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4-모순과 의식 경험의 길[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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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4-모순과 의식 경험의 길

1)

앞에서 대립을 살펴보았다. 대립은 상이한 것이 모순으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다. 여기서 한편으로 개체적 현존은 자기의 부정인 타자를 통해 규정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개체적 현존은 직접적이어서 서로 무차별하다.

여기서 대립을 통해 규정되는 것은 개체적 현존에 대해 외적인 반성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다. 즉 마치 영하와 영상이 섭씨 0도라는 주관적 기준에 의해 대립하듯이, 주관적인 관점을 통해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헤겔은 이런 대립하는 것을 모순하는 것과 구분하는데, 모순하는 것은 우선 대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긍정과 부정이 서로 대립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런 대립에서 긍정과 부정으로 규정된다는 말은 곧 그 자신이 직접 규정되지 않고 필연적으로 타자를 부정하는 것을 통해 규정된다[정립된 존재]는 말이다.

이때 타자는 다시 자기의 부정(-A)이니, 결국 자기의 부정을 부정하는 이중 부정(–A)을 통해 자기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측면에서 각자는 타자를 이미 내포하고 있는 전체이다. 후자의 측면에서 각자는 타자를 배제한 채 자기 관계하는 자립적인 것이고 대자적 통일이다.

이런 이중 부정이 성립하는 것은 A와 -A 즉 긍정과 부정 사이에 어떤 다른 것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이른바 배중율이 성립한다. 그러므로 A와 -A는 서로 배타적인[부정적] 통일을 이루고 있다.

2)

대립하는 것에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각기 직접 존재하는 것이다. 양자는 개념에서는 대립하지만, 실제 존재는 우연하다. 그러나 모순하는 것에서 양자는 서로에 대해 필연적이다. 즉 자기[A]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타자[-A]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타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순하는 것에서 자기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타자를 인정한다는 것이 된다. 또한, 타자를 부정한다는 것은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즉 A이면 -A이며, -A가 아니면[–A] A도 아니다[-A]. 결국, 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모순하는 것은 딜레마, 이율 배반이며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자립적인 반성 규정은 다른 규정을 포함하고[-A] 이를 통해 자립적으로 되는 것[A]과 동일한 관점에서 똑같이 타자를 배제하므로[–A] 자립적인 반성 규정은 그 자립성 속에서[A] 자신의 자립성을 자기로부터 배제한다[-A]. 왜냐하면, 이 자신의 자립성이 성립하면[A] 자기와 다른 규정을 자기 내에 포함하고[-A] 이를 통해 외적인 것에 관계하지 않을 뿐[-A]이지만, 마찬가지로 직접 자기 자신이고 자기에 부정적인 규정을 자기로부터 배제하기[A] 때문이다.”(헤겔, 논리학, GW11, 279)

모순이 이처럼 필연적으로 자기의 타자로 이행한다는 것은 곧 어떤 개체적 현존에 대해 서로 모순적인 술어가 동시에 성립한다는 것이며 이는 그런 것이 이제 더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은 동시에 그것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3)

타자와 모순하는 것은 동시에 자기 자신에 자기가 모순하는 것이다.

①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정립된 모순이다. 왜냐하면, 이 양자는 부정적인 통일 자체이면서 자기 자신을 정립하며[A] 그런 가운데 각자는 자기를 지양하고 자신의 반대물[-A]을 정립하기 때문이다.”(헤겔, 논리학, GW11, 279)

② “이 양자는 배제하는 한에서 규정하는 반성을 이룬다. 배제는 구별이며 구별된 것 각각은 배제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 전적인 [타자의] 배제이기에[–A] 각각은 자기 자신 속에 자신을 배제한다[-A].”(헤겔, 논리학, GW11, 279)

이런 자기모순 속에서 즉 자기를 자신이 배제하는 가운데 대립에서 여전히 머물러 있던 외적 반성이 사라지고 ‘규정하는 반성’이 출현한다.

