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5-부정적인 것은 실재하는가?[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5-부정적인 것은 실재하는가?
1)
모순하는 것은 자기인 동시에 자기의 타자이다. 즉 A이면서 -A이고 거꾸로 -[-A]이면서 동시에 [-A]이다. 헤겔은 이처럼 자신의 타자로 필연적으로 이행하는 모순의 운동을 ‘자기 자신을 배제하는 반성[sich selbst ausschliessende Reflexion]’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곧 “자립성 속에서 자기를 지양하여” “스스로 자신을 자신의 반대물로 번역하는[Uebersetzen]“ 운동이다.
대립하는 것은 자기의 부정인 타자를 부정하여 규정되는 것이므로, 이런 이중 부정을 통해
자기 관계에 이르고 자립적인 것으로 되지만, 동시에 이는 타자에 대립하는 정립된 것이다. 그러나 모순하는 것 속에서 출현하는 자기를 배제하는 반성을 통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그 어느 것이나 몰락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배제하는 반성은 동시에 정립하는 반성이다. 모순의 결과는 0일 뿐만은 아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자립적인 것이 정립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들이 자기 자신을 통해 부정되는 것은 이렇게 정립된 자립적인 것을 지양한다. 이것은 모순 속에 진정으로 몰락하는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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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몰락은 단순히 사라지는 것 즉 0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모순을 통해 대립하는 것이 몰락한다는 것은 그런 모순하는 것을 산출했던 공간 자체, 그리고 이를 열어놓는 본질의 부정을 의미하게 된다. 이런 모순이 출현하는 것을 통해 그 본질은 주관적인 본질임이 드러난다.
대립에서 모순으로 이행하고 주관적 본질이 객관적 본질로 전환하는 과정은 역동적인 과정이다. 모순에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위상을 달리한다. 긍정적인 것은 자기 동등한 것이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것에 부등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 모순이지만, 그 모순은 아직 감추어져 있다. 긍정적 모순은 아직 대립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부정적인 것에 이르면, 이 부정적인 것은 자기에 부등한 것이니, 그것은 그 자신에 대해서도 부등하며, 그 결과 내적 모순이 외적으로 출현하게 된다. 이렇게 모순이 출현하면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외적 반성에서 나온 것이며 주관적 본질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본질의 주관성 때문에 부정적인 것에서 자기모순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모순에서 부정적인 것이 지닌 자기 부정성은 곧 이행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
부정적인 것의 자기모순은 새로운 반성을 일으키면서 더 근본적이고 더 포괄적인 본질, 사태에 외적인 본질이 아닌 사태에 고유하게 내재하는 본질, 즉 객관적 본질이 출현하게 된다. 이것이 곧 규정하는 반성이며 여기서 출현하는 객관적 본질 속에 부정적인 것은 이제 자기 부정적인 것으로 그치지 않고 긍정적인 것으로 전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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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하는 반성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제 더 근본적이고 더 포괄적인 본질 즉 객관적 본질이 등장한다. 그 이전에 서로 모순하는 것은 그런 객관적 본질이 열어놓은 공간 속에서는 모순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서로 모순하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거의 통일로서 본질”(GW11, 282)이다.
“그래서 자립적인 것은 자기 자신을[eigene] 부정하는 것을 통해 자기 내로 복귀하는 통일이 된다. 왜냐하면, 이 자립적인 것은 자신이 정립되어 있음을 부정하는 것을 통해 자기 내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이런 통일은 본질에 속하는 통일이다. 왜냐하면, 어떤, 타자를 부정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와 동일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헤겔, 논리학, GW11, 281)
이 객관적 본질은 개체적 현존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며 개체적 현존과 대립하지 않는 “긍정적인 자기 동일적인 것으로서 본질”((GW11, 282)이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이데아처럼 초월적으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적 현존을 서로 매개하는 운동으로서만 개체적 현존에 내재하는 것으로서만 출현하니, 이런 점에서는 이 본질의 자기 동일성은 “부정성으로서 자기에 관계하며 그러므로 자기를 규정하고 배제된 정립된 존재[개체적 현존]로 만드는”(GW11, 282) 동일성이다.
