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교조주의에 반대한다 -루이 알튀세르[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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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조주의에 반대한다 -루이 알튀세르[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⑨

 

강사 : 문성원(부산대교수)
후기 :?조배준(한철연회원)

 

강좌의 제2막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이 총 16강으로 함께 기획한 강좌 <마르크스주의 사상사>가 이제 절반 넘게 진행되었다. 지난 8강까지의 강의들인 “제1부 맑스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까지”가 근대성의 핵심인 주체 중심적 사유에 근거한 이론들에 대한 일별이자 성찰이었다면, “제2부 알튀세르에서 지젝까지”는 보다 탈주체적인 관점에서 범맑스주의 사상 진영 안에서 현재 진행중인 논쟁들을 점검하고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보편적 주체를 중심으로 개진되는 이전의 맑스주의와 20세기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와 이론적 혼종성을 통해 맑스주의 내의 탈주체적 사유라는, 제1부와 제2부의 구별 지점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2차 대전 이후 전체주의적인 근대성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 속에서, 맑스주의의 끊임없는 갱신도 모더니티의 새로운 기획 혹은 포스트 모더니티의 구상과 함께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현대 사상의 분기점을 살펴보기 위해 제9강에서는 문성원 부산대 교수의 소개로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를 만나 보았다. 예민하면서도 자유롭게, 치열하면서도 고통스럽게 살았던 이 문제적 인간은 기존의 맑스주의에 대한 해석을 비판하며 구조주의적 시각에서 맑스를 새롭게 이해하고 맑스주의의 ‘과학성’에 대해 역설했다. 강의 중간에도 그 ‘과학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는데, 알튀세르가 맑스주의에 차용한 관점들을 이해하는 것은 현대 프랑스 철학 전반과 이번 강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1960년대 맑스주의와 구조주의가 만났을 때 일어났던 화학적 변화와 그것이 가져온 맑스주의의 새로운 전기와 그 한계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도 다음 시간까지 함께 고민해봐야 될 지점일 것이다.

반(反)목적론의 맑스주의

문 교수는 알튀세르의 입장을 설명하며 그가 기존의 맑스주의가 갖고 있던 역사주의, 경제주의, 환원주의, 주의주의(主意主義), 인간주의에 반대하여 자신의 사상을 전개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한 모든 사상적 대척점을 문 교수는 “반(反)목적론의 맑스주의”로 요약하며, 어느 하나로 규정될 수 있는 목적을 상정할 수 없는 투쟁의 역사라는 관점 속에서 알튀세르는 기존의 맑스주의가 갖고 있던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고 말했다. 역사를 바라보며 어떤 ‘목적’을 배제하면 그 목적을 상정하는 ‘주체’와 그 주체가 가진 ‘의지’를 탈각하게 되고, 보다 넓은 객관적 시야에서 사회 각 영역들의 구조와 각각의 자율성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아직 스탈린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소련 중심의 ‘정통 맑스-레닌주의’를 비판하는 한편, 여기에 대한 반발로 서구에서 일어난 이른바 ‘인간주의적 맑스주의’ 또한 거부하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조주의’에 반대하는 동시에 교조주의에 대한 ‘우익적 비판’에도 반대”한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알튀세르가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의 모든 문제를 ‘토대’인 경제로 환원해서 설명하려는 ‘경제주의’와, 인간의 자유 의지나 의도 따위를 강조함으로써 그 경제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주의’를 “맑스주의 내에 존재하는 상호보완적인 한 쌍의 잘못된 경향“으로 보고, 이 두 가지 모두를 극복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2차 대전 이후 이러한 맑스주의의 사상적 혼란은 이론의 자율성을 훼손시키고 맑스주의 이론을 왜곡하고 빈곤하게 만든 스탈린주의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알튀세르에게 중요했던 것은 맑스주의가 스스로 스탈린 시대의 오류를 해명하고 당시의 상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위기의 시대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스탈린 시대의 문제점을 스탈린 개인의 잘못이나 개인 숭배 탓으로 돌리는 것”이나, ‘인간과 소외와 해방’에 관한 들뜬 철학적 담론들은 맑스주의 이론과 관계 없는 비과학적인 비판이었고, 정세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할 수 없는 서구 맑스주의의 무기력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잉여가치론을 통해 노동가치설과 자본증식을 함께 설명할 수 있었던 맑스의 작업처럼, “맑스의 저작을 제대로 해석하여 맑스주의의 과학성을 확립하고 뒷받침”하는 일이었다.