어떤 것이 자기 모순적이어서 자기가 존재하는 동시에 자신의 타자가 존재하게 된다면, 이 모순은 사실 어떤 개체적 현존을 규정하는 공간을 열어놓는 본질이 한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한계 선상에서 출현하는 어떤 것은 이제 이렇게 규정되면서도 동시에 그 반대로 규정되며 또 이렇게 규정되지도 않고 그 반대로 규정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제 본질이 발전하여 이런 모순적인 것을 포괄하는 더 근본적인 본질 즉 심층적 근거가 출현하게 된다면, 이 근거 속에서 모순은 사라지고 각자는 그 근거의 공간 속에서 일정한 현존을 부여받을 수 있게 된다. 바로 이런 근본적인 본질에 이르는 반성이 곧 규정하는 반성이다.

이율배반적인 것은 칸트에서 물 자체가 출현한다는 것의 신호이다. 물 자체는 인식의 경계선상에 존재하니 그것이 무엇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반대도 성립하는 것이며, 따라서 심지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칸트는 이런 물 자체에 부딪히면서 인식이 난파하고 말지만, 헤겔에서 이런 물 자체에 부딪힌다는 것은 오히려 새로운 반성이 일어나서 더 포괄적이며 더 근본적인 본질, 외적 주관적 반성이 아니라 내재적인 객관적 본질이 출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 자체에 부딪힘으로써 본질로 반성하는 운동이 일어나는 과정에 관해서는 헤겔이 정신현상학 서론에서 의식 경험의 길이라는 개념으로 서술한 바가 있다. 논리학 본질론에서 모순 개념은 이런 의식 경험의 길을 배후에 깔고 이루어지는 반성 운동이다.

4)

대립하는 것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두 계기로 가진다면, 긍정과 부정의 관계는 주관적 관념에 속하는 것이며 각자는 직접 우연하게 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것만 존재하거나 부정적인 것만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순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그 의미가 변화한다. 이제 긍정적인 것은 어떤 것이 직접 정립되어 있는 것을 말하지만, 그것은 부정적인 것에 대립하는 것이니, 이런 대립한다는 점에서 자기를 부정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잠재적 모순이다. 그런 모순이 외화하면 부정적인 것으로 된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것은 모순이다. 즉 긍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을 배제하여 자기와의 동일성을 정립하는 것이므로 자기 자신을 어떤 것의 부정태로 만들며 그럼으로써 자기가 자기로부터 배제했던 것인 타자로 만든다.”(헤겔, 논리학, GW11, 280)

거꾸로 부정적인 것은 무엇을 부정하는 것 즉 긍정적인 것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런 부정적인 것 자신이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니, 이를 통해 긍정적인 것으로 되돌아온다. 이런 긍정적인 것은 아직 자기 속에 내포되어 있으며 드러나지 않았다. 이것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외적 반성에서 주관적 본질이 규정하는 반성에서 심층적 근거로 발전해야 한다.

“긍정적인 것은 다만 잠재적으로만 이런 모순이다. 그에 반해 부정적인 것은 이 모순이 정립된 것이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것의 자기 내 반성 속에서 그리하여 그 자체로 대자적인 부정태가 되거나 부정태로서 자기와 동일하게 되면서 이 부정적인 것은 비동일한 것 즉 동일성을 배제하는 것이라는 규정을 가지게 된다. 부정적인 것은 동일성에 대립하여 자기 동일적인 것이고 따라서 배제하는 반성을 통해 자기 자신을 자기로부터 배제하는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80)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이런 이행은 각자가 그 자신에서 타자가 된다. 대립하는 것에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순하는 것에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발전하는 운동 속에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내재하는 모순이 외화되고 이를 통해 본질로 반성이 일어나는 운동의 과정이다.

“이제 나가서 각자[긍정과 부정]는 타자의 본래 모습과 같은 것이니, 부등한 것[긍정과 부정]의 관계는 양자가 동일성을 이루는 관계[ihre identische Beziehung]이다.”(헤겔, 논리학, GW11,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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