠진 카드를 들이밀며 이 유령의 출몰에 대응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허울 좋은 명목을 내세워 낡고 늙은 보수주의자들의 결집을 호소한다.

하지만 정작 ‘민주주의’라는 유령의 출몰을 초래한 것은 바로 집권세력 자신들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이 국정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죽음을 애도하며 분노하는 외침이 시작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절차에 국가 기관이 개입한 사건. 그래서 대통령 선거라는 중요한 민주주의적 절차를 훼손한 사건.

이런 민주주의의 죽음을 애도하며 전국에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 긴 세월을 거쳐 비로소 민주주의 공화국을 탄생시킨 시민들은 민주화의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유령이 배회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미 ‘민주주의’는 죽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저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고 믿으면서, 보다 민주적인 현실이 실현되리라 기대하고만 있었을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실재는 단지 ‘지연된 미래’에 불과하다는 걸 우린 잘 알고 있었다.

언론이 제대로 된 말을 전하지 않고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무참히 쫓겨나 자살을 택했을 때, 빈민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교육 현장이 더 이상 제대로 된 현실을 가르치지 않게 되었을 때, 이미 ‘민주주의’는 한 걸음 씩 뒤로 밀려나 죽어가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지연된 미래’에 대한 기대감마저 철저히 무너져 내렸을 때, 오늘날처럼 ‘민주주의’라는 유령은 다시금 그 봉합된 틈새를 뚫고 출몰하는 법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그 유령이 배회하는 오늘날의 상황은 더 의미심장하다.

집권 세력은 점점 더 초조해 하며, 이 유령의 출몰을 어떻게든 봉쇄하려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 출몰한 유령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거리를 채우고 있는 촛불의 물결은 이제 점점 더 큰 물결로 넘쳐날 것이다. 그리고 그 물결 속에서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건을 경험한 우리들이 단지 책임 있는 사과나 국정원의 개혁만을 요구하며 머뭇거릴 때, 앞으로 또 다시 새로운 ‘민주주의’의 유령은 언제든 다시 출몰할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만국의 민주주의자들이여 단결하라! 각자의 민주주의 슬로건으로 이 유령의 출몰에 함께하라!’고. 아마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민주주의자들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기에 이 슬로건은 터무니없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유령의 요구가 무엇인지. 어쩌면 바디우가 말한 ‘모두의 귀족되기!’, 그래서 우리 모두가 우리 삶을 좌우하는 현실에 관여할 수 있기를 요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령이 요구하는 민주주의다. 당신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이게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내라! 그리고 함께 이 유령의 출몰을 맞이하자!

 

 

나태영의 간도답사여행기[보고 듣고 생각하기]

나태영의 간도답사여행기[보고 듣고 생각하기]

 

나태영(한철연 회원)

 

 

나는 1997년 8월 31일 결혼했다. 인도네시아 발리로 신혼여행 갔다. 발리 사람들은 종교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리 사람들이 전통 옷 입는 것 보고 큰 감명 받았다. 그 영향으로 나는 7년간 생활한복 입고 출퇴근 했다. 4계절 열 세벌 생활한복 입고 출퇴근 했다. 아내와 약속 했었다. 결혼 10주년에 쿠바 여행 가자고 약속 했었다. 밥벌이에 허덕이다가 그리 못 했다. 결혼 한 지도 벌써 16년이 되었다. 그 뒤 해외여행을 못했다.

그러다가 얼숲(페이스북) 김갑수 작가 담벼락에서 정보를 보게 되었다. 성서중학교 2학년 딸 쌍둥이 나은진, 나은성과 함께 여행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때 독립운동하신 선열 발자취를 밟아가며 생각하며 깨닫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들이 고구려 기상을 배우길 기대했다. 중국여행 경험 있는 아내에게도 큰 기쁨이 되리란 생각에 생명보험 약관대출 받아서 길벗투어에 네 사람 여행 신청했다. 내가 실수했다. 당사자 세 사람한테 물어보지 않고 여행 신청했다. 당연히 세 사람이 좋아하리란 생각에 그리 했다.

