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3-대립과 남녀 관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3-대립과 남녀 관계
1)
앞에서 설명했듯이 상이성은 가족 유사성과 같이 개체 사이의 동등성과 부등성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다. 즉 동등성과 부등성은 다른 관점에 따라 규정되니, 어떤 점에서는 동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점에서 그들이 부등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동등성은 상이한 개체적 현존에 외면적인 것일 뿐이다. 이는 외적 반성의 결과다.
상이한 개체적 현존들 가운데에는 경험의 발전을 통해 서로 대립하는 것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자면 암수 또는 음양의 관계다. 헤겔은 이런 서로 대립하는 개체들을 긍정적인 것[Positive]과 부정적인 것[Negative]으로 대표한다.
대립하는 것은 상이한 것과 모순적인 것 사이의 중간 단계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상이한 것보다는 모순에 가까운 측면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상이한 것에 가까운 측면도 지닌다. 대립하는 것은 자주 모순적인 것과 뒤섞여 사용되는데, 헤겔은 대립하는 것을 이런 중간적인 것으로 모순적인 것과 구분한다.
2)
상이한 것과 달리 대립하는 것은 부분적인 동등성이 아니라 집합 전체가 어떤 하나의 관점[A]에서 A이든가 그것이 아닌 것 즉 -A로 갈라진다. 여기서 서로 부정하는 관계가 성립하려면 A와 그것의 부정인 -A가 배타적이어야 한다. 즉 양자의 가운데 A이면서 동시에 -A인 것이 없어야 하며, 양자는 배타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어야 한다. 모든 개체적 현존은 생식의 측면에서 암컷이든가 아니면 수컷이다. 암컷이거나 암컷이 아닌 것은 없다.
서로 대립하는 개체적 현존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 하나의 측면은 상호 관계의 측면이다. 다른 측면은 무차별성의 측면이다. 상호 관계의 측면에서는 모순적인 것에 가까우며 무차별적인 측면에서는 상이한 것에 아직 머물러 있다.
두 측면 가운데 먼저 상호 작용의 측면을 보자. 이 측면은 다시 두 측면으로 나누어볼 수있다. 우선 배타적, 부정적 관계의 측면이다. 어떤 것은 그 자체로 규정되지 않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① 어떤 것은 자신의 타자를 부정하는 것을 통해서 즉 “비교되는 반성 속에서만” 규정된다. 즉 P[Positive]는 -N[Negative] 이고 N은 -P이다.
타자에 의해 부정된 것으로 규정된다면, 어떤 것은 자신의 규정 속에 이미 타자를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② 각자는 자기의 타자를 포함하는 전체이며 동시에 전체의 한 계기이다.
“두 계기의 각자는 그 자신의 규정을 지니는 가운데 전체이다. 각자는 다른 계기도 또한 포함하는 한에서 전체이다.”(헤겔, 논리학, GW11, 272)
동등성은 자기 동일적인 것이지만, 부등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니, 이런 부등한 것을 부정하면서 부등성을 내포하는 동등성이 긍정적인 것이다. 그것은 부등성도 마찬가지다. 부등한 것은 동등한 것과 부등한 것이니, 이런 부등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부등성은 자기 자신과 동등하다. 이처럼 동등성을 내포하는 부등성이 곧 부정적인 것이다.
“이런 자기와의 동등성이 자기 내로 반성하면 자기 자신 속에서 부등성에 대한 관계를 포함하면서 긍정적인 것으로 된다. 그러므로 부등성이 자기 자신 속에서 그 비존재 즉 동등성에 대한 관계를 포함하면 부정적인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73)
3)
그것은 타자에 의해 타자가 아닌 것으로 정립되지만, 이 타자는 거꾸로 어떤 것 자신에 의해 정립된 것이니, 어떤 것이 규정된다는 것은 곧 자기에 의해 정립된 타자에 의해 정립된 것이니, 어떤 것은 곧 ③ 자기가 자기를 규정하는 것으로 되면서 곧 자기 내로 반성한 것, 자기 관계하는 자립적인 것으로 된다. 이런 측면에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대립의 ‘절대적 계기’다. 여기서 양자는 상호 순환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각자는 자기 자신이며 동시에 타자이고 이를 통해 각자는 자기 규정성을 타자에서 갖지 않고 그 자신에서 갖는다. 각자는 자기 자신에 관계하면서 이때 다만 자신의 타자에 관계할 뿐이다. 각자는 이중적 측면을 갖는다. 각자는 자신의 비존재에 관계하지만, 이 타자를 자기 내로 반성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의 비존재는 다만 그 자신 속에 있는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헤겔, 논리학, GW11, 273)
대립은 앞에서 말한 타자에 의해 부정되는 정립된 존재의 측면과 이중 부정을 통해 자기 관계하는 자립적 측면이라는 이중성을 지닌다. 어떤 것이 자기 내로 반성하며 ① 자기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은 자기가 자립적인 것[–A]임을 의미한다. ② 자기가 타자에 의해 부정되는 관계에 있다는 것[-A]이다. 이는 정립된 존재의 측면이다. 그러므로 자립적 존재는 다시 타자에 의존하는 정립된 존재가 된다.
