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23-연역과 귀납[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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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23-연역과 귀납

1)

추론의 운동은 매개가 지닌 규정성의 발전에 있다. 현존 범주에서 추론의 매개는 직접적으로 규정성을 지니지만, 이 규정성은 추상적 즉 “개별적으로 독자적인” 규정성이었다. 매개는 자립적인 양극단에 외적으로 관계한다. 여기서 매개는 다른 규정성으로 이행하면서 전체 규정성을 다 거치지만, 이런 이행은 타자로의 이행에 불과하다.

이제 반성 범주에 이르게 되면, 매개는 이중적으로 된다. 여기서 매개는 외적인 규정성 이미 자기의 규정성 안에 비치면서[scheinen] 자기 내로 반성[Reflektieren]하니, 표면의 규정성과 이면의 규정성이 다른 양면성에 머무른다.

그런 한에서 매개는 “다른 규정과 관계하는” 구체적인 것이며 자기 자신에서 총체성이지만, 아직은 타자를 반영하는 데 그치는 직접적인 총체성이다. 매개가 총체적이므로 매개는 양극단에 외면적이지 않으며 이미 양극단의 “자기 속에 포괄한다.” 이 추론에서 매개의 반성적 성격 때문에, 이 추론은 반성 추론이라 불린다.(주관 논리학, GW12, 110)

그러나 매개는 타자를 반영할 뿐, 자기의 자립성을 유지하니, 아직 개념이 자기를 전개하는 ‘개념의 절대적 동일성’에 이른 것은 아니며 다만 ‘반성의 통일성’에 그친다.(주관 논리학, GW12, 110)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반성 추론에서 매개는 첫째 개별성을 지닌다. 둘째 이 개별성은 일반성으로 확장되어 있으니, 즉 모든 개별자이다. 셋째, 이 개별자 전체 속에 유의 일반성이 들어있지만, 아직 그 유는 정립된 것은 아니다.

2)

반성 추론에서 매개의 성격에 따라 양극단의 성격도 변화한다. 현존 추론에서 두 전제는 직접적인 판단이며, 따라서 이 전제가 입증된 매개된 판단이려면 자기와 다른 추론의 결론이어야 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추론의 결론을 전제로 삼고 자기는 다른 추론의 전제를 제공하는 일종의 순환적 관계를 이루었다.

그런데 반성 추론에서는 전제는 반성적이다. 이 반성 관계는 다른 추론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전제와 결론 사이에서 일어나는 반성 관계다. 이 반성 추론에서는 연역법이나 귀납법에서 상세하게 보듯이 전제와 결론이 각기 서로를 반성한다. 즉 전제는 결론을 이미 함축하며 결론은 전제를 함축한다.

반성 추론에서 전제와 결론 사이의 반성 관계는 아직 서로의 직접성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전제와 결론은 매개와 마찬가지로 양면성을 지닌다. 각자는 표면적으로는 직접적인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타자를 반성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3)

반성 추론에서 첫 번째 추론은 전체성의 추론이다. 이 추론 형식은 현존 추론의 일격과 유사하지만, 대전제가 전칭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흔히 이 추론은 연역법이라 알려진 추론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데스는 죽는다.

대전제에서 주어의 전체성{‘모든 사람’]은 유인 한에서 그런 술어를 지닌 것이다. 그러나 이 유는 아직 잠재적인 것이 아니고, 자기를 정립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전체성은 개별자 전체이므로, 개별자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주어는 이중적으로 표현된다. 즉 위의 예에서 ‘모든’은 전체성을 말하며, ‘사람’은 잠재된 유적 존재를 표현한다.

이 전체는 개별자의 전체인 한에서 ‘개념의 일반성’이 아니라 ‘반성에 속하는 외적인 일반성’이다. 즉 전체성은 “개별자를 다만 외적으로만 일반성 속에 포괄할 뿐이며” 개별자는 “그 일반성 안에서 여전히 직접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전제의 주어인 전칭과 소전제의 술어가 매개 항이 되는데, 소전제에서 술어는 주어에 대해 유적 존재가 된다. 매개 항은 대전제에서는 전체성이면서 잠재적으로 유로 규정된 것인데 이제 소전제의 술어에서 유적 존재로 정립된다. 그러므로 매개 항은 한편으로 개별성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유적 존재라는 측면에서 이중성을 띠게 된다.

소전제에서 주어는 개별자로서 술어인 유에 속하지만, 유가 우연하게 실현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주어는 개념이 자기 분화하여 이루어진 것 즉 종에 속한 것이 아니다. 위의 예에서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라는 유의 종이 아니라 그 유가 우연히 실현된 개별자이다.

일격은 술어가 우연적이므로 추론이 타당하더라도 그런 추론을 통해 얻은 결론은 우연적인 진리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 일격에서는 모순적인 결론이 동시에 끌려 나올 수도 있다. 반면 전체성 추론에서 술어는 모든 개별자에 속하는 것 즉 필연적인 것이므로 여기서 결론은 필연적 진리에 이르게 된다.

