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24-유비 추론의 적극적 가치[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24-유비 추론의 적극적 가치
1)
반성 추론은 연역법과 귀납법에 이어서 유비 추론 즉 유추로 발전한다. 이 유추의 근본 도식은 삼격 즉 E->A->B(헤겔은 B->A->E로 표현한다)이다. 유추의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예를 들 것이다.
지구[Earth]는 사람이 거주하는 행성이다.
달은 하나의 지구[Earth]이다.
그러므로 달은 사람이 거주하는 행성이다.
이와 같은 유추는 흔히 형식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유추에서 매개가 되는 두 개념(예를 들어 ‘지구’)는 겉으로는 같게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것이어서, 정확하게 매개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네 개 항의 오류, 모호한 매개의 오류라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형식적인 오류인 유추는 실상 과학적 탐구에서 아주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만일 유추가 없었더라면, 많은 과학적 진리는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원자의 구조를 파악하는데서 우주의 구조가 원형이었다는 사실은 자주 언급되는 예이다.
우리의 인식도 사실은 하나의 유추이다. 사유의 도구인 많은 추상적인 개념은 사실 원초적인 의미에서는 구체적인 것을 의미한다. ‘개념[concept]’는 ‘임신하다[concieve]’에서 나왔다. 아이를 임신하는 것과 머리가 사유를 잉태하는 것이 같은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유추는 사실 우리 사유의 원초적인 모습인데, 이런 유추를 사유에서 추방한다면, 우리의 사유는 빈곤해질 것이다. 헤겔은 유추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파악하는데, 그것이 지닌 긍정적 측면을 특별히 부각한다는 점에서 유추에 대한 유추에 대한 헤겔의 설명이 돋보인다.
2)
유추에서 중요한 것은 매개 항이다. 이 매개 항은 소전제에서는 유로 표현된다. 위의 예에서 ‘달이 하나의 지구라’ 할 때 지구는 지구의 유적 속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지구라는 것’ 또는 ‘하나의 지구’이며 아직 그 유적 본질(종차)이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유적 본질을 지칭하는 것이다. 반면 대전제에서 매개 항은 개별적인 것을 의미한다. 즉 여기서 ‘지구’는 개별적 행성으로서 지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유추에서도 매개 항은 연역법이나 귀납법과 같이 일반성과 개별성이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연역법이나 귀납법에서 일반성은 전체성이며, 개별자의 전체를 의미하며 여기서 유적 존재는 잠재적이고 아직 정립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추에서 일반성은 정립된 유적 본질 즉 일반적 유의 본질적 속성을 의미하며 그런 점에서 연역법이나 귀납법보다 발전된 측면을 지닌다.
소전제에서 주어는 이런 유적 존재에 속하는 하나의 개별자이다. 물론 여기서 개별자는 유적 존재가 우연하게 실현된 것이라는 점에서 연역법의 소전제와 같다.
그런데 대전제에서 술어는 주어인 개별자에 속하는 성질인데, 여기서 우연성과 필연성이 구별되지 않는다. 이 술어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으나 유추에서 이런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전제가 ‘지구는 사람이 사는 행성이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이 사는 행성’이란 술어는 개별자인 지구에 속하는 우연성이다. 그러나 만일 그 술어가 ‘공전하는 행성’이라면 지구의 필연성에 속할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만일 이 유추가 부당하다면, 그 부당성의 원인은 흔히 말해지듯이 유추가 모호한 매개 항을 또는 서로 다른 매개 항을 사용한다는 것에 있지 않다고 한다. 유추의 부당성은 전적으로 대전제의 술어가 개별자에 속하는 우연성 즉 추상적 규정성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유추에서 대전제의 술어를 개별자의 유에 속하는 필연성으로 규정한다면, 이 추론은 오히려 타당한 추론이 된다.
3)
흔히 유추의 부당성 때문에 이를 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유추의 형식을 일종의 삼단논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때 유추의 일반적 형식을 유추의 대전제로 삼는다. 그러면 유추는 다음과 같은 추론이 된다.
대전제:
‘어떤 객체에 어떤 징표에서 유사한 것은 다른 특징에서도 그 객체에 유사하다.’(즉 a가 p&q인데, b가 p라면, b는 q이기도 하다.)
또는 이 대전제는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
‘두 대상이 어떤 성질에서 일치한다면, 하나가 가지는 다른 성질을 다른 것도 지니게 된다“(a가 p이고 b도 q인데, a가 q를 동시에 갖는다면, b 역시 q를 갖는다.’
소전제:
‘지구는 흙으로 이루어지고, 사람이 사는 행성이며’,
‘달은 흙으로 이루어진 행성이다.’
결론: ‘달은 사람이 사는 행성이다.’
추론의 형식을 이렇게 삼단논법으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결론이 부당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헤겔은 유추라는 일반적 형식에 경험적 내용을 집어넣든, 유추의 일반적 형식 자체를 삼단논법의 대전제의 내용으로 삼든 결과는 마찬가지라 한다.