은성이가 그런다. “아빠 행동은 가부장제 모습이야! 민주주의 방식으로 의논을 먼저 했어야지!” ‘여든 살 노인도 세 살짜리한테 배울 것이 있다’는 속담이 맞다. 내가 딸한테 한 수 배웠다. 결국 나 혼자 중국 간도답사여행 다녀왔다.

?나태영

2013년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여행했다. 광개토태왕 비는 작았다. 당신이 일찍 돌아가셔서 크게 짓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개토태왕 아들 장수왕 비는 크고 우람했다. 당신이 오래 사셔서 시간과 공을 더 들여서 크고 우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울 때 봐서 그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었던 게 아쉬웠다. 광개토태왕비에 절을 했다. 중국 공안이 뭐라고 말하며 화를 냈다.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내가 내 조상한테 절을 올리는 데 왜? 화를 내지?”

지금 중국이 억지로 밀어붙이는 하상주단대공정, 동북공정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 ‘공정’ 이란 두 글자에는 이미 ‘거짓으로 꾸며댄다’는 뜻이 들어있다. 아침에 호텔 로비에서 김갑수 작가한테 물었다.

“우리가 간도 땅을 되찾아야 하지 않나요?”

김갑수 작가가 답했다.

“우리에게 힘이 있어야지요!”

21세기 대한민국에 서희 장군이 없다. 앞으로 이 땅에서 서희 장군이 나와야 한다. 전쟁으로 간도 땅을 되찾는 것은 우리에게도 중국에게도 재앙이다. 간도답사 여행은 흥청망청 여행이 아니었다. 공부가 곁들인 여행이었다. 김갑수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 전문가이다. 한홍구 교수와 견줄만한 전문가이다. 나는 한국독립운동사에 대해 어는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한홍구 교수 책을 읽었기에 그리 생각했다. 김갑수 작가 강연을 듣고 내 생각이 틀렸음을 정확히 알았다. 내가 모르는 게 너무도 많음을 깨달았다.

김일성은 대단했다. 체 게바라도 김일성을 극구 칭찬했다.

“우리는 날씨도 좋고 먹을 것이 풍부하고 지원도 많이 받았소. 당신들은 추운 날씨에 먹을 것도 없고 지원도 받지 못한 환경에서 싸웠으니 당신이 나보다 더 뛰어납니다.”

당시 만주에 일본군이 75만명 있었다. 그런 악 조건 속에서 김일성은 대단한 전과를 올렸다. 김일성이 ‘신출귀몰’했다는 평을 들은 게 헛말은 아니다. 보천보전투에 대해서는 한홍구 교수 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언론에서도 자주 다뤄서 잘 알고 있다. 김일성이 이끄는 유격대가 국내로 들어와서 일본군을 쳐부순 전투였다. 이 전투로 말미암아 기운 빠진 독립군이 힘을 냈다.

간삼봉전투는 아는 사람이 드물다. 나도 김갑수 작가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 일본군 시체가 산을 이룬 전투였다. 일본군이 시체를 리어커에 싣고 갔다. 지나가던 사람이 거 뭐요? 물으니 일본군이 갑오자(호박)요 말했다

왜? 너무도 부끄러워서!

소덕수, 대덕수 전투에 대해서도 나는 처음 배웠다.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우지 못했다. 일본군이 김일성 유격대를 양쪽에서 공격했다. 김일성 유격대가 살금 살금 빠져나갔다. 일본군끼리 서로에게 총질했다. 일본군 피가 바다를 이루었다.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길 고대한다. 이 땅에서, 전 세계에서 체게바라보다 김일성이 더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넬슨 만델라보다 김대중이 이 땅에서 전 세계에서 더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갈 길이 멀다.
그래도 길을 찾아 걸어가야지!

뚜벅 뚜벅!

?나태영

구보 씨, 철학을 생각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구보 씨, 철학을 생각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문성원(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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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구보 씨는 최근 수강생들이 써 놓은 강의 평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스스로 강의를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엉터리는 아니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런 자만심에 금이 간 셈이다. 짤막짤막하게 한두 줄씩 써 놓은 강의 평을 훑어보다가 구보 씨의 눈이 멎은 곳은 다음과 같은 글귀에서였다.

“쉬운 얘기를 너무 어렵게 한다.”

