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 12-상이성과 가족 유사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 12-상이성과 가족 유사성
1)
생물체에서 개체적 현존은 모나드처럼 자기 완결되어 있으니 다른 개체적 현존과는 어떤 관계도 맺지 않는 고립적인 개체다. 그러나 이런 고립적 개체는 개체 내적으로는 자기 부정성을 통해 자기 관계하는 것이니 구별과 동일성을 통일하는 것이다. 어떤 개체적 현존은 이처럼 자기 부정성을 통해 자기 관계하면서 서로 무차별하게 존재할 뿐이니 이런 점에서 개체적 현존을 상이한 것이라 한다.
존재론에서 현존과 타자는 분리되어 있지만, 그 자체에서 타자로 이행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양자는 접점을 통해 분리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본질론에서 현존과 타자는 상이한 것이니, 이는 분리되어 있으면서 접점이 없는 무차별한 것이다.
“동일성은 그 자신에서 상이성으로 전락한다. 왜냐하면, 절대적 구별을 자기 내에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을 자기의 부정태로 정립하고 이 두 가지 계기 즉 동일성 자체와 자기의 부정태인 자기 내 반성이 서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는 동일성은 이와 같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직접 그 자체로 지양하고 그런 규정 속에서 자기 내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구별된 것은 서로 무차별하게 상이한 것으로서 존립한다.”(헤겔, 논리학, GW11, 267)
2)
이런 상이한 것들은 무차별하지만, 어떤 비교를 통해서 서로 공통성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공통성이 찾아지면, 그것들의 차이도 발견된다. 상이한 것들 모두에게서 하나의 공통성을 발견할 수는 없다. 이런 상이한 것들 사이에서 공통성이 발견되더라도 그 공통성은 상이한 것들의 부분에만 성립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 공통성은 일종의 가족 유사성이다.
이런 가족 유사성과 같은 공통성은 비교의 관점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 비교는 개체들에 대해서 외면적이며, 그런 한 여기서 공통성과 차이는 외적 반성에 속하는 것이다. 이는 주관적인 공통성과 차이이며, 그 사물 자체에 속하는 본질적 공통성과 차이는 아니다.
외적 반성은 반성 운동 즉 수직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상이성은 개체들 사이의 상호 관계에서 나타난다. 양자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데, 상이한 것이므로 외적 반성만이 가능하며 거꾸로 외적 반성을 통해 정립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들은 상이하다. 헤겔은 이런 외적인 반성을 통해서 얻은 공통성과 차이를 ‘동등성[Gleichheit]’과 ‘부등성[Ungleichheit]’으로 규정한다.
동등성은 부등성은 동일한 비교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동등성은 부등성에 대립하여 규정되며, 거꾸로 부등성은 동등성에 대립해서 규정된다. 동시에 동등성과 부등성은 분리된다. 양자는 상이한 것들이 지닌 다른 측면 다른 관점에서 본 것을 말한다. 전자의 측면에서 동등성과 부등성은 정립된 것이며 후자의 측면에서 동등성과 부등성은 직접적인 것[그 자체로 반성한 것]이다.
3)
예를 들어 가족 유사성에서 가족 A, B, C가 있다 할 때, A와 B는 코가 동등(유사)하고, B와 C는 눈동자 색깔이 동등하다. A와 C는 머릿결이 동등하다. 이런 경우 어떤 성질 A와 B의 코의 동등성은 A와 B의 머릿결의 부등성과 관계 속에 있다. 양자의 코의 동등성은 머릿결의 부등성과 짝을 이루며, 서로의 이면을 이룬다.
그러나 A가 지닌 눈동자 색깔은 B와는 무관하다. A의 눈동자 색깔은 B의 관점에서는 자기와 무관한 A가 지닌 직접적인 것이다. 물론, A를 C와 관계해서 보면, 눈동자 색깔은 동등성에 속하고 이는 A와 C가 코가 부등하다는 것에 대해 부정성의 관계에 있으니 정립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A, B, C가 지닌 모든 성질은 한편으로는 정립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무관한, 직접적인 것이다. 어떤 것이 지닌 무관한 직접성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정립된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무관한, 직접성을 헤겔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반성[an sich Reflexion]’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규정한다. 사실 헤겔이 왜 이런 표현을 골랐는지는 모호하지만, 생각해본다면, 그 자체로[an sich]란 아직 잠재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니, ‘그 자체로 반성적인 것’이란 반성이 아직 일어나지는 않은 직접적인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정립된 것으로 바뀔 수 있으니, 그런 점에서 단순히 직접적인 것은 아니고 잠재적으로 반성적인 것이 된다.
헤겔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상이성이 이중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정립된 측면과 그 자체적인 반성의 측면이다.
① “상이성은 무차별한 구별이므로 이 상이성 속에서 일반적으로 반성이 자신에 외적으로 생성된다. 구별은 다만 [동일성에 대해] 정립된 것이거나 또는 지양된 구별[독립성]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그 구별은 전적으로 반성한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67)
② “그러므로 이중적인 측면이 출현한다. 즉 자기 내 반성 자체와 부정성 또는 정립된 존재로서 규정성이다. 정립된 존재는 자기에 외적인 반성이다. 정립된 존재는 부정으로서 부정이다. 따라서 그 자신에서 사실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이나 자기 내 반성이지만, 다만 그 자체로 그럴 뿐이다. 그런 정립된 존재는 외적인 것으로서 그런 부정에 관계하는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68)
③ “그 자체에서 반성은 동일성이지만, 구별에 대해 무차별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구별을 전혀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서 구별에 대립한다.“(헤겔, 논리학, GW11, 268)
4)
위에 설명한 것처럼 상이성에서 두 가지 계기 즉 동등성과 부등성은 외적으로 정립된 것이어서, 가족 유사성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경험이 발전하여 상이한 것들 가운데 동등성과 부등성이 단적으로 대립해서 그것에 속하는 모든 원소가 동등한 측면을 지니면서 동시에 부등한 측면을 지니게 된다면, 이런 경우는 동등한 것은 긍정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부등한 것은 부정적인 것이 된다. 헤겔은 이런 경우를 대립이라고 규정한다.