3)

전체성 추론에서 대전제는 개별자 전체에 관련하는데, 여기서 대전제는 직접 진리로 전제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가정된 것이 아니라 진리로 단언된 것이다. 이런 대전제로부터 매개 항을 통해 소전제가 나오는데, 소전제의 진리는 직접적인 진리라기보다는 오히려 매개된 진리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대전제의 진리는 직접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인식 가운데 전체를 직접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할 때 이 대전제의 진리는 결론이 진리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끌어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반성 추론에서 그 추론 자체에서 정립되는 사실은 곧 대전제가 바로 그 자신의 결론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런 대전제가 개별자와 술어의 결합을 포함하고 있지만, 사실 그 결합은 결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주관 논리학, GW12, 113)

대전제의 직접적 진리는 공허한 가상이다. 거꾸로 결론은 직접 개별적으로 경험될 수 있으니, 결론이 직접적인 것이며 결론이 마치 대전제로부터 끌어낸 매개된 진리라는 것은 거짓된 외양에 지나지 않는다.

현존 추론에서 한 추론 형식에서 전제는 같은 현존 추론 가운데 다른 추론 형식의 결과이며, 추론 형식은 서로 전제로 하면서 순환한다. 여기서 하나의 형식에서 전제가 되는 것은 자기 바깥에 있는 형식이다. 그러나 전체성 추론에서 전제는 자기의 결론으로부터 끌어낸 것이니, 그런 점에서 자기를 매개로 한다.

반성 추론의 대전제는 개별자의 진리로부터 끌어낸 것이니, 이제 전체성의 추론은 개별자를 매개로 한 반성 추론으로 즉 귀납법으로 이행한다.

4)

전체성 추론이 일격[E->B->A]에 속하는 것이라면, 귀납법은 개별성을 매개로 하는 이격[A-> E->A]에 속한다. 이 귀납법의 일반적 형식은 잘 알려진 대로 다음과 같다.

사자는 네 발을 가진다.

코끼리도 네 발을 가진다.

…

무한히 나간다면

모든 포유류는 네 발을 가진다.

현존 추론의 이격에서 매개는 추상적인 개별성에 지나지 않으면서 고립적이고 어느 전제에서나 주어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이 이격은 형식적으로 타당한 추론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귀납법에서 매개는 개별성이지만, 전제 전체에 걸친 전체성이므로 “완전한 즉 그[개별성]과 대립되는 일반성과 함께 설정된 개별성”이므로 그런 점에서 매개가 모든 전제에서 주어의 위치를 차지하면서도 이 추론 자체는 형식적으로 타당한 추론이 된다.

그런데 귀납법에서 표현상으로 매개는 한정된 전제로 이루어지지만, 실상 여기에는 이런 한정된 전제가 더 확장되어[즉 ‘이런 전제가 무한히 나간다면’] 전체성에 이르더라도 그 전제는 여전히 옳다는 것이 가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주어는 가정된 전체성이며 잠재적으로는 유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개별자의 전체는 결론의 주어에서 표현된다. 여기서도 전체성 추론에서처럼 매개 항은 개별자의 전체인 동시에 잠재적으로 유적 존재다. 여전히 개별자가 자립적이며 표면에 나오며 유적 존재는 이면에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결론의 주어는 이중적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자면 ‘모든 포유류’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한편으로 ‘모든’을 통해 전체성을 표현하되, ‘포유류’라는 표현을 부가하면서 암시적으로 유가 표현된다.

여기서 모든 전제와 결론에서 술어는 동일하다. 이 술어는 결국 우연적인 일반성이 아니라 모든 개별자에 속하는 필연적인 일반성으로 규정된다. 그런 점에서 술어는 전체성 추론에서 술어와 동일하다.

이런 귀납법에서 동일한 술어가 전제에서는 각각의 개별자에 귀속되며, 결론에서는 개별자 전체에 귀속된다. 각각의 개별자가 곧 개별자 전체이므로 전제와 결론은 동일한 내용이 서로 다른 형식으로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5)

귀납법에서는 전제인 개별 명제가 진리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다. 그런데 실상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리는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귀납 추론은 이런 한정된 경험을 통해 전체의 진리를 얻는다.

전체의 진리는 다만 가정된 또는 추측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진리로 정립되는데, 한정된 경험을 통해 이런 진리를 정립하는 것에는 비약이 들어있다. 한정된 경험으로부터 전체성에 이르는 과정은 하나의 과제이고 하나의 당위이지만, 이 당위가 실현되는 일은 개연적[problema tisch]이다. 따라서 이는 최종적으로 허위로 결정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그것은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 주관은 결단하면서 진리로 판단한다. 그러므로 이 귀납법은 추론하는 주관의 결정에 의존하며, 주관이 이런 결단을 내릴 때, 주관은 이미 전체의 진리를 전제하고 있다.

“귀납은 오히려 여전히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추론이다. 중심은 직접성 속에 있는 개별자다. 개별자들을 전체성을 통해 유로 종합하는 것은 외적인 반성에 불과하다. 개별자들에 이미 존재하는 직접성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외면성을 고려할 때 일반성은 단지 완전성에 불과하거나 오히려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주관 논리학, GW12, 114)

앞에서 연역법의 대전제가 결론 즉 개별자의 진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제 귀납법에서는 거꾸로다. 귀납법에서 전제의 진리는 이미 결론 즉 전체성의 진리를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귀납법 역시 연역법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전제로 한 추론이지만, 그 방향은 정반대다. 그러나 어느 것이나 결론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같다.

귀납법을 통해 개별자가 당위인 유적 존재와 결합된다. 귀납법에서 이런 결합은 다만 가정된 것에 불과하다. 만일 이것을 하나의 가정으로 보고 그친다면, 여기서 중심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 두 부분(개별성과 유적 존재)으로 분열될 것이며, 추론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정이 실제로 정립되면 개별자가 곧바로 유적 존재가 되면서 이로부터 유비 추론이라는 형식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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