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와 장자가 만난다면? [맹자와의 대화 8]

전호근 / 김시천 대담

제선왕과 양혜왕, 맹자에게 러브콜하다

김시천: 맹자는 양나라 혜왕(惠王)을 비롯하여 제나라 선왕(宣王)과도 대화를 합니다. 맹자 당시에 혜왕이나 선왕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 등에 견줄 수 있는 강국의 왕들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일개 사상가에 지나지 않는데, 맹자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제왕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전호근: <맹자>에도 나오듯이 맹자는 제나라 선왕에 대해 기대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래서 제나라에 가서 출사(出仕)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직접 벼슬을 못하고 ‘객경’(客卿)이 됩니다. ‘경’이라면 오늘로 치면 국무총리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런 ‘경’이지만 임시로,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임명된 것이죠. 제나라 선왕이 맹자를 통해 지방관에 대한 보고를 받기까지 합니다. 왕이 맹자를 상당히 신임했던 것이고, 맹자도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맹자 또한 굉장히 뻣뻣하게 굴고 말대꾸도 하고 했지만 제나라 선왕이 굉장히 착한 군왕으로 왕도정치의 가능성을 지녔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연나라를 침략한 문제로 인해 갈라서게 되지만 맹자가 떠나면서 매우 아쉬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제나라 선왕이 소 한 마리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눈물 흘릴 줄 아는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잘 계발하면 백성들을 사랑하게 하는 것은 쉽다고 본 것입니다.

김시천: 아마도 <맹자>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유명한 두 가지 이야기를 고르라면 바로 그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나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하는 사람이야기로 바로 거기에서 맹자는 ‘측은지심’에 관한 논의를 꺼내지요. 다른 한 가지가 바로 제사에 쓰일 소를 잡으러 가는데 소가 두려워 떠는 모습을 보고서는,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하는 내용이지요. 맹자는 이것을 보고 그 때 느꼈던 측은지심을 백성에게 정치로 펼치는 것이 왕도정치라고 권하는 이야기죠.

그런데 선왕이 맹자를 대하는 태도는 어땠나요? 초강대국의 왕이니만큼 둘 사이의 대화가 편안했을까요?

전호근: <맹자>를 보면 선왕이 솔직하게 자신은 여자를 밝히고, 재물을 탐한다고 허심탄회하게 맹자에게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다른 왕들과는 분명 다른 면모가 있었기에 비록 맹자가 선왕을 떠나기는 했지만, 떠나면서까지 맹자는 선왕을 상당히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자기를 붙잡아 주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선왕도 맹자를 붙잡으면서 만종의 봉록을 줄테니 맹자아카데미를 만들자고 제안하니까 맹자가 이를 거절하죠. 옛날에는 십만 종을 준다고 해도 거절했는데 이제 와서 만종을 받으라는 거냐며 떠났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자기를 붙잡아 주기를 바란 것이었죠. 맹자 당시에는 진나라보다 제나라가 훨씬 강대국이었고, 선왕은 왕도정치를 실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김시천: 대단히 높게 평가를 했군요. 마치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자 전세계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기대했었죠. 맹자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래도 선왕이 좀 다르긴 달랐나 보네요. 그럼 양혜왕의 경우는 어땠나요? <맹자>의 첫 부분에서 보듯, 처음 만난 양혜왕에게 맹자는 “하필이면 왜 이익을 말하느냐?” 하며 다짜고짜 따지지 않았습니까?

전호근: 그렇죠. 제 선왕과는 달리 양나라 혜왕에 대해서는 도덕적 평가가 높지 않습니다. 맹자는 양 혜왕에 대해 ‘불인한 군왕’이라고 했는데, 전쟁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양 혜왕이 “동쪽으로는 제나라와 싸웠는데 패해서 태자가 죽었고, 서쪽으로는 진나라와 전쟁을 해서 7백 리를 잃었고, 남쪽으로는 초나라에 욕을 당했다. 죽은 자들을 위해 한 번 설욕해볼까 하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라고 하자, 맹자가 “사방 백 리만 갖고도 왕 노릇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답합니다.

김시천: 대단히 까칠했군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맹자를 죽이지 않은 것을 보면 양혜왕도 상당한 사람이었던 듯싶네요. 요즘 같은 민주주의 사회인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다간 쉽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전호근: 더한 것은 그 아들에 대해서입니다. 양 혜왕이 죽은 뒤에 즉위한 양왕에 대해서는 최악의 평가를 합니다.