이런 객관적 본질은 자기를 현존하게 하면서 서로 대립하는 것 즉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분지한다. 즉 A=P or -P이다. 이런 근거 속에서 모순하는 것들은 서로 종합하여 전체적 본질을 이루는 것이 된다. 이제 P나 -P거나, 정립된 개체적 현존은 본질에 의해 규정된 것이 되며, “정립된 존재가 정립된 존재로 되는 가운데 이 정립된 존재는 자기 자신과 통일[본질] 속으로 복귀한다.”(GW11, 282)
이제 그 속에서 본질이 긍정적으로, 자기 관계하는 자립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즉 정립된 존재는 본질이 전적으로 자립화한 것이니 “이 본질은 근거 즉 이런 자신의 부정태[개체적 현존] 속에서 자기와 동일한 것이며 긍정적인 것이다.”(GW11, 282)
이상에서 모순의 상호 통일이 곧 근거라는 사실을 제시한 끝에 헤겔은 이제 모순론을 마치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그러므로 자기 모순적인 자립적 대립은 이미 그 자체 근거이다. 자기와의 통일이라는 규정이 덧붙여진다. 이 규정을 등장하게 하는 것은 곧 자립적인 대립물 각자가 자기를 지양하고 자기를 자신의 타자로 만들어 몰락하지만 그런 가운데 동시에 다만 자기와 합치하며 그러므로 자기의 몰락 속에서 즉 자신이 정립되거나 부정되는 것 속에서 오히려 자기 내로 반성하여 자기와 동일하게 된 본질로 된다는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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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모순을 다루는 끝에 주를 세 개나 덧붙인다. 그 가운데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주 1이다. 주2는 형식논리학에서 모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배중률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하며, 주3은 고대 변증론자가 모순은 운동의 근거라고 말하면서 모순을 인정하지 않기에 운동 자체를 부정했지만, 모순이 운동의 근거라고 한 것 자체는 옳다고 한다. 헤겔은 이런 주 모두에서 모순이 실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려 했다.
주1에서는 헤겔은 흔히 실재는 긍정적인 것이고 부정적인 것은 실재하지 않으며 주관이 사유를 통해 만든 것이라는 주장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대립은 전자는 객체이어야 하지만(그 이름상으로는 가정된 것Poniertsein, 정립된 것을 표현하더라도) 후자는 주관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받아들여진다. 물론, 여기에서 주관적인 것은 다만 외적 반성에 속하기에 그 자체로 대자적인 객체를 전혀 다루지 못하며 전적으로 그런 객체 앞에 나서지도 않는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84)
모든 실재하는 것은 긍정적인 것이라는 주장은 일견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의심스럽게 하는 것이 바로 부정적인 판단이다. 어떤 것은 P이다가 허위라면 어떤 것은 P가 아니라는 주장은 진리가 된다. 이 부정판단을 진리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소위 긍정판단을 진리로 만드는 긍정적 사실 또는 사태가 있을 때 긍정판단이 진리가 된다면, 부정판단을 진리로 만드는 부정적 사실이 있어야 이 부정판단이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닐까?
부정적 사실은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은 지각될 수도 없고 인과적 영향을 미치지도 못한다. 지각되지도 않고 인과적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는 것이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부정적 사실은 없다고 해야 마땅할 것 같다.
그러나 부정적 사실이 없다면, 부정판단은 왜 진리가 되는 것일까? 부정적 사실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게 된다면, 부정판단은 긍정판단을 사유를 통해서 부정함으로써 출현한다고 설명된다.
긍정판단이 허위이므로 그것으로부터 긍정판단을 사유를 통해 부정하는 판단이 진리가 되는 것일까? 그러나 이번에는 긍정판단을 허위로 만드는 것이 문제가 된다. 긍정판단을 진리로 만드는 것은 긍정적 사실이라면, 긍정판단을 허위로 만드는 것은 그런 긍정적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긍정적 사실이 없다는 것은 부정적 사실이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 아닌가?
결국, 부정적 사실이 존재한다고 할 수도 없고, 부정적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다. 부정적 사실의 존재는 일종의 딜레마이며 자가당착에 빠지는 문제다.
5)
헤겔은 위의 구절에서 부정적인 것을 주관적 사유의 산물로 보는 입장을 비판하는데, 그는 우선 부정적인 것이 주관적 사유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정적인 것에 대응하는 대자적인 객체[부정적 사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사실상 부정적인 것이 주관의 자의가 추상한 것에 지나지 않거나 외적인 비교에서 나온 규정을 표현한다면 이 부정적인 것은 물론 객관적으로 긍정적인 것 앞에 출현하지 않는다. 즉 객관적으로 긍정적인 것은 자기 자신에서 그러한 공허한 추상에 관계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면, 긍정적인 것에서 자기가 긍정적인 것이라는 규정도 물론 다만 외적인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84)
부정적인 것의 실재를 부정하는 입장에 대한 헤겔의 반론은 단순하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것조차도 사실은 사태 자체에 외적인 반성에서 나오는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헤겔은 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유가 필요하다.