자주 문제 삼는 것은 유추의 형식 자체에서 매개 항의 이중성인데, 사실 이런 이중성은 앞에서도 보았듯이 연역법이나 귀납법 즉 일반적으로 말해 반성 추론에서 매개 항이 가진 일반적 특징이다. 유추의 형식이 매개 항의 모호성 때문에 형식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귀납법이나 연역법도 타당하지 않다.
헤겔은 오히려 이런 문제점은 추론 형식이 발전하는 과정 중에서 인식적 의미 또는 객관적 의미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보여줄 뿐, 그런 추론 형식이 원천적으로 추론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4)
헤겔은 오히려 유추가 연역법이나 귀납법보다 발전된 인식적 의미를 지니면서, 그 결과 관계 추론으로 이행하는 계기가 된다고 본다. 이제 그 발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연역법에서 매개 항의 일반성은 개별자에 대해 외적인 것으로 특히 여기서는 주어의 전체성[예를 들어 ‘모든 사람은’]으로 출현했다.
그것은 귀납법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 경우 매개 항의 일반성은 전제들의 전체성[e1, e2, e3…]으로 출현한다. 이런 전체성에서 유적 존재는 잠재적으로 내재하지만, 아직은 정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유추에 이르게 되면, 일반성은 개별자[대전제의 주어]와 유적 본질[소전제의 술어]의 직접적인 결합이라는 방식으로 출현하면서 유적 존재가 처음으로 정립된다.
이처럼 잠재적이었던 유적 존재가 유추를 통해 처음으로 유적 본질로 정립된다는 점이 유추가 연역법이나 귀납법보다 뛰어난 점이고 연역법이나 귀납법이 사실 인식에 별로 기여하지 않는 반면, 유추가 과학의 발전에 더 많이 기여해 온 것도 이런 측면 때문이다.
연역법과 귀납법에서 매개는 개별자와 일반자의 결합이지만, 여기서는 개별자는 긍정적이며 일반자는 내적인 것이다. 아직 개별자는 자기를 부정하여 일반자로 고양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추에 이르면 일반자 즉 유적 본질이 직접 출현하면서 개별자와 결합한다.
이런 결합은 아직 직접적이지만, 이제 개별자가 이 일반자를 통해 부정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왜냐하면, 일반성 자체가 개별성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추를 통해 이런 가능성이 열림으로써 이로부터 일반자 자체가 매개 항으로 되는 추론 즉 관계 추론이 출현하게 된다.
현존 추론에서 매개 항은 추상적 규정성이었다. 반성 추론에서 매개 항이 이중화되면서 최초의 부정이 등장한다. 그리고 반성 추론의 끝에서 유추에 이르러 직접적 규정성은 완전히 지양될 가능성이 열린다. 연역법과 귀납법에서 잠재적 일반성은 ‘그 자체로 자기에 대해 존재하는 일반성’이 된다.
“유추 추론에서 유는 단지 직접적인 전제로서만 중심의 요소였다. 추론 자체가 전제된 직접성의 지양을 요구함에 따라 개별성의 부정이 정립되며 이를 통해 일반자는 더는 직접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정립된다. 반성의 추론은 처음으로 직접성에 대한 첫 번째 부정만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이제 두 번째 부정이 등장함으로써 외적인 것에 머무르던 반성의 일반성이 그 자체로 자기에 대해 존재하는 것으로서 규정되었다.”(주관 논리학, GW12, 117-118)
5)
현존 추론에서 하나의 추론 형식은 자기의 전제를 자기 밖에 있는 다른 추론 형식을 통해 입증했다. 연역법과 귀납법은 자기의 결론을 전제로 하니, 자기를 매개로 한다.
그러나 유추에 이르면 전제와 결론은 동일하게 된다. 유추에서 대전제는 p이면서 동시에 q라는 성질을 지니는데, 결론 역시 b는 q라는 성질을 지니기 때문이다. 전제와 결론의 동일성은 관계 추론이 지니는 특징이니, 이런 점에서도 유추는 반성 추론에서 관계 추론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된다.
“[유추를] 긍정적 측면에서 볼 때 결론은 전제와 동일하며 매개는 그것이 전제하는 것과 합쳐진다는 것이 드러나며 이로써 반성적 일반성이 지닌 동일성을 통해 그것은 더 높은 일반성이 되었다.”(주관 논리학, GW12, 118)
개념의 내적 통일성은 판단에서 자립적인 양극단으로 분리된다. 추론에 이르면 양극단은 매개를 통해 서로 매개된다. 현존 추론에서 전제는 외적으로 매개되지만, 연역법과 귀납법에서 자기의 결론을 전제로 한다. 마침내 유추에 이르러 전제와 결론은 동일해지며, 따라서 매개 항은 양극단과 동일하게 된다.
마침내 유추를 넘어 전제와 결론, 매개와 매개된 것의 내용적으로는 이미 동일하게 되었으나, 다만 형식적으로만 서로 구별되는 관계 범주가 출현하게 된다. 관계 추론의 운동을 통해 이런 마지막 형식적 차이조차 극복되면 이제 개념의 주관성 장은 끝나면서 객관성 장으로 이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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