전자의 측면은 ①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측면[–A]에 대응하며 후자의 측면은 ② 자기가 존재하지 않는 측면[-A]에 대응한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구성하는 규정은 우선 양자가 대립의 절대적 계기라는 점에 존립한다. 그것이 존립한다는 것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의 반성이다. 그것을 존립하게 하는 매개 속에서 ① 각자는 자신의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서 따라서 그의 타자 또는 ② 그 자신의 비존재를 통해서 존재한다.”(헤겔, 논리학, GW11, 273)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말해 우선 각자는 타자가 존재하는 한에서 존재한다. 각자는 타자를 통해서 ② 그 자신의 비존재를 통해서 각자의 본래 모습이 된다. 각자는 다만 정립된 것이다. 둘째로 각자는 ①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한에서 존재한다. 각자는 타자의 비존재를 통해서 그 본래 모습이 된다. 각자는 자기 내로 반성한다.”(헤겔, 논리학, GW11, 274)
4)
이런 순환은 구체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자가 이미 남자에 의해 규정된 존재니, 여자에 의해 남자로 규정된다는 것은 사실은 남자 자기가 자기를 규정하는 것이다. 반대로 남자가 여자를 규정한다고 해 보자. 남자가 이미 여자에 의해 규정된 존재니, 이는 여자가 자기를 규정한다는 말이 된다.
실제 우리는 남자가 여자를 비난하면서 한탄할 때 사실은 자기가 그런 여자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남자를 비난할 때 그런 남자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여자 자신이다.
앞에서 지젝이 반성 개념을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보았는데, 그때 그는 ‘전제를 정립하기’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가족으로부터 혹사당하는 어머니의 예를 들었다. 그 어머니는 가족이 자기를 혹사한다고 불평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그런 가족을 자기를 혹사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주 드는 예로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할 때 사실은 여자가 그 남자로 하여금 그를 유혹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예를 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4)
대립에서 정립된 것이 곧 자기 내 반성된 것이다. 그러나 대립하는 것에는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즉 직접적 무차별성의 측면이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개념적으로는 서로 대립적으로 규정되지만, 동시에 각자는 직접 무차별한 하나의 현존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대립적 규정은 특정한 관점에 따른 것이며 이는 외적인 반성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에서도 기점을 어디로 잡는가에 따라서 음수와 양수가 대립한다. 우리는 섭씨 0도를 기준으로 그 이하는 음수로 그 이상은 양수로 잡을 수 있고 화씨 0도를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음이거나 양이 된다는 것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 그 개체적 현존 자체에 고유한 것, 내적인 것은 아니다.
대립적인 것이 이런 직접적인 규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통해 드러난다.
우선 이런 직접성 때문에 어느 개별적 현존을 긍정적인 것으로 보고 그에 대립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든가 상관없다. 남녀의 관계에서 남자를 긍정적인 존재로 보든, 여자를 긍정적인 존재로 보든 차별이 없다.
“따라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라는 규정성 가운데 하나가 사실 모든 측면에 속하지만, 그런 규정성은 서로 뒤섞일 수 있으며 각 측면이 존재하는 방식은 각 측면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도 괜찮으며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도 괜찮은 방식이다.”(헤겔, 논리학, GW11, 274)
또한, 남녀는 개념적으로는 대립하지만, 남과 녀는 따로 무차별하게 존재하는데, 이 세상에는 남자만 존재하거나 여자만 존재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태어나는 존재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우연적인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빛만 있다거나 어둠만 있을 수도 있으며, 자산만 있거나 빚만 있을 수도 있다.