그 작업에 착수한 알튀세르는 청년기 맑스의 저작에 대해서 “‘주체가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부정적인 면을 역시 그 주체의 힘으로 극복해 나간다’는 근대의 전형적인 주체 중심적 사고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런 점에서 헤겔의 소외론을 변형시킨 청년 맑스의 소박한 휴머니즘적 입장으로만 맑스주의를 설명하는 기존의 입장은 알튀세르에게 모두 부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러한 청년 맑스는 진정한 맑스의 얼굴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포이에르바하와 “헤겔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난 맑스, 반(反)목적론적 역사 과학을 정초한 맑스, 그러나 이 과학을 철학적으로 제대로 개념화하지 못한 맑스를 상정”했다. 그래서 알튀세르는 헤겔주의가 가진 목적론적ㆍ전체론적 사유를 집요하게 비판하며 “맑스의 사상과 헤겔 철학이 사실상 무관하다는 점을 자신의 스승인 (프랑스 철학자)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이란 개념을 빌려와 밝히”려 했고, “헤겔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맑스의 과학(변증법적 유물론)과 철학(맑스가 독자적으로 전개한 역사 유물론)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려 했다.

맑스주의의 과학성을 재건하려는 이러한 알튀세르의 분투 과정은 서구 진보 진영에 큰 영향을 끼치며 맑스주의의 다양한 논쟁 지점들을 생산했지만, 때로는 맑스와 맑스주의에 대한 부정확하고 왜곡된 주장을 포함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문 교수는 알튀세르는 이론적 완결성을 지속하지 못하고 말년에 이르러 스스로 맑스의 과학성에 대한 입장을 수정했으며, 그의 이러한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의 사상에 대한 다른 평가들도 그가 서구 진보 진영에 준 영향처럼 논쟁적이고 다양한데 “흔히 따라붙는 ‘구조주의적 맑스주의’라는 딱지 말고도, ‘과학주의’, ‘반(反)경험주의’, ‘엘리트주의’, ‘마오(모택동)주의’,” 심지어 “‘신(新)스탈린주의’와 ‘반(反)스탈린주의’의 같이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적 투쟁은 맑스주의를 보다 생산적이고 현대사회에 적합한 것으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고 사회와 역사를 좀 더 세련되게 분석하는데 참고할 지점들을 제공했는데, 여기서는 강의에서 강조되었던 몇 가지 개념들만 짚어보도록 하자.

‘생산’과 ‘이론적 실천’

알튀세르는 한 사회가 일정한 도달점을 향해 나아간다는 목적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경제주의 같은 환원론을 벗어나기 위해 “서로 자립성을 갖는 여러 영역들의 복합체”로서 사회를 조망하려고 했다. 기계상품을 제조하듯이 사회와 역사를 하나의 메커니즘 속에서 ‘생산하고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그는 하나의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짜맞춰진 이 기계와 같은 구도를 분쇄하려고 했다.

알튀세르/ 출처: http://blog.aladin.co.kr/sinthome/4021316

그래서 알튀세르는 그 ‘생산’이라는 지극히 근대적인 개념을 반(反)목적론적인 것으로 변형하여 사회의 각 영역에 도입하여, 각 부문이 상대적인 자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서 말하는 ‘생산’은 어떤 주체에 의해 추진되거나 지배되는 근대적인 의미의 생산이 아니라, 주어진 생산 수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다 객관적인 생산 형식을 말한다. 문성원 교수는 “이런 점에서 알튀세르의 철학을 모던포스트모던의 경계에 선 역사철학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알튀세르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과학, 이데올로기 영역 등도 생산의 구조를 가진다는 점과, “경제 영역이 다른 영역을 일방적으로 규정하거나 ‘결정’하거나, 모든 것을 경제 문제로 ‘환원’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물론 알튀세르에게 있어 때로는 정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 한 사회 속에서 다양한 실천 영역을 심급이라고 부르더라도 전체의 방향을 규정하는 것은 ‘최종심급에서의 경제의 결정’이다. 알튀세르는 이러한 구조 내의 인과성을 ‘중층결정’이라는 말로 설명하려 했다. 결국 그는 사회를 자립적인 영역들이 ‘구조적 인과성’ 속에 얽혀 있는 거대한 ‘복합적 전체’로 파악하는 것이다.