아니, 이럴 수가… 이건 이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평가와 좀 다르다. 어렵다는 얘기보다, 졸린다는 얘기보다 더 충격적이다. 물론 어렵다거나 졸린다는 평도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선 나름의 변명거리가 있다. 우선, 어렵다는 거야, 원래 철학이 어려운 학문이 아닌가. 아직 분명한 해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궁리하는 게 철학이니, 어렵고 골치 아픈 건 철학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생각하기 싫어해서는 철학을 잘 할 수 없다. 또 설사 생각하기 싫다고 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몰리지 않는다면 철학을 시작할 수조차 없다. 그러니 철학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여러분은 골치 아플 각오를 해야 한다. 대신, 철학자들의 사유를 따라 평상시 깊게 따져보지 못했던 문제들을 들추고 파헤치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야가 열릴지 모른다. 구보 씨는 처음부터 이렇게 수강생들에게 당부를 하곤 했다.

강의가 졸린다는 점에 대해서는 책임을 다른 곳에 돌리기가 쉽지 않다. 워낙 말이 좀 느린 편에다 밋밋한 어투이고 보니, 잠깐 내용을 놓치면 목소리가 졸음을 부르는 알파파의 리듬과 맞아 들어가기 십상이다. 때로 억지로 목소리를 높이려 해 보지만 괜히 어색하기만 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구보 씨는 아예 졸리는 목소리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좋게 생각하면 편안함을 주는 목소리라는 것 아닌가. 조분조분하고 느릿느릿하며 모가 나지 않은 부드러운 음색의 목소리. 어쩌면 심야 음악방송에 어울릴 법한 목소리.

“불면증 있는 분들은 제 강의를 녹음해 가서 잠 안 올 때 들으세요. 효과는 확실히 보장할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저도 잠 안 올 땐 혼잣말을 한답니다.”

구보 씨가 강의 때 곧잘 써먹는 자못 애처로운 유머다. 그렇다고 구보 씨의 강의실에는 조는 수강생들 투성이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집에서는 졸되, 강의실에서는 졸지 말라고 구보 씨는 매번 부탁을 한다. 그래도 조는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 깨운다. 졸린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졸지 않는다는 데 철학을 향한 여러분의 의지가 있습니다. 목소리의 외피에 가려진 각성(覺醒)의 알맹이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그래도 다시 졸려는 사람이 있으면 이런 슬라이드를 띄우기도 한다.

김어준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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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투(苦鬪)를 해 가면서라도 구보 씨가 살리려는 것은 강의의 내용이다. 무엇보다 철학적 문제의식과 개념들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이고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다. 어려운 내용을 가능한 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나름 애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쉬운 얘기를 너무 어렵게 한다니…맥 빠지는 평이 아닐 수 없다.

익명(匿名)의 지적 하나에 그렇게 괘념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막상 신경이 쓰이는 것을 보면 구보 씨 스스로도 내심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나 보다. 어쩌면 구보 씨 강의만이 아니고 철학 자체의 처지가 마음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근래 대학에선 철학과가 폐지되거나 다른 과와 통폐합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한남대와 경남대의 경우에는 철학과를 없애겠다는 결정을 내려져, 여기에 항의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대학 당국과 맞서고 있다. 졸업생의 취업률이 떨어지고 입학생도 줄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이런 일은 국내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미들섹스 대학의 철학과는 그 명성이 상당했는데도 최근 폐지되고 말았다. 아직 항의하는 운동이 그치지 않고 있지만, 역시 돈의 논리에 밀린 이 사태를 쉽게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철학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불필요한 학문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는 철학적 기초가 부족해서 문제라거나,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문학과 철학적 사유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몇몇 상업적 기획물이 아니면 철학적 저작들은 잘 팔리지 않는다. 중요한 고전이 번역되어 나와도 초판 천부를 넘기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너희 철학자들이 더 정신 차려야 한다는 거야. 철학자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 쉬운 얘길 어렵게 한다는 평은 내가 보기엔 정곡을 찌른 거 같아.”

“그래? 어째서?”