김시천: 도대체 뭐라 말했기에 최악이라고 하시나요?

전호근: 이렇게 말합니다. 멀리서 보니 임금 같지도 않고, 가까이서 보니 왕다운 위엄도 없는데 그런 자가 만나자마자 졸지에 허튼 소리부터 하는구나 하며 최악의 평가를 내립니다. 양왕은 아마도 맹자 한 번 박대한 죄로 이만큼 심한 대접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맹자>에 그렇게 기록된 죄로 2,000년이 훨씬 넘도록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죠. 그에 비하면 맹자가 제나라 선왕을 평가한 것은 맹자로서는 최대의 평가였습니다.

 

맹자와 장자가 만났다면?

김시천: 그렇군요. 헌데 <맹자>를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생각이 자주 듭니다. 철학사에서는 유가와 도가가 늘 논쟁했고 서로 각축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사실 거의 동시대를 살았고 살던 곳도 서로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도 <장자>와 <맹자>에는 서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 이것이 참으로 철학사의 수수께끼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호근: 맹자는 생몰연대가 분명합니다. 또한 장자는 <사기열전>의 ‘노장열전’에 보면 제나라 선왕과 양나라 혜왕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고 하니까 두 사람이 동시대에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서로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장자> ‘천하’ 편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그래서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데 저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동시대인이 분명하다고 봅니다.

김시천: 하하하! 역시 선생님다운 논법이에요. 같은 시대를 살았고 바로 이웃 지방에 살았는데 서로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상하다!’ 라고 말해야 할 텐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인이 분명하다’고요? 참으로 맹자식의 언변입니다. 자, 그 이유를 들어야겠네요!

전호근: 맹자의 세상은 ‘천하’(天下)이고, 장자의 세상은 ‘강호’(江湖)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노는 물이 다른 거죠. 맹자가 천하를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자를 다스려서 천하를 바로잡으려고 한 것이죠. 이때 ‘천하’는 질서를 통해서 구현하려고 하는 당시 중국의 공간이고, 장자는 그런 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장자 식의 표현대로 ‘방외지사’(方外之士)인 것이죠. 그런 식으로 노는 물이 다르니까 서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평가할 기회가 없었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또 당시에는 장자가 <장자>라는 책을 쓰고, 맹자가 <맹자>라는 책을 써서 서로 바꿔볼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죠.

김시천: 그것 참 그럴 듯하네요.

전호근: <논어>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있었던 책이었죠. 말씀으로 기억되어 있다가 기록된 책이었죠. <장자>나 <맹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이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 아니라면 서로 만날 수가 없는 것이죠. 그 당시 텍스트가 어떤 식으로 존재했는가를 이해하면 이렇게 서로 비판하고, 이야기하고, 논쟁하기 좋아하는 맹자와 장자가 왜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가를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물론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초절정의 고수, ‘공자’같은 사람도 물론 있었습니다. ‘방내’(方內)와 ‘방외’를 두루 섭렵하면서 말이죠.

김시천: 공자가 방내와 방외를 두루 섭력했다는 것은 선문답이네요! 물론 저도 그 점은 동의합니다. 적어도 한 제국 이후의 지식인들에게 공자는 그렇게 생각되는 인물이었죠. 그러나 맹자와 장자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선생님 말씀처럼 텍스트의 형태로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전호근: 물론 그것은 가능한 한 가지 추정의 방식이긴 하죠.

김시천: 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의구심을 갖고 있어요. 무엇보다 우리가 ‘철학사’라는 것을 통해 고대 중국의 철학자들을 배우기에 공자, 노자, 맹자, 장자는 거의 대등한 위상과 의미를 갖는 것처럼 착각을 심어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장자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도 그렇지만 장자라는 인물은 매우 불우한 인생을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생존 당시에는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듯합니다. 오히려 그가 이름을 남긴 것은 재상까지 지낸 그의 친구 혜시(惠施)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이것은 그의 책 <장자>와는 별 개의 이야기입니다. 어찌 보면 맹자는 생존 당시 천하의 강대국들의 제후들에게 유세하며 살았던 풍운아였다면, 장자는 한적한 시골에서 그다지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채로 여생을 보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가끔 재상 친구 혜시와 벗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맹자의 가슴 속에 천하를 호령하는 기개가 담겨 있었듯이 장자의 가슴 속에도 우주를 꿰뚫는 도(道)가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결국 그 도는 문자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겠죠.

전호근: 그 또한 충분히 그럴듯한 얘기로군요!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