헤겔은 대립을 설명하는 주석에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갖는 흥미로운 예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누가 어떤 자산을 타자에게 빌려주었을 때, 그것은 그 자산을 누가 사용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빌려준 자에게는 부정적인 것이고 빌려 온 자에게는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권리, 소유권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빌려준 자에게서는 긍정적인 자산이고 빌려 온 자에게서는 부정적인 빚이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a* +a와 +a*-a가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다고 한다. 알다시피 위의 두 식은 음수와 양수를 대립적으로 보는 관점에 따르자면, 동일한 결과 즉 -a²이다. 그러나 -, +를 직접적인 것으로 읽는다면, 전자와 후자는 다른 결과가 나온다. 즉 전자 즉 -a를 빚으로 보면 빚a를 a번 곱하면 빛 a² 즉 -a²가 나온다. 그런데 후자에서 +a를 자산으로 읽고 -a를 a 번 ‘빌려준다’로 읽는다면, 여전히 자산이 a² 만큼 남아있게 된다는 것이다.
5)
대립하는 것은 이처럼 두 측면을 지닌다. 하나의 측면에서 대립하는 것은 타자를 부정함을 통해 규정된다. 이는 동시에 이중 부정을 통해 자기를 규정하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대립하는 것은 직접적인 것이고 무차별한 개체적 현존이다.
이런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대립하는 것은 이제 ‘자기 자신에서[an ihm selbst]’ 긍정적인 것이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긍정적인 것은 자기 자신[an ihm selbst]에서 타자에 대해 긍정적인 규정성이 들어 있는 관계 속에 있다.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것은 타자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만드는 규정성을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 안에서[in ihm selbst] 갖는다.”(헤겔, 논리학, GW11, 274)
이런 ‘자기 자신에서’ 긍정적이고 부정적이라는 것은 서로가 부정하는 관계에 있지만, 이 배타적 통일의 관계가 각자의 밖에 놓여 있는 외적 반성의 관점에 속하는 것을 말한다. 즉 그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닌 통일 속에서 서로 타자에 관계하는 것 또는 그렇게 정립되는 것”을 말한다.
개체적 현존이 외적인 반성을 통해 긍정적인 것이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이 외적 반성이라는 관점이 망각되면, 이런 외적인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마치 어떤 것에 내재하는 즉 본래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마치 빛이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것이며, 탄생이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과 같다. 그런 긍정적인 것은 “정립되지 않은 것이며 대립이 지양된 것이지만, 사실은 대립 자체의 한 측면으로 존재한다.”
반면 부정적인 것도 사실은 직접적인 것이고, 외적인 반성의 관점에서 긍정적인 것이 결여된 것인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부정적인 것은 본래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마치 본래부터 어둠은 부정적인 것이며, 죽음도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인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6)
대립은 아직 외적 반성에 머물러 있다. 대립에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개체적 현존 자체에 외면적인 규정일 뿐이다. 그러나 헤겔은 여기서 모순으로 이행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긍정적인 것은 대립에 머무르지만, 부정적인 것은 모순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것은 직접 존재하는 자기와 동등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부정적인 것을 부정하는 것을 통해 규정되니, 이런 점에서 부등한 것이다. 따라서 긍정적인 것은 이미 모순적인 것이지만, 아직 그 모순은 출현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것은 자기 동등성에 고착되면서, 외적인 반성에 머물러 있다.
“사실 어떤 것은 긍정적인 것으로 볼 때는 타자에 관계하는 가운데 규정되어 있으나 그 방식을 보자면, 그런 긍정적인 것의 성격은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긍정적인 것은 이 타자 존재를 부정하면서 자기 내로 반성한 것이다.” (헤겔, 논리학, GW11, 274)
부정적인 것에 이르면, 그것은 긍정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여기에서는 아직 외적 반성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가능성을 지닌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긍정적인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런 부정적인 것조차 아닐 가능성이다. 부정적인 것은 자기와 부등한 것인데, 이런 자기 부정의 가능성이 출현하면서 이중적 부정을 통해 자기와 동등할 가능성이 출현한다.
“부정적인 것은 절대적 반성인 한에서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것이아니며 오히려 정립된 존재[긍정적인 것]가 지양된 것으로서 부정적인 것이니, 그 자체로 대자적[자기 관계하는]인 부정태이며 자기 자신에 긍정적으로 관계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것은 자기 내로 반성하는 것이므로, 타자에 대한 그 관계[-P]를 부정한다. 그것의 타자가 긍정적인 것인데 즉 자립적인 존재다. 따라서 그런 긍정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인 관계는 자기를 자기로부터 배제하는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74-5)
이 가능성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외적 반성에서 본다면, 그것은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것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 자기 모순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이 부정적인 것을 통해 모순으로 이행하게 된다.
이 자기모순에 부딪히면서 외적 반성은 규정하는 반성으로 이행하면서 더 포괄적이며 더 근본적인 본질 즉 객관적인 본질이 등장하게 되면서, 규정하는 반성으로 이행하게 된다. 이 규정하는 반성에 이르면 자기와 부등한 부정적인 것은 자기와 동등한 긍정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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