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3-칸트의 미적 판단과 반성 운동[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3-칸트의 미적 판단과 반성 운동
1)
위에서 비교라는 개념이 반성 개념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말했다. 칸트는 이처럼 비교를 통해 나오는 반성 개념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반성 개념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이미 라이프니츠의 반성 개념을 비판할 때 선험적 반성 개념으로 제시되었다.
칸트는 라이프니츠가 성질과 현존을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오류에 빠졌는데 그는 이를 구별하면서 이런 구별을 대상 자체에서 차이가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인식 능력에서의 차이를 통해 제시한다.
칸트는 성질은 지성의 개념에 귀속되는 것이며 반면 현존은 감성의 형식에 귀속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것을 그것의 근거인 인식 능력에 귀속하는 작업을 선험적 반성이라 했다. 여기서 반성은 어떤 것의 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반성 즉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성 개념을 이런 방식으로 사용한 것은 판단력 비판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판단력 비판에서 두 가지 판단을 구분한다. 하나는 규정적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반성적 판단이다.
2)
규정적 판단은 일반적 개념 아래에 개별적인 대상에 포섭하는 것이고 모든 인식 판단은 이런 규정적 판단이다. 칸트는 도덕적 실천 판단 역시 이런 포섭 판단 속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와 다른 또 하나의 판단이 있는데, 그것은 개별자가 주어지면 이 개별자에 적합한 어던 일반적 개념을 찾아내는 판단이다.
칸트는 이런 판단을 반성 판단이라 하면서 심미적 판단은 인식이나 실천 판단과 달리 이런 반성 판단이라고 하였다. 칸트는 규정적 판단은 지성의 작용이라면 반성 판단은 상상력의 작용으로 보니 두 가지는 근본적으로 인식의 근원에서 차이가 있게 된다.
여기서 제시된 반성 개념은 앞에서 논의된 비교를 통해 나오는 반성 개념과 거리가 있다. 칸트 자신은 양자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양자를 구별해서 용어를 구별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칸트가 반성 개념을 이렇게 이중적으로 사용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칸트의 이런 시도는 곧 반박에 부딪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칸트가 제시한 규정적 판단과 반성 판단의 구별은 분명하지 않다.
규정적 판단은 일반적 개념을 개별 대상에 적용하는 것인데, 이런 적용은 직접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도식을 매개로 해서 적용된다. 그런데 이 도식은 상상력(칸트는 구상력이라 했지만, 본래 상상력과 같은 것이다)의 작용이다. 상상력이 미리 개별 대상에 적합한 일반적 개념을 찾아놓지 않았다면, 이런 구성 작용도 불가능할 것이다.
거꾸로 미적 판단에서 상상력을 통해 개별자에 적합한 일반적 개념에 귀속하는 것도 지성의 매개를 통해서 가능하다. 상상력은 개별자를 임의로 일반 개념에 귀속시키니, 이는 그 자체로 보면 자의적 작용이다. 하지만 미적 판단이 자의적이지 않고 일반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개별자에 가장 적합한 일반적 개념이어야 한다. 이는 그 개별자를 필연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이니, 이런 필연적 관계는 지성의 개념 구성 작용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하다.
3)
이제 헤겔은 칸트가 구별한 두 판단 형식 즉 규정적 판단과 반성적 판단을 판단 자체에 내재하는 두 가지 과정으로 통합한다.
하나의 판단은 술어가 주어에 속한다는 의미에서 내재의 관계라 한다. 예를 들어 이 꽃은 빨간색이라는 판단은 이 꽃이 지닌 여러 성질 가운데 하나인 색깔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 내재 관계는 곧 주어인 일반 개념에 속하는 구체적 술어를 끌어내는 측면에서 개념의 구체화하는 운동을 보여준다.
반면 주어인 어떤 개별자들이 술어인 일반적 유에 속하는 관계를 포섭의 관계라고 한다. 이런 빨간 꽃들은 장미다라고 할 때와 같다. 이런 개별자로부터 일반적 유를 찾아 들어가는 운동 과정을 헤겔은 근거로의 복귀라고 한다.
헤겔이 개념 논리학 판단론에서 전개한 판단의 두 가지 의미는 본질론에서는 반성 운동의 두 가지 형식으로 규정된다. 개념이 구체화하는 과정은 정립하는 반성에 속하게 되며, 반면 근거에로 복귀하는 과정은 전제하는 반성에 속하게 된다.
헤겔은 칸트가 두 가지 과정을 두 가지 독자적인 판단으로 구분하여 하나는 인식과 도덕의 판단으로 보고 다른 하나는 미적 판단으로 보았던 것과 달리, 양자를 하나의 판단이 지닌 두 가지 대립된 계기로 이해한다.