상이성에서 동등성과 부등성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중첩될 뿐, 서로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대립에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단적으로 대립하므로 이는 통일을 이룬다.
헤겔의 논리학이 항상 그렇듯이 개념의 발전은 경험의 발전을 전제로 한다. 이런 경험의 발전을 회고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논리적 발전이다. 마찬가지로 상이성에서 대립으로 개념이 발전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우리 경험의 발전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경험은 물론 생물의 개체적 현존에 대한 경험이다. 생물학은 분류를 통해 발전했다. 처음에는 외적인 특징을 가지고 생물이 분류되었으나 그런 분류를 벗어나는 예외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아직 상이성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근대에 와서 분류는 종이 재생산되는 방식 즉 생식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어느 생물에서나 일정한 발전을 이루어 유성생식에 이르게 되면, 암수의 구별이 생겨난다. 암수의 분류는 다른 분류 기준과 달리 위에서 말한 대립을 이룬다. 암수는 단적으로 대립하면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된다.
헤겔은 이처럼 일어나는 경험의 발전을 상이한 것이 개념상 자기모순을 통해 대립으로 나가는 것으로 설명한다. 즉 경험의 발전이 개념적으로 설명된 것이다.
5)
상이성에서 동등성과 부등성은 가족 유사성에서 보듯이 서로 무관하고 외면적이다. 그것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위의 예에서 A와 B는 코의 측면에서 동등하지만, 눈동자의 측면에서는 부등하다. B와 C는 눈동자의 측면에서는 동등하지만, 머릿결의 측면에서는 부등하다.
“동등성과 부등성이 이리저리 넘어가는 관계는 이런 규정성[동등성과 부등성]에 외면적이다. 또한, 양자는 서로 관계하지 않으며, 각자는 독자적인 것으로서 다만 제삼자에 관계한다.”(헤겔, 논리학, GW11, 268)
“그러나 서로 무차별하다는 것을 통해 동등성은 자기에만 관계하고 부등성도 마찬가지로 고유한 관점에서 일어나는 독자적인 반성이다. 따라서 각자는 자기 자신과 동등하다. 동등성과 부등성의 구별은 사라진다.”(헤겔, 논리학, GW11, 269)
이런 외적인 반성, 즉 제삼자에 의해 일어난 반성에 따라서 조건이나 측면, 관점에 따라서 동등성과 부등성은 달라지니 양자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런 서로 분리된 동등성과 부등성은 개념상 모순을 범하게 된다. 이 개념적 모순은 마치 플라톤의 저서 파르메니데스에서 나오는 논변을 상기시킨다. 아래를 보라.
우선 동등성은 자기에 대해 동등하지 않다. 왜냐하면, 동등성은 부등성과 분리된 것 즉 부등성과 부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등성은 자기모순이다. 마찬가지로 부등성도 자기모순이다. 왜냐하면, 부등성은 자기에 부등한 것인데, 따로 떨어져 독자적으로 존재하므로 동등한 것이다. 그 결과 부등한 것이 동등하다는 모순이 나온다.
“그러므로 동등성은 자기 자신과 동등한 것이 아니고 부등성으로서 부등성은 자기 자신과 부등하지 않으며 자기에 부등한 것은 그 자체가 동등한 것이다. 그러므로 동등한 것과 부등한 것은 자기 자신과 부등한 것이다. 따라서 각자는 이런 반성이니 동등한 것은 자기 자신이며 동시에 부등한 것이며 부등한 것은 자기 자신이면서도 동시에 동등한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69)
이상의 논변은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상이성에서 나타나는 동등성과 부등성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족 유사성에서는 관점(코나 머릿결 등)을 제외한다면, 동등한 것이 동시에 부등하고, 부등한 것이 동시에 동등하기 때문이다. 위의 예에서 A와 B는 동등하면서도 부등하며, 그것은 B와 C는 부등하면서도 동등하다.
이처럼 가족 유사성 즉 상이성에서 동등성과 부등성은 자기모순을 통해 붕괴하면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대립이 출현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상이한 것은 [동등성과 부등성으로] 정립됨을 통해서 부정적인 반성으로 이행한다. 상이한 것은 구별[동등성과 부등성]이 단순하게 정립된 것이므로 더는 그 구별은 구별이 아닌 것이며 자기 자신에서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등성과 부등성 자체는 정립된 것으로 되면서 무차별성이나 그 자체로 존재하는 반성을 거쳐서 자기와의 부정적 통일로 즉 동등성과 부등성을 자기 자신에서 구별하는 반성으로 되돌아간다. 상이성은 자기의 무차별한 측면들이 동시에 잔적으로 이 부정적 통일의 계기로 되면서 곧 대립으로 된다.”(헤겔, 논리학, GW11, 270)
상이한 것들에서 동등성과 부등성은 외면적이다. 그러나 대립한 것 즉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예를 들어 암수의 구별과 같은 것)은 개체적 현존 자체에 내적인 것이다. 즉 그것은 개체적 현존 자체가 “자기 자신에서 구별하는 것”이며 그 구별 즉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부정적 통일의 계기”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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