“철학자라는 사람들은 대개 텍스트에 갇혀 살잖아. 그러다 보니 쉽게 할 수 있는 말도 이런저런 개념을 통해서 하려고 하고 그 덕택에 얘기가 쓸데없이 어려워지는 거라구. 구보, 네가 좀 심하긴 하지만, 너만 그런 건 아닐 거야.”

“Y야, 개념적 사고란 중요한 거야. 개념은 말하자면, 생각의 다발을 엮는 얼개 같은 거거든. 왜, 우린 분명한 생각의 줄기가 없이 말하는 사람을 두고 흔히 ‘그 사람 개념이 없다’고 하잖아. 철학적 개념은 그런 개념들 가운데서도 아주 근본적인 것들이니까, 보기에 따라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 근데 그건 우리가 일상적으론 근본적 사유를 잘 하지 않는다는 반증 아닐까.”

“푸… 구보야, 문제는 니들이 말하는 그 근본적이라는 게 대부분 낡고 비현실적이라는 거야. 대체 뭐가 근본적인데? 옛날에 근본적으로 여겨졌던 게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니들의 병폐라구. 그거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직업병 같애.”

“직업병?”

“그래, 철학자라는 오래된 직업 때문에 생기는 직업병. 철학의 역사가 길고 훌륭한 철학자가 많은 건 자랑거리겠지만, 니들은 그 역사와 전통에 따라야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아. 그래서 결국 너네가 하는 게 뭐야? 헤겔이니, 칸트니, 플라톤이니, 공자니, 주자니 하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헤매는 게 주 업무잖아. 그런데 그 사람들 생각이 오늘날에도 그렇게 중요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거 모르고도 잘 지내고, 그런 거랑 상관없이 생각하고 고민한다구.”

“Y야, 그건 오해야. 그렇게 따지자면, 우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몰라도 그런대로 잘 지내고 그런 거 없이도 그럭저럭 생각하고 살거든. 게다가 철학자들이 옛날 개념에만 빠져 있는 건 아니야. 오히려 우리 시대에 맞는 적절한 개념들을 찾아내려거나 만들려고 노력한다구.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렇지…그래서 더더욱 옛 개념들을 참조하는 게 중요한 거야…”

“혹시 너무 많이 참조하는 거 아냐? 그러니까 괜히 어려워지지. 그러다가 제 풀에 지쳐서 그런 참조 자체가 가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어쩌면 Y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의 것만 보아서야 눈앞의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법이다. 때로는 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수도 있다. 우리의 현실 자체가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며 다양한 잠재성을 안고 있는 것인데, 어떻게 거기에 적합한 문제의식이나 개념이 단번에 나올 수가 있는가. 야구선수가 안타나 홈런을 치기 위해서는 무수한 연습과 헛방망이질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물론 오늘의 현실은 옛날과 같지 않다. 과거에 중요하게 여겨졌던 철학적 문제들 가운데는 이미 해결되었거나 그 탐구 영역이 다른 분야로 넘겨진 것들도 많다. 이를테면, 우주의 본성이나 됨됨이에 관한 문제들은 이제 천체 물리학이나 미립자 물리학이 다루고 있고, 근세의 중요한 철학적 주제였던 인식론적 문제들의 많은 부분은 이제 심리학과 생리학의 소관 사항이 되었다. 인간 사유의 본성에 관한 문제들조차 오늘날은 진화심리학이나 뇌생리학 등에서 다루어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철학에 남은 것은 이제 사실의 문제들이 아니라 가치의 문제, 규범의 문제들이라고 할 만하다. 사고의 규범을 다루는 논리학, 행위의 규범을 다루는 윤리학이 아직 철학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것마저도 규범적 사고의 현상, 규범적 행위의 현상이 문제될 때면 그것들을 데이터로서 다루는 심리학이나 사회학 따위의 대상이 되고 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철학은 결국 사유의 내적 연결을 문제 삼는 도구적 학문이라거나, 사회역사적 상황에 따른 규범적 행위양식과 가치체계를 정당화하거나 비판하는 이데올로기적 분야라는 규정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철학의 어깨가 마냥 가벼워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치의 문제는 의미의 문제와 엮이어 오랜 숙제처럼 철학을 겨냥한다. 모름지기 철학자란 여전히 삶의 의미나 세상의 존재 의미 같은 거창한 문제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이런 면에서 철학은 예술이나 종교와 같은 전선에 선다. 물론 예술이나 종교의 무기가 감성이나 신앙인 것과는 달리, 철학의 무기는 사유다. 이전에는 이 사유가 종교적 믿음이나 과학의 성과에 기대어 의미를 길어 올렸다면, 오늘날은 예술적 감성을 가까운 파트너로 삼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구보 씨가 구보 씨가 된 것도 사실 그런 탓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구보 씨는 원래, 박태원의 구보 씨에서부터 최인훈의 구보 씨, 주인석의 구보 씨에 이르기까지 소설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철학자 구보 씨라는 뒤떨어진 변용(變容)이 등장하게 된 것은 알게 모르게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철학의 친화적 쏠림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구보야, 너 또 얼버무리려고 하는구나. 네가 구보씨가 된 건 그저 개인적인 빌붙음 때문 아냐? 그걸 어떤 추세나 경향 탓으로 돌리려 하면 곤란하지.”