즉 그에게서 A는 B다라는 판단은, 한편으로는 A의 개념을 구체화하여 술어 B를 정립하는 과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자 A를 추상화하여 일반적 유인 B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그에게게서 주어와 술어는 각기 이중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A는 한편으로는 추상적 개념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자다. 개별자는 내적으로는 추상적 개념을 담지하고 있으니 구체적으로 꽃은 개별 장미인 동시에 장미의 일반 개념을 담고 있다. 이런 개별자인 동시에 내적인 일반 개념을 헤겔은 그 자체 존재라고 규정한다.
반면, 술어 B는 한편으로는 구체화된 개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적 유이니, 예를 들어 빨간색은 장미 개념의 구체화이면서 장미의 일반적 유에 해당하니, 헤겔은 이를 개념이 그 자체적으로 동시에 대자적으로 실현된 존재라고 한다.
4)
헤겔의 반성 개념은 칸트가 벌여놓았던 철학적 논의를 종합하는 가운데 출현한다. 그는 앞에서 칸트가 구성적 판단과 반성적 판단을 구별한 것을 반성의 두 가지 개념 즉 정립하는 반성과 전제하는 반성으로 구분한다.
헤겔은 양자를 하나의 판단이 지닌 두 가지 계기로 통합한다. 즉 정립하는 반성은 전제하는 반성을 매개로 하며 거꾸로 전제하는 반성 역시 정립하는 반성을 매개로 한다.
이런 통합된 반성 개념을 헤겔은 다시 공간적 현존과 연관시킨다. 사물이 관계하여 공간을 이룰 때 여기서 적용되는 것이 동일성과 차이와 같은 반성 개념이다. 이런 반성 개념은 사물이 관계하는 공간에서만 적용할 수 있으며 그 관계가 없다면 적용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런데 헤겔에서 모든 성질은 관계 속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일정한 공간적 현존을 지니고 여기서 반성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헤겔에서 이 공간적 관계는 관계하는 방식에 따라서 달라진다.
앞에서 질의 범주를 다룰 때 하나의 질은 이미 그 자체에서[an ihm]에서 다른 질과 관계한다. 여기서 하나의 질은 다른 질로 단적으로 이행하는 관계에 있다. 이런 단적 이행의 관계도 하나의 공간이지만, 사실 양자가 동일한지 차이 있는지를 비교할 수는 있더라도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이행은 순간적으로 이행하는 명멸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양적인 범주를 보자. 양적인 범주는 자기를 넘어서 간다. 여기서는 연속성의 관계가 존재하며 그 차이는 양적인 크기의 차이일 뿐이다. 따라서 여기서도 동일성과 차이라는 반성 범주를 적용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양은 그 물체에 외면적이기 때문이다. 3과 3은 같고 3과 4는 같지 않지만, 세 개의 바퀴를 지닌 자전거와 세 개의 다리를 지닌 솥이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헤겔은 관계가 이미 존재론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여기서 반성 개념을 다루지 않는다. 헤겔은 반성 개념을 비로소 본질 개념이 출현한 이후인 본질론에서 다룬다. 본질은 앞에서 생명의 개념으로 설명했는데 여기서는 생명체의 종과 개체 사이의 관계가 전개된다.
이때 개체는 다른 개체에 대해 같은 종이지만, 서로 다른 개체가 되면서 여기서는 같다와 다르다가 실질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나와 타자는 하나의 개체로서 지속한다. 이런 지속성이 있으므로 비교될 수 있으니 동일한지 다른지가 문제 된다. 여기서 개체는 종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작용한다. 암수의 구별은 종의 재생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5)
이처럼 본질과 개체 사이의 관계에서 비로소 반성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반성 개념 자체는 어떤 공간에 현존하는 사물들 사이에 적용된다. 그러나 그런 사물들이 비교되는 공간 자체를 만들어내는 본질과 현존, 종과 개체의 관계는 주어와 술어의 관계이며 이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반성 운동 즉 정립하는 반성과 전제하는 반성이다.
반면 같은 공간 속에서 서로 대립적 관계에 있는 개체들은 직접적 연관이 없다. 그것들은 심연을 통해 단절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종의 개체들 사이의 관계는 질의 관계나 양의 관계와 구분된다. 질과 양에서 서로 관계하는 것들은 직접 서로 관계한다.
개체들의 직접 관계를 수평적 관계라 한다면, 종의 개체들은 그런 관계가 없다. 그들은 심연을 통해 관계하니 즉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본질을 통해 재생산 된 현존이므로 이런 점에서 본질을 통해 매개적으로 관계한다. 이를 우리는 수직적 관계라 할 수 있다.
이런 수평적 관계와 수직적 관계를 구분할 때, 헤겔은 반성 개념 즉 동일성과 차이 등의 개념은 수평적 관계에 적용되며, 규정하는 반성이나 전제하는 반성과 같은 반성하는 운동은 수직적으로 관계한다. 수평적 관계는 이런 수직적 관계를 통해 매개된다. 거꾸로 수직적 관계는 수평적 관계를 통해 매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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