또한 알튀세르는 학문 영역의 과학이나 이론적 활동도 하나의 ‘생산’ 활동으로, 곧 ‘이론적 실천’으로 취급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정치나 문화의 영역도 경제 영역과 마찬가지로 ‘생산’이나 ‘실천’이라는 구조를 지니는 것으로 간주하면, 일방적인 환원론이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튀세르에게 있어 ‘과학’은 “어떤 외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기준은 과학 자체 내에 있는 것이며, 과학의 특성은 그 차원에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 내는 데 있다.” 이것을 알튀세르의 ‘반(反)경험주의 과학관‘이라고 부를 때, “과학이 생산한 지식이 실재의 대상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참된 지식이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이러한 “지식과 실재 대상 사이의 관계를 ‘전유(專有;appropriation)’라는 말로 설명한다.” 지식이 실재 세계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실재의 대상은 지식 생산과정에 대하여 ‘절대적인 준거점’으로 남아서 지식 생산의 영역은 실재 대상 영역에 대한 지식을 산출해 낸다. 그래서 우리가 실재의 대상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지식은 이렇게 생산된 지식뿐이다. “이 지식을 넘어서서 실재 대상과 이 지식 사이의 실제적인 관계를 조망하려는 것은 헛된 욕심이다.” 결국 ‘전유’라는 것은 지식이 경험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지식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는 표현인 것이다.

계급은 계급투쟁에 의해 구성된다.

‘구조주의에서 말하는 구조와 인간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문 교수는 이렇게 답변했다. “알튀세르는 ‘주체’로서의 인간을 거부하고, 역사는 주체의 의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그치지 않고, 아예 주체 개념 자체를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그에게 있어서는 특정한 ‘계급’도 변혁의 주체가 아니라, 주어진 구조와 상황 속에서 ‘생산’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도 역사는 계급투쟁에 의해 발전한다는 생각을 버리진 않지만, 그 과정은 어떤 각성된 주체가 아닌 계급투쟁을 통해 구성되는 계급에 의한 것이지요.” 알튀세르에게 역사란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으로서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 투쟁”이라는 것이다.

한편 알튀세르는 맑스주의 내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을 재해석하여 근대 세계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를 가능케 했다. 고전적 맑스주의에서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이었지만, 알튀세르는 목적론에 대한 거부 속에서 이데올로기는 실재 존재양식에 대한 개인들의 상상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그 어떤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무의식은 영원하다’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그에게 있어서 이데올로기는 역사가 아닌 물질적 존재를 통해 실현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불리는 학교, 교회, 공장, 가족 등에서 이데올로기는 ‘부름’과 그에 대한 ‘응답’의 과정으로 개인을 주체로서 호명한다. 즉, 이데올로기는 주체를 생산해낸다.

결론적으로 문성원 교수는 알튀세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맑스주의 안에 있는 목적론적이고 결정론적인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비록 자신은 구조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구조주의적 문제틀을 도입함으로써 ‘과학적’ 맑스주의를 새롭게 확립해 보려 한 철학자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도는 애당초 이질적인 것을 결합하려는 무리를 안고 있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알튀세르의 말처럼 목적론적인 색채를 가진 것이라 할지라도, 과연 “이 모순의 설정을 떠나서 맑스주의가 맑스주의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도는 맑스주의의 “한계와 맞닿은 극한적이었던 것”이며 그의 작업은 19세기 사람인 맑스를 20세기의 탈근대적 공간에 치열하게 투영시키려 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고 90년대에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어 ‘인기 있었던’ 알튀세르가 오늘날에는 왜 자주 회자되지 않는 것일까?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던 당시 시대상황도 한 몫 했겠고, 우루루 달려들었다가 ‘유통기한’이 다 되면 가차 없이 창고에 넣어 버리는 한국지성계의 고질적 관행도 한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 알튀세르를 읽다 보면 결국 궁극적인 물음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다. ‘결국, 무엇이 맑스주의인가?’ ‘결국 중요한 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면, 맑스주의는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한 때 ‘다시 맑스로 돌아가자!’라고 소위 맑스주의자들은 외쳤었지만, 문 교수는 강의 말미에 “맑스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 강좌 후반부로 갈수록 다시 질문을 벼릴 필요가 있겠다. 맑스를 버리면 맑스가 달리 보일까? 다음 시간에는 알튀세르의 성과와 한계 위에서 그의 제자들과 후학들이 어떤 사유를 종횡무진 펼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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