“하하, Y야, 꼭 그런 건 아냐. 말하자면 그와 같은 면도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게 철학의 현황이나 궁지를 보여준다는 얘기고.”

“글쎄, 내 생각에 그건 별로 당당하지 못한 태도 같아. 현황이니 궁지니 하면서 그 뒤로 숨으려는 것처럼 보여. 언제 철학이나 인문학의 처지가 어렵지 않은 때가 있었니? 진짜 철학자라면 거기에 당당하게 맞서야 하지 않을까?”

“허…진짜 철학자라…그런데, 그게…”

“왜, 자신 없어?”

“Y야, 그렇게 윽박지를 일은 아니라고 봐. 모든 사람이 전사(戰士)가 될 수는 없는 일 아냐? 나도 나름대로 노력 중이라구. 어설프고 부족해 보이겠지만, 이 구보 씨 이야기도 그 일환이고 말이야. 기왕이면 좀 너그럽게 봐 주라.”

“….”

“안 돼?”

“구보야, 되고 안 되고가 어딨니? 네 말대로 다양한 게 세상산데… 어쨌든 이제 네 얘기에서 나는 그만 빼 줘.”

“어, 그럼 곤란해. 네가 빠지면 사람들이 그나마 무슨 재미로 이걸 보겠냐.”

“그거야 구보 네 사정이고…”

“Y야, 그렇게 말하지 마. 네 사정이 곧 내 사정이지. 네가 정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당분간 쉬는 수밖에…사실, 나도 그럴까 생각 중이었어. 쉬면서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볼께. 이를테면 구보씨의 철학 강의 같은 거 어때? 역사철학이나 문화철학 같은 거. 조분조분한 목소리로 하는 도저히 졸 수 없는 강의,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는 강의…그게 언제부터 가능할지 모르지만, 하여튼 그런 거 시작할 때면 너도 다시 도와줄 거지?”

한국 사회의 특수한 병적 상태들은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시대와 철학]

예외상태와 합리성의 신화적 퇴행 : 한국 사회의 심리적 병리상태에 대하여

 

?한상원(베를린 대학)

 

예외상태의 일상화. 벤야민과 슈미트를 이어받아 아감벤이 사용한 개념이다. 아감벤은 일상, 즉 규칙이 되어버린 예외상태 속에서 법의 지배가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개념이 한국사회만큼 잘 적용되는 곳도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정치적 영역부터 사적 영역까지 우리의 사고를 규정하는 건 일상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 예외상태가 아닐까? 현직 국회의원이 간첩이었고 내란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선동하면,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하고 호남인들을 죽이자고 선동해도 정상참작이 된다. 일상이 예외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예외가 일상을 지배한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일상이 된 예외상태의 사례는 분단이다. 한국은 70년 가까이 남북간 준전시상황이고, 성인 남성은 2년간 전쟁훈련을 받으며, 실제로 북한정권은 핵무기 쏘겠다고 툭하면 협박해온다. 이러한 일상적 위기를 계기로 삼아 국가권력은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쟁취한 형식적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해 공격을 감행한다. 2010년 북한이 연평도에 미사일 공격을 하자, 이 패닉상태 속에서 여당은 과감하게 예산안 날치기를 감행한 바 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비판이 일자, 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발언을 했다면서 쟁점 전환을 시도했다. 툭 하면 등장하는 맹목적인 ‘종북’ 여론몰이를 보면, 이러한 낯선 타자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기반성적 이성의 목소리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북한 트위터 계정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몇 년간 구속과 압수수색 그리고 재판에 시달려야 하는 이 상황은 온라인 매체까지 스며든 일상화된 예외상태의 사례다.