부정판단이 지닌 딜레마는 긍정판단과 부정판단을 각기 고립적으로 이해하면서 나오게 된다. 이를 고립시킨다면, 부정판단은 긍정판단 전체의 부정이니, 긍정판단의 진리에 의존하게 된다. 이 긍정판단이 진리라면 문제없는데 허위라면, 문제가 벌어진다.
긍정판단은 독자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니(이 경우 긍정판단의 허위를 결정하기 위해 부정판단의 진리로 되돌아가는 것은 도돌이표에 불과하다) 그것이 허위인 경우 부정적 사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정적 사실이란 그 자체가 개념상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니, 있을 수 없다. 그 때문에 딜레마를 벗어날 수 없다.
6)
그러나 우리의 사유는 헤겔이 주장하는 것처럼 반성적이다. 즉 사유 자체가 반성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사유는 서로 대립하는 것들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빨간색은 파란색과 같은 빨갛지 않은 색에 대립하여 규정된다. 이 파란색을 빨간색의 부정으로 만드는 것은 사유에서의 반성적 관계다. 사실 파란색은 사유에서는 반성적 관계를 통해 빨간색의 부정이지만, 사실은 그저 파란색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정판단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긍정적 사실에 대한 판단이며, 다만 사유를 통해 부정적인 판단으로 구성된 것일 뿐이다. 나는 파란색을 보는 순간, 이것은 파란색이라고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동시에 이것은 빨간색이 아니라고 부정적으로 판단한다. 그러므로 진리인 부정적인 판단은 사실 긍정적인 사실에 대한 판단을 통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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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허위인 긍정판단도 마찬가지로 반성적으로 판단된 것이다. 이것은 파란색인데, ‘이것은 빨간색’이라고 판단할 경우 그것은 허위이다. 이런 판단은 이것은 파란색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동시에 이것은 빨간색이라는 판단은 허위가 된다. 이는 곧 반성 관계를 통해서 나온 것이지, 이 허위인 긍정판단이 부정적 사실에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6)
인간의 사유가 반성적이라는 사실은 진리인 부정판단보다 더 확실하게 증명하는 것은 없다. 어떤 논리도 판단을 고립적으로 즉 요소 명제나 원자 명제로 파악한다면, 부정판단의 진리의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
긍정적인 판단이든, 부정적인 판단이든 사실은 다 긍정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 긍정적 사실을 반성적 사유를 통해 긍정적으로 판단하기도 하고 진리인 부정적인 판단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존재하는 것은 모두 긍정적이다. 부정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든 긍정적 사실은 서로 상이할 뿐, 그 사실 사이에는 대립은 없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이 문제는 다른 문제다.
긍정적 사실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 긍정적 사실이 서로 대립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전기는 +전기에 대립하지만, -전기가 부정적인 사실은 아니다. 남극은 북극에 대립하지만, 남극이 부정적 사실이거나 아니면 북극이 부정적 사실은 아니다.
형식논리학에서 사유는 존재에 외면적인 것이며 이때 어떤 것들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묶는 것은 전적으로 주관적 사유에 속하는 것이며 실재 자체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칸트의 선험적 철학에 따르자면, 사유가 존재를 구성하므로 사유에서 대립은 존재를 대립적으로 구성한다. 그러므로 사유에서의 대립은 존재에서의 대립으로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빛과 어둠을 보자. 양자는 대립하지만, 이는 사유에서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빛과 어둠은 곧 존재에서의 대립이기도 하다. 어둠이 빛에 대립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둠이 어떤 긍정적인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어둠은 고유한 실재를 지닌다. 그러나 빛과 대립하여 본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현상적으로는 대립하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립은 동시에 반성적 사유에 의해서 대립한 것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것이 사유를 통해 구성된 만큼 긍정적인 것 역시 사유를 통해 구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위에서 부정적인 것만 사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도 사유에 속한다고 했다.
7)
물론, 이런 대립하는 것이 실재한다고 할 때 이는 현상적인 대립이다. 칸트는 물 자체는 사유 밖에 있다고 했다. 사유에 의해 구성된 대립이 아닌 물 자체에서의 대립이 있는가는 알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헤겔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헤겔은 외적 반성에서 규정하는 반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물 자체에 내재적인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런 규정하는 반성에 사유에서 본질은 곧 객관적이니 여기서 긍정적인 것이나 부정적인 것도 실재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며 객관적인 것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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