분단 문제는 한국인들의 일상 속에 숨어든 병리적 심리항태의 사례 중 하나다. 외부의 적(북한)에 대한 공포와 이로 인한 내부의 적(우리 안의 간첩)에 대한 광기 외에도, 양적 경제성장에 대한 비이성적 집착, 외적인 국가적 상징(한류, 김치, IT 등)에 대한 과도한 우월의식 등, 한국인들의 심리상태는 그야말로 병적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 야당을 지지하는 정치적 경향의 사람들은 흔히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모토를 즐겨 사용한다. 이 용어는 한국 사회를 상식(형식적 민주주의와 법치)이 아니라 비상식(부패, 학벌, 권위주의, 지역감정 등)이 지배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여기서 ‘상식’이라는 단어는 철학적으로 볼 때 ‘합리성’이라는 단어와 조응하는 듯하다. 즉 이성적인 견지에서 볼 때, 한국 사회는 합리성이 아닌 비합리성에 의해 지배된다는 비판이다. 이런 비판이 겨냥하는 궁극적 목표는 따라서 ‘합리성이 그 순수한 형태로 관철되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판이 놓치고 있는 점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비상식’, 즉 ‘비합리성’이 실은 그 대립물인 ‘합리성’의 산물이라는 점에 있다. 한국 사회에 있어서 합리성의 기획, 근대적 계몽의 기획은 매우 늦게 추진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5?16 쿠데타 이후 등장한 박정희와 군부세력에 의해서였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성이란 물론 르네상스적 인문적 의미의 계몽주의와도, 유럽에서 시민사회와 보편선거권 이후 도입된 정치적 의미와도 구분되는, 산업혁명 이후 유럽을 지배한 경제적, 양적 합리성과 유사한 개념이다. 다시 말 해, 군부정권이 추진한 ‘위로부터의’ 합리성 기획은 합리성 개념이 포괄하는 다양한 맥락을 추상해버리고, 오로지 양적 성장을 지상과제로 설정한 일면적인 합리성인 셈이다.

4?19 혁명의 주요한 요구 중 하나는 ‘자립경제 건설’ 이었다. 이것은 곧 미국의 원조에 종속된 국가를 근대적 자주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한다. 쿠데타 이후 집권한 박정희와 군부세력은 이승만의 자유당도, 4?19혁명 이후 정권을 잡은 민주당도 수행하지 못한 급속한 근대화를 추진하여 원조경제에서 탈출하고, 자립적인 근대적 산업국가를 만든다. 이 점에서 5?16은 4?19의 계승이라는 우파들의 역사관은 일부나마 타당성을 인정받는다. (물론 그것이 5?16과 독재를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 글에서 논하지 않겠다.) 이 점에서 박정희는 한국 사회에서 유럽의 17~18세기 절대왕정 내지 계몽군주에 상응하는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일종의 합리성 기획이라고 볼 수 있는 박정희의 근대화 프로젝트는 동시에 한국사회의 병리적 퇴행을 낳는 원인이기도 했다. 양적 성장에 대한 집착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결과론적 규범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성장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모든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배척당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담론은 성장의 논리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오늘날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으며, 이를 무마하고 여당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경찰 수뇌부가 수사를 방해했다는 증거와 증언들이 등장함에도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멀리 보면 이러한 한국 근대화의 실패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계몽군주’ 박정희는 ‘신화'(일인숭배, 딸로 권력세습)로 퇴행했다. 이 퇴행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 등장하는 ‘신화가 된 계몽’ 개념과 놀라울 정도로 부합한다. 합리성(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은 비합리(박정희 신화와 독재 정당화)로 변증법적으로 전화된다. 이러한 설명도식은, 한국사회의 비합리적, 병리적 심리상태를 설명해줄 수 있는 여러 각도의 이론적 설명 중 하나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적 병리상태를 “비합리성으로 전도된 합리성”으로 규정하고 그 배경에 1. 일상화된 예외상태로서 분단, 2. 지난 세기 이뤄진 합리성 프로젝트의 실패가 있다고 규정한다. 이를 개념규정하기 위해 나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을 차용하였다. 그런데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비판이 지적하는 급진적인 핵심은 합리성이 양적이고 도구적인 성격으로 후퇴하는 것이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합리성 프로젝트(계몽)의 필연적 귀결이라는 점에 있다. 교환원칙과 이윤축적 원칙에 기반을 둔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합리성이 지닌 여러가지 잠재력을 하나의 것 ? 경제적, 양적, 도구적 이성 ? 으로 환원하는 근본적 배경이다. 위로부터의 근대화라는 합리성 기획이 신화로 퇴행한 것은 애초에 합리성을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만 사고하게 만든 교환원칙과 이윤축적의 메커니즘이었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특수한 심리적 병리상태에 대한 진단은 교환원칙과 이윤축적이라는 보편적 구조에 대한 변화와 결부되어 있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보편적 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당장 실현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닌 한에서, 어떻게 제한된 조건 하에서 한국 사회의 특수한 병적 상태들이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여전히 우리를 무거운 고민 속으로 이끌고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릴레이 시국선언④-국가폭력의 완성 ?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국가폭력의 완성 ?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이원혁(한철연 회원)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해 연일 계속되는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나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전·현직 정보당국의 책임자들과 또 그 연계가 의심되는 전·현직 대통령들은 그 어떤 책임 있는 행동이나 발언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여당은 대선불복이니 국론분열이니 하면서 적반하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뻔뻔함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들을 지지하는 소위 콘크리트지지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고 있는 국가권력의 강고함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국가라는 이름과 힘에 의해서라면 그 어떠한 행위도 정당화될 수 있으며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믿음이 그들의 행동과 언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이것이 이번 사건이 유신시대를 연상시킨다고 말하는 이유기도 하다. 국가에 의해 진행되는 강압과 음모에 대해 그것을 행한 이들이 도덕적, 양심적 가책을 받지 않고 카메라와 국민 앞에서 저토록 당당한 것은 국가권력은 그래도 되고 그럴 힘이 있으며 그 힘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 덕분에 가능하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시대의 권력층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민주주의 정치와 가장 동떨어진 의식이다.

근대 사회계약론의 환상과는 달리 국가는 사람들의 합의로 구성,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신의 거대한 폭력성에 의해 국민을 구성하고 포섭하여 국가의 체계를 유지시켜온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지난 세월 지난한 민주주의 투쟁은 이러한 국가 폭력을 견제해 왔으며 이를 통해 사회 공동체의 붕괴를 막아왔다. 근대 이후의 국가는 사회와 국민에 대한 수많은 폭력과 강제를 진행해왔지만 민주주의 본질에 대해서는 감히 범하지 못했다. 설령 범하는 국가권력이 있었더라도 패망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그 국가권력이었다는 점은 역사가 명백히 보여줘 왔다. 즉 국가권력과 그것에 심취한 권력자는 전제적 권력을 완성하기 위해 국민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까지 진행하지만 그것의 말로는 손에 잡히는 역사책 한권만 펼쳐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지금 여당과 청와대는 부정선거 발언이나 대선불복은 금도를 넘은 것이라 말하지만 정작 금도를 넘은 것은 정보기관을 통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인 보통선거의 근간을 흔든 권력이다. 이번 사건은 여당의 표현대로 금도를 넘은 사건이며 사회적 금기의 파기는 묻혀 질래야 묻혀질 수 없는 것이다. 무능한 야당의 무능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파장이 날이 갈수록 더욱 커져가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 책임 당사자의 뻔뻔함이 이대로 계속간다면 뿌리가 흔들리던 민주주의는 오히려 들풀처럼 일어나 뻔뻔하게 흔들던 손을 날카롭게 베어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